개혁자 루터의 반유대주의




개혁자 루터의 반유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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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적 저항신학을 손에 들고 부패한 중세 가톨릭을 전복시켰다는 게 루터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루터의 고향 독일의 역사학자인 볼프강 비퍼만의 견해는 좀 다르다.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인 그는 신간 '루터의 두 얼굴'(평사리)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자축하는 동시대인들에게 찬물을 끼얹는다.

저자는 독일 개신교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국가주의, 국가가 주도하는 전쟁을 지지하는 주전(主戰)주의, 자본주의, 반유대주의, 반집시주의, 반페미니즘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 뿌리를 루터에서 찾는다.

저자에 따르면 루터는 16세기 농민전쟁에서 제후들의 편에 섰다. 봉기한 농민들을 공격하라고 요구했고, 실제로 수천 명의 농민이 학살당했다.

1543년 출간된 루터의 저작 '셈 함포라스와 그리스도의 성에 관해'에서는 유대인을 "고삐 풀린, 나쁜 망나니로 이루어진 찌꺼기"라고 지칭하며 노골적으로 경멸한다. 또 다른 저작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해'에서는 유대인의 종교 서적을 빼앗고, 그들의 회당을 불태우며, 재산은 몰수하자고 역설한다.

루터는 교황청의 폐습을 누구보다 앞장서 비판했지만, 정작 가톨릭의 마녀 미신은 극복하지 못한다. 그는 마녀를 '악마의 나쁜 창녀', '우유를 훔치고 악천후를 만들고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존재'라고 묘사한다.

또한 "부인이나 처녀가 잘난 체할 때만큼 꼴사나울 때가 없다", "아내가 지닌 가장 위대한 명예는 언제나 남자들이 그녀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등 반페미니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에 대해 저자는 "루터는 여성들 안에서 오로지 가정주부와 어머니만을 보고 싶어 했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이처럼 루터의 발언과 저작을 조목조목 분석한 뒤, 그의 유산을 무비판적으로 계승한 독일 교회의 흑역사를 재조명한다. 반기독교적인 나치가 등장할 때 교회가 이를 묵인하고, 유대인과 집시에 대한 박해에 침묵하는 죄를 짓지 않았느냐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옮긴이 최용찬은 "비퍼만의 책은 독일 역사학자의 철저한 고증작업의 성과물인 동시에 독일 개신교도의 처절한 자기반성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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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대주의(히브리어: אנטישמיות, 독일어: Antisemitismus)는 유대인들을 향한 차별과 증오를 말한다.

유럽 언어에서 대체로 "반셈족주의"로 불리나, 명칭과 조금 다르게 셈족 전체에 대한 혐오보다는 오직 유대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혐오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쓰인다.[1]

반유대주의는 여러 형태가 있다. 개인적인 증오에서 홀로코스트포그롬폭력적인 박해까지 여러 예가 있다. 긴 역사로 가장 오래된 증오라고 불리기도 한다.[2]

유럽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을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고 여기고, 고대교회 교부들은 유대인들을 위선자라고 부른 종교편견[3][4]이나 유대인들을 열등한 인종으로 보는 인종 차별이 반유대주의의 발단이 될 수 있다. 시온주의이스라엘을 반대하는 극우파, 근대 유럽의 사회주의[5]와 이슬람 급진주의에서도 반유대주의를 찾을 수 있다.

반유대주의의 첫 발생은 확실하지 않다. 베를린 자유대학교 페터 셰퍼(de) 교수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고대 이집트의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 할 때 널리 퍼졌다고 주장했고 반유대주의는 이집트에서만 일어났다고 주장한다.[6] 가장 오래된 반유대주의의 흔적은 Agatharchides의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2세기당시 고대그리스의 역사가였던 그는 유대인들의 풍습은 어리석다고 조롱했고 안식일을 지내서 예루살렘이 침략받았다고 비꼰적 있다.[7]

또한 구약성서인 《마카베오기 제1권》에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점령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반유대주의정책이 언급되어 있다.[8]

서유럽의 유대인 박해

서유럽에서의 기독교 강제개종

유대인에 대한 핍박과 추방은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등 기독교 국가를 중심으로 끊이지 않았다. 스페인은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로의 강제 개종 칙령을 내려 탄압하고 영구적으로 추방했고, 14세기 중엽부터 16세기까지 대부분의 독일 도시에서 유대인들은 공식적으로 추방을 당했다. 이러한 추방 외에도 기독교를 국가 종교로 표방한 서유럽의 유대인에 대한 대표적 박해 양상은 의식살인(de)유언비어[9], 성찬모독 비난, 탈무드 소각, 종교적 논쟁의 네 가지 형태로 일어났다. 이러한 박해의 양상으로 인하여 자연히 기독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대감은 깊어만 갔다.

동유럽으로의 이주

스페인의 유대인 박해는 전유럽에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서유럽에서조차 유대인들은 발붙일 곳을 얻지못했지만, 폴란드를 중심한 동유럽은 비교적 유대인들에게 관대하여 유대인들을 위한 새로운 보금자리 구실을 하였다. 18세기 중엽 전세계의 유대인 인구는 약 300만 가량이었고 이들 중 대부분은 동유럽에 편중되어 살게 되었다. 폴란드에는 주후 18세기 말 약 150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살았는데 폴란드가 붕괴되면서 이들은 러시아와 프로이센 그리고 오스트리아로 편입되었다.[10]

십자군 원정과 유대인

유대인들에 대한 통속적인 종교적 증오심을 교회가 공식적으로 주입하게 된 계기는 십자군 원정이었다. 1096년에 가톨릭 교회는 십자군 전쟁을 시작했다. 교황 우르반 2세는 무슬림 침략자들로부터 성지를 회복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군사들을 모집했다. 그런데 그들이 성지로 가는 도중에 만나는 유대인들을 무슬림처럼 취급하였다. 그러나, 십자군의 유대인 학살에 대하여 유대 공동체는 금욕적이고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유대인들은 십자군이 칼을 대고 제시하는 세례를 거부하면서 세례 받기보다는 율법대로 죽음을 감수하거나 아니면 집단 자살을 택했다. 십자군의 유대인들에 대한 만행은 십자군이 회복하고자 했던 성지 예루살렘에서 자행되었다. 십자군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칼은 무슬림들은 물론 유대인들을 죽인 피로 물들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여, 우리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회당에 불을 질러 안에 있던 유대인들이 산 채로 불에 타 죽게 하였다. [11]

루터의 반유대주의

동정적인 입장

마르틴 루터는 그리스도의 유대적 배경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그것은 유대인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기독교인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선교적인 관점에서 교회가 같은 뿌리의 종교를 가진 유대인 형제들에게 너무도 악한 모습을 보이고, 오히려 그들을 핍박함으로 유대인들이 교회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고 반성하였다.

1523년 루터는 《예수는 유대인으로 나셨다 Dass Jesus Christus ein geborener Jude sei 》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하여 기독교인들의 사악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유대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만일 내가 유대인이었다면 이런 둔하고 버릇 없는 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규제하고 가르치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기독교인이 되기 보다는 차라리 암퇘지가 되기를 더 좋아했을 것이다. 우리는 몇몇 유대인들을 그들 조상이 가졌던 참 신앙으로 이끌어 줌으로써 그들을 돕기를 원한다.”[12]

루터의 만년

표지, Wittenberg 1543년 1월

그러나 루터는 1543년 1월 반유대주의로 급선회하는 《유대인들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하여 Von den Jüden und jren Lügen》를 발표했다. 그는 이 저술에서 "유대인의 회당을 불지르고, 그들을 죽이고, 매장하고 회당을 무너뜨리고, 탈무드를 빼앗으라"고 주장하며 유대인 탄압을 선동했다. 루터의 이런 주장은 묻혀 있다가 19세기 초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독일에서 기독사회당 (Christlich-soziale Partei) 대표인 아돌프 슈퇴커(Adolf Stoecker 1835-1909) 에 의해 널리 퍼졌고 나찌에게 파급되었다.[13]

드레퓌스 사건과 반유대주의

nowiki  드레퓌스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반유대주의가 최고조에 이르러 사회문제로 표출된 사건은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 때였다. 1894년 드레퓌스는 증거가 없는데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 무기징역에 처해져 악마섬(Île du Diable)에 유배되었다. 반유대주의는 가톨릭 교회와 가톨릭 언론, 군부등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졌다. 이에 에밀 졸라를 비롯한 지식인들의 격렬한 항의는 유럽에서 반유대주의의 심각성을 일깨웠고 이는 곧 오스트리아의 언론출신 유대인 테오도어 헤르츨시온주의 주창으로 연결됐다.[14]

홀로코스트

nowiki  홀로코스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현대의 반유대주의

인종 학살극인 홀로코스트의 충격으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극소수의 극우 이외에는 반유대주의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아직도 반유대주의가 강하게 남아있으며, 특히 이스라엘 국가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서 크게 나타난다. 또 아마디네자드 이란 전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핵 미사일을 날리겠다고 공언할 만큼 특히 이슬람 종파 중 시아파에서는 극심한 반유대주의가 나타나고 있다.


  1. 각주


  2. "Antisemitism has never anywhere been concerned with anyone but Jews." 루이스, 버나드. "Semites and Antisemites" Archived 2011년 5월 14일 - 웨이백 머신, Islam in History: Ideas, Men and Events in the Middle East, The Library Press, 1973.

  3. Our common inhumanity: anti-semitism and history Archived 2019년 6월 30일 - 웨이백 머신 by Richard Webster (a review of Antisemitism: The Longest Hatred by Robert S. Wistrich, Thames Methuen, 1991

  4. 《세계종교사입문》/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종교사연구회/청년사

  5. 《이야기 교회사》/이성덕 지음/살림

  6. 근대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을 부르주아 계급으로 이해하여 반대하였다. 물론 모든 유대인들이 자본가였던 것은 아니었다. 살림지식총서《유대인》/정성호 지음/살림

  7. Schafer, Peter. Judeophobi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7, p 208.

  8. Flannery, Edward H. The Anguish of the Jews: Twenty-Three Centuries of Antisemitism. Paulist Press, first published in 1985; this edition 2004, pp.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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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루터의 반유대주의 글들을 굉장히 익숙해 했고 아주 존경했다.

'나의 투쟁(Mein Kampf)' 에서 히틀러는 루터를 독일의 가장 위대한 3명의 위인으로 칭송했다. 

Frederick the Great 와 Richard Wagner와 함께. 1938년 11월9-10일 나찌는 Kristallnacht 지역에 유태인 학살을 시작했다. 

그들은 독일에 있는 모든 유대인교회(synagogue)를 전부 파괴하고 35명의 유대인을 살해했다. 

그리고 그 날의 학살은 마틴루터의 생일을 기념해서 했다고 발표한다. 





 


마틴루터의 말기에 발행된 팜프렛의 그의 글 " Concerning the Jews and Their Lies" 에서 루터는 8가지 행동을 유태인들에게 행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1. Burn all synagogues 

모든 유대인의 교회를 불태우라

2. Destroy Jewish dwellings

유대인의 거주지들을 파괴해라

3. Confiscate the Jews' holy book

유대인의 성경을 압수해라

4. Forbid rabbis to teach

랍비들이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라

5. Forbid Jews to travel

유대인들의 여행을 금지하라

6. Forbid Jews to charge intereste on loans to non-Jews and confiscate Jewish property

유대인들이 비유대인들에게 돈을 빌릴때 이자를 금지하고 유대인의 재산을 압수해라

7. Force Jews to do physical labor

유대인들에게 육체적 노동을 시켜라

8. Expel the jews from provinces where Christians live

기독교인들이 사는 곳에서 유대인을 추방하라


마틴 루터 저-‘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Martin Luther, 1483-1546)에서   

“그들이야말로 진정 거짓말쟁이요 피에 굶주린 개때들이다. 

저들은 요망한 해석으로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변조하고 알아볼 수도 없게 만들어 놓았다.

저들의 매일 같은 한숨과 염원은 오직 구약의 에스더 시대에 저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이방인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는 것이다...  

아, 저들이 얼마나 에스더기를 사랑하는지 보라. 저들의 피로 사무친 원한에 그보다 더 어울리는 책도 없을 것이다..

해가 이 땅에 뜬 이래로 스스로를 신에 선택 받은 민족이라 자처하는 유대인만큼 피에 굶주리고 복수심에 들끓는 족속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비유대인을 살인하고 절멸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다. 저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란 것도 유대인을 위해 이방인을 말살하고 온 세상을 칼로 정복할 자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저들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그래왔듯이 저들은 오늘날도 똑같은 꿈을 꾸고 있다. 단지 힘이 모자라서 못하는 것 뿐이다...  

그들의 저주받을 저 고리대금업을 보면 알 듯이 불신자의 금과 은으로 입에서 악취를 풍기는 그들보다 

이 하늘 아래 더 탐욕스러웠고 또한 앞으로도 그럴 민족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재물을 모으는 것이다.  

저들은, ‘메시야가 오면 온 세상의 금과 은을 빼앗아 유대인들에게 나누어 주리라’고 지껄인다.

그러므로 저들은 자기들의 그 끝없는 탐욕을 채울 수만 있다면 언제든 사악하게도 성서를 자기들 멋대로 왜곡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친애하는 기독교 형제들이여, 알지어다! 사탄 다음으로, 진정 유대인이고자 하는 유대인만큼 

우리에게 위험하고 독소적이며 골수에 박힌 적개심을 품은 적도 없음을.저들 중에는 개나 소나 믿을만한 망령된 미신이나 

관습의 노예가 된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역사 속에서 저들은 우물에 독을 풀고 트렌트(Trent)나 바이진(Weiszensee)의 사건처럼 아이들을 훔쳐 

흉악한 짓을 저지른다는 혐의를 받는 것이다. 

물론 저들은 이를 부정한다. 

어쨌든 사실여부를 떠나 나는 저들이 할 수만 있다면 공개적으로나 은밀하게 언제든지 이를 행동에 옮길 준비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탄을 모르는 사람은 저들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그토록 원한을 품고 있는지 어리둥절해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들에게 좋은 일만 하는 우리에게 그들이 원한을 품을 이유도 없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우리들이 만든 집에서 살며 우리의 보호 아래 우리의 땅과 도로와 시장과 거리를 이용한다. 

대공(大公)들과 정부가 입을 벌린 채 코를 고는 동안 유대인은 그들의 금고와 민중의 호주머니를 마음대로 도둑질한다. 

이것이 스스로의 돈으로 피가 마를 때까지 착취당하고 결국은 거지꼴로 전락하는 게 아니라면 또 무엇이겠는가?  

외국인인 그들은 분명 우리의 것을 가질 권리가 없으며 저들의 재산도 실은 모두 우리의 재산이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유용한 것을 생산하는 것도 아니며 우리가 그들에게 돈을 기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우리의 돈과 재물을 모조리 움켜쥐고 자기들이 유배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 땅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저들의 탈무드를 보면 이방인이 이스라엘 민족을 죽이면 죄가 되도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인을 죽이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랍비들이 말하지 아니하던가? 

또 이방인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므로 이방인의 돈을 도둑질하고 강탈하는 것은 (고리대금업으로 이미 하고 있듯이) 저들에겐 신에 대한 봉사인 셈이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이 세상의 군주이며 이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종이요 가축일 뿐이다...  

내가 보기에는 차라리 세편의 이솝 우화 속에 랍비들의 모든 탈무드 서(書)들보다 더한, 유대인은 절대로 깨닫지 못할 지혜가 담겨있다... 어쩌면 누가 나의 말이 너무 과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실로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그들의 회당과 학교에서 하는 기도 속에서 우리 고이들(Goyim)을 얼마나 저주하고 

우리에게 악의를 품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리대금으로 우리의 돈을 강탈하고 온갖 부류의 야비한 술수를 부린다.  

유대인을 사로잡고 있는 사탄이라면 모를까 그 어떤 외국인도 이런 짓을 하지 않았고 또 하지 않을 것이다... 

유대인 중에서도 학식 높은 랍비였다가 신의 은총으로 기독교인이 된(어쩌다 한번 있는 일이지만) 부르겐시스(Burgensis)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회당에서 우리에게 퍼붓는 끔찍한 저주들(라이라도 증언하듯이)을 보면 그들이 결코 신의 선민일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창녀의 아들이라 부르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간음녀로 부른다

 - 사탄에 대적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런 말을 입에 담는다. 

우리는 우리의 아내를 저들이 성모 마리아에 대해 하는 것처럼 창녀라 부르지 않고 저들이 우리의 주님 그리스도에 대해 

그러는 것처럼 후레자식이라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저주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들의 육신과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우리와 함께 살도록 허락해 준다. 

우리는 저들의 아이를 훔쳐서 흉악한 짓을 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마시는 물에 독약을 풀지도 않고 

그들의 피에 목말라 하지도 않는다...  

자, 우리가 그들을 노예로 붙잡고 있다는 저들의 새빨간 거짓말을 보라! 예루살렘이 망한 것은 1400년 전이었고 

그 동안 우리 기독교인은 세상 곳곳에서 유대인에게 고문당하고 핍박 받아왔다.

게다가 우리는 도대체 그 어떤 마귀가 이들을 우리나라에 데려다 놓았는지 모른다. 

우리가 예루살렘에 가서 그들을 데려오지 않은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그들을 인질로 붙잡아두고 있다.

마치 종살이를 하듯 나의 모든 것을 바쳐 내가 나의 류마티즘이니 자질구레한 질병이니 불운 따위를 붙잡아두려 하듯이 말이다!

나는 그들이 이 세상 모든 유대인들과 함께 그저 예루살렘에 머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와 같이 절망적이고 사악하고 맹독적이며 악마적인 것이 지난 1400년 동안 우리의 역병이요 병균이요 

불운이었던 유대인의 운명인 것이다... 자, 그럼 이 저주받고 거부당하는 유대민족을 어찌 해야 하나?

우리의 이웃으로 눈을 돌려 프랑스나 스페인, 보헤미아 등지에서 유대인들을 어떻게 처리했나를 보고 보편적인 지혜를 얻어야 할 것이다.  

이들 나라에선 유대인이 고리대금으로 훔친 돈을 몰수하여 골고루 나누어 주는 대신 그들의 나라로부터 아예 추방시켜버렸다.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유대인에 대한 신의 분노가 너무도 크기에 안일한 자비는 유대인을 더욱 간악하게 만들고 

매질을 가해도 유대인은 조금만 나아질 뿐이다.  

그러므로 모두 쫓아내어야 한다!... 우리의 돈으로 거부가 된 유대인들이 온 기독교국가들을 깔고 앉아 

우리를 비웃고 조롱하고 스스로의 대담함에 깔깔거리는 꼴을 언제까지 보고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신에게 분노의 심판을 받기는커녕 그들의 매부리코로 새끼돼지들 마냥 킁킁대는 유대인을 보면서 

사탄과 그의 천사 암퇘지들은 또 얼마나 흥겨워할 것인가?” (Von den Juden und Ihren Luegen)

"어쩌면 부드럽고 온화한 기독교인들은 불쌍하고 핍박 받는 유대인들을 상대로 내가 너무 심하게 이들을 조롱하고

비아냥댄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 말을 들으라, 유대인과 같은 악마적인 족속을 조롱하기에 나는 너무 미약하고 저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저들이야 말로 온갖 냉소와 조롱의 천재들이며 이 분야의 대가인 신을 섬기고 있다.  

그 신이란 바로 사탄인 것이다... 내가 보기엔 구약성경만 보더라도 유대인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온갖 타락상과 악의에 찌든 불량배들이라는 증거는 충분하며 그 누구도 내 생각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고리대금업, 간첩, 배신과 기만행위로 나라를 망치고 우물에 독약을 풀고 애들을 훔쳐가고, 

한 마디로 온 세상에 퍼져 인간에게 해가 되는 갖은 못된 짓은 다 하는 족속인 것이다.” 

(Vom Schem Hamphoras und vom Geschlecht Christi)


루터의 개혁은 인문주의적(르네쌍스에 의한 그레꼬 로망의 부활로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적 사상)인 바탕을 깔고

 인간중심 속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후에 인간중심인 동시에 사단중심적인 자유주의신학이 태어나는 빌미를 제공한 결과를 낳았으며 

이를 토대로 한 진화론이 발생하도록 방치한 결과로 나타나도록 한 것이다.

루터의 개혁 이후에도 로마 카톨릭의 태양문화 중심은 그대로 프로테스탄트 개혁 교회 속에 

그냥 잔존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또한 개혁 교회의 전통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루터에 의하여 개혁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태양문화의 잔재는 아직도 이방교회 속에 남아 있다.. 


어쨌든 루터로 인하여 히틀러가 유대인을 위한 최종 해결책이라는 미친 생각을 갖기에 이르렀고 600만 대학살이라는 

역사상 미증유의 사태를 불러오기에 이르게 한 것인바, 이는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인 진실이며 보다 

또 하나의 명백한 역사적 증거인 것이다. 

히틀러로 하여금 전대미문의 대 참살 혹은 살육게임 즉 홀로코스트를 연출하도록 한 동기 부여를 한 당사자가 

바로 우리의 존경하는 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라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깝고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역사는 루터를 '히틀러의 아비'라는 가장 잔인하고 치욕적인 오명을 그에게 안겨 주고 있으며 

히틀러를 비난하듯이 그를 비난하고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과연 오늘날 교회에서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런지?... 

루터는 자신의 글 속에서 에스더서를 아주 좋아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나오는 아각(아말렉 족속)의 후예인 하만의 유태민족 말살에 대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자 욕망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로서 하만의 유대민족 말살의 사악함이 그대로 루터에 이어졌고 이는 다시 히틀러에 이어져 세기의 비극이 연출 된 것이다. 

하만의 소원이 루터를 거쳐 히틀러에 의하여 완성을 보았으며 따라서 하만과 루터와 히틀러는 

반유대주의 사상의 삼위일체가 된 셈이다..

  

더욱히 끔찍한 사실은 지금까지 개혁교회(프로테스탄트, 개신교) 안에 차지하는 루터의 영향력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인지라 

오늘의 교회는 대체신학 속에 살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며, 또한 루터의 이러한 반유대주의적인 태도는 

지금까지도 교회로 하여금 유대인들의 반감을 사게 함으로써, 해서 유대인의 때가 도래한 오늘날에 있어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우리 이방인 교회에 커다란 짐과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며 또한 이는 유대인들에 대한 

복음의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루터의 불완전하고 임시 방편적인 개혁으로 인하여 오늘의 프로테스탄트 교회 또는 개혁교회 속에는 

바빌론 이교사상(헬라철학과 로마주의)를 그대로 안고 있게 되었으며 더불어 교회의 예배 의식 제도 역시 사도교회와는 

다른 비성경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는 또한 오늘날 거듭난 유태인 형제들의 모임(메시아닉 쥬 교회 또는 유대인 크리스천 교회)과 그들의 예배를 보면 

얼마나 이방인 교회안에 이교적 잔재가 남아 있으며 우리 이방인교회가 지금까지 성경속에 지시하고 계신 헤브라이즘적인 사상과 문화와 철학을 저버리고 이교적이며 태양문화적인 것에 몰두 해왔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곡식가루가 거룩하니 떡덩이도 거룩한 것이며 뿌리가 거룩하니 그 가지 역시 거룩한 법이다.

그런데 거룩하지 않은(오염된 혹은 더러운) 곡식가루로 어찌 거룩한(정결한, 깨끗한) 떡덩이를 만들 수 있으며 

그 뿌리가 거룩하지 않은데 어찌 가지가 거룩하겠으며 또한 거룩한 열매, 아름다운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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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음식 중에 학세(Haxe)란 게 있다. 종교개혁 발상지 여행단과 함께 나는 지난주 ‘개신교의 성지’로 불리는 독일 비텐베르크에 도착하여 또 학세를 시켜먹었다. 

 

본래는 슈바인학세(Schweinshaxe)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그냥 “학세, 학세”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먹는 돼지족발이라고 보면 된다. 학세는 피클, 맥주와 함께 독일식 삼합(三合)요리로 알려진 음식이다.

 

학세로 점심을 들고 비텐베르크의 그 유명한 시 교회를 방문했다. 성 마리아교회라고도 불리는 이 시 교회는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성교회와 함께 비텐베르크의 상징이자 ‘루터의도시’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시 교회에서 “내주는 강한 성이요”란 루터의 찬송가를 부르며 짧은 기도회를 가졌다. 함께 교회당을 둘러보던 모든 외국인들도 함께 찬송을 부르고 함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었다.

 

이 교회당은 루터가 수녀원에서 환속한 카탈리나 폰 보라와 결혼식을 올린 곳이다. 라틴어 미사를 폐지하고 독일어로 예배를 드린 최초의 교회이기도 하다. 부겐하겐이란 루터의 고해사제가 담임하던 이 교회에서 루터가 설교목사로 사역했던 곳이다. 루터와 그의 절친 멜랑히톤의 개혁사상을 그림으로 표현해 온 크라나흐의 유명한 제단화가 걸려있기도 하다.

 

그러니 이 시교회야 말로 개신교 1호 목사사모님이 탄생한 교회요, 최초로 개신교 예배가 시작된 곳이요, 비텐베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예배당이니 기념비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비텐베르크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시 교회를 나서면 루터와 멜랑히톤의 동상이 서 있는 마르크트 광장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이 도시를 찾아온 수많은 방문객들 틈으로 조용히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서명운동? 눈 여겨 보니 돼지가 문제였다.

 

우리가 기도회를 마치고 나온 시 교회당 건물에는 유대인을 돼지로 묘사하여 기분 나쁘게 풍자해 놓은 조각이 붙어 있으니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화해의 차원에서 이 돼지를 제거하자는 서명운동이었다. 교회당 건물에 돼지가 붙어 있는 줄은 나도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독일에는 수십 개가 있다고 들었다. 이 교회당은 루터시대 훨씬 이전인 1300년대에 지어진 캐톨릭 성당이었으니 루터와 돼지는 사실 상관도 없다.

 

돼지는 어떻게 교회당 건물에 붙어 있게 되었을까? 캐톨릭 교회가 왕성했던 중세의 프랑스, 스페인을 중심으로 유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한 유대인들을 원수로 보았다. 그래서 유대인의 학대와 추방이 끊이지 않았다. 도시마다 유대인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조차 꺼려해 게토란 곳에 잡아넣기도 했다. 특히 11세기가 시작되면서 교황 우르반 2세가 총대를 메고 시작한 십자군 전쟁은 성지 예루살렘을 점령한 모슬렘들이 공격 타겟이었지만 무수한 유대인들도 함께 죽었다. 십자군에 의해 유대인들의 죽음도 피바다를 이뤘다. 14세기-16세기에 이르러 독일에서도 본격적인 유대인 학대와 추방이 시작되었다. 유럽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이 발붙일 곳을 찾아 나선 곳은 동유럽. 특히 유대인 학대가 느슨했던 폴란드에 몰려든 것이다. 인류최대의 범죄자로 낙인찍힌 히틀러의 유대인 대량학살 홀로코스트의 무대가 폴랜드 아우슈비츠가 되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처럼 유대인을 증오하던 캐톨릭교회의 유산으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예배당의 돼지 조각이다. 이 암퇘지 조각은 우선 새끼 돼지들과 유대인들이 암퇘지 밑에서 젖을 빨며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암퇘지 뒤에는, 돼지의 오른 다리를 들고, 꼬리를 잡고는, 자신들의 쉠함포라스(유대인들이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을 비꼬기 위해 쓰는 표현, Shemhamphoras)를 발견하기 위해 어떤 중요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읽는 것처럼 꼬리 밑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랍비를 조각해 놓은 것이다.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나눠준 안내문에는 “이 조형물은 유대인들에게 모욕이 될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돼지의 젖을 먹고 그 엉덩이에 손을 대는 것같이 음란하게 묘사함으로 상식적인 예의에도 어긋난다. 이것은 음란하고 충격적인 반유대적 형상이며 위엄과 예의로 장식되어야 할 기독교 예배 장소에 대한 모욕”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반유대적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는 것은 비단 그 돼지조각뿐 만 아니라 종교개혁의 ‘주연배우’ 마르틴 루터도 마찬가지다.

 

루터는 기독교가 같은 종교를 가진 유대인 형제들에게 너무 악한 모습을 보이며 핍박하는 것을 반성하고 1523년 ‘예수는 유대인으로 나셨다’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기독교인들의 사악함을 비판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180도 돌변한 것이다. ‘유대인들과 그들의 거짓말’을 통해 유대인 탄압을 선동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유대인 회당을 무너트리고 탈무드를 불태우라고 선동까지 했다는 루터는 결국 두 얼굴을 가진 배신자였다는 주장이 일기 시작했다. 루터가 세상을 떠난 지 약 200년이 지난 19세기 초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알고 보니 캐톨릭 교회의 농간으로 밝혀졌다. 루터에게 배반의 칼을 맞은 캐톨릭 교회는 종교개혁이후 자체적인 내부 개혁운동에 착수했고 이때 등장한 급진적 ‘예수회’가 루터를 반유대주의자로 몰아가려 했다는 것이다. 결국 히틀러의 반유대주의 뿌리는 다름 아닌 루터였다는 음모론 때문에 죽은 몸이긴 했어도 살아 있을 때의 명예에 먹칠을 당한 억울한 루터. . .

 

광장을 지나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저들의 서명운동으로 드디어 시 교회의 돼지 조각은 철거될 수 있을까? 그리고 루터는 언제 반유대주의자란 누명을 벗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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