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영



  • 거짓의 아비 마귀(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죄를 조장하는 원조 범죄자 마귀

오늘 본문은 마귀를 ‘처음부터 살인한 자’, ‘거짓말쟁이’, ‘거짓의 아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3:8절은 마귀를 ‘처음부터 범죄한 자’로 소개합니다. 처음부터라는 말은 마귀가 존재하기 시작할 때부터라는 말이 아니라, 역사의 시작 부분들에서부터 악했다는 말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 열매를 따 먹으면 ‘하나님 같이’된다고 거짓말을 하여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선악과를 범하게 함으로써 인류를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거짓말을 했으니 거짓말쟁이요, 죽음에 이르게 했으니 살인자이며, 죄를 낳았으니 거짓의 아비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라는 말은 지금도 그렇다는 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환상이나 소설이나 동화 속 존재가 아니라 실존입니다. 오늘도 끊임없이 범죄의 원흉이 되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게 하는 일을 범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사탄, 루시퍼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악한 자’ (요일 5:19) ‘불량한 자 (벨리알)’ (고후 6:15), 시험하는 자 (살전 3:5),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 (계 12:10)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이름들은 마귀가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짓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마귀는 오늘도 갖은 속임수로 성도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지나치게 부각시켜 교만에 빠지게도 하고, 자신의 가치를 지나치게 하락시켜 열등감과 자괴감에 빠지게도 합니다. 마귀는 또한 거짓 교리를 지어내어 믿는 자마저도 미혹하고자 하며, 하나님 대신 신으로 위장하여 대신 경배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거짓에 속지 않기 위하여 진리를 명확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진리가 마귀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한 세상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완고하게 대적하던 유대인들에게 한 말입니다.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귀의 자식이란 말은 ‘마귀에게 속한 자’를 의미합니다. 요한은 이에 대해 요한일서에서 더욱 명확히 설명을 합니다.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일 3:8-10).

요한은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자들을 마귀의 자녀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마귀의 자녀들의 특성을 마귀의 영향력과 탐욕에 종속된 자들로 규정을 합니다. 같은 의미로 성경은 마귀를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요 12:31)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마귀는 이 세상의 임금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임금은 당연히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왕이신 하나님이 아닌 반역자 마귀를 왕으로 섬기며 살아갑니다. 마귀가 불법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왕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마귀가 아닌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왕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온전히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예수님을 왕이라고 고백하면서 다른 것을 왕으로 삼고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속여 자신이 왕처럼 행세하는 일에 능수능란한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창세 이래로 쭈욱 그 일을 해왔으며 사람의 모든 패턴과 심리와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돈, 명예, 권력, 사람 등의 물질이나, 지성, 감정, 의지, 사상 등의 정신, 그리고 언행과 습관과 문화 등 행동까지 인간의 모든 영역을 통해 각 사람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그것을 활용합니다. 그것에 넘어가면 인간은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왕으로 모시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왕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왕이 되는 법은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도록 디자인 되어 있고, 마귀는 그 왕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이 때 마귀가 시전하는 궁극의 스킬이 바로 “네가 네 인생의 주인이야”라는 거짓입니다. 그 속임에 넘어가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왕이 되어 사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사실 마귀를 왕으로 모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마귀의 덫에 넘어갔으니, 그 자체로 마귀에게 예속된 것일 뿐 아니라, 이후의 인생에서도 마귀가 그를 떡 주무르듯 주무르게 됩니다.

3. 인간을 지배하려는 마귀

마귀의 세력은 오늘날도 불신자나 신자들에게 끊임없이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완전히 사단의 지배 아래 놓인 사람들입니다. 에베소서 2:1은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예수 믿기 전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았습니다. 세상의 풍조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 즉 마귀가 사람들을 장악하는 수단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여전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입니다. 여기에서 불순종의 아들들이란 불신자들을 의미합니다. 마귀는 불신자들을 장악하고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풍조를 좇아 살도록 유혹을 하여 그들의 삶이 마귀에게 예속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 풍조를 좇아 사는 것은 곧 마귀에게 속한 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세력은 신자들을 향해서도 공격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며 경고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벧전 5:8). 요한 역시 “용(사탄)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라고 성도를 대적하는 마귀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계 12:17). 우리는 우리의 인식 여부와 상관없이 무차별적인 마귀의 공격 아래 놓여져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가치가 아닌 세상의 가치를 가지고 세상의 풍습을 따라 사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이 괜찮다고 얘기한다 해서 정말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을 거슬러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하며, 세상과 구분된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풍습은 마귀가 걸어 놓은 덫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약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세상 풍습이나 마귀가 주는 유혹에 따라 산다면 그것은 아직 우리가 마귀에게 속한 상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우리를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안에 마귀를 이길 힘을 예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원하는 것

1.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사탄”

마귀의 첫 번째 의도는 사탄(대적자)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일이 이 땅에 이루어지지 않게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인간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기 위해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하게 만들었습니다. 마귀는 인간의 구원과 마귀의 멸망을 동시에 가져올 예수님의 탄생을 막기 위해 발악을 해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탄생했을 때에 예수님을 죽이려는 시도를 했으며, 아담을 유혹했던 동일한 방식으로 예수님마저 유혹하여 구원자의 자격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을 격동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이용하여 결국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여셨으며, 또한 마귀의 일을 모두 멸하셨습니다.

2. 인간을 중상하는 자 “마귀”

마귀의 두 번째 의도는 마귀(중상자)라는 이름의 뜻처럼 사람이 범죄하게 한 후, 그 죄를 빌미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참소하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에게 죄를 범하게 한 다음 죄를 지었으니 죄값을 받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할 근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마귀가 당대의 의인이라 불리던 욥을 중상하여 욥에게 고통을 주었던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마귀의 꾀에 넘어가 욥에게 고통을 주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깨서는 마귀 따위에게 속임을 당하실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욥에게는 고통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신앙의 지경이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능케 하고자 섭리하셨을 뿐입니다. 또한 욥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통이라고 하는 난제에 대한 빛을 주고, 고통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는 자 “루시퍼”

마귀의 세 번째 의도는 “루시퍼(빛을 가진 자)”라는 이름의 뜻처럼 하나님께서 받을 빛난 영광을 자신이 대신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원래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기 위해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여전히 인간으로부터 숭배받고 영광받기를 갈망합니다.

우리는 모든 거짓말고 속임수를 통해 주인행세를 하려고 하는 마귀를 대적해야 할 것입니다. 그의 의도는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왕으로 모시고 살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것이며, 결국 하나님 대신 자신이 영광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마귀 숭배자에게만 숭배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마귀를 숭배하는 행위이며, 그것이 바로 마귀의 의도입니다. 마귀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땅에 이루어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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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하는 영 / 성경 전체에서 4개 구절

열왕기상 22:22-23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하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를 설득하여 이루라. 나가서 그렇게 하라.’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이제 보소서, 주께서 이 모든 왕의 선지자들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을 넣으셨고, 또 주께서 왕에게 재앙을 말씀하셨나이다.” 하더라.

And the LORD said unto him, Wherewith? And he said, I will go forth, and I will be a lying spirit in the mouth of all his prophets. And he said, Thou shalt persuade him, and prevail also: go forth, and do so.
Now therefore, behold, the LORD hath put a lying spirit in the mouth of all these thy prophets, and the LORD hath spoken evil concerning thee.

역대하 18:21-22

그가 말하기를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하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를 꾀고 또 이루라. 나가서 그렇게 하라.’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이제 보소서, 주께서 이들 왕의 선지자들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을 넣으셨고 또 주께서 왕에 대하여 재앙을 말씀하셨나이다.” 하더라.

And he said, I will go out, and be a lying spirit in the mouth of all his prophets. And the LORD said, Thou shalt entice him, and thou shalt also prevail: go out, and do even so.
Now therefore, behold, the LORD hath put a lying spirit in the mouth of these thy prophets, and the LORD hath spoken evil against t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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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
18:21 "그가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22절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재앙을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적대적인 관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여호사밧과 아합 사이에는 혼인을 맺을 정도로 화친의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었을까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합의 요청으로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로 올라온다.
그리고 길르앗 라못을 되찾는 전쟁에 함께 나아갈 것을 요청한다.
여호사밧은 이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묻기를 바란다.
사백명이 넘는 수많은 선지자들은 아합왕이 원하는 대답대로 아첨한다.
하지만 한 선지자 미가야만이 반대되는 예언을 한다.
권력에 눈치를 보고 사람이 원하는 방법, 방향, 세상의 관례를 따르는 것이 곧 거짓말하는 영을 따르는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쉽게 거짓말하는 영을 따라 가버린다.
오직 한사람 미가야만이 거짓말하는 영을 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목숨을 거는 문제였고 엄청난 고통의 문제였다.
그렇기에 거짓말하는 영에 따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문제인지 생각하게 된다.

​​​​​​​​​​​​​​​​​​​​​​​삶에 적용 :

목사와 장로들이 모두 관례를 따지고 다들 그렇게 했다는 논리로 우리도 그렇게 해 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에야 준비해야할 서류가 무엇인지 말한다.
거짓말하는 영을 따르는 모습이다.
교회가 믿는 자들이 온통 거짓말하는 영에 싸여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양 살아간다.
물론 다행인것은 그들이 요구하는 것들이 터무니없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그들이 요구를 마땅히 따르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 주셨다는 것에 감사하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다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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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18장

19.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그에게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까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20. 한 영이 나와서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니 
21. 그가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22.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재앙을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ㅡ> 21절에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와
22절 '거짓말하는 영을'에서

일반적으로 알기는 거짓말하는 영은 타락한 천사 즉 악령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위의 거짓말하는 영은 하늘에 있는 천사(즉 돕는 영)가 잠시 거짓말하는 영으로 그 역할을 하는 것입니까?

오늘날도 거짓말하는 영은 대체로 타락한 천사 즉 악령의 역사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일신을 믿었고 그래서 세상 만사를 하나님이 주관한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사람을 죽일 능력이 있는 사탄마저도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섭리에 따른 허락이 있어야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욥기 1장)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하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악한 세력을 얼마든지 동원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징계 심판하기 위해서 우상(사탄)을 숭배하는 이방나라로 이스라엘을 침략 정복 도륙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탄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허락하셨는데 거짓말의 영도 당신의 절대적인 뜻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눅 22:3) 예수님을 밀고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질문하신 주제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로는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죽여 없애면 자기가 승리할 줄 착각하고 유다를 비롯한 유대종교지도자들과 우매한 군중들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십자가 처형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오히려 그 모든 것이 사탄에 미혹되어 죄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였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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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과 아합의 결혼 동맹

여호사밧에게는 한가지 연약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북 왕조 아합 가문과의 결혼동맹이었습니다(1).
여호사밧은 아합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임으로 남북 분열 이후 계속되어 온 긴장 관계를 해소하고 화해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외세로 둘러싸인 두 나라의 존립과 번영에 도움을 얻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이 같은 혼인관계가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사밧이 사돈을 만나러 갔을 때 아합은 큰 잔치를 준비하고 함께 길르앗 라못을 치러 가기를 설득했습니다(2).
아합과의 전쟁에서 패한 아람 왕 벤하닷이 과거 자기 부친이 빼앗은 모든 북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반환한다는 조건으로 평화조약을 체결했는데(왕상 20:34), 길르앗 라못을 반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이 같은 사돈의 제안을 “나는 당신과 다름이 없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다름이 없으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라고 하며 선뜻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3).

물론 여호사밧은 이 말 끝에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오늘 물어보소서”라고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4).
하지만 이미 악인과 관계를 맺었고 동업을 하기로 한 마당에서 이 같은 점검은 찜찜함을 달래기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 나에게는 아합과 동맹을 맺은 여호사밧의 연약함은 없습니까?

거짓 선지자들과 참 선지자

아합은 즉시 선지자 사백 명을 모으고 길르앗 라못과 싸울지 말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들 선지자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올라가라고 화답했습니다(5).
이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이세벨의 우상숭배와 타협한 자들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권력자의 뜻을 위해 입의 혀처럼 움직이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특별히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와서는 ‘ 여호와께서 이것들로 아람사람을 찔러 진멸케 하라’ 는 작전까지 주셨다면서 아부를 떨었습니다(10-11).

하지만 여호사밧은 한결같은 저들의 말에 의심을 표하며 믿을만한 다른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았습니다(6).

그러자 아합은 자기에게 나쁜 일만 예언하기 때문에 미워하는 선지자가 있다고 털어놓았고, 여호사밧은 속히 미가야를 불러주기를 요청했습니다(7-8).
말씀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은 아합입니다.
나에게 좋던 나쁘던 말씀에 나를 맞추고 사랑하는 사람이 참된 신자입니다.

● 나는 말씀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합니까?
말씀에 자기를 맞추고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오늘은 그동안 성도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주님의 성품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는 매우 엄중하고도 무서운 경고요, 성도들이 마음 속 깊이 명심해야 할 진리입니다.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에 대한 설교와 간증을 많이 듣지만 주께서 악인을 더욱 완악하게 하시고, 심판할 자들을 속이신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저희 교회 성도들은 이미 이런 설교와 성경 구절들에 익숙할 줄로 압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심판하기로 정하신 한 죄인 아합 왕에게 수십번에 걸쳐 기회를 주시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몇 차례나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셨고, 다른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시기도 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여호사밧 왕의 권고로 미가야 대언자를 통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미가야는 아합도 인정하는 하나님의 대언자였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단지 그가 자신에게 좋지 않는 대언을 한다는 이유로 그를 배척하였습니다. 덕분에 그의 주위에는 자신의 비위를 맞추어 줄 줄 아는 그런 대언자들로만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진리는 언제나 소수였으며 이는 지금이나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이는 성경적인 설교를 싫어하는 오늘날의 성도들의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드디어 미가야가 왕 앞으로 불려 왔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가 왕에게 나오니 왕이 그에게 이르되, 미가야야, 우리가 라못길르앗으로 싸우러 가랴, 아니면 삼가랴? 하니 그가 왕께 이르되, 올라가서 성공하소서. 이는 주께서 그곳을 왕의 손에 넘겨주실 것임이니이다, 하매](15). 이것은 왕이 원했던 답입니다. 지금까지 미가야는 다른 대언자들처럼 아합이 원하는 대답을 할 줄 몰라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대언자였기에 하나님의 말씀만 한 것입니다. 아합은 즉시 미가야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는 미가야가 평소대로 ‘주의 이름으로...’ 또는 ‘주께서 이르시기를...’이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대언자들이 왕의 눈치를 보고, 왕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충성 경쟁을 벌일 때, 미가야는 오히려 그 말을 가지고 조롱하였습니다. 다른 대언자들은 눈에 보이는 왕을 두려워하고 눈에 보이는 왕을 기쁘게 해 주려고만 할 뿐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님을 두려워하고 기쁘시게 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만군의 주시며, 만왕의 왕을 바라보았습니다. 진리의 편에 선 사람은 언제나 소수입니다. 아합이 찾을 수 있는 성경적인 설교자,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미가야 한 명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미가야를 미워했습니다. 자기 기분을 맞춰 주지 않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조언이나 충고를 들을 때 내게 힘을 주고, 나를 합리화해 주고, 변호해주고, 정당화해 주는 말을 얼마나 좋아합니까? 그것이 진리냐? 아니냐?의 유무보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판단했던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말세의 특징은 자기의 가려운 귀를 긁어 줄 선생들을 많이 두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몇 번이나 너로 하여금 맹세하게 하여야 네가 주의 이름으로 오직 진실한 것만을 내게 고하겠느냐? 하니](16). 왕은 미가야의 말이 조롱이란 사실을 알고 주의 이름으로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대언자 미가야는 다른 400명의 대언자들과 달리 ‘주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잘못을 잘못이라 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다고 하고, 죄를 죄라 하지 않고 육신의 연약함이라 변명해 주는 것은 다 거짓이요, 진실이 아닙니다. 흔히들 사람들의 입에서 ‘불쌍한 죄인’이란 말을 잘 씁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 한 곳도 불쌍한 죄인이란 말이 없습니다. 죄인이면 죄인이고, 악한 죄인이면 악한 죄인이지 불쌍한 죄인이라고 죄에 대해 연민과 동정을 베풀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이요, 회개한 죄인일 수 있지만 불쌍한 죄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조언은 언제나 성경적이어야 하며 주의 이름으로 오직 진실한 것만을 말해야 합니다. 아합은 미가야에게 주의 이름으로 오직 진실한 것만을 고하라고 명했습니다. 이는 주의 말씀을 듣고 싶거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라, 네가 감히 이번에는 나에게 뭐라고 말하나 보자 하는 식의 객기로 말한 것입니다. 아합은 주의 뜻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때로 아합과 같이 자신의 뜻을 정해 두고 요식 행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습니까? 믿고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이 결정한 일을 복 주시기만을 구하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충고나 조언을 할 때면 성질을 내거나 그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내가 보매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들에게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하라, 하셨나이다.](17). 미가야는 아합에게 전쟁을 일으키지 말고 여기서 중단하고 군대를 해산하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뜻이며, 명령입니다. 아합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최소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못한 것이 아닙니다. 아합은 주의 뜻을 들었고, 알았습니다. 그러나 들었을 뿐 믿지 않았습니다. 알았지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많은 성도들의 특징이 바로 이것입니다. 설교를 들을 뿐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알지만 순종하지 않습니다. 아합에게는 주의 말씀이 주어졌고, 순종과 불순종의 선택은 그의 몫이었습니다. 아합은 전에 두 차례에 걸쳐 시리아를 상대로 대승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주셨기 때문에 적은 군대로도 크게 이겼습니다. 이는 아합이 잘나서 이긴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길 수 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시리아를 상대로 하는 싸움은 패배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싶었고, 나름대로 외교를 펼쳐 유다 왕 여호사밧까지 끌어 들여 대군을 이끌고 전쟁을 준비하였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오해하거나 과신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승리를 주신 하나님보다 승리 자체에 마음이 빼앗긴 결과입니다. 나에게 베푸신 은혜와 긍휼이 크다해도 그것은 나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성품 때문이란 사실을 알 때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릴 수 있지만 받은 은혜만 기억하면 그것은 이미 빗나간 것입니다.

아합은 대언자 미가야의 말을 어떻게 들었습니까? 그가 보인 반응이 바로 그 사람의 마음 상태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그가 나에 관하여 좋게 대언하지 아니하고 나쁘게 대언하려 한다고 당신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18). 아합은 벌컥 화를 내었고, 분노에 찼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미가야에게 먼저 화를 내기에 앞서 여호사밧을 향해 말했습니다. 만약 여호사밧이 이 말을 듣고 군대를 철수하거나 전쟁에 못나가겠다고 하면 큰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대언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했던 여호사밧은 말씀을 듣는 즉시 전쟁을 포기하고 유다로 돌아가야 했지만 아합에게 그대로 걸려들어 전쟁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속지 말라, 악한 사귐은 선한 습성을 부패시키느니라.](고전15:33). 그는 아합과의 사귐을 통해 한 순간이지만 주님의 말씀보다 아합의 말에 따라 행동하게 되었고, 전쟁에서 목숨이 날아갈 뻔한 큰 위험에 처했습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과 사람의 말들 중에 올바른 선택을 위해 주님과의 친교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 영적 사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주일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형제, 자매들과 영적 교제를 갖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들은 서로 권면하고, 서로 가르치고, 서로 세워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가 필요하고 모임이 중요한 것입니다. 삶에서 배우고 터득한 것, 성경을 통해 체험한 것, 패배한 것, 잘못한 것 들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형제들의 힘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워 주기 위해서입니다.

19-22절은 아합을 죽이기 위해 하나님께서 천상의 신탁 회의를 하는 장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은혜와 용서의 빛만을 보내 주셨던 주님께서 드디어 죽이기로 결심하셨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죽이는가?에 관한 회의입니다. 아합은 지금이라도 대언자 미가야의 말에 순종해서 얼마든지 살아날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회개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 죽음을 보내는 그 순간까지 주님은 자신의 종을 통해 말씀하시는 말씀의 하나님이십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주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주께서 자신의 왕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모든 군대가 그분 옆으로 오른쪽과 왼쪽에 서 있는데](19).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군사 회의를 주제하는 자리입니다. 주님은 전사(戰士)이시며, 구원의 대장이십니다. 지금까지 아합이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이 자리에서 아합의 군대를 지원하도록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땅의 모든 일은 하늘에서 결정됩니다. 특히 성도들의 생활은 저 하늘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3:20, [이는 우리의 생활권(conversation)이 하늘이기(in heaven-하늘 안에 있기) 때문이라...](빌3:20a). 이 땅에서의 우리의 생활은 저 하늘에서 그대로 기록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뭔가를 구하고, 청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미가야를 통해 하늘의 군사회의가 이 땅에 생 중계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모든 일은 저 하늘에 그대로 보여지고, 중계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르시되, 누가 아합을 설득하여 그로 하여금 라못길르앗에 올라가 엎어지게 할까?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다른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20). 이 부분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하나님은 마귀를 이용하시지 않고 자신의 군대에서 직접 이 일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천군 천사들 가운데 지원자를 받고 있습니다. 이 땅의 일에 주님은 침묵하시는 듯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이 기도할 때 즉시 응답을 가지고 가도록 가브리엘을 보내셨습니다. 때로는 주의 천사가 직접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도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질 때도 천사를 보내셔서 지키셨습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했을 때는 주의 천사가 직접 하룻밤에 앗시리아 군대를 전멸시켜 버렸습니다. 주님은 좌, 우편에 세워둔 군대를 이 땅에 파견하십니다. [누가 아합을 설득하여 그로 하여금 라못길르앗에 올라가 엎어지게 할까?]하고 주님이 묻습니다. 저마다 의견을 내었지만 한 명이 자원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한 영이 나아와 주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그를 설득하겠나이다, 하매](21). 이 땅과 저 하늘의 통신 수단이 없다면 이런 사실은 도무지 알래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아합이 꿈엔들 이런 사실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자신이 하시는 일을 미리 대언자 미가야를 통해 알려 주셨습니다. 아모스 3:7, [분명히 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은밀한 일을 자신의 종 대언자들에게 계시하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암3:7). 주님의 이 원칙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성령의 조명을 통해 주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사람이 속는 경우는 세 가지이입니다. 첫째,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둘째,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에게 속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이 속이시면 아무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아합을 속이시려고 하십니다. 문제는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재앙입니다. 지금도 주의 오심과 공중 들림, 대환란, 천년 왕국, 불 심판 등과 같은 수많은 성경의 경고들을 말해 주지만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믿지 않기 때문에 멸망당하고 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대언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하매 그분께서 이르시되, 너는 그를 설득하겠고 또 이기리라, 나가서 그와 같이 하라, 하셨사오니](22). 드디어 하늘의 보좌 앞에 있던 한 영이 하나님의 재가를 얻어 아합의 곁에 있는 사 백명의 대언자들의 입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슨 말을 해도 거짓말입니다. 이는 거짓말하는 영이 그 입에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한영은 주의 대언자의 입이 아니라 ‘그(아합)의 모든 대언자의 입’에 있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 400백 명의 아합의 대언자와 한 명의 주의 대언자 미가야가 있는데 400명의 입에는 거짓말하는 영이 들어갔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보소서, 이제 주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대언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주께서 왕에 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하니라.](23). 미가야는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다 전했습니다. 그것도 자신을 미워하는 왕 앞에서 주의 말씀을 하나도 가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미기야가 대언한 이 구절을 깊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제 주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대언자의 입에 넣으셨고]

주님께서 과연 사람들에게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시는가? 주님께서 사람을 속이시는가?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도 속일 수 있는가? 답은 그렇다입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불순종하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사울에게 악한 영을 보내셨습니다. 그는 처음에 왕이 될 때 기름부음을 받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대언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주의 말씀을 버렸을 때 무슨 일이 났습니까? 사무엘상 16:14, [그러나 주의 영께서 사울을 떠나고 주께로부터 온 악한 영이 그를 괴롭게 하므로](삼상16:14). 성령 충만이 기쁨과 담대함을 주는 반면 악한 영은 괴로움을 줍니다. 사무엘상 18:10, [그 다음날 하나님께로부터 온 악한 영이 사울 위에 임하매 그가 자기 집 한 가운데서 대언을 하더라....](삼상18:10). 사울이 질투심에 사로 잡혔을 때 악령이 찾아 왔습니다. 악령이 임해도 대언을 한다는 점에서 성령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이는 표적과 기사가 모두 주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보여 주는 예입니다. 재판관기 9:23,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판9:23). 아비멜렉은 아버지 기드온의 자식들이요, 자기 형제들을 하룻만에 73명이나 죽였습니다. 주님은 그를 심판하시기 위해 악령을 보내셨습니다. 주님이 말세에 하실 일 가운데 하나는 이 세상에 강한 미혹을 보내셔서 거짓을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1,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한 미혹을 보내사 거짓말을 믿게 하시리니](살후2:11). 지금 아합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주님은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셔서 대언자들이 거짓말로 대언할 때 자신들조차 자신들이 속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만약 지금 교회들에 주님께서 이런 역사를 하셨다면 대부분의 교회는 성경과 상관없는 거짓 교리를 설교하고, 가르치고, 성도들에게 거짓말을 믿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순절 교회, 은사주의 교회, 귀신쫓는 교회, 성공 신학, 축복 신학으로 무장한 교회들을 시무하는 목사들의 입에는 이미 거짓말하는 영이 그 입에 들어갔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악령으로부터 영원히 안전한가? 그렇지 않습니다. 몇몇 근본주의자들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악령에 들릴 수 없다, 마귀들림은 오직 거듭나지 않는 자들에게만 한정된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들이라도 언제든지 마귀에게 속을 수 있고, 마귀 들릴 수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속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살후2:3)고 말씀합니다. 마귀는 인류 6,000년 역사에서 사람을 속이는데 단 한 명(예수 그리스도)을 제외하고 실패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마귀는 사람을 속이는데는 고도의 전문가입니다. 특히 마귀의 전공 분야가 바로 기독교인들과 성경 문제입니다.

성도들이 자기 마음 속에 우상을 세워둔다면 그는 분명히 속습니다. 하나님은 마음 속에 우상이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이셨습니다. 에스겔 14:4, 9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의 집에서 자기 우상들을 마음 속에 세우며 자기 불법의 걸림돌을 자기 얼굴 앞에 두고 대언자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에게 나 주가 그 우상들의 많은 수효대로 응답하리니](4), [만일 대언자가 어떤 일을 말할 때에 속임을 당하였으면 나 주가 그 대언자를 속인 것이니 내가 내 손을 그 위로 내밀고 그를 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한 가운데 그치게 하리라.](9). 이런 이유로 오늘날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체험이란 이름 아래 성경적 진리에서 이탈하고 있습니다. 마음 속에 우상을 가지고 기도할 때 주님께서 그대로 응답하심으로 그들은 다 하나님께서 그대로 응답하신 줄로 압니다. 예를 들어 돈을 많이 버는 것, 집 한 채 장만하는 것, 좋은 차를 굴리고, 좋은 직장을 잡는 것 등 이런 것들이 마음에 가득한 채 주님께 왔을 때 주님은 그래도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 응답으로 받은 것들이 자기를 파멸로 몰고 가는 줄을 모르고, 주님께 속은 줄도 모르고 성경과는 동떨어진 삶을 삽니다. 하나님께서 No로 응답하시는 편이 속이시는 경우가 얼마나 더 큰 은혜인 줄 아셔야 합니다.

①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속입니다. 마귀는 매우 종교적인 존재입니다. 모든 종교는 같은 것이다. 어느 종교에나 구원이 있다. 기독교는 너무 배타적이고 편협하다...

② 자기에게 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 속은 것입니다(요일1:8). 구원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구원파)고 말하는 사람은 모두 속은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죄인 중의 우두머리니라”(현재)고 했지 “우두머리였느니라”(과거)고 하지 않았습니다(딤전1:15).

③ 죄를 지어도 자백하면 깨끗하게 되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속은 것입니다(갈6:7). 물론 자백하면 용서를 받고 깨끗하게 되겠지만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다윗, 삼손, 바울...)

④ 자신이 뭔가 된줄로 아는 교만한 사람은 속은 것입니다(갈6:3).

⑤ 세상 지혜로 인해 속을 수 있습니다(고전3:18). 철학, 과학, 전통, 문학, 고고학, 역사학, 천문학 등의 학문이나 히브리어, 헬라어, 고대 아람어, 라틴어 등에서 박사 학위를 몇 개씩 땄다고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도 지혜롭다고 생각하면 속은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 앞에 어리석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⑥ 우리가 영적 성장을 멈추면 속습니다. 자신의 현재 신앙 수준에 만족하고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진리의 지식의 보화를 캐는 일을 멈추면 속게 됩니다(엡4:14). 현재 우리를 속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교리의 풍조는 수없이 많습니다.

⑦ 이 세상에 완전 무오한 성경은 없다고 생각하면 이미 속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에 꾸준히 거하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며, 그 말씀으로 인해 자라나고 튼튼하게 세워지고, 깨끗하게 되며, 마귀를 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기록된 주의 말씀에 가감없이 읽고, 읽는 그대로 믿는다면 주님께서 거짓 영을 내게 보내시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은 능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입니다. 하지만 마음 가운데 우상을 두고, 주의 율법에서 귀를 돌이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상실한 마음 가운데 내버려두시거나 속이실 것입니다.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나아와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주의 영께서 나를 떠나 어느 길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 하니](22). 미가야의 말을 듣고 있던 사백명의 대언자들 중 하나인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뺨을 쳤습니다. 때로 거짓 대언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너무나 확고하여 주의 대언자들을 압도해 보입니다. “주의 영께서 나를 떠나 어느 길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는 말은 그가 얼마나 자기 확신에 차 있는지, 얼마나 철저히 속았는지를 웅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뺨을 맞으셨습니다(요18:22). 미가야의 뺨을 친 사람이 같은 대언자였듯이 바른 성경으로 바른 신앙 생활을 하겠다고 할 때 가장 박해하는 자들 역시 같은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진리를 전하는 일은 핍박과 모욕과 위협이 뒤따릅니다. 미가야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입니까? 감옥 생활이었습니다. 아합은 미가야를 지하 감옥에 가두고 변장한 채 전쟁에 나갔지만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살기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보았지만 주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죄인들이라고 말한다는 이유로 미워합니다. 죄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가야와 같이 죄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대로 말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사람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죄 가운데서 태어났으며, 그들의 마음은 악으로 가득하며,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말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가야처럼 사람의 죄성과 죄악을 있는 그대로 전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구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구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미가야처럼 있는 그대로 말해 주어야 합니다. 도덕적인 의와 행위가 아니라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분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섬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매들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아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모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지옥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미가야처럼 말해야 합니다. 그 결과가 감옥이든 죽음이든 있는 그대로를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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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말씀은 모두가 거짓말할 때에 오진 진실만을 말했던 주의 선지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때는 우상숭배가 성행하던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로 인해서 자신의 유익과 욕심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자신이 받은 축복을 전부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은 처음에는 자신의 욕심과 필요를 만족시켜주지 않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의 상급과 축복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따라야만 하는데 그들은 욕심에 이끌려 이방신들을 따라갔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고통의 원인이었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의 심각한 문제와 어려움을 보여주는 장면이 본문에 나옵니다. 그 때는 이스라엘 왕이 남유다 왕과 더불어 아람왕을 공격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을 듣고자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었기에 모든 선지자가 총출동되었습니다.

  

“[왕상]22:10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 장에서 각기 왕좌에 앉아 있고 모든 선지자가 그들의 앞에서 예언을 하고 있는데

  

[왕상]22:11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를 위하여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모든 선지자들은 전부 거짓된 예언을 하고 있었고 그들 중에서 특별히 시드기야는 유난하게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말씀이 이것들로 진멸하리라 하셨다고 용감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다른 것을 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선지자들은 오직 사람이 듣던 듣지 않던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즐겁게 하고자 하면서 자신의 말을 하고자 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의 구미와 필요를 채우려고 하면서 세상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니까 좋게 보이지만 나중에는 그 결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좋은 것을 빼앗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욕심을 채우고자 하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을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욕구로 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전하라 하신 것만 말하는 삶입니다. 좋게 보이려고 하지 않고 옳게 하려고 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진실한 뜻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려고 하는 노력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되지 못할 것 같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게 대세였기 때문에 많은 다른 선지자들도 이러한 시드기야의 말에 동참했습니다. 아마 시드기야처럼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미가야 선지자에게도 그러한 거짓을 요구했습니다.

  

“[왕상]22:12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

  

[왕상]22:13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이 일러 이르되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 같이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하건대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화나게 하거나 실망시키는 일은 쉽게 행하기 어렵습니다. 그러한 우려 때문에 우리 속에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미가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서 전하게 하시는 말씀에만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고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미가야는 오직 자기가 아는 진실만을 이야기했습니다.

  

“[왕상]22:19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왕상]22: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또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왕상]22:21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왕상]22:2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그는 거짓말하는 영의 존재를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진실을 보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바로 이러한 거짓말 하는 영이 존재합니다. 그 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노력을 중단해야 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할 때에 거짓말 하는 영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오직 그 영을 제어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거짓을 넘어서서 진질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의 지혜는 사람의 마음을 좋게 해주기 위해서 결과를 왜곡시키고 문제를 변질시킵니다. 그 결과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먼저 마음이 좋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하지만 먼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따른다면 귀한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생명을 얻게 합니다. 또한 사망에 이르지 않게 합니다. 이스라엘 왕은 미가야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 결국 자신의 생명을 잃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르고 그 지혜에만 순종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참으로 여러분을 열매 맺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만 섬기면서 그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진실하고 기뻐하시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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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 아합 왕이 남유다 왕 여호사밧과 동맹을 맺어 아람을 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먼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이렇게 성도는 항상 하나님께 먼저 묻는 기도가 있고 난 뒤에 행동해야 합니다.

북이스라엘 아합 왕이 선지자들을 다 불러서 아람을 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물었을 때,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치러 올라가서 아람을 취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는, 이러한 예언들이 결국 아합 왕을 꾀어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게 해서 아람 왕의 손에 죽게 하려는 악한 영의 간계에서 나온 거짓 예언임을 말해줍니다.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한 영이 나아와 말하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19∼23절).”

거짓말하는 악한 영들의 간계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악한 영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말하는 영의 간계에 넘어가서 거짓된 말을 하고 거짓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들의 거짓된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아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거짓말이나 거짓증거하지 못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성도는 거짓말하게 하는 악한 영들의 유혹과 간계를 분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분별력을 갖추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의 삶을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짓말하게 하는 악한 영의 유혹이 올 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들의 협박과 좋은 소리만 듣기 원하는 왕의 위협에도, 생명을 걸고 진실을 왕에게 말하는 용기와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미가야 선지자가 가졌던 용기와 믿음을 얻고자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사단의 악한 영 가운데는 거짓말하는 영이 있습니다. 이 거짓말하는 영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거짓말을 듣는 모든 사람을 파멸로 이끌어 가고 있는 영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천지 만물과 모든 천사와 모든 영의 창조자이십니다. 마귀도 역사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천사가 하나님을 배반하여 마귀가 되었고, 거짓말하는 영도 역시 마귀와 같이 하나님을 배반한 하나님의 창조함을 받은 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영으로, 사람들을 거짓말을 믿게 하여 인간을 파멸로 몰아가는 마귀의 영입니다. 

   

지금 현재는 모두 마귀에게 속한 영들이 최후로 악하게 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 영, 미혹의 영, 다른 영, 귀신의 영, 거짓말하는 영 등이 지금 우는 사자같이 돌아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심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4:2)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 계시록 21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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