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동훈목사(Pastor Jacob Lee)

이동훈목사 죽음에 대한 신앙적 이해

조카 고(故) 이동훈목사(Pastor Jacob Lee)
05. 04. 1984∼09. 28. 2020 am 9:42
New Life Drseher Church https://newlifedresher.org/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진리가 자유하게 합니다.
진리는 예수님입니다(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진리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이것은 신앙의 초보적 단계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말씀은 곧 영이 자유케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을 체험해야 합니다.
영을 체험하는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진리가 되시며 영으로 세상에 오신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영으로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혼과 몸으로 체험하는 정도로 멈추고 있습니다.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기적의 예수" 라고 하겠습니다.

기적의 예수란 벳새다 들판에서 굶주렸던 사람들에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개고 오천 명을 먹이셨고 남은 광주리가 12개 이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육신의 몸을 갖고 살아갈 때 육신의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기적을 기대하고 기다리기 때문에 육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암으로 고생하는 암 환우가 예수를 믿는다면 기적같이 암 덩어리가 모두 몸에서 없어지는 것만이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나타났던 기적의 사건에 참여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사건 앞에서 모두 외면했습니다.

혼으로 체험하는 예수 혼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이성적 예수"라고 하겠습니다.

혼이란 정신을 말합니다.
신앙을 정신적인 영역에 가두고 믿음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질문할 때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니고데모는 어른이 된 후에 어떻게 어머니의 모태에 들어갔다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하며 머리를 흔들고 돌아갑니다.

정신적인 위로자가 되는 예수님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영으로 세상에 오셔서 영으로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떤 부인은 남편을 잃고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며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업의 어려움에 자살을 시도했으나 극적으로 회복되어 주님을 만났다며 새 힘을 얻었으나 다시 사업이 기울고 어려워 질 때 왜 나를 버리셨느냐 하며 절망에 다시 붙잡히는 경우는 혼으로만 예수를 믿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영으로 체험하는 예수

영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신령한 예수" 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도리를 감당하려고 30세까지는 전혀 하늘의 일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30세가 되었을 때 세례를 받은 후 하늘의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적과 같은 사건을 보여주며 메시아가 되심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께서 임하지 않은 시대이었기에 예수님을 영으로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길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도 제자로 부름을 듣기 전에 일을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라는 말씀에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후 베드로를 위시하여 그 자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두 영으로 예수를 체험하였고 그때부터 완전히 변화된 삶이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은 이미 성령강림이 일어난 이후의 시대이므로 직접 성령의 임재를 기도해야 하며 성령 체험이 있어야만 예수를 영적으로 믿을 수 있는 단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죽음이란 생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몸과 혼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영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예수를 믿었다면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몸은 이 세상에서 온갖 질병과 사건과 사고로 인하여 고통과 아픔을 갖게 되지만 죽음 후에는 이 모든 질병과 사건과 사고 그리고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동훈목사의 경우 36세의 젊은 나이입니다.
더구나 가족들은 아내 라헬과 두 아들 그리고 딸이 살아가야 할 과정이 너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동훈목사 Jacob Lee(1984. 5. 4- 09. 28. 20 am 9:42) 36세
Wife / Rachel Tan Lee(1989. 12. 17-) 31세
Son / Zephaniah(2015. 9. 9-) 5세
Son / Jayden(2017. 6. 25-) 3세
Daughter / Kaelyn(2019. 6. 30-) 1세

몸과 혼으로만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영으로 생각하면 가장 좋으신 하나님께서 몸과 혼으로는 알 수 없는 놀라운 계획을 갖고 있으므로 남은 가족들과 우리가 위로를 받습니다. 이제부터는 놀라운 주님의 계획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The Spirit gives life; the flesh counts for nothing. The words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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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0월 10일 토요일입니다.
오늘 어머님 김은신권사님(92세)에게 손자 이동훈목사(36세)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처음에는 몹시 당황해 하시면 놀란 얼굴 표정으로 “세상에.........!” “세상에........!”만 연발하셨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님에게 손자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자식이 아니라 손자가 그것도 목사가 되어 모두에게 사랑을 받아야 할 때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려주는 것은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식을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것은 신앙적인 자세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 아침 기도를 마치고 故 이동훈목사 천국환송예배 라는 하관 예식 순서를 보여주므로 간접적으로 알렸습니다.

평소에 잘 듣지 못하시는 어머님께서 “언제 죽었니?” 라고 물으시기에 “9월 28일” 이라고 말했는데 정확하게 “28일” 하고 확인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럼 장례는?” 하시기에 이미 장례를 마쳤으며(10월 1일 하관예식) 나중에 알려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분명한 의식을 갖고 받아드리고 인정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충격적인 소식일지라도 정말 믿음이라면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하였는데 평소보다 조금 적게 드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즐겨 읽으시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며 이동훈목사의 죽음에 대한 두 번째 글을 올립니다.

성경은 사람을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육에 속한 사람(고린도전서 2:14)
- The man without the Spirit,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 영적이 아닌 사람, 자연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둘째는 신령한 사람(고린도전서 2:15)
- The spiritual man, 영적인 사람.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셋째는 육신에 속한 사람(고린도전서 3:1)
- worldly, 세속적인 사람, 육적인 사람, 육에 속한 사람.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가족들 중에서 어린 자녀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믿음의 어른들이 보여주어야 할 믿음의 자세는 분명합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신앙생활을 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겠습니다.

신령한 사람(The spiritual man, 영적인 사람)의 특징은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판단한다는 것은 죽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죽음 때문에 신앙의 흔들림이 없으므로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시 믿음이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확실한 소망 즉 영생의 소망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디도서 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디도서 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의 소망이란 죽음의 세계에서 분명하게 빛을 발할 것이며 완벽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사람만이 어떤 죽음이라도 신앙으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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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2020년
주일 오후 시간입니다.
온라인 예배를 마치고 가족들이 점심 식사를 마쳤습니다.
오후 2시경 이경혁, 전한영 내외가 어머님을 찾아왔습니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마음은 무겁습니다.

더구나 손자를 먼저 보낸 할머니의 마음은 “왜 나와 같은 사람은 살려두고 할 일이 많은 사람은 데려 가셨는가?” 하며 깊은 탄식의 질문을 던집니다.
이어서 “동훈이는 행복하지! 아무 걱정도 없는 곳에서 평안히 머물고 있지만 라헬과 아이들은 어떻게 하니? 죽은 사람은 행복하다! 그런데 남아 있는 가족들은 어떻게 하니?” 그러자 동훈 애비가 “살아 있는 사람은 더 행복합니다!” 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도록 차단의 벽을 칩니다.

여러 시간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암 투병의 과정을 듣습니다.
듣기만 하는 것이 위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애비와 어미의 심정에 “하나님의 뜻이니 위로 받으세요!” 라는 형식적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아픔의 대못을 가슴에 내리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아들이 군목으로 활동하던 중 말기 암으로 통증을 호소하며 고통을 받으면서도 병원에 누워있기 보다는 기도원(대한수도원)에 기거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육체적인 고통을 진통제보다는 주님을 닮아가려고 몸부림 쳤던 아들 목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교인들이 어머니 전도사님(김용준)에게 “하나님의 뜻이니 위로를 받으세요!” 하며 형식적인 인사를 할 때 그 어머니 전도사님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네 아들이 이렇게 죽어봐라! 그런 소리가 위로가 되는가!”

이런 고통과 아픔의 소리가 3년이 지난 어느 날 비슷한 아픔을 겪게 된 교인을 만났을 때 그의 두 손을 붙들고 “내가 다 알아! 그 아픔을....... 나도 그 고통의 터널에 갇혀 있었지. 참고 견디자!” 하며 위로할 때 그 교인은 얼굴을 전도사님의 품에 묻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때 어머니 전도사님께서 깨달은 것은 이런 고통과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 할 수 있는지 먼저 경험하게 하셨구나! 하며 아들의 죽음을 통한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 생각지도 못한 아픔과 고통을 경험해야 합니까?

왜 예수님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가 예수를 알기도 전에 십자가의 아픔과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까?

세상에서 잠간 경험하게 하신 그 아픔과 그 고통으로 인하여 십자가의 주님을 더 가깝게 뜨겁게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은총의 기회가 되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세계를 생각하며 고통의 진한 향기 속에서 풍겨나는 영생의 기쁨과 소망을 기대하며 슬픔의 자리를 위로의 자리로 변화시킬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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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화)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Therefore we do not lose heart. Though outwardly we are wasting away, yet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 

겉사람(outwardly)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약해지고 병들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속사람(inwardly)은 겉사람과 반비례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죽음을 겉사람이라고 비유하면 영생은 속사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겉사람은 죽음을 안타깝다고 하며 슬퍼하거나 절망합니다. 그렇지만 속사람은 죽음 앞에서 담대합니다. 왜냐하면 속사람은 영생에 대한 믿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죽음은 잠시 겉사람과의 이별이지만 속사람은 더 건강하고 질병이 없는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를 기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영생에 대한 소망을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넘어야 할 고비가 시도 때도 없이 다가올 것입니다.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어려움이 부딪치면 대부분 후회하고 낙심합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소망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려면 엄청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라헬의 경우 이제 시작입니다.
5살 아들 재원(Zephaniah. 2015. 9. 9), 3살 아들 재선(Jayden. 2017. 6. 25) 그리고 1살 딸 재은(Kaelyn. 2019. 6. 30)을 양육하려면 경제적으로도 부담스럽습니다. 육신적으로도 힘들 것입니다.

이러한 부담을 나눌 수 있는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보살핌이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고 부담이 없이 지속될 수 있는지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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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마가복음 16:12)

성경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중 여러 경우에 있어서 처음에는 그를 잘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도 순간적으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고(요 20:14), 물고기 잡던 제자들도 처음 한 동안은 알아보지 못하였다(요 21:4). 심지어는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계속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마 28:17).


또한 본문사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기록인 누가복음 24장에서도 두 제자들이 한 동안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들의 눈이 가리어졌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눅 24:16).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을 직면했을 때의 혼란스런 반응이라는 것을 감안할지라도, 예수님과 오랜 시간 함께했던 제자들이 그와 동행하면서 한 동안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에 대한 주요한 이유를 본문이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 후의 모습은 그 전과 ‘다른 모양’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다른 모양’의 사람이 ‘다른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주님이신 예수님을 결국 확실히 알아보고 믿게 된다. 그렇다면 부활 후 예수님의 ‘다른 모양’이라는 말은 어떤 상황을 나타내는 것일까?


마가복음 16장 12절의 ‘다른 모양’에서 사용된 헬라어 ‘모르페(μορφῇ)’는 겉으로 드러난 피상적이고 외관적인 모양보다는 내면을 드러내고 내면을 투영하는 모양을 나타낼 때 일반적으로 쓰인 용어이다.


또한 헬라의 종교와 철학에서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올 때의 온전한 변화의 모습을 위해서도 쓰였다.


신약성경에서는 본문 외에는 빌립보서에서만 두 군데 발견되는데, 2:6절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에서와 2:7절에서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에서 ‘본체’와 ‘형체’로 각각 번역되어 쓰였다.


즉, 예수님은 온전한 하나님이셨고, 온전한 종이 되셨다는 표현에 모두 ‘모르페’를 사용하였다. 마가복음 16장 본문도 ‘모르페’라는 단어와 함께, 부활을 통해 온전한 변화를 겪은 예수 그리스도의 달라진 ‘모양’이 나타나졌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시기 전의 예수와 동일한 바로 그 분이셨다. 그래서 결국 모두가 그를 알아보게 된다.


그 몸은 만져볼 수도 있는 실재하는 몸이었으며(눅 24:39), 심지어 십자가의 상흔도 남아 있었고(요 20:27), 음식을 잡수시기도 하셨다(눅 24:41~43).


그러나 그 몸은 완전히 변화된 몸이었다. 죽음을 이미 넘어선, 고통, 아픔, 연약함이 더 이상 함께 하지 않는 몸이었다.


인간으로 오셔서 ‘종의 형체’(빌 2:7)로 나타나신 부활 전 예수님의 ‘모양’은 이사야에서 묘사하듯 약하고, 거칠고, 볼품이 없었을 것이다(53:2).


밤과 낮을 가리지 않으신 사역에서 오는 육체적 피로와 온 인류의 죄 문제를 감당하셔야 하는 정신적 고통은 그 분의 육체를 여위게 하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파이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유대인들은 당시 30을 갓 넘으신 예수님을 향해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어떤 연약함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모양’으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가장 젊고, 건강한 몸으로의 ‘변화된 모양’이다.


바울은 이 부활의 몸에 대해 ‘썩지 아니할, 영광스러운, 강한, 신령한 몸’(고전 15:42~44)이라고 감격으로 선포한다. 그 부활체의 모습이 장래에 우리가 함께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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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목사 죽음에 대한 신앙적 이해

조카 고(故) 이동훈목사(Pastor Jacob Lee, 36세)
New Life Drseher Church https://newlifedresher.org/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진리가 자유하게 합니다.
진리는 예수님입니다(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진리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이것은 신앙의 초보적 단계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말씀은 곧 영이 자유케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을 체험해야 합니다.
영을 체험하는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진리가 되시며 영으로 세상에 오신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영으로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혼과 몸으로 체험하는 정도로 멈추고 있습니다.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기적의 예수" 라고 하겠습니다.

기적의 예수란 벳새다 들판에서 굶주렸던 사람들에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개고 오천 명을 먹이셨고 남은 광주리가 12개 이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육신의 몸을 갖고 살아갈 때 육신의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기적을 기대하고 기다리기 때문에 육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암으로 고생하는 암 환우가 예수를 믿는다면 기적같이 암 덩어리가 모두 몸에서 없어지는 것만이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나타났던 기적의 사건에 참여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사건 앞에서 모두 외면했습니다.

혼으로 체험하는 예수 혼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이성적 예수"라고 하겠습니다.

혼이란 정신을 말합니다.
신앙을 정신적인 영역에 가두고 믿음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질문할 때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니고데모는 어른이 된 후에 어떻게 어머니의 모태에 들어갔다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하며 머리를 흔들고 돌아갑니다.

정신적인 위로자가 되는 예수님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영으로 세상에 오셔서 영으로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떤 부인은 남편을 잃고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며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업의 어려움에 자살을 시도했으나 극적으로 회복되어 주님을 만났다며 새 힘을 얻었으나 다시 사업이 기울고 어려워 질 때 왜 나를 버리셨느냐 하며 절망에 다시 붙잡히는 경우는 혼으로만 예수를 믿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영으로 체험하는 예수

영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신령한 예수" 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도리를 감당하려고 30세까지는 전혀 하늘의 일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30세가 되었을 때 세례를 받은 후 하늘의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적과 같은 사건을 보여주며 메시아가 되심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께서 임하지 않은 시대이었기에 예수님을 영으로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길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도 제자로 부름을 듣기 전에 일을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라는 말씀에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후 베드로를 위시하여 그 자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두 영으로 예수를 체험하였고 그때부터 완전히 변화된 삶이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은 이미 성령강림이 일어난 이후의 시대이므로 직접 성령의 임재를 기도해야 하며 성령 체험이 있어야만 예수를 영적으로 믿을 수 있는 단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죽음이란 생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몸과 혼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영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예수를 믿었다면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몸은 이 세상에서 온갖 질병과 사건과 사고로 인하여 고통과 아픔을 갖게 되지만 죽음 후에는 이 모든 질병과 사건과 사고 그리고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동훈목사의 경우 36세의 젊은 나이입니다.
더구나 가족들은 아내 라헬과 두 아들 그리고 딸이 살아가야 할 과정이 너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동훈목사 Jacob Lee(1984. 5. 4- 09. 28. 20 am 9:42) 36세
Wife / Rachel Tan Lee(1989. 12. 17-) 31세
Son / Zephaniah(2015. 9. 9-) 5세
Son / Jayden(2017. 6. 25-) 3세
Daughter / Kaelyn(2019. 6. 30-) 1세

몸과 혼으로만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영으로 생각하면 가장 좋으신 하나님께서 몸과 혼으로는 알 수 없는 놀라운 계획을 갖고 있으므로 남은 가족들과 우리가 위로를 받습니다. 이제부터는 놀라운 주님의 계획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The Spirit gives life; the flesh counts for nothing. The words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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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0월 10일 토요일입니다.
오늘 어머님 김은신권사님(92세)에게 손자 이동훈목사(36세)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처음에는 몹시 당황해 하시면 놀란 얼굴 표정으로 “세상에.........!” “세상에........!”만 연발하셨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님에게 손자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자식이 아니라 손자가 그것도 목사가 되어 모두에게 사랑을 받아야 할 때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려주는 것은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식을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것은 신앙적인 자세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 아침 기도를 마치고 故 이동훈목사 천국환송예배 라는 하관 예식 순서를 보여주므로 간접적으로 알렸습니다.

평소에 잘 듣지 못하시는 어머님께서 “언제 죽었니?” 라고 물으시기에 “9월 28일” 이라고 말했는데 정확하게 “28일” 하고 확인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럼 장례는?” 하시기에 이미 장례를 마쳤으며(10월 1일 하관예식) 나중에 알려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분명한 의식을 갖고 받아드리고 인정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충격적인 소식일지라도 정말 믿음이라면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하였는데 평소보다 조금 적게 드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즐겨 읽으시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며 이동훈목사의 죽음에 대한 두 번째 글을 올립니다.

성경은 사람을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육에 속한 사람(고린도전서 2:14)
- The man without the Spirit,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 영적이 아닌 사람, 자연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둘째는 신령한 사람(고린도전서 2:15)
- The spiritual man, 영적인 사람.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셋째는 육신에 속한 사람(고린도전서 3:1)
- worldly, 세속적인 사람, 육적인 사람, 육에 속한 사람.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가족들 중에서 어린 자녀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믿음의 어른들이 보여주어야 할 믿음의 자세는 분명합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신앙생활을 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겠습니다.

신령한 사람(The spiritual man, 영적인 사람)의 특징은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판단한다는 것은 죽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죽음 때문에 신앙의 흔들림이 없으므로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시 믿음이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확실한 소망 즉 영생의 소망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디도서 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디도서 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의 소망이란 죽음의 세계에서 분명하게 빛을 발할 것이며 완벽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사람만이 어떤 죽음이라도 신앙으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10월 13일(화)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Therefore we do not lose heart. Though outwardly we are wasting away, yet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 

겉사람(outwardly)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약해지고 병들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속사람(inwardly)은 겉사람과 반비례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죽음을 겉사람이라고 비유하면 영생은 속사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겉사람은 죽음을 안타깝다고 하며 슬퍼하거나 절망합니다. 그렇지만 속사람은 죽음 앞에서 담대합니다. 왜냐하면 속사람은 영생에 대한 믿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죽음은 잠시 겉사람과의 이별이지만 속사람은 더 건강하고 질병이 없는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를 기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영생에 대한 소망을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넘어야 할 고비가 시도 때도 없이 다가올 것입니다.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어려움이 부딪치면 대부분 후회하고 낙심합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소망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려면 엄청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라헬의 경우 이제 시작입니다.
5살 아들 재원(Zephaniah. 2015. 9. 9), 3살 아들 재선(Jayden. 2017. 6. 25) 그리고 1살 딸 재은(Kaelyn. 2019. 6. 30)을 양육하려면 경제적으로도 부담스럽습니다. 육신적으로도 힘들 것입니다.

이러한 부담을 나눌 수 있는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보살핌이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고 부담이 없이 지속될 수 있는지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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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lovely Rachel!

It should not be forgotten that there are many different people who comfort the sorrow of sending their beloved husband into the arms of God first.

An employee (Han Woo-mi) of my bank sent $200 upon hearing the news of Pastor Jacob Lee(Dong Hoon).

I send it by check.


After receiving it, I would like to inform Han Umi that you received it.


Woo Mi Han

136–88 39th Avenue

Flushing, NY 11354


Pastor Seunghyuk Lee
(Patris Church Pastor Victor S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