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독일 처참한 비교

한국 : 독일 처참한 비교  

오늘의 한국,
1년에 51조원 외국 등에 이자로 줘야 한다.
 
인구 8300만명의 독일보다
인구 5000만명의 한국 공무원수가 2배가 많다.
인구수로 대비하여 비교를 하면
무려 4배가 더 많은 것이다.

대한민국은 하는 짓 아무 것도 없는 쓰레기 국회의원, 공무원의 급여, 활동비용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모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대한민국은 고위 공무원과 검찰,국회의원들이 착실히
말아먹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폐허가 된 독일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이 엄청난 전쟁배상금만 기하급수적으로
나날이 늘어갔다.
무너진 폐허 위로 겨울이 왔다.
뼈속까지 스며드는 독일 추위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수치상 기온은 춥지 않지만,
대부분 흐리고 강풍이 부는 날씨에
덜덜덜 떨게 하는 냉혹한 추위지만,
연료나 에너지원은 많이 부족했다.
그러자 독일 정부가 방송을 했다.
산의 나무를 베다가 때기라도 하시라고  
패전으로 이미 실의에 빠진 국민을
얼어죽이기까지 할 수 는 없었으므로.
 그러나 독일 국민 그 누구도
산의 나무를 베어다 때지 않았다.
옷을 있는대로 껴입고,
식구들끼리 부둥켜 안고 자다가
새벽에 잔인한 추위가 몰아치면,
식구들은 제자리 뛰기를 했단다.
나무를 베다가 때는 건 한 순간이지만,
산의 나무는 30년이상 가꿔야
숲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그 누구도 나무를 하러 산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검은 숲(Black Forest,Schwarzwald) 은
세계적으로 으뜸의 산림이 되었고,
독일은 어마어마한 전쟁배상금을 갚고,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오늘날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 됐다.
 
위기는 그렇게 극복하는 것.
나라는 그렇게 발전하는 것.
정부가 아무리 말해도
국민이 '노' 할 수 있는 집단,
지성이 살아 있는 나라만이 나라다운 나라,
반듯한 국가,
지속 가능한 나라, Sustainable state가 될 수 있다.
 
그런데 2020년 한국 국가 재정운용 예산은 513조  
 2020년도 국가 재정 운용 금액 중
한국은 유독히 공무원, 정치인들을 위한 지출이
지나치게 많은데,
세계적으로 국가 규모에 비해
국회의원의 급여, 활동비용이
가장 많이 소모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17년간 독일생활을 해 본 자로서
독일의 주요 재정 지출과
견주어 비교해 보면
2019년 우리나라 예산은 469조원이고
독일은 439조원 입니다.
 
독일은 439조원으로 대학까지 무상교육,
아동수당(킨더겔트)으로 만15세까지
매월 평균 30만원 준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직업없는 사람, 노약자,
빈곤층에게 생계비, 주거비를 주기에
국민들 모두가 큰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다.
50조원 국방비로 17만명의 직업군인들에게
1인당 월급(최저250만원)을 준다.
 
충격적인 사실은
2019년의 독일인구는 8300만명으로,
한국 총인구수의 1.7배수나 되지만,
대한민국보다 예산이 30조원이나 더 적은데도
월등히 많은 복지를 두루 시행한다는 일입니다.
 
인구가1.7배 많고 땅도 1.7배가 넓은 독일이
한국보다 30조원이나 더 적은 예산액으로
빈곤층 없이 1등 복지국가인 것을
대한민국의 통치자들
즉 모든 정치인, 관료, 고위직 공무원들은
참고해야 할 일이고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인구 8300만명의 독일보다
공무원수가 2배 많은 대한민국
그런데도 공무원은 부족하다고 계속 늘립니다.  
한국의 정치인과 공무원이
독일 등 선진국들 보다 턱없이 많고,
그들을 위한 국가 재정 지출이 대단히 과합니다.

이럼에도 한국은 돈을 빌려서
전국민에게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줍니다.
또한 빚을 내서 3차 추경 35조원을 또 지출합니다.  

나랏 빚이 걱정되는 이유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살펴볼까요?

현재 나랏 빚이 약 1,700조원
정부보증 공공기관 빚이 550조원
그래서 2,200조원 정도 되는데....

올해 추경에 90조원,
내년에는 100조원 예상.
이렇게 국가채무가 5년 후에는 약 3,000조원
(국민 일인당 6천 만원이 되겠지요)
현재 한국 채무 이자율이 년리 약 1.7%
 3000조원의 1.7% 일년이자가 51조원입니다.  
1년에 51조원을 외국 등에 이자로 줘야 한다.  
이런 상황에도 조속히 한국 재정으로
북한에 고속철도 등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또한 국내총생산(GDP)의 약20%를 창출하는
삼성그룹 수장을 감옥에 넣어서 묶어놔야 한다고
주장하는 고위 정치인이 많은 나라가 한국입니다.

설령 죄는 있을지언정 경제가 극히 어려운 시기 이기에
중추 경제인들을 자주 불러 수사하거나,
구치소에 묶어 놓기를 유예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으로 국가에 도움이 되게끔 해야합니다.
또한 우리 국민이 미래를 위하고,
현재의 자신보다는 내 자식,
손자들을 위해 현실의 포퓰리즘 정책들을 심판하고
정신차려야 하겠습니다

사) 한글세계화문화재단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wljc87&logNo=222156958653





“환자의 사망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회복되기만을 바랐던 가족들에게 애도를 전합니다.
병원에서의 감염은 모두 예방됐으며 당국은 의료진을 비롯해 메르스 대응에 관여했던 정부 관리들의 노력이
대단히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달랐을까?
독일에서도 며칠 전 메르스로 1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추가 감염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망자가 나온 독일 니더작센주 보건부가 내놓은 성명을 꼼꼼히 살펴봤다.
숨진 사람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65세 남성이었다.
한국의 첫번째 환자(68)와 나이도 비슷하다.
이 남성은 지난 2월 8일 귀국했고 이틀 뒤 발병해 병원에서 일주일간 집중 치료를 받았다.
당시 유럽질병통제센터(ECDC) 보고서에 따르면 환자는 위중했지만 안정적인 상태였다.
5월에는 메르스가 완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폐질환을 비롯한 합병증으로 6월 6일 사망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들은 많았다.
환자 가족, 집중치료를 받은 병원, 감염자가 숨진 병원이 모두 방역 대상이었다.
발병 뒤 처음 찾아간 병원에서는 메르스 의심증세라 판단하고 두 차례 환자의 체액을 채취해
본 대학의 로버트-코흐연구소에 분석을 맡겼다.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것은 3월 7일이었다.
독일 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와 ECDC에 보고했고 유럽 전염병 조기경보·대응시스템이 가동됐다.
이후 3개월 동안 주 보건부와 사회복지부, 지역보건소, 병원, 대학연구소는 유기적으로 대응했다.
이미 2월 23일부터 지역 보건 당국은 환자가 머물렀던 병원과 접촉자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200명 넘는 사람들을 추적해 전원 감염 여부를 검사했다.
다행히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다.

물론 독일은 의료보장이 매우 잘 돼 있다.
1880년대에 이미 유럽에서도 가장 먼저 국민 헬스케어 시스템을 구축한 나라다.
‘하우스에르츠트’라 불리는 주치의를 지정해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처럼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며 ‘의료 쇼핑’을 하는 문화는 없다.
그렇다 해도 메르스가 진단과 치료에 고도의 의학적 수준을 요구하는 난치병은 아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내과의사 수는 한국이 2.1명, 독일은 3.9명으로 2배 정도다.
그러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한국이 10.3개로 독일의 8.2개보다 많다.
메르스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MERS-CoV)가 신종이라고 하지만 세상에 알려진 지 3년이 됐다.
결국 독일과 한국의 상황을 가른 것은 두 나라의 대응 과정 차이였다.

메르스 감염자가 나온 25개국 중 최초 발생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빼면 대규모 전염이 일어난 나라는 한국뿐이다.
니더작센주의 성명은 반복해서 한국을 언급한다.
“의료관계자, 환자 가족과 친척들에게 전염된” 한국의 “비극적인” 상황은
이 질병에 대한 “조율된 대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남의 나라에서 반면교사의 대상이 됐다고 해서 국가 이미지가 실추돼 큰일이라거나 민족적 수치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때에는 우리도 방역의 모범 사례였다.
하지만 정부 대응이 ‘손 잘 씻기’처럼 개인 책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건 실망을 넘어 공포스럽다.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보건 당국의 꼼꼼한 분석과 반성과 각오는 들려오지 않는다.
수없이 인용되는 누군가의 말을 ‘표절’해 보자면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다.”

세월호도, 메르스도 결론은 각자도생이며, 정부도 국민들에게 그걸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우리는 절벽에서 내던져진 채 살아남아야 하는 사자새끼가 아니다.

[김영회 칼럼] 독일과 한국의 차이


-휴전이 된 지 63주년, 계속되는 전쟁 아닌 전쟁. 독일의 성숙한 민족의식과 남과 북의 대결정책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북한이 쏜 미사일을 공중에서 폭파시킨다는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도입문제를 놓고 국무총리가 주민들에게 봉변을 당하지 않나, 그러잖아도 바람 잘 날이 없는 나라가 또 한 번 뒤숭숭합니다.

“민중은 개, 돼지이니 먹을 것 만 주면 된다”는 어느 철부지 공무원의 고약한 망언도 들리고 간도 크게 남의 돈으로 100억을 해먹고 구속된 현직 검사장 소식에 ‘화장실 전문’ 성폭행 연예인 등등등…

세상 돌아가는 꼴이 요지경(瑤池鏡)입니다. 검찰청은 아주 친절하게 ‘포토라인’까지 그어 놓고 날마다 불려오는 피의자들을 맞느라 바쁘니 그러잖아도 불쾌지수가 높은 장마철이 더욱 무덥기만 합니다.

각설(却說)하고.

1989년 11월 9일 독일분단의 상징인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양쪽 장벽위에는 수 천 명의 젊은이들이 망치와 도끼를 들고 올라가 동서를 갈라놓은 시멘트장벽을 마구 깨부수는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합니다.

광장을 메운 수 만 명의 시민들은 “뷔어 진트 아인 폴크!”(Wir sind ein Volk. 우리는 한 민족이다)를 외치며 거대한 함성으로 환호하는 가운데 이 감동적인 드라마는 텔레비전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면서 세계인들은 게르만 민족의 재결합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그것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지는 20세기 독일 국민의 위대한 퍼포먼스였습니다.

베를린은 원래 독일을 상징하는 수도였습니다. 그러나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면서 승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서방진영과 공산진영인 소련에 의해 동서로 나뉘어져 1949년 동베를린은 소련이, 서베를린은 서방이 관할하는 두 개의 도시로 분할돼 40년 동안 ‘냉전(冷戰)의 상징’으로 지속돼 왔습니다.

분단과 함께 베를린시는 동독 안에 위치한 섬이나 다름없는 도시가 됐습니다. 서독에서 베를린을 가자면 동독 땅을 거쳐 가야 하기 때문에 서베를린 시민들은 미군기를 통해서만 공수작전으로 생활필수품을 공급받을 수밖에 없는 불편을 겪습니다.

서독은 빌리 브란트가 수상이 되기까지 동독과 철저한 적대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서독은 서독만이 독일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며 동독을 인정하지 않았고 동독을 승인하거나 수교하는 국가와는 관계를 맺지 않는 소위 ‘할슈타인 독트린’에 따라 20년간 대 동독 강경노선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서독은 1970년 서베를린 시장으로 명성을 얻은 브란트가 수상에 취임하면서 ‘동방정책’을 선언, 동독을 인정하고 공산권국가들과의 화해정책을 폅니다. 브란트는 독일 ‘경제부흥의 아버지’ 아데나워 수상의 ‘라인강의 기적’으로 국력이 크게 신장된 서독에 대해 주변국들의 경계의 눈초리가 일자 서독은 절대 대립의 의지가 없음을 세계에 알리며 점차로 통일의 기반을 다져나갑니다.

그러나 공산권의 맹주인 소련과 냉전의 선봉에 서있던 미국이 동방정책을 견제했고 국내 보수 세력들의 반대 역시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브란트는 굽히지 않고 반대세력을 설득해가며 화해정책을 밀고 나갑니다. 브란트는 분단으로 인한 동·서독 국민들의 문화적 이질감 극복을 위해 먼저 방송개방을 추진합니다. 서독국민이 아무런 제재 없이 동독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했고 동독도 뒤따라 서독 텔레비전을 개방함으로써 양독 국민의 동질성 회복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합니다.

또한 양쪽 국민들의 통행이 자유화되어 동독국민이 서독을, 서독국민이 동독을 자유롭게 오고가는 조치가 이루어집니다. 당연히 서신 교환은 필수적으로 시행됐습니다. 동독국민이 서독을 방문할 때는 서독 정부가 여비 일체를 부담해주었고 서독 국민이 동독을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로 경비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서독정부는 베를린으로 연결되는 수 백 km에 달하는 동독 내 고속도로를 건설해 주었습니다.

당시 동독은 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 중에서는 경제가 가장 발전해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을 정도로 기본적인 부는 누리고 있었지만 서독의 그것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습니다.

브란트는 동독의 경제가 발전해 양독(兩獨)이 균형을 이룰 때 통일이 가능하다는 확신에 따라 각 분야에서 동독을 도왔습니다. 서독의 도시 건설공사를 동독업자에게 맡기는가 하면 심지어 서독 군인들의 군복과 같은 군수품 제조마저 동독 업체에 주는 통 큰 모습마저 보였습니다.

독일의 통일은 어느 날 우연히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동서독 국민들의 수준 높은 민족의식이 원동력이 되었고 빌리 브란트라는 불세출(不世出)의 인물이 과감히 앞에서 끌고 동서독 국민들이 손을 잡고 함께 뒤를 따랐기에 가능했습니다. 분단 40년, 동방정책 20년이 거둔 빛나는 결과였습니다.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을 이룬 것은 676년입니다. 그 이후 우리 한민족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침략은 당했을지 언 정 1300년 동안 분단 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일제치하 35년을 거쳐 1945년 나라를 되찾고 71년, 국토는 둘로 분단되고 민족은 갈라진 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평양에 가보면 그곳 사람들은 “우리 통일합시다”를 입에 달고 삽니다. 남쪽에선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가르치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상대를 비난하는 거친 악담과 험담만이 남과 북을 오고 갈 뿐입니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기 전 한때 서독에서 몇 개월 머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변호사인 남편과 고등학교 역사교사인 아내 부부를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한국과 독일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국사람은 독일사람을 만나면 ‘한국과 독일은 같은 분단국’임을 은근히 강조함으로써 동병상련(同病相憐)을 확인해 친밀감을 더 하려는 버릇 아닌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독일 아내는 빤히 쳐다보면서 “우리는 민족끼리 전쟁을 하지는 않았어요. 한국은 서로 수백만 명이 죽는 전쟁을 했지 않나요”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요. 같은 분단국이지요”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필자는 순간, 당혹감을 감추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생각으로 얼굴이 뜨거워 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녀의 말이 옳았습니다. 독일이나 우리나 외세에 의해 분단 된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들은 민족끼리 싸우지 않았고 우리는 민족끼리 전쟁을 했습니다. 그게 다릅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통일을 이루었고 우리는 지금도 ‘전쟁 아닌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어 위협을 하고 있고 우리 또한 미국을 믿고 “해 볼 테면 해보자”고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남북이 주고받는 험악한 말들을 듣노라면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 만 같은 두려움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도대체 언제 우리는 남북을 갈라놓은 저 155마일, 휴전선의 철조망을 걷어 낼 수 있을지, 독일과 우리가 다른 점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달 27일은 1953년 판문점에서 6·25전쟁의 휴전협정을 맺은 지 63주년 되는 날입니다.

출처 : 여성경제신문(http://www.womaneconomy.kr)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 몇 가지

며칠 전 급한 볼일이 있어서 외출을 했다.
뭔가 중요한 걸 결정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출발 전부터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려고
동네 커피전문점에 들어가 카페라테 한 잔을
주문했다.
그 커피전문점에는 발달장애인 청년 한 명이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카페라테를 테이크아웃해서 들고 나오는데
살짝 유리문에 부딪혔다.
그 순간 종이컵 뚜껑이 제대로 안 닫혔는지
커피가 새어 나왔다.
바로 안으로 들어가서
“이거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느냐?”고 화를 냈다.

종이컵 뚜껑을 잘못 닫은 그 청년은
어눌한 발음으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때 커피 나왔다는 신호로 누군가의
진동벨이 울렸다.
아주머니 한 분이커피를 받아서 내게 내밀었다.

“카페라테예요?
저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서 늘 남겨요?
그거 제가 마실게요? 우리 바꿔요.”

난 그분이 손에 쥐여준 그분 몫의 카페라테를
들고 도망치듯 나왔다.
너무 부끄러웠다.

커피집에 들를 때마다
문득 문득 그때 커피전문점에서 상황이
마음속에 늘 그늘로 남아있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가끔 들르는 커피집에 낯선 청년이 새로 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행동이 느리고
말이 어눌했다.

순간 그 청년을 채용해 준 회사가 몹시
고마웠다.

그건 단순히 취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
눈부신 날개를 달아 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 시선을 빼앗은 또 한 사람.
40대 아주머니 한 분이 구석에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단순한손님이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그 아주머니는 오직 한 사람만 보고 있었다.
아주 애틋하고 절절한 눈빛으로....
 청년의 어머니라는걸 쉽게 알 수있었다.

발달장애인인 아들의 첫 직장에서
그 아들을 지켜보는 심정이 어떨까?

초조하고 불안하고 흐뭇하고 감사하고
참으로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눈물을 참고 있는 듯 보였다.

순간 나는 그 아주머니를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저 여기 단골인데요? 아무 걱정 마세요?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 다 착하고 좋아요?
아드님도 잘할 거예요.”

그 아주머니의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걸 보고 나도 울컥했다.

삶이 아름다운 건
서로 어깨를 내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문자의 사람 인(人) 자처럼.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몫인 온전한 카페라테를
내어준 아주머니.

코로나19로 인해 몇 개월간 집에 못 들어가서
보고 싶은 어린 딸과 영상통화를 하면서도
울지 않는 간호사님.

화재 현장에서 부상을 입어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면서도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소방관님.

장사 안 되는 동네 입구 과일가게에서 사과를
살 때 제일 볼품없는 것만 골라 넣는 퇴근길
영이 아버지.

마스크를 서너 개씩 여분으로 가방에 넣고
다니며 마스크를 안 쓴 사람에게 말없이
내미는 준호 할머니.

이렇듯 참으로 많은 보통사람들이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습니다.

희망찬  신축년 새해  감사하며 배풀며
살아갈수 있을까?

올 한 해 나는 얼마나 자주 내 어깨를 내어줄
수 있을까?

마음만 굴뚝같았지 일상에서 사소한 일에
어깨를 내줘보지 못한 나는 부끄러움의
회한에 못이겨 눈물을 흘리고 마네.







[뜨거운 파인애플 물]
 
퍼 나르세요 !!
베이징 육군 종합병원의
천희렌 교수는 만약
이 소식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10부를 전달한다면,
최소한 한 명의 목숨은
구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제 책임을 다했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뜨거운 파인애플 물은
당신의 평생을 살릴 수
있습니다.
뜨거운 파인애플 물은
암세포를 죽일 수 있습니다.
얇게자른 파인애플 2~3
조각을 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알칼리성 물"이
되며, 매일 마시면
아무에게나 좋습니다.
뜨거운 파인애플 물은
항암물질을 분비하는데,
이것은 의학에서 가장 최근에
개발된 효과적인
암 치료법입니다.
뜨거운 파인애플 과일은
낭종이나 종양을 죽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암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뜨거운 파인애플 물은
알레르기의 결과물인
신체의 모든 세균과
독소를 죽일 수 있습니다.
파인애플 추출물이
들어 있는 약의 종류는
단지 * 폭력적인 세포들을
파괴할 뿐, 건강한 세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또 파인애플 주스에
들어있는 아미노산과
파인애플 폴리페놀은
고혈압을 조절할 수 있어
내혈관의 막힘을 방지하고
혈액순환을 효과적으로
방지하고 혈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읽고 나서
가족, 친구등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서 건강을 지키세요.
이 메시지를 묻어두지 말고
퍼뜨리면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춘화현상

한국에 초빙교수로 살다가 귀국한 세계적인 정신 의학계 교수에게 한국인의 이미지가 어떻냐고 묻자,
“한국인은 너무 친절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판단하면 오해다.
권력 있거나 유명한 사람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지만 자기보다 약하거나 힘없는 서민에게는 거만하기 짝이 없어 놀랄 때가 많다.
특히 식당 종업원에게는 마구잡이로 무례하게 대해 같이 간 사람이 불쾌 할 정도다.

잘 나가는 엘리트일수록 이 같은 이중인격자들이 많다.
잘 알지 못하는 사이거나 VIP인 경우는 난감하다.
한국에서 엘리트 계층에 속한다면 배운 사람이다.
배운 사람일수록 겸손해 하는데 오히려 거만을 떤다.

지식은 많은데 지혜롭지가 못하다.
말은 유식한데 행동은 무식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준법정신이 엉망이다.
힘 있는 사람부터 법을 안 지키니 부정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한국 엘리트들의 또 다른 모순은 자기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점이다.

회사에서도 뭐가 잘못되면 전부 윗사람 아랫사람 탓이고 자기반성은 조금도 없다.
세상 모두가 남의 탓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너무 네거티브하다.

모여 앉으면 정치 이야기인데 완전히 흑백 논리로 평한다. 호남 친구들과 만나면 박정희, 혹평하는 것. 듣다가 시간 다가고, 경상도 친구들과 만나면 김대중과 문재인을 씹어댄다. 한국에는 존경받는 대통령은 없다.

모두가 이래서 죽일 놈이고 저래서 죽일 놈이다. 국민소득은 3만 달러 수준인데 국민 의식은 500달러 수준이다.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자랑 하지만 그것은 곧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벼락부자의 단점이 무엇인가. 그저 남에게 내가 이만큼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성공의 의미가 너무 좁다. 돈 있고 잘사는 데도 자기보다 더 잘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항상 뭐가 불만족이다.
춘화현상(春化現象 Vernalization)이 바로 이것이다.

호주 시드니에 사는 교민이 고국을 다녀가는 길에 개나리 가지를 꺾어다가 자기 집 앞마당에 옮겨 심었다. 이듬해 봄이 되었다. 맑은 공기와 좋은 햇볕 덕에 가지와 잎은 한국에서 보다 무성했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첫해라 그런가 보다 여겼지만 2년째에도, 3년째에도 꽃은 피지 않았다.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한국처럼 혹한의 겨울이 없는 호주에서는 개나리꽃이 아예 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온을 거쳐야만 꽃이 피는 것은 전문용어로 '춘화현상'이라 하는데 튤립, 히아신스, 백합, 라일락, 철쭉, 진달래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인생은 마치 춘화현상과 같다. 눈부신 인생의 꽃들은 혹한을 거친 뒤에야 피는 법이다. 그런가 하면 봄에 파종하는 봄보리에 비해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나는 가을보리의 수확이 훨씬 더 많을 뿐만 아니라 맛도 좋다. 인생의 열매는 마치 가을보리와 같아, 겨울을 거치면서 더욱 풍성하고 견실해진다.

마찬가지로 고난을 많이 헤쳐 나온 사람일수록 강인함과 향기로운 맛이 더욱 깊은 것이다.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이 젊은이들이 짊어지고 겪어야 할 춘화현상이라면 감내해야 할 세대들이 갑갑하게 느껴진다.


가장 늙은 오늘과 가장 젊은 오늘

명사초청 특강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날의 초청 강사는
명의로 꽤 이름이 높은
권위 있는 의사 선생님이었다.

건강에 대한 대중 강연을 하시면서
그 의사 선생님이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다.

첫 번째 "이거 먹으면 오래 삽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잠시 생각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 내 뒷자리에 앉아있던 분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밥입니다. 밥 많이 먹으면 오래 살죠?
밥이 최고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유쾌하게 웃었지만

강사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다.

물,  홍삼,  버섯 등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말했다.

어떤 사람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욕입니다. 욕 먹으면 오래 살죠?"
라고 말해 또, 한 번의 폭소를 자아냈다.

사람들이 다양한 답을 쏟아낼 때
강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정답은 나이입니다.
나이 많이 먹으면
오래 사는 거잖아요?"

사람들의 허를 찌르는 재미있는 질문이었다.

모두들 즐겁게 웃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즐겁게 하시고
 강사는 다시
건강에 대한 강의를 계속했다.
나는 그 질문이 재미 있으면서도
매우 인상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을
해봤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거 먹으면 죽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답도 "나이" 다.
나이 먹으면 오래 살고
또 나이 먹으면 죽는 거다.
먹으면 오래 사는 것과
먹으면 죽는 것에 대한 공통된
대답이 "나이'라고 생각하니
재미있으면서도 무엇인가
머리 속을 두드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 두 가지 질문은
어떤 사람은 나이 먹으며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나이 먹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같은 것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하는 이유는
다른 정보를 접하고
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것을 보고 들어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로
아프리카에 시장조사를 간
두 명의 신발회사의 영업사원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두 명의 영업 사원이 아프리카에 갔다.
신발회사 직원이었던 그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대상으로
신발을 팔기 위해 시장조사를 나갔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모두 맨발로 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한 사람은 회사에 보고서를 쓴다.
아프리카 사람들 중에는 신발을
신고 있는 사람이 없음.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신발을
팔 수 가 없음.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보고서를 썼다.
아프리카 사람들 중에는 신발을
신고 있는 사람이 없음.
그렇기 때문에 신발의 필요성을
조금만 일깨워주면 무궁무진한 시장이
개척될 것임.

우리는 항상 같은 것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

정보가 돈이라고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 이다.

어려운 난관에 좌절하며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 때문에 안 되는구나!"“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정말 안 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하지만 똑 같은 상황을 기회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 때문에 나에게까지
기회가 온 것이구나!"
"이것만 해결하면 큰 행운인데,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서
힘들어 하겠군?"
"이게 나에게 기회야!"

같은 것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은 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런 말은 사극에서
어느 도사님이 할만한 대사지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보면 볼수록
도사님이 하는 말씀이 옳다는 것을 느낀다.

오늘 내가 어떤 마음을 먹고 사느냐에 따라
내 인생은 결정될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거울을 보면서
늙어가는 자신을 한탄하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며
 예전에 멋있고 예뻤던 기억을 떠올리며
우울한 오늘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가 살아온 날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날이다.

오늘은 우리 인생에 가장 늙은 날이다.
오늘에 대한 또 한 가지의 선택은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며
오늘을 즐기는 것이다.

오늘은 내가 살아갈 날들 중
가장 나이가 적은 날이다.
오늘은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이다.
나는 젊음을 즐기며
앞으로의 인생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

우리에게는 같은 오늘이 주어졌다.
어떤 오늘을 선택하느냐가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