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미래의 선교 한국

창세기 10:21-31
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 하였으니
22.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23.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24.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26.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27.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28.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29.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 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30.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31. 이들은 셈의 자손이니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 더라.’


창세기 11:16-29

16.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 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 르우를 낳 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21.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2.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23.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4.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 데라는 칠 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 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 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 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창세기 10:21절에 의하면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5절에 의하면 에벨의 자손은 벨렉과 욕단입니다.
그런데 이 두 절들을 비교해 볼 때에 창세기 10:21-31은 욕단의 후손들의 족보이며,
창세기 11:16-29은 벨렉의 후손들의 족보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창세기 10:21-31의 욕단에 대해서는 기억도 없었는데 성경은 욕단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고 있으며 그 아들들 13명을 일일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고 역대상 1:19-23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은 하나 아니라 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에벨의 온 자손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은 벨렉계욕단계 두 계열의 백성이 존재합니다.

통상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선택된 백성을 이스라엘, 즉 벨렉의 후손과만 연관시켜 왔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아브라함 시대 이후 줄곧 이스라엘 땅과 백성이 구원사에서 중심이 되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욕단계 선민에 대한 주의와 관심을 놓치게 했던 것입니다.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가계는 다른 셈의 후손들과는 달리 열 셋 아들들의 이름을 다 열거하였으며 그 이름들이 두번이나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 족속 들에 대해  유심하라는 암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목적을 위해 택함 받은 또 하나의 선민 으로서 주님의 특별한 계획 아래 있는 백성이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이 잊지 않고 추적해 주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첫째로 감추어 둔 선민

벨렉의 후손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특별한 나라가 출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욕단의 후손을 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애초에 천손민족의 범주를 에벨의 온 자손으로 제한하였 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에벨 온 자손 즉 에벨의 모든 자손(all the children of Eber)인 벨렉 과 욕단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단의 후손도 때가 차면 반드시 열방 가운데 드러나서 선민의 지위에 합당한  역할을 확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빠짐없이 다 이루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욕단계 선민을 감추어 두신 것이지 절대로 잊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벨렉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2000년 동안이나 방치하셨다가 말씀에 따라 그들을 고토로 모으시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벨렉의 후손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사에 세 가지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먼저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겉으로 드러난 선민이 되었고, 욕단의 후손은 속으로 감추인 선민이 되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셔서 언약하시기를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언약 백성 이스라엘은 어디까지나 창세기 10:21의 셈은 에벨 온  후손의 조상이라는 말씀을 근거로 출현했다는 사실입니다.
언약 형식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에벨의 장자 벨렉의 후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목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벨렉의 후손 이스라엘은 ‘명시적 언약 백성’이라면 에벨의 작은 아들 욕단의 후손은 ‘묵시적 언약 백성’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민도 눈에 밖으로 드러난 선민이 있고 안으로 감추인 선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겉 사람 보다 속 사람이 더 중요 하듯이 겉으로 드러난 선민보다 속으로 감추인 선민이 더 소중합 니다. 감춘다는 것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땅 속에 감추인 보화 이야기를 생각하실 것입니다. 욕 단의 후손들이 바로 이런 존재들인 것입니다. ‘욕단의 후손’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어 하나 님은 그들도 세상 어딘 가에 한 나라를 이루게 하시고 은밀히 감추어 놓으신 것입니다.

둘째로 욕단의 후손을 찾아서

그렇다면 욕단의 후손을 어떻게 찾아 볼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욕단의 후손은 처음 세대 이후 에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욕단의 열 세 아들의 가계는 두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욕단의 가계는 고대 성경 시대에 기록된 가장 큰 가계입니다. 욕단의 후손은 처음 세대 이후 더 이상 언급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욕단계 선민을 찾을 수 있도록 결정적인 단서를 남겨 두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10:30절 말씀입니다.

‘30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 이었더라.’입니다. 이 구절이 욕단의 후손이 누구인가를 찾는데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욕단의 거주지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메사’와 ‘스발’의 위치가 어디이며 ‘동편 산’이란 어느 지역의 산을 지칭하는 것인지를 확인하면 욕단계 선민이 어디에 있는 누구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성경 연구가들은 욕단의 아들들의 이름들이 역사적으로 아랍부족의 이름과 같은 스바, 오빌, 하윌라이며 더욱이 아라비아 남단에는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지명도 나타나기 때문에 욕단이 아 라비아로 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욕단족속은 아라비아 남단에 정착하여 현재 아랍민족의 조 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아랍 부족의 이름은 함의 가계인 구스 민족의 후손에 속한 것입니다. 함의 자손 구스의 맏아들이 스바였으며, 손자 중에도 스바가 있습니다(창10:6). 또 하윌라도 구스 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들이 그 땅에서 살고 있었으니 그들의 이름을 따라서 지명을 삼은 것입니 다. 오빌도 스바와 하윌라 부근의 홍해 안에 있는 금 산지로 알려진 곳으로서 솔로몬 왕을 방문 했 던 스바 여왕의 통치 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곳도 역시 함 계통의 구스 민족이 살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현재 아랍민족은 이스마엘의 후손이 퍼져있고, 롯의 후손 모압과 암몬족속, 그 밖에 셈의 아들인 엘람족, 아수르족, 룻족, 아람족등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욕단이 아라비아로 가서 아랍부족의 선조가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메사’와 ‘스발’의 위치를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메 사와 스발의 위치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라비아 주변에는 그런 곳이 과거에도 없었고 지 금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라비아 지역에는 창세기 10:30에서 말하는 동쪽의 높은 산맥도 없습니 다. 욕단의 후손이 어디에 누군지를 찾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욕단계 선민이 동양 에 거주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라비아는 본문이 말하는 동방이 아닙니다. 아라비아는 남방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지도를 보면 아라비아 반도는 아프리카의 우측에 위치했으며, 북쪽은 이집트, 중 부는 수단과 남쪽은 이디오피아와 위도가 겹칩니다.

그렇다면 동방 산은 어디이겠습니까? 창세기 10:30의 산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르'입니다. 그 뜻은 단지 하나의 산이 아닌 산맥, 산지를 의미합니다. 특히 본문 처럼 단수로 사용되었 을 경우에는 산맥 혹은 일정한 지역의 산들을 가리킵니다.  한글 개역성경에서 ‘동편 산’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에 원문의 뜻을 충분히 전하여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편 산 대신에 동편 산지 혹은 동편 산맥 또는 동방 산악지대로 번역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동번역 성경은 ‘동쪽 산악지대’라고 번역하여 원문의 뜻을 정확히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더욱 정 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30이들이 사는 땅은 메사에서부터 동쪽 산간 지역 스발까지였다.’ 쉬운성경은 ‘30이들은 메사와 동쪽 땅의 산악 지방에 있는 스발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창세기가 말하는 욕단족속이 거주했다는 ‘동쪽 산악지대’라는 곳은 산맥과 산악지대가 많은 동양 의 산들을 표시한 것입니다. 동편 산은 하르 하케뎀인데 케뎀은 동양 혹은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를 뜻합니다. 케뎀의 어원은 가장자리이며, 지리학적으로는 태양이 떠 오르는 쪽에 있는 아시아 해변 지역들을 언급합니다. 케뎀은 또한 고대의 시작(시대의 가장자리, the Front of time)이라는 어원도 가지고 있으므로 고대 동양으로 번역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쪽 산악지대란 고대 동양의 산을 의미합니다. 이 산은 고대 전승의 동양에 있던 어떤 특별한 산을 언급할 수도 있고, 전체 동양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메사의 위치를 확인해 볼 차례입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이 곧 바로 시날 평원으로 옮겨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을 쌓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성경을 생 각 없이 잘못 읽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1:2에서 홍수 이후 사람들이 바벨론 평지에 이르기 전에  먼 저 동쪽으로 이동하여 가다가 동쪽으로부터 방향을 전환하여 서쪽으로 가다가 바벨 평지를 만난 것 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홍수 후 사람들이 동쪽으로 가다가 방향을 전환하여 서쪽 바벨론 평지 에서 서로 갈라진 곳이 메사인 것 같습니다. 공동번역 창세기 11:2에서, ‘사람들은 동쪽에서 옮아 오다가 시날 지방 한 들판에 이르러 거기 자리를 잡고’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동방으로 옮겨 간 것 으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은 동방으로부터라고 되어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도 from the east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동쪽에부터 서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이동하다가 시날 평지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홍수 생존자들이 방주가 정박했던 이라랏 산지를 떠나 처음 이동했던 지역이 바벨론 평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이 처음에 동쪽으로 점점 이동하던 중에 사람들이 이곳 저곳 살기 좋 은 곳을 찾아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서쪽 지역 티그리스 강을 만나게 되었을 것이요 또 서쪽의 유프라테스 강을 만났을 것이요 그 두 강사이의 비옥한 땅인 시날 땅, 메소포타미아 평원 을 발견하고 그 쪽으로 가서 살자고 결의했을 것입니다. 물도 풍부하고 땅도 비옥 해서 사람들이 살 기에 가장 적합한 곳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두 방향을 바꾸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바벨론 평지에 이르러 그곳에 살면서 바벨탑을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 홍수 후 욕단이 유일신 신앙을 갖고서 동양으로 이동을 시작할 때에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을 품고서 반대 방향인 서쪽, 즉 시날 평원으로 이동하도록 선동한 자가 니므롯입니다. 이 때에 벨렉 도 형제인 욕단을 버리고 니므롯의 무리와 하나가 되어 서부로 갔던 것입니다. 니므롯은 역사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최초의 폭군이었습니다. 그는 시날 평원에서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계적인 대 제국을 건설하려 했습니다.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니므롯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을 자극하여 하나님을 그토록 모욕하고 경멸하게 한 자는 니므롯이었다, 그는 노아의 아들 함의 손자로서 엄청난 힘을 가진 용사였다, 그는 사람들이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니므롯 자 신 때문에 행복을 누린다고 설득했고, 차츰 사람들 위에 절대자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이 만일 세상을 다시 물에 잠기게 하려 한다면, 하나님께 보복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는 물이 미치지 못할 만큼 높은 탑을 쌓아 자기 선조들을 멸하신 하나님께 보복하려고 했다.’했습 니다. 니므롯이란 이름의 뜻은 반역하다, 배역하다, 그가 반역하였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 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란 말의 ‘앞에서’는 히브리어 ‘파님’이라는단어 인데 때때로 ‘대적하여’ 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현대인의 성경 창세기 10:8-9은 원문의 뜻에 가깝게 번역되어 성경이 의도하는 바를 잘 표현하 고 있습니다. “8구스는 또 니므롯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는 세상에서 최초의 정복자 였다. 9그는 여호와를 무시하는 힘 센 사냥꾼이었으므로 ‘니므롯처럼 여호와를 무시하 는 힘센 사냥꾼’이라는 유행어까지 생기게 되었다.”했습니다

그리하여 니므롯은 그의 나라를 점점 확장해 나갔습니다. 쉬운성경 창세기 10:10-12에서 ‘10처음에 니므롯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빌론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 습니다.’라 했는데 이 말씀은 창세기 11:2과 연결됩니다. 서쪽으로 방향 전환을 하 도록 선동한 인물이 니므롯임을 볼 수 있습니다. 홍수 이후 사람들이 처음에 동쪽을 향해 천천히 이동하다가 서쪽에 두 강과 그 사이의 평원이 살기 좋은 곳임을 확인한 사람들이 모두 그 쪽으로 몰려갔으며 그 주동자가 니므롯입니다. 니므롯이 바벨론 평 원을 중심으로 바벨론, 에렉과 악갓과 갈레성을 쌓고 나라를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나라가 형성되었습니다.

또한 니므롯은 북쪽 지방인 앗시리아까지 점령 했습니다.칭세기 10:11-12에서,
 ‘11니므롯은 그 곳을 떠나 앗시리아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니므롯은 니느웨와 르 호보딜과 갈라를 세웠습니다. 12니므롯은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큰 성인 레센도 세 웠습니다’ 이 말씀은 니므롯이 셈족이 살고 있던 메소포타미아 북쪽지역인 앗수르로 갔다고 했습니다. 이곳에 살고 있던 셈족을 정벌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앗수르 사람들을 동원하여 그 지역에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 성을 건설합니다. 그리고 니느웨와 갈라 사이에 큰 성 레센도 건설합니다.

그리고 쉬운 성경 창세기 11:2-4에서,‘2사람들이 동쪽으로 옮겨 가며 시날 땅에서 평야를 발 견하고, 그 곳에서 살았습니다. 3그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벽돌을 만들어 단단하게 굽자." 그러면서 그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습니다. 4그들이 또 서로 말했습니다. "자, 우리의 성을 세우자. 그리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 는 탑을 쌓자. 그래서 우리 이름을 널리 알리고, 온 땅에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에서 사람들이 모여 성을 쌓고 하늘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높은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널 리 알리고 온 땅에 흩어지지 않고 오래 모 여 살자고 의논들을 했습니다. 바벨탑을 쌓 게 된 것은 홍수 후 101년 정도 되는 해였습니다.

니므롯은 힘이 세어 특출한 사냥꾼이 되었으며, 그는 그 당시 땅에 번성한 들짐승의 위협으로부터 사람들의 안전을 보호함으로써 당시 사회에서 사람들로부터 갈채와 환영을 받는 유명한 인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니므롯이 시날 평원으로 가자는 선동에 사람들은 쉽게 호응했었고, 그 는 인류가 함께 뭉쳐야 다시는 홍수와 같은 전 인류를 위협하는 대재앙을 효과적으로 면할 수 있 다 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니므롯은 인류를 하나로 결집시키고 인류의 분산을 막기 위한 수단 으로서 탑을 하늘 높이 쌓아 올려서 그 탑이 멀리 보일 수 있는 한계에서 거주하자고 미혹했습니 다. 그러나 사실 니므롯이 사람들을 선동한 근본적인 이유는 오직 자기 자신의 욕망을 채 우기 위 해서였습니다. 그는 온 인류를 자신이 다스리기를 원했습니다. 니므롯은 바벨탑을 중심으로 인류 를 자기의 통치권 아래 하나로 묶어 하나님을 대신하여 모든 사람들을 다스리는 통치자로서 군림 하려 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 보았듯이 홍수 후 세대들이 처음에 동쪽으로 이동했다가 메사에서 서쪽으로 이동 하게 되었고 시날 평지를 만나 그곳을 정착지로 삼습니다. 이것이 홍수 후 생존자들의 바벨론 이 전 시대의 이동 경로였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욕단이 나 중에 어느 경로로 이동하였는가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메사의 위치를 찾는데도 도 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홍수 이후 생존자들이 바벨론 이전 시대의 이동 경로는 아라랏 산에서 내 려와 살면서 서서히 동방으로 이동하다가 북부 이란 고원을 지나 바벨론 동부에 이르는 경로로 100년 이상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적자’를 따라서 셈으로부터 욕단과 함께 선민의 거룩한 가계를 계승한 에벨의 혈통 벨렉이 형제 욕단을 버리고 서부 바벨론으로 갔던 것입니다. 욕단의 가계는 무엇보다도 큰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때는 아직 노아를 비롯해 아르박삿, 셀라, 벨렉과 욕단의 아버지 에벨이 살아 있을 때였습니다. 벨렉의 가계는 아버지 에벨과 형제 욕단의 가계와 이별하고 서쪽으로 향하여 가 고 욕단의 가계는 동양으로 향하여 갔던 것입니다. 벨렉이 바벨론으로 갔다는 증거가 그의 이름 에서 나타납니다. 벨렉의 이름의 뜻이 창세기 10:25에, ‘25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 이며’에서 벨렉이 바벨탑 운동에 가담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욕단족속은 바벨론 소요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동쪽 스발을 향해 가고 있었 습니다. 벨렉과 욕단의 헤어짐으로 두 종류의 히브리 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즉 서 부 아시아에 거주하는 서부 히브리 민족과 동양에 거주하는 동부 히브리 민족입니다. 창세기 10:21은 셈이 ‘에벨 온 자손의 조상’ 즉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에베르(רעֵבֶ)에서 ‘히브리’가 유래되었습니다. 에벨의 뜻은 건너 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에벨이 바벨탑 사건에 가담하지 않고 유브라테스 강을 건너 갔다는 말입니다. 히브리는 강너 편에서 온 사람이란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강을 건 너 하란을 경유해서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히브리는 에베르의 종족을 나타내는 말입 니다. ‘에벨 또는 에벨의 계통을 잇는’ 이란 뜻입니다. 에벨은 두 아들 벨렉과 욕단을 낳았습니다.

따라서 히브리 민족은 에벨로부터 나온 두 가계, 벨렉과 욕단 계통을 잇는 자손입니 다.  그래서 아시아 서쪽으로 간 벨렉계는 서부 히브리인이요 동양으로 간 욕단계 선 민은 동부 히브리민족입니다. 욕단도 히브리민족에 속합니다.
이제부터 스발의 위치를 알아 보겠습니다. 욕단은 스발을 향해 동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스발은 그의 목적지였습니다.창세기 10:30을 히브리어 영문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 이었다.’(And their dwelling was from Mesha, as thou goes unto Sephar  mount of the east, KJV).

스발을 히브리어에서 음역하면 새팔(הסְפָרָ)입니다.
여기 ‘새팔로 가면서’라는 말은 욕단 족속이 동양의 어떤 특정한 산지에 정착한 것이 아니라 ‘새팔’을 향해 계속 동쪽으로 옮겨갔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팔’의 위치는 어디이겠습니까?

이 ‘새팔’은 당시에 존재하거나 알려진 도시와 장소의 이름이 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홍수로 인해 지워졌기 때문입니다.
욕단이 천동하기까지 동양에는 아직 누구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새팔은 일단 아시아 동쪽의 어느 곳에선 가에서 추적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욕단은 동방의 산악지대인 파미르고원, 천산산맥과 알타이 산맥을 넘 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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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좀더 이동하면 ‘시베리아’ 벌판이 전개됩니다.
시베리아 는 고조선의 창건 무대인 만주 대륙이 연장된 땅으로 우리 한 민족의 고향입니다.
높은 산들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멀리 이동한 욕단 족속은 남북만주 및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방의 새 땅을  새팔 즉 새발이라고 하였습니다.
새발은 새벌의 고어 로서 새 땅, 새 들판이라는 뜻입니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바로 우리 한민족의 발상 지 새발(시베리라-만주)을 예시한 것입니다.
새팔과 새발은 발음이 아주 유사합니다.
‘ㅍ’을 약하게 소리내면 ‘ㅂ’이됩니다.
‘ㅍ’과 ‘ㅂ’은 모두 파열음으로서 한 계통의 소리입니다.
따라서 자주 혼용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안팎을 안밖이요 동이족의 후 예인 아파치 인디언은 ‘아버지’를 ‘아파치’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새팔은 새벌로 간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발의 어원은 새밝인데 ‘새 밟은 곳’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인 그 땅이 빛이 시작되는 새 땅이요, 새 밝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새발의 ‘발’ 은 ‘밝’에서 가지쳐 나온 말로서 원래는 광명의 뜻이었는데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새발의 ‘발’은 곧 ‘벌’인 것입니다.
벌은 벌판, 들판을 말 합니다. 서라벌, 서벌, 서나벌, 서야벌 등등

시베리아는 만주벌판이 연장된 땅으로서 만주와 같은 땅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는 곳 입니다. 그곳은 우리 배달겨레의 역사의 고향입니다. 따라서 그곳을 부르던 우리의 땅이름이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는데 그것이 토박이 말로 ‘시비리’입니다. 이 시비리 는 새발의 변음입니다. 우리 한글 홀소리가 아에이오우로 구울러 감에 따라 이 ‘새’가 사서소수스시로 구울러 감이 보통입니다. 우리말 ‘새’가 그같이 여러 가지 소리로 나 타납니다. ‘시비리’의 ‘시’는 ‘새’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시비리의 ‘비리’는 벌의 의미를 갖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비리’와 비슷한 말이 ‘누리’가 있는데 ‘비리’는 ‘벌’ 만 뜻하지만 누리(온누리)는 땅덩어리, 곧 산과 계곡, 강과 바다, 벌과 들 등 땅 위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시비리’새벌을 말합니다.
시베리아의 가장 옛 이름이 한국어 시비리입니다.
이 토박이 말이 우리는 잊고 있으나 북한의 조선말 사전(사회과학출판사, 1922년)은 ‘시베리아’를 ‘씨비리’라는 명사로 분명히 풀이해 놓았습니다.

’시비리’가 시베리아로 불려지게 된 것은 고구려가 망한 후 방치되던 ‘시비리’를 16세기 러시아가 불법강점 을 하면서부터 입니다.
러시아족이 동침한 이후 ‘시비리’는 그 신비한 모습을 세계사 에 드러내게 되었는데 시비리를 강점한 러시아인도 옛말 그대로 시비리 그대로 사용 하였습니다.

그것을 영국인들이 듣고 마치 고려를 코리아로 부른 것처럼 시베리아로 부른 것이 오늘날 시베리아로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시베리아는 한국어 시비 리에서 유래한 영어식 지명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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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단은 요(堯)이며 단군(壇君)이다.

 

서방 벨렉 계열에선 세상과 구별되는 길을 밟아 구주 예수 탄생을 예비하였다. 동방의 욕단 계열은 이 땅에서의 그 구원의 현실을 예표로 보여주었다. 욕단 계열의 그 역사적 사실은 이렇게 중요하다. 하나의 손이 손등과 손바닥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이 둘은 표리를 이루어 하나의 구원에 관하여 예표적인 그림을 구성한다. 성경 창세기는 창조와 인류역사의 기원을 밝힌 책이다. 그 사실과 반대되는 기록들은 사람들이 육신적으로 본 사실을 과장하고 거짓으로 꾸며낸 흔적일 뿐이다. 홍수 이후 전 인류 시원적 종족과 그 거주지를 밝힌 창세기 10장에서 욕단은 열세아들을 낳고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기록하였다. 단 몇 절의 기록이지만 욕단의 중요성은 그 이름의 의미와 함께 그의 아들이 성경에서의 기록 중 가장 많은 아들인 열세아들이었다는 것으로 표시되고 있다. 아들의 많고 적음은 하나님에게 받은 축복의 크기에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거주지인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라는 기록도 중요한 비밀을 담고 있다. 성경에서 산은 하나님이 말씀하는 곳이고, 그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 있다.

 

메사는 아마 지금의 이란고원 어디에 있을 것이다. 이란의 메슈하드라는 도시는 혹 그 당시의 메사일지 모르겠다. 중동에서 이란인은 이웃나라에 사는 아랍인과는 다른 민족이다. 아마 그들은 욕단의 후손으로 우리와 같은 종족일 확률이 높다. 그 까닭으로 이란 사람들이 한국인을 좋아하고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원인이 되는지 모르겠다. 스발은 지금의 시베리아일 확률이 높다. 시베리아는 시빌이라 불렀다. 신라에서 자신의 나라 이름과 수도 이름을 서라벌이라 불렀다. 서라벌은 한문으로 고치면 신라(新羅) 즉 새 나라라는 뜻이다. 이것은 비록 단군조선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기억은 잃어버렸지만 그 사실의 흔적들은 민족의 심층에 새겨져 때때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인 것 같다. 스발->시빌.시베리아->서라벌(신라)->서울이라는 것은 다 하나의 뜻을 가진 말이다. 새로운 땅, 새로운 나라라는 말이다.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살기 어려운 동토인 시베리아를 왜 새로운 땅인 스발이라 불렀을까? 아마 먼 후일 하나님을 믿는 우리 민족이 주도적이 되어 전 세계를 평화의 공동체로 건설한 뒤 새로운 땅, 새로운 나라, 지상천국인 교회·왕국(敎會·王國)을 건설하는 환상을 보았을 확률이 높다. 그리하여 한반도로 이동해 왔던 욕단족의 핵심인 우리 민족이 그 환상을 은연중에 나타내어 서라벌, 서울이라 불렀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민족의 이동로는 홍수 이후 소아시아의 아라랏 산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옮겨오다가 넓고 살기 좋은 시날 평지를 만나 다 그곳에 머물 때 욕단 일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까닭으로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였다. 일차 집결지가 이란고원의 메사였다. 그곳을 서방에 살고 있는 벨렉 계열과의 교류와 바벨문화 이동을 차단하는 관문으로 삼았을 것이다. 욕단의 열세아들 중에서 한 아들 가족을 남겼을 것이다. 그들이 고대 고레스(키루스)의 바사(페르시아)의 조상이 되었을 것이다. 포로된 이스라엘인들의 해방과 무너진 성전 중건의 사명이 바사의 고레스에 맡겨진 까닭도 이와 같은 신앙과 역사에 연유함이 있을 것이다. 메사에서 사마르칸트를 지나 카자흐고원을 경유하여 우랄 알타이 산맥을 넘어 몽고 북방을 진행하다 시베리아 바이칼 근처에서 한참이나 머물렀을 것이다. 그곳에서 먼 후일의 역사 비전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살기 어려운 동토인 그곳의 이름을 새로운 땅, 새로운 나라란 뜻인 스발이라 불렀을 것이다. 일부는 남고 나머지의 전 욕단족은 살기 좋은 곳인 만주로 이동하였다. 이리하여 이란고원부터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몽고, 만주, 한반도는 욕단족의 영유지역이 되었다.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 10장이 가리키는 그 당시는 바벨 심판 전이라 언어와 말도 하나였다. 욕단이란 말은 요(堯)와 단군인 단(壇)의 이름을 합친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계시로 중국에서 말하는 요와 한국에서 말하는 단군은 한 사람으로서 욕단이라 밝혔다. 발음뿐만 아니라 뜻도 같다. 욕단의 이름에는 작은자 및 단을 쌓는 자라는 이중의 뜻이 있다. 한문에서 요(堯)는 垚(요)와 兀(올)로 짜인 글자다. 즉 요(堯)라는 그림은 작은자가 위에 세 스승을 모신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나 중국인은 멀리 있는 높은 사람이란 뜻으로 요임금이라 불렀다. 단군인 요는 즉 욕단은 중국인에게 그렇게 멀리 있는 존엄한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단군에서 군을 뺀 단(壇)은 바로 제단을 쌓는 자란 뜻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요와 단군은 성경에서는 한 사람으로 그 이름을 욕단이라 밝히고 있다. 垚(요)는 세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중국에서 삼황(三皇)이란 전설과 한국의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풍백 우사 운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땅을 말하는 토(土)와 임금이 아닌 사(士)는 다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하늘과 임금은 아니지만 가장 닮았다는 뜻이다. 그 하늘과 임금의 수단이란 뜻이다. 兀(올)은 세 사람을 스승으로 섬기는 사람으로 요(堯)자신을 말한다.

 

중국 전설에서의 삼황과 단군신화에서의 삼사란 성경의 인물인 노아와 그 아들인 셈과 셈의 자손인 어떤 족장일 것이다. 그 이유는 노아와 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바벨 심판을 피해가는 것이 성경의 원리다. 홍수 심판 전에 하나님을 경외한 에녹은 휴거 당하였고, 대부분의 족장들은 죽어 심판을 겪지 않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와 긍휼이며 성경의 원리다. 두 번째 이유는 홍수 이전 세상에서 에녹은 구원 사역을 마치고 부활 승천한 예수님을 예표 하였고, 노아는 성령으로 이루는 이 땅에서의 구원 현실을 예표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아는 동방에서 새로운 지상천국의 예표를 지도할 책임이 있었다. 가나안의 배도와 니므롯의 폭력으로 건설된 바벨론을 피해서 동방에서 이상적인 공동체 건설을 지도할 책임이 있었다. 그러므로 옛 신시·조선(神市·朝鮮)이란 공동체는 하나님의 인도와 노아와 셈과 셀라일 세 조상들과 욕단인 요단군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세워진 동양에서 유일한 고봉문명으로 옛 이스라엘왕국과 중세의 가톨릭교회문명 공동체와 같은 구원노선의 문명이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잃어버린 역사가 되어 버렸다.

 

홍산문명 유적이 발굴되고 있는 요하지역은 홍수 심판 이후 아라랏산에서 시작하여 이란고원을 거치고 시베리아에서 잠시 머물다가 만주로 이동해 정착한 욕단족인 요단군족의 정치경제적인 공동체가 형성된 그 당시 이후의 문명유적일 확률이 높다. 중국 전설과 사서에서 기록한 요순의 정치적 이상시대는 이것을 말하고 있다. 얼마 동안 이곳을 중앙으로 해서 이란고원부터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와 만주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욕단족의 연락과 연합과 다스림이 행해졌다. 이곳에서 파견된 우(禹)가 황하 치수에 성공하여 중국이 건설되었다. 욕단일문인 요단군족의 삶이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되자 노아와 셈과 셀라와 욕단은 하나님을 모시고 그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정치경제를 넘어선 교회·왕국(敎會·王國) 건설의 비전과 목표를 세웠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풍백 우사 운사와 삼천무리가 태백산 산정에 도달하여 신시(神市)를 열었고, 단군은 조선을 건국하였다. 신시와 조선은 유대인 보다 먼저 이스라엘과 같은 문명을 건설하였다는 의미다. 이리하여 동방에서의 역사1기 고봉문명은 완성되었다. 동양에서의 유일한 고봉문명이다. 많은 인류형제와 이별하고 수많은 산과 강을 건너 건설한 위대한 문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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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달임금(단군) 욕단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공경하던 셈의 현손(玄孫) 욕단 족속은 빛이 시작되는 땅, 곧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가는 것이 꿈이었다. 그들은 밝고 환한 천국에 계시는 하느님의 백성, 곧 천손민족(天孫民族)답게 밝고 환한 땅을 찾아 가서 온 백성이 밝고 환한 흰 옷을 입고 창조주 하느님께 제사하며 삶을 영위하는 신시(神市= City of God), 곧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기를 소망했다.

 

그리하여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쉬지 않고 동쪽으로 이동하다가(창 10:30), 마침내 동해에 해 떠오르는 ‘밝의 땅’, 동방의 땅 끝에 당도하였다. 그리고 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밝달나라를 세운 우리 밝달겨레(배달겨레)의 조상이 되었다. ‘밝달’의 ‘달’은 ‘아사달’의 ‘달’로서 ‘땅’이라는 말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욕단을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물론 ‘밝달임금’이라고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욕단은 사람들을 ‘밝의 땅’으로 이끌고 온 ‘밝달족’(광명족)의 우두머리(Headship)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군’이 ‘욕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단군’이란 칭호는 ‘밝달임금’(檀國의 君長: king of Bakdal)의 이두식 표현이기 때문이다. ‘단군’은 ‘밝달임금’ 또는 ‘배달임금’ 등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던 우리 동방(조선)의 고유의 호칭을 후세에 한자(韓字)로 의역(意譯)하여, ‘檀(박달)’ ‘君(임금)’ 이라고 표기하여 놓았기 때문에 비로소 ‘단군’이라는 칭호와 발음이 생겨난 것이다.

 

  예수원 설립자 토레이(R. A. Torrey․ 대천덕)는 셈의 세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이 단군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그 근거를 제시한다:


  “…창세기 10:25에 ‘에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에게는 ‘벨렉’과 ‘욕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벨렉’이란 ‘나뉘어진다’는 뜻으로 그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 ‘욕단’은…알모닷, 셀렙 등 여러 사람들의 조상이 되고,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으로 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동방의 산지대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셈의 족속들이기 때문에 동방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욕단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욕단이 혹 단군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계산은 할 수 없지만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비슷한 연대입니다.”(대천덕,「우리와 하나님」, 도서출판 예수원, 1988, 163쪽)


  그의 추측은 옳았다! 우리 알이랑민족사를 시작한 단군은 바로 성경상의 셈의 현손 욕단이었다. 여기에서 그 타당한 근거를 살펴보도록 하자.


  단군 칭호의 의미와 유래


  ‘단군’이라는 칭호는 그 이름 자체에 이 인물의 성격이 어느 정도 집약적으로 반영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단군의 정체를 밝히는데 ‘단군’이라는 칭호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러므로 단군 칭호의 의미와 유래가 무엇인지를 해명해야 한다.

 

단군 칭호의 의미와 유래라고 할 때에는 한자(韓字)로 표현된 ‘단군’의 본래 우리말이 어떤 것이며, 그 우리말의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어원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하는 것들이 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단군’의 ‘군’은 ‘임금’을 표시하는 우리말의 한자 의역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여기서 일단 ‘단군’의 의미를 복원해 보면 ‘단 임금’으로 된다. 그러면 ‘단’자의 의미는 무엇인가? ‘단군’의 ‘단’자는 「삼국유사」에 인용된 「고기」에서 ‘제단 단(壇)’자로 쓴 외에 그 밖의 단군신화들에서는 모두 ‘박달나무 단(檀)’자를 썼다.

「삼국유사」정덕본 이전의 조선왕조 초기의 다른 여러 책들에서는 단군에 대하여 전하면서 ‘박달나무 단’자를 썼고, 단군신화를 전한 「삼국유사」이외의 모든 기록에서도 한결같이 ‘박달나무 단’자를 썼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삼국유사」의  ‘제단 단’ 자는 신화에 불교적 요소가 개입되면서 고쳐쓴 것으로 인정된다. 다시 말하면 「삼국유사」의  ‘제단 단’ 자는 승려 일연이 불교적 제단을 염두에 두고 고쳐 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삼국유사 이외의 모든 기록들이 단군의 '단'자를 ‘박달나무 단’자로 표기했을까? 한자가 통용되기 전에 있었던 단군의 순 우리말 이름은 그렇게 표기해야만 의미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박달나무 단’자는 그 자체만으로 ‘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화에서는 ‘단’자 밑에 또 ‘나무 수(樹)’자를 덧붙여 ‘나무’라는 말을 겹말로 중복시킨 것이 나온다. 바로 ‘신단수(神檀樹)’이다. 이것은 원래의 설화에 있었던 ‘박달나무’란 말의 ‘박달’만을 ‘단’자로, ‘나무’를 ‘수’자로 의역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처럼 ‘단군’의 ‘단’자가 우리말의 ‘박달’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단군은 ‘박달임금’이라는 말이 된다.


  ‘박달’의 ‘달’은 ‘아사달’ 할 때의 그 ‘달’인데, ‘땅’이라는 말이다. 양달이 양지요, 음달이 음지요, 빗달이 비스듬한 땅이다. 이렇게 ‘달’은 ‘땅’이다. ‘박달’의 ‘박’은 ‘밝’과 통한다. 오늘날에도 일상대화에서 ‘밝’의 받침 ‘ㄹ’이 생략되어 ‘밝다’가 ‘박다’로 발음된다.

 

이것은 우리말에서 겹자음 받침을 가진 경우 앞의 겹자음 하나가 발음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음운법칙으로 되는 것과 관련된다(예: 젋다→점다, 굵다→국다, 밟다→밥다, 진흙→진흑). 이로서 ‘박달’의 ‘박’이 ‘밝다’의 ‘밝’과 통하며, 그에 따라 ‘박달’을 ‘밝달’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단군’은 ‘밝달임금’이라는 말이다. ‘밝달’은 ‘밝은 땅’이라는 뜻이다.

 

즉 단군(檀君)은 ‘밝은 땅의 임금’ 곧 ‘배달임금’이란 글자이다. ‘밝달(족) 임금’의 이두식 표현이 ‘단군’이라는 칭호인 것이다. 그것을 보기 쉽게 다음과 같이 표시할 수 있다.

 

                     밝달(檀): 밝은 땅

    밝달임금= 檀君 = 밝은 땅의 임금 = 朴達那羅任儉 = 배달임금


  단군은 '밝달임금'이란 보통명사

 

  단군은 ‘밝달임금’또는 ‘배달임금’ 등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던 우리 동방(조선) 고유의 호칭이었다. 이 토박이말을 후세에 한자(韓字)로 의역(意譯)하여 ‘檀’(박달) ‘君’(임금)이라고 표기하여 놓았기 때문에 비로소 ‘단군’이라는 칭호와 발음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단군은 ‘밝달나라의 임금’(檀國의 君長: King of Bakdal)이라는 뜻을 가진 보통 명사이다. 따라서 ‘단군’은 한 사람이 아니고, 그 자리를 이어받은 후손들 모두가 단군이라고 불리어 왔다. 그래서 단군이라는 한 임금이 1000여 년간 고조선을 통치한 것처럼 후세에 와전되어 버린 것이다.

 

  계림유사(鷄林類事)란 책에선 말하기를 “밝달(檀)은 배달(倍達)이요, 국(國)은 나라(那羅)요, 군(君)은 임금(任儉)이다” 하였다.¹ 와유록(臥游錄)이란 책에선 말하기를, “한밝산은 세속에서 박달(朴達)이라 일컫는데, 세상에서 밝달임금(檀君)이 내려오신 땅이라 이른다” 하였다.² 신단실기(神檀實記)란 책에서 말하기를 “밝달임금(檀君) 때에는 사람들이 밝달(檀)을 배달(倍達)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음이 구을러 박달(朴達)이 되었다” 하였다.³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선 말하기를, “배달(檀)은 나라 이름인 까닭에, 그 자손들은 모두 배달 임금(단군)이라 한다” 하였고,⁴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선 “단군이라 일컬음은 곧 배달 나라 임금의 칭호인 까닭에, 그 나라를 잇는 임금들(嗣君)을 모두 단군이라 일컫는다”라 하였다.5

  

  그리하여 우리는 이때까지의 고찰로써 성경상의 한국인의 조상인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 다름 아닌 우리 겨레의 시조 ‘단군’이라고 충분히 단정할 수 있다. 참으로 에벨의 아들 욕단이 홍수 후 알이랑 고개를 넘어 사람들을 이 동방의 땅 끝, 밝의 땅으로 인도해 온 우리 ‘밝달겨레’의 조상이라면, 사람들은 그를 부르기를 분명히 ‘밝달(나라) 임금’이라고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므로 역사적 인물 욕단이 우리 배달겨레의 조상 '단군'이다.


  단군의 정체를 정확히 해명하는 작업은 아직까지 학계에서 난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안다면 그것은 절대로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무슨 대단한 일도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이다. 우리 알이랑민족의 조상 단군은 의심의 여지 없이 성경상의 셈의 현손 '욕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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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鷄林類事, 檀倍達, 國那邏, 君任儉

2) 臥遊錄, 白頭山, 俗稱朴達 世稱檀君, 下降之地云

3) 金敎獻, 神檀實記 : 尹世復, 檀君考,

4) 後嗣子孫, 仍稱檀君, 蓋檀國君地意, 而襲用之, 東史綱目曰 或云 檀是國號 故其子孫 皆稱檀君

5) 東國與地勝覽, 檀君之稱 卽檀國君之號 古其嗣君 皆稱檀君

 

 

 

  

  성경상으로 볼 때 우리 겨레의 시조 단군은 대홍수 후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와서 배달나라를 세운 에벨의 아들 욕단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단군의 연대와 욕단의 연대가 같다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단군의 연대와 욕단의 연대

 

  단군의 조선 건국 연대에 대하여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2333년이라는 설이 통용되어 왔다. 이 기원전 2333년 설은 고려의 13세기 말 이승휴의「제왕운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그때 이승휴는 자기 저서에서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의 조선 건국 연대를 중국의 요(堯)임금 건국 연대와 똑같이 무진년(戊辰年)으로 본 것인데, 그것은 실제 우리나라의 그 어떤 구체적인 자료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당시 요임금을 중국 한족의 시조로 보면서 -요임금은 동이족이었다- 그의 건국 연대가 우리 단군의 건국 연대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그런 논법을 세웠던 것이다.


  건국시조 단군 때로부터 상당히 긴 세월이 흐른 후세에 살던 우리 선조들은 단군이 나라를 세운 연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였고, 다만 단군이 매우 오랜 옛적에 나라를 세웠다는 막연한 인식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의 건국 연대를 자기들이 알고 있던 가장 오랜 옛 임금에 비교하여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이요, ‘요와 같은 시대’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주전 2333년인 단군기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단군의 즉위 원년의 절대 연대는 사실로서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삼국유사」등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단군이 요와 동시에 즉위해 나라를 건국했다는데 의의가 있을 뿐이다. 요와 순은 이상적인 통치시대를 펼친 인물의 대명사격이다.

 

특히 요는 공자가 성군으로 추앙하던 인물이다. 바로 그러한 요임금과 단군이 동시대에 즉위해 조선을 건국하였다는, 즉 우리나라가 중국과 대등한 시기에 건국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라는 것을 알리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단군의 즉위 연대는 그 절대 연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내세우고자 했던 의식세계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따라서 단군을 성경상의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라고 단정할 때에 단군 시대와 욕단 시대의 일치 여부는 논란의 소지가 될 것이 전혀 없다. 주전 2333년이라는 단군기원은 사실로서의 연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는 그보다 훨씬 더 옛날로 소급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주전 2333년인 단군기원이 성경상의 욕단의 연대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대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역추적하여 계산해 보면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타락 원년(元年)은 B.C. 4114년이 된다.

 

그리고 그 자손들이 타락을 계속해서 온 땅이 강포와 죄악으로 가득 차 하느님께서 큰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는데, 그 홍수가 발생한 연대가 B.C.2458년이다. 셈의 증손자 에벨은 B.C.2391년에 태어나 B.C.2357년 욕단의 형인 벨렉을 낳았고, B.C.1927년까지 살았다.


  이 성경 연대는 성경 연구가에 따라 연대 계산에 조금씩 차이가 있어 좀 더 위로 소급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정확무오한 연대 산출(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이 아니라 욕단의 연대가 바로 단군 시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관점을 취하든 우리는 아득한 옛날 백두산정에서 창조주 하느님께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조선을 건국한 밝달임금, 곧 단군이 성경에 산맥을 넘어 동방으로 갔다고 기록된 에벨의 아들 욕단이라고 얼마든지 단정할 수 있다.

 

  조선이라는 국호의 처음 이름 ‘주신’

 

  하느님의 사람 셈의 현손 욕단이 조선을 건국했다는 사실은 조선이라는 국명에서 드러난다. 조선이라는 국호는 원래 ‘주신’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의 지나(支那)식 표현이다. 한국인의 선조인 욕단은 그가 도달한 시베리아와 만주 대륙에 이르는 드넓은 동방의 새 땅을 하느님이 ‘주신’ 땅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나라 이름을 ‘주신’이라고 했는데, 후일에 ‘주신’이라는 말의 옛 음이 지나의 옛 글에 식신(息愼), 숙신(肅愼), 직신(稷愼), 주신(州愼), 조신(鳥愼), 주신(珠申), 조선(朝鮮)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된 것이다. 즉, 한민족 최초의 나라 이름인 ‘조선’의 본 뜻은 ‘주신’이라는 순 우리말인 바, 하느님께서 그 땅을 ‘주신’의 ‘조선’으로서 ‘하느님이 주신 땅’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신본주의적 국호인가? 우리 겨레의 근본사상인 '알이랑 정신'과 부합하는 국명이다.


  흔히 아침 조(朝), 빛날 선(鮮)에 견주어 ‘아침 해가 빛난다’는 뜻에서 ‘조선’이라는 국호가 생겼다 하나 조선이라는 국호는 상형문자가 생기기 전에 이미 있던 국호이다. 그렇다면, ‘조선’이라는 말은 우리의 고대어로 무엇을 뜻하였겠는가? 바로 그것이 ‘주신’인 것이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는 조선의 어원은 숙신(肅愼)이라고 하고,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서는 ‘숙신’의 옛 이름을 ‘주신(珠申)'이라고 하고, 주신은 소속 관경(觀境)을 가리키는 만주말이라고 했다. 이는 곧 지금의 말로 일정한 지역의 땅, 영토를 의미한다. 바로 여기에 조선의 원의(原義)가 있다. 즉 ‘주신’이 ‘숙신’의 어원이요, ‘조선’의 어원이기도 한데, 우리가 터 잡고 사는 땅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살라고 ‘주신(賜)’ 땅이라는 뜻의 ‘주신’인 것이다.


  또한 욕단은 ‘주신’(조선)을 건국한 역사적인 그 날을 ‘하늘 문이 열렸다’, 즉 개천(開天)이라고 했다. 아마도 욕단이 조선을 건국하기 전 먼저 백두산 산정에서 하느님께 단을 쌓고 경건히 천제를 드렸을 때, 아라랏 산정의 노아의 제사를 ‘하늘 문을 여시고’ 응답하신 하느님께서 욕단의 제사도 그렇게 열납하신 것 같다.

 

그렇기에 나라를 세운 개국일을 ‘개천’(開天), 즉 ‘하늘이 열렸다’고 했을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개국일(開國日)을 통상적으로 ‘건국기념일’이라고 부르지만, 천손민족인 우리 한국인은 오늘날까지 ‘개천절’(하늘 문이 열린 날)이라고 부른다. 이 얼마나 선민(選民)다운 특별한 건국기념일의 이름인가! 이 같은 명칭은 세계에서 배달민족과 유대민족 외에는 없는 특이한 사항이다.


  알이랑 민족의 조상 단군인 욕단

 

  창세기 10장 2절에 보면 백인종의 조상인 야벳의 아들들 가운데 두발(Tubal)과 메섹(Meshech)이라는 인명이 나온다. 서구 성경학자들이 쓴 책들을 보면 오늘날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Moskva)라는 지명은 야벳의 아들 ‘메섹’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메섹’이 그곳으로 가서 정착했기에 그의 이름이 지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랄산맥 동쪽에는 ‘토블스크’(Toblsk)라는 지방이 있는데, 그것 또한 야벳의 아들 ‘두발’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설명한다. ‘두발’이 그곳으로 가서 살았기에 그의 이름을 지명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서양의 성경 주석가들이 무슨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의 모스크바나 토블스크로 가서 ‘메섹’과 ‘두발’을 만나고 온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어떤 고고학적 유물이나 문헌상의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메섹은 모스크바와, 두발은 토블스크와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악착같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그대로 수용한다. 왜냐하면 백인종은 야벳의 후손이므로 얼마든지 그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홍수 후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와서 밝달나라를 세운 밝달족의 우두머리가 에벨의 아들 욕단일진데, 우리가 그를 ‘단군’이라고 단정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단군이란 '밝달임금'의 이두식 표현방식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앞서 자세히 설명했듯이 욕단의 목적지 ‘스발’(새팔)은 광명의 본원지인 ‘새밝나라’, 곧 ‘새벌’(시베리아~만주)이다. 게다가 욕단의 연대와 단군의 연대는 같은 시대이다. 따라서 성경상의 한국인의 조상 욕단을 우리 한민족의 시조 단군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결코 억측이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타당한 결론인 것이다.


  그렇다!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은 우리 알이랑민족사를 시작한 한국인의 조상 단군이시다. 알이랑민족 한국인의 기원은 셈의 가계, 그 중에서도 약 4300여 년 전에 동양으로 이주하여 우리 배달 동이겨레의 선조가 된 욕단의 후손, 곧 단군의 자손이다.

 

그리하여 동방의 한국인은 여호와 하느님께서 감추어 놓으신 또하나의 선민인 것이다. 에벨의 혈통인 욕단의 후손은 셈 계열 내에서 특별 선택을 받은 천손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천손강림(天孫降臨)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즉, 우리 한국인의 계보가 셈→아르박삿→셀라→에벨→벨렉과 욕단으로 이어지는 ‘천손민족’이라는 사실이 신화에 반영된 것이다. 건국신화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건국사실의 신화적 반영이다. 따라서 건국 역사를 밝히는데 중요한 사료(史料)의 하나가 된다.


  단군은 신화의 인물이 아니다. 그는 동방 ‘밝의 땅’에 당도하자 맨 먼저 백두산 산정에 올라 창조주 하느님께 천제를 드리고 조선을 건국한 역사적 인물로서, 성경상의 한국인의 기원은 노아의 작은 아들 셈의 현손(玄孫) 욕단, 곧 밝달임금이다.


  나무엔 뿌리가 있듯이 사람에겐 조상이 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생길 수 없을 뿐더러 잘 발육하기도 어렵듯이 조상 없는 사람은 생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잘 발전하기도 어렵다. 개인과 씨족에 시조(始祖)가 있듯이 민족에게도 시조가 있다. 우리 배달민족(檀族=밝달민족)의 시조는 단군이신데, 이분을 한자(韓字)를 빌어 이두문(吏讀文)으로 단군왕검(檀君王劍)이라 적고, 또 이 분을 간단히 ‘배달임금’(檀君) ‘한배검’ ‘단군’ 또는 왕검(王劍)이라 하였다. 그가 바로 대홍수 후 알이랑 고개를 넘어 동방의 땅 끝 ‘밝의 땅’으로 천동하여 밝달나라를 세운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이었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 아바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 아바님은 단군이시니

     

                                                                                       -정인보 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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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래에 ‘단군’은 무당의 일명인 ‘당굴’의 음을 따서 쓴 것이고, ‘당굴’은 몽골어의 Tengri(天 ․ 祭主)와 공통된 말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신화의 내용과 동떨어져서 ‘단군’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에 본질적인 결함이 있다. 신화는 ‘단군’을 ‘당굴’로 해석할 수 있는 그 어떤 시사도 주지 않으며, 애당초 이 설의 주장자 자신도 신화에서 그 의미를 도출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샤머니즘의 본질인 사자(死者)의 혼령을 중개하는 샤만적 존재나 술이나 가무 등의 요소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단군의 본뜻을 가장 바르게 또 완전히 알아내려면 무엇보다 신화의 내적 연관 속에서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역사적․언어적 사실과 논리적 이치에 따라 근본적으로 풀어 밝히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신화와 동떨어진 종래의 해석은 우선 그 접근 방법부터가 틀렸으므로 믿을 것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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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단의 후손을 찾을 수 있는 단서(1)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가계’는 다른 셈의 후손들과는 달리 그의 열셋 아들의 이름을 다 열거하여, 그 이름이 두 번이나 명백히 기록되어 성경에 남아있다(창 10:6~29; 대상 1:19~23). 왜일까? 에벨의 자손인 그들은 ‘벨렉의 가계’와 함께 신적 선택을 받은 백성, 곧 천손민족(天孫民族)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느 나라 백성일까? ‘욕단의 후손’은 처음 세대 이후엔 언급이 없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느님은 그들이 우리 알이랑 민족 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성경에 결정적인 단서를 남겨 두셨다. 그것은 창세기 10장 30절 말씀이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창 10:30)

 

 

바로 이 구절이 욕단계 선민이 누구인가를 찾는 데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한다. 성경은 욕단의 거주지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메사’와 ‘스발’의 위치가 어디인지, 그리고 ‘동편 산’이란 어느 지역의 산을 지칭하는 것인지를 확인하면 또 하나의 선민 욕단계 천손민족이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어떤 성경 연구가들은 욕단의 아들 이름이 역사적으로 아랍 부족의 이름과 같은 스바, 오빌, 하윌라이며 더욱이 아라비아 남단에는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지명도 나타나기 때문에 욕단이 아라비아로 갔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아라비아 남단에 정착하여 현(現)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아랍 부족의 이름은 함의 가계인 구스 민족의 후손에 속한 것이다.

 

 

초기 아랍 민족은 구스 민족이 분명하며 그들은 셈족이 아니다. 함의 자손 구스의 맏아들이 스바였으며 손자 중에도 스바가 있었다(창 10:6). 또 하윌라도 구스의 둘째 아들이다. 그들이 그 땅에 살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이름을 따라서 지명을 삼은 것이다. 오빌도 스바와 하윌라 부근의 홍해 안에 있는 금산지로 알려진 곳으로서 솔로몬 왕을 방문했던 스바 여왕의 통치 지역이었다. 따라서 그곳도 역시 함 계통의 구스 민족이 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왕상 10:1). 흔히 이름은 가계에 관련된 어떤 의미를 가지지 않고, 서로 분리된 후손들 사이에서 널리 되풀이되어 사용된다.

 

 

 

 

그리고 현(現) 아랍 민족은 이스마엘의 후손이 퍼져 있고(창 25:13~18), 롯의 후손 모압과 암몬 족속(창 19:36), 그 밖에 셈의 아들인 엘람족, 앗수르족, 룻족, 아람족 등이 섞여 있다.

 

 

 

 

그러므로 욕단이 아라비아로 가서 아랍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성경 연구가들은 ‘메사’와 ‘스발’의 위치를 결코 찾을 수 없다. 한결같이 그들은 ‘메사’와 ‘스발’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라비아 주변에는 그런 곳이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기 때문이다.

 

 

 

 

‘욕단의 후손’이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를 찾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창세기 10:30은 욕단계 선민이 동양에 거주하고 있다고 말한다.

 

 

 

동방 산

 

 

 

 

욕단은 아라비아로 가지 않았다. 성경은 욕단의 거주지가 ‘동방 산지’(창 10:30)라고 말씀하고 있다. 아라비아는 본문이 의도하는 ‘동방’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산지’가 없기 때문이다. 창세기 10:30의 ‘산’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르’라고 하는데, 그 뜻은 단지 하나의 산(one mountain)을 뜻하기 보다는 ‘산맥’(mountain-range), ‘산지’(mountain-region) 등의 의미를 갖는다. 특히 본문처럼 단수로 사용되었을 경우에는 ‘산맥’ 혹은 ‘일정한 지역의 산들’, 곧 ‘산지’를 가리킨다.

 

 

 

 

한글 개역성경은 ‘동편 산’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에 원문의 뜻을 충분히 전하여 주지 못한다. ‘동편 산’이라는 말은 ‘동편 산지’ 혹은 ‘동편 산맥’ 또는 ‘동방 산악지대’로 번역해야 원문의 뜻이 충분히 전달된다. 공동번역 성경은 ‘동편 산’이라는 말을 ‘동쪽 산악지대’라고 번역하여 원문의 뜻을 정확히 전하여 주고 있다. 또한 일본 성서공회가 발행한 일본어 성경도 ‘동방 산지’라고 번역하여 한글 개역성경보다 원문이 의도하는 바를 더 잘 전달해 주고 있다.

 

 

따라서 욕단은 아라비아로 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아라비아 남단에는 ‘산맥’이나 ‘산악지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곳은 지도책에도 ‘산’이나 ‘산맥’ 또는 ‘산지’가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아라비아는 지도상에 대부분 사막으로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아라비아에는 어떤 특별한 산이나 산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세가 말한 욕단 족속이 거주했다는 ‘동쪽 산악지대’라는 곳은 산맥과 산악지대가 많은 동양의 산들을 표시한 것이다. ‘동편 산’은 HAR HA KEDEM에서 변형되었다. 대개 KEDEM은 ‘동양’(Orient) 또는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를 뜻한다. KEDEM의 어원은 ‘가장자리’(Front)이며, 지리학적 의미로는 태양이 떠오르는 쪽에 있는 아시아의 해변 지역들을 언급한다. KEDEM은 또한 고대의 시작(시대의 가장자리, the Front of Time)이라는 어원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곳에서는 ‘고대 동양’(Ancient Orient)으로 번역해야만 한다. 따라서 HAR HA KEDEM은 ‘고대 동양의 산’을 의미한다. 이 산은 고대 전승의 동양에 있던 어떤 특별한 산을 언급할 수도 있고, 전(全) 동양을 상징할 수도 있다. 분명히 동양에는 많은 큰 산들이 있다. 이것은 모든 욕단의 후손이 동양에 거주함을 의미한다. 그들은 고대에 산을 넘어 동양으로 갔다.

 

욕단의 후손을 찾을 수 있는 단서(2)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창 10:30). 이제 ‘메사’의 위치를 확인해 보자.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이 곧바로 시날 평원으로 옮겨가 하느님을 대적하여 바벨탑을 쌓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성경을 정확히 이해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11장 2절은 홍수 이후 사람들이 바벨론 평지에 이르기 전에 먼저 동쪽으로 여행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동편으로부터(from the east) 이동할 때 그들은 시날 땅에서 평지를 발견하여 그들은 거기서 살았다.”(창 11:2․ 원전 직역)

 

 

 

 

한글 개역성경에는 ‘동방으로’ 옮겨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동방으로부터’라고 되어 있다. 흠정역 성경(King James Version)은 원문에 맞게 ‘from the east’로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옮겨가고 있었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던 중에 시날 평지(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계곡 안에 있는 지역)를 만났던 것이다.

 

 

 

이것은 홍수 생존자들이 방주가 정박했던 아라랏 산지를 떠나 처음 이동했던 지역이 바벨론 평원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대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아라랏 산지를 떠나 먼저 동쪽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노아의 후손들은 바로 그 동방의 어떤 장소(중앙아시아 근접 지역)로부터 서쪽으로 옮겨가다가 시날 평지를 만난 것이다. 이것이 홍수 생존자들의 바벨론 이전 시대의 이동 경로였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에게 욕단이 나중에 어느 경로로 이동하였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메사’의 위치를 찾는데도 단서가 되므로 주목해야 한다.

 

 

 

 

홍수 생존자들의 바벨론 이전 시대의 이동 경로는 이란 고원을 지나 바벨론 동부에 이르는 것으로 100년 이상 계속되었다. 창세기 11:10~16은 에벨이 벨렉을 낳기까지 홍수 후 101년이 지났음을 말해주며, 창세기 10장 25절은 벨렉이 바벨론에 거주했음을 보여준다. 노아의 6대손 벨렉에 관해 창세기 10:25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에벨에게 두 아들들이 낳아졌다. 한 이름은 벨렉인데 그의 날들에(in his days) 그 땅이 나뉘었다. 그리고 그의 형제의 이름은 욕단이다.”(원전 직역)

 

 

 

 

성경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들의 이름은 예언적인 사실을 담고 있다. 가령 가인에게 살해당한 ‘아벨’(허무하다)이나, 하느님과 온전히 동행하다가 산 채로 승천한 ‘에녹’(봉헌되었다)은 이름에서 그들의 운명이 암시되어 있다. 이렇게 인명(人名)은 하나의 예언적 계시이다. 벨렉이라는 이름도 그러한 이름 중의 하나이다. 그의 이름은 ‘나뉘다’라는 뜻인데, 실제로 그의 때에(in his days) 세상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W.B.C.(Word Biblical Commentary) 주석은 ‘벨렉’의 이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벨렉은 ‘나누다’(גלפ-팔라그)라는 어근에서 온 것이다. 보통명사로서 이 단어는 ‘운하, 수로’를 의미한다. 여기서 이 어원은 이 어휘에 보다 추상적인 의미(나눔)를 부여한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름들처럼 이 이름도 예언적이며 벨렉의 생애에 일어날 중대한 사건을 예시한다.”(고든 웬함 지음, 박영호 옮김, 「WBC 성경주석 창세기 상」, 서울: 솔로몬, 2001, p.423)

 

 

 

 

벨렉은 “나뉘다”는 뜻이다. 이 ‘나뉨’은 바벨탑 사건으로 세상의 언어가 여러 종족별로 나뉘어 더 이상 한 종족으로 살 수 없게 된 상황을 말한다. 바로 이것이 벨렉이란 이름이 예시했었던 중대한 사건이다. 이는 벨렉이 언어 혼란으로 세상이 나뉠 때에 바벨론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욕단은 벨렉과 함께 바벨론으로 가지 않았다. 욕단은 동쪽 지역에 거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시날 평지에 이르기 전에 무리와 헤어졌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창 10:30) 이동하던 무리들은 동쪽 지역으로부터 시날 평지로 접근하였다. 따라서 욕단이 동쪽 지역에 거하기로 결정한 사실은 그가 서부로 향하는 주요 집단과 헤어져 동양으로 이주 경로를 변경하였음을 증거하여 준다.

 

 

 

 

벨렉과 욕단의 헤어짐으로 두 종류의 히브리 가계가 형성되었다. 즉 서부 아시아에 거주하는 서부 히브리 민족과 동양에 거주하는 동부 히브리 민족이다. 창세기 10장 21절은 셈이 ‘에벨 온 자손의 조상’, 즉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에베르’에서 ‘히브리’가 유래되었다. ‘히브리’(ירבצ-이브리:Hebrew)는 에베르(רבצ)의 종족을 나타내는 말로서, ‘에벨’(Eber) 또는 ‘에벨의 계통을 잇는’(descended from Eber)을 뜻한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창 10:25).

 

 

따라서 히브리 민족은 에벨로부터 나온 두 가계, 곧 벨렉과 욕단 계통을 잇는 자손이다. 즉 아시아 서쪽으로 간 벨렉계 선민은 서부 히브리 민족이요, 동양으로 간 욕단계 선민은 동부 히브리 민족이다. 욕단의 후손도 히브리 민족에 속한다.

 

 

 

 

우리는 창세기 9장 28절에서 노아가 바벨탑 사건 이후까지 생존하였으며 다른 홍수 이후 족장들도 그러하였음을 알 수 있다(창 11장). 따라서 만일 그들이 그 당시 바벨론에 있었다면 바벨탑 건설에 참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는 바벨론에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노아는 하느님 앞에서 은혜를 입은 자요(창 6:8), 의로운 사람이었기에(겔 14:14; 벧후 2:5) 분명히 바벨론의 사악한 행위와 니므롯의 왕국(창 10:8~10)에 반대했을 것이다.

 

 

니므롯은 함의 손자로서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옮기도록 인도한 사람이었으며, 그곳에서 바벨탑 건설을 선동했던 인물이다. 성경은 노아와 셈, 아르박삿, 셀라, 에벨이 이 시기에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문맥 주석적 방식으로 유추할 만한 합리적인 결론은 그들이 욕단과 함께 아시아로 갔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어느 시대나 배교가 극심할 때 참된 믿음을 지닌 소수의 무리를 항상 남겨두셨다. 그들을 ‘남은 자’(the Remnant)라고 하는데, 욕단 족속은 바로 그 시대의 ‘남은 자’였다. 셈족의 현저한 가지 욕단 족속은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 니므롯에 의해 위협받는 셈계의 일신신앙을 보전(保全)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욕단과 그와 함께 한 다른 모든 홍수 후 족장들은 이란 고원이나 중앙아시아의 어떤 장소에서 서부 바벨론으로 이동하는 무리들을 떠날 순간을 선택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욕단 민족이 동양으로 정착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때에 인류는 대홍수 이후 첫 번째 이산의 역사를 경험했다. 니므롯을 따라 서부 바벨론으로 이동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욕단과 함께 알이랑 고개를 넘어 ‘스발’을 향해 가고자 동양으로 이동하는 거룩한 무리들로 홍수 생존자들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욕단은 동방의 산악지대로 이동했는데, 메사(Mesha)는 그 동양의 산악지대들(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의 길목에 위치한 곳으로 지금 아라랏 산 동쪽 이란 북동부에 있는 메삿(Meshhad)이라는 곳이다. 욕단 족속은 이 ‘메사’로부터 ‘스발’을 향해 가고자 동양의 산악지대들로 대장정을 시작했던 것이다. 어떤 성경 주석가는 ‘메사’를 ‘메소포타미아’의 옛말이라고 하나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우리 겨레의 노래 ‘알이랑’은 바로 그때에 욕단의 가계가 동방으로 이동하면서 불렀던 ‘찬송가’였다. 앞서 우리는 ‘알이랑’의 비밀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니, 곧 ‘하느님 중심 사상’이요 ‘신본주의 정신’이다. 즉 욕단은 홍수 후 함족 니므롯에 의해서 셈족의 하느님 신앙이 강하게 흔들릴 때에도 결코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도전받는 유일신 신앙을 보전하고자 ‘알이랑 정신’ 즉, ‘하느님 중심 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갖고서 새 땅(스발=새발=새팔=새벌)을 찾아 ‘알이랑’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아시아로 멀리 천동(遷動)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현존하는 인류 최고의 찬송가인 알이랑의 태동 배경이다.

 

 

 

욕단의 후손을 찾을 수 있는 단서(3)

 

 

 

스발

 

 

욕단 족속은 ‘스발’을 향해 동쪽으로 옮겨갔으며 ‘스발’은 그의 목적지였다. 창세기 10장 30절을 히브리어 원문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And their dwelling was from Mesha, as thou goest unto Sephar a mount of the east. KJV )

 

 

 

 

‘스발’을 히브리어에서 음역하면 ‘새팔’이다(우리말 성경 개역판의 히브리어 음역 표기는 고대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으로부터 왔다). 여기에서 ‘새팔로 가면서'(as thou goest unto Sephar)라는 말은 욕단 족속이 동양의 어떤 특정한 산지에 정착한 것이 아니라 ‘새팔’을 향해 계속 동쪽으로 옮겨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팔’의 위치는 어디일까? 어디가 욕단이 최후로 도달한 ‘새팔’인가?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새팔’은 결코 당시에 존재하거나 알려진 도시와 장소의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홍수로 인해 지워졌기 때문이다. 욕단이 천동하기까지 동양에는 아직 누구도 살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창세기 10장 30절에 언급된 ‘새팔’은 현실적인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예시적’인 지명이다. '예시'란 나중에 원형으로 구체화 될 어떤 진리가 미리 '암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새팔’의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지명 및 위치를 찾아야 한다.

 

 

‘새팔’은 '새발'

 

예시적 지명 ‘새팔’은 어디일까? 일단 그곳은 아시아 동쪽의 어느 곳에선가에서 추적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욕단은 동방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과연 어디를 뜻할까? ‘시베리아'이다. 알타이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좀더 이동하면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진다. 시베리아는 고조선의 창건 무대인 만주 대륙이 연장된 땅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의 고향이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멀리 천동한 욕단 족속은 남북 만주 및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방의 새 땅을 '새발'이라고 하였다. ‘새발’은 ‘새벌’의 고어로서, ‘새 땅’ ‘새 벌판’이라는 뜻이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바로 우리 한민족의 발상지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예시한 것이다. ‘새팔’과 ‘새발’은 발음이 아주 유사하다. ‘ㅍ’을 약하게 소리 내면 ‘ㅂ’이 된다. ‘ㅍ’과 ‘ㅂ’은 모두 ‘파열음’으로서 한 계통의 소리이다. 따라서 자주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안팎’은 ‘안밖’이요, 동이족의 후예인 인디언은 ‘아버지’를 ‘아파치’라고 부른다. 따라서 ‘새팔’ = ‘새발’로 간주할 수 있다.

 

 

 

 

그리고 ‘새발’의 어원은 ‘새밝’인데 ‘새 밝은 곳’이라는 말이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인 그 땅이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나라(새光明國)이기 때문이다. ‘새발’의 ‘발’은 ‘밝’에서 가지 쳐 나온 말로서 원래는 ‘광명’의 뜻이었는데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새발’의 ‘발’은 곧 ‘벌’인 것이다. ‘밝’은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이 그의 명저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 강조했듯이 우리 배달겨레의 사상의 뿌리를 이루는 본원적인 말이었다. 그것은 신(神)이며 신성(神聖)한 것이다. 그것은 태양이며 광명이고 생명의 원천이다.

 

 

 

 

‘배달’이라는 말은 ‘밝달’에서 나왔다. ‘배달겨레’ 할 때의 ‘배’의 뿌리도 ‘밝’이다. 그리고 ‘달’은 ‘아사달’ 할 때의 그 ‘달’인데 ‘땅’이라는 뜻이다. 곧 양달이 양지요, 음달이 음지요, 빗달이 비스듬한 땅이다. ‘밝의 땅’은 그래서 ‘배달’이니 이 말에는 우리 배달겨레의 얼과 숨결이 서린다.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말인지 모른다. 이 ‘밝’에서 가지 쳐 나온 말 가운데 하나가 ‘발’인데, ‘발’은 ‘밝’ 즉 처음에는 ‘광명’의 뜻이었으나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뀐 것이다. 순수한 우리말로 된 옛 한국의 지명에는 ‘발’로 끝나는 땅이름이 상당히 많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새발'인데 그것은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으로서 ‘광명의 본원지’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욕단은 알이랑 고개를 넘어 빛이 시작되는 동방의 새 땅, 곧 시베리아로부터 남북만주에 이르는 ‘극동아시아’까지 아주 멀리 천동(遷動)했던 것이다. 만주 벌판이 연장된 땅인 시베리아는 우리 겨레의 역사의 고향이다.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온 북방계 아시아인이다.

 

 

 

 

욕단 족속은 왜 그렇게 빛이 시작되는 땅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까지 멀리 이동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욕단의 가계는 바벨탑 건설에 가담하지 않은 셈족의 진정한 장자였다. 그들은 ‘하느님 신앙’이 위협받던 그 암울한 시대에 ‘알이랑 정신’, 곧 ‘하느님 중심 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끝까지 지켰던 단 하나의 천손민족이었다. 이렇게 창조주 하느님을 가장 공경했던 욕단계 선민 한국인의 조상은 타민족과 구별되는 천손민족다운 기질을 매우 많이 갖고 있었다. 그 현저한 민족성의 하나가 밝고 환한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섬기는 하느님이 밝고 환한 천국에서 빛 가운데 계시는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천손민족인 자기들의 삶의 터전으로 빛이 시작되는 땅, 곧 ‘새밝나라’인 ‘새벌’(새팔 = 새발)을 목적지로 삼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 밝고 환한 동방의 새 땅을 찾아가서 신시(神市), 즉 하느님의 나라(천국)를 건설하고자 했다. 욕단 족속이 알이랑 고개를 넘어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 곧 ‘새벌’까지 멀리 천동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공경하던 천손민족 에벨의 혈통 욕단의 가계는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밝달)을 찾아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를(파미르고원→ 천산산맥→알타이산맥) 넘어 쉼 없이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알타이 고개를 넘어 동쪽으로 좀더 가면 바이칼 호수가 나온다. 이 바이칼 호는 우리 민족을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주도한 유목민족들을 낳고 길러온 태반이다.

 

 

 

 

바이칼호수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대평원이 펼쳐지고, 호수 동남쪽에는 만주 벌판이 한반도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호수 북쪽은 북반구 북단이기 때문에 볕도 약하고 빛도 강하지 못하다. 그곳은 광명의 본원지가 아니다. 그래서 욕단 족속은 아침에 뜨는 해를 좇아서 호수 동남쪽으로 이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동녘 해 뜨는 밝은 땅에서 가장(한) 밝은 산인 한밝산(太白山=白頭山)에 집결하였다. 이 가장 밝고 밝은 한밝(太百)은 땅이요 터이니(基, 垈) 곧 밝달(배달)이다. 즉,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이다!

 

 

 

 

욕단 족속은 이 ‘밝의 땅’에서 ‘한밝산’을 발상지와 중심터로 삼아 한밝산과 그 변두리에 정착했다! 왜냐하면 그곳이 동방에서 가장 빛 밝고 볕 밝은 땅인데다,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은 셈의 후손인 그들이 산정제사(山頂祭祀)를 드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태백산 천손강림(天孫降臨)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배달겨레의 성경상의 시조는 바로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다!

 

 

 

 

한밝산의 밝달 곧 배달은 빛밝(光明)고, 볕밝(暘明)아, 사람이 먹는 풀, 나무, 과일, 새, 짐승 등이 자연히 많아서, 아득한 옛적에는 그곳이 사람 살기에 가장 좋은 땅이며 터였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이 배달을 낙원으로서 하느님이 점지(占指)하신 땅이라고 믿었었다. 하느님의 사람 욕단은 바로 이 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밝달(배달)나라를 세웠다. 이 한밝은(가장 밝은) 배달에 욕단이 세운 나라는 가장(한) 환(桓)한 나라인 까닭에, 이것을 그들은 하늘나라(天國 = 한나라), 신의 나라(神國 = 神市 = City of God)라 하였다.

 

 

 

 

이제 우리는 욕단의 목적지 ‘새팔’의 위치를 확실히 찾았다. 예시적 지명인 ‘새팔’은 ‘새벌’(새발)이요, '새발'은 '새밝' 곧 ‘새 밝은 곳’인데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밝달) ‘배달’인 것이다! 그 땅은 우리 배달겨레가 처음부터 터 잡고 살아온 땅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하나의 선민 욕단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아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존귀한 백성은 바로 알이랑 민족 한국인이다!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욕단 족속은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지극히 공경하여 광명의 본원지인 새밝나라(새발=새팔=새벌)를 찾아가려고 아침에 돋는 해를 따라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쉬지 않고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동녘에서 가장(한) 높고 밝은 산인 한밝산(태백산→백두산)에 올라 유일신 하느님께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천지(天池)가 솟아 오른 산정을 새 출발의 기점으로 삼은 백의민족이다!

 

 

 

 

욕단의 후손이 처음 세대 이후에 더 이상 성경에 언급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손민족인 그들은 아주 먼 아시아 동쪽으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새벌과 시비리

 

시베리아는 만주 벌판이 연장 된 땅으로서 만주와 같은 땅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는 곳이다. 그곳은 우리 배달겨레의 역사의 고향이다. 따라서 그곳을 부르던 우리의 땅 이름이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는데, 그것이 토박이말로 ‘시비리’이다. 이 ‘시비리’란 바로 ‘새발’(새벌)의 변음이다. 우리 한글의 홀소리 ㅏ(․)가 ㅏ~ㅓ~ㅗ~ㅜ~ㅡ~ㅣ로 구울러 감에 따라, '새'가 또 사~서~소~수~스~시로 구울러 감이 보통이다. 우리말 ‘새’가 그 같이 여러 가지 소리(음)로 나타난다. ‘시비리’의 ‘시’는 ‘새’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시비리’의 ‘비리’는 벌(발)의 의미를 갖는 순수한 우리말이다<‘비리’는 부리(夫里), 벌(伐), 화(火), 평(坪), 불(佛), 불(不), 반(半), 비이(卑耳), 부여(夫餘), 원(原), 비(臂), 불이(不而), 부루(夫婁), 발해(渤海), 부여(夫如) 등으로 다양하게 바뀌어 쓰인 벌(판)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로서, 우리 겨레의 삶이 이루어진 곳에서는 널리 곳곳에서 쓰였었다>. ‘비리’와 비슷한 말로 ‘누리’가 있는데, ‘비리’는 ‘벌’만 뜻하지만 ‘누리’(온누리)는 땅덩어리, 곧 산과 계곡, 강과 바다, 벌과 들 등 땅 위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시비리’는 시(새:新)+비리(벌:平野)의 조어구조를 갖는 ‘새벌’과 같은 뜻의 말이다. 즉 시베리아의 가장 오래 된 옛 이름이 한국어 ‘시비리’이다. 이 토박이말을 우리는 잊고 있으나 북한의 조선말 사전(사회과학 출판사, 1992년)은 ‘시베리아 → 명사 씨비리’로 분명히 풀이해 놓았다.

 

 

‘시비리’가 ‘시베리아’로 불려지게 된 것은 고구려가 망한 후 방치되던 ‘시비리’를 16세기에 러시아가 불법강점(不法强占)을 하면서부터이다. 러시아족이 동침(東浸)한 이후 ‘시비리’는 그 신비한 모습을 세계사에 드러내게 되었는데, ‘시비리’를 강침한 러시아 사람들도 그 땅을 예부터 부르던 이름 그대로 ‘시비리’라고 불렀다. 그것을 영국인들이 듣고 마치 고려를 ‘코리아’라고 부른 것처럼 ‘시베리아’라고 부른 것이 오늘날 ‘시베리아’로 세계에 알려진 것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400여 년 이전까지는 ‘시베리아’라는 말은 지구상에 없었다. 오직 한국어 ‘시비리’가 있었을 뿐이다. 시베리아는 한국어 ‘시비리’에서 유래한 영어식 지명일 뿐이다. 오늘날 ‘시베리아’는 러시아의 땅으로 되어 있지만 16세기에 러시아족이 우랄 산맥을 넘어서 동방을 침략해 오기 전까지는 그 땅은 러시아와 전혀 인연이 없는 땅이었다.

 

 

 

 

욕단은 홍수 이후 동양으로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가장 먼저 이동한 족족이었으며,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처음으로 개척 지배했던 동양의 선주민이었다. 그런데 역사가들은 고대에 시베리아와 중원(中原) 및 극동 지역을 가장 먼저 차지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한국인의 선조인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말한다(임승국․ 주관중, 「다물의 역사와 미래」, 다물민족연구소, P. 63). 그러므로 욕단의 후손이 한국인인 것은 의문의 여지가 더욱 없다.

 

 

 

 

그렇다! 한국인의 선조인 동이족은 고대에 알타이 산맥과 바이칼 호수 주변의 ‘시베리아’에 넓게 퍼져 살면서 극동으로 이주해 왔다. 우리 한민족의 뿌리는 단군이며, 그 정신적 고향은 북방, 특히 백두산과 바이칼호에 있다.

 

 

동이의 영역은 대체로 지금의 만주를 중심으로 하여 서쪽으로는 몽고와 연계되어 있고 동쪽으로는 차이나의 만리장성 안 깊숙이까지, 북쪽으로는 ‘시베리아’로 뻗어 실로 광활한 지역에 걸쳐 있었다. 바로 그들이 ‘새발(새팔)’로 간 욕단 족속으로서 고대 한국인인 것이다!

 

 

 

 

에벨로부터 형제 벨렉과 함께 셈에게 내린 복을 상속받은 천손민족 욕단의 가계는 동쪽으로 긴 여행을 계속하여 동방 산악지대인 파미르 고원을 넘고 천산 산맥을 넘고 알타이 산맥을 넘어 ‘새팔’(새발) 곧 시베리아와 만주 대륙에 이르는 광활한 극동의 새 땅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백두산을 본고장으로 하여 남북만주(南北滿洲)로부터 현재 중국의 산동성 전체, 하북성 발해 연안, 하남성 동남, 강서성 서북, 안휘성 중북, 호북성 동쪽 모퉁이와 요동반도 및 한반도 전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뻗어나가 살았던 것이다. 바로 그들이 우리 한민족의 조상인 배달 동이겨레이다!

 

 

 

 

그러므로 알이랑민족 한국인은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이다. 고대로부터 아시아 동쪽 ‘새벌’(새팔)에 살고 있는 그들은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에벨의 혈통 욕단의 후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유석근 목사(알이랑민족갱신사역)

 

club.cyworld.com/alilang

선민의 표적인 청반점

동양에 있는 민족이나 국가의 지배적인 기원이 되는 가계는 욕단을 통해 이어지는 동부 히브리인들 곧 알이랑 민족 우리 배달동이겨레(한국인)이다. 이러한 사실을 입증해 주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바로 ‘청반점’이다.

 

아이가 태어날 때 삼신 할매가 빨리 나가라고 엉덩이를 쳐서 멍들어 생겼다는 청반점. 사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우리 겨레가 또 하나의 선민 욕단의 직계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시려고 한국인의 육체에 ‘특별 표시’를 해두신 것이다.

 

우리 한민족은 오랜 세월동안 이어온 유전자적 특징이 있다. 태어날 때 지니고 있는 엉덩이와 등 부분의 푸른 반점이다. 유전학자로서 지난 8년간 청반점을 조사해온 김영광 박사(저서: 한국인의 청반점)는 한국인의 청반점이 가장 선명하다고 말한다.

 

“세계 사람들 중 한국인의 청반점이 가장 선명한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한국인이라도 일부는 청반점이 아예 없거나 있다하더라도 베트남이나 태국, 일본인보다 약한 경우도 있는데 이들은 귀화 한국인으로 보인다.”

 

“한국인의 청반점이 가장 진하다!” 아주 기묘한 현상이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몽골을 비롯한 동양 제민족들은 결국 한국인의 방계 족속이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즉 동양의 여러 민족들은 고대에 동이겨레의 피가 섞여 형성된 코리안의 아류 족속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수원 설립자 토레이(R. A. Torrey․대천덕)도 셈의 현손(玄孫)인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이 단군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면서, 동양 민족들은 욕단 계열일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창세기 10장 25절에 ‘에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에게는 ‘벨렉’과 ‘욕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벨렉’이란 ‘나뉘어진다’는 뜻으로 그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 ‘욕단’은 … 알모닷, 셀렙 등 여러 사람들의 조상이 되고,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으로 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동방의 산지대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셈의 족속들이기 때문에 동방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욕단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욕단이 혹 단군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계산은 할 수 없지만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비슷한 연대입니다.”(대천덕, 「우리와 하나님」, 도서출판 예수원, 1988, 163쪽)

 

동양 민족이 다 욕단의 직계 후손은 아니다. 인도는 야벳 계열이요, 중국은 함의 후손이다. 그러나 고대에 동양의 제민족이 형성되는 과정에 욕단의 후손인 동이족은 지배적인 역할을 했다. 어떻게?

 

욕단의 후손은 처음 세대 이후에는 언급이 없다. -그들은 대홍수 후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양으로 멀리 천동(遷動)했기 때문이다(창 10:30).- 그러나 그의 13아들의 가계는 두 번이나 기록되어 있다(창 10:26~29; 대상 1:19~23). 욕단의 가계는 고대 성경 시대에 기록된 가장 큰 가계였다.

 

이렇게 규모가 큰 집단인 욕단 족속이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간다고 알이랑 고개를 넘어 동양으로 가장 먼저 천동하였고, 아시아 대륙을 선점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족속들이 동방 땅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결국 그들과 섞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욕단의 가계는 동양 제민족들의 지배적인 기원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주는 것이 바로 한국인이 가장 선명하게 지니고 있는 청반점인 것이다.

 

왜 한국인의 청반점이 가장 선명하단 말인가? 유독 한국인의 푸른 반점이 다른 어느 민족보다 선명하고 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득한 옛날 동양 제민족들이 형성되는 과정에 동방의 선주민이었던 알이랑 민족 코리안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인이 태어날 때 지니고 있는 청반점은 우리 겨레가 또 하나의 선민 욕단의 직계 후손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일종의 ‘신의 지문(指紋)’이다. 하느님께서 한국인의 몸에 타민족과 구별되는 특별한 표시, 곧 청반점을 새겨 주신 섭리와 목적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청반점은 한국인의 육체에 결코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알이랑 민족 한국인이 여타 민족과 "구별된 민족", 곧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표적(Sign)으로 하느님께서 코리안의 몸에 특별히 새겨 두신 것이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3~14)

유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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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후손

 

욕단의 가계가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론은 오류

 

유석근

(알이랑코리아 대표, 알이랑교회 담임목사)

 

 

  한국인이 셈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내증(성경의 증거)과 외증(성경 밖의 증거)으로써 분명히 입증된다. 그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 < 셈 ․ 수메르 ․ 코리아 > 그런데 셈은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 룻, 아람이라는 다섯 아들을 낳았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셈의 이 다섯 아들들 가운데서 누구의 자손일까? 한국인은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후손이다(창 10:21~30).

 

  ‘욕단의 후손’은 처음 세대 이후에는 언급이 없다. 그러나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가계는 다른 셈의 후손들과는 달리 그의 13아들의 이름을 다 열거하여, 그 이름이 두 번이나 명백히 기록되어 성경에 남아 있다(창 10:26~29; 대상 1:19~23). 우리가 그들에 대해 탐구할 가치가 없다면 왜 하나님께서 욕단 족속을 성경에 그렇게 차별적으로 거듭 명시하여 남겨 놓았겠는가? ‘욕단의 후손’은 어디에 있는 누구일까? 처음 세대 이후로 ‘욕단의 후손’은 더 이상 언급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찾을 수 있도록 결정적인 단서를 남겨 두셨다. 그것은 창세기 10장 30절 말씀이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창 10:30).

 

  이 구절이 ‘욕단의 후손’이 누구인가를 찾는 데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한다. 성경은 욕단의 거주지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메사’와 ‘스발’의 위치가 어디인지, 그리고 ‘동편 산’이란 어느 지역의 산을 지칭하는 것인지를 확인하면 욕단의 후손이 어느 땅에 있는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욕단이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론은 오류

 

  서구 성경연구가들은 욕단의 아들 이름이 역사적으로 아랍 부족의 이름과 같은 스바, 오빌, 하윌라이며 더욱이 아라비아 남단에는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지명도 나타나기 때문에 욕단이 아라비아로 갔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아라비아 남단에 정착하여 현(現)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서양 주석가들의 이론을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도 대부분 그대로 카피해서 가르친다. “욕단은 아라비아로 남부로 가서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어요” 라고...

 

  창 10:25~29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욕단의 아들들 가운데 스바, 오빌 하윌라는 이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아랍 부족의 이름은 욕단이 아니라 함의 가계인 구스 민족의 후손에 속한 것이다. 초기 아랍 민족은 구스 민족이 분명하며 그들은 셈족이 아니다. 함의 자손 구스의 맏아들이 스바였으며 손자 중에도 스바가 있었다(창 10:7). 또 하윌라도 구스의 둘째 아들이다(창 10:7).

 

  창 10: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함의 가계인 구스의 후손들이 그 땅에 살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이름을 따라서 지명을 삼은 것이다. 오빌도 스바와 하윌라 부근의 홍해안에 있는 금산지로 알려진 곳으로서(왕상 9:26~28) 솔로몬 왕을 방문했던 스바 여왕의 통치 지역이었다. 따라서 그곳도 역시 함 계통의 구스 민족이 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왕상 10:1).

 

  따라서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지명 때문에 욕단의 후손이 아라비아 남단에 이주하여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서구주석가들의 주장은 단견이며 난센스이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오류로 가득한 그들의 낡은 이론을 더 이상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




 ▲ 욕단의 영토를 아리비아 남부로 표시한 그릇된 지도

 

  흔히 이름은 가계에 관련된 어떤 의미를 가지지 않고, 서로 분리된 후손들 사이에서 널리 되풀이 되어 사용된다. 그리고 현(現) 아랍 민족은 이스마엘의 후손이 퍼져 있고(창 25:13~18), 롯의 후손 모압과 암몬 족속(창 19:36), 그 밖에 셈의 아들인 엘람족, 앗수르족, 룻족, 아람족 등이 섞여 있다.

 

  그러므로 욕단이 아라비아 남부로 가서 아랍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서구의 성경 연구가들은 ‘메사’와 ‘스발’의 위치를 결코 찾을 수 없다. 한결같이 그들은 ‘메사’와 ‘스발’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다고 토로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라비아 남단 주변에는 그런 곳이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기 때문이다.


  트리니티 칼리지의 구약학 교수인 고든 웬함(Gordon Wenham)은 창세기 10:30을 해석하면서 욕단의 영토가 아리비아 남부에 위치한다는 대다수 주석가들의 견해는 추즉으로서 확실한 것이 아니라고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 “그들이”는 앞 구절에 논의된 욕단의 아들들 모두를 가리킨다. 불행하게도 이 구절은 대단히 모호하다. ‘메사’와 ‘스발’과 ‘동편 산’은 모두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 스발은 아라비아 남부의 차파르(saphar)라는 해안 도시일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첫머리의 치찰음 때문에 이 제안은 의심스럽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메사는 욕단족의 서쪽 경계를, 스발은 동쪽 경계를 나타내며 그 영토는 아라비아 남부에 위치한다고 추측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고든 웬함 지음, 박영호 옮김, 「WBC성경주석 창세기 상」, 서울: 솔로몬, 2006, p.425) 


  그렇다! 욕단의 가계가 아라비아 남단에 정착해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론은 불확실한 것이다. 그것은 추측일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성경학자들은 서구 주석가들이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제시한 추측성 이론을 그대로 베껴서 가르치거나 맹신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금 욕단의 가계가 아랍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는 이론은 마치 확고한 사실인 듯 반복 학습되고 있다. 이 그릇된 교설을 구약신학계의 거목인 글리이슨 아처(Gleason L. Archer) 박사는 저명한 성서고고학자이며 중동학자인 올브라이트(W. F. Albright)의 견해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셈의 후손에 관해 엉거(AOP pp.97~99)는 모든 가능한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불행스럽게도 너무 빈약하다. 그런데 욕단(아라비아에 있는)의 후손들에 대해 올브라이트는 아래와 같은 언급을 하였다. “아람과 욕단의 부족 후손들의 이름에 관해 가장 의미심장한 점은 그 모든 이름들이 아주 옛날 것이어서 앗수르와 남 아라비아에서 B.C. 1000년 후에 발견한 어떤 비문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 중에 몇 이름들은 개인의 이름들로서 B.C. 20세기 초반기 이후에 나타나는 것들이다. 그 이름들은 그 이후에도 수세기 동안 종족의 이름으로 계속되었다.”』(글리이슨 아처 저, 김정우 역, 「구약총론 」, 기독교문서선교회, p.242)

 

  올브라이트가 지적한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아람과 욕단의 부족 후손들의 이름에 관해 가장 의미심장한 점은 그 모든 이름들이 아주 옛날 것이어서 앗수르와 남 아라비아에서 B.C. 1000년 후에 발견한 어떤 비문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 중에 몇 이름들은 개인의 이름들로서 B.C. 20세기 초반기 이후에 나타나는 것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글리이슨 아처 박사는 욕단의 후손이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론을 자료가 너무 빈약한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엉거가 제시한 자료만 빈약한가? 욕단의 가계가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W. H. Gispen과 G. Ch. Aalders가 제시한 자료들도 궁색하기는 오십보백보다. 고든 웬함이 지적한 바와 같이 욕단의 영토가 아라비아 남부에 위치한다는 교설은 전혀 확실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허구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신학교수들은 욕단의 후손이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서구 주석가들의 불확실한 이론을 무슨 신조처럼 맹종, 카피하여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욕단의 후손은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죠”라고... 아주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아랍 부족의 이름은 함의 가계인 구스 민족의 후손에 속한 것이다. 초기 아랍 민족은 구스 민족이 명백하며 그들은 셈족이 아니라 함족이다.

 

▲ 아라랏산에 정박한 노아의 방주

 

  동양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욕단의 가계

 

  창세기 10장 30절은 ‘욕단의 후손’이 어느 곳에 있는 누구인지를 찾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준다. 이 구절을 원전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

“And their dwelling was from Mesha, as thou goest unto Sephar a mount of the east.”(KJV)

 

  우리는 본 절을 통해 메사는 출발지, 새팔(새발)은 목적지, 동쪽 산 혹은 동방 산지는 정착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창세기 10장 30절은 욕단의 후손이 "극동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다고 가르쳐 준다.

 

  ‘동방’과 ‘산지’ (HAR HA KEDEM)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

(창 10:30)


  이 구절은 욕단 족속의 거주지를 ‘동쪽에 있는 산’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서 ‘산’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르’인데, 단수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단수로 사용되었을 경우 그 의미는 하나의 산(one mountain)을 뜻하기도 하고, ‘산맥’(mountain-range) 혹은 “일정한 지역의 산들” 곧 ‘산지’(mountain-region)를 가리키기도 한다.


  “메사로부터 스발로 가면서”라는 구절은 욕단이 그들의 거주지인 ‘동방의 한 산’, 혹은 ‘동방 산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말이다. ‘메사’는 욕단의 가계가 동쪽 산을 향해 출발한 장소이다. ‘스발’은 그들의 정착지인 동쪽 산지와 인접한 동방의 새 땅이다. 이 '메사'와 '스발'의 위치는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우리가 욕단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여기의 “동방(동쪽)”이라는 말과 “산”이라는 말을 자세히 고찰해야 한다. 이 낱말들은 욕단이 아라비아 남부로 가서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서양 주석가들의 이론이 오류인 것을 즉각 폭로해 준다. 왜? 아라비아 반도는 결코 본문이 의도하는 “동방(동쪽)”이 아니끼 때문이다.

 

  모세가 말한 욕단 족속이 거주했다는 “동쪽 산”이라는 곳은, 동양의 “극동 지역”에 있는 하나의 특정한 산(one mountain) 혹은 산지(mountain-region)를 표시한 것이다. “동편 산”은 HAR HA KEDEM에서 변형되었다. ‘케뎀’은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이다. KEDEM은 “동쪽 가장자리”(the front of the east) 또는 ‘동양’(Orient)을 뜻한다. KEDEM의 어원은 “가장자리”(Front)이며, 지리학적 의미로는 태양이 떠오르는 쪽에 있는 아시아의 해변 지역들을 언급한다. 바로 이것이 KEDEM의 기본적인 뜻이다. 대개 KEDEM은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를 가리킨다.

 

  KEDEM은 또한 고대의 시작(시대의 가장자리, the Front of Time)이라는 어원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곳에서는 “고대 동양”(Ancient Orient)으로 번역해야만 한다. 따라서 HAR HA KEDEM은 “고대 동양의 산”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산은 고대의 동아시아에 있던 어떤 특별한 산 혹은 산지를 언급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욕단의 후손이 극동 아시아에 거주함을 가리킨다.


https://biblehub.com/hebrew/6924.htm


https://www.studylight.org/lexicons/hebrew/6924.html





KÈDEM is ‘the front of the east,’ or ‘the orient.’ 

 The root idea is “front” —in a geographic sense referring

to the coastlands of east Asia facing sunrise. 

 In the time sense it can also mean ‘ancient beginnings’ (the front of time),

and can sometimes be translated ‘ancient orient.’


  한 가지 더 놓쳐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동쪽’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는 ‘하케뎀’인데 이는 정관사 ‘하’에 ‘케뎀’이란 명사가 부착된 형태이다. 원어사전은 ‘케뎀’이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임을 가르쳐 준다. 이 단어에 정관사를 부착시켜 사용한 것은 동쪽 끝의 어느 한 지역을 확고히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용법은 욕단의 모든 자손이 동양에서도 아시아의 동쪽 끝의 어느 한 지역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고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지나(China)는 욕단의 거주지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나(支那)는 서쪽으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인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나(支那)의 영토는 결코 ‘하케뎀’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에는 코리아의 한반도가 자리 잡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인 코리아의 지정학적 위치는 정확히 ‘하케뎀’이다.



  일본도 ‘KEDEM’과 관련이 없다. 왜? 동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KEDEM’은 “동쪽 가장자리”(the front of the east)를 뜻하기 때문이다. 섬나라 일본은 아시아 대륙에서 분리돼 있으므로 동쪽 가장자리가 아닌 것이다. 독립된 별개의 땅이다. 그래서 일본은 ‘KEDEM’에 해당되지 않는다. 만약 일본이 ‘KEDEM’이면 하와이는 더욱 ‘KEDEM’이다. 일본이나 하와이는 결코 ‘KEDEM’이 지칭하는 동쪽이 아니다.


  원어사전을 찾아보면 KEDEM의 어원은 “가장자리”(Front)이다. 대개 ‘케뎀’은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를 가리킨다. ‘케뎀’은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이다. 그러므로 아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에 위치한 코리아가 ‘정확하게 하케뎀’이다.


  게다가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에는 동아시아 전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밝산’ 곧 ‘백두산’이 있고, 코리아의 한반도는 국토의 70%가 산지로 형성되어 있다. 정확히 ‘하르 하 케뎀’이 의미하는 그 ‘동쪽의 산’이며, 바로 그 ‘동방 산지’인 것이다. 이것은 결코 아전인수격 해석이 아니다. 성경원어 ‘HAR HA KEDEM이 뜻하는 바에 철저히 부합하는 가장 타당한 해석이다.



동방 산지인 한반도:

보통 위성사진이나 지형도에서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지형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기 쉽다.

수평 거리에 비해 수직 높이 표현이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NASA의 자료를 바탕으로 안톤 밸라즈(Anton Balazh)라는 그래픽 아티스트가 위와 같은 지도를 만들어냈다.

기존 지도보다 훨씬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백두산(하르)을 위시하여 국토 대부분이 산지(하르)인 극동(하케뎀)의 한반도는

평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특히 우리 조상이 하나님(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던 백두산은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2744m).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主山이 바로 한민족의 聖山인 백두산이다. 그런즉 욕단의 가계는 빛이 시작되는 땅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까지 멀리 遷動(천동)하여 ‘한밝산’ 곧 ‘백두산’을 본거지와 중심터로 삼아 한밝산과 그 변두리에 정착했다. 그리하여 우리 배달겨레의 조상이 되었다. 한민족의 성경상의 기원은 셈의 玄孫(현손) 욕단이다.


‘동쪽’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는 ‘하케뎀’인데,

이는 정관사 ‘하’에 ‘케뎀’이란 명사가 부착된 형태이다.

여기서 ‘케뎀’은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이다.

이 단어에 정관사를 부착시켜 사용한 것은

동쪽 끝의 어느 한 지역을 확고히 나타내기 위함이다.

거기는 어디일까?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에는 한반도가 있다.


☞→▶ < Strong's Concordance * 6924. qedem * >

 

Joktan are the pure Hebrews. Genesis 10:25 states Heber had two sons, Peleg and Joktan.

Genesis 10:30 says Joktan and family migrated to the Far East. They became the Korean descendents.

Peleg migrated to the Middle East and became the Israelite people.



  이처럼 한국인은 셈족 계열의 욕단의 후손이다. 그러나 지나족은 셈의 후손이 아니라 함의 후손이다. 그러므로 CHINA는 고려할 대상이 더더욱 아니다. 지나 사람을 부를 때 ‘시노(Sino)’ 족이라고 한다(영어 사전에서 ‘Sino’를 찾아보라). 이 ‘시노’는 함의 후손 ‘신(Sin)’ 족속에 해당 된다(창 10:17). ‘시노’의 어원이 ‘신’인 것이다(강해설교의 대가인 미국 갈보리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도 그의 창세기 강해서인 ‘천지창조’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신’은 가나안의 아들이요, 가나안은 함의 넷째 아들이다(창 10:6; 15). 지나의 기원은 함의 가계, 그 중에서도 가나안의 아들 ‘신’이 지나 민족의 고대 선조이다(창 10:17하). 지나인들은 셈의 자손이 아니라 함의 후손인 것이다.


  지나인들이 고대로부터 용을 숭배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셈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다. 셈 계열의 백성은 옛 뱀인 용을 그렇게 숭배하지 않는다. 성경은 용을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고 말한다(계 12:9, 19:2). 지나인들은 함의 가계 신의 후손이다.


  욕단의 거주지는 극동 아시아에 존재한다. 욕단의 영토가 아리비아 남부에 있다는 서구주석가들의 해석은 원어의 사전적 의미를 완전히 무시한 터무니없는 이론이다. 아라비아 남단은 창세기 10:30이 의미하는 동쪽(케뎀)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바처럼 ‘케뎀’은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로서,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를 뜻한다. KEDEM의 어원은 “가장자리”(Front)이며, 지리학적으로는 태양이 떠오르는 쪽에 있는 아시아의 해변 지역들을 가리킨다.




  이제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확인해 보자. 아라비아 반도는 아프리카의 우측에 위치해 있는데, 아라비아 북쪽은 이집트와, 중부는 수단과, 남쪽은 이디오피아와 위도가 연결된다. 그런데 성경은 이집트와 이디오피아를 '남방'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라비아 반도 역시 '남방'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계시의존 사색"이라는 성경해석의 원칙에 부합하는 결론이다. 이디오피아의 북쪽과 위도가 연결되는 아라비아 남단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지리학적으로도 아라비아 반도는 '남방'이지 '동방'이라고 할 수 없다.


 

 

  아라비아는 성경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엄연히 '남방'인 것이다. 게다가 아라비아 반도는 인도양 기슭과 홍해 연안 지역 외에는 특별한 산지가 없으며 대부분 사막이다. 아라비아 반도는 그 넓이가 인디아 대륙보다 크다. 그러나 반도 전체가 대부분은 극도로 건조한 사막이다. 따라서 아라비아 반도는 “동방 산악지대”가 아니라 “남방 사막지대”라고 표기해야 타당할 것이다. 아래 위성사진을 보라. 반도 전체가 대부분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 아리비아 반도

 


 ▲ 사막으로 형성된 아리비아 반도

 

  아라비아 반도는 동방도 아니고, 게다가 산지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땅을 하나님께서 '동방 산지'라고 말씀하셨다고 설명하는 서구 성경연구가들은 감히 하나님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 아리비아는 “동방 산악지대”가 아니라 “남방 사막지대”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이집트, 수단, 이디오피아와 위도를 공유하고 있는 아라비아 반도는 단연 '남방'이지 결코 '동방'이라고 할 수 없다. 욕단의 영토가 아라비아 남부에 있다는 서양 주석가들의 이론은 상식에도 어긋나는 억설(臆說)인 것이다. 아라비아 남단은 창세기 10:30이 의미하는 동쪽(케뎀)이 전혀 아니다.

 

  셈의 현손 욕단은 대홍수 후 그의 자손들과 함께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 멀리 '스발'로 遷動(천동)하여 극동 아시아인 '케뎀'에 정착했다. 욕단의 가계는 서아시아 지역을 완전히 떠나 동방의 땅 끝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므로 아라비아 남단에서 발견된다는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아랍 부족의 이름 및 지명은 욕단 족속과 아무 상관이 없다. 앞서 지적했듯이 그 지명들은 구스의 후손인 함족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많은 신학자들이 사고의 폭이 좁은 서구 주석가들의 낡아빠진 틀린 해석을 金科玉條(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다. 성경 원어 ‘HAR HA KEDEM’의 뜻을 완전히 무시한 서구 기독교의 그 엉터리 해석을 신조처럼 맹종하며 무비판적으로 카피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욕단의 영토는 아라비아 남단에 있는 거야”라고...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고신대 변종길 교수(신약신학)는 한민족이 욕단의 후손이라는 필자의 해석을 비판하는 글을 경멸하는 논조로 작성하여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했다. 욕단이 아라비아 남부에 정착해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기존의 해석과 다르다는 게 이유다. 오류 자체인 서구 신학의 낡은 이론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것이다.


  평택대학교(구 피어선신학교) 겸임교수라는 직함을 지닌 조덕영 교수 역시 그런 인물이다. 조 교수는 필자의 저서 "알이랑민족"을 사설이라고 매도하는 글을 여러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유포했다. 그는 한국인의 성경상의 조상이 욕단이라는 필자의 타당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문제는 이들 일행이 욕단 가족이라고 믿으면 성경적으로 더욱 심각한 참사가 일어나버린다는 데 있다. 즉 욕단 후손들이 주로 아라비아반도(현 사우디 지역) 지역에 머물렀다고 하는 성서고고학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들을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덕영 교수는 욕단의 가계가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믿으면 성경적으로 심각한 참사가 일어나버린다고 한다. 그 까닭은 욕단이 아라비아 반도에 머물렀다고 하는 성서고고학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를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욕단이 동방으로 천동하여 우리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해석하면, 그것은 욕단 족속이 아라비아 반도에 정착하여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서구 신학자들의 전통적인 이론과 맞지 않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심각한 참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참사가 일어나버린다고?

 

  서구 성경연구가들의 해석은 전부 “성경적”이라는 말인가? 서구 신학자들의 해석은 오류가 없나? 조덕영 교수는 서구 성경연구가들의 해석은 전부 ‘성경적’이라고 확신하는 인물이다. 조 교수가 얼마나 서구 신학자들의 이론을 절대적으로 맹종하는지 알 만하다. 조덕영 교수는 ‘HAR HA KEDEM’이 무슨 뜻인지 당장 원어사전을 찾아보라. 심각한 참사는 조 교수와 같이 서구신학의 이론은 틀린 것까지 베껴 가르치는 카피 신학자들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 심각한 참사를 중단시킬 것이다.


 ▲ 욕단의 영토를 아리비아 남부로 표시한 그릇된 지도

성경은 욕단의 거주지를 ‘동쪽 산’이라고 말한다(창 10:30).

여기에서 '동쪽'은 ‘케뎀’이라는 명사인데,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KEDEM은 “동쪽 가장자리”(the front of the east) 즉 ‘동양’(Orient)을 뜻한다.

KEDEM의 어원은 “가장자리”(Front)이며,

대개 지리학적 의미로는 태양이 떠오르는 쪽에 있는 아시아의 해변 지역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서구 신학자들이 욕단의 영토를 아리비아 남부로 표시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라비아 반도는 남부든, 동부든, 서부든 결코 KEDEM이 지칭하는 동쪽이 아니다.

서구 성경연구가들은 욕단의 영토가 아라비아 남부라는 그릇된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KEDEM의 기본적 의미를 완전히 무시한 터무니없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메사


 

  창 10:30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 [“And their dwelling was from Mesha, as thou goest unto Sephar a mount of the east.”(KJV) ] 본 구절은 당신에게 메사가 출발지, 새팔(새발)은 경유지, 동방산지는 목적지라는 것을 알려 준다.

 

  이제 ‘메사’의 위치를 확인해 보자.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이 곧바로 시날 평원으로 옮겨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바벨탑을 쌓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성경을 정확히 이해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11장 2절은 홍수 이후 사람들이 바벨론 평지에 이르기 전에 먼저 동쪽으로 여행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동편으로부터(from the east) 이동할 때 그들은 시날 땅에서 평지를 발견하여 그들은 거기서 살았다”(창 11:2 ․ 원전 직역).

 

  한글개역성경에는 “동방으로” 옮겨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동방으로부터”라고 되어 있다. ‘동방으로’는 히브리어 ‘믹케뎀’인데, ‘케뎀’은 동편이고 ‘믹’은 ‘으로부터’라는 전치사이다. KJV(King James Version)은 원문에 맞게 “from the east”로 번역하였다.

 

  “And it came to pass, as they journeyed from the east, that they found a plain in the land of Shinar; and they dwelt there”(Gen 11:2).

 

  그러므로 그들은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옮겨가고 있었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던 중에 시날평지(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계곡 안에 있는 지역)를 만났던 것이다. 이것은 홍수 생존자들이 방주가 정박했던 아라랏 산지를 떠나 처음 이동했던 지역이 바벨론 평원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대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아라랏 산지를 떠나 먼저 동쪽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노아의 후손들은 바로 그 동방의 어떤 장소(중앙아시아 근접 지역)로부터 서쪽으로 옮겨가다가 시날 평지를 만난 것이다. 바로 이것이 홍수 생존자들의 바벨론 이전 시대의 이동 경로였다. 성서고고학자 원용국 박사(안양대학교 구약학 교수)는 그의 저서 「창세기 주석」에서 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처음에 아라랏산 남동쪽의 시날 평지로 가지 않았고 먼저 아라랏산 동쪽인 이란 지역(이란 북부에 해당)으로 이동했다고 올바르게 설명했다.


  “권위 있는 번역본들에 의하면 사람들이 아라랏 지역에서 이동하여 ‘동쪽에서’ 시날 평원으로 가게 되었다. 시날은 아라랏의 남동쪽이다. 이것은 그들이 처음에 남동쪽 멀리 여행하였음을 의미하는데, 아마 오늘날의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이나 후에 다시 메소포타미아가 있는 서쪽으로 돌아간 것이다.”(원용국, 「창세기 주석」, 호석출판사, p.239)


  주석가 랑게 역시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원용국 박사의 해석과 같은 논지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믹케뎀 - '동방으로부터'라는 말이다. 방주가 닿았다고 생각되는 알메니아는 시날의 서북쪽에 있다. 이래서 원시인들이(주- 홍수생존자들) 시날에 올 때에 저희가 파사(이란)를 경유하여 동방으로 여행해 왔다고 생각하게 한다." (랑게 주석 창세기)


 

↑ 노아의 방주가 정박한 아라랏산

 

“그들은 동에서 서로 이동하고 있지만,

아라랏 산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바벨론, 즉 시날 땅의 동쪽에 있다.

그들은 티그리스 강의 동쪽 땅,

즉 이란이나 인도에서 오고 있는 것이다.”

 

-럭크만 주석의 창세기 11장 2절 해설-

 

↑ 대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아라랏 산지를 떠나 먼저 동쪽으로 이동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에게 욕단이 나중에 어느 경로로 이동하였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메사의 위치를 찾는데도 단서가 됨으로 주목해야 한다. 홍수 생존자들의 바벨론 이전 시대의 이동경로는 이란 고원을 지나 바벨론 동부에 이르는 것으로 100년 이상 계속 되었다. 창세기 11:10~16절은 에벨이 벨렉을 낳기까지 홍수 후 101년이 지났음을 말해주며, 창세기 10장 25절은 벨렉이 바벨론에 거주했음을 보여준다. 노아의 6대손 벨렉에 관해 창세기 10장 25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에벨에게 두 아들들이 낳아졌다.

한 이름은 벨렉인데 그의 날들에(in his days) 그 땅이 나뉘었다.

그리고 그의 형제의 이름은 욕단이다.”

(원전 직역).

 

  성경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들의 이름은 예언적인 사실을 담고 있다. 가령 가인에게 살해당한 ‘아벨’(허무하다)이나, 하느님과 온전히 동행하다가 산 채로 승천한 ‘에녹’(봉헌되었다)은 이름에서 그들의 운명이 암시되어 있다. 이렇게 인명(人名)은 하나의 예언적 계시이다. 벨렉이라는 이름도 그러한 이름 중의 하나이다. 그의 이름은 “나뉘다”라는 뜻인데, 실제로 그의 때에(in his days) 세상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W.B.C.(Word Biblical Commentary) 주석은 ‘벨렉’의 이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벨렉은 ‘나누다’(גלפ-팔라그)라는 어근에서 온 것이다. 보통명사로서 이 단어는 ‘운하, 수로’를 의미한다. 여기서 이 어원은 이 어휘에 보다 추상적인 의미(‘나눔’)를 부여한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름들처럼 이 이름도 예언적이며 벨렉의 생애에 일어날 중대한 사건을 예시한다.” (고든 웬함 지음, 박영호 옮김, WBC 성경주석 창세기․ 상, 서울: 솔로몬, 2001, p.423)

 

  이는 벨렉이 언어 혼란으로 세상이 나뉠 때에 바벨론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욕단은 벨렉과 함께 바벨론으로 가지 않았다. 욕단은 동쪽 지역에 거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시날 평지에 이르기 전에 무리와 헤어졌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창 10:30). 이동하던 무리들은 동쪽 지역으로부터 시날 평지로 접근하였다. 따라서 욕단이 동쪽 지역에 거하기로 결정한 사실은, 그가 서부로 향하는 주요 집단과 헤어져 동양으로 이주 경로를 변경하였음을 증거하여 준다.

 

 

  벨렉과 욕단의 헤어짐으로 두 종류의 히브리 가계가 형성되었다. 즉 서부 아시아에 거주하는 서부 히브리 민족과 동양에 거주하는 동부 히브리 민족이다. 창세기 10장 21절은 셈이 “에벨 온 자손의 조상” 즉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에베르’(������)에서 ‘히브리’(י������)가 유래되었다. ‘히브리(י������-이브리:Hebrew)’는 ‘에베르(������)’의 종족을 나타내는 말로서 “에벨”(Eber) 또는 “에벨의 계통을 잇는”(descended from Eber)을 뜻한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창 10:25).

 

  따라서 히브리 민족은 에벨로부터 나온 두 가계 곧 벨렉과 욕단 계통을 잇는 자손이다. 즉 아시아 서쪽으로 간 벨렉의 후손은 서부 히브리 민족이요, 동양으로 간 욕단의 후손은 동부 히브리 민족이다. 욕단의 후손도 히브리 민족에 속한다. 그리하여 아시아 대륙에는 두 히브리 민족이 존재한다.

 

두 히브리 민족으로 나뉘인 셈의 가계

Shem’s Family is divided into Two Hebrew Ethnic Races

 

 

* 셈은 다섯 아들을 낳았다 -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 룻, 아람. (창 10:22)

*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다. (창 10:21)

* 에벨(Eber)이라는 이름으로부터 히브리(Hebrew)라는 낱말이 파생했다.

* 에벨은 두 아들을 낳았다 - 벨렉과 욕단 (창 10:25)

* 벨렉은 유대인(the Jews)의 조상,

욕단은 한민족(the Korean people)의 조상이 되었다.

 

폴 왕(Paul Wong)이라는 지나 목사는 욕단이 지나(China)인의 조상이라고 설명하는데,

지나친 착각이며 자기 기만이다.

지나인은 셈의 후손이 아니라 함의 후손이다.

지나의 기원은 함의 가계, 그 중에서도 가나안의 아들 ‘신’이

지나 민족의 고대 선조이다(창 10:17하).

 

< 코리아(鳳)와 차이나(龍)의 기원과 미래 > 

 

 

  우리는 창세기 9장 28절에서 노아가 바벨탑 사건 이후까지 생존하였으며 다른 홍수 이후 족장들도 그러하였음을 알 수 있다(창 11장). 따라서 만일 그들이 그 당시 바벨론에 있었다면 바벨탑 건설에 참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는 바벨론에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은 자요(창 6:8), 의로운 사람이었기에(겔 14:14 ; 벧후 2:5) 분명히 바벨론의 사악한 행위와 니므롯의 왕국(창 10:8~10)에 반대하였을 것이다.

 

  니므롯은 함의 손자로서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옮기도록 인도한 사람이었으며, 그곳에서 바벨탑 건설을 선동했던 인물이다. 성경은 노아 셈, 아르박삿, 셀라, 에벨이 이 시기에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문맥주석적 방식으로 유추할만한 합리적인 결론은 그들이 욕단과 함께 아시아로 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배교가 극심할 때 참된 믿음을 지닌 소수의 무리를 항상 남겨 두셨다. 그들을 “남은 자”(The Remnant)라고 하는데, 욕단의 가계는 바로 그 시대의 “남은 자”였다. 셈족의 현저한 가지 욕단 족속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함족 니므롯에 의해 위협받는 셈계의 일신신앙을 보전(保全)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욕단과 그와 함께 한 다른 모든 홍수 후 족장들은 이란 고원이나 중앙아시아에 근접한 어떤 장소에서 서부 바벨론으로 이동하는 무리들을 떠날 순간을 선택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욕단 민족이 동양으로 정착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때에 인류는 대홍수 이후 첫 번째 이산의 역사를 경험했다. 니므롯을 따라 서부 바벨론으로 이동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욕단과 함께 동쪽 산을 찾아 ‘스발’을 향해 이동하는 소수의 '남은 자'들로 홍수 생존자들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욕단과 그의 가족은 동방으로 산지를 찾아 이동했는데, 메사(Mesha)는 지도상에서 아라랏산 동편의 카스피해 남동쪽, 이란 북동부에 있는 메사드(Meshhad)라는 곳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결론은 정황 증거가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서 객관적 설득력을 지닌다. 당시에 아라랏산에서 하산하여 동쪽으로 이동한 홍수 생존자들은 우선 이란 북동부, 카스피해 남동쪽에 위치한 ‘메사’ 지역까지 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카스피해 남동쪽, 이란 북동부에 있는 '메사'는 동방 산악지대인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의 길목이다.

메사 동북쪽으로 파미르고원이 있고, 파미르고원 동북쪽으로 천산산맥이 있고, 천산산맥 동북쪽에 알타이산맥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라랏산’(카스피해 서쪽)을 출발한 홍수생존자들은 처음에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카스피해 남안을 끼고 동진하던 중 이란 북동부의 ’메사‘까지 갔던 것이다. 셈의 현손 욕단 족속은 이 ‘메사’로부터 동쪽 산을 찾아 가고자 ‘스발’을 향해 대장정을 시작했다. 즉 욕단의 가계가 동방의 새 땅을 찾아 ‘출발’한 장소가 바로 ‘메사’이다. 나머지 홍수생존자들 역시 그 이란 북동부의 ‘메사’에서 욕단의 가계와 갈라져 서부 바벨론을 향해 ‘출발’했다. ‘메사’의 의미는 ‘출발’(departure)이다.

 

↑스트롱 원어사전: ‘메사’의 의미는 ‘출발’


시날<--- 서쪽 <--- 니므롯 <--- 메사 ---> 욕단 ---> 동쪽 --->스발

 

  우리 겨레의 노래 ‘알이랑’은 바로 그때에 욕단의 가계가 동방의 높은 산들과 고원을 넘어 가면서 불렀던 ‘찬송가’였다. 아리랑의 어원을 ‘알이랑’으로서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알이랑은 ‘하나님 중심 사상’이요 ‘신본주의 정신’이다. 즉 욕단은 홍수 후 함족의 배역자 니므롯에 의해서 셈족의 ‘하나님 신앙’이 강하게 흔들릴 때에도 결코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도전받는 유일신 신앙을 보전하고자 ‘알이랑 정신’ 즉 ‘하나님 중심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갖고서 새 땅(새벌=스발=스가발)을 찾아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아주 멀리 천동(遷動)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인 알이랑의 역사적 태동 배경이다. ☞→▶ < 아리랑의 비밀과 한국인의 정체성 >

 

아라랏산은 카스피해 서쪽에 있다. 메시는 카스피해 남동쪽, 이란 북동부에 위치해 있다.

홍수 생존자들은 카스피해 서쪽의 아라랏산을 떠나 카스피해 남동쪽의 메사까지 동방으로 이동했다.

 

 

욕단의 가계가 바벨탑 건설 이전에 미리 배역자들과 분리되어

알이랑(하나님과 함께) 동방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연대기 도표

(이미지 위를 누르면 크게 보입니다)



  스발

 

  욕단과 그의 가족은 동쪽의 산 혹은 산지를 찾아 ‘스발’을 향해 동쪽으로 遷動(천동)했다. 창세기 10장 30절을 히브리어 원문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

(And their dwelling was from Mesha,

as thou goest unto Sephar a mount of the east. KJV )

 

  ‘스발’을 히브리어에서 음역하면 ‘새팔’이다(우리말 성경의 히브리어 음역 표기는 고대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으로부터 왔다). 여기에서 ‘새팔로 가면서’(as thou goest unto Sephar)라는 말은 욕단 족속이 ‘새팔’을 향해 계속 동쪽으로 옮겨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팔’의 위치는 어디일까?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새팔’은 결코 당시에 존재하거나 알려진 도시와 장소의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홍수로 인해 지워졌기 때문이다. 욕단이 천동(遷動)하기까지 동양에는 아직 누구도 살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창세기 10장 30절에 언급된 ‘새팔’은 ‘예시적’인 지명이다. '예시'란 나중에 원형으로 구체화 될 어떤 진리나 현상이 '암시적'으로 미리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거시적 안목으로 ‘새팔’의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지명 및 위치를 동양에서 찾아야 한다.

 

  ‘새팔’은 '새발'

 

  ‘새팔’은 '새발'이다. ‘ㅍ’을 약하게 소리 내면 ‘ㅂ’이 된다. ‘ㅂ’을 거세게 발음하면 ‘ㅍ’이 된다. ‘ㅍ’과 ‘ㅂ’은 모두 ‘파열음’으로서 한 계통의 소리이다. 그러므로 자주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안팎’은 ‘안밖’이요, 동이족의 후예인 인디언은 ‘지붕’을 ‘지풍’‘, ‘아버지’를 ‘아파치’라고 부른다. 따라서 ‘새팔’ = ‘새발’로 간주할 수 있다. 70인역 성경도 ‘새팔’의 ‘팔’을 ‘발’로 음역했다(스발). ‘새팔’은 '새발'이요,  ‘새발’이 곧 '새팔'이다.

 

  욕단의 가계가 동방 산지에 이르기까지 스쳐 지나간 ‘새발’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일단 그곳은 아시아 동쪽 지역의 어느 곳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욕단은 메사를 출발하여 케뎀, 즉 동쪽 가장자리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들은 동방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따라서 동양의 산맥들을 벗어나서 나타나는 동쪽 땅을 새팔’(새발)로 지목해야 할 것이다. 과연 그곳은 어디일까? 시베리아이다. ‘새발’은 시베리아의 최초 지명이 이었다. ‘새발’은 ‘새벌’의 고어로서 ‘새 벌판’이라는 뜻이다. 이 ‘새발’이 시베리아(시비리)의 어원이다.

 

  동방의 산악지대 즉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가면 마침내 ‘새벌(새팔=새발)’이 나타난다. 바로 시베리아 벌판이다. 알타이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진다. 시베리아는 고조선의 창건 무대인 만주 대륙이 연장된 땅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의 고향이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멀리 천동한 욕단 족속은 남북만주 및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방의 새 땅을 '새발'이라고 하였다. ‘새발’은 ‘스가발’과 동의어로서 ‘새벌’(New Field)의 옛말이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바로 우리 한민족의 발상지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예시한 것이다.

 

  그리고 ‘새발’의 어원은 ‘새밝’인데 ‘새 밝은 곳’이라는 말이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인 그 땅이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나라(새光明國)이기 때문이다. ‘새발’의 ‘발’은 ‘밝’에서 가지 쳐 나온 말로서 원래는 ‘광명’의 뜻이었는데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새발’의 ‘발’은 곧 ‘벌’인 것이다. ‘밝’은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이 그의 명저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 강조했듯이 우리 배달겨레의 사상의 뿌리를 이루는 본원적인 말이었다. 그것은 신(神)이며 신성(神聖)한 것이다. 그것은 태양이며 광명이고 생명의 원천이다.

 

  ‘배달’이라는 말은 ‘밝달’에서 나왔다. ‘배달겨레’ 할 때의 ‘배’의 뿌리도 ‘밝’이다. 그리고 ‘달’은 ‘아사달’ 할 때의 그 ‘달’인데 ‘땅’이라는 뜻이다. 곧 양달이 양지요, 응달이 음지요, 빗달이 비스듬한 땅이다. ‘밝의 땅’은 그래서 ‘배달’이니 이 말에는 우리 배달겨레의 얼과 숨결이 서린다.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말인지 모른다. 이 ‘밝’에서 가지 쳐 나온 말 가운데 하나가 ‘발’인데, ‘발’은 ‘밝’ 즉 처음에는 ‘광명’의 뜻이었으나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뀐 것이다. 순수한 우리말로 된 옛 한국의 지명에는 ‘발’로 끝나는 땅이름이 상당히 많다.

 

  ‘새팔’(스발)은 ‘새발'인데 그것은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으로서 ‘광명의 본원지’를 이르는 말이다. 즉 시베리아로부터 남북만주에 이르는 아시아 동쪽 땅이 바로 ‘새발’인 것이다. 그러니까 욕단의 가계는 알이랑 고개를 넘어 빛이 시작되는 동방의 새 땅, 곧 서시베리아~동시베리아~남북만주에 이르는 ‘극동아시아’까지 아주 멀리 천동(遷動)한 것이다.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온 북방계 아시아인이다.

 

  ‘새벌’(새발:새팔)로 천동한 이유

 

  욕단 족속은 왜 그렇게 빛이 시작되는 땅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까지 아주 멀리 이동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욕단의 가계는 바벨탑 건설에 가담하지 않은 셈족의 진정한 장자였다. 그들은 ‘하나님 신앙’이 위협받던 그 암울한 시대에 ‘알이랑 정신’ 곧 ‘하나님중심 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끝까지 지켰던 단 하나의 천손민족이었다.

 

  이렇게 창조주 하나님을 공경했던 한국인의 조상 욕단의 가계는 타민족과 구별되는 천손민족다운 기질을 매우 많이 갖고 있었다. 그 현저한 민족성의 하나가 밝고 환한 것을 유난히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밝고 환한 천국에 빛 가운데 계시는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천손민족인 자기들의 삶의 터전으로 빛이 시작되는 땅, 곧 ‘새밝나라’인 ‘새벌’(새팔 = 새발)을 목적지로 삼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 밝고 환한 동방의 새 땅을 찾아가서 신시(神市), 즉 하느님의 나라(천국)를 건설하고자 했다. 욕단 족속이 알이랑 고개를 넘어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 곧 ‘새벌’까지 아주 멀리 천동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 < 밝달겨레-백의민족 >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하나님)을 공경하던 에벨의 혈통 욕단의 가계는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밝달)을 찾아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를(파미르고원→ 천산산맥→알타이산맥) 넘어 쉼 없이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알타이 고개를 넘어 동쪽으로 좀 더 가면 바이칼 호수가 나온다. 이 바이칼호는 우리 민족을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주도한 유목민족들을 낳고 길러온 태반이다.

 

 

  바이칼호수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대평원이 펼쳐지고, 호수 동남쪽에는 만주 벌판이 한반도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호수 북쪽은 북반구 북단이기 때문에 볕도 약하고 빛도 강하지 못하다. 그곳은 광명의 본원지가 아니다. 그래서 욕단 족속은 아침에 뜨는 해를 좇아서 호수 동남쪽으로 이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동녘 해 뜨는 밝은 땅에서 가장(한) 밝은 산인 한밝산(太白山=白頭山)에 집결하였다. 이 가장 밝고 밝은 한밝(太百)은 땅이요 터이니(基, 垈) 곧 밝달(배달)이다. 즉,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이다!

 

  욕단의 가계는 이 ‘밝의 땅’에서 ‘한밝산’을 발상지와 중심터로 삼아 한밝산과 그 변두리에 정착했다! 왜냐하면 그곳이 동방에서 가장 빛 밝고 볕 밝은 땅인데다가,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은 셈의 후손인 그들이 산정제사(山頂祭祀)를 드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태백산 천손강림(天孫降臨)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배달겨레의 성경상의 시조는 셈의 현손(玄孫) ‘욕단’(요크탄)이다!

 

  한밝산의 밝달 곧 배달은 빛밝(光明)고, 볕밝(暘明)아, 사람이 먹는 풀, 나무, 과일, 새, 짐승 등이 자연히 많아서, 아득한 옛적에는 그곳이 사람 살기에 가장 좋은 땅이며 터였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이 배달을 낙원으로서 하느님이 점지(占指)하신 땅이라고 믿었었다. 그리하여 조선이라는 국호는 원래 우리말 ‘주신’(쥬신)이었다. 하느님이 ‘주신’ 땅이라는 뜻의 ‘쥬신’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욕단은 바로 이 성스러운 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밝달(배달)나라를 세웠다. 이 한밝은(가장 밝은) 배달에 욕단이 세운 나라는 가장(한) 환(桓)한 나라인 까닭에, 이것을 그들은 하늘나라(天國 = 한나라), 신의 나라(神國 = 神市 = City of God)라 하였다. 그것이 대쥬신(조선)의 모태였다.

 

  이제 우리는 ‘새팔’의 위치를 확실히 찾았다. 예시적 지명인 ‘새팔’(새발)은 시베리아 최초의 지명인 ‘새발’(새벌)이요, '새발'은 '새밝' 곧 ‘새 밝은 곳’인데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밝달) ‘배달’인 것이다. 그 땅은 우리 배달겨레가 처음부터 터 잡고 살아온 땅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하나의 성민 욕단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존귀한 백성은 바로 알이랑민족 한국인이다!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인 ‘에벨’로부터 나온 두 가계, ‘벨렉의 후손’과 ‘욕단의 후손’은 셈에게 주신 복을 승계 받는 천손(天孫), 곧 거룩한 선민의 가계이다. ☞→▶ < 셈족의 현저한 두 가지 벨렉과 욕단의 후손 >

 

  셈에게 주신 복은 두 가지였다. 첫째, 하느님(하나님)은 셈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창 9:26). 둘째, 하느님(하나님)은 셈의 장막에 거하신다는 것(창 9:27), 즉 셈의 장막은 하나님의 거처가 되리라는 것이다. 이상 두 가지가 노아의 작은 아들 셈이 받은 특별한 복이다. ☞→▶ < 노아의 예언적 노래 >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욕단 족속은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지극히 공경하여 광명의 본원지인 새밝나라(새발=새팔=새벌)를 찾아 가려고 아침에 돋는 해를 따라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쉬지 않고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동녘에서 가장(한) 높고 밝은 산인 한밝산(태백산→백두산)에 올라 유일신 하느님께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천지(天池)가 솟아 오른 산정을 새 출발의 기점으로 삼은 백의민족이다!

 

  욕단의 후손이 처음 세대 이후에 더 이상 성경에 언급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손민족인 그들은 아주 먼 아시아 동쪽으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한 마리 양 같이 되었다.

 

▲ 백두산

 

▲ 아라랏산

 

  새벌과 시비리

 

  시베리아는 만주 벌판이 연장 된 땅으로서 만주와 같은 땅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는 곳이다. 그곳은 우리 배달겨레의 역사의 고향이다. 따라서 그곳을 부르던 우리의 땅 이름이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는데, 그것이 토박이말로 ‘시비리’이다. 이 ‘시비리’란 바로 ‘새발’(새벌)의 변음이다. 우리 한글의 홀소리 ㅏ(․)가 ㅏ~ㅓ~ㅗ~ㅜ~ㅡ~ㅣ로 구울러 감에 따라, '새'가 또 사~서~소~수~스~시로 구울러 감이 보통이다. 우리말 ‘새’가 그 같이 여러 가지 소리(음)로 나타난다. ‘시비리’의 ‘시’는 ‘새’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시비리’의 ‘비리’는 벌(발)의 의미를 갖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비리’는 부리(夫里), 벌(伐), 화(火), 평(坪), 불(佛), 불(不), 반(半), 비이(卑耳), 부여(夫餘), 원(原), 비(臂), 불이(不而), 부루(夫婁), 발해(渤海), 부여(夫如) 등으로 다양하게 바뀌어 쓰인 벌(벌판)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로서, 우리 겨레의 삶이 이루어진 곳에서는 널리 곳곳에서 쓰였었다. ‘비리’와 비슷한 말로 ‘누리’가 있는데, ‘비리’는 ‘벌’만 뜻하지만 ‘누리’(온누리)는 땅덩어리, 곧 산과 계곡, 강과 바다, 벌과 들 등 땅 위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시비리’는 시(새:新)+비리(벌:平野)의 조어구조를 갖는 ‘새벌’과 같은 뜻의 말이다. 즉 시베리아의 가장 오래 된 옛 이름이 한국어 ‘시비리’이다. 이 토박이말을 우리는 잊고 있으나 북한의 조선말 사전(사회과학 출판사, 1992년)은 ‘시베리아 → 명사 씨비리’로 분명히 풀이해 놓았다.

 

  ‘시비리’가 ‘시베리아’로 불려지게 된 것은 고구려가 망한 후 방치되던 ‘시비리’(새벌)를 16세기에 러시아가 불법강점(不法强占)을 하면서부터이다. 러시아족이 동침(東浸)한 이후 ‘시비리’는 그 신비한 모습을 세계사에 드러내게 되었는데, ‘시비리’를 강침한 러시아 사람들도 그 땅을 예부터 부르던 이름 그대로 ‘시비리’라고 불렀다. 그것을 영국인이 듣고 마치 고려를 ‘코리아’라고 부른 것처럼 ‘시베리아’라고 부른 것이 오늘날 ‘시베리아’로 세계에 알려진 것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400여 년 이전까지는 ‘시베리아’라는 말은 지구상에 없었다. 오직 한국어 ‘시비리’가 있었을 뿐이다. 시베리아는 한국어 ‘시비리’에서 유래한 영어식 지명일 뿐이다. 오늘날 ‘시베리아’는 러시아의 땅으로 되어 있지만 16세기에 러시아족이 우랄 산맥을 넘어서 동방을 침략해 오기 전까지는 그 땅은 러시아와 전혀 인연이 없는 땅이었다.

 

  욕단의 가계는 홍수 이후 동양으로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가장 먼저 이동한 족족이었으며,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처음으로 개척 지배했던 동양의 선주민이었다. 그런데 역사가들은 고대에 시베리아와 중원(中原) 및 극동 지역을 가장 먼저 차지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한국인의 선조인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말한다(임승국․ 주관중, 「다물의 역사와 미래」, 다물민족연구소, P. 63). 그러므로 욕단의 후손이 한국인인 것은 의문의 여지가 더욱 없다.

 

  그렇다! 한국인의 선조인 동이족은 고대에 알타이산맥과 바이칼 호수 주변의 ‘시베리아’에 넓게 퍼져 살면서 극동으로 이주해 왔다. 우리 배달민족의 뿌리는 욕단이며, 그 정신적 고향은 북방, 백두산과 바이칼호에 있다.

 

  동이의 영역은 대체로 지금의 만주를 중심으로 하여 서쪽으로는 몽고와 연계되어 있고 동쪽으로는 차이나의 만리장성 안 깊숙이까지, 북쪽으로는 ‘시베리아’로 뻗어 실로 광활한 지역에 걸쳐 있었다. 바로 그들이 ‘새발(새팔)’로 간 욕단 족속으로서 우리 한국인의 선조인 것이다.

 

▲ 알이랑민족의 선조인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가계는 고대에 알타이산맥과 바이칼 호수 주변의 시베리아에 넓게 퍼져 살면서 극동으로 이주해 왔다(창 10:21~30). 우리 한민족의 뿌리는 단군이며, 그 정신적 고향은 북방, 특히 백두산과 바이칼(밝알)호에 있다.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이동해 온 북방계 아시아족이다. 바이칼은 부루아리(현대어로는 밝알이다)인데 부루는 밝의 고어이다. 즉 부루에는 ㄱ 혹은 ㅋ 이 없지만 중세를 지나 종성이 만들어지면서 ‘밝’로 변화하듯이 부루는 부이르= 부여로 변하며, 이에 ㅋ 이 덧붙여져 고대 몽고족에서 부이크가 된다. < BR> 이것이 못, 물, 강, 알(하느님) 혹은 생명의 근원을 의미하는 아리와 결합하여 바이카리, 다시 바이칼로 전환한다. 바이칼의 뜻은 밝은 못 또는 밝은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차이나 내몽고서 발견된 ‘한국형 암각화’ 2008년 8월 26일 고려대 한국고대사 연구팀이 내몽고 적봉시 일대에서 발견한 ‘한국형 암각화’. 동심원, 마름모, 방패모양 등 기하학 무늬가 특징인 한국형 암각화는 1971년 울산 천전리를 시작으로 주로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됐으나 내몽고 지역에서도 발견되었다. 고대에 그 땅의 주인이 우리 조상들이었음을 입증해주는 고고학적 근거다.

 

▲ 경북 고령군 고령읍 소재 양전동 암각화

 

  에벨로부터 형제 벨렉과 함께 셈에게 내린 복을 상속받은 천손민족 욕단의 가계는 동쪽으로 긴 여행을 계속하여 동방 산악지대인 파미르고원을 넘고 천산산맥을 넘고 알타이산맥을 넘어 ‘새팔’(새발) 곧 시베리아와 만주 대륙에 이르는 광활한 극동의 새 땅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백두산을 본고장으로 하여 남북만주(南北滿洲)로부터 현재 중국의 산동성 전체, 하북성 발해 연안, 하남성 동남, 강서성 서북, 안휘성 중북, 호북성 동쪽 모퉁이와 요동반도 및 한반도 전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뻗어나가 살았던 것이다. 바로 그들이 우리 한민족의 조상인 배달 동이겨레이다!

 

  그러므로 알이랑민족 한국인은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성민이다. 고대로부터 아시아 동쪽 ‘새벌’(새팔)에 살고 있는 그들은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에벨의 혈통 욕단의 후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 겨레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중에 쓰시려고 동방의 땅 끝에 감추어 두신 제2의 성민이다.

 

  욕단의 가계는 동방의 산악지대, 즉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 ‘스발’(스바르=시비리=새파르=새바르=새발=새벌), 곧 오늘날의 시베리아~만주로 이동해 우리 한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한국인의 성경상의 기원은 셈의 현손(玄孫) 욕단(요크탄)이다.

 

* 아래는 한글 고어가 지원이 안 되어서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 pp.130~133에 수록된 원고를 캡처해서 올림 *

 

▲ 아라랏산

 

  아라랏과 시비리

 

  창세기의 기자 모세는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정박했다고 기록했다(창 8:4). 아라랏산은 카스피해 서쪽의 터키 북방에 있는 산이다. 그러나 모세는 터키 근방에도 가 본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방주가 아라랏산에 정박했다고 기록했을까? 전승이나 계시에 의거해 그렇게 기록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는 영감과 계시로 말미암아 욕단의 경유지인 극동의 ‘새발’(시베리아의 최초 지명으로서 ‘시비리‘의 어원)도 얼마든지 기록할 수 있었다고 간주해야 옳다. 이것은 결코 끼워 맞춘 자의적 해석이 아니다. 아주 타당한 이론이다. 터키 북쪽의 아라랏 처럼 모세는 극동의 ’새발‘도 능히 성경에 기록할 수 있었다.

 

  창세기 10장 2절에 보면 야벳의 아들들 가운데 ‘두발’과 ‘메섹’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서구 성경연구가들은 ‘메섹’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모스코)의 유래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우랄산맥 동쪽에 위치한 ‘토블스크’라는 지명은 ‘두발’로부터 기원했다고 말한다. 야벳의 아들 두발과 메섹이 그곳으로 가서 정착했기에 그들의 이름이 토블스크와 모스크바라는 지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나? 우선 야벳 족속은 북쪽과 북서쪽으로 이동했다. ☞→▶ <셈, 함, 야펫이 차지한 땅과 그들의 후손> 그런데 ‘메섹’은 ‘모스크바’와, ‘두발’은 ‘토블스크’와 발음이 유사하다. 이게 근거의 전부다. 하지만 누구도 끼워 맞춘 해석이라고 매도하지 않는다. 대부분 그대로 수긍한다. 정황상으로 얼마든지 그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욕단의 경유지 ‘새발’(새팔)이 극동의 ‘새발’(시베리아의 최초 지명으로서 ‘시비리’의 어원)이라는 해석도 설득력을 충분히 가진다. 왜? 성경은 욕단의 가계가 동양의 산맥을 넘어 ‘새발’(새팔)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창 10:30). ‘새벌’의 고어인 ‘새발’은 시베리아(시비리)의 처음 지명이었다. 욕단의 목적지 ‘새발’이 시베리아~만주라는 해석은 학문적 근거를 확보한 타당한 이론이다.

 

  만주 벌판이 연장된 땅인 시비리 -시베리아의 고유 지명으로 ‘새벌’이라는 뜻의 우리말- 는 우리 배달겨레의 역사의 고향이다. 역사학자들은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온 북방계 아시아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대 한국인의 일부는 베링해협을 건너 알래스카와 북미~남미 대륙으로 이동해 남북미 대륙의 원주민(인디언과 인디오)이 되었다. 당시 베링해협은 육로로 연결돼 있었다.

 

욕단 가계의 이동 경로

 

  히브리어 ‘새팔’(스발, Sephar)의 예언적인 뜻

   

  ‘스발’(새팔, Sephar)은 셈의 현손 욕단 족속의 최종 경유지였다. ‘메사’(Mesha)에서 출발하여 동방의 새 땅을 향해 대장정을 시작한 욕단의 가계는 동양의 크고 높은 산지들 곧 파미르고원, 천산산맥, 알타이산맥을 넘어서 마침내 ‘스발’(새팔), 곧 시베리아까지 도달하였다. 앞서 확인한 바처럼 시베리아의 처음 지명이 우리말 새발(새팔=새벌)이었다. 시베리아는 만주 벌판이 연장된 땅으로서 우리 배달민족의 역사의 고향이다. 우리 한민족의 고향은 북방, 특히 백두산과 바이칼(밝알)호에 있다. 역사학자들은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이동해 온 북방계 아시아인이라고 말한다.

 

  험산준령(險山峻嶺)을 넘고 장강대하(長江大河)를 건너는 대장정 끝에 아시아 동쪽의 스발(새팔)에 당도한 욕단 족속은 먼 동방으로 천동(遷動)한 자기들의 수가 과연 몇 명인지 인구조사를 했을 것이다. 도중에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동방으로 이동한 그들의 수가 몇 명인지 분명히 세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어 새팔(Se'phar; Heb. Sephar', ספִר)은 “수를 세다”(a numbering)는 뜻이다. (☞→▶https://biblehub.com/topical/s/sephar.htm) 이것은 동방의 땅 끝 스발(새팔)에 도달한 욕단의 가계가 자기들의 수를 세어보았을 것임을 암시한다. 바로 그들이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밝산(태백산=백두산)에 올라 유일신 하나님께 천제를 드리고 민족사를 시작한 알이랑민족 우리 한국인의 거룩한 조상인 것이다. ‘새팔’(Sephar)이라는 지명은 인구수가 많은 CHINA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셈의 현손 욕단이 한국인의 직계조상


  우리 겨레의 성경상의 조상은 셈의 玄孫(현손) 욕단이다. 창세기 10장 21절 이하에 보면 셈의 후손 중 대홍수 후 가장 먼저 동방(극동)의 산지를 찾아 ‘스발’(스바르~시비리=새벌=시베리아~만주)로 遷動(천동)한 욕단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바로 그가 우리 한민족의 뿌리요 우리 겨레의 직계 조상이다.

 

  예수원 설립자이신 대천덕(R. A. Torrey, 사진) 신부(성공회)는 욕단을 단군으로 추정할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그 근거를 제시한다:

 

   “…창세기 10:25에 ‘에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에게는 ‘벨렉’과 ‘욕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벨렉’이란 ‘나뉘어진다’는 뜻으로 그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 ‘욕단’은…알모닷, 셀렙 등 여러 사람들의 조상이 되고,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으로 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동방의 산지대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셈의 족속들이기 때문에 동방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욕단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욕단이 혹 단군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계산은 할 수 없지만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비슷한 연대입니다.”(대천덕,「우리와 하나님」, 도서출판 예수원, 1988, 163쪽)

 

  대천덕 신부는 우리 민족은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후손이며 단군은 욕단일 수 있다고 자주 가르치셨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인들은 에벨의 첫째 아들 벨렉의 후손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의 사촌(친족)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아래는 그 전문.


  “셈의 자손 중에 에벨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0장 25절은 그 아들을 벨렉과 욕단으로 소개하여 벨렉이 태어날 때 땅이 갈라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바벨탑 사건 때의 분열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욕단과 그 후손은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으로 이주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동편 산들은 한국의 산들이고 태백산의 제단을 세워둔 단군은 욕단일 수 있습니다. 특히 단군의 기원은 욕단의 이주한 시기와 같습니다. 히브리말로 ‘욕단’은 ‘작다’라는 뜻입니다. 그의 이름은 벨렉의 어린 동생이었기 때문일 듯합니다. 벨렉의 후손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그 후손이며, 성경의 나머지 부분은 그 후손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물인 예수님을 다루고 있습니다. 욕단의 후손인 한국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의 사촌인 것입니다.”(신앙계, 1999년 9월호 p.115)


  그렇다! 한국인과 유대인은 한 조상 에벨로부터 분리된 형제 족속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이 이스라엘인들의 사촌(친족)인 것은 지당한 사실이다. 대천덕 신부님의 혜안이 놀랍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과 유대인은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한국인과 유대인 두 민족은 한 아비 에벨로부터 분리된 형제 족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닮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 ☞→▶ <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이 쌍둥이처럼 닮은 것들 >



  한 지금 이스라엘의 히브리대학의 랍비들은 한국인이 욕단의 후손이라는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이광섭 목사(예수세계교회 담임)는 성지순례 차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한 유대인 랍비를 만나 한국인이 욕단의 후손이냐고 질문을 했는데, 그 랍비는 "그렇다. 한국인은 욕단의 후손이다"고 답변했다고 그가 확인한 사실을 필자에게 통보해준 적이 있다.

 

  한국인이 욕단의 후손이라고 확언하는 유대인은 랍비들만이 아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이른바 ‘메시아닉 쥬’의 지도자인 유대인 목사도 있다. “시온의 장막(Tabernacle of Zion)” 대표로서 선지자 사무엘의 거처였고 기브온 산당이 있던 사무엘 산에서 1993년부터 중보기도사역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메시아닉 쥬 목사(사진)도 한국인이 욕단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탐 헤스 등 이스라엘 내 복음주의 사역자들의 영적인 멘토 역할을 하고 있고, 아셀 인트레이터, 댄 저스터 등 메시아닉 유대인 사역자들과 서로 중보기도로 연합하고 있으며, 유대교 랍비들에게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유대인 목사이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사역중인 필자의 지인인 전희원 선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은 욕단의 후손입니다!” 

 

  그렇다.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공경하던 욕단 족속은 대홍수 후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가려고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멀리 동방의 ‘스발’(시베리아~만주)로 천동(遷動)했다. 그리고 ‘HAR HA KEDEM’ 즉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밝산(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본거지로 삼아 밝달나라를 세우고 우리 배달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이제 한국인은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하여 동방의 등불이 되어야 한다. 정체성을 알면 부르심을 성취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한국인은 하나님이 나중에 쓰시려고 동방의 땅끝에 은닉해 두신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후손으로서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제2의 성민이다. 그렇기에 우리 겨레는 민족사를 ‘알이랑’ 즉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거룩한 백성 ‘알이랑민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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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한국인의 조상은 성경상 누구입니까?
답변: 윤사무엘목사(정리)

창세기 10장에 노아의 세째 아들 셈의 후예가 소개되어 있다. 셈의 4대손 에벨이 낳은 장자 벨렉은 오늘날 유대인의 조상이며, 차자 욕단은 한국인의 조상(알이란 민족)이 된다.

창 10: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26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웹과 예라와 27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28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29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30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
31 이들은 셈의 자손이라 그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선택받은 백성은 벨렉 계열과 욕단 계열 두 백성이 존재한다. 이 특별한 종족들은 셈족의 현저한 두 갈래 가지(branch)이다. 벨렉의 후손에서는 그의 6대손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름을 받음으로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탄생했다(창 11:10~32). 그렇다면 욕단의 후손은 어디로 갔을까? 성경은 그들이 동방의 산악 지대를 넘어 아시아로 갔다고 말한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창 10:30)

여기에서 ‘산’이란 히브리어로 ‘하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산맥’, 혹은 ‘일정한 지역의 산들’ 곧 ‘산지’를 가리킨다. 동양에는 큰 산들이 많이 있다. 즉 욕단은 동쪽 산악 지대를 넘어서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 아시아로 천동했던 것이다.

욕단의 가계는 에벨의 혈통으로서 셈족 중에서도 특별선택을 받은 셈족의 종가(宗家)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백성이었고, ‘알이랑 정신’, 곧 ‘하느님 중심 사상 ․ 신본주의 정신’이 가장 확고한 족속이었다. 따라서 욕단 족속은 셈족의 정통성을 승계한 백성답게 ‘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 즉 ‘알이랑(With God) 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찬송하면서 ‘스발’을 향해 동방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스발’의 위치는 어디일까? ‘스발’을 히브리어에서 음역하면 ‘새팔’이다(우리말 성경 개역판의 히브리어 음역 표기는 고대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으로부터 왔다).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새팔’은 결코 당시에 존재하거나 알려진 도시와 장소의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홍수로 인해 지워졌기 때문이다. 욕단이 천동하기까지 동양에는 아직 누구도 살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창세기 10장 30절에 언급된 ‘새팔’은 현실적인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예시적’인 지명이다. ‘예시’란 나중에 원형으로 구체화 될 어떤 진리가 미리 ‘암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새팔’의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지명 및 위치를 찾아야 한다.

예시적 지명 ‘새팔’은 어디일까? 일단 그곳은 아시아 동쪽의 어느 곳에선가에서 추적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욕단은 동방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과연 어디를 뜻할까? ‘시베리아’이다. 알타이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진다. 시베리아는 고조선의 창건 무대인 만주 대륙이 연장된 땅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의 고향이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멀리 천동한 욕단 족속은 남북만주 및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방의 새 땅을 ‘새발’이라고 하였다. ‘새발’은 ‘새벌’의 고어로서, ‘새 땅’ ‘새 벌판’이라는 뜻이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바로 우리 한민족의 발상지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예시한 것이다. ‘새팔’과 ‘새발’은 발음이 아주 유사하다. ‘ㅍ’을 약하게 소리 내면 ‘ㅂ’이 된다. ‘ㅍ’과 ‘ㅂ’은 모두 ‘파열음’으로서 한 계통의 소리이다. 따라서 자주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안팎’은 ‘안밖’이요, 동이족의 후예인 인디언은 ‘아버지’를 ‘아파치’라고 부른다. 따라서 ‘새팔’ = ‘새발’로 간주할 수 있다.[시베리아라는 지명은 한국어 새바르/시비리에서 유래했다. [유석근,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민족' 116쪽]

그러니까 우리 알이랑민족 한국인의 성경상의 직계 조상은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다. 따라서 동방의 한국인은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는 또하나의 선민인 것이다. 셈 계열 내에서 에벨의 혈통인 욕단의 후손은 선택받은 백성이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느님께서 나중에 쓰시려고 “감추어 두신 선민”이 바로 알이랑민족 우리 한국인이다(그러나 당신이 누구든 꽉 막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면, 상실되었던 계시가 드러나고 회복되더라도 결코 그것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겨레가 하느님이 감추어 두신 ‘또 하나의 선민’이라는 교훈은 새로운 선민주의(particularism)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록된 계시인 성경에 근거한 객관적 사실이다. 아시아 서쪽 땅 끝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셈족의 현저한 ‘좌측 가지’인 벨렉의 후손이다(창 10:21,25; 11:10~32). 그리하여 그들은 천손민족이다. 아시아 동쪽 땅 끝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셈족의 현저한 ‘우측 가지’인 욕단의 후손이다(창 10:21,25,30). 그리하여 그들도 천손민족, 곧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인 것이다.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겉사람’과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이 있는 것과 같이 선민, 곧 천손민족도 겉으로 드러난 선민(벨렉 계열 유대인)이 있고 속으로 감추인 선민(욕단 계열 한국인)이 있다. 창세기 10장 21절에 의하면 벨렉 계열과 욕단 계열은 셈족의 현저한 두 가지(branch)로서 신적 선택을 받은 족속인 ‘에벨의 혈통’이다. 이것은 상실되었던 진리로 마지막 때에 회복되어야 할 아주 중요한 계시이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평화를 사랑하고, 인정이 많으며, 예의와 도덕을 지키고, 진리를 추구하는 민족이다. 최근 조사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의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지능지수가 높은 것으로 밝혀져 한국인은 지성적인 측면에서도 다른 민족에게 뒤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그래서 불과 반세기만에 전쟁의 잿더미를 벗어나 경제 기적을 이루어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려 하고 있다.
한국인의 다른 특이한 점은 유대인의 습성과 풍습이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것이다.

한국여성과 유대인 모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외출시 얼굴을 가린다.양 민족 모두 돌제단을 쌓아서 제사를 지내고, 부모를 "에미","에비"라고 부른다.또한 장례식에서 베옷을 입고 곡을 하며,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을 한다. 유대인이 유월절에 문설주에 양의 피를 뿌리듯이 한국인은 이와 비슷하게 붉은 팥죽을 뿌린다.
한국인은 유대인과 같이 근면하고, 흰옷을 즐겨 입으며, 종교성이 강하고, 장사 수완이 좋다.그래서 예전에 유대인이 미국 흑인 지역에서 하던 사업인 수퍼마켓과 세탁소, 의류사업, 가발 등을 그대로 하고 있다.이를 놓고 볼 때 한국인이 유대인과 비슷한 핏줄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인은 홍수 심판 이후 살아 남은 노아의 자손이다.노아에게는 셈, 야벳, 함의 세 아들이 있었는데, 한국인은 셈의 장자와 차남인 엘람과 앗수르의 후손이고,유대인은 셈의 셋째 아들인 아르박삿의 자손 중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손인 야곱의 후손이니다.
엘람과 앗수르의 자손은 지금의 터키 지역인 아라랏산 부근에 살다가 바벨탑 사건 이후 동방으로 이주한 것이다.그래서 고조선에서는 신정국가로 하늘에 있는 유일신에게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하나님을 믿는 국가였다.그런데 한국의 고대사를 기록한 삼국유사나 삼국사기가 불교나 유교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왜곡해 진실을 가려 버렸기때문에 많은 사람이 진실을 알지 못하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야 41:2 "누가 동방에서 의인을 일으켜서 그를 자기 발 앞에 불렀으며, 민족들을 그 앞에 주어서 왕들을 다스리게하였느냐? 그가 그들을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날아가는 그루터기 같게 하였도다."
이사야 46:11 "내가 동쪽에서 굶주린 새를 부르고, 먼 나라로부터 나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를 것이라.정녕 내가 그것을 말하였으니 그것을 또한 이루어지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의도하였으니 내가 또한 그것을 행하리라."
이사야 55:4 "보라, 너는 네가 알지 못하는 한 민족을 부를 것이요, 너를 알지 못하던 민족들이 네게 달려올 것이니주 너의 하나님 때문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을 위해서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로마서 10:19~20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말하기를 “내가 백성이 아닌 그들로 인하여 너희로 질투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인하여 너희로 진노하게 하리라.” 하였으며, 이사야는 매우담대히 말하기를 “내가 나를 찾지 않은 자들에게 발견되었으며 나에게 묻지 않은 자들에게 나타났느니라.” 하였고
계시록 7:2 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동쪽에서 올라오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장을 가지고 있더라. 그가 땅과바다를 손상시킬 권세를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음성으로 소리질러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그들의이마에 인장으로 표시할 때까지 땅이나 바다나 또는 나무들을 손상시키지 말라."고 하더라.

1. 지능지수 높은 동아시아인
‘미국에 사는 백인들의 평균 지능지수(IQ)는 백(100)이고 동아시아인들의 평균치는 이보다 적게는 2∼3점, 많게는 10점이나 높다.’ 과연 그럴까. 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리학자인 리처드 헤른슈타인 하버드대 교수가 명저 ‘종(鐘)모양의 곡선’에서 밝힌 말이다.
세계 13세 어린이 수학 및 과학경시대회에서 한국 어린이들은 보통 5등 안에 든다. 미국의 50개 주는 매년 최우수 고교졸업생 2명씩을 뽑는데 거의 매년 한국 학생이 여러 명 포함된다. 미국에는 1만개가 넘는 고등학교가 있는데 한국학생들이 수없이 수석졸업을 한다. 하버드대가 이들을 다 뽑는다면 주요학과는 이들로 가득 찰 것이라고 한다. 인종 쿼터 같은 것이 있어서 입학생 수가 제한되긴 하지만.
문명의 충돌이라는 설(說)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는 근저 ‘문화가 중요하다’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1960년대 한국은 아프리카의 가나와 비슷했는데 지금 1인당 소득 면에서 20배 이상 앞서게 된 것은 교육열 근면성 기강등에서 그만큼 앞서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민총생산(GNP)은 60년대 불과 몇 조원에서 지난해에는 515조원으로 늘었다. 최근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이 방콕에서 공동 개최한‘아시아경제의 장래’에 대한 회의에서 마이클 페어뱅크는 과거 30년간한국인의 생산성향상은 세계 제일이라고 했다.
한국의 제2차 5개년계획(1967∼1971)의 경제고문이었던 어마 아델만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한국인은 보면 볼수록 유대인과 비슷하다고 했다. 유대인인 그녀는 한국을 수없이 방문한 바 있다. 같이 유대인과 한국인을 비교하는 글을 써보자고도 했다. 헤른슈타인 교수에 따르면 유대인의 평균 지능지수도 백인보다 높다.
서울대의 어느 교수는 삼국지(三國志)책을 250여 종류나 갖고 있다. 전세계의 ‘삼국지’를 거의 다 사 모은 것이다. 서재 하나는 이 책으로 꽉차 있다. 이 책이 읽히고 있는 나라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네 나라이다. 젓가락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도 바로 이 네 나라이다.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는 이 네 나라를 ‘동아시아 국가들’이라고 한다.그러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역사 전통 문화에서 서양을 앞선다고 했다. 말하자면 뼈대가 튼튼한 나라라는 것이다. 서양이 현재 소득수준 기술면에서 다소 앞섰다고 하여 결코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안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과 군사대국으로서 탄탄대로를 달리면서 세계 어느 나라와 언제든지그리고 어떤 규모의 전쟁을 하더라도 이기게 돼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가히 ‘캠핑’하는 기분으로 동아시아국가의 하나인 베트남에 전쟁을 걸었다. 결과적으로는 패배하고 물러났다. 일본은 유럽선진국보다 산업화를 100여년 늦게 시작했지만 70년대 초에 이들을 모두 추월했다.
토인비는 이런 예가 동아시아국가들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세계 역사는 동서양간의 다툼의 역사이며최근의 그 축소판이 미일간의 경제전쟁인데 이를 모르면 세계 경제나 역사의 흐름을 잘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우리로 볼 때는 미국경제나 일본경제의 흐름 그리고 그 관계의 변화를 모르면 살아가기가 어렵게 돼 있다. 많은 기업들은매일매일 미국돈 값, 일본돈 값 그리고 그 환율의 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서양이 동아시아를 앞서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고 그 이유는 주식회사라는 제도와 주식회사가 마음놓고 자랄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시스템의 두 가지다. 한 중 일 등 동아시아국가들도이 두 가지를 잘 활용하게 되자 모두 경제기적을 창조할 정도로 이를 발명한 나라들보다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주식회사와 자본주의라는시스템은 비록 서양이 발명한 것이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국가들이 이를 서양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인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엄청난 저력을 가진 한국인들이 수없이 많다. 수많은 한국인들은 개인적으로는 헤른슈타인 교수가 밝힌대로 백인들을 능가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한국인은 국가의 지도자를 잘 만나고 나라 차원에서 장기 비전, 시스템 그리고 전략을 잘 짠다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것이라고 한다.
[송병락교수 이야기경제학-7]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동아일보 2001년 07월 08일)

2. 노아의 자손들
세상에 악이 관영하자 하나님은 B.C. 2458년에 물로 온 지구를 심판하셨고, 당시 의인이었던 노아의 8명의 가족은방주를 만들고 탐으로써 대홍수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40일동안 주야로 비가 내려 164일동안 온 땅이 물에 잠겼고, 물이 빠진 후 방주는 아라랏산 정상에 다다랐다.지금도 알프스나 히말라야 등의 고산지대에는 조개나 물고기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노아는 아라랏산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고, 하나님은 노아 가족이 다산하고 번성하도록 축복하셨다.노아의 아들 셈은 다섯 아들을 낳았고, 함은 네 아들을 낳았으며, 야벳은 일곱 아들을 낳았다.셈의 자손들은 산 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주로 아라랏 산 중턱에 살았다.함의 자손은 메소포타미아의 평원에 정착했고, 야벳의 자손은 주로 섬과 바닷가에 자리 잡았다.

셈의 자손들 중 일부는 산에서 내려와 우르 지방으로 내려왔는데 인류 최초로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족이라 불린다.우리말에서 남자를 뜻하는 '사내' 또는 '사나이'는 '산(아라랏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수메르 사람은 인류 최초로 기호로 발음과 뜻을 나타내는 '쐐기문자'를 만들었다.'수메르'라는 말이 '셈'에서 나온 것으로 학자들 사이에 인정되고 있고, 수메르어는 아담 때부터 있었던 언어로 추정된다.
수메르어와 우리나라 말 사이에는 유사점도 많은데 우리말의 '길'이 수메르어로 'gir'이고, 우리말과 같이 님(nim)이란존칭을 붙이며, 하늘을 'an-ur'이라고 하고, 아버지를 'abba', 자신의 아버지를 'abi'라고 부른다.한국어와 수메르어는 모두 교착어로 주격, 소유격, 목적격을 나타내는 조사가 있고, 문장 구조도 한국어와 같은주어-목적어-동사 순이다.
노아로부터 저주 받은 함의 장자인 '구스'의 가문에서 태어난 '니므롯'은 영웅적 사냥꾼으로 바벨탑 문명을 건설한인물이다. 함의 둘째 아들 미스라임은 이집트 지역으로 가서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수 많은 우상신을 섬기는 신비주의 종교를 만들었다.

함의 넷째 아들인 가나안은 장사꾼 기질이 있어서 그의 후손은 시돈과 두로 지역에 페니키아를 건설하고 무역을번성시켰으며, 수 많은 우상 신을 만들어 내었다.이로써 함의 자손들은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사탄의 삼위일체라고 할 수 있는 바빌론, 이집트, 페니키아 문명을 건설한다.이 곳에서는 각각 '인본주의 문명', '신비주의 종교', '물질 만능주의'가 태동되어 이스라엘과 인류를 타락시켰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장사에 도움이 되는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를 보급하기 위해 아스다롯이란 여신을 만들어 내었다. 페니키아 신전에서는 여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여사제들이 쾌락을 선사하기 위해 돈을 받고 매춘을 했다. 이 가나안의 여신이 수메르 지역에 있는 셈의 자손들에게도 스며들어 '이난나'(Inanna) 여신이 되었다.수메르 사람들은 이와 같이 주변국의 영향을 받아 점차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신을 섬기며 타락하기 시작했다.

3. 한민족의 원래 종교
우리 민족은 고조선 시대부터 유일신인 하늘님(하나님)을 믿던 경건한 민족이었다.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을 천군(天君)이라고 하는데 천군이 신격화되어 단군이 되었다.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는 고려 말에 승려인 일연 김견명이 저술한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고려시대의 장군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자료의 수집과 편찬 의도가 불교의 전파에 있었다. 불교의 윤회설을 입증하기 위해 인간의 조상이 짐승(곰)이었다는 근거 없는 설화를 끼워 넣었고, 역사를 왜곡했다. 삼국유사의 고조선 편에서는 환웅(하나님의 아들)이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굴 속에서 견디라고 했고,곰이 21일동안 견뎌 여자가 되었으며, 여자는 사람으로 변한 환웅과 혼인해 단군 왕검이란 아들을 낳았다.
삼국사기는 고려 17대 왕인 인종 때에 김부식이 삼국시대에 대해 저술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다.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신라중심으로 중화사상에 젖어 쓴 역사서로 내용이 딱딱하고 중국과 신라의 역사적 사실이 과장된 부분이 많다. 삼국사기는 불교와 유교적 관점에서 저술해 고조선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단군에 대해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러나 김부식과 일연이 우리 민족의 참된 역사를 왜곡하였다고 해도 중국에 있는 우리민족에 관한 역사까지변질시킬 수는 없었다. 중국의 고대사는 분명히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숭상한 경건한 민족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후한서에서 예전은: "시월이 되면 반드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말씀을 읽으며 밤에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이를 무천(無天)이라 합니다."
삼국지에서 고구려는: "시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성회가 있는데 이를 동맹이라 했다."
삼국지에서 진한은: "성마다 한 사람을 세워 천신께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이를 천군이라고 했고, 그 제잔을수두라고 한다."
중국의 고대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규원사화'에도 단군이 신단수(神檀樹) 아래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이자 임금임을 밝히고 있다.1675년(숙종 2년)에 북애자(北崖子)가 저술한 '규원사화'는 일본의 우리 역사 말살 때에 많은 책이 몰수, 폐기되는 와중에 무애(無涯) 양주동(梁柱東) 선생이 감추어 두었던 것을 남창(南倉) 손진태(孫晋泰) 선생이 극비리에 필사(筆寫)하여 빛을 본 책이다.
일제가 고조선의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했지만 '규원사화'를 비롯한 많은 고서古書와 중국의 역사책에서 밝혀진 바로는엄연히 단군조선이 있었고, ‘단군檀君’이란 말은 ‘박달(壇) 나라의 임금(君)’이란 뜻이었던 것이다. 단군조선은 47대 1,195년간 존속했고, 공자를 비롯한 많은 중국의 성현들도 우리나라(동이 東夷)를 흠모했다는 기록이있고, 동방삭東方朔(한 무제 때의 사람)은 당시의 우리 민족을 가리켜 ‘태연하게 앉아 서로 범하지 않고, 헐뜯지 않고, 사람에게 근심이 있으면 서로 구해 주어 선인(善人)이라고 했다’고 기록한 바가 있다.
고조선 시대에는 한문이 없었는데 어떻게 단군이란 이름이 생겨났는지는 규원사화에 잘 나와 있다.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박달임검지역야(朴達壬儉之譯也)'라 해서, '단군이란 박달나라 임금을 번역한 것'으로 되어있다. 박달이라는 말은 옛부터 백달이나 배달로도 불렀고, 나라의 우두머리는 임검이라 했다.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신씨이강어단목지하 이환검신인(神氏已降於檀木之下 而桓儉神人 )'이라 해서 그 뜻을 살펴보면, '신씨천황께서 이미 박달나무 밑에 하강했고, 환검신인이 다시 단목 아래에서 임금의 자리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단(檀)으로써 나라이름을 삼은 것이며, 단군이란 단국의 임검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단군을 환검이라고 했는데, 이 환검이 왕검이나 임검으로 변한 것입니다. 내용 중에 환검신인, 즉 단군이 박달나무 밑에서 인민들로부터 추대되어 임검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자연히 박달이라는것이 나라 이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단군이라는 것은 박달나라의 임검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박달나라의 임검이란 뜻인 이 '박달 임검'은 계속 불려져 내려 왔습니다. 그러다가 약 2천년 후인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에 불교가 들어올 때를 전후해서 한문이 들어왔습니다. 그 때 사가들이 역사를 한문으로 서술하다 보니까, '박달 임검'을 박달단(檀)자 임금군(君)자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그 때부터 단군으로 부르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한문이 들어오기 전에는 단군이라는 용어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병도씨의 '단군이란 건 터무니없는 소리다'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어떤 이는 단군을 탱구리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바로 박달나라의 임검이란 뜻을 번역하다 보니까 단군으로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문헌이 있습니다. 중국의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보면, 세칭 낙랑단궁(樂浪檀弓)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낙랑단궁이라고 한 것은 활이 생산되는 지명이 박달이기 때문에 단궁(檀弓)으로 불렀고, 또 나라이름이 박달나무와 같기 때문에 이와 같이 유전되어 왔던 것입니다.
단군, 단군임검 또는 단군왕검은 고유명사가 아니고 박달나라의 임검이라는 뜻을 가진 보통명사입니다. 시조 단군 한 사람의 이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단군은 한 사람일 수 없고, 그 자리를 이어받은 후손들도 모두 '박달나라 임검'이라는 뜻으로 계속 단군이라고불리어 왔습니다. 제왕연대력이나 조선사례기 혹은 해동춘추 같은 책을 보면, 처음 국호가 단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규원사화의 신뢰성을 입증하는 '중국 고대기본 사적'과 합치되는 부분이 열군데 이상 됩니다.
규원사화에 보면, 제3세 임검 가륵임검 때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때마침 하왕이 덕을 잃어 신하들 중에서 몇몇이 배반하여 군사를 일으키고, 임금의 자리를 빼앗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식달에게 남국과 진번의 백성을 이끌고 이들을 치게 하니, 나라의 위엄은 크게 빛나게 되었다(時夏王失德 其臣有謀逆者 乃使息達 率藍眞蕃之民 以征之於是國威益彰).' 여기서 식달은 사람으로 요즘 말하면 국무총리 벼슬에 있던 사람입니다. 또 단군조선은 나라를 아홉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진번과 남국은 그 아홉나라 중 두 나라에 해당되는 나라입니다. 위 대목에 보면 그 당시 중국임금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위 내용과 부합되는 중국측 사서가 있습니다. 후한서 동이열전에 보면, '하나라 임검 태강이 덕을 잃어 이인(夷人:동이인, 즉 조선사람)이 비로소 배반하기 시작했다.(夏后氏 太康失德夷人始畔)'라는 내용이 있고, 그 주(註)에 '태강 예에게 쫓겨 났다'고 되어있습니다. 하왕 태강이 그 신하 예에게 추방당한 연대가 표준세계년표에 의하면 '태강 19년 신해(辛亥,서기전 2170년)'이므로, 이연대를 우리 가륵(嘉勒) 임검의 즉위년대수를 기준으로 하여 우리측 기년(紀年)으로 환산하여 보면 가륵임검 37년 신해(단기 164년)에 해당하므로 위 사실은 대략 이 무렵에 일어난 것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두 내용이 부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더 들면 환단고기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15세 벌음(伐音)단군 때의 기사를 보면, '때마침 하왕이 사신을 보내와 도와줄 것을 요청하여 말량에게 군사를 거느리고나아가게 하여 구해 주었다. 그 후 또다시 하왕이 군사를 요청하였으나 임금이 그 무도함을 물리치고 허락하지 않았다.(時夏王遣使請援 乃末良興兵進救 後夏王復請兵 儉以其無道却而不許)'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중국측 사서 여러 군데를 찾아본 즉, 서기전 77년에서 서기전 6년에 살았던 유향(劉向)이라는분이 쓴 설원(說苑) 제13권 권모편(權謀篇)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위 벌음(伐音)과 같은 시기에 재위하였던 하왕 계(癸) 52년 갑오(甲午,서기전 1767년)에 '탕이 하왕 걸을 토벌하려고 하므로, 걸왕이 노하여 조선의 군사[九夷之師]를 일으켜서(조선 군사의 힘을 빌어서) 탕을 토벌하니, 탕이 이에 걸왕에게사죄하였다(湯慾伐桀 桀怒起九夷之師 以伐之 湯乃謝罪)'라고 되어있고, 그 다음해인 53년 을미(乙未,서기전 1766년)에는'탕이 걸왕에게 조공을 하지 아니하므로 걸이 다시 조선의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였으나, 구이가 군사를 일으켜 주지 아니하므로 마침내 탕이 군사를 일으켜서 걸왕을 토벌하여 남소(南巢)로 추방하였다(湯不貢 桀起九夷之師 九夷不起 湯乃興師伐之遷桀南巢)'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 기사는 바로 앞서 말한 규원사화의 벌음임검의 기사내용을 뒷바침해주는 것입니다. 위 사실을 우리측 기년(紀年)으로환산하여 보면, 벌음임검 5년 갑오(甲午,단기 567년)와 6년 을미(乙未,단기 568년)의 2년에 걸쳐서 일어난 사실임이 뚜렷하다고 하겠습니다.
규원사화의 내용 중에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저 하늘에 제사를 지내어 근본에 보답하는 의식은 단군으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후세의 역대 모든 나라들이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않음이 없었으니..."
"단군이 이미 하늘에 제사 지내고, 교를 세워 백성을 다스리고, 도를 이뤄 행하게 한지 몇해 동안의 백성들이 모두감화되어 악은 없어지고 천하는 잘 다스려지게 되었다."
이는 창세기에서 노아가 홍수 심판 후에 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과 같습니다.
창세기 8/20 노아가 주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가운데서 취하여 제단에 번제를 드리더라.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에게 교시하는 내용은 성경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 되는 신으로서 가장 높은 곳의 하나 되는 자리에 있도다. 하늘과 땅을 시작하게 하고 모든 세계를주재하며, 한 없는 사물을 만드시니, 가없이 넓고도 넓음에 감싸지 아니한 사물이 없으며, 신령스럽게 밝고도 밝음에가녀린 티끌마져도 새지 아니한다. 하늘 본보기는 오직 하나요, 그 문은 둘이 아니니, 너는 오로지 정성을 순수하게 하고너의 마음을 하나되게 한다면 이에 하늘로 향하리라. 너희 무리들아! 오직 하늘 본보기를 본받아 모든 선함을 돕고,모든 악함을 소멸시키며, 본 바탕이 통하여 맡을 일을 온전케 하면 이에 하늘로 향하느니라."
중국 고대사와 규원사화를 통해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하나님을 믿는 민족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그런데도 사람들은 외국에서 들어온 불교나 유교를 전통종교로 생각하고, 기독교를 서양종교로 인식하는 오해를하고 있습니다.우리민족은 외래 종교인 불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귀신이나 우상을 섬기지 않은 유일신을 믿는 민족이었습니다.
4. 한민족의 기원
인본주의적 사학자들은 인류가 한 곳으로부터 전파되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다는 병행발생설을 주장합니다.그러나 여러 고고학적 증거를 놓고 볼 때 인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생해 전 세계로 흩어졌음이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라. 주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세기 11:9)
성경은 B.C. 2357년경에 노아의 자손들이 하나님을 대적해 바벨탑을 쌓자 하나님이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로 알아 들을 수 없게 한 뒤 온 세상에 흩으셨다고 명시합니다.국내 사학자들이 터키 아라랏산 지역으로부터 중앙 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만주에 이르는 여정을 탐사한 결과민족 이동과 관련된 여러 증거들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그 지역에는 셈족의 특징인 환저형 토기와 생활용기가 발견되었고, 우리 말과 같은 SOV형 교착어를 사용하며,아라랏 산에만 있는 흑요석 공구를 사용하고, 대홍수와 까마귀에 대한 설화를 가지고 있습니다.조사단의 일원이었던 중국의 이벤허 박사가 조사결과를 중국 북경 대학에 논문으로 제출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으므로북경대학도 한 민족의 민족 이동설을 인정한 것입니다.
아담의 탄생은 B.C. 4114년이고, 대홍수는 B.C. 2458년에 일어났으며, 바벨탑 사건은 B.C. 2357년에 일어났습니다.고조선의 건국이 B.C. 2333년이므로 바벨탑 사건이 일어난지 불과 24년만에 만주에 도착한 것이 어려울 것 같지만셈족이 이동이 자유로운 유목민이었고, 조사단이 볼가강 하류의 아조프 박물관에서 바퀴 달린 집을 발견함으로써 이동속도가 빨랐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강화도 마니산에는 단군의 왕검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쌓은 천재단이 있는데, 천제단의 방향이 서쪽으로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쪽에서 섬겼던 하나님께 경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일본의 경우에도 3600개의 고대 암각화 중 70%가 수메르나 셈족의 것으로 추정되며, 가고시마현의 거석에 새겨진 수메르 양식의 고대 선박도 이를 입증합니다.
5. 해상 왕국 가야의 비밀
중국 한(漢) 나라 때 광무제의 박해를 피해 동이족이었던 수로(首露)라는 사람은 A.D. 42년 동료들과 함께 한반도김해에 상륙해 변한 족장의 추대를 받아 가락국을 세우고 김수로 왕이 되었습니다.(김유신의 12대 조부)김수로 왕의 가락(가야)국에서 제철산업을 크게 일으켜 해상을 통해 중국과 일본 등지로 철을 수출하는 상선 500척을보유한 해상왕국을 세웠습니다.
수로가 가락에 도착한지 6년 후인 A.D. 48년에는 지금의 인도 지역인 아유타국의 공주 허왕옥이 신하 두 내외와20명의 선원을 데리고 배를 타고 나타났습니다.삼국유사에는 허왕옥이 불교를 전하기 위해 파사(페르샤)의 석탑을 가지고 온 것처럼 묘사했지만 실상은 다릅니다.허왕옥은 가야에 도착하여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자신이 온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금년 5월 제가 본국에 있을 때 부왕이 왕비로 더불어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제 밤 꿈에 함께 상제를 뵈었는데 상제의 말씀이 '가락국왕 수로를 내려 보내 등극케 하였으니 그는 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다. 그가 새로 나라를세웠으나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그대들은 공주를 보내어 짝을 삼게 하라' 하시고 말을 마치자 하늘로올라 가셨다고 합니다. 부모님께서 잠을 깬 후에도 상제의 말이 아직 귀에 쟁쟁한지라 저에게 이르시기를 너는곧 이곳을 떠나 그리로 가라 하시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상제(上帝)는 전통적으로 하나님을 뜻하는 것으로 불교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허왕옥이 가야에 도착한 A.D. 46년은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로 들어가 선교하던 시기입니다.당시 페르시아는 도마를 비롯하여 시몬, 다대오 등 사도들이 활동하던 선교 중심지였습니다.외경인 '도마행전'에는 사도 도마가 인도에 들어가 처음 전도하여 침례를 준 사람이 인도의 공주이며, 왕과 왕비도침례를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허황후가 인도에서 가지고 왔다는 파사의 돌
김해 김씨의 시조 김수로왕의 릉

허왕옥의 배가 처음 도착한 곳을 가야 사람들은 '주님의 포구'라는 뜻에서 주포(主浦)라 불렀습니다.삼국유사를 쓴 김견명이 말한 파사의 석탑은 실은 가공한 돌이 아니라 평범한 자연석 6개를 쌓아 놓은 것일 뿐입니다.허왕옥이 자신의 배에 돌 여섯 개를 싣고 온 이유는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갈릴리의 배 만드는 기술자였던 사도 도마의충고를 받아 들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김해에 있는 수로왕 릉의 납릉 정문에는 석탑 모양의 그릇을 가운데에 두고 두 마리의 물고기가 마주 보고 있는 그림이있는데, 이 그림은 갈릴리의 오병이어 교회에 있는 모자이크와 같은 형태입니다.허왕옥과 결혼한 수로왕은 국호를 가락국에서 '가야'로 바꾸었는데 , '가야'는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를 의미합니다.물고기는 초대 교회의 기독교인 사이에 사용된 암호였습니다.헬라아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는 말의 이니셜이 물고기 즉 "익투스(ichthus)"라는 말이 되기때문입니다.
무려 2000년 전에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되었고, 가야의 김수로 왕은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현재도 경상도 사람 중에는 인도 공주 허왕옥의 일행의 핏줄이 섞여 서구적인 외모를 갖는 미남 미녀가 많은 편입니다.제가 아는 사람 중에도 부모가 모두 한국인인데 딸은 인도 사람처럼 생겼고, 아들은 서양 사람(인도 사람과 백인은야벳의 후손으로 같은 유전적 형질)처럼 생긴 집안이 있습니다.예전에 있었던 유전적 형질이 수십대가 지난 뒤에도 보존되 있다가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신라 5대 왕인 파사(婆娑) 이사금이 수로 왕을 매우 존경하여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초청해 자문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이사금이 자신의 왕호를 굳이 페르시아를 의미하는 파사로 바꾼 이유는 아마도 허왕옥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기독교로개종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1956년 불국사 경내에서 발견된 석재 십자가와 영남 대학교 박물관 지하실에 보관된 양을 품고 있는 석상 등이 이러한사실을 증명합니다.신라의 화랑도도 메시야를 상징하는 꽃인 무궁화를 머리에 꽂고 다니고, 특이한 사상과 체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보아 기독교를 믿는 집단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6. 사도 도마
도마는 쌍둥이, 인도의 사도로 알려져 있다. 도마는 아마 갈릴리의 한 가난한 어부의 가정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어떻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이름 도마는 시리아어로 '쌍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헬라에서는 그를 디디무스(Didymus)라고도 불렀다. 그는 주님의 부활을 의심한 인물로 흔히 말하여지지만 오히려 경험적인 것에 천착하는 매우 이성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요한복음 14장 1절 이하에서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셨을 때 도마는 주님께 말하기를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라고 질문한 바 있다. 이 때 주님은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라고 대답하셨다.
이런 문답은 도마가 회의적인 인물이어서 물은 것이라기보다 그가 명확한 것을 좋아 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따라서 그는 후일 베다니(Bethany)로 가는 길에서 과단성 있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는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았으나 주님의 손과 발을 만져 보고 창자욱을 만져본 후에는 즉시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위대한 신앙을 고백하였다.
이 고백은 주님의 신성에 대한 그의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서 제자들 중 최초로 주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한 것이었다. 영지주의 문서 중 하나인 도마행전(The Acta Thomae)에는 도마의 선교에 대하여 비교적 소상히 기록되어 있는데 주로 인도에서의 행적이다.
이 책에 의하면 도마는 유대인으로서 인도선교를 요청하는 주님의 부름을 거부하였다. 그런데 주님께서 아반(Abban)이라는 인도의 한 부분을 통치하던 상인에게 나타나 도마를 그의 종으로 팔았다고 한다.도마는 인도에서 목수로서 일하며 한 궁전을 짓도록 명령 받았다. 그러나 자기 주인이 다른 곳으로 떠나자 궁전을 짓는 일을 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20개의 은 덩어리를 다 소비해 버리고 말았다.
왕이 돌아왔을 때 그는 도망치려다 붙잡혀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이 때 왕의 동생이 죽었는데 그는 하늘에서 도마가 왕을 위해 아주 멋진 궁을 짓는 그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다시 지상에 돌아가도록 허락되어 왕에게 도마가 궁을 짓던 그곳을 사들이도록 권하였다. 왕은 이 제안을 거부했으나 도마를 석방하였고 도마에 의해 회심하였다.
도마의 전도로 말라바(Malabar) 해안선을 따라 기독교인들이 증가했고 그 지역에 일곱 개의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 도마는 72년경 마드라스 근처의 빅 힐(Big Hill)이란 곳에서 창에 맞아 순교하여 밀라포르(Mylapore)라는 곳에 뭍혔다.인도의 교회들 중에는 도마 교회가 지금도 있다. 인도 특히 케랄라(Kerala)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성 도마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말한다.
1522년에 포루투갈인들이 도마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한 무덤을 발견했는데 유해를 밀라포레에 있는 '성 토마스 대성당'에 안치하였다고 전한다. 그의 유해 중 일부는 4세기에 에데사(Edessa)에서도 발견되었고 '도마행전'에 의하면 그 유해를 인도에서 메소포타미아로 옮겼고 아브류찌(Abruzzi)에 있는 오르토나(Ortona)에 최종적으로 안치했다고 한다.
2002. 1.27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주님의교회 목사 박찬희
7. 공자에 대한 오해
사람들은 명절 때마다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데 그 원류가 공자의 유교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공자가 부모에게 효도하라고는 했지만 죽은 부모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마치 불교에서 석가가 자신에게 불상을 만들고 절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이 석가를 신으로 모시고 천배씩 절하듯,유교의 많은 부분은 후대 사람들이 공자의 가르침과는 상관 없이 만든 것입니다.
고대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요(堯)와 순(舜) 임금입니다.공자(孔子)의 서경(書經)에 의하면 요, 순 임금은 상제(上帝)에게 제사를 드렸으므로 하나님을 믿던 사람이었습니다.순임금 때부터 중국인들은 여름에는 북쪽 끝에서,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 끝에서 국경제사를 상제에게 드렸습니다.요,순 시대부터 상제에게 제사를 드렸던 제사문이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아직도 남아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극히 오래 전 태초에 공허하고 흑암의 큰 혼돈이 있었사옵니다. 다섯 행성은 아직 운행되지 않았었고, 태양도 달도빛을 발하지 않았었습니다. 거룩하신 신 상제(上帝)께서 이곳에 모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주께서 모든 만물을 만드셨사옵니다. 그리고 사람을 지으셨사옵니다. 당신의 능력으로 모든 만물이 지음을 받았사옵니다."
위 내용을 창세기의 내용과 비교하면 매우 흡사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1~5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세기 1/25~27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또 다른 국경 제사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모든 생물들이 당신의 뜻으로 말미암았나이다. 상제(上帝)시여, 인간도 만물도 모두가 당신의 사랑으로 이 낙원에살게 되었나이다. 모든 생명체가 당신의 선하심으로 지음 받았사오니, 그 축복은 당신으로 말미암음이옵니다.오 주시여, 당신만이 이 모든 만물의 참 어버이가 되시옵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도 기독교 이외에 위와 같은 기도문은 없습니다.따라서 중국인이 바벨탑 사건 이후 흩어진 노아의 후손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중국인은 얼굴은 동양인이지만 언어나 생활(입식), 식생활(고기, 기름) 등에서 서양인과 가깝습니다.옛 중국인들의 시신을 발굴해 보면 금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인은 노아의 셋째 아들인 아벳의 후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셈족인 동이족이나 몽고족과 피가 섞이면서 지금과 같은 동양인적 모습을 하게 되었습니다.중국 사람들 역시 진시황이 진나라를 세웠던 B.C. 200년까지 무려 2000년 동안 유일신인 하나님을 섬겼습니다.상제(上帝)의 중국식 발음은 '샹따이'인데, 유대인의 하나님 칭호 중 하나인 '엘 샤따이'와 유사합니다.현재 중국어로 된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상제라고 부르고 있으며, 중국인들이 쓰는 문자인 한자 역시 창세기를 모델로만들어졌습니다.노(魯)나라 사람인 공자(孔子, B.C. 552~B.C. 479)는 유교의 창시자로 은(殷)왕족의 혈통을 이어 받았으며, 춘추시대 말기에 태어났습니다.당시 사회는 철기 사용으로 인한 농업혁명으로 인해 풍요로웠지만 물질주의로 도덕이 땅에 떨어졌고, 더 많은 토지를소유하기 위한 제후들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위정자는 덕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의 중심에 놓인 것이 인(仁)으로, 공자는 최고의 덕을 인이라고 보고,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인덕(仁德)을 지향하고, 인덕을 갖춘 사람만이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앉아 인애(仁愛)의 정치를 한다면, 세계의 질서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자의 인은 사람다움을 구현하는 과정입니다. 공자는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예절을 갖추어야 무슨 소용이 있으며,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음악을 잘 연주해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공자의 관심은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길(道)인가에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답지 못한 사람들을 낮추어 '짐승 같다.' 라는 표현을 씁니다. 공자는 인의 실천을 위해서는 예(禮)라는 형식을 밟을 필요가 있다고 하였는데, 예란 전통적 ·관습적 형식이며, 사회규범으로서의 성격을 가집니다. 이처럼 공자의 사상은 사회적·정치적 인간을 위한 도덕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그 보편성을 보증하는 것으로서 하늘의 신적 존재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공자는 예(禮)를 통해 인(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바른 정치이며, 바른 정치를 위해서는 우선 ‘바른 명분(名分)’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명분은 오늘날 ‘핑계, 공리공론’의 의미로 잘못 인식되기도 하지만 공자가 말한 명분은 ‘지도자의 도덕성과 솔선수범’을가리키는 것으로 그의 ‘덕치주의(德治主義)’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공자는 인간을 군자와 소인으로 나누고 여러 곳에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소인은 자신에게 이로우냐 해로우냐를 따지는 데 밝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군자는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데 밝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군자는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데 밝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이로움이 될 만한 일을 보면, 먼저 그 일이 옳은 일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또 소인은 남들과 같아지기는 잘하지만, 남들과 어울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군자는 남들과 어울리되 같아지지는 않습니다. 남과 같다면 자신의 존재 의미는 없습니다. 자신이 참다운 가치가 있다면, 자신의 역할을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야 합니다.
군자는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반대로 소인은 누구라도 그 사람을 대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남들과 참답게 어울린다는 것은 사람이 주체가 될 때만 가능합니다. 어느 한 사람이라고 주체를 잃고 남에게 얽매인다면, 그것은 참답게 어울리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군자는 다스리는 계층, 즉 군주의 자식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지배 계층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군자의 의미를 지배 계층이 아니라 덕을 쌓은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공자는 사람다운 사람 위에 다시 성인을 두었습니다. 사람다움의 완성이 성인인 것입니다. 논어 '옹야'편에 공자와 제자 자공의 대화가 나옵니다.
"만일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어서 모든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어찌 사람답다고만 할 수 있겠느냐? 반드시 성인의 경지일 것이다. 요순도 오히려 그렇지 못할까봐 항상 근심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결과적으로 내게 이로울 것인가 해로울 것인가를 따지지 말고, 오직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라는것이 공자의 생각입니다.그리고 옳다면, 비록 그 일을 하다 해를 입을지라도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사람다움을 이루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동양의 사상과 윤리와 도덕의 토대를 완성한 공자조차도 모든 것을 안다고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죽음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삶도 아직 다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말하겠느냐?" 자로가 다시 물었습니다.
"神에 관해 이야기 해 주십시오."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데 어찌 神에 대해 논하겠느냐?"
이 대화를 통해 공자의 관심이 신이나 죽음에 있지 않고 사람과 삶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는 스스로 자만하지 않고 자신이 인간에 관한 문제를 알기에도 벅차다는 것을 인정한 셈입니다.결국 공자가 인간의 삶에 대해 얻은 해답이 인(仁)이었던 것입니다.따라서 유교는 죽음에 관한 종교라기 보다는 삶에 관한 윤리 도덕이나 사상과 철학이라고 보는 편이 옳습니다.
공자가 태어나기 전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중국 대륙의 역사는 우리 민족인 동이족과 중국 민족인 하화족의 경쟁과 협력 관계로 이루어졌습니다.중화 사상을 가지고 있는 하화족을 중국인들은 화하(華夏)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본래 황하의 상류 지역에 있는임분(臨汾)에 살았습니다.

동이족에 속하는 소호(少昊)족은 산동의 곡부를 중심으로 살았고, 그 수가 하화보다 많았으나 하화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고 살았습니다.동이족의 정신적 중심은 산동의 태산이었고, 태산 정상에 있는 천제단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살았습니다.
하화의 첫 임금은 요(堯)였는데, 그는 자신의 자리를 물려줄 만한 인재를 찾지 못하고 동이족의 순(舜)에게 자리를물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순은 다시 하화에서 우(禹)라는 인물을 찾아 자리를 넘겨 주었고, 우는 동방 장군들의 협력을 얻어 황하의치수에 성공하였으며, 하화는 임분에서 화산(華山) 지역으로 진출했습니다.
우는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 주었고, 14대에 이르러 걸(桀)이라는 폭군이 나타나, 동이족의 탕(湯)이 걸을 제거하고은(殷) 나라를 세웠습니다.은 나라는 '정인'이라는 기도 집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국사를 결정하는 신정국가였습니다.
은 나라의 30대 주(紂) 왕은 우상을 섬기고 무도하므로, 하화의 발(發)이 은 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 나라를세워 무왕이 되었습니다.주의 무왕은 신정국가였던 은 나라를 멸망시켰으므로 명분을 찾기 위해 신앙의 자유를 선언하였습니다.조상 귀신을 모시는 '종묘'와 농사의 신을 섬기는 '사직'을 모든 지방 관청에 만들게 하고 왕궁에도 세웠습니다.
은이 멸망할 때 두 명의 위인이 있었는데, 한 명은 고조선으로 가서 요동 지역에 땅을 얻어 살았던 '기자'이고,다른 하나는 무왕에게서 은나라 도읍 근처의 땅을 봉지로 받아 은의 유민과 함께 살았던 '미자'인데 그 땅을송(宋)이라 했습니다.
공자의 증조부 공방숙은 바로 그 송나라 사람이었습니다.공자는 죽기 7일 전에 "나의 조상은 원래 은나라 사람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그렇다면 공자와 그의 조상은 하나님을 섬기던 은나라 사람이었고, 공자는 우리와 같은 민족인 동이족이라는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귀신을 섬기던 주 나라가 멸망하고, 천하가 어지러울 때 공자가 태어났습니다.공자 사상의 기본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자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이었습니다.공자는 요, 순과 하, 은, 주에 이르는 역사 상서(尙書)를 기록해 바른 역사를 확립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어지러운 천하를 통일한 사람은 바빌론과의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장사꾼 여불위의 아들 진(秦) 시황제(始皇帝)였습니다.그는 동이족의 신임을 얻기 위해 태산에 제사를 드리러 갔다가, 동이족 창해역사의 습격을 받아 구사일생으로살아났습니다.
시황제는 동이족의 포섭을 단념하고, 장안으로 돌아와 3년 후인 B.C. 215년에 2700km에 달하는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그는 흉노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간쑤성(甘肅省) 남부로부터 북으로, 황하강(黃河江)의 대굴곡부(大屈曲部)의 북쪽을 따라 동으로 뻗어나가, 둥베이(東北) 지구의 랴오허강(遼河) 하류에 이르는 장성을 쌓았는데, 절반 이상은 전국시대의 연(燕)·조(趙) 등이 쌓은 장성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쌓은 주된 이유는 동쪽의 고조선을 막아 놓고, 산동의 동이족을 박해하기 위해서입니다.그리고 B.C. 212년부터 동이족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공자의 사상을 박해했는데, 공자의 책을 모두 수거해 불태웠고,공자의 제자 460명을 땅에 묻어 죽였습니다.
시황제의 분서갱유(焚書:책을 불태움, 坑儒:공자의 제자들을 땅 속에 묻음) 사건을 통해 공자의 원래 사상은 잊혀지게되었습니다.논어는 공자가 직접 저술한 저작이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종교적 논리에 맞게 편찬한 책입니다.따라서 공자가 가졌던 정확한 사상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시황제의 아들 호해를 제거하고 진을 멸망시킨 사람은 하화족인 한(漢)의 유방(劉邦)이었습니다.그는 동이족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공자의 학문을 복원하겠다고 선언하고, 공자의 책들을 기억나는대로 복원하게 하였으나자신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주나라의 종묘와 사직을 삽입하였습니다.그래서 신을 공경했던 공자가 귀신을 섬기던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공자 시대에는 종이가 없어서 대나무를 깍아서 글을 썼고, 올챙이 모양의 과두문자를 썼습니다.그러나 한나라가 만든 공자의 책은 종이에 예서로 쓴 것이므로 그것을 금문상서(今文尙書)라고 하고, 그것을 만든학자를 어용(御用)학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용학자들 가운데 양심선언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논어의 술이(述而) 편을 기록하면서다음과 같은 진실을 말했습니다.
'자불어 괴력난신'(子不語 怪力亂神): 공자는 괴이한 일과 난잡한 귀신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
즉, 공자가 조상 귀신 섬기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공자 같이 수준 높은 사람이 가장 저급한 종교이며 무속적이고 샤머니즘적인 귀신숭배에 빠졌을 리가 없습니다.
공자는 중용(中庸)에서 제사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하늘과 땅에 드리는 모든 제사 의식들을 통해 사람이 상제(上帝)를 섬기느니라."
결국 모든 제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고 공자는 말한 것입니다.이런데도 사람들은 명절 때마다 명백한 우상 숭배인 조상 귀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것이 유교나 우리의 전통인것처럼이해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이미 죽어 심판에 처한 영혼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며, 다른 잡다한 악령들만 불러들일 뿐입니다.이상으로 공자와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해 오해하고 있던 부분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공자가 죽음을 앞두고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의미인 '조문도 석사가의'(朝楣 夕死可矣)라는유언을 남겼듯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사망에서 구원하는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4~500년 전에 동양의 공자와 서양의 플라톤과 인도의 석가가 인생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고,예수님이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문제가 주어지지 않으면 답을 주어도 깨닫지 못하고 소중함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한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 민족과 중국 민족은 무려 2000년동안이나 하나님을 믿고 섬기던 민족이었는데, 왜곡된 역사로 인해 우리는 진실을알지 못하고 오히려 불교나 유교가 전통종교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우리 민족이 원래 하나님을 믿던 민족이었고, 노아의 장자인 셈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구한말에 기독교가 들어오자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급속도로 퍼져 나갔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민족인 된 것입니다.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는 서양에서 기독교가 부흥되고 꽃을 피웠지만 그들은 현재 하나님을 버리고 인본주의와물질주의에 물들어 도덕적 타락과 마약 중독 등의 문제에 휩싸여 있고, 영적 황폐함 속에 살고 있습니다.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인 마지막 때 역사는 해 돋는 동방에서 일으켜야 하며, 온전한 진리의 빛을 전 세계에 비추어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큰 부흥의 역사를 일구어야겠습니다.
이사야 11/9 그들은 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치거나 파괴시키지 않으리니 이는 마치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주의 지식으로 충만할 것임이니라.
하박국 2/14 마치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땅이 주의 영광의 지식으로 가득 차리라.


* 참고 서적
1. 유석근, 알이랑민족회복운동, www.알이랑.com
2.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김성일, 신앙계)
3. 성경은 신화가 아닙니다. (김정주, 갈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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