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선교를 해야 하는 이유


세계선교를 지향하는 한국교회! 일본을 어찌할 것인가?

(일본 선교는 한국 교회의 기업  - 일본열도에 불어 닥치고 있는 불가사의한 기적들-

요한복음14: 12-14
2013
년 01월 24일
김안신
목사(한국CCC파송 일본선교사)

들어가는 말

 전주에서 목회할 때의 일이다. 만50세가 되던 90년 4월 어느 날 한 밤중, 나는 꿈 속에서 3일간 연속으로 “김안신! 일본으로 가라”는 이상한 음성을 들었다. 첫날 밤에는 “누가 헛소리를 하는고? 새벽 예배를 인도하려면 눈을 좀 붙여야 하는데” 하면서 짜증을 냈다. 이튿날에도 계속되는 부름에 급기야 일어나 문을 열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3일째에는 “아, 이건 하나님의 부르심이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 갈 수 없는 10 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했었다. “50이 넘었습니다. 장남입니다. 부모님은 8순이십니다. 아내는 6남매 장녀입니다. 처부모님은 7순이십니다. 일본말을 못합니다. 교회서 안 놔줄 겁니다. 아직 어린 자녀들의 교육 문제가 물가가 비싼 일본에서는 불가능 합니다. 이미 제가 5명의 선교사들을 돕고 있습니다. 가는 선교사가 아니라 보내는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일본은 회개할 줄 모르는 나라이니 멸망 받아 마땅합니다. 저를 놔주십시오!”

 

 하나님은 크게 책망하셨다. “나는 일본열도를 사랑한다. 일본은 내가 택한 내 백성이 사는 내 땅이다. 나는 이들의 복음화를 위해 네 몸이 필요하다. 일본으로 가겠느냐 내게로 오겠느냐. 양자 택일하라” “제가 일본에 안 간다면 저를 죽이실 작정이십니까?” “오냐! 네게 영원한 안식을 주겠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나는 교회에 사표를 제출하였으나 받아주지 아니함으로 그 해 6월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갔다. 2개월간의 짧은 단기 선교 훈련을 받고 귀국, 한국 CCC로 원대 복귀하여 90년 10월 1일 일본 선교사로 파송장을 받았다.

 

길고 지루한 시간, 비자를 기다렸다가 드디어 91년 1월 3일, 일본의 관문인

나리따 공항에 상륙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일본어라고는 [사요나라]와 [빠가야로] 밖에 할 줄 몰랐다. 언어학교의 등록이 마감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3개월 동안 소일하다가 그 해 4월부터 일본어를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외국어에 소질이 없는 내게 [아, 이, 우, 에, 오] 에서 시작된 일본어 공부는 너무도 큰 짐이 되었다. “젊고 유능한 선교사를 더 많이 보낼 테니 저를 원 위치 시켜주십시오” 라고 2년간 날마다 졸랐으나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을 하지 않으셨다. 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나는 악착같이 공부하여 1년 4개월만에 75명이 모인 교또의 복음자유교회에서 일본어로 설교할 수 있었다.

 

 자녀들 교육 때문에 아내는 한국에 머물고 있었기에 혼자서 거의 2년을 살았다. 답답하고 컬컬했던 나는 일본이 복음화되지 않으면 안될 이유와 내가 일본에 있어야 할 까닭을 하나님께 따지듯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확실하게 “일본은 21세기에 세계 선교의 무거운 짐을 져야 할 나라이다.”고 하셨다. 나는 이런 말 즉 “일본이 21세기 세계 선교의 무거운 짐을 져야 할 나라” 라는 말을 세계 선교 전문가들의 책에서나 강연 등을 통해서 읽어본 일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정말 말도 안 된다는 말씀이라는 생각으로 많은 시간을 고민하였다. 나는 정부간행물을 뒤적이면서 일본의 국력을 조사하다가 “만일 일본이 예수 믿고 복음화 되기만 한다면 세계는 바로 복음화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2년도 12월 31일 현재 지구상에 244개의 나라가 존재한다 지도상에 나와 있는 나라가 239개이다. UN 총회에 가입된 나라가 193개, CCC가 활동하고 있는 나라가 198개, 콜라가 팔리고 있는 나라가 200개, 한국이 무역하고 있는 나라가 225개인데 일본은 지도에 나와 있는 239 개의 모든 나라에 진출하여 넓은 토지, 큰 건물, 유가증권, 현지통화를 대량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이런 자산가들이 우리의 전도를 받고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자녀가 된다면 현지의 넓은 토지는 캠프장이 되고, 큰 건물은 교회와 기도원과 선교센터가 되며 현지의 유가증권이나 통화는 선교기금도 될 수 있다.

 

 나는 일본 선교 22년의 세월을 통해 토지와 건물과 재산을 아낌없이 바치는 신자들을 수 없이 보았다. (99년도 시즈오까-찌라시 한 장으로 자살 직전의 부부를 살린 사건) 세계 선교전선에서 일본의 역할에 대한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일본인들은 일단 확신을 하게 되면 자기 목숨이라도 버릴 각오로 우리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기질 즉 기마에(気前-시원스런 기질)와 근성(根性-곤죠)이 있다. 편도 휘발유만을 넣은 비행기를 타고 가 진주만을 공격한 카미카제(神風) 특공대를 기억해 보라. 이는 5천년의 전생역사를 통해 유일무이한 사건이다.

 그러나 나는 일본 선교의 장애물들이 열도를 지배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첫째, 일본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삼위 하나님의 개념이 없다.

카미사마(神様)라고 말할 때, 그 카미사마는 인격신이 아니라 인간을 초월한 위력을 가진 숨어있는 존재, 일본의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 신, 최고의 지배자 천황, 진자(神社) 등에서 제사를 받는 영, 인간에게 위해(危害)를 끼치고 공포를 주는 자 곧 천둥, 호랑이, 늑대, 뱀 등을 가리켜 ‘카미사마’ 라고 부른다. 따라서 성경이 가르치는 인격신인 삼위일체(三位一体) 하나님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여 가르치는 일이 아주 어려운 실정이다.

둘째, 공짜를 싫어하는 민족이기에 거저 주시는 구원의 복음을 거부한다.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거부감을 갖는다. 이들은 신사에 가서 구멍 뚫린 동전 5엔(고엔이라 읽는데 이는 ‘신사의 하나님이시여! 좋은 인연을 맺고 삽시다’ 라는 소원이 담긴 돈임)을 던지며 복을 비는 그런 정성이라도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공짜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일본인들이 가엾다.

셋째, 자기 나라를 지상천국으로 생각하는 현실주의자들이다.

 “돈, 여행, 쾌락, 자유 등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닌가. 나는 이대로의 삶에 최고로 만족한다. 다른 천국 관심 없다. 더 이상 나를 번거롭게 하지 말아 달라” 라는 말로 생명의 복음을 거절한다. 착각에는 커트라인이 없다는 말들을 하지만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을까?

넷째, 타테샤카이(縦社会)라는 높은 장벽이다.

일본사회의 구조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타테샤카이(종사회) 즉 인간 관계에 있어 상하의 질서와 서열이 아주 중요시 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노라”는 고백을 하기가 극히 어려운 실정이다. 주위의 사람들과 단절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소속사회로부터의 단절은 죽음을 의미하는 까닭에 사회의 일원이 되어 있는 사람이 예수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세례를 받으면 그는 개밥의 도토리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섯째, 8백만 귀신을 섬기는데다 진화론에 입각한 교육이 큰 문제이다.

일본인들은 조상 대대로 8백만의 신을 섬긴다. 특히 조상 신을 더욱 열심히 섬긴다. 인간은 윤회설 속에서 환생을 거듭하는 존재로 죽으면 끝난다는 사고방식 속에서 인간의 가치가 과소평가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진화론에 입각한 교육을 시키는 까닭에 조금 어려운 일이나 부끄러운 일이 생기면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는 풍조가 심하여 자살왕국으로 불리 울 정도이다.

 

여섯째, 하나님 보다 주일 성수보다 일에 우선 순위를 두는 민족이다.

“시고또의 오니(仕事の鬼, 일에 미친 사람, 일 벌레)”들이기 때문에 일이 하나님보다 교회보다 앞서 버린다. 따라서 주일날 일이 있거나 일감이 생기면 예배는 뒷전으로 물러가 버린다. 특히 5월말이나 6월 첫 주일에 행해지는 소학교 운동회 때는 예배당이 텅텅 빈다. 물론 전부는 아니고 주일 성수를 강조하는 교회는 예외이다.

일곱째, 예배가 너무나 부족하고 모이기를 힘쓰지 않는 교회이다.

 심방과 구역예배가 없고 대부분 주일 예배 한 번만 드리기 때문에 성장이 더디다. (주일날 10:30분의 모임은 예배, 수요일 모임은 기도회, 목요일 모임은 성서연구회이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 신앙이 아니라 상대적 상황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라는 통로를 통해서 예비하신 복을 주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덟째, “일본은 안 된다”는 목회자들의 부정적인 사고 방식이다.

 91년 1월, 일본에 당도했으나 언어학교의 등록이 마감된 뒤라 3개월 쉬는 동안, 먼저 온 선교사의 안내로 동경, 오사카, 나고야, 센다이, 삿뽀로, 후꾸오까, 교오또 등 7개의 도시를 순회하며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목회한 일본 목회자들과 교제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들의 말은 한결 같았다.

 “우리는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노방전도, 축호전도, 성서연구, 세미나, 제자훈련, 특별집회, 부흥회, 한국과 미국교회의 견학 등 이것 저것 다 해 보았으나 잘 되지 아니하므로 포기하고 말았다. 다는 아니지만 일본교회의 형편이 이렇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일본 교회의 미래는 어둡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말은 일본 목회자들의 전부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더러는 복음주의 신학과 신앙에 입각하여 크게 성장하는 교회도 있었다. 그런 교회들의 특징은 목회자가 복음은 보수하되 현대적인 상황을 이해하면서 유연성 있게 이끌어 간다. 찬양의 능력이 넘치며 열정적으로 기도한다. 더 나아가 모든 프로그램을 선교적 마인드로 운영하면서 성경 말씀에 기초한 제자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에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무엇(WHAT?)을 가지고 어떻게(HOW?)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WHO!)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판이하게 나타난다는 말이다. 교회는 삼각형으로 하나님은 정점에 있는 목회자를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담임 목회자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은 기독교의 2천년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사실”이다.

 

2003년에 CIS(교회정보센터)에서 “지금 현재 1%미만의 크리스천 인구를 5%로 올리려면 1,390년 걸린다” 라는 통계를 발표하였다. 나는 이 통계를 읽고 분개하였다. 이 통계가 발표된 2년 반 후인 06년 2월 20일, OCC빌딩에서 CIS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 참석했다. 순서가 다 끝난 다음 “질문이 있느냐?”는 사회자의 말에 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일어나 “비싼 비용을 들여 이런 어이 없는 통계를 만들어 내어 일본 교회를 기 죽이는 당신들도 문제이지만 이런 웃기는 통계를 보면서 ‘그래 우리 교회의 부흥은 안돼! 일본은 틀렸어! 일본복음화는 불가능해!’라고 절망하는 일본 교회 목회자들은 더욱 불쌍하다”고 쏘아붙이고 이렇게 말했다. “왜 하나님 편에서 일본 교회를 생각하지 않는가? 현재의 상황을 참고하여 계산해 보면 이런 통계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일본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면 이런 통계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이런 부정적인 사고 방식으로 팽대한 일본 지도자들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 중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일본열도에는 불가사의한 징조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첫째, 복음주의 교회들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던 1945년에는 일본의 자유주의 교회와 복음주의 교회의 비율은 26:1이었다. 그러나 두 진영 교회들의 성장 속도를 보면 1990년에는 26:26이었고, 2000년이 지난 지금은 정반대로 1:26이 되었다. 자유주의 교회의 성장은 크게 줄어들고 복음주의 교회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 일본열도에는 무목(無牧) 교회가 1,000개가 넘는다는 통계가 나와 있는데 대부분이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교회들이다.

둘째, 젊은이들 가운데 헌신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지난 91년부터 13년 1월까지 김준곤 목사께서 뉴라이프라는 이름으로 훈련된 한국CCC 대학생들을 북해도, 군마, 사이따마, 이바라끼, 동경, 시즈오까, 나고야, 오사까, 후꾸오까, 큐우슈, 오끼나와 지역 등의 수많은 교회들에 파송, 일본 교회를 섬긴 결과, 22년 동안에 적어도 젊은이들 백 명이 헌신하여 신학을 졸업하고 안수를 받았거나 지금 신학교에 다니고 있고 또 신학교에 입학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해외 선교사로 헌신한 젊은이들도 상당히 많다. 일반적으로 “일본 교회에는 1년이 다 가도 구도자가 한 사람도 아니 오고 5 년이 지나도 세례 받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던 일본 교회에 이렇게 많은 헌신자가 나왔다는 것은 가히 기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셋째, 한국과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교회들의 괄목할 성장이다.

 자매결연을 맺고 한국을 왕래하고 있는 교회는 지역에 상관 없이 어느 곳이든지 급성장하고 있음을 보았다. 이는 한국 교회가 성경적인 방법으로 교회성장을 도모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믿는다. 일본 교회의 부흥은 물론이고 자매결연의 상대인 한국 교회도 동반 성장하고 있음을 보았다. (일궁시의 한 교회)

넷째, 한국인 선교사들의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서양선교사들은 그 수가 현저히 줄어가는 반면 한국인 선교사들은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91년도에 825명이던 것이 2012년 1월 9일 현재 한국인 선교사 1,347명이 일본열도에서 사역하고 있다. 조국의 경제사정이 아직도 여의치 않은 상황임에도 그렇다. 또 한국인 선교사들은 사역의 열매가 현저히 나타나 10년 전후하여 대개 자체건물을 구입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다섯째, 기독교의 큰 집회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일본 전국에서 60년도 이후 1천명 이상 모이는 집회가 열리려면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60년대 빌리 그레이함 대회, 70년대의 밥 피얼스대회, 80년대의 루이스 파라오대회, 94년 초의 빌리 그레이함 대회 때에 그렇게 모였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는 보통 2, 3천명씩의 집회는 아주 간단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뉴라이프가 일본에서 시작된 이후 두드러진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섯째, 최근 VIP라는 실업인 중심의 평신도운동이 왕성히 일어나고 있다.  

1,500명에서 1,800명씩 모이는 성탄축하나 대중 전도집회들이 그들에 의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동경, 요꼬하마, 오사카, 나고야, 쿄또, 후꾸오까, 삿뽀로 등지에서 이렇게 모이고 있다. 이 모임은 점점 전국화 되어가고 있다.

일곱째,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분들이 공석에서 신앙 고백하고 있다.

전에는 자기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던 지위 높은 사람들 즉 정부의 고관이나 은행장이나 전무 또는 기업체의 장들이 대중 앞에서 “나는 이러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었노라”고 공석에서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이것은 진짜 기적이라고 해야 할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여덟째, 공공연한 장소에서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동경 시내의 근 30 곳에서 평신도들 중심으로 직장이나 호텔에서 매주 한번씩 모여 기도한다. 이들의 열심은 대단하다. 각 도시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09년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조찬기도회가 157개 정도 있는데 이들은 전국의 모든 지역에 이 기도회를 조직할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또 CCC 자매간사가 중심이 되어 예능인 전도가 이미 시작되었다.

아홉째, HOMELESS 전도가 왕성해지고 있다.

 일본 국내에는 공원이 전국적으로 약 550 여 개가 있다. 이 공원들에는 여지 없이 홈리스(노숙자)들이 살고 있다. 이들을 상대로 한 전도가 주로 한국인 선교사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는데 1백 명, 2백 명, 4백 명, 6백 명 등을 모아놓고 열심히 전도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 중 도시에서는 이런 전도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또 동경에는 홈리스들을 위한 신학교도 생겨서 열심히 가르치며 배우고 있다.

열째, 사회에서 버림받은 야쿠자들의 전도가 활발해지고 있다.

 야쿠자들을 중심으로 한 “밋션바라바” 라는 선교회가 일본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오야붕은 예수님”이라는 영화를 한일합작으로 만들어 상영함으로써 메스미디어 전도를 시도하고 있다. 범법자들에게는 비자를 내주지 않는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에 이들이 초청되어 문신을 내보이며 찬양을 하고 간증을 하여 많은 감동을 끼쳤다.

 

열한 번째, 동경성서전시회(00.11/2-19까지)에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많은 인파 (55,324명이 관람)가 몰려들었다.

 물론 사해사본이 전시된 까닭도 있었겠지만 일본인들이 성경이 무엇인가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 많은 관람객들 가운데 넌 크리스천들도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열 두 번째, 매스컴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NHK의 교육방송국에서는 소노 아야꼬 라는 카톨릭 신자의 성경강좌를 일년 이상 계속 방영했다. 또 2000년 12월에는 일본 전역을 커버하는 중앙 TV 6 채널과 지방 28개의 TV에서 예수영화를 상영했다. 2002년도 여름에는 동경의 한 복판에 위치한 긴자(銀座)의 일반극장에서 예수영화를 상영한 바 있다. 04년도 5월부터 일본의 150여 개의 일반극장에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이 2개월간 상영되었고 3백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교회들이 입장권을 구입, 불신 이웃들에게 선물하여 관람토록 한 결과였다.

열세 번째, 복음성가(GOSPEL SONG)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

동경에는 200명의 인원을 가진 복음 성가단이 있다. 그 중 크리스천은 지휘자와 단원 한 사람 등 2명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열정적으로 복음 송을 부르고 있다. NHK에서는 몸집이 아주 큰 흑인 여가수 수명을 출연시켜 수 주간 “Oh Happy Day”라는 곡으로 복음송 부르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는 시민의 취향에 대한 매스컴의 예민한 반응인 것이다. 특히나 블랙 가스펠(Black Gospel)팀이 등장하기라도 하면 그들은 거의 광적이 된다.

열네 번째,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의 작품이 지금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어느 때부터인가 “미우라 아야코는 한 특정 종교 즉 기독교의 변증가” 라고 알려져 있었기에 일반 시민들이 그의 저서들을 읽지 않았다. 그러나 1996년 “총구(銃口)”라는 작품(한국어로 번역이 되었음)으로 일본문학상 가운데서 두 번째로 권위를 가진 “이하라사이카크상(井原西鶴償)”을 받은 후 그녀의 작품이 재평가 되어 일반 시민들이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상을 받고 “비로소 내 작품이 일본인들에게 인정되어 기쁘다”라고 말했고 얼마 후 하늘 나라로 옮겨갔다. 미우라 아야꼬(三浦 綾子) 작품은 거의 모두가 복음에 관한 생생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빈 마음으로 그의 작품을 읽는 자들은 반드시 감동을 받을 뿐 아니라 변화되게 되어 있다. (왕 간사 박성록 교수의 전도)

열다섯 번째, 십자가의 장식이 눈에 뜨이게 많아졌다.

 거의 모든 여자들의 목이나 귀에 십자가가 걸려 있다. 십자가의 의미를 아느냐고 물으면 “모른다. 보기가 좋아서 달고 다닌다”고 한다. 이것 역시 보통 일이 아니다. 주님의 때가 오고 있다는 증거 중의 하나라고 본다. 나는 길거리에서 십자가를 달고 다니는 한 젊은 여인에게 “십자가는 보기 좋아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당신과 우리 모든 인류의 죄 값을 대신 지고 죄 없으신 예수님이 달려 죽으신 증거물이다! 이 예수님을 믿으면 축복이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 받는다. 십자가는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 임을 명심하라” 라고 말했다. 그녀는 부르르 떨며 창백해진 모습으로 떠나간 일이 있었다.

 

열여섯 번째, 자동차에 붙이는 부적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매년 정초, 신사나 절에 가서 비싼 부적을 사다가 자동차 번호판 위에 달고 다녔는데 최근에는 그런 것들을 거의 볼 수 없다. 그런 것을 부착하고 다녀도 사고는 난다는 증거일 것이다. 신사나 절간에 가지 않는다는 증거다. 20년 전만 해도 정초가 되면 대문에 이상스러운 장식들을 많이 해 놓았는데 그것도 많이 줄었다. 또 정초 밤거리에 촛불을 켜놓고 점쳐주는 여인들이 많았는데 그 수도 현저히 줄어들어 최근에는 거의 불 수 없는 현실이다.

열 일곱 번째, 일본의 모든 호텔 가운데 50,000개에는 채플이 지어져 있다.

 젊은이들의 결혼식을 호텔로 꼬시어 피로연을 열게 함으로써 돈을 벌기 위해 세워진 것이 채플이다. 그러나 최근에 이 호텔 채플에서 평일에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 이 일이 계속된다면 일본의 5만개의 호텔 채플은 모두 교회가 되어 일본열도에는 일시에 5만개의 교회가 불어나 한국교회의 수와 맞먹는 교회가 존재하게 된다는 계산이 가능해진다.

열 여덟 번째, 지금 일본열도에는 CHURCH SCHOOL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진화론에 입각한 일본에는 지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자살인구가 매년 3만4천명이 넘었고 사람의 목숨을 초개처럼 가볍게 여기는 풍조로 인해 살인과 자살이 자행되고 있다. 이제 일본은 교육으로 또는 법으로 컨트롤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 뜻있는 목회자들에 의해 교회학교가 여기저기 세워지고 있다. 현재 일본열도에는 50여 개 세워져 있고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마도 10년 후가 되면 적어도 몇 백 단위의 교회교가 세워질 전망이다. 오끼나와의 세계선교교회에서 운영하는 국제교회학교에서는 04년에 9명의 고등학생이 졸업을 하였는데 그 가운데 7명이 미국과 일본의 신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들은 돌아와서 일본의 교회학교 성장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계속해서 해마다 졸업생들 가운데서 헌신자가 많이 배출되고 있다. 이 교회에서는 미구에 대학까지 세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열 아홉 번째, 일본열도에 김치 붐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 교회를 배우려는 인본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일간의 장벽은 무너져 가고 있다. 일본 성도들이 한국에 올 때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려는 불신자들을 동반하도록 하여 믿음 좋은 가정에 민박시켜 전도의 기회를 찾는 가운데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 교회도 있다. 03년도에 만 70세의 나이에 8,848m의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한 일본인 미우라(三浦 雄一郞)씨는 “어떻게 그 나이에 그렇게 높은 산을 올라갈 수 있었느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등산할 때 30Kg의 김치를 가지고 가다가 머무는 곳에서는 반드시 김치 찌개를 해먹고 기운이 나면 등산을 계속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해서 그는 무료로 김치 홍보 대사의 역할을 했다. 그는 만 75세의 나이로 08년 5월 26일 또 다시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는 역사를 이루었다. 그 뿐이랴? 수년 전에 동남아를 휩쓸었던 사스(신형 폐렴)로 인하여 무수한 사람들이 죽었는데 한국인들은 한 사람도 걸리거나 죽은 일이 없었다는 뉴스가 보도된 이후로 김치는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세계 5대 먹거리 중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스무 번째, 한국 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영화, 연속극들이 인기 절정에 놓여있다. 특히 배용준이 주연한 ‘겨울연가’는 위성으로 지상 파로 계속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대장금’도 대인기였다. 한국어 배우려는 무리가 급증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인 크리스천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자연적으로 복음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한국인 교회에는 한글을 배우려는 일본인들이 방문해오고 있다. 사실 야쿠자의 전도도 한국인 자매들을 만난 그들이 복음을 듣고 신자가 되고 목사가 된 케이스이다. 지금 일본의 거의 모든 TV는 한국의 연속극을 방영하고 있다. 대개 7년이면 열풍은 끝난다는데 한국열풍은 제2기로 접어들어도 식을 줄을 모른다. 더구나 최근에는 소녀 시대 등 한국의 젊은 여가수 그룹들이 인기절정에 이르러 10대와 20대의 젊은이들 그리고 30대 이상 4, 50때 이상까지 열광시키고 있다.

 

스물 한 번째, 요즈음 일본의 청소년, 대학생, 청년들이“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수가 접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 사실은 갤럽조사에서 밝혀졌다. 몇 년 전 미국의 갤럽조사에서 내 놓은 통계에 의하면 일본의 청소년들 가운데 거의 37%가 자기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을 했다고 했다.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으면 “다니지는 않지만 나는 분명히 그리스도인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스물 두 번째, 요즈음 홈 처치, 셀 처치가 왕성히 생겨나고 있다.

 기성교회의 모임은 점점 약해져 가고 있는 반면 그룹으로 모이는 모임은 점점 왕성해가고 있다. 물론 평신도들 사이에서 이런 모임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20여년 전에 짐 몽고메리 라는 선교 전문가가 “일본의 지역적, 인간 관계적인 특성으로 볼 때 일본에는 1천명당 교회가 1개씩 필요한 나라다”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의 말이 타당하다면 일본에는 130,000개의 교회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스물 세 번째, 러브 소나타 등의 영향으로 신자들이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07년부터 온누리교회가 주최자가 되어 “러브소나타” 라는 주제로 문화를 통한 전도를 시도하여 오끼나와, 후꾸오까, 오사카, 동경, 센다이, 삿뽀로, 아사히카와 등지에서 작게는 2천명 이상, 많게는 2만 명 이상이 모였다. 두드러진 현상은 일본인 성도들이 일본복음화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가짐과 동시에 이웃 사람들에게 전도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러브 소나타가 시작될 무렵에는 일본교회도 일본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도 반대입장이었으나 그 결과가 너무 좋기 때문에 지금은 그 지역의 목회자들이 나서서 “비용은 우리가 부담할 것이니 그냥 와서 열어달라”고 한다.

스물 네 번째, 비전을 가진 외국인 선교사들이나 기도하는 일본인 목회자들이 일본열도에 복음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환상으로 보고 있다.

 지금 일본열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영적 변화를 보며 기도할 때, 앞으로 빠르면 10년, 늦어도 30년 전후에 지난 2천 년간 그 어떤 나라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엄청난 영적 부흥이 일본열도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슴이 설렌다. 이것은 나만의 환상이나 꿈이 아니다. 일본을 위해 애통하며 깊이 기도하고 있는 선교사들이나 일본인 목회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들이다. 심지어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평신도들 가운데서도 그런 환상을 보며 목숨을 걸고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이 일본열도에 사는 일본인들이 회개하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하시는데 누가 감히 일본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일본을 복음화하여 인류의 발을 씻는 종의 나라로 만드실 그 날이 반드시 속히 올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일본 선교에 힘써야 한다.

 CIS(교회정보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에는 2012년 11월 1일 현재 7,932개 교회가 있다(전년비 96개회가 문은 닫음). 등록신자의 수가 544,259명으로 전 인구 126,672,365명의 0.43%, 주일 예배 출석수가 278,856명으로 전 인구의 0.22%, 연간 수세자 7,257명, CS 학생들 52,498명, 한 교회당 평균 등록수 69명(예배출석신자 36명), 788개 도시 가운데 26개시에는 교회가 하나도 없고 그나마 1 교회 밖에 없는 시가 98개나 된다. 인구 2만 명 이상 사는 지역 가운데 42곳에는 교회가 없다. 정촌부(町村部) 929가운데 521에는 교회가 없다. 1교회가 전도해야 할 대상은 16,174명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작고 약하다고 해서 일본인 교회를 제쳐놓고 타국의 선교사들만 쓰지 않으신다. 일본 교회를 통해 일본을 복음화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본 교회를 깨우고 격려하여 스스로 자국복음화를 하도록 도와야 한다.

 

첫째, 우리는 일본 교회에 성경에 목숨을 거는 신앙을 전수해 주어야 한다.

 91년 7월, 후지산 등산기도회에 참석키 위해 일본에 오신 25명의 한국 목회자들 앞에서 동경성서교회의 오야마 레이지목사(한일 국교가 정상화 된 이후 바로 1천 만 엔을 모금하여 수원 제암리교회를 재건한 목회자)는 특강 때 다음과 같이 귀한 말씀을 하셨다. [한국 신자들은 성경에 목숨을 걸고 절대 순종하는 신앙을 갖고 있기에 그렇게 강합니다. 성경이 가라 하면 가고, 멈추라 하면 멈추고, 바치라 하면 바치고, 돌아서라 하면 돌아섭니다. 버리라고 하면 버립니다. 그러나 일본신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명령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절대성에 대한 신뢰의 부족으로 이 핑계 저핑계 대면서 순종하지 않습니다. 제발 여러분께 부탁 드립니다. 한국교회와 같이 성경에 목숨을 거는 신앙을 일본 교회에 전해 주십시오!]

 

그는 일어나 90도로 두 번이나 절을 하며 부탁했다. 나는 큰 격려를 받았었다. 이것은 바로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 말씀을 실감하고 있다. 일본 교회는 3B(Bart, Brunner, Bultmann)가 망쳤다는 말이 있다. 그들 3인은 성경을 비 신화화한 장본인들로써 성경의 가치를 떨어뜨린 사람들이었다. 일본신학이 독일신학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이렇게 연약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둘째, 한일 양국 간에 자매결연 운동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일본 교회를 깨우는 최선의 방법 중에 하나는 양국 교회가 자매결연을 맺고 피차 왕래하며 복음의 은혜를 나누면서 양국교회의 장점을 서로 배우며 영성을 동질화 하는데 있다. 감사한 것은 일본 교회가 한국 교회 목사들을 존경하고 모셔다가 말씀을 듣고자 한다는 것이다. 일본 신자들을 한국교회에 데려다가 민박을 통해 가정예배, 새벽예배, 철야예배, 금식기도, 산기도, 구역예배, 제자훈련, 영성 훈련, 헌금과 찬양훈련 등을 체험시키고 섬기는 교회에 돌아가서 그대로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일본의 중요한 거점지역을 돌아 본 나는 성경말씀을 사랑하고 그 가르침 대로 살고 있는 한국 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내왕하는 일본교회는 어느 지역에서나 예외 없이 착실히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일본인들은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3개의 시가 합병하여 인구 75만 명의 도시로 커진 하마마츠(浜松)의 어느 교회는 S라는 목사가 자기 가족과 함께 4.5조 다다미 방에서 개척한 교회였다. 6년이 지났으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새 신자는 물론 손님도 친구도 오지 않았다. 개척사역을 그만 둘까 고민하고 있는데 친구 하나가 찾아왔다. “교회를 부흥시킬 맘이 있으면 한국교회를 배워라”며 한국교회 통합측의 S 목사를 소개해 줬다. 그때부터 그는 생쥐가 풀 빵 바구니에 드나들 듯 한국을 왔다 갔다 하였다. 그로부터 12년 후에는 350명의 신자가 되었고 본당 200평의 예배당을 지었으며 11개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해외에 5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이것은 95년도의 이야기이다. 2천 년도에 그 교회를 다시 방문했을 때 개척교회가 39개로 증가해 있었고 미국에 연방정부가 인정하는 선교사 훈련센터를 설립해 놓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350명 수용 가능한 큰 관광호텔을 인수하여 캠프장으로 쓰고 있었으며 65,000평의 산을 구입하여 전원교회를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정말 기적 같은 역사가 그 교회를 통해서 여기 저기 나타나고 있었다.

 

셋째, 일본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 지구촌에는25,000 정도의 대학이 있다. 그 가운데 5천명 이상의 대학생을 가진 대학이 8천 개에 6천만 명의 대학생이 있다. 세계인구의 1%인 셈이다. 그 가운데 소위 일류대학이 1,548개, 그 가운데 88개가 일본에 있다. 일본에는 4년제 대학생만도 230만 명 이상이나 된다. 고향집을 떠나 도시로 유학 온 학생들은 타테샤카이(종사회)의 지배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스럽게 복음을 수용하고 있다.

 80년대 말경 국영 텔레비전인 NHK가 18세에서부터 24세까지의 젊은이들 수 천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만일 내가 종교를 택한다면?”이라는 질문에 신사가 5%, 불교가 11%, 기독교가 33%였다. 이들이야말로 황금어장이다. (어떤 다른 단체의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를 택하겠다는 수가 50%를 넘고 있는 있음)

 

 나는 2년간(94-95)에 걸쳐 매주 평균 5, 600명 정도의 노숙자들을 상대로 전도활동을 전개한 일이 있었다. 멀리 떨어진 온천을 하루 임대하여 대형버스 8대에 도시락 8백개를 싸가지고 350명을 싣고 가서 세례를 베풀었다. 2년간에 이렇게 많은 신자가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반드시 일본 개신교 역사에 기록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노숙자들의 전도를 받고 예수 믿을 사람은 별로 없다.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생은 전 인구의 1% 밖에 되지 않으나 만일 그들 중 한 사람이 변화되면 나머지 99명에게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몰몬교나 통일교나 옴진리교 등 이단들이 젊은이들을 목표로 비상침투 작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시사적인 교훈이다.

 

넷째, 재일한국인 2, 3세들의 제자화로 동포와 일본인 전도를 하거나 더 나아가 일본의 젊은이들 가운데서 헌신된 자들을 한국의 신학대학에 보내어 훈련시켜 역 파송한다면 더욱 놀라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국적만 한국인이지 사고 방식이나 생활자세는 완전히 일본인이다. 그들의 일본어 구사는 일본인만큼 완벽하다. 이들을 복음으로 무장시켜 동포와 일본인들을 전도케 한다면 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만일 한국 교회가 재일 동포 가운데서 헌신자가 생길 경우 입양하여 한국의 연세어학당이나 이화어학당에서 한국어를 1년쯤 배우게 한 다음 그를 한국의 여러 신학대학에 장학금을 주면서 신학을 연수케 한 후, 일본으로 역 파송한다면 선교사 한 사람을 일본에 보내어 언어훈련부터 시켜가면서 선교하는 비용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놀라운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또 한가지 한국교회가 시도해야 할 사항은 일본 교회의 젊은이들을 한국의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한 다음 선교사로 임명하여 한국 교회가 후원하여 일본으로 다시 보낸다면 이것이야말로 1석2조의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다섯째, 유학생, 주재원, 상사원들을 통한 일본인 선교를 모색해야 한다.

 한국에서 일본에 와 있는 유학생은 3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취학생, 연수생 등을 포함시킨다면 훨씬 더 많은 숫자가 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들에게 평신도 선교사의 사명의식을 심어 보내는 일이다. 주재원이나 상사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일본서 자비량선교사의 직임을 잘 감당할 때 붙잡혀 간 히브리소녀가 나아만 장군의 집에서 선교사의 사명을 수행했던 것처럼, 봐이킹족에게 습격 당해 노예나 첩이 되었던 스페인의 경건한 여인들이 영국을 예수 믿는 신사의 나라로 만든 것처럼 참으로 상상을 초월한 생명의 열매를 주 앞에 드릴 수 있다. 만일 젊고 발랄한 크리스천들에게 평신도 선교사라는 제도적 장치를 해서 보내지 않으면 그들은 빠르면 2, 3개월 안에 늦을 경우, 반년 안에 일본의 저질 문화에 빠져버리고 만다.

 

여섯째, 일본 교회의 지도자들을 격려하고 도전하여 자기 교회의 청년들을 신학훈련을 시켜 개척교회를 극대화 하는 일이다.

 지금 일본에 있는 신학교들은 헌신자가 없어 대부분 문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된 원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본 교회에 젊은이가 너무 적을 뿐 아니라 일본교회의 목회자들이 자기 교회의 젊은이들에게 헌신하도록 도전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일본인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용기와 담력을 주고 방법을 가르쳐 주어 젊은이들 전도와 양육에 함께 진력을 다한다면 일본교회의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보냄 받은 선교사들은 현지 일본인들의 교회를 도와가며 선교하는 Win-Win 체제를 실현해 간다면 정말 놀라운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일곱째, 단기 선교를 극대화 해야 한다.

 한국CCC에서는 뉴라이프2000(새생명 2000)이라는 프로젝트로 1991년 7월에 오사카에 400명의 대학생들을 보내어 33교회에서 현지교회를 섬기게 한 것을 기점으로 하여 2013년 1월까지 22년 동안에 오사카(関西), 후꾸오까(九州), 나고야(東海), 동경(関東), 삿뽀로(北海道), 요꼬하마(横浜), 교오또(京都), 코오베(神戸), 시가(滋賀), 오끼니와(沖縄), 시즈오까(静岡), 군마(群馬), 이바라끼(茨城) 사이따마(琦玉)등 201지역 1,677교회와 인근의 대학들에 연인원 20,113명을 보내어 2주에서 4주씩 전도 봉사케 하였다. 물론 여기 언급한 인원들 가운데는 대학생뿐 아니라 청장년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 교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현지교회 목사의 목회계획에 순종하며 종의 자세를 가지고 섬겼다. 1년 내내새 사람이 하나도 오지 아니하고 5년이 가도 세례 받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일본 교회가 뉴라이프 단기 선교팀을 받아들여 전도한 결과 어떤 교회는 19명이 세례를 받는 이변이 일어났다. 교회에 와서 예수 믿겠다는 신앙고백을 하면 바로 다음 주일에 세례를 주는 것이 일본 교회이다. 최소한 2, 3명에서 십 7, 8명씩 세례를 받는 일은 일상다반사로 나타났다. 어떤 교회는 5년 동안에 4배가 되기도 하였고 2배가 된 교회도 여러 곳에 많이 생겼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목회자들의 사고 방식이 180도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20년 전에는 “일본은 안 된다” 말하던 그들의 입에서 뉴라이프 단기 선교가 시작된 5년째인 95년부터는 “일본도 가능하다. 나도 할 수 있다”라고 바뀐 것이다. 이것은 정말 천지개벽과도 같은 변화이다.

 

 그뿐 아니다. 평신도들의 생각도 판이하게 달라졌다. “전도는 목사나 전도사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이 뉴라이프를 통해 모든 신자의 신성한 의무이자 특권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다. 전에는 목회자의 지시여서 마지 못해 따르던 신자들이 이제는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교회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그들은 “전도는 행동하는 믿음이다”라는 사실을 체득하고 그대로 실천하여 교회의 부흥성장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92년도 관서지역에 2,020명의 한국대학생들을 초청, 137교회에서 2주에서 4주씩 전도 봉사케 했을 때 일본어를 네 마디 밖에 모르던 여학생이 지나가는 신사에게 말을 걸었다. “곤니찌와(안녕하세요)” 사영리를 내밀면서 “욘데 쿠다사이(읽어주세요)” 다 읽고 나니까 “와까리마스까(아시겠어요?)” 예! 라고 대답하자 “신지나시이(믿으세요)” 라고 말한 후 그를 데리고 자기가 섬기는 교회로 갔다. 그날은 한국 음식을 잘 차려 놓고 그 동안 접촉된 사람들을 초청하여 대접하면서 결신을 재확인시키는 Korean Night였다. 그는 단기 선교팀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율동을 하면서 부르는 “사-산비시요 수쿠이누시 예수니! (자 찬미합시다 구세주 우리 예수께)”라는 찬송을 들었다. 그는 성경이나 찬송가와는 전혀 관계가 없던 완전한 넌 크리스천이었다.

 

 2시간 반 정도의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그 찬송 소리가 걸을 때도 운전할 때도 사무를 볼 때도 자리에 누울 때도 끊임없이 주야로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비인후과병원을 두 세 곳에 가서 진찰을 받았으나 이상이 없다고 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그는 다음 주일에 끌려갔던 그 교회에 갔다. 전도하던 한국 대학생들은 이미 다 귀국해버린 후였다.

 그는 담임목사님께 구세주 예수님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그 목사님에게서 4영리를 한 번 더 듣고 신자가 되었다. 그는 다음 주일 부하 6명을 데려다가 등록시켰다. 오사카에서 제일 큰 회사의 공장장이었다. 그가 출석하는 교회는 3년 동안에 35명의 신자가 늘었는데 그 사람이 32명을 전도했다. 그의 이름이 한국 말로 전중(田中)씨인데 일본말로는 다나까이다. 그 이름대로 다나까 씨가 “다 나까” 버린 것이다.

 

 96년도에 단기선교가 시작되어 12년으로 17년째 진행된 북해도 뉴라이프 전도는 그 어느 해보다도 열매가 풍성하였다. 삿뽀로 시내의 M여자대학은 아예 여름의 정기 프로그램에 편입하여 매년 단기 선교팀을 맞이하겠다는 결정을 했다. 에베츠시에 있는 낙농대학은 원래 미선스쿨이었으나 지금은 형식적인 채플만 있어 학점을 이수하기 위해 평일의 채플에 12, 3명씩 참석했는데 단기 선교팀이 가면 보통 2백명 이상이 주 3회씩 모이는 진풍경이 일어났다. 금년에는 무려 5백명 이상이 채플에 참석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뿐이 아니다. 2012년에 참가한 7교회에 일반 시민 이외에 가장 적게 참여한 대학생이 3명에서 5명, 8명, 9명, 10명, 11명이었고, 많게는 62명의 대학생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4시간씩 단기선교 팀 멤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며 찬양하고 설교 들으며 식사하며 깊은 교제를 나누었다. 그들 가운데 결신자도 많이 생겼다. 이건 정말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94년도에 시작된 큐우슈(九州) 지역에서는 7월 6일부터 8월 17일까지 42일간 15교회가 참여하여 단기 선교팀과 함께 전도하였다. 대학생들뿐 아니라 국악팀들과 찬양팀 그리고 요리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입체적인 전도가 이루어졌다. 특히 지역 별로 진행되는 축제행사에 참여함으로써 한일문화 교류의 차원에서 매우 좋은 반응을 얻게 되었다. 일종의 문화 전도가 먹혀 들어간 것이다. 태권도 공연을 통한 스포츠 교류, 홈스테이 등을 통한 일본 문화 익히기 등은 한일간의 높은 장벽은 낮추는 데 한 몫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런 단기 선교 사역을 통해 집계된 결신자 만도 수 십 명에 이르고 있다. 지진과 해일로 인한 동일본 지역의 피해와는 거리가 멀리 덜어져 있는 큐우슈지역이지만 이들도 방사능 피해에 대해 많은 염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들이 가난해진 상태에서 복음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외 동경, 요꼬하마, 나고야, 오사까, 교오또, 고오베, 시가, 오끼나와 등에서는 주로 대학생들을 전도하여 많은 열매를 얻게 되었다. 부족한 우리들을 쓰셔서 큰 역사 이루시는 주님의 성호를 찬양한다.

 

 신약성경 요 14:12-14을 보자.“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하나님께서 어느 날 당신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이 세상의 모든 새들을 모아놓고 날기 대회를 하셨다. 맨 먼저 하나님 발 앞에 앉아 있던 장닭은 정원을 몇 바퀴 돌고 왔다. 다음에는 하나님 어깨에 앉아 있던 참새가 이 집 저 집 건너 집 등 세 집을 돌다가 왔다. 세 번째는 건너 편 나무 가지에 앉아 있던 비둘기가 이 마을 저 마을 건너 마을 등 세 마을을 날아다니다 왔다. 오늘 괜히 날기 대회를 개최했다고 후회 막심하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독수리가 나타났다. “네 번 째는 제가 날아 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은 채 “그래 날 테면 날아보렴?” 이라고 시큰둥하게 말씀하셨다. 독수리는 후닥닥 공중으로 몇 백 미터 치솟아 오른 후 한 바퀴 비잉 돌더니 해 뜨는 동쪽으로 사라졌다. 다섯 번째, 열 번째, 백 번째, 이백 번째, 삼백 번째, 삼백오십 번째, 맨 나중에는 낮에는 기어 다니고 밤에는 날아다니는 박쥐까지 모든 새의 날기 대회가 끝났을 때는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져 온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때 독수리가 서쪽 하늘에서 나타났다. 놀라신 하나님께서 “너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라고 묻자 “예, 하나님! 저는 오대양 육대주를 돌고 왔습니다!” 이 말에 감동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상기된 모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새들은 다 모여라! 오늘 너희들에게 주는 상급은 날은 만큼이다!” 그리하여 장닭은 정원을, 참새는 세 채의 집을, 비둘기는 세 마을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독수리는 5 대양 6대 주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과 우리 모두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 교회와 우리 자녀들의 이야기이다. 꿈과 비전을 가지고 민족과 세계를 달라고 기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의 큰 일들을 맡기신다는 말씀이다.

 시편 81:10b를 보면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였다. 여러분들이 “지구촌 24,000종족 70억 만민 구원을 우리들에게, 우리 교회에 맡기십시오!” 라며 그렇게 해 주실 줄 믿고 기도한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여러분이 아무리 크게 요청한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는 “건방지다! 웃기지 말아라! 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성경전서와 3위 하나님의 대답은 “오냐!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이다.

 

 교회의 청년들 40명 이상을 목사로 양육한 형제단 소속의 나고야교회의 케도 켄지(毛戸健二)목사는 “CCC의 뉴라이프가 일본교회와 손을 잡고 일본복음화에 힘을 쏟아준다면 일본 교회 부흥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사변적이고 깊은 지식을 추구하는 일본 교회, 우상과 혼합종교의 온상에서 그 사고의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한 일본 교회가 한국 교회 젊은이들로 구성된 뉴우라이프를 왜 그리도 환영하는가?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복음(예수님의 유일성)에 대한 확신과 단순한 증거이다. 복음은 설명이 아니라 선포이다. 종교인이 전 인구의 212%를 상회하는 일본의 정신풍토 속에서 복음의 단순한 전달은 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선교사와 목사의 무덤”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본에서, 또 “일본은 전도가 자살한 나라”라고 소문나 있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아니하고 언어와 전통의 두꺼운 장벽과 문화화된 종교의 틈바구니에서, 신학훈련도 받지 아니한 풋내기 대학생들이, 때로는 비 내리는 길 바닥에 꿇어앉아 “일본을 복음화시켜 주십시오” 라고 울부짖는 모습으로, 축호전도 하면서 구 일본군 장교출신의 집을 방문하여 초인종을 눌렀을 때 “감히 죠센진(朝鮮人)이 일본에 와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며 일본인의 대문을 두드려?” 라는 호통을 맞으면서도 “오직 예수! 우리 주님의 사랑”으로 열심히 전도하는 모습에서 일본 교회의 성도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 안 된다. 일본복음화는 불가능하다” 라는 말은 지상 최대의 거짓말이다. 사탄의 속임수이다. 사탄의 음흉하기 짝이 없는 술책이다. 50평짜리 예배당 안에 쥐 한 마리가 들어왔다고 가정하자. 100명이 이 쥐를 잡으려고 끝이 날카로운 막대기를 두 개씩 가지고 있다. 이 쥐에게는 적이 얼마인가? 200개? 아니다. 두 발까지 합하면 400이다. 쥐가 자기를 죽이려는 400개의 적에게 초점을 맞추면 오금이 저려 멍청히 멈춰 있다가 밟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이 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어느 곳에 구멍이 있는가를 찾는 일이다. 그 구멍이 벽에 있는 지, 피아노 뒤에 있는 지, 창문이 열려 있는 지, 또는 천정에 있는 지, 현관이 열려있는지 구멍 하나만 찾으면 이 쥐는 살 수 있다.

 

 일본복음화를 불가능케 하는 방해물이 8백만 개, 1천만 개 있다 할지라도 한 가지 가능성만 있으면 일본복음화는 가능하다. 그 가능성이 무엇인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일본인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일본인들을 구원 하시려고 독생자까지 주셨는데 누가 일본복음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OK 하시면 만사는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일본 교회의 영성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태풍전야의 고요함 같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지도자와 성도들이 기지개를 펴고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1세기를 맞이하여 각종 이벤트가 교단 별로, 초교파적으로 계획되고 또 진행되고 있다. 연합 금식기도회가 열리는가 하면 전도대회가 자주 열리고 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일본 땅에 편만할 날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더구나 2011년 3월 11일 14:46분에 동일본에서 일어난 지진과 해일로 일본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다. 동일본에서 전도하면 10명 가운데서 한 사람이 반응을 보일까 말까 했는데 지금은 7, 8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눈물 흘리며 다가오고 있다. 일본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말이 전역에 퍼져있기 때문에 지금 일본은 복음 전도의 최고 좋은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나가는 말

 일본에는 세계 수십 개국에서 파송된 베테랑급 선교사 2천 여명이 사역하고 있다. 열매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을 지라도 그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열매를 거둘 때가 되어가고 있다. 복음파(JEA), 은사파(NRA), 교회협의회(NCC-자유주의), 그리고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아니한 제 4의 그룹에 속한 분들이 뉴라이프 프로젝트를 도입하고 있다. 우리는 오직 한 권 성경과 참 하나님, 구주와 주님이신 예수님,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님 즉 삼위 하나님을 일본인들에게 전해 줘야 한다.

 

 일본의 W. 성결교단 교단 대표인 미네노 목사(요도바시교회)는 한국 교회의 선교사들(자비량 등 평신도 선교사들도 포함하여)에게 당부하고 있다.

첫째, 과거와 현재의 일본 문화, 일본인의 정신구조, 기질에 대해 알아야 한다.

둘째, 파송된 지역의 고유 문화와 정신 구조, 기질을 파악해야 한다.

셋째, 일본 예절을 배우고 일상생활 속에서 그 예절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넷째, 지역사회의 필요를 파악, 주민의 불만과 반감을 사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일본인에게 맞게 복음을 전하려면 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해야 한다.

여섯째, 두 나라의 생활 습관의 차이를 잘 이해, 불필요한 마찰을 피해야 한다.

일곱째, 기도 및 선교에 대한 열정과 철저한 신앙훈련 등 한국의 좋은 영적 풍토가 일본 기독교계를 더 많이 자극해 주기를 바란다.

여덟째, 영성 및 지성과 더불어 사랑으로 균형 잡힌 전인적 복음전도가 필요하다. 단순한 열정은 경원시 되고 때로는 무시 당할 수 있다.

아홉째, 모든 연령층과 계층에 다양하게 복음을 제시해야 한다.

열 째, 명망 있는 일본 목회자나 건전 교단, 교회들과 협력관계를 맺어달라. (05.5.30. 국민일보)

 

 세계 선교를 지향하는 한국 교회는 일본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일본인의 94%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후예이다. 일본 사람들의 DNA는 한국인들의 그것과 일치한다. 일본선교는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의 후예를 복음화하는 일이다. 1천년 전에는 한일 양국 간에 통역 없이 자유롭게 왕래하였다. 지금 일본어는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하기 이전의 우리 나라 이두문자와 비슷하다.

 

 동방의 로마요 근대의 니느웨이며 현대의 아테네라고 일컬어지는 일본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를 정복하고 땅끝까지 가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사마리아 땅이다. 일본인들을 복음화하면 그들이 가진 239개의 모든 나라의 토지와 건물과 현지 통화들은 참으로 놀라운 선교 자원이 될 것이다.

 

 돈이 많이 들고 열매가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장 중요한 일본 선교를 너무도 쉽게 포기해 버리는 한국 교회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태국에서는 남자 신자 한 사람 얻는데 19년, 여자 신자 한 사람 얻는데 21년 걸렸다고 한다. 달마다 해마다 빈 탕 보고서를 보내면서도 언젠가는 열매를 거둘 것을 바라보면서 20년씩 전도한 선교사도 위대하지만 결신자 보고가 없어도 끝까지 후원한 서양 교회는 더욱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 빠르면 10년, 늦어도 30년 전후에 일본열도에서 지난 2천년 동안 어떤 나라도 겪지 못했던 영적 부흥이 일어날 것을 환상으로 보고 있다. 일본이 복음화되면 세계만민의 발을 씻는 주님의 몸종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지상 최대의 사랑의 복수가 될 것이다.

 

 일본이 부르고 있다. “와서 도우라”고 손짓하고 있다. 월드컵2002 공동주최로 한일간의 장벽이 무너졌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등 양국의 젊은이들이 1년씩 돈벌이해 가면서 공부할 수 있는 이런 분위기는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한류열풍이 강하게 일본 열도를 흔들고 있다. 05년 3월 아이찌현의 만국박람회 이후 우리는 비자 없이 6개월간의 체재가 가능하게 되었다.

 

한일 양국간에 6개월이 아닌 더 긴 기간을 노비자로 자유롭게 왕래할 날이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비자 문제가 자유스러워지는 까닭은 한국 교회가 일본복음화를 위해 한 몫을 담당해야 하는 영적인 측면도 배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선교에 뜻을 가진 한국 교회들이 정책적으로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일본인들을 초청하고 또 일본에 단기 선교단을 파송하여 열심히 전도한다면 놀라운 결과를 얻을 것이다.

 

일본에는 무목 교회가 1천 개 이상 있으나 한국에는 교회가 없는 목사들이 지천으로 많다는 말을 듣고 있다. 이런 목회자들 가운데서 일본선교를 위한 헌신자가 나와 한국교회의 뜨거운 기도와 후원을 받아 일본에 온다면 이건 일본복음화에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들에게서 독도, 위안부, 창씨개명 문제 등 망발, 망언, 망상을 없애는 지름길은 그들의 가슴에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다. 일본인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우리의 형제자매가 된다. 증오심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 한일 양국간의 진정한 화해는 복음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만일 한일 두 나라가 동반하여 세계 선교를 모색한다면 지진과 폭풍 같은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