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야 할 도서




플라톤 '국가'에 나타난 사상

"국가"는 플라톤 대화편 전체 저작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담고 있으며, 초기에서 중기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사상과 방법론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문체나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제1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기 이후에 속한다. 미하엘 보르트는 중기 대화편으로 본다. 그러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제1권은 초기 후기, 제2편~제10편은 중기 후기의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 이유는 이데아(idea), 관여(methexis), 결합(koinonia), 변증법(dialektike) 등의 개념이 제1권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1) 제1권

제1권을 ‘트라시마코스 편’이라고도 한다.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가 정의(正義)는 ‘강한 자가 얻는 이익’이라는 주장에 대해 대화 참여자 소크라테스가 이를 논박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정의)이 이익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강한 자의 이익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의술이나 조타술을 예로 들어서 거기에 사용되는 기술(techne)은 기술의 시혜를 입을 약자를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기술이나 힘을 강자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트라시마코스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2) 제2권

글라우콘은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을 연결해서 ‘올바름’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자 트라시마코스의 편에 서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말하도록 한다. 제2권에서는 ‘올바름(정의)’을 논의하기 위해서 그 자체로서 ‘좋은 것’과 좋은 것들 사이의 차이를 검토한다. ‘올바름’을 이해하기 위해 이론상 작은 나라에서 큰 나라로 가는 것을 예시하면서, 분업과 전쟁, 수호자 교육 등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플라톤은 수호자를 선발하기 위해 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그 교육 내용으로서 시가(詩歌)교육에 대해 논한다. 그는 아동 교육에서 신화나 설화, 신들의 다툼 등을 다루는 부분을 비교육적인 것으로 규정하여 제외할 것을 주장한다.

3) 제3권

여기에 플라톤은 시가교육에서 영웅, 죽음과 저승 등의 묘사에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부분들을 언급한다. 또 그는 모방(mimesis)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에서는 어린이들은 모방을 하게 되므로 거짓된 것, 비극적인 것, 질병, 만취, 좌절, 느슨하고 나쁜 리듬(음악) 등을 배우지 않도록 하고 용기, 절제, 경건, 자유인다움 등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이는 일종의 동일시(identification)를 통하여 아이들이 배운다는 점, 태도는 말보다 행위를 통해서 배운다는 점, 음악교육에서 어린이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데에 시사점을 준다.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서 ‘철학(philosophy)’ 개념도 나온다.

4) 제4권

여기에서는 올바른 나라에 대한 논의를 확대해 나간다. 올바른 나라는 아름다운 나라(kallipolis)이며, 시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나라이고, 지혜로운 나라이다. 여기에서 올바름과 아름다움은 궁극적으로 동일한 성격을 지닌다는 플라톤의 생각이 들어 있다(kalepa ta kala. 아름다움은 어렵다). 정의로운 나라는 세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되는데, 각각의 구성원에게는 각각의 덕성이 필요하다. 통치자는 지혜를, 군인은 용기를, 생산자는 절제의 덕성을 필요로 한다. 특히 절제는 화음(harmonia)과 같아서 지혜와 용기의 덕성과 달리 전 나라에 고루 필요한 덕성이라고 한다. 이들을 위한 교육(paideia)의 개념이 나타난다.

5) 제5권

여기에서는 수호자의 교육에 필요한 6세 교육이 논의된다. 제4권에서 나온 처자 공유의 문제가 교육의 문제로 이어진다. 어릴 적부터 공동체 교육을 위해서 공동 출산과 공동 양육, 여자들에게 평등한 교육의 필요성이 제시된다. 중요한 논술개념인 토론(dialektos)과 쟁론(eris)의 차이에 대한 구분이 나온다. 토론은 사고의 ‘분할(diairesis)’로서 요즘 말하는 마인드맵과 같은 사고훈련과 같다. 쟁론은 ‘낱말(onoma)에 붙들려 있는 것’으로서 요즘 말하는 말꼬투리 잡기와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소피스트적 논박'에서 쟁론적 논의를 '말싸움'이라고 하였고 스피노자는 그의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에서 '이기는 방법'으로 규정했다. 토론의 목적은 참된 앎을 추구하는 과정이지 승리법은 아니다.

6) 제6권

이 권에서 특히 중요한 유비가 나오는데, 태양의 비유와 선분의 비유가 그것이다. 태양의 비유를 통해서 보이는 것들과 그것들을 볼 수 있게 하는 근원(dynamis.힘)을 논하며, 눈의 힘은 태양에서 분배 받는 것(methexis)라는 것. 혼에 유비시켜도 마찬가지인데, 진리와 실재에 대해 감각적인 것과 지성적인 것을 대비시킨다. 선분의 비유에서는 억측(doxa)이나 확신(pistis)은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것이고, 추론적 사고와 참된 앎(epistēmē)은 오직 지성(noesis)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것으로 대비시킨다.

참고로 유비는 A와 B의 관계는 C와 D의 관계와 같다. 비유는 A와 C가 같거나, 유사하거나 포함관계가 있어야 한다(유비와 비유의 차이).

7) 제7권

여기에서는 지식과 교육의 중요한 개념들이 가장 많이 나온다. 동굴의 비유를 통해서 무지한 상태를 벗어나 참된 앎의 세계로 나아가기까지 교육의 힘이 강조된다. 파이데이아(paideia)는 원래 귀족 자제의 교육을 돕는 노복(奴僕)을 뜻한다.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참된 이데아의 세계를 알리려는 교사의 태도, 자유인의 교육, 놀이교육, 변증술의 교육까지 중요한 개념들이 나온다. 특히 혼이 위를 바라보도록 하는 교육은 오늘날 교육에서 목적 있는 교육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8) 제8권

여기에서는 잘못된 정치 체제 4가지(명예정체, 과두정체, 민주정체, 참주정제)와 최선의 정치(철학자가 다스리는 정치체제)를 비교한다.

9) 제9권

참주와 최선자(철인왕)의 극명한 대비를 한다. 특히 제1권에서 트라시마코스가 주장한 정의로운 나라가 강자가 이익이 되는 법정체계라는 주장이 논박된다.

10) 제10권

시에 대하여, 침상 제작자 유비를 통하여 이데아를 말하고, 후반부에서는 사후 세계에 대해 논한다. 레테(lethe) 강의 비유를 통해서 이데아로의 회귀를 이야기한다. 특히 이 장에서는 윤회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 도표는 플라톤의 "국가(Politeia)" 전권을 주제와 방법으로 간략하게 분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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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렌 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이라는 이름의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깊은 해부

1. 들어가며

『죽음에 이르는 병』은 흔히 “소설”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작품은 철학적·신학적 사유가 극도로 응축된 실존 철학의 결정체에 가깝다. 
덴마크의 사상가 쇠렌 키르케고르가 1849년에 발표한 이 저작은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근원적인 병, 즉 절망을 다룬다. 
여기서 말하는 절망은 감정적 우울이나 일시적인 좌절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존재론적 병이다.

이 작품은 이야기적 서사나 극적인 사건 대신, 인간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유의 구조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이르는 병』은 소설적 독해가 가능한 텍스트다. 
인간이라는 ‘등장인물’이 절망이라는 상태 속에서 어떻게 분열되고, 어떻게 스스로를 잃어버리는지를 하나의 내적 드라마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2. 작품의 개요와 기본 구조

『죽음에 이르는 병』은 ‘안티-클리마쿠스(Anti-Climacus)’라는 가명으로 발표되었다. 
키르케고르는 여러 가명을 통해 서로 다른 실존 단계의 목소리를 연기했는데, 이 가명은 그중에서도 가장 철저히 기독교적 이상에 도달한 시점을 상징한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절망이 무엇인가를 철학적으로 정의하고 유형화한다.
2부에서는 절망이 곧 죄라는 신학적 결론으로 나아간다.

이 구조는 단순한 이론 전개가 아니라, 독자가 자기 자신의 내면을 점점 더 깊은 층위에서 직면하도록 이끈다. 

3. 줄거리 : 서사가 없는 서사

이 작품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줄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내적 여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분명한 흐름이 있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을 “자기 자신과의 관계이자, 그 관계가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단순히 육체와 정신의 결합이 아니라, 이 둘을 끊임없이 조정하고 인식하는 존재다. 
문제는 이 관계가 어긋날 때 발생한다.

절망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제시된다.

첫째, 자신이 절망 상태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절망
둘째, 자기 자신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절망
셋째, 자기 자신이 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 없이 그렇게 하려는 절망

이러한 절망의 단계는 점점 더 의식적이고,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간다. 
가장 위험한 절망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절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절망이다. 
이때 인간은 스스로를 신처럼 여기며, 동시에 가장 깊은 자기 상실에 빠진다. 

4. 주제의식 : 절망이라는 실존의 병

『죽음에 이르는 병』의 핵심 주제는 단연 절망이다. 
그러나 이 절망은 죽음으로 끝나는 병이 아니다. 
오히려 죽을 수 없음, 끝낼 수 없음이 이 병의 본질이다.

키르케고르는 말한다. 
이 병은 육체를 죽이지 않지만, 영혼을 끊임없이 소멸 상태에 머물게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 채 살아가며, 그 상태가 지속되는 한 절망은 계속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절망이 특정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 도덕적인 사람, 종교적인 사람조차도 절망 속에 있을 수 있다. 
절망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하나님 앞에서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5. 인물 분석 : 등장인물 없는 인간 유형들

이 작품에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인간 유형이 분석의 대상이 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형은 무의식적 절망자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잘 적응하고, 문제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타인의 기준과 사회적 역할 속에서만 자신을 규정한다.

다음은 자기 자신이 되기를 거부하는 인간이다. 
이들은 자신의 한계, 약함, 불완전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친다. 책임, 자유, 선택이 이들에게는 고통이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인간형은 자기 자신이 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 없이 그렇게 하려는 인간이다. 
이 유형은 가장 고차원적인 절망의 형태다. 
이들은 강한 자아의식과 주체성을 지녔지만, 그 중심에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둔다. 

6. 역사적 사상적 배경

『죽음에 이르는 병』은 19세기 유럽, 특히 헤겔 철학이 지배하던 시대에 쓰였다. 
당시 철학은 이성과 체계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흐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그는 인간 존재를 체계로 환원할 수 없으며, 실존은 언제나 불안과 선택, 책임 속에 놓여 있다고 보았다.

또한 덴마크 국교회가 형식적 신앙에 머물러 있던 상황 역시 이 작품의 중요한 배경이다. 
키르케고르는 제도화된 기독교가 개인의 실존적 결단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7. 감상 : 읽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게 되는 책

『죽음에 이르는 병』은 편안하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변명 없이 마주하는 일에 가깝다. 
문장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문장이 가리키는 자신의 내면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충격은, 우리가 흔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상태보다 훨씬 더 깊은 절망이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삶 속에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이 책은 절망을 통해 희망을 말한다. 
절망을 끝내는 길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는 자기 부정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올바른 근원에 다시 연결하는 행위다. 

8. 맺으며

『죽음에 이르는 병』은 인간 존재에 대한 잔혹할 정도로 정직한 진단서다. 
그러나 그 진단은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숨기지 말고 끝까지 인식하라고 말한다. 
그 지점에서 비로소 인간은 자기 자신이 될 가능성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삶의 국면이 바뀔 때마다, 신앙과 자아에 대한 질문이 깊어질 때마다 다시 돌아오게 되는 텍스트다. 
그리고 그때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다른 목소리로, 그러나 언제나 동일하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진정으로 자기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쇠렌 키르케고르
실존의 불안을 끝까지 사유한 고독한 사상가

쇠렌 아뷔에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는 19세기 덴마크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신학자, 그리고 문학적 사상가이다. 
그는 흔히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그 스스로는 철학 체계를 세우기보다 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평생을 바친 사상가였다. 
키르케고르의 글은 언제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개인의 고통과 선택, 불안과 책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1. 생애와 개인적 배경

키르케고르는 1813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엄격한 신앙인이었으며, 깊은 죄의식과 종말론적 신앙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 가정환경은 키르케고르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고, 훗날 그의 사상 전반에 흐르는 죄, 불안, 절망의 정조로 이어졌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지적 능력을 보였으며, 코펜하겐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목회자가 되기보다는 글을 통해 시대와 개인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길을 선택했다. 특히 약혼자였던 레기네 올센과의 파혼은 그의 삶과 사상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으며, 개인적 사랑과 신 앞에서의 결단이라는 주제를 더욱 깊이 탐구하게 만들었다. 

2. 가명 저술과 문학적 전략

키르케고르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가명 저술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적·신학적 사유를 직접 설교하거나 주장하지 않았다. 대신 서로 다른 관점과 실존 단계에 서 있는 인물들을 가명으로 등장시켜, 독자가 스스로 선택하고 사유하도록 유도했다.

대표적인 가명들로는

  • 미적 삶의 관점을 보여주는 인물

  •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는 인물

  • 신 앞에서의 단독자를 대변하는 인물

등이 있다. 이러한 방식은 키르케고르가 진리를 교리로 전달하기보다, 개인의 내적 결단으로 체화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3. 사상의 핵심: 실존, 선택, 단독자

키르케고르 사상의 중심에는 언제나 개인이 있다. 그는 인간을 집단이나 체계 속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헤겔 철학이 당대 유럽을 지배하던 상황에서, 키르케고르는 보편적 이성보다 개인의 실존이 우선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인간은 선택하는 존재이며, 그 선택에는 언제나 책임과 불안이 따른다. 선택을 회피하는 삶은 편안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키르케고르는 이를 비실존적 삶이라 보았다.

또한 그는 인간을 하나님 앞에 홀로 서 있는 단독자로 이해했다. 신앙은 제도나 관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걸고 감행하는 결단이라는 점에서 철저히 개인적인 사건이다. 

4. 기독교 이해와 시대 비판

키르케고르는 열렬한 기독교 사상가였지만, 동시에 당시의 교회 제도를 가장 날카롭게 비판한 인물이었다. 그는 국교회가 신앙을 사회적 관습과 도덕 규범으로 축소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그에게 기독교는 편안한 위안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삶이었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인정받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과 긴장 관계에 놓이는 길이다. 이러한 관점은 그의 후기 저작들에서 더욱 급진적으로 드러난다. 

5. 문학적 영향과 현대적 의의

키르케고르는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탁월한 문장가였다. 그의 글은 논문처럼 건조하지 않고, 에세이·일기·설교·문학적 독백의 형식을 넘나든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은 철학, 신학, 문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가로지른다.

그의 사상은 이후 사르트르, 하이데거, 야스퍼스 등 실존주의 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현대 문학과 신학, 심리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참조점으로 남아 있다. 

6. 맺으며

쇠렌 키르케고르는 정답을 제시하는 사상가가 아니다. 그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상가다.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자기 삶의 태도를 점검하는 일에 가깝다.

그가 평생 붙들었던 질문은 단순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러나 그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려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게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키르케고르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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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3대 비판서 도해

대학생이 읽어야 할 고전  
칸트의 3대 비판서폭넓은 문제의식으로 객관성과 보편성 추구
 … 오늘날에도 유효한 철학적 의문 제시

흔히 고전이라 하면 해묵은 이야기책이나 옛날 사람들이 쓴 작품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고전은 오랜 시간을 거쳐 널리 애독되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책이다. 이에 우리신문에서는 각 학문 분야별로 고전으로 불리는 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칸트의 3대 비판서로 불리는 ‘순수이성비판’(1781),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이 세상에 나온 이후의 독일은 그 이전과 다른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18세기경 독일은 유럽에서 정치·경제·문화·학문적으로 선도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칸트의 비판철학, 칸트 철학의 영향으로 성립된 독일관념론, 이와 연관관계에서 형성된 낭만주의 운동 및 질풍노도 운동 등과 더불어 독일의 학문 및 문화는 유럽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칸트의 철학은 이미 그의 생애뿐 아니라, 그의 사후 200여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계 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칸트 자신이 철학 이론을 정립함에 있어 폭넓은 문제의식과 깊이 있는 탐구자세로써 임함에서 기인하며, 또한 철저한 객관성과 보편성을 추구하는 그의 정신에서 결과한다. 칸트 철학의 체계는 크게 자연의 객관적 법칙, 인간 행위의 실천적 법칙, 그리고 아름다움의 법칙 및 우주 전체의 궁극적인 목적을 다루고 있는 3대 비판서로 분류된다.
자연의 객관적 법칙의 정당성을 논하고 있는 ‘순수이성비판’은 칸트의 철학의 방향을 전통적 이론의 전승이라는 역할로부터 완전히 끊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통적 철학에서뿐만 아니라 근대 자연과학에서도 자연을 탐구할 때, 자연 법칙은 자연의 ‘사물 자체’에 적용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칸트는 우리의 인식능력으로는 결코 사물 자체의 본질을 인식할 수는 없고 단지 사물의 ‘현상’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라고 언명한다. 우리의 인식 능력을 사물 자체에까지 적용하려 한다면, 그것은 결국 독단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논함으로써 전통적 이성론(합리론)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칸트는 자신의 이러한 학문적 태도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칸트의 윤리학도 현대 윤리학에서 여전히 중요한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데, 칸트의 윤리학 이론을 체계화한 책이 바로 ‘실천이성비판’이다. 현대 윤리학을 형성하고 있는 두 개의 근본적 이론을 말한다면, 그것은 공리주의적 윤리학과 칸트의 윤리학이다. 공리주의가 인간의 경험적 감정 및 계산적 이기심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칸트의 윤리학은 인간의 존엄성을 시인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할 것을 각자 스스로에게 의무로 명령하는 윤리학이다. 이것이 바로 정언명법(定言命法)이다.
흔히 인간의 고차원적인 마음 및 문화를 우리들은 진선미(眞善美)로 구분한다. ‘순수이성비판’이 진의 영역을 논한다면, ‘실천이성비판’은 선의 영역을, 그리고 ‘판단력비판’은 미의 영역을 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판단력비판’에서 칸트는 우리가 아름다움 및 숭고함을 느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논하며, 나아가 아름다움 및 숭고함을 느끼는 마음은 전체로서의 자연의 궁극적 목적과 관계되어 있다. 칸트의 예술철학 및 미학 이론은 근대 미학을 형성·발전시키는 데 근본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은 웬만한 결심을 하지 않는다면 독파한다는 것 자체가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이 책들에 쉽게 접근하는 길들을 참조하면서 파악을 시도한다면, 그 책들에서 논하고 있는 문제들은 우리들이 세계를 생각할 때 천착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나아가 현재에도 생각해야 할 근본적인 소재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최 인 숙
문과대학 철학과 교수 


칸트가 3대 비판서를 집필한 이유는 무엇인가?


칸트가 살던 18세기 후반은 노동 및 사회 분화, 학문 및 가치 분화가 활발히 일어나던 시기였다. 철학도 이 시기에 과학 일반과 분리되어 자신의 고유한 위상을 찾아야만 했다. 칸트는 철학의 근대적 위상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철학자다.


과학의 본업이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지식을 확장해가는 데 있다면, 철학의 본업은 어디에 있는가? 칸트에 따르면 그것은 과학과 경쟁하여 미지의 것을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은 우리가 이미 아는 것을 비판하는 데 있다.

이때 비판한다는 것은 근거나 전제를, 다시 말해서 가능 조건을 밝히는 작업에서 시작한다. 비판이란 우리 경험 일반의 가능 조건을 드러내고, 그 조건에 비추어 개별적인 경험의 보편성 주장이 정당한지 판정하는 일이다. 가령 과학자가 부의 확장을 꾀하는 상인에 비유될 수 있다면, 철학자는 상업적 활동의 법률적 조건을 따지는 변호사에 해당한다.

또한 18세기 후반은 이론, 실천, 예술이 각각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가는 시대였다.이론은 진의 가치를, 실천은 선의 가치를, 예술은 미의 가치를 추구한다. 칸트의 3대 비판서는 각각 이론적 지식, 실천적 행위, 예술적 창조가 어떻게 서로 다른 가능 조건 위에 서 있는지 밝히고, 따라서 각각의 타당성 영역이 어떻게 다른지 입증했다.

가령 우리는 이론적 지식을 추구할 때는 윤리적 규범의 관점을 배제해야 한다. 예술적 아름다움을 판정할 때는 이론적 객관성의 기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윤리적 행동의 가치를 판정할 때는 과학성이나 예술성을 문제 삼을 때와는 다른 원리에 의거해야 한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Wikimedia: Foto H.-P.Haack) / 《실천이성비판》

칸트는 3대 비판서를 통해 이론적 지식의 객관성을 따질 때의 기준, 실천적 행동의 도덕성을 문제 삼을 때의 근거, 예술적 창작의 심미적 가치를 판정할 때의 원리를 차례대로 해명하고자 했다.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보편적 타당성을 지닌 도덕적 행위는 어떻게 가능한가, 심미적 판단이 과학적 지식만큼 보편성을 띨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세 가지 물음에 차례로 답하고자 했던 것이다.

칸트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원리들이 모두 우리 마음에 내재한다고 보았다. 칸트의 비판철학은 결국 마음을 해부하여 이론적, 실천적, 예술적 보편성이 어떻게 서로 다른 조건에 근거하며 따라서 어떻게 서로 다른 타당성 범위를 거느리는지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칸트(Kant) 3대 비판철학 완전 정복 -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ㅣ칸트 300주년ㅣ칸트 생애ㅣ선험적 인식론(feat.a priori)ㅣ독일관념철학






인생 최고의 목적은 행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인생 최고의 목적은 행복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류우현

한 때 서양에서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존 롤즈와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매킨타이어 덕윤리학과 같은 가치와 사상에 관한 탐구 열풍이 일었던 적이 있다. 이 학자들의 사상은 우리들의 삶의 방향과 태도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것들이다. 이 사상가들에게 귀중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온 2천여 년 전의 책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나는 바로 그것을 소개하려고 한다. 원래 유명한 고전이란 그 이름이 잘 알려진 것과 달리 의외로 가장 읽히지 않는 책들이다. 그러나 그 고전은 우리 삶과 가치 판단에 어떻게든 작용하고 있기에 소중한 것들이다. 다소 난해한 책이지만 나는 과감하게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철학서 한 권,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 나온 사상을 요약한 것이 아니므로 원본 독파를 권유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 전 384년 마케도니아의 왕궁 도시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왕실의 의사였는데, 니코마코스의 손자, 곧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들 이름도 니코마코스였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 사후에 아테네에 ‘아카데메이아.Academeia’라는 학당을 개설하였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17세부터 플라톤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플라톤의 이 학당에서는 철학을 비롯해 수학, 천문학, 음악 등의 학문을 중요하게 여겼다. 20년 간 아카데메이아에서 학문에 정진하던 그가 학당을 떠났는데 플라톤이 섭섭하게 여겼는지 ‘아리스토텔레스는 나를 차버리고 말았다. 마치 망아지가 낳은 어미를 그렇게 하듯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날 학문의 전당을 일컫는 아카데미.Academy는 플라톤 학당에서 유래한 말이다.

다른 설(說)도 있다. 헤르미포스에 의하면 필립 왕의 사절로 가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이 학당의 수석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돌아와서 자리를 찾지 못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회랑.Peripatos을 오가며 사람들과 철학을 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따르던 학파를 소요학파(逍遙學派)라고 불렀다. 또 기원 전 347년 플라톤이 죽고 그의 조카 스페우시포스가 새로운 학원장이 되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를 떠나 아소스에 아카데메이아 분교를 열고 스승과 다른 독자적인 철학을 펼쳤다고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43년에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Philipos의 요청으로 아들 알렉산드로스.Alexandros의 스승이 되어 그를 가르쳤다. 알렉산드로스가 아시아 정복을 꿈꾸자 그는 마케도니아를 떠나 아테네에 뤼케이온.Lycheion이란 학당을 개설했다. 프랑스 중등학교를 일컫는 리세.Lycée는 바로 이 뤼케이온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류사에 미친 업적은 플라톤 못지않다. 플라톤이 제시한,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세계.visible world이고, 다른 하나는 오로지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세계.invisible world, idea이다. 플라톤은 감각적 경험의 세계는 가짜이고, 참된 세계는 이데아의 세계라고 하였다. 이와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참된 존재의 본질인 우시아.ousia는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세계에 존재한다고 하였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앎과 행함의 관계를 주지주의(主知主義) 관점에서 보고, 참으로 알면 행하게 된다고 본 데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참으로 안다고 해도 의지의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참된 행위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소피스트의 수사술(修辭術)을 논리성과 윤리성이 없다는 점을 들어 격렬히 비판했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술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면서 수사학(修辭學)으로 발전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분야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다. 그는 내용의 학문에서는 물리학과 정치학이 있고, 방법의 학문에서는 변증법(논리학)이 있다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분류는 지식의 분류와 맥락을 같이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을 이론지.apodeiksis, 실천지.phronesis, 제작지.thechnē 세 가지로 분류하고 저술하였다. 이론지에는 형이상학, 철학, 수학, 자연학 등을 포함한다. 실천지에는 정치학, 니코마케아 윤리학,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들어 있다. 제작지에는 수사학과 시학이 있다. 이외에 특별히 오르가논.organon(분석론)이 있는데 이는 모든 학문의 바탕이 되는 학문으로서 요즘 말로 논리학.logics과 논술에 관한 책이다. 오르가논은 정의와 명제, 삼단논법, 논증, 논박, 오류론 등이 대단히 중요한 학문의 기초로 여겨져 오늘날에도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근대 이후 임마누엘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분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칸트는『도덕형이상학 기초놓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한 자연학(물리학), 윤리학, 논리학은 주제의 본성에 완벽하게 맞으며, 더 개선할 점이 없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또한 생물학 분야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탁월한 업적을 남겼으며, 이외에도 그의 저작들은 분량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방대하다. 어쩌면 그의 동료와 제자들의 노력이 보태어진 것일 수 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그리스 철학자 열전』에 등록된 저술 목록만 살펴보아도 무려 390권이 넘으며 행으로 따지면 44만 5,720줄에 이른다. 하지만 여러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발견되지 않은 저작을 포함하여 실제로 무려 660권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전 세계에 족적을 남길 수 있게 된 것은 아랍계 스콜라 철학자인 아베로에스.Averroes(이븐 루시드)의 공로가 컸다. 그는 무슬림 지배 하의 알 안달루스에서 의학, 신학, 철학, 어학에 뛰어난 학자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뛰어난 주해자(註解者)였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전파한 사람이었다. 아베로에스는 단테의 『신곡(지옥편)』에서 뛰어난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로 등장하며, 이슬람 사상가로는 라파엘로의 천장화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한편 교부철학에서 스콜라철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이단성 논쟁으로 매우 시끄러웠고, 이 다툼의 환경을 소재로 수도원의 살인 사건을 다룬 소설이 유명한 움베르코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다.

이제까지 아리스토텔레스와 관련된 사회ㆍ역사적 맥락과 업적들을 살펴보았다.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최고선(最高善)’이다. 최고선이란 바로 ‘행복.eudaimonia’이란 개념으로 표현된다. 고대 그리스 어에서 접두사 eu-는 ‘좋음(good)’을 뜻한다. 다이모니아는 다이몬 신을 뜻한다. 다이몬이란 말에서 ‘신적인 것은 최상, 최선, 곧 최고선을 뜻하는 것’임을 함의하고 있다. 최고선은 모든 도덕과 윤리가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행복이 최고선이 될 수 있는 근거는 궁극적 목적인가에 있다. 예컨대 어떤 학생이 공부는 왜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대학진학을 위해서 한다고 대답한다. 그럼 대학엘 왜 가려는 거지? 라고 물으면 그는 나중에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또 취직은 왜 하려는 거지? 라고 물으면 돈 벌어서 집도 마련하고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잘 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그것은 행복한 삶을 의미한다. 여기서 공부의 여러 목적들인 진학, 취직, 축재, 주택 구입, 결혼, 자녀 양육이 열거된다. 이것들은 목적인 동시에 다른 어떤 것들의 수단이 된다. 그러나 ‘행복’은 다른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최고선은 다른 어떤 것들의 수단이 되지 않는 것 궁극적인 것이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들의 수단이 되지 않는 그 자체로서 목적인 최고선이라고 하였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언급되는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최종 관심은 ‘어떻게 하면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는가?’이며, 이 질문의 바탕에는 ‘인간에게 최고선은 무엇인가?’가 있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궁극적 목적으로 여기는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며, 그것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의 물음에 대한 논의와 탐구가 이 책에 실려 있다.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므로 다른 어떤 것들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추구하던 많은 것들, 곧 즐거움과 유익한 것들은 자체로서 행복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그리스 사회에서 통속적으로 생각해 왔던 돈, 권력, 명예, 힘, 건강, 쾌락, 덕 등이 행복이라는 생각과, 그러한 것들을 쟁취하고 유지하려고 했던 많은 노력들이 오류를 안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는 좋은 품성이나 심지어 그것을 가지고 있는 상태(품성 상태)마저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 관한 좋은 질문이 있다. “인간은 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의식하고 있지 않은(이성에 의해 궁극적 목적을 자각하지 않은 비활동적인) 상태라면 그것은 행복이 아닐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아레테.arete를 강조한다. 아레테는 덕, 또는 탁월성으로 번역되지만 고대 그리스 인들이 생각하는 아레테는 도덕적 덕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그 의미가 훨씬 더 넓다. 아레테 ‘잘 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arete는 ‘art’ 곧, 기술, 예술을 말하는 것으로 영혼의 기능을 잘 발휘하는 탁월함, 뛰어남을 뜻한다. 덕(품성) 자체는 행복이 아니지만 그것을 발휘하는 활동성은 행복에 도달하는 중요한 길이다. 덕, 또는 품성은 지적이고 실천적이며 지속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는 탁월함을 발휘하는 것은 중용의 덕을 습관화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보았다. 중용은 ‘최적인 상태’를 뜻한다. 그는 중용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고도 세밀하게 논술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중용’은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는 상태, 곧 적절한 때에 적절한 분량으로 적절한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용기는 모자람(비겁)과 넘침(만용) 사이의 적절함이다. 그는, 중용의 덕이나 행복은 ‘제비 한 마리가 날아 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이 아닌 것처럼’ 단 번에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한다.

이 책을 소개하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전체적인 내용들을 좁은 지면에 모두 소화하여 담기가 매우 어려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덕성의 개념에 대해 다양하면서도 심도 있는 정의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의 도덕적 개념들을 일일이 검토하면 좋겠으나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다만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윤리학의 큰 두 개의 강물인 의무론과 목적론 중에서 목적론의 기원이 된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점이다. 이 사실을 고려하면 2천여 년 전에 쓰인 책이 가진 역사적, 사회적, 윤리적, 정치적 의미가 현대적 삶에 비중 있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독자도 읽고 탐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오늘날 쾌락주의나 웰빙(well-being, 잘 삶)으로 일컬어지는 행복의 관점을 덕윤리학(德倫理學)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또는 그 반대편에 서서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덕의 길을 걸어 행복에 이른다.’라고 표현하면 될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2,300여 년 전의 아리스토텔레스를 소환하게 하는 프랑스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기출문제를 소개한다. 이걸 풀어내야 하는 학생들이 프랑스의 대학입학자격 수험생(고등학생)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면 좋겠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1998년 Baccalauréat 문제 중에서

<참고한 책들>

아리스토텔레스(이창우 외 2인 역), 『니코마코스 윤리학』 , 이제이북스 (주 텍스트)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전양범 역), 『그리스 철학자 열전』, 동서문화사

플라톤(박종현 역), 『국가』, 서광사

플라톤(김인곤 역), 『고르기아스』, 정암학당

아리스토텔레스(이종오,김용석 역), 『수사학』, 리젬

아리스토텔레스(김재홍 역), 『소피스트적 논박』, 한길사

임마누엘 칸트(이원봉 역), 『도덕형이상학 기초놓기』, 책세상

움베르토 에코(이윤기 역),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최병권・이정옥,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종합편)』, Humanist

장 마리 장브(김임구), 『학문의 정신 아리스토텔레스』, 한길사

단테 알리기에리(김운찬), 『신곡(지옥편)』, 열린책들

박병기 외, 『고등학교 고전과 윤리』, 전라북도교육청

박성창, 『수사학』, 문학과지성사

이양수, 『롤스와 매킨타이어, 정의로운 삶의 조건』, 김영사

김필영, 『평범하게 비범한 철학에세이』, 스마트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