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기념일(파트리스 주보 연재 자료)



종교개혁기념일(宗敎改革紀念日, Reformationstag, Reformation Day)
종교개혁 기념일은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95개 논제를 공포한 날을 기념하는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루터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부패를 비판하고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고, 교황의 권위보다는 오직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며, 오직 믿음으로 칭의(稱義)를 얻는 이신칭의(以信稱義)를 주장하여 종교개혁을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율리우스 력의 10월 31일에 해당한다.
일부 국가와 독일의 개신교 신자가 많은 일부 주는 이 날은 휴일이다.
종교개혁가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여러 나라의 개신교 교회에서는 10월 31일 직전 일요일에  종교개혁 기념예배가 진행된다.
2022년은 종교개혁 505주년입니다.
종교개혁 기념 주일을 맞이하여 북한 선교사 이순례목사의 그간의 활동과 간증을 통하여 남과 북의 긴장관계를 신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함께 찾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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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宗敎改革)이란 종교를 새롭게 뜯어 고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개혁(改革)'이란 "고칠 개(개)" "가죽 혁(革)"이란 훈(訓)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를 어떻게 새롭게 고쳐야 할까요?
"타성(惰性)"을 "영성(靈性)"으로 바꿔야 합니다.

'타성'이란 "게으를 타(惰), 성품 성(性)"으로 "사람의 말이나 행동(行動)에 굳어져 있는 좋지 않은 버릇. 또는 오랫동안 변화(變化)나 새로움을 꾀하지 않아 나태(懶怠)하게 굳어져 있는 습성(習性)"을 말합니다.
'영성'이란 "신령 영(靈), 성품 성(性)"으로 "신령(神靈)스럽게 총명(聰明)한 품성(品性). 또는 성질(性質). 천부(天賦)의 총명(聰明)"을 말합니다.

가톨릭교회의 형식적인 예배와 구원 교리에 대한 젊은 신부 루터는 진리에서 왜곡된 가르침에 환멸을 느끼고 개혁의 깃발을 들어올렸듯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듣기만 하였고 실천하지 못했던 타성에 젖은 신앙을 깨우쳐 영성으로 반응할 수 있는 은혜를 함께 사모하며 기도합시다.

북한 선교사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그리고 선교자의 사명을 회복하는 복된 개혁기념주일을 기다려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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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2022 주일 주보에 소개

칼빈주의 교리의 기초는 종교개혁의 다섯 가지 슬로건으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1st.  오직 성경(솔라 스크립투라, Sola Scriptura)
2nd. 오직 그리스도(솔루스 크리스투스, Solus Christus)
3rd. 오직 믿음(솔라 피데, Sola Fide)
4th. 오직 은혜(솔라 그라티아, Sola Gratia)
5th. 오직 하나님께 영광(솔리 데오 글로리아, Soli Deo Gloria)

튤립교리(TULIP) - 칼빈의 5대강령

1.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3. 제한적 구속(Limited atonement)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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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06-2022 주일 주보

튤립교리(TULIP)-칼빈의 5대강령

1. Total Deprevity(전적타락)

에덴동산에서 원죄를 범함으로 인간은 완전히,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여기서 인간의 타락을 부분적인 것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구원의 공로가 사람에게도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는 자신의 구원을 이룬다거나 구원에 어떠한 방법으로도 기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알 수 있습니다).
선을 완전히 행할 수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무리 인간이 선을 행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꼐 원하시는 수준, 즉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다음 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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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2022(주일)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 5: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마가복음 4:12)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편 51: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세기 6:5)

1. 인간은 출생으로부터 죄인입니다

2. 실제적으로도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죽은 자가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가? 눈먼 자가 스스로 볼 수 있는가? 날 때부터 죄인인 자가 스스로 변할 수 있는가?
도저히 그럴 수 없습니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기 14:4)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예레미야 13:23)

구원은 본질상 우리를 살리신 주께 속한 것입니다. 구원은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가를 철저히 깨닫고 괴로워하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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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Unconditional Election(무조건적 선택)

전적타락에서 인간은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생명이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그의 영원 불변하신 목적과 그 마음의 소원과 기쁘신 뜻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도록 선택해 놓았다. 이는 단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총과 사랑에서 나온 것이지,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시고 할 만한 어떤 조건이나 이유가 되는 다른 어떤 것이 피조물에게 있기 때문은 아니다 (침례교 신앙고백서 3장 5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성경말씀은 많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한복음 15:16)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한이 없느냐 (로마서 9:21)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4-5)

1.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은 사람이 행한 어떤 것과도 관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선,악행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자기 백성으로 택했다는 의미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가 하게 될 어떤 일, 곧 그의 아들을 믿게될 줄 아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믿을 사람을 미리 아셨다고 하는 것도 좋지 못합니다. 우리가 믿기 때문에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선택을 받기로 작정되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4.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8)


3. Limited atonement(제한적 구속)

예수님은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미리 아셨고, 그들의 구원이 확실하다는 보장 아래 그분의 구속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처음부터 그 분의 속죄사역은 완성된 사역임을 아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2)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7)

4. Irresistible grace(불가항력적 은혜)

하나님은 구원의 주가 되시기에 그의 유효한 부르심을 사람이 거절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즉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마음과 의지 안에서 자신의 구원의 목적을 이루심에 결코 실패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그 분은 어떻게 해서든 구원의 길로 돌이키게 하십니다. 이것은 성도의 경험에서 증명될 수 있습니다

5. Perseverance of the saints(성도의 견인)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함을 받고 믿음을 갖게 된 사람은 모두가 영원히 구원을 받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믿음을 계속 지키며 세상 종말까지 그 믿음을 보존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해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습니다. 

이젠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면서 지속적 믿음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을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은 하나님의 지속적인 오래참으심의 은혜와 친히 사랑으로 보전케 하십니다. 고로 일시적 범죄는 연약함으로 인한 넘어짐에 불구하며 그들은 성령의 은혜로 인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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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SOLA SCRIPTURA)
- 존 후스는 오직 성경에 대한 헌신으로 자신의 생명을 희생했고 교황주의와 사제주의를 공격했다.

1. 권위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음성이다.
- 성경의 권위는 절대적이며 이차적이거나 파생적이지 않다.
-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만큼 권위적이다(칼빈의 ‘기독교 강요’ 1.7.1).
- 교회는 반드시 전체적으로 이 성경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기독교 강요’ 3.2.6-7).
- 실상 다른 모든 종류의 권위들, 즉 교황적 권위나 교리적 권위나 민간적 권위들은 반드시 성경에 종속되어져야 한다(‘기독교 강요’ 4.8).
- 우리가 성경을 판단할 수 없으며 성경이 우리를 판단해야 한다.
2. 불오성과 무오성
- 성경의 모든 문장과 단어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것이다.
- 디모데 후서 3장 16, 17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마틴 루터의 제롬에게 보낸 어거스틴의 편지 인용
 “나는 오직 성경만이 무오하다는 것을 견지하는 법을 배웠다.”

- 오직 성경만이 신자의 양심을 구소갈 수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10절, 20장 2절, 31장 4절).

3. 자해석과 자증성
- 울리히 쯔빙글리는 교회로 하여금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 주는 성경의 참된 해석자가 성령이라고 말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6절).
- 성경의 증거가 신자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내적 증언으로 말미암아 확증된다(‘기독교 강요’ 1.7.2-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5절).
- 칼빈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곧 성령께서 내적으로 가르침을 주신 사람들은 진정으로 성경을 신뢰한다. 또한 성경이 스스로 확증하므로 성경을 감히 다른 증거와 이론에 예속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령의 증거를 통해서 마땅하고도 온전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

4. 자유
 종교 개혁자들은 적어도 세 가지 방식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직자 계급으로부터 성경을 해방시켰다.
- 루터로 대표되는 성경 번역
- 쯔빙글리로 대표되는 주해 설교
- 칼빈으로 대표되는 문법적이고 역사적인 주해

5. 능력
-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 영원히 성경을 신뢰할 수 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영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의 지성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기를 고대할 수 있다.
- 과연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고 사랑하며 성경대로 살고 성경대로 기도하고 있는가?
- 성경은 우리 자신을 보는 거울(약 1:22-27)이며, 우리의 행위의 규례이며(갈 6:16), 우리의 ‘행실을 깨끗하게’(시 119:9)하는 율례이며, 우리를 뜨겁게 하는 불이며(눅 24:32), 우리를 먹이는 양식이며(욥 23:12), 우리가 싸우는 검이며(엡 6:17) 우리의 의심과 두려움을 해결해 주는 모사이며(시 119:24), 우리를 풍요롭게 해 주는 기업(시 119:111,112)인가?

오직 은혜(SOLA GRATIA)


 인간이 자신의 죄사함과 구원을 처음으로 주도하고 그것에 참여하는 것인가? 아니면 구원의 전체 사역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기인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구원을 주도하시고 완성시키는 것인가?
- 루터는 ‘노예의지론’에서 분명하게 주권적인 은혜를 지지한다.
- 윌리엄 뉴먼은 “은혜란…무가치한 사람에게 베푸시는…하나님의 무조건적인 호의이다”라고 하였다.
- 죄인이며 오직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에게 전혀 의무가 없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과분한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다.
- 무조건적이고 주권적이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일 수 없다.
- 하지만 우리의 본성은 주권적은 은혜를 대적한다.


i) 로마서에 제시된 하나님의 은혜
① 은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하나님의 왕국의 공동 상속자로 만든다(롬 4:16).
② 은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 사이에 화평을 수립해 준다(롬 5:2).
③ 은혜는 죄의 권세보다 훨씬 더 강해서 죄의 지배로부터 참된 자유와 영속하는 해방을 가져다준다(롬 5:21,21, 6:14).
④ 하나님의 신적 은혜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많은 사람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나누어 준다(롬 12:6).
⑤ 은혜가 궁극적으로 사망을 정복할 것이며, 은혜를 받는 모든 자들을 영생으로 이끌 것이다(롬 5:20,21).
⑥ 왜냐하면 이것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기 이전에 인간의 아무런 공로 없이 그들을 구원하기로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롬 11:5,6).


ii) 선택으로부터 영화에 이르기까지 은혜는 홀로 화려하게 통치한다.
① 은혜는 우리를 부른다(갈 1:15).
② 우리를 중생시킨다(딛 3:5).
③ 우리를 의롭다 한다(롬 3:24).
④ 우리를 거룩케 한다(히 13:20,21).
⑤ 우리를 보호한다(벧전 1:3-5).


3. 오직 믿음(SOLA FIDE)


i) 루터의 깨달음
 루터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비록 내가 비난받을 것 없는 수도사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된 나의 처지에서 오는 양심의 불안으로 인해 고통스러웠으며, 나의 인격으로는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것을 밤낮으로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 말씀으로부터 해답을 얻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는 후일 이렇게 기록한다.
 “그때 나는 순전히 은혜와 자비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하여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즉시 나는 마치 내 앞에 열린 문을 통과해서 천국으로 들어간 것 같은 확신을 느꼈다.”
 결국 루터는 그 믿음이 죄인이 의롭다하심을 받는 수단임을 이해했다.


ii) 칭의와 믿음
- 칭의는 죄 사함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구성되어 있다(‘기독교 강요’ 3.11.2).
- 우리에게는 선천적인 의가 없으므로 우리 밖에서 온 의, 즉 루터의 표현처럼 ‘낯선’ 의가 필요하다.
-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시고 하나님이 인정하신 의로 우리를 위하여 획득된 의이다.
- 성령께서는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손을 죄인들에게 수여하신다(요 1:12,13).
- 믿음의 손은 그리스도의 전가되는 의를 받는 손이다.
- 믿음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칭의에 공헌할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 믿음의 손은 아무거도 만들어 내지 않는다. 오직 받을 뿐이다.
-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도록 안으로 이끌어 줄 뿐 다른 방법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하지 않는다(‘기독교 강요’ 3.9.20).


iii) 로마 가톨릭교회의 칭의와 믿음
- 로마교회는 칭의가 죄인을 의롭다고 칭해주는 하나님의 선언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의롭게 만들어 주심으로써 성취되는 것이라고 교훈한다.
- 칭의와 성화를 혼합한다.
- 하나님의 의는 반드시 칭의 안에서 죄인 자신의 의로 지탱되어야만 할 어떤 것이 되어 버렸다.
- 그러나 ‘오직 믿음‘은 믿음에 무엇을 더하는 행위를 대적한다.


4.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 벤자민 워필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믿음이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것은 그 대상(예수 그리스도)으로부터 말미암기 때문이다. …따라서 믿음의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은 믿음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전능하신 구주에게만 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믿음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인 것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 쯔빙글리가 1523년에 저술한 ‘67개 조항’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오직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제3항).
 “누구든지 다른 잘못된 길을 추구하거나 제시하는 사람은 영혼의 살인자이며 탈취자이다”(제4항).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제19항).


 - 오늘날 포스트 모더니즘은 진리를 전적으로 다원적이고도 상대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그들은 어떤 분야의 지식이라도, 심지어 종교의 영역에서도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배타적이고도 독점적인 주장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저주와 같은 것이다.


i) 그리스도의 삼중직 - 4세기의 카이사리아의 유세비우스(Eusebius)로부터 내려온 견해
① 선지자이신 그리스도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1문은 그리스도를 가리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우리의 가장 으뜸되는 선지자와 교사가 되시어 우리의 구속에 관한 하나님의 감춰진 계획과 뜻을 우리에게 자세하게 계시하시는 분”


-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선지자가 오시기를 기다리라고 명령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


-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바로 그 선지자임을 말씀하셨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요 4: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요 4:26).


- 선지자로서 예수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 의도하고 목적하셨던 것을 계시하실 수 있는, 즉 ‘영세 전부터’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의 글’의 참된 의미를 가르치고 나타내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롬 16:25,26).


② 제사장이신 그리스도
-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이 되시어 그의 몸을 드린 단번의 제사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또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계속해서 하나님께 중보하신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1문).
-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예수께서는 두 가지 일을 하셨다. 계명을 향한 능동적 순종과 죄를 속하시는 죽음의 수동적 순종이다.
- 예수께서는 적극적이고도 완전하게 계명에 순종하셨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요 8:46)


- 예수께서는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셨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인데 이 사망은 신체적이며 영적이며 영원한 사망이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 천국에서는 예수께서 우리의 중보자와 보혜사로 역사하신다(롬 8:34, 요일 2:1).


③ 왕이신 그리스도
-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하신 왕이 되어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또 우리를 변호하고 보존하시어 그 구속을 확보’하실 것이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1문).
- 우리는 그리스도의 법 아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성장을 소망하고 기대할 수 있다.


 당신은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1-23)라는 말씀을 이해하고 있는가?


5. 오직 하나님께 영광


1) 하나님의 목적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 영광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카보드(kabod)’는 ‘무겁다’라는 어근을 지닌 단어의 파생어이다.
- 따라서 히브리 사상은 영광을 ‘하나님 안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그분의 본질적인 가치나 값’이라고 평가한다.
- 영광이라는 뜻의 헬라어 ‘독사(doxa)’는 본래 ‘견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따라서 헬라 사상은 영광을 ‘그들이 보는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하심에 있는 가치나 값에 대한 지성적이고도 도덕적인 반응’이라고 말한다.


- 하나님의 속성의 도덕적 탁월성은 그분의 창조와 섭리와 구속 행위의 위대함과 가치를 통해 빛난다(사 44:23, 요 12:28, 13:31,32).
- 예배자는 오직 찬미와 감사와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요 17:4, 21:19, 롬 4:20, 15:6,9, 벧전 4:12-16).
- 이사야서 6장 3절에서 스랍은 이렇게 선포한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 악인의 정죄를 토해서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 하나님의 궁극적인 영광은 온 세상이 그분의 구원적 은혜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2)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3) 인간의 제일되는 기쁨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다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제1문답).


-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종교 개혁의 핵심이다.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영광에 뭔가 부족하거나 결핍되어 있어 그것을 채우는 것도 아니며 영광 돌리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더 영광스러워 지는 것도 아니다.
- 송영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분이 왜 인간의 찬미와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지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드높이는 것이다.
- 조나단 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위대했던 순간은 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신경 썼던 순간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과의 교제에 이끌리어 그분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목도하던 순간이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충만해질 수만 있다면 내 자신이 텅 비고 없어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 바울은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i) 로마서 11장 36절, 바울의 송영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 ‘나오고’는 하나님께서 만물의 근원이심을 제시한다(요 1:3).
- ‘말미암고’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만물을 지탱하시는 분임을 의미한다(골 1:17).
- ‘돌아감이라’는 하나님께서 목적이심을 의미한다. 만물이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 칼빈의 주석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시다. 그분은 창조주이시다. 그분은 만물이 기동하며 살아가는 동인이 되시며, 그 존재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방편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모든 영광이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마지막 목적이 되신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이라는 모토는 칼빈주의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소망이다. 참된 칼빈주의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 목적과 기쁨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