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휴일 및 축제(할로윈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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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평 원룸 크기 공간서 300명 깔려... 사망자 여기서 다 나왔다

폭 3.2m 좁은 내리막길 골목
넘어지며 수백명 6~7겹 쌓여

20대 이모씨는 “사람들 사이에 뒤엉킨 채 모르는 사람 손을 붙잡고 ‘우리 살아 나가자’라고 말하며 30분을 버텼다”면서 “신고를 할 수도 없을 만큼 팔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 계속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다”고 했다.
또 다른 이모(25)씨도 “바로 옆에서 몸집이 작고 숨 쉬기가 어렵다며 우는 20대 초반 여성을 봤고, 실신하는 외국인 여성도 있었다”고 했다.

김모(28)씨는 “나는 키가 크니까 숨을 쉴 수 있었는데 키가 작은 여성들은 가슴 부분이 끼어서 숨쉬기가 더 힘들어 보였다”면서 ”끼어 있어서 손을 못 쓰니까 숨 막혀 죽을까 봐 서로 옆 사람의 마스크를 내려주기도 했다.
숨을 쉬려면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해야 되는데 그럴 공간조차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김모(27)씨도 “양옆으로 기절한 사람이 너무 많았고 밀지 말라 소리를 마구 질렀는데도 사람이 많아서 전달도 잘 안 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오후 11시쯤 인파를 뚫고 현장에 간신히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깔린 사람들을 꺼내며 구조를 시작했다.
하지만 30분 이상 사람들 아래 눌렸던 피해자들은 대부분 의식이 없거나 숨진 상태였던 경우가 많았다.
오후 11시 30분쯤부터는 이태원역 주변 길가에서 구급대원과 경찰, 시민 등 수십명이 길 위에 쓰러진 사람들을 눕혀두고 심폐소생술(CPR)을 하기 시작했다.
모포나 비닐 등으로 얼굴을 가린 시신들이 길가에 놓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30일 오전 1시쯤 열린 소방 브리핑에서 집계된 피해자 수는 사망 2명, 부상 22명으로 총 24명이었다.
그러나 1시간쯤 뒤인 2시 15분 브리핑에서는 사망이 59명으로 늘었다.
부상자도 150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30분 뒤쯤에 열린 브리핑에서는 사망자가 120명으로 늘었고 부상이 100명에 달했다.
오전 4시엔 사망자가 146명, 부상자가 150명으로 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피해자를 구조하고 사망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 오래 걸렸고,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람 중 적지 않은 수가 사망한 탓이었다.

“선 채로 당한 희생자 많다” 증언들... 전문가들이 추정한 사인은

“호흡은 갈비뼈 사이 근육과 횡경막의 ‘흉곽 운동’
그 공간 확보 안 되면 질식… 서나 앉으나 무관”
”인파에 휩쓸렸다면 가장 자리로 가 기둥 잡고 버텨야”

29일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상당수는 선 채로 압사(壓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은 소방당국을 인용, “희생자들이 밟혀서 압사당한 게 아니라 서 있는 상태에서 짓눌려 압사당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에도 “선 채로 실신한 사람이 있었다”는 현장 목격담이 올라왔다. 실제로 한 인터넷 방송 운영자가 참사 발생 당시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올린 영상에서는, 한 여성이 선 상태 그대로 사방에서 밀려드는 압력에 고통받으며 비명을 지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힘을 잃은 듯 늘어지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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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압사 사고가 벌어질 당시 현장 상황을 생중계한 영상의 한 장면. 사람들이 사방에서 밀려드는 압력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오른쪽 맨 아래 모자이크 처리된 여성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른 뒤, 맥이 빠진 모습으로 더는 말이 없었다. /아프리카TV

네티즌들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도 나왔다. 일반적으로 압사를 생각할 때 ‘넘어져 깔린 상황’을 떠올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선 채로 압사당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30일 조선닷컴 통화에서 “사망자 상당수는 ‘압착성 질식사’로 추정되며, 이는 서 있거나 쓰러져 있거나 등 자세와는 무관하게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갈비뼈와 갈비뼈 사이 근육과 횡경막을 움직여서 호흡을 하는데, 이번 사고 희생자들은 선채 사방에서 밀려든 강력한 압력으로 흉곽운동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숨졌을 것이란 추정이었다.

서 원장은 “물론 부검을 해보기 전엔 단언하기 어렵다. 바닥에 깔린 상태로 충격이 가해져 심장 등 장기 파열이 일어났을 수도 있고, 목뼈가 부러지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다”며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 미뤄봤을 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인은 압착성 질식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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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대규모 압사사고가 벌어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턴호텔 뒷골목의 모습. /뉴스1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비슷한 해석을 내놨다. 공 교수는 “서서 껴있는 채로도 압박을 강하게 받을 수 있고, 압사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은 최소한 자신의 몸무게의 1.5배 이상 압력이 외부에서 가해졌다는 의미인데, 이번 사고에선 좁은 골목에 한꺼번에 수백명 사람이 몰리면서 그 압력이 급증했다”며 “선채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상황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 인증을 통해 운영되는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도 ‘의사’로 인증한 인물이 비슷한 글을 올렸다. 그는 “압사의 주된 사망 원인은 장기파열도 아니고 혈복강도 아닌 단순 호흡부전”이라며 “호흡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호흡근이 이기지 못할 압력으로 눌리면 숨을 못쉬어서 질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하성 교수는 “가장자리가 그래도 하중이 제일 적은 편이기 때문에 인파에 휩쓸리면 가장자리로 빨리 이동해야 한다”며 “가장자리에 도착했다면 거기서 간판, 벽을 붙잡고 버티는 게 좋다”고 했다.

공 교수는 이어 “넘어지면 그야말로 최악”이라며 “만약 넘어졌다면 빨리 몸을 동그랗게 웅크려 머리와 가슴, 몸을 보호하면서 숨 쉴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원 사망자 또 늘어 153명... 부상자는 133명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일대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로 인한 사망자가 30일 153명으로 늘어났다.

30                     153   24  79   1031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에 한 시민이 꽃을 놓고 있다. 이태원 압사사고로 발생한 인명피해는 이날 오후 현재 사망 153명이었다.
부상자는 중상 24명, 경상 79명 등으로 총 103명이다./뉴스1

행정안전부와 소방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인한 사망자가 153명으로 집계됐다.
앞서 오전 10시에 발표한 사망자 수(151명)보다 2명이 늘었다.
부상자는 중상 37명, 경상 96명 등으로 총 133명이다.

외국인 사망자는 20명, 부상자는 15명으로 외국인 사상자는 총 35명으로 집계됐다.
외국인 사망자의 구체적인 국적으로는 중국과 이란,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10월 29일 할로윈 데이 축제를 맞아 서울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

이태원과 관련된
슬프고 아픈 역사에 관한 글을 공유합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더 이상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염원하며,
국민 모두 애도와 함께 자숙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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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태원의 유래]

'이태원'은 한자로 '梨泰院'이라 씁니다.

이태원의 이름은  한자만 3번 변했습니다.
조선 초에는 '오얏나무 李'를 써서  '李泰院'
→임진왜란 이후에 '異胎院'
→효종 이후에는 '梨泰院'으로
글자와 의미가 변합니다.

원래 이태원은 서울을 벗어나 처음 만나는
원(院)이었습니다.

서쪽의 홍제원.
동쪽의 보제원.
남쪽의 이태원과 인덕원은
서울 부근의 중요한 첫번째 원이었습니다.

이태원은 지금의 용산고등학교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태원의 역사를 살피다 보면
슬픈 이 땅의 역사가 떠오릅니다.

슬픈 역사하면
역시나 조선 시대의 '양대 칠푼이'
선조와 인조가 등장합니다.

아시다시피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카(소서행장)와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 부대는
경쟁적으로 진격하여
가토 기요마사 부대는 남대문으로
유키나카부대는 동대문으로 입성합니다.

그 결과 이들이 처음 통과한 문이라는
상징성을 바탕으로 조선총독부는
남대문과 동대문을 조선고적 1.2호로 지정했습니다.
결국 이 문들은
오늘날 대한민국 국보 1호와 보물 1호가 되었습니다.
(이런 아픈역사가 있음에도 불에 타버려
졸속 복구한 남대문을 국보 1호라고
전 세계에 자랑하는 나라 꼴이나,
한술 더 떠서 궤변으로 그를 합리화시키는
일부 학자들을 보면 한심스럽습니다.)

한양에 들어온 '가등청정'은
이태원에 주둔을 합니다.

주둔 중에 '가등청정과 부대'는
여자들을 겁탈하기 시작하는데,
대분분의 여자들은 피난을 가버린 상황이라
그 대상은 피난을 가지 못한 여자와
이태원 황학골에 있는 '운정사'의 비구니들이
주대상이었습니다.

천주교 신자이자 반전론자인
상인 출신의 소서행장과
불교신자이자 주전론자인
장수 출신의 가등청정은
일본에서부터 라이벌이었는데,
오히려 불교신자인 가등청정은
여승들을 겁탈하고
운정사까지 불살라 버립니다.
(가등청정 이 놈은 불국사도 불질러 버린 놈입니다.)

문제는 이 비구니들과 여인들이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게 됩니다.

절이 사라진 상태에서
비구니들의 아이들과
왜놈에게 겁탈당한 부녀자 등이 애를 낳고
기를 보육원을 지어 정착케 하였는데,
당시 왜병들의 피가 많이 섞인 곳이라하여
이태원(異胎圓=다른 민족의 태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임진왜란이 끝나자
일본에 잡혀갔다 돌아온 조선여자와  
왜란 중에 성폭행을 당한 여성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합니다.

선조는 이에 이들과 그 자식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포로나 귀화한 일본인들을 한 곳에 몰아서
일종의 이방인 공동체 지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곳이 이태원입니다
<출처 : 임하필기(林下筆記) 동국여지비고>

여기에 칠푼이 2호인 인조까지 가세하게 됩니다.
병자호란에 끌려갔던 여인과 그 자식들까지
상당수가 결국은 이곳으로 들어옵니다.

이후,
북벌을 준비하던 효종은 지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곳을 배나무가 많은 곳이라는 이름의 梨泰院이라
고쳐 부르게 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습니다.

이태원은 우리 역사에서
오랜 기간 '이방인의 땅'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조선시대부터 용산 일대는 군사 관련 시설이 많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 군용지로 이용되면서
조선 주둔 일본군 사령부가 이곳에 머문 이후
이태원은 군사지역으로서 본격적인 정체성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임오군란을 진압하러 조선에 온 청나라 부대는
1882∼1984년 이태원에 주둔했고,
이후 일본군 조선사령부가 1910∼1945년에
주둔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근대식 마을이 본격적으로 형성됩니다.

광복 이후엔 미군이 이곳을 차지했습니다.
6.25전쟁이 끝나고 나서 이태원 상권은
사실상 미군이 주도했습니다.

1957년 미군의 외박과 외출이 허용되면서
기지촌까지 생겨났습니다.
1970년대 미군기지에서 나온 물품들로
상권이 형성된 이태원은
이후 미군을 위한 유흥가로 거듭나
기지촌과 미국식 클럽이 우후죽순 들어섰습니다.

한편으로 정부는 이태원 미군기지 중심으로
서빙고동, 한남동, 동부이촌동 일대에
외국인 전용주택과 아파트는
물론 고급 외국인 주택단지까지 건설합니다.

그러자 1960년대 이후
한국에 들어온 각국의 대사관이
이태원 지역에 대거 입주했고,
그 영향으로 197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고급주택단지도 조성됐습니다

이태원은 1990년대 이후
아프리카인의 유입이 늘면서
현재는 판잣집과 대저택이 공존하는
독특한 경관을 연출합니다

기지촌 단속으로 퇴폐업소가 사라지면서
경리단길과 더블어
한국 속의 외국으로 변화하는 '이태원'

웬지 가까와지지 않는
이방인의 느낌이 드는 도심지 이태원.

그 바탕에는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WSJ “아이들이 사탕 얻는 핼러윈, 한국선 클럽 가는 날 됐다”

각국 외신이 29일 밤 발생한 이태원 압사 사고를 집중 조명 중인 가운데, 한국 내 핼러윈 문화가 변질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현지 시각)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벌어진 참사를 자세히 전한 뒤 “한국에서 핼러윈은 아이들이 사탕을 얻으러가는 날이 아니다”라며 “최근 몇 년 간 20대를 중심으로 코스튬을 차려입고 클럽에 가는 행사로 정착됐다”고 전했다.

이어 “이태원 지역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한미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세계 각국 요리를 선보이는 바, 클럽, 레스토랑이 즐비한 장소”라며 “사고 전 서울 중심부에 있는 이곳에 약 10만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다”고 했다.

또 “영업시간 제한과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코로나 관련 규제가 해제된 이후 첫 핼러윈이라는 점 때문에 참여율이 더 높았다”며 “한국의 핼러윈 악몽은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로 전 세계에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축제로 잘 알려진 핼러윈은 고대 켈트족이 새해(11월 1일)에 치르는 사윈(Samhain) 축제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켈트족은 이날 사후 세계 경계가 흐릿해지며 악마나 망령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다고 여겼으며, 사자의 혼을 달래고자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을 내놨다.
망령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분장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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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Halloween)의 정체 / 10월 31일

글을 시작하면서

매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의 날이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Martin Luther, 1484~1546년) 1517년에 독일 비텐베르크대학 교회의 정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인 것으로 시작으로 종교개혁의 불길이 일어난 날이다.
그러므로 이날은 우리 기독교의 역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날이다.
교회에서는 종교개혁자들의 발자취와 역사적 의미를 설교하며 개혁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의 날이기보다는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로 더 많이 알려졌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는 데 있다. 즉 이날이 되면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 축제로 세상 사람들은 즐기며 지낸다.
그런데 문제는 이날에 일부 교인들마저도 함께 즐기려고 동참한다는 슬픈 소식이 들려지기 때문이다.
귀신 분장을 하며, 호박 등을 들고 마법 모자를 쓰고 아이들이 유치원 등에서 이 귀신의 축제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 자녀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물론 영적인 무지 때문일 수도 있으나 그러한 무지에 대해 깨우쳐주지 않는 영적인 지도자들의 책임도 있을 것이라는 자책을 하면서 할로윈에 대한 정체를 알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이 글을 시작한다.

할로윈(Halloween) 용어의 의미

멕시코의 전통명절 중 대표적인 것이 매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지키는 ‘죽은 자들의 날’이란 것이 있다.
명절 중에 11월 1일‘어린 영혼을 위한 날’이고 2일 ‘어른 영혼을 위한 날’이라 한다.

이 이간에 이 나라 사람들은 집 안에 특별한 제단을 꾸며 죽은 자들을 위한 선물을 올려놓는다.
또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준비과정으로 무덤을 꽃과 선물로 장식한다.
이러한 축제는 죽은 자들이 이승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머문다는 내세관에서 출발하였다.

떠난 이들의 영혼을 기리는 행사로 수 세기 동안 지속되면서 멕시코의 전통 축제로 자리매김한 이 기간에 칼라베라(calavera)라고 불리는 설탕으로 만들어진 해골 모양의 장식을 준비한다.
이것은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이마에는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는다.
이러한 명절에 먹는 음식으로는 ‘죽은 자의 빵(pan de muerto)’초콜릿 음료가 대표적이며, 설탕으로 만든 색색깔의 해골 과자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멕시코에서의 ‘죽은 자의 날’이란 귀신과 연관된 날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할로윈 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여기에 쓰이는 할로윈(Halloween)이란 단어를 풀어서 쓸 때 첫 단어인 hallow는 고대 앵글로색슨족의 언어로 성인을 뜻한다.
여기에 전야제를 뜻하는 even과 만나 hallow’s even 혹은 hallow’s evening으로 쓰고 있으며, 문자적으로 보면 ‘거룩한 전야’라는 뜻이다. 그리고 정확한 뜻은 만성절 전야제이다.

이것이 한국의 종교용어로 ‘만성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로 10월 31일은 모든 성인 대축일 전날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이승으로 돌아오는 시기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할로윈(Halloween)이란 ‘모든 성인 대축일 전야제(All Hallows’ Day evening)’의 줄임말이다.

할로윈(Halloween)의 유래

할로윈데이의 기원은 대체로 켈트족의 이교도 풍습과 로마카톨릭 전통의 성인 대축일 전야제가 결합된 혼합 문화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 유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환락과 유희의 밤’으로 변화된 오늘날의 할로윈은 아일랜드 켈트족의 ‘삼하인’이라 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졌다.
삼하인은 죽음의 제왕인 샤먼을 섬기는 신성한 의식이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성인(聖人)의 날 하루 전날인 10월의 마지막 밤을 여기저기에서 온갖 요정들이 세상으로 나오는 날이라고 생각했으며, 인간이 ‘영(靈)의 세계’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날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실상 할로윈 데이는 귀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됐다.
기원전 500년경 영국과 아일랜드, 프랑스 북서부 지방에 살던 켈트족은 죽은 영혼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귀신 복장을 하고 집안을 차갑게 만들었다.
이들은 열 달을 1년으로 하는 달력을 사용해서 11월 1일은 한 해의 시작이자 겨울이 시작되는 첫날이었다.
당시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던 10월 31일은 저승의 문이 열려 죽은 자의 영혼과 악마들이 이승을 올라와 자신이 머무를 다른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 날이라고 믿었다.
이렇게 할로윈은 고대 브리튼과 아일랜드에 거주했던 켈트족의 문화에서 유래했다.
켈트족은 한 해에 네 번 축제를 열었다.
매년 10월 31일에 열리는 ‘삼하인(Samhain) 축제’가 그중 하나다.
켈트족은 이 축제 때 동물의 머리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어 분장을 했고, 동물이나 곡식, 사람을 제물로 바쳐 불에 태웠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삼하인 축제는 로마카톨릭교회가 아일랜드에 전파된 후 6세기 무렵에 로마카톨릭교회에 흡수되었다.
835년경 교황 그레고리오 4세는 모든 성인 대축일을 5월 13일에서 11월 1일로 정식 변경했다.
이후 할로윈은 모든 성인 대축일 전날에 치르는 축제로 굳어졌다.
이렇게 로마카톨릭교회에서 11월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위령성월’로 전통적인 삼하인 축제와도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모든 성인 대축일 다음 날인 11월 2일은 ‘위령의 날’로 죽은 이들을 기리며 연옥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이후 1840년대의 대기근을 피해 온 아일랜드계 이주민에 의해서 할로윈은 미국에 전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현재의 할로윈 문화가 정착한 것은 20세기 초반부터다. 이전까지는 미국으로 이주한 소수의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출신 이민자들이 벌이는 작은 행사에 불과했다.
1930년대 이후부터는 아이들이 분장하고 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과 과자를 얻는 풍습도 자리 잡았다.
이렇게 19세기 중반부터 아일랜드 출신의 이민자가 급증하자 전통 축제인 할로윈도 미국 내에서 빠르게 퍼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축제가 되어 있다.
이러한 할로윈은 미국 땅에 상륙하여 맘몬(돈의 신)과 결탁한다.
그 이후 할로윈 의상 등 각종 할로윈 상품과 막대한 양의 주류 판매 등으로 거대상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할로윈 문화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할로윈(Halloween)의 정체

할로윈(Halloween)은 이교적인 풍습이다.

할로윈 데이는 켈트족의 이교도 풍습과 함께 다신교 문화였던 로마를 한 번에 기독교 문화로 바꾸기가 힘들어 점진적인 변화를 위해 로마카톨릭교회에서 채용한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전히 그 축제 속에는 성경적 근거보다는 다신교적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 따라서 성경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할로윈 축제는 비성경적이다.
더 나아가 반기독교적인 축제일 뿐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경계하고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할로윈(Halloween)은 사탄적인 문화이다.

할로윈의 정점은 바로 귀신 의상을 입고, 귀신 놀이를 하는 것이다.
마귀상, 귀신상, 도깨비 상, 해골상 등 의상으로 변장해서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Trick or treats” 놀이를 한다.
이러한 “트릭 올 트릿”(Trick or Treat!)은 켈트족들이 죽은 조상 영혼들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방황하며 가을 수확물에 대해 장난(trick)을 일삼으며 저주를 가져다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저승으로 평안히 보내기 위해서는 술, 음식, 수확한 곡식 등으로 달래주는 일(treat)이 필요한데 이런 의식을 일 년에 한 번 행하는 미신적이고 사탄적인 행위이다.

이렇게 10월 31일에 할로윈(Halloween)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기괴한 가면 등의 복장을 하고 있다.
무서운 이빨을 드러낸 모습의 호박 등을 켜고 동네를 누비며 사람을 놀라게 한다.
캔디 구걸 또는 구입을 해 나눠 먹는 관습도 있다.
더 기분을 내느라 아주 섬뜩한(spooky) 장면, 또는 흉갓집(haunted house) 놀이, 공포영화(horror movies) 따위를 즐기기도 한다.
이러한 할로윈은 켈트족의 이교도 풍습이 결합된 사탄적인 것으로 문화라는 광명의 옷을 입고 살며시 사람들에게 스며들고 있다.

옛날 켈트족의 지도자로 동물 희생의 제사장으로 있다가 예수를 믿게 된 탐 생귀네트(Tom Sanguinet)라는 사람은 「할로윈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Halloween) 이라는 책에서 “할로윈은 사탄이 마음 놓고 활보하는,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날”이라고 하였다.

김명도는 할로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할로윈은 어두움과 사단의 소산이다.
어린애들이 재미를 보는 흥겨운 민속놀이가 아닌가?
그게 뭐 그리 대단한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겉으로는 어린애들이 놀이를 즐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영적으로 애들은 사단의 노예로서 ‘사단 놀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이는 크리스천으로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할로윈(Halloween)은 인신 제사와 관련되어 있다.

할로윈(Halloween)의 기원은 인신(人身) 제사를 지냈던 유럽의 고대 켈트족이 지켜온 이교적 풍습에서 유래한다.
당시 켈트족은 폭력적이고 야만성이 있어서 희생 제사를 바칠 때 사람까지 번제로 바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종교집단이던 드루이드교를 신봉하던 드루이드파들은 검은 옷과 검은 두건 차림으로 횃불을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강제로 처녀를 공양받아 사람의 모양으로 지은 목조건물에 가두어두고 불태워 삼하인(Samhain)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켈트족들은 마법에 걸린 사후의 인간 영혼은 드루이드가 섬기는 신(神)인 삼하인(Samhain)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삼하인은 인간의 죽음과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죽음의 신이었기에 사람들은 당연히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므로 이때 드루이드파들은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처녀를) 바칠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라고 묻고는 처녀를 바치지 않는 마을 전체를 불태워버리는 등 대단히 폭력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켈트족은 정령을 숭배하는 드루이드교를 신봉하였던 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무덤 속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영혼들이 복수하기 위해서 돌아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신 제사를 지냄으로써, 악령으로부터 화를 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할로윈의 상징은 ‘잭-오-랜턴(Jack-o’Lantern)’으로 불리는 ‘호박 등’이다. 큰 호박의 속을 도려낸 뒤 도깨비 얼굴을 새기고, 그 속에 양초를 켜서 도깨비 눈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호박 등이 바로 ‘잭-오-랜턴’이다. 전설에 의하면 술 잘 먹고, 교활한 잭이라는 사람이 마귀를 속여 골탕 먹인 뒤 죽었다. 앙심을 품은 마귀에 의해 잭의 영혼은 천국도 지옥도 가지 못하고, 아일랜드의 추운 날씨 속에서 암흑 속을 방황하게 되었다. 결국, 추위에 지친 잭은 마귀에게 사정하여 숯을 얻었고,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호박 속을 파내고 이 숯을 넣어 랜턴을 만들었다. 이것이 할로윈을 상징하는 ‘잭-오-랜턴’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신(人身) 제사를 지내던 고대 이교도의 풍습에 의하면, 이 호박 등에 넣는 기름의 원료는 제물로 희생된 처녀의 몸에서 짜낸 기름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할로윈 때 아이들이 사탕을 얻어내기 위해서 집집마다 떼지어 돌아다니며 외치는 소리도,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화를 당할 것이야!”라고 협박하던 고대의 인신제사 풍습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한다.

할로윈(Halloween)에 대한 비판적 견해와 제언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일이다.
이러한 종교개혁일 전인 전야제 행사가 공개적으로 사탄을 찬양하고, 악령들을 초청하는 날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필자에게는 매우 당혹감이 들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할로윈이 기독교 문화로 포장되어 퍼져감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 입장에서 보면 분명 로마카톨릭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종교개혁 기념일인 10월 31일에 귀신과 악마, 좀비 등이 출몰하는 ‘할로윈 데이’는 기독교인들이 즐기기 매우 곤란한 기념일이다.

그런데도 할로윈(Halloween)은 미국이나 한국에서 점점 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할로윈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기독교인들이 할로윈을 하나의 문화로 생각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여기에는 할로윈이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다 보니 거기에서 어떤 해로운 것도 보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할로윈은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니다. 기독교인 시각에서 보면 분명 할로윈(Halloween)은 사탄을 찬양하는 행사이다. 그러므로 멀쩡한 사람들이 마귀로 분장하여 사탄과 놀아나는 것은 철저하게 배격해야 할 사탄문화임을 인식하고 대처해야 한다.

이렇게 문화라는 이유만으로 귀신 분장과 혐오스러운 도구, 소품 등을 활용해 행사를 즐기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악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일에 불과하거나 사탄을 좋게 만드는 행위이다.

할로윈(Halloween) 데이는 죽음의 영혼들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귀신 놀이, 사탄 놀이하는 것은 영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여기에 아이들에게 사탕을 안 주면 이 집을 그냥 두지 않겠다는 보복성, 폭력적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이것은 재미, 흥미의 놀이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욕심을 불러일으키고, 협박에 대한 보상 심리의 쾌감을 얻게 하는 것도 교육적으로 바르지 않다고 정준모는 지적하고 있다.

사탄교 창시자인 안톤 라비(Anton LaVey)는 “나는 크리스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적어도 1년에 한 번 사탄을 숭배하도록 허락한 것에 대해 기뻐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예수의 복음을 영접하기 전 사탄교의 고위 성직자였던 존 라미레즈(John Ramirez)는 할로윈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탄을 숭배하는데 발 빠르게 움직인다. 왜냐하면 그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우리는 할로윈 복장을 하며 얼굴에 색칠하고, 심지어 교회까지도 할로윈을 축하하기 위해 호박으로 교회 정문을 장식한다. 이런 행동은 마치 ‘내 교회가 여기 있다. 네가 가져도 좋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존 라미레즈(John Ramirez)는 계속해서 “우리는 사탄의식을 행한다거나 인간 희생의 의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할로윈 복장을 하는 순간 사탄이 당신을 소유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당신의 법적 권리를 사탄에게 양도하고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이 사탄의 휴일을 축하하는 것이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할로윈 복장을 허락함으로써 당신의 아이들을 영적인 희생물로 바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할로윈의 가장 큰 위험은 어린이들에게 사탄, 귀신, 그리고 여러 악한 생각을 친구처럼 만들어 버린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재미로 즐기는 동안 어린이들은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을 혼동하게 한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어린이들은 ‘재미’가 선악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재미가 있으면 모든 것이 용납되고 재미가 없으면 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따라서 부모들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선과 악을 분명히 구별하도록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고 있다.

또한 정준모는 이러한 할로윈의 정체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 할로윈은 일종의 우상 숭배이다.

* 할로윈은 다른 신을 인정하고 혹은 섬기는 행위이다.

* 할로윈은 결국 귀신을 좋게 하고 섬기는 일이다.

* 할로윈은 사탄을 일종 사탄을 섬기는 일이다.

또한 정준모는 할로윈에 대한 성경적 비판과 올바른 방향을 위해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 있다.

* 할로윈은 유일신 하나님만을 숭배하는 성경적 진리와 어긋난다. 십계명에 하나님 외 다른 신을 섬기지도 말고, 어떤 형상과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 절대 신앙을 가진 성도로서 할로윈을 지내는 것을 문화적 행사나 놀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영성은 바로 귀신을 섬기고 숭상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 할로윈은 이교적 문화이다. 귀신, 사탄, 우상 숭배의 문화이다. 상업주의, 세속화의 영향이다. 흥미를 유발하는 놀이 행사, 문화 행사가 아니다. 순전한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귀신, 사탄, 해골 흉내를 내는 것은 심각한 영적인 문제요, 교육적 문제이다. 이러한 날을 기점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대안적 문화 계발과 행사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앙을 교육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 할로윈 이교 문화에 대하여 수용하고 관용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일종의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교문화와 기독교 진리와 문화는 마치 석가모니 출생을 기념하기 위해 목사나 신부가 가서 합장하고 축하하는 행위와 같다.

* 이스라엘 민족이 패망한 역사적 현장을 볼 때, 그들은 아침에는 하나님을 찾고 저녁에는 바알과 아세라를 찾는 혼합주의 신앙행태에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문화라는 탈, 어린아이들의 놀이라는 포용성 때문에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하나님 절대 신앙에 흠결이 생겨서는 안 된다.

* 어떤 한인 교회나 미국 교회에서는 10월 31일 ‘할로윈’(Halloween)을 이날을 ‘홀리윈’(Holyween), ‘추수제’(Harvest Festival), ‘할렐루야 나이트’(Hallelujah Night)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 가족 중심의 행사로 방향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도 신앙적 반사 효과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할로윈 날에 교회에서 그런 행사를 시도하는 자체가 그날을 인정하는 의미도 있다.

* 이스라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쉐마교육을 하였듯이, 이날에 가정에서 혹은 교회에서 특별히 휠로윈의 허구성과 거짓 우상에 대한 성경적 진리를 가르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다.

이제 여호수아는 출애굽 이후 가나안에 입성한 백성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통하여 분명한 선택을 하라고 경고하였다.

(수24:15)“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10월 31일에 대하여 분명히 결단해야 한다. 이날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의 날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날을 귀신과 사탄의 날로 즐기는 할로윈 데이로 지낼 것이 아니다. 중세시대 타락한 로마카톨릭교회의 부패로부터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일어난 종교개혁의 날로 알고 지내야 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할로윈을 맞아 즐기며 논다고 해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종교개혁의 날을 뒤로하고 할로윈을 향해 달려간다면 그것은 사탄이 좋아하는 우상을 섬기는 행태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할로윈은 영적인 싸움에 대상이다. 이에 바울 사도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엡6:11-13)“(11)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참고문헌

“망자(死者)의 빵”(Pan de muerto - 멕시코 전통명절 “죽은 자들의 날”에 먹는 빵), https://blog.naver.com/myatomgogo/100061017995

“멕시코 죽은 자들의 날”, https://blog.naver.com/ending-note/222029333114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는 사탄의 날이다.”, http://cafe.daum.net/jrcalvin/LOIV/59

“할로윈, 그리고 모든 성인의 날 만성절”, https://altisimo.tistory.com/54

“할로윈데이 Halloween Day”, http://cafe.daum.net/kcmc91/Pkb8/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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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산나, “할로윈은 마귀 축제 철저하게 배격하라”, http://cafe.daum.net/ilmak/5OwK/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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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날(Columbus Day)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92년 8월 3일 항해를 시작해 같은 해 10월 12일에 현재의 바하마 제도(諸島)에 있는 산살바도르섬(추정)에 도착함으로써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딛었다. 미국중앙아메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이 날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날이라 하여 매년 10월 12일을 콜럼버스의 날로 정해 기념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10월의 두 번째 월요일을 국경일로 지정해 신대륙 미국의 건국과 번영에 헌신한 이탈리아계(系) 미국인들의 공헌에 감사하고, 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행사를 한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일부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래 150년 동안 1억 명에 달하던 원주민들이 300만 명으로 줄어들었는데, 이 모두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상륙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콜럼버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학살을 촉발한 침략자이지 존경할 만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 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바꾸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1]

미국의 기념일

콜럼버스의 날은 1906년콜로라도주의 공식 휴일이었으며 1934년에 연방 휴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식민지 시대부터 기념일로 여겼다.
1792년 뉴욕을 비롯한 미국내 다른 도시에서는 콜럼버스아메리카대륙 상륙 이후 300주년 기념을 자축했다. 1892년 벤자민 해리슨 대통령은 시민들에게 콜럼버스의 날 400주년 기념일을 축하하도록 강조했다.
400주년 기념일에 교사, 성직자, 시인, 정치가들은 콜럼버스의 날 기념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애국적 행사는 국가에 대한 충성, 시민권 행사, 사회 발전 축하 등을 위한 방향으로 많이 행해졌다.

19세기 중반 로마 가톨릭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들어오면서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과 같은 이민을 반대하는 단체가 생겨났다. 이민 반대 시위에 대항한 많은 미국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이민자들은 이민에 대한 차별에 대항 할 수 있도록 조직을 형성하였으며 반이민 시위에 투쟁하는 동료 이민자들을 지원했다. 조직명은 콜럼버스 기사단(Knights of Columbus)이었다. 이러한 이름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가톨릭 신자였고 이민자의 시민권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당.

일부 이탈리아계 미국인은 1866년 10월 12일 뉴욕시에서 콜럼버스의 날을 축제일이라고 주장하였다.처음에 콜럼비아의 날은 덴버(Davner)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1세 안젤로 노스(Angelo Noce)의 로비 활동을 통해 미국의 공휴일로 유명해졌다. 1905년 콜럼버스의 날은 맥도날드 제시(Jesse F. McDonald) 콜로라도 주지사의 공식 선언으로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1907년에는 토요일 또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샌프란시스코(San Fransico)는 1869년부터 이탈리안계 미국인 들이 기념해왔고 콜럼버스의 날에 대해 두 번째로 기 역사를 갖고 있다. 1934년 콜럼버스 기사단(Knights of Columbus), 민중, 루즈벨트 대통령의 로비 활동을 계기로 같은 해 10월 12일 '콜럼버스의 날'이란 명칭으로 공식 연방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1971년부터 콜럼버스의 날은 10월 둘째 주 월요일로 변경이 되었으며 우연히 캐나다추수 감사절과 같은 날이 되었다. 현재 은행, 채권 시장, 우체국, 연방 조직, 대부분의 정부 사무실, 학교는 콜럼버스의 날에 쉰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기업 및 증권 거래소는 쉬지 않으며 미국내 몇몇 주는 공휴일로 준수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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