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테니



네오테니(Neoteny)<유형성숙><유태성숙>

마태복음 18:1-3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거기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너희가 이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이르지 못할지니. 

예수 

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고, 새로운 시작이며, 놀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굴러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성스런 긍정이다. 

니체 

네오테니는 진화의 어떤 방향을 이르는 생물학 용어이다. ‘유형성숙’이라고 번역하는 네오테니는 어떤 생물종이 어렸을 적의 형태 즉, 유아의 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어른으로 성숙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진화론이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은 ‘약육강식’이나 ‘강자존’등의 틀에 박힌 통념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진화론에서 말하는 것은 그와 정반대이다. 현실은 무척이나 역설적이고, 현실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이론도 그만큼 역설적이다. 크고 강한 것들이 멸종할 때 오히려 여리고 부드러운 것이 결국 살아남는다! 환경의 변화가 급격할 때 어떤 생물들은 나이가 들어 몸이 커져도 유아기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빙하기와 같이 먹이를 구하기 힘들게 됨에 따라 생존이 극도로 어려운 시기가 닥쳤을 때, 체격이 크고 강한 생물들은 오히려 멸종하기 쉬웠다. 수 백만년 전 빙하기에 실제로 괴수같은 체격과 힘을 가지고 예리한 칼과 같은 이빨과 손톱을 가진 수많은 육식동물들은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되었지만 오히려 작고 약한 동물들은 생존할 수 있었다. 환경 변화를 맞이하여 효과적으로 생존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생물종들은 덩치를 줄여서 먹이를 조금만 먹어도 되어 적응하기 쉬웠다. 이와 같이 어린 형태의 육체를 가지고 어른이 되어서 그 덕에 환경에 적응을 더 잘할 수 있었던 진화의 방향을 네오테니라고 한다. 

인류가 수 백만년 동안 네오테니의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고생물학등 여러 학문에서 이미 밝혀내어 이제 와서 무슨 수를 써도 부정하거나 뒤집을 수 없다. 다만 인류가 진화를 거듭하면서 몇 번이나 그 과정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인간의 몸은 유인원의 태아나 영유아와 같은 특징과 모습을 지닌다. 어미의 뱃속에 있는 침팬지는 몸에 털이 없고, 이족보행에 적합한 골격을 가진다. 인간과 침팬지의 태아는 그 외에도 수많은 공통점들이 있다. 약간만 부연하자면, 인간이 고릴라나 침팬지 등 사촌과는 달리 몸에 털이 거의 없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가설도 분분하고, 인간의 두개골과 척추와 연결이 이족보행에 적합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을 해명하기 위한 가설도 마찬가지로 허다하다. 그러나 두 가지 점을 동시에 설명하면서도 과학적 엄밀성과 근거의 확실성을 잃지 않고 합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현재 네오테니설 외에는 없다. 

인간은 진화하면서 분명 네오테니를 여러 차례 겪었고 그 과정에서 겪은 신체적 변화는 화석이라는 증거로 남아있다. 그러나 성격이나 성향 등 화석에 남지 않는 다른 면, 즉 신체적 특성이 아닌 다른 특성 또한 네오테니를 겪었는 지는 밝히기 어렵다. 다만 수많은 연구와 실험을 통해서 인간종이 다른 영장류에 비해 좀더 사회성이 유다르며 이 특성이 네오테니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결론을 얻기는 했다. 한 집단을 이루는 개체수가 많은 종은 간단히 말해서 사회성이 높은 것이고, 사회성이 높은 종일수록 네오테니의 경향이 강하다. 반대로 네오테니의 경향이 약한 종은 사회성이 낮다. 사회성이 낮다는 것은 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수컷들이 서로 혹은 약한 개체에게 가공할 폭력을 사용한다. 따라서 개체수가 많은 집단을 이룰 수가 없다. 이러한 사회성은 네오테니의 부산물이지 목적은 아니다.  

만약 우리 인간의 정신적 특성도 네오테니에 영향을 받았다면, 인간은 모든 생명체 중에서 놀이와 가장 높은 친연성을 가지는 종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어린 것은 놀이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놀지 않는다. 그러나 동물의 어린 것과 인간은 마냥 놀기도 한다. 또한 성인들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그래서 마음을 놓고 지내는 사이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자신의 아이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진화론자와 심오한 사상가들은 공통적으로 어린이와 놀이에서 뭔가를 찾는다. 사람의 사람된 소이연과 소유연이 놀이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네오테니 : 유태성숙(幼態成熟)


예를 들면, 멕시코도롱뇽은 원산지에서는 변태하지 않고 악솔로틀(axolotl)이라는 유생형 그대로 성숙한다. 그러나 환경의 변화에 의해 변태하여 성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갑상선호르몬을 투여하면 변태하여 성체가 되므로 이 때의 유형성숙은 갑상선호르몬의 부족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근래에는 진화상 유형성숙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이 유력시되고 있다. 예를 들면, 곤충류다지류(多肢類)의 유형성숙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한다. 유형성숙은 유생생식과는 다른 현상이다.

 
neoteny
1 유생(幼生) 생식
2 유형(幼形) 성숙 :
성년기 까지 청년기의 특성을 보존하는 것
라고 사전은 설명하고 있다.


내가 읽은 책에서 이 단어에 대한 설명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neoteny (네오테니)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렸을 때의 성질을 갖는 것'
단순한 외형 보존의 의미에 더하여 젊음을 연상시키는
여러가지 놀라운 특성들 - 호기힘, 활달, 열망, 용기,
다정함, 활력 - 의 보존을 뜻한다... 중략...
네오테니는 나이를 불문하고 놀라운 미지의 대상들에
관심을 집중할 수 있는 특성(혹은 재능)에 대한 상징이다.
나이 80이 되어서도 윈드서핑을 즐기고, 왕성한 창작활동
을 하는 등의...


Big이란 영화가 생각이 났다. 아이가 어른으로 변하고
덕분에(?) 장난감 회사에서 성공을 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당연한(?) 네오테니에 끌리는 한 여자(직장동료?)...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머리속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글로 만나는 것에 대한 즐거움...

PS : 프롬의 '사랑의 기술', '독일인의 사랑', '쥐라기 공원'
'부자아빠 가난한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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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대한 상식 몇 가지를 체크해 보자. 나이 들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 성욕이 없거나 성생활을 계속할 능력이 사라진다? 대부분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활동을 제약하는 신체 장애가 있다?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 지능이 떨어진다? 자연히 몸이 아프다? 일의 생산성과 질이 떨어진다? 체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더 지혜로워진다?

미국의 교육학 박사이자 노화와 건강 전문가인 론다 비먼의 신간 ‘젊음의 유전자 네오테니’(도솔)에 따르면 정답은 마지막 질문 2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니다’이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노인성 치매는 정상 노화과정이 아니거니와 예방도 가능하다. 연구자들은 대개 70대의 2~3%, 80대의 5~10%만이 여러 치매성 질환을 경험한다고 추정한다. 성생활도 노인이 된다고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노인일수록 몸과 마음의 경이에 더욱 눈뜨는 법. 성도, 변화에 대한 적응도, 학습능력도, 일의 생산성도 노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나이들수록 지능이 떨어진다는 것과 자연히 몸이 아프다는 것도 고정관념일 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체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대개 맞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70대가 게으른 30대의 체력을 능가하는 경우는 많지만, 체력은 나이들수록 떨어지는 게 맞다. 나이들면 지혜로워진다는 것 또한 대개는 사실이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통찰력, 판단력, 자기 인식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해 삶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나이와 지혜와의 상관 관계는 크지 않다.

문제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성생활을 즐기고, 신체장애를 최소화하고, 학습 능력과 지능을 유지하며 건강한 삶을 살아가려면 중요한 무언가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저자 비먼은 자신의 신간에서 ‘네오테니(neoteny)’라고 부른다. 네오테니의 사전적 의미는 동물이 유형(幼形) 상태에서 성장을 멈추고 생식기만 성숙하여 번식하는 현상, 즉 유형성숙(幼形成熟)을 말한다. 하지만 저명한 인류학자 애슐리 몬터규는 네오테니는 인간 진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중요한 열쇠로, 젊게 나이드는 일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확인하고, 어른이 되어도 어렸을 때의 특성을 갖는 네오테니의 개념을 새롭게 만들었다. 그 특성이란 열린마음, 호기심, 즐거움, 흥분, 웃음, 장난기 같은 것이다.

이 책은 여기에 착안, 영장류 가운데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네오테니를 잃지 않고 되살린다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우리는 네오테니를 억압하며 나이를 먹어가고 끝내는 거의 사라지게 만들지만, 사회적으로 억압받도록 교육받고 억눌러온 네오테니를 일깨우기만 하면 누구나 두번 젊게 사는 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나이들어서도 네오테니를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책은 강조한다. 우리의 생각과 언어, 동기부여만 제대로 되어 있다면 네오테니를 일깨우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거센 바람도 피하지 않는 탄력성, 나이듦을 긍정하며 받아들이는 낙천성, 세계를 놀라움으로 받아들이는 경이감, 호기심, 기쁨, 유머, 음악, 일, 놀이, 학습 등을 즐기며, 무엇보다도 다시 사랑에 빠지라….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저자가 나이듦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레이저 박피, 보톡스 주사, 주름살 제거수술 등으로 나이듦에 맞서는 것보다는 오히려 노화를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근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젊음의 유전자 네오테니를 성공과 관련지어“성공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어린아이 같다는 것”이라며 “실패한 사람들이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다 깨우친 듯 별다른 관심도, 신기한 것도 없이 다 살아본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반해, 성공한 사람은 여러가지 것에 신기해하고 호기심의 눈빛을 보인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했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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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한근태 칼럼니스트] 늙음과 젊음을 구분하는 잣대 중 하나는 `호기심`이다. 호기심이 없고 매사에 흥미를 잃은 사람은 아무리 젊어도 청춘이라 할 수 없다. 반대로 호기심을 잃지 않고 무슨 일에든 관심을 보이고 무언가 배우고 깨우치려 한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그는 청춘이다.

배움은 절대 공짜로 오지 않는다. 배움이란 무언가 궁금해 하고, 알려고 하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가는 선물이다. 모두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강압적이고 재미없는 주입식 교육을 받으면서 모두 호기심을 잃고 말았다.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혹은 대학문을 나오는 순간 많은 젊은이들이 배움과는 담을 쌓고 있다. 일년에 책 10권도 읽지 않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아는 유명 컨설팅 회사의 사장님은 두 가지 채용 기준을 갖고 있다. 체력과 호기심이 그것이다. 왜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컨설팅 펌은 나이에 비해 보수 등이 좋기 때문에 명문대 출신이 많이 지원을 합니다. 하지만 컨설팅이란 일은 장난이 아니거든요. 생각보다 육체적으로 힘이 많이 듭니다. 며칠씩 밤을 새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러면 무엇보다 체력이 좋아야 합니다. 1년쯤 하고 나면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데 호기심이 없는 사람들은 지루해 합니다. 그러면 발전을 못합니다. 새로운 산업, 새로운 고객, 미래 등에 대해 샘솟듯 호기심이 넘쳐야만 개인도 발전하고 조직도 발전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체력과 호기심을 가장 중시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어린아이 같다는 것이다. 이를 `네오테니(Neoteny)`라 부른다. 여러 가지 것에 신기해하고, 호기심의 눈빛을 보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 실패한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다 깨우친 듯 행동한다. 별 다른 관심도 없고, 신기해 하는 것도 없으며 세상 다 살아본 것처럼 행동한다. 당연히 질문이 없고 발전도 없다.

호기심이 많은 대표적인 사람 중 월트 디즈니가 있다. 그는 자신이 유아적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이렇게 답변한다.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내 행동이 천진난만하다고 말합니다. 그들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아직도 오염되지 않은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오염되지 않은 호기심이야말로 성공한 자와 평범한 자, 즐겁게 일하는 자와 걸핏하면 실망하고 불만을 터뜨리는 자를 판가름하는 잣대인 것이다.

스시로 유명한 효 스시 사장에게 기자가 질문했다. 워낙 유명한 사람들이 자주 오는 곳이라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물은 것이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확실히 뭔가 다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궁금한 것을 못 참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이해될 때까지 계속 물어보더군요.”

“호기심이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 눈에 쓴 안경에 불과하다.” 토마스 칼라일의 얘기다. “호기심이 사라지는 순간 노년이 시작된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말이다. 청춘은 호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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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테니와 사회적 동심

지금은 중학생이 된 큰 딸이 집 근처의 아이들 사이에서 골목대장 역할을 하던 초등학교 5학년의 여름인 2011년 7월말이었다. 지루한 장마 중에도 저녁 나절에 비가 멈추고 선선한 바람이 불곤 했다. 하루 중 한 두 시간이 되나마나 한 그 때 동네 아이들이 몰려 나와 여자아이 남자아이 가릴 것 없이 이런저런 술래잡기와 숨바꼭질을 한다. 어떤 날은 풀피리를 만들어 불고 풀잎과 줄기로 풀 목걸이와 풀 반지를 만들어 주고 받으며 깔깔거린다. 어떤 날은 구슬픈 옛 동요를 서로 가르쳐 주며 돌림노래로 부른다. 먼 옛날의 동화에서 튀어나온 아이들 같다. 눈물이 날 정도로 평화롭다. 꿈결 같은 여름날이 지나간다. 이런 나날이 저 아이들과 내 생평에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 지나가는 그 순간 순간이 아릿하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마을 골목의 놀이생태계가 가장 아름답게 작동하던 재작년 일이다. 대도시나 작은 촌락이나 가릴 것 없이 이렇게 노는 아이들이 있을 리 없기 때문에 공중파와 지방 케이블 방송까지 탔던 아이들이다. 물론 이 아이들은 21세기 소녀 소년들이라 게임하고 예능프로 보는 시간이 더 많았고 학습지니 학원이니 나름 바쁜 아이들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끔 보내는 목가적인 골목 놀이생태계가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우리 동네를 매일매일이 놀이공원이라고 했다. 어떤 아이는 가족과 함께 에버랜드나 스키장에 가서 노는 것 보다 재미있다고 했다. 다들 서울 끝자락의 외진 주택가 이 골목에 대해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예외적인 일상풍경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몰려 나와 이런 저런 놀이를 하는 여름날 주택가 골목 풍경이 뭐가 그렇게 특별한 것일까. 아이들도 어른들도 이런 풍경이 극히 예외적이란 걸 다들 알고 있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전혀 특별할 것이 없었을 모습이었지만 이제 대한민국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아이들의 옛 동요, 풀피리, 풀 반지, 술래잡기, 다방구 등등 모두 기성세대의 향수의 대상이 되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500만 소녀 소년에게는 학원과 학습지와 런닝맨과 스마트폰이 있으니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이런 놀이와 이런 자유와 이런저런 빈둥거림과 웃음을 모두 아동인권이라고 부르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먼저 죽인 다음에 자살하면 ‘자식 살해 후 자살’이 아니라 ‘일가족 동반자살’이 되는 나라에서 퍽이나 하릴없는 작업이다. 그래도 11월 20일은 세계 아동의 날이자 아동인권의 날이라는 걸 어떻게든 기념하고 싶어서, 매년 이맘때마다 게재될 가망도 없이 누구의 요청도 없이, 아이들의 놀 권리와 아이들의 놀 자유와 아이들의 놀고 싶어하는 마음에 어른들이 어떻게 응답해야 될까를 고민하는 원고를 작성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혹시 인권이라는 게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혹시나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귀담아 들을 만큼은 우리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우리의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한다면, 그만큼은 우리 아이들이 놀이 속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최소한도의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먹고 사느라 너무 힘들고 바쁘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루져가 되지 않고 성공하길 바란다. 우리에겐 아이들의 행복을 보류할 막강한 권한이 있다. 까딱하면 낙오자가 될 게 뻔한데 어린 시절 잠깐 행복한 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학생인권을 우스개로 여기는 나라에서 아이들에게 행복할 권리라는 게 있을 리가 없다. 아이들에게 없는 인권과 권리가 어떤 방식으로 성인에게 주어지는 지는 꽤 애매하다. 여하간 우리는 아이들의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성공 사이에서 잠깐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미리 끌어다 쓰면서 망쳐버린 자연과 고갈이 곧 닥쳐오는 자원 덕에 아이들의 미래니 성공이라는 게 ‘기껏해야 부도수표’거나 ‘이미 폐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은 가장 바보 같은 일이 되어버리는데. 

네오테니와 사회적 동심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과 적어도 10년은 지나 닥쳐올 어떤 시점을 비교하려면 그 사이에 과거를 그것도 천문학적인 시간대의 과거를 끼워 넣고 싶다. 인간 입장에서는 진화론적 시간대가 더 체감하기 쉬울 것이다. 네오테니라는 진화론의 개념이 있다. 유형성숙이라고도 한다. 어릴 적 모습으로 어른이 된다는 뜻이다. 여리고 나약한 듯 보이는 성체가 크고 강한 성체보다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좋아서 진화과정에서 우위를 차지한 것이다. 최소한 100만년 전쯤 인류와 침팬지의 공통조상이 있었다. 인류는 인류로 진화했고 침팬지는 침팬지의 길을 가면서 인류와 침팬지가 갈라졌다. 인간과 침팬지는 비슷하지만 인간과 침팬지의 영유아는 그보다 훨씬 비슷하다. 침팬지의 영유아는 침팬지 성체보다 인간의 모습에 가깝다. 인류는 두 종의 공통조상의 어릴 적 모습과 비슷하게 진화했고 그 전략은 성공해서 다른 유인원이나 다른 포유류의 생물종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인류는 번성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나이를 먹어도 놀이를 포기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생물종인 듯 보인다. 

어릴 적 모습을 유지한다고 어릴 적 마음을 그대로 지닌다고 보긴 어렵다. 동심은 말 그대로 어린이의 마음이며 특징이다. 동심이란 게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지만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가진다. 또한 한 개개인이 성장한 이후에도 동심을 얼마나 지녔는지에 대해 내면의 아이inner child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한 사회 전체의 동심을 관찰하고 전체 사회와의 관련성을 따지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장난기, 호기심, 의외성에 대한 사회적 용인도를 사회적 동심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심이란 말이 보통 포지티브한 내포를 가지지만 권력과 힘에 대한 순응성과 자기중심성 및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결여도 사회적 동심에 속한다. 이렇게 보면 사회적 동심이 음의 방향으로 극에 달해있고 양의 방향으로는 거의 뻗어 있지 못한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지금과 다른 방향이나 모습을 찾아보려면 참조할 대상이 필요하다. 현재 필자가 주목하는 나라는 웨일즈이다. 

웨일즈와 서울 사이에 

2012년 웨일즈는 아동의 놀 권리를 입법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한국으로 치면 여성가족부 차관이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자유를 누리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권리는 없다’고 선포하였고, 각 지역행정국은 아동 청소년들이 놀고 여가를 즐길 권리를 얼마나 가지는 지 매년 평가해야 된다. 웨일즈는 인구가 약 300만이라 한국이 아니라 서울과 비교하기도 어렵다. 규모로 비교하긴 어려워도 정책이나 이념의 방향과 질은 비교가 가능하다. 박근혜의 새마을운동 시즌2와 박원순의 마을만들기가 공히 놓치고 있는 것을 웨일즈는 잡아냈다. 아이들이 놀지 않는데,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무슨 마을만들기이고 무슨 새마을인가 묻고 싶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전임자인 오세훈은 상상놀이터라는 사업을 벌였다. 그가 벌인 사업의 공통점인 디자인중심의 보여주기식 사업이어서인지 서울 곳곳에 알록달록 예쁜 놀이터를 많이 만들었다. 이런 놀이터라면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줄 수 있을 거라 기성세대들은 기대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알았다. 놀이터가 예뻐지긴 했지만 오래 놀 만한 곳은 아니라는 걸. 물론 아이들은 놀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상상놀이터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그네를 없애거나 밑둥에 줄을 매달았다. 여러모로 그전의 전통적인 놀이터보다 재미없거나 비슷했다. 잠깐 놀기에는 몰라도 오래 있으며 놀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그저 어른들 보기에만 그럴 듯 했다. 마치 마을만들기 사업도 행여 그렇지 않을까. 필자는 그 사업이 성공하길 바란다. 아이들도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왜냐하면 진화론의 원리에 따르면 우리 모두가 사실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이인 채로 행복하게 살려면 좀 더 지혜로워 져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