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駝酪)


타락(駝酪)
- 떨어질 타, 떨어질 락(낙)

1. 품행(品行)이 나빠서 못된 구렁에 빠짐.
2. 도심(道心)을 잃고 속심(俗心)으로 떨어짐.
3. 죄(罪)를 범(犯)하여 불신(不信)의 생활(生活)에 빠짐.


부패(腐敗)
- 썩을 부, 패할 패

1. 부패균(腐敗菌)에 의(依)해 단백질(蛋白質) 및 유기물(有機物)이 유독(有毒)한 물질(物質)과 악취(惡臭)를 발생(發生)하게 되는 변화(變化).
2. 법규(法規), 제도(制度) 등(等)이 문란(紊亂)해 바르지 못함.
3. 정신(精神)이 타락(墮落)함.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창세기 6:11-12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변화(變化)
- 변할 변, 될 화

1. 모양(模樣)이나 성질(性質)이 바뀌어 달라짐.

누가복음 9: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린도전서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린도후서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변질(變質)
- 변할 변, 바탕 질

1. 질이 달라짐.

예레미야애가 4:1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결혼이 파경에 이를 때, 부부는 사랑하고, 약혼하고, 결혼하던 시절의 기억이 없습니다.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립니다.
사랑은 식어버리고, 불륜을 저질러서 이혼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타락을 결혼에 비유하여 말씀하실 때가 잦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땅을 더럽히고, 기업을 가증하게 하였습니다.
생활의 편안함으로 인해 무료함을 느꼈으며, 무언가 재미있고 신나는 일을 찾았을지 모릅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우상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엄격하고, 쾌락을 쫓아다니는 것에 대하여 금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방 종교는 그들에게 새로운 모험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불륜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행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는 데 있었습니다.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죽음의 고비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렸습니다.
당신이 구원을 받았을 때, 감격스럽고 기뻤던 기억을 떠올려보십시오.
지금 바로 그런 감격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노라고 맹세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다시 세상의 신을 따라 욕망을 따라 살고 있지 않습니까?
처음 사랑이 식고, 열정이 식을 때, 신앙은 타락합니다.

우리는 사랑이 한결같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한결같지 않은 것이 사랑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 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처음 사랑할 때를 기억하고, 그때의 사랑, 열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재물을 섬기는 사람은 올바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공을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온갖 잔인한 수단도 다 동원합니다.
그렇게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공 자체가 우상일 수 없지만, 온갖 음모와 거짓말을 해서라도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온갖 쾌락, 도박, 마약, 술, 이런 것들에 빠진 것도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은 우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잘못된 우상에 빠져 있습니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가 만연하면 죄가 죄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하는 것을 죄라고 한다면 율법처럼 복음이 우리를 옥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를 정직하게 살펴본다면 우리에게 우상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지나쳐서 취미생활을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음악을 좋아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무엇을 수집하는 행위를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은 금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은 위로부터 아래로 흐릅니다.

종교의 타락도 위에서부터 타락하여 백성까지 타락하게 합니다.
제사장은 여호와가 어디 계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마저 의심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율법을 가르친 자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가르치는 서구신학이 있습니다.
부활도 천국도 믿지 않습니다.
결국, 유럽은 이런 잘못된 신학 때문에 교회가 텅 비게 되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것은 예수 믿어 부자 되고, 성공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없는 말씀을 가르칩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한다면 커다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였습니다.
요즘은 과거처럼 예언한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예언한다고 하면서 잘못된 길로 인도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은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하고,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예언은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교인을 미혹하고, 선동하여 자신의 추종자로 만들려고 주신 은사가 아닙니다.

나는 첫 사랑을 회복하자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너무 뻔한 구호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신앙이 나태하고 게으른 사람에게 이런 구호가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알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타락은 처음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에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에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중심, 예수 중심, 성령 중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버젓이 우상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자리에 심령술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은 타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을 섬길 때 교회는 타락합니다.
예수 중심일 때 결코 타락하는 일이 없습니다.
성령 중심일 때 교회의 부흥이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타락의 결과


타락의 결과는 한 마디로 죽음이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는 비참한 상태에 떨어진 것이다.
이 죽음이라고 하는 말은 네 가지 영역에서의 분리, 부조화 및 불일치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

“영적인 죽음”이라는 말로 설명되는 영적 상태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을 말한다.
타락 전에는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거나 피하거나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동산에 나타나시면 자연스럽게 그 하나님의 임재를 즐거워하며 함께 동산 안을 거닐었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아름답고 평화롭고 행복한 그림을 연상할 수 있다.

아담의 범죄는 그런 아름다운 하나님과의 교제를 더 이상 상상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에덴 추방 이후, 그들에게 비록 “제사”라고 하는 방편을 통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셨지만,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하여 볼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제물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고, 인간 쪽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해야 하는 모습이다.
그나마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시면 가인의 경우와 같이 그 제사는 열납되지 않았다.

타락 이후,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파기됨으로 사람이 영적 죽음의 상태,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 들어 가게 되었다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왜 거듭남을 이야기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야기 하는지를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영적 죽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을 뜻한다면, 중생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을 뜻한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태에 있던 사람의 의식 속에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거워 하는 심령의 변화가 일어난 것을 뜻한다. 살아 있는 영성이란 이런 속사람의 변화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롭고 거룩한 성품이 언행 속에 반영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분리

아담과 이브의 온전해 보였던 인간 관계는 선악과를 먹은 사건을 중심으로 결렬되었다.
이런 사실은 쉽게 창세기 앞 부분에 나타나는 아담과 이브,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하여 살펴 볼 수 있다.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죄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하나님의 질문들에 대한 아담의 대답은, 아담이 어떻게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과 이브에게 떠 넘기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조화는 비참하고도 잔인하게 깨어졌다.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가인의 이야기는 한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관계의 균형이 얼마나 무참하게 무너져 내렸나 하는 것을 그림처럼 보여준다.

성경은 타락 이후 인간의 역사가 그렇게 시작하여 어떻게 세계 역사를 미움과 증오, 살인과 전쟁, 변명과 모함, 불신과 불화로 채색해 왔는지에 대하여 증언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를 외치는 그 사람들 속에 진정한 평화는 없다. 오히려 평화를 갈구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불화하며 살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반증 할 뿐이다.

이것은 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하나님과의 화목을 선포할 뿐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화목을 요구하는 지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셋째, 만물로부터의 분리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저주는 인간 세계와 다른 피조물들의 세계에도 치명적인 변화를 가져 왔다.
사람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피조 세계는 하나님의 저주로 말미암아 그들의 본성과 일치하지 않는 부자유함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도 탄식하며 고통한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라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몸의 구속함을 받는 날 그들도 죽고 썩는 것으로 부터 놓임을 받아 자유하게 될 것을 소망하고 있다(로마서 8:20-22).

사람의 행복과 안녕을 위하여 지음을 받는 피조 세계가 더 이상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 시켜 주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지진이나 해일, 가믐이나 홍수 같은 소위 자연 재해들이 일어 날지 모른다.
사람이 환경을 가꾸려고 노력하면 하는 것 만큼 환경은 상대적으로 열악해 지고 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는 곳에 일시적으로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쓰레기가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썩고 악취가 난다. 환경 보호를 외치는 인간의 노력에 반하여, 역설적으로 환경 파괴 현상이 뒤따른다.
그리스도의 구원 계획 속에 만물의 구속을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신음하는 만물을 제자리로 돌려 놓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넷째, 자신으로부터의 분리

속사람과 겉사람이 분리되는 소위 육체의 죽음을 통과하게 되기 전에도 사람은 내면적인 갈등 속에서 분리 현상을 경험하며 산다.
속사람과 겉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본성적 욕구의 불일치가 심령의 평안을 무너뜨리고 육체의 건강을 상하게 한다.

마음으로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악은 행하며 산다.
육체의 욕구가 마음을 지배하여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하게 만든다.
양심의 소리가 마음의 평안을 흔들어 놓지만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고,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는 비이성적인 선택을 한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라고 하는 한 사람 속에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마음의 법과 몸의 지체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법이 충돌하여 사람으로하여금 죄의 법 아래 무릅을 끓게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로마서 7:18-23).

“내 마음 나도 몰라”가 탄식처럼 입술을 비집고 흘러 나온다.

사람이 구원자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타락의 결과 사람이 영적으로 죽었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사람과 만물과의 관계도, 심지어는 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속사람과 겉사람의 관계도 다 무너져 내린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이 거듭나면, 인간 세계 뿐만 아니라 자연 세계에도 희망이 생긴다.
사람마다 심령의 참된 평안을 회복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정한 평화가 깃든다면, 사람들은 불완전한 그대로 최선을 다하여 삶의 환경으로 주어진 자연을 가꾸며, 자연과 더불어 몸의 구속을 바라보는 그 날을 고대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사람의 타락


창세기 3장에서 11장까지의 기록에 따르면 인류는 네 단계로 타락했다.

Ⅰ. 타락의 첫 번째 단계

A.원인

1. 뱀의 유혹

만일 뱀이 와서 사람을 속이거나 유혹하지 않았더라면 사람은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혹하는 뱀은 사탄의 화신(化身)이다. 사탄이 유혹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는 의문을 사람에게 던지는 것이다.(창3:1,4) 사탄은 여자에게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말했으며, 계속해서 그는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고 거짓말 시켰다. 사탄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나자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었다. 오늘날도 사탄을 똑같은 방법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2. 여자가 머리의 지위를 취함

사람이 타락한 또 하나의 원인은 여자가 머리의 지위를 취한 것이다.(창3:2-3,6) 원래 하나님은 아담을 머리고 창조하셨고 하와는 아니었다. 하와의 머리는 아담이었다. 하와가 뱀에게 미혹당한 이유는 그녀가 머리의 지위를 취하여 그녀 스스로 결정함으로 사탄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우주가운데 유일한 머리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거절하고 머리의 지위를 취할 때 사탄에게 속임을 당할 것이다.

B. 과정

타락의 과정에 있어서 첫 번째 단계는 사람이 그의 영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영을 따라 살 때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된다. 두 번째 단계는 혼을 사용하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몸의 행동이었다. 혼을 사용할 때 몸은 자연히 따라 오게 된다. 그녀가 실과를 따 먹은 것은 몸의 행도이다.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는 영을 사용해야 한다. 다음에 혼을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혼만 사용한다면 머리의 지위를 취하게 되고 우리의 혼이 주도권을 잡게 된다.

C. 결과

타락의 첫 번째 결과는 혼이 오염되고 부패하여 점령당하게 되는 것이다.
하와는 지식나무를 먹기 전에 이미 그녀의 생각은 오염되어 있었다. 그녀가 뱀과 얘기했을 때 뱀의 관념이 그녀의 생각에 스며들어 그녀의 생각을 더렵혔다.

두 번째 결과는 몸에 사탄이 성분이 더해짐으로 그 본질이 변하여 육체가 된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 사람이 몸은 순수했다. 그러나 타락한 후에 육체가 된 것이다.

세 번째 결과는 사람이 영이 죽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을 향해 그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사람의 영이 죽었을 때 사람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을 접촉하거나 교통할 능력이 없었다.

네 번째 결과는 타락한 사람이 죄인으로 짜여진 것이다(롬 5:19)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죄라고 부르는 요소가 사람 안에 주입되었다(롬 5:12)
우리는 죄인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죄를 짓는 것이다.

다섯 번째 결과는 타락한 사람이 정죄받은 것이다(롬 5:18)
정죄는 아담뿐 아니라 온 인류를 포함한다.

여섯 번째 결과는 저주가 들어온 것이다(창 3:17-19)
죄진 것은 사람인데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면 진통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다 사람의 타락으로 들어온 저주의 항목들이다.

일곱 번째 항목은 사람이 낙원에서 쫓겨난 것이다(창 3:23-24)

여덟 번째 결과는 죽음이다(창 3:19, 롬 5:1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전 15:22)

Ⅱ. 타락의 두 번째 단계

A.배경

범죄한 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자신들을 감추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찾아오사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창3:15) 아담이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즉시 그이 아내를 하와라 불렀다.(창3:20) 하와는 ‘산자’를 의미한다. 그 후에 창세기 4장 1절은 하와가 가인을 낳았다. 가인은 ‘얻은 자’를 의미한다. 하와의 관념에 따르면 가인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약속된 여자의 씨였다. 이러한 배경가운데서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로 그분의 구원을 얻었어야 했다. 그러나 사람은 다시 타락했다.

B. 원인

가인은 하나님의 구원의 길로부터 돌아서버린 후 타락의 두 번째 단계를 초래했다.

1. 마귀의 획득
가인이 계속 타락하게 된 한 가지 이유는 마귀가 그를 안에서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창세기 4장의 시점에서 가인을 더욱 더 타락하게 한 자는 사탄이었다. 가인의 타락은 교활한 자에 의해 사주된 것이다.

2. 사람이 주제넘게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스스로 버림
하나님은 사람에게 희생 양의 가죽을 입혀 주심으로써 구원의 길을 보여 주셨다.(창3:21) 그러나 가인은 주제넘게도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받지 않았다. 그는 사탄을 따랐다. 이것이 사람이 더욱 타락하게 된 이유였다.

C. 과정

1. 자신의 방법대로 하나님을 섬김-사람의 관념에 따른 종교를 발명함
가인은 자신의 의견에 따라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제물을 드렸다. 아벨은 그의 대속물인 희생의 피를 흘려 드림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따랐다. 그러나 가인은 자신의 봉사와 제물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방법을 거절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제물을 드렸다.(창4:3-5) 가인은 종교를 발명해 낸 것이다.

2. 사람의 분냄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고 가인은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창4:5) 이것은 그의 관념에 따라 하나님을 섬긴 결과이다.

3. 사람이 그의 형제를 죽임
창세기 4장 8절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여기서 볼 때 가인은 처음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시작했다가 결국 살인하는 것으로 끝맺었다. 요한복음 16장 2절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행하느냐 자신의 의견에 따라 행하느냐이다. 우리의 관념에 따라 행한다면 결국 살인에 이를 것이다.

4. 사람의 하나님께 대한 거짓말과 오만함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4:9) 하나님께 대한 가인의 대답은 거짓말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오만한 자임을 보여 준다. 가인은 감히 하나님을 향하여 그이 오만함을 드러냈다.

D. 결과
두 번째 단계의 타락의 결과로서 하나님은 더 큰 저주를 선포하셨다. 즉 사람은 땅을 경작하지만 땅이 그에게 효력을 주지 아니하리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인은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쫓겨나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다.(4:11하,12,14) 결국 가인과 그 후예들은 하나님 없는 문화를 발명했다. 이 문화는 자존을 위한 성을 쌓는 것과 생계를 위해 육축 치는 것과 오락을 위해 음악을 발명한 것과 방어를 위해 무기를 발명한 것 등을 포함한다.(창4:17, 20-22) 하나님을 잃어버렸으므로 사람은 하나님 없는 문화를 발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타락의 결과이다.

Ⅲ. 타락의 세 번째 단계

A. 원인
첫 번째 타락에서는 하나님의 적이 사람의 밖에 있었고, 두 번 째 타락에서는 이 적이 사람 안에 있었다. 이제 적은 또 다른 단계를 취하여 사람을 더욱 더 타락하게 했다.

1. 악한 영들이 사람과 혼합함-타락한 천사들이 불법적인 결혼을 통해 사람가 결합함
창세기 6장은 하나님이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이다. 욥기 1장 6절과 2장 1절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리웠음을 말해준다.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 천사들은 유다서 6절 7절에 기록된대로 자기의 지위를 지키지 않은 자들이었다. 타락한 몇몇 천사들이 땅에 내려와서 사람의 몸을 취했다. 그들은 사람의 딸들과 불법적인 결혼을 이루었다. 인간의 본성과 악한 영들의 혼합체가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다.

2. 사람이 육체가 됨
창세기 6장 3절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다투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타락이 첫 번째 단계에서 사람은 그의 영을 사용하지 않았고, 타락의 두 번째 단계에서 사람은 자신의 뜻을 따랐으며, 그의 혼으로 살았다. 타락의 세 번째 단계에서 사람은 타락한 몸을 오용하여 육체가 되었다. 온 인류가 육체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분의 종 노아에게 나타나시어 그분이 모든 세대를 땅과 함께 멸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창6:11-13)

B. 과정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정욕 가운데 빠져 살았으며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다.(창6:5) 하나님조차도 더 이상 참으실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것이었다.(창6:11-13)

C. 결과
먼저는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서 떠나셨다. 주님은 “내 영이 영원히 사람과 다투지 아니하리라”(창6:3)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육체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은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그 다음으로 홍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다. 노아의 가족 외에는 모두 홍수에 몰살되었다.(창7;19-23)

Ⅳ. 타락의 네 번째 단계

A. 원인
타락의 각 단계에는 두 가지 요인들이 있다. 첫째 요인은 사탄이고, 둘째 요인은 사람이다.

1. 사탄의 선동
타락의 네 번째 단계에서 사탄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권위를 열국을 만드는 데에 그리고 열국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하도록 선동하는 데에 이용했다. 그러므로 사람은 집단적으로 하나님께 대해 공공연하게 반역하는 상태에 떨어졌다.

2. 인류의 반역
당초 사탄의 타락에 있어서 그의 의도는 하나님의 권위를 뒤엎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타락한 인류 가운데 와서 사람 안에 똑 같은 생각을 주입시킴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집단적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여 일어나도록 선동했다,

B. 과정
첫 번째 단계 하나님에 대해 반역하려는 음모였다,(창11:3-4)
두 번째 단계 사람의 수고로 흙으로 벽돌을 만드는 것이었다.
세 번째 성을 건축하는 것이었다. 네 번째 단계 하나님을 거절한다는 것을 선포하기 위해 탑을 세운 것이었다. 마지막 단계는 그들이 하나님 자신을 부인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낸 것이다.

C. 결과
먼저는 하나님이 그들을 흩으시기 위해 오셨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더 이상 같은 언어를 갖지 못하도록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 세 번째로 혼란이 들어온 것이었다. 바벨은 혼란을 의미한다. 이것은 저주와 심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은 아담의 족속들을 포기하실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사람은 매우 선하고 죄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대적인 마귀에 의해 선악을 아는 지식의 나무의 실과를 따 먹도록 속임을 당했다.
따라서 그는 타락했고 죄인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으며 또 한 면으로 그는 사탄의 악한 본성을 그 안에 갖게 되었다.
사람이 타락한 본성은 그이 후손들로 하여금 또 다시 계속 타락하여 마침내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하고 일어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다.
이 단계에서 사람은 극도로 타락했으며, 하나님께 버림당했다.


부패하고 타락하는 이유

1. 부패와 타락의 한자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부패(腐敗) - 부패균에 의해 단백질 및 유기물이 유독한 물질과 악취를 발생하게 되는 변화, 법규, 제도 등이 문란해 바르지 못함, 정신이 타락함. △타락(墮落) - 품행이 나빠서 못된 구렁에 빠짐, 도심을 잃고 속심으로 떨어짐, 죄를 범하여 불신의 생활에 빠짐. 사전적 의미에서 부패와 타락은 서로 수식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한자의 의미를 살펴보면 부패는 물질이나 제도 또는 정신의 부정적 변화의 과정을 의미하고 타락은 이같은 부정적 변화의 완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2. 부패에 대한 성경적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부패는 신앙과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부패는 회개를 통해 구원으로 회복이 가능하다(신 9:12, 신31:29, 겔 23:11, 고후 11:3, 딤전 6:5). 부패가 부패균과의 결합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종교적인 부패는 돈과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패균을 차단하여 부패를 막는 것처럼 돈과 명예와 권력을 차단하여 종교적인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 이른바 당회장, 노회장, 총회장 그리고 더 나아가 연합 단체의 회장 등 각종 명예직과 권력직이 난무하는 풍토는 종교적인 부패를 일으키는 온상이 되고 있다.

즉 오늘날 한국 개신교 교회의 관료적 권력 구조가 부패의 원인이 된 것이다. 이른바 부패가 신앙 양심과 욕심 사이에서 방황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깊은 회개와 반성을 통해 회복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면서도 인간의 약함으로 인해 욕심에 기울었던 것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단기적이며 수동적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한국 개신교 교회는 모든 명예와 권력 구조를 벗어 버리고 오로지 봉사하고 섬기는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3. 타락에 대한 성경적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타락은 욕심을 위하여 신앙과 양심을 버린 것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오히려 도전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른바 타락한 자들에게서 공통으로 보이는 뻔뻔스러운 태도는 "천벌을 받아도 좋으니…"라고 하는 것이다 (삿 2:19, 단 11:32, 딤전 4:2). 그러면 이러한 타락한 자들에게도 갱생의 길은 있는 것인가. 성경은 타락한 자들에게는 갱생의 길이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히 6:6). 타락은 이른바 양심에 화인 맞은 것으로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완전한 부패를 의미한다. 이러한 타락은 부패의 최후의 단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직 심판과 멸망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타락한 자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이들을 분리하고 격리하는 것이다.

4. 부패와 타락에 대한 신학적 의미

신학적 의미에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 즉 신앙의 유무에 따라 부패와 타락이 구별된다고 하겠다.
즉 신앙이 있으면서 죄를 범하는 것을 부패라 하고 신앙을 잃거나 아예 신앙이 있지 않은 상태를 타락이라 하는 것이다.
즉 신학적 의미에서의 부패는 세속화(돈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것)를 의미하며 점차 인간의 양심과 진리의 빛을 잃어 가는 부정적 변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부패는 인간 실존의 변화를 의미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욕심을 추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욕심이 신앙 양심을 지배하지만 어디까지나 양심의 가책은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
타락은 이러한 부패의 끝을 의미하며 세속주의 그 자체를 신념으로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 양심의 말살 내지는 정의감의 상실 또는 완전한 불신이나 무신론적 태도 등 완전한 정신적 어둠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타락은 인간 실존의 변화 과정을 넘어 신념의 변화에까지 이른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신념을 지니고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신이 추구하는 악행에 대해 확신을 하고 전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른바 신념의 타락이며 또한 타락한 신념에 충실한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공산주의나 파시즘, 또는 독선적인 자국 제일주의나 민족지상주의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른바 천민자본주의 내지는 환차익을 노려 국가 간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악질적 투기 자본들의 금융 자유주의 내지는 신자본주의 등이 이에 속할 것이다.
부패한 관료는 직분과 직권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타락한 관료는 파벌과 당파의 이익이 주된 신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신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 양심의 자각이나 가책이 없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 무슨 짓이든 정당화하는 것이다.
조선 시대 양반층의 집단 이기주의는 백성의 수탈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의 학정은 조선으로부터의 수탈을 배경으로 하는 것과 같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 교회의 최대 병폐로 지목되는 개 교회 주의와 목사들의 세속적 욕심은 이제 서서히 부패의 단계를 벗어나 오히려 신념의 단계로 접어드는 것 같다.

이른바 성직의 타락이라고 할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부패한 관료와 타락한 관료는 그 신념에 서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부패한 관료는 죄의식 속에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추구하지만, 타락한 관료는 국가와 사회에 공헌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악행을 추구하는 것이다.

부패한 성직자와 타락한 성직자 사이에도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부패한 성직자는 사리사욕을 추구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 공공연하게 자행하지 못하지만, 타락한 성직자는 그 모든 악행의 근거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서 나온 것으로 주장하여 공공연하게 악행을 자행하는 것이다.
종교개혁 당시 면죄부를 팔았던 로마가톨릭의 고위 성직자들은 이것을 비밀스럽게 그리고 은밀하게 한 것이 아니라 공공연하게 신념을 지니고 시행하였으며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분들의 행태 또한 은밀하게가 아닌 오히려 신념을 지니고 사리사욕을 향해 돌진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부패한 젊은이와 타락한 젊은이 역시 그 근본적 실상이 전혀 다르다고 할 것이다.
부패한 젊은이는 일시적인 충동과 감정에 휩쓸려 실수하게 되지만, 타락한 젊은이는 오히려 당당한 신념을 지니고 서슴없이 악행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이른바 부패한 경찰은 있어도 부패한 깡패는 없다.
경찰은 주어진 사명감과 정의감에서 출발하는 반면 깡패는 이미 사악한 신념으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깡패였다가 회개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은 아직 양심이 남아 있어서 온전한 깡패로 타락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분들이 회개할 은혜를 받은 경우일 것이다.

만일 경찰이 타락한다면 그것은 국민에게 절망적인 위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부패한 목사는 있어도 부패한 창녀는 없다.
목사란 주어진 소명에 대한 헌신에서 출발하지만, 창녀에게는 이미 그러한 소명적 희생심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창녀였다가 회개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은 아직 양심이 남아 있어서 온전히 창녀로 타락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분들이 회개할 은혜를 받은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목사가 타락한다면 이것은 정말 회복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타락한 천사로 말미암아 비롯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목사의 타락이란 이 세상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악행이 될 것이다.
부패에서 벗어나는 길은 회개에 있으나 타락에 대해서는 심판과 저주와 영벌이 있을 뿐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사건은 제자의 부패라고 할 수 있다.
베드로는 엉겁결에 주님을 부인했지만,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깊이 회개하였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양 떼를 목양하는 사도로 회복될 수 있었다.

그의 이러한 경험은 훗날 초대교회를 위해 사역할 때에 커다란 교훈이 되었으며 그가 순교할 수 있는 거룩한 동력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반면 가롯 유다의 배반은 계획적이며 능동적이었으며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에 대해 신념을 지니고 행동하였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자살하는 것으로 생을 마쳤지만 그의 배반은 이른바 타락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회개를 통해 회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인간 타락의 원인과 결과

    
1. 서론
    
인간의 타락과 구원의 계획이 나오는 곳은 창세기 3장이다
    
가. 인간 타락의 원인 : 1~6절
나. 인간 타락의 결과 : 7~24절
다. 인간 구원의 계획 : 15절, 20절, 21절
    
2. 하나님 나라의 기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창 2:16~17)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선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최종의 기준이다.
하나님은 이 명령에 대한 아담의 순종을 요구하였다.
    
3. 인간 타락의 원인(1~6절)
    
가. 뱀(사탄)의 유혹(1,4,5절)
나.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불평과 불만(2절~3절)
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인간의 교만함과 불순종(6절)
    
사탄과 하와의 대화 문제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왜곡에 있다.
선악과 이야기는 하와를 만드시기 전에 아담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와는 아담으로부터 이 명령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이렇게 받아 드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편한 방식으로 받아드린다.
    
4. 사탄 : 뱀, 용, 마귀, 귀신
    
사탄의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악한 영의 존재가 있음을 알게 한다. (요8:44)
인간은 사는 동안 그와 대적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말을 더 믿었다.
결국 아담의 불순종이 인간의 타락을 불러 왔다. (창3:1~5)
    
사탄은 영원히 구원함을 받을 수가 없는 존재이다.
    
5. 죄를 지은 인간의 모습 (7~13절)
    
가. 수치심을 느낀다. (7절)
나. 두려움을 느낀다. (8~11절)
다. 들키면 핑계를 댄다. (12~13절)
    
6. 하나님의 저주 내용(14절~24절)
    
가. 뱀에 대한 저주 (14~15절)
    
(1) 배로 다니고 흙을 먹을 것이다 (14절) 이는 굴욕과 수치의 표현이다.
(2)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한다.(15절)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이 하와를 하나님 편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이 말씀은 타락한 인간의 구원에 관한 첫 번째 말씀으로 원시복음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나. 여자에 대한 저주 (16절)
    
(1) 해산의 고통
(2)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
    
* (공동번역)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       
* (표준새번역)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 그래서 부부는 한 평생 갈등을 일으키며 사는 것일까?
    
다. 남자에 대한 저주 (17~19절)
    
(1) 땅이 저주를 받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
(2)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다.
(3)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갈 것이다. (육체적 죽음)
(4)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7. 인간 타락(원죄)의 결과
    
가.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에 대한 공포가 생기며,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없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발전한다.
  
나. 이웃과의 관계
    
서로 적대시하며 믿지를 못한다.
서로 이기심을 갖고 이웃을 “이용해 먹으려 한다”.
인간은 습관적으로 서로를 오해하게 된다.
    
다. 남녀간의 관계
    
서로에게 수치심을 갖는다.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한다. (거리감)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돕는 배필에서 서로 지배하려는 관계로 변했다.
    
라. 자신과의 관계
    
인간은 항상 내적 갈등과 분열, 불안을 겪는다.
    
마. 자연피조물과의 관계
    
땅이 저주를 받아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내며 인간에게 지나친 노동이 들어온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며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
    
바. 시간과의 관계
    
죄로 인해 우리는 영원을 상실하였다.
시간의 한계는 인간에게 불안을 가져온다.
죽음은 인간의 무가치와 무능을 선언한다.
    
8.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할 것을 알고 있었을까?
    
아담과 하와는 순전한 상태이나 불변한 상태는 아니었다.
이 변화성은 피조물의 한계이다.
    
9. 결론
    
하나님은 죄 가운에 있는 인간을 긍휼과 용서와 은혜로 구원하시며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악인들에게는 공의의 심판으로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