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永生)



영생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영생에 대해 말할 때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로마서 6:23) 나오는 하나님의 선물을 말합니다. 
이 선물은 죄의 자연스러운 결과인 “죽음”과는 대조적입니다.

영생의 은사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오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1:25). 
이 생명이 "영원하다"는 것은 그것이 영원한 생명임을 나타냅니다. 
이 생명은 끝이 없이 계속 이어지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단순히 끝없는 세월의 연장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말로 쓰이는 일반적인 신약 단어는 아이오노스이며, 이는 질과 양을 아울러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실, 영생은 시간과 무관하기 때문에 실제로 “햇수”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영생은 시간 안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영생은 기독교인들의 현재 경험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은 영생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데, 이는 영생이 신자들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발휘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따라서 영생은 지금 우리 손 안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3:36은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라고 합니다. 
신자에게 이 생명이 “있고”(현재시제)라고 했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이 동사는 헬라어에서도 현재형입니다). 
요한복음 5:24과 요한복음 6:47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재형 구조가 발견됩니다. 
영생의 초점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 현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자리에 있습니다.

성경은 영생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합니다. 
요한복음 17:3은 이런 관점에서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영생”을 하나님과 성자에 대한 지식과 동일시합니다. 
아들 없이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통해서만 택하신 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17:6; 14:9).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 생명의 지식은 학문적인 지식뿐만이 아닌 참되고 인격적인 지식을 뜻합니다. 심판의 날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던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거짓 교사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3). 사도 바울은 주님을 아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으며 그 지식을 죽음으로부터의 부활과 연결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립보서 3:10-11).

새 예루살렘에서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은 것을 봅니다.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요한계시록 22:1-2). 에덴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거역해 생명 나무에게서 쫓겨났습니다(창세기 3:24).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가 생명 나무에 갈 수 있게 하십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이 생명 나무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요한복음 1:29).

모든 죄인은 그리스도를 알고 영생을 얻도록 초청을 받았습니다.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 22:17).

자신이 영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먼저 우리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십시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당신을 대신하여 주신 구세주를 영접하십시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13).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이 복된 소식을 믿으십시오. 주 예수님을 당신의 구주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구원받을 것입니다(사도행전 16:31; 로마서 10:9-10).

요한은 간단하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일서 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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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하는 영생이란?

성경에서 말하는 영생은 단순히 끝이 없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속에서 누리는 영원한 삶을 뜻합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로, 죽음 이후에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차원의 삶을 의미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생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영생은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2. 하나님과의 관계

영생은 단지 죽음 후에 얻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영생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입니다.

3. 현재와 미래의 영생

영생은 믿음을 통해 현재의 삶에서부터 시작되며,  믿는 자들은 이미 영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요한복음 5:24). 
동시에, 영생은 미래에 완성될 것이며, 죽음 이후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요한계시록 21:3-4). 
결론적으로, 성경에서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는 영원한 삶을 말하며, 이는 현재와 미래 모두에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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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이란 무엇일까? 영생의 의미와, 그것을 얻는 방법 [요한복음]

영생(永生)이란 길 영(永), 살다 생(生)으로 생명의 영원함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요한복음 10:10). 
성경 곳곳에는 영생 얻길 바라시는 예수님의 간절하고 애타하신 음성이 기록되어 있다(요한복음 3:15, 4:14, 6:27, 47, 51, 54, 58). 
예수 그리스도는 왜 인생들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려고 하셨을까?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은 눈물, 슬픔, 아픔이 없는 곳이다. 
그리고 사망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 사람은 10년을 살든지 100년을 살든지 결국에는 사망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 
모든 인류가 사망을 당하는 이유는 죄 때문이라고 기록한다(로마서 5:12, 6:23). 
죄가 없는 천국에 죄가 있는 존재가 들어갈 수는 없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죄와 사망을 없애는 진리를 찾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진리를 찾아야만 한다. 이 생명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알려주셨다. 그것은 무엇일까?

영생하시는 예수님과 영생 주는 양식

『요한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진다(요한복음 3:36, 5:24, 17:3). 다시 말해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는 자들이 영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있어야 그가 하신 말씀도 믿을 수 있고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요한복음 6:26~27)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하시는 예수님의 근본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다(요한복음 1:1~3, 14). 영으로 계시던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인생들과 동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빌립보서 2:5~7).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은, 인류가 먹기만 하면 영원히 사는 ‘영생하는 양식’을 주시는 것이었다. 이 양식은 오직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과연 이 양식은 무엇일까?

예수께서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요한복음 6:32, 35, 47~48, 51)

예수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예수님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며, 이 떡을 먹는 자가 영생을 얻는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는가?” 하며 수군거리고 다투었다(요한복음 6:41, 52).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요한복음 6:36).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도 믿을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한복음 6:53~55)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장애물이 되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장애물로 여긴 사람들은 영생을 얻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요한복음 6:61, 66). 당시 한 공간에는 열두 제자들도 있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너희들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이때 베드로는 “당신에게 영생의 말씀이 있는데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요한복음 6:67~68).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었다.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던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도 믿었다.

인류가 먹기만 하면 영원히 사는 영생하는 양식은 예수님의 살과 피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당신의 살과 피를 어떻게 제자들에게 먹이셨을까?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 내가 (십자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떡을 ··· 떼어 ··· 이것은 ··· 내 몸이라 ··· 이 잔(포도주)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4~15, 19~20)

예수님은 실제 당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살과 피로 인치신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라는 말씀이었다. 즉 새 언약으로 세워주신 유월절 예식에 참여하라는 말씀이었다(마태복음 26:19, 26~28, 마가복음 14:16, 22~24).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고 부활하신 이후 약 55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는 고린도전서에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즉 세상 끝날까지 유월절 예식을 행하라고 기록되어 있다(고린도전서 11:23~26).

영생의 진리를 전하는 하나님의 교회

한국선교연구원 2021년 1월호에 따르면, 전 세계 약 78억 인구 중 32.3%인 25억 4,557만여 명이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전 세계에 난립한 교회들 가운데 영생의 진리인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고 전하는 교회는 어디일까?

예수 그리스도가 세운 새 언약의 유월절은 베드로, 요한,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과 초대교회에서 지켜졌으나, 교회가 세속화하면서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폐지됐다. 오늘날 새 언약 유월절을 회복해 성경 원형대로 지키는 곳은 전 세계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유일하다.

(월간조선, 2023. 4. 5.)

하나님의 교회는 한국을 포함해 175개국 7500여 교회 330만 신자 규모의 글로벌 교회다. ··· 예수 그리스도는 ···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가리켜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고 죄 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담아 ‘인류를 위한 새 언약’을 세웠다. ··· 현재 성경대로 새 언약 유월절을 준행하는 곳은 하나님의 교회가 유일하다.

(동아일보, 2022. 3. 18.)

성경에 등장하는 절기인 새 언약 유월절을 오늘날 대다수 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교회사에 의하면,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주재한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유월절이 폐지되었다(간추린 교회사, 세종문화사 참조). 이후 종교암흑시대를 거쳐 1,600년 넘는 세월 동안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 없었다. 현재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유일하다. 하나님의 교회 설립자 안상홍님께서 영생이 약속된 유월절을 다시 찾아 주셨기 때문이다(주간종교신문, 1981. 3. 18. 참조).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15)

그리스도는 우리가 유월절 예식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원하신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인치신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셔야만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마태복음 26:28). 천국은 죄가 없는 곳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는 죄가 있다(요한1서 1:8~10). 그렇기 때문에, 죄 사함과 영생이 약속된 진리인 유월절 예식에 참여하여 천국에 돌아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유월절 예식에 참여한 자들이 가게 될 천국은 어떤 곳일까? 성경은 천국을 가리켜 날마다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곳(잠언 8:29~30), 다시는 사망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 곳(요한계시록 21:4), 영원히 왕처럼 사는 곳(요한계시록 22:5), 영원한 영화를 누리는 곳이라고 하였다(다니엘 7:18).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황홀하고 아름다운 미래, 천국은 이 땅에서 죄 사함과 영생을 약속 받은 자들에게 주어진다(요한1서 2:25). 영생을 약속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아직 열려있다. 영생의 진리인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고 전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찾으면 된다. 그 교회는 당신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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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에 대한 성경구절

영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입니다. 성경은 영생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다고 가르칩니다. 영생은 단순히 끝없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완전한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게 하십니다.

주제별 성경구절 모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영생

영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를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일서 5:11-12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믿음을 통해 얻는 영생

영생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 얻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그의 말씀을 따를 때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믿음은 영생을 받는 유일한 길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귀한 축복입니다.

에베소서 2:8-9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는 영생

영생은 단순히 끝없는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분과 함께하는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곳이며, 영생을 얻은 자들은 그곳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마태복음 19: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디모데전서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영생을 소망하며 살아가기

영생을 얻은 자는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더라도 영원한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믿고, 믿음 안에서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고린도후서 4:17-18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요한복음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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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이란 무엇인가? 성경이 밝히는 영생의 의미와 얻는 방법


성경에 기초하여 영생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 여러 곳에서 말씀하며, 그 본질과 얻는 방법에 대해 증거합니다. 오직 성경 구절만을 근거로 설명하며, 외부 정보나 해석은 일절 배제합니다.

1. 관련된 주요 성경 구절 목록

* 요한복음 3:16

* 요한복음 5:24

* 요한복음 6:40

* 요한복음 6:47

* 요한복음 17:3

* 로마서 6:23

* 요한일서 5:11-13

2. 성경 구절에 근거한 단계별 설명

위의 성경 구절들을 통해 영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영생의 본질 (요한복음 17:3): 예수님께서는 영생이 무엇인지 직접 정의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에 따르면, 영생은 단순히 영원히 존재하는 상태를 넘어,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연결됩니다.

* 영생의 기원 (로마서 6:23, 요한일서 5:11): 로마서 6장 23절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영생이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죄의 결과인 사망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은사'(선물)이며,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요한일서 5장 11절은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라고 말씀하여, 영생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명확히 합니다.

* 영생을 얻는 방법 (요한복음 3:16, 5:24, 6:40, 6:47, 요한일서 5:12-13):

*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은 영생을 얻는 방법이 하나님의 독생자,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임을 증거합니다.

* 요한복음 5장 24절은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말을 듣고'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가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 요한복음 6장 40절은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아들을 '보고 믿는 자'에게 영생이 주어짐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 요한복음 6장 47절은 더욱 간결하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라고 말씀하며, '믿는 자'가 이미 영생을 '가졌다'고 선언합니다.

* 요한일서 5장 12절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가지는 것'과 영생을 가지는 것을 연결합니다. 13절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것'을 통해 영생이 있음을 '아는 것'으로 이끌어 줍니다.

3. 성경적 맥락에 근거한 요약

성경은 영생을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한복음 17:3)으로 정의합니다. 이는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시는 선물(로마서 6:23, 요한일서 5:11)입니다. 이 영생은 하나님의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어지며(요한복음 3:16, 6:47),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요한복음 5:24)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가지는 것이 곧 영생을 가지는 것이며(요한일서 5:12), 아들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가 영생을 가졌음을 알게 됩니다(요한일서 5:13).

이 모든 설명은 인용된 성경 구절의 문자적 내용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성경은 영생이 누구에게서 오고, 무엇이며, 어떻게 얻어지는지를 명확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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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얻는 방법(How to Gain Eternal Life)

무엇을 믿어야 영생을 얻습니까?(What Must You Believe to Get Eternal Life?)

사람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종교들도 영원을 사모하는 인간들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찾는 존재이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심어주셨습니다.(전3:11)


예수님과 부자 청년의 대화도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기독교의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영원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청년은 “영생”을 얻는 길을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마19:16)”라는 질문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청년은 영원한 생명을 선을 행하는 것으로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당시 유대인들의 전형적인 잘못된 구원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어떠한 선을 행할 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였습니다.

어떤 사상가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아침마다 산상수훈 팔복을 읽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해서 간디를 가리켜 가장 자연스러운 그리스도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간디의 정신과 생활이 그리스도를 닮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정신과 생활을 본받아 아침마다 산상수훈 팔복을 읽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칭송을 받는 그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이루었다 하여도 이런 것들은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영생을 얻습니다.(Believe in Jesus to Get Eternal Life)


영생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영생은 사람의 공로나 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죄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셔서 나를 위해 대신 죽어 주심으로 내 죄가 씻음받았다고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아들 삼아 영원히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은 사람은 내가 의롭게 살아서 어떤 공을 쌓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무조건 적인 사랑과 은혜로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발견하라(Find Jesus)

구원을 위한 첫 단계는 예수님의 발견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발견하려면 꼭 믿음이 필요합니다(엡2:8).

종교개혁자 루터가 예수님의 복음을 바로 알기 전에는,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1505년 7월 2일 루터가 법과 대학에 진학하고 얼마 뒤 집에 다니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무시무시한 벼락이 그의 바로 옆에 떨어졌지만 무사히 죽지 않고 살아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후 루터는 성(聖) 안나에게 배우는 법률 공부를 포기하고 수도원에 들어갈 것을 맹세합니다. 루터가 수도원에 들어간 것은 순전히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함이었고 그는 구원의 확신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온갖 고행과 금식과 기도와 선행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을 추구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습니다. 루터에게 하나님은 두렵고 엄하신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성경을 강의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로마서를 연구하던 중에 구원은 인간의 어떤 노력의 대가가 아닌, 거저 주어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특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롬 1:17).”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나서 비로소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유일한 조건은 오직 믿음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라(Deny Yourself)

구원을 위한 두 번째 단계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입니다. 구원은 주님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연합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온전한 연합은 자신을 부정하고 온전히 내려놓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고, 예수님을 알기 원했지만 자신이 가진 세상적인 것들을 포기하지 못함으로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영생에 이르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마19:22-24).

부자 청년에 비하면 베드로가 가진 것은 정말 적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마19:27)”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귀하게 받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19:16)”라고 물었습니다. 부자 청년은 영원한 생명을 자신의 행위로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면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야 하는데 자기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삶과 자신이 가진 재산을 힘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자신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은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았습니다. 우리 모두 주어진 삶에 신실하면서 자신이나 자신이 가진 것을 힘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답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복된 날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영생(永生)

헬라어에는 생명을 말하는 두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비오스’이고, 다른 하나는 ‘조에’입니다. 
조에는 내연적인(intensive) 생명을 의미하고, 비오스는 외연적인(extensive) 생명을 의미합니다. 
비오스는 개역성경에서 ‘생활(living)’이란 말로 번역되면서 생명의 본질을 지칭하기 보다는 생명의 지속과 생명유지의 방편 및 수단이란 의미로 쓰입니다. 
즉, ‘조에’는 생명의 핵심과 본질을 말하는 반면, ‘비오스’는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 및 생명의 껍데기를 의미하는 곳에 쓰입니다.

‘영생(조에 아이오니오스)’이란 말은 ‘조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요한복음 3:15,16, 요한일서 1:1,2). ‘살아 있는’ 생명의 껍데기로서 ‘비오스’는 성경에서 생명의 본질로서 ‘조에’에 연결되지 않을 경우, 살아 있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살아 있는 존재에 불과한 겉도는 생명체의 유지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즉, ‘비오스’는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에너지로서 음식과 물질을 필요로 하는 육신적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생식하는 힘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물질과 생식에 집착하는 ‘비오스’적인 생명은 결국 사람을 거짓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의 본연의 가치인 ‘조에’가 없는 이생의 것들에 집착하는 생명을 껍데기 생명에 해당합니다(누가복음 8:14, 21:34).

그래서 비오스가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의 마음(카르디아)인 정서가 염려하게 되고 염려는 불안과 우울, 그리고 회의에 빠지게 만들고 종국에는 어리석은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요한일서 2:16절은 비오스를 자랑하는 자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즉, 비오스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염려에 빠지고, 많다고 자랑(사치, 과시)하는 자들은 어리석음(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부자)에 빠짐으로 모두 부질없는 껍데기에 생명 유지에 해당합니다.

영생(eternal life)에 해당하는 ‘조에 아이오니오스’는 요한신학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에 매개된 구원과 동의어입니다. 헬라어 사전에서 ‘아이오니오스’는 ‘영원한’, ‘우주적인’, ‘종말적인’, ‘신(Divine) 적인’ 등의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어근인 ‘아이온’은 시간을 초월한 것으로서의 ‘영원’(고린도전서 2:7),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누가복음 1:70, 사도행전 3:21), ‘코스모스’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마가복음 4:19, 히브리서 1:2). ‘아이온’은 시간적 연장선상에서 영원과 만나는 지점으로서 종말론적 위상을 가지기도 합니다(히브리서 6:2,5, 데살로니가후서 1:9, 베드로후서 1:11).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영생은 시간적으로 영원한 삶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전우주적인 삶을 의미하고, 또한 질적으로는 신적인 삶으로서 종말론적으로 영원하고 무궁한 삶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생은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생은 시간의 폭을 넓혀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좁은 시간의 범주에서 사는 삶이 있는가 하면, 영원의 시간까지 시야를 넓혀 사는 폭넓은 삶을 사는 삶도 있습니다. 찰나적 쾌락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먼 미래를 보며 사는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현재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나의 일생전체의 폭을 고려하는 삶, 더 나아가 다음 세대와 그 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며, 장소적 차원에서는 자기자신만을 위한 자기중심적인(egocentric) 좁은 삶에서 인류중심적인(anthropocentric) 삶을 넘어 우주적인(cosmic) 삶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생을 좇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나의 성공과 잘됨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전인류와 만물의 잘됨을 염려하는 ‘조에 아이오니오스’(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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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하는 영생이란?(요한복음 7:3, 20:30-31)

지금은 기독교인이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가 200만 명이 된 시대입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이성구 목사)의 ‘2017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1000명의 기독교인 가운데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23.3%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분명한 크리스천이지만 교회를 나가지 않거나, 못 나가거나, 고민 중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종교를 물을 때 그들은 바르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크리스천 동아리 선배들에게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자신의 영적상태와 신앙의 고민 때문이고,

셋째는 이제는 정말 부모를 떠나 진지하게 기독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교회마다 교인들의 수가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마치 다윗에게 몰려갔던, 건국용사가 될 수 있는 자들이기도 합니다.

원통한 자, 환난 당한 자, 슬픈 자, 도망한 자….

그러나 그들은 다윗을 만나면서 일당백을 감당하는 위대한 건국 용사들이 되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대다수가 용사들이었고 다시 싸우고 싶은 자들입니다.

그들을 나무라거나 멸시하기보다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시 믿음의 용사들로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성도들은 왜 생기게 되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다시 그들의 자리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상실한 믿음을 다시 일으켜서 하나님 나라의 자원들이 되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들의 신뢰와 열정을 다시 일깨울 수 있을까요?

왜, 그들은 가나안 성도가 되었는가?

어떻게 하면 그들을 다시 교회 안으로 불러 들일 수 있겠는가?

그들 대부분은 신앙생활을 육체적인 욕구 충족을 위한 도구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과거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 매우 가난하였습니다.

양반과 평민, 천민으로 구성된 신분제도로 인한 계급 사회였습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가 교회에 나오다 보니 하나씩 해결되어졌습니다.

인간적인 대접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인들은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부터 우리 나라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나 믿는 자들이 경제적인 물질 풍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신앙인들도 종교의 힘을 빌어 더욱 더 열심히 일한 결과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기도도 줄어들게 되고, 하나씩 하나씩 편안하게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출석을 하지 않으면 양심적인 가책이 생기다보니 큰 교회에 주일날 한 번 예배 드리는 것에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모양만 예배에 참석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송구한 마음을 조금 달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가 교회에 출석하게 된 원인이 육체적 욕구 충족에 있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대체적으로 사랑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만 중요한 것이 아니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 세 가지 요소가 균형 맞춰진 신앙생활이 필요합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것은 왜 교회에 다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서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는 것(고후 4:17)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 영원한 내세의 삶, 영생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영생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영생에 대한 우리 성도들의 인식을 바르게 하고자 합니다.

1. 영생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1. 진시황의 불노초 / 왕릉 ;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위해 신비의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큰 노력을 하였습니다. 영원한 삶을 꿈꾸지만 4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2. 오래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욕망

2. 왜 영생이 필요한가?

영생의 반대말 ; 영벌 / 사망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때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38)​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20:30,31)

영생이 곧 구원이며 성도들의 신앙 생활의 최종 목적이기 때문

3. 성경에서는 영생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은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다(요한복음 17:2)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4. 영생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정립할 수 있는가?

영생이란?

예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눅 10:25; 요 3:16), 또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요일 1:2).

a.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의 새롭고 영속적인 관계에 들어가는 것(요 17:3; 롬 5:21).

b. 새로운 생명을 덧입는 것(요 5:24; 롬 6:11).

영생이란 경험적인 지식에 의해서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은 영생의 조건이나 전제가 아니라 영생 그 자체이다.

영생의 특징

a. 단순히 죽음에서 탈피한 불멸의 생(生) 곧 그저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을 가리키지 않고,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구원과 자유와 생명을 일컫는다.

b. 더욱이 장차 임할 천국에서의 삶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 이 세상에서도 소유하게 된 영원한 삶을 가리킨다.

c.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요 17:2-3; 갈 2:20) 얻는 거듭남과 함께 시작되는 경험이요(딛 3:4-7), 세상 마지막 날 완성되는 것이다(요 6:40).

요한복음 17:2 주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다(요한복음 17:2)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통해 택한 자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에게 만민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다는 성자 예수님의 고백을 기록하고 있다.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목적 ; 선택된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

a. 구원의 대상 ;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

구원의 대상 ;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

구원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이 전제된다면 그 대상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구원받게 된다. ​

b. 구원의 내용 ; 영생

‘영생(조엔 아이오니온)’ = 생명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시간적 측면 + 하나님과 함께하는 지복(至福)의 삶이란 질적 측면

‘영원’이란 의미를 지니는 ‘아이오니온’ ; 시간적 개념

‘활기 있는 삶’을 의미하는 ‘조엔’ ; 질적 개념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이 보장받는 영생 ; 지금부터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행복한 삶을 사는 것

c. 구원을 이루는 주체 ;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아들

요한복음 17:3 주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예수님께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분이 세상에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바로 영생이라고 정의를 내리셨습니다.

여기서 ‘곧 ... 아는’으로 번역된 ‘기노스코신’은

/ 현재 시제 가정법으로 ‘계속해서 알아야 하는 것’이란 뜻이며,

/ 이 동사가 나타내는 은 단순한 지적인 인식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영적인 친밀한 교제를 포함하며, 하나님과 예수님이 사랑 가운데서 서로를 아는 것처럼 우리가 그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의 특징

a.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우해 드리며,

b. 그분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하기를 힘쓰게 되며,

c.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세우신 중보자로, 그리고 왕으로 알아 영혼의 구원을 위한 그분의 필요를 절감하며

d. 자신의 모든 것을 그분께 온전히 드리게 된다.

소결론 ;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앎이 바로 이와 같은 앎이기에 이 앎이 바로 영생이다.

신학적으로 많은 연구를 하고 또 성경에 관해 능한 사람일지라도 그가 예수를 거부한다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그에게는 영생이 없다.

영생은 아들이신 예수 안에 있으므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으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다(요일 5:11, 12).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영생을 얻게 됩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게 됩니다(20:31).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이 영생을 얻게 됩니다(17:3).

종합해보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 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영생을 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성도가 해야 할 사명 ; 복음 전파자의 사명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 -> 신앙 목적

인터넷에서 퍼 온 '사흘만 기다리세요'라는 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미국을 방문한 한 중국 여류 작가가

뉴욕 거리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남루한 옷 차림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나약한 모습이었는데

얼굴은 온통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여류 작가는 꽃을 고르며 할머니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뭐가 그렇게 즐거우신가요?"

그러자 할머니는 한껏 미소를 띤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왜 즐겁지 않겠어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요.

여류 작가는 다시 물었습니다.

"번뇌에 대해 마음 편히 생각하시는

재주가 있으신 것 같군요."

그러자 할머니는 여류 작가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가장 슬픈 하루였죠.

그런데 사흘 후 부활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저는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사흘을 기다린답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모든게 정상으로

변해 있는거에요."

할머니의 답변은 여류 작가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슬픈 일이 있을 때 사흘을 기다린다?

얼마나 평범하면서도 철학적인

삶의 태도입니까?"

지금의 번뇌와 고통을 미래에 찾아 올

즐거움에 대한 믿음으로 녹일 줄 아는

삶에 대한 긍정적 믿음

즐거움을 위해 3일만 기다려 보는

여유가 있다면 그 사이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잊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즐거움을 위해

3일만 기다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사이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잊게 되진 않을까요?

베드로가 신앙고백한 내용과의 대조

예수는 먼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절)고 물으셨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이나 교훈들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 표적들 자체에 놀라 예수가 진실로 누구신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다음으로 예수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절)고 물으셨다. 이렇게 물으신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각자 자기의 신앙고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모두의 신앙고백이 독특하고 달라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경험하고 하나님 나라에 웅답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부르심과 웅답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인격을 제대로 깨닫고 고백할 때라야 가능한 것이다.

시몬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라고 대답했다. 이 고백은 다시 말하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심을 받아 구약에 계시된 은혜와 사랑을 그의 백성들에게 베푸십니다.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분입니다”라는고백이다(S. G. De Graaf). 즉 여기에서 베드로가 예수를 ‘메시야-그리스도’로 고백한 것은 예수의 신분을 증거한 것으로서 그 분이 곧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킨 자이며 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 사람임을 시인하는 것이다(민 24:17). 또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은 그분의 신적 속성을 증거한 것으로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심을 고백한 것이다.

17절에서 예수는 베드로에게 복의 선언을 하신다. 그러나 이 복의 근거는 베드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강조한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는 예수의 말씀은 11:25,27에 나타나는 예수의 말씀과 같은 선상에 있다. 그래서 칠톤(B. D. Chilton)은 “예수의 선포는 구구 절절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주의를 집중시키도록 해 준다. 그 나라의 효과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어떤 실체일 수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프랑스(R. T. France)도 예수의 가르침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능동사의 주어로 자주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하나님 나라는 그 자체가 역동적인 주체자이지, 어떤 사람의 행동의 결과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하나님 나라의 주권자이시며 통솔자이시며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지금 베드로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바로 알게 하셨다. 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열어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게 하시고,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보내신 구세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으로 복종하지 않는 자는 그를 그리스도로 바라볼 수도 없고 바라보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우리들은 얼마나 복된 존재들인가!

이어지는 18,19절에서 예수는 처음으로 자기의 공동체와 교회에 대하여 언급하신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다. 그러나 교회는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며,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보다 더 광범위하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사이에 있어서 동일한 점은 양자 모두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는 사실이다(A. Robertson).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로 구성된다. 여기의 백성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의 연장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이 교회를 함께 지지하는 결속이 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연결 고리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 하신 일, 그의 수난과 부활 등 모든 일에 대해 중인이 된 사도들을 통해 교회는 죽음을 극복하신 주 되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군중들이 아직까지 진리에 대하여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20절)고 경계하셔야 했다. 그리스도는 무리들의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순종과 섬김과 대속의 메시야’로 자신의 사역을 완성시키기 위해 이렇게 경계하신 것이다(A. Robertson).


https://nykcn.org/yeongsaeng-yohanbogeum-17-3-juil-seolgyo-weongo-2020-05-24-slash-iseunghyeogmogsa



영생에 관한 예화 모음

▣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누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하자. "너는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죽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 인생에서는 태어난다고 한단다." 이 태아는 이렇게 항의할는지 모른다. "싫어요. 난 여기가 좋아요. 먹을 것도 있지요. 따뜻하지요. 사랑받지요. 보호받지요. 너무 편하고 좋아요. 여기서 나가는건 싫어요." 그러나 태아는 자궁 속에서 예정된 시간을 끝내고 출산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러면 아기는 아름다운 엄마의 사랑스런 두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랑스런 엄마의 품에 안기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참 좋구나. 세상이라고 부르는 이것이 내가 태어나기 전의 그곳보다 더 좋아. 이곳 생활이 옛날 생활보다 훨씬 좋아." 이렇게 해서 행복한 유년시절이 흘러가고 아이는 청년이 되어 보람차고 의욕적인 젊은 시절을 보내며 성인이 된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노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그때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난 여기가 좋아"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의 앞에는 어머니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이 그를 내려다 보고 계신다. 그는 영원하신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은 복이 있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 기쁨 속의 죽음

유명한 제인웨이 목사는 목사가 되어 너무 큰 확신을 가지고 설교하다가 목사로서 두 번 설교하고 폐가 상하여 죽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 너무 기뻐서 말하기를 "아! 나는 내가 지금 느끼는 기쁨의 100분지 1이라도 발표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는 별세시에 말하기를 "은혜 안에서 죽음은 내게 대하여 아무 것도 아니다....나는 눈을 감는 것과 같이 쉽게 죽을 수 있다. 내가 보는 저 영광 때문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다"라고 하였다. 복음은 영원한 생명을 주기 때문에 이 복음을 진실히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눅9:57-62)

▣ 영생의 소망

어느 날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함께 놀았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만나자."고 말했습니다. 
"내일이 뭔데?" 
"캄캄한 밤이 지나면 밝은 날이 오는데 그게 내일이야." 
하루살이는 메뚜기의 이 말을 듣고도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 메뚜기는 어느 날 개구리와 함께 놀았습니다. 
개구리는 "날씨가 추워지니 그만 놀고 내년에 만나자."고 말했습니다. 
"내년이 뭔데?" 
내년은 겨울이 끝난후 날이 따뜻해지려고 할 때 오는 거야." 
그러나 메뚜기는 개구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죽은 뒤에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밖에 모르는 사람은 "영생이 뭔데?"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날 때 영생이 있음을 압니다.
기독교의 복음에서 영생에 대한 소망은 기독교신앙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삶이 결코 현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내세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비극은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에게는 소망이라는 백신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만은 미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고 내일보다 모래가 더 좋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는 소망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는 것으로 영생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을 얻었습니다.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만 하는 데서 그치시는 지요? 아니면 그 사실을 누리면서 사시는지요?

디모데전서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 죽음에서 소망을 보는 기쁨

피지섬에 사는 원주민들의 관습 가운데는 죽은 사람을 부르는 "초혼제"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초혼제의 절정은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이 나무나 절벽에 올라가 '돌아와요! 돌아와요! 돌아와요!'하고 슬피 울부짖는 것입니다. 이들 원주민들은 죽은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오열(嗚咽)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죽은 이 를 위해 오열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슬픔은 곧 위로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 할 것으로 다시 살고"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인의 죽음은 죽음이 아닙니다. 단지 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말입니다.(고전15:51, 52, 살전4:16)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4:13,14)
* 기도: 주님, 이젠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부활의 영광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영생의 출발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영예로운 죽음도 있고 비천한 죽음도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은 사람은 두렵지 않다. 
죽음은 영생의 출발이므로. 그래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가치있는 삶을 산다.

M.E.몽테뉴는 말했다.
『미리 죽음을 생각해 두는 것은 자유를 예상하는 것이다.
어디서든지 그것을 맞이 할 준비를 갖추자. 생명을 잃는 것이 불행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불행하게 살지 않는다. 
사람에게 죽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곧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 부활과 영생

본문: 요한복음 5:19-29 * 찬송405장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 인생들에게 해결할 수 없는 죽음이 있습니다. 수많은 인생들이 이 죽음을 극복해 보려고 하였으며 많은 종교에서 해결하려고 하였으나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을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봉독한 말씀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심판을 면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우나 예수님에게 위임하셨으므로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심판을 받지 않고 혼인잔치와 천년 왕국과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영생하게 될 것입니다. 주안에 있는 자는 부활을 통하고 산 자는 휴거를 통하여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첫 부활에 참여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영혼의 부활뿐만 아니라 몸의 부활도 믿어야 합니다. 천사장의 나팔소리로 재림하실 때 주안에서 잠자는 자들이 먼저 부활한다고 하셨습니다. 영원히 죽음에서 멸망할 것이 아니라 첫 부활이 되신 예수님의 몸과 같이 우리도 믿음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에 참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금 믿음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는 부활, 심판, 영생과 관계됩니다. 믿는 자는 이미 현세에서 영생을 얻었고, 심판을 면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부활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 축복을 영원히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 기도: 우리를 위하여 첫 부활이 되시고 영생의 축복을 주시는 주님을 위하여 충성, 봉사, 진력하게 도와주시옵소서.

▣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

15세 된 여자아이가 뜻밖의 병을 얻어 반신불수가 되었다. 그 아이의 친구가 위문하러 와서 병자를 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가엾다. 네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그러자 병상의 소녀는 친구를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단다. 나의 참 삶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단다. 나는 가까운 날 영광의 주를 볼 것이고, 너와 같은 모습으로 변하여 영광에 영광을 더할 거야."
* 참조: 마18:8,9, 막9:43, 45, 살후1:10, 벧전1:8

▣ 영생에 이르는 길

미국 오레건주 포틀랜드에서 목회하던 한 목사님은 어느 날 아침 그 지역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죽어가는 펠릭스 리치라는 환자가 목사님 한 분과 상담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가능한 한 빨리 가겠다고 약속하고 급히 차를 몰아 그의 병실에 도착하였습니다.
리치는 “목사님! 제 삼촌도 목사님이었는데 하나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전 듣지 않았답니다. 제 아내가 늘 저를 교회에 데려가려 했지만 전 가지 않았어요. 이제 저는 창조주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제 일생은 죄로 가득합니다. 아! 어떻게 하죠?” 하고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회개와 용서에 대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누구든지 진실하게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말해 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시간 리치는 회개하고 자기의 일생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도 목사님은 문병을 갔는데 놀랍게도 리치의 몸은 회복되고 있었습니다.
불과 몇 주 후에 그는 퇴원을 하고 주일에 목사님의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그 후로 8년 동안 매주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같은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그는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는 창조주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 영생의 복(시편133:1-3)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본문에 보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할 때' 하나님께서는 복을 명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복은 영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은혜를 받읍시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하였습니다. 한 가족의 자녀들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는 가운데서 행복스러운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공동체는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가정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마음을 같이 하여" 합심기도 할 때 성령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세 사람일찌라도 내 이름으로 모이면 나도 그들과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전도서 4장 9절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하고, 12절에는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한다",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젓가락 열 개를 한데 묶어서 꺾으려면 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개씩만 꺾으면 쉽게 꺾어집니다. 이승만 박사께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단결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3절에는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하였습니다. 연합하는 데 노력하는 성도들에게 '영생의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영생의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거구의 몸을 지닌 동물이라도 또는 어떤 뛰어난 지혜를 갖고 있는 동물이라도 동물에게는 '영생'을 주신 일이 없으나 사람에게만은 특별히 '영생'을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 정말 영생을 얻었습니까?(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한 신학자의 비유적 말씀을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천국에 가면 깜짝 놀랄 일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천국에 가보니 자기 교회에서 잘 알려진 분이 큰 상을 받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분이 천국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놀라게 됐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자기 교회에서 별로 알아주지 않았던 교인인데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상급을 받은 성도의 반열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내가 이 영광스러운 나라에 왔다는 것이 놀랄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판단으로는 하나님의 참뜻을 분별할 수도 없고 겉으로 그의 신앙을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중생하고 영생을 얻은 확실한 천국 백성이 되는 자격의 말씀을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지적인 믿음으로서 역사적인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인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마 1절,사 53:4∼6)과 십자가의 죽으심,부활하시고 승천 재림까지에 대해서 복음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의 말씀을 내 마음속에 의심치 않고 믿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의 반응이 나옵니다. 믿어지는 신앙과 동의할 수 없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요한복음 15장 26절 말슴처럼 성령이 내주하여야만 복음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마음 중심에 모시고 영접할 때(요 1:12) 나의 이름이 사망에서 생명으로(요 5:24) 옮겨져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바로 참된 영생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의지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우리 가정이 이러한 온전한 영생 즉, 구원을 얻는 믿음을 가지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말씀을 의심없이 믿는 정적인 믿음과 그분을 전적으로 영접하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으시는 가정이 되길 축원합니다.


▣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솔로몬 왕은 인간 영화와 우생의 극치를 누린 사람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이웃 왕족들이 정치 결혼을 원해서 공주격 처첩이 천 명이고 황금 궁전에 학문적 예술적 위락적 모든 조건을 갖추었었다. 눈이 원하고 입이 원하고 육체가 원하고 마음이 원하는 무엇이나 다 해 보았다.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전2:25)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 없는 삶의 전방위 추구의 경험적 결론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허무였다(전1:2).
영원과 하나님으로 채워야 할 공간을 유한한 임시적인 대용품으로 아무리 채워도 갈증은 더하기만 하고 만족도 행복도 안식도 없다(전3:11; 12:13). 우리 마음은 우주를 담고도 모자란다. 인간은 우주보다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삼천 마일 떨어진 내륙에서 조개껍질을 귀에 대고 들으면 바다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바다소리가 들리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영혼의 귀에 영원과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는 것을 막지말라.
-예수칼럼 : 김준곤-

▣ 영원한 쉼터

우리 부부는 미국 LA 은혜교회 김광신 목사님 내외분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김목사님은 1년 예산이 50억원이나 되는 큰 교회 목사님이신데 13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계셨습니다. 반찬은 세 가지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막 집회를 마쳤습니다. 지친 사모님이 김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3일만 휴가를 주세요. 강목사님 사모와 둘이 팜 스프링에 가서 쉬고 오고 싶어요”
이 말을 듣고 나는 얼른 받았습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군요. 우리 남자들끼리 일할 테니 가서 쉬고 오세요” 이때 김목사님이 정색을 하고 손가락으로 위를 가르키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저 세상에 가면 영원한 휴가가 있는데 왜 이 땅에서 짧은 인생을 낭비하려고 그래요”
지금도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김목사님의 그 손가락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놀이터로 보내지 않고 일터로 보내셨습니다. 인생을 풍요롭게 누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주님이 주신 사명이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 포기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

토마스 모어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왕에게 항복하라고 그를 졸랐다.
"우리는 아직도 오랫동안 함께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왜 당신은 꽃 같은 나이에 당신과 우리 가족에게 가장 비극적인 불행을 가져오려 하십니까?"
이 말을 들은 모어는 이렇게 되물었다.
"당신은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최소한 20년은 사실 거예요."
그러자 그는 소리쳤다.
"이 땅에서의 20년밖에 안 되는 삶을 위하여, 내가 영원한 삶을 포기하고 고통에 나를 내어 준다면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오! 영혼을 잃는 것보다는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을 잃는 편이 오히려 더 좋은 일이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소?"
* 참조: 요일1:2, 요일2:25, 단12:2,7, 요10:28, 12:25

▣ 영생의 낙(永生之樂)

사람들이 가장 슬퍼하며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다. 이 죽음은, 죽은 후에는 영영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세상을 떠나면 이 세상보다 억만 배나 나은 영생이 있음을 알아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 영생은 이 몸을 벗은 후에 영혼, 곧 속사람, 다시 말하면 정신과 마음과 뜻과 성품이, 이 몸을 벗어나서 하나님 계신 곳에 가서 괴로움 없이 평안함이요, 슬픔이 없이 즐거워하는 것이며, 욕 없고 영화가 있으며, 병 없고 건강하며, 죽음이 없고 영영 사는 것이다. 또 밤이 없고 낮뿐이며, 원수가 없고 사랑만 있는 곳에서 무궁토록 그 영화를 누리는 것으로 이 어찌 즐겁다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신자는 죽는 것을 마치 배를 타고 먼 바다를 건너 가, 고향에 내리는 것 같이 생각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 무덤에 집착하지 않는 신앙

어떤 기독교인이 이슬람교도들은 순례지에 선지자들의 무덤을 보존하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른다고 조롱당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때 그 기독교인은 “우리에게는 시체가 없기 때문에 무덤이 필요없다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무덤도 시체도 없다. 미켈란젤로의 전기 중에서 그가 제자에게 한 말이다. “왜 자네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그렇게 많이 그리나?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셨기 때문에? 오히려 부활하신 주님을 그리게나! 죽음을 깨뜨리고 승리하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죄와 죽음의 정복자이신 주님을 그리게나.” 영국의 로지 경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아들에게서 받은 편지를 공개했다. “제 무덤에 오지 마세요. 저는 거기 없을 거예요.”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처음에 죽으면 자기 남편 곁에 묻히고 싶어했고 그래서 아프리카에 있는 남편 무덤 곁에 자기 무덤을 준비해두었다. 그러나 모니카는 자기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고는 아들을 불러 이렇게 일렀다. “내 몸을 아무 데든 묻어라. 장지 문제로 신경쓰지 말아라.” 고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와 묻히게 되어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하나님께는 먼 곳이 없단다.” 부활을 믿는 신앙인의 삶은 무덤에 집착하지 않는다.

▣ 나는 영원히 살테야

월남 이상재 선생은 YMCA 운동의 선구자였다. 하루는 어떤 청년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신문에 보니까 영국 수상 처칠은 100세를 누릴 수 있다고 장담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120세는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선생님도 건강하시니까 오래 사실 것 같은데, 얼마나 사실 것 같으십니까?” 그러자 그는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답변했다. “그 사람들은 사는 법을 몰라. 나는 영원히 살테야 !”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법을 알고 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기에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살려주셨다.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려주셨다.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도 살려주셨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도 살려주셨다. 무엇보다도 예수님 자신이 삼일 만에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의 심령은 살아난다. 생명을 얻은 우리의 심령은 육신이 무너진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세계로 옮겨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죽어가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만 생명이 있음을 명심하자!


▣ 죽지 않는 법

옛날 한나라의 무제는 장생불사를 위하여 승로반에 찬 이슬을 받아 마셨다고 합니다. 진나라의 시황제는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동방 삼신산에 동남동녀 500명을 보냈다고 합니다. 동방의 삼신산이란 우리나라의 금강산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금강산이 중국의 산들보다 훨씬 영적 힘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보냈지만 구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물론 먹고 불로장생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금강산에서 불로초는 찾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어리석어 불로장생하려고는 하지만 영생하는 법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늙지 않는 풀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법을 얻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며 부활의 종교입니다. 죽지 않는 법을 아는 이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 생명의 근원

성경: 요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의회 정치가인 글래드스턴의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 내가 쓰는 모든 것, 나의 존재의 모든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신성- 그것은 우리들의 가련한 제멋대로의 경주에 있어서 중심으로 되는 희망이다- 그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것은 주 믿는 자의 모든 것이기도 합니다.
생명이 되시는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만이 영생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영생이 되시는 주님만 바라보면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천국의 암호

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가 천국 문 앞에 서니, 한 천사가 그에게 암호를 대라고 했습니다. “나는 교회에 헌금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디에서나 나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가 물러가고, 외모가 훌륭한 다른 남자가 천국 문을 두드렸습니다. 천사가 암호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성직자로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의로운 일을 많이 했습니다. 유명한 기관들이 나에게 최고의 영예를 주었습니다.”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왕을 알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물러나자마자 할머니 한 분이 그 문에 이르렀습니다. 할머니는 허리가 구부정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두 눈은 반짝이고 있었고, 얼굴은 빛났습니다. 할머니는 손을 높이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피, 나의 대답은 오직 피라오. 할렐루야! 그 피가 나를 씻겨준다네!” 즉시 진주문이 열리고, 그 귀한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갈 때, 천국의 합창단이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우리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입니다. 이것이 지금,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암호입니다.

▣ 영원한 삶에 대한 확신

미국의 정치인으로 일리노이 주 검찰총장을 지냈고 무신론자로서 유명한 로버트 잉거솔(1833∼1899)은 반기독교 강연자로 유명하다. 그의 일화에 따르면 그의 임종시에 딸이 물었다.“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까?” 그러자 잉거솔은 이렇게 대답했다.“지금까지 내가 주장한 무신론은 허무한 것이다. 나는 아직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너는 어머니를 따라 예수를 믿어라”고 했다 한다.
인간은 누구든지 죽음을 앞두고는 가장 진실된 말을 한다고 한다. 평생에 그렇게 강조했던 그의 무신론 강의도 자식에게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안됐고 안타까운 일인가? 여기에 그리스도인과 불신자의 차이가 있다. 아무리 세상에서 훌륭하고 큰 일을 한 자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면 내세의 확신은 없으며 죽음 저편의 영원한 삶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후에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그런데도 세상에서 위대했던 인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 최후에 비참한 생애를 마친 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죽음 앞에서 한 말을 보면,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프랑스 군대! 조세핀!” 이라고 외치며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외롭게 죽었으며 독일의 시인 괴테는 “어둡다.나에게 빛을 달라”고 했다. 또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을 받았다. 나는 지옥에 떨어진다.오! 그리스도여 예수 그리스도여” 라고 말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르다.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예수를 믿으면 다 구원을 받는다. 강도도 구원받고 세리도 구원받고 창기도 구원받는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거지 나사로는 죽음 후에 천사에게 받들려 아브라함 품에 들어갔다. 역사 속에서도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내세의 확신을 갖고 천국에 들어간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좋다! 저 세상은 참 아름답군”이라는 말로 천국을 증거했고,천로역정의 저자 존 버니언은 “나를 받아주시옵소서 이제 당신께 가나이다”고 했다. 또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전도중 순교하면서 “주의 손에 내 영혼을 돌려드리나이다”고 말했다 한다.
얼마나 아름답고 확신에 차 있는 천국에 대한 증언인가? 이처럼 내세의 확신이 있는 자만 전도자가 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어둡고 불확실성이 극에 달해 표류하는 이 시대에 내세의 확신이 있는 전도자가 많이 나오길 기도한다.
/민경설 목사 (광진교회 담임목사)

* 묵상: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노력하고 많은 봉사를 하지만, 여전히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이유는 무엇입니까?

▣ 굿나잇 키스…굿바이 키스

미국의 어떤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평생을 신앙으로 살아오던 한 어머니가 4 명의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게 됐다. 그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들을 쳐다보며 작별인사를 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첫째, 둘째, 셋째아들에게는 차례로 “얘야, 엄마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다오”라고 했는데 막내아들 앤디에게만은 “앤디야, 엄마에게 굿바이 키스를 해다오”라고 말했다.그러자 막내아들은 이상해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왜 형들에게는 굿나잇 키스를 하게 하고, 나에게는 굿바이 키스를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어머니는 가슴속 깊이 묻어뒀던 말을 했다. “앤디야, 너희 형들은 이제 머지않아 저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제 너와는 영원한 이별을 하는구나. 이 엄마는 너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리를 여러 번 간곡히 가르쳤지만 너는 끝내 거절하고 말았어. 다시는 천국에서 너를 만날 수 없기에 너와는 굿바이 키스를 하는 거란다” 어머니의 이 유언같은 말은 결국 앤디로 하여금 굿나잇 키스를 하도록 만들었고 구원의 길인 예수를 영접하게 했다.
/김의환 목사

▣ 하늘에 살아 있는 아들

링컨 대통령은 그의 아들 윌리가 죽자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를 위로하고자 프란시스 빈튼 박사가 말했다.
"각하, 각하의 아드님은 하늘에 살아 있습니다."
"살아있다고요? 지금 나를 놀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각하. 제가 말씀드린 것은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 중 가장 위안이 되는 교리로서 바로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잠시 동안 중얼거렸다.
"살아 있다고? 월리가 살아 있다고?"
잠시 후 그의 얼굴에서 슬픈 표정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 참조: 사25:8, 35:10, 시133:3, 유1:21

▣ 밀라노 대성당의 세 문

밀라노에 있는 대 성당의 세 개의 문에 있는 아치형 길에 세 개의 글이 새겨져 있다. 한쪽 문 위에는 장미꽃의 아름다운 화환이 놓여 있고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기뻐하는 모든 것은 순간이다."
또 다른 문 위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그 십자가 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고통 받는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러나 중앙 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원이다."
참으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을 지적해주는 말입니다.
* 참조: 벧전1:24, 25, 딤전1:16, 6:12

▣ 영생에 관한 성경 말씀

0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46)
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신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요3:14)
0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4)
0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요6:68)
0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0 영생은 곧 유일한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0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롬2:7)
0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5:21)
0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0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6:12)
0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2:25)
0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5:11)
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니라(요일5:20)

▣ 영생에 관한 금언

0 농아 학생에게 영생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것은 전능자의 일생이다라는 아름답고 명쾌한 답변을 하는 것이었다. 영생은 절대적인 이름으로 옷 입혀진 소극적인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적용시킨 것에 대한 현재의 존재요, 시작의 부정이거나 그 존재의 끝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윌리엄 펠리)
0 나는 사랑하는 자는 나와 함께 미지의 바닷가로 가는 것은 꿈꾸게 하라.(펠리시아 히맨스)
0 소원은 자주 무너지고 내 심장은 뜨거운데 이 세상에서 배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구나. 그 일이 저 세상에까지 계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할 일이란 천국에서 열매 맺을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겠구나.(wid 파울 리히터)
0 영원한 세계는 참으로 광대하구나! 그것은 태고부터 모든 인류를 삼키고 지금도 삼키고 있으며 앞으로도 끝없이 많은 인류를 삼킬 뿐만 아니라 신비로 가득찬 우주를 모아들일 것이며, 장면과 전망이 넓게 펼쳐져 많은 관심을 충족시키기에 족하고 다양하며 한없이 많은 지성적인 존재들의 마음을 끊임없이 흡수할 것이다.(나다니엘 에몬스)
0 모든 자연은 그의 자연적 만족을 갈망한다. 우리가 목말라할 것에 대비하시어 하나님은 갈증을 해결해 주실 물을 창조하셨고, 우리가 애정을 갈망할 것에 대비하시어 그 애정을 만족시켜 주실 사랑이 있게 하셨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갈망할 것에 대비하셔서 그 갈증을 해소시킬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갈망할 것에 대비하셔서 그 갈증을 해소시킬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예비하신 것이다.(프래드릭 윌리엄 로버트슨)
0 영생은 축복으로든 고통으로든 그 자체가 완전히 신비롭고, 경의로운 모든 상태로 나타난다. 한 시대의 흥미가 무의미하게 사라져버리는 데 비해 영생을 계속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중압감과 그 중요성을 부여한다.(로버트 홀)
0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대게 미래의 실재성에 관한 확실한 육감 같은 것이 있다. 그러한 육감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들은 대개 위대한 천재들이나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다.(마르크스 툴리우스 키케로)
0 절망한 자는 자신의 소망을 확실한 신앙에 둘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그 방향으로 돌리고, 성공한 자는 그가 열렬히 추구한 목적이 불멸의 영에 대한 갈망을 만족시켜 주지 못함을 느끼며, 악인은 행여 그의 영혼을 구원하여 살수 있지 않을 까 하여 그의 행악에서 돌이킨다.(로버트 사우티)
0 영원한 세계는 언제나 엄하고 거대한 형상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곳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눈을 감은 채 엄숙하고 희미한 목소리로 언제나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을 되뇌일 것이다.(로버트 브리우닝)
0 이 세상은 영원한 세상의 현관이다. 영원한 세상에 들어가는 자는 그 현관에서 입장권을 받아야 한다. 그 입장권은 그리스도의 보혈이요, 그 문을 통과할 때 사용되는 암호는 "예수"이다.(김경선)
0 우리의 삶의 목표는 영생에 관한 방대한 문제의 해답을 얻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현자나 천재, 그리고 철학자에게, 때로는 목사에게 질문해 보지만 속시원한 답변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문제를 응답해 줄 하나님께 마음 문을 열어 놓고 물어야 할 것이다.(죤 포스터)
0 우리는 영생을 약속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죽음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부활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썩을 몸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의롭다하심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의 속에는 아직도 죄가 꿈틀거리고 있다.(죤 칼빈)
0 우리가 영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좀더 아름답고 고상한 곳에 가기위해 가정을 떠나 죽음이라 부르는 일련의 끝없는 변천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영광스러운 영혼은 자신이 머물 곳을 찾아 환경과 행동 무대, 소망을 옮겨 놓게 된다.(에드워드 죠지 벌위 리튼)
0 어느 누구도 영생으로 바뀔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영생 안에 있기 때문이다.(프래드릭 윌리엄 파라)
0 이 세상은 원인과 경향의 씨앗이나, 저 세상은 수확과 결과, 완벽하고 영원한 결과의 세상이다.
0 영생! 당신은 어마어마한 생각에 만족하고 있는가! 우리들이 어떤 새로운 장면과 변화, 그리고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일들을 통과해야만 하는가! 우리 앞에는 끝없이 넓고 아름다운 전망이 펼쳐지겠구나! 그러나 아직은 그 앞에 그림자와 구름, 어두움이 가려있네.(죠셉 애디슨)
0 인간의 최대 관심사는 짧고 일시적인 인생을 마친 후 자신이 들어가게 될 나라이다. 영원한 나라에 대한 인간의 기대가 어떤 근거에 두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확신 위에서 희망이나 두려움을 갖고 있는 지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제임스 클라크)
0 다가올 영생에 대한 총체적이고 본질적인 준비는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한 것을 믿고, 성경이 우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는 것이다.(토마스 챨머스)
0 만약 시간이 좀더 비열하고 적대적으로 흐른다면 영원한 세계는 좀더 당당하고 친절하게 보일 것이다.(토마스 칼라일)
0 모든 위대한 자연들은 안정을 기뻐하고, 모든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기능의 약속으로 확인된 영생을 발견한다.(랄프 왈도 애머슨)
0 두 세상의 실재를 느끼는 것은 매우 어렵고, 인간의 생각과 감정에 적합한 것들을 정당하고도 생각하는 것 역시 매우 어렵다. 우리가 영원한 세계를 향해 가는 길에서 한눈 팔지 않고, 우리 마음의 눈과 영혼의 눈을 언제나 약속의 땅에 고정시킨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어거스트 헤아)
0 영원한 세계가 단순히 시간과 죽음을 초월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초월하여 이 세상에서의 모든 것들의 형태대로 그 자체를 구현할 수 있다. 영원한 세계의 빛과 힘은 어느 곳에나 잠재해 있으며, 지상의 모든 것들을 덮은 베일을 명료하게 벗기려고 하였다. 또 형용할 수 없는 광채로 인간의 평범한 삶을 온통 덮고 있다.(죤 캐어드)
0 영생에 대한 생각은 짧은 인생에 위안을 준다(샤레시앙 길라원 마레쉬에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