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여 새사람 되라(사무엘상 10:6-8)
네가 예수를 믿고 변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를 믿기 전과 후에 변한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바뀌지 않는 삶이 과연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야채(식물)인간
아들이 사로고 뇌를 다쳐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문병 온 어떤 사람이 얼굴 하나 가득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어쩌다 아드님이 야채 인간이 되었어요?”라고 어렵게 물어보더랍니다.
너무 어려우면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고 하던 말도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날은 더워지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눈꽃빙수처럼 시원한 여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사보다 높은 자리 봉사
대학에 가서 4년동안 열심히 공부하면 학사가 되고, 대학원에가서 2-3년 공부하면 석사가 되고 그 위에 연구를 더 하면 박사가 됩니다. 그런데 그 박사가 끝이 아니랍니다.
박사 위에 더 공부를 해야 밥사가 된답니다.
누군가를 위해 밥을 한 그릇 대접하는 사람이 박사보다 높은 사람이랍니다.
그런데 밥사보다 높은게 감사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 하나님께 받은 복을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박사, 밥사보다 높은 사람이랍니다. 그런데 감사보다 높은 것은 봉사랍니다.
내 손에 있는 것을 주머니에 넣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내 놓고 헌신하는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랍니다.
밥도 사고, 감사도 하고, 봉사도하는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 주님의 제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라를 구한 기브아의 사울
기브아땅에서
농사하던 사울이란 사람이 일을 마치고 소를 몰고 돌아오는 길에 통곡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온 동네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암몬사람 나하스가 이웃 마을 야베스 사람들의 오른 눈을 죄다 빼가겠다는 것입니다(11:2).
항복하고 섬기겠다는데도 듣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 이스라엘을 모욕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울은 저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내가 여기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끌고가던 소 한 겨리를 때려 잡았습니다.
갈기갈기 찢어 각을 떴습니다.
핏물이 줄줄 흐르는 고깃덩어리를 사람들 손에 들려 이스라엘 모든 지역으로 보냈습니다.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같이 하리라” (11:7)
이
소리를 듣고 온 이스라엘에서 330,000명이 모여들었습니다.
사울은 이들과 함께 일어나 암몬 진영으로 들어가 모두 쳐부수니
모두 도망가고 흩어져 “둘도 함께한 자가 없었다(11:11)”고 했습니다. 젊은 사울이 이스라엘을 암몬으로부터 지켜냈습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야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통일왕국시대를 열면서 그는 “나라를 새롭게 하자(11:14)”고 했습니다.
왕이 된 사울
사울은 키가 크고 준수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시골에서 아버지를 도와 농사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하루는
집에서 기르던 나귀가 없어졌습니다.
그 나귀를 찾으러 친구와 함께 나섰는데 아무리 찾아도 찾지를 못해 시간만 보냈습니다.
급기야
나귀는 고사하고 아들을 걱정할 아버지 생각에 그냥 돌아가려 하다가 선지자 사무엘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씀을 전하던 사무엘은 사울을 끌어안고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나귀를 찾는 시골 젊은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려움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크게 쓰임받는 지도자가 되라는 축복기로를 해 주었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크게 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신 말씀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10:6)”는 것입니다.
이 한 마디의 기도와 축복이 나귀 찾던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였습니다.
변하여 새사람이 되리라
1) 사울
사울은 이스라엘 12족속 가운데 가장 작은 베냐민 족속입니다. 베냐민 족속 가운데서도 작은 집안 기스의 아들(9:21)입니다.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는 그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왕으로 여겨 청한 자 중 가장 상석에 앉게 했습니다(9:22).
하나님은 나귀 찾아 산을 헤메던 사울을 불러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쓰임 받는 일꾼으로, 쓰셔야 할 청지기로 부르셨습니다.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물고기 잡던 베드로를 불러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렇게 세우신 온 세계의 셀 수 없는 교회마다 사람으로 가득 채우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거듭나 변하여 새사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베드로가 성전에 들어가는 길에 38년 동안 앉아있어 걸어보지 못한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으켜 걷게 하였습니다.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식물인간이 채소인간 되는 것은 변하는 것 아닙니다. 식물인간이든, 채소인간이든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그 기쁨과 즐거움을 소리높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변화입니다.
2) 종교개혁 500주년
1,500년 된 교회는 더 이상 주님이 원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주님께로 돌아가자, 교회로 돌아가자고 외치며 새로운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출발한 개신교회는 이제 500년이 되었습니다. 개혁 된지 500년 된 지금 교회의 모습은 과연 온전한가? 우리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소리 없는 종교개혁, 교회개혁, 신앙생활개혁을 이루어야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나라를 새롭게 하자(11:14)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하나님의 “나라를 새롭게 하자(11:14)”고 했습니다. 나라를 바꾸는 것은 흙을 퍼 나르는 것 아닙니다. 이땅 저땅을 바꾸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남쪽을 북쪽 되게 하는 것 아닙니다. 내가 바르게 돌아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새롭게 하는 것도 내가 주님 앞에 말씀 앞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며 앞으로 3달동안 바꿔봅시다. 거듭납시다. 새로워집시다. 오직 예수, 오직 말씀,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남겨놓고 모두 다 바꿔봅시다. 하나님의 나라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변하여 새 사람이 됩시다.
♥ 교회 명칭을 바꿉시다.
이름은 석자지만 그 석자 이름 안에 그 사람의 모습과 인격 성품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거듭나 새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교회 이름을 바꾸겠습니다. 기도하면서 좋은 이름을 지어보시기 바랍니다.
♥ 교회 조직을 바꿉시다.
500년 되어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일 수 없이 녹슨 조직, 단단하게 굳어져 굽힐수도 늘릴 수도 없는 조직을 바꿉시다. 각 기관도 정비하고, 구역도 정비하고, 각 부서도 정비해서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시는 교회, 주님위해 마음껏 일하는 교회로 변하여 새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문고리를 잡고 자신도 안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그런 조직을 모두 떨쳐버리고 새 술을 담을 수 있는 새 부대로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교회 예배를 바꿉시다.
주님께서는 예배도 중요하지만 형제가 마음 편하게 하나되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형제와 불화한 것이 생각나면 예배를 중단하고라도 가서 화해부터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와 주님의 사랑으로 형제자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의 예배입니다. 지역사회를 위하여 손을 펴고, 멀리 사마리아를 향하여 주의 사랑을 전하는 예배를 원하십니다. 시간 맞춰 모였다 흩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여 받은 은혜 나누는 것조차 예배의 일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덩이에 빠진 양을 건지는 것이 주일 성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예배를 회복하는 변하여 새사람 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짧게는 1달, 길게보면 4달 혹은 5년, 더 길게보면 우리 교회의 역사가 모두 어렵고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번 기회, 기왕에 넘어진 것 거저 일어나지 말고 뭔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게 합시다. 암몬의 침입으로 이스라엘에 위기가 왔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암몬을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통일 왕국시대를 열어가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변하여 새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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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여 새 사람이 되라(사무엘상 10:6∼19
하나님께서 선택된 사람을
되게 하시려고,
여호와의 신이
임하도록 하십니다. 구약시대에 여호와의 신 즉 성령님이 임하는 일은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선택된 지도자에게 때와 필요를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된 사람을 변화시키시어 새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여호와의 신이 임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새사람이란 새옷을 입었거나 몸이 건강해졌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삼상 10:9에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변화된 새사람이 웃사람입니다.
저는
5·16 군사 쿠테타 후 가나안 농군학교에 가서 훈련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경기도 광주 어느
부락에 늙으신 부모님께 불효하는 불량청년이 있었습니다. 농사를 돕지도 않고, 술먹을 돈만 달라고 떼를 씁니다. 온 동네사람들이
골치아픈 사람이라고 외면합니다.
이 청년이 어찌어찌하여 가나안 농군학교에 가게 됩니다. 농군학교 가서 설립자인 김용기 장로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조용하면서도 힘있는 말씀에 첫시간부터 눈물을 흘립니다. 감화력이 대단했습니다.
15년동안 훈련 중 술담배는 물론 끊고 변화되었습니다.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용서를 빌고, 다음날 새벽부터 새벽예배에 갑니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나가 새벽종을 치고 호야를 닦아 예배당에 불을 환하게 켜놓습니다. 품앗이를 하며, 열심히 일합니다.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와 온 부락에서 모두 기뻐하며 칭찬합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을 불렀습니다. 아들은 무릎을 꿇고 말씀을 기다립니다. 아버지가 “네가 가나안 농군학교 다녀온 후 새사람이 되어
내가 너무 기쁘다. 그래서 너에게 선물을 주려고 하니 무엇을 해줄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어머님과 아버님이 계시는데,
제가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만두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재차 묻자 아들은 “정 그러시면 제가 다녀온 농군학교에
다녀 오시죠”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나이가 많지만 아들의 요청에 어찌어찌하여 가나안 농군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 역시 김용기 장로님의 말씀에 첫시간부터 눈물을 흘립니다.
아버지가 졸업하는 날 아들이 찾아갔습니다. 졸업식장에 앉아계신 아버지와 목례인사를 했습니다.
졸업식이 끝난 후 에서와 야곱처럼 달려가 아버지와 아들은 목을 껴안고 한참 울었습니다.
한참 울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젊은 사람들과 함께 훈련받으시느라 고생많으셨죠.”
아버지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지금 아버지라고 했느냐?” “예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네가 내 아버지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농군학교에 와서 배우고 보니 낳았다고 아버지가 아니라 먼저 변한 사람이 아버지더라.”
먼저 변한 사람이 아버지요, 먼저 변화된 사람이 어른이요, 먼저 변화된 사람이 스승이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막 10:31에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자가 많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나이, 지위, 계급, 재물 등으로 웃사람이 되지만, 성경적으로는 먼저 변화된 사람이 웃사람입니다.
여우는 흰머리가 나도 착해지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도 흰머리가 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가 목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성도들은 목사님이라 부르면서 순종하는데, 가정에서는 교역자로 인정받기 힘들었습니다. 신학공부를 10여년 하고, 기도생활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변화되지 못했습니다.
성자까지는
생각할 수도 없으나, 흉내라도 낼 수 있었으면 하고 그때부터 목회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전을 건축하려던
계획을 미루고 첫째 내 자신의 목회, 둘째 가정목회, 세번째 교회목회로 바꾸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변화를 위하여 기도하던중에
성경에 제시된 사랑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사랑의 은사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이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제가 결정한 것 중에 가장 잘한 것은 그때 목회방향을 바꾼 것이라 생각됩니다.
웃사람은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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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복음에 대한 반응이 다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말한 것처럼 “변하여 새사람이 되리라”는 말씀이 사울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도 이뤄진다는 것을 믿는다면 많은 것이 변화될 것입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변합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한 번 듣고 변화됐습니다.
여기뿐 아닙니다.
사도행전 8장 에티오피아 내시 간다게, 이 사람 어떻습니까? 빌립집사의 말을 듣고 한 번에 변합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사마리아 여인인 수가성 사람, 한 번 듣고 변합니다.
예수님을 많이 만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 만나도 아주 명확하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한 순간에 제대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대해야 합니다.
“변하여 새사람 되는 기쁨”
이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 만나고 변할 수 있습니까?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핑계 대지 말아야 합니다.
바디매오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말했다고 가정해봅시다. 나는 너무 가난해, 너무 가난해서 돈 벌고 난 다음에 예수 믿어도 늦지 않아.
나는 지금 바빠, 이 일을 마치고 난 다음에 예수님 믿어도 늦지 않아.
이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회는 흘러가는 것입니다. 잡을 수 없습니다.
기회가 왔다면 반드시 붙잡아야 합니다.
바디매오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거지입니다.
거지가 수지맞는 날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날입니다. 만약에 바디매오가 구걸이 목적이었다면 이때가 가장 최상의 기회입니다.
예수님 다음번에 만나고 지금은 사람들에게 돈을 구하는 것이 우선순위로 생각했다면 여전히 그는 맹인이었을 것입니다.
내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 만날 때는 내 인생의 중요한 일과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이 잘되거나, 예수님 만나러 갈 때 괜찮은 형제나, 자매를 만납니다.
꼭 그때마다 뭔가 잘됩니다.
보통 때는 이런 일도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오빠 커피 한 잔 안 사줄래? 이렇게 나옵니다. 이런 음성은 사탄의 음성을 듣기 바랍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할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 지금입니다.
주님이 날 부르시는 타이밍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 살 때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영적으로 귀중한 일이 있을 때 나는 핑계 대지 않겠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예배입니다.
평생 예배는 삶의 우선순위를 두겠습니다. 하는 사람은 언제나 영적 유익을 누립니다.
그런데 예배도 많고, 새벽부터 예배하고, 이 교회는 목사가 말씀도 많이 전하네, 그래서 여러 가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 꼭 보면 안 나왔을 때 교회가 부흥합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예배를 사모하고 핑계 대지 않고 나아갈 때 주님이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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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0:1~13
하나님의 메시지
오늘은 ‘하나님의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서 1장부터 9장까지의 말씀들을 통해 우리에게 세 가지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1) 한나의 흉년을 통한 메시지입니다.
2) 언약궤의 빼앗김을 통한 메시지입니다.
3) 사울의 잃어버림을 통한 메시지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메시지들이었습니까?
한나의 흉년을 통해서는 ‘사무엘’이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언약궤를 통해서는 ‘심판’이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사울의 이야기도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흉년의 때, 빼앗긴 고통, 잃어버린 절망처럼 고난의 모습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겉모습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 속에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메시지를 주시기 위해서 흉년도 고통도 절망도 일으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주시는 것일까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메시지는 우리를 하나님의 방향으로 이끌어 주tl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건과 때를 일으키시고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를 우리가 가야할 방향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어떤 메시지를 받으셨습니까?
어떤 방향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끌어 가려고 하시는지를 만나보셨습니까?
신앙의 초보일 때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신앙’을 가집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할수록 하나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방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은 어떤 메시지를 주시려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는 말씀입니다.
10장 전체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면서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첫째가 기름부음입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암나귀를 잃어버리게 하셨고, 사무엘에게로 이끄셔서 결국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제비뽑기’입니다. 모든 백성들 앞에서 지파 중에서, 가문 중에서, 남자 중에서 제비를 뽑게 하셨고 결국 사울이 뽑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시는 것일까요? ‘기름부음’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제비뽑기’는 ‘확실한 증거’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사울은 세우시면서 사울에게 ‘섭리’와 ‘증거’의 두 가지 방법 모두를 사용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가지를 통해서 하나님은 사울에게 너무나도 분명한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너는 내가 세운 왕이다’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사울은 자기 힘으로 자기의 능력으로 세워진 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울은 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항상 기억해야 했습니다. 왜입니까? 그것이 사울은 하나님의 방향으로 이끌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울은 방향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메시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1. 암나귀를 찾으리라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2절)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에게 가장 먼저 주시는 말씀은 잃어버린 암나귀에 대한 것입니다. 암나귀를 다시 찾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은 잃어버린 암나귀에 대해서 다시 말씀해 주시는 것일까요? 암나귀는 그냥 암나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통해 사울을 사무엘에게로 이끌었던 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과 저의 신앙생활에도 하나님이 일으키셨던 어떤 일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그 일 속에서 일으키셨던 싸인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저와 아내는 무지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이 주셨던 싸인을 기억합니다. 제가 34살이 되어 교회 개척을 하면서 저희 부부는 사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개척하자고 제안을 받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어떤 상황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기도를 해도 확실히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커질 때쯤 하나님은 우리 부부에게 무지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너무나도 선명한 무지개를 본 것입니다. 잊을 수 없는 것이었기에 아내는 안 입는 청바지로 가방을 만들고 그 가방에 무지개를 수놓아서 그때부터 들고 다녔습니다. 개척을 하고서 시간이 지나서 교인들이 아내가 초라한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서 물었습니다. ‘사모님, 가방하나 사드려요? 왜 맨날 그 가방만 들고 다니세요?’ 사람들이 보기에 초라한 것이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싸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서야 하나님께서 무지개 싸인을 주신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개척을 하면서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린 나이에 교회 개척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우리 부부는 무지개를 보면서 우리들의 개척에 계시는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엑 무지개 싸인을 주셨던 것입니다. >
저는 사무엘의 이야기 속에 있는 ‘암나귀’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엘에게는 암나귀 사건이 그냥 쉽게 잊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울이 꼭 기억해야 하고 붙들고 있어야 하는 하나님의 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자신이 왕이 된 것에 분명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그 속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메시지입니다. 사울의 인생 속에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암나귀 사건을 통해서 각인된 것입니다. 절대로 그 암나귀는 그냥 잊혀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메시지를 사울에게 주시기 위해 다시 찾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냥 암나귀가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붙들고 가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2절 말씀에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라’는 말씀을 통해 메시지를 더욱 분명히 하시는 것입니다. 라헬의 묘실은 베냐민 지파에게는 기념비적 장소입니다. 창 35장을 보면 야곱이 베들레헴 에브랏으로 가는 도중에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산고로 죽습니다. 그곳이 바로 라헬의 묘실이고 베냐민 지파가 태어나고 나중에 차지하게 된 땅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중요한 곳에서 사울은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을 만나고 암나귀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암나귀를 찾으리라’는 말씀은 사울에게 주시는 분명한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잊을 수 없는 2020년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모든 것이 멈추어진 시간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우리 각자에게 그리고 도한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2. 떡 두 덩이를 그 손에서 받으리라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 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께 뵈려고 올라가는 세 사람이 너와 만나리니 하나는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하나는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하나는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 손에서 받으리라’(3~4절)
오늘 두 번째 말씀을 읽으면서 오해 하나가 해결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질문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은 왜 다윗만 사랑하시고 사울은 그렇게 미워하셨나요?’라는 것입니다. 저도 역시 그렇게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고 우리아까지 죽인 다윗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편애하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오해가 다 풀렸습니다. 하나님은 편애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평히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아니 오히려 사울에게 더 큰 은혜를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볼 상수리 나무는 베냐민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나무라고 합니다. 벧엘로 가는 길에 있는 유명한 나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러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이들이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을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예물은 왕께 드리는 예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의미합니다. 마치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수님께 드린 예물과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사울이 이런 예물을 가진 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시고 그들이 떡 두덩이를 사울에게 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그들이 하나님께 드릴 예물 중에서 사울에게 떼어 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사울의 느낌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사울의 느낌은 어떠했을까요?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자신이 받았을 때의 느낌이 어떠했을까요? 좋기만 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가 받았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 저 역시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성도들에게서 사랑을 받을 때입니다. 제가 받을 것이 아닌 데 큰 사랑을 받으면서 저도 사울처럼 느낍니다. 그 때마다 묵직한 감동이 찾아옵니다. 성도들이 준 것이지만 성도들의 손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
사울이 떡 두 덩이를 받는다는 말씀이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말씀이 아닐까요? 사울만 떡 두 덩이를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부족한 자에게 사랑을 주시는 분입니다.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자에게 주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사울의 손에 떡 두 덩이를 주시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네가 부족하지만 내가 네 손을 붙들고 있다”는 메시지가 아니겠습니까?
은혜에만 능력이 있습니다. 은헤는 우리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사울이 받은 떡 두 덩이의 은혜가 그것입니다. 그것이 항상 사울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떡 두 덩이를 손에 들고서, 하나님께 받은 그 귀한 것을 받은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3.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6절)
암나귀를 찾고 떡 두덩이를 받은 사울이 하나님의 산에 이를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사울이 여호와의 신을 입고 예언을 하며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제는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사귀어야 합니까?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사귀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 신실한 사람들을 만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이제 사울은 암나귀 염려도 내려놓게 되었고, 떠 두 덩이로 영적 자존감도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은혜도 받고 체험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변한 새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이 변한 새 사람입니까?
‘여호와의 신을 입고 예언을 하며 변한 새 사람’입니다. 결국 ‘변한 새 사람’이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은혜보다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행’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은혜를 유지시키고, 체험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간 누가복음 24장 48~49절을 묵상하면서 받은 말씀이 그것입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증인의 삶을 당부하시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라는 말씀입니다. 즉, 성령이 임하신 후에 증인의 삶을 시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제자는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있어도, 체험이 있어도, 성령의 동행하심이 없으면 제자가 아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그것입니다.
새 사람은 변화된 사람, 즉 ‘이쉬 아헤르’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자각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래서 그 부르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중요한 특징이 있는 데 그것은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분과의 동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진짜로 일을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쉬 아헤르’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이것입니다. 사울에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울의 실패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주위 사람들입니다. 사울이 사귄 사람들, 만난 사람들이 어떠했습니까? 잘못되었습니다. 사울 주위의 사람들을 묘사한 성경 말씀을 읽어보면 사울 주위에는 귀족들 장군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울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사울이 잘못된 길을 갈 때 막아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도 함께 잘못된 길로 걸어가고 함께 망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아도 내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나누어 보십시오. 더군다나 그 은혜의 깊이를 아는 사람과 나누어 보십시오. 더 큰 확신과 깊이가 더욱 크게 일어납니다.
< 불 잘 붙은 장작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 중에 하나를 꺼내놓아 보십시오. 금방 식어버립니다. 연기만 피우다가 꺼져버립니다. 그런데 불이 다 꺼져가는 숯불에 장작 하나를 놓아보십시오. 금방 새로운 불길이 치솟습니다. >
하나님께서 왜 사울에게 ‘변하여 새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를 주시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삼상 10: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삼상 10:2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로 말미암아 걱정하여 이르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삼상 10:3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삼상 10:4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의 손에서 받으리라
삼상 10:5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 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삼상 10:6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삼상 10:7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삼상 10:8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
삼상 10:9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삼상 10:10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삼상 10:11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들이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
삼상 10:12 그 곳의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
삼상 10:13 사울이 예언하기를 마치고 산당으로 가니라
삼상 10:14 사울의 숙부가 사울과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디로 갔더냐 사울이 이르되 암나귀들을 찾다가 찾지 못하므로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 하니
삼상 10:15 사울의 숙부가 이르되 청하노니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말하라 하니라
삼상 10:16 사울이 그의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이 말하던 나라의 일은 말하지 아니하니라
사막 지대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사는 곳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없는 불모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사님의 사모님이 부엌 바로 뒤에서 아름다운 한 떨기의 꽃이 활짝 핀 것을 보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이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생각하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모님은 설거지를 할 때마다 설거지한 물을 뒤뜰의 같은 장소에 매일 버리셨다고 합니다. 늘 같은 장소에 물을 주자 어느 순간 토양이 바뀌었고, 그곳에 한 씨앗이 바람에 날아와 떨어져서 어느 날 갑자기 자라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입니다.
여러분! 한 순간에 인생이 바뀌는 것은 어렵다 할지라도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하는 삶을 살게 되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水滴穿石(수적천석)’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매일 5분만이라도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다면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5년 후, 10년 후, 15년 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하여 하나님의 허락으로 왕을 세우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는 중요한 과정이 세 가지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첫째,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운 것(1절), 둘째는 사울이 제비뽑기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왕으로 뽑힌 것(21절), 셋째는 사울이 암몬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을 지지하고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11:15).
오늘 봉독해 드린 말씀은 이 세 과정 중에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은 것,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택하신 증거로 보여 주신 세 가지 징조, 그리고 사울과 숙부(삼촌)와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름 부음과 세 가지 징표를 받은 사울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구약 시대에 기름부음을 받는 사람은 세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이나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입니다. 사울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사무엘이 기름을 부었지만 실상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실행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웠다는 세 가지 징조를 예고합니다. 그 중에 첫 번째와 두 번째 징조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사울은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날 것인데 그들이 사울이 잃어버린 암나귀를 다시 찾았으며 사울의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걱정한다고 말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사울은 다볼 상수리나무에서 벧엘로 올라가는 세 명의 순례자들을 만나게 될 텐데 그들은 각각 염소 새끼 셋, 떡 세 덩이,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졌고 사울에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사울은 사무엘의 기름 부음이 큰 의미가 있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선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은 일은 사무엘과 사울 두 사람 사이에 은밀히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사울의 왕위 등극이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과 동행한 사환을 앞서 보내고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으며(9:27), 사울 역시 사무엘에게 들은 이야기와 그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숙부에게 비밀로 했습니다(16절). 이것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스라엘 왕과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이스라엘 왕이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징조가 이루어진 장소가 어디입니까?
삼상 10:2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로 말미암아 걱정하여 이르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첫 번째 징조가 이루어진 장소는 라헬의 묘실 곁입니다. 라헬이 누구입니까?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가 라헬입니다. 그가 어떻게 죽었습니까? 베들레헴 길에서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난산을 한 것이지요. 그래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베노니’라고 불렀습니다.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후에 야곱이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베냐민 지파에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을 배출하게 된 것입니다.
사울은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납니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합니까? “네 아버지가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았다. 아버지께서 집 나간 아들을 더 걱정하고 계신다.” 자기가 집을 나온 목적이 해결되었다는 소식과 아버지가 아들을 더 걱정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한 가지 징조만 가지고는 확신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확실한 징조 또 한 가지를 준비하셨습니다.
삼상 10:3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두 번째 징조도 구체적입니다. 장소가 어디입니까? 다볼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또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마지막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삼상 10:4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의 손에서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보여 주신 징조들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두리뭉실하게 징조를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고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말한 두 가지 징조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세 가지 징조를 보여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땅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져 갑니다. 사울을 왕으로 택하신 이도, 왕으로 세워 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자신의 욕심대로 자신의 뜻을 이뤄가려고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의 뜻을 이뤄가고자 조심스레 한 걸음씩 내딛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저하며 미심쩍어 하는 자들에게 끊임없이 확신을 주고 격려하십니다. 바로 오늘도 하나님은 그런 그분의 백성들에게 다가오셔서 다양한 방법으로 믿음과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성취되도록 역사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방법으로 확신을 주시며 격려해 주십니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 뜻을 이루고자 하신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며 격려해 주실 줄 믿습니다.
새 사람이 된 사울
오늘 본문을 보면 세 가지 징조 가운데 특별히 세 번째 징조만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울에게 생긴 변화를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자 사울은 선지자의 무리와 함께 예언하였습니다. 사울의 변화가 너무나도 극적이고 예상치 못했던 것이어서 사람들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 사울의 모습은 전에 알던 사울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고 하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성도의 내면을 변화시켜 그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과 지혜를 공급해 주십니다.
사울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삼상 10:6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여기에서 ‘변하여’라는 말은 ‘하파크’라고 하는데 ‘돌다’(turn), ‘뒤집어엎다’, ‘바꾸다’는 뜻입니다. 하파크를 ‘변하여’라고 번역한 것은 “변화” 또는 “바뀜”을 의미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크게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울이 예언을 하며 선지자 무리와 함께 한 것은, 그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선택하시고 그 사람의 내면까지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삼상 10:9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사울이 사무엘을 떠나려고 할 때 하나님이 그에게 새 마음을 주시면서 그의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사울이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은 사무엘이나 선지자 무리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한 것입니다. 사울의 공식적인 첫 모습은 ‘열국과 같은 왕’이 아니라 새 마음과 새 영을 받아 예언하는 ‘선지자 같은 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사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의 변화에 대한 의혹과 놀라움을 표현한 이 말은 사울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열국의 경우와 같이 기름 부음이라는 외적 의식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고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는 새로운 일꾼을 피택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꾼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스라엘 왕은 새 마음과 새 영으로 충만한 선지자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 세워지는 일꾼들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요건은 ‘변화된 새 사람’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새 마음과 새 영을 위로부터 덧입을 때에만 비로소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러기 위해서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묵상하고 그분의 마음을 깨달아 순종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영,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왕 되심을 인정할 때 비로소 ‘새로움’은 시작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고 그에게 영으로 임하시고 신적인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사명을 주신다면 그 일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이니,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지혜롭게 침묵하는 사울
사울의 숙부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를 물었고, 사울은 자기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 침묵은 사울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맥을 볼 때 그의 침묵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무엘은 초대받은 이들과 사울의 사환에게 사울의 기름 부음을 비밀에 부쳤습니다. 때가 되기 전까지는 이 일을 친척에게도 비밀로 해야 했기에 사울은 지혜롭고 겸손하게 침묵을 유지한 것입니다.
삼상 10:15 사울의 숙부가 이르되 청하노니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말하라 하니라
삼상 10:16 사울이 그의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이 말하던 나라의 일은 말하지 아니하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묵묵히 기다려야 합니다. 사울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때가 이루어지기까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특히 주님의 뜻이 더디 이뤄진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조급해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조급함이 계속되면 그 조급함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신이나 절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때에 이뤄집니다. 사울은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왕권은 아직 공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하나님이 왕권을 선포해 주시기까지 참고 잠잠히 기다려야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보다 앞서 가면 일을 엉망으로 만들기 마련입니다. 성도에게는 믿음의 침묵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가겠다는 겸손의 표현이며, 모든 일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매사에 하나님보다 한 발 뒤에서 하나님을 따라 가려고 애쓰고 계십니까? 살다 보면 자신이 주도적으로 나서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거기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서둘러 일을 진행해 조속히 해결하고 싶은 조급함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조급함은 하나님보다 앞서려는 교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완성하실 때까지 참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인내하는 동안 하나님은 이미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겸손과 순종을 확인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변화된 새사람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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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했으면 변하여 새사람이 되라! 다듬어져라!
밥먹듯 회개하고 금식하고 변하지 않는데 뭐하겠는가?
변해야 된다.
변하지 않는 자는 세상 사람이다.
말씀을 믿으면 변하게 되어 있다.
지옥을 믿으면 죄를 끊게 되어 있다.
세례를 받고서도 세상구습을 끊지 못하고 사는데 그게 무슨 필요가 있는가?
교회다닌다고 새사람되는게 아니라 성령의 영감받고 순종해야 새사람이 된다.
예수믿었으면 새사람이 되어야 되고 많은 사람에게 칭찬들어야 된다.
주님은 죄를 싫어하신다.
죄를 막 지을 때 성령께서 마음을 아프게 하신다.
그때 회개하고 죄를 끊어야만 거듭나는 것이다.
세상 것을 탐하는 자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하는 자다.
그런 자는 주님의 속을 썩이는 자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속을 썩이는 자를 붙이셔서 연단시키는 것이다.
주님은 다듬어지지 않는 자는 쓰지 않는다(바닷가의 조약돌)
마태복음 3:8-9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마가복음 1:4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사무엘하 4:7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