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란 맘다니 최연소 뉴욕주 시장 11월 4일 당선



'30대 진보'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美최대도시 첫 무슬림 시장(종합)

6월 美민주당 예비선거서 '거물' 쿠오모 꺾고 '이변 예고'

임대료·보육료 등 생활비 문제해결 집중…'좌파 포퓰리즘' 비판도

뉴욕시장 당선 후 기뻐하는 조란 맘다니

[AF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30대 진보 정치인이자 인도계 무슬림인 조란 맘다니(34) 뉴욕주 의원이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장으로 당선됐다. 무슬림이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의 시장으로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투표 종료 후 개표가 진행 중인 가운데 개표 초반인 미 동부시간 오후 9시 37분 AP통신이 맘다니 후보가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무명에 가까웠던 정치 신인 맘다니 후보는 지난 6월 뉴욕시장 예비선거에서 거물 정치인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를 꺾는 정치적 이변을 연출하고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다.

인도계 무슬림인 맘다니는 고물가에 시달리는 뉴욕 시민들의 생활 형편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둔 공약을 내걸어 진보세력의 부상을 대변하는 아이콘이 됐다.

뉴욕시가 임대료 관리 권한을 가진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의 임대료 동결을 비롯해 최저임금 인상, 무상버스, 무상보육 확대 등이 그가 내건 핵심 공약이었다.

공약 실현을 위한 재원은 부유층 증세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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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장 당선 후 기뻐하는 조란 맘다니

[로이터=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같은 그의 공약은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버몬트·민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연방 하원의원(뉴욕·민주)이 이끄는 미국 민주사회주의자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반면 공화당이나 재계에서는 이를 '좌파 포퓰리즘'으로 칭하는 등 강한 비판이 나왔고, 민주당 주류 세력인 중도파에서조차 그의 정책이 급진적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공식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당내 주류 인사들이 그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 목소리를 내는 데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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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

[A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런 분위기 속에 당내 경선 탈락했던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는 무소속으로 본선 출마를 강행해 커티스 슬리워 공화당 후보와 함께 3자 대결 구도를 형성했다.

그러나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와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내 중도파 주요 인사들이 높은 생활비 문제 대처에 공감을 표하고 맘다니에 지지를 표명하면서 우군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내내 '맘다니 대 쿠오모'의 1대 1 양자 대결 구도로 가야만 맘다니를 낙선시킬 수 있다며 '반(反) 맘다니' 단일화를 공공연하게 촉구하기도 했다.

이후 무소속 출마했던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중도 사퇴 후 쿠오모 후보 지지를 선언했으나, 슬리워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안팎의 사퇴 기대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완주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맘다니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면서 "맘다니가 당선된다면 뉴욕시는 경제·사회적으로 완전한 재앙이 될 것"이라며 그가 당선되면 뉴욕시에 대한 연방 자금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해 향후 갈등을 예고한 상태다.


▲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인

30대 진보 정치인이자 인도계 무슬림인 조란 맘다니(34) 뉴욕주 의원이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장으로 당선됐습니다.

무슬림이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의 시장으로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날 투표 종료 후 개표가 진행 중인 가운데 개표 초반인 미 동부시간 오후 9시 37분 AP통신이 맘다니 후보가 승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무명에 가까웠던 정치 신인 맘다니 후보는 지난 6월 뉴욕시장 예비선거에서 거물 정치인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를 꺾는 정치적 이변을 연출하고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습니다.

인도계 무슬림인 맘다니는 고물가에 시달리는 뉴욕 시민들의 생활 형편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둔 공약을 내걸어 진보세력의 부상을 대변하는 아이콘이 됐습니다.

뉴욕시가 임대료 관리 권한을 가진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의 임대료 동결을 비롯해 최저임금 인상, 무상버스, 무상보육 확대 등이 그가 내건 핵심 공약이었습니다.

공약 실현을 위한 재원은 부유층 증세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 같은 그의 공약은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버몬트·민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연방 하원의원(뉴욕·민주)이 이끄는 미국 민주사회주의자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냈습니다.

반면 공화당이나 재계에서는 이를 '좌파 포퓰리즘'으로 칭하는 등 강한 비판이 나왔고, 민주당 주류 세력인 중도파에서조차 그의 정책이 급진적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공식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당내 주류 인사들이 그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 목소리를 내는 데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당내 경선 탈락했던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는 무소속으로 본선 출마를 강행해 커티스 슬리워 공화당 후보와 함께 3자 대결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와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내 중도파 주요 인사들이 높은 생활비 문제 대처에 공감을 표하고 맘다니에 지지를 표명하면서 우군이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내내 '맘다니 대 쿠오모'의 1대 1 양자 대결 구도로 가야만 맘다니를 낙선시킬 수 있다며 '반(反) 맘다니' 단일화를 공공연하게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무소속 출마했던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중도 사퇴 후 쿠오모 후보 지지를 선언했으나, 슬리워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안팎의 사퇴 기대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완주했습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맘다니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면서 "맘다니가 당선된다면 뉴욕시는 경제·사회적으로 완전한 재앙이 될 것"이라며 그가 당선되면 뉴욕시에 대한 연방 자금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해 향후 갈등을 예고한 상태입니다.

(사진=AP, 연합뉴스)



우간다 태생, 남아시아계, 무슬림 … 최연소 뉴욕시장 당선된 조란 맘다니는 누구인가?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조란 맘다니는 뉴욕시 최초의 이슬람교도, 남아시아계 시장이다
    • 기자, 나다 타우피크 & 레이첼 헤이건
    • 기자, BBC News

  • 2025년 11월 5일


4일(현지시간) 치러진 뉴욕 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조란 맘다니(33)가 당선됐다. 뉴욕시 역사상 최초의 이슬람교도이자 남아시아계 시장이며, 100여 년 만의 최연소 시장이다.

이번 선거는 전례 없는 관심을 모았다. 뉴욕주 하원의원인 맘다니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거의 무명에 가까운 후보였으나, 여론조사를 거듭하며 선두로 치고 나갔다.

그의 당선은 미국 진보 진영의 중대한 분기점이자, 뉴욕시 정치 지형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권자들에게 맘다니를 뽑으면 안 된다고 촉구하며 자신을 오랫동안 비판해온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를 지지하기까지 했다. 쿠오모 후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한 상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저녁 '트루스 소셜'을 통해 "쿠오모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서 "그에게 표를 던지고 그가 일을 잘 해내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그럴 능력이 있지만, 맘다니는 아니다!"

한때 뉴욕주 정계의 거물이었던 쿠오모는 현직 대통령의 이 미적지근한 지지에 대해 "그는 나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맘다니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당인 공화당의 커티스 슬리와 후보에 대해서도 "그에 던지는 표는 … 결국 맘다니에게 표를 주는 것"이라며 지지를 거부했다. 슬리와 후보는 최종 3위로 선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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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에서 뉴욕 퀸스까지

아프리카 우간다 캄팔라에서 태어난 맘다니는 7세 때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했다. 브롱크스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메인주 소재 보든대학에서 아프리카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중 '팔레스타인 내 정의를 위한 학생회' 캠퍼스 지부를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이 밀레니얼 세대 진보주의자는 다문화 도시인 뉴욕에서의 자기 뿌리를 이번 선거에서 적극 활용했다. 파키스탄과 인도 일부 지역에서 사용되는 공용어인 우르두어로만 제작된 선거 운동 영상을 게시하기도 하였는데, 인도 발리우드 영화 장면을 삽입하기도 했다.

스페인어로 이야기하는 홍보 영상도 찾아볼 수 있다.

맘다니의 아내는 시리아 출신으로 뉴욕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예술가 라마 두와지(27)로, 두 사람은 데이팅 앱 '힌지'를 통해 만났다고 한다.

맘다니의 어머니 미라 나이어는 유명한 영화감독이며, 아버지 마흐무드 맘다니는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다. 부모 모두 하버드 대학 출신이다.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부모(미라 나이어, 마흐무드 맘다니)와 아내 라마 두와지와 함께 있는 맘다니의 모습

맘다니는 자신은 시민들을 위한 후보, 조직가라고 말한다.

뉴욕주 의회 프로필에는 "영화, 랩, 글쓰기 등 삶에서 여러 필연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면서 "그러나 그를 절망이 아닌 행동으로 이끈 건 언제나 조직화의 힘이었다"고 적혀 있다.

정계 입문 전에는 주거 상담사로 일하며 퀸즈 지역의 저소득층 주택 소유자들이 강제 퇴거 위기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도왔다.

한편 그는 자신의 신앙도 선거 운동 중 뚜렷하게 드러냈다. 정기적으로 이슬람 사원을 방문하기도 하고, 뉴욕의 생활비 위기를 주제로 한 우르두어 선거 운동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올봄 유세 현장에서는 "우리는 이슬람교도로서 공개 석상에 선다는 것은 때로 그늘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안전함을 포기한다는 의미임을 알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사회 정의 단체 'DRUM'의 정치 책임자인 자그프리트 싱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시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 중 내가 진정으로 관심 있는 문제들을 아울러서 대표하는 후보는 맘다니뿐"이라고 말했다.

맘다니의 '더 저렴한 도시' 투쟁

맘다니는 미국에서도 물가가 가장 비싼 도시인 뉴욕의 유권자들이 현재 민주당에 바라는 것은 생활비 부담 완화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한 행사에서 BBC에 "뉴욕 시민 4명 중 1명이 빈곤 상태이며, 매일 밤 50만 명의 아이들이 배고픈 채 잠이 든다"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뉴욕시는 이 도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가치를 잃을 위험에 처해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공약을 제시했다:

  • 시 전역의 무료 버스 운행
  • 월세 동결 및 태만한 임대인에 대한 규제 강화
  • 생활비 부담 완화를 위한 시 소유 식료품점 체인 운영
  • 생후 6주~5세 아동을 위한 보편적 보육 서비스 제공
  • 월세 안정화 및 노조 건설 주택 공급량 3배 확대

아울러 부동산 소유주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대대적으로" 시장실을 개편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영구 임대 주택도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맘다니는 이러한 공약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하며 입소문을 탔다. 임대료 동결을 극적으로 표현하고자 대서양에 뛰어들기도 하고, 식량 불안정 문제를 강조하고자 지하철에서 라마단 금식을 어기는 퍼포먼스도 선보이기도 했다.

예비선거 며칠 전에는 맨해튼 전역을 걸으며 유권자들과 셀카를 찍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실제로 뉴욕시의 생활비 부담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러한 야심 찬 공약에 회의적인 이들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시장 예비선거에서 누구도 지지하지 않으며 후보자들을 전반적으로 비판했다. 맘다니의 정책은 "특히 뉴욕시가 직면한 도전 과제에 부적합하다"며 "도시 운영상 불가피한 절충 상황을 종종 무시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의 임대료 동결 정책은 결국 주택 공급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짧은 정치 이력에 대한 의구심

쿠오모를 비롯한 인사들은 맘다니는 시 예산 1150억달러(약 166조원), 공무원 30만 명이 넘는 이 거대 도시를 이끌기에는 검증되지 않았고, 지나치게 급진적이라고 말한다.

거액 후원자, 빌 클린턴과 같은 중도 성향 지지자들의 지원을 받는 쿠오모 후보는 경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경험, 역량, 업무 수행 능력과 더불어 트럼프, 연방 정부, 주 의회를 다루는 법 등은 (뉴욕 시장의) 기본 자질"이라면서 "나도 현장에서 배우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뉴욕 시장 자리는 누군가가 현장에서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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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Shutterstock

사진 설명, 민주당 후보 경선에 출마한 9명의 후보가 지난 6월 4일 열린 후보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하지만 정치 전략가인 트립 양은 "경험"이 반드시 현재의 정치판을 뒤흔드는 요소는 아니라면서 맘다니가 승리하든 아니든, 그의 선거운동은 그 자치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냈다고 설명했다.

"맘다니는 자원봉사자 수만 명, 개인 기부자 수십만 명의 지지를 받으며 선거 운동을 펼쳤다. 뉴욕 지역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이처럼 많은 자원봉사자가 참여하고, 풀뿌리 열기가 뜨거운 사례도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맘다니 지지자인 록마니 라이는 "그는 우리를 이해한다. 우리 같은 사람이다. 우리 커뮤니티, 즉 이민자 커뮤니티 출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슈

미국 내에서도 주민 구성이 다양한 뉴욕 퀸스 잭슨 하이츠의 공원에서 최근 열린 맘다니 선거 유세 행사에서는 아이들이 그네를 타고 뛰어놀고, 라틴 음식 판매상들은 아이스크림과 간식을 팔고 있었다.

여러모로 뉴욕시의 다양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다양성은 다수의 민주당원들은 뉴욕의 가장 큰 자산으로 꼽는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도시도 인종적, 정치적 긴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맘다니는 자신이 매일 이슬람 혐오적인 위협에 시달리고 있으며, 일부는 가족까지 노리기도 했다고 말한다. 경찰은 이러한 위협에 대한 증오 범죄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맘다니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인종 차별은 미국 정치에서 무엇이 망가졌는지 잘 보여주는 지표라면서,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을 허용한" 민주당을 비판하며 "그들이 누구이든, 어디에서 왔든 간에" 노동 계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스라엘-가자 전쟁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 역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끈 쟁점이었을 것이다.

맘다니는 팔레스타인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비판하며 민주당 주류와 대립하고 있다. 그는 국제 인권법을 위반하는 이스라엘 정착촌과 연계된 뉴욕 자선단체들의 면세 혜택을 중단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으며,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체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유대인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존재권을 지지하는지 질문 받을 때마다 "나는 종교 등의 기준으로 시민권에 서열이 있는 국가를 지지하는 데 불편함을 느낀다. 우리 미국에서 그러하듯, 평등이 어디서나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 신념"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또한 뉴욕에는 반유대주의를 위한 자리는 없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당선되면 증오 범죄 퇴치 예산을 증액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쿠오모는 자신을 "이스라엘 열성 지지자이며 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여러모로 현재 뉴욕 민주당원들이 직면한 이러한 쟁점들은 사실 민주당이 앞으로 여러 선거 및 그 이후 계속 맞닥뜨릴 과제와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이번 경선의 결과는 민주당의 방향과 트럼프 대응 방식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지표로서 전국적인 분석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란 맘다니 프로필 나이 가족 국적 학력 최초 무슬림 최연소 뉴욕 시장 당선 지지율 트럼프

핫라인데일리 2025. 11. 5. 14:54

2025년 11월 4일 미국 뉴욕에서는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인도계 무슬림 출신이자 30대 진보 정치인 조란 맘다니 후보가 뉴욕시장에 당선되며 뉴욕 정치 지형에 엄청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것입니다.

무슬림이 뉴욕시 시장에 오른 것은 역사상 처음이며, 이민자 출신 30대 시장이라는 점에서도 큰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은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조란 맘다니의 인생 이야기부터 정책, 당선 과정, 정치적 의미까지 자세하고 쉽게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조란 맘다니 프로필

새 시대의 아이콘 조란 맘다니는 누구인가

조란 맘다니는 1991년 우간다 캄팔라에서 태어났습니다.

학자와 영화감독 부모 아래에서 자라며 어릴 때 미국으로 이주했고, 뉴욕 브롱스 과학고등학교를 거쳐 보든 칼리지를 졸업했습니다.

정치인이 되기 전에는 뉴욕에서 주거권 운동가로 활동하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랩 음악 프로듀서로도 활약했습니다.

그는 2020년 뉴욕 주하원의원 선거에서 현역 의원을 꺾으며 정치에 입문했고, 이후 재선에 성공하며 진보 정치의 차세대로 떠올랐습니다.

강력한 사회 개혁 의지를 가진 인물로 젊은 세대의 지지를 빠르게 얻어왔습니다.

진보 바람을 일으킨 공약, 생활비 위기 해결 집중

맘다니 당선인이 내세운 핵심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지금의 뉴욕은 서민이 감당하기엔 너무 비싸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을 공약했습니다.

첫째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 임대료 동결

둘째 무상 버스 도입

셋째 무상 보육 확대

넷째 최저임금 인상

다섯째 부유층 증세를 통한 재원 마련

특히 주거비와 교통비를 포함한 생활비 부담을 해결하겠다는 방향은 젊은 층과 서민층의 폭발적인 공감을 얻었습니다.

뉴욕의 생활비 위기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자리 잡고 있었기에 이 공약은 많은 시민들에게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지지율 1퍼센트에서 일으킨 돌풍, 뉴욕시장 당선까지

2025년 뉴욕시장 선거는 올해 미국 정치에서 가장 흥미로운 승부 중 하나였습니다.

맘다니 후보는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를 꺾으며 전국적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지지율이 1퍼센트에 불과했던 그가 돌풍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정치권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본선에서도 경쟁은 치열했습니다.

쿠오모 전 주지사는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공화당의 커티스 슬리워 후보까지 가세하며 삼파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생활비 해결 메시지와 젊은층 중심의 강력한 지지 세력, 그리고 버니 샌더스와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진보 진영의 전폭적인 지원이 힘을 보태면서 결국 승리를 확정지었습니다.

특히 중도파였던 오바마 전 대통령과 클린턴 전 대통령까지 지지를 선언하면서 맘다니의 당선을 굳히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맘다니, 트럼프 정면 충돌 논란의 중심에 서다

맘다니의 당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트럼프 대통령과의 충돌입니다.

선거 내내 트럼프 대통령은 맘다니를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며 뉴욕에 대한 연방 지원 중단까지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격은 오히려 젊은층과 진보 진영의 반발을 일으키며 맘다니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는 트럼프의 비난에 대해 자신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치인일 뿐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이 장면은 많은 미국 시민들에게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조란 맘다니 뉴욕의 새로운 시대 열다

조란 맘다니의 의미 뉴욕은 새로운 시대를 선택했다

맘다니의 당선은 단순히 시장 한 명의 등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미국 정치에서 다음과 같은 여러 상징성을 동시에 갖는 인물입니다.

첫째 뉴욕 최초의 무슬림 시장

둘째 아시아계 시장

셋째 30대 시장

넷째 이민자 출신 지도자

다섯째 민주사회주의자 정치인의 본격적인 약진

그의 등장은 뉴욕뿐 아니라 미국 전체 진보 정치의 방향성을 바꾸는 중요한 흐름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맘다니 당선인은 말했습니다.

모든 뉴욕 시민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

이제 뉴욕은 새로운 선택을 했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조란 맘다니가 서 있습니다.









(미국) 장례식 준비와 절차 그리고 비용 / 죽음의 준비



(미국) 장례식 준비와 절차 그리고 비용 


1. 돌아가시면 어디로 연락을 할까요?


요양원 (Hospice) 포함 병원에서 돌아가시면 의사/간호사의 사망 선고후 미리 연락해둔 혹은 연락이 안되어 있다고 해도 근처 아무 장례를 준비해주는 funeral service에 연락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 시간이든지 와서 고인을 모시고 갑니다.
다만 새벽에 돌아가시면 고인을 모시고 갈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으므로 미리 연락처를 교환해두는것이 좋습니다. 


집에서 돌아가시면 911에 연락을 합니다.
그러면 경찰이 와서 사안을 간단하게 작성합니다.
그리고 funeral service에 연락을 하면 고인을 모시고 갑니다.
다만 경찰에 의해 고인 사망에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경찰이 시신 검사하는 곳에 연락을 하여 고인을 모시고 갑니다.
그후 연락을 받으면 funeral service에 연락하여 고인을 모시고 옵니다.


2. Funeral Service 장례 서비스는 무엇을 제공합니까?

기본적으로 고인을 모시고 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장례의 모든 부분을 처리해준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사망 신고까지 해줍니다.
그러기에 개개인이 느끼기에는 비싸다 혹은 괜찮다라고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서 가격이 다르지만 같은 지역내에서 여러군데 전화를 하여 액수를 물어보면 담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니 funeral service를 이용하시기로 마음 먹었다면 가격보다는 장례에 대해서 부드럽고 문제없이 해줄 곳을 찾는게 낫습니다.
특히 진행하시는 분께서 한국어 영어에 능통하면 더욱 도움이 됩니다.

식구중 연세가 드신 분이나 아픈 분이 계시다면 하루 정도 시간내서 직접 찾아보고 장례식을 할 장소와 주차등을 미리 보시고 절차를 확인하면 도움이 많이 됩니다.


3. 장례식의 절차는 어떤식으로 진행되는지요?

3.1 Viewing (고인을 단장하여 장례 서비스하는 곳에서 마지막 얼굴을 보며 장례를 진행하는 것) 을 포함한 장례식을 돌아가신 후 2-5일 후에 진행이 보편적.

3.2 그리고 원하는 분들은 교회/성당에서 그 다음날 예배/미사를 진행. 이때에도 고인의 Viewing을 같이 할 수 있음. 혹은 3.1의 장례식을 하지 않고 곧바로 예배/미사로 진행 가능. (사찰/절은 경험이 없어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3.3 매장 (Burial) 을 하는 경우에는 묘지로 옮기고 거기서 예배/미사 한번한 뒤 매장. 혹은 3.1과 3.2 모두 스킵하고 Burial을 진행 할 수 있음. 즉 하관식과 장례식을 동시에 진행 가능.

**한국분들은 3.1, 3.2 혹은 3.3 후에 조문객에게 식사 제공을 하고는 합니다.
   작년 팬데믹 이후에는 주로 떡이나 답례품 증정하더군요.

3.4 화장 (Cremation) 을 하는 경우 고인을 모시고 가서 화장을 한 뒤 며칠 후 연락이 오면 유골을 모심.
      마찬가지로 3.1과 3.2 스킵 가능.

3.5 화장을 하고 유골을 받아오면 묘지에 매장하거나 납골당에 모실 수 있음. 혹은 집에 보관도 가능. 묘지 공원 근처나 바다에 뿌릴 수 있는 옵션도 있으나 허가 없이 뿌리는 것은 불법. 필히 가능한 곳에 미리 연락해야함


4. 이 모든 절차에 드는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요?

 (아래 가격은 미국 뉴저지 기준입니다. 환율 익숙치 않은 분들은 1불 1000원에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1000불은 100만원)

4.1 묘지 비용 : 미국에 계시는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제 묘지의 비용도 상당히 비쌉니다.
그러므로 매장을 하겠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미리 늦지않게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가격은 지역마다 달라 딱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최소 5천불이상입니다.
장례 비용중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묘지 비용 : 최소 5000불 이상, 지역마다 가격이 크게 다르므로 2-3만불이 넘는 곳도 많습니다.
그리고 가격은 계속 올라갑니다.
필요하다면 꼭 미리 준비하세요.
저희는 미리 준비하였습니다.

4.2 묘지 매장 비용 : 묘지를 구매하면 그 다음으로 준비할 것은 장례식 후 매장 서비스입니다.
땅을 파는 것부터 시작하여 묘비를 세울 곳을 정돈해주는 것까지 해줍니다.
이때 땅에 물이 차지 않게 해주는 서비스는 별도인 곳도 존재합니다.
매장 비용 역시 지역마다 다 다르지만 이 역시 적어도 최소 3000불이상입니다. 당연히 묘비는 별도 입니다.

매장 서비스 비용 : 최소 3000불 이상
묘비 가격 : 천차만별 500불 이상 조금 괜찮아보인다 싶으면 2000불 이상

4.3 장례 서비스 Funeral service 비용 : 위에 언급한 3.1부터 3.5까지 모두 관리해주는 서비스의 댓가입니다.
포함된 부분중 생각나는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4.3.1
장례 기본 서비스 비용과 고인 운송 비용 (모든 장례 용품 운송 비용)
4.3.2
3.1과 3.2에 Viewing에 필요한 고인 단장 비용과 냉장/방부처리 보관 비용. 다만 viewing에 필요한 옷은 따로 준비해야 함.
4.3.3
3.1 viewing service에 필요한 장소 제공 및 관리 혹은 3.2에 필요한 서비스와 물품 제공 비용
4.3.4 이외에 장례 전반적인 부분의 물품과 서비스 제공/따로 구매 가능
4.4 관 비용 : 관의 가격은 정말 천차만별입니다. 대략적인 가격 1000불부터 시작하여 3-4만불이 넘는 관도 존재합니다. 위에 언급한 viewing을 하고 싶다면 관의 뚜겅이 반 정도만 열리는 것으로 준비하면 괜찮고 이 관의 시작 가격은 대략 2000불 이상입니다. 그리고 관에 물이 안차도록 해주는 것 역시 별도 입니다.

Funeral service 대략적인 비용 : viewing 장례식, 교회/성당 장례식 그리고 하관식까지 다 하면 최소 7천불 이상

**지역내 정확한 장례 비용은 구글 검색에서 General price list 지역으로 하면 이를 공개한 funeral homes의 가격을 볼 수 있습니다.

관 비용 : 천차만별 1000불 이상 viewing을 할 경우 2000불 이상

5. 화장을 할 경우의 비용 : 대략 500불 정도입니다. 화장을 한다면 최소한의 나무 관 (대략 500불 이상) 이 필요하고, 당장 묘지나 매장이 필요치 않습니다. 납골당에 모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혹은 때에 따라서 집에 모셔도 됩니다. 그러므로 전반적인 funeral service가 없어도 문제 없습니다. 다만 화장할 곳과 그곳으로 고인을 모시고 갈 운송 서비스를 따로 알아보셔야 합니다.

화장만을 원하시는 경우에는 Direct Cremation으로 알아보시면 됩니다.

화장 후에도 장례식이나 예배 혹은 미사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못할까 걱정 크게 안하셔도 됩니다. 남의 시선때문에 큰 빚을 남겨가면서 장례를 진행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6. 하관식과 장례식을 같이 진행하는 경우 : 위에 언급한 많은 서비스가 없어도 됩니다. 특히 funeral service 제공 비용에서 많은 절약을 할 수 있습니다. 경우는 다르지만 작년에는 코로나때문에 빌딩안에서 많은 인원의 집합이 금지되어 장례식을 야외 하관식과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야외는 집합 금지 예외인 곳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관식과 장례식을 같이 하시길 원하는 경우에는 Immediate Burial Service 로 알아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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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죽음을 소천(召天)이라고 하는 것은 합당한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가장 혐오하는 것은 죽음이요, 그래서 죽음을 나타내는 데는 어느 나라 말에서나 완곡어법(婉曲語法)을 쓴다.
그 완곡어법은 또한 고인의 신분이나 종교 등에 따라 달리 쓰이기도 한다.
‘죽었다’는 말이나 ‘죽을 사(死)’자를 피하는 것은 물론 ‘별세’ ‘타계’ ‘운명’ 등 일반적인 말 외에 귀족들의 죽음을 나타내는 ‘훙거’ 왕의 죽음을 가리키는 ‘승하’ 외에 불교인의 ‘입적’ 가톨릭교인의 ‘선종’,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쓰는 ‘소천’ 등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고찰하고자 하는 것은 ‘소천’이라는 말이 언어학적인 면에서 가능하냐는 것이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이 말이 언제 누구에게서부터 쓰였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이미 보편화된 이 말에 언어학적인 해석을 붙여 바른 뜻을 알고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소천’(召天)이라는 한자어의 일반적인 구성 면에서 보면 “하늘을 부르다”라는 뜻으로서, ‘天’(하늘)을 ‘神’(=하나님)으로 대치하더라도 그것은 ‘부르다’(召)라는 동사의 목적어가 되므로 결국 “하늘을 불렀다”라는 뜻이 되므로 바른 말이 될 수 없다.

이것은 가톨릭교회에서 쓰는 ‘피정’(避靜; 소란한 세상을 피하여 고요한 고요한 곳으로 가는 것)의 경우와도 같지 않다.
즉 “하늘에로 부르다”로 풀이하여 쓴다면 “소천하다”가 아니라 “소천되시다” 또는 “소천을 맞으셨다”로 할 수 있고, 다른 한 가지 대안으로는 “서천(逝천)하시다”(하늘로 가시다)를 쓸 수 있다.

* 갈 서(逝) / 가다, 죽다.
(예) 서거(逝去) / 갈 서, 갈 거 - 죽음의 높임말
(예) 서자(逝者) / 갈 서, 놈 자 - 죽은 사람
(예) 서세(逝世) / 갈 서, 인간 세 - 별세(別世)의 높임말
(예) 서천(逝天) / 하늘로 가시다
이 경우는 ‘상경’(上京)이나 ‘입성’(入城)과 유사한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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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 심리학에서 죽음의 다섯 가지 요소

1. 불변성 :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2. 필연성 : 죽음은 피할 수 없다.
3. 중단성 : 죽으면 모든 것이 중단 된다.
4. 적용성 : 죽음은 살아있는 것에 적용된다.
5. 원인성 : 죽음은 원인이 있다(신체 기능의 정지)


죽음의 다섯 단계

개요 / Five stages of grief

스위스 출신의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 1926-2004)가 1969년에 저술한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에서 선보인 모델로서, 사람이 죽음을 선고받고 이를 인지하기까지의 과정을 5단계로 구분지어 놓은 것이다.

영어로는 각 단계들을 줄여서 DABDA(다브다)라고도 한다.

다섯 가지 단계 / 부정(denial), 분노(anger), 협상(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

부정(Denial)

한 사람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는 등 큰 충격을 받았을 경우, 제일 먼저 자신의 상황을 부정한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와 비슷한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검사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 수많은 병원을 돌아다니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물어보면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상태가 심해지면 다른 환자와 결과가 바뀐 것 아닌가 의심하며, 자신은 나을 수 있다며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 단계에서 다른 사람은 당사자가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다만 성급하게 당사자의 상태를 말했다가는 당사자가 더 부인할 수 있으니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진 후에 말해줘야 한다.

분노(Anger)

분노의 단계에서는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이 분노의 대상이 된다.
"왜 그 수억명의 사람들 중에 나지?" 라는 식의 말을 하며 돌봐주는 가족, 친구, 의사나 간호사, 혹은 신에게까지 분노를 표출한다.
이 시기 환자는 감정 기복이 심하고 무슨 행동을 해 주든 그게 분노로 연결되어 굉장히 다루기 어렵다.
넓게 보자면 이 단계는 자신이 갖지 못한 '여생'을 가진 일반 사람들에 대한  질투로도 볼 수 있다.

협상(Bargaining)

상황도 받아들였고 분노도 충분히 표출했으면 더 이상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닫고 상황을 미루려 한다.
이것이 협상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익숙한 예로는 "이번 한 번만 살려주시면 앞으로 정말 착하게 살게요!" 이런 식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경우 생명의 연장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에게 맹세하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 무신론자가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도 있다.
간혹 이 단계에서 장기기증을 약속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들의 절박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소망은 무시할 수도 있고, 무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무시하든, 무시하지 않든 이 단계에서 환자가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 단계는 짧게 지나간다.

우울(Depression)

결국 협상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 라는 생각이 드는 등, 극심한 "우울증" 증세가 나타난다. 이 단계에선 증상이 더욱 확실하게 나타나 환자도 알아차릴 수 있다.
모든 일에 초연해지고, 하루 종일 멍한 표정으로 있기도 한다.
이 단계의 우울함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자기가 죽으면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걱정으로 발생하는 반작용적인 우울증과 친구, 가족, 애인이나 소중한 물건들을 잃는다는 생각에 발생하는 예비적 우울증으로 나뉜다.

이 단계에서 환자는 별 말을 하지 않지만, 가끔 슬픔을 표현할 때 옆에 있어주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우울함을 예민하게 받지 말고, 최대한 부드럽게 받거나 혼자 감정을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수용(Acceptance)

모든 감정이 지나가면 이젠 피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이대로 조용히 아침을 맞이하자."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단계에선 우울하지도 않고 활기차지도 않으며,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좋은 기분인 것은 아니고, 이때까지 겪었던 모든 감정들 때문에 지친 것이다.
환자는 눈에 띄게 약해지고,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려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렇게 반가워하지 않고 말수가 줄어들며, 침묵이 소통을 대신하게 된다.

이 단계를 거친다는 것은 그 전 단계들을 거쳐왔다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환자는 자신이 끝까지 버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위로를 받기도 하며, 역으로 자신이 죽은 후 남겨질 사람들의 슬픔을 재발견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나이 듦과 죽음의 준비’

죽음에 대하여

“의학적으로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을 경험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사랑했는지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했는지 두 가지 질문을 만나는 것이었다”며 “죽음에 대해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한 번 죽음은 정해진 것(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Just as man is destined to die once, and after that to face judgment.

돌아가는 것(시 90: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You turn men back to dust, saying, "Return to dust, O sons of men."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는 사랑(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It was just before the Passover Feast. Jesus knew that the time had come for him to leave this world and go to the Father. Having loved his own who were in the world, he now showed them the full extent of his love.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Then I heard a voice from heaven say, "Write: Blessed are the dead who die in the Lord from now on." "Yes," says the Spirit, "they will rest from their labor, for their deeds will follow them."

시편 116: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Precious in the sight of the LORD is the death of his saints.

* 죽음은 마지막으로 전도하는 기회이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웰다잉

사람들은 되도록 죽음을 외면하고 회피하려 하지만,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그렇게 낯설지 않은 삶의 과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죽음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고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통로이자,
먼저 천국에 가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죽음은 오히려 반갑고도 기대할 만한 것이 된다.

하늘나라에 가는데 순서가 없듯,
웰다잉에 대한 묵상은 노년의 삶에만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젊은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누구나 매일의 삶을 믿음으로 잘 살아내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모두가 믿음 안에서 이 땅에서 주어진 마지막 시간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웰다잉과 웰빙의 삶을 보여주는 모델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름다운 죽음

임종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예측하지 못한 사망의 경우,
예측 가능한 경과를 걸쳐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사망하는 경우,
특정 질병으로 주기적인 위기를 마주하다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경우

예측하지 못한 사망의 경우가 30%”라며 “20년 넘는 시간 동안 말기 환자를 돌보며 임종과정에 독특한 변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작스래 돌아가시는 분이나 시간을 두고 돌아가시는 분이나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마치 필름, 파노라마가 돌아가듯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이다.
마치 심판대 앞에 서기 전 자신의 인생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았다”며 히브리서 9장 27절을 언급했다.


죽음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죽음이란 완성의 과정이자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다. 

죽음, 부활· 하느님 나라의 삶 위한 전초적 단계

수난 죽음 부활의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인간은 출산에서부터 죽어가고 있으며,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을 출발하여 이승의 종결점인 죽음을 향해 매일 한 발짝씩 다가가는 과정에 있고, 이것이 끝나는 순간이 죽음이다”(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397~401).

사람은 단 한번 죽게 마련이다(히브리서 9:27).
교회는 죽음이 인간의 원죄로부터 왔다고 가르친다.
인간의 교만으로 하느님을 거스른 원죄를 통해서 죽음의 세력이 인간을 지배했으며 인간의 죄의 결과가 바로 죽음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인간 스스로 지은 죄로 인해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죽음이란 부활과 하느님 나라의 삶을 위한 하나의 전초적 단계이며 동시에 신앙으로 이끄는 요소다.
그래서 세례로 시작된 새 생명이 완성되며, 영원한 생명에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총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러한 가르침을 재천명한다. 공의회는 “죽음 앞에서 인간 운명의 수수께끼는 절정에 이른다”(사목 18항)며 “믿음이 부족하면 죽음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것”(21항)이라고 했다.

죽음에 관한 가장 최근 교회의 입장은 1979년 신앙교리성의 ‘종말론의 몇 가지 문제점에 관한 서한’(1979)에 나타나 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인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무엇이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에 “죽음은 인격적이며 영성적 위격인 인간에 관한 사건이며 인간 전체에 관한 사건으로서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인간 행위의 문제”라고 했다.

교회의 이같은 가르침의 핵심은 인간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넘어서는 참 생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로 인한 부활의 희망 뿐인 것이다.
죽음과 정면 대적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이 그리스도를 이겼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에 죽음을 넘어선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결코 죽음은 없다고 선포한다.
그럼으로써 죽음은 이제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완성을 향한 과정이며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긴 방법이 바로 그 죽음을 통해서였다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과 죽음 앞에서 고민한다.
그래서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 36)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결국 그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 죽음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간 예를 우리는 순교자들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적으로 불행이며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의 대상인 죽음을, 수많은 순교자들이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럼으로써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교회는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은 그리스도를 구세주요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고통과 죽음에 동참할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영원을 향하기보다는 현세의 풍요로운 삶을 꿈꾸는 인간들에게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여기에 대해 예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 23).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 자신을 죽이고 생명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얻을 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이며 구원의 희망임을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하게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죽음은 없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 25~26)

교회는 전례를 통해 이러한 그리스도의 계시를 탁월하게 재해석해내고 있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위령 감사송 1).

■ 임종자의 수호성인들

어린 시절,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수호천사가 항상 너를 지켜줄 거야.” 그 천사들 중에서도 으뜸인 세 대천사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가브리엘, 미카엘, 라파엘이라고 부른다. 가브리엘이 전령이고, 라파엘이 의료, 순례자와 관련한 천사라면 미카엘은 임종자들의 수호성인이다. 미카엘 대천사는 외경에 더 많이 등장하는데 주로 천상군대의 장수, 그리스도인의 보호자, 특히 임종자들의 수호자로 나타난다.

요셉 성인도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다. 노동자, 가정, 동정녀 등의 수호자로도 꼽히는 요셉 성인이 특별히 임종자들과 연결되는 것은 요셉 성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는 가능성 때문이다. 성경에 요셉은 예수 탄생시기와 성장기에만 잠깐 나타난다. 예수 공생활 이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 따라서 요셉은 성모와 예수님의 간호를 받으며 마지막 죽음을 맞았을 것이고, 초기 교회부터 이러한 요셉의 모습은 다른 어떤 성인에게서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은혜로 여겨졌다. 이밖에 동정 순교자인 성녀 바르바라도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 이들의 수호자다.

무엇보다도 임종을 생각할 때, 성모 마리아를 빼놓을 수 없다. 아들의 십자가 죽음을 지켜본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죽음 앞둔 이들을 한없이 자애로운 눈으로 내려다 보시는 분, 바로 성모 마리아다.

■ 죽음 묵상에 도움을 주는 성구(聖句)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 당신께서 제 목숨을 죽음에서 건지시어 제 발이 넘어지지 않게 해 주셨으니 하느님 앞에서, 생명의 빛 속에서 걸어가도록 하심입니다(시편 56, 14).

▲ 하느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 주 하느님께는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네(시편 68, 21).

▲ 주님께서 나를 그토록 벌하셨어도 죽음에 내버리지는 않으셨네(시편 118, 18).

▲ 주님을 경외함은 생명의 샘이니 죽음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잠언 14, 27).

▲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 4).

▲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 38~39).

▲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 4, 10).

▲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2티모 1, 10).

▲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1요한 3, 14).

▲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요한 5, 24).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 8, 51).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 25~26)


죽음을 준비하기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어느 집에 종이 한 사람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종이 너무나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어느 날 주인은 그에게 지팡이 하나를 주면서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너보다 더 어리석은 자가 보이거든 지팡이를 그에게 주라’고 분부했다고 합니다.
종은 지팡이를 받았습니다.
몇 달 후에 주인이 심한 병에 걸려 누워 있었습니다.
‘주인님, 세상을 떠날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라고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주인은 ‘아니, 그거야 아직 준비하지 못했지’ 라고 답했답니다.
그러자 종은 ‘아니, 사람들이 하루 여행길에도 완벽하게 준비하고 떠나는 법인데 영원을 위해 준비한 것이 없어요?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은 처음 보았네.
자 여기 지팡이가 있습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주인님이니, 여기 이 지팡이를 가지세요’ 라며 되돌려 주었다고 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남보다 자신이 먼저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나님의 말씀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단어가 두 개라고 하겠습니다. 

첫째 단어는 죽음

죽음은 확실한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힘도 죽음의 손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의술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한사람도 죽음에서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돈을 다 가지고도 죽음의 때가 올 때 죽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착함도 죽음을 막지 못합니다.

다윗은 『죽음과 나 사이는 한 발자욱 거리밖에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무엘상 20:3
다윗이 또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부친이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로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But David took an oath and said, "Your father knows very well that I have found favor in your eyes, and he has said to himself, 'Jonathan must not know this or he will be grieved.' Yet as surely as the LORD lives and as you live, there is only a step between me and death."

둘째 단어는 심판

전쟁터에서 고참 병사가 총탄에 쓰러지자 군목이 달려와서 ‘병사, 죽는 것이 두렵지 않는가?’라고 묻자 병사는 눈을 크게 치켜 뜨고 불쾌하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수없이 싸우면서 죽음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두렵다니요, 저는 겁장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하필 죽어 가는 시간에 나의 감정을 건드리십니까?’ ‘하지만 병사, 죽음 후의 일은 준비되었나?’ 병사는 한숨을 쉬었습니다.‘목사님, 바로 그것이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병사는 죽음 후에 올 일을 두려워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이 세상의 위험에는 용감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심판을 주관하시는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기력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죄를 숨기고 피하여 다닐 수도 있고 구원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도 있고 그리스도께 나아오라는 목사님의 호소를 비웃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을 대면해 일생의 죄를 다 내놓고 계산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1.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만 합니다.

프랑스의 미술 전문 잡지인 '일뤼지옹'(Illusion)지에 중세의 귀부인이 화장하는 그림이 실렸습니다. 그녀는 화려한 옷을 입고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채 거울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겉모습과는 달리 흉측한 해골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그림에는 누구나 세월이 지나면 늙고,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거짓된 삶을 속일 수 없다는 엄숙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사회학자 토니 캄폴로는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섰을 때 이루지 못한 업적을 바라보며 후회하지 않는다. 단지 바르게 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래에 있을 죽음의 순간을 잊고 외형의 업적을 이루는 데 인생을 허비합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 서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예감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요즘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진실을 버린 채 눈앞에 보이는 업적만을 좇아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케네디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려고 선거유세차 달라스 시에 갔을 때 환영하는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다가 괴한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누가 그 머리로 총탄이 꿰뚫고 나갈 줄 알았겠는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의 달라스 행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저승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 상원 의원도 미국 전역에 선풍을 일으키며 대통령 예비선거에 승리의 깃발을 날리며 나아가다가 켈리포니아의 어느 호텔에서 자기를 위하여 수고한 사람들과 환담을 나누던 중 총탄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대통령이 될 꿈에만 부풀어 있었을 뿐 그의 출마가 저승길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죽음이란 아무도 모르는 세계입니다.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게 인생입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한 때 세계를 제패했던 알렉산더(Alexander)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는 이상한 종을 데리고 있었는데, 그 종은 아침마다 첫 인사를 하면서 ‘대왕이여, 당신은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야말로 모든 인간이 꼭 기억해야 될 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피할 수 없는 엄숙한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고 자기는 죽음과는 상관이 없는 줄로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지난 번 미국 9.11 테러사건 때, 참사를 당한 6,000여 명의 사람들도 그 날 아침 자기들이 죽으리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아침 갑자기 죽음을 당했습니다.

죽음은 흔히 찾아옵니다. 자동차 사고, 비행기 추락, 치명적인 싸움, 전쟁, 홍수, 등등.... 우리가 건강하며 힘이 충만할 때는 죽음에 대하여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참으로 뜻밖에 올 수 있습니다.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미완성으로 남겨두지 않음으로써 죽음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을 내가 용서해 주었는가. 또한 내가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으로부터 용서를 구했는가 하는 문제는 죽음에 앞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 생애의 한 부분인 사람들과 내가 화평하다고 느낄 때, 비록 나의 죽음이 큰 슬픔을 불러올 수는 있으나 죄나 분노는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순간이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우리는 또한 어느 순간이고 살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리더쉽과 동기 연구가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빈 S. 샤르마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가 쓴 책의 이름이 너무 재미있어서 소개합니다. "내가 죽을 때 누가 울어줄까?" 라고 하는 책입니다. 아주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그는 백 한 가지 지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이 그 책에 있습니다.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너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은 기뻐했단다. 그런데 네가 죽을 때는 많은 사람이 울겠지만 그때 네 자신은 기뻐할 수 있도록 살아야한다.’ 대단히 중요 한 얘기입니다. 우리가 베풀 수 있을 때 베풀지 아니하면 베풀고저 할 때에 할 수 없게 됩니다.

어느 신학교교수가 학생들에게 “내일 죽는다”라는 가정을 하고 유서를 써 보라고 했습니다. 변호사를 통해 재산 분배에 대해 써 놓는 그런 유서가 아니라,“자신이 죽기 전에 남기고 싶은 중요하고 유일한 말이 무엇이냐”라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내 삶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나의 죽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내 마음대로 살았던 많은 날들이 덧없이 느껴집니다. 후회하고 회개해도 나를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다. 이제 남은 삶을 최대한 활용해서 알차게 사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삶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불려 갔을 때 하나님이 나를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불러 주신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앞으로 나는 이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첫째,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둘째, 육신의 움직임이 가능할 때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해야겠습니다. 셋째, 세상 것에 미련을 두지 않기 위해 필요 없는 것, 어쩌다 필요한 것 같아 보관하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겠습니다. 넷째, 세상 것에 매달리지 말아야겠습니다. 다섯째, 죽을 때 웃으며 아름답게 죽을 수 있도록 늘 기도해야하겠습니다. 나는 아름다운 순교나 위대한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게 주님의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습니다. 남은 인생을 주님께 드리는 것만이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아마 내가 남길 유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가 요지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는 천년만년 살 줄 알고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고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에게나 조만 간에 죽음이 찾아옵니다. 대통령한테도 찾아오고 재벌한테도 찾아오고 튼튼한 사람에게도 찾아옵니다. 요사이 사극에 나오는 태조 이성계도 죽었고, 고려 태조 왕건도 죽었고, 불사약을 구해오라고 했던 진시황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혀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살며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영생하는 존재이며 또 영생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생하는 길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화대학의 최화숙 교수가 쓴 『아름다운 죽음의 안내서』란 책에 보면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다가 갑자기 의사의 사형선고 진단을 받고야 당황하며 허둥대는 모습을 본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도 있고 지식도 있는 사람인데 죽은 다음에 꽃 한 송이 가져오는 사람이 없고 울어주는 사람도 없이 고독하게 죽어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남의 눈에 피눈물나게 하며 부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에악하게 굴더니 드디어 죽고 말았구나 하고 속시원해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부디 정직하게 살고 불쌍한 사람에게 사랑과 자비도 베풀고 이웃과 나누며 살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말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일 일을 자랑치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함이니라’ (잠27:1)고 하셨습니다.

옛날에 한 부자가 땅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큰 풍년이 드니까 곡식을 다 쌓을 곳이 없어서 곡간을 크게 짓고 곡식을 많이 쌓아두고 말하기를 ‘영혼아 여러 해 쓸 양식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라고 말했는데, 그 날 밤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고 그 영혼을 그 날 밤에 데려갔습니다.(눅12: 16- 21) 집도 땅도 저금 통장도 다 두고 가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죽음의 안내서』에 보면 사람이 죽을 때는, 장갑을 끼었다가 벗을 때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사람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갈 때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 때에 현세와 내세를 동시에 보며 신비의 세계를 말해준다고 합니다.

교회에 다니던 17세 난 소년은 죽기 직전에 ‘아! 베드로가 보인다. 그 옆에 빛나는 분은 누구냐’ 고 엄마에게 묻기도 하고,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하니까, ‘큰일났다. 나는 천국 가는데 우리 엄마는 지옥 가겠다’ 고 걱정을 하다가 ‘엄마, 나는 먼저 천국에 갈테니 엄마는 나중에 오세요’ 하며 천사 같은 얼굴로 세상을 떠나더랍니다.

김연준 씨란 분은 세 회사를 경영하는 분인데 간암 말기에 접어들면서 온 몸이 굳어져 말을 못했고 누워서 무릎을 세운 채 와들와들 떠는데,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무서우냐고 했더니, ‘지옥에 갈까봐요’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지옥에 안 가는 법을 가르쳐 드렸더니,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온 몸이 풀리면서 화평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는데 숨을 거두기 전에 ‘빛이 보인다’고 하면서 ‘지옥에 안 가는 법을 가르쳐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2.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른이 된 아들 넷을 둔 한 어머니가 병상에서 임종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병상에 둘러 서 있는 아들들에게 작별의 키스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첫째, 둘째, 셋째에게는 굿나잇 키스를 하라고 했으나 막내아들에게만 굿바이 키스를 하라고 했습니다. 막내아들은 이상해서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형들에게는 굿나잇 키스를 하라 하시고 저는 굿바이 키스를 하라고 하시나요?” “얘야, 너의 형들은 머지않아 저 좋은 천국에서 엄마와 다시 만나게 된단다. 그러나 너는 이게 마지막이란다” “왜요?” “엄마는 너를 예수님께 인도하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너는 끝내 네 멋대로 살고 있다. 헌데 어떻게 너와 내가 만날 수가 있니? 그래서 네 형들과는 굿나잇이고 너와는 굿바이란다” 막내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한 말입니다.

“어머니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저도 굿나잇 키스를 할래요. 엄마, 굿나잇”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엄숙한 사실은 죽음 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곡식 알갱이가 땅에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 십 배, 수 백 배로 다시 살아나는 것같이 사람이 죽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 있고 부활 후에 심판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8-29절에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오리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요, 다른 하나는 심판의 부활입니다. 생명의 부활을 얻는 사람은 영생을 얻어 천국에서 영원히 복락을 누리게 되고 심판의 부활을 얻는 사람은 평생 지은 죄를 낱낱이 드러내놓고 심판을 받고 그 지은 죄만큼 고통을 끼며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을 얻게 된다고 했는데, 여기서 ‘선한 일’이란 사람 보기에 착한 일, 선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말하는데, 그것은 곧,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선한 일이며, 하나님이 가장 악하게 보시는 일은 마음이 녹아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악한 일은 없습니다.

D. L. 무디(Moody)라고 하는 유명한 부흥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맡고 있던 젊은이들은 거의 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는데, 유독 한 청년만은 고집을 부리며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무디 선생님, 나는 서부로 가야합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온 다음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겠습니다하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몇 일 후에 이 젊은이가 몹시 아파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무디 선생은 병원에 찾아가서 기도해 주면서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간곡히 부탁했더니, ‘무디 선생님, 나는 이대로 죽지 않습니다.
전에 말한 대로 서부로 가서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온 다음에 그리스도인이 되겠습니다’ 하더랍니다.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청년은 몇 일 후에 건강을 회복해 가지고 찾아와 인사를 했습니다.
‘선생님,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왔습니다’
무디 선생은 다시 어깨에 손을 얹고 간곡히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은 화를 버럭 내면서 무디 선생의 손을 뿌리치고 ‘무디 선생님, 내 영혼 구원에 대해서 다시는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시 돌아와서 결심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절대로 안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 젊은이가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무디의 마음에 무슨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 날 밤 큰 소리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깨어 일어나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보았더니, 그 청년의 부인이 울면서 ‘무디 선생님, 빨리 좀 저희 집에 가 주세요’, ‘내 남편이 몹시 아픕니다. 빨리 좀 가주세요’, 무디는 ‘가야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의 남편은 오늘 오후 마지막 거절의 말을 했습니다.
이미 위험선을 넘어 섰습니다.
내가 가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여자가 울면서 간청하기 때문에 옷을 입고 따라갔습니다.
그 집 계단에 올라가는데, 그 청년이 침대에 누워서 눈을 번쩍 뜬 채 의식을 잃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무 늦었어! 너무 늦었어!(Too late! Too late!)’ 하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꼭 쥐어주며,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를 따라 하라고 하는데도 알아듣지 못하고, ‘너무 늦었어! 너무 늦었어!’ 하는 말만 되풀이 하다가, 정신을 못 차린 채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바로, 오늘, 지금이 구원받을 기회입니다.
죽은 다음에는 기회가 없습니다.
교회의 문도 닫히는 때가 옵니다.
전도하는 사람도 없어지는 때가 옵니다.
계속 거절하면 성령의 역사도 끝나는 때가 옵니다.
요한계시록 20:11-15에 보면 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 앞에 생명의 책들이 있고, 첫째 부활이 있고, 둘째 부활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보면 두 가지 책이 있는데, 생명책과 행위의 책들입니다.
생명책은 단수로 되어 있고, 한 권입니다.
이 책은 천국의 호적과 같은 책으로 예수를 믿고 죄사함 받아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고, ‘행위의 책들’이란 예수 믿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모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인데 각 사람에 하나씩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 부활하게 되는데 그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죄의 심판을 받지 않고 상급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천년 왕국 시대가 지난 후 둘째 부활을 얻게 되는데 영원히 죽지도 않고 고통을 받기에 합당한 몸으로 부활하며, 평생 지은 죄를 다 드러내놓고 심판을 받아 형벌이 결정된 후 둘째 사망 즉 불 못에 던지워지게 됩니다.
예수를 믿고 확실히 영접하면 이 순간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가 아무 때 죽어도 낙원에 갔다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 부활한 몸과 낙원에 있던 영혼이 결합하게 됩니다.

주 예수여, 나의 구주로 믿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이 후에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 생활하는지 안 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지 아니하면, 반드시 둘째 부활을 얻어 죄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전도서 12장 14절에도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셨습니까?
그리스도는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지금 당신의 손을 하나님께서 붙잡으시도록 요청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에게 구원이 있고 용서가 있고 천국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지 않으면 영원한 죽음밖에는 남을 것이 없습니다.
지금 그리스도께로 나오시면 당신은 결코 심판대 앞에 서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과 심판이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언제 준비할까요?
그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많은 나라에 가 본 경험을 갖고 있던 영국군장교가 어느 날 친구들이 모여서 경험담을 말해달라고 해서 여러 나라에서 본 것들을 얘기 해주고 나서 그의 말에 홀린 청중에게 말하기를,『나는 이것들보다 더 놀라운 일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죽어서 주님 앞에 선후 5분 후에 일어날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죽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두 가지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크리스천들의 심판

이 심판은 구원이냐 멸망이냐를 결정하는 심판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했으면 이미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심판은 구원받느냐 못 받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가 지상에 사는 동안 행한 일에 대한 심판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한 모든 것에 대해서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

둘째는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을 위한 심판

이 심판을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이라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는 사람들은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믿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지상에서 행한 모든 행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형벌을 받느냐를 결정하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나 어느 날 심판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될까요?
세상은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간다』고 할 것입니다.
또는 『다른 사람을 바르게 대하라. 네 돈을 남에게 주라. 빚을 갚으라. 그러면 천국에 간다』고 세상은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의지해야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좀 더 바르게 지혜로운 삶을 위하여 승리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전 3:2-3)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이 2013년 9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변호사 사무실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인종 차별 정책 철폐 운동에 뛰어들었는데, 그 일로 27년간이나 감옥에서 옥수수 죽으로 연명하며 매일 채석장에서 노역하고, 간수들이 뿌려 대는 똥오줌 세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출옥 후 만델라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고, 임기를 마친 1999년에는 "내가 연락하기 전엔 내게 연락하지 말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미련 없이 정계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을 찾아다니며 평화 협상 중재, 빈민 구제 사업에 몰두했습니다.
전 세계인들에게 존경받던 그는 임종을 앞두고 "난 대단한 인간이 아니다. 단지 노력하는 노인일 뿐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전히 부족함 많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120세를 사는 동안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도 쇠하지 않은 모세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외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우리 모두는 한 번은 죽는 존재입니다.
죽은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것을 하겠습니까?
죽음을 망각한 삶과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을 아는 삶은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자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불안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셨던 은혜를 생각해 봅니다.
저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의지했던 교만을 꺾으시고,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오늘 인생의 종말을 맞이한다 해도 주님 앞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가는 종말 신앙의 소유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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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철학 : 삶과 죽음


죽음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어서 어려운 문제 중에 하나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끝으로써 우리 인식의 영역을 넘어선 단계다.
죽지 않는다면 우리는 생명이라고 할 수 없다.
헤겔(2005)은 “신체의 죽음이야 말로 개인(개체)이 공동체를 위한 마지막 노동”이라고 했다.
모든 개체가 도달하는 보편성이 죽음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 것을 알 수가 없다.
쇼펜하우어는 “죽음에 대해 무관심 하라”고 했지만 누구든지 가끔은 좋은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건강을 잘 유지하면서 죽음을 초월하려는 것이 인간의 현세적 목표다.
기쁨, 초월적 힘, 영혼의 불멸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 실존이다.
살아있는 사람 모두는 영혼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죽어도 영혼의 영원성을 추구한다.

​죽음의 철학(philosophy of death)은 모든 사람이 결국 죽는 다는 데서 출발한다.(Kamath, 1993), 다뤄지는 주제 역시 다양하다.
죽음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들, 즉 죽음이 무엇인가?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죽음의 순간을 수없이 넘기면서 느끼는 인간의 실존은 무엇인가?
실존주의적 죽음에 대한 형태와 범위는 무엇인가?
아니면 죽음이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영혼은 존재하는가?
죽음은 우리가 사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등이 망라된다.

 

​사실상 죽음보다 더한 보편적인 주제를 상상하기 어렵다. 이 세상에서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지만 죽기를 두려워한다. 실제 우리 생활 속에서 문학과 예술에서, 사회규범과 윤리에서 다뤄지지만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전문가로써 살기는 어렵겠지만 죽음과 죽어감(dying)에 대한 관심은 누구나 빼놓을수 없는 대상이다. 공자는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했다. 불교에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살 것인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만큼 죽음에 대한 이해는 우리 삶의 현실적 문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죽음을 둘러싼 철학적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인생에서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큰 질문 말이다. 죽어감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최대의 관심 대상이니 그렇다. 철학자 혹은 철학자가 아니든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데는 큰 차이가 없는 것 아닐까. 그동안 죽음에 대한 논의가 은유적이거나 금기시되는 주제였기에 가장 취약한 문제이고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죽음을 모르면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배울 수 없다. 인간으로써 최대 관심은 건강과 생존 및 죽음 이후의 내세와 영혼의 문제인 것이다.

 

□ 죽음이 왜 철학의 주제인가

 

​죽음은 철학의 주제다. 죽음의 철학은 자연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탐구다. 철학은 진리를 찾는 것, 그리고 우리가 진실 되게 살아가도록 돕는 학문이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철학적 문제는 논쟁의 세계다. 인간은 동물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특별한 실존으로써 ‘나’를 인식하는 장대한 존재이다. 인간은 호모사피엔스(생각하는 인류, 이성인)다. 인간의 동물이 아닌 것은 본질적으로 자기 인식 능력에 있다. 자기 인식 없이는 존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생명의 가치는 다르지 않다는 것, 다만 종(種)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Singer, 1994) 인간은 정신적 존재(mental being)라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 짐승들도 자신들의 고유 방식으로 의사소통하지만 이성적 정신적 존재는 아닌 것이다.

 

​독일 정치 철학자 헤겔은 말했다. 인간의 실체는 동물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유하는 존재자의 실체라고. 그는 인간사고가 세계정신 자체의 사고로 전제하고 현실이 곧 이성임을 강조한다. 정신은 본질적으로 현실적인 것이어서 이성의 눈으로 철학하기를 강조한다. 이성은 곧 정신으로써 이는 또한 영혼의 삶과 연결돼 있다.(비앙키, 2014) 또한 프랑스 아날학파의 필립 아리에스(Aries, 2004) 역시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동시에 삶의 완성이라면서 인간은 자신이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했다.

 

​따라서 죽음의 철학에서는 무엇을 이해 할 것인가? 하는 것이 핵심주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 시작되는 삶의 동반자이지만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작용해왔다. 그런 점에서내 우리의 몸과 의식이 깊은 침잠에 깨어나야 한다. 죽음을 잘 관리하고 맞이하기 위해서는 삶의 의미를 꾸준히 찾아내 대처하는 일이다. 삶이 펼쳐지는 시공간 속에서 몸과 마음, 그리고 지각을 온전히 유지하는 일이 건강한 삶이다. 영혼의 질병을 잘 치유하면서 죽음을 준비해 나가는 것이 노년기의 지혜다.

이와 관련해 죽음의 철학에서 우리가 배우고 실천해야 할 요소들이 무엇인가 찾아보자.

​첫째, 죽음의 의미(meaning)를 아는가?

죽음은 각자 독특한 형태를 갖는다.
인간으로 하여금 생명을 부여했던 조건들이 상실 돼가는 과정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예를 들면 생물학적으로 건강이 약해지면서 기침이 잦아지고 가래가 끊는다.
앉고 일어날 때도 힘들다.
결국 생명의 끝을 맞는다.
죽음의 끝은 개인 자신의 종말이다.
과거 현재 미래로 가는 시간속에서 ‘지금-순간’에 물질적인 존재 뿐만 아니라 비물질적인 영혼의 문제까지 깨닫는 일이다.

둘째, 몸의 소멸인 죽음의 모습은 어떤가?

몸과 죽음의 관계로서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그것은 다른 이의 타자화 된 죽음과 주체적인 ‘나’의 죽음으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의 죽음에는 또 죽임을 당함(타살됨)과 스스로 자연 순리에 내 맡기는 죽음(순명)이 있다.
죽음의 형태는 자연사 뇌사 병사 안락사 자살 타살 변사 의문사 고독사 사형 등 다양하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식물들, 그리고 이 땅위에 살고 있는 동물들, 모두가 죽음과 동시에 해체된다는 사실을 성찰하는 일이다.

셋째, 죽음에 대한 공포, 두려움, 불안, 허무함(무로 돌아감)과 같은 감정이 어디서 오고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죽음에서 오는 본능적인 두려움 같은 것을 어떻게 멀리할까? 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영적 위로를 받지 못하고 심한 압박감과 미몽 속에서 죽어갈 것이다.
물론 죽는 그 순간 육체와 뇌는 죽게 됨으로 죽음 자체는 인식 또는 학습 할 수 없다.
죽음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라고 느낄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다는 의미로 죽음의 순간에 의식은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에 근접한 한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더 잘 살기를 원하게 마련이다.

넷째, 죽어가면서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가?

후회(regret)는 우리 생활과정에서 실패한 것, 낭비한 것, 해보지 못한 것 등 다양할 것이다.
죽음 앞에서 후회는 눈물로 변한다.
인간이기에 후회하는 것이다.
일본의 호스피스 전문의 오츠 슈이치(2015)는 ‘죽을 때 후회하는 것“들을 말한다.
그것은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못한 것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것 △지금 순간에 충실하지 못한 것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말인즉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 없이 잘 살아왔는가를 묻는 것이다.

다섯째, 죽음의 질이 무엇인가?

삶의 질과 죽음의 질이 다른 것은 아니다.
죽음을 알면 삶이 잘 보이기 마련이다.
잘 죽는 법을 알지 못하면 잘살지도 못한다.(Critchley, 2008)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 없이 가족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고 떠나는 것이 좋은 죽음이고 세상과 화해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이 오는 방식은 매우 비극적이다.
치매 등을 앓다가 죽으면 가족들에 대한 영원한 수치가 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
마지막 임종단계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고통을 완화하며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는 죽음이 좋은 죽음이다.

여섯째, 생명/죽음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 무엇인가?

죽음과 관련해서 신체에 대한 병리의학적으로 치료하고, 그리고 죽음에 대한 합리적인 태도를 갖도록 하는 것이 윤리적 판단이다.(Morhaim, 2012)
그러나 장수사회에서 죽음과 관련된 윤리논쟁(자살, 장기기증, 안락사 등)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식물인간 상태(뇌사상태)에 있는 삶에 대해 죽음을 재촉할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막아 웰다잉을 유도한다는 법안들도 마련되고 있다.
무리한 생명 연장 때문에 존엄성이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곱째, 죽음 관련기술의 발전이 무엇이고 어느 수준인가?

노화문제와 관련된 줄기세포 복제 유전자치료 인간 게놈 염기 서열 조작을 통한 생명 연장술들이 발전하고 있다.
생명공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수명연장술, 냉동보존술, 바이오 산업 등 생물 의학적 영역에서 크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100세 시대 “나는 언제까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갖게 한다.

​여덟번째, 인간의 불멸성(indestructibility)은 가능한가?

흔히 인생의 유한성과 불멸성의 논쟁은 끝이 없다.
유한성은 물질에 기초한 것이고 불멸성은 정신(spirit)의 개념이다.
육신은 죽더라도 영혼은 계속된다는 개념이다.
인간 속에 생명의 본질인 불멸성이 깃들어 있다는 얘기다.(Fischer, 2013)
이러한 불멸의 희망은 종교가 그러하듯이 영혼의 존재를 반영한다.
사이몬 크리츨리(Critchley, 2008)는 내세에 대한 믿음, 불멸에 대한 갈망은 죽음의 두려움에 대한 극복의 열망이라고 진단한다.
우리 신체는 사유하는 존재지만 우리 삶은 영혼의 삶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아홉 번째, 죽음이후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우리 대부분은 사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모른다. 다만 타인들의 죽음을 통해서 막연히 이해 될 뿐이다. 그런데 매우 제한적이지만 우리가 죽으면 소멸(無의 상태), 영혼 정신의 계속성(부활), 불교 힌두교에서 말하는 환생, 윤회설 등을 알고 있다. 기독교의 성경, 불교 경전의 능가경(楞伽經)과 금강경(金剛經) 등 모든 경전들이 죽음이후의 다른 세상을 얘기한다. 종교적 믿음, 영성, 수행의 길을 인도하고 있다. 죽음 이후에 천당 혹은 지옥에 갈수 있다는 교리에 따라 살아가면서 죄를 짓지 않는, 지속적인 정화가 필요한 존재들이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정말 큰 질문들이다.
죽음, 죽어감에 대한 철학적 이해 그리고 죽음 이후에 우리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의 궁극적 개념들조차 난해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죽음의 철학을 논하는 것은 우리가 죽음에 잘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소멸의 공포를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 죽음 철학의 과제다.(Critchley, 2008)
현자들은 죽음을 영적으로 해방되는 재탄생(환생), 부활을 통해 영생의 길로 나갈 수 있는 여정으로 설명한다.
말인즉 죽음을 완전히 준비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는 수행을 요구한다.
죽음과 영혼의 상실은 생명의 에너지가 단절 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에서 한 평생 통찰과 깨달음이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에피쿠로스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삶에 신경 좀 쓰라”고 권면하지 않았던가.
죽음이라는 예정된 시간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 지금 현재 삶의 형태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

□ 죽음의 설교자들

철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위한 준비’라고 했다.
죽은 다음의 생이 없다는 철학자도 물론 있다.
하지만 많은 철학자들이 초월(형이상학)보다 일상을 하늘 저편 대신 땅위의 삶을 더 강조한다.
내가 없는데 천당도 지옥도 없다면서 내가 절대유일의 존재가 아닌가 묻는다.
어떤 이는 죽음에 대해 무관심 하듯 죽음 앞에서 유언도 싫고 무덤도 싫다는 반응이다.
공자 역시 “삶에 대해서 모르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 알 수 있는가“라며 죽음의 문제를 적극 다루지 않았다.
한마디로 죽음과 영혼에 대한 문화적 종교적 철학적 견해는 다양하다.
죽음의 의미, 영혼불멸에 대한 철학적 주제는 끝이 없는 논쟁의 세계인 것이다.

​까다롭지만 죽음의 문제는 철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철학적 입장에서 우리 모두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논리실증적으로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한다.
죽음의 본질, 내세로의 영원가능성, 죽음의 대한 수용태도 등 '죽음학' 입장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주제다.
이러한 죽음의 문제는 플라톤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스피노자의 작품들에 이어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 칼 야스퍼스, 비트겐슈타인 등에서 잘 나타난다.

O 하이데거의 현존재와 죽음

​죽음의 설교자 중에서 우선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가 있다.
그는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한다.
살아있는 실존적 의미에서 인간존재를 다른 존재들과 구별해서 ‘현존재’(Dasein)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현존재란 다름아닌 죽음을 향한 존재다.
죽음이란 자신의 실존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는 상태다.
이는 인간을 ‘세계-내-존재’(being-in-the-world)에 초점을 맞추고 인간을 이 세상에 내 ‘던져진 존재’로써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 누구도 국가 부모 성별 출생일을 택할 수 없이 태어났기에 자기 맘대로 결정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것, 어느 상황에 처해 있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존재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죽음에 대한 분석에서 생물학적으로 죽음 또는 죽어감에 대해 관심이 없다. 다만 죽음의 현상에 대해서도 인간 현존재는 ‘죽음에 이르는 존재’(being-towards-death)입장에서 접근한다. 이때에 현존재란 자신의 한계, 자신의 불안을 극복하며 자신의 본래적 모습을 찾아가는 존재를 의미한다. 그의 관심은 현존재인 인간은 “아직 오지 않은 죽음”(yet-to-come' death)의 상태, 즉 죽음으로 ‘미리 달려가 봄’으로써 자신의 유한성을 깨닫고 자기 고유한 본래적인 전체적인 삶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존재의 관점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때 죽음은 실존으로서 다가오게 된다는 논리다.

​더구나 하이데거의 죽음에 대한 입장은 ‘존재와 시간’(Being and Time)속에서 설명한다. 하이데거는 존재론적 죽음에서는 타락(fallenness), 내던져짐(thrownness), 죄(guilty) 등의 문제로 설명하면서 단순한 존재가 아닌 인간의 현존재(Dasein)을 설정한다.(하이데거, 1998) 그는 현상학적으로 죽음에 대한 종교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존재와 시간’에서는 하나님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인간실존을 내세운다. 인간의 존재를 종교적으로 신 또는 불멸에 관계없이 순수 형상으로 보았다. 인간은 죽음에 이르는 존재로 본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며 피할 것이 아니라 죽음을 직접 대면하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성찰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죽음이 저 멀리(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은 늘 생의 바로 옆에 거리 없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죽음에 대해 실존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그것은 ▷죽음은 목격 될 뿐 자신은 결코 경험될 수 없다는 것,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죽음은 언제나 한계상황으로 존재한다는 것, ▷죽음에 대한 경험이나 예측도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죽음은 늘 인간에게 있어서 현존재일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람은 아직 죽지 않은 상태에서, 즉 삶이란 자신이 태어난 후 지금까지 죽음이 아직 찾아오지 않은 시간 속에 살아갈 뿐이다.

​하이데거의 이러한 죽음에 대한 근본적 성격 때문에 인간은 ▷원치 않는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데 이때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점, ▷인간은 불안을 부정하기 위해 현재 자신의 상태를 외면하려한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죽음의 가능성을 늘 안고 살아가는 존재로써 ‘한정된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입장이다. 인간은 죽기 전에까지는 자신의 죽음을 경험할 수 없고 이해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죽으면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 자체를 전할 수 없다. 다만 주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에서 자기 자신도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 할 뿐이다. 사람들은 자기 죽음이 멀리 있다는 생각을 하며 “아직은 아니다”라며 살아갈 뿐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하이데거의 죽음에 대한 실존적 개념은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그것은 주체적 으로 받아들이는 죽음이고, 또 하나는 비주체적, 비존재 상태로 도피하려는 태도다. 전자는 최종적인 죽음을 향한 존재, 죽음에 이르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후자는 죽음은 ‘세계-내 존재’로부터 분리되는 소멸성이 인간의 한계이지만 살아있는 동안 자기존재 불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불안, 허무함, 무화(nothing)의 가능성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존재들이다. 즉 ‘죽음에 임하는 존재’로부터 도피하려는 인간의 나약함을 지적 하고 있다.

O 야스퍼스의 한계상황에서의 존재의 죽음

​하이데거의 현존재(Dasein)는 시간차원에서 경험자체로 자신의 존재를 말한다. 실존적 분석이 곧 하이데거의 철학이다. 그러기에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한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많은 과오 속에서 살아간다. 반면에 칼 야스퍼스(Jaspers)는 하이데거와 다르게 ‘인간의 존재론적 구조’를 말하지 않는다. 존재(dasein)의 죽음에서 죽어가는 존재를 넘는 초월성, 궁극적인 내세, 불멸을 말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 종교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아니지만 초월하는 존재(existenz)로서의 실존적 개념으로써 비인격적인 신을 상정한다.(Filiz, 2008) 하이데거와 야스퍼스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하이데거는 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고 야스퍼스는 인간이 신의 품에 안기게 된다고 함으로써 유신론적 실존주의 입장을 취한다.

아울러 인간은 한계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그것은 죽음, 우연, 투쟁(다툼), 고뇌, 죄책(부채)이다. 죽음은 존재로서의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야스퍼스의 실존철학(philosophy of Existence)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이 겪는 한계상황은 고통과 죽음의 문제다. 한계상황은 어떤 벽(사회제도 규범)에 맞서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의미한다. 이런 한계상황(critical situation, Grenzsituation)은 인간의 ‘세계 내 존재’(being-in-the-world)의 끝을 의미하기 때문에 죽음은 우리의 안정감 존재의 기반을 위협하는 것이다.

​알아차리기 쉽지 않지만 죽음은 삶의 적이다. 생명은 본질에서 있어서 창조이고 자발성이지만 사실 생사문제는 어떤 예정이나 예상도 허락 하지 않는다. 야스퍼스가 말하는 죽음에 대한 태도는 3가지로 요약되는데 이를테면 ▷죽음은 절대 끝이 아니다, ▷육체의 죽음은 절대 끝난다, ▷죽음을 회피하고 무관심 해 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이 불가능한 한계상황에서 좌절하며 생존해 가는 존재들임을 말한다. 즉 야스퍼스는 인간이 늘 필연적 한계상황에 늘 놓여 있다는 판단이다. 여기서 한계상황인 죽음 고뇌 투쟁 죄책 등 숙명적인 한계상황을 극복 못하고 오히려 이런 한계상황을 감내하며 세상에서 버텨내는 것이 실존의 본질이다.(Filiz, 2008)

​특히 야스퍼스는 죽음을 인간존재의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으로 보고 인간이 죽음에 직면해 취할 수 있는 태도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그것은 우선 객관적 사실로 특정 한계상황에서의 존재의 죽음이다. 야스퍼스가 말하는 한계상황은 피 할 수 없는 상황 즉 실존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의미한다. 죽음은 고유한 것, 남과 바꿀 수없는 것, 반드시 찾아오는 것을 변경할 수 없는 것이 한계상황이다. 그러나 우리가 피 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있더라도 그것을 넘어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되고 초월적 능력을 갖는, 즉  죽음을 모르는 불멸(deathlessness)의 실존임을 강조한다. 죽음을 허망한 종말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즉 자기의 한계상황을 인식하며 희망을 잃지 않도록 대처하는 것이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죽음을 모르는 존재라는 사실은 죽음을 초월해서 살 수 있는 영원성이다. 영원성은 시간을 초월한 비물질적 자유 그자체이다. 죽음을 초월해서 영적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인간 실존을 초월하여 신에게 다가가는 것, 신에 의한 초월, 구원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 이를 때 사람은 비로써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자유로서의 실존’ 이 주어진다. 주체적인 자기존재를 초월하여 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구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며 이는 종교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죽음은 인류역사 이래 중대한 의미로 인식되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야스퍼스는 인간의 죽음의 필연성과 비존재 개념을 이해 할 것을 요구한다. 야스퍼스는 실증주의적 과학과 지식에 대한 과신을 경고하면서 인간의 비합리성에 기초한 본래적인 인간존재의 문제를 실존철학이라는 방법으로 설명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존재라는 개념을 사용했다면 야스퍼스는 ‘자기 실존’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특히 ‘자기실존’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 물음과 관련돼 있다. 결국 ‘나’는 실존적 불안, 소외와 고독, 죽음의 문제들을 극복해 가는 존재로써 여기에는 자기인식, 정체감, 타인과의 관계 찾기 등을 모색하고 재정립 해 가는 ‘나’를 강조한다.

​덧붙이면 야스퍼스의 실존이라는 의미는 객관적 존재, 자아존재, 그리고 존재자체를 말한다. 여기서 ‘객관적 존재’란 사람 짐승 건물 등 모든 대상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자아존재’란 나 자신이 세계에 존재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옳고 그름의 이치를 깨닫는 자아를, 그리고 ‘존재자체’란 현존재에 관계하는 초월적 시원적 본질로써의 존재를 말한다. 이들 세 가지 형태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전체로 묶여져 결속되는 실존을 구성한다. 말인즉 모든 존재는 자체만으로 소중하고 아름답고 사랑받아야할 존귀한 존재들이다.

​결국 야스퍼스는 죽음에 대한 포괄적이고 실존적 개념에 매달리지 않고 죽음에 직면해서 겪는 다양한 심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나는 죽음에 대해 어떤 의식과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죽음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달라진다는 입장이다. 한계상황에서 자기가 유한하다고 인식 할 때 초월자(또는 포괄자, Periechontolgie)와의 실존적 소통이 가능하게 된다. 죽음의 사실을 자각할 때 현실의 삶을 더 돌아보게 하고 본래의 자기를 주체적으로 인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써 ‘모든 것’들이 불가능하다는 것, 바로 그러한 사실 때문에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학습해야 한다는 것이다.(끝)

<참고자료>

비앙키, 올리비아(Olivia Bianchi, 2014), 『헤겔의 눈물』, 김동훈(역),

서울: 열린책들.

아리에스, 필립(Aries, 2004), 『죽음 앞의 인간』, 고선일(역), 서울: 새물결

오츠 슈이치(2015),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사람들의 습관』, 황소연(역),

서울: 한국경제신문사.

하이데거, 마르틴(1998), 『존재와 시간』, 이기상(역), 서울: 까치.

헤겔, 게오르크 빌헤름 프리드리히(2005), 『정신현상학』(2), 임석진(역),

서울: 한길사.

Critchley, Simon(2008), The Book of Dead Philosopher, New York: Random House.

Filiz, Peach(2008), Death, Deathlessness and Existenz in Karl Jaspers' Philosophy, Edinburgh: Edinburgh University Press.

Fischer, John Martin(2013), "Immortality", in Bradley, Ben, Fred, Feldman(2013), The Oxford Handbook of Philosophy of Death,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pp.336-353.

Kamath, M.V(1993), Philosophy of Life and Death, Mumb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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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haim, Dan(2012), The Better End: Surviving(and Dying) On Your Owen Terms in Today's Modern Medical World, Maryland: The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Singer, Peter(1994), Rethinking Life & Death: The Collapse of Our Traditional Ethics(2nd ed), New York: St Martin's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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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智慧), 명철(明哲), 지식(知識)의 차이 / 성경의 중요 용어 정리(고르반) (교만, 겸손)

지혜(智慧), 명철(明哲), 지식(知識)의 차이

- 지식은 아는 능력(정보)
- 지혜는 행하는 능력(문제 해결하는 힘)
- 명철은 분별하는 능력(진리와 거짓을 분별)

솔로몬과 시바 (Solomon and the Queen of Sheba)

참조 / 열왕기상 10:1-13

시바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까다로운 문제로 그를 시험해 보려고 찾아왔다.
여왕은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향료와 엄청나게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싣고 예루살렘에 왔다.
여왕은 솔로몬에게 와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을 모두 물어보았고, 솔로몬은 여왕의 물음에 다 대답하였다.
시바 여왕은 솔로몬의 모든 지혜를 지켜보고 그가 지은 집과 음식들, 복장, 시종들, 그리고 주님의 집에서 드리는 번제물을 보고 넋을 잃었다.
“임금님의 하느님께서 임금님이 마음에 드시어 임금님을 이스라엘의 왕좌에 올려놓으셨으니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사랑하셔서, 임금님을 왕으로 세워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게 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0:9)고 축복한 뒤, 여왕은 금 백이십 탤런트와 아주 많은 향료와 보석을 임금에게 주었다.
시바 여왕이 솔로몬 임금에게 준 것만큼 많은 향료는 다시 들어온 적이 없다.
한편 솔로몬 임금은 시바 여왕에게 선물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여왕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청하는 대로 다 주었다.
여왕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로몬은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으로, 다윗과 밧세바의 아들이다.
솔로몬은 하느님께 백성을 통치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고, 그는 특별한 지혜를 부여받았다.
시바 왕국은 B.C 950년에서 B.C 115년까지 아라비아 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지금의 예멘 부근에 있던 나라로, 한창 전성기를 누릴 때 그 영토가 에디오피아에서 소말리아를 포함해서 홍해까지 뻗어나갔다고 한다.
열왕기에 등장하는 시바의 여왕은 B.C. 10세기 무렵 활동한 시바 왕국의 지배자로 본명은 마케다 라고 전한다.
그녀가 솔로몬을 찾아와 지혜를 시험한 것이 BC.950-930년 경이라고 하는데, 역사가들은 시바 여왕의 방문이 고대 이스라엘과 아라비아 사이의 상업적 관계가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본다.
또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을 시험하기 위해 직접 방문한 것 자체가 시바 왕국이 이스라엘 왕국보다 더 강대한 나라였음을 암시한다고 한다.
신심 깊은 왕과 이교도 여왕 간의 만남은 동방박사의 경배의 예시로 여겨지기도 한다.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 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 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왕상 10:1)

솔로몬의 지혜가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지금의 예멘지역인 멀리 스바에서 여왕이 많은 선물을 낙타에 싣고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하는 문제를 내지만, 솔로몬은 스바의 여왕이 묻는 말에 몰라서 대답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왕하 10:3).

스바의 여왕이 무슨 질문을 하였고 솔로몬은 어떤 대답을 하였을까?

우리는 솔로몬의 지혜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하나 성경에서 알 수 있는 이야기는 '솔로몬의 지혜'로 알려져 있는 명쾌한 판결 하나뿐이다.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솔로몬이 진 짜 어머니를 찾아 준 것이다(왕상 3:25).

스바의 여왕은 더 어려운 문제들을 솔로몬에게 물어보았다.

1. 한 여인이 그녀의 아들에게 '네 아버지가 내 아버지이고 네 할아버지가 내 남편이며 네가 내 아들이고 나는 네 누이라'고 말하는 데 어떻게 된 사이냐?

 -
롯의 딸과 그 아들 관계

2. 똑 같은 옷을 입은 똑 같은 키의 남자와 여자를 여러 명 세워 놓고 남녀를 구별해 보시오.

-
대야에 물을 담그고 손을 씻으라고 하면 남자들은 그냥 씻는데 여자들은 옷 소매가 젖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씻는다.

3. 할례자들과 무할례자들이 뒤섞인 여러 명의 남자들 중에서 할례 자를 구별해 보시오.

-
언약궤를 열어 보였을 때 할례자들은 몸을 반쯤 굽혀 절을 했고 그때 그들의 얼굴은 쉐키나의 광채로 가득 찼다.
  그러나 무할례자들 은 그렇지 않았다.

 4.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은 자가 누구냐?

만군의 여호와

5. 단 한 번만 태양을 본 적이 있는 땅은 어디에 있느냐?

-
홍해가 갈라지던 날 드러냈던 바다 밑 땅

6. 톱으로 벤 백향목 나무가 있는데 어느 쪽 끝에 뿌리가 있었고 어느 쪽 끝에 가지가 붙었었는가?

-
백향목을 물에 던져서 가라 앉은 쪽이 뿌리가 있던 쪽이 고 수면 위에 떠 있는 쪽이 가지가 있던 부분이다.

7. 진짜 꽃과 똑 같은 조화가 많이 섞여 있는데 어떻게 구별하나?

- 꽃들을 창가에 놓아서 벌이나 나비가 앉는 쪽이 진짜 꽃들이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셨기 때문에 솔로몬의 지혜는 누구보다 더 뛰어났다.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왕상 5:30)





성령충만한 사람의 특징(11-22-2022, 추수감사절. 출애굽기 31장 브살렐과 오홀리압)  참조

    지혜(知慧) :
발명과 창조의 능력
                     - 행하는 능력

    총명(聰明) :
사물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
                    - 분별하는 능력(명철)

    지식(知識) :
경험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능력
                      - 아는 능력

    재조(才操) :
모든 능력을 종합적으로 발휘하는 기술


지식(비나)이란?
아는 능력

비나 / 
בִּינָה

스트롱번호 998
1. 이해,  2. 총명

발음 : 비나(bîynâh)
어원 : 995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지식(신 4:6), 총명(대상 22:12, 욥 34:16, 사 29:14), 명철(대하 2:12, 잠 2:3, 23:23), 지혜(욥 39:26, 잠 7:4, 23:4),
지각(사 27:11), 뜻(단 8:15)
구약 성경 : 37회 사용

잠언 2:3 /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and if you call out for insight and cry aloud for understandin.

세상에서는 학문을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지혜(호크마)란?
행하는 능력


호크마 / חָכְמָה

스트롱번호 2451

1. 숙련,  2. 지혜, 3. 다양한 학식
발음 : 호크마(chokmâh)
어원 : 2449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지혜(출 28:3, 삼하 20:22), 슬기(출 35:26), 유능한 기술자(대상 28:21)
구약 성경 : 153회 사용

출애굽기 28:3 /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Tell all the skilled men to whom I have given wisdom in such matters that they are to make garments for Aaron, for his consecration, so he may serve me as priest.

인생의 경험이 많은 노인들은 어떤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지혜는 영적, 도덕적 능력을 모두 포함합니다.

명철(테부나)이란?
분별하는 능력


테부나 / תְּבוּנָה

스트롱번호  8394

1. 지식, 2. 욥기 32:11
발음 :테부나(tebûwnâh)
어원 : 995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총명(출 31:3, 왕상 4:29, 겔 28:4), 분별력(신 32:28), 명철(욥 12:12, 시 49:3, 잠 2:2), 지혜(욥 26:12, 시 136:5),
통달(사 40:14), 지각(옵 1:7). 능숙함(시 78:72, 호 13:2). [형] 명철한(잠 10:23, 20:5)
구약 성경 : 42회 사용

잠언 2:2 /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turning your ear to wisdom and applying your heart to understanding.

모양이 같은 쇠뭉치를 보고 어떤 사람은 그것이 납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을 고철이라고 합니다.
정확한 구별을 위하여 자석을 사용하듯이 명철이란 사물을 보고 그 본질을 정확하게 분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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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8:28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호크마)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비나) 하셨느니라.
  
    * 지식(知識) : 아는 능력(경험을 구체적으로 적용)
    * 지혜(智慧) : 행하는 능력(발명과 창조)
    * 명철(明哲) :  분별하는 능력(사물을 정확히 파악)


이러한 용어를 설명하려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였다.
예를 들면,

첫째는 히브리어 원전에서(잠언 2:2~3)

  •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 turning your ear to wisdom and applying your heart to understanding,
  • and if you call out for insight and cry aloud for understanding



  • “호크마”를 ‘지혜’,
    “비나”를 ‘지식’,
    “테부나”를 ‘명철’
    이 단어들은 동사형 명사(동사에서 만들어진 명사)라고 보시고 동사의 뜻을 알면 명사의 의미가 풍성해질 것입니다.

    “호크마”의 동사형은 “하캄”으로 지혜롭다, 지혜롭게 행동하다는 뜻
    “비나”와 “테부나”는 “빈”이라는 동사에서 온 것으로 모양은 판이하나 히브리어에서 어미나 접두어를 붙여서 명사로 만든다고 보시면 이해가 쉬울 듯

    동사 “빈”이란 의미는 ~사이를 식별(구별)하다는 의미로서 즉 구별하고 식별할 수 있으니  지식이나 이해 혹은 깨달음 등으로 될 수 있을 것이고 통찰력이 있어야 되는 문제이니 명철로 더 나아가 지혜로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하캄”과 “빈”은 내용을 들여다보면 동의어에 가깝습니다.
    우리말에선 식별과 지혜는 별개처럼 정의 되지만...
    통상적으로 어떤 단어를 얘기할 때 ‘이것이다’라고 번역하지만 여러 뜻이 있고 심지어 우리말의 하나의 단어에서 여러 의미가 있듯이...  그래서 문맥 안에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원전문맥으로 들어가 보면

    [1절~2절] 아들아! 하고서 ‘임’(만약~ 한다면),
    [3절] ‘키 임’(그래서 ‘만약~ 한다면),
    [4절] ’임’(만약~ 한다면),
    [5절] ‘아쯔’(then)로 귀결이 됩니다.

    아들아! [1~4절]까지 만약~ 한다면, [5절]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5절을 사역하면 “여호와의 경외를 구별할(빈) 것이고 // 하나님의 지식을 찾을 것이다”
    결국 역으로 말하면 1장의 내용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머리,시작)이어늘
    (1:7) 이는 먼저 여호와 경외 곧 하나님 지식을 찾음으로 파생되는 모든 것 즉 지혜, 지식, 명철 등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실 때 특히 시편이나 잠언 등에서 자세히 보시면 단어나 문장 두 개를 나란히 놓습니다.
    반복 구절처럼 놓는데 그들의 특성입니다.
    이렇게 하므로 뜻을 풍성히 하거나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는 두 개의 내용을  함축하는 것으로써 각자의 뜻으로 보는 게 아니라 서로 잡아주어 하나의 내용으로 보셔야 합니다.

    [2절]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3절] 지식을 불러 구하며 //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5절] 여호와의 경외와 하나님의 지식도 나란히 놓였음을 볼 수 있고...
      그러므로 여기서 지혜와 지식과 명철은 위에 언급된 것처럼 개별적이나 서로 합하여 풍성과 강조를 더한 하나의 뜻으로 보아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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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는 사건의 해결 능력

    우리가 이 세상의 유혹이나 삶의 문제들 앞에서 넘어지지 않고 승리해 나갈 수 있는 지혜는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명철(insight or understanding)은  사물에 대한 통찰력과 이해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때” 명철함이 스승보다 그리고 노인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합니다(시 119: 99-100). 

    스승은 세속적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상 지식은 영적 지식과는 다릅니다.
    아무리 세상의 박사 학위를 가진 자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십자가의 구속과 복음에 대한 영적인 일을 이해할 수 없지만, 초등학교 밖에 안 나온 크리스천이라도 성령님께서 깨우치시면 복음의 깊은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인은 이 세상의 갖가지 경험을 다 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세에 밝고 인생사는 법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묵상하는 사람은 공부를 많이 한 스승보다, 지혜와 명철이 뛰어났던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창 41:39).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벨론의 모든 자보다 모든 학문과 재주 뿐 아니라 지혜와 총명이 훨씬 뛰어났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외과 의사이며 "Think Big"(크게 생각하라)의 저자인 벤 카슨은 학창 시절부터 매일 잠언을 하루에 1장씩 읽었다고 합니다. 잠언을 읽으면 삶의 참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140억개의 뇌세포는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것을 수용한다”고 말하면서 어떤 것을 뇌에 입력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저속적인 책들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 세상적인 대중매체를 입력하느냐,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뇌 속에 입력하느냐 하는 것은 어떤 인생을 사느냐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지식보다 또 어떤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지혜와 명철입니다. 이러한 지혜와 명철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속에 내면화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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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는 상황에 맞게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잠언 9:10)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and knowledge of the Holy One is understanding.

    지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잠언 1:7)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but fools despise wisdom and discipline.

    명철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예레미야 9:24)

    -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but let him who boasts boast about this: that he understands and knows me, that I am the LORD, who exercises kindness, justice and righteousness on earth, for in these I delight," declares the LORD.

    1. 지혜(智慧)
    히. 호크(chokma), 헬. 소피아(sophia), 영. 위즈덤(wisdom)

    관찰, 경험, 반성에 의해 얻어지는, 적절한 생활에 대한 지식과 감정을 말한다.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며(고전 2:6,7),
    머릿속 지식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 총체적 삶의 양식으로,
    하나님에의 신앙과 복종을 지혜의 중심으로 생각했다(시 111:10; 잠 1:7,9:10).

     ①.  습득한 지식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②.  미래형(未來形)이다.
     ③.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을 통하여 얻는다(잠 8:12)

     2. 명철(明哲)
    히. 비나(beenah), 헬. 순네시스(sunesis), 영. 언더스텐딩(understanding)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예리한 분별력(욥 6:30,32:9),
    어떤 주제를 예리하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지적 능력(욥 6:24,15:9,18:2,23:5)
    지혜에 이르는 길을 하나님께서 '깨달으신다'(욥 28:23)는 말을 이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①. 지식과 지혜를 이용하여 사물의 성질을 분별하는 것이다.
     ②. 현재형(現在形)이다.
     ③. 거룩하신 자를 알고(잠 9:10), 악을 떠나는 것이다(욥 28;28)

    * 예레미야 9:24, 여호와를 아는 것 

    3. 지식(知識)
    히. 다드(daath), 헬. 그론시스(gnosis), 영. 나리지(knowledge)  

    사물에 관한 명확한 인식이나 판단.
    어떤 사물에 관하여 알고 있는 것 또는 그 내용을 이르는 것.
    인간의 심리적 3요소(지정의, 知情意) 중 하나, 지식 없이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다.

     ①. 사물을 있는 그대로만 파악하여 습득하는 것이다.
     ②. 과거형(過去形)이다.
     ③. 절제가 없으면(벧후 1:6), 사람을 교만하게 한다(고전 8;1)

     '지혜'와 '명철'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었으며, '명철'은 '지혜'의 대구(對句, 비슷한 어조나 어세를 가진 것으로 짝을 맞춘 글귀)로 사용되고 있다. (잠언 4:5,7, 7:4, 9:10, 16:16; 욥 28:12, 20, 28; 1:20; 사 11:2).

     ①.  모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잠 1:7,9:10; 시 111:10).
     ②. 모두 하늘로서 내리시는 선물이다(전 2:26).
     ③. 모두 긴밀한 관계에 있다(잠 18:15,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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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크마” - ‘지혜’
    “비나” - ‘지식’
    “테부나” - ‘명철’

    이 단어들은 동사형 명사(동사에서 만들어진 명사)라고 보시고 동사의 뜻을 알면 명사의 의미가 풍성해질 것입니다.

    호크마”의 동사형은 “하캄”으로 지혜롭다, 지혜롭게 행동하다
    비나”와 “테부나”는 “”이라는 동사에서 온 것
    모양은 판이하나 히브리어에서 어미나 접두어를 붙여서 명사로 만든다고 보시면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

    동사 “”이란 의미는 ~사이를 식별(구별)하다는 의미로서 즉 구별하고 식별할 수 있으니  지식이나 이해 혹은 깨달음 등으로 될 수 있을 것이고 통찰력이 있어야 되는 문제이니 명철로 더 나아가 지혜로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하캄”과 “빈”은 내용을 들여다보면 동의어에 가깝습니다.

    우리말에선 식별과 지혜는 별개처럼 정의 되지만...
    통상적으로 어떤 단어를 얘기할 때 ‘이것이다’라고 번역하지만 여러 뜻이 있고 심지어 우리말의 하나의 단어에서 여러 의미가 있듯이...  그래서 문맥 안에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원전문맥으로 들어가 보면

    [1절~2절] 아들아!!!하고서 ‘임’(만약~ 한다면),
    [3절]에서 ‘키 임’(그래서 ‘만약~ 한다면),
    [4절]에 ’임’(만약~ 한다면).
    [5절] ‘아쯔’(then)로 귀결이 됩니다.

    아들아! [1~4절]까지 만약~ 한다면,
    [5절]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5절을 사역하면 “여호와의 경외를 구별할(빈) 것이고// 하나님의 지식을 찾을 것이다”

    결국 역으로 말하면 1장의 내용으로 돌아가는 것일테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머리,시작)이어늘~~~(1:7)
    이는 먼저 여호와경외 곧 하나님지식을 찾음으로 파생되는 모든 것 즉 지혜,지식,명철등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실 때 특히 시편이나 잠언 등에서 자세히 보시면 단어나 문장 두 개를 나란히 놓습니다.

    반복 구절처럼 놓는데 그들의 특성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뜻을 풍성히 하거나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는 두 개의 내용을  함축하는 것으로써 각자의 뜻으로 보는 게 아니라 서로 잡아주어 하나의 내용으로 보셔야 합니다.

    [2절]을 보시면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3절]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5절]도 보시면 여호와의 경외와 하나님의 지식도 나란히 놓였음을 볼 수 있고...
     그러므로 여기서 지혜와 지식과 명철은 위에 언급된 것처럼 개별적이나 서로 합하여 풍성과 강조를 더한 하나의 뜻으로 보아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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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을 믿고 전도하라.”
    “신구약 성서 가운데 여러 말씀을 지키는 자가 어찌 나의 유언은 지키지 않겠는가.”
    “이잣돈 욕심 말라. 금전은 1원이라도 저금하라.”
    “교육을 양성하는 일만 경영하라.”

    1930년 경남 함안 조씨의 한 가문이 작성한 ‘교육조합(敎育組合)’ 문서에 담긴 내용이다.
    교육조합은 함안 군북면 사촌리에 거주하던 조좌규(1854~1936)씨가 다섯 아들과 함께 결성한 조합이다.
    집안의 경제적 부침과 상관없이 문중의 인재를 끝까지 교육하기 위해 다섯 섬 두 마지기의 땅을 내놓아 여기서 나오는 산출로 후손을 교육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핵심은 기독교 인재 양성이다.

    함안 조씨는 영남의 명문가다.
    효성그룹 조홍제 회장이 이 문중의 일가이고 인근 지수초등학교는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효성 조 회장 등을 1회 졸업생으로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역시 함안 조씨다.

    구한말 외세에 의해 국권이 흔들리던 상황에서 조동규 조좌규 형제는 기독교를 받아들인다. 봉건적인 유교 전통에서 벗어난 일이라고 문중에서는 족보를 퇴출하는 등의 아픔을 겪었지만, 이들은 굳건하게 믿음을 이어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소속 함안 사촌교회는 1897년 설립돼 125년 역사를 이어왔는데 호주 선교사 앤드루 애덤슨(손안로)이 조동규씨에게 전도하면서 설립됐다.

    당시 조동규씨는 애덤슨 선교사에게 “우리가 개종하면 조선이 독립될 수 있는지” 물었고, 애덤슨 선교사는 “조선 사람 100만명이 예수를 믿으면 독립이 가능할 것이오”라고 답했다. 조씨는 즉각 조카 조용관과 함께 논 1980㎡를 헌납해 사촌리에 최초로 교회당을 세웠다. 조동규의 아들 조용석은 호러스 G 언더우드 선교사의 서울 경신학교에 다니며 3·1운동의 주역으로 나섰다가 투옥됐고, 훗날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했다. 문중에서 배출한 대표 목회자로는 대한기독교서회 총무(지금의 사장 직위)를 네 번 연임한 조선출 목사가 있다.

    1930년 작성된 교육조합 서문.

    교육조합 문서는 1부 서문, 2부 규칙, 3부 유서로 작성돼 있다. 문중을 일으키기 위해 영특한 자손을 교육하는 기금을 내고 이를 운용하는 규칙과 더불어 신앙을 지키라는 특별한 유언을 남겼다. 허경진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한문 번역을 도왔다. 허 교수는 “동서고금 유언은 생전엔 효력이 없고 죽은 뒤에 효력이 있다는 히브리서 9장 16~17절 말씀으로 유언이 시작된다”면서 “전도를 당부하고 금전 대부를 금지하며 정의와 가규(家規)를 강조하는 등 기독교 신앙과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오후엔 사촌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고갯길 문중의 산에서 교육조합비 제막식이 열렸다. 교육조합 문서를 한글로 번역해 후손들이 쉽게 읽도록 돕는 비석이 세워졌다. 이어 박병연 사촌교회 목사의 인도로 기념 예배가 드려졌다. 문중을 대표해 조종석(78) 안수집사가 인사말을 했다.

    1930년 작성된 교육조합 규칙.

    “당시 문중의 어른들은 독립된 나라를 되찾는 길이 새 세계의 조류에 합류하는 것이라 확신하고 교육조합을 창설해 ‘주 안에서 교육에 힘을 다하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이런 뜻을 받들어 가풍으로 삼고자 이 기념비를 봉헌합니다.”

    사촌교회 앞마당에는 1928년 조동규씨의 교회와 관련한 헌신을 기록한 비석도 남아 있다. 비석의 글은 3·1운동을 배후에서 주도하고 투옥 후 당시 마산 문창교회에서 시무하던 함태영 목사가 썼다.
    법관에서 독립운동가로, 이후 목사에서 정치가로 계속 거듭난 함 목사는 서울 남대문교회, 연동교회와 인연이 있고 한국신학대 학장을 역임하다 이승만정부에서 부통령까지 지냈다.

    사촌교회 박 목사는 “함안 출신 산돌 손양원 기념관과 세브란스 출신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이태석 기념관, 그리고 사촌교회와 교육조합 비석까지 함께 기독교 역사 순례지로 찾아와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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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르반


    κορβᾶν 스트롱번호 2878

    1. 고르반.  2. 예물. 3. 막 7:11.
    발음 [ kŏrban ]

    어원 / 히브리어 7133에서 유래

    관련 성경 

    성전고(마 27:6), 고르반(막 7:11).

    * 7133 קָרְבָּן 스트롱번호7133

    1. 제단.  2. 희생 제물.  3. 레 2:1
    발음 [ qorbân ]
    어원 / 7126에서 유래, 연계형 :קָרְבַּן
    구약 성경 / 80회 사용

    뜻풀이부

    • 1.  명사, 남성 제단, 희생 제물, 레 2:1, 4,12,13, 7:13, 9:7, 15.
    • 관련 성경

      ☞예물(레 1:2, 27:9, 민 5:15), 제물(레 4:32, 겔 20:28), 희생(겔 40:43).
      [동] 드리다(레 2:12, 느 10:34).

    * 7126. 카라브 [ qârab ] קָרַב 스트롱번호7126

    1. 접근하다.  2. 시 69:19. 3.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
    발음 [ qârab ]
    구약 성경 / 291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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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야 할 도서



    칸트 3대 비판서 도해


    대학생이 읽어야 할 고전  
    칸트의 3대 비판서폭넓은 문제의식으로 객관성과 보편성 추구
     … 오늘날에도 유효한 철학적 의문 제시

    흔히 고전이라 하면 해묵은 이야기책이나 옛날 사람들이 쓴 작품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고전은 오랜 시간을 거쳐 널리 애독되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책이다. 이에 우리신문에서는 각 학문 분야별로 고전으로 불리는 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칸트의 3대 비판서로 불리는 ‘순수이성비판’(1781),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이 세상에 나온 이후의 독일은 그 이전과 다른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18세기경 독일은 유럽에서 정치·경제·문화·학문적으로 선도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칸트의 비판철학, 칸트 철학의 영향으로 성립된 독일관념론, 이와 연관관계에서 형성된 낭만주의 운동 및 질풍노도 운동 등과 더불어 독일의 학문 및 문화는 유럽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칸트의 철학은 이미 그의 생애뿐 아니라, 그의 사후 200여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계 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칸트 자신이 철학 이론을 정립함에 있어 폭넓은 문제의식과 깊이 있는 탐구자세로써 임함에서 기인하며, 또한 철저한 객관성과 보편성을 추구하는 그의 정신에서 결과한다. 칸트 철학의 체계는 크게 자연의 객관적 법칙, 인간 행위의 실천적 법칙, 그리고 아름다움의 법칙 및 우주 전체의 궁극적인 목적을 다루고 있는 3대 비판서로 분류된다.
    자연의 객관적 법칙의 정당성을 논하고 있는 ‘순수이성비판’은 칸트의 철학의 방향을 전통적 이론의 전승이라는 역할로부터 완전히 끊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통적 철학에서뿐만 아니라 근대 자연과학에서도 자연을 탐구할 때, 자연 법칙은 자연의 ‘사물 자체’에 적용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칸트는 우리의 인식능력으로는 결코 사물 자체의 본질을 인식할 수는 없고 단지 사물의 ‘현상’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라고 언명한다. 우리의 인식 능력을 사물 자체에까지 적용하려 한다면, 그것은 결국 독단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논함으로써 전통적 이성론(합리론)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칸트는 자신의 이러한 학문적 태도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칸트의 윤리학도 현대 윤리학에서 여전히 중요한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데, 칸트의 윤리학 이론을 체계화한 책이 바로 ‘실천이성비판’이다. 현대 윤리학을 형성하고 있는 두 개의 근본적 이론을 말한다면, 그것은 공리주의적 윤리학과 칸트의 윤리학이다. 공리주의가 인간의 경험적 감정 및 계산적 이기심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칸트의 윤리학은 인간의 존엄성을 시인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할 것을 각자 스스로에게 의무로 명령하는 윤리학이다. 이것이 바로 정언명법(定言命法)이다.
    흔히 인간의 고차원적인 마음 및 문화를 우리들은 진선미(眞善美)로 구분한다. ‘순수이성비판’이 진의 영역을 논한다면, ‘실천이성비판’은 선의 영역을, 그리고 ‘판단력비판’은 미의 영역을 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판단력비판’에서 칸트는 우리가 아름다움 및 숭고함을 느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논하며, 나아가 아름다움 및 숭고함을 느끼는 마음은 전체로서의 자연의 궁극적 목적과 관계되어 있다. 칸트의 예술철학 및 미학 이론은 근대 미학을 형성·발전시키는 데 근본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은 웬만한 결심을 하지 않는다면 독파한다는 것 자체가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이 책들에 쉽게 접근하는 길들을 참조하면서 파악을 시도한다면, 그 책들에서 논하고 있는 문제들은 우리들이 세계를 생각할 때 천착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나아가 현재에도 생각해야 할 근본적인 소재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최 인 숙
    문과대학 철학과 교수 


    칸트가 3대 비판서를 집필한 이유는 무엇인가?


    칸트가 살던 18세기 후반은 노동 및 사회 분화, 학문 및 가치 분화가 활발히 일어나던 시기였다. 철학도 이 시기에 과학 일반과 분리되어 자신의 고유한 위상을 찾아야만 했다. 칸트는 철학의 근대적 위상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철학자다.


    과학의 본업이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지식을 확장해가는 데 있다면, 철학의 본업은 어디에 있는가? 칸트에 따르면 그것은 과학과 경쟁하여 미지의 것을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은 우리가 이미 아는 것을 비판하는 데 있다.

    이때 비판한다는 것은 근거나 전제를, 다시 말해서 가능 조건을 밝히는 작업에서 시작한다. 비판이란 우리 경험 일반의 가능 조건을 드러내고, 그 조건에 비추어 개별적인 경험의 보편성 주장이 정당한지 판정하는 일이다. 가령 과학자가 부의 확장을 꾀하는 상인에 비유될 수 있다면, 철학자는 상업적 활동의 법률적 조건을 따지는 변호사에 해당한다.

    또한 18세기 후반은 이론, 실천, 예술이 각각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가는 시대였다.이론은 진의 가치를, 실천은 선의 가치를, 예술은 미의 가치를 추구한다. 칸트의 3대 비판서는 각각 이론적 지식, 실천적 행위, 예술적 창조가 어떻게 서로 다른 가능 조건 위에 서 있는지 밝히고, 따라서 각각의 타당성 영역이 어떻게 다른지 입증했다.

    가령 우리는 이론적 지식을 추구할 때는 윤리적 규범의 관점을 배제해야 한다. 예술적 아름다움을 판정할 때는 이론적 객관성의 기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윤리적 행동의 가치를 판정할 때는 과학성이나 예술성을 문제 삼을 때와는 다른 원리에 의거해야 한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Wikimedia: Foto H.-P.Haack) / 《실천이성비판》

    칸트는 3대 비판서를 통해 이론적 지식의 객관성을 따질 때의 기준, 실천적 행동의 도덕성을 문제 삼을 때의 근거, 예술적 창작의 심미적 가치를 판정할 때의 원리를 차례대로 해명하고자 했다.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보편적 타당성을 지닌 도덕적 행위는 어떻게 가능한가, 심미적 판단이 과학적 지식만큼 보편성을 띨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세 가지 물음에 차례로 답하고자 했던 것이다.

    칸트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원리들이 모두 우리 마음에 내재한다고 보았다. 칸트의 비판철학은 결국 마음을 해부하여 이론적, 실천적, 예술적 보편성이 어떻게 서로 다른 조건에 근거하며 따라서 어떻게 서로 다른 타당성 범위를 거느리는지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칸트(Kant) 3대 비판철학 완전 정복 -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ㅣ칸트 300주년ㅣ칸트 생애ㅣ선험적 인식론(feat.a priori)ㅣ독일관념철학


















    호모 로쿠엔스(Homo Loquens), 호모 스피리투스(Homo Spiritus),


    人間에 대한 여러가지 표현 : 호모(homo)

    희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호모 로쿠엔스(Homo Loquens)

    Loquens(로쿠엔스) : "말하기" 라는 뜻

    인간은 언어적 본능을 갖고 있다.
    이를 두고 사람을 호모 로쿠엔스(Homo loquens)라고 한다.

    세계적 인문학자 스티븐 핀컨은 사람의 언어본능은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 원초적 본능이라고 했다.
    몸으로 교감하는 호모섹스쿠스(Homo Sexcus)와 함께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이라는 인식이다.

    언어적 본능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 휴대폰이다.
    덩달아 발달한 것이 말을 축약한 모바일 문자이다.
    언어를 통한 소통은 음성통화에서 문자메시지로, 다시 SNS메신저로 진화하고 있다. 머지않아 서로 휴대전화로 연결만 되면 말을 하지 않아도 뇌파로 상대의 의사를 알 수 있는 시절이 올지도 모른다.
    최근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모바일 메신저 Yo는 그러한 세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대세이다.
    움직이면서도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검색하고 소통하며 기록으로 남겨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첨단이 오히려 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비밀이 비밀이 아닌 시대가 돼 편리하게 이용한 것이 부메랑이 돼 족쇄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칼트(René Descartes, 1596. 3. 31-1650. 2. 11)는 회의론을 대표하는 철학자입니다.
    데칼트"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정의하였다.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들에게는 언어에 대한 공통적인 이해를 갖고 있다는 유머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용변이 급하여 화장실을 찾아가서 화장실 문을 두드렸더니 그 안에 대답에 따라 그 사람의 직업을 알게 한다는 아주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예, 들어오세요!"
    - 비서라고 합니다.

    "통화중!"
    - 전화 교화원이라고 합니다.

    "오라잇!"
    - 버스 안내양이라고 합니다. 

    "올라갑니다!" "내려갑니다!"
    - 엘리베이트 안내양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 목사라고 합니다.

    "믿습니까?" "믿으면 아멘"
    - 부흥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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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모 스피리투스(Homo Spiritus) : 성령인



    저자 정보 

    데이비드 R. 호킨스
    호킨스 박사
    는 영적으로 진화한 의식 상태 및 참 나로서의 신의 현존의 각성이라는 주제에 관한,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저자이며 강사이다.
    그의 강연과 저서들은 과학자이자 의사였던 저자에게 일어난 대단히 진보한 영적 앎의 상태에 대해, 이해 가능하며 명료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독특한 것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의 초기 3부작에서는 보통의 에고 상태에서 에고의 소멸에 이르기까지에 관해 묘사하고 있으며, 이 책 『호모 스피리투스』는 완결편에 해당한다.

    앞서 나온 두 책, 『의식혁명』(마더 데레사에게서 상찬을 받기조차 했던)과
    『나의 눈』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며 외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읽히고 있다.
    3부작의 출간에 앞서 의식의 본성 Nature of Consciousness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었으며, 이는 인간 역사상 처음으로 진실과 거짓을 식별할 수 있는 수단을 드러내준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성취를 이뤘다.

    작품의 중요성은 《뇌/마음 회보Brain/Mind Bulletin》에서, 그리고 ‘과학과 의식에 관한 국제회의’와 같은 곳에서 인정받았으며, 운동역학 테스트에 관한 세미나와 워크숍은 옥스퍼드 포럼을 포함한 미국 전역과 세계의 다양한 기관, 단체, 영적 회의, 교회 모임 등에서 수차례 열렸다. 숱한 영적 진실이 설명의 부족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오해받아온 것을 관찰해온 호킨스 박사는 매달 하루 종일 하는 세미나를 열고 있으며 이는 비디오로 기록되고 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의 스승’으로 불리는 호킨스 박사의 평생에 걸친 작업의 전체적 목적은 의식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인간 경험을 재맥락화하고, 생명과 존재의 토대이자 계속적 근원인 내재적 신성의 표현들로서의 마음과 영, 양자에 대한 이해를 통합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화한 영적 신인류 ‘호모 스피리투스(Homo Spiritus)’의 탄생과 전망에 대한 감동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영적 교사로서 헌신하고 있다.

    호킨스 박사의 모든 저서의 서두와 말미를 장식하는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Gloria in Excelsis! Deo!)”이라는 진술은 그 봉헌을 나타낸다.

    옮긴이 백영미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마더 데레사의 단순한 길』 『히말라야에서 만난 성자』 『죽음 너머의 세계는 존재하는가』 『감각의 박물학』 『황금 두루마리의 비밀』 등이 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저작을 차례로 읽고, ‘더이상 세상을 향해 화낼 일이 없어지는’ 체험을 하면서부터 박사의 저작물을 번역하고 출판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미국 세도나에 거주하는 호킨스 박사와의 감동적인 만남을 갖기도 했다.

    Publisher Description

    이 책은 <의식혁명>에서 <나의눈>으로 이어지는저자의 초기3부작 완결편이다.
    저자는 인간의식 진화과정을 짚어가며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구도자들과 행한 폭넓은 질의응답을 통해 영적수행 여정에서 품게되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과 실용적인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인류 전체 의식수준이 부정성의 190에서 긍정의 207로 도약한 지금, 생명출현에서부터 영적깨달음과 에고의 초월에 이르기까지진화를 거듭해온 의식토대 및 본질을 되짚어본다.
    또한 내재와 초월을 넘어선 깨달음의 나, 무한한 나에 이르는 질의 응답을 통해 영적 신인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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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안드로포스. anthrōpŏs)  ἄνθρωπος, ου, ὁ 스트롱번호 444

    1. 인간.   2. 강 막 9:31.  3. 마 4:19
    발음 [ anthrōpŏs ]
    어원 /  435와 ὤψ ‘안색’에서 유래

  • 관련 성경 /  
      사람(마 4:4, 막 1:17, 고후 4:16), 남(6:31, 마 7:12), 인자(마 8:20, 막 2:28, 눅 1:25), 인간(행 4:12), 범인(행 4:13, 고전 15:32).
  • ἄνθρωπος (Anthrōpos)

    ‘사람, 인간’을 뜻하는 단어
    성경 전반에 걸쳐 인류 전체를 대표하거나 개인을 가리킬 때 널리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존엄함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 헬라어 원어 : ἄνθρωπος
    • 발음 : Anthrōpos(안드로포스)
    •  : 사람, 인간, 인류

    성경 구절 예시

    마태복음 4:4
    οὐκ ἐπ’ ἄρτῳ μόνῳ ζήσεται ὁ ἄνθρωπος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묵상 포인트

     “육신을 넘어,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인 인간”

    ‘안드로포스’는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로서의 인간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물질만으로 만족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함을 성경은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인간의 본질, 정체성, 구원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데 중심이 되는 단어입니다.

     

  • 하나님의 사람(man of God)
    ανθρωπος θεος(anthropos theos. 안드로포스 데오스)

    -또 아버지는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위를 주셨는데, 이것은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요 5: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And He gave Him authority to execute judgment because He is the Son of Man.
    και εξουσιαν εδωκεν αυτω και κρισιν ποιειν οτι υιος ανθρωπου εστιν.

    구약의 하나님의 사람(the man of God)을 히브리어로 אִישׁ אֱלֹהִים ['ı̂ysh 'ĕlôhı̂ym ; 이쉬 엘로힘]이라고 하는데 
    이쉬는 '남자, 남편, 사람'이라는 뜻의 남성 명사형 단어이고 엘로힘은 하나님이라는 뜻의 남성 복수형 명사입니다. 
    그러므로 직역하면 하나님-사람입니다.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힘을 다해 추구하십시오(딤전6:11)." 
    이 구절의 하나님의 사람(man of God)을 헬라어로 ανθρωπος θεος [anthropos theos ; 안드로포스 데오스]라고 합니다. 
    데오스는 하나님을 뜻하며 안드로포스는 '남자, 남편'이라는 뜻의 ανηρ [aner ; 아네르]와 '얼굴, 표정'이라는 뜻의 ωψ [ops ; 옵스]가 합성된 남성 명사형 단어입니다. 

    따라서 헬라어 어원으로 본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가진 남자이며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으로 채워짐으로써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도대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에서 그분과 하나되어, 그 결과 하나님을 표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신격에 있어서 사람-하나님이 되지는 못하지만 인성에 있어서 하나님-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신 분이 사람의 아들이신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은 완전한 하나님(complete God)이시며 온전한 사람(perfect man)이십니다. 


    안드로포스 - 위를 바라보는 존재

    헬라어에서 사람을 안드로포스(νθρωπο)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위를 바로본다는 뜻이다. 
    사람은 위로 보고 걷는 동물다. 
    지상의 모든 동물들이 땅(아래)을 보고 살고 있는데 유독 사람만이 위를 보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성경적인 의미로는 동물은 땅에 속하나 인간은 하늘에 속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위를 바라보는 존재, 하늘에 속한 존재, 영원에 속한 존재, 영적인 존재,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태초의 사람이다. 아담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히브리어 아담의 뜻은 땅 색깔을 상징하는 붉은색인 에돔에서 왔다. 
    이스라엘 성지를 여행하다보면 실지로 에서의 후손들이 사는 에돔지역은 땅 색깔이 구리색을 띤 붉은 갈색이다. 
    사람은 흙에서 만들어진 존재다. 
    하나님은 흙으로 아담을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은 죽으면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결국 허무하고 연약한 존재가 사람이라는 뜻이다.

    신앙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복잡하지만 신앙은 복잡하지 않다. 
    신앙은 지극히 단순하다. 
    즉 위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 땅의 연약한 인간이 높고 높은 영원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신앙이다. 
    그래서 신앙이란 천상의 비밀을 아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깨닫는데서 시작한다. 
    하나님 앞에서 흙과 같은 존재,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깨달을 때 위를 향해서 하늘을 쳐다볼수 있는 희망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않고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또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고는 필연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고 허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람은 땅을 바라보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하늘을 쳐다보고 사는 존재다. 하늘을 향해 늘 갈급해하고 목말라하는 갈망하는 존재다.

    미국 메사추세츠주 플리머슨에 있는 청교도 기념탑에는 믿음(Faith)에서 자유, 교육, 법, 도덕이 나온다고 새겨놓았다. 
    미국돈 US달라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trust) 라고 기록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돈을 믿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희망의 땅 신대륙을 발견했지만 신대륙이라는 희망을 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둠으로 새시대 새역사를 만들었다.

    안드로포스의 의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위를 바라보는 존재(Homo sursum aspiciens)
    다른 하나는 희망을 가진 존재(호모 에스페란스)

    돼지를 비록한 짐승은 땅을 바라보고 산다. 
    짐승은 땅에 것만 주면 만족한다. 
    그러나 인간은 위를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땅에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인간은 땅에 것이 아닌 희망을 먹어야 만족 할수 있다.

    덴마크의 신존주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지금 이 시대는 절망의 늪에 허우적 거리고 있다. 
    이 땅의 젊음이들이 죽음에 이르는 절망에 빠져있고 많은 소시민들이 빚더미속에서 절망에 빠져있다.

    결국 희망이 이 시대를 살리고 희망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다. 
    정치란 바르게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인데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고 우리시대에 희망을 주는 것이다.

    사르트르(J.P.Sartre)의 「구토」라는 소설에는 로캉 땡이라는 역사학자가 나온다.

    그의 연구과제는 18세기의 어떤 후작의 일생을 연구 조사 한 것이었다. 
    로캉 땡은 열심히 그의 행적과 유물과 후손을 찾아 헤매다가 갑자가 "그가 누구냐?" 보다도 "내가 누구냐?" 라는 것에 부딪치게 된다. 
    자신이 누구냐도 파악하지 못한 주제에 전세기의 후작이 누구이며 그의 삶의 근원이 무엇이가를 연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습고 공허한 일인가를 깊이 느끼게 된다.

    그러자 그만 자신이 하는 일이 지겹고도 불쾌한 일이 되고 만다. 
    여기에 이르자 로캉 땡은 인생의 모든 것에서 심한 구토를 느끼기 시작한다.

    물론 그것은 사상적 정서적 구토였다. 
    아름다운 꽃도 그 본질을 생각하게 되면 결코 아름다운 것이 되지 못한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아내의 말도 그 본질을 따져본다면 한결 같이 동물적 본성이나 착오일 뿐이다.

    예쁜 여인의 얼굴도 추한 구멍들의 집합으로 보여 구토를 느끼게 된다. 
    정치도 구토를 느낀다. 
    이 모든 세상은 이 모든 세상을 본질적으로 생각할 때 모든 것이 다 무의하고, 무의미하기 때문에 추하고 두렵고 불안한 것이 되고 만다. 그리하여 결국 그의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구토를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라는 본질에 대한 무의미와 혐오, 그것이 실존주의자 사르트르가 ‘구토’로 표현한 말이다.

    사람은 빵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위를 바라보는 존재이면서 희망을 가진 결코 가볍지 않는 존재가 사람이다. 
    잠시 구름이 지나가는 하늘을 바라본다. 오늘 따라 하늘이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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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ἄνθρωπος) 욥기 7:1-10


    1. 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의 이 품꾼의 과 같지 아니하겠느냐
    2.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
    3.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4.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5.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
    6. 나의 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
    7.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
    8.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9.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스올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10.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

    인간(ἄνθρωπος)”이라는 단어는 "위(ἀνά)"와 "얼굴(πρόσωπον)"의 합성어 입니다.
    “얼굴을 들어 위를 바라보는 존재, 하늘을 바라보며 걷는 존재, 하나님을 향하여 서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얼굴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존재입니다.
    얼굴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라는 허물만 입었을 뿐 사람이 아닙니다.
    짐승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사는 것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이기 때문입니다.

    안드로포스의 의미는 두 가지다.
    위를 바라보는 존재.
    희망을 가진 존재이다.

    ​사람은 위에 계신 하나님 창조주를 경외할 때만이 희망을 갖게 한다.
    덴마크가 낳은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고 하였다.

    ​희망이란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거나 그걸 얻고자하는 바람이며 좋은 일이 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병든 사람은 건강을 희망하고 고시생은 합격을 희망하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 되기를 희망한다.
    모두다 행복하기를 기대한다.
    행복이란 심신의 욕구가 충족된 상태이다.
    누가 그리고 그 무엇이 우리 인간의 심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가.
    지식이 많은 사람은 번뇌도 많다.
    재벌도 불편한 인간관계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배우 마릴린먼로도 남모르는 자기만의 번뇌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마음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바닷물과 같다 마실수록 갈증을 느낄 뿐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실 분이 계신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조건 없는 성부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에 보내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온갖 불행의 원인인 죄악을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써 대속하셨다.
    거역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만이 사람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준다.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하신분이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창조주이시며 인간의 영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길 잃은 양이다.
    희망이 없다.

    ​자기를 공격하는 사자와 대항해서 싸울 능력도 없고 멀리 내다보지도 못하는 근시안을 가졌기에 홀로 살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양에게는 반드시 목자가 있어야 한다.
    우리 인간은 유약한 양에 불과한 존재이다.
    자기 힘의 한계상황에서 두려워 떤다.
    이런 인생들이기에 위를 바라봐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미국 메사추세츠주 플리머슨에 있는 청교도 기념탑에는 믿음(Faith)에서 자유, 교육, 법, 도덕이 나온다고 새겨 놓았다.
    US달라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고 새겨넣고 있다.
    그들은 1620년 9월 7일 102명이 천주교도인 영국 메리여왕의 박해를 피해 신대륙에 정착하고 희망을 하나님께 둠으로 새역사를 시작했다.
    하나님만이 흑암에서 광명을 얻게 하시는 희망의 근원이시다.

    ​예수 안에 있는 자만이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리스도인은 땅에서 살아도 하늘의 법을 따라 사는 천국시민이다.
    하늘의 법은 생명의 법이요 또한 사랑의 법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의 생명을 사랑한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안드로포스이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때에 희망의 해가 된다.

    ​우리 모두 희망찬 새해가 보장되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자.
    하나님은 우리 안에 소원을 두시고 자기의 기쁘신 뜻대로 행하시고 이루신다.



    골로새서 3:1-2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 역시 결코 작은 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 한 분만 바라보며 살게 하신 이유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참된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체스터턴(G. K. Chesterton)이라는 작가는 “용서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며, 믿음이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며, 소망이란 도저히 가망이 없는 상황에서 희망을 갖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도무지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소망을 갖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 죄악 된 세상으로부터 희망을 얻기는커녕 너무나 자주 실패와 좌절과 슬픔을 경험합니다.
    마음에 채웠던 것들과 사람들로 인해 치유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아픔과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소망이 아닌 절망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우리를 향해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위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골 3:1-2).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외칩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 부활하신 주님처럼 하늘의 것을 추구하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유일하고 참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하늘을 바라보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며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존재하고 있습니까?

    세계 2차 대전 당시 한 유대인 랍비가 아들과 함께 집단 수용소(收容所)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1944년의 추운 어느 겨울 날, 그는 아들을 데리고 수용소 건물 한쪽 구석으로 갔습니다.
    어렵게 구한 버터 한 조각을 진흙으로 만든 주발에 넣고 거기에 심지를 꽂은 뒤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곤 아들에게 “사람은 밥을 먹지 않아도 3주간을 살 수 있다. 물을 마시지 않고도 3일을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소망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단다. 어둠을 밝히는 이 불이 곧 희망이다. 우리는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패트릭 휴(Patrick John Hughes)는 아들이 태어나면, 두 세 살 때부터 함께 뒷마당에서 미식축구나 야구를 해야겠다는 꿈을 가졌었습니다.

    ​아들이 크면 유명한 대학의 미식축구 팀에 들여보낼 꿈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났을 때, 담당의사는 아이가 절대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내렸습니다.
    실제로 아들(Patrick Henry Hughes)은 날 때부터 앞을 보지도, 걷지도 못했습니다.
    부모는 절망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왜 굳이 우리여야 합니까?”라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아들의 몸을 정상적인 사람들과 같게 만들려는 시도를 포기했습니다.
    인류의 유일하고 참된 소망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기도 속에 어려서부터 음악에 대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깊은 관심 속에 진행되고 있음을 자각했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밴드의 트럼펫 연주자가 되었습니다.
    행진을 할 때면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 앉은 채로 탁월한 연주 실력을 뽐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삶에 찾아온 죽음 같은 절망을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한 그는 ABC방송의 “Home Makeover”라는 프로그램과 자신의 책 “나는 가능성이다.”(I Am Potential)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파라과이의 한 의사는 군사 정권에 인권이 유린당한 사실에 대해 정부를 강력히 비난했습니다.
    경찰은 그에 대한 응징으로 그의 십대 아들을 체포했습니다.
    고문 끝에 죽였습니다.
    분노한 마을 사람들은 대규모의 집회를 계획했습니다.
    그때 그는 다른 데모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발가벗겨진 채 전기 충격과 담뱃불과 폭력으로 만신창이가 된 아들의 시신을 그대로 사람들 앞에 공개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피로 물든 매트리스 위에 놓인 아들의 시체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데모였습니다.
    사람들이 군사 정권의 만행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바로 이렇습니다.
    “Goddamn”이라는 욕은, 불공평을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 “고통을 당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다”라고 하는 원망과 저주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발가벗겨지고 채찍과 창 자국이 선명한 그대로 예수께서 매달렸던 십자가는, 세상의 온갖 잔인한 폭력과 불의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공평한 세상에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절망과 고통과 비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그런 우리에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소망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렵고 힘겹고 절망적인 상황에 던져진다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것을 통해 존재 목적대로 살 뿐 아니라, 참된 소망까지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죽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소망마저 잃어버린 욥은 하나님께 입을 열어 자신의 아픔을 고백했습니다(욥기 7:1-6). 

    ​“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의 날이 품꾼의 날과 같지 아니하겠느냐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

    여기서 “노동”은 “군대, 전쟁, 부역” 등의 뜻으로, 징집된 군인이 무거운 고역을 의무적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듯, 인간 역시 고통스러운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그의 온몸은 구더기와 먼지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피부는 짓무르기 일쑤였습니다.
    하루아침에 열 명의 자녀를 잃어버린 그의 심적 고통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거기다 그는 마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고용되어 하루의 노동 곧 고난을 묵묵히 감당해야만 하는 “품꾼”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에게 고난은 필연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품꾼이 종일 밤이 오기를 기다리듯, 하루속히 고난이 끝나기를 소망했습니다.
    한편, “내가 여러 달 째 고통을 받으니”를 직역하면 “내가 무익한 달들을 부여받았다”(I have been allotted months of futility : NIV)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고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재산과 소유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을 낳을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육체의 질병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믿었던 친구들마저도 자신에게 등을 돌린 채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고난이라는 벽에 부딪혀 지나간 날들은 마치 열매 없는 나무 같았습니다. 또 그에게는 전신에 퍼진 피부병으로 인해 고민하며 뒤척일 수밖에 없었던 밤도 안식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밤은 휴식과 평안의 시간입니다. 잠은 하루 동안의 피로와 고통을 풀어주는 묘약(妙藥)입니다. 그리고 낮 시간의 대부분을 친구들과 변론하면서 보내느라 심신이 지쳐 있었을 뿐 아니라, 추한 자신의 몰골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속히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을 욥에게 있어서 밤과 잠은 누구보다 간절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질병은 밤이면 더욱 기승을 부렸습니다. 악화된 몸은 온통 구더기와 먼지로 뒤덮였습니다. 피부는 아물었다 터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순간순간 “내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영적 회의와 갈등이 물밀 듯 밀려왔습니다. 당연히 간절히 기다리던 밤을 불면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밤은 더 큰 형극의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노력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세월만 덧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소망보다는, 무엇도 기대할 수없는 절망이 그의 삶의 대부분 아니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고통이 줄어들거나, 고쳐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질병처럼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들은 고난을 당하는 자들이 처음 고난이 시작될 때 가졌던 꿋꿋함과 정력을 다 부식시켜버립니다.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아갑니다. 깊은 절망에 빠뜨립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러한 상황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한테는 결코 이러한 일들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부인하시겠습니까?

    처음에는 그(James I. Packer)의 병명을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여러 가지 약을 써 보았지만 자주 부작용을 일으켰습니다. 한 해, 두 해가 지나면서 그는 자주 열병과 만성적 관절통과 극도의 피로에 시달렸습니다. 가장 나쁜 것은 우울증이었습니다. 끝없는 절망감을 느낀 그는 “주여! 어찌하여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손에 붙잡은 것을 놓아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즉시 “손에 붙잡은 것을 놓으라니요? 무엇을 놓으란 말씀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그는 그동안 다섯 아이들 모두에게 수준 높은 학업 성취와 교양을 요구해 왔습니다. 자녀 교육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잡지 편집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교도소 전도 집회를 지원했습니다. 교회에서 봉사도 하고, 학교의 이사직도 맡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자신의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신 신비로운 분이고, 그분께 인정받으려면 끊임없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라고 믿었음을 인정했습니다. 상담을 통해 자신의 영적 완전주의 때문에 자신을 자꾸 정죄하면서 스스로 고통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내면의 고통을 통하여 자신에게 사랑과 은혜를 부어 주시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을 통해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둔 그는 마음의 평안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프리셉트 국제본부 창설자인 케이 아더(Kay Arthur)는 “온 몸이 쑤시는데다가 속까지 메스꺼워 이불 속에서 한참을 뒹굴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 있는 중국의 가정 교회 동역자들을 떠올리니 나는 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의 고통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고통을 몸소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고해와 같은 인생을 사는 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수없이 많은 고난을 당합니다.

    ​그 중에는 이해되지 않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난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은 사명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욥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경험과 지식과 역사를 근거로 갖게 된 왜곡된 신개념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배울 수 있습니다. 왜곡된 신개념을 버렸을 때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으며,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의 눈을 피해 어디로도 피할 수 없습니다. 기차가 철로 위에 놓여 져 있을 때 가장 안전하게 운행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 품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소망이 끊어져 버린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붙잡은 손만큼은 절대로 놓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형편을 비관하고 친구들에게 험한 말을 퍼부어 대던 욥이 드디어 하나님을 향해 말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7-10절입니다.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스올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

    여기서 “바람”은 짧은 기간을 상징함과 동시에 허무와 덧없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없다고 판단한 욥은 죽음만이 그것을 모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본 절에서부터 욥의 변론의 분위기가 전환되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합니다. 즉, 6:1-7:6까지는 친구들을 상대로 했던 욥의 변론이 본 절에서부터는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 사로잡혔습니다. 끝없는 절망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영적, 육적 생명이 위급해 질수록 재난이 닥친 이후로 줄곧 갈망해 왔던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신뢰도 희박해져 갔습니다. 마치 독백처럼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사람은 세상에 잠시 머물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죽으면 다시는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찾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비천합니다. 오늘 있다 내일 죽을 수밖에 없을 만큼 연약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적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을 살 만한 존재도 못됩니다. 거기다 고난 중에 있는 저는 하나님의 어떤 관심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니 저를 그냥 내버려두십시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그 무엇도, 심지어 죽음이라는 절망조차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들을 끊어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일시적으로만 존재하는 분이 아닙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존재하십니다.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혜로우십니다. 사랑은 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유일하고 참된 소망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놓지 말아야합니다. 다른 것들은 다 놓을지라도 하나님만큼은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일시적인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구해야합니다. 시인은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나는 도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62:5, 146:5)라고 고백했습니다. 지헤자는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잠14:32)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모든 경우 우리의 소망이신 하나님 한 분만 붙잡고 있습니까?

    탁월한 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되지만, “참을성과 이성과 소망”만큼은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아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참지 못하면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명료한 이성은 혼란한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 8:24)라는 말씀대로, 소망은 우리를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투르니에의 신앙 간증집듣는 귀”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금술 좋기로 소문난 투르니에의 부부가 그리스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의 아내는 거기서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죽기 직전, 그의 아내는 평화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쳐다보며 “여보! 오늘 천국에 도착하면 먼저 가 계신 시부모님을 만나 정말 즐거운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그는 아내가 죽음을 마치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재회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내를 보낸 후 그의 믿음은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에 대한 믿음이 강해질수록 각종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되는 놀라운 자유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아내와 육체적으로만 결혼한 부부였던 것이 아니라 아내의 소망과 믿음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 같은 절망이 밀려온 순간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놓지 마십시오. 인간(ἄνθρωπος)으로 사십시오.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대로 존재할 뿐 아니라, 참된 소망을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까지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 지혜있는 사람 - 인간의 學名

    현생인류를 지칭하는 學名이다. 유인원과 구분되는 특징은 도구를 사용하고, 말을 하며,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은 크로마뇽 인으로 직립보행을 했으며, 불을 사용했고,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 놀이하는 사람

    네델란드 역사가 호이징아(Johan Huizinga)가 저서 <호모 루덴스>(1938)를 통해서 제창한 개념이다. 호이징아는 문화 속의 놀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서 문화가 발생한다고 하여 기존의 주장을 뒤집었다.


    호모 로쿠엔스(Homo Loquens) : 말하는 사람

    소크라테스(Socrates) - 인간은 말하는 동물이다.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 : 정치적인 사람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 인간은 도시국가(Polis)에서 나서 도시국가(Polis)에서 죽는다.

    호모 날리지언(Homo Knowledgian) : 신지식인

    창의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며 실용적인 지식인

    1) 지식사회와 지식경제를 능동적으로 이끌 수 있는 지식 마인드
    2) 정보기술 능력과 관찰, 추론, 통합의 사고력
    3) 전문성과 보편성의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
    4) 세계 다양한 문화에 대한 안목

    호모 파베르(Homo Faber) : 만드는 사람

    호모 에렉투스
    (Homo Erectus) : 직립하는 사람

    호모 하빌리스
    (Homo Habilis) : 손재주 있는 사람

    호모 모벤스
    (Homo Movence) : 적극적인 사람

    고도로 발달한 정보화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새로운 개념의 인간

    호모 섹스쿠스(Homo Sexcus)
    : 몸으로 교감하는 사람

    호모 텔레포니쿠스(Homo Telephonicus)
    : 전화하는 인간

    휴대 전화가 없으면 생활하는데 불편을 느끼는 현대인의 모습을 빗대어 표현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 경제적 인간
    미래의 이익을 위해 순간의 격정을 억누르고 냉정하게 계산하는 근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