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미쉬파트) מִשְׁפָּט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4941. 심판(미쉬파트. mishpâṭ) מִשְׁפָּט

1. 판단,  2. 레위기 19:15,  3. 욥기 9:32

레위기 19:15 /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욥기 9:32 /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발음 / 미쉬파트[ mishpâṭ ]
어원 / 8199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정의(창 18:19), 법(렘 30:11), 공의(신 16:18, 시 25:9), 율례(왕상 9:4), 양식(출 26:30, 왕상 6:38), 판결(출 28:15, 민 27:11, 삼상 8:3), 규례(레 5:10, 민 15:16, 삼상 30:25), 법도(레 18:4, 신 4:1), 재판(레 19:35, 신 1:17), 법(레 24:22, 왕하 17:26, 27), 사연(민 27:5), 판결법(민 27:21), 몫(신 18:3), 권리(신 21:17), 송사(신 24:17, 왕상 3:11), 방식(수 6:15), 관습(삼상 2:13), 계명(왕상 2:3), 직무(왕상4:28), 일(왕상8:45, 59), 모양(왕하 1:7), 풍속(왕하 17:33, 34, 40), 반열(대상 6:32), 판단(대상 16:12), 사정(욥 13:18, 사 40:27), 응답(욥19:7), 정당함(욥 27:2), 판단력(시 72:1), 뜻(습 3:8), 작정(잠 29: 26), 권리(사 10:2, 렘 32:7), 재판석(사 28:6), 보응(사 49:4), 심문(사53:8), 형벌(렘 49:12, 습 3:15), 화(렘 51:9), 죄(겔 7:23), 죄악(겔 7: 27), 의로움(렘 12:1).
[동] 합당하다(신 19:6), 공의롭다(신 32:4), 재판받다(수 20:6, 삿 4:5), 심문하다(왕하 25:6), 재판하다(욥 14:3), 옳다(욥 34:4), 정직하다(욥 34:6), 공판하다(시 35:23), 심판하다(시 119:84, 사 3:14), 정직하다(잠 12:5), 작정하다(잠 16:33), 적당하다(사 28:26), 바르게 하다(사 32:7), 송사하다(사 54:17).
구약 성경 / 424회 사용

뜻풀이부

  • 1. 명사 판단, 판결, 사려분별, 의견.
    • a. 명사 [재판 행위에 대해 사용] 레19:15,35, 신1:17.
    • b.명사 [재판 장소에 대해 사용] 욥9:32,22:4, 시143:2.
    • c. 명사 법정 소송, 민27:5, 신10:18, 욥13:18, 23:4, 시9:5(4).
    • d. 명사 선고, 판결문, 신21:22, 왕상3:28,20:40, 왕하25:6, 시17:2, 19:10(9),119:75,137, 렘1:16, 4:12, 39:5, 52:9.
    • e. 명사 실수, 잘못, 죄, 범죄, 결점, 책임,흠, 겔7:23, 렘51:9
  • 2. 명사 정당한 것, 합법적인 것, 법에 따른 것, 권리, 권한, 신16:19, 27:19, 32:4, 삼상8:3, 잠16:11, 렘22:15, 23:5, 33:15,46:28.
    • a. 명사 법령, 법규, 정관, 성문법, 출21:1,24:3, 레18:4,5,26, 19:37, 20:22, 신4:1, 7:11,12.
    • b. 명사 특권, 권한[합법적으로 부여된 것],출21:9, 신18:3, 21:17, 삼상8:9,11,10:25, 렘32:7.
    • c. 명사 관례, 관습, 습관, 창40:13, 출26:30, 왕하11:14, 17:33,34,40, 렘30:18.
    • d. 명사 방식, 유행, 풍조, 계획, 종류, 삿13:12, 왕하1:7.

* 8199.솨파트(shâphat)  שָׁפַט 

1. 심판하다.  2. 분사형  שׁוֹפֵט : 재판장.  3. 저주하다
발음 / 솨파트[ shâphat ]
관련 성경 / 판단하다(창 16:5, 출 18:16, 시 98:9), 재판하다(출 18:26, 왕상 3:9, 잠 31:9), 판결하다(민 35:24, 신 1:16, 왕상 3:28), 다스리다(삼상 8:20, 왕하 23:22), 심판하다(왕상 8:32, 겔 7:3, 시10:18, 사 11:4), 신원하다(잠 31:9, 애 3:59), 징벌하다(대하 20:12, 22:8), 다스리다(왕하 23:22, 대하 26:21), 변론하다(사 43:26), 다투다(잠 29:9).
[명] 재판장(신 1:16, 수 8:33, 욥 12:17), 사사(삿 16:31, 삼상 4:18, 대상 17:10), 방백(삼상 6:16), 법관(창 19:9), 재판관(삼하 15:4, 대하19:6, 욥 9:24, 시 141:6), 심판자(욥 23:7), 재판자(미 5:1), 재판(시 37:33), 심판(시 9:19, 사 66:16).
구약 성경 / 142회 사용

뜻풀이부

  • 1.원형 심판하다, 판결을 선고하다, 욥22:13, 겔44:24.
    • a.원형 [주]분사형 שׁוֹפֵט: 재판장, 신16:18
  • 2.원형 [특별한 의미로]
    • a.원형 저주하다, 벌하다, 삼상3:13, 시109:31.
    • b. 원형 [가난한 사람을] 변호하다, 삿16:31, 시10:18, 26:1, 사1:17, 렘5:28, 애3:59.
  • 3.원형 지배하다, 다스리다, 삿16:31, 시2:10, 암2:3.
    • a. 원형 니팔형
    • b. 원형 정죄받다, 시37:33
    • c. 원형 소송하다, 제소하다, 잠29:9, 사43:26.
    • d. 원형 [עִם을 수반하여] 욜4:2(3:2).
    • e. 원형 [אֵת을 수반하여] 겔17:20, 20:35,36.. 원형 [לְ을 수반하여] 삼상12:7, 렘25:31, 겔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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דִּין 1780 [dîyn]

  • 1. 남성형 명사 심판[최고법정에 대해 사용], 단7:10
  • 2. 남성형 명사 권리, 정의, 단4:34, 7:22.
  • 3. 남성형 명사 형벌, 스7:26.
חָרוּץ 2742 [chârûwts]
  • 1. 명사 결정된 것, 판단, 판결, 심판, 욜3:14.
  • 2. 명사 요새화된 성의 참호[도랑], 단9:25
  • 3. 명사 탈곡기, 타작기, 사41:15, 28:27, 욥41:22(30). [복수] חֲרוּצוֹת, 암1:3.
דִּין 1779 [dîyn]
  • 1. 남성형 명사 심판, 시76:9(8), 잠20:8
  • 2. 남성형 명사 소송, 신17:8, 에1:13, 욥36:17, 시140:13(12), 잠29:7.
  • 3. 남성형 명사 투쟁, 논쟁, 잠22:10.
פָּלַל 6419 [pâlal]
  • 1.  동사 심판하다.
  • 2.  동사 심판하다, 처형하다, 삼상2:25, 시106:30
  • 3. 동사 피엘형
שָׁפַט 8199 [shâphat]
  • 1. 원형 심판하다, 판결을 선고하다, 욥22:13, 겔44:24.
  • 2. 원형 [주]분사형 שׁוֹפֵט: 재판장, 신16:18
  • 3. 원형 [특별한 의미로]
דִּין 1778 [dîyn]
  • 통치하다, 심판하다, 스7:25.


אֱלִיפָל 465 [’Ĕlîyphâl]
  • 남성형 고유명사 심판의 하나님: 한 이스라엘 사람의 이름 ‘엘리발’, 대상11:35.

עֵת קָצִין 6278 [ʽÊth Qâtsîyn]
  • 고유명사 심판의 때:스불론 지파의 성읍 ‘엣 가신’, 수19:13.


אֱלִישָׁפָט 478 [’Ĕlîyshâphât]
  • 남성형 고유명사 심판의 하나님: 한 이스라엘 사람의 이름 ‘엘리사밧’, 대하23:1.


שְׁפַטְיָה 8203 [Shephaṭyâh]
  • 고유명사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 열 이스라엘인의 이름 ‘스바 다’, 삼하3:4, 스2:4,57, 8:8, 느7:9,59,11:4, 렘38:1.

דִּין 1777 [dîyn]
  • 1. 원형 심판하다, 판결하다[하나님에 대해 자주 사용됨], 시7:9(8), 9:9(8), 50:4,72:2, 96:10, 사3:13.
  • 2. 원형 통치하다, 규정하다, 통제하다, 삼상2:10, 슥3:7
  • 3. 원형 책망하다, 처벌하다[죄를], 창15:14,욥36:31.


בּוֹא 935 [bôw’]
  • 1. 원형 בּוֹאבְּמִשְׁפָּט עִם, 심판하다, 사3:14, 욥22:4, 시143:2.
  • 2. 원형 들어가다, 들어오다.
  • 3. 원형 [전치사 בְּ가 수반되는 경우], 창19:8, 신23:25(24),26(25).


יוֹם 3117 [yôwm]
  • 1. 남성형 명사 ㉡[나쁜 의미로 쓰일 경우] 운명의 날, 파멸의 날, 삼상26:10, 욥18:20, 15:32, 시37:13, 137:7, 겔21:30(25), 옵1:12. ㉢전쟁과 학살의 날, 사9:3(4). ㉣심판의 날, 겔13:5, 사2:12, 욜1:15
  • 2. 남성형 명사 낮, 주간, 창7:4,12, 8:22, 31:39.
  • 3. 남성형 명사 יוֹם: [부사로 쓰일 경우] 낮에, 주간에, 시88:2(1).


יָרֵא 3372 [yârêʼ]
  • 1. 원형 무서운, 가공할, 소름끼치는.㉠ [광야에 대해 사용] 신1:19, 8:15.㉡ [심판의 날에 대해 사용] 욜2:11,3:4(2:31).
  • 2. 원형 떨다, 전율하다, 진동하다
  • 3. 원형 두려워하다, 무서워하다, 걱정하다, 창3:10, 18:15.

O.N.O 스트롱코드 히브리어사전

יָכַח 3198 [yâkach]
  • 1. 동사 판단하다, 판결하다, 심판하다, 결정하다, 정하다, 공의를 베풀다, 중재하다, 창31:37, 욥9:33, 사2:4, 11:3,4.
  • 2. 동사 앞에 나서다, 표면에 나타나다, 밝아지다, 명료하다, 분명한다, 논증하다, 입증하다.
  • 3. 동사 히필형 הוֹכִי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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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17-18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음란한 마음에 대한 심판(호세아 4:12, 5:4, 에스겔 6:9)

호세아 4:12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나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그 하나님의 수하를 음란하듯 떠났음이니라.

호세아 5:4
저희의 행위가 저희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음란한 마음은 음란한 눈으로 나타난다(에스겔 6:9)
너희 중 피한 자가 사로잡혀 이방인 중에 있어서 나를 기억하되 그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나를 떠나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겨 나로 근심케 한 것을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하리니 이는 그 모든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하였음이라.


음란한 자식

1. [호세아 1:2]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2. [호세아 2:4]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음란한 아내

[호세아 1:2]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음부 된 그 여인

호세아 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찌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목회서신





목회서신(牧會書信)

사랑하는 파트리스교회 믿음의 가족들에게 2023년 전반기를 마치고 목회서신을 보냅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온 세상이 심각하게 몸살을 치루고 아직도 그 휴유증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성도들이 모두 건강하게 어려운 시기를 잘 넘어가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7월 2일은 교회력에 따라 맥추감사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모든 교회가 지키는 절기가 아니기에 이런 절기가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며 전반기를 은혜롭게 마감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모든 교우들과 나누려고 한아름 상품권 $20을 주일에 선물로 드립니다.

무더위에 모든 가족들이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후 2023년 7월 1일 토요일

파트리스교회 이승혁목사 드림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예수, 왜 예수를 믿는가(티쿤 올람)


목사 이승혁이라고 하면 목사를 강조합니다.
이승혁 목사라고 하면 이승혁을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 사람으로 오신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 : 메시아가 사람으로 오심

예수 그리스도예수를 강조하는 객관화된 이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그리스도를 강조하는 주관화된 이름으로 부활 이후에 사용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란
메시아로 세상에 오셨는데(신분) 그 이름이 예수라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메시아로 오신 예수의 마음 즉 자기를 버려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사랑의 마음, 겸손의 마음, 섬김의 마음이라고 하겠습니다.


* 가톨릭교회 해석 / good news
https://maria.catholic.or.kr/bible/

신약을 읽는 모든이들에게 예수님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워집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들은 먼저 육신을 입고 이 땅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먼저 봅니다.
그 분은 우리와 동일한 육신을 입고, 우리와 동일하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동생이나 그 분의 고향에서는 올바른 대접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 육체를 입으신 예수님을 먼저 보게 되고, 후에 이 분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대신 돌아가신 바로 하느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셨지만, 그 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담당하신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울에게 나타나셨던 예수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오히려 이단이라고 생각하고 핍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직접 예수님께서 나타나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 은 회심을 하게 됩니다.
바울은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를 먼저 만나게 되었고, 그 그리스도가 바로 자신이 핍박하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연약하게 죽으셨지만 참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는 달리 바울 형제님은 하느님의 영광을 지니고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십작에서 연약하게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지 못하고, 여전히 예수님이라고 밖에 고백하는 분들은 계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하느님이셨고, 그 분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런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항상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신약성경에는“예수그리스도”와“그리스도예수”로 기록된 수많은 글이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날기독교인들은“예수그리스도와 그리스도예수”를 분별을 못하며 그 말씀이 그 말씀으로 똑같은 말씀으로 알고 있을 뿐 영적의미를 아는 신학자들이 한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모르는데 과연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예수그리스도와 그리스도예수”를 분별을 못하면 성경 한구절도 올바른 해석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와 그리스도예수”라는 문구를 접할 때는“성찬식”의 영적의미를 확실히 알아야 “예수그리스도와 그리스도예수”라는 문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53-55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피는 참된 음료로다,

"성찬식“은 주님오실 때 까지 예수님을 기념하기위해서 “떡과 포도주”로 교회의 행사로만 알고 있는데 사실은 이 말씀에는 엄청난 영적진리가 숨겨져 있음을 아는 사람이 기독교인들 중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본 문장에 내“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피“는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시는데
참된 양식이란 하늘에서 내려온 “떡과 포도주”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 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 이로다.

즉 예수님의 “살“(몸)은 말씀을 ”비유“로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내 ”피“(생명)는 참된 음료란 뜻은 ”포도주“로 ”비유“하는데 이것도 생명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8:13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이같이 ”살“이나 ”피“도 생명의 말씀을 뜻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떡과 살, 피와 포도주”는 생명의 말씀(복음)으로 “비유”가 되지만 “떡과 살”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기 위하여 받아먹는 자의 입장이요 “피와 포도주”는 이웃을 살리기 위해 희생의 “피”를 흘리는 개념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찬식“을 하실 때 예수님이 먹으라고 주신 ”떡과 포도주는 살과 피“인데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비유”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이란” 요한복음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몸)을 입고 예수님으로 오신 것과 같이 육신(살)은 말씀을 “비유”로 하신 것이며 또 “피“는 포도주(말씀)를” 비유“하며 십자가에서 희생의”피“(말씀)의 공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주는 자의 입장은 희생의 ”피“(포도주)를 주는 것이고 먹는 자의 입장은 ”살”(떡)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살”(떡)을 받아먹고 살아난 자는 죽어있는 영혼들에게 필히 그들에게 자신의“피”(포도주)를 주어 그들을 살려야하는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소유한“아가페 사랑”을 소유한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말씀을 바르게 정리를 해보면 예수님의“살”(떡)을 받아먹고 살아난 자는 죽어있는 이웃에게 자신의 희생의“피”(포도주)를 주어 살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진정한 영적의미는 복음을 주는 자의 입장은 희생의“피”(포도주)를 주는 것이고 받아먹는 자의 입장에는“살”(떡)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희생의“피”(포도주)를 먹고 성장해서“예수”가된 자는 자신의 십자가에서 죽고“예수“에서“그리스도”로 부활한자를“예수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이며“그리스도예수”라고 하는 말은 자신의 희생의“피”(포도주)를 이웃의 죽어있는 영혼에게 주어 살려야 하는 것이“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 여러 곳에 기록된“그리스도예수와 예수그리스도”라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니라 “양식”을 주는 자의 입장은“그리스도예수”라고하며“양식”을 먹고 살아난 자의 입장은”예수그리스도“라는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성찬식”의 깊은 영적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성장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온전한 십일조”가 된 자를“예수”라 하며 이“예수”가“십자가”에서 죽고“예수”에서“그리스도”로 부활한 자를“예수그리스도”라 말하며 하나님의“아가페사랑”을 소유한자를 말 합니다 말3:8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온전한 십일조”를“창고“에 들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말씀인”양식”(말씀)을 하나님의성전이 된 자의 몸을 창고로“비유”해서 하나님의 집에“양식“(말씀)이 있게 하는 것을“온전한 십일조”라고 하며 그의 몸을“창고“로”비유”한 것입니다 고전3:16너희가 하나님의성전인 것과 성령(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같이 하나님의 성전인“창고”(몸)에”양식”(말씀)이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영의 양식”을 반드시 하나님의집인 자신의 몸 성전“창고”(몸)안에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창고“(몸)에“양식”을 저장을 해야 그“양식”으로 이웃에게“양식”을 주어 구원 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성전인”창고“(몸)에 저장한 자는 그 말씀의”양식“으로 반드시 이웃에게 그”양식“을 먹이므로 이웃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해서 장성한자로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예수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며”예수그리스도“가 된 자는 반드시 이웃을 구원해야”예수그리스도”에서”그리스도예수“로 거듭나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영혼구원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아들(예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웃의 영혼을 구원해야 하나님의 아들”예수“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기준은 기독교인들이 모두”예수“가 되어야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15-16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웃에 죽은 영혼들에게“영의양식”을 먹여서“구원“시키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37-4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아가페)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말씀은“첫째계명”은“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성장해 “온전한 십일조”가 되어 하나님의” 창고“(몸)에 ” 식”을 저장한 자를“예수그리스도”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계명“은 “예수그리스도”가 된 자는 반드시 죽어가는 이웃에게 자신의 희생의 “피”(말씀)를 흘려 자신의 몸에 저축한“양식”을 이웃에게 먹여서 살려내는 것이“그리스도 예수”라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계명”이 성경전체의 핵심입니다

다시 말해서“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성장해”예수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며“둘째”는”예수그리스도“가 된 자는 반드시 이웃을 구원해야 하는 것이”그리스도예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전체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아가페사랑”을 소유한자가 이웃의 영혼에게 하나님의“양식”을 주어 구원하는 자를“그리스도예수”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대한“사랑“과 이웃에 대한“사랑“이 온”율법”과 선지자의”강령”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갈5:14 모든 율법은 네 이웃 사랑(구원)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롬13:8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아가페)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 었느니라,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예수그리스도에서 그리스도 예수”까지 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기만큼 어려운 것을 오늘날기독교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천국을 간다는 것은 목사들의 거짓된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아가페 사랑“이 으뜸이며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일이야말로 죄 많은 인간에게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에 대한 실천을 가장 먼저 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구원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즉 “사랑”이 곧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3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그러나 이“사랑”은 인간의 윤리도덕의“사랑”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자의 입장에서 복음을 주는 자의 입장은 희생의피(포도주)를 주고 복음을 받는 자 즉 먹는 자의 입장은 살(떡)을 먹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의 흐름과 하나님의 뜻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흘려 죽으신 희생의 “피”는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살아난 자는 예수님의 “피”(복음)로 죽어있는 이웃에게 복음을 주어 살리라는 오묘한 진리가 숨어있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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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를 믿는가? 


사람은 왜 사는가?

유대인들은 "티쿤 올람(Tikun Olam)" 이라고 대답합니다.
Tikkun olam (תיקון עולם 세상을 바꾼다)은모든 형태의 우상 숭배 를 극복 할 전망으로 정교회 유대교 에서 해석되는 유대교 의 개념이다.

"티쿤(תיקון) "이란 "고친다"는 뜻의 히브리 단어입니다.

티쿤(tiˈkun) תיקון
1. 수리, 수리하기, 고치기,  2. 개정, 향상, 정정

"올람( ʽôwlâm,  עוֹלָם"이란 "세상" 이란 뜻의 히브리 단어입니다.

עוֹלָם  5769
1. 영원,  2. 오랜 시간이 지남,  3. 일생동안
어원 / 5956에서 유래

한국인의 목표

티쿤 올람 정신은 우리 겨레의 홍익인간(弘益人間)정신과 맥을 같이 하는 정신이다.
티쿤 올람 세상을 고친다는 뜻이다.
널리 인간을 유익하게 함으로 세계를 변화시켜 나간다는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 정신과 뜻을 같이 한다.
이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고쳐 나가며 세상에서 더 높은 도덕과 정의를 실현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다고 믿는 사상이 티쿤 올람 정신이다.

이스라엘의 기술혁신의 동기가 되고 있는 정신이 티쿤 올람이라면 그러한 혁신정신은 후츠파(CHUTZPAH)로 대변된다. 후츠파 말은 "대담함과 당돌함"을 뜻하는 이스라엘 고유의 말로 어려움과 고난, 좌절과 위협에 굴하지 아니하고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마음가짐을 일컫는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1948년 같은 해에 건국하였다.
건국 이후 두 나라가 온갖 악조건을 극복하며 번영을 이루어 왔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계속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우리는 머뭇거리고 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흔히 하는 말로 한강의 기적까지는 성취하였는데 한반도의 기적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는 우리에게 티쿤 올람 정신과 후츠파 정신이 필요한 때이다.

한강의 기적을 한반도의 기적으로 마무리 하자!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

濟世理化


세상의 모든 만물을 널리 이롭게하는자연의 순리와 이치대로 살아가는 세계를 만드는 참된 사람이 되라!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자연의 이치와 순리대로 살아가며 

천지자연에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널리 이로움을 주는
참된 사람이(-진정한 만물의 영장)되도록 하라! 는
실로 심오하고 큰 뜻이 담겨져 있는 금과옥조의 귀한 말씀입니다.


홍익인간...에서 

인(人)은 사람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뜻하는 말입니다.

여기서의  인간(人間)이라는 글자는

천지간의 모든 만물(天地萬物)을 뜻합니다.

인간은 결코, 이 우주의 주체가 아니며, 

인간은(사람)은 우주의 무수한 생명체 중 

미미한 한 종류의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지구의 생명체중에서 영적능력이 뛰어난
만물의 영장이기는 하나, 결코 지구의 주체가 아닙니다.


인간이 만물의 주인-주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인간의 오만과 방종이 적정선의 한도(限道)를 넘쳐서
자연을 거스르고, 자연에 가장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우(愚)를 범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세상이고 현세의 사람들입니다.

지금의 인간은 자신들의 편의와 이기를 위해서,
자연을 동격의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오직

인간 편의를 위한 이용물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로

지구상의 가장 기괴한 괴물로 변해버렸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애석한 사실이긴 하지만...

오늘날 인간은
우주에서 가장 해악을 끼치는 독충(毒蟲)같은 존재들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우주는 우리와 한 몸입니다.
자연은 우리와 같은 몸입니다.
우리와는 시공간과 크기와 형태가 좀 다를 뿐...


 

천부경에서 이르는 금언(金言)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의 참 뜻을 

올바로 이해하고, 잘못된 인식과 

자연에 해악을 끼치는 나쁜 습성들을 버리고 고쳐서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주와 자연에 해악을 끼친 그 인과응보로 받게 될
자연의 재앙과 그 앙화를 조금이라도 감소 시키려면
지금부터라도 문명의 해악적 요소를 점진적으로 개선하고
(실은, 매우 시급하기도 합니다...)
과학을 자연과 조화롭게 융화시켜
자연과 만물에 최대한으로 해악을 줄여야 하고, 부득히
개발을 하더라도 언제든지 가능한 빠르게 복구가능한 범위 안에서
모든 것을 도모하고 개발을 하는 우주 정신과 우주 마음을 닮은
전인적인 마음자세-

-새로운 인류의식의 신인류 과학정신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인간의 밝은 미래도 인간의 어두운 미래도
인간의 정신에 달려있음을 새삼 재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미래는 신의 영역도 아니고, 하느님의 영역도 아닙니다.
오직, 인간 스스로가 만들고 짓는 것으로 인간의 인과(因果)영역입니다.




베드로전서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메릴린 히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
이윤호 목사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

두 권의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크게 다섯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조상의 죄는 후손에게 유전된다.
2.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도 함께 유전된다.
3. 유전적인 그 죄의 뿌리를 끊지 않으면 저주가 가계를 타고 계속 흘러간다.
4. ‘가계 점검표’를 사용하여 조상들의 죄를 일일이 알아내서 죄의 뿌리를 해결해야 한다.
5. 예수를 믿는 사람도 가계의 저주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여전히 저주 아래 있다.

출애굽기 20장 5절의 말씀에 근거하여, 조상이 지은 죄의 저주가 3~4대까지 이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삼사대라면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내려오는 각종 질병들, 알코올 중독, 편두통, 정신이상, 일찍 죽는 것, 열등감, 신경쇠약 등 무려 58가지의 저주의 행위들을 열거하며 그 저주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가계저주론’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믿음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그렇게 보여도 성경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입니다.
현실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얼마든지 예외적인 일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에 근거하여 말씀드리면, 가계저주론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해당될 수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특이한 일이 있을 때 종종 ‘집안 내력’이라고 말합니다.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유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면 축복이지만, 좋지 않은 일이 내려오는 것은 저주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좋지 않은 내력이 실제로 후손들에게 이어집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당신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없습니다.
저주와 같은 일들이 있어도 그것은 더 이상 저주가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과 19절에 말씀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 그러한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이 있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저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저주가 더 이상 없습니다.
혹여 저주와 같이 보이는 일들이 있어도 그것은 더 이상 저주가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저주받은 죽음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무에 달려 죽는 죽음은 저주받은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저주받은 죽음입니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시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율법의 저주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비참한 삶을 살며, 장차 정죄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비참한 삶, 정죄의 심판, 영원한 죽음의 형벌, 이것이 율법의 저주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러한 저주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사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받을 율법의 저주를 대신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율법의 저주가 없습니다. 저주받은 삶에서 해방되어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장차 정죄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영원한 죽음의 형벌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조상들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예수님을 믿으면 율법의 저주와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기 전, 저의 가정에는 조상들이 물려준 헛된 행실이 있었습니다. 헛된 것임에도 조상들이 물려준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비판의식도 없이 받아들여 행하였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두 가지만 말씀드리면, 귀신을 섬기는 것과 술 취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헛된 행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귀신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사탄의 권세를 멸하신 예수님의 능력에 힘입어 담대하게 그 모든 행실들을 버릴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영적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나는 왜 예수를 믿는가?
예수님을 믿으면 율법의 저주와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를 믿는가? 

왜 예수를 믿습니까?
여러분은 믿음생활을 통하여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아마도 많은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믿음에 대하여 한마디로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함이라”(5절)고 설명 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power)을 갖게 되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무더운 날 사람 만나기 위하여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음악을 감상하러 오셨습니까?
아니면 돈이 생기기 때문에 오셨습니까? 행여나 잠자려 오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왔습니다.
바울의 설명처럼 오늘도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아 가지고 내려가시기 바랍니다.
바울도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3절에 보면 고린도 교회 2년 반 동안 고린도 교인들과 함께 지낼 때 자기도 약하여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던 것을 너희도 잘 알 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령의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4절) 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온 결과였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능력이란 어떤 것입니까?

바울의 증언에서 그 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8:31절 이하에 유명한 승리의 개가를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까지 내어 주신이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겠느뇨?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1-39절) 여기에서 바울은 세상의 힘보다 더 강한 내적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자기에게 주어졌음을 간증하면서 이것은 자기뿐 아니라 믿음을 가지는 모든 자에게 주어질 것임을 증언했습니다. 믿음에서 나오는 힘은 세상의 모든 힘보다 더욱 강한 능력이 있습니다.

크리스챤의 내적 능력이 얼마나 강한가를 실증한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국 테네시 주 메이슨 이란 마을에 감옥에서 탈출한 죄수가 총을 듣고 디그라핀리드씨의 집에 침입했습니다.
남편 나단은 무서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인 루이스는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가까운 손님처럼 대하여 주었습니다.
“무거운 총을 들고 서 있지 말고 거기 앉아요, 내가 맛있는 아침 식사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하며 콧노래로 찬송까지 부르면서 식사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탈옥수는 이상해서 소리 질렀습니다.
‘너는 내가 무섭지 않느냐?’‘
루이스는 자기가 예수를 믿고 영생을 믿기 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다는 말로 시작하여 예수 믿는 기쁨과 새로운 인생을 그 죄수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이야기 했습니다.
새벽 3시에 침범하여 오전 10시가 되기까지 그 집에 머물렀는데 불과 일곱 시간 사이에 탈옥수는 자기 발로 교도소에 돌아갔다는 실화를 읽었습니다.

여기에서 컨트롤(조종, 제압, control)과 파워(능력, power)의 차이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영적능력은 죽음을 이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세상의 힘이란 바로 컨트롤(제압)을 뜻합니다.
그러나 믿음에서 나오는 영적인 힘은 세상의 그 어떤 힘보다도 더 강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세기 역사는 컨트롤 보다 내적 능력이 더 강하다는 것을 인류에 입증해 주었습니다.
나치 독일, 군국주의, 일본, 공산주의, 국수적 민족주의 등 모두가 국민이나 이웃나라들을 컨트롤 하려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적 힘이 있는 민주주의가 더 강했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승리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능력이란 이 내적 힘을 뜻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힘이고, 자유의 힘이고,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힘입니다. 예수는 대 로마제국의 독수리 깃발 아래 벌레처럼 약해 보였으나 로마는 허무하게 무너졌고 예수의 능력을 2천년동안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내적능력이 필요합니다. 고통이 올 때,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 바울처럼 병들고 선채가 약할 때 “예수의 사랑의 능력에서 누가 나를 끊으리요”하는 담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복음서에서 주장하는 능력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6장에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이 점심식사를 하고 열두광주리가 남은 기사가 나옵니다. 디베랴 호숫가 넓은 초장에 배고픈 무리 5천명이 있었는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점심을 먹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이때 두 제자 빌립과 안드레의 의견이 대립되었습니다. 빌립은 “2백 데나리온(한화 약2,000만원)을 가지고도 부족하다”고 계산에 근거해서 불가능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군중속에서 어떤 소년 하나가 지참해 온 도시락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와서 예수께 드리며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이것으로 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떡 다섯 개와 5천명은 일대 천(1:1000)의 엄청난 차이지만 안드레는 예수의 잠재적인 능력에서 작은 믿음을 걸어 본 것입니다. 이때 정말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하는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믿음이란 내가 계산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보이는 사실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잠재력(potential)을 믿는 것이고 가능성을 믿는 것입니다. 디베랴 초원에는 계산기 대신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능력 주시는 예수,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예수, 주홍같은 죄로 눈같이 희게 할 수 있는(사1:18)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우리의 믿음이 만날 때 진짜 능력이 나타납니다.

리오 질라드(Leo szilard)는 유태계 헝가리인으로 이론 물리학자였습니다.
1933년 그는 런던에서 연구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9월12일 신문을 읽던 그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영국의 물리학자들이 학술회의에서 “원자에서 에너지가 나온다는 말을 허무맹랑한 꿈이다”라는 결론이 났다는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질라드세는 한방에서 연구하는 동료인 엘버트 아인슈타인에게 흥분해서 말했습니다.
“소위 과학자라는 사람들이 가능성을 믿고 탐구하는 것이 옳은 자신이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지을 수가 있단 말이요” 화를 내면서 그는 신문을 찢어 버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식당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오랜 연구의 해답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통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얼마든지 가장 작은 원자속에도 대 우주를 흔드는 위력을 나오게 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보유시켜 두셨다는 것입니다. 원자 그덧은 가장 작은 입자이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그 속에 더 큰 위력을 숨겨 두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원리를 발견한 순간 세계사에 큰 영향을 일으킨 핵 시대가 연구소에 돌아와 자기의 해답을 아인슈타인에게 설명했더니 아인슈타인은 감격스럽게 “당신은 놀라운 점심을 먹었소”(you had an incredible Lunch)하며 기뻐했답니다. 모든 발견과 발명도 가능성을 믿는 믿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이런 말로 설명하였습니다. “우리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사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을 인간의 생각보다 훨씬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엡 3:20-21)

믿음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내와 남편에게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보다 훨씬 많은 잠재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들, 딸에게는 그대가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웃과 동료, 여러분이 시원찮게 생각하는 그 사람, 여러분이 부도덕하거나 죄인처럼 생각하는 그에게 회개의 가능성, 큰일을 할 잠재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으로부터 머리를 돌리 때 하나님은 그를 더 사랑하십니다. 가능성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전도와 선교의 근거도 이 가능성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보는 시각도 주님의 큰일을 담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아야 좋은 교회가 이룩되고 2세 교육과 전도에 열심히 불붙게 되어 있습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보리떡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던 예수님과 안드레의 믿음을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능력과 은혜의 하나님”으로 표현합니다. 능력이란 에너지(동력)입니다. 이 에너지에 나를 접선 시키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때 나와 여러분의 가능성이 힘으로 변화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행하였습니다.
그때 이삭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제사를 드린다면서 제물인 양은 왜 안 가지고 갑니까?” 그렇게 묻는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아들아, 제물은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하나님인 준비하신다는 뜻인 “여호와 이레”라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기막힌 슬픔속에서도 준비하시는 하나님,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노아는 대홍수속에서 무지개를 보았고, 야곱의 믿음은 광야 가운데서 하늘나라에 연결된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모세의 믿음은 바위속에 생수를 보았고, 삼손은 사나운 사자의 몸에서 꿀을 발견했습니다. 바울은 “내가 가장 약할 때 나는 가장 강하다”고 고백함으로서 약점을 극복하는 믿음의 능력을 선포했습니다. 사과나무를 쳐다보고 달린 사과를 세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과 한 알을 놓고 그 속에서 수많은 사과 나무를 세는 것은 믿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왜 우리는 예수를 믿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에게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를 보고 창조물을 보면서 왜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십니까? 이 땅에 오셔서 기적과 능력을 행하셨고,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이 되어 죽으셨다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시면서 왜 부활을 믿지 못하십니까?

창조의 근원을 해명 못하면 모두가 헛소리 일 뿐입니다. 첨단과학도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극소수의 부분적인 재료를 이용하는 것을 대단한 발명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 뿐 입니다. 거대한 비행기가 하늘을 나르고, 큰 배가 대양을 떠갑니다. 우주선이 달과 다른 횡성을 이착륙 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과학이 하나님을 부인해도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공기의 유속의 차이가(베르루이의 원리) 아니면 비행기가 어떻게 날으며 물의 부력이 없으면 배가 어떻게 뜹니까? 인공위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이란 하나님께 창조하신 물질 중에서 원리와 성질을 활용한 미미한 학문에 불과한데 교만한 인간들이 감히 하나님의 존재까지 건방지게 거론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인간들이 이성의 한계를 넘어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우주만물이 우연히 창조되었다고 믿으십니까? 생각을 조그만 바꾸어 보면 어린아이들도 능히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으십니까? 성경이 그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총으로 사람을 통제하려던 탈옥수 같은 세상의 힘보다 믿음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힘은 내적 능력으로 죽음을 이긴 예수로부터 받은 믿음에서 나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랑의 힘이고, 자유의 힘에서 죽음을 이긴 생명의 힘입니다. 우리는 이 내적 능력이 필요합니다. 고통이 올 때,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 바울처럼 병들고 신체가 약할 때 “예수의 능력에서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가장 작은 원리에서 가장 큰 위력이 나왔습니다. 별 것 아닌 나에게도 엄청난 잠재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은 빌립처럼 계산에 근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빵1개로 오천명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잠재적인 능력에 작은 믿음을 걸었습니다. 그때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하는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믿음이란 내가 계산한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보이는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잠재력을 믿은 것이고 가능성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의 사랑과 우리의 믿음이 만날 때 진짜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때 앉은 뱅이가 일어났습니다.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왜 믿습니까? 여러분은 믿음에서 무엇을 기대합니까? 바울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함이라”(5절)고 분명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갖는 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power)을 갖게 되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왜 믿는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첫째, 믿음은 사실이 아닌 것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저히 이성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이성적으로 믿지 못할 내용이 많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나 예수님이 남자를 모르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다는 것이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란 이성을 포기하는 것과 동의어로 생각한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납득이 안가는 것을 그렇게 단순하게 믿는 것을 보고 광신이라고 생각하거나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요행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불신자들의 논리에는 한가지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 사실 불신자들도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성경의 말씀이 진리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4대 성인 중 한 사람이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거의 대부분이 믿음의 행위이다. 우리가 뉴욕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한국에 간다고 하자. 우리가 그 비행기를 타는 것은 그 비행기의 기장이 우리를 약속한 시간에 한국에 데려다 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만약 그 비행기가 우리를 북한으로 데려갈 것을 의심하거나 우리를 쌍둥이 빌딩으로 돌진할 거라고 의심한다면 우리는 그 비행기를 타지 않을 것이다.

이왕재 서울대학병원 해부학 교수가 비타민C가 생명의 물질이라고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당뇨 합병증으로 발가락을 절단하면서 3개월 이상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매일 끼니때마다 비타민C 6g을 복용하고 한 달 만에 퇴원한 다음 그로부터 11년을 더 살고 82세에 소천한 것을 경험하고 나서 그는 '비타민C 전도사'가 된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비타민C 복용법은 식사 때마다 최소한 2000mg을 식사 중간에 또는 식후에 복용을 하면 당뇨ㆍ고혈압ㆍ위암 그리고 대장암 등이 예방ㆍ치유 된다는 것이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고 나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고 결국 두 부류로 갈라졌다. 이 교수의 말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로 말이다.

세상적인 지식도 받아 들이기 위해 믿음이 필요하다. 심지어 과학자의 말도 믿음이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떠한 지식도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증명을 통해 아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복음을 들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몸 찢어지고 피 흘려 죽으신 것을 믿고 그 예수님을 내 마음에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성경의 말씀 말이다. 이 교수의 비타민C와 같이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두 부류로 갈라진다. 복음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로 말이다.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인생 가운데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할 것이다.

비타민C를 먹으면 건강의 변화가 나타나듯이 십자가의 복음을 내 마음에 받아들이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다.

첫째, 마음의 절대적인 평안이다.

평안이 생기는 이유는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절대적인 평안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용서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나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했던 사람들이 이전에는 미웠는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그들이 불쌍히 여겨지는 것이다.

여수 나병환자 요양원인 애양원교회에서 순교 당하실 때까지 사역하셨던 손양원 목사님이 자신의 두 아들을 죽였던 공산당원 청년을 아들로 받아들인 것은 그 안에 예수님의 마음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전 세계 22억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런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왜 예수를 믿는가?
천당 가려고 믿는가?

왜 예수를 믿느냐는 질문은 나는 왜 사느냐하는 질문과 같다.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내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 세상 누구도 내 인생을 내가 원해서 선택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생명을 주셔서 인생을 시작하고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예수를 믿는 이유도 하나님이 내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불신 상태로 있다가 교회를 나가게 되고 믿음을 갖게 되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다.
혹은 죽을병이 들어서 건강을 얻으려고 교회에 나오기도 하고, 사업에 실패해서 낙심 중에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교회에 나오기도 하고, 혹은 누구의 전도를 받아 교회에 다니기 시작도 한다.
부모 때부터 믿는 가정에 태어나 믿음을 갖기도 하고 혹 먼저 믿는 아내나 남편을 따라 믿음을 갖게도 되지만 성경은 믿음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으로 영생에 이르게 될 사람은 만세전에, 하나님의 예정 속에 이미 있는 것으로 때가 이를 때 사람들이 여러 경우를 통해 믿음에 들어오는 것이다.

에베소서 1:3-14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은 이미 창세전에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정해놓은 것으로 이 땅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사도행전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로마서 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갈라디아서 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구원받도록 작정된 사람을 믿음으로 부르시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왜 예수를 믿느냐 하는 질문의 답은 "전능하신 창조주 사랑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어 구원으로 예정하시고 불러 주셨기 때문인 것이다."

믿으면 천당 가는 것이지 천당 가기 위해 예수 믿는 것은 아니다.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꿈에 한 불신자 청년에 나타나 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왜 예수님을 믿어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이지!"
그러자 그 청년의 표정이 어딘지 어색합니다.
좀 못마땅하다는 표현입니다.
저는 자신 있게 옳은 대답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청년에게는 저의 대답이 그리 신통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꿈을 꾸고 새벽 예배에 나와서 기도하며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왜 그 청년의 표정이 안좋은 거지?"
그리고 예수님을 아직 믿지 않는 그 청년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래, 그 청년에게는 나의 대답이 좀 이해가 안될 수 있겠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을 때, 그 불신자 청년은 아마 이런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아니, 한국의 독립 운동을 위해서 죽어간 유관순 누나도 결국 나라를 위해 죽은 것이고, 결국 그 혜택은 우리 모든 한국 사람들이 받은 것이기에 엄격히 따지면 유관순 누나도 나를 위해 죽은 것이 아닌가?
그러면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유관순 누나를 믿지, 왜 남의 나라 사람인 예수님을 믿는 거야?
목사님은 애국심도 없나?
목사님은 사대주의 사상에 물들은 좀 고리타분한 분이구나!
만약 자기 육신의 아버지나 조상이 자기를 위해서 죽으면 목사님은 자기 아버지나 자기 조상님을 믿고 신으로 섬기겠네? 그럼 뭐야? 그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우상숭배 아닌가? 그리고 만약 내가 목사님을 위해서 죽으면 목사님은 나를 신으로 믿을 것인가? 나에게 십일조를 낼 것인가? 에이, 어쩐지 그 대답은 좀 그렇다."

이렇게 불신자 청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아-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아마 이 자리에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즉 저의 대답에는 불신자에게 좀 더 이치에 맞는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좀 더 설명을 하면 이렇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여태까지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분이 있다면 제 손가락을 자르고 제 목숨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즉 아담의 피를 갖고 태어난 모든 인류가 죄인이라는 것은 1%의 오차도 없는 100% 진실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경중에 따라서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어느 개인, 어느 민족, 어느 나라에서든지 간에 합당한 이치입니다. 특히 가장 큰 죄로 취급되는 반역죄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사형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는 단지 선악과라는 과일 하나를 따먹은 죄가 아닙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과일 하나 따먹어서 그토록 저주를 받고 죽는다면 우리 하나님은 참 옹졸하고 무자비한 하나님일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과일 하나 따먹어서 사형을 당한다면 남의 과수원에서 과일 하나라도 서리해서 먹은 사람들은 다 사형을 당해야 하고,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하면 남의 것을 조그만 것이라도 훔친 사람은 모두 사형을 당해야 합니다. 하여간 성경을 잘못해석하면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아주 못되고 나쁜 하나님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요즘 안티 기독교 사람들이 흔히 쓰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생각하는 선과 악에 대하여 이의를 매사에 제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옳다고 하는 것을 아담과 하와가 틀리다고 반대하고,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는 것을 아담과 하와가 악하다고 반대하므로 결국 하나님과 반대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피조물로서 감히 재판관의 자리에 앉아 창조주 하나님을 죄인석에 세워놓고 옳고 그르고를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죄인이고 누가 재판관인지 위치를 바꾸겠다는 것이요, 더 나아가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우위에 있겠다는 교만이요 반역입니다.

만물의 매니저로 세운 인간이 이렇게 마귀의 꾐을 받아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반역하니 우주의 질서는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주님인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인간은 마치 흐르는 강에서 떨어져 나온 지류의 물이 썩어 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생명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더 나아가 아담과 하와에게 잘 다스리라고 맡겨준 이 지구라는 에덴동산도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는 저주와 죽음의 땅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지 못해 결국 영원히 살지도 못하고 죽어야 하고,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행복을 맛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존재도 모른 채 죽는 안타까운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해도 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닦아보려고 종교를 만들고 철학을 만들고 사상을 만들어보았지만 결국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즉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예수님을 통해서 만날 수 있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이때 불신자들은 이 사실에 의문부호를 제기합니다. "예수쟁이들 예수님 믿어서 진짜 하나님을 만났느냐?"

이때 저와 여러분의 대답은 어떠합니까? "예, 저는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을 만난 사실을 어떻게 증명합니까? 저는 이렇게 증명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요16:5-7)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기가 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오순절 날 성령을 받자 곧 바로 이 말씀을 이해하면서 베드로는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행2:17-18)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하나님의 영이라고도 하며, 예수님의 영이라고도 하며, 성령이라고도 하는 분을 우리 각 사람에게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바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 하신 말씀처럼 저와 여러분들에게 성령이 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고로 예수님을 믿어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을 만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이요,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했는데, 바로 그 약속한 성령이 내 안에 오셨으니 예수님의 죽음,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승천까지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고, 나를 죄에서 해방하셨으므로 나는 더 이상 죄의 형벌과 죄의 저주 아래 놓여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 받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혜는 내가 어떤 큰 공로가 있어서 된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산 것도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어찌 예수님을 안 믿을 수 있겠습니까? 쉽게 생각해보세요. 요즘 사람들 돈 참 좋아합니다. 물론 과거의 사람들도 돈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사람들이 돈을 너무나 좋아해서 돈 때문에 인륜도 천륜도 포기하는 시대가 온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말을 했는데, 요즘은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 만큼 돈의 위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돈이 얼마나 있으면 여러분이 기분이 좋으시겠습니까? 크게 잡아서 100억 정도면 됩니까? 제가 드리지요. 너무 쉽게 대답했습니까?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일 것 같지요.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아니, 100억을 얻는 조건이 단지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면 왜 안믿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상당히 많이 예수님을 안믿습니다. 왜 그럴까요? 의심이 가서 그렇습니다. 그들은 대답합니다. "아니, 예수님 믿으면 진짜 100억을 줍니까?"

예수님 믿으면 100억 보다 좋은 천국도 얻고, 이 온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나에게 참 평안과 기쁨을 주시고, 돈도 내가 필요한 만큼 넉넉하게 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그런데 또 이 말에 토를 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목사님, 예수님 믿어서 천국도, 얻고, 평안과 기쁨도 얻는다고 합시다. 어차피 그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이니 내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 믿으면 진짜 돈을 줍니까? 100억 말이에요?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니 한번 저에게 줘 보세요? 그러면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이때 하나님과 인간이 줄다리기를 합니다. "먼저 네가 예수님을 믿어라 그러면 이것을 주마?" 그러나 인간은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100억을 저에게 주세요. 그러면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이런 줄다리기를 하는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 제법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저의 질병을 해결해 주시면, 저에게 좋은 직장을 주시면, 저에게 아름다운 배우자를 주시면..."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이러한 줄다리기를 어느 순간 그치고 맙니다. 그때가 언제냐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100억이 아니라 그보다 수천 배, 수만 배, 수억 배를 주신 것을 깨달은 날입니다. 즉 하나님이 나에게 온 우주의 상속권을 주신 것을 깨닫는 날에는 100억을 달라는 것이 마치 눈깔사탕 하나 달라는 것처럼 보잘 것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군대를 제대한 후 기도원에서 금식하며 하나님에게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좋은 직장도 주시고, 장래 좋은 아내감도 주시고, 어쩌고저쩌고 조건 조건 조건..."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다 주었느니라." 아- 얼마나 기쁜지! 내가 구하지 않은 것, 마음에 필요로 하는 것을 하나님이 모두 주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러고 그와 동시에 저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마음속에 "아니- 이렇게 좋은 예수님을 왜 믿지 않는 거냐? 야 너도 예수 믿어라." 하며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장장 25년간 지내면서 제가 돈이 필요할 때 하나님이 돈을 안주신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우리 목사님은 참 부자이신 모양이네! 목사님 지갑에 돈 얼마 있어요? 꽤 있겠지요?"

여러분, 부자가 돈 가지고 다닙니까?
요즘은 돈 안 가지고 다녀요. 카드 하나면 다 돼요?
그런데 카드가 분실되는 날에는, 혹은 잔고가 없는 날에는 꽝이에요.
그러나 하늘나라 잔고는 꽝이 나는 법이 없어요. 우리의 믿음은 도적이 훔쳐가질 못해요, 분실되지도 않아요.
제가 이 정도 말하면 아무리 바보라도 결론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래, 나도 예수님 믿자! 믿어 보자!" 오늘 예수님 믿고 100억, 아니 100억 보다 더 좋은 모든 것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자동차 보험 약관 / If you are in an accident


05-03-2023

If you are in an accident

1. Remain at the scene and do not admit fault.
    현장에 남아 잘못을 인정하지 마십시오.

2. Call the police to report the accident.  
    경찰에 신고하여 사고 경위를 작성하시오.
 
3. Exchange information with the other drivers.  
   상대방 운전자와 정보를 교환합니다.

4. Call claims Service at 1-800-274-4499  
   1-800-274-4499번으로 청구 서비스에 전화하십시오

5. Do not discuss the details of the accident with anyone except the police and your claims representative. 
   경찰과 청구 대리인을 제외한 누구와도 사고의 세부 사항을 논의하지 마십시오.

6. Get information about your claim at claims. progressive. com
    클레임에서 귀하의 클레임에 대한 정보를 얻으십시오.

We can do the work finding a repair shop and will back Repair with Progressive's Lim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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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중에는 이 카드를 차량에 보관하십시오.



네비어스 선교정책(宣敎政策)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는 1866년 9월 2일


네비어스 선교정책(宣敎政策)

선교사 네비어스(John L.   Nevius)가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위하여 창안한 선교방법론.

네비어스 선교방법.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3자 원칙’

첫째, 자전(自傳, self-propagation)

토착인이 토착인에게 전도하도록 하는 ‘자전’(自傳, self-propagation)

둘째, 자립(自立, self-supporting)

토착 교인이 토착 교회 목회자의 생활비와 교회 운영을 책임지도록 하는 ‘자립’(自立, self-supporting)

셋째, 자치(自治, self-governing)

토착 교회 문제를 토착 교인들이 처리하도록 하는 ‘자치’(自治, self-governing)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위 ‘3자 원칙’은 네비어스보다 먼저 제시했던 인물들이 있었다.
그들은 1840∼70년대 영국 교회와 미국 교회의 해외 선교 정책을 입안했던 헨리 벤(Henry Venn)루퍼스 앤더슨(Rufus Anderson) 등이었고, 네비어스는 그 원칙을 중국 선교 현장에 적용하여 보다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정립하였다고 할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네비어스 선교정책의 창안자로 알려진 네비어스는 미국 뉴욕 출생으로, 유니언대학과 프린스턴신학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하였다.

이후 북장로회 중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1854년 중국 남부 닝보(寧波)에 도착해 선교를 시작,
1871년 동북부 옌타이(煙臺)로 옮겨가 1893년 별세하기까지 40년간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초기 닝보 선교에서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지만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옌타이에서는 성공적인 선교 결과를 얻었다.
그는 의료선교와 교육선교도 추진했지만, 주로 복음전도와 토착 교회 육성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연중 대부분의 시간을 지방교회 순회에 할애했으며, 여름에는 옌타이 선교부에 토착 교회 지도자들을 모아 성경을 가르쳤다. 또한 피폐해진 중국 농촌의 경제적 환경개선을 위한 농업개량 사업도 적극 추진하여 직접 과수원을 조성하고, 포도와 배 등 서양 과수를 들여와 중국인 농가에 보급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러한 네비어스의 선교는 중국 교회뿐 아니라 일반사회 지도자들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네비어스는 자신의 선교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선교 전략과 방법론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885년 『차이니즈 레코더(Chinese Recorder)』에 발표한 「선교사의 토착교회 설립 및 육성방안(Planting and Development of Missionary Churches)」이 대표적인데, 이 글은 1886년 1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단행본으로 인쇄되었고, 미국 북장로회 해외 선교부는 그 책을 ‘해외선교 문고’에 포함시켜 선교사 필독서로 출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네비어스의 선교 방법론은 중국 이외의 지역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네비어스는 1890년 봄 상하이에서 개최된 제2차 중국 선교 10주년 연차대회에서 자신의 선교 정책을 발표한 후, 6월 안식년 휴가를 얻어 귀국하던 중 언더우드의 요청을 받고 서울을 방문하였다. 그는 2주간 머물면서 언더우드(H. G. Underwood)와 마펫(S. A. Moffett), 게일(J. S. Gale), 기포드(D. L. Gifford) 등 북장로회 선교사들에게 자신의 선교 경험과 방법론을 소개하였는데, 1885년부터 선교를 시작한 30대 초반의 한국 선교사들에게 40년 선교 경력의 60대 선교사 네비어스의 경험과 지혜는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 선교사들은 네비어스가 제시한 선교 이론과 방법론을 ‘네비어스 선교정책’으로 정리해서 한국 선교에 적용하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뒤에 들어온 미국 남장로회와 호주장로회, 캐나다장로회 선교부에서도 네비어스 선교정책을 수용하기로 했고, 공식 결의는 하지 않았지만 미국 북감리회와 남감리회도 큰 틀에서 네비어스 선교정책을 받아들임으로써 한국 개신교회의 대표적인 선교정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내용

네비어스가 제시한 선교정책은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교회 지도자들은 자기 동네에서 직업을 갖고 자립생활을 하면서 동역자와 이웃에게 복음전도 사역을 해야 한다.
둘째, 선교사는 토착 교회에 필요하고 또한 운영해 나갈 수 있는 사역과 기관들을 개발해 주어야 한다.
셋째, 토착 교회가 스스로 목회자를 세우고 생활비를 부담해야 한다.
넷째, 예배당은 토착 교회 교인들의 헌금과 노력으로 마련하되 토착 양식으로 지어야 한다.
다섯째, 매년 토착 교회 지도자들에게 집중 과정으로 성경과 교리를 가르쳐야 한다.

결국 네비어스의 선교정책은 선교부나 선교사의 간섭과 통제는 최소화하면서 토착 교회 지도력 육성을 통해 토착 교회가 스스로 성장하고 발전하도록 돕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언더우드를 비롯한 초기 한국 선교사들은 이러한 네비어스 선교정책을 적극 수용하여 한국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꾀하였다.
특히 1903∼1907년 초기 부흥운동을 거치면서 한국 교회는 그 지도력이 급성장했고, 결과적으로 스스로 전도하고 자립하며 자치하는 토착 교회로서 위상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래서 1920년대 미국의 경제공황과 1940년 선교사들의 강제 귀국, 그리고 1960년대 후반 선교사 철수로 외부의 선교지원이 약화된 상황에서도 한국 교회는 위축되지 않고 부흥,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네비어스 선교정책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우선 경제적 자립 원칙이 토착 교회 유지와 관리에 초점을 맞추어 ‘교회 중심’ 체제가 되면서 사회봉사나 구제사업,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는 소극적이 된다는 견해였다.
그리고 봉건적 인습이 남아 있던 한국 교회 안에서의 자치 원칙은 임원 조직의 위계질서로 작용하여 교회의 민주적 운영을 저해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토착 교회 지도자 양성(성경공부와 신학교육)에 관한 권한과 역할을 선교사들이 독점함으로써 한국 교회 목회자의 지적 수준과 신학 발전에 한계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판받는 부분들도 있지만 네비어스 선교정책이 한국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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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에게 난폭하게 굴어 불태웠다? 그 진실은…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는 1866년 9월 2일 대동강 변에서 당시 평양 군민들의 공격을 받고 불에 타버렸다. 이때 영국인 로버트 토머스 선교사도 순교했다. 약 한 달이 지나고 중국 지푸의 미국 영사 샌포드에게 이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은 제너럴셔먼호가 왜 공격받았는지, 선원은 어떻게 죽었는지, 생존자는 있는지 등을 알고자 했다.

미국은 1867년 1월 아시아함대 와추세트호의 슈펠트 함장을 보내 이 사건을 조사했다. 하지만 조선은 협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양감사 박규수는 분명히 미국이 다시 올 것이며, 그때를 위해 소위 ‘의답조회’를 작성해 같은 대답을 하도록 했다. 문서는 조선 정부가 미국에 전달한 이 사건에 관한 유일한 공식문서였다. 그러면 이 문서는 얼마나 진실을 말하고 있을까.

조선 후기 지리학자 김정호가 1834년 제작한 지도 '청구도'에 그려진 대동강 하류 일대. 박명수 교수 제공

박규수는 ‘의답조회’에서 제너럴셔먼호가 처음부터 조선인에게 난폭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초기 제너럴셔먼호와 조선인 사이에 심각한 갈등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배에 몰려와 이양선을 구경하고 서로 물건을 매매하기도 했다. 토머스는 이들에게 과자와 성경을 나눠줬다.

제너럴셔먼호와 조선 측이 충돌한 이유는 중군(中軍, 일종의 지역 사령관) 이현익이 납치됐기 때문이다. ‘의답조회’는 이현익이 제너럴셔먼호와 조선인의 마찰을 막고자 배를 타고 감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너럴셔먼호가 이현익을 납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현익의 구술을 기록한 ‘패강록’을 보면 제너럴셔먼호는 조선 측이 자신들을 유인해 상륙시킨 다음에 섬멸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고, 이것을 막기 위해서 이현익을 납치했다고 했다. 이 사건을 연구했던 제임스 게일 선교사도 먼저 조선 측이 공격을 해왔기 때문에 제너럴셔먼호가 이현익을 납치했다고 본다.

또한 ‘의답조회’는 평양 군민이 이현익을 구출하기 위해서 땔나무에 불을 붙여 제너럴셔먼호를 공격하니 배에 저장된 폭약이 굉음을 내며 폭발했고 사람은 다 죽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의 공식문서인 ‘평양감영계록’에는 배가 불타고 있을 때, 토머스와 중국인 조능봉이 배에서 나와서 살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군민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기록됐다. 1884년 평양에 가서 이 사건을 조사한 미국공사관 무관 버나돈은 토머스는 평양 감영에 끌려갔으며, 이곳에서 중국으로 보내 줄 것을 요청했으나 평양감사는 이를 무시하고 처형했다고 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의 또 다른 문제는 생존자 여부다. 제너럴셔먼호를 조선에 보낸 메도우사에 의하면 이 배에는 24명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측은 죽은 사람이 모두 20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면 나머지 4명은 어떻게 됐을까. 미국은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20년 이상을 청과 조선 사이 밀무역에 종사했고, 지푸의 외국인들과 잘 아는 중국인 우문태는 1867년 여름 평양에 갔을 때, 오랫동안 알고 있던 조선 상인 김자평(金子平)으로부터 평양에서 서양인 2명과 중국인 2명을 봤다는 말을 들었다. 이 소식은 북경의 외교가를 뒤흔들어 놓았다.

1868년 봄, 미국은 셰넌도어호 페비거 함장을 조선에 파송해 우문태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조선 측은 이에 대해 자신들은 김대청(金大靑)은 알아도 김자평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김대청은 1867년 초 슈펠트가 조선에 왔을 때, 함께 와서 장연 육도에서 우문태를 만난 적이 있었다. 조선 측은 이 김대청을 우문태에게 생존설을 말한 김대평이라고 간주하고 체포해 미국 측과 함께 심문했다. 조선 측은 김대청에게 우문태를 만난 적이 있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문태에게 서양인 2명과 중국인 2명의 생존설을 말했는가를 물었고, 김대청은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조선 정부는 미국 측에 우문태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 미국 측은 김대청에게 언제 우문태를 만났는지 물었다. 그는 1867년 초라고 답했다. 우문태가 김자평을 만난 것은 1867년 여름이었다. 만난 날짜가 다른 것이다. 또 미국 측은 김대청에게 주소와 직업을 물었다. 그는 장연 육도에 사는 어부라고 했다. 하지만 김대평은 작도에 사는 상인이었다. 미국 측은 조선 측이 데리고 온 사람은 김자평이 아니라 김대청이라고 생각했다.

조선 측은 김대청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황해 감사는 대원군의 명령으로 셰넌도어호가 정박해 있는 바다 앞에서 김대청을 효수해 버렸다. 이런 사건을 본 셰넌도어호 선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페비거는 조선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고 보고했다.

제너럴셔먼호의 진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당시 기록을 면밀하게 살펴본다면 우리는 좀 더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한미수교 140주년을 맞이해 한국 기독교는 제너럴셔먼호 사건의 실체를 밝혀 한·미 관계의 첫 단추를 바로 채우고, 한국 개신교의 시작을 바로 알려야 할 것이다.

[출처] -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39414&code=23111111&sid1=chr





한국기독교역사(초기 한국선교사들을 통해 배우는 교훈)
-조슈아

1.머리말

조선! 꼬레아!(Corea!) 한국은 120년전(1885년)만 해도 동양의 숨겨진 작은 나라였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조선은 누구와도 통상을 맺지 않고 혼자만의 고립가운데 갇혀있었다. 중국과 일본사이에서 늘 괴롭힘을 당하는 힘없고 의지할 데 없는 작은 나라였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등 열강들은 조선과의 통상을 주장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조선은 내부적으로도 수구파와 개화파등으로 나뉘어져 분열과 싸움의 위기상황가운데 있었다. 그로부터 12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한국은 세계에서 경제규모 10위안에 드는 나라, OECD회원국, 선교역사 120년만에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 세계50개의 대형교회중 25개이상이 한국에 있으며, 인구 중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20%가 넘는 세계에서 비슷한 류를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특이한 나라로 인식된다. 최근의 한류열풍은 언론의 플레이가 아니며, 중국에서 피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열풍이다. 한국영화와 드라마는 언론과 생활속으로 파고 들었고, 삼성 LG는 부의 상징처럼 되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온 민족이 하나되는 모습을 전세계에 보여준 짜릿한 감동이 아직도 남아있다. 얼마전 세계에서 제일 먼저 줄기세포 분화에 성공한 서울대 황우석 박사의 뉴스에 온 세계가 요란했다. 

중국으로부터 늘 영향을 받기만 했던 힘없던 한국이, 36년이라는 일제식민지배를 경험하며 고통가운데 눌렸던 이땅이,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민족상잔을 겪으면서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다시 시작한 한국이 어떻게 오늘날 이처럼 우뚝 서게 되었을까? 오늘의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기독교가 한국사회, 경제, 정치, 교육, 문화등 사회전반에 미친 영향은 상상을 넘어선다. 물론 오늘날 기독교가 많이 세상과 불의와 타협하여 욕을 많이 먹고 있긴 하다만.. 초기 한국에 복음을 들고 와서 생명을 바친 많은 외국의 선교사들, 이 땅의 사역자들.. 그들이 땀과 피를 흘려 헌신한 기초위에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세워졌다. 우리는 지금 그들의 헌신과 생명의 열매를 먹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한국에 어떻게 기독교가 들어오게 되었고, 이 땅에 와서 생명을 바쳐 일하며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과 죽음의 이야기들과, 또 복음을 들은 이 땅의 우리의 선조들이 어떻게 복음을 위해 수고하며 애썼는지, 그들의 헌신을 통해 이루어진 오늘날의 우리의 현재모습을 돌아보고자 한다. 이 짧은 시간안에 한국기독교역사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어서 1910년 한일합방이전까지에 focus를 맞추어서 나누려고 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해보면서 이 땅에 온 초기선교사들과 우리의 선조들에 대한 감사와 감동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은둔해 있던 조선을 세우셨는지, 어떻게 복음으로 이 땅을 회복시키시고 부흥케 하셨는지 참 기가 막힌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면서 함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오늘 몇가지 주제를 가지고 시대별로 정리해서 나누려고 한다. 주님께서 동일한 감동과 은혜를 주시기를 바란다.


2.복음의 씨앗을 받다

-기독교가 처음에 어떻게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는가를 살펴본다. 1.경교와 2.조선을 방문한 최초의 선교사, 귀츨라프 그리고 3.최초의 순교자 토마스선교사를 살펴본다.

635. 네리우스파 동양선교 시작함. 
한국이 기독교를 처음 접하게 된 시기를 잡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한다. 중국 당태종때 베리우스파는 중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한다. 1세기(100년) 이상 왕성하다가 쇠퇴한다. 중국에서 경교(景敎)라고 불렸다. 서안 비림박물관에 대진경교유행비가 있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초기에 한국으로 경교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경주 불국사지에서 발견된 돌십자가를 통해 경교의 영향이 미쳤을 가능성이 언급되어진다. 경주 불국사의 석굴암등 대부분의 불교유적에 경교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학자들의 견해가 있다. (사진-서안 경교비)(사진-경주 돌십자가)


1832. 조선을 방문한 최초의 선교사, 귀츨라프(K.F.A Gutzlaff,1803~1851. 네덜란드선교회).

-1832년 영국 암허스트 호 통역 겸 의사로 충청도 고대도에 도착한다. 전도문서와 성경을 전하며 주민들과 접촉하다. 감자심는 법을 가르쳐주며 주민들에게 약과 전도문서등을 전했다. 관리들이 이를 금지시켰다. 한달간 정박한후에 외국과 통상할수 없다는 통보로 인해 한국을 떠나야했다. 항해기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어쨌든 조선방문은 하나님의 역사였다. 이 땅에 뿌려진 하나님의 진리의 씨가 소멸되리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로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미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는 이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이날을 오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도를 애써 전파하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다... 우리는 한국당에 광명의 아침이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귀츨라프의 방문이 선교와 직접적으로 연결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씨를 뿌리는 수고와 간절한 염원이 마침내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사진이 참 멋있지 않냐? 그 당시에 먹을 게 없었는데 그가 심은 감자가 유용하게 음식으로 쓰여졌다 전해진다.(사진-귀츨라프,기념교회)


1866. 한국최초의 기독교순교자  - 로버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귀츨라프가 한국을 다녀간 지 33년 후, 토마스선교사가 한국으로 들어온다. 토마스는 중국 상해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중 부인이 사망하고 그 충격으로 선교사의 임무를 그만두고 해관통역업무를 보았다.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총무 윌리암슨을 만나면서 한국선교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한국에서 온 두명의 천주교신자들을 만나서 성경을 전해줬을때 기뻐하는 그들을 보면서 한국선교를 소망하게 된다. 그 당시 한국에는 천주교가 박해를 받고 있었고 어느 누구도 성경을 갖고 있지 않았다. 두 달 반의 한국선교여행(황해도)을 하게 되고 성경배포를 하였다. 주민들이 성경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다시 들어갈 때를 기다렸다. 1866년 미국의 무장된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에 도착했지만, 배가 무장된 상선이었기에 병사들의 폭탄에 의해 좌초되고, 배에서 내리기 전까지 갖고 있던 성경을 한권 한권 뭍으로 던졌다. 토마스와 일행들은 뭍에 끌려내리게 되고 군인들에 의해 모두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의 나이 27세.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병사에게 성경을 전해주며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고 이렇게 기도하였다 한다. “오! 하나님,이 사람이 자기의 하는 일을 모르오니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조선땅에 뿌린 복음의 씨앗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내 영혼을 받아주소서…” 아직도 복음을 알지 못하던 땅, 뒷날 그의 죽음 위에 수많은 교회가 세워질, 훗날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던 평양의 대동강변에서 순교의 피를 흘린 것이다. (사진-토마스,토마스의 무덤)

그 때 성경을 받은 병사가 훗날 예수를 믿게 되고 평양교회의 초대장로가 된 박춘권이란 사람이다. 그의 말이다. “내가 서양사람을 죽이는 중에 한사람을 죽인 것은 내가 지금 생각할수록 이상한 감이 있다. 내가 그를 찌르려고 할 때에 그는 두손을 마주잡고 무삼 말을 한 후 붉은 베를 입힌 책 을 가지고 우스면서 나에게 밧으라 권하였다. 그럼으로 내가 죽이기는 하엿스나 이책을 밧지 않을 수가 없어셔 밧아왔노라" (사진-박춘권)

그에게 성경을 받은 이들 중에 훗날 평양의 유력한 신앙가문을 일으킨 이들이 많다. 박춘권은 평양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장사포의 홍신길은 서가교회, 석호정 만경대의 최치량은 평양교회를 창설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성경을 뜯어 벽지를 바른 영문주사 박영식의 집은 널다리교회의 예배처소가 되었다 한다. 하나님의 일은 결단코 성취되어진다. 

1933년 9월14일에 대동강변에 토머스기념 예배당이 세워졌다. 이 제너럴 셔먼호사건으로 인해 미국이 보복하기 위해 군함을 보내어 신미양요가 일어나고, 얼마후인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미국교회가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를 비롯한 많은 미국선교사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하나님은 국제간의 통상등을 사용하셔서 복음의 문을 여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 다르다. 어쨌든 이로써 조선은 복음의 씨앗을 받게 되었다. 이때까지 어떠한 열매도 없었지만 분명히 복음의 씨앗은 뿌려졌다. 그것이 자라서 열매를 맺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사진-토마스기념교회)

3. 기독교의 자주적 수용

-한국의 기독교는 세계의 다른나라가 기독교를 접한 것과는 많이 다르다. 한국인들의 자발적인 요청으로 복음이 들어오게 되고 선교사가 들어오게 되며, 성경이 번역되어진다. 그리고 한국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솔내교회)가 세워진다.

1885.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을 때 깜짝 놀라게 된다. 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주민들이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 오기 전에 들른 일본에서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글로 번역된 마가복음이 벌써 있었던 것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 만주에서 사역하던 로스와 멕킨타이어선교사,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한 서상륜등 한국사역자들, 일본에서 성경을 번역한 이수정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교사가 한국으로 들어오기 이전에 사역자들과 성경이 만주와 일본에서 이미 세워지고 번역되어서 한국으로 먼저 들어왔다. 한국은 기독교를 자주적이며 자발적으로 수용했다. 이것은 다른 나라들에 복음이 들어가는 것과는 사뭇다르다. 다른 나라는 기독교가 제국주의 침략의 앞잡이처럼 이용되었다.

1887. 최초의 한글성경인 예수셩교젼서출간- 존 로스, 멕킨타이어 선교사

-토마스에게 한국선교를 주선했던 윌리암슨이 토마스의 순교이후에 스코틀랜드교회에 선교사파송을 요청하고, 로스와 매킨타이어선교사가 중국으로 오게 된다. 위리암슨은 중국에서 사역하던 성서공회 총무로서 토마스선교사에게 한국선교를 도전했던 선교사였다. 이처럼 한국선교를 위해 숨은 사역자들이 많이 있었다. 윌리암슨은 로스에게 토마스선교사의 순교사실을 알려주며 한국선교에 대해 도전하게 되고 1874년 로스선교사는 고려문이라는 청과 조선의 국경으로 가서 한문성경을 배포하였지만 주의를 끌지 못한다. 한 상인이 찾아와서 그에게 성경을 전해주게 되고, 훗날 그의 아들인 백홍준이 로스에게 세례를 받게 된다. 오늘 우리가 뿌리는 씨앗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진-존로스)

-1876년 2차 고려문여행에서 의주청년 이응찬을 만나게 된다. 그와 함께 만주로 돌아와서 한국어를 공부하며 이응찬의 도움으로 1877년에 선교사를 위한 한국어교재 'Corean Primer'를 발간한다.

-1876년 이응찬,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 4명이 맥킨타이어에게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음. 한국최초의 신앙공동체가 중국에서 형성됨.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다. 이 때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믿는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목숨을 내어놓고 믿었다.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등의 도움으로 1882년 우리말 예수셩교젼서 누가복음을 출간하고 1887년 마침내 최초의 우리말 신약전서인 '예수셩교젼셔'발간됨. "한국인 학자가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나는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라고 로스는 고백한다. 로스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한국사역자들의 수고가 컸다는 얘기다. 그래서 ‘로스역’이라 하지 않고 ‘예수셩교젼서’라고 부른다. (사진-예수셩교젼서)

로스의 고백- “최초의 한글성서 발행이 한미조약 공표(1882)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다. 이제 완고한 ‘고려문’이 ‘열린문’이 되면 곧바로 복음이 그 민족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로스선교사는 서상륜, 서경조 형제를 만나게 됨. 서상륜형제는 만주로 홍삼 장사를 하러 왔다가 병이 걸렸다. 메킨타이어선교사는 죽어가던 서상륜을 힘써 돌보아주어 병이 낫게 되고 그들이 예수를 믿게 됨. 서상륜은 의주를 대상으로 전도하다가 체포령이 내려 동생 서경조가 있는 솔내로 내려와서 힘껏 전도하여 당시 58세대 중 50세대가 예수를 믿게 되어 순전히 한국인들의 힘으로, 주체적이고 자립적으로, 한국최초의 신앙공동체인 소래교회(솔내교회)를 창설하게 된다.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교회가 세워진 것은 선교역사상 흔하지 않은 일이다. 이후에 서상륜은 계속해서 전도하여 많은 이들이 믿게 되자 1885년 언더우드가 한국에 들어온 것을 알고 찾아가서 세례를 베풀어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기 전에 이미 교회와 세례받을 자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언더우드는 이때 본국에 보낸 선교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 무렵은 씨를 뿌릴 시기였음에도 동시에 우리는 첫 열매들을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동생 서경조는 1887년 1월 서울에서 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고 그 후 그는 성직자의 길을 결심,한국 장로교회 최초의 목사 7인 가운데 한사람이 된다.(사진-서상륜, 소래교회,지도, 한국장로교 최초 목사 7인)

1880년, 로스선교사는 선교본부에 이런 편지를 썼다. “메킨타이어는 또한 4명의 학식있는 한국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들은 앞으로 있을 놀라운 수확의 첫 열매들이라고 확신한다. 비록 현재 한국이 서구의 나라들과 어떠한 접촉도 철저하게 격리시키고 있지만, 그 쇄국은 곧 무너질 것이고, 또한 한국인들은 중국인보다 천성적으로 꾸밈이 없는 민족이고 보다 종교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으므로, 나는 그들에게 기독교가 전파되면 곧바로 급속하게 퍼져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작년(1979)에 모두 학식있는 4명의 한국인이 세례를 받았으며, 이들 외에도 기독교의 본질과 교리를 탐구하는 11명의 다른 사람들이 있고, 현재 동일한 수의 사람들이 한국민족을 위해 성경과 기독교문학을 준비하는 우리의 문서사업을 위해서 7-8일이 걸리는 우리 선교본부까지 기꺼이 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므로 바로 여기에 기독교회를 향해 열려있는 새 민족, 새 나라, 새 언어가 있는 것이다.”

서상륜- 한국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당인 솔내[松川]교회 창립자. 선교사. 의주(義州) 출생. 1876년 행상으로 만주 뉴좡[牛莊]에 갔다가 로스 목사를 만나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 세례를 받고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 사는 동포에게 전도하였다. 1884년 국내에서 전도하려고 의주로 돌아와 한국에서 최초의 종교집회를 가졌다. 그뒤 체포령이 내려 황해도 솔내로 피신, 1887년 동생 경조(景祚)와 함께 국내 최초의 교회인 솔내교회당을 세웠다.

서경조- 의주출생. 한국장로교회 최초 7명의 목사 가운데 한 사람. 일찍 부모를 여의고 독학으로 한학을 공부하였다. 1878년 처음으로 그리스도교를 접하였다. 1884년 황해도 장연의 솔내[松川]로 가, 형 상륜(相崙)과 함께 한국 최초의 교회를 건립하였다. 1900년 솔내교회에서 목사와 장로의 회합을 조직하고 한국 최초의 장로가 되어 해서지방의 교회 설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1907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였다. 한국 최초의 목사로 안수할 때 다른 6명과 함께 목사가 되었다. 


백홍준의 일화- 로스는 서상륜, 백홍준등에게 성경책을 짊어지고 한국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백홍준이 성경책을 등에 지고 우장을 출발하였다. 그는 10일 만에 의주 건너편에 있는 씨하지라는 마을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사정을 살펴 보는대로 역시 성경책을 그냥 가지고 들어가기란 매우 어려움을 알았다. 백홍준은 가지고 온 책을 한장씩 한장씩 종이로 풀었고, 그 종이를 말아가지고 노끈을 꼬았다. 다음은 낡은 종이를 많이 사다가 그 속에 책을 감추고 끈으로 묶어 마치 종이를 사오는 것처럼 가장하여 국경을 넘었다. 집에 도착한 그는 성경으로 된 노끈을 종이로 펼쳐 다시 책으로 만들었다. 그는 이 책을 가지고 의주를 중심하여 위원과 강계 등지를 다니면서 전도하였다. 그를 통해 10여명의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백홍준은 로스가 고려문1차 여행때에 성경을 전해줬던 사람의 아들이다. 그가 아들에게 성경을 읽게 하여 백홍준은 만주로 건너가 로스에게 세례를 받게 된다. 그 후 로스와 성서번역작업을 같이 했고, 이후 1887년 언더우드가 새문안교회를 창립할 때 서상륜과 함께 초대장로로 추대되었다. 그후로 마펫,게일선교사등을 안내하며 순회전도집회를 다니다가 1892년 체포되어 모진고문을 받고 옥중에서 목에 칼을 쓴 채 죽었다. 이것이 한국 개신교 사상 최초의 순교사건이었다. 
(사진:백홍준, 매서인-책을 파는 사람-들의 전도)

백홍준- 의주출신. 1874년 만주 고려문(高麗門)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영국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선교사인 J.로스(한국명 羅約翰)와 J.매킨타이어(한국명 馬勤泰)를 만나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 선교사들의 체류지인 뉴좡[牛莊]에서 그들에게 한국어와 역사 등을 가르쳐 주고 자신은 영어를 배웠다. 1876년 이응찬·이성하 등과 함께 세례를 받고, 선교사들과 함께 한문 성경을 한국어로 옮기는 성서번역작업에 착수하였다. 1887년 H.G.언더우드가 서울 정동의 자기 집에서 14명의 신자와 함께 한국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창립하면서 서상륜(徐相崙)과 함께 장로로 추대되었는데, 이 교회가 새문안교회의 전신이다. 그후로도 선교사인 S.마펫, J.게일 등의 안내자로서 순회전도집회를 주선하다가, 1892년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옥중에서 목에 칼을 쓴 채 죽었다. 이것이 한국 프로테스탄트 사상 최초의 순교사건이었다. 

이성하의 일화- 1883년 이성하가 성경을 등에 지고 봉천을 떠났다. 그는 압록강 건너편까지 이르렀으나 성경책을 그대로 가지고 무사히 들어설 것 같지 아니하여 잠시 밖으로 나가 주위의 사정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이성하의 거동을 수상히 여긴 주막집 주인이 방안에 놓아 둔 짐짝을 풀어보니 그 속에 국가에서 금지하는 책이 있어 너무나 겁에 질린 집 주인은 일부는 불에 태워 없이하고 나머지는 전부 압록강 물에 내던지었다. 뒤에 이 소식을 들은 로스 선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던져진 압록강물을 마시는 한국 사람들은 생명수를 얻게 될 것이고, 불에 탄 성경재는 한국교회를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되리라"고 예언하였다. 그 예언이 응하여 오늘날 한국교회는 세계속의 교회로 서게 된다. 이성하는 한국인 최초로 세례받은 4인중의 한명이며, 로스를 도와 성서번역사업에 힘을 썼다. 그는 성경을 몰래 숨기고 귀국하여 의주 서울 등지에서 비밀리에 전도를 하여 복음의 씨를 뿌렸다. 그 후 그의 아내는 백홍준의 아내와 함께 서상륜의 중재로 압록강에서 행해진 언더우드의 세례식에서 세례를 받고 한국교회 최초의 여자세례교인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성하-의주 출신. 1874년 이응찬 ·백홍준 ·김진기와 함께 중국 동북성으로 가서, 스코틀랜드 선교사인 J.로스와 알게 되었고, 이어 로스의 처남인 J.매킨타이어(한국명 馬勤奉) 선교사도 사귀게 되었다. 
1876년 마침내 이들 4인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례를 받고, 로스를 도와 최초의 성서 한글번역사업에 정열을 쏟았다. 그는 이후 4복음서와 《사도행전》 등을 몰래 숨기고 귀국, 의주 ·서울 등지에서 비밀리에 전도를 하여 한국에 '복음의 씨'를 뿌렸다. 그 후 그의 아내는 백홍준의 아내와 함께 압록강에서 행해진 H.G.언더우드 집례의 대세례식에서 세례를 받고 한국교회 최초의 여자세례교인이 되었다고 전한다


식자공(인쇄공) 김청송의 일화-성경을 인쇄하면서 예수를 믿게 된다. 그리고 옛 고구려의 고도인 즙안을 중심으로 쪽복음을 나눠주며 전도하였다. 1884년 즙안에는 75명의 세례받고자 하는 자들이 로스선교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11월 눈이 엄청 내리는 날 로스는 추위를 무릅쓰고 즙안으로 가서 75명 남자에게 세례식을 거행한다. 

이상에서 보듯이 한인최초의 교회의 설립과 흩어짐에서 성서중심적 특징과 자발적 복음수용과 전도라는 한국초대교회의 한 전형을 발견하게 된다. 선교사를 찾아가서 세례를 받고, 그들을 불러와서 세례를 베풀게 했던 한인촌과 의주, 그리고 소래의 신자들, 이들에 의해서 자생적인 한국교회는 세워져 나갔던 것이다. 선교사의 역할이 컸지만, 한국인들의 자발적이고 수용적인 복음수용과 전도로 한국교회가 세워져갔다. 

1882. 일본을 통한 기독교의 만남- 이수정의 개종

-하나님의 역사는 만주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이수정은 1882년 신사유람단 일원으로 일본으로 건너감. 성경을 접하게 되고 읽으면서 개종하기로 결심하고, 1883년 4월 낙스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음. 전 일본기독교대회에 한국을 대표해서 참석하여 한국어로 대표기도를 하고 신앙고백을 하게 되면서 일본에 있던 미국선교사들은 한국선교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일본기독교대회에 참석한 이수정)

-1883. 이수정은 미국교회에 서신을 보낸다. 지난날 한국에서 생명을 무릎쓰고 천주교를 믿었던 이야기를 서두로 얼마있지 않으면 한국에서도 신앙의 자유가 올 것임을 얘기하고 미국교회에 선교사파송을 강력히 요청한 것이다. 다음은 이수정의 편지의 일부이다. “여러분의 나라는 기독교국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보내주지 않으면 나는 다른 나라가 그들의 교사들을 신속히 파송하리라 생각하며, 또한 그 가르침이 주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을까 하여 걱정하는 것입니다. 비록 나는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여러분들이 파송하는 선교사들을 돕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편지가 미국 선교잡지에 소개되면서 미국선교본부는 언더우드를 선교사로 임명, 파송하게 된다. 피선교지의 사람들이 선교사를 요청하여 선교가 시작된 예는 선교역사가운데서 보기 드문 현상이다. 한국인들의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복음의 수용에 대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사람을 만난다는 게 선교사들에게 얼마나 큰 격려와 힘이 되었을까? 사역을 해 보지만, 이런 주도적인 몇 사람을 통해 사역이 힘있게 일어나게 된다. 

-1885. 마가복음서를 번역한 이수정. 성서공회 루미스목사와 함께 성경의 한국어 번역에 착수, 이른바 현토(縣吐)성서(한문 성서에 한국식 토를 단 것)인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완성하고 한글 마가복음을 출간하였는데, 이것이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 최초로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가지고 온 성서로, 같은 해 만주 봉천에서 로스 목사와 백홍준이 만든 누가복음과 함께 최고(最古)의 한글판 성경이다. 한국에 들어가기 전에 일본에 들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피선교지의 언어로 이미 성경이 번역되어 있음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선교지에 가서 성경을 번역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한국인에게는 이미 그 나라 말로 성경이 번역되어 있었으며 오히려 선교사를 기다리고 있는 사정이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그런고로 우리 땅에서는 복음의 씨가 속히 자라 열매를 거두기가 아주 손 쉬었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을 한아름씩 들고 한국으로 들어갔다. 이수정은 또 윤치호등 일본에 온 유학생들에게 전도하여 85년 7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 것이 도쿄 유학생회의 모체가 되었다. 이듬해 귀국하였다가 수구파(守舊派)에게 살해되었다. (사진-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 

이처럼 만주와 일본에서 동시에 일어난 한국인들의 자발적인 기독교의 수용과 전도, 그리고 선교사파송을 요청하면서 한국선교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을 준비하였다. 


4. 초기선교사들의 입국과 활발한 선교사업

-본격적으로 외국선교사들이 입국하여 선교가 이루어지게 된 과정을 살펴보고, 초기선교사들과 그들의 선교사역을 살펴본다

-1882년 토마스선교사를 태운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인해 미국은 군함을 이끌고 조선으로 와서 격전을 치른다. 이를 신미양요라 한다. 그 후 강압적인 한미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된다. 이후 1883년 민영익을 대표로 한 견미사절단이 미국으로 간다. 거기에서 민영익은 미감리회의 가우처박사를 만난다. (사진-민영익을 대표로 한 견미사절단)

민영익을 만난 가우처박사는 한국선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한국선교를 위해 미국의 선교본부에 편지와 선교비를 보내게 되고 때를 같이 하여 이수정의 선교요청편지를 받으면서 이로 인해 본격적으로 한국선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 미감리회는 1884년 스크랜튼(Wm. B. Scranton)박사와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그리고 스크랜튼의 어머니인 메리 스크랜튼(Mary. F. Scranton)이 한국선교사로 임명한다. 미 장로교회는 1884년 헤론(John W. Heron)을 한국최초의 선교사로 임명한다. 뒤이어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한국최초의 복음선교사로 임명된다. 하지만 한국땅에 가장 먼저 상륙한 선교사는 중국선교를 목표로 1883년 선교지로 떠났던 의사 알렌(Horace N. Allen)이었다. 

1884. 의료선교사 알렌(H.N. Allen) 미국공사관의 공의로 한국에 입국함
(사진-알렌,광혜원1,2,세브란스병원)
1883년에 중국에 왔지만 별다른 선교활동을 하지 못하던 알렌은 한국선교에 대한 소식을 전해듣고 한국으로 간다. 이로써 그는 한국에 상주하는 최초의 개신교선교사가 된다. 알렌은 이후에 벌어지는 수구파와 개화파사이의 싸움인 갑신정변에서 칼에 찔려 죽어가는 왕비 민비의 조카인 민영익을 살려주면서 왕실과 가까운 사이가 된다. 1885년 4월, 왕실은 알렌에게 한국최초의 서양 근대식병원인 국립병원 광혜원을 세우도록 허락한다. 이 광혜원은 후에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꾸며 미국 실업가인 세브란스의 건축기금으로 현재의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이 되었다. 알렌은 왕의 어의가 되고, 광혜원은 이후에 들어오는 많은 선교사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보호막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같이 하나님은 국제수호통상조약이나 국내의 여러사건을 통해 선교사들이 들어오게 하시고, 사역을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을 통하면서도 인간이 계획하지 못했던 방법을 통해서 그의 목표를 이루어가셨다. 

1885. 4. 5 미국 장로교선교사 언더우드와 미국 감리교선교사 아펜젤러 부활주일에 한국 인천에 입국함. 이때부터 본격적인 한국선교가 시작된다. 그래서 1885년을 한국선교의 원년으로 부른다. 아펜젤러는 인천 제물포에 도착즉시 이같이 기도하였다. “우리는 부활주일에 여기 왔습니다. 이 날에 죽음의 철장을 부수신 주님께서 이 백성을 얽매고 있는 줄을 끊으시고 그들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얻는 빛과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언더우드는 독신이었고, 아펜젤러는 임신중인 아내와 함께 제물포항에 도착한다. 현지사정의 악화로 아펜젤러는 아내와 함께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2개월후에 입국하게 되고, 언더우드는 알렌의 도움으로 서울에 들어오게 된다. (사진-언,아,기도문)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1859.7.19~1916) - 미장로회의 첫 번째 복음파송선교사. 
(사진-언더우드1,2, 새문안교회, 벽돌교회, 그리스도신문, 언더우드관, 언더우드가계도, 언더우드가족, 언더우드 일가, 언더우드 일가의 무덤, 노춘경)


한국명 원두우(元杜尤). 1885년 아펜젤러와 함께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가 되어 한국에 와서 광혜원(廣惠院)에서 물리·화학을 가르쳤다. 한국선교를 결정한후 약혼자에게 한국으로 같이 가자고 했을때 no라고 하자 약혼을 파기하고 혼자서 한국으로 입국하였다. 이후 광혜원 여의사로 온 릴리아스 호턴과 결혼하고, 신혼여행으로 벽지순회전도여행을 다녀온다. 잘생겼다. 엘비스 프레슬리인줄 알았다. 1886년, 언더우드에 의해 국내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노사도라고 불려지는 노춘경이다. 그는 알렌의 집에 갔다가 책상위에 있는 한문으로 된 성경과 책 한권을 몰래갖고(훔쳐서) 집에 가서 탐독하다가 예수를 믿기로 작정을 한다. 그리고 언더우드에게 와서 세례를 받고싶다고 한다. 당시 조선은 세례를 법적으로 금지하였다. 복음에 불타오르던 언더우드는 다른선교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춘경에게 세례를 베푼다. 어느날, 한밤중에 서상륜이 언더우드를 찾아온다. 서상륜은 만주에서 로스선교사와 함께 성경을 번역하고 국내로 들어와서 황해도 솔내에 솔내교회를 세운 장본인이다. 서상륜은 솔내에 세례받기를 원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면서 세례를 베풀어주기를 부탁한다. 그 때 언더우드는 이렇게 말한다. “누가 조선땅을 잠자고 있는 땅이요 미개한 나라라고 일렀는가! 누가 조선사람들을 게으른 백성이요 무지한 민족이라 하였는가!” 언더우드는 조정의 강압적인 태도로 인해 쉬이 결정하지 못하고 몇 개월이 흐르고.. 서상륜은 훗날 한국최초의 7인목사중 한사람이 되는, 동생 서경조를 비롯한 3명을 데리고 언더우드에게 다시 나타난다. “목사님, 목사님이 못오실 것 같아서 세례를 받으러 저희들이 올라왔습니다.” 세례를 베풀고, 이로 인해 언더우드는 담대함을 갖게 된다. “목사님, 솔내에는 세례를 받아야 할 사람이 또 있습니다.” 서상륜의 요청으로 얼마 후 언더우드는 솔내로 가서  세례를 베풀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세례가 금지되어 있어서 당시 중국영토였던 압록강까지 가서 세례를 집례한다. 70여명이 세례를 받은 것으로 나와있다. 언더우드는 단지 세례만 주었을 뿐이다. 이미 국내에는 자발적으로 믿고 전도하는 성도들과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1887년, 14명의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한국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가 시작된다. 그리고 솔내교회의 서상륜과 백홍준은 새문안교회의 초대장로가 된다. 1889년에는 기독교서회(基督敎書會)를 창설, 1897년《그리스도신문》도 창간, 1900년 기독청년회(YMCA)를 조직하였으며, 1915년에는 경신학교(儆新學校)에 대학부를 개설, 연희전문학교(오늘 연세대학교)로 발전시켰다. 성서번역위원회를 만들어 한글성서완역하는데 기여하다. 그는 "사람이 일을 아니하면 세상사는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 많은 일을 했다. 1916년 신병으로 귀국, 미국에서 죽었다. 그의 아들,손자,증손자까지 한국선교와 교육등에 헌신하였다. 언더우드의 부인 L S 호턴(한국 이름 호돈·好敦)은 광혜원 의사와 명성황후 시의(侍醫)로 인술을 펼쳤고, 언더우드 2세(한국 이름 원한경·元漢慶)는 3·1운동 당시 일제의 제암리 교회 학살사건을 폭로해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며, 연희대학교 명예총장이 된다. 언더우드3세(원일한)는 선교사요 교육학가로서 연세대학교에서 교수로, 총장서리로, 전쟁때에 UN통역으로 한미간 우호증진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얼마전(2002년) 언더우드4세는 지난 120년동안 한국에서 언더우드일가가 해야 할 일을 다했다면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그들의 삶과 전부를 조선을 위해 기꺼이 바쳤다. 양화진에는 언더우드 4대의 묘역이 있다. 비문에 “언더우드 일가의 정신과 공적은 우리 겨레의 사랑과 함께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고 적혀있다. 기독교기업인 e-land는 언더우드를 기념하여 옷의 브랜드로 만들기도 했다. 언더우드 한사람을 통해 한국초기 기독교와 교육, 사회전반에 걸쳐 많은 변혁과 변화가 있었다. 그 한사람뿐 아니라 그의 아내, 아들, 며느리, 손자, 손자며느리, 증손자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위해 그들의 생명을 바쳤다. 양화진에는 언더우드 일가의 무덤이 있다.

언더우드의 기도-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 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한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 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아펜젤러[Appenzeller, Henry Gerhard, 1858.2.6~1902] 
(아펜젤러,성서번역자들,조선그리스도회보,동상,정동교회1,2,최병헌목사,배재학당,무덤,비문,전도,엘리스 아펜젤러비문)


1885년 언더우드와 함께 미감리회 파송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설립하였다. 배재학당은 고종이 지어준 이름으로 정부의 정식인가를 받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근대식 교육 기관이다. 감리교 최초의 교회인 정동제일교회를 세웠다. 1887년 언더우드, J.S.게일 등과 함께 성경 번역사업에 참여하였다. 그는 암기 위주인 한국의 교육방식을 이해중심적인 교육방식으로 고치는 데도 크게 공헌하였다. 언더우드와 함께 YMCA를 설립을 주도했다. 그의 행적은 서울에만 머물지 않았다. 교회가 출범하기 전인 4∼5월에는 평양을 답사, 선교요충지임을 확인하고 돌아왔고 88년 봄에는 정부의 소환명령으로 중도 포기했지만 언더우드와 함께 북부지방 전도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여행에 나서 평생 조선팔도중 6개 도에 걸쳐 7천2백리길을 돌았다고 하니 당시 교통사정등에 미루어 그 열정이 놀랍기만 하다. 1902년 목포(木浦)에서 열리는 성경번역자회의에 참석차 배를 타고 가다가 목포 앞바다에서 충돌사고로 익사하였다. 마포구 양화진외국인묘지에 묻혔다. 아펜젤러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있다.‘사자처럼 우람하고 여인처럼 우아한가 하면, 주님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용감하게 덤벼드는 정열의 감리교인 아펜젤러. 평생을 두고 이웃만을 섬기며 주님을 증거한 하나님의 사람, 아펜젤러. 아펜젤러의 딸인 앨리스 아펜젤러는 조선에서 태어난 최초의 서양아이이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아버지가 생명을 바친 조선으로 다시 들어와서 이화여자전문학교 초대 총장을 지내며 이화여대의 기초를 마련했다. 앨리스 아펜젤러는 1950년, 한국전쟁을 넉달 앞두고 66세의 나이에 이화여대 학생들에게 설교하다가 죽음을 맞는다. 그의 묘비에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노라 (Not to Be ministered Unto But to Minister)”고 쓰여 있다. 아펜젤러의 막내도 이화여대 교수로 선교에 헌신하였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한국선교사적으로, 그리고 교육,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들이 인천 제물포항에 입항한 1885년을 한국기독교의 원년으로 본다. 지난 1985년에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식을 했다. 그들 당대에만 아니라 그들의 아들, 손자, 증손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한국사랑은 유별나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곳에 있다. 

존 헤론(John W. Heron, 惠論)
테네시 의과대학을 개교이래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이다. 학교의 교수로 남아달라는 학교당국의 제안을 만류하고 주님이 말씀하신 땅끝이 어디인지 찾다가 조선으로 선교지를 정하고 준비한다. 선교본부에 조선으로 파송을 요청하다. “의약품과 의료기기 얼마를 준비할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조선으로 떠나겠습니다.” 1884년 장로교 최초의 조선선교사로 임명받는다. 일본으로 갔다가 알렌과 언더우드,아펜젤러가 조선으로 입국한 후에 조선땅을 밟는다. 알렌의 뒤를 이어 2대 광혜원 원장을 맡아서 생명을 아끼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다가 죽음을 맡는다. “조선과 조선사람들을 더 ..더..뜨겁게 사랑하고 싶소. 그동안 다하지 못한 것...”병원의 조수들,집안일을 돕던 일군들 모두 불러모았다. “나를 사랑해주고 도와준 친구들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한분 한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그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다만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1890년 7월 26일 헤론은 죽음을 맞는다. 정부에서는 양화진언덕을 허락해준다. 헤론은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처음으로 묻힌다. 양화진은 한국을 사랑했던 선교사들과 외국인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묘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The son of God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라고 쓰여 있다. 헤론의 아내와 자녀들도 계속해서 한국의 선교를 위해서 삶을 드렸다.

메리 스크랜톤(Scranton, Mary Fletcher Benton, 1832-1909)
미국 감리회 여선교부 최초의 여선교사이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의사인 아들 스크랜톤선교사와 함께 아펜젤러부부와 함께 1885년 조선땅을 밟는다. 당시 조선여자는 이름도 없었다. 1886년, 메리 스크랜톤은 1명의 거지여자아이를 시작으로 여자학교를 설립한다. 그것이 오늘날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학당이다. 오늘날의 연세대,이화여대등 처음엔 몇 명으로 시작했다. 설립한 이의 비전이 결국 성취되어지는 것을 본다. 스크랜톤의 말이다. “..나는 믿고 있다. 이곳에서 이 땅 조선의 여인들이 인간의 권리를 찾는 문이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바라는 것, 말씀을 믿고 바라는 그것이 실상이 되어 든든한 건물이 세워지고 그 건물속에서 어느나라 여성보다도 당당한 딸들이 늠름하게 걸어나올 날이 있을 것이다. 이 일은 주님께서 시작하신 일이다.” 메리 스크랜톤의 비전이 오늘날 성취되어서 이화여대뿐 아니라 한국의 여성기독교육에 큰 변혁을 가져온다. 비문에는 “오늘 이 땅에 자유 사랑 평화의 여성 교육이 열매 맺으니, 이는 스크랜톤 여사가 이화동산에 씨 뿌렸기 때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사진-메리스크랜톤,이화학당,비문, )

스크래톤선교사(Scranton, B. William, 1856-1922)
미 감리회 파송 선교사. 1885년 어머니 메리 스크랜톤과 아펜젤러부부와 함께 조선땅을 밟았다. 광혜원에서 의료를 했다. 왕립병원인 광혜원(제중원)은 사회 중,상류층을 위한 병원이었다. 스크랜톤은 버림받은 계급, 가난한 사람들, 그늘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조선사람을 향한 병원을 시작한다. 1885년, 세워진 무료병원이 제동병원이다. 고종임금은 스크랜톤의 한국이름인 시린돈의 ‘시’자를 따서 시병원이라는 이름을 하사한다. 스크랜톤은 상동교회를 세우고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의료로, 교육으로 삶을 드렸다. (사진-시병원, 상동병원교회, 알렌과 스크랜톤) 

호머 헐버트(Hulbert, Homer Bezaleel, 1863-1949)
육영공원교사로, 선교사로 와서 한국의 교육에 힘썼다. 그는 “한국이 살아갈 방도는 교육뿐이며, 한국을 정복한 민족(일본)과 대등하게 될 때까지 교육에 전념해야하며, 순수한 인간성을 무기로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육 선구자로서 23년 간(1886-1909) 봉직하면서 한국의 문화, 역사 등 각 분야에서 한국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열정적 선교사였다. YMCA창설을 주도했으며, 조선의 국권회복을 위해 고종의 외교고문, 밀사로 활약하며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되기도 했다. 한국전통노래인 아리랑을 서양악보로 적은 사람도 헐버트였다. 태어난지 1살이 지났을뿐인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묘비에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헌신한 헐버트... ”이라는 추모비와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ister Abbey)”는 어록이 있다. 
(사진-헐버트,고종의 친서,비문)


셔우드 홀 가족(Sherwood Hall)
아버지는 제임스 홀이며 평양에서 의료선교를 하다 일찍 생명을 마감하고, 어머니는 로제타 홀이며 맹인 점자교육의 창시자이며 평양 기홀병원을 세웠다. 한국최초의 여의사 김점동을 길러내었다. 고려대병원의 모체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세웠다. 아들 셔우드 홀은 조선에서 태어났다. 의사요 선교사로서 1932년 크리스마스 씰을 시행하여 결핵퇴치운동을 벌였다. (사진-크리스마스 실) 위 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로 첫 해(1932-33)의 남대문과 두번째 해(1933-34)의 미국의 실을 모델로 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는 소년 소녀의 모습 (사진-셔우드홀,셔우드홀부부,홀과 거지들,평양병원,셔우드홀부부,최초의X-mas 실, 비문) 아버지,어머니,아들,딸,며느리 모두 양화진에 묻혔다. 


사무엘 F. 무어(Moore, Samuel Forman)
1892년 한국으로 들어왔다. ‘백정해방운동의 지도자’라는 호칭으로 불리웠다. 구원받았지만 당시 양반과 서민의 차별이 존재하였고, 특히 백정에 대한 양반의 차별이 대단하였다. 양반출신 교인들은 백정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 없다고 하여 교회를 분리하여 나가는 일도 있었다. 이에 무어선교사는 교회내의 백정차별을 없애고, 오히려 서민과 백정들을 향한 사역에 헌신하여 서민과 백정선교의 열매를 많이 맺었다. 1894년 승동교회를 세운지 4년이 지났을때 세례받은 108명중 30명이 백정출신이었고 1898년 132명의 백정이 세례를 받는다. 1920년 백정자녀들에 대한 교육열이 뜨거워져서 40%가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일반인들의 자녀들중 5%만이 교육을 받았음을 볼때 대단한 변화였다. 그의 묘비에는 우리말로 “조선 인사를 사랑하였고 또 그들을 예수께로 인도하기를 원하였다.”라 기록되었다. 그리고 영문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충성된 종, 아름다운 인격과 정신의 소유자, 한국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다'라는 기록도 있다.


하디(R.A.hardie)  
-캐나다 YMCA파송 선교사. 의사요 선교사로서 강원도에서 의료개척사역을 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함.
-1903년 원산에서 열렸던 기도회에서 하디선교사는 공개적으로 선교사로서의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하는 통회의 기도를 하였다. 이것이 부흥운동의 발단이 되었다. “나는 3년동안 남감리회가 강원도에 세운 교회에서 애써 일해왔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한국교회가 부흥이 안되는 원인이 한국인에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원인이 나한테 있음을 알았습니다.아무리 수고하고 정성을 다해 일을 한다고 해도 성령의 임재와 능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나의 교만과 완악함과 신앙의 부족을 회개합니다” 한 선교사의 고백적인 기도가 발단이 된 이 운동은 그후 평양일대와 전국 각지의 부흥운동과 회개운동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대부흥운동의 불길이 점화되었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목사가 또 외국선교사를 미워한다는 것을 회개하였을대 회개와 부흥의 역사는 전국 각지로 퍼져가게 되었다. 사역자가 먼저 회개하고 무력함을 고백할 때 그때 인간의 역사는 그쳐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사진-하디,길선주,장대현교회1,2, ㄱ자교회, 하디무덤)

이 부흥운동은 한국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만주와 몽고 북경지방까지 확산되었다 한다. 중국을 통해 기독교를 받아들인지 채 30년이 안되어 한국교회는 그 열매를 다시 중국에 전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에도 보겠지만 한국은 짧은 선교역사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인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 


5.초기 한국기독교의 특징

1)성서중심적 특징 -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성경이 번역되었다. 1887년 만주에서 로스와 서상륜, 백홍준, 이응찬등을 통해 예수셩교젼서가 번역되었고, 1885년 일본의 이수정과 루미스등을 통해 마가복음이 번역되었다. 그리고 권서인,매서인들을 통해 성경이 전달되어지고 성경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고 변화되게 된다. 이후에 계속되는 부흥에는 항상 성경이 중심이 되었다. 한국기독교에는 ‘말씀사경회’라는 독특한 모임이 있었다. 말씀의 기초위에 한국의 기독교와 교회는 견고히 세워질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동일하다. 성경이 기초이다.


2)자발적 복음수용과 전도 - 일본에서 이수정의 요청으로 언더우드를 비롯한 미국선교사들이 조선으로 오게 되었고, 인쇄공 김청송의 요청으로 로스선교사가 즙안으로 가서 75명에게 세례를 베풀고, 서상륜등의 요청으로 로스, 언더우드가 소래교회로 가서 세례를 베풀게 되는 등 한국인들의 자발적인 복음수용과 요청으로 선교사역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국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등 교회를 설립하고 전도하는데 한국인들의 주도로 되어졌다. 1907년 대부흥성회가 있었던 장대현교회는 한석진을 비롯한 한국인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였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복음을 받고 가만히 있을수 없었다. 생명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했고, 교회를 세웠다. 로스선교사가 선교본부에 보낸 편지를 다시 보자. “또한 한국인들은 중국인보다 천성적으로 꾸밈이 없는 민족이고 보다 종교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으므로, 나는 그들에게 기독교가 전파되면 곧바로 급속하게 퍼져나갈 것으로 기대한다..”주도적이며 자발적인 태도로 복음을 수용하고 가까운 이들에게로 가서 전도했던 모습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어야 한다. 


3)초기 한국선교사들의 헌신 - 알렌,헤론,언더우드,아펜젤러,제임스홀,스크랜톤,메리스크랜톤,헐버트등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생명을 드린 헌신으로 이 땅에 많은 믿는 자들과 교회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 조선을 사랑하여 웨스트민스트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고 했고, 내 생명이 천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든 생명을 한국을 위해 드리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때로는 한국에 온지 한달만에 죽기도 하고, 아내를 잃어 세 번씩 결혼하기도 하고, 1살된 아들이 먼저 죽어 떠나보내며 아리랑을 부른 선교사도 있었다. 자기들 생명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선교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다. 선교사들 당대에서만 아니라, 그들의 아내,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한국사랑은 특별했다. 우리는 지금 그들의 헌신을 먹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생명을 드려 섬길 사람들은 누구인가?


4)짧은 선교역사이지만 선교사를 파송함 -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외지선교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 독노회 창설로 조직을 정비한 장로교의 첫 사업중의 하나도 이기풍목사를 제주도 선교사로 파송한 일이었다. 이어 1900년에는 한석진목사를 일본 유학생 선교사로, 최관흘 목사를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선교사로, 이듬해에는 김영제 목사를 북간도 선교사로 보내 동포선교를 벌였다. 물론 감리교도 만주에 이화춘목사 배성식·손정도 목사 등을 파송했고 기타 교파들도 자체 선교를 일찍부터 벌였다. 산동성선교를 위해 1913년 박태로 사병순 김영훈 등 3인을 정식 선교사로 산동성에 파송했다. 선교사를 받아들인 피선교지가 이처럼 빨리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역사는 드물다. 로스의 예언이 적중했다. 오늘날 한국은 미국을 이어 세계 제 2의 선교대국이다. (사진-장로교초대7인목사중 한석진-왼쪽아래,이기풍-왼쪽두번째-을선교사로파송, 이기풍-우학리교회)


5)고난을 통해 순전한 믿음을 가짐
초기에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생명을 걸로 믿어야 했다. 한 사람의 크리스찬은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왜냐? 순전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른 동기가 없었다. 고난가운데 믿음이 순전해졌다. 오로지 구원하신 주님에 대한 감사와 아직 구원받지 못한 민족에 대한 측은한 마음과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고 주를 섬겼다. 이후 일제식민지기간과 한국전쟁등 특히나 고난이 많은 나라였다. 그 고난을 통해 순전해졌다.


6.초기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과 죽음(동영상)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1859~1916)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J. D. 언더우드) 

아펜젤러[Appenzeller, Henry Gerhard, 1858~1902] 
-앨리스 아펜젤러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메리 스크랜톤(Scranton, Mary Fletcher Benton, 1832-1909)
-“오늘 이 땅에 자유 사랑 평화의 여성 교육이 열매 맺으니, 이는 스크랜톤 여사가 이화동산에 씨 뿌렸기 때문이다.

H. B. 헐버트(Hulbert, Homer Bezaleel, 1863-1949)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헌신한 헐버트 ”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ister Abbey)”

존 W. 헤론(John W. Heron) 
-양화진에 최초로 묻힌 의료선교사. 광혜원원장, 고종임금 시의(侍醫). 한국체류 5년 33세 별세 
-묘비문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The son of God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제임스 홀, 로제타 홀부부, 셔우드홀
-제임스 홀 : 평양개척 의료선교사. 광성학교 설립.
-“내가 조선인의 가슴에 청진기를 댈때 언제나 나의 청진기도 그들의 심장소리와 함께 두근거렸다. 나는 아직도 조선을 사랑한다”
-로제타 홀 : 평양 기홀병원설립. 맹인 점자교육 창시자
-셔우드 홀 :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여 결핵퇴치운동 펼침
-마펫선교사 “홀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살다가 죽었다. 주님이 명령하매 한국에 기꺼이 왔고, 다시 명령하매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에 갔다. 그는 위대한 신앙, 위대한 사랑, 위대한 자비의 사람이다.”

W.V. 존슨(Johnson, Walter Virgil, 1874-1903)
-한달간의 선교준비기간중 천연두로 생명을 잃음
-묘비문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K.R. 켄드릭(Kendrik, Ruby Rachel, 1883-1908)
-1년동안 황해도 개성에서 여학교교사로 재직함. 급성맹장염으로 죽음.
-묘비문 “만일 내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
-캔드릭의 유언 : "내가 죽거든 텍사스 청년들에게 10명, 20명, 50명씩 한국으로 나오라고 일러주세요" 


J.A 젠센(Jensen, Anders Kristian, 1897-1956)
-한국 전쟁에서 고난을 극복한 A.k.젠센.
-묘비문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사람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은 거리를 왕래하며. 육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J.P. 캠벨(Campbell, Josephine Eaton Peel, 1853-1920)
-감리회 첫 여선교사 배화(培花)의 초석 캠벨
-'내가 조선에서 헌신하였으니 죽어도 조선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라 

D. A. 벙커(Bunker, Dalziel A)
-최초로 애국가 만들고 옥중 전도 시작한 벙커 선교사 
-묘비문 “날이 새이고 흑암이 물러갈 때까지”


사무엘 F. 무어(1860~1906) 
-양반과 천민 신분 제도를 철폐하며, 한국서민을 사랑하여 백정선교에 헌신
-'예수그리스도의 충성된 종, 아름다운 인격과 정신의 소유자, 한국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