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데 전래동화집 이야기




0. 시작 – 만데 전래동화집

어렸을 때부터 동화와 신화를 좋아했다. 붉은 양장에 금색 글씨로 세계 곳곳의 이름이 새겨진 동화집이 집에 있었는데, 지금 떠올려봐도 아주 떨린다. 그 시절 가장 좋아하는 책들이었다. 침을 꼴깍 삼켜가며 다음 장을 넘기던 기억이 날만큼. 북유럽에서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인도와 일본까지 모두 아주 다른 나라 이야기 같으면서도, 동시에 모두 비슷한 이야기 같기도 했다. 숲 속의 호수에는 밤마다 요정들이 장난을 치고, 욕심 많은 왕은 도깨비에게 혼쭐이 나고, 아주 갖은 고생 끝에 자유의 몸이 되는 소녀의 이야기도 있었다. 동화책에서 발견한 마법의 세계는 분명 지금 내가 사는 세상과 달랐지만, 그렇다고 아주 거짓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금 내 눈엔 보이지 않지만, 어디선가 꼭 펼쳐지고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지금까지 꽤 많은 나라의 동화들을 만났지만, 아프리카 동화는 참 드물었다. 이 동화집을 시작하게 된건 내가 먼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서아프리카 만딩고 춤에 대해 공부하면서, 춤만큼 다양한 노래들을 알게 되었다. 오래된 노래들의 특징일까, 또는 사람 사는 건 어디든 비슷한 걸까. 불볕 같은 태양 아래 모래가 흩날리는 사막에서 ‘어디선가 꼭 있을법한’ 마법의 세계들, 용기와 사랑, 믿음과 우정을 불러일으키는 지혜로운 이야기들이 가득 펼쳐진다.

이 만데 동화집에서 주로 살피려고 하는 건 ‘젤리’ 또는 ‘그리오’라 불리는 이들이 만든 노래와 이야기다. 이들의 음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특별하게 여겨졌다. 당시의 나라, ‘만데(Mand?)’에서는 자연의 불가사의한 힘을 ‘냐마(Nyama)’라 불렀다. ‘냐마’는 모든 것을 파괴할 힘과, 또 다시 새롭게 탄생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고 여겨졌다. 이 힘을 이해하고, 인간 세상에 필요한 것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이들을 ‘냐마칼라(Nyamakala)’라고 불렀다. 여기엔 대장장이 ‘누무(Numu)’, 가죽장인 ‘가랑케(Garanke)’, 언어와 음악을 다루는 장인 ‘젤리(Jeli)’, 이슬람 경전 꾸란을 설파하는 연설자 ‘피네(Fune)’가 속했다. 젤리의 ‘음악’은 자연의 힘을 다뤄 만든 창조물이었다. 그리고 그 음악에는 인간과 세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무궁무진한 힘이 있다고 여겼다.


이 나라에는 계급이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왕과 농민이 속한 자유민 계급의 ‘오롱(Horon)’, 그리고 장인계급의 ‘냐마칼라’로 나뉘었다. 전통적으로 ‘젤리’는 냐마칼라로서 왕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거나 노래하고, 옛 선조들의 역사를 그에게 전하거나, 왕의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왕은 그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옷, 집을 주었는데, 그렇다고 왕이 위에 있고, 젤리가 아래에 있는 위계의 관계는 아니었다. 한 쪽이 없으면 다른 쪽이 존재하지 않는, 젤리가 없으면 왕 또한 힘을 잃는 그런 관계였다. 그래서 젤리의 음악에 ‘대가를 바치는 것’이지, ‘지불하는 것’이라 표현하지 않는다.

젤리는 왕 뿐만 아니라 ‘오롱’에 속하는 모든 보통 사람들의 잔치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연주하고, 역사를 이야기했다. 성년식, 결혼식, 그리고 장례식은 인간이 태어나 겪는 가장 중요한 날들이었다. 길을 걷다가도 우연히 마주치면, 젤리는 대뜸 경이로운 칭찬을 하기도 한다. 이 모든 말들과 이야기와 노래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젤리들이 발견한 신비로운 세계, 현실과 자연 사이의 균형적인 관계는 무엇일까? 그들은 이 음악과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했을까?

젤리가 불러온 가장 오래되고 여전히 살아있는 노래들, 노래와 이야기를 오가는, 사랑과 용기와 믿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앞으로 들려드리려 한다. 이번 호의 제목은 ‘만데 전래동화집’인데, 앞서 만딩고 춤 안내서에도 밝혔지만, 여기 문화를 지칭하는 말은 지역에 따라 아주 다양하다. 만데, 만뎅, 만딩고, 말링케, 만딩카 모두 맞는 말이다. 오직 한 가지만 옳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문화라고 말한 댄서가 떠오른다. 세상은 당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그 다양함 자체가 진실이라고. 이 동화집에 가장 어울리는 말은 바로 젤리의 노래가 시작된 나라의 이름, 가장 오래된 이름인 ‘만데(Mand?)’일 것이다.

다음호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바로 ‘얼굴과 입이 아주 큰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다. 얼굴이 아주 커서 불의에 고개 숙이지 않고, 입이 아주 커서 진실을 말하기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 기대해주시라!






1화. 머리와 입이 큰 사나이, 파콜리 – 만데전래동화집

옛날 옛적에, 키는 아주 작고 머리와 입이 아주 큰 사나이가 살고 있었어. 머리가 아주 커서 자랑스러웠고, 입이 아주 커서 그가 뱉은 말은 바람에도 사라지지 않았지. 이 남자의 이름은 파콜리(Fakoli). 사람들은 그를 파콜리다바, 파콜리쿤바, 잠잠콜리란 이름으로 불렀어. 


파콜리는 용감하고 힘도 세고 재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마술을 부릴 수 있는 힘이 있었어. 하루는 모자에 서른 세 개의 독수리 머리뼈를, 어깨엔 서른 세 개의 사자 가죽을 메고 나타났지. 보통 사람이 아니었던 거야. 그도 그럴것이, 이 남자의 삼촌은 철의 나라 소쏘 왕국의 왕이었는데, 삼촌도 강력한 마법을 부리는 자였어. 파콜리는 삼촌을 도와 소쏘 왕국이 저 바다까지 땅을 넓히는 데 큰 힘이 될 거란 운명을 갖고 태어났지. 


파콜리의 삼촌, 소쏘의 왕, 수마오로 칸테(Soumaoro Kante)는 단순한 돌멩이를 아주 단단한 철로 바꾸어 내는 비법을 알고 있었어. 철의 나라 소쏘는 점점 더 힘을 갖게 되었지. 삼촌은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이웃 왕국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어. 나라를 키우는 데 위협이 되는 사람들은 모두 없애려고 했지. 무려 아홉 개의 왕국들이 무너졌어. 단단한 철로 무장한 데다 마법까지 부리는 그의 군대를 누가 당해낼 수 있었겠어.


수마오로에게 나라를 빼앗긴 이들은 이제 하나 남은 유일한 희망, 만데 민족의 둘째 왕자, 순디아타 케이타(Soundiata Keita)를 찾아갔어. 순디아타는 원래 왕이 돼야 했는데, 형에게 왕 자리를 뺏기고, 어머니와 도망쳐 나와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었지. 순디아타는 이웃 작은 왕국들과 힘을 합쳐 그와의 싸움을 준비하기 시작했어. 


순디아타는 수마오로보다 마법의 힘은 없었지만, 그의 옆에는 아주 특별한 존재가 있었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현명한 말을 해주고, 용기를 내야 할 때 두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노래를 부르는 자였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만데 왕국에선 ‘젤리(Jeli)’라고 불렀어. 그리고 젤리는 만데 왕국에만 있었지. 수마오로에겐 없고, 순디아타에게 있는 건 바로 젤리, 순디아타의 젤리, 지혜로운 조언자, 발라 파세케 쿠야테(Bala Faseke Kouyate)였어.


그날은 순디아타와 수마오로가 네 번째 전투를 준비하는 어느 밤이었어. 이미 순디아타는 세 번의 싸움에 모두 지고, 소중한 동료들을 여럿 잃은 상황이었어. 작전을 짜는 천막 안은 두려움에 고요해졌지. 순디아타의 젤리, 발라 파세케는 순디아타를 위해 노래 ‘장조(Janjon)’를 부르기 시작했어. 장조는 전투 앞에서 모두가 겪을 두려움, 그리고 그 두려움을 이겨낸 승리에 대한 노래지. 아무에게나 부르지 않고, 아주 큰 두려움을 이겨내고 큰 승리를 이끌어낸 사람에게만 부르는 매우 특별한 노래였어. 


적 앞에서 웃음을, 
하지만 싸움을 끝내지 마십시오
적을 즐겁게 하라, 
하지만 적의를 거두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에게 인사를 하네, 오, 거대한 두려움이여 
이 싸움의 밤 앞에서 
순디아타가 장조를 춤추네 
돌진하는 적들 앞에서 
만데의 땅 위에서 
나는 당신에게 인사를 하네, 오 승리자여 
이 싸움의 밤 앞에서 


그런데 갑자기, 노래를 끊고 한 남자가 천막 안으로 불쑥 들어왔어. 바로 파콜리였어. 문에 머리가 닿을까 고개를 숙이자, 사람들이 웃었어. 

“오, 키가 작은 이방인이군.” 
하고 발라 파세케가 말했어. 

“만데에서 가장 키가 큰 남자도 고개 숙이지 않고 여기 들어올 수 있지.” 
더 이야기하려는 발라 파세케의 말을 끊고, 순디아타는 파콜리에게 물었어.

“파콜리쿤바, 파콜리다바, 여기에 온 당신의 뜻은 이해했소. 하지만, 우리가 당신을 받아들이기 전에 이 질문을 꼭 해야겠소. 왜 당신의 삼촌을 저버리고, 우리에게 온 것이요?”

“다 알면서 왜 묻는 것이요?” 
하고 파콜리는 갑자기 천막 밖으로 나갔다가, 처음 온 사람처럼 다시 들어왔어. 

순디아타는 파콜리가 스스로 여기에 왔다는 사실에 놀라 일어서며, 성의를 다해 자신의 경솔한 말을 사과했어.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지. 

파콜리는 왜 그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승승장구하는 삼촌 곁에 있지 않고, 싸움에 연달아 지고 있는 순디아타를 제 발로 찾아온 걸까? 파콜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새로운 왕의 자리를 탐낸 걸까? 놀랍게도 그가 요구한 것은 바로 젤리의 노래 ‘장조’였어. 발라 파세케가 순디아타를 위해 부르는 노래를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불러 달라고, 자신이 원하는 건 오직 그것뿐이라 말했어. 

“만데에서 이 노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한 위대한 일에 대해 바치는 노래이지요. 우리의 관습을 당신을 위해 깰 수는 없는 법이지요.” 하고 발라 파세케가 답했지.

그러자 머리와 입이 아주 큰 이 사나이가 천장이 흔들릴 만큼 크게 웃었어. 
“항상 위대한 일들, 언제나 위대한 일들..”
그는 빈정거리며 이 말을 되뇌였어. 


그리곤 발라 파세케는 파콜리가 들어오며 끊겼던 음악을 계속 연주하기 시작했지. 고니의 현을 뜯는 소리가 점점 거세졌고, 천막 안의 모든 이들은 그들이 겪은 전쟁의 순간들을 눈앞에서 보는 것만 같았지. 후끈한 열기가 차오르며, 한둘씩 땀을 흘리거나, 머리에 손을 대며,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어. 순디아타는 동생의 눈물을 보자, 노래를 멈추길 부탁했지.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어. 한 사람이 침묵을 깨고, 지금까지 세 번의 전투를 치르며 우리가 얼마나 함께 단결하게 되었는지, 하지만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수망오로의 오른팔과 같은 장군이 한 번에 4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이야기를 했어. 갑자기 어둠 속에서 웃음 하나가 터져 나왔고, 불타는 눈을 한 이가 순디아타를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

“그자는 악마지!”하고 파콜리는 웃음을 멈추지 않으며 말했어. 

“나, 잠잠콜리, 캉쿠바 칸테의 아들은 내일 전투에서 그자를 처치하겠소.”하고 순디아타 앞에서 약속을 해. 또다시 천막은 침묵에 잠기며,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고민했어. 

“파콜리, 말은 물과 같지요. 한번 쏟으면, 다시 담을 수 없지요. 이방인 당신을 위해 우리는 만데의 관습을 깨고, 당신의 말을 받아들이겠소.” 하고 순디아타는 그의 앞에서 말했어.

그리고 다음 날, 파콜리는 그가 한 말을 지켰고, 약속을 받기 위해 순디아타의 천막으로 왔어. 이제 장조 노래가 자신의 것이라 외치며 웃는 파콜리를 보며, 순디아타의 젤리는 그를 칭송하며 이렇게 말했어. 

“머리와 입이 아주 큰 사나이시여, 파콜리쿤바, 파콜리다바, 캉쿠바 칸테의 아들이시여, 당신의 승리를 축하합니다. 만데에서는 좋은 일엔 항상 행운이 함께 한다고 하지요.” 하며 의미심장하게 파콜리를 노려보았어. 

파콜리는 머리를 크게 흔들어대며 악마처럼 크게 웃었고, 별안간 천막 안으로 화살이 날아와 순디아타 옆에 꽂혔어. 순디아타는 다른 장군의 이름을 대며, 그를 꼭 처치해달라고 부탁하지. 

그리고 다음날, 파콜리는 순디아타가 말한 이를 잡아 와 그의 앞에 데려놓았어. 

“젤리 발라 파세케, 만데의 법을 가장 잘 아는 이여, 이제 이 노래는 나의 것인가?” 하고 젤리에게 물었지. 

“하나의 업적은 아무런 영향이 없습니다. 두 개의 업적은 생각해볼 만 하지요. 하지만 세 개는 되어야 과연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발라 파세케가 답했어. 

그러자 파콜리는 문 쪽으로 걸어가 자신의 작달막한 몸을 거인처럼 쑥쑥 키우기 시작했어. 몸은 점점 커져서 큰 머리로 천장을 천천히 들어 올려 천막을 아주 뒤로 발라당 무너뜨리게 되었지.    

그제서야 순디아타는 세 가지 업적이 모두 완성되었다고 젤리에게 말하고, 파콜리가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는 동안 젤리 발라 파세케 쿠야테는 탄식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적 앞에서 웃음을, 
지만 싸움을 끝내지 마십시오
적을 즐겁게 하라, 
하지만 적의를 거두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에게 인사를 하네, 오, 거대한 두려움이여 
이 싸움의 밤 앞에서 
파콜리가 장조를 춤추네 
돌진하는 적들 앞에서 
만데의 땅 위에서 
나는 당신에게 인사를 하네, 오 승리자여 
이 싸움의 밤 앞에서 


2화. 부자 상인 마사니 시쎄 – 만데 전래동화집



옛날 옛적에, 마사니 시쎄라는 부자 상인이 살고 있었어. 그의 집은 황금으로 가득 찰 만큼 부자였지. 사람들이 필요한 걸 모두 갖고 있었고, 자신이 필요한 건 황금으로 모두 구할 수 있었지. 불가능한 게 없었던 그는 세상 무서운 게 없었어.

어느 날, 마사니는 강가에서 어느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돼. 마사니는 지금까지 숱한 청혼을 받았지만, 그가 원하는 여인을 찾지 못했지. 그는 그 여인에게 청혼했지만, 안타깝게도 여인에겐 이미 오래전에 약혼을 한 남자가 있었어.

마사니는 바로 황금을 마차에 싣고 그녀의 부모님을 찾아갔어. 그때는 부모가 자식의 결혼을 정하는 시대였어. 딸의 약혼자는 가난한 어부였기에, 마사니의 황금 앞에서 그만 결혼 상대를 바꾸고 말아. 오래된 약속도 황금 앞에서 힘을 잃고 말았지. 원하는 건 모두 가질 수 있었던 마사니는 세상 무서운 게 없었어.

드디어 결혼 날이 밝았어. 결혼식을 보기 위해 손님들이 구름같이 몰려왔어. 마사니의 집 마당엔 푸짐한 음식 냄새로 가득 찼지. 코라 연주가 부드럽게 흐르는 사이로 사람들은 환하게 웃고 춤췄어. 결혼식을 기다리는 마사니의 입에도 미소가 계속 걸려있었지. 미소 지으며 신부의 무릎에 잠시 기댄 마사니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어.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그는 갑자기 숨을 잃었지. 너무나 갑작스런 죽음에 손님들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하자, 코라를 연주하던 젤리가 오래된 멜로디에 새롭게 가사를 붙여 이렇게 노래를 불렀지.

라이라라 라이라라
라이라라 마사니 시쎄~

인생은 그런 거야,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지.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지
아무리 황금이 많더라도, 죽음을 막을 수 없지
아무리 불쌍한 사람이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지
아무리 모든 힘을 가졌다 해도, 죽음을 막을 수 없

라이라라 라이라라
라이라라 마사니 시쎄~

 

모든 것을 가지고, 모든 힘을 가진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노래는 마사니 시쎄라는 이름과 함께 널리 퍼지며,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노래가 되었어. 또, ‘세상’이란 뜻의 ‘두니야(Dounya)’란 제목으로도 불렸지. 마사니 시쎄가 이루고 싶어 했던 여인과의 결혼은 다른 노래에선 아이로 변하기도 했어. 모든 것을 가져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람도 있고, 돈은 없지만 아이가 많은 사람도 있다고 말이야. 그렇게 젤리들은 계속 노래했어. 우리 모두는 다른 운명을 타고났고, 서로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야. 

다음 이야기는 ‘사랑을 잃은 하마의 이야기 – 말리 사조’로 이어집니다.


3화. 사랑을 잃은 하마, 말리 사조 – 만데 전래동화집

옛날 옛적에, 검은 강과 하얀 강이 함께 흐르는 마을이 있었어. 두 강이 함께 만나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물결은 크고 거칠었지. 마을의 여인들은 빨래하거나 물을 뜨러 가기 위해 이 강에 꼭 가야 했는데, 악어나 무서운 동물들 때문에 그 강에 가길 무서워했어.

어느 날, 아이를 가져 배가 부른 여자가 물을 뜨기 위해 강으로 갔어. 그때, 갑자기 물가에서 하마 한 마리가 나타난 거야. 근데 다른 하마와 조금 다르게 생긴 하마였지. 몸은 회색인데, 발은 하얬어. 얼굴엔 하얀 점이 있고, 눈은 태양처럼 황금색이었지. 여자는 하마를 보고 무서워 떨었지만, 하마는 여자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안심시켰어. 그리고 하마는 오늘부터 여자와 마을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어. 그 나라 말로 하마는 ‘말리’라고 부르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 하마를 ‘말리(Mali)’라고 부르며 고마워했어.

몇 달 후 여자는 딸을 낳았고, ‘순수’라는 뜻을 가진 ‘사조(Sadio)’란 이름을 지어 주었어. 사조는 점점 자라나며, 하마 말리와 점점 가까워졌어. 사조는 매일 말리의 등에서 물속으로 뛰어내리고 수영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우정은 점점 사랑으로 변해갔지.

어느 날이었어. 젊은 사냥꾼이 마을에 왔다가 사조를 보곤 첫눈에 반한 거야. 하지만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마음이 말리에게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 사냥꾼은 그 사실을 믿지 않았고, 사조와 말리가 함께 있는 걸 볼 때마다 분노가 차올라 어쩔 줄을 몰랐지.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는 어느 날 말리를 없애버려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결국 말리는 사냥꾼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아. 마을을 지켜오던 하마 말리가 사라지자, 다시 마을엔 위험한 일들이 찾아왔지. 사조 또한 평생 혼자로 살았어. 오늘날, 검은 강과 하얀 강이 만나는 바풀라베 마을엔 말리와 사조를 기억하기 위해 하마 동상이 마을 앞을 지키고 있지. 

”아, 말리 사조.
두 강이 만나는 마을의 하마
말리 사조, 어떻게 목숨을 잃었나.

물에 사는 동물들,
뭍에 사는 동물들,
모두 사랑이 뭔지 알지
인간들도 사랑이 뭔지 알아야해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하고 친구가 될 수 있지

말리 하마가 사조의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지
남자아기든 여자아기든 당신의 아이와 친구가 되겠다고“


아, 전설이 아닌 실제 이야기도 있단다. 바풀라베 마을에 식민지 관리로 왔던 유럽 남자는 매일 밤 꽥꽥 울어대는 하마의 목소리를 싫어했었대. 그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언제나 죽이고 싶도록 화가 났었다는군.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하마를 친구처럼 좋아했어. 옛날부터 마을에 위험한 일이 생기면 하마가 마을로 내려와 울었다고 해. 검은 강과 하얀 강이 섞인 강물처럼 회색 몸과 하얀 발을 가진 하마는 어쩌면 그 마을의 수호신 같은 존재였는지도 몰라. 바풀라베 마을은 지금도 말리 사조의 마을이란 별명을 아직 갖고 있어.

세상엔 항상 세 가지 진실이 있다고 하지. 만약 사냥꾼과 사자가 만나 벌어진 사건일 때, 사냥꾼의 진실, 사자의 진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일어난 사실 이렇게 세 가지가 있대. 오늘 들려준 말리 사조의 이야기는 사자의 진실과 같단다. 사냥꾼 버전의 전설엔 말리는 수치스러운 짓을 해 하마로 변한 남자로, 결국 사랑하는 여자의 배신으로 유럽인의 손에 죽게 되지. 세상엔 이 두 가지의 말리 사조 전설이 함께 떠돌고 있단다. 너는 어떤 이야기를 믿니?


4화. 왕과 씨앗, 바니데(Banide) – 만데 전래동화집

4화. 왕과 씨앗, 바니데(Banide)

옛날 옛적에, 자식이 없어 나라를 물려주지 못하는 왕이 살고 있었어.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물다, 결국 왕은 지금까지 나라를 지켜온 전사들 중에서 자신의 시험을 통과하는 사람을 다음 왕으로 삼기로 결심했어. 그는 모두에게 하나의 씨앗을 주었지.  그리고 이 씨앗을 잘 보살펴라고 말해. 일년 후 얼만큼 잘 자랐는지를 보겠다고 하면서 말이야. 

자와라는 그 씨앗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함께 매일 물을 주고 씨앗을 심은 화분을 들여다보며 정성껏 보살피기 시작했어. 그런데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연두색 작은 새싹 하나 볼 수 없었지.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씨앗이 잘 자라고 있는지 보란듯 자랑하고 있는데도 말이야. 누군가의 씨앗은 나무가 되기도 했고, 꽃을 피우기도 했어. 자와라의 씨앗 빼고는 모든 씨앗은 눈부시게 자라고 있는 듯 보였어.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왕과 약속한 날이 밝았어. 왕은 그때의 씨앗을 지금까지 얼마나 잘 키웠는지 보고싶다고 모두에게 말했지. 자와라는 아무것도 나지 않은 화분을 가져가기를 망설였지만, 그의 아내가 그대로 가져가도록 권했어. 왕은 한 자리에 모인 모든 화분들, 나무가 되고 꽃이 된 화분들을 둘러보았어. 그리곤 제일 끝에 서 있는 자와라의 텅 빈 화분도 보게 되었지. 

왕은 모든 전사들을 불러모아, 다음 왕은 자와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어. 그리곤 자와라 한 사람만이 정직하게 약속을 지켰다고 말해. 왕이 준 씨앗은 뜨거운 물로 한번 삶은 씨앗이라, 절대로 자랄 수 없는 씨앗이었던 거야. 정직함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 오직 자와라만이 왕이 될 수 있었지. 

“아니라고 말해요. 

아니라고 말해요. 

당신이 아니라고 말할 때, 약속을 지키는 자가 되죠. 

변하지 않아요. 

변하지 않아요. 

황금을 준대도, 세상 모든 좋은 것을 줘도 

나는 변하지 않아요. 

그건 약속을 지키는 자가 아니죠. 

모든 것을 잃는 대도 

그것이 내 약속을 깨진 못하죠. 

당신의 비밀을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말하지 마세요. 

세상에 모든 일이 벌어져도 배신자가 되지 마세요.

좋은 때가 있고 어려운 때가 있고 

나는 항상 여기 있을 거예요

나를 배신하지 않을거예요.” 

– 노래 ‘바니데(Bannide)’ 중에서 

말리와 니제르 사이엔 ‘바니’라 불리는 강이 있대. 그 강엔 전설이 하나 있는데, 사람이 죽어 저승으로 가는 강을 건널 때, 그 강의 중간에 어느 뱃사공이 기다리고 있대. 그가 돌아가 생전에 지은 악행의 빚을 갚지 못하면, 그 강을 통과할 수 없도록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더군.  바니데 노래는 누구에게나 항상 진실을 말하겠다는 결심으로 유명한 왕 ‘사누그 김바(Sanougue Gimba)’에게 바쳐진 노래라고 해. 힘들더라도 선한 방향을 택하고, 악한 선택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지. 세상에 태어나 우리가 한 일은 그림자처럼 우릴 따라다닐 거라고. 우리의 무덤까지 말이야! 

이 ‘왕과 씨앗’ 이야기는 노래 ‘바니데’가 담고 있는 내용 그 자체는 아니고, 메시지가 비슷한 이야기를 골라 함께 썼다.

5화. 공주와 상처 – 만데 전래동화집

  

옛날 옛적에 어느 공주의 이야기야. 공주는 결혼할 상대를 찾고 있었는데, 단 하나의 조건만 따졌어. 그건 몸에 상처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지. 수많은 왕자들이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온갖 보물을 이고 궁궐을 찾았어. 그때마다 공주의 동생은 파리로 변신해 옷 속으로 들어가 크고 작은 상처들을 찾아냈지. 모두가 영문도 모른 채 헛수고로 돌아가고 말았어. 공주에 대한 소문은 아주 멀리까지 퍼졌어. 계속해서 많은 이들이 금은보화를 이고 찾아왔지만, 모두들 아무 이유도 모른 채 돌아가고 말았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새하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공주를 찾아왔어. 공주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동생은 재빨리 파리로 변신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지. 놀랍게도 그의 몸은 상처 하나 없이 아주 깨끗했어. 동생은 흥분된 목소리로 찾았다 하고 공주의 귓가에 대고 말했지. 드디어 결혼 상대를 찾은 공주는 다음 날, 하얀 옷을 입은 남자와 동생과 함께 궁궐을 떠났어.

그들은 계속 서쪽으로 걸어갔어. 마을 시가지를 벗어난 지 꽤 되었는데도, 계속 계속 걸었어. 공주와 동생은 도대체 집에 언제 도착하느냐고 물었어. 그럴 때마다 남자는 지금 집으로 가고 있다고 자길 믿고 따라오라고 했어. 마침내 도착한 곳은 서쪽 끝자락에 있는 아주 커다란 숲이었어. 깊숙이 숲으로 들어가 어느 큰 나무 아래에서 남자는 여기가 자신의 집이라 말했어.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어.

몇 날 며칠이 지나도 공주와 동생은 남자의 가족도 친구도 어느 누구도 만날 수 없었어. 그리고 남자는 매일 밤만 되면 잠자는 공주 몰래 집을 나가는 거야. 수상하게 생각한 동생은 어느 날 밤, 파리로 변신해 남자의 뒤를 쫓았지. 남자는 집 밖을 잠깐 걸어가더니, 입고 있는 옷을 덤불에 숨기고는 아주 커다랗고 눈부시게 하얀 뱀으로 변신했어. 그는 밤이 될 때마다 숲속에서 뱀이 되어 생활하다, 해가 뜨면 벗어놓은 옷을 걸치고 인간의 몸으로 공주에게 다시 돌아왔지. 남자가 낮잠을 자는 사이를 틈타, 공주와 동생은 재빨리 원래 살던 궁궐로 도망가기 시작해.

숲을 헤치고 나와 마구 뛰어가던 그들의 눈앞에 아주 큰 강물이 나타났어. 뒤를 돌아보는데 저 멀리 덤불에서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공주와 동생은 강 위를 날고 있는 검은 새에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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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게 해줘요 / 목이 긴 검은 새여
나는 소 한 마리가 있어 / 목이 긴 검은 새여
강을 건너면 당신에게 주겠어요 / 목이 긴 검은 새여
나는 양 한 마리가 있어 / 목이 긴 검은 새여

그러자 강 위를 날고 있던 목이 긴 검정 새가 날아와 둘을 물고 강 건너편으로 데려가 주었어. 그런데 강 건너편에서 남자의 노랫소리가 들렸어. 남자도 공주와 동생이 부른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 목이 긴 검정 새는 남자가 있는 쪽으로 날아가 그를 물어 강을 건너기 시작했어. 공주와 동생은 검정 새를 향해 다시 크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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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지 마요 / 목이 긴 검은 새여
그는 소가 없어요 / 목이 긴 검은 새여
무서운 뱀이에요 / 목이 긴 검은 새여
무서운 큰 뱀이에요 / 목이 긴 검은 새여

검정 새는 남자를 강 중간에서 떨어뜨렸고, 이후로 남자는 그 강에 사는 뱀이 되었지. 

자, 여기서 이야기는 끝이란다. 검정 새와의 약속을 지킨다면, 그들은 다시 하얀 뱀을 만나진 않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몸에 상처가 없는 사람을 찾던 공주에게는 상처가 하나도 없었을까?  

 

*
이 만데 전래동화집은 그리오의 노래에 담긴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역사적으로 그들이 남긴 노래엔 전쟁에서 이긴 왕과 전사들을 칭송하는 노래들이 많았습니다. 이미 ‘파콜리’와 ‘순디아타 케이타’ 왕을 통해, 충분히 용기있는 이야기는 전한 것 같아, 이번 화부터 그리오의 노래를 떠나 부르키나파소에서 오랫동안 구전된 이야기 중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계속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골라 들려드리려 합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다려주세요! 


6화. 숲으로 간 고아 – 만데 전래동화집

오늘은 죵메네 축제의 마지막 날이야. 죵메네는 이슬람의 타바스키 축제가 끝나고 한달 정도 뒤에 시작하는 보보 민족의 축제야. 이날엔 1년 동안 마을에서 나쁜 짓을 한 사람들 집에 찾아가, 그 사람이 한 나쁜 짓들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지. 그래서 오늘 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 

옛날 옛적에 어느 여자아이가 태어났어. 그런데 슬프게도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돌아가시고 말았지.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된 아이는 아버지의 남동생이 대신 키우겠다고 데려갔어. 그는 형의 아이를 제 자식처럼 아꼈지만, 그의 아내는 반대였어. 아내의 마음엔 불길이 있었지. 솟구치는 불길을 고아에게 뿜어내고, 또 뿜어냈어. 

시간은 흘러 흘러, 고아는 자라 열몇 살의 소녀가 되었어. 그러던 어느 날, 죵메네 축제 날이 온 거야. 숙모의 구박을 받으며 자란 고아는 머리가 덕지덕지 뭉쳐져 있고, 옷은 더러운 넝마 같았지. 축제 날, 모든 집의 엄마와 딸들은 머리를 예쁘게 꾸미기 위해 함께 장터에 나갔어. 고아는 혼자 밖으로 나가 어떤 길이든 발 닿는 대로 걷기 시작했어. 모두가 어디로 갈지 알았지만, 그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지. 머리할 돈도 없고, 머리해줄 사람도 없고, 그냥 어디든 걸어가자는 마음으로 걷고 또 걸었어. 그러다 두 갈래 길이 나왔고, 고아는 하나의 길을 택했어.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는 길이었어. 

숲속에 이르자, 넓은 팅이 나왔어. 팅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곡식의 껍질을 까는 큰 터인데, 거기엔 풀이 자라지 않지. 그러다 그녀는 빈터에 아주 커다란 뭔가가 누워 있는 걸 발견했어. 아주 아주 커다란 뱀이었어! 고아는 너무 놀라, 난 길을 잃은 것뿐이에요! 여기 오려고 한 건 아닌데 하고 외쳤어. 그러자 뱀이 말했어. 너는 길을 잃지 않았어. 이리 와. 

뱀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물었고, 고아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축제날에 더러운 머리를 한 사람은 자신밖에 없을 거라며 머리를 만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고 말했어. 그리고 정처 없이 걷다 여기에 도착했고, 당신을 만나 너무 놀랐다고 말했어. 

커다란 뱀은 빈터에 놓인 기다란 콰레 의자에 앉으라고 했어. 고아는 이 의자는 너무 금처럼 반짝여요, 앉을 수 없어요라고 손사래를 쳤지. 그러자 뱀은 맞아, 이건 금으로 만들었어, 여기 앉으라고 다시 권했어. 그리고 뱀은 의자에 앉은 고아에게 이렇게 말했어. 내가 너에게 길을 잃지 않았다고 했지? 내가 너의 머리를 만들어줄게. 

고아의 심장은 무서워서 아주 쿵쾅거리기 시작했어. 커다란 뱀은 네레 나뭇가지를 꺾어, 그녀의 머리 가장자리를 툭툭 치듯이 쓰다듬었지. 그랬더니, 놀랍게도 아주 아름다운 머리로 변하는 거야.  모든 치장이 끝나자, 뱀은 고아에게 자신이 머리를 만들어준 걸 비밀로 하라고 해. 약속을 어긴다면, 내가 널 삼켜버릴 거야 라고 말하며. 고아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아의 머리를 보는 사람마다 모두 탄성을 내질렀어. 거리의 젊은 남자들은 모두 고아에게 사랑의 화살을 쏘고 싶다고 구애했지. 아, 소녀여, 도대체 누가 당신의 머리를 이토록 아름답게 만들었나요? 하고 한 남자가 물었어. 고아는 대답 대신 이렇게 노래를 불렀지. 

죠냐냐냐베 콩오, 코 죠냐냐냐베 콩오
콩오 티길레 콩고 람바 죠냐냐냐베 콩오

숲에는 숲을 지키는 신이 있어요
숲을 지키는 신은 우리도 지켜주지요 

집으로 걸어가는데,  또 다른 남자가 물었어. 그러자 고아는 아, 젊은이여, 당신은 이런 질문을 하기엔 너무 잘생겼어요라고 답하며 또 이렇게 노래를 불렀지. 

 죠냐냐냐베 콩오, 코 죠냐냐냐베 콩오
콩오 티길레 콩고 람바 죠냐냐냐베 콩오

숲에는 숲을 지키는 신이 있어요
숲을 지키는 신은 우리도 지켜주지요 

집으로 돌아온 고아의 머리를 보고, 숙모는 누구든 당장 죽일 것 같은 얼굴로 우리 집에 없어진 돈이 있는지 봐야겠어라고 말했어. 숙모는 마치 누구에게든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처노베야(나쁜 주술사) 같았지. 너가 돈이 어디 있어서 그 머리를 만든 거야? 엉덩이에 숨겨놨니? 니가 내 돈을 훔친 거니? 누구한테 빌린 거니? 숙모의 불길 같은 호통이 이어지자, 고아는 다시 이렇게 노래를 불렀어. 

 죠냐냐냐베 콩오, 코 죠냐냐냐베 콩오
콩오 티길레 콩고 람바 죠냐냐냐베 콩오

숲에는 숲을 지키는 신이 있어요
숲을 지키는 신은 우리도 지켜주지요

숙모는 고아가 하는 말을 하나도 듣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어. 그러자 갑자기 숙모의 딸이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갔어. 숙모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온 딸은 고아의 머리를 보자마자 마음에 불길이 일었지. 그 불길은 그녀의 발걸음을 숲으로 향하게 했어. 두 갈래의 길이 나오자, 하나의 길을 택했고, 그대로 걸어가 숙모의 딸도 아주 커다란 뱀을 만났어. 커다란 뱀은 똑같이 그녀의 머리를 아름답게 만들어줬어. 숙모의 딸은 머리 값이 얼마냐고 물었고, 뱀은 돈 낼 필요가 없다고 했지. 다만 비밀을 지키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삼켜버릴 거라고 말했어. 

그녀의 머리는 고아의 머리보다 훨씬 예쁘게 만들어졌어. 길거리의 남자들은 모두들 사랑의 화살을 쏘고 싶다고 외쳐댔지. 숙모의 딸은 당신은 이런 질문을 하기엔 너무 잘생겼어요라고 말하며, 고아와 같은 노래를 불렀어. 

 죠냐냐냐베 콩오, 코 죠냐냐냐베 콩오
콩오 티길레 콩고 람바 죠냐냐냐베 콩오

숲에는 숲을 지키는 신이 있어요
숲을 지키는 신은 우리도 지켜주지요

그리곤 신이 나서, 이 머리는 큰 뱀이 만들어줬지!라고 덧붙이고 말았지. 그런데 기억나니? 뱀이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삼켜버리겠다고 한 말을. 

그녀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숙모가 머리를 보고 또 화들짝 놀라고 말았지. 너도 내 돈을 가져갔니? 누가 너 머리를 만든 거니? 하고 소리쳤어. 그러자 딸은 고아와 똑같이 이 노래를 불렀어.

 죠냐냐냐베 콩오, 코 죠냐냐냐베 콩오
콩오 티길레 콩고 람바 죠냐냐냐베 콩오

숲에는 숲을 지키는 신이 있어요
숲을 지키는 신은 우리도 지켜주지요
 

아, 엄마, 엄마는 이 질문을 하기엔 너무 아름다워요. 숲속의 큰 뱀이 만들어줬죠. 그리고 뱀은 이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숙모의 딸은 신이 나서 이렇게 말했어. 숙모는 자신의 돈을 훔치지 않은 걸 알고, 딸과 함께 집 밖으로 나갔어. 길을 걷던 중, 아주 잘생긴 남자가 두 모녀에게 다가왔어. 그리고 사랑의 화살을 쏘고 싶다고 말하며, 누가 너의 머리를 만들어줬는지 물었어. 그러자 딸은 노래를 부르며, 당신은 이 질문을 하기엔 너무 잘생겼어요라고 답하며 큰 뱀이 머릴 만들어줬다고 말했어. 잘생긴 남자는 묻지 않고 지나갈 수 없었어요라고 답하며, 당신과 함께 걷고 싶다고 말했어. 숙모의 딸은 남자와 단둘이 길을 걷기 시작했어.  

마을을 벗어나 두 갈래의 길이 나왔어. 남자가 숲으로 가는 길을 택하자, 숙모의 딸은 당신은 숲속에서 사나요하고 물었어. 남자는 숲에 친구가 있다고, 같이 만나러 가자고 말했어. 그들은 계속 걸어갔어. 걸어가다 남자가 잠깐 오줌을 누고 오겠다며 자신을 기다려달라고 말해. 거의 다 왔다고 말하면서. 그녀는 남자를 기다리다, 갑자기 고개를 들었어. 커다란 뱀이 자신을 아주 크게 둘러싸고 있는 걸 보았지. 그녀는 깜짝 놀라 나는 나쁜 짓은 하나도 하지 않았어요하고 외쳤어. 그러자 커다란 뱀은 아니야,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랬지 하며, 뱃속을 갈라 내장을 꺼내 그녀의 머리를 만들어줬어.


이 이야기는 부르키나파소 보보민족에서 내려오는 전래동화입니다. 부르키나파소 보보디울라소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도시 ‘바마(Bama)’에서 라디오로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바마 체체레, 본명은 조엘 사누 님이 들려주었어요. 실제로 이야기를 들려준 때가 죵메네 축제날이었지요. 죽은 이들을 1년에 한 번씩 기리는 축제이면서, 또 나쁜 짓을 저지른 마을사람들을 찾아가 그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해요.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운 남편도 있고, 이웃의 물건을 훔친 사람도 있죠. 세상에 비밀은 없다지요. 어떤 이는 노래를 듣고 울며 반성하기도 하고, 나쁜 짓을 많이 해 이미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올 걸 아는 사람은 그날 밤 도망을 치기도 하지요. 이 축제날에 부른 노래는 그날 이후로 부르지 않아요. 그렇게 다시 새로운 1년을 맞이하지요. 우리가 기억하기 위해 축제를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약속을 잊곤 하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내년 축제날에도 집 앞이 아주 시끄러울 거예요. 


7화. 코끼리와 고슴도치 – 만데 전래동화집

옛날 옛적에, 모래가 휭휭 날리는 바싹 마른 땅에 여러 동물들이 살고 있었어. 아주 아주 옛날이라 동물밖에 없을 때였지. 아, 꼭 그렇진 않구나. 숲에 사는 요정도 있고, 거인 요정과 난쟁이 요정들 역시 같이 살고 있었단다. 인간은 아직 이 땅에 나타나지 않았을 만큼 아주 먼 옛날이였어.

그때는 말이야. 강이 하나밖에 없었단다. 아주 멀리멀리 있었지. 작고 짠맛이 나는 강이었어. 그 강의 주인은 바로 작은 고슴도치. 아주 아주 작은 사람처럼 생긴 땅의 요정 워크로니가 고슴도치에게 이렇게 말하며 주었단다. 

“고슴도치야, 이 강의 주인은 바로 너란다. 만약 누군가 너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강물을 마신다면, 이 강은 마르게 될 거야. 그리고 네가 물을 마시고 싶은 누군가의 요청을 거절해도, 이 강은 마르게 될 거란다.”

사실 고슴도치는 성질이 고약하지 않았어. 가시 돋친 외모 때문에 그런 분위기를 풍겼을 뿐이지. 물을 마시러 온 다른 동물들은 딱 한 마디만 하면 됐어. “작은 고슴도치야, 나는 너무 목이 말라. 너의 강물에서 물을 마실 수 있을까?” 그러면 고슴도치는 언제나 그렇다고 말했어. 누구든 실컷 물을 마실 수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어떤 파리가 물었는진 모르지만 벌겋게 물린 자국이 있는 코끼리가 일어나 이렇게 말했어.

“동물 중에 가장 크고, 가장 세고, 가장 강한 내가 그 보잘것없는 고슴도치에게 매번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는 다신 그러지 않겠어. 오늘부터 나는 고슴도치의 허락 없이 물을 마시겠어.”

작은 고슴도치는 그 자리에 없었어. 고슴도치를 기다리던 다른 동물들이 코끼리에게 말했어.

“코끼리여, 그러지 마세요. 아무것도 줄 것 없이 허락만 구하면 돼요. 고슴도치는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코끼리는 다른 동물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어. 바로 일어나 강으로 들어갔지. 하지만 코끼리가 물을 마시려고 하기도 전에, 강물은 마르고 말았어. 코끼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부리나케 강을 떠났어.

그때 바로 고슴도치가 도착했어. 짠맛이 나는 작은 강이 말라버린 걸 발견하곤, 그는 작은 앞발을 들고 서서 이렇게 말했어.

“나의 작은 강물을 누가 다 마셨습니까?”

“코끼리예요.” 다른 동물들이 목소리를 합쳐 대답했어. “우리는 그러지 말라고 말을 했다구요.”

그러자 작은 고슴도치는 작은 발을 들고, 화난 목소리로 이렇게 노래하기 시작했어.

“나의 작은 강물,
코끼리가 모두 비워버렸네.
내가 만약 코끼리를 보기라도 한다면
내가 만약 코끼리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나는 그와 싸울 것이다.
나의 강물을 코끼리로부터 돌려받겠다.
이렇게 고슴도치의 말을 마친다.”

그리곤 고슴도치는 곧장 코끼리를 찾으러 떠났어. 그는 덤불숲을 종종 걸으며 코끼리를 찾아다녔어. 때때로 작은 두 발을 세워 서기도 하고, 나무에 오르기도 하며 샅샅이 코끼리를 찾아다녔어.

고슴도치는 정말 화가 나 있었어. 하지만 고슴도치가 어떻게 코끼리를 이길 수 있어?

“물론이지! 나는 이길 거야.” 하고 동물들에게 고슴도치는 대답했어.

작은 고슴도치는 아주 오랫동안 걸었어. 코끼리를 발견한 건 거의 새벽이었지. 커다랗고 피부가 두꺼운 이 동물은 마구마구 쌓여있는 음식을 싹쓸이하고 난 후였어. 그리고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며 쉬다가 잠이 들었어.

작은 고슴도치는 커다란 코끼리에게 곧장 걸어갔어. 그리고 발로 한 번 차고, 두 번 차고, 계속 찼어. 코끼리는 눈을 번쩍 떴어.

“너로구나, 네가 내 작은 강물을 모두 마셨구나. 그렇지?”하고 화가 난 고슴도치가 물었어.

“그래, 나다. 나야 나. 그래서 넌 뭘 원해?” 코끼리가 투덜댔어.

“너와 싸우겠다!”

“아! 하하하! “ 코끼리는 배를 잡고 큰 소리로 웃었어. 나와 싸우겠다고? 미친 것 아니니?

고슴도치는 그 답으로 코끼리를 때리기 시작했어. 그러자 코끼리도 화가 났어. 코끼리는 가만히 선 채, 코를 높-이 올리더니 고슴도치 쪽으로 홱하고 뻗었어. 코끼리는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을 하고 말았지. 고슴도치는 자신의 모든 가시를 활짝 펼친 채 코끼리의 콧속으로 돌진했어. 코끼리는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고, 다른 동물들에게 도와달라고 외쳤어. 동물들은 고슴도치에게 다가가 제발 코끼리 콧속에서 가시를 빼달라고 빌었지.

작은 고슴도치는 가시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고약한 동물은 아니었어. 코끼리를 도와달라고 동물들이 부탁하자, 고슴도치는 관대하게도 그 자리에서 바로 가시를 빼주었어. 그날 이후로 코끼리는, 여전히 가장 힘이 센 동물이지만, 자신보다 작은 동물들을 절대로 공격하지 않았다고 해.

고슴도치가 작은 발을 들고 동물들 앞에서 크게 부른 노래를 나는 계속 상상하고 있어. 노래를 부를 때의 단단한 눈빛도, 종종 걸으며 코끼리를 샅샅이 찾아다니는 자세도, 마침내 코끼리에게 당당히 걸어가 외치는 목소리도. 고슴도치는 코끼리 발톱보다도 작은 몸이었지만 그랬기에 코끼리의 콧속으로 돌진 할 수도 있었어. 겉보기에 고약해 보여도 약속을 지킬 줄 아는 동물이었지. 그래서 워크로니는 고슴도치에게 강을 맡겼는지도 몰라. 살면서 땅의 요정 워크로니를 보기란 정말 드문 일이야. 만약 너보다 아주 아주 작은 사람을 보게 된다면, 그때 이 이야기를 떠올리렴. 우리는 가끔 코끼리가 되기도 하니까 말이야.

8화. 막무가내 사냥꾼과 이구아나


옛날 옛적에, 마리코라는 사냥꾼이 있었어. 세상에 이런 놈이 있다니. 그는 동물들을 마구마구 죽이는 사냥꾼이었어. 마치 동물들이 원래부터 생명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야. 매일매일 수십 마리를 잡고선, 머리와 꼬리를 트로피처럼 집에 걸어 놓았어. 

어느 날, 사냥꾼의 잔혹한 학살을 더 이상 눈 뜨고 볼 수 없던 아내가 말했어.

“제발, 마리코. 지금처럼 동물을 죽이는 것 이제 제발 그만둬. 그러면 안 돼. 동물들도 생명이 있어.”

하지만 마리코는 코웃음을 쳤지. 다음날도 마리코는 수십 마리의 꼬리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어. 

다음 날, 마을의 어른들이 그를 불러 말했어. 

“마리코, 지금처럼 동물을 죽이는 것은 이제 그만하게. 자네보다 먼저 이 땅에서 사냥을 했던 사람들이 자네처럼 사냥했다면, 마리코 자네는 사냥꾼이 될 수 없었을 걸세. 남아있는 동물들이 없었을 거니까 말이야.” 

마리코는 또 코웃음을 쳤어. 그리고 다음 날,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꼬리를 끌고 마을로 돌아왔어. 

어느 날, 마리코는 하루 종일 초원을 누볐는데도 아무 동물도 만나지 못했어. 아주 작은 다람쥐조차 볼 수 없었지. 저녁이 되었고, 빈손인 마리코는 투덜거리며 마을로 돌아가는 중이었어. 그러다 강가에 이르렀어. 거기엔 사람만큼 커다란 이구아나가 있었지. 이구아나는 저무는 해의 마지막 빛을 쬐며 쉬고 있었어. 마리코는 너무 기뻐서 눈을 번뜩였어. 빈 손으로 돌아가면 분명 마을 사람들이 놀려댈 게 뻔했거든. 마리코는 이구아나에게 조용히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이구아나가 갑자기 사람처럼 벌떡 일어서서는 노래를 하지 뭐야. 

날 죽이지 마요, 마리코. 죽이지 말아요.
나는 다른 도마뱀과 달라요. 내가 보이나요?
동서남북의 상인들이 여기를 오고 가죠.
나를 여기서 보죠. 매일매일.
그들은 알고 있죠. 날 죽이지 않죠.
그들은 알고 있죠. 내가 다른 도마뱀과 다르다는걸!

마리코는 이구아나의 말에 배를 잡고 웃는 걸로 답했어. 

“도마뱀 선생님, 준비한 노래를 모두 불러도, 당신을 죽일 겁니다.” 

그리곤 빵! 

쓰러진 이구아나의 몸을 들어 어깨에 올린 후, 마리코는 마을로 돌아왔어. 집으로 막 들어가려는데, 죽은 이구아나가 등 뒤에서 다시 노래를 불렀어. 

“마리코, 날 죽이지 마요. 나는 다른 도마뱀과 달라요…”

“노래 계속 부르라지! 난 지금 널 구워 먹을 거니까. 뱃속에서도 계속 노래를 부르는지 한번 두고 보자구!”

마리코는 이구아나를 아내 앞에 던지며 말했어. “여보, 이걸로 저녁 준비해줘. 배고파 죽을 지경이야.” 

“나? 준비는 무슨, 나는 그 도마뱀을 먹지도 않을 거야.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고. 알겠어, 마리코?” 아내는 그에게 되물었어.

“맘대로 해. 내가 직접 할 거야.”

그러고는 마리코는 이구아나의 껍질을 벗기고, 동강동강 잘라 화덕에 넣었어. 그런데 동강 잘린 토막들이 불 속에서 점점 익어가며 노래를 하기 시작하는 거야.

“마리코, 날 죽이지 마요. 나는 다른 도마뱀과 달라요…”

“무슨 소릴! 준비됐나? 이제 이 튼튼한 이빨로 널 뜯어먹을 것이야.” 하고 마리코가 말했어. “그래도 계속 노래를 할지 두고 보자고.”

고기가 모두 익고, 마리코는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어. 아내를 불렀지만, 아내는 거절했어. 아이들을 불렀지만, 아이들 모두 거절했어. 그는 혼자서 그 커다란 이구아나를 전부 먹었어.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마리코는 갑자기 목구멍이 타는 것 같았어. 너무 목이 말랐지. 아내에게 소리치며 말했어.

“물 좀 줘. 목말라 죽겠어. 목이 말라 죽겠다고!”

아내가 준 물 한 잔을 벌컥 마셨어. 하지만 목마름은 가시질 않았어. 이제 아이들에게 소리치며 말했어. 

“물 좀 가져와, 목말라 죽겠다, 죽겠다고!”

아이들이 한 명씩 커다란 물병을 가져왔어. 마리코는 병째 단숨에 들이켰지. 하지만 목마름은 점점 커져갔어. 그는 부엌으로 들어가 커다란 항아리에 가득 차 있는 물을 꿀꺽꿀꺽 다 마셨어. 목구멍엔 불길이 치솟았어.

마리코는 문을 박차고, 마을 밖으로 뛰기 시작했어. 전속력을 다해 강가로 뛰어갔지. 이구아나를 죽였던 바로 그 강으로. 그는 강물에 아예 코를 박은 채 쭉쭉 강물을 들이키기 시작했어. 마시면 마실수록 목마름은 더욱 불타올랐어. 마리코는 있는 힘껏 쭈욱쭈욱 양손으로 벌컥벌컥 강물을 퍼마시고 들이부었어. 마리코의 배는 불룩하게 점점 불어오르더니 풍선처럼 아주 빵빵해졌어. 

그리곤 빵! 

마리코의 배는 터지고 말았지. 그러자 뱃속에서 이구아나 토막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더니, 하나로 붙기 시작하는 거야. 그리곤 갑자기 사람처럼 똑바로 서서는, 배가 터져 죽은 마리코 앞에서 이렇게 말했어. 

“마리코, 내가 뭐라고 했어. 꼭 대가를 치러야 배울 수 있겠니.”

그날 이후론 아무도 동물들을 이유 없이 마구 사냥하지 않았다고 해.  

만데 문화에서 사냥꾼은 특별한 힘을 가진 존재로 여겨져. 그 힘은 바로 숲과 강, 식물과 동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이었어. 사냥꾼은 인간 세계와 자연 세계 사이의 비밀을 알고, 그 둘을 잇고 있는 존재였지. 여기저기를 다니며 사람보다 훨씬 크고 사나운 동물들을 잡고 마을로 돌아오면, 사냥감의 피와 살, 뼈와 가죽 등은 모두 마을에 나누어졌어. 귀중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지.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냥꾼은 모두 알아야 했어. 당신이 다른 존재들보다 더 뛰어나서 특별한 힘을 갖게 된 게 아니라는 걸. 막무가내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힘은 결국 자신을 죽게 만든다는 것을.  






9화. 사냥꾼 반타와 노래하는 거북 – 만데 전래동화집

옛날 옛적에 아주 무지막지한 사냥꾼 반타가 살고 있었어. 어떤 동물이든 반타의 눈에만 띄면 불에 굽히거나 가죽이 벗겨지거나 모두 죽을 운명이었지. 반타가 얼만큼 무지막지했냐면, 새끼를 배었거나 데리고 있는 어미를 죽이면 그 자신도 자손 없이 죽을 거란 오래된 믿음도 무시했단다. 반타는 소중한 자식을 세 명이나 둔 아버지인데도 말이야.

매일 저녁 반타는 사냥감을 메고 집으로 돌아왔어. 목에는 여우와 다람쥐를, 허리 주머니엔 비둘기와 토끼를, 때로는 영양이나 얼룩말을 바닥에 끌며 돌아왔지. 반타는 가족들이 다 먹지도 못할 만큼 많은 동물들을 사냥했어. 그저 엄청나게 도살을 저지르는 데에 빠져있었지. 더군다나 반타는 뽐내기를 좋아했고, 그가 사냥감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무도 말리지 못할 정도였어.

그리고 오늘, 이 망고나무 아래에 숲속의 동물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열었어. 그의 창에 맞거나, 올가미에 빠져 죽기 전에 이제 그만 반타를 멈춰야 했지, 하지만 도대체 누가 반타에게 맞설 수 있단 말이야? 사자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앞발 사이를 지나가는 개미들을 열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어. 코뿔소는 마침 다른 일이 있다며 일어났고, 코끼리는 몸을 으슬으슬 떨었어. 코끼리만 아픈 건 아니었어. 나도 감기에 걸린 것 같아 하고 뱀이 말했어. 하이에나도 마찬가지였어. 썩은 고기만 먹다가 너무 신선한 음식을 먹었나 봐.

그러니까 반타에게 맞설 미친놈은 아무도 없었다 이거야. 떼죽음은 계속 이어지겠지. 이 초원에서 피가 마를 날은 이제 없을 거야. 그런데 갑자기 작은 거북이 빼꼼 손을 들었어. 그리고 거북이는 다른 모든 동물들에게 내일 모두 꽁꽁 숨어 있어야 한다고 부탁했어. 아무도 자신의 굴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고 말이야.

다음 날, 반타는 막대기로 수풀을 때려도 보고, 돌들을 하나하나 뒤집어도 보고, 머리를 뒤로 돌려도 보며 텅 빈 하늘을 노려보았어. 초원은 적막하기만 했지. 모래와 먼지 속에서 발자국을 찾아보았지만, 말짱 헛수고였어. 숨소리 하나, 날갯짓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 늪에 악어 한 마리조차 없었어. 저녁이 되었고, 빈손으로 처음 집으로 돌아가게 된 반타는 가슴 속이 분노와 쓰라림으로 가득 찼어.

아니 그런데 이건 꿈인 걸까? 저 높이 솟은 풀숲 사이로 코라의 청명한 음이 띠리링 들리더니, 그다음엔 노래가 흘러나오는 거야. 무슨 일일까 궁금해하며 반타는 조심조심 다가갔어. 거기엔 아주 작은 거북이가 코라를 연주하며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저놈을 보면 내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겠군 반타는 생각했어. 오늘 내가 사냥을 실패한 걸 까먹을 만큼 말이야. 그리곤 덥석 거북이를 잡아 가방에 넣었어.

– 오늘은 아무 사냥감을 갖고 오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물었어.

– 더 좋은 걸 가져왔지. 반타가 말했어. 특별히 솜씨를 부려 노래하는 거북이를 잡았단다. 자, 들어봐.

거북이는 가족과 이웃들이 모인 앞에서 고분고분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어. 반타는 마치 자신이 잘한 것 마냥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어. 이 거북이는 왕에게 잘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하고 반타는 생각했어.

다음날, 반타는 왕궁으로 찾아갔어.

– 위대한 왕이시여, 당신을 위해 이 작은 거북이가 노래하도록 제가 훈련시켰습니다.

– 오늘 밤 오너라. 궁중에서 거북이는 노래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는 궁궐의 중앙 정원. 반타의 손엔 경이로운 거북이가 놓여 있지. 반타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미소를 띠며 작은 의자 위에 거북이와 그의 악기 코라를 놓았어.

– 자, 시작해봐 거북아.

하지만 거북이는 꿈쩍도 안 했지.

– 자, 노래해봐.

하지만 거북이는 아무 말도 없었지.

– 노래해봐, 어서!!!

하지만 거북이는 슬며시 고개를 넣더니, 다리까지 껍질 안으로 쏙 넣고 말았어. “반타, 내 얼굴에 먹칠을 하다니!”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던 왕은 불같이 호통치며 당장 이 허풍쟁이를 처단하라고 명령했어. 교수대는 단숨에 세워졌어.

여기 반타가 목이 대롱대롱 걸려있구나. 숨 막히고, 괴로워하며, 마침내 그도 죽음을 맞이하겠지. 반타의 배배 꼬인 몸이 마지막 숨을 뱉으려 마구 떨렸어. 그런데 갑자기 코라의 아주 맑은 멜로디가 울려 퍼지는 게 아니겠어. 그리고 반타가 마지막 숨을 뱉는 순간, 작은 노랫소리가 시작되었지. 묘하게 기운찬 노래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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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여덟 소녀와 먹보 하이에나 – 만데 전래동화집

여덟 소녀와 먹보 하이에나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숲속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여덟 명의 소녀가 있었어. 어느 날 숲에서 놀던 아이들이 꽃을 꺾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비를 피하다 어느 동굴로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먹보 중에 먹보 ‘수루쿠바’ 하이에나의 굴이지 뭐야. 얼마 후, 하이에나가 따그닥 따그닥 굴로 돌아오는 길이었어. 동굴 근처에 도착하자, 걸음을 멈추고 이렇게 소리쳤어.

“흠, 어린 여자아이의 냄새가 나는걸!”

그리곤 동굴 입구 앞에서 안쪽을 보며 외쳤어.

“얘들아, 너희 몇이나 있니?”

아이들은 하나의 목소리로 노래하며 답했어.

“우리는 여덟 명의 아이들이죠! 하이에나 배를 채우는, 우리는 여덟 소녀들!”

하이에나는 너무 신이 나서 이리 팔짝 저리 팔짝 뛰었어. 그리고 다른 하이에나에게 자랑하고 싶었지. 지금 쟤들을 몽땅 먹어버리면, 누가 믿겠냐 말이야. 하이에나는 증인을 찾아야 했어. 아이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폴짝폴짝 뛰어갔어.

“하이에나 배를 채우는, 우리는 여덟 소녀들!”

친구를 발견한 하이에나는 자신의 동굴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오라며 꾀었어. 글쎄 우리 집에 말이야, 통통한 여자아이들이 여덟이나 있다구! 하지만 하이에나가 도착하기 전에, 여덟 명 중 두 명이 동굴을 빠져나와 마을로 돌아갔어. 남은 여섯이 한목소리로 노래했어.

“맞아, 우리는 진짜 여덟! 여덟 마리 하이에나 송곳니를 즐겁게 할, 우리는 여덟소녀들!”

두 하이에나는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어갔어. 그런데 말이야. 세 번째 하이에나를 찾아야 했을까? 네 번째도? 그럼 다섯 번째도? 음… 진짜 여덟 명의 소녀들이 있다면 말이야!

다시 동굴로 돌아온 하이에나가 물었어.

“너희 몇이라구 얘들아?”

물음에 답하는 목소리는 하나밖에 없었어. 깜짝 놀란 하이에나들은 재빨리 동굴로 들어갔어. 바닥엔 작은 반지 하나가 있었지. 여덟 소녀들중 가장 맏언니가 놔두고 간 반지가 대답한 거였어.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하이에나들은 소녀들을 따그닥 따그닥 쫓아가기 시작했어.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가장 마지막에 도망친 맏언니가 울타리를 기어오르고 있는 걸 보았어. 하이에나가 소녀의 종아리를 덥썩 붙잡았지.

“요 녀석 잡았다! 이제 널 잡아먹고 말 테다!”

그러자, 소녀는 으하하하 크게 웃으며 답했어.

“하하하 이 멍청이 하이에나! 니가 지금 잡은 건 내가 아니라 울타리야!”

하이에나는 소녀의 종아리를 털썩 놓고는 울타리를 덥썩 잡아버렸어. 소녀는 잽싸게 마을로 달려가 사냥꾼들을 불렀단다.

만데 전래동화에서 하이에나는 꽤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야. 만데 사람들은 하이에나를 ‘수루쿠바’라는 별명으로 불러, ‘수루쿠’는 만데어로 ‘많이 먹는 사람’이란 뜻인데, ‘수루쿠바’는 먹보 중의 먹보란 말이지. 먹고 또 먹어도 계속 먹으려고 하는, 욕심 많고 어리석은 이들이 주로 ‘수루쿠바’ 하이에나로 비유되곤 해. 어리석은 하이에나와 여덟 소녀의 재치들이 대비되며 나는 더 재밌게 읽었어. 마지막에 다리를 잡혔는데도 울타리라고 말한 소녀의 말은 너무 천연덕스러워 읽고 또 읽었지 뭐야. 나도 어디선가 제 발로 호랑이 소굴에 들어간다면, 여덟 소녀의 노래를 한번 떠올려 보려고. 으하하하 웃으며 아주 큰 목소리로 기세 좋게 불렀을 이들의 노랫소리를.   


11화 욕심쟁이 하이에나와 할머니

옛날 옛적에, 염소를 아주 많이 키우는 할머니가 살고 있었어. 모두 토실토실 살찌고 잘 자란 염소들이었지. 염소들은 하루도 조용할 새 없이 지붕 위에 올라가 폴짝폴짝 뜀뛰고 소리쳐서 이웃들은 매우 성가셔했어. 그러자 할머니는 염소들 사이에서 혼자 살 수 있게 외딴곳으로 갔어.

한편, 호시탐탐 할머니 염소를 노리던 ‘수루쿠바’ 하이에나에겐 절호의 기회였지. 하지만 하이에나가 먹고 싶다고 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할 순 없었어. 동물의 왕 사자가 가만두지 않을 거거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수루쿠바’ 하이에나는 좋은 수가 없을까 하며 초원을 어슬렁거리고 있었지. 염소를 당당하게 먹을 수 있는 속셈 말이야.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든 순간, 하이에나는 새 한 마리를 발견했어. 바로 이거야! 뛰어올라 냉큼 잡았지. 이 새를 할머니에게 주는 거야. 그리고 할머니가 새를 먹으면, 내 아름다운 이빨로 염소들을 와그작와그작 먹기 좋은 이유가 되겠지. 하이에나는 그길로 곧장 할머니에게 달려갔어.

“안녕하세요. 할머니. 할머니처럼 나이가 들어 약해지면 젊은이가 어른을 보살피는 게 당연해요. 할머니 드시라고 제가 새를 잡아 왔어요. 몸에 좋을 거예요.”

할머니는 새를 받았어. 하지만 할머니는 어리석지 않았지. 지붕 아래 새를 몰래 숨겨 두었어.

바로 다음 날, 하이에나는 얼마나 신이 났는지 콩콩거리며 할머니를 찾아갔어. 내가 준 새를 먹었을 테니, 이젠 내가 할머니 염소를 먹을 차례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나의 새야, 잘 있니?”

“너의 새라니?” 

할머니는 짐짓 놀란 척을 하며, “그 새는 네가 나에게 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라고 말했어.

“무슨 소리예요! 안 돼요, 안 돼! 그건 제 새라고요. 저는 할머니에게 단지 맡겼을 뿐이에요. 만약 먹어버렸다면, 할머니는 염소로 되갚아야 할 거예요!

“하하하, 아니야, 수루쿠바. 난 너의 새를 먹지 않았어. 저기, 지붕 아래에 있단다. 데려가렴.

“하하하, 역시 할머니들이란 아무것도 이해 못 한단 말이지! 되갚으라고 한 건 다 농담이에요. 얼른 새를 드세요. 그건 할머니 거예요. 하이에나를 믿으세요!”

하지만 할머니는 절대로 새를 먹지 않았어. 그리고 매일 아침, 하이에나는 할머니를 찾아왔어.

“안녕 할머니, 안녕 나의 새야.”

할머니가 그만 새를 데려가라고 할 때마다, 하이에나는 거절하고 돌아갔어. 이 둘의 돌고 도는 대화는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지.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장작거리를 찾으러 집을 잠깐 비운 사이, 할머니 손녀가 옆 마을에서 할머니를 보러 잠깐 들린 거야. 그리고 지붕 밑의 새를 보고는 바로 먹어 버렸어. 누가 ‘수루쿠바’ 하이에나에게 이 소식을 전했는진 아무도 몰라. 하지만 ‘수루쿠바’ 하이에나는 내일을 기다리고 싶지 않았어. 그날 오후, 하이에나는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할머니 집에 도착했지.

“안녕 할머니, 안녕 나의 새야.”

할머니는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어.

“너의 새는 내 손녀가 먹어버렸어!”

“아, 그래요? 할머니의 작은 소녀가 내 새를 먹어 버렸으니, 나도 할머니 염소를 데려가 내 가족들과 함께 먹어야겠어요!”하고 하이에나는 염소 두 마리를 데리고 떠났어.

다음날이 되었고, 하이에나는 또 할머니 앞에 나타났어.

“안녕 할머니, 안녕 나의 새야!”

“말했잖아, 너의 새는 손녀가 먹어버렸다고.”

“오, 그렇다면 나는 염소 세 마리를 먹겠어요!”

하이에나는 염소 세 마리를 데려가 가족과 함께 먹었어. 이렇게 꽤 오랜 날들이 지나고, 결국 할머니에게 남은 건 염소 한 마리뿐이었어. 한편, 사자는 길을 걷다가 울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어. 그래서 물어보았지.

“무슨 일 있나요, 할머니?”

할머니는 하이에나가 자신에게 준 새를 손녀가 먹어버린 이야기를 했어.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매일매일, 허구한 날 하이에나가 찾아와서는 내 염소들을 몽땅 데려갔어. 마지막 한 마리까지 없어지면, 이제 다음 먹이는 나야!”

그러자 사자는 마지막 염소를 다른 곳에 숨기고, 자기가 염소 우리에 들어가 숨어 있겠다고 했어.

“하이에나가 오면, 날 찾아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게 될 거예요!” 웃으며 사자는 말했어.

그날, ‘수루쿠바’ 하이에나는 아침이 오는 걸 기다리지도 않았어. 새벽바람에 냉큼 할머니 집으로 달려왔지. 그런데 어쩌니. 어두컴컴한 새벽엔 하이에나 눈도 어두컴컴했어.

“안녕 할머니, 안녕 나의 새야!”

“그놈의 새! 내가 만 번은 말한 것 같다. 너의 새는 내 손녀딸이 먹었다고!”

“흥, 그렇다면, 난 염소를 먹어야 하겠는걸.”

“그래, 이제 한 마리밖에 없어. 데려가!”

“후후, 그럼요. 그걸 데려가려고 내가 왔지.”

그리곤 하이에나는 ‘염소라고 생각한 것’의 목줄을 풀고,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어.

그러다 갑자기, 달리다 말고 ‘염소라고 생각한 것’의 앞에 멈춰 섰어.

“세상에, 무슨 일이지. 다른 염소들이 걸을 땐, 관절들이 ‘쿠마타 쿠마타’ 거리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이 염소는 꼭 고양이 같은걸. 진짜 염소 맞나?

사자는 앞발 관절을 부러뜨렸어.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자, 하이에나는 안심하고 다시 길을 갔어.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멈춰 섰어.

“세상에, 세상에. 정말 무슨 일이지. 이 아름다운 이빨로 와그작와그작하며 배를 채웠던, 내 가족들과 아내와 아이들과 배불리 먹었던 그 염소들은 한 번은 ‘음메에에’하고 울었는데 말이지. 이 염소는 어찌 된 일인지 한 번도 울지를 않네. 진짜 염소 맞아?

사자는 ‘음메에에’ 소리를 내려고 노력했지만, ‘음메에에’ 대신 ‘으르렁!!!’ 하고 커다란 호통이 튀어나왔어.

하이에나는 꽁무니가 빠지도록 달렸어. 하지만 사자는 그렇게 놔두지 않았지. 뒤를 바짝 쫓아가선 하이에나 뒷다리에 커다란 앞발을 콱 찍어 버렸어. 하이에나가 계속 달려도, 커다란 앞발을 절대 빼지 않았지. 그래서 ‘수루쿠바’ 하이에나는 항상 뒷다리를 낮게 깔고 있단다. 지금도 여전히 말이야.


서구권에선 하이에나를 주로 어리석은 겁쟁이로 표현하는 데 비해, 아프리카권에선 탐욕으로 어리석지만, 위험한 존재로 표현해. 실제로 자기보다 훨씬 큰 하마나 코끼리를 사냥하기도 하고, 사자와도 힘이 엇비슷해서 하이에나는 사람들에게도 위협적인 동물이었어. 다른 동물이 먹다 남긴 뼈까지도 먹어 치우는 하이에나를 보며, 많이 먹는 사람을 일컫는 밤바라어 ‘수루쿠’ 중의 왕이란 ‘수루쿠바’ 별명을 붙여준 것 아니겠어? ‘수루쿠바’ 하이에나가 상징하는 끝없는 허기와 탐욕스러움은 물 한 방울 귀한 사하라 사막 지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아니었을까. 항상 경계해야 할 마음과 행동에 친근한 별명을 붙이고, 이야기 주인공으로 계속 가까이 불러두는 건 옛사람들의 지혜일 거야.  


12화. 불행은 결코 혼자 오는 법이 없지 – 만데 전래동화집

지금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주 먼 옛날이야기인데, 오늘까지 살아있는 이야기란다.  

옛날 옛적에 어느 오두막에 할머니와 뱀, 그리고 새가 함께 살고 있었어. 그런데 새가 알을 낳을 때마다, 뱀이 매번 날름 먹어버리는 거야. 새는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할머니를 찾아가 말했어. 

“할머니. 불행은 혼자 오지 않고, 오직 평화만이 우릴 지켜줍니다. 뱀이 내 알들을 그만 먹게 해주세요.”

할머니가 답했어. 

“사람이 왜 뱀과 새의 싸움에 끼어들어야 하니?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다른 이를 찾아 부탁해.”

새는 생쥐를 찾아갔어. 생쥐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오똑 섰어. 새가 말했어. 

“안녕 생쥐야. 나는 네가 우리 집 노파를 찾아가 뱀이 계속 내 알을 먹지 못하도록 말해주길 부탁해. 알을 낳을 때마다, 뱀이 계속 먹어 치워.”

생쥐가 답했어

“내가 할머니 오두막 지붕 구멍에 살고 있다는 걸 잘 알잖아. 그 노파가 날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날 죽이고 말 거야. 그러니 어떻게 내가 말할 수 있겠니? 다른 이를 찾아가 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새가 답했어. 

“아, 그렇단 말이지, 불행은 절대 혼자 오는 법이 없지.” 

새는 거미를 찾아가 말했어. 

“부탁이야. 할머니를 찾아가 뱀이 내 알을 먹지 못하게 말 좀 해줘. 내가 알을 낳을 때마다 뱀이 먹어버려.” 

거미가 답했어. 

“내가 말이야, 밤마다 거미줄을 쳐놓으면, 아침에 할머니가 눈뜨자마자 모두 없애 버려. 나는 할머니에게 한마디도 할 수 없어. 다른 이를 찾아가 봐.”

새는 개를 찾아가 말했어. 

“개야, 우리는 항상 같이 집에 있었잖니. 할머니에게 뱀이 내 알을 먹지 못하도록 말 좀 해줘. 불행은 혼자 오는 법이 없잖니.”

개는 답했어. 

“나는 매일 밤 할머니 집을 지키지. 그런데 내 밥은 항상 애들이 먹다 남긴 것들이야. 이 일은 나랑 상관없어. 가봐!”

새는 말했어. 

“그럼 난 당나귀를 보러 가겠어.”

“당나귀야, 할머니에게 뱀이 내 알을 먹지 못하게 네가 말 좀 해주면 좋겠어. 넌 알잖아, 불행은 혼자 오는 법이 없다는걸. 평화만이 우릴 지켜주는 거라고.” 

당나귀가 답했어. 

“너도 알잖니. 할머니가 내 등에 무거운 짐을 지우고, 막대기로 내 궁둥이를 마구 때리는걸. 그리고 새와 뱀의 싸움에 도대체 내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야? 다른 데로 가봐. 게다가 할머니는 날 좋아하지도 않아. 나는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할머니는 오히려 나의 적이라고!”

새는 수탉을 찾아갔고, 수탉은 답했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말이야, 매일 아침 내 노래로 할머니를 깨우는데, 그 할망구는 손님이 오기만 하면 내 목을 베라고 한단 말이야. 할머니야말로 나의 적이야. 네 싸움을 말리기 위해 할머니에게 갈 수 없어. 나랑 아무 관계 없어. 다른 사람을 만나봐.”

새는 말했어. 

“그래, 좋아. 나는 양을 만나러 가야겠어.” 

새는 양에게 말했어. 

“양, 나는 네가 뱀에 대해 할머니에게 말 좀 해주면 좋겠어. 내가 알을 낳을 때마다, 뱀이 삼켜버려. 낳으면 먹고. 낳으면 먹고. 너도 알잖아. 불행은 혼자 오는 법이 없다는걸!”

양이 답했어. 

“할머니는 내가 살이 토실토실 오를 때까지 날 돌봤어. 내가 다 클 때까지 자기 마당에서 키워주었지만, 타바스키 축제가 오면 날 잡아 죽이라고 명령해. 사람과 뱀, 새 사이의 싸움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다른 곳으로 가봐.” 

새가 말했어.

“하하, 그렇단 말이지?”

양이 답했다.

“응”

그러자 새는

“그래 좋아!”

새는 성냥을 찾으러 떠났어. 성냥을 발견하고, 새는 말했어. 

“누굴 찾아가는 것도 이제 너무 지쳤어. 모두가 내 부탁을 거절했지. 이제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어.” 

새는 성냥을 켜고, 오두막에 불을 질렀어. 

할머니와 뱀, 거미, 쥐, 양, 개 모두가 불에 타 죽었어. 당나귀는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불에 타 죽었지. 불에 탄 양은 오두막의 불을 끄러 온 사람들의 한 끼 식사가 되었어. 새는 모두를 불러 모으고 말했어. 

“나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뱀이 내 알을 그만 먹게 하라고 모두에게 말했던 거였어. 하지만 모두들 뱀과 새 사이의 싸움은 자신과 상관없다고 말했지. 이제 그 결과를 알겠니? 서로를 잘 이해하는 것만이 우리를 지켜주지. 불행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고!” 

그리고 이 이야기는 바다로 흘러갔고, 이 이야기의 향을 맡은 이는 누구나 천국으로 갈 것이라 전해져.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눈과 귀를 닫았던 타인의 불행은 결국엔 모두의 평화를 삼켜버리는 재난이 되어 버렸습니다. 같은 집에 살면서 나와 상관없는 일이란 아마도 없을 겁니다. 집주인부터 그를 피해 다녀야 하는 처지까지 우리 모두의 몸뚱아리는 ‘이 집’에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살아가며 행하는 모든 것들은 이 물리적 환경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집은 점점 작아지고 있지만, 우리의 이웃은 도시과 국가를 넘어 이제 지구라는 공간까지 넓어진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나와는 관계없어 보이는 세상의 크고 작은 싸움들은 결국 나를 향해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세네갈의 어느 오두막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대서양을 타고 태평양을 넘어 여기까지 그 이야기의 향이 날아왔어요. 혹독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지금 여기’를 함께 살고 있는 이들에게 외치는 목소리에서 여러분들은 이 향을 맡을 수 있나요? 불행은 혼자 오는 법이 없다고, 오직 누군가를 이해하는 마음이 우리의 평화를 지켜준다고요.

이 이야기는 1998년 ‘Clair de lune’ 콜렉션, 다카르에서 출판된 이야기 ‘Wolof tales or the dream life’에서 발췌했습니다.





















국가 기념일 노래 및 악보


국경일 / 기념일


애국가



  Aegukga National Anthem of South Korea - KPOPRUN



미국국가



The Project Gutenberg eBook of Arbor Day Leaves by NH Egleston

  • 3.1절 (3월 1일)

    국권회복을 위해 민족자존의 기치를 드높였던 선열들의 위업을 기리고 3·1 독립정신을 계승·발전시켜 민족의 단결과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는 날입니다.

  • 제헌절 (7월 17일)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이념으로 한 대한민국 헌법의 제정을 축하하고 그 이념수호를 다짐하며 준법정신을 앙양할 수 있는 날입니다.

  • 광복절 (8월 15일)

    잃었던 국권의 회복과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을 경축하고 독립정신의 계승을 통한 국가 발전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는 날입니다.

  • 개천절 (10월 3일)

    홍익인간의 개국이념을 계승하고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통일의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며 자손만대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하는 날입니다.

  • 한글날 (10월 9일)

    우리 민족사에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인 한글을 반포하신 세종대왕의 위업을 선양하고,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대내외에 널리 알려 문화민족으로서 국민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날입니다.





삼일절 노래


31



어머니의 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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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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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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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찬가

  518


새마을 노래

    parody


조국 찬가

  518














삼위일체(三位一體)



삼위일체(三位一體)


삼위일체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 교리 중 하나
하나님이 한 분 이시며 동시에 세 위격(성부, 성자, 성령)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의미
성부는 하나님 아버지
성자는 예수 그리스도
성령은 성령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들은 서로 구별되지만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는 하나님의 하나님입니다. 

마가복음 1:9-11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 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 At that time Jesus came from Nazareth in Galilee and was baptized by John in the Jordan.
  • As Jesus was coming up out of the water, he saw heaven being torn open and the Spirit descending on him like a dove
  • And a voice came from heaven: "You are my Son, whom I love; with you I am well pleased.


    삼위일체, 기독교의 핵심 교리이자 영원한 난제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도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별칭으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기독교의 핵심적 교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핵심 교리는 여전히 기독교의 난제로 자리잡고 있다. 왜 기독교계에서는 자신들의 핵심 교리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도 중언부언 하고 있을까? 혹시 삼위일체에 대해 답답함을 가지고 인터넷을 헤매는 중이신 분이 있다면, 이 포스트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삼위일체 정의

    단어의 뜻부터 살펴보자면, 한자어로 삼위일체(三位一體)는 ‘석 삼, 자리 위, 하나 일, 몸 체’, 즉 세 개의 자리가 있으나 그 근본은 하나다. 라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는 삼위일체를 가리키는 다른 언어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고대 그리스어의 ‘트리아도스(Τριάδος)’, 라틴어의 트리니타스(Trinitas), 영어의 트리니티(Trinity)가 모두 ‘3인조’, ‘3개가 한 조로 된 것’ 등 근본적으로는 ‘거룩하신 세 분이 근본 한 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논리가 어디서 착안되었을까?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호(聖號)가 두 개 등장한다. 구약성서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등장하지만, 신약성서에서는 ‘예수’라는 이름만이 언급되고 ‘여호와’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일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실까 아닐까? 예수님의 근본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과 성경적 의문들은 점차 증폭되었고, 이것이 교리로 정립된 것이 바로 ‘삼위일체’라 하겠다.

    삼위일체, 기독교의 핵심 교리

    그렇다면 삼위일체는 성경 속 의문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하나의 이론에 불과한 것일까? 그건 아니다. ‘삼위일체’라는 단어 자체가 성경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는 분명 성경에 근거한 진리다. 그 분명한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성부, 성자, 성령’이다.

    앞서 구약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신약에서는 ‘예수’라는 이름이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거룩하신 아버지란 의미의 ‘성부(聖父)’라 칭하고, ‘예수’라는 이름을 거룩하신 아들이란 의미의 ‘성자(聖子)’라 칭한다. 그리고 여기에 별도로 ‘성령(聖靈)’께서 존재하신다. 이 세 분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교리며 이러한 믿음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삼위일체’가 되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분명히 성경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굳이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여러 매체를 통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분명 한 분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 모두 하나님이시라는 내용. 공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하나님 → 한 분’
    ‘성부 = 하나님, 성자 = 하나님, 성령 = 하나님’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누구나 한 가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계시고 그 분들이 모두 하나님이시라는 부분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왜 이 간단한 논리가 천 년이 넘도록 기독교의 난제로 자리잡고 있을까?

    삼위일체, 기독교의 영원한 난제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태복음 27:46)

    예수도 세례(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3:21~22)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하나님이신 것만큼은 분명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위 구절을 마주쳤을 때 큰 혼란에 빠진다. 십자가에 달리신 성자께선 누구에게 자신을 버렸느냐고 이야기하시는 것일까? 또한 성자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고 말씀하신 분은 누구실까? 이러한 의문은 성경을 읽는 많은 이들을 적잖이 당황케 했다.

    더군다나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러한 의혹을 증폭시키는 구절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 때문에 교회 안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그 역사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삼위일체 교리는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라는 포스트에서 살피기로 하고, 결과적으로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이야기하자면 아래와 같다.

      삼위일체 삼각형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분명 하나님이시지만, 그렇다 해서 각각이 개체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라 이야기하자니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명제에서 어긋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성부, 성자, 성령 모두 하나님이시지만, 각각의 위격은 서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여기까지 읽으신 독자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겠다. 위의 도식이 이해가 가는가? 지금 느끼는 그 감정이 바로 교회가 천 년이 넘도록 느껴온 감정이다. 오늘날까지도 이 애매함을 명쾌하게 설명할 문장이 없기에, 성경을 연구했다는 학자들조차 애매한 표현들만을 차용하고 있다.

    교계의 입장

    서두에서 언급했듯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며 하나님의 신성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 관련 설명은 난해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뿐이다. 나름대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글이나 영상들도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며 용두사미의 모습을 보인다. 여기 두 가지 논평을 보면 교계의 입장이 어떠한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삼위일체론은 지성의 이해를 목적으로 삼지 않고 설명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해시키려는데 초점을 맞추면 실수하거나 실족할 수 있다. … 아무쪼록 삼위일체론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단성을 구별하는 준거기준이기 위한 설명을 위한 것이다.”

    출처: 라은성 교수의 쉬운 교리해설삼위일체론에 대해, 기독신문, 2016. 02. 19. 13:08)

    “삼위일체는 절대 철학적, 존재론적 지식이 아니다. … 목숨을 건 사랑을 논리로 이해하려 들지 마라”

    출처: 궁금한데 물어볼 수 없었던 ‘삼위일체 교리’ (송병주, 미주뉴스앤조이, 2010. 07. 23. 14:16)
    도대체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단 말인가!

    이해를 하고 깨달아야만 믿을 수 있건만 어떻게 이해시키는 것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본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또한 논리로 이해하려 들지 말라는 말은 어쨌든 논리적으로는 모르겠다는 결론이 아닌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하나님이신데 왜 각각의 위격은 다른지,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모두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어떻게 한 분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여러 자료들과 논문들을 뒤져봐도 공허한 문장들의 나열일 뿐이다. 이렇듯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경중을 떠나 모두가 ‘삼위일체’라는 난제에 빠져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제에 종지부를 찍는 한 구절

    하지만 이 난제를 해결할 성경구절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다. 그렇다면 ‘내게 대해서 증거’한다고 밝히신 ‘성경’은 어떤 성경일까? 예수님께서 계시던 당시 신약성경이 존재했을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경은 다름 아닌 구약성경이다. 많은 이들이 여태까지 삼위일체의 난제에 빠져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예수님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기록한 성경은 구약성경인데, 신약성경만으로 예수님의 본질을 이해하려 하니 자꾸만 실타래 얽히듯 의문들이 꼬이고 마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그저 과거의 역사가 담긴 고서(古書)가 아니다. 신약성경과 짝을 이뤄서, 올바른 진리에 도달하게끔 하는 중요한 퍼즐이며 단서다. 이제 이어지는 포스트들부터는 구약성서의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고, 또한 그와 연계되는 신약성서의 내용들까지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다. 모든 포스트를 꼼꼼히 정독함으로써 삼위일체의 진정한 해답에 도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삼위일체 경배 – 알브레히트 뒤러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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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위일체(三位一體, 고대 그리스어: Τριάς 트리아스[*], 라틴어: Trinitas 트리니타스[*])란 그리스도교에서 성경적으로 또한 신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교리이다. 하나님은 본질에서 한 분이시며 위격(位格, 고대 그리스어: ὑπόστασις 휘포스타시스[*])에서는 세 분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이다.[1] 삼위일체에 대해서 동방교회는 본질에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세 위격으로 되는 신비를 지지했고, 서방교회는 세 위격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이 동일본질로 한 분 하나님이 되는 신비를 지지하며 신학적 관점의 차이를 보였다.[2]

    구약성서는 여러 구절에서 삼위일체를 언급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이미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타났고, 신약성경에서는 여러 곳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문구가 증거되었다.[3]

    나지안조스의 그리고리오스와 같은 교부들은 계시가 점진적이었다고 하면서 "구약성서는 아버지를 공공연하게, 아들은 더 모호하게 선언했다"고 하며 "아버지의 신격이 아직 인정받지 못했을 때에는 분명히 아들을 선포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4]

    창세기 18장과 19장은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본문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18장의 세 사람은 인간의 형태로 나타난 삼위일체 하느님이었다.[5]

    구약성서에서는 복수형 히브리어인 엘로힘(אֱלֹהִים)[6]이 하느님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된다. 또 아래와 같은 본문들은 "우리"라는 복수 인칭 대명사를 사용한다. 전자와 후자는 두 개 이상의 것들을 분명하게 지칭하는 히브리어이므로 하느님의 복수적 측면을 나타낸다.[7]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이 복수형으로 지칭하는 구절이 있다.[8][9][10][11]

    아래는 이사야 9장과 다니엘 7장에 나오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다.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어깨에는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입니다.

    — 이사야 9,6

    나는 밤에 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곳적부터 계신 이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주권은 스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 다니엘 7,13-14

    다음의 본문들은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본문으로 비춰진다.

    이리로 가까이 와서 내 말을 들어라. 처음부터 나는 숨어서 수군거리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 때, 바로 현장에 나는 있었다." 이제 주 야훼께서 당신의 영을 주시어 나를 보내신다.

    — 이사야 48,16

    주 야훼의 영을 내려주시며 야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고 나를 보내시며 이르셨다. "억눌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찢긴 마음을 싸매 주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려라. 옥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 이사야 61,1

    요한은 요한1서에서 "하느님이 자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계명을 지키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또한 그것을 증거하는 분이 성령이라고 시사하고 있으며, 그 셋은 하나라고 명확히 함으로 삼위일체론을 뒷받침하는 구절을 기록해 놓았다.

    기독교의 경전 중에서 요한의 복음서에서도 그리스도의 선재와 성령의 오심을 설명하여 삼위의 개념을 다루고 있다.

    기독교회에서 삼위일체론의 초기 기원은 그리스도론(기독론)의 확장에서 시작되었다. 막 태동되었던 기독교에게 70년 유대 전쟁에서 다른 유파가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은 바리사이파 유대교와 인성을 강조하는 에비온주의, 신성의 영적 요소만을 강조하는 영지주의의 등장으로 기독교 뿌리를 흔든 자극이 되었고, 육체를 가지신 제2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논리적인 설명인 신학이론이 필요했다. 이 즈음에 형성된 신약성경을 바탕으로 그리스도론과 그 그리스도론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설명인 삼위일체가 등장하였다. 삼위일체는 점차 발전하여 이 세상을 설명하는 세계관과 신학적 지침으로서 기독교에 중요한 교리가 되었다.[12]

    사상적 개념으로는 기독교 초기의 환경이었던 유대교, 다신론, 영지주의 등의 배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로 보내졌고, 아들이 이 땅에 존재했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한 후에도 함께하시는 주, 즉 기독교가 고백하는 주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요청되었다. 특히 영지주의의 유출설과 마르키온주의의 이원론은 그리스도론을 뒤흔드는 사건이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신학적 개념이 필요했다.[13] 이 새로운 개념은 흔히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호모우시우스라는 예수와 성부가 동일 본질이라는 관념을 더욱 발전시키고 논리적으로 체계화 시켜 삼위일체로서 확정했다. 니케아 공의회 이전부터 교부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던 호모우시우스의 “동질적이고 하나의 실체로 된 아들과 아버지”라는 관념에 도전하여 삼위일체를 부인한 아리우스는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 의하여 파문되었다.

    공의회의 결정 이전에 1세기 사도 교부인 로마의 클레멘스의 삼위 언급 즉 "하느님의 사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심, 성령으로"[14]라고 고백하는 문헌과 성육신 이전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를 받아들이는 기록이 있다. 사도 교부인 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우스도 이미 존재했던 세례의 문구와 요한복음서를 활용하여 삼위 개념을 언급했다.[15] 2세기를 맞으며 기독교 변증가들은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설명하는 틀을 신학적으로 마련하고자 애썼다. 로고스 개념을 활용하여 유스티아누스에서 타티아누스, 안디오키아의 테오필루스로 이어지며 발전하였다. 2세기의 신학자 이레니우스의 경세적 삼위일체론의 등장과 이후 초대 기독교 전승을 기록한 사도전승에서 이미 삼위일체 개념을 따라 서품되는 감독자의 기도문이 있으며[16], 그 후 3세기 신학자 히폴리투스와 테르툴리아누스의 삼위일체론을 바탕으로 4세기 공의회의 결정이 이루어졌다.

    삼위일체의 개념이 4세기 즈음에 고안되었다고 보기도 하는데[17], 일부 종교 학자들은 삼위일체설이 기독교의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고, 또 이는 하느님의 본성에 대한 초기 기독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며[18], 기독교 선교 이전 플라톤이 주장하던 성 삼위일체의 개념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19] 다른 학자는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기독교의 삼위일체설은 고대 이집트, 힌두교를 비롯한 고대 신앙의 영향을 받아 혼입된 교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20][21][22][23]

    현재는 대다수의 기독교 종파들이 삼위일체를 중심적인 교리로 이해하고 있다. 요한의 복음서 14장에서 설명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를 통하여 자신이 곧 하느님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성부의 독생자로서 성부와 영원한 관계에 있다는 것과, 성령도 하느님으로서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하느님은 '절대단독주체 (Absolute Singleness)'가 아니며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하나이며 이를 통하여 예수는 삼위일체의 그 자체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삼위일체가 모든 기독교 종파의 주요 교리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니케아 신경보편교회세계공의회 전통을 거부하는 회복주의 계열의 일부 교파에서는 비성경적 논리에 불과하다며 삼위일체설을 부인하기도 한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교의 확정이 압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24]


    삼위일체 방패(Scutum Fidei).
    아버지(Pater)와 아들(Filius)과 성령(Spiritus Sanctus)은 동일한 인격이 아니나(non est) 한 하느님(하나님)이다.
    • 기독교에서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은 삼위(3 Persons, 세 위격, 세 신격, 세 분, 三位)로 존재하지만, 본질(essence)은 한 분 하느님이라는 교리이다.[25] 삼위일체라는 표현은 교회에서 구약이라고 부르고 있는 타나크는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인 삼위일체가 나타나며, 신약성경 2고린 13:13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라는 표현에서 삼위일체가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후대 교회에서 사용하였다. 또 신구파를 막론한 대다수의 기독교삼위에 대한 개념이 요한 복음서 등에서 간접적으로 암시함(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표현이 자주 나옴)을 주장하며 옹호하고 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서에 나오지 않는다. 기원후 200년경 라틴 신학자인 테르툴리아누스가 신을 설명하기 위해 트리니타스(trinitas)라는 말을 만들어낸 게 그 시초다. 그리스도교 찬송가는 주로 삼위일체를 세 행으로 꾸며 성부, 성자, 성령에 각각 한 행씩 배당한다. 구약성서에는 삼위일체의 '예고편'이 있다. 아브라함 족장을 방문한 '사람 셋'은 '주'라고도 지칭되는데, 일부 그리스도교도는 이를 가리켜 삼위일체가 아브라함을 방문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성자가 예수라는 세속의 형태로 태어나기 훨씬 전이다. 동방정교회의 화가들은 아브라함과 이 '구약성서의 삼위일체'를 여러 차례 그림으로 표현했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하느님이 "세 위격" 안의 "한 본질"이라는 정식을 확립했다.[26]

    그리스 교부들은 성부의 단일기원(Μοναρχία)를 주장하면서, 성자와 성령의 위격적 존재의 기원을 공통본질에 두지 않고 성부의 휘포스타시스에 둔다.[27] 대표적으로 나지안조스의 그리고리오스는 "동일본질이시기에 각 분이 하느님이시며, 성부의 단일기원으로 인해 한 분 하느님이시다."라고 말했다.[28]

    나지안조스의 그리고리오스에 따르면, 하나님에 관한 말씀은 삼위일체에 관한 말씀으로서 "빛으로부터(성부), 빛(성자), 빛 안에서(성령)"를 포괄한다. 즉, "간결하고 단순하게 하나님에 관한 교리"이다.[29]

    • 삼신론: '세 인격의 세 하느님'이라는 이론이다.
    • 양태론(modalism): 하느님이 시대에 따라 성부·성자·성령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한 인격의 한 하느님'이라는 이론이다. 간단히 말해서 구약의 시대에는 성부로, 신약의 시대에는 성자로, 신약 이후에는 성령으로 활동한다는 주장이 양태론적 이론의 일례이다.
    • 종속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온전히 하나인 주체이나, 성자와 성령은 성부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 양자론 : 양자론은 하느님이 예수를 양자로 삼았기 때문에,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삼위일체 찬성 교파와 교단은 대부분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전통을 계승하고, 구약성경, 신약성경만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보편교회 시대의 신학적 기준을 사도적 지침이라 여기고 수용하는 교단들이다. 동방정교회와 천주교회, 개신교회 교단들인 루터교회, 개혁교회, 성공회교회, 침례교회,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오순절교회 등이다.

    삼위일체의 요소는 성부, 성자, 성령인데 마태오 복음 11장 27절과 마르코 복음 10장 22절에서 예수는 ‘아버지’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다고 하는 데서 비롯된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또한 28장 19절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가르쳤고, 요한 복음서 14장은 이를 더욱 구체화하여 서술하고 있다.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8장 6절에는 대구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곧 창조주와 동일함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느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며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있습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이고 그분을 통해서 만물이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

    삼위일체 반대 교단들은 대부분 19세기 이후에 등장한 교파로, 현재 주류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전통을 배교라 여기고, 초대교회에서 보편교회 시기를 지나며 현재 교회가 배교로 단절되었으며, 삼위일체 역시 단절의 이론이므로 이를 거부하는 것이 단절을 잇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니케아 신경보편교회세계공의회 교리를 거부하는 회복주의 성향들로 여호와의 증인,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 유니테리언 등이다.[30]

    구약성경 신명기 6장 4절에서 나오는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하나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라는 구절과 신약성경 마태오의 복음서 4장 10절에서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시지 않았느냐?"라는 구절 등 성서의 여러 면을 살펴보면 삼위일체와 관계되지 않는 듯한 내용도 담겨져 있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유니테리언, 그리스도아델피안 등의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종파는 이 점 또한 지적하며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삼위일체의 일부분이었다면 "오직 그분에게만"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에게"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유일신 사상을 가지며, 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하여 혐오하는 반응이 그들의 경전 코란에 나와 있다.(수라 4:171, 5:73) 이러한 유일신 사상이 전투적이며 호전적인 이슬람을 나타내기 위한 기본적인 뼈대로 보기도 한다.[31]

    1. 삼위일체, 두산백과
    2. 한스 큉. 《그리스도교: 본질과 역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2)
    3. 안명준,《한 눈에 보는 성경 조직신학》(기쁜날: 2014). ISBN 9788991570719, 214
    4. S. Gregorius Nazianzenus. Oratio 31 (Theologica Quinta)
    5. St. Augustinus. On the Trinity (Book II), Chapter 10
    6. “Strong's H430 - 'ĕlōhîm”. 《Blue Letter Bible》. 2023년 8월 13일에 확인함.
    7. “삼위일체에 관하여 성경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Got Questions》. 2023년 8월 13일에 확인함.
    8.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26)
    9. "야훼 하느님께서는 '이제 이 사람이 우리들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으니,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먹고 끝없이 살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시고" (창세기 3,22)
    10.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1,7 개역개정)
    11. "그 때 주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이사야 6,8)
    12. 역사신학연구회. 《삼위일체론의 역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8)
    13. 켈리《고대기독교교리사》박희석 역 (크리스찬다이제스트. 2004) p.102
    14. J.P. Migne, Patrologia Latina. 58. 2.
    15. F. Loofs, Leitfaden zum Studium der Dogmengeschiche, 5ed. 1950, 15.4
    16. 히폴리뚜스《사도전승》 이형우 역주 (분도출판사, 1992) p. 77
    17. '신 가톨릭 백과사전'(New Catholic Encyclopedia, 1967년판) 제14권 299면에 수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결국 삼위일체 교의는 4세기 후반에 가서야 고안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어떤 면으로 볼 때 그것은 사실이다. (중략) ‘세 위 속의 한 하느님’이란 교리는 4세기 말 이전에는 완전히 확립되지 않았으며, 온전히 그리스도인 생활과 신앙 고백의 일부가 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18. The Encyclopedia Americana (1956), Vol. XXVII, p. 294L
    19. Nouveau Dictionnaire Universel (Paris, 1865-1870),Vol. 2, p. 1467
    20. Cornell University Press, Egyptian Religion(1992), Siegfried Morenz,Ann E. Keep
    21. The Symbolism of Hindu Gods and Rituals(2001), A. Parthasarathy
    22.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 James Hastings(Editor), Caharles Scribner's Sons
    23. History of Christianity(1891), Edward Gibbon
    24.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영문, 1970년판) 제6권 386면에는 보편교회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채택된 제1차 니케아 공의회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니케아 공의회는 325년 5월 20일에 열렸다. 콘스탄티누스는 직접 회의를 주재하면서 토의를 적극적으로 주도하였으며, (중략) 공의회가 발의한 신경에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관계를 ‘아버지와 하나의 실체’라고 표현한 결정적인 문구를 포함시킬 것을 직접 제안하였다. (중략) 주교들은 황제에게 위압감을 느껴 단지 두 명만 제외하고 신경에 서명하였는데, 그들 중 다수는 자신들의 견해와 매우 달리 행동한 것이다."
    25. Grudem, Wayne A. 1994.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Biblical Doctrine. Leicester, England: Inter-Varsity Press; Grand Rapids, MI: Zondervan. Pages 226, 236.
    26. 메이엔도르프, 존 (2022년 1월 6일). 《비잔틴 신학: 역사적 변천과 주요 교리》. 정교회출판사. 367쪽.
    27. 메이엔도르프, 존 (2022년 1월 6일). 《비잔틴 신학: 역사적 변천과 주요 교리》. 정교회출판사. 370쪽.
    28. “CHURCH FATHERS: Oration 40 (Gregory Nazianzen)”. 2024년 10월 28일에 확인함.
    29. The Greek Orthodox Theological Review, vol. 37 (Νov.) 3-4, Holy Cross Orthodox Press, Brookline, Mass., 1992.
    30. 이들은 대한민국 기독교계에서는 이단으로 구분되었다.
    31. Letham, Robert,. 〈introduction〉. 《The Holy Trinity : in scripture, history, theology, and worship》 Revis a Expa []판. Phillipsburg, New Jersey. xxxvii쪽. ISBN 978-1-62995-3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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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별 부르는 말과 의미(한문자)



    나이별 부르는 말과 의미
    한자어로 나이별 이름, 나이별 명칭

    최근에 연도로 세는 나이는 없어지고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만 나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인생의 여러 시기에 거쳐서 각 나이별 이름 또는 나이별 명칭이 있는데 알고 보니 어떤 것은 세는 나이고 어떤 것은 만 나이였다. 예를 들어 60세를 뜻하는 말이 이순(耳順)도 있도 환갑(還甲)도 있다고 들어왔는데, 사실 이순(耳順)은 세는 나이로 60이라 실제로는 만 59세 생일이고, 환갑(還甲) 또는 회갑(回甲)은 실제로 만 60세 생일이다. 오늘 이 글에서는 이런 나이별 생일을 부르는 명칭을 만 나이로 정리해 보겠다.    

    일단 기준부터 정해야 한다. 예전에 '세는 나이' 기준으로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고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씩 먹어서 12월 31일에 태어난 아가는 다음날 1월 1일에 두 살이 되는 이상한 셈법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턴 12월 31일에는 0세이고 그다음 날 해가 바뀐 1월 1일에도 만 0세 1일이 그 아기의 나이이다.

     그리고 태어난 날이 논리적으로는 '첫 생일'인 것 같지만 만 1세가 되는 생일 (=첫 돌)을 첫 번째 생일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첫 돌잔치에 초를 1개 꽂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느 정도 자라면 햇수로 세는 나이 기준으로 초를 꽂았던 기억이 있다.

     생일을 다른 말로 '귀빠진 날'이라고도 하는데, 이것도 사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로, 사람이 태어날 때 산모의 산도를 통과하기가 어려운 과정인데 이때 신생아의 가장 큰 신체 부위인 머리가 나오면 거의 성공한 것이고 머리 중에서는 가장 둘레가 큰 귀 부근이 빠져나오면 (=귀가 빠지면) 출산의 가장 큰 고비를 넘겨 성공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생일을 '귀 빠진 날' 또는 한자어 표현으로는 이출일(耳出日)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공자 맹자 시절의 옛날 중국에서도 '세는 나이'를 사용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논어에 나오는 나이는 '세는 나이' 기준이다. 세는 나이를 만 나이로 일괄적으로 변환할 수 없지만 (생일이 지났는지 여부에 따라 1씩 차이가 나니까..) 이 글에서는 아주 단순하게 '세는나이 - 1 = 만 나이'라고 가정하고 설명하겠다. 그런데 앞으로 만 나이가 제대로 정착되면 '세는 나이'가 뭔지 잊힐 것이라 아래처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고 혼용되어서 사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 1세: '돌'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생일잔치는 '돌잔치'라고 따로 행사를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백일잔치도 하고 돌잔치 때에는 가족, 친척, 지인들 다 불러서 그야말로 '잔치'를 했지만 요새는 가족끼리 조촐하게 하는 분위기이다.

     세는 나이 15세 (만 14세가 되는 해): 지학(志學) - 공자가 '15세에 학문(學)에 뜻(志)을 두었다 (吾十有五而志於學)’라고 말했다고 하여 유래한 말

     만 16세: Sweet Sixteen - 북미 지역 (미국/캐나다)에서 일종의 '성인식' 의미도 겸하는 생일로 특히 여학생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두어 파티를 열기도 하는 생일

     세는 나이 20세 (만 19세가 되는 해): 약관(弱冠) - 이 말은 논어는 아니고 '예기'에 나온 말로, 성인이 되어 머리에 관(冠)을 쓸 나이이지만 아직은 여러 면에서 성숙하지 못하고 약(弱)하다는 의미

     세는 나이 30세 (만 29세가 되는 해): 이립(而立) - '논어'에 나온 말로 '30세에는 나의 뜻이 확실히 섰다 (三十而立)'는 말에서 따온 것

     세는 나이 40세 (만 39세가 되는 해): 불혹(不惑) - '논어'에 나온 말로 '40세에는 어떠한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다 (四十而不惑)'는 말에서 따온 것인데, 요새는 불혹을 '아무도 나에게 혹하지 않는다 or 아무도 나를 유혹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우스개 말로 쓰기도 한다. ^^

     세는 나이 50세 (만 49세가 되는 해): 지천명(知天命) - '논어'에 나온 말로 '50세에는 하늘의 뜻/명을 알게 되었다 (五十而知天命)'는 말에서 따온 것

     세는 나이 60세 (만 59세가 되는 해):  이순(耳順), 육순(六旬)  - 이순은 '논어'에 나온 말로 '60세에는 어떤 말을 들어도 다 받아들이게 귀가 순해졌다 (六十而耳順)'는 말에서 따온 것이고, 육순은 순(旬)이 10을 뜻하는 한자라서 그냥 60의 다른 말이다. 예를 들어 11월 초순, 중순, 하순 이런 식으로 말할 때도 대략 11월 1일~10일이 초순, 11일~20일이 중순, 21일~말일까지를 하순으로 부르는 것처럼 순(旬)이 10을 뜻한다.

     만 60세: 환갑(還甲), 회갑(回甲) - 이것은 60 갑자를 설명해야 되는데 이건 너무 길 테니 따로 다른 글에서 하기로 하고, 간단히 설명하면 예전 역법(달력 시스템)에 따르면 매해 두 글자로 고유의 이름을 붙이는데 앞 글자에 올 수 있는 글자는 천간(天干)이라고 부르며 10개가 있고, 뒤에 올 수 있는 글자는 지지(地支)라고 부르며 12개가 온다. 천간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지지는 흔히 동물의 띠를 말하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이고 임진왜란 같은 것은 임진년 (천간 = 임, 지지 = 진이 되는 해)에 일어난 왜놈들의 난이란 뜻이다. 아무튼 10과 12의 최소 공배수는 60이므로 같은 이름의 해가 돌아오는 데에는 60년이 걸리고 천간의 첫 글자인 '갑'이 돌아왔다는 의미로 환갑(還甲), 회갑(回甲)이라고 일컫는다. 이것은 공자나 논어와는 관계가 없고 역법 시스템에서 온 말이다.

     만 61세: 진갑(進甲) - 이것은 환갑(甲)에서 한 살 더 전진(進)한다는 뜻에서 환갑 다음에 돌아오는 생일을 뜻한다.

     세는 나이 70세 (만 69세가 되는 해): 칠순(七旬), 고희(古稀), 종심(從心) - 여러 표현이 있는데, 칠순은 위에 설명한 것처럼 순(旬)이 10을 뜻하는 한자라서 그냥 70의 다른 말이고, 고희(古稀)는 중국의 유명한 시인인 두보의 시 곡강(曲江)에 나온 표현인 ‘인생에 있어 70세는 예로부터(古) 희귀(稀)하다 (人生七十古来稀)’에서 두 글자를 따와서 부르는 말이다. 종심(從心)은 공자님의 논어에도 ‘70이 되니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마음(心)을 따라도(從)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는 말에서 따온 것인데, 이번에는 시인 두보가 더 영향력이 컸는지 종심보다는 고희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세는 나이 80/90세 (만 79/89세가 되는 해): 팔순(八旬)/구순(九旬)  - 순(旬)이 10을 뜻하는 한자라서 그냥 80/90의 다른 말이다. 그리고 사람의 나이를 상/중/하(上/中/下)로 나눌 때 100세 이상을 상수, 80세를 중수(中壽), 60세를 하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는 나이 91세 (만 90세가 되는 해): 망백(望百)  - 백(百) 살을 바라본다(望)는 뜻.

     세는 나이 99세 (만 98세가 되는 해): 백수(白壽)  - 하얀(白) 나이란 의미는 아니고 일백 백(百)에서 하나 일(一)을 빼면 100 - 1 = 99라는 한자어 버전의 언어유희이다. 한편 현대 중국과 일본에서는 만 99세를 뜻하는 말로 쓰고 있다고 하고, 우리나라도 만 나이만 쓰게끔 변화 중이니 몇 년 뒤에는 위에 모든 것이 세는 나이가 아닌 만 나이로 그냥 사용(or 혼용)할 것 같긴 하다.

     세는 나이 100세 (만 99세가 되는 해) 또는 그 이상의 나이: 상수(上壽) - 사람의 나이를 상/중/하로 나눌 때 100세 이상을 상수, 80세를 중수, 60세를 하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묵상(默想) 라틴어 메디켈루스(Medikellus) - 약(medicine)


    묵상(默想)

    묵상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그것이 삶과 성품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칠 때까지 마음에 붙잡고 있는 것이다.
    -앤드류 머레이

    Meditation is holding the Word of God in the mind until it has affected every area of one's life and character.
    Andrew Murray

    묵상이란 라틴어는 "메디켈루스(medikelus)"라고 합니다.
    '메디켈루스'라는 단어에서 약(medicine)이라는 영어 단어가 유래합니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국에서 약을 조제할 때 대부분의 약은 약봉지 또는 약병에 담아서 제공합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약은 봉지에 담아 있거나 아니면 약병에 넣어 제공합니다.
    따라서 그 약이 내 건강과 내 몸에 유익이 되려면 반드시 약봉지를 뜯어서 복용하거나 약병의 약을 내 몸안에 넣어야만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읽는 것입니다.
    묵상한다는 것은 기억하고 암송하는 것입니다.
    묵상한다는 것은 암송한 것을 내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 묵상하다 - Meditari

    * 묵상하다 22구절 /

    창세기 24: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
    He went out to the field one evening to meditate, and as he looked up, he saw camels approaching.


    여호수아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Do not let this Book of the Law depart from your mouth; meditate on it day and night, so that you may be careful to do everything written in it. Then you will be prosperous and successful.




    3. [열왕기상 18:27]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간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 하매

    4. [시편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5. [시편 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6. [시편 39:3]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7. [시편 49:3]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

    8. [시편 63: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9. [시편 77:6]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

    10. [시편 77:12]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11. [시편 104:34]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

    12. [시편 119:15]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13. [시편 119:23]
    방백들도 앉아 나를 훼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나이다

    14. [시편 119:27]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15. [시편 119:48]
    또 나의 사랑하는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

    16. [시편 119:78]
    교만한 자가 무고히 나를 엎드러뜨렸으니 저희로 수치를 당케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이다

    17. [시편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18. [시편 119:99]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19. [시편 119:148]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20. [시편 143:5]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21. [시편 145:5]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사를 나는 묵상하리이다

    22. [전도서 12:9]
    전도자가 지혜로움으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묵상하고 궁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