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히 떨었노라 / 고린도전서 2:3-4


고린도전서 2:3-4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심히(4183) 떨었노라(5156) : 

* 4183.  πολύς, πολλή, πολύ, gen. πολλού, ῆς, οῦ

1. 많은,  2.  ㉠ 많은,  3. ㉠ 맹렬한

발음 / 포루스(pŏlüs) 
어원 / 속격. πολλός에서 유래
관련 성경 / 큰(마 2:18, 막 4:1, 눅 16:10), 많은(마 3:7, 막 6:33, 요 10:20), 수많은(행 11:21), 후한(행 28:10), 허다한(행 14:1), 여러(행9:13), 심히(막 5:38), 매우(눅 2:36), 가끔(눅 8:29), 몇(행 1:5), 여러 번(롬 15:22).
신약 성경 / 418회 사용
* 5156. τρόμος, ου, ὁ

1. 떨림,  2. 떠는 것,  3. 마가복음 16:8

발음 / 트로모스(trŏmŏs)
어원 / 5141에서 유래
관련 성경 / 떪(막 16:8, 고전 2:3, 고후 7:15, 엡 6:5), 떨림(빌 2:12).
신약 성경 / 5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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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6:8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고린도후서 7:15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에베소서 6: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빌립보서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노인(치매, 알츠하이머, 파킨슨)

노인의 다섯 가지 형벌(五刑) 

1. 목형(目刑) - 눈 목(目)
- 보이는 것이 뚜렷하지 않는 것

2. 치형(齒刑) - 이 칠(齒)
- 단단한 것을 씹을 힘이 없는 것

3. 각형(脚刑) - 다리 각(脚)
- 다리에 걸어갈 힘이 없는 것

4. 이형(耳刑) - 귀 이(耳)
- 들어도 정확하지 않는 것

5. 궁형(宮刑) - 집 궁(宮)
여색(女色)을 보고도 아무 일렁임이 없는 것

눈은 흐려져 책을 못 읽고
이는 빠져 음식을 잇몸으로 오물오물
걸을 힘이 없어 집에만 박혀 있고
보청기 도움 없이는 자꾸 딴소리만 하고 
미모의 여인을 보고도 아무런 일렁임도 없다는데....

노인의 다섯 가지 즐거움(五樂)

1. 정신 수양(精神 修養)
보이는 것이 또렷하지 않으니 눈을 감고 정신을 수양할 수 있고

2. 위 편안(胃 便安) 위장 위
단단한 것을 씹을 힘이 없으니 연한 것을 씹어 위를 편안하게 할 수 있고

3. 다리에 걸어갈 힘이 없으니 편안히 앉아 힘을 아낄 수 있고

4. 나쁜 소문을 듣지 않아 마음이 절로 고요하고

5. 여색으로 반드시 망신을 당할 행동에서 저절로 멀어지니 목숨을 오래 이어갈 수 있다. 

이 ‘오락’은 승지(承旨) 여선덕(呂善德)이 ‘오형’에 관해 하는 말을 듣고 심노숭이 반격에 나선 말입니다. 

이른바 노인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죠.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닌가요! 
화를 복으로 돌리는 심노숭의 말은 일품입니다.
생각을 한번 돌리자 그 많던 내 몸의 불행과 좌절이 더없는 행운과 기쁨으로 변합니다. 

● 눈을 감아 정신을 기르고, 
● 가벼운 식사로 위장을 편안케 하죠. 
● 힘을 아껴 고요히 앉아 정신을 수양하며, 
● 귀에 허튼소리를 들이지 않으니 마음이 요란하지 않습니다. 
● 정욕을 거두어 장수의 기틀을 마련하니 몸이 쾌락(快樂) 합니다. 

그러면 다가오는 ‘오형’에도 

①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은 기어이 보려하지 말 것이요. 
② 귀에 들리지 않는 일은 기어이 들으려하지 말 것이요. 
③ 보이고 들리는 일이라도 나에게 관계없는 일은 간섭하지 말 것이요. 
④ 의식 용도를 자녀에게 맡긴 후 대우의 후박을 마음에 두지 말 것이요. 
⑤ 소싯적 일을 생각하여 스스로 한탄하는 생각을 두지 말 것이요. 
⑥ 재산이나 자녀나 그 밖의 관계있는 일에 착심을 두지 말 것이요. 
⑦ 과거나 현재나 원망스럽고 섭섭한 생각이 있으면 다 없앨 것이요. 
⑧ 자기의 과거에 대한 시비에 끌리지 말 것이요. 
⑨ 염불과 좌선, 기도, 경전(經典) 공부를 부지런히 할 것이요. 
⑩ 무시선 무처선 공부에 끊임없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노인의 다섯 가지 좌절과 여섯 가지 즐거움.

서울대 규장각의 비수기인 책임연구원이 전해준 성호 이익 선생의

"노인의 다섯 가지 좌절''

​1. 낮에는 꾸벅 꾸벅 졸지만 밤에는 잠이 오지 않고,

​2. 곡할 때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는 눈물이 나며,

​3. 30년 전 일은 기억하면서 눈앞의 일은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4. 고기를 먹으면 뱃속에는 없고 이빨 사이에 다 끼고,

​5. 흰 얼굴은 검어지는데 검은 머리는 희어지네.

‘노인 예찬’

노인(老人)은 인생노정(人生路程)에서 온갖 질곡(桎梏)의 세월을 겪어 온 터라, 아량과 관용이 심연(深淵)처럼 깊고

충동적이고 자극적인 말을 가릴 줄 알고 하는 지혜로움도 있기 때문에,

여유로움과 느낌의 미학(美學)에서 나오는 삶(人生)의

철학(哲學)이보다 아름답기도 한 것이다.

당나라 이백(李白)은‘하늘과 땅은 만물이 깃드는 주막이요,

세월은 백대(百代)를 흘러가는 나그네’라고 하였고,

송나라 소동파 식(蘇東坡 軾)은‘사람 한평생이 마치 하늘을 날던

새가 눈벌판에 남기고 간 발자국과도 같다’고 하였는데,

이 말들은 우리‘사람이 사는 의미가 무엇일까?’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라 생각된다.

즉 사람이 이 세상의 주인도 아니고

또 사람은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저마다 주인이요 저마다 오래 살 궁리를 하고 있으나

그 무지몽매(無知蒙昧)함이 무엇에 비 할 수가 있겠는가 한다.

 

청년은 희망으로 살고, 노인은 추억으로 산다고 했다.

노년들도 한때는 역사(歷史)의 주인공이었고,

밤낮없이 바쁘게 일하고 수고했고,

성취의 보람을 누렸던 세대들이다.

그러나 꽃은 피면 다시 져야 열매로 발전하듯이,

역사의 주인공 자리를 자식에게, 제자에게

그리고 후배에게 물려주고 떠나야 한다.

떠나야 할 때 집착하면 노욕이요 남루해진다.

침묵해야 할 때 말을 하면 초라하고 불쌍해진다.

노인의 발언은 눈으로만 해야 한다.

할 말이 많이 있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을 때라도 절제하고 삼가라.

조언이나 상담을 요청할 때만 말을 거들고, 먼저 말하지 마라.

노인은 실전 용사가 아니라, 있는 그 자체 존재감으로만 있어야 한다.

그러니 오동나무는 천 년을 지나도 그 안에 아름다운 노래를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그런 대로 다산 정약용선생은 반대로 이런 것들이실은 좌절이 아니라 즐거움이라고 해학을 보였습니다.

​여섯 가지 즐거움

​1. 대머리가 되니 빗이 필요치 않고,

​2. 이가 없으니 치통이 사라지고,

​3. 눈이 어두우니 공부를 안 해 편안하고,

​4. 귀가 안 들려 세상 시비에서 멀어지며,

​5. 붓 가는대로 글을 쓰니 손 볼 필요가 없으며

6. 하수들과 바둑을 두니 여유가 있어 좋다.


한 여인이 집 밖으로 나왔는데 그녀의 정원 앞에 앉아 있는 3명의 노인을 보았습니다.

여인이 말했습니다. ​

"저희 집에 들어 오셔서 뭔가를 좀 드시겠어요?" ​

그런데 그 세 노인들은 "우리는 함께 집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왜죠?"

​"내 이름은 ‘재물’이고,  저 친구의 이름은 ‘성공’이고,  또 다른 친구의 이름은 ‘사랑’입니다.

집에 들어 가셔서 남편과 상의하세요.

우리 셋 중에 누가 당신의 집에 거하기를 원하는 지를...”

​부인은 집에 들어가 그들이 한 말을 남편에게 이야기했고 그녀의 남편은 너무 좋아하며 말했습니다.

​"우리 ‘재물’을 초대합시다. 그를 안으로 들게 해 우리 집을 부로 가득 채웁시다.”

​부인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여보!  왜 ‘성공’을 초대하지 않으세요? ‘성공’을 초대합시다."

​“무슨 소리야, 일단 재물이 풍부해야 성공하니 ‘재물’을 초대해야지”

​“아니, 쓸데없는 소리 말아요, 내 말대로 ‘성공’을 초대해요”

​조용했던 가정이 금방 싸움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며느리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사랑’을 초대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러면 싸우지 않고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되잖아요."

​"그래요, 우리 며느리의 조언을 받아 들여 사랑을 우리의 손님으로 맞아들입시다.”

​부인이 밖으로 나가 세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분이 ‘사랑’이세요? 저희 집으로 드시지요."

​‘사랑’이 일어나 집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른 두 사람도 일어나 그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서 부인이 ‘재물’과 ‘성공’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단지 ‘사랑’ 만을 초대했는데요. 두 분은 왜 따라 들어오시죠?"

​두 노인이 같이 대답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재물이나 성공을 초대했다면 우리 중 다른 두 사람은 밖에 그냥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당신은 ‘사랑’을 초대했고, ‘사랑’이 가는 곳이면 어디나 우리 ‘재물’과 ‘성공’은 그 사랑을 따르지요. "

​사랑이 있는 곳에는 재물과 성공이 따르지만  사랑이 없는 재물과 성공은 늘 외롭고 슬플 것입니다.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바바라 부시 여사는대학졸업식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미국의 장래가 백악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미국의 장래는 백악관이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에 달려 있습니다.”

​프랑스 속담에도

“가정은 국가의 심장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심장이 건강해야 몸이 건강하듯 가정이 건강해야 나라가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가정은 사람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공장에서는 좋은 제품을 많이 만들어 시장에 내놓아야 시장경제가 살아나고 국가경제도 든든해집니다. ​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는 건강한 사고방식, 건전한 삶의 태도와 세계관을 가진 자녀를 양육해서 사회에 내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가정의 수준이 국가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오늘도 당신은 좋은 일만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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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미국에 살면서 받을 수 있는 노인 복지 혜택은 어떤 것이 있나요? 

A. 연방정부와 뉴욕 주 시정부는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지만 한인 노인들은 서투른 영어와 정보 부족 등으로 인해 놓치는 혜택이 많습니다.
한인들이 알아두면 유용한 각종 정부 혜택을 소개합니다. 

생계보조금(SSI, Supplemental Security Income)

연방사회보장국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소득 자산이 없거나 아주 적은 65세 이상 노인 또는 장애인에게 매달 지급합니다.
자산 한도는 독신 2,000달러, 부부 3,000달러입니다.
여기에는 현금과 예금 주식 채권 부동산 생명보험 장지 등이 포함됩니다.
소득에는 급여나 자영업 수입을 비롯해 사회보장연금 기타연금 근로자보상금 이자 배당금 로열티 상금 실업수당 선물 등이 해당됩니다. 월 지급 한도는 독신 733달러, 부부 1100달러입니다. 

노인 처방약 보험(EPIC)

EPIC은 메디케어 처방약 보험(파트 D) 수혜자 또는 가입 상태는 아니더라도 수혜 자격을 갖추고 있는 자, 그리고 메디케어 어드밴티지(파트 C) 가입자들 가운데 뉴욕주 거주 노인을 대상으로 처방약값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메디케이드 가입자도 상관없지만 전체 혜택을 받고 있지 않아야 합니다.
수혜 자격 기준은 연소득이 개인은 7만 5000달러, 부부는 10만 달러 이하입니다.

노인 메트로카드 반액 할인 프로그램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가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뉴욕 시 대중교통 요금을 절반으로 할인해주는 것입니다.
신청 시 필요한 것은 운전면허증이나 여권 등 사진이 들어 있는 신분증 입니다.
한인들은 뉴욕한인봉사센터(KCS) 코로나경로회관 또는 플러싱 경로회관을 방문하면 MTA에서 이곳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노인들을 대상으로 반액 카드를 제작해 줍니다.
한 번 발급받은 반액 카드는 2년간 사용할 수 있으며 나중에 갱신도 가능합니다. 

노인 렌트 인상 면제 프로그램(SCRIE)

SCRIE는 부당한 렌트 인상으로부터 노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현재 뉴욕 시는 이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타운에 따라 시행하는 곳도 있고 적용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롱아일랜드 나소카운티는 글렌코브와 노스헴스테드, 헴스테드 등 4개 타운이 시행하고 있고, 웨스트체스터카운티는 16개 타운이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은 집주인이 렌트를 인상할 경우 해당 인상분만큼을 시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 골자입니다.
SCRIE는 현재 렌트 규제법이 적용되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62세 이상 노인으로 연소득이 5만 달러 이하면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이때 렌트 지출이 연 소득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해야 합니다.
뉴욕시 거주자는 재정국 웹사이트(www.nyc.gov/finance)에서 신청서를 내려 받아 우편으로 보내거나 온라인에서 신청서를 작성하면 됩니다.
KCS와 민권센터 등에서 SCRIE 신청을 돕고 있습니다.
민권센터 718-460-5600. 

액세스-어-라이드(Access-A-Ride)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가 노인과 장애인 등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운영하는 교통수단으로 이용 자격을 갖출 경우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한 후 정해진 탑승 장소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요금은 일반 대중교통 시설과 같은 2.75달러며 65세 이상 노인은 1.35달러입니다.
주 7일 24시간 운행되고 요청하면 한국어 통역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노인 주택 소유주 재산세 감면 프로그램(SCHE)

65세 이상 주택 및 콘도미니엄, 코압(co-op)아파트 소유주에게 재산세를 소득에 따라 최대 50%까지 감면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최대 1~3개의 주택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배우자 또는 형제 자매와 함께 주택을 소유하고 있을 경우 소유주 중 한 명만 65세 이상이면 됩니다.
SCHE혜택을 받으려면 본인과 배우자의 연소득이 3만 7399달러를 넘어서는 안 됩니다.
최소 12개월간 해당 주택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신청자의 법적 거주지여야 합니다.
단 주거 목적으로만 사용했어야 합니다.
프로그램은 소득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되는데 소득이 2만 9000달러까지는 재산세의 50%, 2만 9001~2만 9999달러까지는 45%, 3만~3만1999달러까지는 35%, 3만 2000~2만 2899달러까지는 30%, 3만2900~3만3799달러까지는 25%, 3만3800~3만4699달러까지는 20%, 3만4700~3만5599달러까지는 15%, 3만5600~3만6499달러까지는 10%, 3만6500달러~3만7399달러까지는 5%의 재산세 감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매년 3월 15일까지 신청해야 하며, 회계연도 시작일인 같은 해 7월 1일부터 혜택이 주어집니다. 

푸드스탬프

푸드스탬프로 알려진 영양지원 프로그램(SNAP)은 수퍼마켓 등 가맹점에서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일정액의 쿠폰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소득과 자산 제한이 있지만 60세 노인과 장애인이 속한 가구의 경우 자산과 관계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에너지절약조회 및 패키징 프로그램(WRAP)

뉴욕 주 노인국 프로그램으로 에너지 절약을 위해 저소득층 노인 가정에 단열재 제공, 문과 창문 교체, 난로 및 지붕 수리 등을 무료로 제공합니다.
뉴욕주난방비지원프로그램(HEAP) 수혜자로 60세 이상이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노인아파트

노인아파트도 뉴욕시의 대표적인 노인 대상 혜택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인아파트 입주 자격은 62세 이상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한인 밀집지역인 플러싱을 포함해 뉴욕 시 5개 보로에서 노인아파트에 입주하기는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 수년씩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자신이 원하는 지역의 노인아파트 현황부터 파악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녀에게 부탁해 관련 정부기관의 웹사이트에서도 원하는 지역의 노인아파트 현황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뉴욕시를 벗어나면 노인아파트 구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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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노인의 시

 

이 세상에서 최상의 일은 무엇일까?

기쁜 마음으로 나이를 먹고

일하고 싶지만 쉬고

말하고 싶지만  침묵하고,

실망스러워질때 희망을 지니며,

공손히 마음 편히 내 십자가를 지자.

젊은이가 힘차게 하나님의 길을 가는 것을 보아도,

시기하지 않고,

남을 위하여 일하기 보다

겸손되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으며

쇠약하여 이제 남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어도

온유하고 친절한 마음을 잃지 않는것.

늙음의 무거운 짐은 하나님의 선물

오랜 세월 때묻은 마음을 이로써 마지막으로 닦는다.

참된 고향으로 가기 위해

자기를 이승에 잡아두는 끈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는 것.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이리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면

그것을 겸손되이 받아들이자.

하느님은 마지막으로 제일 좋은 일을 남겨두신다.

그것은 기도이다.

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합장만은 끝까지 할 수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 위해

하느님이 은총을 베푸시도록 빌기 위해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임종의 머리맡에 하느님의 소리를 듣게 될것이다.

"오너라 나의 벗아, 나 너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 고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번역한 '독일의 어떤 노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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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나이 들게 하소서
  칼 윌슨 베이커(번역 장영희)
 
  아름답게 나이 들게 하소서
  수많은 멋진 것이 그러하듯이
  레이스와 상아(象牙)와 황금
  그리고 비단도 꼭 새것만이 좋은 건 아닙니다.
  오래된 나무에 치유력이 있고
  오래된 거리에 영화가 깃들어 있듯이
  이들처럼 저도 나이 들어감에 따라
  더욱 아름다워질 수는 없나요.
 
 
  Let Me Grow Lovely
  Karle Wilson Baker
 
  Let me grow lovely, growing old
  So many fine things do:
  Laces, and ivory, and gold,
  And silks need not be new;
  And there is healing in old trees,
  Old streets a glamour hold;
  Why may not I, as well as these,
  Grow lovely, growing old.

칼 윌슨 베이커는 1878년 11월 13일 미국 아칸소주(州) 리틀록(Little Rock)에서 태어났다. 시카고대학을 나와 모교인 리틀록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아름다운 시를 썼다.
 
  고(故) 장영희 선생이 번역한 ‘아름답게 나이 들게 하소서’는 모든 노인의 바람을 담고 있다. 누구나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싶다. 젊은 시절 땀 흘려 일하고 노년에는 편안한 삶을 누리고 싶다. 생계를 위해, 먹고살기 위해 일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일이 어느 정도 있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일’로 충분한 노동이었으면 좋겠다.

 
  봄기운 물씬한 정월 장날,
  어린 머윗잎보다 할아버지의 비단 한복
  더 여리고 고와 슬퍼지다
 
  등 위로 해거름 지고 귀가하는 노부부
  상상하다, 고와서 울다
 
  -최광임의 ‘고운 빛에 울다’ 전문
 
  화자(시인)는 시골 장터에 앉아 머위를 파는 어느 노인을 바라보고 있다. 머위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산자락이나 밭둑에서 주로 자란다. 봄에 입맛을 돋우는 채소다.
 
  머위 파는 노인이 울긋불긋한 색동 한복을 입고 있다. 몸은 늙었을망정 새 한복을 차려입고, 여리고 고운 머위를 파는 노인의 모습이 시인의 눈엔 슬픔으로 비쳤나 보다. 그 모습은 해거름 지고 귀가하는 노부부가 연상되어 ‘고와서 울다’라고 썼다. 노인과 노부부, 그리고 머위와 색동 한복을 대비하는 시선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인생이란 것이 별것인가
 
  김건일 시인의 ‘노인과 달빛’은 최근 펴낸 시집 《밭 만들기》(시문학 刊)에 수록되었다. 그는 1973년 《시문학》 11월호에 조병화, 이원섭 시인의 추천으로 시단에 입문했다. ‘노인과 달빛’ 역시 슬픔이 배어 있다. 몸은 농사에 지쳤으나 마을엔 일할 청년이 없다. 젊다는 사람이 쉰 나이다. 땅을 놀릴 수 없어 노인은 다시 쟁기를 든다. 힘에 부쳤으나 소를 앞세워 땅을 간다.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고삐를 놓을 수 없다. 뼈가 ‘뿌러지는’(‘부러지는’이 맞는 표현이지만 강조하기 위해 시인은 된소리로 표현했다) 한이 있더라도 땅을 간다.
 
김건일의 시집 《밭 만들기》.
  그 노인이 논을 갈고 있었다
  마을에는 젊은이라고는 없고
  젊다는 사람의 나이가
  쉰이 넘었다
 
  소는 쉴 틈 없이
  입에 거품을 뿜으며
  쟁기를 끌고
  노인은 힘에 부쳤으나
  소의 고삐를 놓을 수 없었다
 
  어찌 이 땅을 버리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이 땅을
  어찌 풀밭으로 만들랴
  뼈가 뿌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땅을 갈고
  이 땅에 씨를 뿌려야지
 
  노인은 달빛을 받고 있었다
  하이얀 달빛을
 
  -김건일의 ‘노인과 달빛’ 전문
 
  김건일의 같은 시집에 담긴 시 ‘인생이란 별것인가’는 죽음을 다루고 있다. 늙음은 필연적으로 가까운 가족의 죽음과 만나야 한다. 어느 날 시인은 형을 잃었다. 추운 날이면 그 형이 그립다. 어린 시절, 형은 부모님처럼 따뜻했다. 그러던 형이 사업에 실패하고 말았다. 부모님 같은 형의 몰락이 동생은 안타까웠다. 집도 없이 노숙하는 형의 얼굴이 보기 싫었다. 그런 형이 어느 날 말도 없이 죽었다. 시인은 ‘모든 것을 버리고/말없이 떠나버리는 것//인생이란 것이 별것인가’라고 읊조린다.
 
  따뜻한 것이 그립다
  형이 그립다
  살아계셨을 땐 몰랐는데
  이렇게 추운 날은
  따뜻한 형이 그립다
 
  부모님 같은 형
  형이 망하여 노숙할 때
  왜 형이 노숙하느냐고
  노숙하는 형이 미워 미워
  형의 얼굴이 보기 싫었다
 
  왜 노숙을 해 노숙을 해
  형이 원망스럽고
  밉고 불쾌하고
  보기가 싫어서 형을 외면했다
  보기가 싫어서 말도 안 했다
  아아 형이 그런 형이
  말도 없이 돌아가시자
  무엇인가 강하게 때렸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너도 더 그럴 수 있다
 
  힘이 없으면 생각도 없고
  힘이 없으면 부끄러움도 없고
  힘이 없으면 죽는 줄도 모르고
  모든 것을 버리고
  말없이 떠나버리는 것
 
  인생이란 것이 별것인가
 
  -김건일의 ‘인생이란 별것인가’ 전문

어찌 늙어보지 않고 삶을 논하는가
 
두 노인. 시인 이채는 ‘어찌 늙어보지 않고 늙음을 말하는가’라고 말한다.
  시인 이채의 시 ‘인생 칠십이면’은 나이 일흔에 겪게 되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시인은 ‘인생 칠십이면 가히 천심’이라 노래한다. 욕망의 덧없음을, 삶과 죽음을 뛰어넘은 듯하다. ‘흐르는 물’이 내 세월 같고 ‘부는 바람’이 내 마음 같다, 세상사 모질고 거칠어도 누구를 탓하고 무엇을 탐하겠느냐고 토로한다. 죽음이 먼 듯 느껴지지만 ‘영혼의 날개’를 달면 단숨에 닿을 수 있다.
 
  인생 칠십이면 가히 무심이로다
  흐르는 물은 내 세월 같고
  부는 바람은 내 마음 같고
  저무는 해는 내 모습 같으니
  어찌 늙어보지 않고 늙음을 말하는가
 
  육신이 칠십이면 무엇인들 성하리오
  둥근 돌이 우연일 리 없고
  오랜 나무가 공연할 리 없고
  지는 낙엽이 온전할 리 없으니
  어찌 늙어보지 않고 삶을 논하는가
 
  인생 칠십이면 가히 천심이로다
  세상사 모질고
  인생사 거칠어도
  내 품 안에 떠가는 구름들아
  누구를 탓하고 무엇을 탐하리오
 
  그곳이 먼 듯하여도
  천리만리 먼 듯하여도
  마지막 눈감으면
  영혼의 날개 달고 단숨에 닿는 그곳
  누가 하늘을 멀다고 하는가
 
  -이채의 ‘인생 칠십이면’ 전문
 
 
  늙어서도 열매 맺으며 수액이 많고 싱싱하리니
 
어느 유럽 수도원의 늙은 수사들. 그들은 노년의 성장을 위해 〈시편〉 92장 13~15절을 외운다고 한다.
  강성백의 시 ‘늙음의 높이’는 ‘늙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시다. 한때 소년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몰래 아버지 신발을 신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 일하며 아버지(가장)의 시간을 살았다. ‘늙은 내’가 마당을 쓸다가 문득 논을 갈고 있는 젊은 아버지가 떠오른다.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이 하나로 이어짐을 느낀다. 소년과 젊은 아버지, 노인의 시간이 서로 중첩되고 엇갈린다. 마지막 행은 마치 선시(禪詩) 같다. ‘백년 후에도/오늘처럼 바람이 불어오리라’.
 
  한때 나는 소년이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몰래 아버지 신발을 신고
  아득한 시간 밖을 서성이다 오곤 했다
  나이 들어
  아버지의 세월을 내가 가고…
  중력을 벗어난 시간 속에서는
  젊은 아버지가 논을 갈고
  늙은 내가 마당을 쓸고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이
  다를 바 없이 하나로 이어지고 있음을 본다
  백년 후에도
  오늘처럼 바람이 불어오리라
 
  -강성백의 ‘늙음의 높이’ 전문
 
  《구약(舊約)성경》의 〈시편〉 92장 13~15절 말씀은, 노년의 성장함을 상징하는 구절이다.
육체적 강함이 아니라 정신적 삶의 수액을 내면에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톨릭 수도원의 늙은 수도자들은 이 구절을 외우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의인은 야자나무처럼 돋아나고 레바논의 향백나무처럼 자라리라.
  주님의 집에 심겨 우리 하느님의 앞뜰에서 돋아나리라.
  늙어서도 열매 맺으며 수액이 많고 싱싱하리니.
 

석불(石佛) / 장석주

죽산 가는 길목,

머리 없는 석불

둘이 서서 비에 젖는다.

사그막골 두 노인네

점심 끼니로 찐 감자 두어 개

천일염에 찍어 먹고

종일 오시는 비나

내다본다.

- 장석주, 『몽해항로』(민음사, 2010)

노인 / 박철

송곳 박을 땅조차 없어도

낫질 하나는 이력이 난 사람이었다

한번 허리를 굽히면

들깻잎이 한풀 꺾이도록

일어설 줄 모르는 인물이었다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눈물 찔끔이며 돼지 쓸개를 쑤셔넣던

세상 사랑하던 위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참빗질하듯 낫질을 하고

허리 펴지 않고 눈물을 감춰도

끝내 송곳 박을 땅조차

남기지 못하고 간 서출이었다

세월이 이만큼 흘러

그 씨알머리 아직 마음 잡지 못하고

샛강에 나가 낮술을 지우다보면

세상 이 풍진 수풀을 향해

낫 들고 달겨드는

산발한 노인이 있다

- 박철,『새의 全部』(도서출판 문학동네, 1995)

꼭지 / 문인수

독거노인 저 할머니 동사무소 간다. 잔뜩 꼬부라져 달팽이 같다.

그렇게 고픈 배 접어 감추며

여생을 핥는지, 참 애터지게 느리게

골목길 걸어올라간다. 골목길 꼬불꼬불한 끝에 달랑 쪼그리고 앉은 꼭지야,

걷다가 또 쉬는데

전봇대 아래 웬 민들레꽃 한 송이

노랗다. 바닥에, 기억의 끝이

노랗다.

젖배 곯아 노랗다. 이년의 꼭지야 그 언제 하늘 꼭대기도 넘어가랴.

주전자 꼭다리 떨어져나가듯 저, 어느 한점 시간처럼 새 날아간다.

- 문인수,『배꼽』(창비, 2008)

베드타운 / 하종오

- 상노인

자투리땅에 고추모종을 내는 상노인

한 주를 심을 때마다 가을까지

태양초 세 근씩 거둬 자식에게 줄 계산했다

도시개발구역으로 수용된 야산에 세워진

아파트의 그늘이 옮겨가기 전에 일 마친 상노인

삽과 호미를 검정비닐로 싸서 고랑에 숨겨두고

아파트 15층 집으로 올라가 베란다에 나앉았다

네거리는 상추밭이 있던 곳

모텔은 아욱밭이 있던 곳

오피스텔은 파밭이 있던 곳

눈으로 한 자리 한 자리 짚어보는 상노인

왜 신시가지가 들어서서 부자 되게 해주었는지

가리사니가 서진 않아도

대학공부 제대로 시킨 자식에게

논밭뙤기로 물려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고개 끄덕였다

높은 데서 살면서 땅을 내려다보게 될 거라곤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상노인

고추농사를 소일거리로 지을 수 있는 자투리땅이

저어기 아래에 남아 있으니, 말년이다, 싶었다

- 하종오,『베드타운』(창비, 2008)

빈 의자 / 나희덕

나는 침묵의 곁을 지나곤 했다

노인은 늘 길가 낡은 의자에 앉아

안경 너머로 무언가 응시하고 있었는데

한편으론 아무것도 보고있지 않은 듯 했다

이따금 새들이 내려와

침묵의 모서리를 쪼다가 날아갈 뿐이었다

움직이는 걸 한번도 볼 수 없지만

그의 몸 절반에는 아직 피가 돌고 있을 것이다

축 늘어뜨린 왼손보다

무릎을 짚고 있는 오른손이 그걸 말해준다

손 위에 번져가는 검버섯을 지켜 보듯이

그대로 검버섯으로 세상 구석에 피어난 듯이

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다는 일만이

그가 살아있다는 필사적인 증거였다

어느날 그 침묵이 텅 비워진 자리

세월이 그의 몸을 빠져나간 후

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빈 의자에는

작은 새들조차 날아오지 않았다

-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작과비평사, 1994)

개밥바라기 / 박형준

노인은 먹은 것이 없다고 혼잣말을 하다

고개만 돌린 채 창문을 바라본다.

개밥바라기, 오래전에 빠져버린 어금니처럼 반짝인다.

노인은 시골집에 혼자 버려두고 온 개를 생각한다.

툇마루 밑의 흙을 파내다

베고픔 뉘일 구덩이에 몸을 웅크린 채

앞다리를 모으고 있을 개, 저녁밥 때가 되어도 집은 조용하다

매일 누워 운신을 못하는 노인의 침대는

가운데가 푹 꺼져 있다.

초저녁 창문에 먼 데 낑낑대는 소리,

노인은 툇마루 속 구덩이에서 귀를 쫑긋대며

자신의 발소리를 기다리는

배고픈 개의 밥바라기 별을 올려다본다.

까실한 개의 혓바닥이 금이 간 허리에 느껴진다.

깨진 토기 같은 피부

초저녁 맑은 허기가 핥고 지나간다.

- 박형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문학과지성사, 2011)

안개 노인 / 문정희

안개 벗어나니 또 안개

이윽고 아름다움도 위험도 없는 허허벌판이다

영원한 잠이 바짝 쫓는 것 말고는 급할 것이 없다

걸어온 길에 대해 할 말은 좀 있지만

노동력 없는 무산자 계급으로 그만 입 다물기로 했다

무릎과 치아의 통증에다

핏빛 네온 휘황한 자본주의를 칙칙하게 만든 죄로

그늘에서 어슬렁거린다

그래도 정체불명의 이름 어르신이라 어르며

지하철과 고궁이 두루 공짜 아닌가

장수 시대 알토란 같은 의료보험을 잘라먹는다고

한쪽에선 폐기물 보듯 하지만

파고다공원을 차지한 이도 있다 한다

까짓것! 오늘 점심에는 식판을 들고 굽은 어깨로

절이나 교회의 무료 급식대 앞에 줄이나 서 볼까

공동묘지 비슷한 색깔의 검버섯 핀 얼굴로

얻어먹는 한 끼의 선심은 얼마나 새로운 맛일까

언제부터 나이가 곧 늙음이 되고

늙음은 곧 나쁜 것이 되었을까

갈수록 배울 것 많고 난생처음 아닌 곳도 없다

- 문정희,​『응』(민음사, 2014)

돌돌 / 최영철

순한 것들 돌돌 말려 죽어간다

죽을 때가 가까우면 순하게 돌돌 말린다

고개 숙이는 것 조아리는 것 무릎 꿇는 것

엊그제 떨어진 잎이 돌돌 말렸다

저 건너 건너 밭고랑

호미를 놓친 노인 돌돌 말렸다

오래전부터 돌돌 말려가고 있었다

돌돌 말린 등으로

수레가 구르듯 세 고랑을 맸다

날 때부터 구부러져 있었던 호미를 들고

호미처럼 구부러지며

고랑 끝까지 왔다

고랑에 돌돌 말려

고랑 끝에 다다른 노인 곁에

몸을 둥글게 만 잎들이 모여들었다

돌돌 저 먼데서부터 몸을 말며

여기까지 왔다

- 최영철,『돌돌』(실천문학사, 2017)

구름의 종점 / 고영

장기판을 기웃거리던 노인이 벤치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다. 못 다한 훈수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담배를 태우다 말고

하릴없이 공중을 올려다보고 있다.

담배연기에 밀려 조금씩 멀어지는 뭉게구름을

돋보기안경이 다시 빨아들인다.

초점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구름과 함께 흘러가는 머언 기억들……

갈수록 흐릿해지는 저 구름이 종점에 다다르기 전

노인의 입에서 놀던 온갖 훈수들도

제 갈 길을 찾아 떠날 것이다.

그리곤 아무도 말을 걸지도, 들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구부러진 담뱃재가 고꾸라질 듯 위태롭다.

노인을 바라보는 내 눈이 다 맵다.

담배를 태우던 것도 잊고

노인은 서서히 졸음에 꺾이고 있다.

​- 고영,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문학세계사, 2009)

호루라기 / 최영철

아이들 뜀박질이 앞장서고 우렁찬 구령이 뒤따르고

호룩호룩 추임새에 펑펑 터지던 환호성들

호루라기 이제 싱그러운 가슴팍이 아니라

늙고 병든 저 할머니 머리맡에 걸려 있네

좋은 시절 다 보낸 빈털터리

할아버지 발치에 놓여 있네

호루라기 소리 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 때 있었지

얼굴 닦는둥 마는둥 밥숟갈 어서 놓고

이빨 닦는둥 마는둥 한달음에 달려 나간 때 있었지

시퍼런 청춘을 목에 걸고 힘차게 불어제끼면

먼 산이 일렬횡대로 뛰어오고

졸고 있던 새들이 푸드득 날아올랐지

이제 호루라기 달려나가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느릿느릿 해 기우는 저녁으로 가기 위해 있네

가장 첫 자리 새벽녘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로 오는 게 아니라

엉금엉금 기어가는 해소천식으로 일어나기 위해 있네

게으름 피고 늘어졌던 것들

일제히 불러일으키며 오는 게 아니라

뒷전으로 아래로 슬슬 몸을 빼기 위해 있네

호루라기 이제 설레는 아이들의 가슴에 있지 않고

무허가 냉방 빗물 떨어지는 비닐 하꼬방에 있네

자식 가고 영감 할멈 먼저 가고 덩그러니 남은

한많은 세월의 대못 자리 위

사지를 늘어뜨리고 있네

- 최영철,『호루라기』(문학과지성사, 2006)

고독사에 대한 보고서 / 공광규

시골 재당숙이 혼자 살다 돌아가셨다

집안 역사교과서 한 권이

동네 이야기책과 지적도 한 책이

신명꾼 하나가 사라졌다

혈관부에 피가 돌던 굽은 나무 한 그루가

평생 동네를 떠나본 적 없는 말뚝 하나가 뽑혔다

매일 아침 열리던 대문이 며칠째 닫혀 있자

독거노인 둘이 방문을 열었다고 한다

산비탈에 황토 구덩이를 파놓고

대전으로 부검 받으러 떠난 시체를 기다리는 노인들

혼자 살다 죽으면

칼로 배가 갈려 한 번 더 죽어야 한다며

노을이 번질 때까지 투정하는 인부들

땅을 향해 몸이 자꾸 꼬부라지는 노인들이

겨우겨우 무덤 가까이에 친 천막에 올라와

고인이 나이롱 뽕을 좋아하고

'갈대의 순정'이 십팔번이었다고 회고했다

동네에 들어와 사는 타지 출신 중늙은이 몇과

시골노인들이 보는 앞에서 관을 들고

비탈에 올라 청태산 낙타봉을 좌향 삼아 심었다

동네회관에 내려와 저녁 먹고 술을 나누는데

재당숙이 보이지 않던 며칠간

자식들 대신 까마귀가 집 주위를 돌며

맑게 울다 떠났다고 했다

- 공광규,『파주에게』(실천문학, 2017)

쉬 /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 문인수,『쉬!』(문학동네, 2006)


노인과 땡감
  
최일화


백발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절룩절룩 가고
나는 저만치 떨어져 터덜터덜
노인의 뒤를 걷고 있다
갑자기 노인이
반듯하게 몸을 세우더니
지팡이를 높이 들어 힘껏 내리친다
무엇인가 박살이 나면서 날아간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땡감
나도 왕년에 골프깨나 쳤다고
마음은 지금도 청춘이라고

노인은 다시 
절룩절룩 앞서서 가고
나는 터덜터덜 노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초가을 바람이
나를 앞지르고 노인을 앞질러
저만치 내달리고 있었다

―『마지막 리허설』(시인동네,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3) / 백발노인의 힘 - 최일화의 ‘노인과 땡감’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아마도 시인은 산책길에서 이 백발노인의 돌출행동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이리라. 지팡이를 짚고 다리까지 절며 가던 백발노인이 무언가를 보았다. 갑자기 반듯하게 몸을 세우더니 지팡이를 높이 들어 힘껏 내리쳤다. 박살이 나면서 날아간 것은 땡감이었다. 이 대목이 재미있다. “나도 왕년에 골프깨나 쳤다고/ 마음은 지금도 청춘이라고”

특별한 상상력이나 낯선 시적 표현을 동원하지 않은, 지극히 평이한 시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에 내 영혼을 울린 것은 “초가을 바람”의 의미를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추풍낙엽, 즉 때가 지면 떨어지는 것이 잎사귀의 운명이듯이 우리 인간도 생로병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다 때가 되면 멈춘다. 하지만 문득, 무엇을 보면 필드에서 공을 하늘 높이 쳐 올리던 시절이 생각나지 않겠는가. 어느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지팡이를 휘두른 백발노인의 모습이 참 재미있다. 한번 멋지게 포즈를 잡아보고는 다시 지팡이를 짚고 절룩절룩 걸어가는 백발노인의 뒷모습이 ‘귀엽다’고 한다면 실례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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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예찬(老人禮讚)


德泉  황용운 (시인, 수필가)

 
여보게!
저녁놀 붉게 스러지는데
늙은 몸에 무슨 짐을 그리도
무겁게 지고 가는가
인생길은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일방 통행로
 
가다가 컬컬하면 허름한 주막에 들러
막걸리로 목도 축이고 얼큰해 지면
주모와 한바탕 농도 걸어보고...

까짓 것
그럴싸한 존재의 이유도 없이
이 풍진 세상에 태어난 것을
요만큼 살다가 가는 것도
다행 아닌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따져보면 그리 밑질 것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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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vs. 알츠하이머 vs. 파킨슨병 무엇이 다를까?

나이 들면서 생기는 퇴행성 질환 중에서 뇌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퇴행성 뇌질환이라 한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뇌신경세포가 죽거나 뇌신경세포와 뇌신경세포 사이의 정보를 전달하는 시냅스의 형성이나 기능상의 문제 등이 동반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경세포들은 그 위치에 따라 매우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부위에 문제가 생기느냐에 따라 퇴행성 뇌질환은 다양한 임상 양상과 기능 장애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뇌손상에 의한 여러 장애를 포괄하는 의미로 치매라 하며, 그 자체가 하나의 질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치매의 종류
- 알츠하이머병 (노망)
- 혈관성 치매 (중풍)
- 파킨슨병
- 노화에 의한 치매
- 음주와 흡연에 의한 치매
- 유전성 치매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전체 치매 환자의 약 50~80%의 원인질환이 바로 알츠하이머병이다. 대뇌 피질세포의 점진적인 퇴행성 변화로 뇌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신경세포수가 현저히 감소하며, 가벼운 건망증으로 시작해 기능장애는 물론 기억력과 정서면에서 심각한 장애가 생기기 때문에 노망(老妄)이라 불리기도 한다.

   벤치에 앉아 있는 노부부

전형적인 알츠하이머병 증상은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며, 최근 일이나 사람의 이름, 사물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 하는 기억장애, 길을 잃거나 복잡한 그림을 따라 그리지 못하는 공간지각장애, 판단력 저하 등이 동반되며, 간단한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호소하게 된다.

일반적인 건망증과 치매 증상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

알츠하이머병 vs.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이 주 증상으로 인지기능장애를 보이다가 병변이 뇌 표면에서 뇌의 깊숙한 곳으로 퍼지면서 운동장애가 동반되는 경향을 보인다면, 뇌의 깊숙한 곳에서 병변이 주로 시작되는 파킨슨병은 운동장애 증상을 먼저 보이다가 병변이 뇌의 표면 쪽으로 퍼지면서 인지기능장애 등 흔히 표현되는 치매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파킨슨병 환자의 약 30%에서 치매가 발생한다.

파킨슨병은 뇌의 흑질(손톱 정도의 크기로 뇌세포가 밀집되어 있음)에서 도파민(신경전달물질)을 만드는 세포가 퇴화하여 동작이 느려지고, 손발이 떨리고 뻣뻣해지는 증상이 주로 나타난다. 중풍 즉 혈관성 치매 환자는 CT나 MRI 검사상 뇌 손상 부위가 확인되지만, 파킨슨병 환자의 뇌 사진은 정상이다. 즉 파킨슨병을 확진할 수 있는 검사는 없으며, 전문의의 진찰소견이 가장 중요하다.

파킨슨병의 주 증상
- 집중력 저하, 시공간 판단력 저하, 실행장애, 기억력 장애(힌트를 주변 기억을 되살림), 환시(헛것이 보임), 아침에는 괜찮았다가 밤에는 증상이 나타나는 등 증상의 기복이 심함, 치매 동반시 자주 넘어져(보행장애) 골절, 뇌출혈 등의 위험이 높아짐, 근육 경직(관절이 뻣뻣해지고 운동성 떨어지고 행동이 느려짐, 떨림 증상(팔다리부터 떨림이 나타나며 증상이 심해질수록 머리, 혀, 턱 등 전체적으로 떨림이 나타나고, 흥분했을 때 떨림 증상이 더 심해짐
- 기타 증상: 피부 끈적임(위생상태 불량, 얼굴 움직임 감소 등으로 얼굴이나 두피에 지루성 피부염이 잘 생김), 연하곤란/사래들림(근육조절 저하로 식사할 때나 물을 마실 때 사래가 들려 자주 기침하게 되고, 음식을 삼키기 어려움), 배변근육 운동기능 저하로 인한 변비, 침을 삼키는 운동기능 저하로 인한 침흘림, 자율신경계 이상에 의한 땀흘림/성기능 장애, 요도괄약근 운동기능저하로 인한 배뇨장애

파킨슨병 증상의 5단계

 파킨슨병의 주요증상

· 1단계 : 떨림이나 강직이 한쪽 팔이나 다리에만 있음.
· 2단계 : 떨림이나 강직이 양쪽 팔다리에도 나타남.
· 3단계 : 넘어질 듯이 비틀거림.
· 4단계 : 혼자 잘 일어나지 못하고 보조기구가 필요함.
· 5단계 : 누워서만 지내게 됨.

치매, 즉 퇴행성 뇌질환은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의학발전으로 인해 약물치료나 수술적 치료로 증상이 호전될 수 있으므로, 치마검진 등을 잘 받고 조기에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증상의 악화를 막고 병의 진행속도를 늦출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 : https://www.hidoc.co.kr/healthstory/news/C0000126384 | 하이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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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케네디 기독교 쇠퇴기, 오바마 이교도 성장기)


미국의 35대 대통령 J. F Kennedy 연설

1961년 1월 20일 제35대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네 나라가 네게 무엇을 해줄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네가 네 나라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 달라”고 새로운 애국심을 촉구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그가 피살되기 전날 만찬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다음 역사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다음 네 가지의 질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첫째, 당신은 참으로 용감한 사람이었는가?

둘째, 당신은 참으로 현명한 판단력이 있는가?

셋째, 당신은 참으로 현명한 사람이었는가?

넷째, 당신은 참으로 헌신하는 사람이었는가?

우리는 이 네 가지 질문에 긍극적진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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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칼럼

케네디 vs 오바마 그리고 창세기 1-11장

최우성 박사 (생리학, 창조과학선교회)

2012년 11월 6일 미국 대통령 선거결과 현 대통령인 버락 후세인 오바마 후보가 제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득표율 50%란 결과가 보여주듯이 이번 선거로 사람들의 마음이 크게 나뉘어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나뉘어진 마음에는 경제적인 것도 있지만 낙태와 동성애 문제가 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계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행동들에 크게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번 선거에 대해 크게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는 기독교인이라고 스스로 말하지만 성경적인 가치들을 명백하게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는 이슬람에 대해 아주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그런 언행들을 해도 정치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토대가 이미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었을까요?

1. 케네디 대통령 시절 - 기독교 쇠퇴기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미국 제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1961-1963년) 시절을 기점으로 미국의 공립학교는 큰 변화를 겪었다.

공립학교에서 기도와 십계명이 제거되고 점점 더 많은 기독교적인 활동과 정신이 제거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일들도 그냥 한 번의 결단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런 변화의 토대가 1925년부터 쌓여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 토대는 성경을 반대하는 진화론이었다.
점점 세력을 키워 오던 진화론은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는 아예 공립학교에서 사람과 우주와 만물의 기원에 대한 유일한 설명으로 자리 잡았다.

이혼으로 인한 가정파괴는 성경을 떠난 결과다.

지금 미국에서 이혼율이 50%가 넘었지만 1960년 초반에만 해도 이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1960년대 말부터 갑자기 치솟기 시작한 이혼율이 1970년대 중반에는 두 배가 되었다.
왜 그랬을까? 바로 진화론 교육의 영향이었던 것이다.
1960년 초부터 진화론만 배웠던 세대가 결혼하였을 무렵부터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아담은 하와를 처음 보았을 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면서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였다.
이 가정이란 제도는 인류가 범죄하기 이전에 창조자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하나님의 창조 질서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성경과 반대되는 진화론만을 배운 사람들에게 이 성경 말씀은 더 이상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었다.
관습에 따라 결혼하였기 때문에 상황이 어렵게 되면 어렵지 않게 이혼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이혼이 일반적인 문화가 되어버렸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 문화가 되었다는 말이다.

미국에서의 낙태도 진화론과 궤적을 같이하고 있다.
1960년대 말까지 미국에서 낙태는 거의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이후 급격하게 증가하여 1970년대 후반부터는 매년 약 100만 명의 생명들이 살해되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그 생명들이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는데 그 근거로 독일의 진화론자 헥켈이 그린 동물들의 발생과정그림을 제시하였다.
진화가 사실이기 때문에 모든 동물들은 수정란에서 시작해서 자라는 과정에 진화의 과정을 반복하고 사람도 배아단계에서는 동물과 구별되지 않는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러나 100년 동안 사용된 이 그림은 거짓이란 사실이 일반 과학자에 의해 사진으로 증명되었다(1997년).

2. 오바마 대통령 시절 - 이교도 성장기

창조와 창조주를 제거한 세상은 이제 어떻게 변할 것인가?
표면적으로 교회는 존재했지만 1960년대부터 이미 마음속에서 창조자를 모시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음 세대들은 점점 교회를 떠나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두 세대 만에 그들의 구원자 하나님을 잊어버렸듯이, 그 다음 세대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배우지 못했을 뿐 아니라 더욱 깊숙이 들어오는 진화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학교에서는 사실을 배우고 교회에서는 신화를 배운다고 느끼면서 자라났다.
성장기 때 그들은 자기들이 왜 교회 안에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성인이 되었을 때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Ham & Beemer, Already gone, Master Books, 2009).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무주공산이 될 수 없다.
마음에 창조주가 없으면 반드시 사탄의 영이 그 마음을 차지한다.
마음을 비우고 자연과 합일하라는 뉴에이지의 한 형태인 요가가 학교에서 공공연하게 가르쳐지고 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난 뉴에이지는 진화를 전제하고 있다.
지난 2세대 동안 기초를 다져온 진화론 위에 자연스럽게 요가와 같은 이교도의 신앙행위가 모든 학생들에게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를 잃어버린 미국의 세대들은 이제 힌두, 불교, 이슬람 같은 새로운 종교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2009년 4월 13일자 뉴스위크(Newsweek)지 표지에는 까만 표지에 빨간 글씨로 “미국 기독교의 쇠퇴와 몰락(The Decline and Fall of Christian America)”이 십자가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이 기사는 1990년부터 20년 동안 ‘자칭 크리스천’의 비율이 86%에서 76%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하나님이 죽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많은 신들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 기간에 무신론자 혹은 회의론자가 4배로 증가하였다.

성경에서 떠난 미국은 지금 무신론자를 포함해서 이교도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월 취임연설에서 아예 “미국은 더 이상 크리스천의 국가가 아니다”라고 선언을 했다.

911사건의 희생자들 옆에 대형 모스크가 들어설 수 있도록 도왔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후속타가 동성결혼 찬성이었던 것이다.

3. 창세기 1-11장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시 11:3).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은 창세기 1-11장에 있다.
거기에는 완전한 창조와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된 사람의 타락, 지구가 파괴 된 노아홍수의 심판, 언어 혼잡으로 뿔뿔이 흩어진 바벨탑 사건의 역사적 사실이 들어있다.
그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만 한 혈통인 온 인류는 창조자이신 하나님만을 유일한 구원자로 필요로 하며,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 교회는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 이 터전을 잃어왔고, 세상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을 맞아 아예 그 터전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에서는 진화론만을 사실로 가르치고 교회마저 이 진화론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창조론들은 결국 진화를 사실로 수용한 결과물들이다.
이런 다양한 창조이론들을 들어보지 않은 크리스천이 없을 것이다.

여러 다른 창조이론들은 결국 “성경”을 부정하는 것이다!
우주의 역사는 하나 이상일 수 없으므로 성경도 사실이고 성경에 반하는 진화도 동시에 사실일 수 없다.
이 사실은 아주 중요하다.
지금 많은 크리스천들은 진화를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부정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교회마저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믿음의 근본인 성경을 버리니 동성결혼까지도 수용하게 된 것이다.

결국 미국은 성경의 하나님을 버리게 되었다(Americans’ views of God shape attitudes on key issues, USA Today, 2010년 10월 7일).

진화론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진화를 받아들인 영국과 유럽의 교회는 이미 초토화 되었다.
미국 교회는 얼마나 남게 될까?
창세기 1-11장을 믿은 만큼 남게 될 것이다!

▲이메일 : mailforwscho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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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지금껏 비밀로 분류됐던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암살과 관련된 자료들을 공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재 생존해 있는 인물들의 이름과 주소를 제외하고 남은 모든 자료들을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케네디 암살 관련 자료의 일부는 정부 기관들의 요청에 의해 아직 미공개 상태다.

이번에 공개된 2800개의 자료를 많은 사람들이 조사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까지 밝혀진 것 중 가장 흥미로운 내용들만 모았다. 다만 이 자료에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 보고들도 포함돼 있음을 주의할 것.

1. FBI도 음모론을 우려했다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리 하비 오스왈드가 살해된 날 작성된 문서에서 J 에드거 후버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음모론이 확산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대중에게 오스왈드가 진짜 암살자라는 것을 확신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발표해야 한다는 겁니다." 문서에서 후버 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2. 오스왈드는 KGB 요원과 대화한 적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가 감청한 전화 통화를 바탕으로 작성한 문서는 오스왈드가 멕시코시티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의 KGB 요원과 대화했었다고 추정한다.

문서는 1963년 9월 28일 오스왈드가 "KGB 요원으로 확인된" 발레리 블라디미로비치 코스티코프와 대화했다고 한다. 코스티코프는 "사보타주와 암살에 관련된" KGB의 부서에서 일했다 한다.

오스왈드는 나중에 러시아 대사관에 전화해 "엉성한 러시아어"로 "워싱턴의 전보에 관련돼 새로운 게 있느냐"고 물었다.

3. FBI는 경찰에 오스왈드를 보호하라고 경고했다

케네디 대통령을 총으로 쏘아 살해한 오스왈드는 곧바로 체포 후 기소됐다. 그러나 이틀 후 오스왈드는 댈러스 경찰서 지하에서 인근의 나이트클럽 주인인 잭 루비가 쏜 총에 맞고 사망한다.

오스왈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까?

한 문서에 따르면 FBI는 댈러스 경찰에 오스왈드의 살해 위협에 대해 경고했다.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경찰서장에게 즉각 이를 알렸고 서장은 오스왈드가 충분한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4. 소련은 케네디의 죽음을 우려했다

몇몇 소련 관계자들은 지도자 없는 미국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어떤 무모한 미국의 장성이 소비에트 연방에 미사일을 발사할지 모른다고 두려워 했다"고 한 문서는 기록했다.

또한 이 문서는 소련 측이 "대통령의 암살이 한 사람의 범행이 아니라고 확신"했으며 "여러명이 역할을 분담한, 세심하게 계획된 작전"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5. 로버트 케네디의 '마릴린 먼로 자살 음모'

FBI는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F 케네디 법무장관에게 그와 마릴린 먼로의 불륜 관계에 대한 주장을 담은 책이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1964년 7월 7일 FBI가 로버트 케네디에게 전한 편지는 '마릴린 먼로의 기이한 죽음'이라는 책이 로버트가 "먼로 씨와 깊은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전한다.



FBI에 따르면 책의 저자는 마릴린 먼로가 "그(로버트)가 진지했다고 믿게 됐고" 로버트 케네디가 부인과 이혼하고 먼로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음을 시사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로버트 케네디가 이를 거부하자 먼로는 "그들의 관계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했고 로버트의 대권 야망을 꺾겠다고 했다는 것.

FBI는 저자가 책에서 로버트 케네디가 먼로를 살해한 후 자살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극단적인 수단"을 썼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FBI의 편지는 문제의 책이 먼로가 사망한 날 로버트 케네디가 그의 아파트에 있었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FBI 요원들은 로버트 케네디가 "실제로는 마릴린 먼로가 자살한 날 아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다"고 썼다.

마릴린 먼로는 1962년 8월 36세를 일기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숨졌다. 시 검시관에 따르면 진정제 과용이 사인이었다.

6. 사설탐정들이 케네디를 염탐하려 했다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작성된 한 FBI 문서는 당시 상원의원이던 케네디를 염탐하려 했던 시도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문서는 "헐리우드의 고급 콜걸"이 프레드 오태쉬라는 사설탐정이 자신에게 접근해 케네디 상원의원과 "섹스 파티"의 연관에 대해 물었다고 FBI 요원에게 말했다고 한다.

또한 이 사설탐정은 콜걸에게 케네디의 "무분별한 발언"을 녹음하기 위해 "녹음장치"를 장착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콜걸은 이를 거부했고 어떠한 "무분별한 행동"도 없었다고 말했다.

7. 암살 직전, 한 영국 신문은 익명의 전화를 받았다

한 문서는 '캠브리지 뉴스'라는 영국 지역신문이 케네디 암살 25분 전, 미국에서 큰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는 익명의 전화를 받았다고 기술한다.

"전화를 건 사람은 캠브리지 뉴스 기자에게 큰 사건이 벌어질 테니 런던의 미국 대사관에 전화해야 한다고만 말하고는 끊었다"고 문서는 기록했다.

8. 피델 카스트로 암살 계획

쿠바의 지도자들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담은 한 문서에는 주요 정부 관계자들을 "살해하거나 산채로 잡아오면" 최대 10만 달러의 현상금을 제시했다. 그러나 피델 카스트로에 대해서는 단 0.02달러의 현상금만 제시했다.


사진 출처, AFP

사진 설명,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1월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린 직후의 모습

그러나 다른 문서는 카스트로를 살해하는 데 대한 대가는 15만 달러였고 쿠바로부터 망명한 사람과 마피아 사이에 접촉이 있었다고 한다.

카스트로를 암살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방안 중에는 카스트로의 다이빙복을 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로 오염시키는 것이나 그의 음식에 독을 넣는 것 등이 있었다.

9. 존슨 대통령은 KKK였나?

한 FBI 보고서는 케네디 대통령이 사망한 후 대통령 직을 수행한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의 일원이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정보원은 KKK가 "존슨 대통령이 정치 초년생 시절 텍사스에 있는 KKK 지부의 멤버였다는 문서화된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시된 증거는 없었다.




깨닫다(수니에미) συνίημι(마 16:12), 기노스코(γινώσκω) 행 8:30 / 성경공부 인도자를 위한 바른 성경 해석의 원칙들


가끔 성경을 읽은 후에 또는 설교를 듣고 "깨달았다!" 라고 말하는 경우에 과연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많은 회의를 갖게 합니다.
왜냐하면 깨달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예전의 행동과 언어와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깨달음에 대해 묵상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6:12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 깨달으니라.

* συνίημι  4920

1. 깨닫다,  2. 이해하다,  3. 통찰하다

발음 / 수니에미(süniēmi) 
어원 / 미래 συνησω, 제1부정과거 συνῆ- κα, 제1부정과거 가정법 συνῆτε, συ- νῶσιν, 제2부정과거 명령 2인칭복수 σύνετε,
4862와 ἵημι ‘보내다’에서 유래
관련 성경 / 깨닫다(마 13:13, 막 4:12, 롬 3:11), 이해하다(엡 5:17), 지혜가 있다(고후 10:12)
신약 성경 / 26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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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인도자를 위한 바른 성경 해석의 원칙들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지기까지

성경 66권 중 구약의 39권은 그리스도시대 이전에 유대인들이 성경으로 확인(確因)한 것으로 대부분 히브리어(Hebrew Language)로 쓰였다. 구약 원문(原文)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극히 일부분만이 아람어(Aramaic language)로 기록되었다. 또 신약 27권 중 21권은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후 ‘사도들이 쓴 편지’(The Apostles’ Letter)로 당대의 공용어(公用語) 중 하나인 헬라어(Greek language)로 기록됐다.  

구약은 모세를 비롯한 약 30명의 성경 기자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했고 신약은 약 10명의 기자가 기록했다. 성경의 원저자(原著者)이신 하나님은 다윗과 같은 왕으로부터 정치가, 정부 관리, 군대 장관, 제사장, 학자, 의사, 농부와 목자, 베드로 같은 보통 어부 출신들까지 각양각색(各樣各色)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사용하셨다.

이 같은 성경의 신비(神祕)는 66권이 ‘시대’와 ‘저자’와 ‘양식’(樣式)이 다른데도 그 내용은 완전 하나로 통일성(統一性)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의 원저자(原著者)가 한 분 하나님이심을 성경이 스스로 증거 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성경은 어떤 사람의 의도(意圖)나 고안(考案)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확실히 나타내 주고 있다. 성경은 영원히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뜻과 계시(啓示)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성경 기록 연대(年代)는 구약이 기원전 1500년경부터 400년경까지 약 1100년에 걸쳐서 기록되었고, 신약은 기원후 50년경부터 100년경까지 약 50년에 걸쳐서 기록되었다. 그리하여 구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가 기록된 때로부터 신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이 기록되기까지는 약 1600년의 긴 기간이 걸렸다.

 성경 기록을 위해 하나님께서 긴 세월을 거치고 40여 명의 저자와 3대륙의 기록 장소들을 사용하신 목적은 모든 세대와 모든 시대의 환경을 초월해서 적용될 초세대적(超世代的), 초지역적(超地域的)인 말씀이 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었다. 그동안 성경 내의 수천 가지 예언이 정확히 이루어졌고 나머지도 장차 이루어질 것이다. (32,500여 약속, 초림 456번, 재림 1518번 예언) 그러므로 온 세상 책 중 성경만이 지상의 유일한 절대(絶對) 진리임을 나타내신 것이다.

성경 번역 약사(略史)

성경 번역은 애굽의 프톨레미 필라델푸스 왕(Ptolemy II Philadelphus, BC 309-246) 때 왕실의 도서관장 데메트리우스(Demetrius)가 헬라어로 번역된 유대인들의 율법이 별로 없다는 보고를 하자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하라는 지시를 내림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헬라어를 사용하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구약 성경의 헬라어 번역은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유대인 12지파에서 각 지파대로 6명의 랍비가 대표로 선출되어 모두 72명이 이집트의 수도 알렉산드리아로 모여 히브리어 두루마리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했다. 이렇게 번역된 이 최초의 번역 성경을 ‘70인경’(七十人經, Septuagint, LXX, Greek Old Testament)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irony)한 건 유대인 학자들이 심혈을 다해 구약 성경을 번역해놓고 보니 ‘70인경’이 그들이 싫어하는 기독교인에게 좋은 번역 성경이 되어 오히려 기독교인들에게 외경(外經, Apocrypha)을 외의 적극적으로 환영받는 책이 되었다. 그리고 주전 90년 유대인 랍비들은 ‘얌니아회의’(Council of Jamnia, BC 90)에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구약 39권을 정경(正經,  Canon)으로 확인했다.    

이 ‘70인경’의 언어와 메시지가 초기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치고 기독교 내로 헬라문화가 들어오는 통로가 된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사도들을 비롯한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 ‘70인경’을 주로 사용했고 그 결과로 그들의 구약 인용(引用)은 대부분이 ‘70인경’에서 왔다. 결과적으로 ‘70인경’이 기독교 부흥에 크게 공헌하는 기독교인의 성경이 되고 말았으니 유대교 입장에서는 기막힌 일인 된 것이다. 그렇게 되니까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번역한 이 ‘70인경’을 버렸다.

다른 한편 신약성경은 주 후 397년 제3차 카르타고공의회(The Third Council of Carthage, 397)에서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확인했다. 오늘날까지 성경은 계속 각 종족의 언어들로 번역 중인데 세계성서공회연합회(United Bible Societies, UBS)의 2011년의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는 6,600개이다. 그중 구약과 신약이 모두 번역된 언어는 500개 미만이고 쪽 복음이라도 번역된 언어는 2,527개 언어이다.

성경은 영적 계기판(計器板)을 바로 보는데 필요한 몇 가지 원칙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 원칙들은 성경 해석(解釋)과 이해(理解)에 필요한 기본원칙이다. 우리가 전자제품을 사면 따라 오는 사용설명서와 같다. 귀찮다고 설명서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작동하면 제품의 기능을 다 사용할 수 없거나 아예 망가뜨리게 되는 것처럼 딱딱한 내용이지만 기본원칙이기에 익숙해질 때까지 따라야 유익하다.

그런데 기독교 이단(異端)들도 성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기본원칙 즉 말씀을 벗어나(고전 4:6) 교주(敎主)의 가르침을 주장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단(異端)이란 정통(正統)과 끝이 다르다는 뜻이다. 이제 그 원칙들을 차례로 설명하겠다.

 1.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하기에 인간의 반응은 부차적이며 종속적(從屬的)이다.
인간이 복을 받기 위해서, 어떤 문제해결을 위해서 예를 들면 병 낫거나 혹은 삶이 잘 풀리기 위해 혹은 능력 받고 축복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창조주요 구속(救贖) 주시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며 경외(敬畏)하고 순종이 따라야 할 것이다. 성경은 수용자(受用者)인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계시자(啓示者)이신 하나님이 중심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성경을 맛보아 아는 것이다.(시 34:8) 

순종하지 않는 성경 지식은 오히려 당신을 넘어지게 하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이에 관해 한 예를 들면 예수께서 영생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하우테 데 에스틴 헤 아이오니오스 조에 히나 기노스코신 세 톤 모논 알레디논 데온 카이 혼 아페스테일라스 예순 크리스톤.
αυτη δε εστιν η αιωνιος ζωη ινα γινωσκωσιν σε τον μονον αληθινον θεον και ον απεστειλας ιησουν χριστον


헬라어에 ‘안다’는 말은 ‘오이다’(οiδα)와 ‘기노스코’(γινώσκω)가 있다.
‘오이다’는 이성적(理性的) 이해의 의미이다.
‘기노스코는’ 전인적(全人的) 경험과 영성으로 전 존재를 다 안다는 의미이다.

예로서 내가 뉴스를 통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활동을 알지만(오이다),
‘기노스코’의미로는 그분과 나는 서로 모르는 관계인 것과 같다.

‘기노스코’에 상응하는 히브리어 ‘야다’(Yadah) 동사는 부부의 성적 연합을 의미한다.(창 4:1) 따라서 부부간에 서로 ‘안다’는 것은 육체적이고 심리적이고 영적인 연합을 말한다. 그러므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여 전 인격으로 연합하고 교제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개념이다. 즉 아는 것이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永生)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죽은 자요 살았으나 생명이 없는 자이고 하나님을 ‘아는 자’ 곧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소유한 사람이다. 죽어서만 영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시간이 영생의 시간이며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시간부터 영생이 천국까지 계속되는 것이며 천국에서도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체험해서 영생을 얻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선교하는 삶으로 살지 않으면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알아도 단지 지식일 뿐이다.

18세기 영적 대각성 운동을 이끈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디모데전서 1:17 말씀을 읽던 중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말씀을 강렬하게 체험했고 이 체험은 에드워즈 개인에게만 아니라 개 교회 그리고 전 사회를 진정한 부흥의 불길과 거룩한 개혁으로 이끌어갔으며 사회 구석까지 이른바 각성의 불길로 번졌고 윤리적 차원에서도 성결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한 사람의 하나님 임재(臨在) 체험은 세상과 역사를 바꾸는 불씨가 되었다.  

‘인간 중심’의 성경 이해는 종종 ‘하나님의 주권’을 인간의 선택(選擇)이나 수용(受容)에 좌우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바르게 듣고 이해하며 믿고 영광 돌리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다. 인간의 복과 보상과 대가를 먼저 생각하고 성경에 접근하는 것은 운동선수가 먼저 열심히 훈련해서 실력 쌓을 생각은 않고 시합 후 받을 상금부터 계산하는 것보다 더 잘못된 생각이다.

왕의 명령을 어명(御命)이라 했다. 어명이면 사약(死藥)이라도 받아먹고 죽어야 했다. 성경은 사람의 손으로 쓴 일반 책과 달리 전지전능하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책이므로 하나님을 대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읽고 배우고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공부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성경을 펼쳐야 한다.(신 31:9-13) 우리는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9) 사무엘처럼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 위해 성경을 대해야 할 것이다.

2. 성경 저자의 기록 목적을 이해하라.

물을 담을 목적으로 만든 컵으로 전화를 하려고 하면 되지 않는 것처럼 성경도 성경을 기록한 목적대로 이해하고 읽어야 한다. 디모데후서 3:15-17에 성경 전체의 목적들을 명시하고 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의 목적은 첫째, 성경을 통해 구원받고 둘째, 삶의 변화를 받아 셋째,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구원을 받았고 예수를 닮아가며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심판받아 지옥 갈 영혼을 예수께 인도하는 일이다. 이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마 16:26) 

이상의 세 가지 ‘구원 얻는 생명 문제’, ‘구원받은 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삶 문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사명 문제’가 성경 이해의 기본(基本, basic)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성경 이해의 기본을 놓치고 성경을 대하는 것은 알맹이를 놓치고 껍데기 붙잡는 우(愚)를 범하는 것이고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성경은 또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속사(救贖史)이기에 이 같은 눈으로 성경을 보지 않으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즉 성경은 복음(예수 그리스도)을 증거 하는 선교의 책이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에서 ‘선교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롬 16:25,26)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자는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가 산 제사 드리는 예배자로 사는 것처럼 예수를 구주로 믿는 순간부터 누구나 만인의 제사장으로 영적 군사로 복음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리고 성경의 각 권마다 그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고 누구를 대상으로 기록되었는지 바로 이해해야 한다.(요일 5:13) 예를 들면 열왕기나 역대기는 얼핏 보면 중복된 내용이 많아 필요 이상으로 역사서가 두꺼운 느낌이지만 역대기는 열왕기의 단순한 중복이 아니고 기술 관점(觀點)이 다른 것이다. 열왕기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선지자(先知者)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역대기는 제사장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열왕기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성결로 인간의 죄악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반면에 역대기는 인간의 패역(悖逆)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구속하시는 구속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와 함께 성경을 읽는 가운데 결국 성경이 나를 연구하고 변화시키도록 말씀이 주인이 되도록 끊임없이 나를 부인하고 비워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과 행동을 다스릴 모든 원리를 성경에서 발견해야 한다.(살전 4:1-12, 5:12-22)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완전 무장을 할 수 있다.(시 19:7,8, 딤후 3:16,17) 하나님 말씀 자체에 힘과 생명력이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 힘을 성경에서 얻어야 한다.  

  3.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해하라.

성경 계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인내심으로 마치 어머니가 어린아이에게 말과 걸음마를 가르치듯 그 진리의 뜻을 점진적(漸進的)으로 넓혀가고 있다. 예수를 증거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계시인데 하나님의 계시는 완전하나 인간의 인식 능력의 한계로 하나님은 그의 계시를 한 시대의 한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 점진적 계시를 하셨다.

그러므로 성경 계시의 특성에는 내용의 통일성(統一性)과 함께 계시 전달 형식과 방법에는 계시의 점진성(漸進性)이 있다. 이는 마치 창세기라는 시발역(始發驛)으로부터 요한계시록이라는 종착역(終着驛)까지 놓여있는 선로(線路)와 같다. 그러므로 성경은 나눌 수도 없고 한 권이라도 떼어놓을 수도 없다. 우리가 66권의 성경 전체의 핵심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뼈대 있는 신앙이 되어서 견고하게 설 수가 있는 것이다.

성경의 원저자(原著者)는 하나님이시다. 또 그분은 성경 안의 모든 사건과 역사의 주관자(主管者)이시고 집행자(執行者)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성품(性稟)을 잘 이해하는 것이 성경 각 권을 이해하는데 지름길이다. 왜냐면 그분의 성품과 뜻과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변치 않기 때문이다.(약 1:17) 구약 노아시대 때 물로 심판하신 하나님은 신약시대 현장에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신 그 예수님과 똑같으신 분이시다.

그런데 우리가 구약의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으로 느껴지고 신약의 예수님은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나님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계시의 시간의 차이 때문이다. 구약은 계시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와 눈에 보이지 않은 형이상학적인 진리를 모형으로 보여주는 계시 방법이 필요한 시대여서 우상숭배라는 죄의 삯은 사망임을 보여주기 위해 돌로 쳐 죽이는 것이다.(레 20:2)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장수, 건강, 부귀, 자손의 번영 등으로(신 28장) 눈에 보이게 계시하셨다.

그러나 계시의 실체인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성도의 내세 존재를 분명히 계시하셨기에 그 후로는 복음을 위해 바울처럼 처자식 없고 핍박받고 순교 당하는 것까지 영원한 축복과 면류관으로 드러내신 것이다.(딤후4:8) 

성경을 처음 대하는 초신자들이 구약을 읽을 때 어려워하고 “이스라엘 역사 이야기가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하며 구약을 이스라엘 역사 이야기로 간주하여 멀리한다.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을 합쳐 한 권의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원래 언어가 필요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나 인간들이 알아볼 수 있는 문자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할 수 없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이 왕 되신 신정국가(神政國家)의 본이 되어 만방에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한 민족을 먼저 택하셨다.(출19:5,6) 그 민족이 이스라엘 백성이고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은 그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여 구약을 기록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당신의 형상으로 지었기에 인간의 인격을 존중하신다. 그래서 인간과 대화하시며 그분의 뜻을 계시하셨다.

성경의 주류(主流)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역사의 흐름이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를 예언적이고 예표적으로 내다보았고 신약은 구약의 예언대로 오신 메시아를 증거 하고 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님이 역사의 중심인 동시에 성경의 중심이다. 그는 하나님 자신이시고 또 계시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요 5:39) 

이렇게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또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전체를 염두에 두고 이해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어린양이 되신 메시아로서의 고난의 주도 보아야 하지만 우리를 날마다 승리하게 하시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위대하신 능력의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으로 그리고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왕으로서의 메시아도 동시에 믿음으로 보아야 한다.

구속(救贖)이 성경의 중요한 대 주제임이 분명하나 그것이 모든 것을 다 포괄하는 주제는 아니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주제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영광 안에 구속도 포함되고 대계명(The Great Commandment), 대사명(The Great Commission), 천사와 사탄에 대한 계획, 천년왕국에 대한 계획, 심판과 지옥,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계획도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경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적으로 계시하기에 해석도 또한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야 한다.

구약은 율법을 통하여 만왕의 왕(King of Kings)이 오셔야 할 필요성을 말하며 계속해서 “왕이 오신다!”고 증거 했고 신약은 복음으로 왕이 오심으로 이루어진 소식 “왕이 오셨다!”(마 1:1) 그리고 “왕이 다시 오신다!”(계 22:20)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初臨) 사역(구원)에 근거하여 재림(再臨) 약속(완성)을 기다리며 말씀을 지키며 살도록 하셨다. 또 우리는 왕의 명령인 대사명(선교)을 준행하는 왕의 증인이 되어 왕과 함께 왕의 나라를 확장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진리는 하나이다. 우리가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하고 믿는 것처럼 구약은 메시아로 오실 주님의 그림자(예표)를 보고 믿었다. 구약의 성도들은 보지 못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았고(요 8:56) 우리도 보지 못한 오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도마는 보고 믿었으나 우리는 보지 않고도 믿으니 도마보다 더 복된 자들이다.(요 20:29) 

구약과 신약은 사람이 구분한 것이지 그 내용은 연속적(連續的)이며 그리스도로 일관되어있다. 구약의 성도가 믿었던 구세주 메시아를 우리는 지금 믿고 있고 또 그들이 대망(大望)한 재림의 주(主)를 우리도 믿고 전파하면서 기다리고 있다.(유 1:15,16, 요 8:56, 시 22-24편 참고)

4. 성경으로 성경을 이해하라.

하나님은 위대한 설계자시며 창조자로서 다양한 재료들로 성경이란 웅장한 건물을 지으셨다. 따라서 성경의 각 부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한 부분을 볼 때 동시에 다른 부분과의 연결 속에서 보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 성경 각 부분의 유기적(有機的) 통일성은 신약과 구약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씨가 자라서 떡잎을 나고 줄기와 가지와 잎이 생긴 다음 꽃을 피우고 마침내는 열매를 맺는 것처럼 신구약 말씀은 전자제품의 기술이 개발되고 신기술이 개발되면 과거의 제품은 생산하지 않은 그런 발전이 아니라 유기적 생명체로서의 진전인 것이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1,2)

이처럼 성경 전체적으로 알지 못하면 마치 장님이 코끼리 발목 잡고 발목을 코끼리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오류(誤謬)를 범할 수 있다. 우리 몸 각 부분이 한 몸을 이루듯 성경 각 권이 한 성경을 이루기에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각 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해석이 되어야 할 본문을 어떻게 하면 전체의 구조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가?  

먼저 평행구조와 내용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히브리서 7:20의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라는 이 말씀에서 멜기세덱에 관한 이해는 그 평행구조의 창세기 14장과 시편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班次)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성경 구절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성경 말씀을 성경의 다른 구절이 설명해줌으로써 명확해진다. 이같이 성경은 그 자체가 가장 훌륭한 해석자가 된다. 성경은 많은 주제에 대해 한 문장 이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때때로 성경은 한 주제에 대해 어느 부분에서는 간략히 다루며 또 다른 부분에서는 길게 다루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성경의 각 본문을 풀어야 한다. 성경의 해석은 성경 안에 들어있다. 마태복음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한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다.(갈 2:16)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그 해답은 성경 안에 있다. 요한복음 6:39,40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고 했다. 마태복음 7:21에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이 요한복음 6:39,40에 보면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 얻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처럼 성경이 스스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성경 전체 내용을 알아야 하고 성경 전체의 맥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한 국가의 모든 법의 정신과 기초가 헌법에 있고 헌법은 모든 다른 법의 상위(上位)에 있음과 같이 전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性稟)과 그분만의 영원한 자연적인 속성(屬性)은 모든 성경 해석의 헌법(憲法)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속성에 근거하여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두신 것은 인간을 향한 선하신 동기임을 믿는다. 왜냐면 우리가 죄인으로 있을 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신 선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행하심은 그의 속성상 항상 선하시다. 왜냐면 그분은 원래부터 영원히 선하신 분이신 것이 전체 성경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의 한 성품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이 선악과(善惡果)를 두신 이유가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 않았을지라도 그분의 성품을 믿음으로 그 성품 안에서 우리는 자유 하며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성경 66권을 부지런히 읽고 66권 전체에서 현현(顯現)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인격으로 만나야 한다. 편식(偏食)하면 우리 몸이 건강할 수 없듯이 성경을 편식하면 우리의 신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성경에 연구되고 변화 받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형상을 닮아가야 한다.

고린도전서 2:12,13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선언하신 문맥의 원리를 보여준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이것은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이다. 성경을 설명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방식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곧 성경으로 성경을 설명하는 방식인 것이다. 성경의 조명은 성경 자체를 통하여 온다. 그것이 바로 문맥 원리의 원칙이고 가치인 것이다.

문맥(文脈)에는 가까운 근접문맥(近接文脈, immediate context)과 먼 거리의 원접문맥(遠接文脈, remote context)이 있다. 근접문맥은 가까이 접해있는 단어들과 문장들로 구성된 한 두 개의 문단의 흐름이다. 흔하게 드는 예로 ‘GODISNOW-HERE’를 말할 수 있다.(‘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와 같은 말) 이 문장은 문맥에 따라 ‘God is now here’(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계신다.)도 될 수 있고 ‘God is nowhere’(하나님은 아무 데도 없다.)가 될 수 있다.

이같이 한 문장이 문맥의 해석방법의 차이로 무신론(無神論)과 유신론(有神論)으로 갈리는 하늘과 땅 차이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성경 해석에 있어 상하 문맥을 이해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문맥은 단순히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되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의미를 만들어 낸다.

원접문맥은 그보다 멀리 연결되는 문맥으로 책 전체나 한 저자의 여러 책이나 제일 크게는 성경 전체의 흐름이다. 원접문맥을 파악하는 방법의 예를 들면 빌립보서의 한 구절을 이해하려고 하면 먼저 빌립보서의 저자인 바울이 어디에서(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썼는가를 생각하면서 전체의 대의를 파악해야 한다.

사실상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성경의 장(章), 절(節) 구별은 원래부터 그렇게 되어 있던 게 아니라 사람이 구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장(章), 절(節)을 넘어서 ‘문맥의 원리’로 문장의 상하를 잘 살펴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성경 해석의 우선순위를 따른다. ‘성경 전체의 대의’(大意) —> ‘성경 각 권의 대의’(大意) —> ‘각 장의 대의’(大意) —> ‘각 절의 의미’(意味) —> ‘각 단어의 뜻’ 순서다. 참고 : 최초 성경 전체를 1,189장으로 나눈 사람은 스티븐 랭톤(Stephen Lengton, 1150-1228), 1553년 최초 성경 전체를 31,163절로 나눈 사람은 인쇄업자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 일명 Robert Estienne, 1503-1559)이다.

5. 성경 본문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라.

모든 언어는 크게 두 가지 표현방식이 있는데 ‘문자적’(文子的) 표현과 ‘수사적’(修辭的) 표현이다. 이중 일차적인 표현이 ‘문자적’ 표현이다. 우리는 누구와 대화 할 때나 글을 읽을 때 문자적인 해석으로 이해가 될 때까지 먼저 문자적으로 이해한다. 여기에는 다음 두 가지 원칙이 문자적인 해석과 이해가 필요하다.

(1) 인간의 언어 관습이 문자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두 사람이 대화할 때 그 대화를 서로 이해하려면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약속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한 사람이 ‘빵’을 말할 때 상대방도 먹는 ‘빵’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럴 때 피차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진단한 후 X-Ray 사진 등을 보여주며 “폐암이니 빨리 입원하고 수술 준비하십시오.”라고 말했는데 듣는 사람이 폐암을 폐암으로 알아듣지 않고 수사적인 표현 즉 “감기 기침을 저런 식으로 표현을 했겠지…”하고 자기 임의대로 해석하여 이해한다면 이 환자는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가?

(2) 성경 목적이 문자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시인 성경을 인간에게 주신 이유는 인간이 그 계시를 읽고 이해해서 구원받고 구원받은 후 변화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예수를 증거 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 사람은 그 읽는 성경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에 부분적으로 사용된 수사적(修辭的) 표현도 신비(神祕)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 독자로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에 있다.

또 성경의 예언(豫言)은 성취의 시간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라 미래의 여러 가지 사건을 함께 취급하고 있기에 어느 예언이 어느 시대를 가리키는지에 유의하지 않으면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바벨론 포로, 주의 날과 연관된 사건들, 바벨론에서 귀환, 이스라엘의 흩어짐과 회복 등이 시간과 장소 구별 없이 성경에는 섞여져 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이 특히 많은 혼동을 하게 한다. 오늘날의 우리가 볼 때 2,000년 이상의 간격(間隔, gap)이 있는 사건이 성경에는 동시에 언급되어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사야 61:1,2 말씀을 주님께서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 하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라고 누가복음 4:18,19에 인용하고 계신 데 두 곳을 비교해보면 주님이 이사야 61:2의 첫 부분에서 인용을 생략하고 계신 것을 보게 된다. 그 이유는 2절의 첫 부분까지는 주님의 초림 때 그리고 그 이하는 주님의 재림 때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이사야 61:1 이하에서는 시간의 차가 없이 함께 예언하고 있으나 주님은 2절 상반 절까지와 그 이하 사이에는 상당한 시차가 있음을 인정하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율법은 율법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폐하여진 내용이 있다.(히 10:9)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기’ 때문이다.(고전 13:10) 영화 예고편은 본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광고용이다. 본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하면 예고편은 폐기되는 것처럼 구약의 복잡한 여러 가지 제사(祭祀)들을 지금은 마땅히 폐하여야 할 예고편과 같은 것들인데 오늘날도 유월절을 고집하는 어리석은 이단도 적지 않다. 이와 달리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율법은 오늘날도 계속 지켜야 할 계명이다.(레 19:18, 마 5:17) 

또 구약의 결론은 오실 메시아의 예언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신 메시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승천하신 주님이 보내사 우리 안에 임하실 성령 하나님을 증거 하고 있다.(렘 36:26,27, 욜 2:28,29) 그리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충만히 임하시면 우리가 비로소 주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또 성결(聖潔)의 소극적인 개념은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고 적극적인 개념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성결 명령은 모든 시대의 도덕률의 표준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십계명은 신약의 예표가 아니고 영원한 도덕률의 규범이기에 신약의 성도들도 준수하여야 할 주의 명령이다.(참고, 마 22:34-40) 이러한 중요한 계명들은 문자 그대로 받으면 된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 충만 받아 성령님에 취하여 살 때 성결한 삶 곧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셨고 그래서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본을 보이신 예수님 삶을 본받아(롬 8:29)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마 16:24) 예수님의 대속(代贖)의 죽음과 부활 승천 후 약속하신 대로(요 16:7)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오늘날의 교회가 탄생했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 땅끝까지 나아가는 세계 선교사역이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음을 신약은 보여주고 있다.

 6. 성경 배경을 참고하여 성경을 이해하라.

성경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개 대륙에 걸쳐 3개의 상이(相異)한 언어로 상이한 배경에서 약 1,500년 간의 긴 세월에 걸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그 당시 생활을 자세히 바르게 이해하는 게 바른 성경 해석에 아주 중요하다. 그러므로 성경 기록 당시의 역사, 지리, 정치, 종교, 경제, 풍습, 문화 등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은 이같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예기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적 사람의 현장에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에 역사적 해석과 이해가 필요하다. 성경 배경을 연구한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1) 성경 그 자체에서 실제적 증거를 얻는다.

예로서 고린도서는 고린도 교회의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반영한 바울의 서신이다. 우리는 고린도 전후서를 자세히 관찰하면 고린도 교회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고전 1:6,12, 2:1, 6:1,6, 7:1-24, 8장, 10장, 11:13, 12장-14장) 

창세기는 하나님의 창조와 모든 인류 역사의 기원을 기록함으로 이 창세기 역사적 배경에서 인류의 역사는 시작된다. 즉 성경 자체가 역사적 배경을 기초로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그러므로 성경 자체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표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관주(貫珠) 성경을 사용하는 것은 역사적 배경 자료를 얻는데 좋은 방법의 하나다.

(2) 해당 전문 자료들을 통해 증거를 얻는다.

또 역사, 지리, 문화, 사회 등을 다루는 신구약 성경 배경 역사서 성경 사전이나 백과사전, 지리서 등을 통해 성경의 역사적 배경 이해가 가능하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역사적 배경

말씀 뒤의 감추어진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성경을 더욱 완전하게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2장의 배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헤롯 대제(Herod the Great, B.C. 73-4)가 그의 학정 말기에 너무 불안해서 처남을 죽이고 두 아들을 죽이고 마지막에는 첫 부인과의 사이에 태어난 가장 총애하고 신임하던 맏아들까지 죽였다. 이런 상황에서 동방의 박사들이 나타나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하고 물었을 때 헤롯은 뒤통수를 맞는 듯했을 것이다. 이러한 당시 헤롯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마태복음 2장의 내용이 더욱 실감 나게 이해가 된다.

② 문화적 배경(사회, 정치, 풍습, 예술. 종교, 문학, 과학, 경제 등)

예를 들면 사도행전 3:1에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의 배경은 무엇인가? 유대인과 로마인은 시간관념의 차이가 있었다. 복음서에서 요한복음은 로마인 시간으로 기록했고 기타 공관 복음서는 유대인(일몰에서 다음 날 일몰까지)으로 기록한 것이다. 로마인 시간은 유대인 시간에 6시간을 더하면 된다.

그런데 유대인 남자들은 성인이 된 만 13세부터는 하루에 세 번 정해진 기도 시간을 꼭 지켜야만 했다. 오전 9시, 낮 12시, 오후 3시에는 반드시 하던 모든 일을 중단하고 기도드렸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 장애인을 고쳐 준 것도 바로 오후 3시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던 시각이었다. 또 유대교의 예배와 관습은 초대 기독교회의 기초였다.

⓷ 자연환경의 배경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뢰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로 밝히 알게 하시리라.”(삼상 12:17) 사무엘은 밀 베는 때에 비가 내리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4월 중순에 10월까지는 비가 오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밀 베는 수확은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까지였다. 따라서 사무엘의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또 기본적인 신구약 성경 지도를 그릴 정도면 성경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주의할 점은 배경연구나 참고는 어디까지나 성경 이해의 보조수단이지 성경 평가의 수단이 아니다. 만일 성경과 어긋날 때는 성경의 기준으로 배경사(背景史)를 비판해야 한다. 신학은 성경을 이해하고 전파하는데 돕는 시녀와 종의 역할을 해야지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⓸ 언어적 배경

히브리인들의 독특한 관용어(慣用語)나 성경 원어(原語)를 한국어로 번역하는데 언어의 차이를 살피는 것도 참고해야 한다. 예를 들면 헬라어에 사랑은 네 가지 종류의 표현 단어가 있는데 스톨게(storge)는 가족 친지 간, 동족 인연 같은 혈육의 사랑이다. 에로스(eros)는 남녀 간 좋아하는 육체적 사랑이다. 필레오(phileo)는 친구 간 우정이다. 아가페(agape) 무조건(無條件)의 천래적(天來的) 사랑이다.

요한복음 21장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를 찾아와 물으셨다. “네가 이 모든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때 주님이 물으신 사랑은 아가페(Agape)였다. 주님의 물음에 베드로는 대답했다. “예, 주님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때 베드로의 대답한 사랑은 필레오(Phileo)였다. 그는 감히 아가페(Agape)로 대답할 수 없었다. 한국어로는 모두 사랑으로 번역이 되었으나 이렇게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이 털이 검은 개 한 마리를 사서 ‘검둥이’라고 이름 짓고 부르면 우리는 그 이름의 뜻을 잘 알아도 한국어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은 우리가 느끼는 언어의 뉘앙스(nuance)를 느낄 수가 없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의 이름은 신기하게도 대게 그 선지자의 일생을 대변하거나 그를 통한 그 선지서의 주제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구약의 선지자 미가(מִיכָה, Micah)라는 이름의 뜻은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미가서의 주제는 7:18의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그 선지자의 삶과 그 책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성경은 연대기적으로 편성된 것이 아니라 시가서(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등)는 시가서 대로 역사서는 역사서(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기상하등) 는 역사대로 대로 문학적 양식에 따라 분류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느헤미야서나 말라기서는 배열이 같이 있지 않아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거의 같은 시대에 벌어진 사건이다. 그러나 느헤미야서는 역사서 그룹에 말라기서는 선지서 그룹으로 분류했기에 배열상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선지서도 분량에 따라 배열의 순위를 정하여 다니엘 이야기가 시기적으로 더 먼저 일어난 일인데 에스겔서가 분량이 많아 앞에 배치된 것이기에 각 성경의 시기를 이해하는 것도 본문을 깊이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그래서 신구약 중간(中間)에 침묵 시대라고 하는 신구약 중간사(中間史) 공부도 신약 이해에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7. 특별한 내용은 기도하며 이해하라.

하나님이 만물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실 때는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사용하시지만 필요하신 때는 홍해를 가르시거나 태양을 멈추시던 것처럼 초자연적(超自然的) 일도 행하신다. 언어를 해석하는데도 일반원칙을 주로 사용하지만 특별한 형태의 언어는 특별한 해석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당신은 나의 충전기입니다.”라고 할 때 문자적 이해로는 그 의미 이해가 안 된다. 이것은 수사법(修辭法)을 사용한 표현으로 상대방이 말하는 자에게 큰 힘과 도움을 준다는 은유적(隱喩的) 표현이다.  

성경 해석에 있어 우리는 기본적으로 문자적(文子的) 표현법을 기초로 해석하고 이해하면서 문자적인 뜻으로는 일반해석 원칙상 해석이 불가능할 때는 이차적으로 수사적(修辭的) 표현법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하여 그에 상응하는 특별 해석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또 문장의 행간(行間)을 읽으라고 한다. 행간이란 문장(文章)의 행과 행 사이를 가리키는 말로 글에 직접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 그 글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숨은 뜻을 깨달으라는 말이다. 우리가 행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글이나 말속에는 단어나 문장만으로는 전하려는 뜻을 정확하게 나타내거나 다 전할 수 없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 생활문화 속에는 구체적이거나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완곡(婉曲)한 표현으로 뜻을 전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의 진리는 너무 심오(深奧)해서 일반적 언어로는 표현이 어려운 경우 성경 안에도 비유법(比喩法)이 사용되었음을 알게 된다. 수사적(修辭的) 표현은 깊고 어려운 진리를 생생하고 또렷한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image)를 제시해 준다. 또 각 표현법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성경에는 약 200개 이상의 수사적 표현들이 있다.

그러므로 ‘문자적 표현’은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수사적 표현’은 수사적으로 해석해야 올바른 본뜻을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자적 해석이 모순 또는 애매함을 가져오지 않는 한 단어들은 그들의 문자적 의미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해석의 기본법칙이다.  

또 모형(模型, 예표, 유형, 표상)이란 하나님이 어떤 성경 진리의 예시(豫示)로 지정하신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신약성경 중 히브리서는 레위기의 해설서(解說書)라 할 수 있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히 8:5) 또는 ‘비유’라고 말씀하면서 “개혁(改革)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 9:9,10) 그러므로 모형, 그림자, 비유 등을 해석할 때에 유의해야 할 점은 구약의 모든 것을 예표로 삼아 알레고리칼(allegorycal) 하게 이해하는 과장 해석이나 억지 해석을 피해야 하고 나타난 실체(實體) 즉 밝히 드러난 복음의 빛을 통해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치는 말

성경은 일반 책과 달리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계시의 말씀이다. 로마서 16:25,26에 복음을 감추어졌던 ‘비밀의 계시’라고 했다. ‘계시’(啓示, αποκαλυπσιζ)는 ‘감추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주셔야만 보인다.(엡 1:18) 간절히 기도하며 읽으면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주시고 복음과 선교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성경 이해에도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 뜻을 따르며 순종하는 자들(친구)에게 영적 계시를 보여주신다. 요한복음 15:14,15에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계명을 지키는 자가 주님의 친구라고 하셨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3:1,2에 바울이 말씀을 음식으로 비유하여 어린아이 같은 신앙의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훈계(訓戒)하며 어린애들에게 먹이는 젖으로 그들을 대했다고 했다. 영적 생명은 우리의 일생동안 자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양들은 일생동안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갓난아이가 처음에는 젖을 먹다가 나중에는 점점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듯이 영의 양식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어린이도 하루아침에 다 자라나 어른이 된 자가 없듯이 영적 생명도 하루아침에 주의 진리를 더 깨달을 필요 없이 다 깨닫고 행하는 자가 없다.

이것은 우리 신앙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함을 말한다. 어릴 때 부모 마음을 알지 못하다가 철들어서 부모 마음을 알고 나중에는 자신이 부모가 되어 진실로 부모의 마음을 잘 알게 되듯이 영적 생명도 성장 정도에 따라 주의 말씀이 깨달아진다. 하나님을 아는 분량이 장성한 자(엡 4:13, 고전 13:11,12)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히브리서 5:14에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했다.  

성경은 우리가 나의 것으로 삼은 영적 생명의 분량만큼 이해되고 순종할 수 있다. 우리가 주님을 닮는 것은 일생의 거룩한 목표요 추구이다. 아무리 성령 충만해도 우리의 몸이 부활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하나님과 하늘에 속한 진리의 말씀을 청동거울을 보는 것처럼 이해에 한계가 있음을 바울도 고백했다.(고전 13:12) 

그러므로 성경의 깨달아지지 않는 부분은 겸손히 주 앞에 내려놓고 그의 도움을 기다려야지 억지로 풀려다가는 잘못되는 것이다.(벧후 3:16) 억지로 풀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잘못보다 “잘 모르겠다.”고 하는 정직과 겸손이 우리를 얼마나 자유 하게 하는지 모른다.

주님이 언제 다시 재림하시는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면 주께서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데서 멈춘다고 했다. 이는 성경 해석에 정직하고 올바른 태도를 보여 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는 성령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므로 항상 다윗과 같은 기도가 필요하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글쓴 이 / 김다니엘 목사, 서울신대,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Asian United Theological University, ACTS), 미국 Faith Theological Seminary(D.D), 선교사, SIM 국제 대표(I.D) ㈜ 본 글은 본지 편집에 맞도록 재편집 한 것입니다. 원문은 아래 출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flower-rainy/gb8b/200  ‘베이직 구약성경’ 김다니엘 著, 쿰란출판사 



성경을 읽으며 무엇을 깨닫는가?


사도행전 8: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 깨닫느뇨?

* 깨닫느뇨(1097) γινώσκω  

1. 알다,  2. 신비를   3. 하나님을

발음 / 기노스코(ginōskō) 
관련 성경 / 알아보다(막 6:38), 알다(마 6:3, 12:5,7, 막 5:43, 8:17, 눅 20:19, 요 1:40), 알게 하다(마 9:30, 요 19:4), 알려지다(마 10:26, 눅12:2), 깨닫다(마 24:39, 막 5:29), 알리다(막 9:30, 요 7:17), 동침하다(마 1:25), 주다(막 4:11)
신약 성경 / 222회 사용


예수님과 이적의 사건들


오병이어의 이적

‘오병이어’는 번역 실수가 만든 기적?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여명을 먹이고도 남은 빵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는 <신약성서>의 네 공관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놀라운 이야기.

믿기 어려운 기적의 진실은 무엇일까?

1976년부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성서학과 고대 셈어, 이집트학, 아시리아학을 공부하고 수메르어로 학위를 받은 뒤 10여년간 히브리대에서 가르쳤던 성서학의 국제적 권위자 조철수(60) 교수의 <예수 평전>은 눈이 번쩍 뜨이는 설명을 제시한다.

조 교수는 마르코 복음서 6장의 이 기적 이야기 일부를 이렇게 인용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여 각자 동료들끼리 풀밭에 앉게 했다. 백 명의 동료지간의 백부장과 오십 명의 동료지간의 오십부장이 끼리끼리 자리잡았다. 예수는 다섯 개의 빵과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향해 쳐다보며 축복하고 빵을 떼어 그의 제자들에게 주며 그들 앞에 나누게 했다.”

공동번역 성서의 마르코 복음서는 이 가운데 ‘백명의~’ 부분을 이렇게 옮겨놓았다. “군중은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모여 앉았다.”
마태오나 루가 등 다른 복음서들에는 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앉았다는 표현 자체가 아예 없다.
이 표현의 차이에 주목하라.


‘오병이어’는 번역 실수가 만든 기적?

조 교수가 인용한 마르코 복음서 내용은 자신이 따로 번역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신약성서 원문은 그리스어로 쓰여 있는 게 가장 오래된 사본이다.
그런데 이 그리스어 원본 자체가 번역본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 복음서나 사도들 편지는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기록됐고 적어도 그 수십년 뒤에야 그리스어 본들이 만들어졌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같은 계열이지만 그리스어는 전혀 다른 언어체계다.
따라서 아람어와 히브리어 텍스트들을 자신이 직접 번역한 조 교수의 인용문이 당시 이스라엘(유대)의 언어행위 실상과 사회상에 더 근접할 가능성이 높다.

조 교수는 1947년 발굴된 ‘사해 두루마리’ 등의 옛 전적들을 성서와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예수의 실상을 재구성한다.

조 교수에 따르면 공관복음서에서 ‘오천 명’이라 옮긴 단어는 아람어 본(페시타) 신약성서에는 ‘오천’이라고만 돼 있다.
오천은 히브리어로 ‘아메쉐트 알라핌’이다.
그런데 이를 ‘하메쉐트 알루핌’으로 읽으면 ‘다섯 천부장’이라는 뜻이 된다.
당시 히브리어나 아람어에는 모음부호가 없었기 때문에 알라핌을 알루핌으로 읽는 식의 바꿔 읽기는 유대교 성서 해석에 종종 활용됐다. 따라서 오천을 오천명의 군중이 아니라 ‘다섯 천부장’으로 읽을 수 있다면 ‘백 명씩 오십 명씩’은 백부장, 오십부장으로 옮길 수 있다.
조 교수는 ‘빵을 먹은 이들이 다섯 천부장이었다’는 말은 백부장과 오십부장들이 참석한 그날의 특별한 만찬 의례에서 그들 가운데 다섯명의 천부장을 선출했다는 얘기고 예수가 그들에게 성찬의례를 베풀었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천부장들은 당시 예수가 한때 소속돼 있던 에세네파 공동체의 최고의결기관에서 재판관들과 사제장들, 부족장 등과 함께 그 조직 주요 구성원이었다.

사해 문헌 중의 에세네파 예식에 대한 규례들 중에도 “이스라엘의 천명의 장과 백 명, 오십 명, 십 명의 지도자와 재판관” 등이 재판 청문회에 참석한다는 내용들이 들어 있다. 나중에 에세네 공동체의 한계를 지적하며 떠나간 예수의 공동체 역시 성찬의례를 통해 다섯 천부장을 뽑고 그들이 열두 제자들 모임에 합류하는 좀더 발전된 상부조직을 갖게 된다. 열두 광주리의 12라는 숫자도 이스라엘 12지파, 12제자처럼 당시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고, 메시아의 도래를 알리러 각지에 파견한 72제자의 72라는 숫자도 당시 천문관념에 따라 지파당 6명씩 배치한 결과로 읽힌다.

그렇다면 오병이어 기적의, 외딴곳 그 많은 군중을 어떻게 먹이느냐는 제자들 질문이나, 다 먹이고 남은 빵과 물고기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는 복음서들 얘기는 오역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후대에 추가되고 윤색된 내용일 가능성이 있다. 그날 성찬의례 참석자, 빵과 물고기를 단합과 사명과 정체성 확인 차원의 의례행위로 받아먹은 사람들은 예수 공동체의 소수 지도급 인사들이었다. 마르코 8장의 일곱개 빵으로 사천 명을 먹였다는 얘기도 일곱명의 원로들 모임에 합세할 네명의 천부장을 선출한 것으로 읽는 게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루가 6장의 “가난한 자는 복 받을 것입니다.
천국이 그들 것입니다”라는 예수의 말은 마태오 5장에서는 “마음으로 가난한 자는…”으로 돼 있다.
‘마음’의 히브리어는 ‘레브’다. 그런데 레브는 특정 맥락에서 모세 오경 또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토라’의 은유적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마음으로 가난한 자’라는 말은 토라 공부 때문에 가난한 자, “하느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데 전념하여 돈벌이에 급급하지 않아 구차한 삶을 사는 사람”을 뜻한다는 게 조 교수 풀이다. 따라서 ‘마음이 가난한 자’로 옮기는 건 의역이란다.

이런 식으로, 복음서들의 갖가지 치유기적의 의미, 두드리면 무엇이 열린다는 것인지, 첫째가 나중 되고 나중이 첫째 된다는 게 뭔지, 일 많이 하나 적게 하나 모두 같은 삯을 지불하는 포도밭 주인의 비유, 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지, 카이사르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라는 건 무슨 의미인지, 왜 유다는 마지막 순간 예수에게 입 맞췄는지 등 성서 속의 많은 비유와 예화들이 전혀 새롭게 해석된다. 중요한 건 그것이 막연한 추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문헌 근거들을 토대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사해문헌 중의 <하박국서 해석>엔 ‘진리’의 이름으로 불린 사제가 등장한다. 그는 이스라엘을 지배할 때 교만해져서 하느님을 떠났으며 재산 때문에 법규들을 배반하고 반동폭력배와 백성들의 재산을 훔쳐간 ‘악한 사제’로 로마 법정에 선동 혐의로 넘겨져 사형당한다. 조 교수는 그 사나이가 바로 예수라고 본다. 그를 악한으로 묘사한 하박국서 해석은 예수가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본 이 해석서의 작성 주체인 에세네파의 시선이다.

바리새, 사두개는 물론이고 한때 자신이 그 사제요 교사로 복무했던 에세네파의 한계까지 과감하게 뛰어넘었고 결국 그 때문에 죽임을 당한 예수. 900쪽의 두툼한 <예수 평전>은 당대의 문헌자료들과 문화적 배경설명을 토대로 그 생애를 치밀하게 재해석한다.

에세네 ‘사해 두루마리’ 다양한 성서 해석 근거로

1947년 사해 북서쪽 쿰란의 계곡 언덕에서 잃어버린 염소를 찾던 두 젊은 양치기가 동굴 속의 항아리에서 일곱 개의 양피지 두루마리를 발견했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일컬어졌던 ‘사해 두루마리’들은 11개 동굴에서 모두 813가지가 나왔다. 이 가운데 223개가 히브리 성경 사본들이며, 나머지는 외경들과 공동체 규례, 법규, 예언서 등을 해석한 해석서, 종교절기에 관한 지침서와 감사 시편 등이었다. 대부분이 히브리어로 씌어졌고 96개 문서는 아람어, 7개가 그리스어 문서였다. 히브리 성경 사본 중 82개가 모세 오경 사본이었고 예언서 사본 41개 중 21개가 이사야 사본이었다. 하지만 온전한 것은 12개 정도.

에세네 ‘사해 두루마리’ 다양한 성서 해석 근거로

국내 유일의, 그리고 세계 11번째 앗시리아학 학위 소지자 조철수 교수에 따르면, 매년 100여개의 관련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사해문헌의 작성자들은 엣세네파 사람들. 1세기의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는 기원전 150년부터 서기 70년까지 유대 지방에는 바리새와 엣세네, 사두개라는 세 주요 분파가 있었다고 기록했다. 사두개는 사제들과 그 친인척 등으로 구성된 상류 기득권층으로 로마 제국 체제에 적극 가담한 자들이었고, 바리새는 전통적인 모세 법규에 집착하면서 사회참여를 주장한 타협적 중산층 지식계급이었다. 1세기께 형성된 랍비 유대교는 바리새의 후예들이다. 바리새를 비판한 엣세네는 종말론에 입각해 메시아가 도래할 새 세상을 꿈꾸는 신흥 자치공동체 세력. 이밖에 로마정권에 무력으로 저항한 열심당과 예수를 메시아로 믿은 예수 공동체 등이 등장해 첨예하게 충돌한 당시 이스라엘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일제 패망 뒤에도 외세의 영향이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 상황과도 닮은 점이 많다.

항상 그리스나 로마 등 외세와 결탁하면서 모세 오경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지키려 했던 사두개. 서기 2세기 저항세력을 격파한 로마는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입성을 막았고 성전이 없어진 상황에서 사두개도 사라졌다. 그리하여 유대교는 사제 없는 종교가 됐다.

토라에 집착하면서도 사제계층과 권력층에 반발한 바리새들은 1세기 말 모세 법규를 그대로 지키려는 샴마이파와 개혁적인 힐렐파로 나뉜다.

재산을 공동관리하며 가난한 삶을 찬양했던 내세적·자립적 공동체를 여러 도시들에 세웠던 엣세네 사람들은 로마 네로 황제의 폭정에 항거해 들고 일어선 서기 66년의 열성파 유대인들의 독립항쟁에 합세했다. 그러나 처절했던 마짜다(마사다) 항전으로도 널리 알려진 그 저항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진 엣세네들은 배우고 가르치던 두루마리들을 근처 동굴들에 숨기고 피신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것이 사해 두루마리다.

앞서 기원전 7년 12월 1일 태생일 가능성이 높은 예수는 20대에 엣세네파 사제가 됐고 개혁적인 바리새의 힐렐파 신조를 많이 받아들였다. 예수 공동체는 그러나 엣세네파의 율법주의를 거부하고 불치의 병자나 불구자, 무식쟁이들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등 기성체제 전반에 반기를 들었고 사랑과 평화를 설파했으며, 혈연·지연 중심의 민족종교 틀을 넘어 믿음에 바탕을 둔 신앙공동체로서 보편종교를 지향했다. 이 혁명적 행보는 사두개와 바리새, 엣세네파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결국 그들은 예수 제거를 공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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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병이어의 기적(五餠二魚─奇蹟)은[1]예수의 기적 가운데 하나로, 예수가 한 소년으로부터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취하여 5천 명의 군중을 먹였다는 기적을 가리킨다.[2] 간단히 오병이어라고도 한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빵과 물고기를 취하여 군중을 먹인 예수의 두 기적들 가운데 하나로, 마르코의 복음서 8장과 마태오의 복음서 15장에는 이와 유사하지만 다른 기적이 서술되어 있다.

    본문

    5,000명의 군중을 먹이신 기적인 이 기적은 신약성서사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데, 각각 다음과 같다.

    의미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수의 지극한 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마르코의 복음서에서 이르기를 예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보면서 불쌍히 여기셨다고 말하는데, 이는 "장이 끊어질 것처럼 고통스럽다"라는 뜻을 가진 '스플랑크니조마이'를 옮긴 것이다. 로마제국, 로마제국의 간접통치자인 헤로데 왕실,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 세력들의 수탈 때문에 굶주리는 불쌍한 민중들의 처지를 헤아리면서 예수는 무척 마음이 쓰렸던 것으로 의미된다.

    유사한 기적

    빵과 물고기를 취하여 군중을 먹인 다른 유사한 기적으로서 4,000명의 군중을 먹이신 기적이 있으며 다음 복음서들에 있으며 루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없다.

    • 마르코복음 8장 1~9절
    • 마태오복음 15장 32~39절

    이 기적에서 예수는 군중에게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취하여 군중을 먹이는 기적을 보이셨다.[3]

    각주

  2. 한자적인 해석 그 자체로는 빵(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이지만, 당시에는 실제로 빵과 물고기가 쓰였다.
  3. John Clowes, 1817, The Miracles of Jesus Christ published by J. Gleave, Manchester, UK, page 109
  4. John Clowes, 1817, The Miracles of Jesus Christ published by J. Gleave, Manchester, UK, page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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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프스 트라이얼(A. Scopes Trial)
하나의 기적을 믿으면 또 하나의 기적을 믿기도 쉽다.

성경은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이 기적은 마태복음 14:13∼21, 누가복음 9:10∼17, 요한복음 6:1∼13 등 4복음서에 모두 기록이 될 정도로 복음서의 저자들이 아주 중요하게 다룬 사건이다.

떡은 아주 어린아이의 한 끼 식량이고, 놀랍게도 그 어린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자기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렸다. 기적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이 아이가 예수님께 드린 보리떡은 히브리어로 ‘마슈나’다. 이 떡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아닌 짐승이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마리의 물고기를 드렸는데 이 고기는 ‘이크수스’다.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들은 잡은 고기를 추려서 큰 고기는 집으로 가져가고 너무 작아서 먹을 수 없는 것은 해변에 버리는데 그 고기가 바로 ‘이크수스’다. 이 아이가 드린 물고기는 바로 ‘이크수스’다. 떡 중에 가장 하급의 떡 ‘마슈나’, 물고기 중에 너무 작은 물고기 ‘이크수스’였다.

아마 어린아이가 예수님을 따라가서 말씀을 듣겠다고 하니까 부모가 해변에 다니며 버린 고기를 주워다가 도시락을 싸 주었는지 모르겠다. 그것을 아이는 예수님께 드렸다. 그것이 5천명을 배부르게 먹게 하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가장 큰 기적이 일어났다. 

헌신이 기적

예수님께 드리는 헌신 위에 하나님의 기적이 임했다. 예수님 앞에 소년의 정성으로 1인분의 도시락이지만, 그것을 드렸을 때 많은 생명에게 유익하게 쓰였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가? 크고 작고,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에게 무엇이든지 드리기만 하면 가장 유익하고, 가치 있게 사용된다. 예수님께 드리는 작은 헌신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헌신을 통해서 위대한 일을 이루실 수 있다. 보리떡 다섯 개, 생선 두 마리가 주님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것은 5천명을 먹이고도 남았다. 무슨 뜻인가? 작지만, 보잘것없지만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하면 이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온전히 헌신하는 데 있다. 자기의 것을 모두 주님께 드리는 데 있다. 그러면 결국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사는 것이다.

자기의 희생과 봉사가 없이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나 보고 기대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이는 특별한 것을 드린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을 드린 것 뿐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슨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에게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드리는 것을 요구하신다. 시간, 달란트, 지식, 물질, 무엇이든지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드리면 된다. 주님을 위하여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내게 주신 물질이 있는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땀 흘리게 하셨고 그 대가로 내게 주신 물질들을 귀하게 사용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기를 바란다. 나를 위해서도 선용해야 하지만, 특별히 ‘하나님께서 지금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갖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하자.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내게 무슨 재능이 있는가? 그 재능을 주님을 위하여 ‘필요하시다’ 할 때에 드리자. 미미한 재능이지만 하나님은 크게 사용하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오병 이어의 기적에는 헌신이 있었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드렸다. 그냥 믿고 드릴 때 기적이 임한다.

감사가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에는 감사가 있었다.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은 적은 것이라도 하나님을 향해 감사할 때 일어난다.

마가복음 6: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드리셨다.

이 때에 기적이 일어났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감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의 생활이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가?
생활이 온갖 흑암과 공허와 환난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가?
그로 인하여 삶이 답답한 환경에서 몸부림치고 있는가?
그럴수록 하늘을 향해 감사하기 바란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난다.
감사와 불평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감사할 조건이 수두룩해도 감사하지 않는다.
그렇게 불평만 하면 계속 불평할 일만 생긴다.
그러나 원망스럽고 괴로워도 감사하기 시작하면 감사의 조건이 얼마든지 생기게 된다.

마태복음 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 까지도 빼앗기리라.

지금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감사 위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이 임할 것이다.

순종이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에는 믿고 따르는 순종이 있었다.
어린 소년의 순종이 있었다.
제자들의 찾음에 자신이 갖고 있었던 것을 예수님께 드리는 순종이 있었다.
기적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제자들의 믿음의 순종이 귀했다.

마가복음 6:39-40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다.
제자들로 하여금 사람들이 제대로 무리를 지어 앉도록 질서를 위해서 잘 정리시키셨다.

어떤 제자들은 어떻게 처리할까 두려워했을지 모른다.
‘도대체 어떻게 하시려고 할까?’ 하는 의아심이나 궁금함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이 무엇인가를 하실 것을 믿었다.
엄청난 일을 이루실 줄로 믿고, 그들은 그 일을 순종하여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나님은 이런 바탕 위에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작은 헌신과 믿음의 순종을 기다리신다.
시도하는 사람을 통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희생하는 사람을 통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주님의 축복을 통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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