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삼창으로 기도하는 성경적 근거


주여 삼창으로 시작하는 기도 / 성경적 근거

우리들은 간절히 기도할때 “주여” 삼창을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있을까요?
성경에는 분명히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니엘 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O Lord, listen! O Lord, forgive! O Lord, hear and act! For your sake, O my God, do not delay, because your city and your people bear your Name.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들으시고 행하소서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황폐한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며
자기의 기도를 들어 달아고 간청할때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첫번째 “주여”는 나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강청하는 “주여”입니다.

두번째 “주여”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부르짖는 “주여”입니다.

세번째 “주여”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께서 속히 행동으로 옮겨 달라고 부르짖는 “주여”입니다.

우리가 기도할때 아무런 생각없이
“주여”라고 삼창을 부르짖기 보다는
“들으시고”, “용서하시고”, “행하시 옵소서”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주여” 삼창을 부르짖으면 은혜가 더 충만할 것이며 응답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겠습니다.

자료 사용 / 11-27-200(주일) 파트리스교회 주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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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삼창과 엄마 삼창, 글 김문수


제가 어릴 때 다니던 교회는 예배 분위기가 항상 엄숙하고 조용하며 질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나아갈 때에는 항상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을 해야 한다고 배웠기에, 다들 마음 뿐만
아니라 차림새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깨끗한 옷, 단정한 머리 모양, 바른 자세는 기본이었고,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슬리퍼, 초미니스커트, 민소매 옷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예배 음악을 위해서는 피아노와 오르간만 쓸 수 있었고, 드럼, 기타, 신디싸이저 등은 쓸 수 없었습니다.
회중들이 다 모여서 드리는 공적인 예배시간에는 손뼉을 치면서 찬양하는 것이나 옆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도 금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시절에 새로 전도사님 한 분이 오셨는데, 그 분과 학생회 수련회에 가서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크게 외치며 기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분은 목소리를 높여서 통성으로 기도를 시작할 때에는 항상
"주여! 주여! 주여~" 라고 주를 크게 세 번 부르고 기도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 때에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래야 하나보다 생각하고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그 후, 부흥회나 수련회와
같이 교회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그렇게 "주여 삼창"을 하면서 기도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왜 기도할 때 "주여 삼창"을 해야 하는지,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이해를 못했고,
"주여 삼창"을 가르치는 분들에게 물어봐도 선명한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분들의 답변이라는 게
대부분 "크게 외쳐야 하나님이 잘 들어주신다"는 정도였으니까요.
성경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나 그 분의 사도들이 혹은 구약시대 믿음의 선배들이 기도하기 전에,
"주여 삼창"을 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도대체 한국 교회에만 있는 이 "주여 삼창"이라는 것은
어떤 배경에서 등장한 것인지, 또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과연 성경의 가르침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주여 삼창"을 가르치는 자들의 주장
"주여 삼창"이란,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주여! 주여! 주여~" 하고 세 번 외치는 것을 말합니다. 본래
창(唱)이란 "노래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이 경우 삼창이라고 하기보다는 "연호(連呼): 구호를 연이어 외침"
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 글에서는 현재 통용되는 용어 그대로 "주여 삼창"이라고 쓰겠습니다.
"주여 삼창"을 가르치는 자들은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이렇게 세 분을 부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다니엘 9장 19절을 근거로 이것이 성경적 근거가 있다고 합니다.
(단 9:19, 킹흠정) 오 주여, 들으소서. 오 주여, 용서하소서. 오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오 내 하나님이여,
주를 위하여 지체하지 마옵소서. 주의 도시와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불리나이다.
또한 "주여 삼창"을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여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며(렘 33:3),
크게 외쳐서 우리의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쏟아놓아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기도 합니다.
이런 주장들이 과연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기도할 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각각 한 번씩 불러야 하는가?
성경에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성삼위 하나님을 각각 따로 부르고 기도하라는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신비주의자, 은사주의자들은 "성령이여~ 성령이여~" 하고 성령께 기도하고, 성령께 영광을 돌리기도
하지만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멉니다(요 16:14). 성경 어디에도 성도들이 "성령님께" 기도한 사례가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우리를 위해 친히 중보하시는 분입니다.
(롬 8:26, 킹흠정)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 6:6, 킹흠정) 오직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요 15:16, 킹흠정) 너희가 나를 택하지 아니하고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남아 있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그것을 너희에게 주게 하려 함이라.
(요 16:23, 킹흠정)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구하지 아니하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그분께서 그것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각각 불러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에는 "주 너의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라는 표현은 있지만, 성령님을 가리켜서
주님이라고 부른 예는 없습니다.

둘째로, 다니엘 9:19은 "주여 삼창"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다니엘 9:19을 그 앞에 나오는 17, 18절과 같이 비교해 보면,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다니엘은 "주여"를
세 번 연호한 적이 없습니다.
(단 9:17-19, 킹흠정) [17] 오 우리 하나님이여, 그러하온즉 이제 주의 종의 기도와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이 황폐한 주의 성소에 빛을 비추게 하옵소서.
[18] 오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주의 눈을 여사 우리의 황폐함과
주의 이름으로 불리는 도시를 보시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의로 인하여 주 앞에서 우리의
간구를 드리지 아니하고 주의 크신 긍휼로 인하여 간구를 드리나이다.
[19] 오 주여, 들으소서. 오 주여, 용서하소서. 오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오 내
하나님이여, 주를 위하여 지체하지 마옵소서. 주의 도시와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불리나이다.
다니엘 9:19에 나오는 "오 주여, 들으소서" 이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기도이지 "주여"라는 구호가 아닙니다.
이는 9:17에 나오는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소서"라는 내용의 기도입니다. "오 주여, 용서하소서"
이것 역시 그 자체가 하나의 기도입니다. 이는 18절에 나오는 "주의 긍휼로 인하여 간구하오니 그 긍휼로
우리를 용서하소서"라고 용서를 비는 기도입니다. "오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라는 것도
19절 후반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주의 도시와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니 주님 자신을 위하여
이 일을 지체하지 말고 행하소서"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다니엘 9:19은 "주여 삼창"의 근거가 되지 못하며, "주여 삼창"을 가르치는 자들이 자기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주여"라는 단어가 세 번 등장하는 구절을 찾아서 갖다 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2. "주여 삼창"의 기원
"주여 삼창"을 외치는 의식은 성경의 가르침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기원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는 동양의 제사의식과 무속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여 삼창"의 모태가 되는 것은 "만세 삼창"인데, 이 만세 삼창은 중국에서 한무제가 숭산에서 제사를 지낼때
신하와 백성들이 만세를 삼창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고대 중국의 황실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신하들이 황제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거나 은혜에 감사할 때 "만세, 만세, 만만세"라고 외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시는 김소월의 "초혼(招魂)"이라는 시 중 일부입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중(虛空中)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主人)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였구나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초혼이란 죽은 이의 혼령(넋)을 불러들이는 의식인데, 사람이 죽으면 죽은 이의 저고리를 왼손에 들고
지붕이나 마당에 서서 북쪽을 향하여 망자(亡者)의 이름을 크게 세 번 부른다고 합니다.
"주여 삼창"이라는 것은 전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동양 문화의 산물이며, 동양의 제사의식, 황제 숭배,
초혼의식 등을 혼합하여 만든 종교의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3. "주여 삼창"을 하고 기도해야 하는가?
(1)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기도를 들으시는가?
(렘 33:3, 개역)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킹흠정)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KJV) Call unto me, and I will answer thee, and shew thee great and mighty things, which thou knowest not.
개역은 "부르짖으라"라고 번역했지만, 킹제임스성경에 나오는 call 이라는 단어는 목청 터지게 외쳐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귀머거리가 아닙니다. 그 분은 우리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분입니다.
(사 59:1, 킹흠정) 보라, 주의 손이 짧아져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그분의 귀가 둔하여서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는 주의 공로를 힘입어
은혜의 왕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의 뜻대로 기도할 때
그 분의 긍휼로 인하여 기도 응답을 받는 것이지, 우리의 목소리 크기가 기도 응답을 결정짓는 것이 아닙니다.

(2) "주여 삼창"으로 마음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토로하는가?
피난처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우리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은 필요합니다.
(시 62:8, 킹흠정) 백성들아, 너희는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로다. 셀라.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쏟아놓는 넋두리나 신세한탄이 아니며,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적 화풀이 대상도
아닙니다. 위로자이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실 때,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는 "주여"라는
구호를 세 번 크게 외쳐서 얻는 감정의 발산과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크신 위로입니다.
(요 14:26, 킹흠정)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너희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리라.


(3) "주여 삼창"으로 하나님의 관심과 주목을 끌 수 있는가?
주께서 내 행동과 생각과 말을 다 알고 계시는데, 그 분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주여"를 외칠
필요가 있을까요?
(시 139:1-4, 킹흠정) [1] (악장에게 준 다윗의 시) 오 주여, 주께서 나를 살피시고 나를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이해하시오며
[3] 나의 행로와 나의 눕는 것을 둘러싸시므로 나의 모든 길을 익히 아시오니
[4] 보소서, 오 주여, 내 혀의 말 중에 주께서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
만약 여러분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다른 손님과 만나 이야기하고 있거나, 누군가를 쫓아가고 있거나,
여행 중에 있거나, 자고 있다면 크게 소리 질러서 깨우시기 바랍니다.
(왕상 18:27-28, 킹흠정) [27] 정오에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이므로
지금 이야기하고 있거나 쫓아가고 있거나 여행 중에 있거나 혹은 자고 있으니 반드시 깨워야
하리라, 하매 [28]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자기들의 규례에 따라 몸에서 피가 철철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찢었더라.
바알 숭배자들은 큰 소리로 자기 신들의 이름을 부르고, 신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 칼과 창으로 피가 흐르도록
자기 몸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반면, 엘리야는 그렇게 목 놓아 외쳐 부른 것이 아니라 보통 때와 같이
주께 말했습니다. 왕상 18:36에는 "엘리야가 가까이 가서 이르되"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주의
이름을 크게 외쳐 부르거나, 제단 주변에서 날뛰거나 하면서 주의 관심을 끌고자 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주께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4) "주여, 주여" 연호한 사례
성경에는 "주여, 주여"라고 주를 연이어 부른 사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연이어
"주여, 주여" 라고 부른 구절들은 아래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의 용례에 의하면, 주로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이 "주여, 주여"하고 외칩니다.
(마 7:21, 킹흠정) 내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 킹흠정)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25:11, 킹흠정) 그 뒤에 다른 처녀들도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하나
(눅 6:46, 킹흠정)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들은 행하지 아니하느냐?

이 글의 취지는, 기도할 때 주님께 "주여~" 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갈급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주를 찾으시는 분들은 "주여~" 라고 부르며 기도하십시오. 저는 그런 분들을
향하여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근거도 알 수 없는 "주여 삼창"이라는 종교 의식이 마치 성경적인 것처럼
교회 예배에 들어와 있고, 또 그 의미도 모른 채 목회자들이 가르치니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무작정 따라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런 의미없는 외침이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겁니다.
성경적 근거도 없고, 의미도 없이 통성기도 시작할 때마다 습관을 따라 혹은 기도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주여 삼창"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은 허공에 떠도는 공허한 부르짖음이 될 뿐입니다.
이제는 주여 삼창이 한국교회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외국으로 "주여 삼창"이라는
문화를 전파하여 외국에서도 "주여 삼창"을 외치는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3784

참고로, 로마카톨릭의 미사에서는 그들이 하늘의 여왕이라고 믿고 숭배하는 마리아에게 "엄마 삼창"을
바친다고 합니다.



주여 삼창(三唱)?

말씀을 바르게 알고 , 바르게 믿고 , 바르게 행하

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

이 알면서도 바르게 행하지 못하고 때론 알지 못하여 

바르게 행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삼창(三唱?)을 

신학적 의미가 '있다' '없다'의 측면에서 생각해보기 

보다는 “주여!“ 삼창의 의미를 더 자세히 알고 간절

히 기도한다면 은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래의 

글을 올려봅니다..



주여 삼창의 배경은 

성경 다니엘서 9장 19절에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

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

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라는 말씀에서


1. 주여 들으소서 

2. 주여 용서하소서 

3.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이러한 의미를 품고 주여 삼창을 부르며 기도한다는 

설과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각 위마다 지

칭하여 부른다’는 설과 



중국에서 제사 지낼 때의 "만세(萬歲)!" 삼창(三唱)

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의식에 사용되어 왔으며, 이를 

새벽 기도할 때에 부흥사들이 원용(援用) 하여 "주

여!" 삼창이 이어져 왔다는 가능성을 기록된 곳이 있

으나, 신뢰할 만한 문서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없습니

다. 




다음은 우주현 목사의 한국인의 기도!(KOREAN 

PRAYER!)에 대한 글인데 많은 공감이 되어 올려봅니

다.


KOREAN PRAYER!

-우주현 목사- 

제발! 주여~주여~주여~ 만세삼창하듯 부르짖지 마십시

오. 이는 무당들이 귀신 부를 때 하는 짓(?)들과 같습

니다. 제발! 교회안에서 기도할 때 큰소리로 부르짖

어 다른 성도의 기도에 방해 되지 않도록 배려하십시

오. 정말로 부르짖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개인기도방

으로 옮겨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

음소리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시며 또한 예수님

도 그렇게 부르짖으며 기도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

니다.


귀 먹지 않으신 하나님

한때 한국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교회성장

신학’ 의 본산으로 유명한 미국의 풀러신학교 피터 

와그너 교수로 아주 유명한 교수인데, 그는 특히 한국

교회의 성장을 주목하고 자시의 교회성장의 한 모델

로 한국교회를 지목했습니다. 물론 한국에도 여러번 

다녀갔었으며 풀러신학교는 아마 가장 많은 한국학생

이 유학하고 있는 학교일 겁니다.


그런데 그 분의 과목중에 교회성장과 기도에 대한 과

목이 있는데, 그 과목의 수업시간에 피터 와그너 교수

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KOREAN PRAYER’ 라는 이름으

로 한국 특유의 기도를 소개하고, 또 학생들에게 실습

도 시켰답니다. 피터 와그너 교수가 교회성장을 위한 

특별한 기도로 소개하고 보급하려 했던 ‘KOREAN 

PRAYER’, 도대체 그게 뭘까요? ‘KOREAN PRAYER’로 

소개된 그 기도는 ‘주여!’ 를 세 번 크게 부르고 이

어서 큰 소리로 통성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재밌는 

것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실습을 시키면서, 한국

말 그대로 ‘주여!’ 를 세 번 부르게 했다는 것이지

요. 미국 학생들이 ‘O, Load!' 가 아니라 한국말

로 ’주여를 세 번 큰소리로 부르는 것, 상상해 보십

시오. 재밌지 않습니까? 태권도의 용어에 이어 한국

말 그대로 수출되고 있는 몇 안되는 우리의 문화수출

상품으로 ‘KOREAN PRAYER’ 당당히 자리하고 있습니

다. 



한국교회에 큰 관심을 두었던 피터 와그너 교수의 눈

에는 그 ‘KOREAN PRAYER’가 아주 신기하기도 했으

며 또 한국교회의 성장에 크게 기여한 중요한 부분이

며, 또 아주 특별한 기도의 한 방법 이라고 생각되었

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들리는 소식은, 그 피

터 와그너 교수도 이제 한국교회의 성장은 끝났다고 

진단하고, 한국 모델을 포기하는 대신 요즘엔 자신의 

새로운 모델을 남미의 교회들에서 찾고 있다고 합니

다. ‘KOREAN PRAYER’ 도 이젠 약발(?)이 떨어졌다

고 판단한 것 같은데... 유명한 학자라서 그런지 역

시 판단도 빠릅니다. 


외국 기독교인의 눈에 그 기도는 참으로 신기하고 또 

특별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공식적이며 공개적

으로, 열정적이며 시끄럽게 기도하는 경우는 아마 교

회 역사에서도 두 번은 없었을 겁니다. 


주여! 삼창하고 이어서 큰소리로 통성기도 하는 것. 

구태여 기도원이 아니라도 일반적인 한국 교회에서 보

편적으로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평범한 기도회의 모습

입니다. 그리고 개교회에서의 일반적인 기도 시간에 -

특히 새벽기도나 철야기도 때 - 유독 큰 소리로 기도

하는 분들이 꼭 있어서 가끔씩은 감정적인 마찰을 빚

기도 하지요. 그러나 성경에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했

는데 왜? 라고 말하면 또 달리 할 말도 없어서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과연 성

경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가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예레미야 29장 12절도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

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부르짖으라‘라 말씀

하고 있는 대표적인 이 두 구절의 말씀을 표준 새번역

에서는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지 볼까요?

‘내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면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너에게 알려 주겠습니

다.’(표준 새번역, 렘 33:3)

‘너희가 나를 부르고, 나에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호소를 들어주겠다’(표전 새번역, 렘 29:12)

개역 성경에서 ‘부르짖으라’고 번역된 부분이 모두 

‘부르라’로 번역된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영어성경을 보아도 ‘Call to me I will 

answer...',you will call upon me and come and 

pray...'모두 ’call'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부르짖으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카라’인데 이

는 영어의 Call로서 부르고 찾으라는 의미입니다. 그

리고 ‘부르다(Call)’와 ‘부르짖다(cry out, 

shout)'는 사실 완전히 다른 말이며, 부르짖다’에 해

당하는 히브리어는 ‘자앜’이라는 동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카라’는 단순히 이름을 부르라는 뜻이

지 부르짖으라는 의미는 분명 아닙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

의 존재와 성품에 대한 인격적 신뢰와 믿음을 고백하

는 것으로, 결국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

르는 - 즉 하나님의 존재와 인격에 대한 믿음을 고백

하는 -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이 두 말씀은 우

리에게 다시 보여 주며 가르치고 있을 뿐입니다. 


이 말씀은 한국교회가 적용하듯 열심히 크게 기도하라

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출발은 믿음의 

고백, 즉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의 이름을, 그의 존재

를, 그의 인격을 부른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첫 마디, ‘하늘에 계신 우

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는 것, 이것이 바로 ‘카라’

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올바른 지식은 없이 열심만 특심

한 것이 사실 문제입니다.


누구보다 성경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며 성경대로를 주

장하지만 사실은 성경대로가 아니라 성경대로라 착각

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전통을 믿는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다고는 못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의 오류였음을 우리는 다시 환기하며 기억

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는 목소리 큰 사람들이 이기는 게임이 아닙니다. 

‘아버지’를 가진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그러면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까? 물

론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간절함 때문에 

부르짖을 수 밖에 없을 때가 물론 있다고 생각합니

다. 그러나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고 해서 더 간절하다

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는 게 더 

간절하다면 주님께서 ‘네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

고 기도하라(마 6:6)’고 가르치신 것이 틀린 것이 됩

니다.

그리고 여럿이 함께 기도드리는 경우에는 더욱 더 자

신의 큰 소리로 인하여 타인들이 방해받지 않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제 경험과 관찰로는 큰 소리로 열심

히 기도하시는 분들이 대체로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래

서 그들의 이기적인 본성이 기도에도 그대로 반영되

어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제가 

판단한다면 지나친 편견일까요? 아무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자신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

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성경속의 인물 중 간절히 기도한 사람의 경우로 어떤 

분들이 주로 떠오르십니까?

저는 먼저 한나가 떠오릅니다. 사무엘서 1장에는 한나

의 기도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 

보십시오. 1장 10절에 보면,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러나 13절을 보시면 한나가 어떻게 통곡(?)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녀의 통곡은 속으로만 말하여서 입술

만 동하였고 소리는 들리지 않는 이상한 통곡(?)이었

습니다. 이런걸 우리는 통곡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

러나 개역성경은 통곡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부르짖다’, ‘통곡하다’ 이런 단어들은 우리의 종

교문화에서 비롯된 기도가 번역자의 선입견으로 영향

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녀는 자신의 

표현 그대로 ‘마음이 슬픈 여자(15절)’였습니다. 그

러나 그 슬픔을 안고 기도할 때에 그녀는 통곡하거나 

큰 소리로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철저

하게 절제하면서 오히려 핀 눈물을 삼키면서 기도했습

니다. 참으로 마음이 슬펐던 여자, 한나의 기도는 한

바탕 울음과 곡성으로 한을 푸는 기도가 분명 아니었

습니다.

이어서 제게 떠오르는 인물은 당연히 엘리야입니다. 

그의 상황도 처절했음이 분명했는데... 그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열왕기상 18장이 그 유명한 갈멜산의 

결투 장면인데, 특히 바알 선지자들의 기도와 엘리야

의 기도를 비교해 보십시오. 28절을 보시면 열받고 흥

분한 바알 선지자들의 기도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

다.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참 알 수 없습니

다. 오리혀 여기는 ‘큰 소리로 부르짖고...’라고 번

역해야 하는데... 그러나 역시 표준 새 번역은 ‘더 

큰 소리로 부르짖으면서...’라고 번역해야 하는데...

그러나 역시 표준 새 번역은 ‘더 큰 소리로 부르짖으

면서...’라고 번역해 놓고 있습니다. 제가 표준 새 

번역을 좋아하는 이유, 더욱 분명하지 않습니까? 


이 바알 선지자들의 기도 모습이 바로 히브리어로 

‘자앜’하는 -부르짖는, 울부짖는- 모습입니다. 반

면 엘리야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

님 여호와여!(36절)”,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

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기도의 사람 엘리

야의 기도 역시 기도는 열심의 문제가 아니라 바른 관

계의 문제임을 다시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관계의 확인이며 믿음의 확인이지 나

의 열심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며, 내 감정을 쏟아놓

는 시간도 아닙니다.


사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자세는 꼭꼭 숨어서 

은밀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

치실 때에 먼저 지적하신 것은 알다시피 기도하는 자

세였습니다. 기도를 가르치신 마태복음 6장 6절에 의

하면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

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자세히 보면, 기도의 가르침인 6장 5~15절의 그 문단 

속에서 오직 6절 말씀만 ‘너(you)'가 단수로 쓰여지

고 있습니다. 즉, 너의 기도는 너 혼자서 너의 골방에

서 문가지 걸어 잠그고 오직 너의 아버지께만 은밀하

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

대로 지켜서 자신의 골방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부르

며 은밀하게 기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

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개인 기도 시간과 공간

을 갖기가 우리의 주거문화와 생활여건상 사실은 쉽

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함께 하는 기도라도 그 기도가 궁

극적으로는 각 개인들의 골방기도가 될 수 있도록 도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이같은 골방의 기도에 실

패하면 자연히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큰 소리

로 사람에게 보이려고(마 6:5)’ 기도하게 되고, 그래

서 결국 중언부언하게 되고, 큰 소리로 말만 많이 하

는 기도가 됩니다(마 6:7). 그리고 그런 기도는 성경

에서 이방인의 기도라고 하지 하나님 자녀들의 기도라

고 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혼자만의 골방에서 기도를 한다면, 때로 감정이 

격해져서 부르짖는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

까? 삼상 15:11 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 삼으

신 것을 후회하신다고 말씀하시자 그 밤에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기록하

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분명히 ‘자앜’으로 표현되

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에서 온 밤을 사울을 위

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때로는 부르짖어 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울을 위하여, 이스

라엘 민족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혼자 드리는 기도였으

며 그가 흘린 눈물은 타인과 민족을 향한 사랑의 눈물

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조금은 문제가 되고 있는 공적 기도시

간에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과는 사실 차원을 달리하

는 기도이지요.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롬 14:16)’하는 것이 성숙한 

성도의 지혜입니다.

열심히 기도한다는 그 선한 일이 왜 비방과 시비가 되

어야 합니까? 우리는 기도에서도 먼저 타인을 배려해

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했던 

대부분의 기도들이 사실은 ‘개인의 정욕에서 비롯된 

기도(약 4:3)’였음도 인정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때

로는 우리의 감정을 시원케하는 -심하게 말하면 스트

레스를 푸는- 기도일 때가 많았음도...


어제 성경을 읽다보니 전도서 말씀(전 5:2)에 이런 말

씀이 있더군요.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

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

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

을 적게 할 것이니라.’ 말을 적게 그리고 작은 소리

로 하는 기도를 추구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기독교의 오랜 전통 가운데 있었던, ‘고요함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묵

상하는 기도’이지요. 현대 개신교회에서는, 특히 한

국교회에서는 거의 모르고 있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추구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우리 아

버지는 당신의 자녀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눈 멀기는 

하셨지만 귀 먹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의 

신음조차 들으실 만큼 그 귀를 우리에게로 향하여 세

우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

에게 응답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부끄러

운 아들은 오늘도 가장 작고 낮은 목소리로 아버지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봅니다.

귀 밝으신 나의 아버지.



할렐루야


Everyone Knows Hallelujah, RIght?

There is probably not a single person alive who isn’t familiar with the word “Hallelujah”. We’ve all heard this word repeated time and again in various contexts. Hallelujah is a Hebrew loan word, incorporated into the English language from Hebrew. But what does this word mean in Hebrew?
What Does the Word Really Mean?

The word “Hallelujah” (הללויה) is actually a compound word (two individual Hebrew words put together): “Hallelu” (הללו) and “Yah” (יה). “Hallelu” is an exhortation to a group people to praise someone or something. The old English translation of “Praise, ye” is, therefore, a very accurate translation.

“Yah” (יה) is a version of  “YHVH” (יהוה) – an English transliteration of the covenant name of Israel’s God. Jewish belief holds that this name is too holy to be pronounced at all. In fact, no one really knows how to pronounce it correctly. Ancient Hebrew did not use vowels, but only consonants. In translating “YHVH,”, both Jewish and Christian translators substituted the word “Lord” –  a rough translation of another Hebrew name for God (אֲדונָי) – Adonai. To signify that “YHVH” was the original Hebrew word used in the text – it was printed in “all capitals,” (LORD and not simply “Lord”) in English translations.

Jewish Views of God’s Name

For many centuries, Jewish people have traditionally referred to this most holy name of God by using the Hebrew word, “HaShem” (literally, “The Name”). Occasionally, they would substitute even the longer Hebrew phrases for God’s covenant name, such as “HaKadosh Baruch Chu” (Holy One, Blessed be He).

Today’s modern Christ followers are divided over the appropriateness of the English translation (LORD). Some prefer to pronounce the actual covenant name of God (forbidden to be spoken in Judaism) believing that this makes their faith more authentic and original. Others continue with the more traditional Jewish/Christian ways of expressing their devotion. Join me and discover the practical simplicity of Hebrew Language. Understand how it speaks in through simple imagery, yet says so much.

할렐루야 다들 아시죠?
"할렐루야"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단어를 다양한 상황에서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할렐루야는 히브리어에서 영어로 통합된 히브리어 차용어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말씀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할렐루야"(הללויה)라는 단어는 실제로 "할렐루"(הללו)와 "야"(יה)의 합성어 입니다.

"할렐루"는 그룹 사람들에게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칭찬하도록 권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하라, 너희여”의 옛 영어 번역은 매우 정확한 번역입니다.

"야"(יה)는 "YHVH"(יהוה)의 버전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언약 이름을 영어로 음역한 것입니다.

유대인의 믿음은 이 이름이 너무 거룩해서 전혀 발음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정확하게 발음하는 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고대 히브리어는 모음을 사용하지 않고 자음만 사용했습니다.
"YHVH"를 번역할 때 유대인과 기독교인 번역가 모두 "주"라는 단어를 대치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다른 히브리어 이름(אֲדונָי)의 대략적인 번역인 Adonai입니다.

"YHVH"가 본문에 사용된 원래 히브리어 단어임을 나타내기 위해 영어 번역에서 "모든 대문자"(LORD가 아니라 단순히 "Lord")로 인쇄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에 대한 유대인의 견해 수세기 동안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히브리어 "HaShem"(문자 그대로 "이름")을 사용하여 이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HaKadosh Baruch Chu"(거룩한 자, 찬송하리로다)와 같이 하나님의 언약 이름을 더 긴 히브리어 구로 대체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현대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영어 번역(LORD)의 적절성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실제 언약의 이름(유대교에서는 금지됨)을 발음하는 것이 그들의 믿음을 더 진실하고 독창적으로 만든다고 믿기를 선호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헌신을 표현하는 보다 전통적인 유대교/기독교 방식을 계속 사용합니다. 저와 함께 히브리어의 실용적인 단순성을 발견하십시오. 간단한 이미지를 통해 그것이 어떻게 말을 하는지 이해하면서도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아상블라주(assemblage) 불어 - 모으기, 집합, 조림 / Junk Art



버려지는 폐품·고물이 예술작품으로 새롭게 탄생

‘아상블라주’란 프랑스어로 집합 ·집적을 의미하며, 특히 조각 내지 3차원적 입체작품의 형태를 조형하는 미술상의 방법을 말한다.
종이나 베의 조각 등을 화면에 풀로 붙이는 큐비즘의 콜라주에서 비롯되었지만, 콜라주가 평면적인 데 대하여 아상블라주는 3차원적이다.

1961년 뉴욕에서 열린 아상블라주전(展)의 기획자 W.사이츠는 “아상블라주는 무엇보다도 먼저 예술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물체의 집적이어야만 한다”고 정의하였다.

피카소의 《압생트 술병》(1912) 등이 선구적 작품이지만, 본격적인 개화(開花)는 다다이즘 및 초현실주의,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네오다다이즘, 팝아트, 누보레알리즘 및 환경예술 등에서 이루어졌다.

D.스페리(1930∼ ), F.아르망(1928∼ ) 등은 폐품을 소재로 예술화한다는 데서 더 나아가, 오히려 ‘잡동사니’ 폐품이 지닌 표현력을 끌어내려는 데 예술활동의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공업제품의 폐품을 주로 사용한 정크 아트(junk art)도 이에 속한다.



아상블라주
폐품이나 일용품을 비롯하여 여러 물체를 한데 모아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기법 및 그 작품

정크(Junk. 고물)가 예술가의 손에 의해 아트(Art. 작품)로 탄생하는 것이 정크아트(Junk Art.  폐품예술)라고 한다.
즉 폐기물, 쓰레기로 버려질 물건들이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다.
망가진 오토바이가 나비로 변하고, 못쓰게 된 손잡이가 로봇의 눈이 되어 움직이는 작품으로 변신한다.
정크아트가 지닌 예술적인 면과 교육적인 면, 그리고 환경적인 면 등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참으로 가치가 있는 장르다.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등에서 발생되는 각종 고철을 비롯한 현대 문명이 토해낸 산업폐기물을 이용하여 예술가들의 손을 통해 작품으로 탄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치냉장고, 폐타이어, 숟가락, 냄비 등등 주변에서 버려진 쓰레기들이 멋진 로봇으로, 나무로, 놀이기구로, 동물로, 우리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로 재탄생되는 예술이 정크아트다.

버려지는 고물들, 쓰레기 더미에 버려지는 그 어떤 물건들도 어떻게 사용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곳, 그리고 새롭게 탄생시키는 사람이 있다. 충북 음성의 변두리 용바위골 가섭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정크아트미술관과 오대호 관장이 주인공이다. 오 관장은 지난 2003년 10월, 생활 속에서 버려진 고물들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정크아트를 처음으로 국내에 선보이기 시작해, 춘천 마임축제(2003년), 서울시 지구촌한마음축제(2004년), 청남대 호반축제(2005년)에 초대작가로 활동하면서 사람들에게 정크아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크아트는 일상생활에서 버려지는 잡동사니 및 도시문명과 폐기물을 소재로 이용하는 경향으로 입체주의·다다의 콜라주·오브제 등에 그 근본을 두었다고 한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1960년대에 유럽과 미국에서 전통적 조소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전위적 미술경향으로 여러 종류의 폐품을 끌어 모은다는 의미에서 스크랩 아트(Scrap Art)라고도 한다.

정크아트의 초기경향은 컴바인 페인팅의 창시자인 라우센버그의 ‘컴바인(Combine)’ 이나 ‘오달리스크(Odalisk)’ 등에서 찾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들은 헌 신문지 조각에서부터 망가진 전기제품까지 주로 도시문명의 폐기물을 이용해 회화와 조소의 중간 형태를 창조해 냈다.

정크아트를 본격적으로 전개시킨 작가로는 세자르를 비롯해 일부 누보레알리즘 작가들과 리처드 스탠키위츠, 존 체임벌린, 마르크 디 수베로, 리 본티쿠, 루이즈 네벨슨, 파올로치 등이 있다. 이들은 산업쓰레기나 고장난 부품, 파손된 부재 등을 예술적 기지로 재구성하였는데, 특별한 조소재료는 있을 수 없다는 사고가 바탕이 되었다.

미술가들은 이러한 산업폐기물을 용접하거나 혹은 발견된 오브제로 제시하면서 예술작품으로 승화한다. 여기에는 대리석을 조각하거나 청동을 주조 한 것보다는 용접된 철제와 강철이 기계시대에 보다 걸맞은 조각의 재료라는 사고가 함축돼 있다.

몇몇 작가들은 발견된 오브제를 제시하기도 하였지만 일부의 작가들은 이것을 변형시켜서 추상적이고 서정적인 조각을 창조하기도 한다.

오대호 관장은 “재활용을 주제로 한 세계 최대 규모의 환경조각공원을 조성하고, 정크아트박물관, 세계예술축제장, 체험학습장, 생태체험장 등을 만들어 전국의 아이들이 모여 체험할 수 있는 동화속의 꿈의 랜드를 만들고 싶은 것이 정말로 실현하고 싶은 꿈”이라고 전하고 “버려진 고물들에 새 생명을 불어 넣는 꿈의 랜드를 만들어 누구나 자연스럽게 환경과 재활용에 대한 소중함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공간마련이 과제이자 숙제”라고 밝히는 오 관장의 포부가 어떻게 펼쳐질지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종교개혁 기념일(파트리스 주보 연재 자료)



종교개혁기념일(宗敎改革紀念日, Reformationstag, Reformation Day)
종교개혁 기념일은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95개 논제를 공포한 날을 기념하는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루터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부패를 비판하고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고, 교황의 권위보다는 오직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며, 오직 믿음으로 칭의(稱義)를 얻는 이신칭의(以信稱義)를 주장하여 종교개혁을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율리우스 력의 10월 31일에 해당한다.
일부 국가와 독일의 개신교 신자가 많은 일부 주는 이 날은 휴일이다.
종교개혁가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여러 나라의 개신교 교회에서는 10월 31일 직전 일요일에  종교개혁 기념예배가 진행된다.
2022년은 종교개혁 505주년입니다.
종교개혁 기념 주일을 맞이하여 북한 선교사 이순례목사의 그간의 활동과 간증을 통하여 남과 북의 긴장관계를 신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함께 찾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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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宗敎改革)이란 종교를 새롭게 뜯어 고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개혁(改革)'이란 "고칠 개(개)" "가죽 혁(革)"이란 훈(訓)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를 어떻게 새롭게 고쳐야 할까요?
"타성(惰性)"을 "영성(靈性)"으로 바꿔야 합니다.

'타성'이란 "게으를 타(惰), 성품 성(性)"으로 "사람의 말이나 행동(行動)에 굳어져 있는 좋지 않은 버릇. 또는 오랫동안 변화(變化)나 새로움을 꾀하지 않아 나태(懶怠)하게 굳어져 있는 습성(習性)"을 말합니다.
'영성'이란 "신령 영(靈), 성품 성(性)"으로 "신령(神靈)스럽게 총명(聰明)한 품성(品性). 또는 성질(性質). 천부(天賦)의 총명(聰明)"을 말합니다.

가톨릭교회의 형식적인 예배와 구원 교리에 대한 젊은 신부 루터는 진리에서 왜곡된 가르침에 환멸을 느끼고 개혁의 깃발을 들어올렸듯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듣기만 하였고 실천하지 못했던 타성에 젖은 신앙을 깨우쳐 영성으로 반응할 수 있는 은혜를 함께 사모하며 기도합시다.

북한 선교사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그리고 선교자의 사명을 회복하는 복된 개혁기념주일을 기다려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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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2022 주일 주보에 소개

칼빈주의 교리의 기초는 종교개혁의 다섯 가지 슬로건으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1st.  오직 성경(솔라 스크립투라, Sola Scriptura)
2nd. 오직 그리스도(솔루스 크리스투스, Solus Christus)
3rd. 오직 믿음(솔라 피데, Sola Fide)
4th. 오직 은혜(솔라 그라티아, Sola Gratia)
5th. 오직 하나님께 영광(솔리 데오 글로리아, Soli Deo Gloria)

튤립교리(TULIP) - 칼빈의 5대강령

1.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3. 제한적 구속(Limited atonement)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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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06-2022 주일 주보

튤립교리(TULIP)-칼빈의 5대강령

1. Total Deprevity(전적타락)

에덴동산에서 원죄를 범함으로 인간은 완전히,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여기서 인간의 타락을 부분적인 것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구원의 공로가 사람에게도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는 자신의 구원을 이룬다거나 구원에 어떠한 방법으로도 기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알 수 있습니다).
선을 완전히 행할 수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무리 인간이 선을 행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꼐 원하시는 수준, 즉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다음 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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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2022(주일)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 5: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마가복음 4:12)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편 51: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세기 6:5)

1. 인간은 출생으로부터 죄인입니다

2. 실제적으로도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죽은 자가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가? 눈먼 자가 스스로 볼 수 있는가? 날 때부터 죄인인 자가 스스로 변할 수 있는가?
도저히 그럴 수 없습니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기 14:4)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예레미야 13:23)

구원은 본질상 우리를 살리신 주께 속한 것입니다. 구원은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가를 철저히 깨닫고 괴로워하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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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Unconditional Election(무조건적 선택)

전적타락에서 인간은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생명이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그의 영원 불변하신 목적과 그 마음의 소원과 기쁘신 뜻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도록 선택해 놓았다. 이는 단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총과 사랑에서 나온 것이지,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시고 할 만한 어떤 조건이나 이유가 되는 다른 어떤 것이 피조물에게 있기 때문은 아니다 (침례교 신앙고백서 3장 5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성경말씀은 많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한복음 15:16)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한이 없느냐 (로마서 9:21)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4-5)

1.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은 사람이 행한 어떤 것과도 관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선,악행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자기 백성으로 택했다는 의미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가 하게 될 어떤 일, 곧 그의 아들을 믿게될 줄 아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믿을 사람을 미리 아셨다고 하는 것도 좋지 못합니다. 우리가 믿기 때문에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선택을 받기로 작정되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4.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8)


3. Limited atonement(제한적 구속)

예수님은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미리 아셨고, 그들의 구원이 확실하다는 보장 아래 그분의 구속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처음부터 그 분의 속죄사역은 완성된 사역임을 아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2)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7)

4. Irresistible grace(불가항력적 은혜)

하나님은 구원의 주가 되시기에 그의 유효한 부르심을 사람이 거절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즉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마음과 의지 안에서 자신의 구원의 목적을 이루심에 결코 실패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그 분은 어떻게 해서든 구원의 길로 돌이키게 하십니다. 이것은 성도의 경험에서 증명될 수 있습니다

5. Perseverance of the saints(성도의 견인)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함을 받고 믿음을 갖게 된 사람은 모두가 영원히 구원을 받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믿음을 계속 지키며 세상 종말까지 그 믿음을 보존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해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습니다. 

이젠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면서 지속적 믿음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을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은 하나님의 지속적인 오래참으심의 은혜와 친히 사랑으로 보전케 하십니다. 고로 일시적 범죄는 연약함으로 인한 넘어짐에 불구하며 그들은 성령의 은혜로 인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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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SOLA SCRIPTURA)
- 존 후스는 오직 성경에 대한 헌신으로 자신의 생명을 희생했고 교황주의와 사제주의를 공격했다.

1. 권위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음성이다.
- 성경의 권위는 절대적이며 이차적이거나 파생적이지 않다.
-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만큼 권위적이다(칼빈의 ‘기독교 강요’ 1.7.1).
- 교회는 반드시 전체적으로 이 성경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기독교 강요’ 3.2.6-7).
- 실상 다른 모든 종류의 권위들, 즉 교황적 권위나 교리적 권위나 민간적 권위들은 반드시 성경에 종속되어져야 한다(‘기독교 강요’ 4.8).
- 우리가 성경을 판단할 수 없으며 성경이 우리를 판단해야 한다.
2. 불오성과 무오성
- 성경의 모든 문장과 단어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것이다.
- 디모데 후서 3장 16, 17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마틴 루터의 제롬에게 보낸 어거스틴의 편지 인용
 “나는 오직 성경만이 무오하다는 것을 견지하는 법을 배웠다.”

- 오직 성경만이 신자의 양심을 구소갈 수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10절, 20장 2절, 31장 4절).

3. 자해석과 자증성
- 울리히 쯔빙글리는 교회로 하여금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 주는 성경의 참된 해석자가 성령이라고 말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6절).
- 성경의 증거가 신자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내적 증언으로 말미암아 확증된다(‘기독교 강요’ 1.7.2-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5절).
- 칼빈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곧 성령께서 내적으로 가르침을 주신 사람들은 진정으로 성경을 신뢰한다. 또한 성경이 스스로 확증하므로 성경을 감히 다른 증거와 이론에 예속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령의 증거를 통해서 마땅하고도 온전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

4. 자유
 종교 개혁자들은 적어도 세 가지 방식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직자 계급으로부터 성경을 해방시켰다.
- 루터로 대표되는 성경 번역
- 쯔빙글리로 대표되는 주해 설교
- 칼빈으로 대표되는 문법적이고 역사적인 주해

5. 능력
-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 영원히 성경을 신뢰할 수 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영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의 지성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기를 고대할 수 있다.
- 과연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고 사랑하며 성경대로 살고 성경대로 기도하고 있는가?
- 성경은 우리 자신을 보는 거울(약 1:22-27)이며, 우리의 행위의 규례이며(갈 6:16), 우리의 ‘행실을 깨끗하게’(시 119:9)하는 율례이며, 우리를 뜨겁게 하는 불이며(눅 24:32), 우리를 먹이는 양식이며(욥 23:12), 우리가 싸우는 검이며(엡 6:17) 우리의 의심과 두려움을 해결해 주는 모사이며(시 119:24), 우리를 풍요롭게 해 주는 기업(시 119:111,112)인가?

오직 은혜(SOLA GRATIA)


 인간이 자신의 죄사함과 구원을 처음으로 주도하고 그것에 참여하는 것인가? 아니면 구원의 전체 사역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기인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구원을 주도하시고 완성시키는 것인가?
- 루터는 ‘노예의지론’에서 분명하게 주권적인 은혜를 지지한다.
- 윌리엄 뉴먼은 “은혜란…무가치한 사람에게 베푸시는…하나님의 무조건적인 호의이다”라고 하였다.
- 죄인이며 오직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에게 전혀 의무가 없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과분한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다.
- 무조건적이고 주권적이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일 수 없다.
- 하지만 우리의 본성은 주권적은 은혜를 대적한다.


i) 로마서에 제시된 하나님의 은혜
① 은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하나님의 왕국의 공동 상속자로 만든다(롬 4:16).
② 은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 사이에 화평을 수립해 준다(롬 5:2).
③ 은혜는 죄의 권세보다 훨씬 더 강해서 죄의 지배로부터 참된 자유와 영속하는 해방을 가져다준다(롬 5:21,21, 6:14).
④ 하나님의 신적 은혜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많은 사람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나누어 준다(롬 12:6).
⑤ 은혜가 궁극적으로 사망을 정복할 것이며, 은혜를 받는 모든 자들을 영생으로 이끌 것이다(롬 5:20,21).
⑥ 왜냐하면 이것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기 이전에 인간의 아무런 공로 없이 그들을 구원하기로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롬 11:5,6).


ii) 선택으로부터 영화에 이르기까지 은혜는 홀로 화려하게 통치한다.
① 은혜는 우리를 부른다(갈 1:15).
② 우리를 중생시킨다(딛 3:5).
③ 우리를 의롭다 한다(롬 3:24).
④ 우리를 거룩케 한다(히 13:20,21).
⑤ 우리를 보호한다(벧전 1:3-5).


3. 오직 믿음(SOLA FIDE)


i) 루터의 깨달음
 루터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비록 내가 비난받을 것 없는 수도사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된 나의 처지에서 오는 양심의 불안으로 인해 고통스러웠으며, 나의 인격으로는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것을 밤낮으로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 말씀으로부터 해답을 얻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는 후일 이렇게 기록한다.
 “그때 나는 순전히 은혜와 자비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하여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즉시 나는 마치 내 앞에 열린 문을 통과해서 천국으로 들어간 것 같은 확신을 느꼈다.”
 결국 루터는 그 믿음이 죄인이 의롭다하심을 받는 수단임을 이해했다.


ii) 칭의와 믿음
- 칭의는 죄 사함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구성되어 있다(‘기독교 강요’ 3.11.2).
- 우리에게는 선천적인 의가 없으므로 우리 밖에서 온 의, 즉 루터의 표현처럼 ‘낯선’ 의가 필요하다.
-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시고 하나님이 인정하신 의로 우리를 위하여 획득된 의이다.
- 성령께서는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손을 죄인들에게 수여하신다(요 1:12,13).
- 믿음의 손은 그리스도의 전가되는 의를 받는 손이다.
- 믿음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칭의에 공헌할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 믿음의 손은 아무거도 만들어 내지 않는다. 오직 받을 뿐이다.
-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도록 안으로 이끌어 줄 뿐 다른 방법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하지 않는다(‘기독교 강요’ 3.9.20).


iii) 로마 가톨릭교회의 칭의와 믿음
- 로마교회는 칭의가 죄인을 의롭다고 칭해주는 하나님의 선언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의롭게 만들어 주심으로써 성취되는 것이라고 교훈한다.
- 칭의와 성화를 혼합한다.
- 하나님의 의는 반드시 칭의 안에서 죄인 자신의 의로 지탱되어야만 할 어떤 것이 되어 버렸다.
- 그러나 ‘오직 믿음‘은 믿음에 무엇을 더하는 행위를 대적한다.


4.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 벤자민 워필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믿음이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것은 그 대상(예수 그리스도)으로부터 말미암기 때문이다. …따라서 믿음의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은 믿음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전능하신 구주에게만 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믿음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인 것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 쯔빙글리가 1523년에 저술한 ‘67개 조항’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오직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제3항).
 “누구든지 다른 잘못된 길을 추구하거나 제시하는 사람은 영혼의 살인자이며 탈취자이다”(제4항).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제19항).


 - 오늘날 포스트 모더니즘은 진리를 전적으로 다원적이고도 상대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그들은 어떤 분야의 지식이라도, 심지어 종교의 영역에서도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배타적이고도 독점적인 주장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저주와 같은 것이다.


i) 그리스도의 삼중직 - 4세기의 카이사리아의 유세비우스(Eusebius)로부터 내려온 견해
① 선지자이신 그리스도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1문은 그리스도를 가리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우리의 가장 으뜸되는 선지자와 교사가 되시어 우리의 구속에 관한 하나님의 감춰진 계획과 뜻을 우리에게 자세하게 계시하시는 분”


-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선지자가 오시기를 기다리라고 명령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


-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바로 그 선지자임을 말씀하셨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요 4: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요 4:26).


- 선지자로서 예수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 의도하고 목적하셨던 것을 계시하실 수 있는, 즉 ‘영세 전부터’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의 글’의 참된 의미를 가르치고 나타내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롬 16:25,26).


② 제사장이신 그리스도
-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이 되시어 그의 몸을 드린 단번의 제사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또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계속해서 하나님께 중보하신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1문).
-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예수께서는 두 가지 일을 하셨다. 계명을 향한 능동적 순종과 죄를 속하시는 죽음의 수동적 순종이다.
- 예수께서는 적극적이고도 완전하게 계명에 순종하셨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요 8:46)


- 예수께서는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셨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인데 이 사망은 신체적이며 영적이며 영원한 사망이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 천국에서는 예수께서 우리의 중보자와 보혜사로 역사하신다(롬 8:34, 요일 2:1).


③ 왕이신 그리스도
-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하신 왕이 되어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또 우리를 변호하고 보존하시어 그 구속을 확보’하실 것이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1문).
- 우리는 그리스도의 법 아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성장을 소망하고 기대할 수 있다.


 당신은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1-23)라는 말씀을 이해하고 있는가?


5. 오직 하나님께 영광


1) 하나님의 목적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 영광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카보드(kabod)’는 ‘무겁다’라는 어근을 지닌 단어의 파생어이다.
- 따라서 히브리 사상은 영광을 ‘하나님 안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그분의 본질적인 가치나 값’이라고 평가한다.
- 영광이라는 뜻의 헬라어 ‘독사(doxa)’는 본래 ‘견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따라서 헬라 사상은 영광을 ‘그들이 보는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하심에 있는 가치나 값에 대한 지성적이고도 도덕적인 반응’이라고 말한다.


- 하나님의 속성의 도덕적 탁월성은 그분의 창조와 섭리와 구속 행위의 위대함과 가치를 통해 빛난다(사 44:23, 요 12:28, 13:31,32).
- 예배자는 오직 찬미와 감사와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요 17:4, 21:19, 롬 4:20, 15:6,9, 벧전 4:12-16).
- 이사야서 6장 3절에서 스랍은 이렇게 선포한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 악인의 정죄를 토해서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 하나님의 궁극적인 영광은 온 세상이 그분의 구원적 은혜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2)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3) 인간의 제일되는 기쁨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다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제1문답).


-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종교 개혁의 핵심이다.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영광에 뭔가 부족하거나 결핍되어 있어 그것을 채우는 것도 아니며 영광 돌리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더 영광스러워 지는 것도 아니다.
- 송영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분이 왜 인간의 찬미와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지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드높이는 것이다.
- 조나단 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위대했던 순간은 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신경 썼던 순간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과의 교제에 이끌리어 그분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목도하던 순간이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충만해질 수만 있다면 내 자신이 텅 비고 없어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 바울은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i) 로마서 11장 36절, 바울의 송영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 ‘나오고’는 하나님께서 만물의 근원이심을 제시한다(요 1:3).
- ‘말미암고’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만물을 지탱하시는 분임을 의미한다(골 1:17).
- ‘돌아감이라’는 하나님께서 목적이심을 의미한다. 만물이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 칼빈의 주석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시다. 그분은 창조주이시다. 그분은 만물이 기동하며 살아가는 동인이 되시며, 그 존재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방편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모든 영광이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마지막 목적이 되신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이라는 모토는 칼빈주의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소망이다. 참된 칼빈주의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 목적과 기쁨을 찾는다.









선교사 이야기(오대원,


예수전도단(YWAM) 창설자 오대원 목사




영화 '올드보이'(Old Boy)를 아는가?
주인공 이름이  '오대수'이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면서 살자'라는 뜻이다.
 
한국 '예수전도단(YWAM)' 설립자를 알고 있는가?
그의 이름은 오대원(David E. Ross)이다.
성은 로스(Ross)와 가장 유사한 발음이 '오'씨라서, 함께 살던 한옥집 주인인 오복균 장로의 ‘오’씨가 됐다.
이름은 대원군의 ‘대원’으로 지었다.
대원군은 나라를 아끼고 사랑했으나,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한 인물이었다.
대원군같이 한국을 사랑하고, 대원군과는 반대로 '기독교를 잘 전파하라'는 뜻의 역설적인 이름이다.
 
오 목사는 한국말을 한국인 이상으로 잘한다.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 물었다.
 
"저는 오 목사님처럼 한국말을 잘하는 백인은 처음 보았습니다. 어떻게 한국말을 잘하게 되었습니까?"
 
▲ 오대원 선교사는 한국에 도착 후 영락교회에서 대학생 영어성경공부를 인도했다.
1961년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오대원 선교사.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사랑을 나누고 싶듯이, 한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니까 그들과 마음껏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인을 사랑하게 되니 한국어도 빨리 배울 수 있었습니다. "
 
오목사는 한국 선교사로 파송 받기 전에 한국어를 미리 배우지 않았다.
사투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억양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도착하여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처음 배웠다.
 
한국어를 빨리 익히기 위해 종로 거리를 누비며 대화를 시도했다.
빵집과 다방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생활 한국어를 익혔다.
뿐만 아니라 부인인 엘렌과도 한국어로 대화했다.
인터뷰 내내 오 목사는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함은 물론이고, 우리말에 담겨 있는 정서를 느끼면서 감정을 싣고 이야기를 하였다.
 
언어란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 이상으로, 언어 안에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다.

▲ 시드니예수전도단 DTS 개강예배에 참석한 오대원 목사와 부인 엘렌 사모.  

3주간 배를 타고 한국으로 - 1961년
 
오 목사가 선교사의 소명을 갖게 된 것은 오래 전 일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53년 여름, 청소년수련회에 참석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
그때 ‘다른 민족을 위해 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열방에 나가 예수님을 전하고 싶은 뜨거운 소망이 일어났다.
또 그리스도의 구원이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열방의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선교사로 살기로 결심했다.
 
미국 테네시 주 킹대학에 다닐 때 ‘선교동호회’(Missionary Society)에 가입했다.
선교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선교지에 대해 연구하고 중보기도하는 모임이었다.
이곳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엘렌 역시 선교사로 소명을 받은 후 모임에 참여했다.
엘렌의 부친은 목사이자 성서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였다.
독실한 기독교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따뜻했고 활발한 성격이었다.
 
"난 어린시절 부친이 돌아가신 후 내향적인 아이가 됐다.
어머니는 바느질로 자녀들을 꿋꿋하게 양육하셨고 늘 내 편이 돼주셨다.
내가 선교사로 결단했을 때 말리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하셨다."
 
부인인 엘렌과 오 목사는 가정환경과 성격이 달랐지만 선교에 대한 동일한 관심으로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치된 마음을 갖고 선교의 비전을 공유하며 사랑을 키워나갔다.
졸업 후 함께 버지니아 주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 진학해 한 학기 다닌 후 1957년 한 가정을 이루었다.
  
▲ 오대원 목사 팔순 오찬 모임에 참석한 홍관표 목사 부부,
오대원 목사 부부, 하태식 목사 부부(오른쪽부터)  

신학교로 진학하면서 대학선교에 마음을 두게 된 둘은 선교지로 대학선교를 함께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하며 흔들림 없이 선교사로서의 길을 준비했다.
 
그러다 한국인 선교사들을 만나는 기회가 주어졌다.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 University Bible Fellowship) 배사라,
대전지역의 농촌 선교사로 헌신했던 R K 로빈슨 목사와의 만남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한국 교환학생들도 만나게 되면서 한국을 관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한국과 관련된 여러 사람을 만나고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선교지를 한국으로 결정했다.
 
부부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윌리엄 앤 메리 대학교에서 일 년간 캠퍼스 사역을 하였다.
곧 바로 한국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총회에서는 일 년간의 선교사 준비기간을 요구했기에 60∼61년 교회와 대학 캠퍼스에서 사역했다.
윌리엄 앤 메리 대학은 배움과 열정이 있는 열려있는 학교였다.
그곳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수양회를 열어 말씀을 전했다.
한 장로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기도 하였지만, 주로 대학교 선교에 힘썼다.

▲ 본지 영문편집위원 김환기 사관이 오대원 목사와 인터뷰를 마친 후 그레노리에 위치한
시드니 예수전도단 베이스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예수전도단 설립 - 1972년

한국 예수전도단은 1961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파송된 오대원(David E. Ross) 목사에 의해 1972년에 설립되었다.
오대원 목사의 사역은 젊은 층, 특별히 대학생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대학생 선교는 1967년 서울공대 기독학생회 사역으로 시작되었다.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 속에서 오히려 말씀으로 돌아가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그 뜨거운 열정을 주께 돌이키면 좋겠다는 비전을 품었다.
 
예수 전도단의 출발은 '화요기도모임'을 시작하였다.
한동안 매주 화요일 광화문에 있는 '구세군회관'을 빌려 집회를 가졌다.
 
한국에서 '예수전도단'이 활발하게 활동할 때 YWAM(Youth With a Mission)은 국제적인 단체로 성장하여 한국에 지부를 설립할 가능성을 타진했다.
1973년에 YWAM이 '예수전도단'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서 단기선교를 왔다.
YWAM은 오 목사에게 통합을 제안하였지만 거부를 했다.
만약 미국에서 선교사들이 대량으로 밀려오면 한국인 리더를 양육하는데 장애가 있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오 목사는 YWAM과 교류는 하였지만 통합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1979년 안식년 중에 오 목사 부부는 YWAM의 열방대학에서 예수제자훈련학교(DTS, Disciple- ship Training School) 교육 받을 기회가 있었다.
이 때 오 목사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이미 세계적인 베이스 캠프를 가지고 있는 YWAM과 통합을 한다면, 한국의 젊은이들을 세계로 파송할 수 있는 비전을 갖게 된다.
 
인터뷰 중에 진정으로 오 목사는 한국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통합의 거부도, 통합의 결단도 자기중심이 아닌 한국인 중심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는 1979년 9월 28일 예수전도단 사역을 YWAM과 연합하기로 결심하였고,
이에 따라 1979년 말에는 남장로교 선교사 직분을 사임하였다.

1980년 초 태국 치앙마이 봄 선교대회에서 통합이 이루어졌고, 오대원 목사가 한국 대표로 임명되었다.
정식 한국어 이름은 '예수전도단'으로, 영어 이름은 YWAM Korea로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

▲ 탈북자들은 통일한국을 대비한 마중물과 같은 사람들이다라고 강조하는 오대원 목사.

예수전도단과 YWAM의 통합 - 1980년
 
'To Know God and Make Him known'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알리자)'
YWAM의 모토이다.
YWAM은 1960년 설립된 국제적인 선교단체이다.
 
창립자 로렌 커닝햄 목사는 자신이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정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큰 파도와 같은 물결이 전 세계의 대륙을 덮은 환상을 보여주셨다.
그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어나서 큰 파도와 같이 전 세계의 각 나라로 복음을 들고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비전을 가지게 되었다.
 
YWAM은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된 모든 세대들을 일으켜 복음을 열방에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며 파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적이고도 초교파적인 선교단체이다.
예수전도단은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서 주님께 예배하고 순종하는 것은 물론, 그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며 나아가 전 세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열방을 제자 삼는 데 부름 받았다.
 
국제YWAM과의 연합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열방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과 도전을 받은 것이다.
국내라는 지역적 한계에서 벗어나 해외로 나갈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갖게 됐다.
 
예수전도단은 최재선 선교사를 처음 해외에 파송하면서 열방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국제 YW AM과 차이점이 있다면, 전도단은 단기보다는 장기 선교사를 기르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이후 예수전도단은 예수제자훈련학교(DTS), 대학생제자훈련학교(UDTS), 성경연구학교(SBS) 등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성장해 갔다.
 
오늘날 YWAM은 전 세계 180개 국에 1천여 개의 지부를 두고 18,000여 명의 전임사역자들이 함께 사역하는 단체로 발전하였으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오직 그리스도의 지상명령 성취를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리는 세계선교를 위한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별히 열방대학을 근간으로 예수제자훈련학교, 선교사훈련학교, 성경연구학교 등의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교육, 훈련하여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돕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다양한 은사와 방법을 사용하여 8개의 사회 각 영역(8 Mind Molders:정치, 경제, 교육, 매스미디어, 예술, 종교, 과학기술, 가정)과 9개의 최전방 개척지(9 Front- iers:이슬람권, 힌두권, 불교권, 공산권,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 25세 미만의 사람들, 인구 백만 이상의 대도시들, 미전도 종족,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등의 모든 영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 팔순 축하 모임에서 오대원 목사 부부    

뜻하지 않은 한국 추방 - 1986년
 
88서울올림픽을 앞둔 정부는 해외 선교사들이 거리에 많이 다니면 후진국가로 보인다며 선교사들의 활동을 원치 않았다.
급기야 정부는 오 목사에게 한국을 떠날 것을 명령했다.
61년 이 땅에 발을 디딘 오 목사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에 머물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정부의 추방명령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1986년 오대원 목사가 추방을 당할 때 '예수전도단'은 와해의 위기까지 오게 되었다.
YWAM의 관계자들은 미대사관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진정서를 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떠나는 오 목사뿐 아니라 남아 있는 예수전도단도 '위기'였다.
 
그렇다, 그것은 '위험'일 수도 있고 '기회'일 수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서야 하나님께서 예수전도단에게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엄마가 아이의 젖을 떼는 기간과 같았다.
오대원 목사만 의지했던 예수전도단은 이제 오 목사 없이 홀로서기 시작했다.
오 목사는 추방 후 몇 년을 아파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추방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오 목사는 이 사건을 후에 이렇게 간증했다.
 
"이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알았습니다.
한국에서 우리를 떠나게 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까지 주님을 위해서 너무 바쁘게 일해 왔습니다.
그 결과 ‘주님과 함께 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일하는 시간은 주님의 임재를 기뻐하고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기 많은 사람들이 “당신은 너무나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난 선교사로서 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하는 동안 난 약간의 칭찬을 받는 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다른 사람의 유익보다 내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나를 한국 밖으로 옮기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하셨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할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선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 줄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침묵해야 들리는 소리가 있고, 눈을 감아야 보이는 세계가 있으며, 떠나야 품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오목사는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만 품었지만, 추방됨으로 '한반도'를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안디옥 국제선교 훈련원(AIIM) - 1994년
 
오 목사는 1994년 시애틀에 ‘안디옥선교훈련원’(AIIM: Antioch Institute for International Ministries)을 개원했다.
훈련원은 국제 YWAM 소속단체로 선교 훈련, 북한연구학교, 캠퍼스 사역에 중점을 두고 있다.
훈련원은 선교사를 훈련하는 ‘세계선교 센터’, 선교사와 교회 봉사자들이 재충전하는 ‘희년 쇄신 센터’, 북한 선교를 위한 ‘새 코리아 센터’로 구성됐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도전하며, 그리스도인들을 훈련하여 열방을 향한 부름에 순종하며 살게 하고, 교회를 동원하여 영육간의 잃어버린 자를 찾게 하며, 선교사와 다민족 공동체의 예배와 기도를 돕는 것이다.
 
오 목사는 ‘안디옥선교훈련원’ 설립 목적을 4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선교센터의 중심사역은 4가지가 있다.

첫째 북한선교사역,
둘째로 선교사 모집과 이들을 훈련시키는 사역,
셋째로 장기 선교사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사역,
넷째 대학생 선교 및 구제사역 등이다.
 
특별히 그는 한반도의 결렬된 틈 사이에 들어가 중보하며 남과 북이 함께 변화되어 새로운 하나의 코리아를 만들자는 ‘뉴코리아’(New Korea) 운동을 펼치며, 한국과 해외에서 통일관련 캠프와 훈련학교(NKSS), 세미나(NK seminar) 등을 열고 있다.
 
원래 NKSS(North Korea Study School)는 '북한연구학교'의 약자였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뉴 코리아 섬김학교(New Korea Servant School)로 의미를 확장시켰다.
‘뉴코리아’라고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강력한 힘을 갖고 한국으로부터 세계 모든 국가에 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더 남과 북에 있는 백성들이 합쳐지도록,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한반도에서 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오 목사는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도 유별나다.
"남북한 통일을 이루는 하나의 열쇠는 북에서 내려온 2만 7천여 명의 탈북주민입니다.
북에서 남으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내려 보내신 하나님의 커다란 목적은 무엇일까?
인간적인 해답은 그들이 박해 때문에 내려왔거나 북에 있는 그들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남과 북의 사람들이 다시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북에서 남으로 보내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 탈북자들은 통일한국을 대비한 '마중물'과 같은 사람들이다.

▲ 팔순 축하 케익 촛불을 끄는 오대원 목사 부부  
 
모세를 부른 나이 - 2015년
 
오 목사는 1935년 생으로 모세가 소명 받을 때의 나이와 같다.
80세인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고 40년을 더 살았다.
시편 150편 중 모세가 쓴 90편 10절을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다.
자신은 120세까지 살았으면서, 왜 후대 사람에게는 이런 가혹한(?)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 목사의 ‘팔순 감사예배’가 시드니예수전도단 318 베이스에서 열렸다.
이날 설교를 맡은 홍관표 목사는 사도행전 20:17-20절의 말씀을 의지하여, 오대원 목사의 80년 사역을 사도 바울의 사역과 비교하여 말씀을 전했다. 
 
"바울이 '겸손, 눈물, 인내'로 사역한 것처럼 오 목사님도 그렇게 사역하셨습니다."

언급한 세 가지 덕목 중에서 겸손이 오 목사님에게 가장 적절한 '단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입니다.
 
그를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그는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식사를 하면서 홍 목사는 오 목사에게 90세 생일도 본인이 설교를 해야 한다며 본문과 제목을 미리 알려 주었다.
딤후 4:7절 ‘의의 면류관’이다.
이에 오 목사도 질세라 “저보다 4살 연배인 홍 목사님의 90세 생신 때 제가 먼저 설교를 해야죠”라고 웃으며 화답했다.
 
오대원 목사를 소개할 때 사용하는 많은 미사여구가 있지만, 그와 인터뷰하며 느꼈던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대신하며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그는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주님의 가슴으로 세상을 품어, 주님의 손으로 세상을 돕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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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원 선교사 -예수전도단 설립자 [역경의 열매] 국민일보 2010.7.4


[역경의 열매] 오대원 (1) 50년 전 태평양 건너 한국에 지금도 그 설렘에 가슴 떨려 /  입력 : 2010-07-04 09:51

1961년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발한 화물선 초타우(Choctaw)는 20일이 넘는 긴 항해 중이었다.
낡고 오래된 화물선은 수리를 위해 태평양 한 가운데 이틀 동안 정박해야 했다.
그 시간동안 광대하게 펼쳐진 태평양을 응시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육지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바다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있는 이곳이 어디쯤일까?”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우린 아직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내 엘렌과 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파송받아 한국으로 가는 중이었다.
우린 하나의 문화를 떠나서 다른 문화권으로 들어가기 전, 잠시 여백의 시간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여백은 하나님을 찾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통해 선교에 대한 소명을 재확인했고, 인생과 선교에서 ‘여백(Space)’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사람들에게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여백의 시간을 가지세요”라고 강조하곤 한다.
태평양 한가운데서 가진 여백의 시간 속에서 선교의 핵심은 ‘하나님을 좀 더 진실 되게 만나기 위해 구하는 과정’이란 것을 알게 됐다.
내 안에 내(자아)가 너무 많으면 하나님이 계실 곳이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도록 우린 자신을 비워내야 한다.

당시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너무도 분명하게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한국이라고 말씀하셨다.
처음 희망했던 선교지는 무슬림 국가 이란이었지만 당시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우리가 선교지를 선택해야 할 시기인 1960년, 한국에서 4·19혁명이 일어났다.
세계 각국이 한국 대학생들의 모습에 주목했다.
미국 신문 1면은 불의에 항거하는 한국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한국 땅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한국 대학생들이 나라를 위해 그토록 과감하게 일어설 수 있다면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한국을 선교지로 마음에 품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기도는 한국장로교 총회의 초청과 맞물려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되는 결실을 맺었다.
아내는 25세였고 나는 26세였다.

3주 동안의 항해는 흥분되고 즐거운 여행길이었다.
바다는 너무 고요했고 우리는 멀미도 하지 않았고 피곤하지 않았다.
배에는 보성여고 교장선생님이셨던 김종순 장로와 2명의 가톨릭 수녀, 일본인 부부, 한국으로 가는 세 명의 다른 선교사들이 있었다.
주일엔 그들과 선원들이 함께하는 예배를 인도했다.

긴 항해 끝에 배가 인천항에 도착했는데 거센 파도 때문에 하선을 할 수 없었다.
새로운 땅을 밟기 위해 하루를 더 기다렸다.
우리의 마음속엔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컸다.
한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하나님. 저희를 이 아름다운 한국 땅에 보내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나라에서 한국인의 심장소리를 듣게 하시고 문화를 배우게 하소서.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게 하소서.”

그날로부터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한국에 보내주신 놀라운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감사드리고 있다.

◇오대원 목사(David E Ross)=1960년 버지니아 주 유니온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남장로교 소속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었다.
1972년 예수전도단을 설립하고 1980년에 YWAM(Youth With A Mission)과 연합해 국내외적으로 사역을 감당했다.
1986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한인 2세들을 위한 안디옥 커넥션사역과 북한 선교를 하고 있다

[역경의 열매] 오대원 (2) 대학 선교동호회서 아내 엘렌 만나 /  입력 : 2010-07-05 17:28

내가 선교사의 소명을 갖게 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53년 여름, 청소년수련회에 참석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 그때 ‘다른 민족을 위해 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열방에 나가 예수님을 전하고 싶은 뜨거운 소망이 일어났다. 또 그리스도의 구원이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열방의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선교사로 살기로 결심했다. 선교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고 선교사를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런 마음이 들게 하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비롭다.

미국 테네시 주 킹대학에 다닐 때 ‘선교동호회(Missionary Society)’에 가입했다. 선교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선교지에 대해 연구하고 중보기도하는 모임이었다. 이곳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엘렌 역시 선교사로 소명을 받은 후 모임에 참여했다. 엘렌의 부친은 목사이자 성서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였다. 독실한 기독교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따뜻했고 활발한 성격이었다. 난 어린시절 부친이 돌아가신 후 내향적인 아이가 됐다. 어머니는 바느질로 자녀들을 꿋꿋하게 양육하셨고 늘 내 편이 돼주셨다. 내가 선교사로 결단했을 때 말리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하셨다.

엘렌과 난 가정환경과 성격이 달랐지만 선교에 대한 동일한 관심으로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치된 마음을 갖고 선교의 비전을 공유하며 사랑을 키워나갔다. 졸업 후 함께 버지니아 주에 있는 유니온신학교에 진학해 한 학기 다닌 후 1957년 한 가정을 이루었다.

신학교로 진학하면서 대학선교에 마음을 두게 된 우린 선교지로 대학선교를 함께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하며 흔들림 없이 선교사로서의 길을 준비했다. 그러자 한국인 선교사들을 만나는 기회가 주어졌다. UBF 배사라(사라 베리), 대전지역의 농촌 선교사로 헌신했던 R K 로빈슨 목사와의 만남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한국 교환학생들도 만나게 되면서 한국을 관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한국과 관련된 여러 사람을 만나고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선교지를 한국으로 결정했다.

우리 부부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윌리엄 앤 메리 대학교에서 1년간 캠퍼스 사역을 하였다. 곧 바로 한국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총회에서는 1년간의 선교사 준비기간을 요구했기에 60∼61년 교회와 대학 캠퍼스에서 사역했다. 윌리엄 앤 메리 대학은 배움과 열정이 있는 열려있는 학교였다. 그곳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수양회를 열어 말씀을 전했다. 한 장로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기도 하였지만, 주로 대학교 선교에 힘썼다.

한국 선교사로 파송되기 전, 일부러 한국어는 미리 배우지 않았다. 사투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억양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처음 배웠다. 한국어를 빨리 익히기 위해 종로 거리를 누비며 대화를 시도했다. 빵집과 다방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생활 한국어를 익혔다. 엘렌과 난 한국어를 빨리 배우기 위해 둘이 있을 때도 한국어로 대화했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한국말을 잘하게 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사랑을 나누고 싶듯이, 한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니까 그들과 마음껏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국인을 사랑하게 되니 한국어도 빨리 배울 수 있었다.

[역경의 열매] 오대원 (3) 기독인 박해 대원군에서 이름 따와 /  입력 : 2010-07-06 17:31

한국에 도착한 후 서울 연희동의 언더우드 선교사 집에 짐을 풀었다.
다른 외국인 선교사들과 함께 3개월 정도 머물렀다.
그러나 하루라도 빨리 한국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싶었다.
서울 회현동 한옥집에 방 하나를 빌려 이사했다.
아름다운 한국인 가정을 만날 수 있었다.

나의 한국 이름 오대원은 그 한옥집 주인이던 오복균 장로님이 지어주셨다.
로스와 가장 유사한 발음이면서 오 장로의 성씨인 ‘오’씨가 됐다.
이름은 흥선대원군에서 따온 ‘대원’으로 지었다.
대원군은 굉장히 나라를 아끼고 사랑했으나 기독교인을 심하게 박해한 인물이었다.
역설적인 의미로 대원군과 반대로 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엘렌은 오성애로 지었다.

엘렌과 난 처음부터 많은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우리의 첫 임무는 새로운 ‘조국’을 배우는 것이었다.
많은 고민을 했다.
한국 사람들과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론은 ‘파도 밑으로 온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오래전 하와이를 방문했을 때 해변에서 파도 타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높은 파도를 겁내지 않고 온몸을 던져 파도를 탔다.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도했다. 문제는 내가 파도 타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보드 위에 꼿꼿이 서 파도를 만나자 거꾸로 바다에 빠져버렸다. 한 친구가 다가와 “파도 밑으로 다이빙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몸을 낮추고 넘실거리는 파도 밑으로 몸을 던지자 신기하게도 물에 빠지지 않고 평화롭게 파도를 탈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나라 한국에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잠수해라” “사람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라” “섬기려는 사람들 밑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우리의 모토였다.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누비며 한국의 생활상과 문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외국인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신기한 듯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당시 한국 풍경은 오래된 사진첩을 보는 듯했다. 한 손이 없는 상이군인을 보며 전쟁의 상흔을 느낄 수 있었고, 귀엽게 생긴 시발택시와 무지개가 그려진 버스가 기억에 남았다.

영락교회에 다니며 대학생 영어 성경공부를 4년 동안 인도했고 이때 담임목사이셨던 한경직 목사님과도 교제를 나누었다. 어느 정도 한국어를 익힌 후 우린 남장로교 선교부의 지시로 전라도 광주에 가서 2년 동안 인턴십을 했다. 광주에서의 2년은 한국인들의 심성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당시 배사라 선교사가 사역하는 UBF에서 함께 사역했다. 우리는 광주에 있는 20개 고등학교에 고등부를 세웠고 캠퍼스 리더를 모아 귀납적 성경공부를 가르쳤다. 토요일 전체 모임엔 수백명의 학생이 모였다. 일주일에 4번은 고등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러 선교회 사무실에 왔다. 신발장에 80∼100켤레의 검정 고무신이 꽉 찼다.

우리 집에선 매일 오전 6시 영어 성경공부가 열렸다. 대학교수, 고교 교사 등 20∼30명이 모였다. 전남대에서 동양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들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영어를 배우려고 찾아왔다.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

모임을 마칠 때 돌아가면서 영어로 기도했는데 한번은 내가 깜박 잠이 들었다. 깜짝 놀라 깨어 보니 방에 아무도 없었다. 피곤해서 잠이 든 내가 깰까봐 사람들이 소리 없이 돌아간 것이다. 또 한번은 추운 겨울, 눈이 오는 날이었다. 늦잠을 잔 내가 후다닥 나가 문을 열어 제치니 30여명이 눈을 맞으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벨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면 될 텐데, 내가 깰까봐 그냥 열어줄 때까지 기다린 것이었다. 미숙한 선교사를 이렇게 멋있는 분들이 양육해 준 것이다. 그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역경의 열매] 오대원 (4) 대학생 선교하며 조국재건 열정 느껴 / 입력 : 2010-07-07 17:52

 

하나님은 작은 권리를 포기하면 큰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제일 싫어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바꿔 주시는 분이시다. 나에게 권리 포기는 음식부터 시작됐다. 지금은 한국음식을 너무 좋아하지만 처음엔 입에 맞지 않아 금식하는 날이 많았다. 이런 내가 김치찌개를 제일 좋아하게 된 사연이 있다.

 

전주에서 여름 대학생 수련회가 10일 동안 열렸다. 첫날 저녁식사로 김치찌개가 나왔다. 맵고 뜨거워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오늘 금식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사정을 모르는 학생들은 나를 경건하고 거룩하게 바라보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김치찌개가 나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하나님께 “하나님 너무 배가 고픈데 어떻게 합니까”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왜 그렇게 어리석은 질문을 하느냐? 그냥 먹어라”고 하셨다. 그래서 먹을 권리를 포기하고 힘들어도 그냥 먹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음식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자 억눌림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작은 것에서 해방되니 다른 것에도 자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작은 것이 크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분명하다면 권리를 포기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음식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을 즐기며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갔다. 고향 생각도 잘 안 날 정도였다.

광주에서 선교하던 우리의 마음은 서울에 많이 가 있었다. 하루 빨리 서울에 가서 대학생선교를 하길 원했다. 그 무렵 김덕영 권사님이 서울 공대에서 함께 기독학생회를 이끌자고 제안했다. 1967년, 우린 서울에서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학생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김 권사님은 독립문 부근에서 사업을 크게 해서 많은 교회를 설립한 분으로 청량리 인근의 6개 대학(서울공대, 서울여대, 육군사관학교, 시립대, 경희대, 외대)에 기독학생회를 설립했다.

서울공대 기독학생회는 다른 학생단체와 달리 독립적이었다. 68년부터 서울공대에서 매주 설교하며 성경공부 인도와 기숙사 심방을 했다. 기숙사의 사랑방을 커피숍으로 만들어 학생들과 교제했다. 우리는 대학교 건너편에 있는 공릉동에 살면서 캠퍼스 내 학생들에게 선교했다. 학생들은 기숙사보다 우리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곧 학생들이 먹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함께 먹는다는 것이 기독교 공동체의 핵심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또 기독학생들이 전도와 조국의 재건에 대한 큰 소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함께 사역한 김 권사님은 성령 충만한 분이었다. 그분은 “나는 엘리야가 승천 후, 갑절로 성령의 능력을 입을 엘리사가 후임으로 오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로스 당신이 엘리사처럼 되기를 사모하며 기도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당시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분이 돌아가신 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난 김 권사님이 돌아가신 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심정이었다. 학생들을 격려하고 위로해야 했는데 별로 말을 하지 않고 지내게 되었다. 단지 “수고 한다” “평안이 있길 바란다”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한다”는 말을 했지만 별로 파워가 느껴지지 않았다. 좌절감을 많이 느끼던 시기는 계속됐다.

[역경의 열매] 오대원 (5) 성령세례 받고 신앙생활 결실 맺어 / 입력 : 2010-07-08 17:27

서울대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는 학생들은 대부분 시골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방학엔 집으로 돌아갔다. 엘렌과 난 여름방학이면 몇몇 학생들과 그들의 시골집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국문화를 배우고 그들을 좀 더 알기 위해서였다. 즐거운 기억이 많았지만 경상도 지역을 여행하는 동안 한 학생이 갑자기 마귀에 사로잡힌 사건도 있었다.

내가 성령세례를 받기 전이었기 때문에 사탄과 마귀의 능력에 대한 기독인의 권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학생은 부산의 바닷가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경찰관과 싸움을 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주었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엘렌과 난 인간적인 사랑과 노력만 해줄 수 있었다. 성령사역이 필요했다는 것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모든 크리스천과 특히 지도자들에게 성령세례 받기를 강권한다.

서울대 공대에서 보냈던 사역의 시간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우리를 강하게 해주는 듯했다. 그러나 하루 15시간 이상 선교활동을 했지만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곤고함이 있었다. 1971년, 한국에 온 지 10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었다. 변화를 위한 ‘여백’의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1년간 미국에서 재충전을 하고 오기로 했다.

목사나 선교사가 일이 잘 안 될 때 하나님께 먼저 구하기보다 공부하기로 쉽게 결정하곤 한다. 공부를 더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에서다. 나 역시 안식년 동안 선교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게 물어오셨다. “너는 누구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느냐?” 그 말씀에 순종해 결국 공부는 내려놓게 됐다.

엘렌과 나는 72년 1월 같은 날 동시에 성령세례를 받았다. 10년 동안 메마른 신앙생활을 한 후에 주 안에서 40년 동안 열매 맺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호 14:8)고 말씀하셨다. 성령세례는 모든 열매를 만들어 내시는 주님과 친밀하게 되는 문을 열어 주셨다.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학의 ‘예수운동(Jesus Movement)’ 모임에 엘렌과 참석했다. ‘예수운동’은 이름 그대로 ‘오직 예수!’라는 원초적인 신앙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부흥운동이었다. 장로교에서 성장한 난 교회에서는 배운 일이 없었던 ‘성령세례’라는 생소한 용어를 그때 접하게 됐다.

모임의 학생들은 우리에게 “언제든지 필요하면 기도를 부탁하라”고 했지만 난 괜찮다고 했다. 사실 거짓말이었다. 10년 동안 선교를 했지만 결실이 없어 얼마나 막막했는지 말하기 부끄러웠다. 그러나 당시 50여권의 성령에 대한 책을 읽고 성경을 다시 읽으며 성령을 사모하기 시작했다.

20명 정도 모여서 성경을 읽었는데 학생들은 마치 연인한테 편지를 읽는 듯 신중하고 열정적으로 읽었다. 모임에서 병 고침의 기적도 많이 일어났다. 다리 길이가 다른 사람의 다리가 신기하게 똑바로 맞춰지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결국 그 모임에서 우린 기도받기 위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순간 온몸이 뜨거워졌다. 목자가 어린 양을 안은 것처럼 껴안아주는 듯했다. 그리고 “너는 나의 것이다, 방해되는 것 모든 것을 제거하고 널 쓰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찬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 때 누군가가 “너의 집은 찬양의 집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것은 후에 그대로 이루어졌다. 우리 집이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의 시작이 되는 것으로 성취됐다.

[역경의 열매] 오대원 (6) 성령세례 후 인생·사역 방향 대전환 / 입력 : 2010-07-11 17:46

‘예수운동’ 모임에서 성령세례를 받은 후 아내와 나에게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그 첫 번째가 자유함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억눌린 자아의 해방감이었다. 그동안 우리의 사역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경력의 사역’이었다면 이젠 성령님이 인도하는 ‘섬김의 사역’으로 변화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린 모든 인간적인 힘과 지혜를 다해 선교사로 일했다. 우리는 열심히 준비했고, 오랜 시간 일했으며, 주의 깊게 계획을 세웠고, 학생들의 얘기를 관심 있게 들어주었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았다. 이런 인간적인 노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성령세례를 받은 후 성령님이 인도하는 곳으로, 그가 선택하는 방식대로 따라가자 우리는 두려움과 의심에서 자유로워졌다. 우리는 다시 태어났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시작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 5:22∼23)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점차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닮아갔다. 우리는 방언으로 말하고 기도하며 노래하는 축복을 받았다. 방언의 은사는 성령의 다른 은사들이 우리 삶에서 활동하도록 문을 열어주는 은사라고 믿는다. 방언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주님과 더 친밀해질 수 있다. 우린 방언기도를 통해 주님과 영적으로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선교사역의 방향이었다. 성령세례를 받은 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교사로서 한국인을 섬길 뿐 아니라 한국인들이 열방으로 나가는 선교사가 되도록 훈련해야 한다는 마음을 심어주셨다.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는 새로운 곳에 대한 흥분과 모험이 있었다면 ‘이제 이 나라는 내 나라, 내 땅이며 이들은 나의 백성’이라는 확실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선교사를 만드는 선교사가 되리라.” 1972년 6월, 안식년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사역의 주된 방향은 선교사를 훈련시켜서 타 민족들에게 파송하는 것으로 자리를 잡았다.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어 너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창 12:2)는 말씀처럼 한국인들이 복의 근원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맡겼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은 사실을 가장 먼저 나누고 싶었던 사람은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님이었다. 왜인지는 몰랐지만 우린 그와 나눠야만 한다고 느꼈다. 1961년에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지적인 능력과 예수님에 대한 열정에 감동을 받았었다. 그러나 당시 성령에 대한 그의 설교를 받아들일 준비는 돼 있지 않았다. 찬양할 때마다 손을 높이 드는 그의 모습이 장로교 목사의 눈에 이상하게 비춰지기도 했다. 당시 성령에 대해 내가 올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강원도 깊은 산속에 있는 예수원을 찾아갔다. 대 신부님을 만나서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우리가 성령체험을 한 것을 알고 계셨다. 그는 우리를 위해 지난 10년 동안 매일 기도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하나님께 로스 목사 부부를 성령으로 감동시켜서 차고 넘치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기도 가운데 당신들이 성령을 체험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대 신부님과 맺은 인연은 예수전도단을 설립한 이후에도 지속됐다. 대 신부님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예수전도단에 와서 강의를 해주셨고, 예수전도단은 전도학교를 예수원에서 한 달간 여는 등 두 단체는 지속적인 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대 신부님은 기꺼이 나의 멘토가 돼주셨다.

 

[역경의 열매] 오대원 (7) 성경공부 모임 발전 예수전도단으로 / 입력 : 2010-07-12 20:52

 

우리가 서울공대 기독학생회로 돌아간 1972년 10월, 계엄령이 내려 지방에 살던 학생들은 집으로 내려가고 그곳엔 다섯 명 가량의 학생만 남아있었다. 나라가 어수선한 시기였지만 그로 인해 젊은 지성들은 더 예배에 집중했다.

 

학생들은 서울공대 앞에 있던 우리 집에서 날마다 6시간 정도 기도와 찬양, 성경공부를 했다. 다섯 명의 학생은 모두 성령세례를 받았고 예배 중에 병 고침의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퍼지자 서울에 있는 다른 대학생들도 공릉동에 있는 우리 집에 모이기 시작했다. 10명에서 30명, 50명, 나중엔 100명의 학생들이 늘어났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등의 외국 찬양곡을 많이 불렀다. 당시 서울공대 학생이었던 김성수(현 총신대 교수)씨가 번안을, 현요한(현 장신대 교수)씨가 찬양인도를 은혜롭게 잘했다. 악기는 기타 하나였지만 찬양은 회중의 마음을 움직였다.

 

모임이 커지면서 서울대학교 연합기독학생회와도 관련을 맺었다. 집에는 데모하다 온 학생도 간혹 머물곤 해 형사들이 찾아와 모임을 감시하는 일도 있었다. 우린 집회에 참석하는 형사들을 오히려 환영하며 공개적으로 초청했다.

 

매주 화요일마다 집에서 드리던 예배가 교회에 알려지면서 이름이 필요했다. 예수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우린 예수원에서 ‘예수’를 따서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 전도하는 모임이란 의미를 포함해 ‘예수전도단’이라고 지었다. 1973년 예수전도단이라는 공식적인 이름이 선포됐다.

 

이후 예배 장소는 서울 연희동 외국인학교 내 수양관, 서울역 앞 여성절제회관을 거쳐 77년에는 명동 YWCA회관 강당으로 옮겨갔다. 명동시절엔 2000명가량이 모였다. 강당 의자는 450석뿐이어서 앞에는 돗자리를 깔고 앉았으며 복도와 뒤편까지 모두 꽉 찼다.

 

그때 왜 그렇게 많은 회중이 모였을까? 그것은 우리의 모임은 성령 충만한 젊은 평신도들의 지도력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한국이 세계 선교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열심히 기도하며 선교 열정을 불태웠다. 이후 모임에서 세계로 선교하러 가는 수많은 목사와 선교사들이 배출됐다.

 

사실 우리가 화요일에 모이는 이유는 수요예배와 금요철야가 있는 교회사역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 화요모임을 통해 예배와 기도, 말씀과 교제가 어우러진 현대적 예배가 시도되고 미국에서 들여온 복음성가가 예배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당시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찬양하는 모습은 예배 형식의 파격적인 혁명이었다.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모이고, 교회와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젊은 그리스도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 우린 방언으로 기도하고 찬양했다. 당시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 역시 파격적인 것이어서 많은 대형교회에서 공개적으로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에 가지 말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가 모일 때마다 예수님 영접, 성령세례, 치유가 행해졌는데 하나님께서는 매번 놀랍게 역사하셨다. 연희동에 있는 수양관에서는 매일 아침 6시 성경공부가 열렸는데 먼 지역에 사는 학생들도 찾아왔다. 우린 학생들과 함께 먹고 자며 공동체 생활을 했다. 문득 예전에 대천덕 신부님이 “성령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은 세계의 누구든지 한국에 오면 수양관을 찾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다.

 

[역경의 열매] 오대원 (8) 1973년 성탄전야 복음들고 첫 전도사역 / 입력 : 2010-07-13 17:39

 

예수전도단의 핵심은 찬양예배, 제자훈련과 선교훈련, 세계 선교다. 그러나 예수전도단 창립 초기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런 우리가 세상으로 나가 전도하게 된 계기가 있다.

 

1973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의미 있는 성탄전야를 보내고 싶었다. 이날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기로 했다. 나름대로 멋진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70여명이 모여 뜨겁게 기도했다. 그런데 기도 중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모임의 이름이 예수전도단이란 것을 기억하고 있니? 그런데 너희는 1년 중 가장 중요한 이 밤에 왜 증거하러 나가지 않지? 성탄전야에 수많은 젊은이가 모이는 곳으로 나가야지. 지금 당장 명동으로 나가라.”

 

가슴에서 쿵쾅거리는 북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래! 맞다. 그동안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했지만 전도하지 않았다. 이제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갈 때다. 난 학생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며 모두 명동으로 나가자고 말했다.

 

그때 모였던 70여명 모두 명동으로 나갔다. 성탄전야에 명동은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우린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명동에 있는 다방마다 들어갔다. 마담의 허락을 구해 테이블마다 전도를 했고, 허락하지 않을 때엔 차를 마시며 주위 사람들에게 전도했다. 학생들은 다방에서 아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지만 하나님께서 쑥스러움을 없애 주셔서 용감하게 전도했다. 그날 많은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놀라운 일은 전도를 하고 돌아와 성령세례를 구하기 시작했는데, 그날 전도했던 학생들은 모두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당시 학생들은 필사적으로 기도했다. 기독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힘이 필요하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기도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예수전도단은 73년 여름 전도학교를 처음 시작했다. 전도학교는 3주 동안 성경을 배우고 10일 동안 전도하러 다니는 방식이었다. 전도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지도를 펼쳐들고 어디로 가는지 하나님 음성을 듣고 일치가결해 마음이 일치되는 곳으로 전도하러 떠났다. 당시 외국에서 원조를 받지 않는 원칙을 세웠기에 돈이 없으면 돈이 없는 대로 떠났다. 하나님께서 충분히 다 채워주셨다.

 

74∼79년 예수전도단은 주로 말씀, 중보기도, 찬양, 전도에 초점을 두고 사역했다. 서울대, 이대, 고대, 연대, 중대, 수도여사대, 경희대, 외대, 숙대 등에서의 캠퍼스 전도 사역도 활발히 이뤄졌다. 캠퍼스 사역은 10명 정도의 전임 간사와 자원자들로 진행됐다. 이 무렵 직장인 전도학교도 열었다. 당시 사람들은 한 달 동안 우리 집에서 먹고 자면서 출근하고 새벽과 밤에 공부했다. 이 모임이 커져 나중에 장소를 경기도 역곡에 있는 새소망소년의 집으로 옮겼다.

 

예수전도단 선교 초기에 우린 매일 기적을 체험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고 치유를 받았으며 악한 영에서 자유함을 얻었다. 너무나 많은 간증거리가 있다. 그러나 우린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의 작은 일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령님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보통사람들을 통해서 사역하셨다.

 

[역경의 열매] 오대원 (9) 여름 전도여행 떠나 놀라운 은혜 체험 / 입력 : 2010-07-14 17:16

 

예수전도단은 여름방학이면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단기간의 전도여행을 떠났다. 떠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원칙과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지를 공부했다. 전도여행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성령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고 감사를 배웠다. 학생들과 쥐포와 오징어, 사이다를 나눠 먹으면서 전국 곳곳에서 전도하던 그 시간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돈다.

 

충북 음성에 갔을 때였다. 그 지역 한 목사님 댁을 방문했었는데 간식으로 번데기를 밥그릇에 가득 담아 내오셨다. 처음 먹는 것이었다. 모두가 나에게 기도하라고 했다. “단백질 높은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주여 무슨 독이라도 해가 되지 않도록 도우소서”라고 기도했다. 번데기 13마리를 맛있게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번데기를 하나씩 먹는다고 비웃었는데, 결국 그들은 새벽 4시에 설사가 나서 고생했고 난 무사했다. 그 일은 두고두고 우리들의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나는 “그러길래 기도하지 그랬냐?”고 학생들을 계속 놀려댔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끝이 없다. 태백 황지로 30여명이 전도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황지-광주-서울 코스로 전도여행 일정이 정해졌지만, 돈이 없어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우리가 황지역 시계탑에서 찬양할 때 양복 입은 한 신사가 다가왔다. 그는 “제가 원래 교회에 나가는데 요즘 교회를 못나간다”면서 봉투를 주었다. 열어보니 광주에서 서울까지 가고도 남을 돈이었다. 남은 돈을 교회에 헌금할 정도로 많았다.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느낄 수 있었던 일이었다.

 

예수전도단 선교 초기에는 수많은 이적과 기사들이 일어났다. 그 중 ‘귀신집’이 ‘예수집’으로 불리게 된 일을 잊을 수 없다. 전남 곡성에 10명이 전도여행을 갔을 때였다. 낮에는 가가호호를 방문해 전도하고 밤에는 교회에서 복음집회를 열었다. 그런데 마을엔 ‘귀신집’이라고 불리는 집이 있었다. 우린 며칠 동안 그 집 앞을 지나갔지만 아무도 전도하지 않았다. 그 집엔 이름모를 병을 시름시름 앓고 있는 노부부가 산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집에서 우리에게 기도를 요청해왔다. 노부부는 서울에서 예수전도단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당을 부르기로 한 것을 취소했다는 것이었다. 전도여행에 동행했던 서울대 황혜경 교수가 학생들에게 “함께 가자”했지만 학생들은 “우리 믿음이 약해 그곳에 가기가 두렵다”며 거부했다.

 

그러나 잠시 후,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세상의 어떤 악한 세력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 후 시골교회 청년들을 포함해 15명이 ‘귀신집’으로 갔다.

 

좁은 방에 모두 앉을 수 없어 누워계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주위를 둘러서서 찬양하며 기도했다. 우린 할머니 할아버지의 치유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20분가량 기도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린 다소 실망스런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3주 후 시골교회의 젊은 전도사로부터 편지가 왔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병이 깨끗하게 나으셔서 우리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계십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노부부는 그 후 돌아가실 때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에 열심히 다니셨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을 더 이상 ‘귀신집’으로 부르지 않고 ‘예수집’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역경의 열매] 오대원 (10) 예수전도단-국제 YWAM 연합 결정 /  입력 : 2010-07-15 20:37

 

 

1973년 9월, 국제 YWAM 선교봉사단이 한국을 방문했다. 로렌 커닝햄, 딘 셜만, 조이 도우슨 등을 비롯한 180명의 대규모 선교봉사단을 만났을 때 ‘우린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기도하고 찬양하며 전도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예수전도단원들은 한 달 동안 이들과 함께 서울, 광주, 부산, 대구 등 전국 각 도시에서 전도했다. 매일 오전에는 전체가 모여 도우슨과 커닝햄의 강의를 들으며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채웠다. 이들과 함께하며 단원들은 열방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배우게 됐다. ‘모든 열방을 제자 삼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깊이 헌신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이들은 한국에 지부를 세울 계획이었다. 도우슨은 나에게 “로스, 기도하는 가운데 한국 리더로 당신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한국지부를 맡아주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자리에서 잠시 기도한 후 승낙했지만 집으로 돌아와 엘렌과 다시 기도하는 중에 마음의 불안을 느꼈다. 선교봉사단이 떠나기 전날 밤, 그들을 찾아가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 모든 일은 한국 YWAM의 리더로 한국인을 키우고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알게 됐다. 만약 그들이 한국지부를 개척했다면 한국인의 리더십을 성장시킬 기회가 적었을 것이다. 또 언어와 문화적인 장벽은 물론 한국인의 성향에 적합한 훈련을 제공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나는 한국인을 리더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74년부터 2년여 동안 도우슨을 비롯한 국제 YWAM 리더들을 초청해 강의를 듣는 기회를 여러 번 가질 수 있었다. 당시 국제 YWAM의 모든 원칙, 즉 중보기도, 하나님 음성을 듣는 법,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등은 도우슨이 세운 것이었다. 그녀가 직접 영적 지도자 세미나를 인도하고 강의하는 열의를 보여 주었다.

 

79년 엘렌과 난 다시 안식년을 맞아 세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갔다. 우선 국제 YWAM 본부가 있는 하와이를 방문했고 보름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하와이 코나에서 인생의 갈림길에 있는 35세 이상의 사람들을 위한 ‘제자훈련과정’에 참여하면서 다시 한번 국제 YWAM과의 연합을 생각하게 됐다. 그들과 영적인 일치감을 누리며 ‘이렇게 한마음이 될 수 있는 지도자들과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갔다. 이를 위해 엘렌과 기도했다.

 

79년 9월 24일, 하나님께서는 구약성서 학개서 2장 18∼19절 말씀을 주셨다.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그날부터 열매를 맺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었다. 79년 장로교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예수전도단과 국제 YWAM의 연합을 결정했다. 바로 주님의 말씀대로 9월 24일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80년 봄 태국에서 열린 국제 YWAM 모임에서 공식적으로 두 단체의 연합을 선포했다. 예수전도단의 영어이름은 YWAM Korea로 사용하되 국내 이름은 계속해서 예수전도단으로 부르기로 했다.

 

[역경의 열매] 오대원 (11) 한국 세 아이 입양 가정에 행복충만 /  입력 : 2010-07-18 17:59

 

엘렌과 난 아이들을 정말 좋아한다. 결혼 전부터 자연스럽게 2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일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갈등하지 말고 입양하자고 약속했었다. 우린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가정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아이들은 부모가 필요하고, 결혼한 모든 부부에겐 자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부모의 사랑을 정말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결혼 후 6년이 지났을 때까지 우리에게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한국에서 사역을 시작한 지 2년쯤 되던 시기였다. 우린 세 명의 한국아이를 기쁜 마음으로 입양했다. 천사같이 사랑스러운 큰딸 데비는

 

1963년 여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처음 만났다. 생후 5일 된 데비는 새까만 머리카락과 맑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우린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키우는 부모가 된 것에 감격했고 감사했다. 이후 64년에 생후 5개월 된 아들 데이빗, 69년에 생후 한달 된 딸 베키를 차례로 입양했다. 아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잘 성장해 현재 아름다운 가정을 이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입양 후 우린 많은 것을 배웠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들을 선택했고, 그들을 위해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5) 그렇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로 입양된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입양은 현실에서 자녀가 없는 부부가 부모가 없는 아이를 입양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겪은 자녀양육의 어려움은 모든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것들과 같았다. 아이들은 입양됐다는 이유로 방황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한 가지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아이들과 우리가 닮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입양의 소중함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통해 하신 일은 분명했다. 입양을 알리신 일이었다. 우린 입양에 대한 의견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다른 가정에도 입양을 권유하곤 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입양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갖고 있지만 당시엔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혈연’ 때문에 입양을 꺼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보여주신 보혈의 끈이면 충분하지 않겠냐”고 말하곤 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선택된 우리의 삶은 커다란 모험이었다. 사역과 자녀양육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린 마음속 깊이 아이들에게 미안해했다. 사역을 하느라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특히 70년대의 예수전도단 시절, 우리 집은 예배장소로 늘 개방돼 있었다. 학생들은 철야기도 후 자고 가기도 했다. 가끔 자매들이 아들 방에 들어가 잔 경우가 있었다. 긴 머리의 아들이 자는 모습을 보고 딸로 착각한 것이다. 아들은 아침에 깨어나 기겁을 했고 그런 환경이 반복되자 몹시 불만스러워했다.

 

79년 하와이에서 ‘크로스 디티에스(DTS·예수제자훈련학교)’에 참여했을 때였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아들을 위해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가서 사과하라”고 말씀하셨다. 난 아들에게 “그동안 아빠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했다. 그런데 아들은 거절했다. 그만큼 상처와 불만이 깊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는 싸움이 끝났으니 이제 감사기도를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아들의 거절에 개의치 않고 계속 감사기도를 드렸다. 이후 수양회에 참석한 아들은 완전히 변화됐고 나와의 관계도 회복됐다.

 

[역경의 열매] 오대원 (12) 88올림픽 앞두고 추방명령 ‘충격’ /  입력 : 2010-07-19 18:00

 

국제YWAM과의 연합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열방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과 도전을 받은 것이다. 국내라는 지역적 한계에서 벗어나 해외로 나갈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갖게 됐다. 예수전도단은 최재선 선교사를 처음 해외에 파송하면서 열방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국제 YWAM과 차이점이 있다면, 전도단은 단기보다는 장기 선교사를 기르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이후 예수전도단은 제자훈련학교(DTS), 대학생제자훈련학교(UDTS), 성경연구학교(SBS) 등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성장해 갔다.

예수전도단 사역이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난 힘겨운 시련을 마주해야 했다. 1986년은 나와 가족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88올림픽을 앞둔 정부는 해외 선교사들이 거리에 많이 다니면 후진국가로 보인다며 선교사들의 활동을 원치 않았다. 급기야 정부는 나에게 한국을 떠날 것을 명령했다. 61년 이 땅에 발을 디딘 우린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에 머물고 싶었다. 그런 우리에게 정부의 추방명령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 무렵, 하나님께선 나에게 사인을 보내주셨다. 86년 1월이었다. 대만에서 열린 DTS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제는 북미와 유럽에 있는 한국인 2세를 위해 일해야 한다. 이들 중 선교사로 부름 받은 이들이 많은데 그들을 일깨울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난 즉시 순종하지 못했다. 한국을 언젠가 떠나야 하겠지만 그때가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제 나를 한국에서 옮기시려고 하는구나’ 하고 순순히 받아들였으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내가 떠나지 않자 여러 가지 압력이 가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찾아와 “북한에서 당신을 죽이려 하니 미국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TV 방송에 대학생들의 데모하는 장면과 예수전도단의 집회장면이 함께 나가기도 했다. 우리가 정부에게 불편한 존재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86년 8월, 우리 가족은 모두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을 갑자기 떠남에 괴롭고 슬펐다. 머릿속은 혼돈과 후회로 가득했다. 한국을 떠난 뒤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미국에 도착한 후 LA의 한 공동체에서 하루 6시간 이상 말씀을 묵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주님께 회개하는 데 여러 달의 시간을 보냈다. 2년이라는 기간 동안 공동체 안에서 상담도 받고 격려 받으며 회복되어갔다.

 

이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안다. 한국에서 우리를 떠나게 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돌이켜보면 그때까지 주님을 위해서 너무 바쁘게 일해 왔다. 그 결과 ‘주님과 함께 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주님과 함께 일하는 시간은 주님의 임재를 기뻐하고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 시기 많은 사람들이 “당신은 너무나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난 선교사로서 안주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하는 동안 난 약간의 칭찬을 받는 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주님은 다른 사람의 유익보다 내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나를 한국 밖으로 옮기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하셨다. 우리가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할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선교를 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한국의 디아스포라(해외교포) 사이에서 일하길 원하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 줄 준비를 하고 계셨다.

 

[역경의 열매] 오대원 (13) 한국 떠난 후 예수전도단 더욱 성장 / 입력 : 2010-07-20 17:27

 

우리가 고난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않고, 고난을 우리가 받은 축복 아래 두면 그 고난은 결국 축복이 된다. 한국을 떠나온 후 여러 시간, 여러 날 동안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살면서 나는 차츰 회복되어짐을 느꼈다. 우리가 한국을 떠난 후 예수전도단은 더욱더 성장해 사역은 깊어졌다. 우리 가족 역시 더 강해지고 서로에 대한 사랑이 깊어졌다.

 

하나님은 우리 부부에게 다시 기름을 부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 동포들에게 선교하라는 커다란 비전을 주셨다. 엘렌과 난 뉴욕에서 8년 동안 청소년과 대학생 사역을 하며 비전을 발전시켜 나갔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교훈련이라 생각했다. 1994년 시애틀에 안디옥선교훈련원을 개원했다. 훈련원은 국제YWAM 소속단체로 선교 훈련, 북한연구학교, 캠퍼스 사역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세계선교를 할 한국의 해외 동포를 훈련시키는 것이 우리 사역의 핵심이다.

 

훈련원은 선교사를 훈련하는 ‘세계선교 센터’, 선교사와 교회 봉사자들이 재충전하는 ‘희년 쇄신 센터’, 북한 선교를 위한 ‘새 코리아 센터’로 구성됐다. 우리는 성령의 선교공동체다. 15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3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는 음식과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삶과 예배와 성경 공부, 다양한 영적 은사들을 함께 나누며 살고 있다. 우린 단순히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존재가 되길 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됐을 때 함께 움직이고 역사해 주셨다.

 

‘세계선교 센터’에는 5개월간의 제자훈련학교, 4개월간의 직장인을 위한 ‘주말 독수리제자훈련학교’ ‘셀라 성경학교’ 등 프로그램이 있다. 제자훈련학교는 삶과 선교를 준비하도록 돕고 있으며, 한국어와 영어로 진행된다. 또한 우린 어린이들을 세계복음화를 위해 훈련시킬 뿐만 아니라 워싱턴 대학에서 캠퍼스 복음 사역도 감당하고 있다.

 

또 모든 나라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영적, 감정적, 그리고 육체적 치유라고 생각한다. ‘희년 쇄신 센터’는 그런 이들을 위해 세워졌다. 여러 선교단체들을 대표하는 선교사들이 6주간의 교육을 받으러 이곳에 온다. 그들은 캐나다 쪽의 로키산맥을 여행하고, 태평양 북서쪽에 있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바라보면서 삶을 재충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훈련원의 핵심과제 중 하나는 북한선교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NKSS(새코리아 섬기는일꾼학교) 과정을 열고 있다. 우리가 ‘새 코리아’라고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강력한 힘을 갖고 한국으로부터 세계 모든 국가에 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더 남과 북에 있는 백성들이 합쳐지도록,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한반도에 하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믿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섬기는 일꾼’이라고 하는 이유는 효과적으로 선교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섬기는 사역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세계 많은 나라에서 ‘새 코리아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최근에 우리는 북한 내부로 들어가서 선교할 몽골 기독교인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몽골에서 ‘새 코리아 캠프’를 열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크고 새로운 일의 한 부분이 되는 것에 영광스럽고 흥분된 마음이다.

 

[역경의 열매] 오대원 (14) 1986년 한국 떠나면서 북한선교 시작 / 입력 : 2010-07-21 17:16

 

북한선교는 1986년 한국을 떠나면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우리가 계속 한국에 머물러 있었다면 지금처럼 북한선교를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안디옥선교훈련원의 주된 사역 중 하나가 바로 북한선교다. 훈련원에는 북한연구 자료관을 비롯해 북한연구 학교가 있다. 또 북한선교를 위해 각국의 중보기도팀과 연합해 기도하며 구제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NKSS(새코리아섬기는일꾼학교)는 국제YWAM의 선교훈련과정 중 하나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관점과 실제적으로 북한에 접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사실 나의 북한선교 비전은 1978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북한을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북한을 두고 기도하게 하셨다. 나는 오늘날 한반도가 역사상 중요한 교차로에 서 있다고 믿는다. 만약 한반도에 하나님의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신다면 한반도는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등대’가 될 것이며,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거룩함과 의로움과 공정함이 다시 한반도 전체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한반도는 전 세계에 커다란 파괴를 가져다 줄 혼돈의 장소가 될 것이다.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즉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북한선교를 준비하면서 중점을 두는 것은 어린이들이다. 어린이들은 북한에서 심각하게 고통 받고 있다. 많은 어린이가 성장을 저해하는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일하시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하고 있을 때 가장 큰 두려움은 그들의 자녀가 죽어서 소멸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반대로 말씀하셨다.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민 14:3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을 초자연적으로 보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하셨다.

 

부모의 죄악으로 자녀들이 고통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진리다. 어른인 우리, 바로 부모의 죄악이 자녀들에게 비극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북한의 어린이들이 고통 받는 것은 바로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직접적인 결과다.

 

누구의 죄인가? 바로 아버지들의 죄이다. 어떤 죄인가? 주님을 따라 살기를 거부한 죄이다. 물론 그것은 북한 지도자들의 죄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곳 지도자들의 죄일 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죄이다. 다시 말하면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신앙적으로만 얘기하는 죄, 하나님에게 단지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공허한 기도만 하는 죄, 그의 백성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죄 등이다.

 

수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북한 어린이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셨다. ‘아이는 며칠 전 9세 생일이 지나갔다. 아이는 새로 파묻은 형의 무덤 옆에 무릎 꿇고 있었다. 아이는 이제 정말 혼자 남았다. 어머니는 2년 전 영양실조로 죽었으며, 아버지는 음식을 구하는 중에 없어졌다. 이 작은 소년에게는 살아남을 수 있는 어떤 희망의 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환상은 계속되었다. 아이는 속 깊은 곳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시 118:17). 이 소년은 하나님께서 아직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신 북한의 많은 어린이들 중 하나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셔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하심으로써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복음전도자가 되도록 준비하시고 계신 것이다.

 

[역경의 열매] 오대원 (15·끝) “앞으로 주어진 시간도 한국 위해 쓸것” / 입력 : 2010-07-22 20:34

 

아직도 사람들 중에는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통일을 두려워하거나, 심지어 통일을 반대하고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이들이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통일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두 개의 분리된 국가로 살아가는 것을 결코 인정하시지 않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새롭게 된 한반도가 세계의 다른 국가들을 축복하는 커다란 계획을 갖고 계심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 다시 하나 되었을 때, 찢어진 가정이 다시 돌아오는 위대한 치유를 상상해 본다. 복음이 북한의 모든 들판과 시골 마을을 관통해서 기독교인들이 떳떳하고 담대하게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증거하는 모습을 생각해본다.

 

남북한 통일을 이루는 하나의 열쇠는 북에서 내려온 2만 여명의 탈북주민이다. 북에서 남으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내려 보내신 하나님의 커다란 목적은 무엇일까? 인간적인 해답은 그들이 박해 때문에 내려왔거나 북에 있는 그들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나는 하나님이 남과 북의 사람들이 다시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한국 백성들을 북에서 남으로 보내신 것이라고 믿는다.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 통일을 준비할 수 있다. 60년 이상 떨어져서 살아와 두 개의 다른 문화가 생겨났다. 더 많이 배워야 하고 더 많이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다시 한번 더, 우리를 축복하시고 용서해주시며,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고,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기독교인들이 북한에 대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공산주의가 좋다는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는 인간 관심사에서 하나님을 없애버린 나쁜 체제이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어떠한 정치적인 체제도 나라를 새롭게 하거나 번영하게 할 수 없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정치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우리는 성령이 이끄는 대로, 성령의 하나됨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그의 백성들에게 응답하신다. 기도는 하나님의 명령이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도한다(요일 5:14∼15).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한반도에 강력한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의 구원을 위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매일 매일 좀더 확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전 세계적인 중보기도자의 위대한 군대에 동참하길 바란다. 또 많은 분들이 말씀 안에 거하는 생활을 하길 바란다.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더 풍성해지고 성령이 우리 삶 속에서 더 강하게 역사할 것이다.

 

2011년은 우리가 한국에서 선교를 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며, 2012년은 엘렌과 내가 성령 안에서 살아온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축복해준 것보다 우리에게 더 많이 축복해주셨다. 우리는 한국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 한국에 와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됐고, 선교는 사랑이라는 것을 배웠다.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북한선교와 재외한인을 위해 보낼 것이다. 한국은 우리 삶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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