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이적의 사건들


오병이어의 이적

‘오병이어’는 번역 실수가 만든 기적?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여명을 먹이고도 남은 빵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는 <신약성서>의 네 공관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놀라운 이야기.

믿기 어려운 기적의 진실은 무엇일까?

1976년부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성서학과 고대 셈어, 이집트학, 아시리아학을 공부하고 수메르어로 학위를 받은 뒤 10여년간 히브리대에서 가르쳤던 성서학의 국제적 권위자 조철수(60) 교수의 <예수 평전>은 눈이 번쩍 뜨이는 설명을 제시한다.

조 교수는 마르코 복음서 6장의 이 기적 이야기 일부를 이렇게 인용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여 각자 동료들끼리 풀밭에 앉게 했다. 백 명의 동료지간의 백부장과 오십 명의 동료지간의 오십부장이 끼리끼리 자리잡았다. 예수는 다섯 개의 빵과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향해 쳐다보며 축복하고 빵을 떼어 그의 제자들에게 주며 그들 앞에 나누게 했다.”

공동번역 성서의 마르코 복음서는 이 가운데 ‘백명의~’ 부분을 이렇게 옮겨놓았다. “군중은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모여 앉았다.”
마태오나 루가 등 다른 복음서들에는 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앉았다는 표현 자체가 아예 없다.
이 표현의 차이에 주목하라.


‘오병이어’는 번역 실수가 만든 기적?

조 교수가 인용한 마르코 복음서 내용은 자신이 따로 번역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신약성서 원문은 그리스어로 쓰여 있는 게 가장 오래된 사본이다.
그런데 이 그리스어 원본 자체가 번역본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 복음서나 사도들 편지는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기록됐고 적어도 그 수십년 뒤에야 그리스어 본들이 만들어졌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같은 계열이지만 그리스어는 전혀 다른 언어체계다.
따라서 아람어와 히브리어 텍스트들을 자신이 직접 번역한 조 교수의 인용문이 당시 이스라엘(유대)의 언어행위 실상과 사회상에 더 근접할 가능성이 높다.

조 교수는 1947년 발굴된 ‘사해 두루마리’ 등의 옛 전적들을 성서와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예수의 실상을 재구성한다.

조 교수에 따르면 공관복음서에서 ‘오천 명’이라 옮긴 단어는 아람어 본(페시타) 신약성서에는 ‘오천’이라고만 돼 있다.
오천은 히브리어로 ‘아메쉐트 알라핌’이다.
그런데 이를 ‘하메쉐트 알루핌’으로 읽으면 ‘다섯 천부장’이라는 뜻이 된다.
당시 히브리어나 아람어에는 모음부호가 없었기 때문에 알라핌을 알루핌으로 읽는 식의 바꿔 읽기는 유대교 성서 해석에 종종 활용됐다. 따라서 오천을 오천명의 군중이 아니라 ‘다섯 천부장’으로 읽을 수 있다면 ‘백 명씩 오십 명씩’은 백부장, 오십부장으로 옮길 수 있다.
조 교수는 ‘빵을 먹은 이들이 다섯 천부장이었다’는 말은 백부장과 오십부장들이 참석한 그날의 특별한 만찬 의례에서 그들 가운데 다섯명의 천부장을 선출했다는 얘기고 예수가 그들에게 성찬의례를 베풀었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천부장들은 당시 예수가 한때 소속돼 있던 에세네파 공동체의 최고의결기관에서 재판관들과 사제장들, 부족장 등과 함께 그 조직 주요 구성원이었다.

사해 문헌 중의 에세네파 예식에 대한 규례들 중에도 “이스라엘의 천명의 장과 백 명, 오십 명, 십 명의 지도자와 재판관” 등이 재판 청문회에 참석한다는 내용들이 들어 있다. 나중에 에세네 공동체의 한계를 지적하며 떠나간 예수의 공동체 역시 성찬의례를 통해 다섯 천부장을 뽑고 그들이 열두 제자들 모임에 합류하는 좀더 발전된 상부조직을 갖게 된다. 열두 광주리의 12라는 숫자도 이스라엘 12지파, 12제자처럼 당시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고, 메시아의 도래를 알리러 각지에 파견한 72제자의 72라는 숫자도 당시 천문관념에 따라 지파당 6명씩 배치한 결과로 읽힌다.

그렇다면 오병이어 기적의, 외딴곳 그 많은 군중을 어떻게 먹이느냐는 제자들 질문이나, 다 먹이고 남은 빵과 물고기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는 복음서들 얘기는 오역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후대에 추가되고 윤색된 내용일 가능성이 있다. 그날 성찬의례 참석자, 빵과 물고기를 단합과 사명과 정체성 확인 차원의 의례행위로 받아먹은 사람들은 예수 공동체의 소수 지도급 인사들이었다. 마르코 8장의 일곱개 빵으로 사천 명을 먹였다는 얘기도 일곱명의 원로들 모임에 합세할 네명의 천부장을 선출한 것으로 읽는 게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루가 6장의 “가난한 자는 복 받을 것입니다.
천국이 그들 것입니다”라는 예수의 말은 마태오 5장에서는 “마음으로 가난한 자는…”으로 돼 있다.
‘마음’의 히브리어는 ‘레브’다. 그런데 레브는 특정 맥락에서 모세 오경 또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토라’의 은유적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마음으로 가난한 자’라는 말은 토라 공부 때문에 가난한 자, “하느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데 전념하여 돈벌이에 급급하지 않아 구차한 삶을 사는 사람”을 뜻한다는 게 조 교수 풀이다. 따라서 ‘마음이 가난한 자’로 옮기는 건 의역이란다.

이런 식으로, 복음서들의 갖가지 치유기적의 의미, 두드리면 무엇이 열린다는 것인지, 첫째가 나중 되고 나중이 첫째 된다는 게 뭔지, 일 많이 하나 적게 하나 모두 같은 삯을 지불하는 포도밭 주인의 비유, 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지, 카이사르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라는 건 무슨 의미인지, 왜 유다는 마지막 순간 예수에게 입 맞췄는지 등 성서 속의 많은 비유와 예화들이 전혀 새롭게 해석된다. 중요한 건 그것이 막연한 추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문헌 근거들을 토대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사해문헌 중의 <하박국서 해석>엔 ‘진리’의 이름으로 불린 사제가 등장한다. 그는 이스라엘을 지배할 때 교만해져서 하느님을 떠났으며 재산 때문에 법규들을 배반하고 반동폭력배와 백성들의 재산을 훔쳐간 ‘악한 사제’로 로마 법정에 선동 혐의로 넘겨져 사형당한다. 조 교수는 그 사나이가 바로 예수라고 본다. 그를 악한으로 묘사한 하박국서 해석은 예수가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본 이 해석서의 작성 주체인 에세네파의 시선이다.

바리새, 사두개는 물론이고 한때 자신이 그 사제요 교사로 복무했던 에세네파의 한계까지 과감하게 뛰어넘었고 결국 그 때문에 죽임을 당한 예수. 900쪽의 두툼한 <예수 평전>은 당대의 문헌자료들과 문화적 배경설명을 토대로 그 생애를 치밀하게 재해석한다.

에세네 ‘사해 두루마리’ 다양한 성서 해석 근거로

1947년 사해 북서쪽 쿰란의 계곡 언덕에서 잃어버린 염소를 찾던 두 젊은 양치기가 동굴 속의 항아리에서 일곱 개의 양피지 두루마리를 발견했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일컬어졌던 ‘사해 두루마리’들은 11개 동굴에서 모두 813가지가 나왔다. 이 가운데 223개가 히브리 성경 사본들이며, 나머지는 외경들과 공동체 규례, 법규, 예언서 등을 해석한 해석서, 종교절기에 관한 지침서와 감사 시편 등이었다. 대부분이 히브리어로 씌어졌고 96개 문서는 아람어, 7개가 그리스어 문서였다. 히브리 성경 사본 중 82개가 모세 오경 사본이었고 예언서 사본 41개 중 21개가 이사야 사본이었다. 하지만 온전한 것은 12개 정도.

에세네 ‘사해 두루마리’ 다양한 성서 해석 근거로

국내 유일의, 그리고 세계 11번째 앗시리아학 학위 소지자 조철수 교수에 따르면, 매년 100여개의 관련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사해문헌의 작성자들은 엣세네파 사람들. 1세기의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는 기원전 150년부터 서기 70년까지 유대 지방에는 바리새와 엣세네, 사두개라는 세 주요 분파가 있었다고 기록했다. 사두개는 사제들과 그 친인척 등으로 구성된 상류 기득권층으로 로마 제국 체제에 적극 가담한 자들이었고, 바리새는 전통적인 모세 법규에 집착하면서 사회참여를 주장한 타협적 중산층 지식계급이었다. 1세기께 형성된 랍비 유대교는 바리새의 후예들이다. 바리새를 비판한 엣세네는 종말론에 입각해 메시아가 도래할 새 세상을 꿈꾸는 신흥 자치공동체 세력. 이밖에 로마정권에 무력으로 저항한 열심당과 예수를 메시아로 믿은 예수 공동체 등이 등장해 첨예하게 충돌한 당시 이스라엘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일제 패망 뒤에도 외세의 영향이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 상황과도 닮은 점이 많다.

항상 그리스나 로마 등 외세와 결탁하면서 모세 오경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지키려 했던 사두개. 서기 2세기 저항세력을 격파한 로마는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입성을 막았고 성전이 없어진 상황에서 사두개도 사라졌다. 그리하여 유대교는 사제 없는 종교가 됐다.

토라에 집착하면서도 사제계층과 권력층에 반발한 바리새들은 1세기 말 모세 법규를 그대로 지키려는 샴마이파와 개혁적인 힐렐파로 나뉜다.

재산을 공동관리하며 가난한 삶을 찬양했던 내세적·자립적 공동체를 여러 도시들에 세웠던 엣세네 사람들은 로마 네로 황제의 폭정에 항거해 들고 일어선 서기 66년의 열성파 유대인들의 독립항쟁에 합세했다. 그러나 처절했던 마짜다(마사다) 항전으로도 널리 알려진 그 저항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진 엣세네들은 배우고 가르치던 두루마리들을 근처 동굴들에 숨기고 피신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것이 사해 두루마리다.

앞서 기원전 7년 12월 1일 태생일 가능성이 높은 예수는 20대에 엣세네파 사제가 됐고 개혁적인 바리새의 힐렐파 신조를 많이 받아들였다. 예수 공동체는 그러나 엣세네파의 율법주의를 거부하고 불치의 병자나 불구자, 무식쟁이들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등 기성체제 전반에 반기를 들었고 사랑과 평화를 설파했으며, 혈연·지연 중심의 민족종교 틀을 넘어 믿음에 바탕을 둔 신앙공동체로서 보편종교를 지향했다. 이 혁명적 행보는 사두개와 바리새, 엣세네파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결국 그들은 예수 제거를 공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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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병이어의 기적(五餠二魚─奇蹟)은[1]예수의 기적 가운데 하나로, 예수가 한 소년으로부터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취하여 5천 명의 군중을 먹였다는 기적을 가리킨다.[2] 간단히 오병이어라고도 한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빵과 물고기를 취하여 군중을 먹인 예수의 두 기적들 가운데 하나로, 마르코의 복음서 8장과 마태오의 복음서 15장에는 이와 유사하지만 다른 기적이 서술되어 있다.

    본문

    5,000명의 군중을 먹이신 기적인 이 기적은 신약성서사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데, 각각 다음과 같다.

    의미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수의 지극한 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마르코의 복음서에서 이르기를 예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보면서 불쌍히 여기셨다고 말하는데, 이는 "장이 끊어질 것처럼 고통스럽다"라는 뜻을 가진 '스플랑크니조마이'를 옮긴 것이다. 로마제국, 로마제국의 간접통치자인 헤로데 왕실,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 세력들의 수탈 때문에 굶주리는 불쌍한 민중들의 처지를 헤아리면서 예수는 무척 마음이 쓰렸던 것으로 의미된다.

    유사한 기적

    빵과 물고기를 취하여 군중을 먹인 다른 유사한 기적으로서 4,000명의 군중을 먹이신 기적이 있으며 다음 복음서들에 있으며 루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없다.

    • 마르코복음 8장 1~9절
    • 마태오복음 15장 32~39절

    이 기적에서 예수는 군중에게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취하여 군중을 먹이는 기적을 보이셨다.[3]

    각주

  2. 한자적인 해석 그 자체로는 빵(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이지만, 당시에는 실제로 빵과 물고기가 쓰였다.
  3. John Clowes, 1817, The Miracles of Jesus Christ published by J. Gleave, Manchester, UK, page 109
  4. John Clowes, 1817, The Miracles of Jesus Christ published by J. Gleave, Manchester, UK, page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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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프스 트라이얼(A. Scopes Trial)
하나의 기적을 믿으면 또 하나의 기적을 믿기도 쉽다.

성경은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이 기적은 마태복음 14:13∼21, 누가복음 9:10∼17, 요한복음 6:1∼13 등 4복음서에 모두 기록이 될 정도로 복음서의 저자들이 아주 중요하게 다룬 사건이다.

떡은 아주 어린아이의 한 끼 식량이고, 놀랍게도 그 어린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자기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렸다. 기적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이 아이가 예수님께 드린 보리떡은 히브리어로 ‘마슈나’다. 이 떡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아닌 짐승이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마리의 물고기를 드렸는데 이 고기는 ‘이크수스’다.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들은 잡은 고기를 추려서 큰 고기는 집으로 가져가고 너무 작아서 먹을 수 없는 것은 해변에 버리는데 그 고기가 바로 ‘이크수스’다. 이 아이가 드린 물고기는 바로 ‘이크수스’다. 떡 중에 가장 하급의 떡 ‘마슈나’, 물고기 중에 너무 작은 물고기 ‘이크수스’였다.

아마 어린아이가 예수님을 따라가서 말씀을 듣겠다고 하니까 부모가 해변에 다니며 버린 고기를 주워다가 도시락을 싸 주었는지 모르겠다. 그것을 아이는 예수님께 드렸다. 그것이 5천명을 배부르게 먹게 하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가장 큰 기적이 일어났다. 

헌신이 기적

예수님께 드리는 헌신 위에 하나님의 기적이 임했다. 예수님 앞에 소년의 정성으로 1인분의 도시락이지만, 그것을 드렸을 때 많은 생명에게 유익하게 쓰였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가? 크고 작고,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에게 무엇이든지 드리기만 하면 가장 유익하고, 가치 있게 사용된다. 예수님께 드리는 작은 헌신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헌신을 통해서 위대한 일을 이루실 수 있다. 보리떡 다섯 개, 생선 두 마리가 주님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것은 5천명을 먹이고도 남았다. 무슨 뜻인가? 작지만, 보잘것없지만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하면 이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온전히 헌신하는 데 있다. 자기의 것을 모두 주님께 드리는 데 있다. 그러면 결국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사는 것이다.

자기의 희생과 봉사가 없이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나 보고 기대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이는 특별한 것을 드린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을 드린 것 뿐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슨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에게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드리는 것을 요구하신다. 시간, 달란트, 지식, 물질, 무엇이든지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드리면 된다. 주님을 위하여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내게 주신 물질이 있는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땀 흘리게 하셨고 그 대가로 내게 주신 물질들을 귀하게 사용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기를 바란다. 나를 위해서도 선용해야 하지만, 특별히 ‘하나님께서 지금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갖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하자.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내게 무슨 재능이 있는가? 그 재능을 주님을 위하여 ‘필요하시다’ 할 때에 드리자. 미미한 재능이지만 하나님은 크게 사용하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오병 이어의 기적에는 헌신이 있었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드렸다. 그냥 믿고 드릴 때 기적이 임한다.

감사가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에는 감사가 있었다.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은 적은 것이라도 하나님을 향해 감사할 때 일어난다.

마가복음 6: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드리셨다.

이 때에 기적이 일어났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감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의 생활이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가?
생활이 온갖 흑암과 공허와 환난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가?
그로 인하여 삶이 답답한 환경에서 몸부림치고 있는가?
그럴수록 하늘을 향해 감사하기 바란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난다.
감사와 불평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감사할 조건이 수두룩해도 감사하지 않는다.
그렇게 불평만 하면 계속 불평할 일만 생긴다.
그러나 원망스럽고 괴로워도 감사하기 시작하면 감사의 조건이 얼마든지 생기게 된다.

마태복음 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 까지도 빼앗기리라.

지금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감사 위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이 임할 것이다.

순종이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에는 믿고 따르는 순종이 있었다.
어린 소년의 순종이 있었다.
제자들의 찾음에 자신이 갖고 있었던 것을 예수님께 드리는 순종이 있었다.
기적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제자들의 믿음의 순종이 귀했다.

마가복음 6:39-40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다.
제자들로 하여금 사람들이 제대로 무리를 지어 앉도록 질서를 위해서 잘 정리시키셨다.

어떤 제자들은 어떻게 처리할까 두려워했을지 모른다.
‘도대체 어떻게 하시려고 할까?’ 하는 의아심이나 궁금함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이 무엇인가를 하실 것을 믿었다.
엄청난 일을 이루실 줄로 믿고, 그들은 그 일을 순종하여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나님은 이런 바탕 위에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작은 헌신과 믿음의 순종을 기다리신다.
시도하는 사람을 통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희생하는 사람을 통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주님의 축복을 통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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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에 '바늘 귀'는 실재했을까?



예루살렘 성에 '바늘 귀'는 실재했을까?


예수가 살던 시대의 예루살렘 성에 '바늘 귀'라 불리는 성문이 실재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오랜 전부터 있어 왔다.
다른 성문보다 매우 작기에 '바늘 귀'라 불린 암문(혹은 개구멍)이 존재했으리라는 생각은 사실 그럴싸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진 말들도 그럴듯했으니, 그 문의 크기는 사람은 여하히 통과할 수 있지만 낙타의 경우는 짊어진 물건을 모두 내려놓고 알몸뚱이가 되어야만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정도라는 것이었다.
만일 그렇다면 이 말은 앞에서 인용한 마태복음의 문장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다.
그 문장 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마태복음 19: 23-25)*

 * 이 문장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실려 있는데, 내용은 거의 같다.

아울러 이렇게 보면 위 예수의 말은 매우 설득력 있는 주문이 된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가기가 힘들니 그 욕심을 모두 내려놓으라는 말이 성립되기 때문이다.(부자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9원을 가진 자가 10원을 채우기 위해 가난한 자의 1원을 뺏는다는 인식은 동서가 비슷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이것은 어불성설이며 본말 또한 전도돼 있다.

'바늘 귀'는 통과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 욕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예수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낙타의 통과 여부가 아니라 그 낙타에 실린 재물이었을 터, 하지만 그림에서 보다시피 부자는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
그저 짐을 잠시 내려놓았다 다시 싣는 수고가 뒤따랐을 뿐이다.
예수가 원한 것은 분명 이런 형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의 통과 주체는 사람이지 낙타가 아니다.
사람이 욕심을 버리는 게 중요하지 낙타 등 위의 수하물을 내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의미를 몰랐는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밀어붙인 것인지 역대로 천국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벽에서 아래와 같은 '바늘 귀'들을 찾아냈다. 물론 역사적 근거는 없는 것들이다.(굳이 장소를 명시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오해

성경이 기록된 사건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막연히 성경의 내용을 상상하는 것과는 분명 큰 차이가 많다. 이스라엘에서 성경 현장학습을 인도하면서, 자주 받는 질문들과 오해들이 있는데, 그 중에 몇 가지를 간추려 여기에 소개한다.

바늘 귀 (the eye of a needle)

마태복음 19:24절에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 귀(the eye of a needle)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는 말씀을 하셨다. 여기에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여러 문 가운데 ‘바늘 귀’라는 문이 있다는데 그 문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한다.

그런 문은 없다. ‘바늘 귀’ 문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일부 설교자들은 ‘바늘 귀’ 문을 말하면서, 낙타가 성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고 있던 모든 짐을 내리고 무릎을 꿇어야만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짐을 내리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설교한다고 한다.

예수님 당시 헤롯 성전 뜰로 들어가는 몇 개의 문이 있었으며, 지금도 그 문의 흔적은 찾을 수 있다. 남쪽에서 성전 뜰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훌다 문(the gate of Hulda)이 있다. 훌다 문은 삼중 문(triple gate-위의 사진)과 이중 문(double gate)을 가리킨다. 삼중 문은 성전 남쪽의 동쪽에 있었는데, 주로 입구로 이용되었고, 이중 문은 성전 남쪽의 서쪽에 있었는데, 출구 또는 상을 당한 가족의 성전 입구로 이용되었다.

서쪽에서 성전 뜰로 들어가는 두 개의 통로인 로빈슨 아치(Robinson’s arch- 아래 사진)와 윌슨 아치(Wilson’s arch-사진)가 있었다. 윌슨 아치는 성전과 예루살렘의 서쪽 언덕에 위치한 헤롯 궁, 대제사장의 주거지, 상위 계층의 생활 근거지를 서로 연결했던 통로로써 왕, 대제사장 및 상위 계층이 주로 이용했던 통로였다.

그리고 북쪽 베데스다 연못 근처에서 성전 뜰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는데, 이 문은 요한복음 5:2절에 양문(Sheep gate)으로 기록되었다. 성경 어디에도 ‘바늘 귀’ 문은 없다. ‘바늘 귀’ 문은 15세기 이후부터 설교자들을 통해 강단에서 선포되어 온 대표적인 허구에 속한다. ‘바늘 귀 문’은 없다고 이야기해 주어도 여전히 반신반의한다.

대제사장 발목에 맸다는 끈

유대 월력으로 일곱 번째 달, 제 십 일은 대속죄일 (욤 키푸르)이다. 이 날은 대제사장이 자신의 죄와 백성들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속죄 의식을 행하는 날이다 (레 23:27-32). 대제사장이 속죄 의식을 위하여 지성소로 들어갈 때, 그의 발목에 끈을 맸다는데, 끈을 맨 이유는 대제사장이 죽으면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히브리어 성경, 신약 성경, 사해 문서, 요세푸스의 기록, 교부들의 기록, 미쉬나, 탈무드 어디에도 대제사장의 발목에 끈을 맸다는 기록은 없다.

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3세기 유대인 조하르(Zohar)의 기록에서 찾아볼 뿐이다. 조하르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제사장의 발목에 금으로 된 줄을 묶어 두었는데, 이는 그가 지성소에서 죽었을 경우, 그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조하르는 그리 신뢰할 유대 학자가 아니다. 발목에 끈을 맸다는 것은, 레위기 16:3-4절에 기록된 지성소로 들어가는 대제사장의 예복에 위반될 수 있다: 아론이 성소로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일부 기독교 학자들은 출애굽기 28:35절 과 히브리서 9:7절 을 주석하면서 조하르의 글을 인용하기도 한다. 특히 히브리서 9:7절에서 요한 길(John Gill)은 조하르의 글을 소개하며 이렇게 주석하였다: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갈 때, 그의 발에 끈이나 가죽 띠를 묶어 두었는데, 이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사망하게 되면, 그를 끌어내기 위함이다. 다른 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죽으면 누구도 대제사장의 속죄 의식을 대신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하르나 요한 길이 말하는 대제사장의 발목에 끈을 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것 역시 설교자들의 대표적인 허구에 속한다.

만약 대제사장이 속죄 의식을 행하다 지성소에서 죽는 일이 발생하면 대제사장의 직무를 대신할 제사장은 있었다. 누가복음 1:8절의 세례 요한의 부친 사가랴는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 쌔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고’라는 말씀이 있다. 만약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의 발목에 맨 끈을 당기므로 시신을 끌어낸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의 직무를 대행할 사람이 지성소로 들어가 대제사장의 시신을 끌어내는 것이다. 허구는 또 다른 허구를 만들어 낸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이상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인 YHWH를 기록하는 서기관

성경의 소중한 사본이 대량으로 발견된 쿰란 유적지를 여행할 때, 간혹 서기관들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서기관들이 성경을 필사하면서, 하나님의 이름 YHWH을 기록할 때마다 붓을 꺾어 버리고 새로운 펜을 사용하였으며, 온 몸을 정결케 하는 정결 의식 또는 손을 씻은 후에 기록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드러내기 위하여 서기관들의 열심을 강조한 말이기는 하지만, 붓을 버리고 새 붓을 사용했다거나 목욕을 한 후에 다시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서기관(sofer)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소페르이다. 소페르는 세다(count)를 뜻하는 사파르(safar)에서 온 단어이다. 서기관이란 말은, 서기관이 성경을 필사할 때, 자신이 기록한 단어를 정확하게 셌던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한다. 서기관이 사본의 글자 수를 세었던 것은, 사본의 원본 글자 수와 자신이 기록한 글자 수를 세므로 정확하게 기록했는지를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브온.
기브온 위에 멈췄던 태양

기브온(사진)은 예루살렘 다윗성에서 북서쪽 약 5-6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솔로몬의 일천 번제에 대한 배경과 여호수아 10장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모리 족속들 간의 전쟁에 대한 배경을 살펴 보면서 여호수아의 기도를 묵상할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때가 이렇게까지 없었는데, 당일 여호수아의 기도는 이랬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 찌어다 (수 10:12). 일부 목회자들은 여호수아의 태양이 멈추게 된 기도와 열왕기하 20:10-11절에 기록된 히스기야의 기도로 해가 10도 뒤로 물러간 배경을 이야기하면서, 나사(NASA) 과학자들이 잃어버린 하루를 찾았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냐고 묻는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강조하고 싶을 지라도, 나사(NASA) 과학자들이 잃어버린 하루를 찾았다는 잘못된 정보를 인용해 가며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경에서 잃어버린 하루를 찾기 위한 노력은 NASA가 존재하기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것은 생각해 볼 수 있다. ‘태양은 기브온 위에, 달은 아얄론 골짜기 위에 머무르라’는 여호수아의 기도에서, 기브온은 아얄론 골짜기의 동쪽에 있다. 다시 말하면, 기브온은 태양이 뜨는 동쪽에, 그리고 아얄론 골짜기는 태양이 지는 서쪽에 있다. 그리고 태양과 달은 하늘에 같이 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시간은 점심 때도 저녁 때도 아닌 아침 시간이다. 여호수아는 이른 아침에 태양이 여전히 기브온 위에 있고, 달은 서쪽 아얄론 골짜기에 있을 때에 아모리 족속들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 찌어다 (수 10:12).



도서 / 환대와 구원, 뜻밖의 회심, 감각의 제국, 다섯 가지 절대 법칙, 단순한 교회, 레미레자블, 자본론,


환대와 구원

조슈아 W. 지프
‘환대와 구원’
‘믿음과 환대에 의한 구원’(Saved by Faith and Hospitality)

초기 기독교 서적인 ‘클레멘스 1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언급한다.
아브라함 롯 라합이 믿음과 환대를 통해 구원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결코 우리가 환대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은 반드시 환대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오늘날 개인주의 시대에서 교회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타인을 향한 환대와 ‘손대접’일 것이다.

‘뜻밖의 회심’ 저자인 로자리아 버터필드는 기독교에 적대적이었고 레즈비언 공동체에 소속돼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복음을 따라 환대를 베풀었던 한 부부의 식탁 교제에 참여해 교류하면서 극적 회심을 경험했다.

복음전도가 잘 되지 않는 시대에 가장 효과적인 복음전도 방법도 바로 이웃에게 베푸는 환대와 손대접일 것이다.
그들과 친구가 되어보라.
우리의 우정과 섬김을 따라 복음이 흘러가게 될 것이다.
고립의 시대에 환대의 공동체는 외로운 시대에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별명 중 하나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과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의 복음은 환대를 통해 흘러 들어갔다.

동성애 이슈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동성애 찬반 논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오늘날, 한 레즈비언 교수가 자신의 파격적인 회심과 세계관의 변화를 진솔한 필체로 묘사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회심 이전의 삶과 가치관을 밝힐 뿐 아니라 어떻게 성경에 관심을 갖고 되고 켄 목사 부부와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내면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소상하게 얘기한다.

이후 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때와 교인들이 자기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세례를 받고 정식교인이 된 후 어떻게 신앙생활을 영위했는지, 그리고 그녀의 세계관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과정을 진솔하게 진술하고 있다.

훗날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목사 아내로서, 네 명의 아이를 입양하여 홈스쿨링하는 엄마로서, 그리고 손님대접을 주된 사역으로 삼고 살아가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번에 출간된 확대개정판에는 저자의 회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켄 목사와 남편 켄트의 이야기, 저자의 공개편지 두 편, 그리고 궁금증을 풀어주는 질문과 응답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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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와 구원' (조슈아 지프)

“교회가 진지하게 귀담아 들어야 할 매우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 책이다.
본서의 주장은 단순하고 분명하다.
곧 그리스도인은 ‘환대’로써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무런 조건이나 자격 없이 전적으로 환대해주신 결과로 주어진 것인 것처럼, 우리 또한 타자를 차별 없이 환대함으로써 그 구원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행위의 진정성은 타자에 대한 ‘환대’로 증명된다.”

기독교 영성 나아가 선교적 삶의 핵심을 관통하는 ‘환대’에 대해 이 책만큼 풍부한 지식과 통찰력을 주는 책은 없을 것입니다.
크리스천이 가야 할 환대의 길에 대한 분명한 이정표를 보게했고, 특히 저에게는 자신있게 환대에 대해 외칠 수 있는 용기와 설교해야 할 책임감을 주었습니다.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인 조슈아 지프(Joshua W Jipp)가 저술했다.
원제목은 ‘믿음과 환대에 의한 구원’(Saved by Faith and Hospitality)이다.
종교개혁 전통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게 들릴 수 있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저자는 소위 행위 구원론을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환대에 기인한다는 사실과, 어떻게 이것이 사람의 환대를 이끌어내는지를 복음적으로 매우 탄탄하고 명쾌하게 정리한다.

지프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환대하셨다는 것은 복음 메시지의 핵심 중 핵심이다.
종교개혁의 칭의론도 아무 공로 없는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에 강조점을 둔다.
우리가 하나님의 넉넉한 품으로 환대를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 신앙의 근본과도 같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그저 이 사실 앞에 감격하는 것에서 멈추고 마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한한 환대를 베푸셨다는 것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에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부터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땅에 들어오도록 환대받은 자들로 묘사된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땅은 하나님의 소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약속한 땅을 분깃으로 내어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의 정체성은 광야의 나그네로서 하나님께 환대받은 자이다.
그리고 여기서 성도의 삶의 태도와 방식이 도출된다.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신명기 26:12)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첫 소산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환대 은혜에 대해 인정하고 감사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뿐만 아니라, 그 소산을 연약한 타자들과 나눌 것을 명령하신다.
하나님의 환대 때문에 구원받은 자들이 이제 환대를 베푸는 자들로 살아갈 것을 요구받는 것이다.

신약의 예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환대의 실체로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사회의 아웃사이더들과 함께하기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즐거워하셨다.
심지어 그것이 사회문화적으로 또 종교적으로 터부시되는 일이었음에도 그 어떠한 비난도 예수님의 환대를 막지 못했다.
예수님은 기꺼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 불리셨다.
그리고 우리 또한 감히 예수님의 그 넉넉함 품에 안겨 있다.

물론 환대하는 삶으로의 부르심은 오늘날 우리에게 참 불편한 메시지임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환대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할 때 맞닥뜨리게 될 수많은 현실적 문제들이 우리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서 성경의 가르침은 슬쩍 뒤로하고 마는 것이 우리의 부족함이고 연약함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환대하는 삶으로 초대하실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심을 믿어야 한다.
환대하는 삶으로의 전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바로 환대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유람선이 아니라 구조선이다.
유람선을 타고 가는 듯한 신앙생활에서 이제부터는 구조선을 타고 생명을 구원하는 구조대원의 역할을 바르게 감당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면 반드시 세상은 비난의 화살을 날리던 교회를 향하여 칭찬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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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회심(The Secret Thoughts of an Unlikely Convert)
로자리아 버터필드 지음



레즈비언의 삶을 버리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온 페미니스트여성에 대한 간증이다.

오늘날 반동성애 운동이후에 그들을 돌보는 사역이 미흡한 가운데, 동성애자들을 교회와 개인이 어떻게 돌보고 이끌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동성애는 복음으로 극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책은 여러가지를 알게 합니다. 

1. 교회 밖에서 바라본 교회의 모습

2.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성도들은 어떤 자세로 그들을 대해야 하는가?

3. 성소수자들이 그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공동체에서 느끼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

4. 교회는 어떤 부분에서 교회 밖 사람들을 불편하고 갈등하게 하는가?

5. 복음을 통한 회심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저자는 대학 부교수이자 종신교수 자격을 부여받은 엘리트 여성이고, 학과장을 맡는 동시에 성소수자 인식 개선에 앞장서는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레즈비언이자 사회운동가이기도 한 인물입니다.

여기까지 나열한 수식어 만으로도 그리고 그의 본인의 의견으로도 그가 얼마나 복음과 먼 인물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런 그에게 있어 기독교인들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확고하게 좋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기독교인들이 엉성한 사고의 소유자들처럼 보였다. 빈곤과 폭력, 인종차별과 같은 이 세상의 실제적인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지닌 비현실적인 세계관이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책을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천박하다'라고 조롱하는 방식, 즉 토론을 심화시키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둘러 종결시키기 위해서 막무가내로 성경책을 끌어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걸핏하면 들먹이는 "성경말씀에 의하면"이라는 말은 정상적인 사고를 포기하라는 주문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 말이 나오면 영락없이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화가 파국을 맞았으니까.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캐치프레이즈나 상용어구들도 역겹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이 답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도 뿌리 없이 서있는 나무를 보는 느낌이 든다.

답은 질문이 주어진 다음에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답을내놓아야지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리는 포괄적인 말을 답이라고 내놓아서는 안 된다.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에요"라는 대답을 들을 때마다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을 어기는 짓거리, 또는 값싼 감상으로 뒤범벅된 너절한 감사카드를 보는 느낌이 든다. 
..(중략)..

그들이 반지성적인 사람들처럼 보인다는 것 외에 내가 기독교인들에게 느끼는 두려움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중략)..

레즈비언들의 공동체는 내게 안전하고 안정된 보금자리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곳은 내가 가장잘 알고 아끼는 사람들이 속한 공동체 이기도 했다. 하지만 레즈비언 공동체가 다가오는 사람들을 팔 벌려 포용하고 환영하는 반면에 기독교인들의 공동체는 배타적으로 보였고(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다) 쉽게 사람들을 정죄하려 들거나 냉소적이고 이질적인 요소가 그들에게 섞일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본문 p25-26)

 

이 부분을 읽으며 등골이 오싹하고 얼굴이 벌개져왔습니다. 아니라고 반문하고 픈 분들도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공동체는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으신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그렇지만 상처는 준 사람 기준이 아니라 받은 사람 기준으로 생각되어야 하듯, 교회 밖에서 바라보는 교회를 향한 시선은 우리 성도들이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 글이 더 귀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분께선 내가 최근에 반갑게 맞이하고 시간을 따로 내서 새로 방문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방문한 기억이 있는지만 돌아봐도 답은 나올 것 같습니다. 기독교 진리는 배타적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이고, 세상 종교가 말하는 어디에나 신이 있다는 범신론도, 선행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자력 종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진리가 배타적이라고 해서 기독교인들이 그런 태도를 가져선 안될 것입니다.

 

안 그래도 복음은 친절하지도 듣기 좋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듣는 이가 스스로가 죄인임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복음의 씨앗이 어떻게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뿌려질 수 있을까요? 

그 단서를 저자가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과의 만남의 장면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시러큐스 개혁장로교회 담임목사 켄 스미스가 보낸 편지도 그런 편지들 가운데 섞여 내게 왔다. 그의 편지는 매우 친절한 어투로 나 자신도 간절히 대답하고픈 그런 질문들을 묻고 있었다. 당신은 투고에 실린 결론에 어떻게 이르게 되었는가? 당신은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가? 켄 목사는 내 글의 근거가 되는 전제들을 더 깊이 연구해 보라고 권하고 있었다.
..(중략)..

전화상으로 얼마간 즐거운 대화를 나눈 후 그가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기 전에, 그때서야 생각이 났는지, 초면인 사람의 집으로 저녁 식사를 하러 오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자신과 아내가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나가는 것도 좋다고 했다. 나는 그가 아주 사려 깊은 사람, 아니 거의 기사도를 따르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중략)..

저녁으로 채식주의자를 위한 볶음요리를 준비했다는 플로이의 말을 듣고 얼마나 안도감을 느꼈었는지는 지금도 기억난다. (도덕적인 이유에서는 물론 건강상의 이유로 나는 채식을 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중략)..

꽤 더운 칠월 날씨였지만 두 사람이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있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환경문제 전반에, 특히 오존층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그들도 그런 것 같았다.)
..(중략)..

나는 그들과 친숙해지고 싶었지만 내 도덕적인 잣대들을 포기할 만큼은 아니었다. 레즈비언으로서의 내 정체성, 동성애 문화, 가치관들이 내게는 훨씬 더 중요했다. 삶의 경험뿐만 아니라 연구와 사유의 과정을 통해 나는 내가 지닌 문화, 가치들을 소유하게 되었다. 

내가 켄과 플로이를 보고 바로 마음에 들어했던 것은 그들이 그런 점에 민감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 두 사람과 나는 명백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은 내가 빈 칠판 같은 상태로 그곳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내게도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견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고, 대화를 하면서도 충분히 나를 존중해 주었다.
..(중략)..

켄과 플로이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파악하려 들지 않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내말을 경청해 주었다. 그들은 기독교인의 동정심을 가지고 이방인인 내게 다가오는 긴 여정을 시작하려 했다. 식사 중 그들은 내게 복음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고 식사 후에도 교회에 나오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으레 나오리라 예상했던 말들이 나오지 않은 덕분일까 식사 후 켄이 나랑 계속 연락을 하며 지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을 때 나는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본문 p36-37)

 

그런 부담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밖 사람이 교회 안 사람을 만날 때..

 

직접 경험해 본 경험에서 아니면 주변 사람들의 경험으로부터의 간접 경험에서든... 많은 사람들이 막연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무례함에 대한 혹은 쉽게 정죄함에 대한 그런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무언가 다른 관점을 만들어내고 그 관점이 교회 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되살아 나는.. 그런 모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을 뵐 때마다 신앙인으로서 어떤 자세로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를 경계 하게 됩니다. 나의 섣부른 말이나 툭 던지는 멘트들이 누군가에게 평생에 걸쳐 복음을 접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의미에서 켄 목사님과 플로이 사모님의 모습은 정말 성도들이 어떤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고 신앙인이 어떤 겸손함과 예의를 가지고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모범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부부와의 첫 만남에서 첫번째 식사를 위해 본인을 교회로 초청했다면 그 즉시 뺑소니를 놓고 다시는 그들을 만나지 않았을 거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깊은 인내와 진심을 가지고 대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 안정적이면서 상호 신뢰가 쌓인 관계가 구축된 이후 켄 목사님의 주도적인 복음 전파로 인해 저자가 변화된 것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물론 모든 관계, 모든 사람에 대해 동일하게 진행되리라 보는 것은 어렵지만, 그 관계를 통해 그리고 사람을 통해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게 된 저자는 스스로 복음을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전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인간관계에 의해 마지못해 걸음 하는 신앙생활은 그 나름으로도 가치가 있겠지만 쉽게 무너지거나 쉽게 변질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복음과 자신을 비교해 나가며 가치관의 갈등과 충돌을 느끼고 감수하고 싸우고 고민하는 가운데 얻은 복음과 믿음은 그 든든함이 분명 다름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앞서 얘기한것처럼 인간관계에 의해 마지못해 걸음 하며 시작한 신앙생활을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복음을 들을 수 있다면 분명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요지는 복음을 듣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겪는 변화들은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 치열한 싸움과 변화를 스스로 싸워냅니다. 그리고 힘들거나 무너질 때에는 섣부른 조언이 아닌 항상 옆에서 든든히 있어주고, 믿어주며, 기도해 주는 동역자들의 조언과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동역자이자 중보자들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묻지도 않은 조언을, 특히 자신의 신앙 경험을 무조건적으로 진리라 믿으며 강요 아닌 강요를 하는 것은 정말 좋지 못한 자세입니다. 그런 모습은 중보 대상자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칫 내 생각을 기준으로 그 사람을 통제하거나 조종하는 것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변화를 드디어 느낄 정도로 자신이 변화되고 있음을 알아챕니다. 그러는 가운데 고민과 어려움이 있을 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지식을 쌓기 위해 말씀을 읽고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선후가 바뀌긴 했지만, 뒤에 있는 내용을 인용하며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은 교회 밖의 사람이 복음을 통해 회심을 하면서 느끼는 교회의 모습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묘사된, 그리고 내가 실제로 경험한 혹독한 회심의 과정을 고려할 때, 지금의 복음주의 문화가 정형화시킨, 믿음은 손쉬운 것이라는 생각들이 가져올 수도 있을 결과를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이 든다. 내가 사는 지역만 해도 복음주의의 놀이공원이라 할 만한 지역이다. 이웃들 중 몇 집은 지역의 대형교회들에 출석하고 있는데 교회 안에 패스트푸드 식당들이 입점해 있고 유명한 커피 체인점들과 바람을 채운 거대한 고무 놀이기구들을 가져다 놓았다.
..(중략)..

릭 워렌 목사는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회심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수님, 제가 당신을 믿고 받아들입니다." 죄인들을 받아들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말에 믿음을 거는 행위는 사람들을 그릇된 희망의 함정에 빠지게 한다. 릭 워렌 목사가 사람들에게 구원을 보장하는 방식은 위험스러울 정도로 잘못된 것이다. 그는 계속 설명을 한다. "만약 당신이 신실하게 그 기돌르 드렸다면 이제 축하를 받을 차례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 내 기도가 신실한지 여부를 내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구원의 은혜는 구속할 자를 선택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오래 참으시고 자신을 희생하시며 순종하신 구세주께 속한 것이다. 이렇게 큰 은총이 어떻게 내 신실함에 달려 있을 수 있겠는가? (본문 p 81-82)

교회는 편의와 새신자들에게 다가오기 쉽게 하기 위해 변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그 본질을 위협할 정도가 된다면 그것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그리고 새 신자들에게 분명히 알게 해야 합니다. 복음은 친절하지도 않고, 편하지도 않고, 쉽게 받아들여질 만한 내용도 아님을 말이죠.

복음은 듣는 이를 죄인이라 합니다. 당신이 틀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그토록 쉽게 받아들여진다? 전 그것은 위선이고 거짓이라 감히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자에게 든 고민은 "왜 동생애가 죄인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걸 왜 죄인줄 모르지? 하며 분개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성경 구절이 있는지 반문해 보고 싶습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분에게 그 반문을 했더니 창세기에 나온 소돔과 고모라 멸망 사건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소돔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동성애를 응징하기 위해서라고 알고 이해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왜 그렇게 하셨는지에 대한 말씀이 있는 것을 이번에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에스겔서 16장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소돔의 멸망은 동성애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그들의 1) 교만함과 2) 풍족한 가운에서도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돕지 않고 3)가증한 일을 하였기 때문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네 아우 소돔이라 표현함으로 실상 이 구절의 대상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그들의 숨겨진 죄악을 지적하시는 도구로 이 예를 들었음을 알게 됩니다.

 

죄의 선 후 구조에 대해 저자는 아래와 같이 적고 있습니다.

자만, 부요, 도락에의 집중, 자비와 겸손의 부재. 이런 죄악들 자체에서 본질적으로 성적인 요소들을 찾아볼 수는 없다. 우리는 흔히 죄가 논리나 심리학에 의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성적인 죄가 성적인 혹은 감정적인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지나치게 협소한 시각으로 성애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성적인 활동은 침대에서 벌어지는 일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넓은 범위의 욕구들, 필요와 갈급함 등을 포함한다. 성애는 우리의 삶이 처해있는 상황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그 표현으로서, 근원이나 기원이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깝다. (본문 p74)

 

우리는 현상에 집중하는 그 에너지를 조금이나마 그 근원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동서애는 분명한 죄이지만, 동성애에 집중하기 앞서 그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를 바라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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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는 속담이 있다. '코끼리'로 표상되는 대상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대상을 이루는 부분을 전체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를 빗댄 말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에 가까운지 모르겠다. 감각기관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고 그로 인한 경험적 지식이 곧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하니 말이다.

즉 감각 경험을 통해 받아들인 세계가 곧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인 것이다. 이를 두고 칸트는, '인간은 감각과 오성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고, 세계의 모든 대상은 인간이 가진 자발적인 인식 능력이 능동적으로 작용하여 구성해 낸 결과물들'이라고 했다. 결국 우리는 감각할 수 있는 세계만을 인식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감각할 수 없는 것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다니엘 키시'를 통해 본 뇌 가소성

 



지난 6월 5일 방송된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생후 13개월에 안구를 적출해서 앞을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 다니엘 키시가 소개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마치 눈이 보이는 것처럼 요리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사전정보가 전혀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신이 서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알았으며 근처에 어떤 건물이 있고, 요트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다니엘 키시가 말하길, 그가 앞을 보는 방법은 자신이 혀로 내는 소리에 있다고 했다.
'딱딱' 소리를 내며 주변 사물에 부딪쳐 반사되는 음파로 대상을 구별한다는 것이다.
마치 초음파를 이용해 사물을 구별하는 돌고래와 박쥐처럼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음파는 사물이 멀리 있을수록 돌아오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사물이 딱딱할수록 강도가 크게 느껴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음파를 통해 사물을 구별한다는 것이 보면서도 잘 믿기지 않았다.
방송에서는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로어델러 박사가 다니엘 키시와 함께 실험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실험 결과 비시각장애인이 시각정보를 처리할 때 활성화되는 조거피질이 다니엘 키시의 경우 소리를 통해 활성화되었다.

소리를 통해 사물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함을 입증한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니엘 키시가 앞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했으나 그의 말은 진실이었다. 또한 누구라도 훈련을 반복하면 그와 같이 앞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현실에서 가능한 기적처럼 느껴졌다.

책 <감각의 제국>은 EBS 다큐프라임 <감각의 제국>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다니엘 키시와 같은 시각 장애인이 앞을 볼 수 있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이 발달했을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같은 소리를 들려주더라도 다른 쪽 뇌의 활성이 더 강하거나 영역이 확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거지요. 그런데 과학적으로 공간에 대한 정보를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곳은 시각피질입니다. 꼭 시각이라는 감각이 아니어도 시각피질은 공간 표상을 굉장히 정확하게 하는 곳이기 때문에 시각에 해당하는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감각을 이용해 공간 파악을 할 수 있는 겁니다." -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 이상훈 교수, 본문 105-106쪽

"인간은 매우 시각적인 동물입니다. 그래서 좁게는 약 40퍼센트 정도의 뇌가 시각 정보체계에 관여하고 있고요, 넓게는 60퍼센트 가까이 되는데,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의 경우에는 시각 정보 처리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어서 체감각이나 청각으로 정보를 받아들였을 때조차도, 심지어 기억과제를 하고 있을 때조차도 시각피질이 매우 활성화된다는 보고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 이상훈 교수, 본문 108쪽


일반적으로 시각 정보가 입력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을 통해 입력된 정보로도 시각피질이 활성화되고 공간을 표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뇌가 결핍된 감각을 채우기 위해 다른 감각 정보의 영역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에서는 이를 '뇌 가소성'으로 설명한다. 뇌 가소성이란 '뇌가 생각과 활동을 통해 스스로의 기능과 구조를 변경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멀쩡한 성인의 눈을 가린 채 외부에서 들어오는 시각 정보를 완전히 차단하면, 뇌는 달라진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어떤 감각 하나가 차단되면 그 감각을 담당하던 뇌 영역이 다른 감각을 처리하기 시작하면서, 뇌가 영역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차단된 감각을 다시 열어 주면 뇌는 원상태로 돌아온다. 무엇을 감각하고 무엇을 감각하지 않느냐에 따라 수시로 뇌 지도가 달라진다. 감각은 어떤 식으로든 뇌에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끊임없이 뇌를 바꾼다. - 본문 102쪽


우리 몸이 바뀐 외부 환경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뇌 가소성 때문이었다. 우리가 무엇을 감각하느냐에 따라 뇌 지도가 수시로 달라지는 것이라면 더 이상 지능은 우리의 능력을 표상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또한 다양한 감각 경험을 통해 우리의 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긍정적인 감각을 경험함으로써 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반면, 스트레스를 계속 받는 상황에서는 부정적인 감각을 경험함으로써 우리 뇌를 부정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 감각의 언어

이 책은 우리의 감각이 공감이라는 능력을 갖게 함으로써 인류의 진화를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공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감정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이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은 흔히 본능적인 것이라고 한다.

책에서도 감정을 '감각의 언어'라고 설명한다. 감정에 따라 신체감정지도가 달라진다는 것인데, '사랑과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는 몸 전체의 감각이 증가했고,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에는 발 부분이 차가워' 진 것을 통해 인간의 감정에 따라 몸의 감각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의 감정이 '감각의 언어'이고 타고난 본능이라면, 갓 태어난 아기는 물론이고 태아 역시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책은 '수정 후 10주가 지날 무렵부터 태아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감각기관이 발달함에 따라 태아는 외부 자극에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각각의 자극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와이즈베리의 <퍼펙트 베이비>에 따르면, '엄마가 즐거워하면 태아는 힘차게 발을 차며 움직이고, 엄마가 슬퍼하면 태아의 발차기 횟수는 거의 절반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이를 통해 태아 역시 엄마의 감정 변화를 느끼는 것은 물론 이를 공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은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 배 속에서부터 감각할 수 있고, 엄마의 다양한 감정 변화를 느끼며 엄마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 태아가 엄마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엄마의 감정에 이처럼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그렇다면 공감도 감각처럼 본능적인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공감이 본능적으로 타고난 것이라면 왜 어떤 사람은 공감능력을 지닌 반면,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 걸까?

인간의 천성, 공감 능력

우선 공감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부터 살펴보자.
공감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엠퍼티(empathy)의 어원은 아인픨룽(Einfhlung)이란 단어는 아인('Ein, 안으로), 퓔룽(fuhlung, 느끼다)'라는 독일어에 기원을 둔 것으로, '타인의 마음, 타인의 감정, 타인의 현재 상태에서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생각을 내가 그 사람의 입장으로 들어가서 느끼고 지각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로먼 크르즈나릭은 공감을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보고, 그들의 감정(정서적 측면)과 관점(인지적 측면)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활용해 우리의 행동을 인도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공감은 단순히 타인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이 처한 상황과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이 동반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구분하여 전자를 정서적 공감 능력으로, 후자를 인지적 공감 능력으로 설명한다. 정서적 공감 능력은 무의식적인 것으로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떠올리면 된다.

이에 대해 소아정신과 전문의 김붕년 교수는 "유년기에 부모와의 정서적⋅감정적 교류로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뇌 발달이 이루어졌다면 그런 정서적 공감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반면에 인지적 공감 능력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그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고, 표정을 통해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책은 인간의 공감 능력과 뇌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고자 짧은꼬리원숭이 실험을 소개한다. 실험의 내용은 '전운동 피질(행동을 계획하고 움직임을 실행하는 기능에 관여하는 뇌의 영역)의 신경세포에서 발생하는 전기 작용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수로 실험실 연구원이 기록 장치를 끄지 않은 채 점심을 먹으러 갔고, 후식으로 한 연구원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걸 본 원숭이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는데도 '(원숭이의) 전운동 영역의 뇌가 활성화'되었다.

움직임이 있어야 활성화된 영역이 사람의 표정과 행동을 눈으로 관찰하고 심리적으로 모방한 것만으로도 활성화된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타인의 행동이나 의도, 감정을 머릿속에서 추측하고 모방하여 인간의 공감 능력을 담당하는 신경세포' 즉, 거울신경(mirror neurons) 때문이다.

거울 신경은 우리가 직접 행동을 행할 때에도 발화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와 유사한 행동을 할 때도 발화하는 세포들이다. 이렇게 발화한 세포들은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동기와 정서를 주로 담당하는 기관)를 자극해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까지 함께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거울신경은 타인의 마음이나 의도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매우 중요한 바탕이 된다. …… 그러나 거울신경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면 공감할 수 있는 기능 자체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폐 성향을 보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타인과 나에 대한 감정적인 교류 자체가 어려워져 사회적⋅인지적인 발달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 본문 202쪽


이를 통해 공감 능력이란 거울 신경의 발달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공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는 '거울 신경 회로'와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는 '측은지심 회로', 그리고 타인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인지적 공감 능력 회로'의 세 가지 공감 회로가 필요한 셈이다. '인지적 공감 능력 회로'는 차치하고라도 뇌의 신경세포인 '거울 신경회로'와 무의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측은지심 회로'는 타고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공감은 인간이 가진 천성인 것이다.

공감 능력의 결여가 말해주는 것

하지만 자폐증 환자나 사이코패스의 경우에는 이러한 공감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자폐증은 병적인 문제로 인지적 공감능력이 결여된 반면, 사이코패스는 정서적 공감능력이 결여된 경우로 '뇌의 감정 스위치라고도 불리는 편도체의 발달이 저하'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샐리&앤 테스트'라는 공감능력 테스트를 통해 아동의 인지적, 정서적 공감능력을 평가하고 9~10년 뒤 학교 폭력의 가해나 피해 여부를 조사한 결과를 보여준다. 4~5세에 인지적 공감능력의 결함이 있던 아이가 청소년기에 학교 폭력의 피해 학생이 되고, 정서적 공감능력이 결여되어 있던 아이는 10년 후 가해학생이 되는 경우가 통계적으로 많았다는 것이다.

인지적 공감능력이 부족한 경우 반복적인 사회성 훈련을 통해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자신의 행동을 조절해 나갈 수 있지만, 정서적 공감능력은 어릴 적 애착관계 형성에서 비롯되기에 결여된 경우 촉진시키는 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다만 자신이 폭력을 휘두른 결과 상대방이 어떠한 피해를 입는지 명확히 알려줌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공감 능력의 결여는 개인의 사회성과 적응에도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사회적인 범죄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정서적 공감 능력은 부모와의 정서적⋅감정적 교류, 즉 부모와의 애착관계 형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인간의 성장에는 결정적 시기가 있듯이 공감 능력 또한 적절한 시기에 자극을 받고 발달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의 양육 태도와 양육 환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공감,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앞서 앞을 보는 시각 장애인 다니엘 키시를 통해 우리는 감각할 수 없는 것조차 감각할 수 있음을 알았다. 이는 우리가 감각할 수 없는 세계의 존재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타인의 상황이나 입장을 이해하고 타인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이 잘 말해준다. 우리는 타인에게 공감함으로써 우리가 직접 감각할 수 없는 세계와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공감은 우리 인간이 가진 최상위의 감각인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 공동체는 공감 능력을 상실한 듯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쪽에선 신음하고 아파하는데도 다른 한쪽에선 귀를 막고 다른 이야기를 떠들고 있다. 책에서는 우리 인간에게 공감 능력이 있었기에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사회적인 연대와 협력을 통해 현재의 삶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우리의 천성인 공감 능력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말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처지가 되어 보는 것입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배고픈 아이들의 눈으로, 해고된 철강노동자의 눈으로, 당신 기숙사 방을 청소하는 이민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우리는 공감을 장려하지 않는 문화에 살고 있습니다."
- 2006년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오바마 연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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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핵무기 7200기를 갖고 있을 때 망하고 말았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다고 하여 두려워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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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광은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5가지의 법칙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 나오는 5가지의 법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열정보존의 법칙이다.

내가 쏟아부은 열정은 열정의 양만큼 결국에는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둘째, 힘의 법칙이다.

힘이 있는 곳으로 사람이 모이고, 힘이 있는 자가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힘을 갖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힘을 가지게 되는 그 순간부터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내가 가진 힘보다 더 큰 힘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힘이 있을때 상대를 배려해 줄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기브 앤 테이크의 법칙이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것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은 관계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넷째, 습관의 법칙이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말했다.

"생각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말이 되기 때문이다.

말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행동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습관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인격이 되기 때문이다.

인격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습관은 인생이다. 좋지 못한 습관이 있다면 빨리 버리고, 좋은 습관이 있다면 더욱더 활성화 시키자.

다섯째, 위대함의 법칙이다.

인간의 내면속에 감추어진 그 크기를 알수 없는 능력있다. 물질적인 성공이 아니라 가치있는 인간이 되는 것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사람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물질적인 부를 추구할때가 아니라 진정 소중한 무엇을 지키기 위할 때가 더 많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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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교회

톰 라이너&에릭 게이거 「단순한 교회」 생명의말씀사 P. 88~89


“단순한 교회는 영적 성장의 단계를 통해 사람들을 활동하게 하는 간단하고 전략적인 과정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모임이다.”

이 정의 다소 무게가 느껴진다.
이 정의를 하나씩 살펴보자.

단순한 교회는 설계된다. 그 교회는 부주의하게 던져진 것이 아니다. 우연히 계획된 것도 아니다. 목회는 “단순한 우연” 이상을 행하는 것이다. 목회는 용의주도하게 고려된 것이다. 조직화되어 있고 조심스럽게 설계되어 있다.

또한 단순한 교회는 염두에 두고 설계된다.

단순한 교회의 설계는 무언가를 중점으로 이루어진다. 프로그램과 목회는 무언가를 중심 주제로 삼는다. 그들은 교회의 연중 행사표와 소책자에 연연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계획되어 있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을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단순한 교회에서의 제자 사역을 위한 설계는 그 과정을 중심 주제로 삼는다.

단순한 교회는 간단하고 전략적인 과정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다.
과정은 간단하다.
혼란스럽지 않고, 이해하기가 쉽다.
지도자들은 그것을 알고,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한다.
과정은 의도적으로 단순하게 유지된다.
늘어나지 않는다. 매달 바꾸지 않는다.

단순한 교회는 단순한 과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복잡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많은 프로그램들이 과정에 덧붙여지지 않는다.
그 교회는 다수의 새로운 프로그램들과 그것에 제시된 모델들을 거부한다.

과정이 방법(how)을 뜻하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전략적이라 할 수 있다.
과정은 교회의 목적이나 비전에 매여 있다.
그 둘은 친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과정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한 실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과정은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활동하게 하기 위해 연속적으로 일어나도록 계획되어 있다.

단순한 교회의 과정은 사람들을 활동하게 한다.

단순하고 전략적인 과정은 활동을 추진한다.
과정은 논리적으로 흐른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끌리고, 애착이 가는 쪽으로 움직인다.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활동을 진척시키기 위한 도구들로 사용된다.
그리고 단순하고 전략적인 과정을 통한 활동은 의도적이고, 의도된 최종 결과를 가진다.

단순한 교회의 과정은 영적 성장의 단계를 통해 사람들을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영적 성장의 단계를 통해 사람들을 활동하게 하시는 하나님과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변화된 삶은 핵심이며, 의도된 최종 결과다. 사람들 속에 형성된 그리스도가 그 목적이다.

단순한 교회는 사람들이 그들의 영적인 여정에서 각기 다른 단계에 있다는 사실과, 영적 성장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 교회는 영적 성장의 단계를 통하여 사람들을 활동하게 하시는 하나님과 동반자가 되도록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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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 은혜의 순간은 한 사람의 일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

[크리스찬북뉴스 칼럼] 자비(mercy)와 은혜(grace)

자비’와 ‘은혜’는 하나님의 속성을 의미하는 중요한 두 주제이다. 우리는 흔히 두 낱말을 동의어인 양 혼용할 때가 많다.

어떤 학자들은 구약에서는 ‘자비’란 말을 사용하고, 신약에서는 ‘은혜’란 말을 쓴다고 구분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자비’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면제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면,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선물을 주는 것을 뜻한다고 보면 된다.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해 보자.

자비는 이삭의 심장에 꽂힐 칼을 막아준다.
은혜는 수풀에 걸린 숫양을 공급해 준다.

자비는 달려가 탕자를 용서한다.
은혜는 모든 좋은 것으로 잔치를 베푼다.

자비는 강도 만난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 준다.
은혜는 그가 완전히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모두 부담한다.

자비는 십자가에 달린 강도의 외침을 들어준다.
은혜는 그날에 낙원을 약속한다.

자비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대가를 치른다.
은혜는 우리의 악함을 그리스도의 의로 덮어준다.

자비는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회심시킨다.
은혜는 그에게 사도가 되라고 외친다.

자비는 반역과 죄의 삶에서 존 뉴턴을 구한다.
은혜는 그를 목사가 되게 하고 시대를 초월한 찬송가의 저자가 되게 한다.

자비는 지옥에 이르는 문을 닫는다.
은혜는 천국에 이르는 문을 연다.

자비는 우리의 수고를 거부한다.
은혜는 우리가 수고하지 않은 축복을 더해준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프랑스 혁명기에 굶주린 가족을 먹이기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다 잡혀 감옥에 갇히기 전까지는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19년 동안 복역하고 나온 그는 사회와 하나님을 향하여 원한과 분노를 품은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프랑스 동서부에 사는 일흔네 살의 미리엘 신부 역시 혁명기에 큰 고초를 겪은 사람이다.
유산 가운데 남아 있는 고가품이라곤 칼과 포크 여섯 벌, 국자 하나, 그리고 촛대 두 개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는 곤궁한 자들에게 동정을 베풀고 겸손한 종으로서 그들을 섬겼다.

나흘 간의 자유를 누린 후 장발장은 이제 피로와 굶주림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그는 미리엘 신부의 집 문 앞에 서 있다.
염치고 자시고 그 집을 여관으로 오인한 그는 뻔뻔스럽게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거기서 신부의 따뜻한 대접을 받고 당혹스러워한다.
그날 밤 모두 잠든 사이, 장발장은 19년 만에 처음 누워본 매트리스와 하얀 시트를 뒤로 한 채 몰래 귀한 은식기들을 배낭에 훔쳐넣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튿날 아침,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그 식기들은 자기가 얻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장발장을 보며, 신부는 헌병들에게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

헌병들에게 장발장을 놓아달라고 하며, 신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시 만나 반갑소. 그런데 내가 은촛대까지 함께 주지 않았소? 아마 200프랑은 족히 받을 수 있을 거요. 포크, 스푼과 함께 그것도 가져가시오.”

믿기 어렵다는 듯 장발장이 신부에게 묻는다.

“정말 나를 놓아 주시는 겁니까?”

신부는 그를 안심시키며 이렇게 덧붙인다.

“형제여, 떠나기 전에 여기 당신 촛대도 가져가시오. 그리고 절대 잊지 마시오. 이 돈을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말이오….

장발장, 나의 형제여, 더 이상 악에 속하지 말고 선에 속하시오. 내가 당신에게서 산 것은 바로 당신의 영혼이오. 나는 그것을 가증스런 생각과 죽음의 영으로부터 이끌어내어 하나님께 드린다오.”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에 당혹감을 느낀 장발장은 자신의 영혼 안에 있는 어두움, 그리고 가슴속의 한을 관통하는 사랑의 강렬한 빛, 이 둘이 서로 대조되는 것을 본다.

“은혜의 빛이 그의 삶, 그의 영혼에 닿았다. 그에게 그것은 마치 천국의 빛으로 사탄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정말 그랬다.

“그는 더 이상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의 모든 것이 변화했다.” 그 신부는 “이 비참한 인간의 전 영혼을 장엄한 광채로 채웠다.”

그 사건이 있은 지 하루 만에 그는 범죄의 현장으로 돌아와서 “기도하는 모습으로 그 자애로운 신부의 집 문 앞, 어둠이 깔린 길에 무릎을 꿇었다.”

은혜의 순간은 한 사람의 일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 아니, 그것은 영원을 변화시키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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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 일, 복… 한국교회 성도들의 세 가지 오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는 크게 세 가지 혼동이 있다.
성경을 이렇게 오해하면 성도의 신앙 성숙이 대단히 어렵다.

사실 대단히 깊숙히 퍼져 있는 신앙적 혼란이고, 2천 년 기독교 역사와 관련이 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 교인들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신앙의 오해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복, 이 세 가지다.
성도들이 이 문제로 혼란을 겪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이래서 성경적 신앙의 성숙이 어려워진다.
그것은 결정론, 이원론, 그리고 무속신앙이다.

하나님의 뜻을 결정론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이원론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을 무속적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첫째, 하나님의 뜻과 결정론의 오해

성경이 아닌 결정론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을 오해하면, 나의 인생 미래에 어떤 하나의 길을 하나님이 미리 정해놓으셨고, 그것을 보물찾기하듯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뜻을 찾으려고 애쓴다.

둘째, 하나님의 일과 이원론의 혼란

이원론은 고대 헬라의 영육 이원론에서 로마가톨릭의 성속 이원론으로 발전되어 왔다.
성도가 이원론으로 하나님의 일을 받아들이면, 교회 안의 일과 교회 밖의 일거룩한 일과 속된 일로 구분한다.
교회에서 하는 일은 거룩하고 가치 있으며, 세상에서 하는 일은 속된 일이라고 본다. 


셋째, 하나님의 복과 무속신앙적 경향

하나님의 복을 무속신앙으로 오해하는 경우는 한국교회에 아주 흔한 현상이다.
신자들이 나 혼자 복 받으려고 열심히 예수 믿는다.
그러면 그 성도에게는 두 가지가 없다.
믿음과 삶의 변화가 따로 가기에 삶의 변화인 성숙이 없다.
그는 나 혼자 복받는 것이 목표이므로 복의 통로가 되려는 생각이 아예 없다.

이런 세 가지 오해와 혼동으로 한국교회 성도들은 길을 잃은 상황이다.
이 혼란에서 벗어나 성경적 신앙으로 가려면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제럴드 싯처의 <하나님의 뜻>
브루스 월키의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인도>
레너드 맥컬리, 제람 바즈의 <인간 하나님의 형상>

이 세 가지 혼동은 마치 칡넝쿨같이 얽혀 있어, 현재 한국교회 신자들의 내면을 뒤죽박죽 만들고 어린아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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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資本論)

애덤 스미스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Capital: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자본론(資本論, Das Kapital)은 카를 마르크스가 독일어로 집필하고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편집한 방대한 정치경제학 논문으로 1867년에 제1권이 출간되었다.

《자본론》은 주로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 및 자본주의와 영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데, 내용은 1859년 발간된 마르크스의 저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1권은 자본의 생산과정, 2권은 자본의 유통과정, 3권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이 부제로 붙어 있다.
1권은 1867년에 나왔으며  2, 3권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유고를 모아 집필, 각각 1885년과 1894년 발간되었다.

국부론(國富論) / 칼 막스

애덤 스미스의 대표적인 저서이자 애덤 스미스 본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도덕감정론보다 후세 사람들에게 더 각광을 받은 책.

원제는 《국부의 형성과 그 본질에 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이다.
일상 대화에서 원제를 말하기에는 원제가 꽤나 길기 때문에 일상 대화나 비격식적인 글에서는 국부론(國富論)으로 짧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영어권에서도 The Wealth of Nations로 줄여서 부른다.

영국의 학자 애덤 스미스가 찰스 타운센드 공작의 아들을 개인과외하며 유럽 각지를 여행하고 1766년에 영국에 귀국한 뒤 1776년까지 10년간 커콜디에서 자신의 서재에 파묻혀 지내며 쓴 책이다. 사실 이 여행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스미스는 경제학과는 거리가 먼 철학자였는데, 여행을 통해 경제학에 대한 관심과 식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사실은 국부론의 초안을 작성할 때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도 드러난다.
"나는 요즘 시간을 때우려고 책을 한 권 쓰고 있다네."
이는 케인스가 막 경제학에 흥미를 붙일 무렵 친구에게 했던 말인 "어쩌면 나는 경제학에 소질이 있을지도 몰라."와 더불어 경제학 역사상 가장 겸손한 발언으로 손꼽힌다.

경제학을 잘 모르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은 아는 사람이 많은데, 바로 이 《국부론》에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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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시스 요시히로 후쿠야마(Francis Yoshihiro Fukuyama, 1952. 10. 27 ~ )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

헤겔 정치철학을 신봉하는 일본계 미국 학자이다.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에서 인간의 역사 과정은 두 가지 큰 힘의 상호 작용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첫번째 힘은, 부를 축적해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인간의 합리적인 욕망이라는 힘이다.
두번째 힘은, 역사 진보 과정의 중요한 원동력으로서 헤겔이 ‘승인 받기 위한 투쟁’이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자신의 본질이 자유롭고 도덕적인 존재임을 인정 받으려는 욕망이다.

이같은 결론은 이제 전세계가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일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통일되어 가는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헤겔의 역사 개념이 이데올로기의 역사를 지칭하는 것인 만큼, 이제 대립된 이데올로기를 통일함으로써 역사의 종언을 선언한다는 것이 후쿠야마의 논지이다.

<트러스트>는 그 후속편 성격을 띠고 있는데, 그러한 사실은 이 책의 첫장 제목이 ‘역사의 종언을 맞이한 인간의 상황’이라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 책의 논지는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적 특성, 즉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신뢰에 바탕 두어야 사회 발전


후쿠야마는 고 제임스 콜맨의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사람들이 공통의 목적을 위해 단체와 조직 내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이해하여 중시한다. 즉 개인 간의 관계가 신뢰에 바탕을 둔 사회는 발전과 번영을 구가한다는 주장이다.

후쿠야마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찬양하면서도, 개인의 이기심에 기초한 물질적 동인만으로는 사회가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개인의 이익을 큰 집단의 이익에 종속시킬 수 있는가 여부와, 규범과 가치를 공유하는지 여부가 더욱 중요하고, 그 공유된 가치로부터 신뢰가 탄생하며 신뢰는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은 근본적으로 신뢰가 낮은 저신뢰 사회이고, 일본과 독일은 고신뢰 사회이다. 한국이나 중국같이 가족 중심적인 사회는 근본적으로 가족 이외의 사람과 사회적 협동이 이루어지기 상당히 어렵다고 비판한다. 우리가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지적이다. 한국에서 뇌물과 부패가 성행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 제도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신뢰하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공무원과 정치가를 신뢰하는 사회라면 뇌물을 흔히 주고받는 현상은 절대로 나타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후쿠야마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사회 발전의 동인을 신뢰에 너무 많은 무게를 실어주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자신이 인정하듯이 합리적 선택론에 기초한 이기심이 80%를 설명해 주는 고전경제학의 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합리적 선택론이 사회를 설명해 주는 충분 조건은 아니더라도,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점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인류가 물질적으로 발전해온 동인으로는 시장경제 체제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구승회 박사의 번역은 대단히 수준 높은 것이어서, 독자들은 이 책이 번역한 것이라기보다는 애초에 우리 글로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지도 모른다. 단지 utility를 ‘효용’이 아니라 ‘유용성’으로, rational choice를 ‘합리적 선택’이 아니라 ‘이성적 선택’으로 번역한 것이 옥의 티로 남는다. 후쿠야마의 책은 오늘날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시장 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두 가지 축으로 잘 설명했다는 점에서 지성인의 필독서다.

욕구에 의한 역사의 발전

1. 더 잘려는 욕구
- 경제적 욕구

2. 인정 받으려는 욕구
-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장점이 많으나 시들어간다.
인민 대중을 인정하지 않고 간부들끼리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한다.
- 자유민주주의는 약점이 많으나 발전하는 이유는 개인의 자유를 인정해 주기 때문에 발전할 수밖에 없다.


미국 스텐퍼드 대학교의 교수이며 철학자, 정치경제학자이다.
일본계 미국인 3세이다.
그는 이데올로기 대결의 역사를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프레임으로 설명하면서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났다"고 평가한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하다.

후쿠야마는 1989년 냉전이 종식되는 순간을 역사의 종말이라고 하였다.
그 근거로 이념적으로 헤겔이 말한 인간의 욕구에 대해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성이 보장될 때 충족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이를 가능케 하는 정치제도가 바로 민주주의 정치제도라고 보았고 이를 궁극적이고도 역사적으로 최종적인 정치 체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적인 관점에서 냉전이라는 기간 동안 민주주의 체제는 파시즘과 공산주의 체제로부터 많은 투쟁을 거치면서 승리를 거머쥔 만큼 더 이상 민주주의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이념과 철학 체계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역사가 종말에 도달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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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인 클레어본의 혁명적인 삶 이야기 / 쉐인 클레어본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무소유 공동체 심플웨이 설립자 쉐인 클레어본의 혁명적인 삶
나눔의 폭발적인 전염성을 삶으로 보여 주는 사랑의 급진주의자 이야기

"저항할 수 없는 믿음 혁명이 당신 안에서 시작되고 당신의 작은 사랑의 행동을 통해 온 세상을 덮게 될 것이다.
다시 크리스천으로 살기를 시작하자. 예수님이 용기를 주신다."


"쉐인 클레어본의 이 책은 새로운 세대의 신자들이 깨어나고 있으며, 다시 새롭게 복음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음을 보여 주는 이 시대 최고의 증거다." (짐 월리스)

▲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 쉐인 클레어본 지음 / 배응준 옮김 / 아바서원 펴냄 / 400쪽 / 1만 6000원

자본, 폭력, 권력, 전쟁에 깊이 물들어 있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찾지 못하는 오늘날 교회는 천국의 희망을 전하는 것으로 교회의 사명을 다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더불어 세상의 가치관을 복음 속에 버무려 넣어 세상 사람들에게 거북스럽지 않은 교회가 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다. 이런 교회의 틀 안에 있는 교인들은 나에게'만', 우리 가족에게'만' 복을 준다는 편안한 말씀을 듣기에 익숙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만 알았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에 무뎌져 가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행동하는 믿음을 보여 온 저자 쉐인 클레어본은 안전하고 편안한 복음이 아닌, 위험하고 불편한 복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따르기로 결단했다면, 호불호에 따라 말씀을 선별해서 실천할 것이 아니라 삶 속에 그대로 말씀이 구현되어야 한다고 외친다. 말씀을 깨달았다면 그대로 실천해야 하는 단순한 원리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말만 하는 전도자가 아니다. 그런 외침과 더불어 삶 속에서 말씀이 진실로 실현되는 것을 증언하며 살고 있다. 쉐인은 대학 시절 필라델피아 뒷골목의 노숙자들을 돕는 일을 시작으로, 인도 캘커타에서 테레사 수녀와 함께 나환자 돌봄 사역에 합류했으며, 9‧11테러 이후 미군의 폭격으로 부상당한 바그다드의 환자들을 치료하며 위로하기 위해 이라크를 방문하기도 했다. 또한 월스트리트 거리에서 희년 의식을 거행함으로 성경적 경제관을 외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무소유 공동체 '심플웨이'를 설립해서 노숙자들과 도심의 가난한 자들에게 음식과 의복을 제공하며 보육과 의료 혜택을 베풀며 그들의 신앙과 재활을 돕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공동체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실현해 내며,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 책은 반쪽 복음을 넘어서서 믿고 깨닫는 대로 실천하는 믿음 이야기다. 말씀을 듣고도 편안함에 빠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불편하고 부끄럽고 두렵게 하는 책이다. 말씀을 깨달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하는 이들에게 믿음을 실천하게 도와주는 지침서다. 잠자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거부할 수 없는 혁명(Irresistible Revolution)', 믿음 혁명으로 초대하는 통렬한 외침이다.

쉐인 클레어본(Shane Claiborne) 

무소유 공동체 '심플웨이(Simple Way)' 설립자 쉐인 클레어본은 사랑의 근본적인 의미와 기독교의 뿌리를 찾아간다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평범한 급진주의자'라 칭하며, 죄로 인해 엉클어진 세상의 탄식에 귀 기울이고 그 탄식에 대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는 대학 시절 어느 교수에게서 "세상이 네 영혼을 도적질하지 못하게 하라.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예수를 선택한다는 것이며, 목숨을 걸고 담대하게 어떤 것을 하겠다고 결단하는 것이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전을 받아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인도 캘커타로 가서 테레사 수녀와 함께 10주 동안 나환자들을 돌보면서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임하는 천국을 보았고, 그들의 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2003년 3월에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일하며 폭격이 있었던 지역과 병원을 방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고 예배했다.

또한 2004년에는 쓰나미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팀을 결성하여 태국 현장에서 사역했으며 저개발 국가의 수질 개선을 위한 '우물 파 주기 운동'과 인터넷 모금 운동인 '관계의 십일조 운동'을 통해 전 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2011년 5월 케이티와 결혼하여 필라델피아에서 살고 있다.

심플웨이 리더이자 주목받는 설교자로서 평화, 사회 정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활발히 전하며 여러 책을 집필했다.
대표 저서로 <행동하는 기도>(IVP 역간)가 있다.

심플웨이 홈페이지 www.thesimpleway.org


"이 땅의 크리스천들에게 각성제가 되어 줄 것이라 확신하는 책이다. 감히 성경 곁에 함께 두고 읽어야 할 또 한 권의 책으로 추천한다. 부디 스마트폰을 팔아서라도 사서 읽기를!" -김성수, 예드림교회 목사. 작은도서관 '호모북커스' 대표

"작금의 한국교회 상황을 마음속 부담으로 가진 자들이라면, 어떻게 예수를 진정으로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자들이라면, 이 책을 꼭 읽으라. 바다 건너에서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동지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형국, 나들목교회 대표 목사. <교회 안의 거짓말> 저자

"한국교회의 거듭된 삽질에 기독교인임을 반납하고 싶은 사람, 물 타지 않은 복음 그대로를 '래디컬'하게 전하고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 '허다한 무리'에 속하길 거부하고 예수가 간 좁은 길을 우월감 없이 가려는 사람이라면 닥치고 이 책을 읽으라. 그리고 여러분 하나하나가 우리 시대가 보길 원하는 겸손한 대안'들'이 되라. 교회에 희망이 없다고 하지 말라. 우리가 교회다." -박총, 작가. 도심형 재속재가수도원 '신비와저항' 원장

"그리스도께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려는 저자의 열정을 반만이라도 닮는다면, 오늘날 복음주의 운동은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될 것이고, 우리는 이 깨어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로날드 사이더,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저자

"이 책을 읽다 보면 나처럼 당신도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이런 불편함이 필요하다." -브라이언 맥클라렌,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온다> 저자

"당신이 쉐인을 안다면, 이 책의 페이지마다 소리치는 저항할 수 없는 그의 외침을 듣게 될 것이다. 당신이 쉐인을 모른다면, 페이지마다 담겨 있는 저항할 수 없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레너드 스위트, <귀 없는 리더? 귀 있는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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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진정한 기도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크리스천은 기도가 무엇인지 묻고 깨달을 책임이 있다. 이에 대한 도움을 줄 R. C. 스프로울의 신간 ‘어떻게 기도할까?’가 15일 발간됐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자신들의 기도생활이 미흡하다고 느껴 예수님께 도움을 청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실제로 마태복음 6장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다.

오늘날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처럼 이 기도문을 기계적으로 암송하는 것은 결코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바가 아니었다. 저자는 주기도문이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할 때 실천해야 할 원리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도의 모델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주기도문의 각 구절, 심지어 한 단어 한 단어까지 자세히 살펴보고 그 원리들을 찾아내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권면하신 것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에 대한 도움을 요청한 까닭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누리신 관계의 풍성함을 경험하고자 하는 갈망이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주기도문의 문자적 의미를 넘어 예수님이 그 속에서 가르쳐주시는 진리들을 발견함으로써, 현대의 제자들 또한 더 풍성하고 깊은 하나님과의 동행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 R. C. 스프로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의 모델 주기도문이 자주 간과되고 오해되기 십상인 영적 훈련의 원리들을 담고 있는 보고임을 설명한다. 그는 먼저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기도의 예들을 보여준 다음, 한 구절 한 구절 주기도문을 파헤친다. 특유의 명료함으로 각 구절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할 뿐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주기도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기타 주제들, 즉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뜻, 용서, 유혹 등에 대해 자세히 풀어준다. 또한 부록에서는 기도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과 답,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기도 간의 복잡한 신학적 관계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R. C. 스프로울의 <어떻게 기도할까?>는 그리스도인 삶의 전 영역에 있어서 기도가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추천글

R. C. 스프로울은 난해한 진리들을 명쾌하고 인상적이며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설명하는 데 천부적인 자질을 지녔다. 그는 주기도문을 가르치기에 이상적인 교사다. 왜냐하면 주기도문 자체가 ‘기도’라는 어려운 주제에 대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놀라울 정도로 간결하게 가르쳐 주신 하나의 심오한 교훈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크나큰 유익과 도움을 줄 것이다. - 존 맥아더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 담임목사 / 『담대한 복음전도』 저자)

나는 R. C. 스프로울의 강의를 좋아하는데 이 책은 그의 목소리와 흡사하다. 놀랍도록 생생하게 진리를 꿰뚫는 바로 그것이다. 그의 뛰어난 인용솜씨와 목회감각에서 나온 지혜는 그의 강의를 듣는 것만큼이나 읽기 수월하게 만들어준다. (게다가 책이 짧아서 금상첨화다!) 스프로울은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성경말씀을 명료하게 해석해준다. 그는 중요한 것들, 즉 기도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 역사에 대한 진리들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충분히 제대로 알고 있다. 말미에는 도움을 주는 질의응답까지 덧붙여져 있다. 이 책은 이제 명실공히 기도의 고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 - 마크 데버 (캐피털힐침례교회 담임목사)

R. C. 스프로울은 내가 처음으로 신학을 배운 선생님이다. 갓 믿은 신자로서 나는 그가 진행하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Renewing Your Mind)’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면서 신학과 철학, 교회사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는 <어떻게 기도할까?>를 통해 자신의 방대한 신학적, 철학적, 역사적 재능과 자원들을 기도라는 중대한 주제에 쏟아 붓고 있다. 이것은 워낙 중요한 주제인 만큼 잘 숙련된 선생의 손에 다루어져야 마땅하다. 그가 나에게 가르쳐준 다른 모든 것과 더불어,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우선순위를 배우는 데 그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더없는 특권이다. 이 짧은 책을 읽고 나면 당신 앞에 기도생활의 새로운 패턴이 펼쳐질 것이다. - 타비티 안야빌리 (케이맨 제도 그랜드 케이맨 제일침례교회 담임목사)

저자소개

R. C. 스프로울 - 개혁주의 신학계를 이끄는 저명한 신학자로 심오한 진리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글과 강의로 유명하다. 또한 딱딱하게 들리던 성경 교리를 명쾌한 논리와 적절한 예화로 풀어, 성경 말씀이 주일 예배뿐 아니라 나머지 6일의 삶과 떨어질 수 없게 연결고리를 만들어준다.

낙스신학대학교 등 여러 주요 신학교에서 신학과 변증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세인트 앤드류 채플(St. Andrews Chapel)의 담임목사로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평신도 교육에 열정을 품고 70여 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리고니어 선교회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Renewing Your Mind)’라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기독교의 진리를 일반인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1994년 『크리스채너티투데이』의 비평가들이 뽑은 ‘신앙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학자’ 3위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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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존 프리처드/김홍일, 민경찬/비아/강도헌 편집위원

기도하는 인간(homo orans)

 

 

인간은 기도하는 존재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그가 종교가 있든 없든 기도 한 번 하지 않고 죽는 인간을 없을 것이다. 또한 기도는 그리스도교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왜 기도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관점에서 답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과 생각을 인간은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도의 목적에 대해 기독교 영성가 오스왈드 챔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도의 목적은 이상적이지 않은 현실에서 하나님과 이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이곳에서의 현실은 우리에게 이상적인 조건을 제공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챔버스는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과는 먼 이상적이지 않은 현실이 주님과의 관계를 촉진시키고, 우리의 기도의 목적 또한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현실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상적이지 않은 현실 속에서 실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기도는 현실적이지만, 현실을 초월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꿈과 기도의 관계

 

요즘 교회에서는 현실을 초월하는 것에 대해 꿈과 비전이라는 단어들을 사용한다. 그래서 교파를 초월해 꿈과 비전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교회에서 매우 익숙한 단어들이다. 특히 청소년이나 청년들에게는 주요 설교 주제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필자도 과거 청년부를 지도할 때 꿈과 비전에 대해 많은 설교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최근에 필자는 청년들에게 비전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조심스럽고 꺼려진다. 금수저, 흙수저, 3포 세대, 4포 세대를 넘어 9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터라 말장난처럼 보일까봐 극도로 조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청년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미래에 대해 비전과 꿈을 가지기 보다는 불안감들이 감돌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럴 때 청년들과 성도들에게 어떤 설교를 해야 할까? 믿음을 강조하면서 어떤 꿈과 비전을 제시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 교회와 성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초월은 물질적 어려움에서 벗어나 물질적 풍요를 원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물질적인 초월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기도 또한 개인의 필요와 욕구들을 채워 달라는 기도, 혹은 고통이나 물질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물질적 기도를 드리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모든 관심과 기도가 여기에 무게를 두고 거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 미래가 그렇게 밝지 못하다.  

 

기도는 무엇인가?

 

종교학자들은 기도에 대해 인간의 욕망과 욕구에 대한 갈망이 기도의 출발이라고 말한다. 즉, 인간의 욕망과 욕구는 끝이 없기 때문에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이 기도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둘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기도를 하게 한다고 말한다. 즉, 인간의 불완전함은 완전함을 추구하고, 인간의 유한함은 영원을 추구하게 하면서 종교와 기도가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 들이 과거에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시대의 교회들에게는 상당부분 맞는 말인 것 같다.

 

기독교 안에서 기도에 대한 정의는 단 한 가지가 아니다. 다양한 기도의 정의들은 기도의 의미를 더 풍성하게 해 준다. 그러한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정의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기독교는 오랜 역사동안 다양한 하나님과의 대화 방법들을 발견하고 실천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도의 정의, 기도의 방법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재 삶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자리를 만들고 기도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작하기

 

본서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부의 주제는 ‘시작하기’이다. 그렇다 기도는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으나 막상 기도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본서는 기도를 시작하기 위해 먼저 삶의 속도를 늦추어라고 시작한다. 참된 기도(독백이 아닌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는 일상의 삶을 멈추고 하나님께 집중해야만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삶의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이때 기도의 길이, 기도의 질, 지식의 수준은 기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러한 것들에 신경을 쓰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 만남 보다는 자기 만족을 추구하기 쉽다. 시작하는 기도의 기도는 실재로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고, 자기의 솔직한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은 없다. 기도를 지속함으로 친밀함은 발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색하더라도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기도를 위한 시간을 찾아라. 기도에 도움이 되는 음악, 성경본문, 그림(헤겔에 따르면 상징은 인간의 종교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고안된 표현 형태이다. 이러한 상징에 집착하는 ‘상징주의’는 참된 영적 깨달음을 방해한다. 헤겔은 상징을 통해 얻어지는 상징적 지식과 하나님과 친밀한 만남을 통해 얻어지는 직접적 이해(통찰)를 날카롭게 구분한다. 그러나 상징자체를 부정하는 것 또한 ‘문자주의’의 위험을 안고 있다. 전문 독자라면 상징에 대한 헤겔의 견해를 두고 로마 가톨릭의 신학자 칼 라너, 개신교 신학자 폴틸리히, 그리고 고대 교부 아타나시우스의 상징에 대한 논의들을 참고하라. 칼빈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등을 활용해도 좋다. 관건은 규칙성에 있다. 습관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기도가 습관이 되는 것은 중요하다.  

 

더 깊게 들어가기

 

2부는 ‘더 깊게 들어가기’이다. 기도가 습관이 되면서 영적인 성장이 일어나고 영적인 성장을 통해 기도의 방식도 성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침묵을 통한 기도로 들어간다. 즉, 듣는 기도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깊이 들어가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때 의식을 집중하여 응시하는 ‘관상’(관상에 대해 개신교는 약간의 오해가 있다. 뉴에이저들이 사용하는 기법이라 하여 이교도적 행위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다. 관상은 집중하여 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시험 문제를 풀거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하여 응시하는 것 또한 관상적 방법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관상에 대해 무조건적 반감은 자제가 필요하다.)적 자세를 통해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상은 하나님을 향해 시선과 의식을 집중하는 것으로,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집중하도록 인도한다.

 

여기서 깊은 기도에 대한 오해 또한 풀어야 한다. 깊은 기도에 들어가면 신비한 것을 보거나 체험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실재는 그렇지 않다. 깊은 기도로 들어가는 과정은 사막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새로운 미지의 세계는 온갖 보화들로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니라 황량한 사막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황량함은 그곳에서 다가오시는 주님께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칫 하면 지루함을 느끼게 되고 기도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 현실적이고 외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삶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음도 유념해야 한다. 그러나 이 시간들을 기도로 잘 극복해 나가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와 총명함을 통해 통찰력들이 생기게 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기도를 통해 깨달은 바들을 행동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나아가기

 

3부는 ‘계속해서 나아가기’이다. 이 부분에서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기도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고 거기에 대한 답들을 제시하고 있다. ‘과학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기도가 응답받지 못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도할 때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해야 기도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등의 질문과 답을 소개한다.  

 

평생에 걸친 여정

 

인간을 구분하는 관점과 기준들은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서 필자는 본서를 읽으면서 ‘기도하는 인간’, ‘기도하지 않는 인간’으로 구분해서 생각해 보았다. 물론 기도에 대해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들은 여기서 배제된다.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인간이 왜 있을까? 분명 그들은 기도를 미루거나, 기도를 못하는 분명한 변명거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서를 읽어보라. 기도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눈을 감고 할 수도 있고, 눈을 뜨고 할 수도 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할 수있고, 일을 하면서도 할 수 있다. 기도는 언제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을 향해 언제 어디에서나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고, 언제 어디에서나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평생동안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기도 생활은 평생의 여정임이 분명하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를 미루거나 생략하는 인간이 아니라 기도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본서는 기도의 큰 그림과 핵심을 어렵지 않게 안내해 주고 있다.  

 

존 프리처드 (John Pritchard) 


1948년생. 성공회 성직자이자 문필가. 옥스퍼드 세인트 피터 갈리지, 케임브리지 리들리 홀에서 공부한 뒤 1973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지역 교회 사목 활동과 동시에 잉글랜드 성공회에서 진행하는 그리스도교 교육 활동과 관련하여 여러 직책을 맡았다. 2002년에는 주교 서품을 받았으며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옥스퍼드 교구의 주교로 활동했다. 현재 SPCK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성숙과 영성 생활을 돕는 다양한 저작을 썼으며 주요 저서로 『기도하는 법』How to Pray(2002), 『교회에 가다』Going to Church(2009) 등이 있다.   

   

출판사의 책소개

 

기도에 관한 입문서.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의 알짬이라 할 수 있는 기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살핀다. 어떻게 기도라는 여정을 심화시켜 나갈 것인지, 이때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들은 무엇인지 찬찬히 설명한다. 부록으로는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도의 종류를 소개하고 있으며 함께 읽을 만한 책들에 대한 역자의 해설을 수록했다. 기도라는 주제와 관련해 궁금한 이들, 기도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얇지만 단단한 입문서다.  

   

목차

 

들어가며

1. 시작하기

2. 더 깊게 들어가기

3. 계속해서 나아가기

해설 : 기도의 단계와 그리스도교 전통의 기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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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량 목회(自費糧, one's own expense), 자비량 선교


자비량 목회(自費糧, one's own expense)

교회의 목회, 교육, 전도, 선교 사역에 있어서 목회자 및 사역자가 교회나 해당 단체에 소속되거나 단독으로 활동할 때 어떠한 사례나 대가를 받지 않고 자신이 해결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와 반대되는 용어는 삯군 목회 또는 생계형 목회가 있다.

자비량(전문인) 선교사는 직업적 전문성, 사역적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자비량 선교(tent-making mission)는 선교사 입국의 제한이나 선교지 상황의 어려움 따른 창의적 접근지역을 위해서 개발된 전략이다.
이는 전문인 선교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전문인선교협의회는 “전문인 선교사는 자신의 기술이나 전문성을 소유하고 타 문화권에서 접근하여 거주하면서 현지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삼는데 최우선권을 두며, 가능한 곳에서는 교회를 개척하고 견고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다.”라고 전문인 선교를 정의한다.

전문인 선교는 기본적으로 직업적 전문성과 사역적 전문성을 두 기둥으로 하고 있다.
직업적 전문성은 현재 자신의 직업을 복음 전도하는 일에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사역적 전문성은 제자를 양육하여 교회를 개척하는 일, 제자를 양육하는 일 등 사역에 전문성을 개발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자비량(自備糧)

자기가 쓸 양식이나 물품을 스스로 갖춤, ‘자취’의 방언(함북)

자비량(自備糧, tent maker)

길을 떠날 때 자기가 직접 양식을 가지고 가거나 또는 그 양식.

 

자기 스스로 준비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교에서의 이 용어는 선교나 선교사에 붙여진용어이다.
자비량 선교사란 직업을 가진 선교사, 즉 다른 문화권 속에서 직업을 가지고 자신의 생활비를 벌면서 동시에 선교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의 직업이 생활비를 벌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그들은 직업을 통하여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복음도 전하는 것이다. 이 일은 선교와 직업 모두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즉, 하느님이 직업으로 자신을 부르고 인도했다는 확신이 필요하고 자비량 선교사가 되는 것은 마음의 원함만 가지고는 안된다. 자신이 타문화권 사역자로 부름을 받았다면, 그 문화로 부른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증거로서 확증해야만 한다.

 

자비량 사역자(선교사)라는 말은 선교지에서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 선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어왔다. 이 용어는 《사도행전》 18장 3절에서 장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선교사역을 했던 바울로의 예에서 연유한 것이다. 자비량 사역자는 사역을 하려는 목적으로 새로운 문화나 나라에서 일자리를 얻은, 이른바 이중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 사도행전 > 18장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1 After these things Paul departed from Athens, and came to Corinth;

2 And found a certain Jew named Aquila, born in Pontus, lately come from Italy,

  with his wife Priscilla; (because that Claudius had commanded all Jews to depart from

  Rome:) and came unto them.

3 And because he was of the same craft, he abode with them, and wrought: for by their

   occupation they were tentmakers.

4 And he reasoned in the synagogue every sabbath, and persuaded the Jews and the

  Greeks.

 

 

< 고린도전서 > 9장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6 Or I only and Barnabas, have not we power to forbear working?

7 Who goeth a warfare any time at his own charges? who planteth a vineyard, and eateth

  not of the fruit thereof? or who feedeth a flock, and eateth not of the milk of the f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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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비량 (自備糧/tentmaker)

* 자비량 목회자 (Tentmaking Pastor)

* 자비량 선교사 (Tentmaking Missionaries)

 

21세기 해외선교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분석이 나옵니다.

첫째로, 인구성장과 다원화되는 사회의 변화를 생각한다면 복음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 대해 선교사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둘째로, 목회자 선교사의 입국을 제한하는 폐쇄지역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종족과 문화적 장벽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넷째로, 늘어나는 선교자금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뚫고 지속적이고도 적극적으로 해외선교를 섬길 바람직한 방안으로 자비량 선교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전 교인의 99.5%를 차지하는 평신도들이 동원되고 이들이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 자급하며 선교하는 평신도 자비량 선교가 활성화될 때, 이상의 문제들이 해결될 뿐 아니라 세계선교는 사도행전시대와 같은 새로운 물결이 일어날 것입니다.

 

 

자비량 선교

성경에서 '자비량'이라는 용어는 고린도전서 9:7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비량'(self-supporting)이란 일군이 스스로 경비를 댄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자비량하는 수단으로 장막만드는 일(tent-making)을 하였다.
텐트 메이킹 미선 tent-making mission 을 물질 후원구조로 이해할 때 '자비량 선교'가 되며, 사역형태로 이해할 때 '전문인 선교'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군이 물질적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알았지만, 자발적으로 자비량하며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관련된 주요 구절들은 살후 3:7-9, 사도행전 20:33-35절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자비량 선교를 한 이유를 정리해 보면,

첫째로, 복음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둘째로, 스스로 모범을 보이므로 개척된 교회들이 재정적으로나 영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고자,

셋째로, 복음전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고,

넷째로, 직음을 통해 동질성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섬길 수 있으므로,

다섯째로,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직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영적 사역에 깊이 참여할 수 없다는 변명이 타당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여섯째로, 새 신자들에게 근면한 노동으로 수익으로 곤경에 처해있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을 도와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고자, 일곱째로, 예수 그리스도께 빚졌다는 강한 채무의식 때문에, 여덟째로, 가장 큰 이유는 자비량하면서 선교하는 것이 예수님의 주는 정신, 선교정신에 부합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비량 선교의 장점들

첫째,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은 우선 타문화권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둘째, 오늘날 목사나 선교사의 신분으로 들어갈 수 없는 어떤 나라에도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은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셋째, 막대한 선교비 문제가 없습니다.

넷째, 평신도 자비량 선교는 선교사 자원의 풍부함이 큰 장점입니다. 한국교회의 99.8%가 평신도들입니다.

다섯째,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은 투철한 신앙과 선교의 열정이 넘칩니다.

여섯째,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는 자기 자신의 직업에서 얻는 성취감과 만족을 통해,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사역의 실패로 겪는 좌절과 실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일곱째,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은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덟째,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화해자요 중재자의 역할을 다양하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홉째,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이 부득이 귀국하게 되었을 때 이들은 본국에서도 훌륭한 지도자들이 되어 교회와 사회에 봉사할 수 있습니다.

열째, 유학생 선교사들의 경우 현지에서 공부하면서 현지인 학생들에게 선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이 학위를 받은 후 현지에서 직장을 얻어 선교할 경우 매우 이상적인 '장기 체류'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의 직업별 유형

1. 파견근무
2. 의사
3. 고용인
4. 해외 청년 봉사단
5. 사업(자영업)
6. 교수
7. 외교관
8. 교사
9. 간호사
10. 성악가
11. 컴퓨터 프로그램어
12. 태권도 사범
13. 유학생
14. 이민
15. 단기선교사
16. 건축기사
17. 스튜디어스
18. 사진기술자
19. 약사
20. 목축업
21. 선원
22. 선장
23. 항해사
24. 이용사
25 . 미용사
26. 임상병리사
27. 조리사
28. 침술사
29. 사회복지 분야

이상의 예들은 모든 분야의 직업을 가진 분들이 선교사로서 소명을 받고 충분한 훈련만 받아 준비된다면 훌륭한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동시에 21세기는 평신도 자비량 선교의 시대가 되리라는 비전을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파송된 자비량 선교사 1639명을 직업별로 분류한 통계가 다음과 같았습니다.
(1)의료직
1)간호사 104명 6.34%,
2)의사 18명 1.09%,
3)임상병리사 3명 0.18%,
4)치과의사 2명 0.12%,
5)치과기공사 2명 0.12%,
6)한의사 3명 0.18%,
7)물리치료사 1명 0.06%,
약사 4명 0.24%,
약물치료사 1명 0.06%,

(2)교육직
1)유학생 633 38.6%,
2)어학연수 6명 0.36%,
3)교수 13명 0.79%,
4)교사 24명 1.46%,
5)대학강사 2명 0.12%,
6)대학사무원 3명 0.18%,
7)연구원 3명 0.18%,

(3)금융직
1)금융전문가 1명 0.06%,
은행원 7명 0.42%

(4)정부파견
1)외교관 44명 2.68%,
2)청년봉사단 15명 0.91%,
3)평화봉사단 1명 0.06%,

(5)일반직장 29명 1.78%(파견근무, 법률고문, 등)

(6)엔지니어 26명 1.76%(건축사, 건축업, 컴퓨터프로그래머, 토목기사, 자동차수리, 전자기사 등)

(7)스포츠 182명 11.06%(태권도, 합기도 등)

(8)사업 63명 3.77%, (무역업, 자영업, 농장, 사진현상소, 인쇄소, 재단사, 재봉사, 디자이너, 운전사, 미용사, 번역사, 상업 등)

(9)기타 448명 27.2% (사회사업, 취업이민, 배우자, 기타 등)

 

UBF의 자비량 선교 사례들

1. 파견근무 :
L 선교사는 대학시절에 성경 공부를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1987년에 H 중공업 뉴델리 지사 주재원으로 파견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학시절에 제자훈련을 받고 선교사명을 영접하였으며, 선교사 훈련을 받고 하나님께서 길 열어 주시기를 기다리며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상사 주재원으로 파견될 때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처음 몇 개월간은 호텔에서 머물며 회사 일을 보았고, 근무 시간 후의 개인 시간에는 기도하며 인도 학생들에게 복음 전할 길을 찾았습니다. 주말이면 대학을 방문하여 학생들을 접촉하였고, 후에 가족이 오게 됨으로 개인 주택을 얻어 생활하면서 학생들을 가정으로 초대하여 좋은 관계성을 맺으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믿음으로 회사일도 하니 회사 일도 좋은 성과를 거두어 계속 머물게 되었고, 본부의 인정을 받아 승진도 하였습니다. 그의 사역으로 지금은 150여명의 인도 대학생들이 매주일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며 인도 대학선교에 동역하고 있습니다.

2. 의사 :
Y선교사는 대학 1학년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자훈련을 받았으며 선교사명을 영접하고 길 열어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본국에서 의사요 교수로서의 안정된 직장과 삶을 버리고 1992년에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정신을 본받아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한국정부에서 생활비를 보조받으며 우간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의대생들을 가르치면서, 현지 대학생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을 가정에 초청하여 정기적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한 결과 지금은 30여명의 학생들을 열매로 얻고 우간다 대학선교를 위하여 함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에이즈 환자들이 많고, 신변의 위험이 있으나 예수님을 생각하고 순교정신으로 사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매 주일 예배에서 설교도 하고, 학생들을 제자로 양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국의 선교후원단체의 지원으로 작은 병원을 세우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3. 고용인 :
S 선교사는 대학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선교사명을 영접한 후, 1991년에 대사관 행정보조 고용인으로, 아내는 가정부로 취업하여 몽골에 복음을 전하고자 선교사로 파송받았습니다. 그는 직장에서 근무하며 대학에서 몽골어를 공부하였고, 다른 동역자들과 함께 몽골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구약성경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150여명의 몽골 대학생들이 매 주일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이들 중 수 십명의 제자들이 훈련을 받고 직접 현지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역자들이 되었습니다.

4. 해외 청년 봉사단 :
A선교사는 대학시절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선교사명을 영접하였으며, 선교사 훈련을 받고 선교사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는 중 한국 청년 해외 봉사단 모집에 응모하여 목공선생으로 스리랑카에 파견받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목공선생으로 봉사단 일을 열심히 하면서 현지 대학생을 접촉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봉사단의 일은 일면 한국의 민간외교차원에서 개발도상국에 한국인들이 무임금(생활비는 한국정부가 감당함으로)으로 봉사하는 것이므로 현지인들로부터 좋은 영접을 받고 있습니다.

5. 사업(자영업) :
W 선교사는 한국과 중국이 수교도 되지 않은 때인 1988년부터 비지니스 비자로 여러 차례 정탐 여행을 하였으며, 한중 합작 회사운영을 하게 되어 사업 비자로 중국에 나아가 장기 체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현지 대학생들과 개인적으로 사귐을 가지며 은밀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 처소에서 일대일 성경공부로 제자훈련을 하고 있는 중국 대학생들이 50여명에 이르렀습니다.

6. 교수 :
Z 선교사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친 후 일본에 유학생으로 나?【? 선교활동을 해왔습니다. 그곳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현지 대학에서 교수 보조로서 일하면서 대학생 선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교수로서 강단에서 가르치고 일과 후와 주말에는 학생들을 아파트로 초청하여 성경을 공부시키며 제자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7. 외교관 :
O 선교사는 대학시절부터 제자 훈련을 받았으며, 외무고시를 합격하여 외교관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현지에서 훌륭한 외교관으로서의 공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일과 후와 주말을 이용하여 현지 대학생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전도로 복음을 영접하고 제자가 되어 현지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열매들을 많이 얻었습니다.

8. 교사 :
A 선교사는 초등교사로서 러시아의 현지 한인학교 한국어 교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훈련받은 선교사 후보생이었으며 교사 선교사로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얻고자 오랫동안 기도하며 찾고 있던 중에 정보를 얻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9. 간호사 :
K 선교사는 선교사명을 영접하고 간호사로서 선교사로 나아갈 길을 찾는 중에 사우디에서 한국 해외 협력단을 통해서 간호사를 모집하는 기회에 한국에서의 안정된 직장을 사표내고 이곳에 지원하여 나아갔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외국에서 취업하여 온 간호사들을 그룹으로 매주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며 복음을 심고 있습니다.

10. 성악가 :
C 선교사는 한국에서 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에 유학생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그는 현지에서 성악을 공부하여 디플롬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현지 시의 오페라단에 단원으로 입단을 하여 활동하면서 현지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전곡을 CD로 제작하였고, 독일내 14개 도시 순회 독창회도 열었습니다. 또한 독일어로 찬송가 테이프도 제작하여 보급하며 찬양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의 본문을 중심으로 한 오페라를 직접 작사하여 오페사 공연을 통한 선교사역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11. 컴퓨터 프로그램어 :
K 선교사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캐나다에 나아가 현지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컴퓨터 프래그러머로 일하면서 현지 대학생들에게 일대일 성경공부로 복음을 전하면서 제자양성을 하고 있습니다.

12. 태권도 사범 :
L 선교사는 태권도 사범으로서 현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태권도 도장에서 제자들을 수련하면서 기도와 성경공부를 동시에 시키고 있습니다.

13. 유학생 :
C 선교사는 대학 1학년 때 대학생선교기관에서 성경을 공부하던 중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자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선교 명령및 선교사들의 보고를 통해서 선교 사명을 영접하고 소명을 받았고, 77년부터 3년간 믿음과 제자양성 및 선교사 훈련을 받고, 1980년 1월 독일 Bonn대학으로 선교사 유학생으로 파송받았습니다. 이곳에서 공부하며 독일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50여명의 독일 학생들 가운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자들을 열매 맺었습니다. 그는 1985년에 약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계속하여 독일 대학생 선교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독일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처음에는 아파트에서 성경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건물을 세로 얻어서 활발한 복음 전파및 제자양성을 하고 있습니다.

14. 이민 :
L 선교사는 선교를 하기 위해서 1988년 가족과 함께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이를 위해 본국에서 안정된 직장을 버린 것은 물론입니다.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후 처음에는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학교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물질의 자립을 이루었습니다. 그후 농장을 만들어 목축을 하면서 현지 대학생 선교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지금은 20여명의 파라과이 대학생들이 꾸준히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며, 제자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15. 단기선교사 :
방학을 이용하여 자비로 해외에 나가서 전도를 하거나 현지 선교사들을 돕는 학생들, 자원봉사로 해외에서 일정기간 봉사하는 의료팀들도 자비량 평신도 선교사의 유형에 속합니다.

 

평신도 자비량 선교에서 유의할 점

첫째, 자기 직업을 갖고 자립 생활을 하면서 선교를 해야 하는 직분이기 때문에 그만큼 굳은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삶을 배우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평신도 선교사가 본국의 상사 주재원이거나 현지에 취업을 한 경우 등은 자기가 속해 있는 기관이나 회사에서 선교 활동을 반대할 수가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셋째, 파송교회 혹은 선교 기관에서는 평신도 선교사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항상 형편을 살피며 기도 지원을 전폭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넷째, 가능한 한 임지와 그 나라의 역사, 지리, 정치, 경제, 등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필요하다.

맺는 말

평신도 자비량 선교의 전망

크리스티 윌슨은 성경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에 쓰임 받은 사람들이 자비량하며 선교한 인물들이었다고 전제하면서 아담(에덴동산을 가꾸는 자)으로부터 그 예를 들고 있습니다.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주변 인물들이 아니요, 중심줄기(main stream)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인물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평신도 자비량 선교를 신학화하고 과감하게 도입하여 이를 실천함으로서 21세기의 세계 선교를 섬겨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1,200만 성도 중 수 백 만 명은 평신도 자비량 선교의 자원들이며, 선교사 후보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한국 교회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세계 선교의 장엄한 사역을 위하여 한국 교회가 평신도 자비량 선교를 활발하게 논의하고 실천해야 될 것입니다. 로럴드 알렌의 말로서 이 글을 맺습니다. "강력하고도 깊은 선교정신을 가진 남녀 평신도들을 선교사로 나가도록 독려하는 길 외에는 세계복음화를 성취할 다른 방법은 없다."

 


성서의 지명 / 갈릴리,



성서의 지명






갈릴리 어부들은 가난한 어부였을까?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anem&logNo=70121358354&parentCategoryNo=&categoryNo=&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갈릴리 호수의 동편에 자리 잡은 엔게브 키부츠에 동유럽 러시아의 라트비아 출신의 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1920년대 이스라엘로 이민 와서 자신의 성을 ‘물고기’라는 뜻의 ‘눈’으로 바꿀 정도로 평생을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로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나이 일흔이 다 되어 은퇴할 무렵인 지난 1971년부터 그는 둘레가 66km나 되는 호수 변을 샅샅이 뒤지며 고대 항구들의 흔적을 조사하여 발표했습니다. 근 20년간의 직접 발로 뛰면서 연구한 그의 업적이 1992년에 출판됐을 때 모든 이들은 갈릴리 호수에 자그마치 16군데의 고대 항구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비록 그가 유대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의 복음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나아가 ‘복음서에 나타난 고기잡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자세하고도 정확했다’고 그는 고백 하므로서 성경의 이야기를 실제로 증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형성된 양식비평을 포함한 최근의 성경 연구방법들은 대부분 복음서 내용의 신빙성에 이의를 제기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예수를 직접 대면했던 제자들의 기억과 기록 능력에 의구심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도 베드로와 요한이 원래 ‘학문 없는 범인’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행 4:13)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어부의 발견은 이들의 의구심을 부끄럽게 하였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성경의 상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예로 당시 생선을 상당히 비싼 식품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신약 시대 지중해 지역의 기본적인 식사는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곁들인 빵과 생선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했던 갈릴리 호수 변의 한 어린아이의 도시락도 빵과 생선이었으며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생선과 고기잡이가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더운 지역에서 싱싱한 생선은 항상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값이 비싼 편이었습니다. 교통이 발달되지 못한 당시 생선은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잡은 즉시 가공해서 보관해야만 상품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고 연기로 훈제를 했고 작은 생선으로는 젖을 담갔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지역의 고고학 발굴에서 이탈리아 ‘쿠메’산 생선 젖이라고 기록된 항아리의 손잡이가 출토된 적도 있습니다. 국제무역을 통해 여러 유통단계를 거치는 생선의 값은 더욱 비쌌을 것입니다. 주후 1세기의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크는 로마에서 훈제생선 한 수레의 가격이 ‘한 마리의 황소가 이끄는 양 100마리’와 맞먹는다고 기록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시대 갈릴리 호수의 어부들은 값비싼 상품을 취급하는 고급 상인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들은 이방인들에 비해서 이윤을 더 얻을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음식율법인 카슈룻트(신 14:9-10)를 지키기 위해 지중해의 이방인 어부들보다는 갈릴리 호수의 유대인 어부들이 공급하는 생선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의 어부들은 예루살렘 시장에서 생선을 팔기 위해 나흘 길을 마다 않고 판로를 개척했을 것이며, 유대인 특수 때문에 호황을 누렸을 것입니다. 따라서 갈릴리 호수에는 여러 군데에 항구가 발달되고 어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의 대표적인 생선은 베드로 고기를 비롯해서 메기, 정어리, 잉어 등입니다. 정어리는 젖을 담그는데 오늘날까지도 대량으로 잡히며 한해 어획량의 절반인 1000톤을 차지합니다. 잉어는 정어리를 미끼로 해서 낚시로 잡으며 정어리와 베드로 고기는 그물을 이용해서 잡습니다. 베드로 고기는 지느러미가 빗같이 생겼다고 해서 아랍어로 ‘무슛트’로 불리는데 길이가 40센티미터까지 자라며 어미가 수정된 알을 입에 넣은 채 치어가 될 때까지 2-3주 동안 보호하는 독특한 습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물고기는 히브리어로는 ‘물고기를 돌본다’는 의미로 ‘암눈’이라 불리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빌립은 벳세다 출신입니다. 갈릴리의 벳새다는 분봉왕 헤롯 빌립이 주후 30년경 로마식 도시 ‘율리아스’로 재건했으며 수많은 갈릴리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왔습니다. 자연히 생선의 수요도 늘어났을 것이고 근처의 가버나움에는 대규모 시장이 형성됐을 것입니다. 실제로 벳새다를 발굴했을 때 한 저택에서 수많은 그물추와 낚시 바늘들이 발견됐습니다. 함께 출토된 로마산 고급 수입식기들을 통해서 이 집의 주인은 어업과 관련된 부유한 상인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안드레, 빌립 등은 원래부터 헬라식 이름이며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헬라 사람들과 대화할 정도로 고급문화에 익숙한 자들이었습니다(요 12:20-21). 시몬 베드로는 전문적인 어부로서 동생 안드레는 물론이거니와 이웃 형제인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동업자로서 두 척의 배를 이용하여 조직적으로 고기를 잡았던 선주겸 어부입니다(눅 5:10). 야고보와 요한의 집에는 일당을 받고 일하는 품꾼들도 있었습니다(막 1:19-20).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경제적으로 자립한 비교적 부유한 어부들로서 생업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든지 자유 의지대로 고기잡이를 떠나 예수의 제자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왜 자신의 활동 중심지를 벳새다에서 가버나움으로 옮겼을까요? 복음서에는 이 도시에 그의 처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갈릴리 호수 어업 현장에서의  사업장의 위치는 곧 경제적 이윤과 직결되는 것이었습니다.

티베리아스 북쪽 5km 지점에는 신약시대의 어촌 막달라가 있는데 헬라어 지명은 ‘생선 가공공장’이라는 뜻의 타리케아(Tarichea)입니다. 좀 더 높은 이익을 올리려는 어부들은 생선을 잡은 즉시 타리케아로 수송해서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가공용으로 넘겼을 것입니다. 벳새다의 어부들은 헤롯 빌립의 지배 하에 있었기 때문에 헤롯 안티파스의 관할인 타리케아로 생선을 수송하려면 가버나움 세관에서 막중한 통관세를 지불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어업의 근거지를 가버나움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가버나움은 타리케아와 같은 헤롯 안티파스의 영토이기 때문에 감세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러한 점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에 대하여 설교를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적대시 하였던 바리새인들중 특히 예루사렘의 제사장들의 입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하대하는 비꼬는 말을 진실인양 할고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제자라고 하는 설교를 하시는 목사님들도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다시한번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김성 교수의 글)


* 예수 당시의 갈릴리 상황 *

http://blog.daum.net/chakage2473/7150447


헤롯 대왕의 아들 안티파스가 만들어낸 작은 구리 동전들, 즉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이 틀림없이 매일같이 갈릴리 마을의 큰 마당이나 시장에서 만지작거렸을 주머니 속의 동전들은 현대에 고고학 발굴이 진행되는 곳에서 흙을 체로 칠 때, 초록색과 회색이 어우러진 녹슨 금속 조각들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동전들을 잘 씻은 후 자세하게 조사해보면, 최초의 교회가 맞붙어 싸웠던 강력한 정치적 상징들이 드러난다. 즉 동전 한쪽 면에는 종려나무 가지가 찍혀 있고(이스라엘 땅의 풍요로움에 대한 성서의 묘사를 상기시킨다), 또 다른 면에는 로마의 월계관이 찍혀 있는데(세계를 정복하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한다), 헤롯 안티파스가 발행한 이 동전들은 그 자신의 정치적 야심과 메시아에 대한 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빽빽하게 잉크로 기록된 문장들을 통해서보다는 왕의 휘장에서 보다 분명하게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선언을 읽을 수 있었던 시대에,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이용하는 동전에 안티파스가 그런 문양(紋樣)을 새겨 넣은 것은, 그가 로마 황제의 공식적 왕관(월계관)의 권위 아래 이스라엘의 이 부분을 소유한 당사자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한 교활한 방법이었다.

비록 헤롯 안티파스가 복음서에서는 단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인물에 불과할지라도, 그가 갈릴리와 요르단 강 동쪽의 베레아 지역의 통치자로 등극하게 된 과정의 이야기는, 그의 경우처럼 드러나지 않았을 경우라면 아마도 잊혀져버렸을 헤롯 왕조의 음모와 로마의 궁정 정치가 어떻게 특정한 정치 경제적 상황을 만드는 데 역할을 맡았는지를 보여주는데,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은 바로 그런 특정한 정치 경제적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안티파스는 헤롯 대왕의 여섯 번째 아들로서 기원전 20년경, 사마리아 귀족 출신의 말타스(Malthace)에게서 태어났으며, 아마도 그가 소년기에는 갈릴리 땅을 밟아본 적이 없었을 것이거나 혹은 그 주민들의 독특한 전통에 대해서는 평생동안 별로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헤롯 왕가의 응석받이로 키워져, 예루살렘, 여리고, 마사다, 가이사랴 등지의 왕궁들 사이를 계속 왕복하다가, 열 살 정도가 되어서는 공식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 로마로 보내졌다. 기원전 4년에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이어서 그의 형 아켈라오에 맞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난 다음, 이스라엘의 정치적 사태가 그의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가 고작 열 여섯 살 때였다. 헤롯 왕의 유언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을 놓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가운데, (또한 아켈라오가 유대 지역에 질서를 유지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논쟁 가운데), 이 젊은 안티파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앞에서 대담하게도, 아켈라오나 그의 또 다른 형 빌립(Philip)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선왕의 우선적 계승자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그 주장을 거절하고, 그 형제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결정한 채, 선왕의 왕국을 그 형제들 사이에 분할해줌으로써 유대의 정치적 판도를 바꾸어놓았다. 즉 큰아들 아켈라오는 "부족왕"(ethnarch), 혹은 수장으로 강등되어, 유대, 사마리아, 그 남부의 이두매를 통치하도록 허락받았다. 그 다음 빌립은 "분봉왕"(tetrarch) 혹은 지역 통치자라는 칭호를 받아, 골란니티스, 트라코니티스, 바타내, 파내스(지금의 골란 지역,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가장 북부 지역, 레바논의 가장 남부지역을 포함한다)를 할당받았다. 안티파스는 비록 가장 큰 야심을 품고 있었지만, 역시 분봉왕 칭호를 받아 베레아와 갈릴리 지역의 로마 속국 통치자가 되었다.

로마의 기준에 따르면, 안티파스의 몫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통치 지역도 변두리 지역이며 지리적으로도 그 두 지역이 서로 상당히 떨어져 있고, 두 지역 어디에도 큰 도시가 없었으며,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지하자원도 없었고, 왕궁에 속한 대규모 농지도 없었다. 베레아는 요르단 강 동편에 그 강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길게 형성된 좁은 농지 지역으로서, 북부의 높은 지역으로부터 좁은 계곡들을 지나 뱀처럼 흐르는 요르단 강을 따라 메마른 요르단 계곡을 지나 사해 동부 해변으로 이어지는 지역이었다. 한편 훨씬 북쪽에 있는 갈릴리는 보다 비옥하고 게네사렛 호수 혹은 "갈릴리 바다"의 북부와 서부 해변 지역을 포함하고 있는데, 충분한 물과 어장(漁場)을 제공했다. 그러나 갈릴리의 북부 산악지역은 곡물 생산에 적합하지 않았으며, 억척스런 농민들만이 바위가 많은 고지에서 농사를 지었다. 갈릴리 남부지역에는 언덕들이 가파르지 않고 평지도 많아 대규모 농원에 적합했으며, 나사렛, 가나, 얍파, 나인 등지의 마을 농민들은 전통적인 농사법을 고수하면서 자신들의 소규모 포도원, 과수원, 가족용 채소밭을 가꾸었다. 100년이 넘도록 하스몬 가문과 헤롯 왕조의 관리들이 행정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지대"(Upper) 갈릴리와 "저지대"(Lower) 갈릴리 모두의 주민들은 적어도 로마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뒤떨어진 상태였다. 그들은 외부인의 개입을 원망하는 미개한 변경 사람들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었다. 요세푸스는 나중에 이 지역과 그 주민들에 대해 "갈릴리의 두 지역은 항상 적들의 침략에 저항했는데, 그것은 아이들부터 전쟁에 단련되었고 언제나 그 숫자가 많았기 때문이며, 시골 사람들조차 용기가 넘쳤다"고 표현했다.

안티파스는 재빨리 로마 스타일의 질서를 부과하고자 했다. 그의 첫 번째 조치는 현대적인 행정센터를 확립하여, 경찰력, 시장 감시원, 세금 징수원들을 쉽게 인근 마을에 파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갈릴리의 예전 행정수도였던 셉포리스가 최근의 폭동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기 때문에, 안티파스는 그 도시를 현대의 로마식 도시로 재건하여 왕궁, 국고(國庫), 문서보관소, 광장을 갖추도록 명령했다. 건축공사가 끝났을 때, 그는 예전의 주민들이 바루스의 군단병력에 의해 살해되거나 노예로 팔려나갔기 때문에, 충성스런 공무원들과 노동자들을 그 도시에 이주시켰다. 그는 이 새로운 도시를 '오토크라토리스'(Autocratoris)라 이름 붙였는데, 그 문자적인 뜻은 "제국의" 혹은 "황제에게 속한" 도시라는 뜻이다. 이 새로운 도시는 전망이 좋은 높이에 자리잡고 있어서, 주변의 마을들과 농경지에 둘러싸여, 갈릴리의 유일한 중심 도시로서 지역의 시장, 세금 보관, 군대 사령부의 기능을 결합한 도시가 되었다. 셉포리스에 대한 최근의 발굴을 통해 안티파스의 대규모 재건사업의 증거가 드러났는데, 그 거리와 광장, 로마식 대형극장을 포함하여 인상적인 공공 구조물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요세푸스는 그 후 몇 십 년이 지난 다음에 이 도시를 "모든 갈릴리의 광채"라 불렀다. 그러나 셉포리스-오토크라토리스는 단지 장식으로서만 건축된 것이 아니었다. 새로 즉위한 분봉왕의 왕좌로서, 또한 안티파스가 어려서부터 존경하도록 배웠던 로마식 정부의 본부로서, 이 도시는 그 주변 농민들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와 세금 강화, 교역 확대를 통해 연간 수입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유리한 장소였다.

셉포리스에서 동쪽으로 약 15마일 떨어진 갈릴리 해변가 성읍 막달라(성서전통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에서 행해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헤롯 왕족이 다스리던 갈릴리에서 적어도 어업 생산이 급증했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가 드러났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는 광경은 흔히 성경의 그림이나 교회학교 교재에서 어부가 홀로 노 젓는 작은 배 위에 서서 평화롭게 그물을 던지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갈릴리 어업의 규모와 목적은 안티파스 시대에 이르러 많은 변화를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천 년 동안 갈릴리에서 고기잡이하는 일은 그 지역 농민들이 파종기와 수확기 사이의 중간에 비교적 한가한 때 했던 일이었다. 생선은 장거리 교역이 불가능했던 이유가 쉽게 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로마시대에 이르러서는 생선을 소금에 절이는 기술이 발전되어, 어업이 산업 규모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생산기술의 발전에 따라 시장이 커지게 되었고, 로마제국 전역의 도시인들이 맵고 냄새가 강한 '가룸' (garum)이라는 생선 소스와 생선의 머리와 몸통을 잘게 썰어 소금에 절인 스튜로 만든 '살사멘툼'(salsamentum)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두 가지는 일상적인 조미료로서 매우 값비싼 것이 되었다.

안티파스의 시대에 이르러, 막달라는 어업의 중심지가 되어 흔히 "소금에 절인 생선의 성읍"이라 불려졌다. 따라서 예수 당시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이 단지 노 젓는 작은 배 위에서 일하던 농민들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어부들이 매일 잡아 올려야 했던 생선들의 엄청난 무게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며, 또한 그 생선들을 막달라로 보내 소금에 절이고 눌러 발효시킨 후 맑게 하여 '가룸'과 '살사멘툼'으로 만들어 커다란 항아리에 담아 해외로 팔았던 과정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업이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함에 따라, 몇몇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더욱 비참하게 되었다. 막달라의 발굴을 통해 그 성읍에서 비린내나는 일을 했던 건물들, 좁은 도로들, 저수조들이 드러났으며, 큰 저택에서는 그 주인이 자신을 부자가 되도록 만들어준 원천, 곧 배와 큰 물고기 모습을 자기의 저택 현관 바닥에 모자이크로 만들어 과시했던 모습도 드러났다.

그러나 어업의 발전만이 갈릴리의 농촌 풍경, 곧 올리브 과수원, 포도원, 채소밭, 농경지의 광경을 어지럽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당시 대부분의 속국 왕들처럼, 안티파스 역시 그 지역을 더욱 생산적으로 만들기 위해 두 가지 방법에 의존했는데, 더욱 악랄하게 세금을 징수하고, 농민들을 동원하여 공공사업에 투입하고 자신의 개인 영지를 개간하도록 만들었다. 안티파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갈릴리와 베레아에서 세금을 징수할 권리를 얻었는데, 이것은 요세푸스에 따르면, 매년 금(金) 200 달란트(약 9톤)를 얻을 수 있는 특권이었다. 물론 그의 영토에는 금광이 없었고, 단지 밀, 보리, 포도, 올리브, 채소와 가축만이 생산되었다. 따라서 그는 수확기에 모든 마을에 감시원, 세금 징수원, 군인들을 보내 자신의 몫을 확보했는데, 현대 학자들은 그가 대략 전체 생산량의 1/3을 챙긴 것으로 계산한다.  

그 이전에 갈릴리 지역이 멀리 있던 제국들 혹은 예루살렘에 기반을 둔 왕국들에 의해 통치되고 세금이 부과되었을 때에는, 세금 징수가 한결같지 않았었다. 그래서 좀더 독립적인 주민들은 헤롯 대왕 시절에 세금 징수원들이 갈릴리 지역에 도착하면, 폭력으로 맞서거나 산으로 도피하거나 했었다. 그러나 이제 안티파스가 갈릴리를 자신의 주요 수입원으로 간주하고, 갈릴리 중심부인 셉포리스-오토크라토리스에 그의 관리들이 상주(常住)하는 상황에서는, 세금 징수가 더욱 빈번해지고 무거워졌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복음서 안에는 세리, 현물세 징수원, 통행세 징수원, 장원(莊園)의 청지기, 그림자와 같은 "헤롯 당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런 역사적 인물들은 단순히 악당들로 무시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왜냐하면 예수 당시에는 안티파스의 궁정과 밀접하게 연관된 관료체제가 더욱 커짐에 따라, 갈릴리의 거의 모든 농민 가족들이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거나 알거지로 내몰리게 된 데에는 그 관료체제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예수와 그의 갈릴리 이웃들과 친척들에게는 안티파스의 도시 건설 사업과 중과세가 단순히 그들의 생계에 대한 위협과 전통적 농경방식 및 어업방식에 대한 위협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갈릴리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유지해왔던 마을 문화의 토대 자체를 허물어버리는 것이기도 했다. 최근에 로마가 지배하기 시작한 초기 시대의 갈릴리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결과 그 지역의 거의 전부가 농경지였으며, 구릉지대와 계곡들마다 농민들과 목동들이 작은 밭과 목초지 안쪽으로 조잡한 돌집들을 짓고 마당들을 잇대어 작은 공동체들을 열 군데 정도씩 이루고 있어서, 아마도 전체적으로 200개의 공동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마을들 가운데 일부는 철기시대 이스라엘 국가가 생성될 때부터 존속해왔으며, 어떤 마을들은 비교적 훨씬 후대에 만들어졌는데, 모든 마을들이 매우 비슷한 구조로서 단순한 집들(집의 크기나 구조가 특별난 것이 거의 없다)과 혼합경제, 곧 밭농사와 가축 사육, 직물, 가죽, 토기 생산의 구조였다. 실제로 고고학적인 발굴조사 결과는 성경의 최초의 법령과 사회법규에 규정된 생활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즉 가족과 친척 중심의 혈연 공동체들이 좀 더 큰 씨족과 지역의 부족들로 집단을 이루어 소규모 농경생활을 영위하였는데, 이것은 가뭄, 전쟁, 자연재해로 인한 흉작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던 생활방식이었다. 

이런 농경문화는 인류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이 거의 모든 시대와 장소에 걸쳐 자세하게 연구한 바에 따르면, 단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조상들의 땅에서 가족이 생존하는 것으로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옛 전통과 사회제도들을 간직하고 다음 세대에 충실하게 전수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복음서들, 랍비 문헌들, 그리고 요세푸스의 단편적 묘사들을 통해 얻은 증거들에 따르면, 갈릴리 사람들 역시 조상들의 전통을 열심히 고수했으며, 자신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구성원들로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위대한 약속들의 상속자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율법과 전통을 충실하게 지키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창 22:17) 될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을 영원히 소유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의 조상들의 율법, 곧 사회적 관계, 재산권, 개인 도덕, 축제일, 안식일, 안식년 등에 관한 율법은 앞서 말한 것처럼, 추상적인 종교적 도그마나 개인윤리의 기준이 아니었다. 그 율법들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지역 공동체들에게 현실적 헌법이며 행동강령과 지침을 제공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그것을 지키면 그들의 가족과 마을이 살아남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물리적인 상황의 도전 속에서도 번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믿어졌다.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갈릴리의 주민들도 다른 지역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왕들과 그 관리들이 자신들에게 부과하는 무거운 짐을 점차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세금과 공물의 요구에 부응하고 자신들의 가족을 부양할 만큼 충분히 생산하게 되었다. 그러나 왕에게 바치는 세금만이 유일한 강제징수는 아니었다. 갈릴리의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다른 지역 주민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생산물의 상당부분을 제사장들에게 바치는 십일조로, 첫 열매의 헌물로, 그밖에 예루살렘 성전의 신성한 여러 기부를 위해 떼어놓도록 가르쳐졌다. 1세기에 이르러서는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이 성전을 위해 십일조 이외에도 매년 반 세겔을 바치도록 되어 있었는데, 주민들이 반 세겔의 동전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곡식이나 농산물과 교환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심지어 가뭄이나 병충해로 인해 수확이 대폭 줄어든 때조차도 세금 징수원들과 제사장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모든 타작 마당과 올리브 기름을 짜는 곳에 나타나 자신들의 몫을 챙겨갔다. 만일 특정한 마을이나 지역의 농민들이 헤롯 왕족과 예루살렘 성전이 요구하는 세금을 기꺼이 바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처벌이 매우 엄했고 난폭했다.   

역사가 마틴 굿만(Martin Goodman)은 고고학적 증거들과 문헌상의 증거들을 토대로 당시 유대의 마을들에서 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는지를 분석하였는데, 이것은 복음서들이 갈릴리의 경제적 상황을 묘사한 것과 끔찍할 만큼 똑같았다. 이스라엘 전역의 농업생산량은 아무리 작황이 좋은 해였다 해도 특별히 증가하지는 않았으며, 곡식 생산이 조금만 줄어도 수많은 농민들이 가족을 부양하고 동시에 세금을 납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더욱 많은 농민들이 다음 해의 수확을 담보로 해서 곡식을 빌려야만 그 다음해까지 가족들과 가축들이 버틸 수 있었다. 실제로 랍비문헌들과 당시의 법적인 문서들에 나타난 증거들을 보면, 헤롯 왕족 시대를 거치면서 시골 농민들의 부채가 급증하였으며, 기댈 곳이 없던 농민들은 심지어 헤롯 왕족의 관리들과 제사장 귀족들로부터도 대부를 받으려 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임시방편으로 당장 구멍을 틀어막는 방법은 조만간 재앙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는데, 일단 농민들이 다음해의 수확 가운데 더욱 많은 부분을 떼어내어 빚을 갚기로 작정을 하면, 그 다음해에 더욱 큰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농민들이 대부를 받기 위해 담보로 잡힐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토지뿐이었기 때문에, 그 부채를 갚지 못할 경우에는 그 가족이 오랜 세대를 거쳐 경작해왔던 그 토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수많은 경우에 이런 법적인 조치로 인해 한때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땅에서 자작농으로 살았던 농민들이 영원히 소작농으로 전락하여, 당시 급속하게 증가하던 귀족들의 대규모 농지에 빌붙어서 겨우 생계를 이어가게 되었다.

만일 성경의 율법이 엄격하게 집행되었다면, 이런 상황은 벌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명기 15장 2절의 분명한 규정에 따르면, 매 7년마다 "이웃에게 돈을 꾸어 준 사람은 그 빚을 면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면제를 선포하였기 때문에 이웃이나 동족에게 빚을 갚으라고 다그쳐서는 안 됩니다"고 했기 때문이다. 레위기의 성결법전(Holiness Code)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빚을 탕감해야 하며 재산권을 원 소유자에게 되돌려 주어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유일한 진정한 소유주이며,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레 25:23). 그러나 헤롯 왕족 시대에 이 율법을 해석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힘겹게 발버둥치는 농민들에게 꾸어 준 돈을 되돌려 받고 그 이자도 받아내기 위해, 이 명백한 율법규정을 우회할 방법을 찾아냈다. 랍비문헌에서 차압동의서(prosbul)로 알려진 이 계략을 종교 당국과 법 당국자들이 받아들임으로써, 개인 대출을 그 지역 법정에 등록한 경우에는, 심지어 안식년에 상환하도록 된 경우일지라도, 강제로 (법원을 통해 - 옮긴이) 상환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로 인해 대출이 더욱 쉬워짐에 따라, 부채와 차압의 위기는 더욱 심해졌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따라서 한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가족들, 씨족들, 부족들에게 적절하고 엄숙하게 분배했던 이스라엘의 마을들이 서서히 귀족 가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는데, 귀족들은 왕족들과 제사장 집단 혹은 유휴 동산을 많이 지닌 부자들에게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이런 현실은 안식일과 축제일에 정기적으로 읽던 율법 두루마리의 친숙한 출애굽 이야기와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어엎는 현실이었다. 이런 경제적 상황은 영적인 위기를 초래했다. 즉 이스라엘 전역에서 많은 농민들이 생계가 위협 당하게 되자,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허용하시는가 하는 긴박한 물음에 직면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물음에 대해 종교의례적인 설명을 하여, 백성들의 당면 문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그들이 종교의례적 순결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지 않았거나 레위기 법전에 명시된 십일조와 헌물을 제대로 온전하게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그토록 고통을 당하는 것을 귀신이나 악령의 조화 탓으로 돌렸는데, 민간전승에 따르면, 이들 귀신이나 악령은 타락한 천사들로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탐욕과 분란, 불행을 가져오는 것을 기뻐한다고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폭력적인 보복에 대한 환상에서 위로를 찾았는데,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이런 모든 악을 씻어내고,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당시에 보여준 것처럼, 부자들과 악한 자들, 우상숭배자들에게 벌을 내릴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 날이 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단순하고 의로운 사람들에게 영원한 통치를 확립할 것이며, 이사야의 예언처럼, "천한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더없이 기뻐하며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포악한 자는 사라질 것이다. 비웃는 사람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죄 지을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모두 끝장 날 것이다"(사 29:19-20). 이런 사람들에게 심판의 날은 이미 지평선 위에 흐릿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 이후의 사태는 갈릴리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처럼, 묵시문학 속에 그처럼 생생하게 예언된 사건들이 나타날 징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한 그들은 그들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그 하나님의 복수를 지금이라도 피할 수 있으며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설교한 예언자들의 음성에 진지하게 귀기울였다.


호슬리 &실버만, 2장에서

 

 

갈릴리(Galilee) 

 

 

 샤론의 백합 | 향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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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동편에 잇는 남북 14마일 동서 9마일의 호수다.

(1) 구약에는 긴네렛(수13:27).

(2) 신약에서는 게네사렛(눅5:1).

(3) 갈릴리 바다, 디베랴 바다 (요6:1) 단지 바다(마4:18).

(4) 풍랑을 잔잔케 함(마8:26).

(5)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의 4제자를 이 바다에서 불렀다(마4:18).

(6) 이 바다에서 일곱 비유를 가르쳤다(마13:).

(7) 바다 위를 걸으심(마14:22).

(8) 부활 후에 이 바닷가에 나타나서 그물을 배 우편에 던지라 햐여 많은 고 기를 잡음(요21:). 예수님이 갈릴리 도에서 행한 24회 이적 가운데 18회를 이 바다에서 행하셨다.

갈릴리 바다가 특별히 유명한 이유는 예수님이 전도와 이적을 많이 행하셨고 다음은 바다의 수면이 지중해 보다 208미터나 낮은 점이다.

 

갈릴리 바다 위의 그리스도 : 이 작품에 보이는 격렬한 표현주의로 보아 이 그림의 작자는 최고로 재능이 풍부한 틴토레토의 정신적 후계자였던 엘 그레코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확실히 흑암의 하늘에 떠 있는 흰구름의 표현은 엘 그레코의 시정에 극히 유사하고 음화처럼 표현된 묵시록적 공간이 격정을 풍겨내고 있다.캔버스 117*168.5cm.

 

 

갈릴리(Galilee)

뜻:둥글다

1) 구약 시대에는 요단강 서쪽 팔레스틴의 북부를 보통 갈릴리라 하였다(수20:7,왕상9:11왕하15:29,대상6:26).


2)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스불론(수19:10-16)아셀 (수19:32-39)자손들이 제비를 뽑아 차지 하였으며 여러번 혈투를 하였지 만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물리치지 못하엿다(삿1:30-33,4,).


3) 예수님이 12제자중 11제자를 이곳에서 택하였다.


* 신약 시대에 팔레스틴을 3도로 나누어 갈릴리의 경게는 동은 요단강과 갈릴리해, 서는 지중해 남은 사라리아도, 서는 지중해 남은 사마리아도 서북은 베니게로서 남북이 50마일,동서가 25마일 내지 35마일로 북방은 산지가 많고 남쪽은 평원이다.

토지가 비옥하고 경치가 아름다우며 404개의 중소도시 및 촌락이 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복음 선교 활동의 중심지 였다. 제자들도 대부분 이곳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베드로가 살던 집도 이곳 갈릴리 해변의 가버나움 마을이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던 들판도 바로 갈릴리 호수의 북쪽 연안이었으며 유명한 산상보훈의 설교도 이곳 언덕 위에서 였다. 믿음이 부족했던 베드로가 풍랑 속에 빠진 것도 이 갈릴리 호수에서 였다. 해면보다 그 수면이 200m 나 낮은 갈릴리 호수. 평상시에는 잔잔하고 맑으나 때때로 큰 폭풍으로 성난 파도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예수님 당시의 갈릴리 호수 연안은 중요한 교통의 요지 이면서 아름다운 경치와 기름진 옥토를 갖고 있어서 주변 인구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은 바나나, 목화, 오렌지, 올리브 등 갖가지 농산물이 풍부하게 재배되고 있으며 갈릴리 호수의 물은 전 이스라엘 땅의 음료수는 물론 농업용수와 공업용수까지 대부분 충당하는 생명선이 되고 있다. 심지어 남쪽으로 360Km나 떨어져 있는 네게브 사막의 세데보케(Ssede Boque)까지 물을 공급해 준다. 호수에서 처음 시작되는 송수관은 큰 자동차가 드나들 정도로 크지만 점차 가늘어 지면서 흡사 사람 몸의 혈관처럼 이리 저리 연결되어 전 국토를 적셔 주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갈릴리 호수, 바다의 수면보다 700피트 아래에 위치하며 이스라엘 북부 납달리 지파의 땅에 속한 이 담수호수는, 하프의 모양같이 생겼기에 히브리어로 키노르라 불리었고 이는 게네사렛의 어원이 되었다. 지난 25년 동안이나 주후 1세기의 갈릴리를 연구한 고고학자는, 최근에 와서 예수님 당시에 사용하던 배와 배를 고정시키기 위한 돌들과 파도를 막기 위해 항구에 쌓은 방파제(눅 8:23)들을 갈릴리에서 발견함으로써, 과거 초대교회의 역사를 고스란히 21세기의 문턱에 올려 놓았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는 수산업이 크게 번창한 곳으로서, 남방 출신인 가롯유다를 제외한 예수님의 제자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했던 것만 보아도 이를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최근 고고학적인 연구에 따르면, 주후 1세기경의 갈릴리 호수내의 항구는 최소 15개나 되는데 그 중에 가버나움, 게네사렛, 막달라디베랴거라사 등 우리에게 친숙한 지명 모두가 항구에 속한 도시로 밝혀지게 됐다. 당시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퍼져있는 여러개 항구들을 통해 많은 여행객들과 상인들이 배를 이용하여 동서편을 왕래하곤 했던 것이다. 로마시대 때에는 오늘날보다 갈릴리 호수의 수면이 약 4피트 정도가 더 낮았다고 전한다. 특히, 베드로와 안드레가 고기 잡던 곳으로서 가버나움 항과 막달라항 사이에 위치한 타브가 항구는 초대교회의 사적지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이 타브가에서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소명을 주셨고(막 1:17), 또 부활 후 이른 새벽에 이 항구에 나타나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으로 유명하다. 타브가란 헬라어로 '일곱개의 샘물'이란 뜻으로 이곳에 따뜻한 미네랄 온천이 솟아올랐기에 전통적으로 가버나움 출신의 어부들은 겨울철에 꼭 이곳에 와서 어업을 했다고 전한다. 따라서 이 타브가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만난 곳이고 부활 후에도 마지막으로 이곳에 와서 제자들과 조반을 먹었던 장소로 확증된다(눅 5:1-7; 요 21:1-8).

갈릴리의 예수님의 발자취

갈릴리 바다 주변은 온통 예수님의 발자취로 가득하다 . 예수님은 특별히 갈릴리 사람들에게 애착심을 가지셨다. '이방의 갈길리에 먼저 복음이 전해질 것을 암시한 이사야의 예언 (이사야 9:1)을 생각지 않는다고하더라도 공생애 이전의 삼십여 년의 세월을 보내신 갈릴리에 대한 예수님의 애착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 갈릴리를 답사하는 우리는 발걸음 하나마다 예수님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고 , 숨 한번 들이쉴 때마다 같은 공기를 숨쉬셨을 주님을 묵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갈릴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그 때까지 세상에 존재하던 모든 복의 개념을 뒤집어 엎으시고 , 새로운 복의 나라를 선언하신 팔복산이다 . 이 곳은 산이라기 보다는 갈릴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구릉이다 . 예수님은 여기서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셨다 . 구릉 위에는 팔각형으로 된 교회가 있다 . 그리고 교회당 꼭대기에는 작은탑이 서있는데 , 이 교회를 설계한 이탈리아 건축가는 그 탑을 통하여 아홉 번째 복을암시하고자 했다고 한다 . 그가 생각한 아홉 번째 복은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라는 말씀이었다고 한다 . 그렇게 생각해 보면 팔복의 내용 전체가 아홉 번째 복에 귀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그내용 모두가 고난에 귀결되지 않는가 ?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야 말로 모든 복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작은탑이 교회 맨 꼭대기를 장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여겨졌다 . 그리고 그 고난의 십자가는 하늘을 향해 온 몸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 오늘 우리 신앙의 마지막 표현은 바로 그 아홉 번째 복을 통해 드러난 그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팔복 교회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정경을 뒤로 한 우리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오병이어 교회였다 . 1930 년대 초에 독일 고고학 발굴팀은 갈릴리 바다의 북서쪽에 있는 다브가 (Tabgha)란 곳에서 매우 소중한 유적을 발굴했다 . 그것은 약 400 년경에 건축된 교회의 유적이었는데 , 그 교회는 아랍인에 의해 파괴되어 1000 년이 넘는 세월을 땅속에 묻혀 있었다 . 특이 이 유적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 교회 바닥에서 모자이크로된 오병이어 모자이크였다 . 그림은 두 마리의 물고기 사이에 둥근 떡들이 그려진 모습 이었다 . 독일 캐톨릭 교회는 발굴된 모자이크를 기념하고 보호하기 위해 그 위에 교회를 지었는데 , 이것이 오병이어 교회인것이다 . 교회당 안에서 우리 마음속에는2천년 전 어느날 예수님 앞에 둘러앉아 있었을 군중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 어린아이가 음식을 내놓을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던 이기적인 사람들 , 그리고 떡과 고기를 받아먹은 후 배신하여 예수님을 떠난사람들,이런 식으로 우리는 그들을 비난해왔지만 , 그 보다 먼저 은총의 떡을 먹은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더 먼저 드는 것은 왜일까 ? 그들은 그래도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어두워질 때까지 말씀을 들었다. 그 사모함과 인내심만으로도 떡과 고기를 먹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오늘날 예수님께로 잘 가지도 않고, 사모하지도 않으며, 짧은 한 시간 예배도 인내치 못하는 우리들에 비하면 충분히 자격이 있다. '주여 저희에게도 생명의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후, 내려오는 길에 기념품 가게에 들러 모자이크가 그대로 새겨진 잔 두 개를 샀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 그 잔을 깨지지 않게 보관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오병이어 교회 근처에 우리를 붙들고 놓아 주지 않는 한 자그마한 교회가 있었다 . 검은색 돌로 지어진 이 작은 예배당은 베드로교회였다 . 교회 안에는 바닥에 넓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안내인은 그 바위 위에서부활하신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가 있었다고 한다. 에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라기 보다는 예수님과 시몬의 대화였다고 하는 것이 더 옳겠지만, 시몬은 아직 제자답지 못한 불완전한 자연인의 모습을 암시하고, 베드로는 성숙한 예수님의 제자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날 바위 위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던 사람은 스승을 부인한 부끄러운 시몬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그는 베드로라고 불리울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부족한 죄인 시몬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시몬은 오고 오는 모든 시몬들의 대표이다. 그와 예수님의 대화는 우리 모두와 예수님의 대화이다. 시몬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는 곧 우리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이다. 예수님은 영원한 질문을 던지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질문 앞에서 숙연해진다. 사랑하지 않으시고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먼저 사랑하신 후 던지신 질문이기에 그 누가 이 질문 앞에 숙연하지 않겠는가? 우리 일행은 그 바위 앞에서 모두 2천년 전으로 돌아간 듯 숨죽인 채 깊은 묵상속으로 들어갔다, 과연 나는 그 질문에 진실된 사랑의 고백을 드릴 수 있는지? 그러나 예배당을 뒤로하고 나오면서 우리 마음이 어둡지 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랑을 묻기 전에 제자들을 숯불가의 만찬으로 초청하셔서 사랑의 떡을 먹이셨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김운성 목사)

 

 

 갈릴리바다가 위치하고 있는 중앙계곡은 지형적으로 갈릴리바다 자체와 갈릴리바다 주변의 비옥한 계곡형 평원으로 나눌 수 있다. 갈릴리바다 주변의 계곡형 평원들은 갈릴리바다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벳세다평원, 갈릴리 바다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게노사렛평원, 그리고 갈릴리 바다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야르묵-요르단평원 등이다.

 

1. 갈릴리바다

   동쪽으로는 바산고원, 서쪽으로는 하부 갈릴리산지로 둘러 싸여있는 갈릴리바다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자연 담수호이다. 이곳은 일반 바다가 아닌 호수임에도 불구하고 바다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은 이스라엘에서의 바다 개념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 바다와 다르기 때문이다. 즉 바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얌'은 바다와 호수의 구분 없이 많은 양의 물이 모여있는 곳을 의미한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 뜰에 있었던 물두멍을 '바다'라고 이름하였던 것도 이런 '얌'의 의미와 관련이 있다.(왕상 7:23) 갈릴리바다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주변의 비옥한 해변으로 인하여 고대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지역이다.

 

  (1) 갈릴리바다의 명칭

   역사적으로 갈릴리바다는 여러 가지 다른 명칭으로 지칭되었다. 신약성경에서도 갈릴리바다를 가리키는 데에 네 가지의 다른 이름이 사용되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ㄱ) 갈릴리바다 (Sea of Galilee): 신약성경에서 이 바다는 주로 '갈릴리바다'라는 명칭으로 통용되었다. 이 명칭은 오늘날에도 기독교인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명칭이다.

     ㄴ) 긴레렛바다 (Sea of Kinneret): 구약성경에서는 갈릴리바다를 '긴네렛'이라고 불렀다. 이

                            명칭은 현재 이스라엘에서 이 바다에 대한 공식 명칭이다. '긴네렛'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일부에서는 하프 모양을 띄고 있는 갈릴리바다와 연관

                            시키기도 하는데, 그것은 하프를 의미하는 히브리어가 '키노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는 갈릴리바다의 북서쪽 해안에 위치하였던 '키나로트'

                            라는 도시에서 기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초기 이곳에는 뵈니게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키나르'라는 신을 섬겼다.

     ㄷ) 디베랴바다 (Sea of Tiberias): 갈릴리바다의 또 다른 명칭은 '디베랴바다'이다. 이것은 

                            갈릴리바다의 서쪽 해안에 안티파스에 의하여 건설된 티베리아스'에서 기원된 

                            명칭이다. 안티파스는 당시 로마왕제였던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빌어 이곳 이름을

                            붙였다. 신약성경 뿐 아니라 유대인 경전에서도 이곳을 '티베랴'라고 불렀으며,

                            오늘날 아랍사람들도 이곳을 '바하르 타바리아'라고 부르고 있다.

     ㄹ) 게네사렛바다 (Sea of Gennesaret): 신약성경에서 언급된 갈릴리바다의 네 번째 명칭은 

                           '게네사렛'이다. '게네사렛'은 '지방장관의 정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명칭은 갈릴리바다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게노사르평원에서 연유된 명칭이다.  신약시대와 동시대인이었던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푸스 역시 갈릴리바다를   '게네사렛'이라고 기록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갈릴리바다에 대한 여러 가지 명칭들은 이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이나 그 지역에 있었던 중요한 도시 이름들과 연관되어 있다. 헬라의 지리학자였던 스트라보(Strabo)는 갈릴리바다 남동쪽 야르묵강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던 도시의 이름과 관련하여 이 바다를 '가다라'(Gadara)라고 명명한 적이 있다.

 

  

(2) 갈릴리바다의 지형

   갈릴리바다의 남북간 최장 길이는 21km이며, 티베리아와 막달라 근처에서의 동서간 폭은 각각 8km과 12km가 된다. 갈릴리바다 전체 면적은 약 165km2 이다. 갈릴리의 해수면은 지중해보다 210m나 낮다. 그러나 갈릴리바다의 해수면 높이는 계절과 년간 강우량에 따라 기복이 있다. 갈릴리바다의 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49m인데, 서쪽보다 동쪽이 더 깊으며 남쪽보다 북쪽이 더 깊다. 이것은 동쪽에 있는 골란고원의 경사면이 서쪽에 있는 갈릴리산지 경사면보다 더 가파르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갈릴리바다의 전체 수량은 약 45억6천2백만m2에 달하고 있다.

   갈릴리바다로 유입되는 요단강을 비롯한 그 외의 다른 유입 물줄기들은 모두가 깨끗한 담수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릴리바다에는 약간의 염분이 포함되어 있다. 대략적으로 1리터의 물 속에 약 250-400mg의 염분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염분 농도는 건조기에는 조금 더 높아지고, 우기에는 낮아진다. 갈릴리바다 물에 포함된 염분은 바다 주변과 바다 밑바닥에 있는 광천수 샘들에서 나오는 염분성분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런 요인과 더불어 건조한 날씨로 인한 물의 증발도 염분 형성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는 이러한 샘들에서 나오는 염분을 갈릴리바다 속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특별 수로를 만들어 갈릴리바다 아래 지역으로 빼내고 있다.

   갈릴리바다 주변지역은 언제나 인구가 밀집되어 있었다. 제2 성전시대 갈릴리 주변에는 어림잡아 50만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갈릴리바다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게노사렛평원은 특별히 비옥한 땅으로 유명하였다. 요세프스의 기록에 의하면(유대전쟁사 3:7-8), 이곳은 비옥하고 좋은 토양 덕분으로 잘 맺지 못하는 과실이 없을 정도였으며, 주민들은 모든 종류의 작물을 재배하며 살았다. 이곳은 기후도 알맞아 많은 종류의 생물이 서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자연의 놀라운 혜택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쟁적으로 이 지역의 지배권을 차지하려고 노력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헬라시대와 로마시대에 갈릴리바다 근방에는 많은 도시들이 세워졌다. 바다 주변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식으로 지어진 궁전, 원형 경기장, 극장, 그리고 목욕탕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가버나움, 타브가, 고라신, 아르벨, 벳세다, 수시타, 엘하마, 가다라 같은 도시들의 유적은 당시 이 지역이 얼마나 번창하였던 유대인 지역이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유산들이다. 높은 문명 수준을 지녔던 헬라와 로마시대의 번영과 갈릴리바다 주변에서 꽃피었던 신약성경 및 초기 기독교의 역사, 그리고 탈무드와 같은 경전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는 유대인의 영적 유산은 갈릴리바다 주변의 좋은 자연의 조건 속에서 크게 발전했음이 분명하다.

   갈릴리바다 주변은 300m 이상 되는 가파른 산지로 둘러 싸여 있어 마치 깊은 분지 속의 바다 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산지의 급경사는 주변 산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급작스러운 돌풍으로 바뀌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갑작스런 기상의 변화는 특히 헬몬산의 차가운 공기가 나무가 별로 없는 완만한 골란고원의 경사지를 거쳐 갈릴리바다까지 내려오는 과정에서 자주 일어난다. 이러한 돌풍현상은 오늘날도 자주 만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물을 크게 요동시키는 갑작스러운 폭풍은 어부와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요소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돌풍으로 일어난 풍랑을 잔잔케 하신 기적을 보여주셨다.(마 8:26) 

   갈릴리바다에는 많은 종류의 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다. 울리는 소리를 내는 메기종류인 '바르부트'도 이곳에서 서식한다. 호수에서 서식하는 여러 종류의 고기를 잡아들이는 어업은 주변의 비옥한 평원에서 이루어지는 농업과 함께 이 지역의 중요한 경제적 수단이었다. 이러한 좋은 여건 때문에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바다 가까운 주변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바다 물이 흘러나가는 출구 근처에서 발견된 인간의 두개골은 10만년전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것은 이 지역에서의 인간 거주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신약성경과 유대인의 탈무드가 보여주는 것에 의하면, 헬라와 로마 통치시대에 갈릴리 해변가에는 많은 유대인 어부들이 정착하여 살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역시 갈릴리 주변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살았던 어부들이다. 바다에서 잡은 고기는 이곳에서 개발된 저장하는 방법에 따라 상품화되었고 이런 사업은 이 지역에서 크게 번성하였다. 특히 소금에 절여 말린 고기는 로마에까지 수출할 정도로 잘 알려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