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다(수니에미) συνίημι(마 16:12), 기노스코(γινώσκω) 행 8:30 / 성경공부 인도자를 위한 바른 성경 해석의 원칙들


가끔 성경을 읽은 후에 또는 설교를 듣고 "깨달았다!" 라고 말하는 경우에 과연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많은 회의를 갖게 합니다.
왜냐하면 깨달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예전의 행동과 언어와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깨달음에 대해 묵상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6:12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 깨달으니라.

* συνίημι  4920

1. 깨닫다,  2. 이해하다,  3. 통찰하다

발음 / 수니에미(süniēmi) 
어원 / 미래 συνησω, 제1부정과거 συνῆ- κα, 제1부정과거 가정법 συνῆτε, συ- νῶσιν, 제2부정과거 명령 2인칭복수 σύνετε,
4862와 ἵημι ‘보내다’에서 유래
관련 성경 / 깨닫다(마 13:13, 막 4:12, 롬 3:11), 이해하다(엡 5:17), 지혜가 있다(고후 10:12)
신약 성경 / 26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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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인도자를 위한 바른 성경 해석의 원칙들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지기까지

성경 66권 중 구약의 39권은 그리스도시대 이전에 유대인들이 성경으로 확인(確因)한 것으로 대부분 히브리어(Hebrew Language)로 쓰였다. 구약 원문(原文)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극히 일부분만이 아람어(Aramaic language)로 기록되었다. 또 신약 27권 중 21권은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후 ‘사도들이 쓴 편지’(The Apostles’ Letter)로 당대의 공용어(公用語) 중 하나인 헬라어(Greek language)로 기록됐다.  

구약은 모세를 비롯한 약 30명의 성경 기자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했고 신약은 약 10명의 기자가 기록했다. 성경의 원저자(原著者)이신 하나님은 다윗과 같은 왕으로부터 정치가, 정부 관리, 군대 장관, 제사장, 학자, 의사, 농부와 목자, 베드로 같은 보통 어부 출신들까지 각양각색(各樣各色)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사용하셨다.

이 같은 성경의 신비(神祕)는 66권이 ‘시대’와 ‘저자’와 ‘양식’(樣式)이 다른데도 그 내용은 완전 하나로 통일성(統一性)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의 원저자(原著者)가 한 분 하나님이심을 성경이 스스로 증거 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성경은 어떤 사람의 의도(意圖)나 고안(考案)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확실히 나타내 주고 있다. 성경은 영원히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뜻과 계시(啓示)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성경 기록 연대(年代)는 구약이 기원전 1500년경부터 400년경까지 약 1100년에 걸쳐서 기록되었고, 신약은 기원후 50년경부터 100년경까지 약 50년에 걸쳐서 기록되었다. 그리하여 구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가 기록된 때로부터 신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이 기록되기까지는 약 1600년의 긴 기간이 걸렸다.

 성경 기록을 위해 하나님께서 긴 세월을 거치고 40여 명의 저자와 3대륙의 기록 장소들을 사용하신 목적은 모든 세대와 모든 시대의 환경을 초월해서 적용될 초세대적(超世代的), 초지역적(超地域的)인 말씀이 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었다. 그동안 성경 내의 수천 가지 예언이 정확히 이루어졌고 나머지도 장차 이루어질 것이다. (32,500여 약속, 초림 456번, 재림 1518번 예언) 그러므로 온 세상 책 중 성경만이 지상의 유일한 절대(絶對) 진리임을 나타내신 것이다.

성경 번역 약사(略史)

성경 번역은 애굽의 프톨레미 필라델푸스 왕(Ptolemy II Philadelphus, BC 309-246) 때 왕실의 도서관장 데메트리우스(Demetrius)가 헬라어로 번역된 유대인들의 율법이 별로 없다는 보고를 하자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하라는 지시를 내림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헬라어를 사용하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구약 성경의 헬라어 번역은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유대인 12지파에서 각 지파대로 6명의 랍비가 대표로 선출되어 모두 72명이 이집트의 수도 알렉산드리아로 모여 히브리어 두루마리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했다. 이렇게 번역된 이 최초의 번역 성경을 ‘70인경’(七十人經, Septuagint, LXX, Greek Old Testament)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irony)한 건 유대인 학자들이 심혈을 다해 구약 성경을 번역해놓고 보니 ‘70인경’이 그들이 싫어하는 기독교인에게 좋은 번역 성경이 되어 오히려 기독교인들에게 외경(外經, Apocrypha)을 외의 적극적으로 환영받는 책이 되었다. 그리고 주전 90년 유대인 랍비들은 ‘얌니아회의’(Council of Jamnia, BC 90)에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구약 39권을 정경(正經,  Canon)으로 확인했다.    

이 ‘70인경’의 언어와 메시지가 초기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치고 기독교 내로 헬라문화가 들어오는 통로가 된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사도들을 비롯한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 ‘70인경’을 주로 사용했고 그 결과로 그들의 구약 인용(引用)은 대부분이 ‘70인경’에서 왔다. 결과적으로 ‘70인경’이 기독교 부흥에 크게 공헌하는 기독교인의 성경이 되고 말았으니 유대교 입장에서는 기막힌 일인 된 것이다. 그렇게 되니까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번역한 이 ‘70인경’을 버렸다.

다른 한편 신약성경은 주 후 397년 제3차 카르타고공의회(The Third Council of Carthage, 397)에서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확인했다. 오늘날까지 성경은 계속 각 종족의 언어들로 번역 중인데 세계성서공회연합회(United Bible Societies, UBS)의 2011년의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는 6,600개이다. 그중 구약과 신약이 모두 번역된 언어는 500개 미만이고 쪽 복음이라도 번역된 언어는 2,527개 언어이다.

성경은 영적 계기판(計器板)을 바로 보는데 필요한 몇 가지 원칙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 원칙들은 성경 해석(解釋)과 이해(理解)에 필요한 기본원칙이다. 우리가 전자제품을 사면 따라 오는 사용설명서와 같다. 귀찮다고 설명서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작동하면 제품의 기능을 다 사용할 수 없거나 아예 망가뜨리게 되는 것처럼 딱딱한 내용이지만 기본원칙이기에 익숙해질 때까지 따라야 유익하다.

그런데 기독교 이단(異端)들도 성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기본원칙 즉 말씀을 벗어나(고전 4:6) 교주(敎主)의 가르침을 주장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단(異端)이란 정통(正統)과 끝이 다르다는 뜻이다. 이제 그 원칙들을 차례로 설명하겠다.

 1.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하기에 인간의 반응은 부차적이며 종속적(從屬的)이다.
인간이 복을 받기 위해서, 어떤 문제해결을 위해서 예를 들면 병 낫거나 혹은 삶이 잘 풀리기 위해 혹은 능력 받고 축복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창조주요 구속(救贖) 주시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며 경외(敬畏)하고 순종이 따라야 할 것이다. 성경은 수용자(受用者)인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계시자(啓示者)이신 하나님이 중심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성경을 맛보아 아는 것이다.(시 34:8) 

순종하지 않는 성경 지식은 오히려 당신을 넘어지게 하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이에 관해 한 예를 들면 예수께서 영생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하우테 데 에스틴 헤 아이오니오스 조에 히나 기노스코신 세 톤 모논 알레디논 데온 카이 혼 아페스테일라스 예순 크리스톤.
αυτη δε εστιν η αιωνιος ζωη ινα γινωσκωσιν σε τον μονον αληθινον θεον και ον απεστειλας ιησουν χριστον


헬라어에 ‘안다’는 말은 ‘오이다’(οiδα)와 ‘기노스코’(γινώσκω)가 있다.
‘오이다’는 이성적(理性的) 이해의 의미이다.
‘기노스코는’ 전인적(全人的) 경험과 영성으로 전 존재를 다 안다는 의미이다.

예로서 내가 뉴스를 통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활동을 알지만(오이다),
‘기노스코’의미로는 그분과 나는 서로 모르는 관계인 것과 같다.

‘기노스코’에 상응하는 히브리어 ‘야다’(Yadah) 동사는 부부의 성적 연합을 의미한다.(창 4:1) 따라서 부부간에 서로 ‘안다’는 것은 육체적이고 심리적이고 영적인 연합을 말한다. 그러므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여 전 인격으로 연합하고 교제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개념이다. 즉 아는 것이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永生)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죽은 자요 살았으나 생명이 없는 자이고 하나님을 ‘아는 자’ 곧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소유한 사람이다. 죽어서만 영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시간이 영생의 시간이며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시간부터 영생이 천국까지 계속되는 것이며 천국에서도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체험해서 영생을 얻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선교하는 삶으로 살지 않으면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알아도 단지 지식일 뿐이다.

18세기 영적 대각성 운동을 이끈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디모데전서 1:17 말씀을 읽던 중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말씀을 강렬하게 체험했고 이 체험은 에드워즈 개인에게만 아니라 개 교회 그리고 전 사회를 진정한 부흥의 불길과 거룩한 개혁으로 이끌어갔으며 사회 구석까지 이른바 각성의 불길로 번졌고 윤리적 차원에서도 성결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한 사람의 하나님 임재(臨在) 체험은 세상과 역사를 바꾸는 불씨가 되었다.  

‘인간 중심’의 성경 이해는 종종 ‘하나님의 주권’을 인간의 선택(選擇)이나 수용(受容)에 좌우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바르게 듣고 이해하며 믿고 영광 돌리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다. 인간의 복과 보상과 대가를 먼저 생각하고 성경에 접근하는 것은 운동선수가 먼저 열심히 훈련해서 실력 쌓을 생각은 않고 시합 후 받을 상금부터 계산하는 것보다 더 잘못된 생각이다.

왕의 명령을 어명(御命)이라 했다. 어명이면 사약(死藥)이라도 받아먹고 죽어야 했다. 성경은 사람의 손으로 쓴 일반 책과 달리 전지전능하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책이므로 하나님을 대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읽고 배우고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공부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성경을 펼쳐야 한다.(신 31:9-13) 우리는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9) 사무엘처럼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 위해 성경을 대해야 할 것이다.

2. 성경 저자의 기록 목적을 이해하라.

물을 담을 목적으로 만든 컵으로 전화를 하려고 하면 되지 않는 것처럼 성경도 성경을 기록한 목적대로 이해하고 읽어야 한다. 디모데후서 3:15-17에 성경 전체의 목적들을 명시하고 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의 목적은 첫째, 성경을 통해 구원받고 둘째, 삶의 변화를 받아 셋째,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구원을 받았고 예수를 닮아가며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심판받아 지옥 갈 영혼을 예수께 인도하는 일이다. 이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마 16:26) 

이상의 세 가지 ‘구원 얻는 생명 문제’, ‘구원받은 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삶 문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사명 문제’가 성경 이해의 기본(基本, basic)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성경 이해의 기본을 놓치고 성경을 대하는 것은 알맹이를 놓치고 껍데기 붙잡는 우(愚)를 범하는 것이고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성경은 또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속사(救贖史)이기에 이 같은 눈으로 성경을 보지 않으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즉 성경은 복음(예수 그리스도)을 증거 하는 선교의 책이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에서 ‘선교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롬 16:25,26)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자는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가 산 제사 드리는 예배자로 사는 것처럼 예수를 구주로 믿는 순간부터 누구나 만인의 제사장으로 영적 군사로 복음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리고 성경의 각 권마다 그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고 누구를 대상으로 기록되었는지 바로 이해해야 한다.(요일 5:13) 예를 들면 열왕기나 역대기는 얼핏 보면 중복된 내용이 많아 필요 이상으로 역사서가 두꺼운 느낌이지만 역대기는 열왕기의 단순한 중복이 아니고 기술 관점(觀點)이 다른 것이다. 열왕기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선지자(先知者)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역대기는 제사장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열왕기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성결로 인간의 죄악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반면에 역대기는 인간의 패역(悖逆)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구속하시는 구속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와 함께 성경을 읽는 가운데 결국 성경이 나를 연구하고 변화시키도록 말씀이 주인이 되도록 끊임없이 나를 부인하고 비워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과 행동을 다스릴 모든 원리를 성경에서 발견해야 한다.(살전 4:1-12, 5:12-22)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완전 무장을 할 수 있다.(시 19:7,8, 딤후 3:16,17) 하나님 말씀 자체에 힘과 생명력이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 힘을 성경에서 얻어야 한다.  

  3.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해하라.

성경 계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인내심으로 마치 어머니가 어린아이에게 말과 걸음마를 가르치듯 그 진리의 뜻을 점진적(漸進的)으로 넓혀가고 있다. 예수를 증거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계시인데 하나님의 계시는 완전하나 인간의 인식 능력의 한계로 하나님은 그의 계시를 한 시대의 한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 점진적 계시를 하셨다.

그러므로 성경 계시의 특성에는 내용의 통일성(統一性)과 함께 계시 전달 형식과 방법에는 계시의 점진성(漸進性)이 있다. 이는 마치 창세기라는 시발역(始發驛)으로부터 요한계시록이라는 종착역(終着驛)까지 놓여있는 선로(線路)와 같다. 그러므로 성경은 나눌 수도 없고 한 권이라도 떼어놓을 수도 없다. 우리가 66권의 성경 전체의 핵심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뼈대 있는 신앙이 되어서 견고하게 설 수가 있는 것이다.

성경의 원저자(原著者)는 하나님이시다. 또 그분은 성경 안의 모든 사건과 역사의 주관자(主管者)이시고 집행자(執行者)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성품(性稟)을 잘 이해하는 것이 성경 각 권을 이해하는데 지름길이다. 왜냐면 그분의 성품과 뜻과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변치 않기 때문이다.(약 1:17) 구약 노아시대 때 물로 심판하신 하나님은 신약시대 현장에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신 그 예수님과 똑같으신 분이시다.

그런데 우리가 구약의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으로 느껴지고 신약의 예수님은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나님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계시의 시간의 차이 때문이다. 구약은 계시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와 눈에 보이지 않은 형이상학적인 진리를 모형으로 보여주는 계시 방법이 필요한 시대여서 우상숭배라는 죄의 삯은 사망임을 보여주기 위해 돌로 쳐 죽이는 것이다.(레 20:2)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장수, 건강, 부귀, 자손의 번영 등으로(신 28장) 눈에 보이게 계시하셨다.

그러나 계시의 실체인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성도의 내세 존재를 분명히 계시하셨기에 그 후로는 복음을 위해 바울처럼 처자식 없고 핍박받고 순교 당하는 것까지 영원한 축복과 면류관으로 드러내신 것이다.(딤후4:8) 

성경을 처음 대하는 초신자들이 구약을 읽을 때 어려워하고 “이스라엘 역사 이야기가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하며 구약을 이스라엘 역사 이야기로 간주하여 멀리한다.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을 합쳐 한 권의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원래 언어가 필요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나 인간들이 알아볼 수 있는 문자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할 수 없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이 왕 되신 신정국가(神政國家)의 본이 되어 만방에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한 민족을 먼저 택하셨다.(출19:5,6) 그 민족이 이스라엘 백성이고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은 그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여 구약을 기록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당신의 형상으로 지었기에 인간의 인격을 존중하신다. 그래서 인간과 대화하시며 그분의 뜻을 계시하셨다.

성경의 주류(主流)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역사의 흐름이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를 예언적이고 예표적으로 내다보았고 신약은 구약의 예언대로 오신 메시아를 증거 하고 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님이 역사의 중심인 동시에 성경의 중심이다. 그는 하나님 자신이시고 또 계시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요 5:39) 

이렇게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또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전체를 염두에 두고 이해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어린양이 되신 메시아로서의 고난의 주도 보아야 하지만 우리를 날마다 승리하게 하시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위대하신 능력의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으로 그리고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왕으로서의 메시아도 동시에 믿음으로 보아야 한다.

구속(救贖)이 성경의 중요한 대 주제임이 분명하나 그것이 모든 것을 다 포괄하는 주제는 아니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주제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영광 안에 구속도 포함되고 대계명(The Great Commandment), 대사명(The Great Commission), 천사와 사탄에 대한 계획, 천년왕국에 대한 계획, 심판과 지옥,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계획도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경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적으로 계시하기에 해석도 또한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야 한다.

구약은 율법을 통하여 만왕의 왕(King of Kings)이 오셔야 할 필요성을 말하며 계속해서 “왕이 오신다!”고 증거 했고 신약은 복음으로 왕이 오심으로 이루어진 소식 “왕이 오셨다!”(마 1:1) 그리고 “왕이 다시 오신다!”(계 22:20)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初臨) 사역(구원)에 근거하여 재림(再臨) 약속(완성)을 기다리며 말씀을 지키며 살도록 하셨다. 또 우리는 왕의 명령인 대사명(선교)을 준행하는 왕의 증인이 되어 왕과 함께 왕의 나라를 확장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진리는 하나이다. 우리가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하고 믿는 것처럼 구약은 메시아로 오실 주님의 그림자(예표)를 보고 믿었다. 구약의 성도들은 보지 못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았고(요 8:56) 우리도 보지 못한 오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도마는 보고 믿었으나 우리는 보지 않고도 믿으니 도마보다 더 복된 자들이다.(요 20:29) 

구약과 신약은 사람이 구분한 것이지 그 내용은 연속적(連續的)이며 그리스도로 일관되어있다. 구약의 성도가 믿었던 구세주 메시아를 우리는 지금 믿고 있고 또 그들이 대망(大望)한 재림의 주(主)를 우리도 믿고 전파하면서 기다리고 있다.(유 1:15,16, 요 8:56, 시 22-24편 참고)

4. 성경으로 성경을 이해하라.

하나님은 위대한 설계자시며 창조자로서 다양한 재료들로 성경이란 웅장한 건물을 지으셨다. 따라서 성경의 각 부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한 부분을 볼 때 동시에 다른 부분과의 연결 속에서 보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 성경 각 부분의 유기적(有機的) 통일성은 신약과 구약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씨가 자라서 떡잎을 나고 줄기와 가지와 잎이 생긴 다음 꽃을 피우고 마침내는 열매를 맺는 것처럼 신구약 말씀은 전자제품의 기술이 개발되고 신기술이 개발되면 과거의 제품은 생산하지 않은 그런 발전이 아니라 유기적 생명체로서의 진전인 것이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1,2)

이처럼 성경 전체적으로 알지 못하면 마치 장님이 코끼리 발목 잡고 발목을 코끼리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오류(誤謬)를 범할 수 있다. 우리 몸 각 부분이 한 몸을 이루듯 성경 각 권이 한 성경을 이루기에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각 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해석이 되어야 할 본문을 어떻게 하면 전체의 구조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가?  

먼저 평행구조와 내용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히브리서 7:20의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라는 이 말씀에서 멜기세덱에 관한 이해는 그 평행구조의 창세기 14장과 시편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班次)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성경 구절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성경 말씀을 성경의 다른 구절이 설명해줌으로써 명확해진다. 이같이 성경은 그 자체가 가장 훌륭한 해석자가 된다. 성경은 많은 주제에 대해 한 문장 이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때때로 성경은 한 주제에 대해 어느 부분에서는 간략히 다루며 또 다른 부분에서는 길게 다루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성경의 각 본문을 풀어야 한다. 성경의 해석은 성경 안에 들어있다. 마태복음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한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다.(갈 2:16)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그 해답은 성경 안에 있다. 요한복음 6:39,40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고 했다. 마태복음 7:21에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이 요한복음 6:39,40에 보면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 얻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처럼 성경이 스스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성경 전체 내용을 알아야 하고 성경 전체의 맥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한 국가의 모든 법의 정신과 기초가 헌법에 있고 헌법은 모든 다른 법의 상위(上位)에 있음과 같이 전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性稟)과 그분만의 영원한 자연적인 속성(屬性)은 모든 성경 해석의 헌법(憲法)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속성에 근거하여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두신 것은 인간을 향한 선하신 동기임을 믿는다. 왜냐면 우리가 죄인으로 있을 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신 선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행하심은 그의 속성상 항상 선하시다. 왜냐면 그분은 원래부터 영원히 선하신 분이신 것이 전체 성경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의 한 성품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이 선악과(善惡果)를 두신 이유가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 않았을지라도 그분의 성품을 믿음으로 그 성품 안에서 우리는 자유 하며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성경 66권을 부지런히 읽고 66권 전체에서 현현(顯現)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인격으로 만나야 한다. 편식(偏食)하면 우리 몸이 건강할 수 없듯이 성경을 편식하면 우리의 신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성경에 연구되고 변화 받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형상을 닮아가야 한다.

고린도전서 2:12,13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선언하신 문맥의 원리를 보여준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이것은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이다. 성경을 설명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방식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곧 성경으로 성경을 설명하는 방식인 것이다. 성경의 조명은 성경 자체를 통하여 온다. 그것이 바로 문맥 원리의 원칙이고 가치인 것이다.

문맥(文脈)에는 가까운 근접문맥(近接文脈, immediate context)과 먼 거리의 원접문맥(遠接文脈, remote context)이 있다. 근접문맥은 가까이 접해있는 단어들과 문장들로 구성된 한 두 개의 문단의 흐름이다. 흔하게 드는 예로 ‘GODISNOW-HERE’를 말할 수 있다.(‘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와 같은 말) 이 문장은 문맥에 따라 ‘God is now here’(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계신다.)도 될 수 있고 ‘God is nowhere’(하나님은 아무 데도 없다.)가 될 수 있다.

이같이 한 문장이 문맥의 해석방법의 차이로 무신론(無神論)과 유신론(有神論)으로 갈리는 하늘과 땅 차이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성경 해석에 있어 상하 문맥을 이해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문맥은 단순히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되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의미를 만들어 낸다.

원접문맥은 그보다 멀리 연결되는 문맥으로 책 전체나 한 저자의 여러 책이나 제일 크게는 성경 전체의 흐름이다. 원접문맥을 파악하는 방법의 예를 들면 빌립보서의 한 구절을 이해하려고 하면 먼저 빌립보서의 저자인 바울이 어디에서(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썼는가를 생각하면서 전체의 대의를 파악해야 한다.

사실상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성경의 장(章), 절(節) 구별은 원래부터 그렇게 되어 있던 게 아니라 사람이 구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장(章), 절(節)을 넘어서 ‘문맥의 원리’로 문장의 상하를 잘 살펴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성경 해석의 우선순위를 따른다. ‘성경 전체의 대의’(大意) —> ‘성경 각 권의 대의’(大意) —> ‘각 장의 대의’(大意) —> ‘각 절의 의미’(意味) —> ‘각 단어의 뜻’ 순서다. 참고 : 최초 성경 전체를 1,189장으로 나눈 사람은 스티븐 랭톤(Stephen Lengton, 1150-1228), 1553년 최초 성경 전체를 31,163절로 나눈 사람은 인쇄업자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 일명 Robert Estienne, 1503-1559)이다.

5. 성경 본문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라.

모든 언어는 크게 두 가지 표현방식이 있는데 ‘문자적’(文子的) 표현과 ‘수사적’(修辭的) 표현이다. 이중 일차적인 표현이 ‘문자적’ 표현이다. 우리는 누구와 대화 할 때나 글을 읽을 때 문자적인 해석으로 이해가 될 때까지 먼저 문자적으로 이해한다. 여기에는 다음 두 가지 원칙이 문자적인 해석과 이해가 필요하다.

(1) 인간의 언어 관습이 문자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두 사람이 대화할 때 그 대화를 서로 이해하려면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약속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한 사람이 ‘빵’을 말할 때 상대방도 먹는 ‘빵’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럴 때 피차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진단한 후 X-Ray 사진 등을 보여주며 “폐암이니 빨리 입원하고 수술 준비하십시오.”라고 말했는데 듣는 사람이 폐암을 폐암으로 알아듣지 않고 수사적인 표현 즉 “감기 기침을 저런 식으로 표현을 했겠지…”하고 자기 임의대로 해석하여 이해한다면 이 환자는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가?

(2) 성경 목적이 문자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시인 성경을 인간에게 주신 이유는 인간이 그 계시를 읽고 이해해서 구원받고 구원받은 후 변화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예수를 증거 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 사람은 그 읽는 성경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에 부분적으로 사용된 수사적(修辭的) 표현도 신비(神祕)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 독자로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에 있다.

또 성경의 예언(豫言)은 성취의 시간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라 미래의 여러 가지 사건을 함께 취급하고 있기에 어느 예언이 어느 시대를 가리키는지에 유의하지 않으면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바벨론 포로, 주의 날과 연관된 사건들, 바벨론에서 귀환, 이스라엘의 흩어짐과 회복 등이 시간과 장소 구별 없이 성경에는 섞여져 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이 특히 많은 혼동을 하게 한다. 오늘날의 우리가 볼 때 2,000년 이상의 간격(間隔, gap)이 있는 사건이 성경에는 동시에 언급되어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사야 61:1,2 말씀을 주님께서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 하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라고 누가복음 4:18,19에 인용하고 계신 데 두 곳을 비교해보면 주님이 이사야 61:2의 첫 부분에서 인용을 생략하고 계신 것을 보게 된다. 그 이유는 2절의 첫 부분까지는 주님의 초림 때 그리고 그 이하는 주님의 재림 때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이사야 61:1 이하에서는 시간의 차가 없이 함께 예언하고 있으나 주님은 2절 상반 절까지와 그 이하 사이에는 상당한 시차가 있음을 인정하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율법은 율법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폐하여진 내용이 있다.(히 10:9)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기’ 때문이다.(고전 13:10) 영화 예고편은 본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광고용이다. 본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하면 예고편은 폐기되는 것처럼 구약의 복잡한 여러 가지 제사(祭祀)들을 지금은 마땅히 폐하여야 할 예고편과 같은 것들인데 오늘날도 유월절을 고집하는 어리석은 이단도 적지 않다. 이와 달리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율법은 오늘날도 계속 지켜야 할 계명이다.(레 19:18, 마 5:17) 

또 구약의 결론은 오실 메시아의 예언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신 메시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승천하신 주님이 보내사 우리 안에 임하실 성령 하나님을 증거 하고 있다.(렘 36:26,27, 욜 2:28,29) 그리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충만히 임하시면 우리가 비로소 주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또 성결(聖潔)의 소극적인 개념은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고 적극적인 개념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성결 명령은 모든 시대의 도덕률의 표준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십계명은 신약의 예표가 아니고 영원한 도덕률의 규범이기에 신약의 성도들도 준수하여야 할 주의 명령이다.(참고, 마 22:34-40) 이러한 중요한 계명들은 문자 그대로 받으면 된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 충만 받아 성령님에 취하여 살 때 성결한 삶 곧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셨고 그래서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본을 보이신 예수님 삶을 본받아(롬 8:29)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마 16:24) 예수님의 대속(代贖)의 죽음과 부활 승천 후 약속하신 대로(요 16:7)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오늘날의 교회가 탄생했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 땅끝까지 나아가는 세계 선교사역이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음을 신약은 보여주고 있다.

 6. 성경 배경을 참고하여 성경을 이해하라.

성경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개 대륙에 걸쳐 3개의 상이(相異)한 언어로 상이한 배경에서 약 1,500년 간의 긴 세월에 걸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그 당시 생활을 자세히 바르게 이해하는 게 바른 성경 해석에 아주 중요하다. 그러므로 성경 기록 당시의 역사, 지리, 정치, 종교, 경제, 풍습, 문화 등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은 이같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예기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적 사람의 현장에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에 역사적 해석과 이해가 필요하다. 성경 배경을 연구한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1) 성경 그 자체에서 실제적 증거를 얻는다.

예로서 고린도서는 고린도 교회의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반영한 바울의 서신이다. 우리는 고린도 전후서를 자세히 관찰하면 고린도 교회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고전 1:6,12, 2:1, 6:1,6, 7:1-24, 8장, 10장, 11:13, 12장-14장) 

창세기는 하나님의 창조와 모든 인류 역사의 기원을 기록함으로 이 창세기 역사적 배경에서 인류의 역사는 시작된다. 즉 성경 자체가 역사적 배경을 기초로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그러므로 성경 자체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표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관주(貫珠) 성경을 사용하는 것은 역사적 배경 자료를 얻는데 좋은 방법의 하나다.

(2) 해당 전문 자료들을 통해 증거를 얻는다.

또 역사, 지리, 문화, 사회 등을 다루는 신구약 성경 배경 역사서 성경 사전이나 백과사전, 지리서 등을 통해 성경의 역사적 배경 이해가 가능하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역사적 배경

말씀 뒤의 감추어진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성경을 더욱 완전하게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2장의 배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헤롯 대제(Herod the Great, B.C. 73-4)가 그의 학정 말기에 너무 불안해서 처남을 죽이고 두 아들을 죽이고 마지막에는 첫 부인과의 사이에 태어난 가장 총애하고 신임하던 맏아들까지 죽였다. 이런 상황에서 동방의 박사들이 나타나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하고 물었을 때 헤롯은 뒤통수를 맞는 듯했을 것이다. 이러한 당시 헤롯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마태복음 2장의 내용이 더욱 실감 나게 이해가 된다.

② 문화적 배경(사회, 정치, 풍습, 예술. 종교, 문학, 과학, 경제 등)

예를 들면 사도행전 3:1에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의 배경은 무엇인가? 유대인과 로마인은 시간관념의 차이가 있었다. 복음서에서 요한복음은 로마인 시간으로 기록했고 기타 공관 복음서는 유대인(일몰에서 다음 날 일몰까지)으로 기록한 것이다. 로마인 시간은 유대인 시간에 6시간을 더하면 된다.

그런데 유대인 남자들은 성인이 된 만 13세부터는 하루에 세 번 정해진 기도 시간을 꼭 지켜야만 했다. 오전 9시, 낮 12시, 오후 3시에는 반드시 하던 모든 일을 중단하고 기도드렸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 장애인을 고쳐 준 것도 바로 오후 3시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던 시각이었다. 또 유대교의 예배와 관습은 초대 기독교회의 기초였다.

⓷ 자연환경의 배경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뢰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로 밝히 알게 하시리라.”(삼상 12:17) 사무엘은 밀 베는 때에 비가 내리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4월 중순에 10월까지는 비가 오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밀 베는 수확은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까지였다. 따라서 사무엘의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또 기본적인 신구약 성경 지도를 그릴 정도면 성경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주의할 점은 배경연구나 참고는 어디까지나 성경 이해의 보조수단이지 성경 평가의 수단이 아니다. 만일 성경과 어긋날 때는 성경의 기준으로 배경사(背景史)를 비판해야 한다. 신학은 성경을 이해하고 전파하는데 돕는 시녀와 종의 역할을 해야지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⓸ 언어적 배경

히브리인들의 독특한 관용어(慣用語)나 성경 원어(原語)를 한국어로 번역하는데 언어의 차이를 살피는 것도 참고해야 한다. 예를 들면 헬라어에 사랑은 네 가지 종류의 표현 단어가 있는데 스톨게(storge)는 가족 친지 간, 동족 인연 같은 혈육의 사랑이다. 에로스(eros)는 남녀 간 좋아하는 육체적 사랑이다. 필레오(phileo)는 친구 간 우정이다. 아가페(agape) 무조건(無條件)의 천래적(天來的) 사랑이다.

요한복음 21장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를 찾아와 물으셨다. “네가 이 모든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때 주님이 물으신 사랑은 아가페(Agape)였다. 주님의 물음에 베드로는 대답했다. “예, 주님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때 베드로의 대답한 사랑은 필레오(Phileo)였다. 그는 감히 아가페(Agape)로 대답할 수 없었다. 한국어로는 모두 사랑으로 번역이 되었으나 이렇게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이 털이 검은 개 한 마리를 사서 ‘검둥이’라고 이름 짓고 부르면 우리는 그 이름의 뜻을 잘 알아도 한국어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은 우리가 느끼는 언어의 뉘앙스(nuance)를 느낄 수가 없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의 이름은 신기하게도 대게 그 선지자의 일생을 대변하거나 그를 통한 그 선지서의 주제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구약의 선지자 미가(מִיכָה, Micah)라는 이름의 뜻은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미가서의 주제는 7:18의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그 선지자의 삶과 그 책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성경은 연대기적으로 편성된 것이 아니라 시가서(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등)는 시가서 대로 역사서는 역사서(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기상하등) 는 역사대로 대로 문학적 양식에 따라 분류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느헤미야서나 말라기서는 배열이 같이 있지 않아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거의 같은 시대에 벌어진 사건이다. 그러나 느헤미야서는 역사서 그룹에 말라기서는 선지서 그룹으로 분류했기에 배열상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선지서도 분량에 따라 배열의 순위를 정하여 다니엘 이야기가 시기적으로 더 먼저 일어난 일인데 에스겔서가 분량이 많아 앞에 배치된 것이기에 각 성경의 시기를 이해하는 것도 본문을 깊이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그래서 신구약 중간(中間)에 침묵 시대라고 하는 신구약 중간사(中間史) 공부도 신약 이해에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7. 특별한 내용은 기도하며 이해하라.

하나님이 만물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실 때는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사용하시지만 필요하신 때는 홍해를 가르시거나 태양을 멈추시던 것처럼 초자연적(超自然的) 일도 행하신다. 언어를 해석하는데도 일반원칙을 주로 사용하지만 특별한 형태의 언어는 특별한 해석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당신은 나의 충전기입니다.”라고 할 때 문자적 이해로는 그 의미 이해가 안 된다. 이것은 수사법(修辭法)을 사용한 표현으로 상대방이 말하는 자에게 큰 힘과 도움을 준다는 은유적(隱喩的) 표현이다.  

성경 해석에 있어 우리는 기본적으로 문자적(文子的) 표현법을 기초로 해석하고 이해하면서 문자적인 뜻으로는 일반해석 원칙상 해석이 불가능할 때는 이차적으로 수사적(修辭的) 표현법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하여 그에 상응하는 특별 해석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또 문장의 행간(行間)을 읽으라고 한다. 행간이란 문장(文章)의 행과 행 사이를 가리키는 말로 글에 직접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 그 글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숨은 뜻을 깨달으라는 말이다. 우리가 행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글이나 말속에는 단어나 문장만으로는 전하려는 뜻을 정확하게 나타내거나 다 전할 수 없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 생활문화 속에는 구체적이거나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완곡(婉曲)한 표현으로 뜻을 전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의 진리는 너무 심오(深奧)해서 일반적 언어로는 표현이 어려운 경우 성경 안에도 비유법(比喩法)이 사용되었음을 알게 된다. 수사적(修辭的) 표현은 깊고 어려운 진리를 생생하고 또렷한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image)를 제시해 준다. 또 각 표현법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성경에는 약 200개 이상의 수사적 표현들이 있다.

그러므로 ‘문자적 표현’은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수사적 표현’은 수사적으로 해석해야 올바른 본뜻을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자적 해석이 모순 또는 애매함을 가져오지 않는 한 단어들은 그들의 문자적 의미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해석의 기본법칙이다.  

또 모형(模型, 예표, 유형, 표상)이란 하나님이 어떤 성경 진리의 예시(豫示)로 지정하신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신약성경 중 히브리서는 레위기의 해설서(解說書)라 할 수 있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히 8:5) 또는 ‘비유’라고 말씀하면서 “개혁(改革)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 9:9,10) 그러므로 모형, 그림자, 비유 등을 해석할 때에 유의해야 할 점은 구약의 모든 것을 예표로 삼아 알레고리칼(allegorycal) 하게 이해하는 과장 해석이나 억지 해석을 피해야 하고 나타난 실체(實體) 즉 밝히 드러난 복음의 빛을 통해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치는 말

성경은 일반 책과 달리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계시의 말씀이다. 로마서 16:25,26에 복음을 감추어졌던 ‘비밀의 계시’라고 했다. ‘계시’(啓示, αποκαλυπσιζ)는 ‘감추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주셔야만 보인다.(엡 1:18) 간절히 기도하며 읽으면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주시고 복음과 선교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성경 이해에도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 뜻을 따르며 순종하는 자들(친구)에게 영적 계시를 보여주신다. 요한복음 15:14,15에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계명을 지키는 자가 주님의 친구라고 하셨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3:1,2에 바울이 말씀을 음식으로 비유하여 어린아이 같은 신앙의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훈계(訓戒)하며 어린애들에게 먹이는 젖으로 그들을 대했다고 했다. 영적 생명은 우리의 일생동안 자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양들은 일생동안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갓난아이가 처음에는 젖을 먹다가 나중에는 점점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듯이 영의 양식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어린이도 하루아침에 다 자라나 어른이 된 자가 없듯이 영적 생명도 하루아침에 주의 진리를 더 깨달을 필요 없이 다 깨닫고 행하는 자가 없다.

이것은 우리 신앙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함을 말한다. 어릴 때 부모 마음을 알지 못하다가 철들어서 부모 마음을 알고 나중에는 자신이 부모가 되어 진실로 부모의 마음을 잘 알게 되듯이 영적 생명도 성장 정도에 따라 주의 말씀이 깨달아진다. 하나님을 아는 분량이 장성한 자(엡 4:13, 고전 13:11,12)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히브리서 5:14에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했다.  

성경은 우리가 나의 것으로 삼은 영적 생명의 분량만큼 이해되고 순종할 수 있다. 우리가 주님을 닮는 것은 일생의 거룩한 목표요 추구이다. 아무리 성령 충만해도 우리의 몸이 부활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하나님과 하늘에 속한 진리의 말씀을 청동거울을 보는 것처럼 이해에 한계가 있음을 바울도 고백했다.(고전 13:12) 

그러므로 성경의 깨달아지지 않는 부분은 겸손히 주 앞에 내려놓고 그의 도움을 기다려야지 억지로 풀려다가는 잘못되는 것이다.(벧후 3:16) 억지로 풀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잘못보다 “잘 모르겠다.”고 하는 정직과 겸손이 우리를 얼마나 자유 하게 하는지 모른다.

주님이 언제 다시 재림하시는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면 주께서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데서 멈춘다고 했다. 이는 성경 해석에 정직하고 올바른 태도를 보여 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는 성령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므로 항상 다윗과 같은 기도가 필요하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글쓴 이 / 김다니엘 목사, 서울신대,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Asian United Theological University, ACTS), 미국 Faith Theological Seminary(D.D), 선교사, SIM 국제 대표(I.D) ㈜ 본 글은 본지 편집에 맞도록 재편집 한 것입니다. 원문은 아래 출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flower-rainy/gb8b/200  ‘베이직 구약성경’ 김다니엘 著, 쿰란출판사 



성경을 읽으며 무엇을 깨닫는가?


사도행전 8: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 깨닫느뇨?

* 깨닫느뇨(1097) γινώσκω  

1. 알다,  2. 신비를   3. 하나님을

발음 / 기노스코(ginōskō) 
관련 성경 / 알아보다(막 6:38), 알다(마 6:3, 12:5,7, 막 5:43, 8:17, 눅 20:19, 요 1:40), 알게 하다(마 9:30, 요 19:4), 알려지다(마 10:26, 눅12:2), 깨닫다(마 24:39, 막 5:29), 알리다(막 9:30, 요 7:17), 동침하다(마 1:25), 주다(막 4:11)
신약 성경 / 222회 사용


예수님과 이적의 사건들


오병이어의 이적

‘오병이어’는 번역 실수가 만든 기적?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여명을 먹이고도 남은 빵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는 <신약성서>의 네 공관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놀라운 이야기.

믿기 어려운 기적의 진실은 무엇일까?

1976년부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성서학과 고대 셈어, 이집트학, 아시리아학을 공부하고 수메르어로 학위를 받은 뒤 10여년간 히브리대에서 가르쳤던 성서학의 국제적 권위자 조철수(60) 교수의 <예수 평전>은 눈이 번쩍 뜨이는 설명을 제시한다.

조 교수는 마르코 복음서 6장의 이 기적 이야기 일부를 이렇게 인용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여 각자 동료들끼리 풀밭에 앉게 했다. 백 명의 동료지간의 백부장과 오십 명의 동료지간의 오십부장이 끼리끼리 자리잡았다. 예수는 다섯 개의 빵과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향해 쳐다보며 축복하고 빵을 떼어 그의 제자들에게 주며 그들 앞에 나누게 했다.”

공동번역 성서의 마르코 복음서는 이 가운데 ‘백명의~’ 부분을 이렇게 옮겨놓았다. “군중은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모여 앉았다.”
마태오나 루가 등 다른 복음서들에는 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앉았다는 표현 자체가 아예 없다.
이 표현의 차이에 주목하라.


‘오병이어’는 번역 실수가 만든 기적?

조 교수가 인용한 마르코 복음서 내용은 자신이 따로 번역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신약성서 원문은 그리스어로 쓰여 있는 게 가장 오래된 사본이다.
그런데 이 그리스어 원본 자체가 번역본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 복음서나 사도들 편지는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기록됐고 적어도 그 수십년 뒤에야 그리스어 본들이 만들어졌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같은 계열이지만 그리스어는 전혀 다른 언어체계다.
따라서 아람어와 히브리어 텍스트들을 자신이 직접 번역한 조 교수의 인용문이 당시 이스라엘(유대)의 언어행위 실상과 사회상에 더 근접할 가능성이 높다.

조 교수는 1947년 발굴된 ‘사해 두루마리’ 등의 옛 전적들을 성서와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예수의 실상을 재구성한다.

조 교수에 따르면 공관복음서에서 ‘오천 명’이라 옮긴 단어는 아람어 본(페시타) 신약성서에는 ‘오천’이라고만 돼 있다.
오천은 히브리어로 ‘아메쉐트 알라핌’이다.
그런데 이를 ‘하메쉐트 알루핌’으로 읽으면 ‘다섯 천부장’이라는 뜻이 된다.
당시 히브리어나 아람어에는 모음부호가 없었기 때문에 알라핌을 알루핌으로 읽는 식의 바꿔 읽기는 유대교 성서 해석에 종종 활용됐다. 따라서 오천을 오천명의 군중이 아니라 ‘다섯 천부장’으로 읽을 수 있다면 ‘백 명씩 오십 명씩’은 백부장, 오십부장으로 옮길 수 있다.
조 교수는 ‘빵을 먹은 이들이 다섯 천부장이었다’는 말은 백부장과 오십부장들이 참석한 그날의 특별한 만찬 의례에서 그들 가운데 다섯명의 천부장을 선출했다는 얘기고 예수가 그들에게 성찬의례를 베풀었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천부장들은 당시 예수가 한때 소속돼 있던 에세네파 공동체의 최고의결기관에서 재판관들과 사제장들, 부족장 등과 함께 그 조직 주요 구성원이었다.

사해 문헌 중의 에세네파 예식에 대한 규례들 중에도 “이스라엘의 천명의 장과 백 명, 오십 명, 십 명의 지도자와 재판관” 등이 재판 청문회에 참석한다는 내용들이 들어 있다. 나중에 에세네 공동체의 한계를 지적하며 떠나간 예수의 공동체 역시 성찬의례를 통해 다섯 천부장을 뽑고 그들이 열두 제자들 모임에 합류하는 좀더 발전된 상부조직을 갖게 된다. 열두 광주리의 12라는 숫자도 이스라엘 12지파, 12제자처럼 당시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고, 메시아의 도래를 알리러 각지에 파견한 72제자의 72라는 숫자도 당시 천문관념에 따라 지파당 6명씩 배치한 결과로 읽힌다.

그렇다면 오병이어 기적의, 외딴곳 그 많은 군중을 어떻게 먹이느냐는 제자들 질문이나, 다 먹이고 남은 빵과 물고기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는 복음서들 얘기는 오역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후대에 추가되고 윤색된 내용일 가능성이 있다. 그날 성찬의례 참석자, 빵과 물고기를 단합과 사명과 정체성 확인 차원의 의례행위로 받아먹은 사람들은 예수 공동체의 소수 지도급 인사들이었다. 마르코 8장의 일곱개 빵으로 사천 명을 먹였다는 얘기도 일곱명의 원로들 모임에 합세할 네명의 천부장을 선출한 것으로 읽는 게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루가 6장의 “가난한 자는 복 받을 것입니다.
천국이 그들 것입니다”라는 예수의 말은 마태오 5장에서는 “마음으로 가난한 자는…”으로 돼 있다.
‘마음’의 히브리어는 ‘레브’다. 그런데 레브는 특정 맥락에서 모세 오경 또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토라’의 은유적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마음으로 가난한 자’라는 말은 토라 공부 때문에 가난한 자, “하느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데 전념하여 돈벌이에 급급하지 않아 구차한 삶을 사는 사람”을 뜻한다는 게 조 교수 풀이다. 따라서 ‘마음이 가난한 자’로 옮기는 건 의역이란다.

이런 식으로, 복음서들의 갖가지 치유기적의 의미, 두드리면 무엇이 열린다는 것인지, 첫째가 나중 되고 나중이 첫째 된다는 게 뭔지, 일 많이 하나 적게 하나 모두 같은 삯을 지불하는 포도밭 주인의 비유, 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지, 카이사르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라는 건 무슨 의미인지, 왜 유다는 마지막 순간 예수에게 입 맞췄는지 등 성서 속의 많은 비유와 예화들이 전혀 새롭게 해석된다. 중요한 건 그것이 막연한 추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문헌 근거들을 토대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사해문헌 중의 <하박국서 해석>엔 ‘진리’의 이름으로 불린 사제가 등장한다. 그는 이스라엘을 지배할 때 교만해져서 하느님을 떠났으며 재산 때문에 법규들을 배반하고 반동폭력배와 백성들의 재산을 훔쳐간 ‘악한 사제’로 로마 법정에 선동 혐의로 넘겨져 사형당한다. 조 교수는 그 사나이가 바로 예수라고 본다. 그를 악한으로 묘사한 하박국서 해석은 예수가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본 이 해석서의 작성 주체인 에세네파의 시선이다.

바리새, 사두개는 물론이고 한때 자신이 그 사제요 교사로 복무했던 에세네파의 한계까지 과감하게 뛰어넘었고 결국 그 때문에 죽임을 당한 예수. 900쪽의 두툼한 <예수 평전>은 당대의 문헌자료들과 문화적 배경설명을 토대로 그 생애를 치밀하게 재해석한다.

에세네 ‘사해 두루마리’ 다양한 성서 해석 근거로

1947년 사해 북서쪽 쿰란의 계곡 언덕에서 잃어버린 염소를 찾던 두 젊은 양치기가 동굴 속의 항아리에서 일곱 개의 양피지 두루마리를 발견했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일컬어졌던 ‘사해 두루마리’들은 11개 동굴에서 모두 813가지가 나왔다. 이 가운데 223개가 히브리 성경 사본들이며, 나머지는 외경들과 공동체 규례, 법규, 예언서 등을 해석한 해석서, 종교절기에 관한 지침서와 감사 시편 등이었다. 대부분이 히브리어로 씌어졌고 96개 문서는 아람어, 7개가 그리스어 문서였다. 히브리 성경 사본 중 82개가 모세 오경 사본이었고 예언서 사본 41개 중 21개가 이사야 사본이었다. 하지만 온전한 것은 12개 정도.

에세네 ‘사해 두루마리’ 다양한 성서 해석 근거로

국내 유일의, 그리고 세계 11번째 앗시리아학 학위 소지자 조철수 교수에 따르면, 매년 100여개의 관련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사해문헌의 작성자들은 엣세네파 사람들. 1세기의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는 기원전 150년부터 서기 70년까지 유대 지방에는 바리새와 엣세네, 사두개라는 세 주요 분파가 있었다고 기록했다. 사두개는 사제들과 그 친인척 등으로 구성된 상류 기득권층으로 로마 제국 체제에 적극 가담한 자들이었고, 바리새는 전통적인 모세 법규에 집착하면서 사회참여를 주장한 타협적 중산층 지식계급이었다. 1세기께 형성된 랍비 유대교는 바리새의 후예들이다. 바리새를 비판한 엣세네는 종말론에 입각해 메시아가 도래할 새 세상을 꿈꾸는 신흥 자치공동체 세력. 이밖에 로마정권에 무력으로 저항한 열심당과 예수를 메시아로 믿은 예수 공동체 등이 등장해 첨예하게 충돌한 당시 이스라엘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일제 패망 뒤에도 외세의 영향이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 상황과도 닮은 점이 많다.

항상 그리스나 로마 등 외세와 결탁하면서 모세 오경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지키려 했던 사두개. 서기 2세기 저항세력을 격파한 로마는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입성을 막았고 성전이 없어진 상황에서 사두개도 사라졌다. 그리하여 유대교는 사제 없는 종교가 됐다.

토라에 집착하면서도 사제계층과 권력층에 반발한 바리새들은 1세기 말 모세 법규를 그대로 지키려는 샴마이파와 개혁적인 힐렐파로 나뉜다.

재산을 공동관리하며 가난한 삶을 찬양했던 내세적·자립적 공동체를 여러 도시들에 세웠던 엣세네 사람들은 로마 네로 황제의 폭정에 항거해 들고 일어선 서기 66년의 열성파 유대인들의 독립항쟁에 합세했다. 그러나 처절했던 마짜다(마사다) 항전으로도 널리 알려진 그 저항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진 엣세네들은 배우고 가르치던 두루마리들을 근처 동굴들에 숨기고 피신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것이 사해 두루마리다.

앞서 기원전 7년 12월 1일 태생일 가능성이 높은 예수는 20대에 엣세네파 사제가 됐고 개혁적인 바리새의 힐렐파 신조를 많이 받아들였다. 예수 공동체는 그러나 엣세네파의 율법주의를 거부하고 불치의 병자나 불구자, 무식쟁이들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등 기성체제 전반에 반기를 들었고 사랑과 평화를 설파했으며, 혈연·지연 중심의 민족종교 틀을 넘어 믿음에 바탕을 둔 신앙공동체로서 보편종교를 지향했다. 이 혁명적 행보는 사두개와 바리새, 엣세네파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결국 그들은 예수 제거를 공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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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병이어의 기적(五餠二魚─奇蹟)은[1]예수의 기적 가운데 하나로, 예수가 한 소년으로부터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취하여 5천 명의 군중을 먹였다는 기적을 가리킨다.[2] 간단히 오병이어라고도 한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빵과 물고기를 취하여 군중을 먹인 예수의 두 기적들 가운데 하나로, 마르코의 복음서 8장과 마태오의 복음서 15장에는 이와 유사하지만 다른 기적이 서술되어 있다.

    본문

    5,000명의 군중을 먹이신 기적인 이 기적은 신약성서사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데, 각각 다음과 같다.

    의미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수의 지극한 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마르코의 복음서에서 이르기를 예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보면서 불쌍히 여기셨다고 말하는데, 이는 "장이 끊어질 것처럼 고통스럽다"라는 뜻을 가진 '스플랑크니조마이'를 옮긴 것이다. 로마제국, 로마제국의 간접통치자인 헤로데 왕실,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 세력들의 수탈 때문에 굶주리는 불쌍한 민중들의 처지를 헤아리면서 예수는 무척 마음이 쓰렸던 것으로 의미된다.

    유사한 기적

    빵과 물고기를 취하여 군중을 먹인 다른 유사한 기적으로서 4,000명의 군중을 먹이신 기적이 있으며 다음 복음서들에 있으며 루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없다.

    • 마르코복음 8장 1~9절
    • 마태오복음 15장 32~39절

    이 기적에서 예수는 군중에게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취하여 군중을 먹이는 기적을 보이셨다.[3]

    각주

  2. 한자적인 해석 그 자체로는 빵(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이지만, 당시에는 실제로 빵과 물고기가 쓰였다.
  3. John Clowes, 1817, The Miracles of Jesus Christ published by J. Gleave, Manchester, UK, page 109
  4. John Clowes, 1817, The Miracles of Jesus Christ published by J. Gleave, Manchester, UK, page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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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프스 트라이얼(A. Scopes Trial)
하나의 기적을 믿으면 또 하나의 기적을 믿기도 쉽다.

성경은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이 기적은 마태복음 14:13∼21, 누가복음 9:10∼17, 요한복음 6:1∼13 등 4복음서에 모두 기록이 될 정도로 복음서의 저자들이 아주 중요하게 다룬 사건이다.

떡은 아주 어린아이의 한 끼 식량이고, 놀랍게도 그 어린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자기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렸다. 기적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이 아이가 예수님께 드린 보리떡은 히브리어로 ‘마슈나’다. 이 떡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아닌 짐승이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마리의 물고기를 드렸는데 이 고기는 ‘이크수스’다.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들은 잡은 고기를 추려서 큰 고기는 집으로 가져가고 너무 작아서 먹을 수 없는 것은 해변에 버리는데 그 고기가 바로 ‘이크수스’다. 이 아이가 드린 물고기는 바로 ‘이크수스’다. 떡 중에 가장 하급의 떡 ‘마슈나’, 물고기 중에 너무 작은 물고기 ‘이크수스’였다.

아마 어린아이가 예수님을 따라가서 말씀을 듣겠다고 하니까 부모가 해변에 다니며 버린 고기를 주워다가 도시락을 싸 주었는지 모르겠다. 그것을 아이는 예수님께 드렸다. 그것이 5천명을 배부르게 먹게 하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가장 큰 기적이 일어났다. 

헌신이 기적

예수님께 드리는 헌신 위에 하나님의 기적이 임했다. 예수님 앞에 소년의 정성으로 1인분의 도시락이지만, 그것을 드렸을 때 많은 생명에게 유익하게 쓰였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가? 크고 작고,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에게 무엇이든지 드리기만 하면 가장 유익하고, 가치 있게 사용된다. 예수님께 드리는 작은 헌신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헌신을 통해서 위대한 일을 이루실 수 있다. 보리떡 다섯 개, 생선 두 마리가 주님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것은 5천명을 먹이고도 남았다. 무슨 뜻인가? 작지만, 보잘것없지만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하면 이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온전히 헌신하는 데 있다. 자기의 것을 모두 주님께 드리는 데 있다. 그러면 결국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사는 것이다.

자기의 희생과 봉사가 없이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나 보고 기대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이는 특별한 것을 드린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을 드린 것 뿐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슨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에게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드리는 것을 요구하신다. 시간, 달란트, 지식, 물질, 무엇이든지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드리면 된다. 주님을 위하여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내게 주신 물질이 있는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땀 흘리게 하셨고 그 대가로 내게 주신 물질들을 귀하게 사용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기를 바란다. 나를 위해서도 선용해야 하지만, 특별히 ‘하나님께서 지금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갖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하자.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내게 무슨 재능이 있는가? 그 재능을 주님을 위하여 ‘필요하시다’ 할 때에 드리자. 미미한 재능이지만 하나님은 크게 사용하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오병 이어의 기적에는 헌신이 있었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드렸다. 그냥 믿고 드릴 때 기적이 임한다.

감사가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에는 감사가 있었다.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은 적은 것이라도 하나님을 향해 감사할 때 일어난다.

마가복음 6: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드리셨다.

이 때에 기적이 일어났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감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의 생활이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가?
생활이 온갖 흑암과 공허와 환난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가?
그로 인하여 삶이 답답한 환경에서 몸부림치고 있는가?
그럴수록 하늘을 향해 감사하기 바란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난다.
감사와 불평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감사할 조건이 수두룩해도 감사하지 않는다.
그렇게 불평만 하면 계속 불평할 일만 생긴다.
그러나 원망스럽고 괴로워도 감사하기 시작하면 감사의 조건이 얼마든지 생기게 된다.

마태복음 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 까지도 빼앗기리라.

지금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감사 위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이 임할 것이다.

순종이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에는 믿고 따르는 순종이 있었다.
어린 소년의 순종이 있었다.
제자들의 찾음에 자신이 갖고 있었던 것을 예수님께 드리는 순종이 있었다.
기적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제자들의 믿음의 순종이 귀했다.

마가복음 6:39-40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다.
제자들로 하여금 사람들이 제대로 무리를 지어 앉도록 질서를 위해서 잘 정리시키셨다.

어떤 제자들은 어떻게 처리할까 두려워했을지 모른다.
‘도대체 어떻게 하시려고 할까?’ 하는 의아심이나 궁금함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이 무엇인가를 하실 것을 믿었다.
엄청난 일을 이루실 줄로 믿고, 그들은 그 일을 순종하여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나님은 이런 바탕 위에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작은 헌신과 믿음의 순종을 기다리신다.
시도하는 사람을 통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희생하는 사람을 통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주님의 축복을 통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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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에 '바늘 귀'는 실재했을까?



예루살렘 성에 '바늘 귀'는 실재했을까?


예수가 살던 시대의 예루살렘 성에 '바늘 귀'라 불리는 성문이 실재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오랜 전부터 있어 왔다.
다른 성문보다 매우 작기에 '바늘 귀'라 불린 암문(혹은 개구멍)이 존재했으리라는 생각은 사실 그럴싸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진 말들도 그럴듯했으니, 그 문의 크기는 사람은 여하히 통과할 수 있지만 낙타의 경우는 짊어진 물건을 모두 내려놓고 알몸뚱이가 되어야만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정도라는 것이었다.
만일 그렇다면 이 말은 앞에서 인용한 마태복음의 문장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다.
그 문장 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마태복음 19: 23-25)*

 * 이 문장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실려 있는데, 내용은 거의 같다.

아울러 이렇게 보면 위 예수의 말은 매우 설득력 있는 주문이 된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가기가 힘들니 그 욕심을 모두 내려놓으라는 말이 성립되기 때문이다.(부자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9원을 가진 자가 10원을 채우기 위해 가난한 자의 1원을 뺏는다는 인식은 동서가 비슷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이것은 어불성설이며 본말 또한 전도돼 있다.

'바늘 귀'는 통과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 욕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예수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낙타의 통과 여부가 아니라 그 낙타에 실린 재물이었을 터, 하지만 그림에서 보다시피 부자는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
그저 짐을 잠시 내려놓았다 다시 싣는 수고가 뒤따랐을 뿐이다.
예수가 원한 것은 분명 이런 형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의 통과 주체는 사람이지 낙타가 아니다.
사람이 욕심을 버리는 게 중요하지 낙타 등 위의 수하물을 내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의미를 몰랐는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밀어붙인 것인지 역대로 천국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벽에서 아래와 같은 '바늘 귀'들을 찾아냈다. 물론 역사적 근거는 없는 것들이다.(굳이 장소를 명시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오해

성경이 기록된 사건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막연히 성경의 내용을 상상하는 것과는 분명 큰 차이가 많다. 이스라엘에서 성경 현장학습을 인도하면서, 자주 받는 질문들과 오해들이 있는데, 그 중에 몇 가지를 간추려 여기에 소개한다.

바늘 귀 (the eye of a needle)

마태복음 19:24절에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 귀(the eye of a needle)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는 말씀을 하셨다. 여기에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여러 문 가운데 ‘바늘 귀’라는 문이 있다는데 그 문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한다.

그런 문은 없다. ‘바늘 귀’ 문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일부 설교자들은 ‘바늘 귀’ 문을 말하면서, 낙타가 성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고 있던 모든 짐을 내리고 무릎을 꿇어야만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짐을 내리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설교한다고 한다.

예수님 당시 헤롯 성전 뜰로 들어가는 몇 개의 문이 있었으며, 지금도 그 문의 흔적은 찾을 수 있다. 남쪽에서 성전 뜰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훌다 문(the gate of Hulda)이 있다. 훌다 문은 삼중 문(triple gate-위의 사진)과 이중 문(double gate)을 가리킨다. 삼중 문은 성전 남쪽의 동쪽에 있었는데, 주로 입구로 이용되었고, 이중 문은 성전 남쪽의 서쪽에 있었는데, 출구 또는 상을 당한 가족의 성전 입구로 이용되었다.

서쪽에서 성전 뜰로 들어가는 두 개의 통로인 로빈슨 아치(Robinson’s arch- 아래 사진)와 윌슨 아치(Wilson’s arch-사진)가 있었다. 윌슨 아치는 성전과 예루살렘의 서쪽 언덕에 위치한 헤롯 궁, 대제사장의 주거지, 상위 계층의 생활 근거지를 서로 연결했던 통로로써 왕, 대제사장 및 상위 계층이 주로 이용했던 통로였다.

그리고 북쪽 베데스다 연못 근처에서 성전 뜰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는데, 이 문은 요한복음 5:2절에 양문(Sheep gate)으로 기록되었다. 성경 어디에도 ‘바늘 귀’ 문은 없다. ‘바늘 귀’ 문은 15세기 이후부터 설교자들을 통해 강단에서 선포되어 온 대표적인 허구에 속한다. ‘바늘 귀 문’은 없다고 이야기해 주어도 여전히 반신반의한다.

대제사장 발목에 맸다는 끈

유대 월력으로 일곱 번째 달, 제 십 일은 대속죄일 (욤 키푸르)이다. 이 날은 대제사장이 자신의 죄와 백성들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속죄 의식을 행하는 날이다 (레 23:27-32). 대제사장이 속죄 의식을 위하여 지성소로 들어갈 때, 그의 발목에 끈을 맸다는데, 끈을 맨 이유는 대제사장이 죽으면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히브리어 성경, 신약 성경, 사해 문서, 요세푸스의 기록, 교부들의 기록, 미쉬나, 탈무드 어디에도 대제사장의 발목에 끈을 맸다는 기록은 없다.

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3세기 유대인 조하르(Zohar)의 기록에서 찾아볼 뿐이다. 조하르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제사장의 발목에 금으로 된 줄을 묶어 두었는데, 이는 그가 지성소에서 죽었을 경우, 그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조하르는 그리 신뢰할 유대 학자가 아니다. 발목에 끈을 맸다는 것은, 레위기 16:3-4절에 기록된 지성소로 들어가는 대제사장의 예복에 위반될 수 있다: 아론이 성소로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일부 기독교 학자들은 출애굽기 28:35절 과 히브리서 9:7절 을 주석하면서 조하르의 글을 인용하기도 한다. 특히 히브리서 9:7절에서 요한 길(John Gill)은 조하르의 글을 소개하며 이렇게 주석하였다: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갈 때, 그의 발에 끈이나 가죽 띠를 묶어 두었는데, 이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사망하게 되면, 그를 끌어내기 위함이다. 다른 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죽으면 누구도 대제사장의 속죄 의식을 대신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하르나 요한 길이 말하는 대제사장의 발목에 끈을 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것 역시 설교자들의 대표적인 허구에 속한다.

만약 대제사장이 속죄 의식을 행하다 지성소에서 죽는 일이 발생하면 대제사장의 직무를 대신할 제사장은 있었다. 누가복음 1:8절의 세례 요한의 부친 사가랴는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 쌔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고’라는 말씀이 있다. 만약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의 발목에 맨 끈을 당기므로 시신을 끌어낸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의 직무를 대행할 사람이 지성소로 들어가 대제사장의 시신을 끌어내는 것이다. 허구는 또 다른 허구를 만들어 낸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이상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인 YHWH를 기록하는 서기관

성경의 소중한 사본이 대량으로 발견된 쿰란 유적지를 여행할 때, 간혹 서기관들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서기관들이 성경을 필사하면서, 하나님의 이름 YHWH을 기록할 때마다 붓을 꺾어 버리고 새로운 펜을 사용하였으며, 온 몸을 정결케 하는 정결 의식 또는 손을 씻은 후에 기록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드러내기 위하여 서기관들의 열심을 강조한 말이기는 하지만, 붓을 버리고 새 붓을 사용했다거나 목욕을 한 후에 다시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서기관(sofer)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소페르이다. 소페르는 세다(count)를 뜻하는 사파르(safar)에서 온 단어이다. 서기관이란 말은, 서기관이 성경을 필사할 때, 자신이 기록한 단어를 정확하게 셌던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한다. 서기관이 사본의 글자 수를 세었던 것은, 사본의 원본 글자 수와 자신이 기록한 글자 수를 세므로 정확하게 기록했는지를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브온.
기브온 위에 멈췄던 태양

기브온(사진)은 예루살렘 다윗성에서 북서쪽 약 5-6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솔로몬의 일천 번제에 대한 배경과 여호수아 10장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모리 족속들 간의 전쟁에 대한 배경을 살펴 보면서 여호수아의 기도를 묵상할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때가 이렇게까지 없었는데, 당일 여호수아의 기도는 이랬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 찌어다 (수 10:12). 일부 목회자들은 여호수아의 태양이 멈추게 된 기도와 열왕기하 20:10-11절에 기록된 히스기야의 기도로 해가 10도 뒤로 물러간 배경을 이야기하면서, 나사(NASA) 과학자들이 잃어버린 하루를 찾았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냐고 묻는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강조하고 싶을 지라도, 나사(NASA) 과학자들이 잃어버린 하루를 찾았다는 잘못된 정보를 인용해 가며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경에서 잃어버린 하루를 찾기 위한 노력은 NASA가 존재하기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것은 생각해 볼 수 있다. ‘태양은 기브온 위에, 달은 아얄론 골짜기 위에 머무르라’는 여호수아의 기도에서, 기브온은 아얄론 골짜기의 동쪽에 있다. 다시 말하면, 기브온은 태양이 뜨는 동쪽에, 그리고 아얄론 골짜기는 태양이 지는 서쪽에 있다. 그리고 태양과 달은 하늘에 같이 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시간은 점심 때도 저녁 때도 아닌 아침 시간이다. 여호수아는 이른 아침에 태양이 여전히 기브온 위에 있고, 달은 서쪽 아얄론 골짜기에 있을 때에 아모리 족속들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 찌어다 (수 10:12).



자비량 목회(自費糧, one's own expense), 자비량 선교


자비량 목회(自費糧, one's own expense)

교회의 목회, 교육, 전도, 선교 사역에 있어서 목회자 및 사역자가 교회나 해당 단체에 소속되거나 단독으로 활동할 때 어떠한 사례나 대가를 받지 않고 자신이 해결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와 반대되는 용어는 삯군 목회 또는 생계형 목회가 있다.

자비량(전문인) 선교사는 직업적 전문성, 사역적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자비량 선교(tent-making mission)는 선교사 입국의 제한이나 선교지 상황의 어려움 따른 창의적 접근지역을 위해서 개발된 전략이다.
이는 전문인 선교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전문인선교협의회는 “전문인 선교사는 자신의 기술이나 전문성을 소유하고 타 문화권에서 접근하여 거주하면서 현지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삼는데 최우선권을 두며, 가능한 곳에서는 교회를 개척하고 견고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다.”라고 전문인 선교를 정의한다.

전문인 선교는 기본적으로 직업적 전문성과 사역적 전문성을 두 기둥으로 하고 있다.
직업적 전문성은 현재 자신의 직업을 복음 전도하는 일에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사역적 전문성은 제자를 양육하여 교회를 개척하는 일, 제자를 양육하는 일 등 사역에 전문성을 개발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자비량(自備糧)

자기가 쓸 양식이나 물품을 스스로 갖춤, ‘자취’의 방언(함북)

자비량(自備糧, tent maker)

길을 떠날 때 자기가 직접 양식을 가지고 가거나 또는 그 양식.

 

자기 스스로 준비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교에서의 이 용어는 선교나 선교사에 붙여진용어이다.
자비량 선교사란 직업을 가진 선교사, 즉 다른 문화권 속에서 직업을 가지고 자신의 생활비를 벌면서 동시에 선교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의 직업이 생활비를 벌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그들은 직업을 통하여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복음도 전하는 것이다. 이 일은 선교와 직업 모두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즉, 하느님이 직업으로 자신을 부르고 인도했다는 확신이 필요하고 자비량 선교사가 되는 것은 마음의 원함만 가지고는 안된다. 자신이 타문화권 사역자로 부름을 받았다면, 그 문화로 부른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증거로서 확증해야만 한다.

 

자비량 사역자(선교사)라는 말은 선교지에서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 선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어왔다. 이 용어는 《사도행전》 18장 3절에서 장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선교사역을 했던 바울로의 예에서 연유한 것이다. 자비량 사역자는 사역을 하려는 목적으로 새로운 문화나 나라에서 일자리를 얻은, 이른바 이중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 사도행전 > 18장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1 After these things Paul departed from Athens, and came to Corinth;

2 And found a certain Jew named Aquila, born in Pontus, lately come from Italy,

  with his wife Priscilla; (because that Claudius had commanded all Jews to depart from

  Rome:) and came unto them.

3 And because he was of the same craft, he abode with them, and wrought: for by their

   occupation they were tentmakers.

4 And he reasoned in the synagogue every sabbath, and persuaded the Jews and the

  Greeks.

 

 

< 고린도전서 > 9장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6 Or I only and Barnabas, have not we power to forbear working?

7 Who goeth a warfare any time at his own charges? who planteth a vineyard, and eateth

  not of the fruit thereof? or who feedeth a flock, and eateth not of the milk of the f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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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비량 (自備糧/tentmaker)

* 자비량 목회자 (Tentmaking Pastor)

* 자비량 선교사 (Tentmaking Missionaries)

 

21세기 해외선교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분석이 나옵니다.

첫째로, 인구성장과 다원화되는 사회의 변화를 생각한다면 복음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 대해 선교사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둘째로, 목회자 선교사의 입국을 제한하는 폐쇄지역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종족과 문화적 장벽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넷째로, 늘어나는 선교자금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뚫고 지속적이고도 적극적으로 해외선교를 섬길 바람직한 방안으로 자비량 선교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전 교인의 99.5%를 차지하는 평신도들이 동원되고 이들이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 자급하며 선교하는 평신도 자비량 선교가 활성화될 때, 이상의 문제들이 해결될 뿐 아니라 세계선교는 사도행전시대와 같은 새로운 물결이 일어날 것입니다.

 

 

자비량 선교

성경에서 '자비량'이라는 용어는 고린도전서 9:7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비량'(self-supporting)이란 일군이 스스로 경비를 댄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자비량하는 수단으로 장막만드는 일(tent-making)을 하였다.
텐트 메이킹 미선 tent-making mission 을 물질 후원구조로 이해할 때 '자비량 선교'가 되며, 사역형태로 이해할 때 '전문인 선교'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군이 물질적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알았지만, 자발적으로 자비량하며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관련된 주요 구절들은 살후 3:7-9, 사도행전 20:33-35절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자비량 선교를 한 이유를 정리해 보면,

첫째로, 복음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둘째로, 스스로 모범을 보이므로 개척된 교회들이 재정적으로나 영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고자,

셋째로, 복음전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고,

넷째로, 직음을 통해 동질성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섬길 수 있으므로,

다섯째로,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직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영적 사역에 깊이 참여할 수 없다는 변명이 타당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여섯째로, 새 신자들에게 근면한 노동으로 수익으로 곤경에 처해있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을 도와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고자, 일곱째로, 예수 그리스도께 빚졌다는 강한 채무의식 때문에, 여덟째로, 가장 큰 이유는 자비량하면서 선교하는 것이 예수님의 주는 정신, 선교정신에 부합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비량 선교의 장점들

첫째,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은 우선 타문화권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둘째, 오늘날 목사나 선교사의 신분으로 들어갈 수 없는 어떤 나라에도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은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셋째, 막대한 선교비 문제가 없습니다.

넷째, 평신도 자비량 선교는 선교사 자원의 풍부함이 큰 장점입니다. 한국교회의 99.8%가 평신도들입니다.

다섯째,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은 투철한 신앙과 선교의 열정이 넘칩니다.

여섯째,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는 자기 자신의 직업에서 얻는 성취감과 만족을 통해,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사역의 실패로 겪는 좌절과 실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일곱째,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은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덟째,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화해자요 중재자의 역할을 다양하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홉째,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이 부득이 귀국하게 되었을 때 이들은 본국에서도 훌륭한 지도자들이 되어 교회와 사회에 봉사할 수 있습니다.

열째, 유학생 선교사들의 경우 현지에서 공부하면서 현지인 학생들에게 선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이 학위를 받은 후 현지에서 직장을 얻어 선교할 경우 매우 이상적인 '장기 체류'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의 직업별 유형

1. 파견근무
2. 의사
3. 고용인
4. 해외 청년 봉사단
5. 사업(자영업)
6. 교수
7. 외교관
8. 교사
9. 간호사
10. 성악가
11. 컴퓨터 프로그램어
12. 태권도 사범
13. 유학생
14. 이민
15. 단기선교사
16. 건축기사
17. 스튜디어스
18. 사진기술자
19. 약사
20. 목축업
21. 선원
22. 선장
23. 항해사
24. 이용사
25 . 미용사
26. 임상병리사
27. 조리사
28. 침술사
29. 사회복지 분야

이상의 예들은 모든 분야의 직업을 가진 분들이 선교사로서 소명을 받고 충분한 훈련만 받아 준비된다면 훌륭한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동시에 21세기는 평신도 자비량 선교의 시대가 되리라는 비전을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파송된 자비량 선교사 1639명을 직업별로 분류한 통계가 다음과 같았습니다.
(1)의료직
1)간호사 104명 6.34%,
2)의사 18명 1.09%,
3)임상병리사 3명 0.18%,
4)치과의사 2명 0.12%,
5)치과기공사 2명 0.12%,
6)한의사 3명 0.18%,
7)물리치료사 1명 0.06%,
약사 4명 0.24%,
약물치료사 1명 0.06%,

(2)교육직
1)유학생 633 38.6%,
2)어학연수 6명 0.36%,
3)교수 13명 0.79%,
4)교사 24명 1.46%,
5)대학강사 2명 0.12%,
6)대학사무원 3명 0.18%,
7)연구원 3명 0.18%,

(3)금융직
1)금융전문가 1명 0.06%,
은행원 7명 0.42%

(4)정부파견
1)외교관 44명 2.68%,
2)청년봉사단 15명 0.91%,
3)평화봉사단 1명 0.06%,

(5)일반직장 29명 1.78%(파견근무, 법률고문, 등)

(6)엔지니어 26명 1.76%(건축사, 건축업, 컴퓨터프로그래머, 토목기사, 자동차수리, 전자기사 등)

(7)스포츠 182명 11.06%(태권도, 합기도 등)

(8)사업 63명 3.77%, (무역업, 자영업, 농장, 사진현상소, 인쇄소, 재단사, 재봉사, 디자이너, 운전사, 미용사, 번역사, 상업 등)

(9)기타 448명 27.2% (사회사업, 취업이민, 배우자, 기타 등)

 

UBF의 자비량 선교 사례들

1. 파견근무 :
L 선교사는 대학시절에 성경 공부를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1987년에 H 중공업 뉴델리 지사 주재원으로 파견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학시절에 제자훈련을 받고 선교사명을 영접하였으며, 선교사 훈련을 받고 하나님께서 길 열어 주시기를 기다리며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상사 주재원으로 파견될 때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처음 몇 개월간은 호텔에서 머물며 회사 일을 보았고, 근무 시간 후의 개인 시간에는 기도하며 인도 학생들에게 복음 전할 길을 찾았습니다. 주말이면 대학을 방문하여 학생들을 접촉하였고, 후에 가족이 오게 됨으로 개인 주택을 얻어 생활하면서 학생들을 가정으로 초대하여 좋은 관계성을 맺으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믿음으로 회사일도 하니 회사 일도 좋은 성과를 거두어 계속 머물게 되었고, 본부의 인정을 받아 승진도 하였습니다. 그의 사역으로 지금은 150여명의 인도 대학생들이 매주일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며 인도 대학선교에 동역하고 있습니다.

2. 의사 :
Y선교사는 대학 1학년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자훈련을 받았으며 선교사명을 영접하고 길 열어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본국에서 의사요 교수로서의 안정된 직장과 삶을 버리고 1992년에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정신을 본받아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한국정부에서 생활비를 보조받으며 우간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의대생들을 가르치면서, 현지 대학생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을 가정에 초청하여 정기적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한 결과 지금은 30여명의 학생들을 열매로 얻고 우간다 대학선교를 위하여 함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에이즈 환자들이 많고, 신변의 위험이 있으나 예수님을 생각하고 순교정신으로 사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매 주일 예배에서 설교도 하고, 학생들을 제자로 양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국의 선교후원단체의 지원으로 작은 병원을 세우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3. 고용인 :
S 선교사는 대학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선교사명을 영접한 후, 1991년에 대사관 행정보조 고용인으로, 아내는 가정부로 취업하여 몽골에 복음을 전하고자 선교사로 파송받았습니다. 그는 직장에서 근무하며 대학에서 몽골어를 공부하였고, 다른 동역자들과 함께 몽골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구약성경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150여명의 몽골 대학생들이 매 주일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이들 중 수 십명의 제자들이 훈련을 받고 직접 현지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역자들이 되었습니다.

4. 해외 청년 봉사단 :
A선교사는 대학시절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선교사명을 영접하였으며, 선교사 훈련을 받고 선교사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는 중 한국 청년 해외 봉사단 모집에 응모하여 목공선생으로 스리랑카에 파견받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목공선생으로 봉사단 일을 열심히 하면서 현지 대학생을 접촉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봉사단의 일은 일면 한국의 민간외교차원에서 개발도상국에 한국인들이 무임금(생활비는 한국정부가 감당함으로)으로 봉사하는 것이므로 현지인들로부터 좋은 영접을 받고 있습니다.

5. 사업(자영업) :
W 선교사는 한국과 중국이 수교도 되지 않은 때인 1988년부터 비지니스 비자로 여러 차례 정탐 여행을 하였으며, 한중 합작 회사운영을 하게 되어 사업 비자로 중국에 나아가 장기 체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현지 대학생들과 개인적으로 사귐을 가지며 은밀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 처소에서 일대일 성경공부로 제자훈련을 하고 있는 중국 대학생들이 50여명에 이르렀습니다.

6. 교수 :
Z 선교사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친 후 일본에 유학생으로 나?【? 선교활동을 해왔습니다. 그곳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현지 대학에서 교수 보조로서 일하면서 대학생 선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교수로서 강단에서 가르치고 일과 후와 주말에는 학생들을 아파트로 초청하여 성경을 공부시키며 제자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7. 외교관 :
O 선교사는 대학시절부터 제자 훈련을 받았으며, 외무고시를 합격하여 외교관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현지에서 훌륭한 외교관으로서의 공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일과 후와 주말을 이용하여 현지 대학생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전도로 복음을 영접하고 제자가 되어 현지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열매들을 많이 얻었습니다.

8. 교사 :
A 선교사는 초등교사로서 러시아의 현지 한인학교 한국어 교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훈련받은 선교사 후보생이었으며 교사 선교사로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얻고자 오랫동안 기도하며 찾고 있던 중에 정보를 얻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9. 간호사 :
K 선교사는 선교사명을 영접하고 간호사로서 선교사로 나아갈 길을 찾는 중에 사우디에서 한국 해외 협력단을 통해서 간호사를 모집하는 기회에 한국에서의 안정된 직장을 사표내고 이곳에 지원하여 나아갔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외국에서 취업하여 온 간호사들을 그룹으로 매주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며 복음을 심고 있습니다.

10. 성악가 :
C 선교사는 한국에서 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에 유학생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그는 현지에서 성악을 공부하여 디플롬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현지 시의 오페라단에 단원으로 입단을 하여 활동하면서 현지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전곡을 CD로 제작하였고, 독일내 14개 도시 순회 독창회도 열었습니다. 또한 독일어로 찬송가 테이프도 제작하여 보급하며 찬양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의 본문을 중심으로 한 오페라를 직접 작사하여 오페사 공연을 통한 선교사역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11. 컴퓨터 프로그램어 :
K 선교사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캐나다에 나아가 현지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컴퓨터 프래그러머로 일하면서 현지 대학생들에게 일대일 성경공부로 복음을 전하면서 제자양성을 하고 있습니다.

12. 태권도 사범 :
L 선교사는 태권도 사범으로서 현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태권도 도장에서 제자들을 수련하면서 기도와 성경공부를 동시에 시키고 있습니다.

13. 유학생 :
C 선교사는 대학 1학년 때 대학생선교기관에서 성경을 공부하던 중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자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선교 명령및 선교사들의 보고를 통해서 선교 사명을 영접하고 소명을 받았고, 77년부터 3년간 믿음과 제자양성 및 선교사 훈련을 받고, 1980년 1월 독일 Bonn대학으로 선교사 유학생으로 파송받았습니다. 이곳에서 공부하며 독일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50여명의 독일 학생들 가운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자들을 열매 맺었습니다. 그는 1985년에 약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계속하여 독일 대학생 선교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독일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처음에는 아파트에서 성경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건물을 세로 얻어서 활발한 복음 전파및 제자양성을 하고 있습니다.

14. 이민 :
L 선교사는 선교를 하기 위해서 1988년 가족과 함께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이를 위해 본국에서 안정된 직장을 버린 것은 물론입니다.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후 처음에는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학교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물질의 자립을 이루었습니다. 그후 농장을 만들어 목축을 하면서 현지 대학생 선교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지금은 20여명의 파라과이 대학생들이 꾸준히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며, 제자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15. 단기선교사 :
방학을 이용하여 자비로 해외에 나가서 전도를 하거나 현지 선교사들을 돕는 학생들, 자원봉사로 해외에서 일정기간 봉사하는 의료팀들도 자비량 평신도 선교사의 유형에 속합니다.

 

평신도 자비량 선교에서 유의할 점

첫째, 자기 직업을 갖고 자립 생활을 하면서 선교를 해야 하는 직분이기 때문에 그만큼 굳은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삶을 배우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평신도 선교사가 본국의 상사 주재원이거나 현지에 취업을 한 경우 등은 자기가 속해 있는 기관이나 회사에서 선교 활동을 반대할 수가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셋째, 파송교회 혹은 선교 기관에서는 평신도 선교사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항상 형편을 살피며 기도 지원을 전폭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넷째, 가능한 한 임지와 그 나라의 역사, 지리, 정치, 경제, 등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필요하다.

맺는 말

평신도 자비량 선교의 전망

크리스티 윌슨은 성경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에 쓰임 받은 사람들이 자비량하며 선교한 인물들이었다고 전제하면서 아담(에덴동산을 가꾸는 자)으로부터 그 예를 들고 있습니다.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주변 인물들이 아니요, 중심줄기(main stream)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인물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평신도 자비량 선교를 신학화하고 과감하게 도입하여 이를 실천함으로서 21세기의 세계 선교를 섬겨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1,200만 성도 중 수 백 만 명은 평신도 자비량 선교의 자원들이며, 선교사 후보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한국 교회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세계 선교의 장엄한 사역을 위하여 한국 교회가 평신도 자비량 선교를 활발하게 논의하고 실천해야 될 것입니다. 로럴드 알렌의 말로서 이 글을 맺습니다. "강력하고도 깊은 선교정신을 가진 남녀 평신도들을 선교사로 나가도록 독려하는 길 외에는 세계복음화를 성취할 다른 방법은 없다."

 


성서의 지명 / 갈릴리,



성서의 지명






갈릴리 어부들은 가난한 어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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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호수의 동편에 자리 잡은 엔게브 키부츠에 동유럽 러시아의 라트비아 출신의 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1920년대 이스라엘로 이민 와서 자신의 성을 ‘물고기’라는 뜻의 ‘눈’으로 바꿀 정도로 평생을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로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나이 일흔이 다 되어 은퇴할 무렵인 지난 1971년부터 그는 둘레가 66km나 되는 호수 변을 샅샅이 뒤지며 고대 항구들의 흔적을 조사하여 발표했습니다. 근 20년간의 직접 발로 뛰면서 연구한 그의 업적이 1992년에 출판됐을 때 모든 이들은 갈릴리 호수에 자그마치 16군데의 고대 항구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비록 그가 유대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의 복음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나아가 ‘복음서에 나타난 고기잡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자세하고도 정확했다’고 그는 고백 하므로서 성경의 이야기를 실제로 증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형성된 양식비평을 포함한 최근의 성경 연구방법들은 대부분 복음서 내용의 신빙성에 이의를 제기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예수를 직접 대면했던 제자들의 기억과 기록 능력에 의구심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도 베드로와 요한이 원래 ‘학문 없는 범인’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행 4:13)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어부의 발견은 이들의 의구심을 부끄럽게 하였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성경의 상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예로 당시 생선을 상당히 비싼 식품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신약 시대 지중해 지역의 기본적인 식사는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곁들인 빵과 생선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했던 갈릴리 호수 변의 한 어린아이의 도시락도 빵과 생선이었으며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생선과 고기잡이가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더운 지역에서 싱싱한 생선은 항상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값이 비싼 편이었습니다. 교통이 발달되지 못한 당시 생선은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잡은 즉시 가공해서 보관해야만 상품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고 연기로 훈제를 했고 작은 생선으로는 젖을 담갔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지역의 고고학 발굴에서 이탈리아 ‘쿠메’산 생선 젖이라고 기록된 항아리의 손잡이가 출토된 적도 있습니다. 국제무역을 통해 여러 유통단계를 거치는 생선의 값은 더욱 비쌌을 것입니다. 주후 1세기의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크는 로마에서 훈제생선 한 수레의 가격이 ‘한 마리의 황소가 이끄는 양 100마리’와 맞먹는다고 기록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시대 갈릴리 호수의 어부들은 값비싼 상품을 취급하는 고급 상인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들은 이방인들에 비해서 이윤을 더 얻을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음식율법인 카슈룻트(신 14:9-10)를 지키기 위해 지중해의 이방인 어부들보다는 갈릴리 호수의 유대인 어부들이 공급하는 생선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의 어부들은 예루살렘 시장에서 생선을 팔기 위해 나흘 길을 마다 않고 판로를 개척했을 것이며, 유대인 특수 때문에 호황을 누렸을 것입니다. 따라서 갈릴리 호수에는 여러 군데에 항구가 발달되고 어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의 대표적인 생선은 베드로 고기를 비롯해서 메기, 정어리, 잉어 등입니다. 정어리는 젖을 담그는데 오늘날까지도 대량으로 잡히며 한해 어획량의 절반인 1000톤을 차지합니다. 잉어는 정어리를 미끼로 해서 낚시로 잡으며 정어리와 베드로 고기는 그물을 이용해서 잡습니다. 베드로 고기는 지느러미가 빗같이 생겼다고 해서 아랍어로 ‘무슛트’로 불리는데 길이가 40센티미터까지 자라며 어미가 수정된 알을 입에 넣은 채 치어가 될 때까지 2-3주 동안 보호하는 독특한 습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물고기는 히브리어로는 ‘물고기를 돌본다’는 의미로 ‘암눈’이라 불리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빌립은 벳세다 출신입니다. 갈릴리의 벳새다는 분봉왕 헤롯 빌립이 주후 30년경 로마식 도시 ‘율리아스’로 재건했으며 수많은 갈릴리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왔습니다. 자연히 생선의 수요도 늘어났을 것이고 근처의 가버나움에는 대규모 시장이 형성됐을 것입니다. 실제로 벳새다를 발굴했을 때 한 저택에서 수많은 그물추와 낚시 바늘들이 발견됐습니다. 함께 출토된 로마산 고급 수입식기들을 통해서 이 집의 주인은 어업과 관련된 부유한 상인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안드레, 빌립 등은 원래부터 헬라식 이름이며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헬라 사람들과 대화할 정도로 고급문화에 익숙한 자들이었습니다(요 12:20-21). 시몬 베드로는 전문적인 어부로서 동생 안드레는 물론이거니와 이웃 형제인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동업자로서 두 척의 배를 이용하여 조직적으로 고기를 잡았던 선주겸 어부입니다(눅 5:10). 야고보와 요한의 집에는 일당을 받고 일하는 품꾼들도 있었습니다(막 1:19-20).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경제적으로 자립한 비교적 부유한 어부들로서 생업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든지 자유 의지대로 고기잡이를 떠나 예수의 제자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왜 자신의 활동 중심지를 벳새다에서 가버나움으로 옮겼을까요? 복음서에는 이 도시에 그의 처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갈릴리 호수 어업 현장에서의  사업장의 위치는 곧 경제적 이윤과 직결되는 것이었습니다.

티베리아스 북쪽 5km 지점에는 신약시대의 어촌 막달라가 있는데 헬라어 지명은 ‘생선 가공공장’이라는 뜻의 타리케아(Tarichea)입니다. 좀 더 높은 이익을 올리려는 어부들은 생선을 잡은 즉시 타리케아로 수송해서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가공용으로 넘겼을 것입니다. 벳새다의 어부들은 헤롯 빌립의 지배 하에 있었기 때문에 헤롯 안티파스의 관할인 타리케아로 생선을 수송하려면 가버나움 세관에서 막중한 통관세를 지불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어업의 근거지를 가버나움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가버나움은 타리케아와 같은 헤롯 안티파스의 영토이기 때문에 감세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러한 점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에 대하여 설교를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적대시 하였던 바리새인들중 특히 예루사렘의 제사장들의 입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하대하는 비꼬는 말을 진실인양 할고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제자라고 하는 설교를 하시는 목사님들도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다시한번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김성 교수의 글)


* 예수 당시의 갈릴리 상황 *

http://blog.daum.net/chakage2473/7150447


헤롯 대왕의 아들 안티파스가 만들어낸 작은 구리 동전들, 즉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이 틀림없이 매일같이 갈릴리 마을의 큰 마당이나 시장에서 만지작거렸을 주머니 속의 동전들은 현대에 고고학 발굴이 진행되는 곳에서 흙을 체로 칠 때, 초록색과 회색이 어우러진 녹슨 금속 조각들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동전들을 잘 씻은 후 자세하게 조사해보면, 최초의 교회가 맞붙어 싸웠던 강력한 정치적 상징들이 드러난다. 즉 동전 한쪽 면에는 종려나무 가지가 찍혀 있고(이스라엘 땅의 풍요로움에 대한 성서의 묘사를 상기시킨다), 또 다른 면에는 로마의 월계관이 찍혀 있는데(세계를 정복하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한다), 헤롯 안티파스가 발행한 이 동전들은 그 자신의 정치적 야심과 메시아에 대한 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빽빽하게 잉크로 기록된 문장들을 통해서보다는 왕의 휘장에서 보다 분명하게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선언을 읽을 수 있었던 시대에,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이용하는 동전에 안티파스가 그런 문양(紋樣)을 새겨 넣은 것은, 그가 로마 황제의 공식적 왕관(월계관)의 권위 아래 이스라엘의 이 부분을 소유한 당사자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한 교활한 방법이었다.

비록 헤롯 안티파스가 복음서에서는 단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인물에 불과할지라도, 그가 갈릴리와 요르단 강 동쪽의 베레아 지역의 통치자로 등극하게 된 과정의 이야기는, 그의 경우처럼 드러나지 않았을 경우라면 아마도 잊혀져버렸을 헤롯 왕조의 음모와 로마의 궁정 정치가 어떻게 특정한 정치 경제적 상황을 만드는 데 역할을 맡았는지를 보여주는데,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은 바로 그런 특정한 정치 경제적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안티파스는 헤롯 대왕의 여섯 번째 아들로서 기원전 20년경, 사마리아 귀족 출신의 말타스(Malthace)에게서 태어났으며, 아마도 그가 소년기에는 갈릴리 땅을 밟아본 적이 없었을 것이거나 혹은 그 주민들의 독특한 전통에 대해서는 평생동안 별로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헤롯 왕가의 응석받이로 키워져, 예루살렘, 여리고, 마사다, 가이사랴 등지의 왕궁들 사이를 계속 왕복하다가, 열 살 정도가 되어서는 공식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 로마로 보내졌다. 기원전 4년에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이어서 그의 형 아켈라오에 맞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난 다음, 이스라엘의 정치적 사태가 그의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가 고작 열 여섯 살 때였다. 헤롯 왕의 유언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을 놓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가운데, (또한 아켈라오가 유대 지역에 질서를 유지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논쟁 가운데), 이 젊은 안티파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앞에서 대담하게도, 아켈라오나 그의 또 다른 형 빌립(Philip)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선왕의 우선적 계승자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그 주장을 거절하고, 그 형제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결정한 채, 선왕의 왕국을 그 형제들 사이에 분할해줌으로써 유대의 정치적 판도를 바꾸어놓았다. 즉 큰아들 아켈라오는 "부족왕"(ethnarch), 혹은 수장으로 강등되어, 유대, 사마리아, 그 남부의 이두매를 통치하도록 허락받았다. 그 다음 빌립은 "분봉왕"(tetrarch) 혹은 지역 통치자라는 칭호를 받아, 골란니티스, 트라코니티스, 바타내, 파내스(지금의 골란 지역,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가장 북부 지역, 레바논의 가장 남부지역을 포함한다)를 할당받았다. 안티파스는 비록 가장 큰 야심을 품고 있었지만, 역시 분봉왕 칭호를 받아 베레아와 갈릴리 지역의 로마 속국 통치자가 되었다.

로마의 기준에 따르면, 안티파스의 몫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통치 지역도 변두리 지역이며 지리적으로도 그 두 지역이 서로 상당히 떨어져 있고, 두 지역 어디에도 큰 도시가 없었으며,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지하자원도 없었고, 왕궁에 속한 대규모 농지도 없었다. 베레아는 요르단 강 동편에 그 강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길게 형성된 좁은 농지 지역으로서, 북부의 높은 지역으로부터 좁은 계곡들을 지나 뱀처럼 흐르는 요르단 강을 따라 메마른 요르단 계곡을 지나 사해 동부 해변으로 이어지는 지역이었다. 한편 훨씬 북쪽에 있는 갈릴리는 보다 비옥하고 게네사렛 호수 혹은 "갈릴리 바다"의 북부와 서부 해변 지역을 포함하고 있는데, 충분한 물과 어장(漁場)을 제공했다. 그러나 갈릴리의 북부 산악지역은 곡물 생산에 적합하지 않았으며, 억척스런 농민들만이 바위가 많은 고지에서 농사를 지었다. 갈릴리 남부지역에는 언덕들이 가파르지 않고 평지도 많아 대규모 농원에 적합했으며, 나사렛, 가나, 얍파, 나인 등지의 마을 농민들은 전통적인 농사법을 고수하면서 자신들의 소규모 포도원, 과수원, 가족용 채소밭을 가꾸었다. 100년이 넘도록 하스몬 가문과 헤롯 왕조의 관리들이 행정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지대"(Upper) 갈릴리와 "저지대"(Lower) 갈릴리 모두의 주민들은 적어도 로마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뒤떨어진 상태였다. 그들은 외부인의 개입을 원망하는 미개한 변경 사람들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었다. 요세푸스는 나중에 이 지역과 그 주민들에 대해 "갈릴리의 두 지역은 항상 적들의 침략에 저항했는데, 그것은 아이들부터 전쟁에 단련되었고 언제나 그 숫자가 많았기 때문이며, 시골 사람들조차 용기가 넘쳤다"고 표현했다.

안티파스는 재빨리 로마 스타일의 질서를 부과하고자 했다. 그의 첫 번째 조치는 현대적인 행정센터를 확립하여, 경찰력, 시장 감시원, 세금 징수원들을 쉽게 인근 마을에 파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갈릴리의 예전 행정수도였던 셉포리스가 최근의 폭동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기 때문에, 안티파스는 그 도시를 현대의 로마식 도시로 재건하여 왕궁, 국고(國庫), 문서보관소, 광장을 갖추도록 명령했다. 건축공사가 끝났을 때, 그는 예전의 주민들이 바루스의 군단병력에 의해 살해되거나 노예로 팔려나갔기 때문에, 충성스런 공무원들과 노동자들을 그 도시에 이주시켰다. 그는 이 새로운 도시를 '오토크라토리스'(Autocratoris)라 이름 붙였는데, 그 문자적인 뜻은 "제국의" 혹은 "황제에게 속한" 도시라는 뜻이다. 이 새로운 도시는 전망이 좋은 높이에 자리잡고 있어서, 주변의 마을들과 농경지에 둘러싸여, 갈릴리의 유일한 중심 도시로서 지역의 시장, 세금 보관, 군대 사령부의 기능을 결합한 도시가 되었다. 셉포리스에 대한 최근의 발굴을 통해 안티파스의 대규모 재건사업의 증거가 드러났는데, 그 거리와 광장, 로마식 대형극장을 포함하여 인상적인 공공 구조물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요세푸스는 그 후 몇 십 년이 지난 다음에 이 도시를 "모든 갈릴리의 광채"라 불렀다. 그러나 셉포리스-오토크라토리스는 단지 장식으로서만 건축된 것이 아니었다. 새로 즉위한 분봉왕의 왕좌로서, 또한 안티파스가 어려서부터 존경하도록 배웠던 로마식 정부의 본부로서, 이 도시는 그 주변 농민들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와 세금 강화, 교역 확대를 통해 연간 수입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유리한 장소였다.

셉포리스에서 동쪽으로 약 15마일 떨어진 갈릴리 해변가 성읍 막달라(성서전통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에서 행해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헤롯 왕족이 다스리던 갈릴리에서 적어도 어업 생산이 급증했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가 드러났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는 광경은 흔히 성경의 그림이나 교회학교 교재에서 어부가 홀로 노 젓는 작은 배 위에 서서 평화롭게 그물을 던지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갈릴리 어업의 규모와 목적은 안티파스 시대에 이르러 많은 변화를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천 년 동안 갈릴리에서 고기잡이하는 일은 그 지역 농민들이 파종기와 수확기 사이의 중간에 비교적 한가한 때 했던 일이었다. 생선은 장거리 교역이 불가능했던 이유가 쉽게 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로마시대에 이르러서는 생선을 소금에 절이는 기술이 발전되어, 어업이 산업 규모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생산기술의 발전에 따라 시장이 커지게 되었고, 로마제국 전역의 도시인들이 맵고 냄새가 강한 '가룸' (garum)이라는 생선 소스와 생선의 머리와 몸통을 잘게 썰어 소금에 절인 스튜로 만든 '살사멘툼'(salsamentum)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두 가지는 일상적인 조미료로서 매우 값비싼 것이 되었다.

안티파스의 시대에 이르러, 막달라는 어업의 중심지가 되어 흔히 "소금에 절인 생선의 성읍"이라 불려졌다. 따라서 예수 당시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이 단지 노 젓는 작은 배 위에서 일하던 농민들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어부들이 매일 잡아 올려야 했던 생선들의 엄청난 무게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며, 또한 그 생선들을 막달라로 보내 소금에 절이고 눌러 발효시킨 후 맑게 하여 '가룸'과 '살사멘툼'으로 만들어 커다란 항아리에 담아 해외로 팔았던 과정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업이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함에 따라, 몇몇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더욱 비참하게 되었다. 막달라의 발굴을 통해 그 성읍에서 비린내나는 일을 했던 건물들, 좁은 도로들, 저수조들이 드러났으며, 큰 저택에서는 그 주인이 자신을 부자가 되도록 만들어준 원천, 곧 배와 큰 물고기 모습을 자기의 저택 현관 바닥에 모자이크로 만들어 과시했던 모습도 드러났다.

그러나 어업의 발전만이 갈릴리의 농촌 풍경, 곧 올리브 과수원, 포도원, 채소밭, 농경지의 광경을 어지럽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당시 대부분의 속국 왕들처럼, 안티파스 역시 그 지역을 더욱 생산적으로 만들기 위해 두 가지 방법에 의존했는데, 더욱 악랄하게 세금을 징수하고, 농민들을 동원하여 공공사업에 투입하고 자신의 개인 영지를 개간하도록 만들었다. 안티파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갈릴리와 베레아에서 세금을 징수할 권리를 얻었는데, 이것은 요세푸스에 따르면, 매년 금(金) 200 달란트(약 9톤)를 얻을 수 있는 특권이었다. 물론 그의 영토에는 금광이 없었고, 단지 밀, 보리, 포도, 올리브, 채소와 가축만이 생산되었다. 따라서 그는 수확기에 모든 마을에 감시원, 세금 징수원, 군인들을 보내 자신의 몫을 확보했는데, 현대 학자들은 그가 대략 전체 생산량의 1/3을 챙긴 것으로 계산한다.  

그 이전에 갈릴리 지역이 멀리 있던 제국들 혹은 예루살렘에 기반을 둔 왕국들에 의해 통치되고 세금이 부과되었을 때에는, 세금 징수가 한결같지 않았었다. 그래서 좀더 독립적인 주민들은 헤롯 대왕 시절에 세금 징수원들이 갈릴리 지역에 도착하면, 폭력으로 맞서거나 산으로 도피하거나 했었다. 그러나 이제 안티파스가 갈릴리를 자신의 주요 수입원으로 간주하고, 갈릴리 중심부인 셉포리스-오토크라토리스에 그의 관리들이 상주(常住)하는 상황에서는, 세금 징수가 더욱 빈번해지고 무거워졌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복음서 안에는 세리, 현물세 징수원, 통행세 징수원, 장원(莊園)의 청지기, 그림자와 같은 "헤롯 당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런 역사적 인물들은 단순히 악당들로 무시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왜냐하면 예수 당시에는 안티파스의 궁정과 밀접하게 연관된 관료체제가 더욱 커짐에 따라, 갈릴리의 거의 모든 농민 가족들이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거나 알거지로 내몰리게 된 데에는 그 관료체제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예수와 그의 갈릴리 이웃들과 친척들에게는 안티파스의 도시 건설 사업과 중과세가 단순히 그들의 생계에 대한 위협과 전통적 농경방식 및 어업방식에 대한 위협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갈릴리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유지해왔던 마을 문화의 토대 자체를 허물어버리는 것이기도 했다. 최근에 로마가 지배하기 시작한 초기 시대의 갈릴리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결과 그 지역의 거의 전부가 농경지였으며, 구릉지대와 계곡들마다 농민들과 목동들이 작은 밭과 목초지 안쪽으로 조잡한 돌집들을 짓고 마당들을 잇대어 작은 공동체들을 열 군데 정도씩 이루고 있어서, 아마도 전체적으로 200개의 공동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마을들 가운데 일부는 철기시대 이스라엘 국가가 생성될 때부터 존속해왔으며, 어떤 마을들은 비교적 훨씬 후대에 만들어졌는데, 모든 마을들이 매우 비슷한 구조로서 단순한 집들(집의 크기나 구조가 특별난 것이 거의 없다)과 혼합경제, 곧 밭농사와 가축 사육, 직물, 가죽, 토기 생산의 구조였다. 실제로 고고학적인 발굴조사 결과는 성경의 최초의 법령과 사회법규에 규정된 생활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즉 가족과 친척 중심의 혈연 공동체들이 좀 더 큰 씨족과 지역의 부족들로 집단을 이루어 소규모 농경생활을 영위하였는데, 이것은 가뭄, 전쟁, 자연재해로 인한 흉작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던 생활방식이었다. 

이런 농경문화는 인류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이 거의 모든 시대와 장소에 걸쳐 자세하게 연구한 바에 따르면, 단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조상들의 땅에서 가족이 생존하는 것으로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옛 전통과 사회제도들을 간직하고 다음 세대에 충실하게 전수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복음서들, 랍비 문헌들, 그리고 요세푸스의 단편적 묘사들을 통해 얻은 증거들에 따르면, 갈릴리 사람들 역시 조상들의 전통을 열심히 고수했으며, 자신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구성원들로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위대한 약속들의 상속자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율법과 전통을 충실하게 지키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창 22:17) 될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을 영원히 소유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의 조상들의 율법, 곧 사회적 관계, 재산권, 개인 도덕, 축제일, 안식일, 안식년 등에 관한 율법은 앞서 말한 것처럼, 추상적인 종교적 도그마나 개인윤리의 기준이 아니었다. 그 율법들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지역 공동체들에게 현실적 헌법이며 행동강령과 지침을 제공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그것을 지키면 그들의 가족과 마을이 살아남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물리적인 상황의 도전 속에서도 번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믿어졌다.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갈릴리의 주민들도 다른 지역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왕들과 그 관리들이 자신들에게 부과하는 무거운 짐을 점차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세금과 공물의 요구에 부응하고 자신들의 가족을 부양할 만큼 충분히 생산하게 되었다. 그러나 왕에게 바치는 세금만이 유일한 강제징수는 아니었다. 갈릴리의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다른 지역 주민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생산물의 상당부분을 제사장들에게 바치는 십일조로, 첫 열매의 헌물로, 그밖에 예루살렘 성전의 신성한 여러 기부를 위해 떼어놓도록 가르쳐졌다. 1세기에 이르러서는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이 성전을 위해 십일조 이외에도 매년 반 세겔을 바치도록 되어 있었는데, 주민들이 반 세겔의 동전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곡식이나 농산물과 교환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심지어 가뭄이나 병충해로 인해 수확이 대폭 줄어든 때조차도 세금 징수원들과 제사장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모든 타작 마당과 올리브 기름을 짜는 곳에 나타나 자신들의 몫을 챙겨갔다. 만일 특정한 마을이나 지역의 농민들이 헤롯 왕족과 예루살렘 성전이 요구하는 세금을 기꺼이 바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처벌이 매우 엄했고 난폭했다.   

역사가 마틴 굿만(Martin Goodman)은 고고학적 증거들과 문헌상의 증거들을 토대로 당시 유대의 마을들에서 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는지를 분석하였는데, 이것은 복음서들이 갈릴리의 경제적 상황을 묘사한 것과 끔찍할 만큼 똑같았다. 이스라엘 전역의 농업생산량은 아무리 작황이 좋은 해였다 해도 특별히 증가하지는 않았으며, 곡식 생산이 조금만 줄어도 수많은 농민들이 가족을 부양하고 동시에 세금을 납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더욱 많은 농민들이 다음 해의 수확을 담보로 해서 곡식을 빌려야만 그 다음해까지 가족들과 가축들이 버틸 수 있었다. 실제로 랍비문헌들과 당시의 법적인 문서들에 나타난 증거들을 보면, 헤롯 왕족 시대를 거치면서 시골 농민들의 부채가 급증하였으며, 기댈 곳이 없던 농민들은 심지어 헤롯 왕족의 관리들과 제사장 귀족들로부터도 대부를 받으려 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임시방편으로 당장 구멍을 틀어막는 방법은 조만간 재앙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는데, 일단 농민들이 다음해의 수확 가운데 더욱 많은 부분을 떼어내어 빚을 갚기로 작정을 하면, 그 다음해에 더욱 큰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농민들이 대부를 받기 위해 담보로 잡힐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토지뿐이었기 때문에, 그 부채를 갚지 못할 경우에는 그 가족이 오랜 세대를 거쳐 경작해왔던 그 토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수많은 경우에 이런 법적인 조치로 인해 한때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땅에서 자작농으로 살았던 농민들이 영원히 소작농으로 전락하여, 당시 급속하게 증가하던 귀족들의 대규모 농지에 빌붙어서 겨우 생계를 이어가게 되었다.

만일 성경의 율법이 엄격하게 집행되었다면, 이런 상황은 벌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명기 15장 2절의 분명한 규정에 따르면, 매 7년마다 "이웃에게 돈을 꾸어 준 사람은 그 빚을 면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면제를 선포하였기 때문에 이웃이나 동족에게 빚을 갚으라고 다그쳐서는 안 됩니다"고 했기 때문이다. 레위기의 성결법전(Holiness Code)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빚을 탕감해야 하며 재산권을 원 소유자에게 되돌려 주어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유일한 진정한 소유주이며,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레 25:23). 그러나 헤롯 왕족 시대에 이 율법을 해석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힘겹게 발버둥치는 농민들에게 꾸어 준 돈을 되돌려 받고 그 이자도 받아내기 위해, 이 명백한 율법규정을 우회할 방법을 찾아냈다. 랍비문헌에서 차압동의서(prosbul)로 알려진 이 계략을 종교 당국과 법 당국자들이 받아들임으로써, 개인 대출을 그 지역 법정에 등록한 경우에는, 심지어 안식년에 상환하도록 된 경우일지라도, 강제로 (법원을 통해 - 옮긴이) 상환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로 인해 대출이 더욱 쉬워짐에 따라, 부채와 차압의 위기는 더욱 심해졌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따라서 한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가족들, 씨족들, 부족들에게 적절하고 엄숙하게 분배했던 이스라엘의 마을들이 서서히 귀족 가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는데, 귀족들은 왕족들과 제사장 집단 혹은 유휴 동산을 많이 지닌 부자들에게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이런 현실은 안식일과 축제일에 정기적으로 읽던 율법 두루마리의 친숙한 출애굽 이야기와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어엎는 현실이었다. 이런 경제적 상황은 영적인 위기를 초래했다. 즉 이스라엘 전역에서 많은 농민들이 생계가 위협 당하게 되자,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허용하시는가 하는 긴박한 물음에 직면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물음에 대해 종교의례적인 설명을 하여, 백성들의 당면 문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그들이 종교의례적 순결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지 않았거나 레위기 법전에 명시된 십일조와 헌물을 제대로 온전하게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그토록 고통을 당하는 것을 귀신이나 악령의 조화 탓으로 돌렸는데, 민간전승에 따르면, 이들 귀신이나 악령은 타락한 천사들로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탐욕과 분란, 불행을 가져오는 것을 기뻐한다고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폭력적인 보복에 대한 환상에서 위로를 찾았는데,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이런 모든 악을 씻어내고,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당시에 보여준 것처럼, 부자들과 악한 자들, 우상숭배자들에게 벌을 내릴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 날이 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단순하고 의로운 사람들에게 영원한 통치를 확립할 것이며, 이사야의 예언처럼, "천한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더없이 기뻐하며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포악한 자는 사라질 것이다. 비웃는 사람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죄 지을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모두 끝장 날 것이다"(사 29:19-20). 이런 사람들에게 심판의 날은 이미 지평선 위에 흐릿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 이후의 사태는 갈릴리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처럼, 묵시문학 속에 그처럼 생생하게 예언된 사건들이 나타날 징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한 그들은 그들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그 하나님의 복수를 지금이라도 피할 수 있으며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설교한 예언자들의 음성에 진지하게 귀기울였다.


호슬리 &실버만, 2장에서

 

 

갈릴리(Galilee) 

 

 

 샤론의 백합 | 향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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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동편에 잇는 남북 14마일 동서 9마일의 호수다.

(1) 구약에는 긴네렛(수13:27).

(2) 신약에서는 게네사렛(눅5:1).

(3) 갈릴리 바다, 디베랴 바다 (요6:1) 단지 바다(마4:18).

(4) 풍랑을 잔잔케 함(마8:26).

(5)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의 4제자를 이 바다에서 불렀다(마4:18).

(6) 이 바다에서 일곱 비유를 가르쳤다(마13:).

(7) 바다 위를 걸으심(마14:22).

(8) 부활 후에 이 바닷가에 나타나서 그물을 배 우편에 던지라 햐여 많은 고 기를 잡음(요21:). 예수님이 갈릴리 도에서 행한 24회 이적 가운데 18회를 이 바다에서 행하셨다.

갈릴리 바다가 특별히 유명한 이유는 예수님이 전도와 이적을 많이 행하셨고 다음은 바다의 수면이 지중해 보다 208미터나 낮은 점이다.

 

갈릴리 바다 위의 그리스도 : 이 작품에 보이는 격렬한 표현주의로 보아 이 그림의 작자는 최고로 재능이 풍부한 틴토레토의 정신적 후계자였던 엘 그레코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확실히 흑암의 하늘에 떠 있는 흰구름의 표현은 엘 그레코의 시정에 극히 유사하고 음화처럼 표현된 묵시록적 공간이 격정을 풍겨내고 있다.캔버스 117*168.5cm.

 

 

갈릴리(Galilee)

뜻:둥글다

1) 구약 시대에는 요단강 서쪽 팔레스틴의 북부를 보통 갈릴리라 하였다(수20:7,왕상9:11왕하15:29,대상6:26).


2)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스불론(수19:10-16)아셀 (수19:32-39)자손들이 제비를 뽑아 차지 하였으며 여러번 혈투를 하였지 만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물리치지 못하엿다(삿1:30-33,4,).


3) 예수님이 12제자중 11제자를 이곳에서 택하였다.


* 신약 시대에 팔레스틴을 3도로 나누어 갈릴리의 경게는 동은 요단강과 갈릴리해, 서는 지중해 남은 사라리아도, 서는 지중해 남은 사마리아도 서북은 베니게로서 남북이 50마일,동서가 25마일 내지 35마일로 북방은 산지가 많고 남쪽은 평원이다.

토지가 비옥하고 경치가 아름다우며 404개의 중소도시 및 촌락이 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복음 선교 활동의 중심지 였다. 제자들도 대부분 이곳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베드로가 살던 집도 이곳 갈릴리 해변의 가버나움 마을이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던 들판도 바로 갈릴리 호수의 북쪽 연안이었으며 유명한 산상보훈의 설교도 이곳 언덕 위에서 였다. 믿음이 부족했던 베드로가 풍랑 속에 빠진 것도 이 갈릴리 호수에서 였다. 해면보다 그 수면이 200m 나 낮은 갈릴리 호수. 평상시에는 잔잔하고 맑으나 때때로 큰 폭풍으로 성난 파도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예수님 당시의 갈릴리 호수 연안은 중요한 교통의 요지 이면서 아름다운 경치와 기름진 옥토를 갖고 있어서 주변 인구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은 바나나, 목화, 오렌지, 올리브 등 갖가지 농산물이 풍부하게 재배되고 있으며 갈릴리 호수의 물은 전 이스라엘 땅의 음료수는 물론 농업용수와 공업용수까지 대부분 충당하는 생명선이 되고 있다. 심지어 남쪽으로 360Km나 떨어져 있는 네게브 사막의 세데보케(Ssede Boque)까지 물을 공급해 준다. 호수에서 처음 시작되는 송수관은 큰 자동차가 드나들 정도로 크지만 점차 가늘어 지면서 흡사 사람 몸의 혈관처럼 이리 저리 연결되어 전 국토를 적셔 주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갈릴리 호수, 바다의 수면보다 700피트 아래에 위치하며 이스라엘 북부 납달리 지파의 땅에 속한 이 담수호수는, 하프의 모양같이 생겼기에 히브리어로 키노르라 불리었고 이는 게네사렛의 어원이 되었다. 지난 25년 동안이나 주후 1세기의 갈릴리를 연구한 고고학자는, 최근에 와서 예수님 당시에 사용하던 배와 배를 고정시키기 위한 돌들과 파도를 막기 위해 항구에 쌓은 방파제(눅 8:23)들을 갈릴리에서 발견함으로써, 과거 초대교회의 역사를 고스란히 21세기의 문턱에 올려 놓았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는 수산업이 크게 번창한 곳으로서, 남방 출신인 가롯유다를 제외한 예수님의 제자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했던 것만 보아도 이를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최근 고고학적인 연구에 따르면, 주후 1세기경의 갈릴리 호수내의 항구는 최소 15개나 되는데 그 중에 가버나움, 게네사렛, 막달라디베랴거라사 등 우리에게 친숙한 지명 모두가 항구에 속한 도시로 밝혀지게 됐다. 당시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퍼져있는 여러개 항구들을 통해 많은 여행객들과 상인들이 배를 이용하여 동서편을 왕래하곤 했던 것이다. 로마시대 때에는 오늘날보다 갈릴리 호수의 수면이 약 4피트 정도가 더 낮았다고 전한다. 특히, 베드로와 안드레가 고기 잡던 곳으로서 가버나움 항과 막달라항 사이에 위치한 타브가 항구는 초대교회의 사적지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이 타브가에서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소명을 주셨고(막 1:17), 또 부활 후 이른 새벽에 이 항구에 나타나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으로 유명하다. 타브가란 헬라어로 '일곱개의 샘물'이란 뜻으로 이곳에 따뜻한 미네랄 온천이 솟아올랐기에 전통적으로 가버나움 출신의 어부들은 겨울철에 꼭 이곳에 와서 어업을 했다고 전한다. 따라서 이 타브가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만난 곳이고 부활 후에도 마지막으로 이곳에 와서 제자들과 조반을 먹었던 장소로 확증된다(눅 5:1-7; 요 21:1-8).

갈릴리의 예수님의 발자취

갈릴리 바다 주변은 온통 예수님의 발자취로 가득하다 . 예수님은 특별히 갈릴리 사람들에게 애착심을 가지셨다. '이방의 갈길리에 먼저 복음이 전해질 것을 암시한 이사야의 예언 (이사야 9:1)을 생각지 않는다고하더라도 공생애 이전의 삼십여 년의 세월을 보내신 갈릴리에 대한 예수님의 애착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 갈릴리를 답사하는 우리는 발걸음 하나마다 예수님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고 , 숨 한번 들이쉴 때마다 같은 공기를 숨쉬셨을 주님을 묵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갈릴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그 때까지 세상에 존재하던 모든 복의 개념을 뒤집어 엎으시고 , 새로운 복의 나라를 선언하신 팔복산이다 . 이 곳은 산이라기 보다는 갈릴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구릉이다 . 예수님은 여기서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셨다 . 구릉 위에는 팔각형으로 된 교회가 있다 . 그리고 교회당 꼭대기에는 작은탑이 서있는데 , 이 교회를 설계한 이탈리아 건축가는 그 탑을 통하여 아홉 번째 복을암시하고자 했다고 한다 . 그가 생각한 아홉 번째 복은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라는 말씀이었다고 한다 . 그렇게 생각해 보면 팔복의 내용 전체가 아홉 번째 복에 귀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그내용 모두가 고난에 귀결되지 않는가 ?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야 말로 모든 복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작은탑이 교회 맨 꼭대기를 장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여겨졌다 . 그리고 그 고난의 십자가는 하늘을 향해 온 몸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 오늘 우리 신앙의 마지막 표현은 바로 그 아홉 번째 복을 통해 드러난 그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팔복 교회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정경을 뒤로 한 우리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오병이어 교회였다 . 1930 년대 초에 독일 고고학 발굴팀은 갈릴리 바다의 북서쪽에 있는 다브가 (Tabgha)란 곳에서 매우 소중한 유적을 발굴했다 . 그것은 약 400 년경에 건축된 교회의 유적이었는데 , 그 교회는 아랍인에 의해 파괴되어 1000 년이 넘는 세월을 땅속에 묻혀 있었다 . 특이 이 유적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 교회 바닥에서 모자이크로된 오병이어 모자이크였다 . 그림은 두 마리의 물고기 사이에 둥근 떡들이 그려진 모습 이었다 . 독일 캐톨릭 교회는 발굴된 모자이크를 기념하고 보호하기 위해 그 위에 교회를 지었는데 , 이것이 오병이어 교회인것이다 . 교회당 안에서 우리 마음속에는2천년 전 어느날 예수님 앞에 둘러앉아 있었을 군중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 어린아이가 음식을 내놓을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던 이기적인 사람들 , 그리고 떡과 고기를 받아먹은 후 배신하여 예수님을 떠난사람들,이런 식으로 우리는 그들을 비난해왔지만 , 그 보다 먼저 은총의 떡을 먹은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더 먼저 드는 것은 왜일까 ? 그들은 그래도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어두워질 때까지 말씀을 들었다. 그 사모함과 인내심만으로도 떡과 고기를 먹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오늘날 예수님께로 잘 가지도 않고, 사모하지도 않으며, 짧은 한 시간 예배도 인내치 못하는 우리들에 비하면 충분히 자격이 있다. '주여 저희에게도 생명의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후, 내려오는 길에 기념품 가게에 들러 모자이크가 그대로 새겨진 잔 두 개를 샀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 그 잔을 깨지지 않게 보관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오병이어 교회 근처에 우리를 붙들고 놓아 주지 않는 한 자그마한 교회가 있었다 . 검은색 돌로 지어진 이 작은 예배당은 베드로교회였다 . 교회 안에는 바닥에 넓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안내인은 그 바위 위에서부활하신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가 있었다고 한다. 에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라기 보다는 예수님과 시몬의 대화였다고 하는 것이 더 옳겠지만, 시몬은 아직 제자답지 못한 불완전한 자연인의 모습을 암시하고, 베드로는 성숙한 예수님의 제자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날 바위 위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던 사람은 스승을 부인한 부끄러운 시몬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그는 베드로라고 불리울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부족한 죄인 시몬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시몬은 오고 오는 모든 시몬들의 대표이다. 그와 예수님의 대화는 우리 모두와 예수님의 대화이다. 시몬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는 곧 우리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이다. 예수님은 영원한 질문을 던지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질문 앞에서 숙연해진다. 사랑하지 않으시고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먼저 사랑하신 후 던지신 질문이기에 그 누가 이 질문 앞에 숙연하지 않겠는가? 우리 일행은 그 바위 앞에서 모두 2천년 전으로 돌아간 듯 숨죽인 채 깊은 묵상속으로 들어갔다, 과연 나는 그 질문에 진실된 사랑의 고백을 드릴 수 있는지? 그러나 예배당을 뒤로하고 나오면서 우리 마음이 어둡지 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랑을 묻기 전에 제자들을 숯불가의 만찬으로 초청하셔서 사랑의 떡을 먹이셨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김운성 목사)

 

 

 갈릴리바다가 위치하고 있는 중앙계곡은 지형적으로 갈릴리바다 자체와 갈릴리바다 주변의 비옥한 계곡형 평원으로 나눌 수 있다. 갈릴리바다 주변의 계곡형 평원들은 갈릴리바다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벳세다평원, 갈릴리 바다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게노사렛평원, 그리고 갈릴리 바다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야르묵-요르단평원 등이다.

 

1. 갈릴리바다

   동쪽으로는 바산고원, 서쪽으로는 하부 갈릴리산지로 둘러 싸여있는 갈릴리바다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자연 담수호이다. 이곳은 일반 바다가 아닌 호수임에도 불구하고 바다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은 이스라엘에서의 바다 개념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 바다와 다르기 때문이다. 즉 바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얌'은 바다와 호수의 구분 없이 많은 양의 물이 모여있는 곳을 의미한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 뜰에 있었던 물두멍을 '바다'라고 이름하였던 것도 이런 '얌'의 의미와 관련이 있다.(왕상 7:23) 갈릴리바다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주변의 비옥한 해변으로 인하여 고대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지역이다.

 

  (1) 갈릴리바다의 명칭

   역사적으로 갈릴리바다는 여러 가지 다른 명칭으로 지칭되었다. 신약성경에서도 갈릴리바다를 가리키는 데에 네 가지의 다른 이름이 사용되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ㄱ) 갈릴리바다 (Sea of Galilee): 신약성경에서 이 바다는 주로 '갈릴리바다'라는 명칭으로 통용되었다. 이 명칭은 오늘날에도 기독교인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명칭이다.

     ㄴ) 긴레렛바다 (Sea of Kinneret): 구약성경에서는 갈릴리바다를 '긴네렛'이라고 불렀다. 이

                            명칭은 현재 이스라엘에서 이 바다에 대한 공식 명칭이다. '긴네렛'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일부에서는 하프 모양을 띄고 있는 갈릴리바다와 연관

                            시키기도 하는데, 그것은 하프를 의미하는 히브리어가 '키노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는 갈릴리바다의 북서쪽 해안에 위치하였던 '키나로트'

                            라는 도시에서 기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초기 이곳에는 뵈니게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키나르'라는 신을 섬겼다.

     ㄷ) 디베랴바다 (Sea of Tiberias): 갈릴리바다의 또 다른 명칭은 '디베랴바다'이다. 이것은 

                            갈릴리바다의 서쪽 해안에 안티파스에 의하여 건설된 티베리아스'에서 기원된 

                            명칭이다. 안티파스는 당시 로마왕제였던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빌어 이곳 이름을

                            붙였다. 신약성경 뿐 아니라 유대인 경전에서도 이곳을 '티베랴'라고 불렀으며,

                            오늘날 아랍사람들도 이곳을 '바하르 타바리아'라고 부르고 있다.

     ㄹ) 게네사렛바다 (Sea of Gennesaret): 신약성경에서 언급된 갈릴리바다의 네 번째 명칭은 

                           '게네사렛'이다. '게네사렛'은 '지방장관의 정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명칭은 갈릴리바다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게노사르평원에서 연유된 명칭이다.  신약시대와 동시대인이었던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푸스 역시 갈릴리바다를   '게네사렛'이라고 기록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갈릴리바다에 대한 여러 가지 명칭들은 이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이나 그 지역에 있었던 중요한 도시 이름들과 연관되어 있다. 헬라의 지리학자였던 스트라보(Strabo)는 갈릴리바다 남동쪽 야르묵강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던 도시의 이름과 관련하여 이 바다를 '가다라'(Gadara)라고 명명한 적이 있다.

 

  

(2) 갈릴리바다의 지형

   갈릴리바다의 남북간 최장 길이는 21km이며, 티베리아와 막달라 근처에서의 동서간 폭은 각각 8km과 12km가 된다. 갈릴리바다 전체 면적은 약 165km2 이다. 갈릴리의 해수면은 지중해보다 210m나 낮다. 그러나 갈릴리바다의 해수면 높이는 계절과 년간 강우량에 따라 기복이 있다. 갈릴리바다의 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49m인데, 서쪽보다 동쪽이 더 깊으며 남쪽보다 북쪽이 더 깊다. 이것은 동쪽에 있는 골란고원의 경사면이 서쪽에 있는 갈릴리산지 경사면보다 더 가파르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갈릴리바다의 전체 수량은 약 45억6천2백만m2에 달하고 있다.

   갈릴리바다로 유입되는 요단강을 비롯한 그 외의 다른 유입 물줄기들은 모두가 깨끗한 담수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릴리바다에는 약간의 염분이 포함되어 있다. 대략적으로 1리터의 물 속에 약 250-400mg의 염분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염분 농도는 건조기에는 조금 더 높아지고, 우기에는 낮아진다. 갈릴리바다 물에 포함된 염분은 바다 주변과 바다 밑바닥에 있는 광천수 샘들에서 나오는 염분성분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런 요인과 더불어 건조한 날씨로 인한 물의 증발도 염분 형성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는 이러한 샘들에서 나오는 염분을 갈릴리바다 속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특별 수로를 만들어 갈릴리바다 아래 지역으로 빼내고 있다.

   갈릴리바다 주변지역은 언제나 인구가 밀집되어 있었다. 제2 성전시대 갈릴리 주변에는 어림잡아 50만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갈릴리바다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게노사렛평원은 특별히 비옥한 땅으로 유명하였다. 요세프스의 기록에 의하면(유대전쟁사 3:7-8), 이곳은 비옥하고 좋은 토양 덕분으로 잘 맺지 못하는 과실이 없을 정도였으며, 주민들은 모든 종류의 작물을 재배하며 살았다. 이곳은 기후도 알맞아 많은 종류의 생물이 서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자연의 놀라운 혜택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쟁적으로 이 지역의 지배권을 차지하려고 노력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헬라시대와 로마시대에 갈릴리바다 근방에는 많은 도시들이 세워졌다. 바다 주변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식으로 지어진 궁전, 원형 경기장, 극장, 그리고 목욕탕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가버나움, 타브가, 고라신, 아르벨, 벳세다, 수시타, 엘하마, 가다라 같은 도시들의 유적은 당시 이 지역이 얼마나 번창하였던 유대인 지역이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유산들이다. 높은 문명 수준을 지녔던 헬라와 로마시대의 번영과 갈릴리바다 주변에서 꽃피었던 신약성경 및 초기 기독교의 역사, 그리고 탈무드와 같은 경전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는 유대인의 영적 유산은 갈릴리바다 주변의 좋은 자연의 조건 속에서 크게 발전했음이 분명하다.

   갈릴리바다 주변은 300m 이상 되는 가파른 산지로 둘러 싸여 있어 마치 깊은 분지 속의 바다 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산지의 급경사는 주변 산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급작스러운 돌풍으로 바뀌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갑작스런 기상의 변화는 특히 헬몬산의 차가운 공기가 나무가 별로 없는 완만한 골란고원의 경사지를 거쳐 갈릴리바다까지 내려오는 과정에서 자주 일어난다. 이러한 돌풍현상은 오늘날도 자주 만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물을 크게 요동시키는 갑작스러운 폭풍은 어부와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요소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돌풍으로 일어난 풍랑을 잔잔케 하신 기적을 보여주셨다.(마 8:26) 

   갈릴리바다에는 많은 종류의 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다. 울리는 소리를 내는 메기종류인 '바르부트'도 이곳에서 서식한다. 호수에서 서식하는 여러 종류의 고기를 잡아들이는 어업은 주변의 비옥한 평원에서 이루어지는 농업과 함께 이 지역의 중요한 경제적 수단이었다. 이러한 좋은 여건 때문에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바다 가까운 주변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바다 물이 흘러나가는 출구 근처에서 발견된 인간의 두개골은 10만년전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것은 이 지역에서의 인간 거주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신약성경과 유대인의 탈무드가 보여주는 것에 의하면, 헬라와 로마 통치시대에 갈릴리 해변가에는 많은 유대인 어부들이 정착하여 살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역시 갈릴리 주변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살았던 어부들이다. 바다에서 잡은 고기는 이곳에서 개발된 저장하는 방법에 따라 상품화되었고 이런 사업은 이 지역에서 크게 번성하였다. 특히 소금에 절여 말린 고기는 로마에까지 수출할 정도로 잘 알려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