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아리랑 신학

한국인의 전통 민요 "아리랑"에 관한 신학적 고찰을 위한 소연구 논문 발표를 위한 자료를 수집합니다.
2023년 전반기 6월에 발표 예정


미국 찬송가에 실려있는 아리랑 찬송 / 이정면박사

'세계 속 아리랑' 주제로 영문서 낸 이정면 유타大 명예교수
 
아리랑 가락을 편곡해 영국 작곡가가 가사를 붙인 자장가, 미국 개신교 찬송가에 수록된 아리랑…. 원로 지리학자 이정면(84) 미국 유타대 명예교수가 아리랑의 유래와 세계로 퍼져 나간 아리랑 이야기를 담은 영문서 《Arirang: Song of Korea》(이지출판사)를 펴냈다.

서울대 사범대 지리교육과를 나와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1972년부터 유타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2002년 정년퇴직했다.

이 교수는 "아리랑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다가 아리랑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많이 전파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이 교수가 보여준 자장가 악보에는 어머니가 병든 아이를 달래는 노래라는 설명과 함께 한국 전통 민요(Korean Folk Song)라고 소개돼 있다.

이 노래를 편곡하고 가사를 쓴 이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던 말콤 사전트(Sargent· 1895~1967). 이 교수는 "사전트가 1960년대 동북아지역을 여행하면서 한국을 방문했거나, 아리랑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교수는 또 1990년 미국 연합장로교회에서 발간한 찬송가집에 아리랑이 〈Christ, You Are the Fullness〉라는 제목 아래 수록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작사자는 미국 미시간주 칼빈 칼리지 음악 교수인 버트 폴만(Polman). 이 교수가 아리랑이 미국 찬송가에 들어가게 된 경위를 묻자 폴만 교수는 "멜로디가 너무 아름다워 아리랑을 찬송가에 포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는 것.

이 교수는 헐버트, 알렌, 비숍 여사를 서구에 아리랑을 알린 선구자로 꼽는다.

이어 6·25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한 병사들을 통해 아리랑이 세계로 퍼져 나갔다고 설명한다.

미국 포크음악계의 대부이자 반전가수였던 피터 시거(Seeger)는 1964년 첫 라이브 앨범에 〈아리랑〉을 반전음악으로 수록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2007년 아리랑의 고향 정선, 진도, 밀양 등을 찾아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기행》을 펴냈다. 이 책을 출간한 뒤, 아리랑을 세계인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을 위해 영문서 출간에 매달려왔다.

이 교수의 전공은 토지 이용계획과 인구이동이다. 유타대 도서관 고문서실에서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유타주의 케네커트 주석 광산에서 일하던 한인 광부 411명의 명단을 찾아내는 등 미국 중서부 지역 한인 광산노동자의 역사를 발굴하기도 했다. 하와이에서 일자리를 찾아 미국 본토로 건너온 이들은 고된 광산일과 언어 문제 때문에 대개 며칠 만에 달아나버리기 일쑤였다.

이 교수는 "광산을 떠난 한인들의 다음 행로가 어땠는지 아직 찾아내지 못해서 아쉽다"고 했다.

이 교수는 "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고국이 그립거나 외로울 때 마음을 위로해주는 노래가 아리랑"이라면서 "한국 전통문화의 정수인 아리랑을 연구하는 것은 인문 지리학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서용순 이지출판사 대표는 "아마존 사이트를 통해 해외에 책을 보급하겠다"고 했다.

 

 

<오소운 목사의 추기>

아래 악보는 위에서 언급한 미국 북장로회 찬송가(The Presbyterian Hymnal, 1990) 346 장에 실린 아리랑 곡조의 찬송이다. 곡명(Tune Name)은 ARIRANG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 1절만 영어로 적어 소개한다.

 

Christ, You are the Fullness

 

Christ, You are the Fullness of God,

First born of everything.

For by You all things were made;

You hold them up.

You are head of the Church,

Which is Your body.

First born from the dead,

You in all things are supreme

 

아래에 미국 찬송가에서 스캔한 악보를 싣는다. 가사는 버트 폴만 (Bert Polman, b. 1945) 이 캐나다의 그리스도교개혁교회의 <시편찬송>(Psalter Hymnal, 1987)을 위해 1986년에 작사한 것이다. 그는 캐나다 온타리오에 있는 리디머칼레지(Redeemer College) 교수다. 또한 그는 미국과 캐나다 찬송가위원회의 실행위원이다. ARIRANG의 편곡자는 데일 그로텐후이스(Dale Grotenhuis, b.1931)인데  <시편찬송>(Psalter Hymnal, 1987)을 위해서 1986년에 편곡한 것이다. (source : Presbyterian Hymnal Companion, 1991, by LindaJo H. MaKim; p. 244)


Christ you are the fullness / 그리스도찬양의기쁨 CCM악보 [북미찬송가 가사, 한국 민요 아리랑 곡]

 

1.
Christ, You are the fullness of God, first born of everything.
For by You all things were made; You hold them up.
You are head of the church, which is your body.
First born from the dead. You in all things are supreme!

2. 
Since we have been raised with You, Lord, help keep our heart and minds.
Pure and set on things that build Your rule over all the earth.
All our life is now hidden with You in God.
When You come again we will share Your glory.

3.
Help us live in peace as true members of Your body.
Let Your word dwell richly in us as we teach and sing.
Thanks and praise be to God through You, Lord Jesus.
In whatever we do let Your name receive the praise!

** 한국의 민요 아리랑에 가사를 붙인 북미 찬송가 악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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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곡에 담긴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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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라앙 아리라앙 아라아리이요오 아리라앙 고오개에로오 넘어간다..."

아무리 타국 만리에서 반세기 넘게 살았다고 해도, 어쩌면, 처녀로 성장할 때까지 근 스무 해를 써오던 우리말을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정신대(挺身隊)로 끌려갔다가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먼 이국 땅에서 50여 년을 보내고 최근에 극적으로 돌아 온 어느 할머니가 부르는 노랫가락이다.
우리말은 한 마디도 못하면서 '아리랑'은 구슬프게 부를 줄 안다.
말은 잊었는데 노래는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살아난다.
그런데, 그것이 '아리랑'이다.

미국연합장로교회의 찬송가 346장을 보면, "주님은 하나님의 충만하심"이라는 찬송이 있다.
영어 제목은 "Christ, You Are the Fullness"라고 되어 있고, 그 밑에 ARIRANG(아리랑)이라고 영어로 쓰여있다.
미국연합장로교회 찬송가에 우리의 한국 민요 아리랑 곡이 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도 감히 우리의 아리랑 곡에다가 우리의 하나님 찬양을 싣지 못하고 있는데, 미국연합장로교회가 이런 일을 하였기에 한 편으로는 신기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세속적인 노랫가락을 찬송에 도입해도 되는 것인지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영어가사는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라고 하는 골로새서 1장 15절 이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작사한 것이다. 미국연합장로교회 찬송가의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Christ, You are the fullness of God, first born of everything.
For by You all things were made; You hold them up.
You are head of the church, which is your body.
First born from the dead. You in all things are supreme!

Since we have been raised with You, Lord, help keep our heart and minds.
Pure and set on things that build Your rule over all the earth.
All our life is now hidden with You in God.
When You come again we will share Your glory.  

Help us live in peace as true members of Your body.
Let Your word dwell richly in us as we teach and sing.
Thanks and praise be to God through You, Lord Jesus.
In whatever we do let Your name receive the praise!

위 가사를 다음과 같이 우리말로 번안(飜案)하여 '아리랑'에 실어 본다. 곡조의 세속성은 친밀감으로 바뀌고 가사의 장중(莊重)함은 가락의 흥겨움과 조화를 이루어, 흥겨운 신앙고백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주님은 하나님 형상이시오
    만물 중에 으뜸이신 창조주시라
    부활하시어 다스리시니
    주님은 교회의 머리이시라
    
    주님과 더불어 새로 태어나
    성령 님 모시는 새 생활이라
    성령 열매를 풍성히 맺어
    주님 다시 오실 때 반겨 맞으리

    주님의 지체된 우리 몸이
    생명의 말씀을 먹고사니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주님 이름 높이며 살렵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예수님을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서 이것이 예수님의 피조성(被造性)을 말하는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이들이 있다. 원어인 그리스어 표현 "프로토토코스 파세스 크티세오스"는 "모든 피조물의 첫 탄생(first born of all creation: RSV)"이라는 압축된 표현이다. 번역에 따라서는 "모든 피조물 위에 으뜸이신 맏아들(the first born Son, superior to all created things: GNB)"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본문의 전체 문맥을 읽지 않고, 다만, '나셨다 (born)'라고 하는 낱말 하나에만 집착하는 쪽에서는 그리스도도 피조물 중에 속한다는 주장을 한다. 문맥을 보면 바로 다음절에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고 하여 그리스도는 창조자이지 피조물이 아님을 분명히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말 번역에서 '먼저 나셨다'고 할 때 그 '먼저'는 '으뜸'을 뜻하는 것이고, '나셨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한 관계를 부모 자식의 관계로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이 노랫말 번역에서는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를 '만물 중에 으뜸이신 창조주시라'라고 불러보았다.

[출처: 뉴스앤조이] 아리랑 곡에 담긴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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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지구촌이 들썩들썩하는 '싸이 현상'은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을 한국으로 집중시켰다. 그동안 '한류' 열풍이 동남아와 전 세계로 퍼져서 한민족의 위상을 떨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한국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다고 본다. 필자는 이 독특한 심성의 특징으로 한(韓), 고(苦), 한(恨), 복(福), 정(情), 신명  등을 들었다.( <아리랑신학> 정행업 저. 대한기독교서회. 1996.)  그리고 한국인의 정서는 ‘아리랑’이라는 민요에 포괄적으로 표현돼 있다. 한국인은 ‘아리랑’이라는 민요를 통해 독특한 정서를 발산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아리랑을 부를 때 우리는 한(韓)민족의 고유한 동질성을 자각하게 되고 한민족의 뜨거운 정감에 사로잡히며 한국인의 얼과 힘이 꿈틀거림을 느끼게 된다. 한국인에게 있어 아리랑은 제2의 애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것은 한국인에게 매우 뜻 깊고 자랑스러운 쾌거라 할 수 있다. 모든 인류의 가시적 유형문화재는 비가시적 무형문화의 외적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무형문화재는 한 민족을 이해하는 열쇠다.
 
필자는 이미 한국적 신학을 '아리랑 신학'으로 표현하자고 제안한 바가 있다. '아리랑 신학'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접목된 주체적인 신앙고백과 신학을 말한다. '아리랑 신학'은 한국인의 종교심성에서 형성된 신학을 말한다. 한민족은 어느 민족보다도 종교심이 강하다. 
 
오랫동안 고난의 역사를 경험했고 그래서 맺혀진 한이 있고 이 한을 풀기 위해 신을 찾았고 그에게 복을 빌고 노래하고 춤추며 신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모든 종교 행위가 '아리랑'이라고 하는 민요를 통해서 발산되었다.
 
이 아리랑이라고 하는 민요에 담긴 한국인의 심성이 이 땅에 기독교가 전래된 후에 그리스도인의 신앙양태와 한국교회 신학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를 진지하게 탐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심성을 긍정적으로 활용하여 그리스도교 선교에 활력소로 삼고, 아울러 그리스도교 문화 창달에 기여할 수 있기 위해 한국적 신학(아리랑 신학)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할 때라고 본다.
 
정행업목사/대전신대 명예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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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투데이 2005-11-07 07:54<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 저자 유석근 목사 인터뷰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 저자 유석근 목사 ⓒ 류정희 기자

“아리랑은 원래 ‘알이랑’이다.
그리고 ‘알이랑’은 ‘알’과 ‘이랑’으로 구분되는데, ‘알’은 ‘하느님’을 뜻하는 말이다.
‘하느님’이라는 신명(神名)은 본래 ‘알’이었는데 ‘알’ 앞에 ‘한’이라는 관형사를 붙이고, ‘알’ 뒤에는 ‘님’이라는 존칭명사를 붙여 ‘한알님’이라고 했다.
이 ‘한알님’이 “한알님 → 하날님 → 하늘님 → 하느님”으로 변했다.
그래서 ‘알이랑’의 ‘알’은 성경의 ‘엘(EL)’처럼 ‘하느님’을 뜻하는 말이고 ‘이랑’은 ‘~와 함께’라는 뜻으로서 영어의 ‘With’에 해당한다.
즉,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말이다”

최근 민요 ‘아리랑’을 화두로 삼아 선민 한국인의 정체성을 강조한 책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을 펴낸 저자 유석근 목사의 말이다.

유 목사는 ‘아리랑’은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로서, ‘알이랑’이라는 말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알려주는 선민 한국인의 키워드(Key word)라고 주장한다.
즉, 우리 겨레는 민족사를 ‘알이랑’ 곧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욕단계 천손민족(天孫民族)이라는 사실이 민요 ‘알이랑’으로 말미암아 입증되고 있다는 것.

“이 책은 아리랑이 어떤 노래인지를 바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은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일독할만한 가치가 있다. 지금까지 아리랑의 뜻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었으나 수긍할만한 해석은 없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아리랑이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유 목사에 따르면 ‘아리랑’에서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부르는 노랫말의 의미는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이요, 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라는 것.

또한 유 목사는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직계조상인 셈의 현손(玄孫) 욕단 족속(창 10:21~30)이 대홍수 후 동방으로 천동(遷動)할 때 파미르고원에서 천산산맥으로, 천산산맥에서 알타이산맥을 넘어오면서 불렀던 찬송가였다. 홍수 후 산을 넘어 가장 먼저 동방으로 천동한 족속은 ‘욕단’이었으며, 창세기 10장 21절과 25절에 의하면 욕단은 선택받은 종족인 에벨의 후손이었다”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본인은 이 책의 메시지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반세기 이상 고난받고 있는 조국의 동포들에게 참된 소망과 위로를 안겨주는 매개체가 되기를 희망한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564만 해외동포들과, 160여 나라에서 활동 중인 1만여 한국인 해외 선교사들에게도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주는 하늘의 소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책의 내용 중 일부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월간 <신앙계>에 연재되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유석근 목사는 현재 1992년에 개척한 상동중앙교회(예장합동 소속)을 담임하고 있으며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에서 구약신학을 전공했다.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시원과 그 기원을 함께 한 민족의 역사노래인 동시에 현존하는 인류 最古의 찬송가다!

필자는 저서 <알이랑민족>에서 아리랑은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라고 설명했다. 그것은 근거 없는 자의적 해석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인문과학적 논거들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그러므로 아리랑 찬송가론을 부정하려면 그러한 결론을 도출한 논증에 오류가 있는지 조사해야 할 것이다. 그게 바른 순서다. 아리랑을 찬송가로 해석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아리랑의 어원

①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논하려면 종교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배달 동이겨레는 하나님을 섬기던 제천민족(祭天民族)으로서 단순한 정치세력(민족, 국가)이 아닌 ‘종교적’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겨레는 다신숭배가 만연한 고대 세계에서 제천신앙으로 유일신 하나님을 숭배하던 독특한 민족이었다. (제천신앙에서 숭배의 대상이 된 ‘하느님’이 성경의 하나님과 동일한 신이셨다는 것은 책에서 자세히 근거를 제시했다.)

단군조선시대에는 제천의식이 북으로는 백두산에서, 남으로는 강화도 마리산 산정의 참성단에서 행하여졌다. 이 제천행사야말로 동이문화의 정수(精髓)이며, 우리 문화의 본성(本性)이다. 그러므로 동이의 후예인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도 종교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그 비밀이 드러날 것이다.

②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아리랑은 한자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아리랑’이라는 한자가 기록된 책이 어디선가 고서(古書) 가운데 한 권이라도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도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리랑은 입에서 입으로 구전으로만 전래되어 온 순 우리말의 민요이기 때문이다.

③ ‘아리랑’의 어원은 ‘알이랑’이다(알이랑 => 아리랑).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

그런데 오랜 세월동안 글자가 없을 때 구전으로만 전승되다 보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부르게 되었고 결국 ‘알이랑’이 ‘아리랑’으로 고착되고 만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이 진정 어떤 노래인지를 알려면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로 잃어버린 원래의 노랫말을 되찾아야 한다. 그게 기본조건이다.

④ 아리랑의 비밀을 푸는 열쇠 ‘연음법칙’

왜 본래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라는 가사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부르게 되었을까? 우리말의 발음에는 ‘연음법칙’이라는 음절의 연결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자음으로 끝나는 음절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음절이 이어질 때 앞 음절의 끝소리가 뒤 음절의 첫소리가 되는 음운 규칙을 말한다.

예:

“깊이→기피” “옷을→오슬” “책이→채기” “낮에→나제” “벗이랑→버시랑” “가물어→가무러”

“하늘이→하느리”

알이랑 → 아리랑

알알이요 → 아라리요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왜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가 아닌 “아라리요”라고 노래하고 있는지 그 의문이 해소되었다. 거기에는 문법적 이유가 있었다. 지금까지 어떤 아리랑 연구가도 이 문제를 문법적으로 설명하여 규명한 적이 없다.)

⑤ ‘알이랑’은 ‘알’과 ‘이랑’으로 구분된다. ‘알이랑’은 ‘알’이라는 이름씨(명사)와 ‘이랑’이라는 도움씨(조사)가 붙어서 된 말이다(알+이랑 = 알이랑). 그러므로 ‘알’과 ‘이랑’을 각각 따로 분리해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⑥ ‘알’은 ‘하느님’(하나님)을 의미한다. 우리 겨레는 잡신과 구별되는 유일신의 이름을 ‘하느님’이라고 불렀다. 이 ‘하느님’이라는 신명(神名)은 처음에 ‘알’이었다. 그런데 ‘알’ 앞에 ‘한’이라는 관형사를 붙이고, ‘알’ 뒤에 ‘님’이라는 존칭어미를 붙여서 ‘한알님’이라고 했다.

그것이 [한ᄋᆞᆯ님→하ᄂᆞᆯ님→하늘님→하느님]으로 바뀐 것이다(우리말 어원사전). 그래서 ‘알’은 ‘하느님’이다. 창조주 하느님 곧 유일신을 뜻하는 원시 언어가 ‘알’이었다.

⑦ 유대인의 ‘엘(EL)’, 아랍인의 ‘알아(알라)’는 바로 이 ‘알’에서 유래된 말이다(‘알라’는 아랍어로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아랍 기독교도들은 성경의 유일신 하나님을 '알라'라고 아랍어 성경책에 표기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인 ‘엘로힘’(단수는 Eloah)은 ‘알라(alah)’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벌코프 조직신학 239쪽 *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간). 즉 창조주 하나님을 뜻하는 인류 최초의 신명(神名)이 ‘알’이었다. 이 ‘알’이 ‘엘(EL)’의 어원인데, 노아에 의해 홍수 이후의 세대로 전해졌다.

⑧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로서(언어학자들은 ‘~가’ ‘~이’ ‘~는’ ‘~이랑’ 등과 같은 ‘토씨’는 뜻과 소리가 바뀌지 않으면서 6천년 이상 간다고 한다) 영어의 ‘With’이다(예, 갑돌이랑 = 갑돌이와 함께, 갑순이랑 = 갑순이와 함께, 벗이랑 = 벗과 함께). 그러므로 ‘알이랑’은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말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겨레가 잃어버린 아리랑의 원의(原意)이다. 아주 숭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⑨ 왜 ‘알’이 유일신 하나님을 뜻하는 말이었을까? ‘알’이 수많은 생명을 낳기 때문이다. 쌀도 볏알(볍씨)에서, 과실도 씨알에서 생기고, 하늘과 땅과 바다의 허다한 생물들이 또한 ‘알’에서 탄생한다. 그래서 ‘알’은 ‘모체(母體)’요, ‘근원(根源)’이요, ‘시작(始作)’과 같은 뜻을 갖는다. 따라서 창조주 하느님(하나님)도 ‘알’이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만물의 모체이시고 근원이시며 시작이시기 때문이다.

⑩ 다만 우리 겨레는 그 ‘알’이 ‘큰 모체’이시고 ‘큰 근원’이시며 ‘커다란 시원(始原)’이시기에 ‘알’ 앞에 ‘한’이라는 관형사를 붙였다. 또한 그 ‘알’이 인격적 존재이심으로 ‘알’ 뒤에 ‘님’이라는 존칭어미를 붙였다. 그래서 창조주 유일신을 ‘한알님’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 ‘한알님’이 [한ᄋᆞᆯ님→하ᄂᆞᆯ님→하늘님→하느님]으로 소리가 변했다.

그러므로 ‘알’은 ‘엘(EL)’과 동의어로서 하나님을 뜻하는 말이다. ‘알’은 우주만물의 根源(근원)이며 始終(시종)이신 主宰主(주재주), 곧 유일신 하나님(God)을 의미하는 우리 배달겨레의 옛 말이다.

⑪ 고구려, 신라 그리고 가야의 지도자들이 모두 ‘알’에서 탄생했다는 이른바 ‘난생설화’(卵生說話)가 있다. 박혁거세가 큰 알에서 나왔다는 것, 주몽이 알의 껍질을 깨고 나왔다는 것, 김수로왕이 알에서 뛰쳐나왔다는 것은 모두 그들이 ‘한ᄋᆞᆯ님’의 자손 곧 천손(天孫)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태어난 사람이란 뜻이다. 바로 이것이 난생설화의 진정한 의미이다.

난생설화의 주인공들이 말 그대로 알에서 태어났다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유치한 소견이다. 실제로 알에서 태어날 수는 없다. 그렇게 파악하기보다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손 즉 천손(天孫)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난생설화는 시조의 탄생에 신적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이야기인 것이다.

⑫ 더욱이 ‘하늘’은 둥글어서 ‘알’인데, ‘하늘’이라는 말도 처음에는 ‘한ᄋᆞᆯ’, 즉 ‘큰 알(大卵)’이었다. 한ᄋᆞᆯ→하날→하늘로 변한 것이다. 만물을 내신 한알님(하느님)은 한알(하늘)에 계신다. ‘큰 알(大卵)’, ‘큰 모체(母體)’, ‘큰 근원(根源)’ 같은 뜻으로서의 ‘한ᄋᆞᆯ’에 ‘하늘’이라는 말의 기원이 있다. ‘하늘’이란 단어의 어원도 ‘한알’이다.

⑬ ‘알’이라는 것은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서 사물(事物)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시작’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커다란 시원(始原)’으로서의 ‘알’이 곧 한알→하날→하늘로 된 것이다. 그러한 하늘(한알)이었기에 삼라만상(森羅萬象)은 곧 당신의 것이었다. 당신이 낳으시고, 당신이 기르시고, 또 당신이 주재하시는 것이었다. 홍수 전 사람들이 창조주 유일신을 ‘알’이라고 불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⑭ 하나님을 뜻하는 성경 원어 ‘엘(EL)’은 바로 이 ‘알’에서 변음이 되어 나온 말이다. ‘엘’은 ‘다스리는 이’, ‘강하신 분’이란 뜻을 가진 신명(神名)으로 셈어(Shemitic)에서 전반적으로 사용된 ‘하나님’ 또는 ‘신성(Divinty)’에 관한 호칭이다. 이 ‘엘’은 바로 ‘알’의 변음이다. 이 ‘알’이라는 단어는 창조주 하느님(하나님)을 뜻하는 일종의 원형언어로서 노아에 의해 홍수 이후의 세대로 구전되었다.

저명한 조직신학자 벌코프는 다음과 같이 썼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인 ‘엘로힘’(단수는 Eloah)은 ‘알라(alah)’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벌코프 조직신학 239쪽 * 크리스천다이제스트 간). 즉 ‘엘’보다 ‘알’이 먼저였다. ‘엘’은 ‘알’의 변음이다.

⑮ 종교철학자 오강남 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는 그의 저서 ‘길벗들의 대화’에서 ‘알다’는 동사가 ‘알’에서 나왔음을 가르쳤다. 알은 천지창조의 모태였다. 또 알의 열림 혹은 깨어짐은 밝음의 시작이었다. 실로 ‘알’(하나님)을 ‘앎’(지식)이 가장 큰 ‘앎’이다! 하나님(알)을 아는 지식(앎)이 가장 큰 지식이다.

16) 한국인의 무덤은 동그란 모양의 봉분인데 그것은 ‘큰 알’(大卵=한알)을 뜻한다. 셈의 후손으로서 ‘한알님’께 제사지내며 삶을 영위했던 한국인의 선조들은 스스로 천손민족(天孫民族) 즉 ‘한알님’의 백성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죽음이란 ‘한알’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국인은 누군가 죽었을 때 ‘돌아가셨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디로 돌아가신 것인가? ‘한알님’(하느님)이 계신 한알(하늘) 나라로! 그리하여 무덤이 동그란 모양의 ‘알’인 것이다. 그들은 ‘한알님’의 백성으로서 ‘알’에서 왔으니 ‘알’로 돌아가고자 했다. 실로 한국인은 ‘알이랑 정신’으로 살고 죽는 ‘알이랑민족’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상과 같이 인문과학적 논거들을 충분히 제시하면서 아리랑의 어원은 ‘알이랑’이며, 그 의미는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자, 여기에 논리적 비약이 있나? 논거가 빈약한 아전인수격 주장인가? 유석근 목사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했나? 아리랑의 어원과 의미에 관한 <알이랑신학>의 학문적 견해에 이의가 있다면 근거를 제시하고 반박하라.

그대가 어떤 학자가 발견한 새로운 연구 결과를 부정하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반론을 제기할 때에는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다. 먼저 그러한 결과를 도출한 이론적 근거들이 오류가 있는지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왜 오류인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즉 반론과 비평도 근거와 더불어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아니다’ ‘틀렸다’ 하면 설득력이 없다. 그것은 억지다.

그런데 일부 아리랑 찬송가론을 비방하는 자들이 글을 읽어보면 누구도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논박 없는 반론인 것이다. 그러한 비평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모 대학 B교수의 글도 예외가 아니다. B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필자가 논리를 비약했다고 썼다. 실로 억지 주장이며, 일종의 횡포다. 나는 B교수의 국어 독해력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왜? 논증 과정에서 논리적 비약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B교수의 비판대로 과연 알이랑 찬송가론에 논리의 비약이 있는지 서울대 입학을 목표로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똑똑한 고3 수험생들에게 확인 검증을 요청해 보았다. 필자의 저서를 정독한 학생들은 "논리가 정연하고 치밀해서" 알이랑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문장 이해력이 고3 수준만 되어도 논리 비약이라는 억지 주장은 안 할 것이다. 그러나 간혹 국어도 독해가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자들과는 대화가 안 되며 소통이 불가능하다.

이 정도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유석근 목사를 위험한 사상가로 교묘하게 날조하여 ‘이단’으로 조작한 인물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조금도 요동하지 않을 것이다.

알이랑이 찬송가인 이유

앞서 설명한 바처럼 아리랑의 어원은 ‘알이랑’으로서 그 의미는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이요”라는 뜻이고(with God, with God, with God, just God),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는 가사는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accompany with God, I will cross over the mountains).

그리고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는 가사에 나오는 그 ‘고개’란 우리의 먼 조상들이 대홍수 후 동방으로 천동(遷動)할 때 넘어 온 고개들 곧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유석근 목사가 소설을 쓴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알타이에서 왔다는 것은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더욱이 필자는 그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해주는 일종의 물증으로서 다음과 같은 ‘언어유물’도 제시했다:

“파미르고원을 지나(支那) 사람들은 총령(蔥嶺: 파총, 재령)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어 파(蔥) 마루(嶺) 그대로 파마루(파미르)이다. 지리학에서도 역시 파미르고원(蔥嶺)에서는 파(蔥)가 많이 야생한다고 한다.

파미르고원은 ‘파마루’로서 파(蔥)가 많이 자생하는 산마루(嶺)이기에 파마루(파머루) 고원인 것이다. ‘파미르’의 어원이 한국어 ‘파마루’이다.”

“한국인은 남자를 사내라고 한다. 사내는 ‘산아이’가 [산아이→사나이→사내]로 변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고대에 산지,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 동방으로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적 연관성은 한국인이 참으로 아득한 옛날 ‘파미르고원’을 넘고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을 넘어서 동방으로 이동해 왔음을 가르쳐 주는 하나의 고고학적 증거인 것이다. 그것은 ‘언어유물’로서 일종의 ‘물증’과 같다.

그렇다! 우리 배달겨레는 아득한 옛날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수많은 고개,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서 동방으로 왔다. 알타이산맥을 넘어 가면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진다. 시베리아는 만주 벌판이 연장된 땅으로서 우리 민족의 역사의 고향이다. 역사학자들은 한민족은 70% 이상이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내려온 북방계 아시아인이라고 말한다.

한국인은 고대에 알타이산맥과 바이칼 호수 주변의 시베리아에 넓게 퍼져 살면서 극동으로 이주해 왔다. 우리 한민족의 뿌리는 단군이며 그 정신적 고향은 북방, 특히 백두산과 바이칼(밝알)호에 있다.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이동해 온 북방계 아시아족이다.

우리 조상들은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공경했다. 그리하여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가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하나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쪽으로 쉬지 않고 이동하다가 마침내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에 도달하였다. 그리하여 유라시아 대륙 가운데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밝은 땅에 정착해 살게 된 백성이 우리 한국인이다.

그래서 우리 겨레가 사는 땅을 ‘밝달’이라고 했고, 이 밝은 땅에 사는 우리 겨레를 “밝달겨레”라 했다. “밝달겨레”의 이두문 음이 곧 “배달겨레”인 것이다. “밝달”과 “배달”을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밝달의 ‘달’은 땅(地)이란 말인데, 그것은 곧 양달(陽達)이 양지요, 응달(陰達)이 음지요, 빗달(傾斜地)이 비스듬한 땅인 것이다. 그런고로 “배달겨레”란 “밝은 땅에 사는 겨레”라는 뜻이다.

이렇게 우리 겨레는 밝고 환한 것을 지극히 선호하여 의복도 밝고 환한 흰옷을 입고 살아 온 백의민족인 것이다. 우리 겨레의 백의 착용의 동기와 백의 숭상의 유래는 무엇인가?

우리 민족의 흰옷 선호는 민족형성 과정에서부터 시작된 원초적인 것이다. 배달겨레는 민족사를 알이랑 곧 '하나님과 함께'라는 일신 신앙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밝고 환한 천국에 빛 가운데 계시는 빛의 근원이신 분이다.

고대 한국인은 천지만물의 주재자가 되시는 분이 빛 가운데 계시는 창조주 한알님(하나님)이시라고 알고 자기네들은 그 하나님의 자손 곧 '천손민족'이라고 믿었는데,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광명’을 표시하는 의미로 흰 빛을 신성하게 알아서 밝고 환한 흰옷을 자랑삼아 입다가 온 민족의 풍속을 이루고 만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다(요일 1:5). 그래서 하나님 백성인 우리 겨레는 빛의 옷인 흰옷을 즐겨 입은 '백의민족'인 것이며, 사는 땅도 빛이 시작되는 동방의 땅 끝 ‘밝달’에 자리 잡은 '배달민족'인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 흰 색은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가장 밝은 색이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이라 믿었던 우리 민족은 흰옷을 숭상해서 일상복은 물론이고 상복으로도 밝고 환한 흰옷을 널리 입었던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흰옷은 하늘백성의 표지이다(계 7:9,14; 계 19:7~8; 전 9:8). 지혜 있는 자는 열매로 나무를 알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아리랑’은 대홍수 후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섬기던 고대 한국인이 광명의 본원지(밝달)를 찾아 이 땅에 오기까지 수많은 산과 언덕과 고원들을 넘어 오면서 부른 ‘찬송가’였다고 해석했다. 즉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영아기 때의 집단적 체험을 간직하고 있는 민족의 역사노래인 동시에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아리랑의 비밀이다.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

=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이요

(with God, with God, with God)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

= 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

(accompany with God, I will cross over the mountains.)

‘아리랑’은 창조주 하나님을 숭배하던 우리네 조상들이 동방의 새 땅을 찿아 이동할 때 수많은 산과 언덕과 고원들을 넘어 가면서 부른 ‘찬송가’였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상실한 아리랑의 始原(시원)과 原意(원의)이다.

‘아리랑’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그토록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실로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로서 겨레의 역사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민족의 숨결이며 역사의 맥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리랑은 당연히 ‘세계무형인류문화유산’인 것이다.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만이 아닌 지구촌 문화유산이다. 아리랑은 7천만 한민족의 노래만이 아니라 70억 세계인이 함께 보존하고 같이 불러야 할 인류의 노래인 것이다. 아리랑은 현존하는 인류 最古의 찬송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리랑의 세계화에 힘써야 할 당위성 및 근본적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리랑이 찬송가라는 이러한 해석은 성경의 본질적 진리를 훼손했는가? 그래서 위험천만한 사상인가? 이단 수준인가? 양심 있는 목사와 성도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알이랑신학>의 핵심 주제인 ‘아리랑 찬송가론’은 시원한 답이 없던 아리랑의 근원과 원의에 관해 명확히 해답을 제시한 인문과학적 이론이다.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아리랑의 始原(시원)과 原意(원의)를 바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알이랑 찬송가론’을 ‘유해물질’과 같다고 매도한 목사가 있다. <알이랑신학>을 사설로 날조, 왜곡한 음해성 문서를 유포한 인물이다. 그렇게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을까. 알고 보니 돈키호테 같은 이런 위인들이 서너 명 더 있다.

기가 막힌다. 유해물질이라... 아리랑을 찬송가라 했으니 찬불가를 부르는 불교 승려라면 모를까 기독교 목사가 지나친 표현인 것 같다. 오, 가련한 자여! 유해물질은 그대가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제발 독서도 공부도 좀 더 하고 사고의 폭을 넓히기 바란다.

지금까지 18판이 리프린트된 필자의 저서 '알이랑민족'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성경으로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해석한 책이다. 이와 같은 연구는 기독교 토착화와 민족복음화를 위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실로 그것은 조로 현상을 보이며 성장이 멈춘 한국교회의 시급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성경의 본질적 진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복음을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어떻게 수용할지 연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독교가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많은 열매를 부단히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다. 여기에 실패하면 한국교회는 작금의 조로 현상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알이랑신학>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한국적 토착화 신학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서구신학만 카피해서 가르쳐야 하나? 예수원 설립자 대천덕 신부님(성공회)은 한국교회를 향해 이렇게 도전한 바 있다:

“우리가 선교사들에게서 전수받은 성경 해석은 서양의 입장에서 해석한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사람 자신의 내부로부터 우러나오는 복음과 한국과의 새로운 대결을 통해서만 기독교가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많은 열매를 내릴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볼 때이다. 오직 이런 대결을 통해서만 예배가 진정 한국인 자신의 예배가 될 것이며, 성경이 진정 한국인 자신의 성경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한국 문화와의 진지한 대화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한국의 참된 주체성을 발견하는 문제인 것이다.” (대천덕, 「대천덕 신부와의 대화」, 생명의 샘터, 1987, pp.71~72 ) (대천덕, 「우리와 하나님」, 도서출판 예수원, 1988, p.161)

<알이랑신학>은 대천덕 신부님의 지적에 잘 부합한다. 문화평론가 안준배 목사(기독교문화예술원장)는 <알이랑신학>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향후 한국교회의 두 가지 어젠다를 집약하면 기독교의 토착화를 통해 민족문화형성과 분단조국의 통일에의 접근이다. 유석근 목사의 저서 '알이랑민족'은 한국교회의 과제를 풀어주고 있다.

한민족이 살고 있는 지역마다 아리랑은 민족의 뿌리임을 증거 하는 바 ‘아리랑은 찬송가’라는 신학적 해석은 기독교가 가졌던 타종교에 대해 문화적 콤플렉스를 근원적으로 해소한 것이다.

더욱이 남북의 동질감형성의 주제가인 아리랑에 대한 신학적 성과는 통일신학을 배양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알이랑신학>을 사설로 매도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의 전통문화는 죄다 이교도적이고 악마적인 것이라는 그릇된 편견을 갖고 있다. 민요 아리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이다. 아리랑의 어원은 '알이랑'이며, 그 의미는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전혀 이교도적이지 않다. 오히려 '알이랑'은 기독교적이다.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신학인 <알이랑신학>의 핵심 사상이다.

서울신대 전 총장 강근환 박사(역사신학, 사진)는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회개운동의 하나”라는 소논문에서 토착화 신학의 필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우리는 기독교가 서양에서 발전한 종교이지만, 그 실질인 복음을 ‘서양문화적’ 형식과 동일시 할 수 없음에도 이를 절대화함으로서 선교가 일종의 ‘문화제국주의’로 전락해 버린 것을 비판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토착신학적’인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문화적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독교가 전해지기 이전의 한국문화를 온통 악마적인 것으로 또는 이교도적인 것으로 심판해버린 것은 확실히 자학행위요, 서구역사주의 신학에 세뇌된 자들의 오만한 태도이다. 그러기에 한국문화가 지니고 있는 일반 계시적 의미와 존재론적 자연신학의 가치를 인정하고 계시의 빛 가운데 이를 뚜렷이 밝혀 주어야 할 과제가 성립된다.

우리의 회개운동의 하나는 한국문화를 온통 악마적인 것으로 또는 이교도적인 것으로 매몰차게 심판하였던 지난날의 ‘왜곡된 회개’의 잘못을 바로 잡는 ”토착화 신학 지향적인 회개”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전통문화’에 대한 무비판적 배타성에 대한 성찰이 요청된다. 한국교회가 가져온 기독교 복음이 서구적 포장지에 싸인 채 들어와서 우리 문화까지를 서구화 시켜버린 현상을 치유해야 한다. 더 이상 우리 전통문화를 죄다 악마적인 것으로 정죄하지 말라!”

한국적 토착화 신학인 <알이랑신학>을 사설로 매도하는 일부 사고가 경직된 신학자들이 경청해야 할 충고이다. 서구 문화와 신학에는 박사 급의 지식이 있으나 우리의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해서는 무지몽매한 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니 평생 오직 서구신학만 카피해서 가르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이상 서구신학이 전부일 수는 없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계교회 앞에 한국의 신학을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 윤사무엘(미주장로회신학대학 교수, 올리벳신학교 총장) 박사는 최근 출간한 그의 저서 "한국교회와 신학"(쿰란출판사刊)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한국교회가 서구 기독교 선교를 받은 지 130년이 지났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계 앞에 한국적 신학을 내놓아야 한다.”

성민 코리아의 키워드 ‘알이랑’

앞서 고찰했듯이 아리랑의 어원은 ‘알이랑’이며 그 의미는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알이랑’은 “하나님중심사상”이며 “신본주의정신”이다. 이 숭고한 ‘알이랑 정신’이 바로 한국인의 ‘근본 사상’이요 ‘뿌리 정신’인 것이다. ‘알이랑’은 우리 한민족의 원형과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우리 겨레는 민족사를 ‘알이랑’ 즉 “하나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존귀한 백성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자신의 참 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마치 기억상실증 환자와 같은 상태에 있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필자가 단언컨대 한국 백성이 스스로를 자각하지 못하는 한 한국교회의 성장과 부흥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미 한국교회는 그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50여 년 전 강원도 태백의 오지에 예수원을 설립하고 일생을 기도와 말씀으로 한국교회를 섬기신 대천덕(Reuben Archer Torrey 3세 / 1918~2002) 신부(성공회)는 일찍이 이렇게 역설한 바 있다:

“교회의 우선적 과제가 그리스도를 한국에 소개하는데 있다는 것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한국의 진정한 사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세계무대에서 한국이 담당할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한 -다시 말해서 스스로를 자각하지 못하는 한- 그런 한국에 그리스도를 소개한다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내가 보기엔 한국은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흡사 기억상실증 환자와 같은 인상을 준다. 만일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한국 백성에게 공동의 선(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어떤 특별한 역할을 부여하셨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러니만큼 한국으로서의 가장 긴급한 과제는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일이다.” (대천덕, ‘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 「생명의 샘터」, 1987, 70쪽)

그렇다! 우리 겨레는 안타깝게도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집단적 기억상실증에 걸려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토레이 신부의 지적과 같이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민족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은 실로 긴급을 요하는 한국인의 최우선적 과제이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민족사를 ‘알이랑’ 곧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동방의 聖民 “알이랑민족”이다.

성경상으로는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가계가 알이랑민족 우리 한국인의 조상이다(창 10:21~30). 그들은 대홍수 후 가장 먼저 산악지대를 넘어서 동방의 새벌(스발, 새발)로 천동했다. 욕단이 아라비아 남단에 정착해 아랍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는 서구 주석가들의 이론은 틀린 것이다.

트리니티 칼리지의 구약학 교수인 고든 웬함(Gordon Wenham)은 창세기 10장30절을 해석하면서 욕단의 영토가 아리비아 남부에 위치한다는 대다수 주석가들의 견해는 "추측"으로서 확실한 것이 아니라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 “그들이”는 앞 구절에 논의된 욕단의 아들들 모두를 가리킨다. 불행하게도 이 구절은 대단히 모호하다. ‘메사’와 ‘스발’과 ‘동편 산’은 모두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 스발은 아라비아 남부의 차파르(saphar)라는 해안 도시일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첫머리의 치찰음 때문에 이 제안은 의심스럽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메사는 욕단족의 서쪽 경계를, 스발은 동쪽 경계를 나타내며 그 영토는 아라비아 남부에 위치한다고 추측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고든 웬함 지음, 박영호 옮김, 「WBC성경주석 창세기 상」, 서울: 솔로몬, 2006, p.425)

고든 웬함 박사가 바로 설명했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추측에 불과한 서구 신학의 낡은 이론을 더 이상 맹종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욕단의 가계는 아라비아 남부로 가지 않았다. 그들은 동양으로 천동(遷動)하여 우리 배달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어떤 새로운 이론에 반대를 표명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반론과 비평도 근거와 더불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아리랑의 어원이 ‘알이랑’이며, 그 뜻은 "하나님과 함께"라는 <알이랑신학>의 핵심 내용을 매도하는 일부 글들을 확인해보면 논박 없는 비평들뿐이다. 학문적 가치가 없는 편협한 주장인 것이다.

어떤 글은 유치할 정도로 작문 수준이 떨어지는 함량 미달의 글도 있다. 앞서 언급한 유해물질 운운한 음해성 날조 기사가 그런 문서다. 그렇게 엉성한 글을 반론이라고 작성해 포털사이트에 올리는 인물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돈키호테가 연상되는 이유다. 애석하게도 듣는 귀가 둔한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늘 견지하고 있다: “들을 귀 있는 자만 들어라!”

출처 : 새한일보(http://www.shilb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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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무형문화유산(無形文化遺産, 문화어: 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 영어: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CH)은 유네스코의 사업 중 하나이다. 유네스코 사업인 세계유산이 건축물 등 유형 문화재의 보호와 계승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반면, 민속, 전통 등 무형 (무형문화재)을 보호 대상으로 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아랑전설(阿娘傳說)은 억울하게 죽은 아랑이 원령이 되어 자신의 원한을 푼 뒤 변고가 없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아랑은 경상도 밀양부사의 딸로, 이름은 윤동옥(尹東玉)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유모에게서 자랐는데, 어느 날 밤 통인(通引)과 작당한 유모의 꼬임에 빠져 달구경을 나갔다. 통인 주기가 아랑을 겁간하려 했고, 아랑은 끝까지 항거하다가 끝내는 칼에 맞아 죽고, 대숲에 버려졌다. 부사는 아랑이 외간 남자와 내통하다 함께 달아난 것으로 알고 벼슬을 사직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밀양에 오는 신임 부사마다 부임하는 첫날 밤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되어 모두 그 자리를 꺼리게 되었다. 이때 이상사(李上舍)라는 담이 큰 사람이 밀양부사를 자원하여 왔다. 부임 첫날밤에 나타난 아랑의 원혼에게서 억울한 죽음을 들은 그는 원한을 풀어주기로 약속하였다. 이상사는 곧 주기를 잡아 처형하고 아랑의 주검을 찾아 장사를 지내주니 그 뒤로는 원혼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영남루 밑에는 아랑의 혼백에게 제사지낸 아랑각(阿娘閣)이 있고, 《밀양아리랑》도 이 영남루 비화(悲話)에서 발생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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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구전으로 전승되고 재창조되어 온 한국의 전통 민요.
요약문
아리랑은 구전으로 전승되고 재창조되어 온 한국의 전통 민요이다. ‘아리랑~’ 또는 ‘아라리~’ 및 이들의 변이를 여음(후렴 또는 앞소리)으로 지니고 있는 일군의 민요를 통칭하는 말이다. 정선·밀양·진도 아리랑을 3대 아리랑으로 부르지만 장단·박자·가사가 서로 다른 수많은 아리랑이 한국은 물론 우리 민족이 사는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다양한 가락과 넋두리 같은 2행시 표현 속에 사회와 시대의 변화를 증언하면서 주제사적인 문제까지 제기하는 아리랑은 한국의 문학사와 예술사에서 질기고 굵은 맥을 전승해오고 있는 유일무이한 사례이다.
개설
아리랑은 ‘아리랑……’ 또는 ‘아라리……’ 및 이들의 변이를 여음(후렴 또는 앞소리)으로 지니고 있는 일군(一群)의 민요로, 아리랑이라는 명칭은 이들 여음에서 비롯하고 있다.
아리랑은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널리 퍼져 있어서 이른바 「독립군아리랑」을 비롯하여 「연변아리랑」 등의 이름이 쓰이고 있을 정도이며, 멀리 소련의 카자흐스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의 아리랑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확인할 수 있는 가요들을 토대로 하여 주로 강원도 일대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정선아리랑」, 호남지역의 「진도아리랑」, 그리고 경상남도 일원의 「밀양아리랑」을 묶어서 삼대아리랑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이들 세 가지 아리랑이 각 지역 민요의 기본적 음악언어를 간직하고 있는, 지역 내의 자생적인 전통민요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경우, 이른바 「경기아리랑」 또는 「서울아리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특정인의 창의적인 윤색을 거쳐 인위적으로 변이되었다는 뜻에서 ‘신민요아리랑’으로 분류함으로써 삼대 ‘전통아리랑’과 구별된다.
역사
  1. 1. 지역적 분포
    「정선아리랑」은 원래 「아라리」로 일컬어지던 노래이다. 정선을 비롯해서 이웃 영월과 평창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아라리」는 이 지역의 민요적 음악언어를 가장 충실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태백산맥의 동서를 따라 길게 설정될 수 있는 이른바 메나리토리권에서 민요 「메나리」(또는 메노리)의 음악언어와 가장 밀착된 노래로 「정선아라리」가 평가될 때, 메나리야말로 가장 전통성 짙은 민요이면서 동시에 주어진 지역의 민요적 음악언어의 기층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메나리→어산영(경상도지역)→산아지(호남지방)의 연계를 고려한다면 「정선아라리」의 전통성은 보다 더 넓은 지역에 걸쳐 논란될 수 있을 것이다. 아리랑 가운데 「정선아라리」가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원도 영동·영서일대에서는 「정선아라리」 외에 「강원아리랑」 또는 「자진아리」로 일컬어지고 있는 또 다른 아리랑이 있다.
    「정선아라리」에 비해 훨씬 장단이 빠르고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라는 여음을 지닌 이 「자진아리」는 영서·인제 지방의 「뗏목아리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뗏목아리랑」이 그렇듯이 일노래로서의 쓰임새를 진하게 지니고 있다.
    학산과 같은 강릉 교외 일대에서는 논노래 또는 들노래로 쓰이고 있지만, ‘어루리’며 ‘아라성’이라는 특수한 여음을 지닌 횡성·원주·여주·이천 일대의 아리랑과 충주지역의 아리랑도 기본적으로는 이 「자진아리」에 속하여 있다고 보이는 들과 논의 일노래들이다. 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정선아라리」는 놀이노래라는 성격이 강하다.
    「정선아라리」에서는 엮음 아라리라는 특수한 형식의 아라리를 지적할 수 있다. 이것은 노랫말이 일반 아라리보다 훨씬 길어서, 노래의 첫머리에서 중간 정도까지 상당한 부분이 빠른 말투로 사설을 엮어가는 노래이다. 그래서 일반 아라리에 엮음 아라리를 대비시킬 경우, 평시조와 사설시조의 대비를 연상하게 된다.
    호남 일대는 국악학계에서 육자배기토리권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것은 이 지방 민요들이 육자배기를 기층적인 음악언어로 삼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지만 「진도아리랑」은 육자배기토리에 속하면서도 그 음악언어의 특색이 육자배기와는 다소간의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후대에 약간의 윤색이 가하여졌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진도아리랑」은 호남지역, 충청남도 일부, 경상남도 서부지역, 그리고 제주도 등지에 분포되어 있으나, 밀집 분포지역은 진도이다.
    한편 정자소리토리권인 영남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밀양아리랑」의 경우에도 그 음악언어의 특성이 정자소리의 음악언어에 대하여 다소간의 차이를 보여 주고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밀양아리랑」의 분포는 밀양을 중심으로 하여 경상남도 동북지방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어 다른 두 지역 아리랑에 비하여 그 분포가 비교적 제한되어 있는 셈이다.
  1. 2. 역사와 변화
    정선과 진도 그리고 밀양 등 3대 아리랑을 전통민요 아리랑으로 잡을 경우 그 가운데서도 「정선아리랑」은 메나리조의 밀착성이 짙어, 주어진 지역 민요의 음악적 문법의 기층성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그것은 「정선아리랑」이 민요적 지역성과 전통성을 으뜸으로 간직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달리 말하면 「정선아리랑」은 짙은 민요적 원형성을 간직하고 있다.
    오늘날 정선의 현지 주민들에게서 그 기원이 고려 말에까지 소급될 것으로 믿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아리랑의 정통을 이은 계승자로서의 긍지를 실감할 수가 있다. 그들은 아리랑의 남상이 그들의 생활공간인 태백산맥의 중허리일 것으로 믿고 있다.
    「정선아리랑」이 지닌 민요적 원형성과 그리고 현지 주민의 믿음 및 그 전승태도 등을 묶어서 생각할 때 아리랑을 산간의 ‘흙의 노래’로서 비교적 쉽게 규정지을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흙의 노래’는 ① 지역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토착성이 강할 것, ② 지역적인 일상생활성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을 것, ③ 민간 전승다운 전통성을 지니고 있을 것, ④ 주어진 지역사람들의 보편성이 큰 노래 또는 소리일 것 등, 네 가지 속성을 갖추고 있음을 뜻하고 있다.
    그러나 네 속성을 통틀어서 단일한 명제를 엮어낸다면, 오래 전부터 전하여진 것으로 믿고 지역주민 대다수가 그들의 지역 내 일상생활을 실어서 노래하고 있는 소리가 곧 ‘흙의 소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흙의 소리’로서 아리랑은 그 기층구조가 메나리나 정자소리와 마찬가지로 밭과 논, 그리고 물이며 산에서 부른 ‘일노래’라는 성격을 갖추고 있다. 이 경우 산과 들을 통틀어서 흙이라는 말로 포괄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흙의 소리인 아리랑은 산과 들·밭에서 부르는, 혹은 집안에서 부르는 ‘놀이노래’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흙의 소리’로서 아리랑은 애원성·탄성(嘆聲) 등이 실린 개인적인 소리라는 속성을 강하게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소박한 주관적인 서정이 흙의 소리로서 아리랑이 지녔던 시정신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신세타령과 팔자한탄 등이 우세한 넋두리나 푸념에 견줌직한 소리였다고 생각된다. 그런가 하면 개인생활 주변 일상성의 묘사를 ‘흙의 소리’로서 아리랑이 갖추었을 또 다른 속성으로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랑의 기원설과 전설들은 대원군의 경복궁 공사와 관련된 아리랑에서 말하여 주고 있다. 『매천야록 梅泉野錄』에 고종이 궁중에서 아리랑을 즐겼다고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원군·고종 때 당시 서울에도 이미 아리랑이 전해져 있었음을 헤아릴 수 있다.
    경복궁 공사를 위한 징용의 가혹함과 이 공사 경비조달을 위한 가렴주구가 아리랑에 얽혀서 전해지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대한제국 말기의 가혹한 정치와 사회현상을 타고 아리랑은 ‘흙의 소리’에서 ‘역사와 사회의 소리’로 탈바꿈해 나갈 결정적 단서 내지 동기를 잡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것은 대원군 시대를 계기로 해서 비로소 아리랑이 역사성·사회성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아리랑의 기원을 고려 말 유신들의 망국의 한에서 찾고 있는 아리랑의 기원설 내지 전설이, 이미 아리랑이 원천적으로 지니고 있을 역사·사회성에 대하여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의 흙다움과 역사·사회다움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비중의 우세를 지적할 때 제기될 수 있는 개념들이다. 그것은 아리랑이 원천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역사·사회성이 대원군 시대와 같이 역사적 충격을 받아 상대적으로 흙다움보다 훨씬 목소리를 높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아리랑이 사회화하고 역사화하는 제2의 충격은 일제의 침략에 의하여 촉발된 것이라고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표현이 나운규(羅雲奎)가 제작한 영화 「아리랑」이었다고 더불어 가정해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아리랑의 사회화와 역사화는 8·15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중첩되어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아리랑의 자체 변화는 민간전승이 역사적 변화에 적응한 결과라고만 설명될 이상의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민간전승이 민간전승으로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 갔음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민간전승이 민간전승의 테두리를 떠나 다른 문화영역으로 옮겨 갔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농어촌 전통사회의 민간전승에서 좁게는 도시 민간전승, 넓게는 사회 민간전승으로 탈바꿈해간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다른 민간전승에서 그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이 경우, 사회 민간전승이란 동시대의 한국사회 전체가 공유한 민간전승임을 뜻한다.
    그런 한편, 아리랑은 그 사회화와 역사화를 통하여 대중문화·상업소비문화, 그리고 창조적인 예술문화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간 것이다.
    이 같이 ‘흙의 소리’ 아리랑이 역사화·사회화해 간 사실은 제2차세계대전을 전후해서, 이른바 제3세계들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난 민족주의적 문화운동으로서 일어난 민요운동과 동궤의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도 한 것이다.
  1. 3. 신민요아리랑의 파장
    아리랑은 앞서 언급한 삼대 전통 아리랑이 그 원류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에서 비롯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경기아리랑」 또는 「서울아리랑」은 신아리랑 또는 신민요아리랑이 잇따라 발생할 수 있는 동기 구실을 다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아리랑 또는 신민요아리랑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대중가요화한 아리랑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민요아리랑 또는 전통아리랑으로 하여금 새로운 시대, 말하자면 상업시대 및 산업사회의 대중들의 노래로서 살아남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가령 「아리랑삼천리」(박시춘 곡)를 효시로 삼아서, 일제강점기에 창작된 다섯 편 가량의 대중가요 아리랑에서 오늘날의 「영암아리랑」(하춘화 노래)에 이르기까지 ‘대중가요 아리랑’의 맥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노래로서 아리랑은 전통민요→신민요→대중가요의 길을 걸어갔으며, 한편 ‘가곡 아리랑’의 흐름도 있다. 노래로서 아리랑은 그만큼 다양한 장르들을 포괄하게 된 것이다.
    신민요아리랑의 효시라고 보아도 무관한 「경기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라는 노랫말로 유명하지만, 음악언어의 원류는 대체로 「정선아라리」에서 찾을 수 있다.
    1930년대 이후 숱한 신민요아리랑이 잇따라 창작되었을 때, 「경기아리랑」은 달리 「본조아리랑」으로도 호칭되었거니와 그것은 「경기아리랑」이 신민요아리랑의 본조, 곧 본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경기아리랑」 이 외의 나머지 신민요아리랑들은 「별조아리랑」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삼대 아리랑을 중심으로 일어난 아리랑의 물살은 시대의 차이, 갈래의 차이를 넘어서서 우리의 근대사회에 널리 또는 깊게 파장을 미쳐간 것이지만, 「종두(種痘)아리랑」이나 「한글아리랑」으로 이름지을 만한 특수한 아리랑의 파생을 보기도 하였던 것이다.
    「종두아리랑」은 천연두 예방주사를 널리 보급시키기 위하여, 「한글아리랑」은 문명퇴치교육의 보급을 위하여 각기 창안된 것들이다.
    이들 두 가지 보기들은 아리랑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창조되기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독립군아리랑」이라는 또 다른 보기와 함께 이들은 아리랑이 민요의 텃밭인 민간전승 밖으로 벗어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가령, 이와 같은 아리랑의 탈민요 내지 탈민간전승을 크게 보아 아리랑의 원심력 방향 확산이라고 부르게 된다면,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중가요화나 가곡화도 그 같은 확산의 일례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리랑의 탈민간전승운동이 굳이 한 방향, 한 범주로 묶여서 제약받을 수는 없다. 가령 상업화하는 경향, 예술(문학·음악 등)사에 편입되는 성향, 실용성 높게 사회화하는 경향 등을 지적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립군아리랑」의 경우는, 가령 그것이 집단적 의지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자체 내에서 창작되어 집단의식의 독자성을 강하게 향유하고 있었다면, 전통민속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민속으로 평가하여도 좋을 것이다.
    원심적 확산의 다양화는 민요아리랑의 사회화 내지 역사화로 표현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아리랑이 원형 지향적 전통성(구심성) 이외에, 시대변화에 적응하는 높은 정도의 가변성을 향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심성과 원심성의 극대화된 사례를 다른 전통민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지적한다면, 다른 민요와 상대적으로 아리랑이 가지게 되는 개성이 그만큼 크게 두드러져 보이게 될 것이다.
    결국 신민요아리랑의 파장은 급기야 천파만파를 불러 일으켜,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또 다른 파장이 일어나게 한 것이다.
아리랑의 어원 및 구조
  1. 1. 여러가지 후렴과 그 어원론
    여음의 대표적 어휘인 ‘아리랑’의 어원에 대해서는 ‘아리랑(我離郎)’을 비롯해서 신라의 ‘알영비(閼英妃)’, 밀양 전설의 인물인 ‘아랑(阿娘)’ 등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의미 없는 사설(nonsence verse)로 흥을 돕고 음조를 메워 나가는 구실을 할 뿐이다.
    즉, 아리랑의 여음은 여러 가지이며 그 쓰임새 또한 다양하다. 노래의 머리에서 앞소리 또는 내드름소리로 쓰이는가 하면, 노래의 꼬리에서 뒷소리 또는 받음소리로도 쓰이고 있다. 또는 앞사람의 노랫말이 끝난 뒤, 다른 사람이 그 뒤를 이어 다른 노랫말로 넘겨받는 넘김소리로도 쓰인다.
    쓰임새의 다양성은 당연히 여음이 노랫말에서 차지할 자리의 다양성에 대하여 말해 주는 것이다. 다른 민요의 여음은 대체로 일정한 마디(節) 구성을 지니고 있고, 또 그 쓰임새며 노랫말에서 차지하게 될 자리가 일정하다. 그러나 아리랑의 경우 여음은 다른 면의 다양성과 더불어 마디 구성상의 다양성을 아주 특이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정선)
    아리 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낫네. 아리랑 어절시구 날 넘겨 주소. (밀양)
    아리 당다중 쓰리 당다중 아라리가 낫네. 아리랑 어절시구 잘 넘어간다. (밀양)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낫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낫네. (진도)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강원도)
    아라리요 아라리요 아리랑 어헐사 아라성아. (여주)
    이와 같이 다양한 여음은 ‘아·이’, ‘아이·으이’, ‘ㄹ·ㅇ’, ‘ㄹ·ㅅ’ 등의 대립적 내지 대조적 음운교체의 엮어짐이 주류를 이루고 있거니와, 그것은 그와 같은 대립·대조적 음운교체가 한국인의 시적(詩的)인 ‘쾌감있는 음상(音相)’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아리랑이 지닌 지배적 정서에 호응하는 것이라고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아리랑 여음의 어원론적 설명은 그 같은 음운들의 엮어짐이 뜻이 있는 실사(實辭)로 간주됨으로써 다양하게 시도되어 왔고, 또 그 시도에 따라 이설이 분분한 아리랑 기원론이 제시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가령, ‘我離郎’·‘啞而聾’·‘我難離’ 같은 보기는 아리랑의 여러 가지 여음을 각기 실사로 보고 한자로 옮겨놓은 것들이다.
    여음 해설을 계기로 삼은 여러 가지 아리랑 기원론은 아리랑이라는 전승 자체 및 일부 노래말에 얽혀서 전하여져 있는 전설(설명 전설)과 함께, 크게 본 아리랑 전승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즉 아리랑 전승은 아리랑이 노래말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래말이 주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축을 세워서 각종 기원론과 전설도 의젓한 아리랑 전승의 일부를 이룩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기원론은 진지한 노력이나 부분적인 상당한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민간어원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원론의 언어학적인 타당성과는 별도로 정서론 내지 주제론적인 타당성은 상당한 정도로 함유하고 있다.
    그것은 크게는 어원설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감정이 투사된 결과이기는 하지만, 아리랑 전승 내부에 몸과 삶을 담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경험론적인 실감이 거기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의 기원설은 대체로 보아 아리랑을 오랜 역사적 유래를 가진 노래로, 그러면서 아리랑을 비창감이 진하게 서린 노래로 부각시키려는 두 가지 경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전자를 아리랑 기원설의 역사주의, 후자는 비창지향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있으나 그 두 가지 경향성을 함께 고려할 때 아리랑 기원설에는 민족의 역사성 짙은 상흔이 간직되어 있다고 말하여도 좋을 것이다.
    그것을 아리랑 기원론이 간직하고 있는 민족의 역사적 원상의식(原傷意識)이라고 바꾸어 말하여도 무방할 듯하다. 아리랑을 푸념·넋두리라고 부를 수 있을 때 아리랑이 역사적 원상을 풀어나가는 양식상의 특색에 대하여 말하게 된다.
    아울러, 서러움·애달픔·원한을 말하게 되며 아리랑이 지닌 역사적 원상이 불러일으킬 감정 및 정조를 지적하는 것이 되며, 애원성이라고 하게 되면 역사적 원상의 노래인 아리랑이 지닌 소리로서의 특색을 지적하는 것이 될 것이다.
  1. 2. 시형식과 수사
    아리랑의 시형식은 기본적으로 2행시, 곧 두 줄 시라고 볼 수 있으며, 가장 간결한 시형식이다. 따라서 아리랑의 시형식은 민요형식의 단순성 매력을 갖추고 있다. 이 경우 여음은 따로 계산하고 뜻 있는 실사로 엮어진 시행만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두 줄 시로서 한 줄이 대체로 3∼5음보 정도로 엮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모두 10음보를 넘지 않는 짧고 간결한 시형식을 갖추고 있다. 당연히 예상되는 중문과 복문 이 외에 단문으로만 된 두 줄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 아리랑의 단순성은 더욱 강조될 수 있을 것이다.
    두 줄 시는 「캐지량」이나 「강강술래」의 한 줄 시에 비하면 양식의 안정도 크다는 장점을 지니게 된다. 그런가 하면 세 줄 시와 네 줄 시에 견주어서 기억하기 좋고 즉흥성을 가미하기 쉽다는 양식상의 특색을 지적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민요 두 줄 시는 속담이나 속신 등 이른바 ‘민중의 신념’ 또는 ‘민중의 판단’이라고 총칭할 수 있는 ‘문장 구술 전승’과 한 범주에 들거나 아니면 서로 이웃할 수 있는 서술형식상의 속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팥 심은 데 팥나고 콩심은 데 콩난다.”고 하는 속담이나 “아침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오고 저녁 까치가 울면 사람이 죽는다.” 라는 속신 따위는 아리랑의 두 줄 구성과 구별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속신과 속담은 ‘민간 수사’라고 부를 만한 것의 최소 단위이다. 사물을 인지하고 판단하고 하는 데 쓰일 수 있는 민간 수사의 가장 작은 단위이다. 아리랑의 두 줄 구성은 실제로 민간 수사를 총망라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 점이 아리랑이 지닌 형식상 또는 수사상의 큰 장점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아리랑의 배후에 속신과 속담 등에 견줄 수 있는 민간 수사가 있다고 하는 것은 아리랑이 각종 민간 수사의 보고임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리랑은 그 양식이 단순하여 강한 암기성과 즉흥성을 촉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음과 함께, 속담이나 속신에 견줄 수 있는 민간 수사의 보고라는 사실이 어울려서 무수한 아리랑 노래말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노래말의 문체적 원천 내지 동기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아리랑 노래말이 오늘날 많게는 한 지방의 경우 400∼500가지가 보고되어 있다. 그러나 노래말의 가짓수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요는 그렇게 다양하게 계속 지어지고 있는 바탕, 큰 시문법이나 초구조가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리랑의 두 줄 구성에서 대구법이 가장 우세한 것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그것을 ‘대구적 두 줄 구성’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대구는 대조와 대비의 대구로 크게 양분될 수 있다. 두 가지 사물 또는 존재의 차이가 상대적으로 강조된 것이 대조의 대구법이라면, 이와는 달리 큰 것들 사이의 공질성이 강조된 것이 대비의 대구법이다.
    “앞남산의 실안개는 산허리를 감고요 정든님 두 팔은 내허리를 감는다.”가 전자의 보기라면, “오릉촉단(吳綾蜀緞) 능라조(綾羅調)로 날 감지 말고 대장부 긴긴팔로 날 감아 주게.”는 후자의 보기로 알맞을 것이다.
    두 가지 노랫말에서 다 같이 ‘임에 의한 허리감기’는 사람이 충족된 상태를 뜻하고 있다. 이미 충족되어 있는 사람은 ‘임에 의한 허리감기’와 동형동질의 것을 찾아 짝을 맞추고 있고, 이와는 달리 충족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동행이질의 것을 찾아서 짝맞추기를 하고 있음을 쉽게 찾아낼 수가 있다.
    이것을 아리랑의 짝맞추기, 정확하게는 아리랑 두 줄 대구의 짝맞추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짝맞추기에 의해 아리랑은 ‘도시(부)·농어촌(가난)’, 사회계층과 신분계층의 ‘위·아래’, ‘가짐·안 가짐’, ‘밝음·어둠’, ‘잘남·못남’ 등 종횡무진으로 노래부르는 것이다. 그 짝 맞추기에 따라 아리랑은 때로는 밝은 양지의 노래가 되고 때로는 어두운 음지의 노래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짝맞추기 대구법을 기본으로 삼고, 거기에 반복법·말놀음·쌍소리·문답법·독백체 등이 간간이 활용되면서 무수한 변이를 낳게 되고, 오늘날 3,000여 가지가 넘는 노래말이 수집, 보고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 결과 아리랑은 한국인이 말할 수 있는 온갖 말투와 말씨를 총동원한 소리의 소리, 노래의 노래가 될 수 있었다.
  1. 3. 장단과 가락
    민요·신민요 유행가에 ‘아리랑’이라는 제목이 붙거나 뒷소리에 아리랑이라는 말이 붙는 노래는 매우 많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에 널리 불리는 민요 가운데 아리랑은 「강원도아리랑」·「정선아리랑」·「밀양아리랑」·「진도아리랑」이라 할 수 있으며, 「서울긴아리랑」·「남도긴아리랑」·「해주아리랑」은 부르는 일이 극히 드물다. 「어랑타령(신고산타령)」·「긴아리」·「자진아리」는 오늘날 아리랑으로 꼽지 않고 있다.
    「강원도아리랑」은 강원도 영동지방에서 모내기소리로 불려지는 아라리에서 나온 것으로 강원도자진아라리이다. 이 아리랑은 8분의 10박자로 엇모리장단에 맞으며 엇모리 4장단에 메기고, 엇모리 4장단에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하고 뒷소리를 받는다.
    선율은 구성음이 미·솔·라·도·레로 되어 있고, 미나 라로 종지하며 미는 작게 떨고 레에서 도로 꺾는 목을 쓰는 메나리토리로 되어 있다. 「강원도아리랑」은 소박하고 구슬픈 느낌을 주어 서울에서 불리는 것보다 강원도 영동지방에서 불리는 것이 훨씬 향토적인 맛이 난다.
    「정선아리랑」은 강원도 영서지방에서 모내기소리로 불려지는 강원도 긴아라리를, 촘촘히 엮어 엮음 아라리로 불려지던 것이 세상에 퍼진 것이다.
    메기는 소리는 자유리듬으로 촘촘히 노랫말을 엮어가다가 세마치 8장단으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소.”하고 받는다.
    선율은 메나리토리로 되어 있다. 엮지 않는 것은 매우 처량한 느낌을 주며 엮는 것은 노랫말을 빠르게 촘촘히 엮어나가며 감정을 고조시키다가 끝에 높은 소리로 길게 질러내어 감정을 퍼버리며 뒷소리로 느리게 흐느끼는 느낌을 준다.
    아리랑은 세상에서 가장 널리 불리던 것으로 서울의 「구조아리랑」에서 나온 것이며, 장단은 세마치로 되어 있으나 흔히 4분의 3박자로 불러 신민요의 리듬으로 부른다. 세마치 8장단을 메기고 8장단을 받는다. 선율은 구성음이 솔·라·도·레·미로 되어 있고 솔이나 도로 마치는 경토리로 되어 있으며, 유창하고 명랑한 느낌을 준다.
    조선 말기에 성창하던 「구조아리랑」은 이 아리랑과 장단과 토리가 같으며 곡조가 약간 다를 뿐이다. 「긴아리랑」은 「구조아리랑」과 장단과 토리는 같으나 훨씬 느리고 곡조가 약간 변동되어 있다. 「아롱타령」은 장단과 토리는 「구조아리랑」과 같지만 곡조가 높은 음역에서 부르도록 바뀌어 있다.
    「밀양아리랑」은 서울의 「아롱타령」에서 파생된 것이다. 장단은 8분의 9박자 세마치 장단으로 되어 있고 8장단을 메기며 8장단을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에 아리랑 어헐시구 아라리가 났네.” 하고 뒷소리를 받는다. 선율은 경토리와 메나리토리가 뒤섞여 있으며, 매우 경쾌하고 씩씩한 느낌을 준다.
    「진도아리랑」은 「남도긴아리랑」을 변창한 것이다. 8분의 9박자 세마치장단으로 되어 있으며, 8장단을 메기고 8장단을 뒷소리로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하고 받는다.
    선율은 구성음이 미·라·시·도로 되어 있고 라로 마치며 미에서 세게 떨고, 도에서 시로 꺾고 레보다 낮은 음에서 도·시로 흘러내리는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있다. 이 아리랑은 구슬프고 구성진 느낌을 준다. 「남도긴아리랑」은 서울 「구조아리랑」을 육자배기토리로 바꾼 것으로 장단은 세마치장단으로 되어 있다.
  1. 4. 다양성과 초역사성
    아리랑은 말할 것도 없이 일차적으로 전통민요이다. 따라서 구술과 암기에 의한 전승, 자연적 습득 등과 같은 민속성 외에 지역공동체집단의 소산이라는 민속성을 가지게 되고, 그 집단성은 시대성과 사회성을 내포하게 된다.
    “쓰라린 가슴을 움켜 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 간다.”, “감발을 하고서 백두산 넘어 북간도 벌판을 헤매인다.”, “이천만 동포야 어데 있느냐 삼천리 강산만 살아 있네.”, “지금은 압록강 건너는 유랑객이요 삼천리 강산도 잃었구나.”, “36년간 피지 못하던 무궁화꽃은 을유년 8월 15일에 만발하였네.”, “사발그릇 깨어지면 두세 쪽이 나는데 삼팔선이 깨어지면 한덩어리로 뭉친다.”
    이와 같이 몇 가지의 노랫말을 나열해 놓는 것만으로도 「아리랑」이 근세의 민족사를 반영하고 있음이 일목에 드러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뗏목꾼은 뗏목꾼대로, 광부들은 광부들대로, 심메마니는 또 그들대로 각기 그들 생활의 애환의 순간순간을 아리랑에 담고 있다. 직업공동체나 사회공동체의 문화적 독자성이 강하게 아리랑에 담기게 되는 것이다. 민족이 위기에 처한 시대에 아리랑은 민족적 동질성을 지탱하는 소리였다.
    아리랑은 거시적으로 민족의 독자성에 이바지하였으나, 그보다 좀 작은 규모의 지역공동체이며 이익공동체의 독자성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이다.
    그런 뜻에서 아리랑은 분명히 공동체의 휘장(徽章) 내지 민중의 휘장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럴 경우 애원성(哀願聲)이나 한탄의 소리인가 하면, 항거요 비판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체념의 하소연인가 하면 강한 삶의 의지의 표백이었고, 모가 난 말싸움인가 하면 익살떨기의 넉살부림이기도 하였다. 구시렁거리는 불만인가 하면 지독한 악담이요 욕이요 쌍소리이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집단과 민중의 휘장이라고 하지만, 아리랑은 이 같은 다양한 목청과 소리투로 그 휘장을 노래한 것이다. 그러나 아리랑은 바로 그것이 지녔던 집단 내지 민중의 휘장이라는 성격으로 말미암아 사회문화인 민요운동을 우리 민요사에서 유일하게 도맡을 수 있었던 것이다.
    흙의 민속성에서 사회와 역사의 민속성을 향하여 아리랑은 자신을 확대할 것이다. 아리랑이 근대사를 살게 된 한국인의 사랑을 받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리랑의 집단성은 앞소리와 뒷소리, 매김소리와 받음소리 등으로 나뉘어 부르는 형식에도 곧잘 드러나 있다. 한데 어울려 일하고 놀이하는 사람들이 그 소리의 가름을 따라 제창이나 윤창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리랑에서 그 집단성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옳은 일이 못 된다. 그것은 동시에 매우 강한 개인성을 갖추고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주관성 높은 감정을 자연스럽게 토로하는 서정시이면서 원한과 아픔을 풀이하는 넋두리나 푸념이기도 하였다.
    유사 대화체나 독백체가 이 속성을 강하게 뒷받침할 수 있었다. 아리랑은 ‘떼소리’ 또는 ‘무리소리’이면서도 ‘혼자소리’이기도 하다.
    절로 한숨 짓듯이, 더운 숨결을 토하듯이, 혹은 매인 중치를 터놓듯이 혼자소리로 부르는 것이 아리랑이다. 소리꾼은 그 혼자소리로 삶을 달래고 애간장을 삭이면서 목숨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혼자 소리 아리랑은 삭임의 소리, 푸는 소리 구실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집단성과 개인성은 아리랑이 지닌 또 다른 원심력과 구심력이지만, 그 양면성을 갖추고 있는 데에, 아리랑이 지닌 복합성을 읽게 되는 단서의 하나를 얻게 된다.
    아리랑은 결코 단일한 장르의 민요가 아니다. 아리랑은 그 다양한 복합성 때문에 역사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는 강한 적응력을 향유할 수 있었다. 그냥 단순히 과거의 화석으로 전해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근대의 흐름 속에서 그때그때 새로이 새 삶을 얻으며 살아남은 것이다.
    한국의 문학사와 예술사에서 단일한 민요의 소재를 들자면 아리랑만큼 질기고 굵은 맥을 지켜온 보기를 구할 수 없다. 그것도 사회와 시대의 변화를 증언하면서 주제사적인 문제까지 더불어 제기하는 소재사의 맥을 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일의 한국의 시대, 그리고 사회에서 아리랑의 소재사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언하기는 힘들다. 다만 소재사의 맥이 더욱 굵어지고 더욱 길게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참고문헌
  • 「한국 음악민요의 유형적 고찰」(김진균,『동서문화』 4,계명대학교 동서문화연구소,1970)

  • 아리랑  (김연갑 편, 현대문예사, 1986)

  • 아리랑역사여 겨레여 소리여  (김열규, 조선일보사, 1987)

  • 「아리랑에 관한 음악적 고찰」(이보형,『민학회보』 15,1987)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아리랑)]

정의

2003년 제32회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 제2조에서는 "무형문화유산은 관습, 묘사, 표현, 지식 및 기술 및 이와 관련된 기구, 물품, 가공품 및 문화 공간이며, 사회 집단 및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이 자기의 문화 유산의 일부로 인정

동 협약에서는 무형문화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향상시키기 위해 유네스코에 설치된 무형 문화 유산 보호에 관한 정부 간 위원회에 의해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을 작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제16조). 또한 조약 채택 전에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Masterpieces of the Oral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으로 선언된 것은 표에 기재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제3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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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 1:1
태초하나님천지창조하시니라.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엩 핫솨마임 웨엩 하아레츠


태초에(בְּרֵאשִׁית - 베레쉬트)

‘베레쉬트’는 '베'와 ‘레쉬트’의 합성어이다.
'베'는 명사들과 결합하여 그 명사와 관련된 특정한 때를 가리키는 불분리 전치사로서 영어의 ‘IN’에 해당한다.
그리고 레쉬트는 '근원'(2:10), '머리'(3:15), '꼭대기'(왕상 18:42) 등의 의미를 가진 어근 '로쉬'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시작'(10:10),
'근본'(시 111:10),
‘으뜸’(욥 40: 19) 등의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베’ 와 ‘레쉬트’의 합성어인 ‘베레쉬트’는 직역하면 시간이 막 흐르기 시작한,
시간의 시작인 '시초에'라는 뜻이며 인간 역사의 시작을 의미한다. 

'태초에'는 시간의 시작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주 공간 자체와 우주 만물의 구성 재료가 될 모든 기본 물질들을
'무'에서 '유'로 한 순간에 생겨나게 하신 ‘때’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요한복음 1:1에도 '태초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헬라어 '엔 아르케'를 번역한 말로 '영원부터'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1:1의 '태초에'인 '엔 아르케'는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의 영원한 때를 가리킨다.
창세기 1:1의  '태초에'인 '베레쉬트'는 시간이 시작되었던 때, 즉 영원과 시간의 시작이 접촉되는 때를 가리킨다.   

따라서 두 단어 모두 한글로는 '태초에'로 번역되었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근본적인 의미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태초에'는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개시함으로 시작된 '역사적 시간의 출발점'을 가리킨다.
이는 창세기가 영원 전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주 및 인류가 탄생하는 시점으로부터 시작되는 역사에 관한 서술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이(אֱלֹהִים - 엘로힘)

'태초에'는 천지가 언제 창조되었는지를 밝힌 것
'하나님'은 천지를 누가 창조하였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엘로힘은 ‘권세 있다’, ‘강하다’란 뜻을 가진 '울'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권세 있고 힘 있는 뛰어난'이란 뜻을 가진 '엘로아흐'의 복수형이다.
즉, 엘로힘은 '두려워해야 할 강하고 능력있는 자', '경외해야 할 최고의 존재'라는 의미이다. 

'여호와'란 명칭이 '언약을 지키시는 자', '택한 백성을 구속하는 자'란 의미로 쓰였다면(출 6:3),
'엘로힘'이란 명칭은 성경에서 주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강조할 때 쓰였다(출 20:1; 신 6:4; 삼하 22:32).

한편 일부 학자는 '엘로힘'이 '엘로아흐'의 복수형인 점을 들어 이를 다신론적 사상의 반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비록 형태는 복수형이나 실질적으로는 단수로 사용되었다.
왜냐하면 이 '엘로힘' 뒤에 나오는 '창조하시니라'란 동사가 단수 형태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엘로힘'으로 표현한 것은 삼위이시나 일체이신 하나님의 존재 양식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다(26절).
그리고 존귀하거나 장엄한 것을 표현할 때 복수형을 쓰는 히브리인의 독특한 관습에 따라 이를 장엄의 복수형으로도 볼 수 있다.

천지를(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 엩 핫솨마임 웨엩 하아레츠)

창조의 대상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힌다.
히브리어 '엩'는 우리말 '~을', '~를'이고 '핫솨마임'은 복수로 '그 하늘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에 해당하는 접속사 '웨'와 '엩'가 결합하여 '웨엩'가 되었고 '하아레츠'는 '그 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문장을 직역하면 '그 하늘들을 그리고 그 땅을'이다.

하늘이 복수형으로 표기된 것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하늘 개념이 반영된 것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늘을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우리 눈에 보이는 공중인 첫째 하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을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해, 달, 별 등이 붙어 있는 궁창(Firmament)과 그 위에 보관된 엄청난 양의 물로 구성된 둘째 하늘
그 너머의 순수한 영적 존재들인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현현을 매일 보며 거하는 셋째 하늘.

이렇게 히브리인들은 하늘이 모두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늘을 표현할 때에 복수로 표현했다. 

'땅’을 표현하는 ‘아레츠’도 하늘과 대조된 의미에서의 ‘온 땅’ 곧 우리들이 발붙이고 사는 이 '지구' 뿐만 아니라
넓게는 땅 아래의 ‘지하 세계(the Underworld)’까지 가리킨다. 

천지를 만드셨다는 뜻은 문자적으로 하늘과 땅만 만드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만드셨다는 의미이다.
성경에는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시 113:3),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삼하 17 :11) 등과 같이 양 극단을 사용하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 양극단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셨다는 표현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히브리인들의 하늘 개념(그랜드종합주석 p.194)

창조하시니라(בָּרָא - 바라)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에'는 '언제(when)'를, '하나님이'는 '누가(who)' 를, ‘천지를’은 ‘무엇(what)'을, 끝으로 ‘창조하시니라’는 ‘어떻게(how)'를 보여 준다. 

‘창조하시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는 ‘바라’인데 이 단어의 어원은 불명확하다.
그러나 용례상 대략 '자르다(cut)', '새기다 (carve)' 그리고 '낳다' 또는 '출생하다(bear or be born)', 그리고 '먹다(eat)', '양육하다(bring up)', '살이 오르다(get weight)' 등의 뜻으로 쓰였다.

그런데 이 '바라'가 '만들다', '지어 내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오직 하나님과만 관련되어 쓰였다.
그리하여 그 이전과는 자르듯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시고 또 있게 하시는 하나님만의 절대 주권적 행위를 나타낸다(신 4:32; 시 89:12; 사 43:1; 렘 31:22).
따라서 '바라'는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일을, 이전의  그 어떤 것과도 상관없이 새로이 있게 하는 절대적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활동은 그분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기인한 단독 사역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 능력은 제한적이거나 부차적이지 않고 완전한 무에서 유에로의 창조를 가능케 하는 새롭고 신비한 성격의 것이다. 또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인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으로서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말씀으로 만드셨다(시33:6-9; 렘10:12).

절대적 창조 행위는 만물을 초월하여 자존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인 우리 인간도 우리의 능력을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있으나 그것은 과거와의 연속성 안에서,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해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라'는 '만들다', '지어내다'라는 뜻으로 구약에서 총 44회 쓰였는데, 이 때에는 오직 ‘하나님’을 가리키는 단어와만 짝을 이루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 창조 행위를 가리키고 있다.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하시니라' 곧 '바라'는 무에서 유로 광대한 우주 공간은 물론 그 안의 천하 만물을 구성할 재료가 될 모든 기본 물질들을 동시에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의 절대적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



미국 공휴일 및 축제(할로윈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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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평 원룸 크기 공간서 300명 깔려... 사망자 여기서 다 나왔다

폭 3.2m 좁은 내리막길 골목
넘어지며 수백명 6~7겹 쌓여

20대 이모씨는 “사람들 사이에 뒤엉킨 채 모르는 사람 손을 붙잡고 ‘우리 살아 나가자’라고 말하며 30분을 버텼다”면서 “신고를 할 수도 없을 만큼 팔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 계속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다”고 했다.
또 다른 이모(25)씨도 “바로 옆에서 몸집이 작고 숨 쉬기가 어렵다며 우는 20대 초반 여성을 봤고, 실신하는 외국인 여성도 있었다”고 했다.

김모(28)씨는 “나는 키가 크니까 숨을 쉴 수 있었는데 키가 작은 여성들은 가슴 부분이 끼어서 숨쉬기가 더 힘들어 보였다”면서 ”끼어 있어서 손을 못 쓰니까 숨 막혀 죽을까 봐 서로 옆 사람의 마스크를 내려주기도 했다.
숨을 쉬려면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해야 되는데 그럴 공간조차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김모(27)씨도 “양옆으로 기절한 사람이 너무 많았고 밀지 말라 소리를 마구 질렀는데도 사람이 많아서 전달도 잘 안 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오후 11시쯤 인파를 뚫고 현장에 간신히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깔린 사람들을 꺼내며 구조를 시작했다.
하지만 30분 이상 사람들 아래 눌렸던 피해자들은 대부분 의식이 없거나 숨진 상태였던 경우가 많았다.
오후 11시 30분쯤부터는 이태원역 주변 길가에서 구급대원과 경찰, 시민 등 수십명이 길 위에 쓰러진 사람들을 눕혀두고 심폐소생술(CPR)을 하기 시작했다.
모포나 비닐 등으로 얼굴을 가린 시신들이 길가에 놓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30일 오전 1시쯤 열린 소방 브리핑에서 집계된 피해자 수는 사망 2명, 부상 22명으로 총 24명이었다.
그러나 1시간쯤 뒤인 2시 15분 브리핑에서는 사망이 59명으로 늘었다.
부상자도 150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30분 뒤쯤에 열린 브리핑에서는 사망자가 120명으로 늘었고 부상이 100명에 달했다.
오전 4시엔 사망자가 146명, 부상자가 150명으로 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피해자를 구조하고 사망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 오래 걸렸고,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람 중 적지 않은 수가 사망한 탓이었다.

“선 채로 당한 희생자 많다” 증언들... 전문가들이 추정한 사인은

“호흡은 갈비뼈 사이 근육과 횡경막의 ‘흉곽 운동’
그 공간 확보 안 되면 질식… 서나 앉으나 무관”
”인파에 휩쓸렸다면 가장 자리로 가 기둥 잡고 버텨야”

29일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상당수는 선 채로 압사(壓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은 소방당국을 인용, “희생자들이 밟혀서 압사당한 게 아니라 서 있는 상태에서 짓눌려 압사당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에도 “선 채로 실신한 사람이 있었다”는 현장 목격담이 올라왔다. 실제로 한 인터넷 방송 운영자가 참사 발생 당시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올린 영상에서는, 한 여성이 선 상태 그대로 사방에서 밀려드는 압력에 고통받으며 비명을 지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힘을 잃은 듯 늘어지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29                                     TV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압사 사고가 벌어질 당시 현장 상황을 생중계한 영상의 한 장면. 사람들이 사방에서 밀려드는 압력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오른쪽 맨 아래 모자이크 처리된 여성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른 뒤, 맥이 빠진 모습으로 더는 말이 없었다. /아프리카TV

네티즌들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도 나왔다. 일반적으로 압사를 생각할 때 ‘넘어져 깔린 상황’을 떠올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선 채로 압사당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30일 조선닷컴 통화에서 “사망자 상당수는 ‘압착성 질식사’로 추정되며, 이는 서 있거나 쓰러져 있거나 등 자세와는 무관하게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갈비뼈와 갈비뼈 사이 근육과 횡경막을 움직여서 호흡을 하는데, 이번 사고 희생자들은 선채 사방에서 밀려든 강력한 압력으로 흉곽운동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숨졌을 것이란 추정이었다.

서 원장은 “물론 부검을 해보기 전엔 단언하기 어렵다. 바닥에 깔린 상태로 충격이 가해져 심장 등 장기 파열이 일어났을 수도 있고, 목뼈가 부러지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다”며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 미뤄봤을 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인은 압착성 질식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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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대규모 압사사고가 벌어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턴호텔 뒷골목의 모습. /뉴스1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비슷한 해석을 내놨다. 공 교수는 “서서 껴있는 채로도 압박을 강하게 받을 수 있고, 압사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은 최소한 자신의 몸무게의 1.5배 이상 압력이 외부에서 가해졌다는 의미인데, 이번 사고에선 좁은 골목에 한꺼번에 수백명 사람이 몰리면서 그 압력이 급증했다”며 “선채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상황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 인증을 통해 운영되는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도 ‘의사’로 인증한 인물이 비슷한 글을 올렸다. 그는 “압사의 주된 사망 원인은 장기파열도 아니고 혈복강도 아닌 단순 호흡부전”이라며 “호흡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호흡근이 이기지 못할 압력으로 눌리면 숨을 못쉬어서 질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하성 교수는 “가장자리가 그래도 하중이 제일 적은 편이기 때문에 인파에 휩쓸리면 가장자리로 빨리 이동해야 한다”며 “가장자리에 도착했다면 거기서 간판, 벽을 붙잡고 버티는 게 좋다”고 했다.

공 교수는 이어 “넘어지면 그야말로 최악”이라며 “만약 넘어졌다면 빨리 몸을 동그랗게 웅크려 머리와 가슴, 몸을 보호하면서 숨 쉴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원 사망자 또 늘어 153명... 부상자는 133명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일대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로 인한 사망자가 30일 153명으로 늘어났다.

30                     153   24  79   1031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에 한 시민이 꽃을 놓고 있다. 이태원 압사사고로 발생한 인명피해는 이날 오후 현재 사망 153명이었다.
부상자는 중상 24명, 경상 79명 등으로 총 103명이다./뉴스1

행정안전부와 소방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인한 사망자가 153명으로 집계됐다.
앞서 오전 10시에 발표한 사망자 수(151명)보다 2명이 늘었다.
부상자는 중상 37명, 경상 96명 등으로 총 133명이다.

외국인 사망자는 20명, 부상자는 15명으로 외국인 사상자는 총 35명으로 집계됐다.
외국인 사망자의 구체적인 국적으로는 중국과 이란,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10월 29일 할로윈 데이 축제를 맞아 서울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

이태원과 관련된
슬프고 아픈 역사에 관한 글을 공유합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더 이상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염원하며,
국민 모두 애도와 함께 자숙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___________

[슬픈 이태원의 유래]

'이태원'은 한자로 '梨泰院'이라 씁니다.

이태원의 이름은  한자만 3번 변했습니다.
조선 초에는 '오얏나무 李'를 써서  '李泰院'
→임진왜란 이후에 '異胎院'
→효종 이후에는 '梨泰院'으로
글자와 의미가 변합니다.

원래 이태원은 서울을 벗어나 처음 만나는
원(院)이었습니다.

서쪽의 홍제원.
동쪽의 보제원.
남쪽의 이태원과 인덕원은
서울 부근의 중요한 첫번째 원이었습니다.

이태원은 지금의 용산고등학교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태원의 역사를 살피다 보면
슬픈 이 땅의 역사가 떠오릅니다.

슬픈 역사하면
역시나 조선 시대의 '양대 칠푼이'
선조와 인조가 등장합니다.

아시다시피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카(소서행장)와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 부대는
경쟁적으로 진격하여
가토 기요마사 부대는 남대문으로
유키나카부대는 동대문으로 입성합니다.

그 결과 이들이 처음 통과한 문이라는
상징성을 바탕으로 조선총독부는
남대문과 동대문을 조선고적 1.2호로 지정했습니다.
결국 이 문들은
오늘날 대한민국 국보 1호와 보물 1호가 되었습니다.
(이런 아픈역사가 있음에도 불에 타버려
졸속 복구한 남대문을 국보 1호라고
전 세계에 자랑하는 나라 꼴이나,
한술 더 떠서 궤변으로 그를 합리화시키는
일부 학자들을 보면 한심스럽습니다.)

한양에 들어온 '가등청정'은
이태원에 주둔을 합니다.

주둔 중에 '가등청정과 부대'는
여자들을 겁탈하기 시작하는데,
대분분의 여자들은 피난을 가버린 상황이라
그 대상은 피난을 가지 못한 여자와
이태원 황학골에 있는 '운정사'의 비구니들이
주대상이었습니다.

천주교 신자이자 반전론자인
상인 출신의 소서행장과
불교신자이자 주전론자인
장수 출신의 가등청정은
일본에서부터 라이벌이었는데,
오히려 불교신자인 가등청정은
여승들을 겁탈하고
운정사까지 불살라 버립니다.
(가등청정 이 놈은 불국사도 불질러 버린 놈입니다.)

문제는 이 비구니들과 여인들이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게 됩니다.

절이 사라진 상태에서
비구니들의 아이들과
왜놈에게 겁탈당한 부녀자 등이 애를 낳고
기를 보육원을 지어 정착케 하였는데,
당시 왜병들의 피가 많이 섞인 곳이라하여
이태원(異胎圓=다른 민족의 태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임진왜란이 끝나자
일본에 잡혀갔다 돌아온 조선여자와  
왜란 중에 성폭행을 당한 여성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합니다.

선조는 이에 이들과 그 자식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포로나 귀화한 일본인들을 한 곳에 몰아서
일종의 이방인 공동체 지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곳이 이태원입니다
<출처 : 임하필기(林下筆記) 동국여지비고>

여기에 칠푼이 2호인 인조까지 가세하게 됩니다.
병자호란에 끌려갔던 여인과 그 자식들까지
상당수가 결국은 이곳으로 들어옵니다.

이후,
북벌을 준비하던 효종은 지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곳을 배나무가 많은 곳이라는 이름의 梨泰院이라
고쳐 부르게 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습니다.

이태원은 우리 역사에서
오랜 기간 '이방인의 땅'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조선시대부터 용산 일대는 군사 관련 시설이 많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 군용지로 이용되면서
조선 주둔 일본군 사령부가 이곳에 머문 이후
이태원은 군사지역으로서 본격적인 정체성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임오군란을 진압하러 조선에 온 청나라 부대는
1882∼1984년 이태원에 주둔했고,
이후 일본군 조선사령부가 1910∼1945년에
주둔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근대식 마을이 본격적으로 형성됩니다.

광복 이후엔 미군이 이곳을 차지했습니다.
6.25전쟁이 끝나고 나서 이태원 상권은
사실상 미군이 주도했습니다.

1957년 미군의 외박과 외출이 허용되면서
기지촌까지 생겨났습니다.
1970년대 미군기지에서 나온 물품들로
상권이 형성된 이태원은
이후 미군을 위한 유흥가로 거듭나
기지촌과 미국식 클럽이 우후죽순 들어섰습니다.

한편으로 정부는 이태원 미군기지 중심으로
서빙고동, 한남동, 동부이촌동 일대에
외국인 전용주택과 아파트는
물론 고급 외국인 주택단지까지 건설합니다.

그러자 1960년대 이후
한국에 들어온 각국의 대사관이
이태원 지역에 대거 입주했고,
그 영향으로 197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고급주택단지도 조성됐습니다

이태원은 1990년대 이후
아프리카인의 유입이 늘면서
현재는 판잣집과 대저택이 공존하는
독특한 경관을 연출합니다

기지촌 단속으로 퇴폐업소가 사라지면서
경리단길과 더블어
한국 속의 외국으로 변화하는 '이태원'

웬지 가까와지지 않는
이방인의 느낌이 드는 도심지 이태원.

그 바탕에는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WSJ “아이들이 사탕 얻는 핼러윈, 한국선 클럽 가는 날 됐다”

각국 외신이 29일 밤 발생한 이태원 압사 사고를 집중 조명 중인 가운데, 한국 내 핼러윈 문화가 변질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현지 시각)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벌어진 참사를 자세히 전한 뒤 “한국에서 핼러윈은 아이들이 사탕을 얻으러가는 날이 아니다”라며 “최근 몇 년 간 20대를 중심으로 코스튬을 차려입고 클럽에 가는 행사로 정착됐다”고 전했다.

이어 “이태원 지역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한미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세계 각국 요리를 선보이는 바, 클럽, 레스토랑이 즐비한 장소”라며 “사고 전 서울 중심부에 있는 이곳에 약 10만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다”고 했다.

또 “영업시간 제한과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코로나 관련 규제가 해제된 이후 첫 핼러윈이라는 점 때문에 참여율이 더 높았다”며 “한국의 핼러윈 악몽은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로 전 세계에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축제로 잘 알려진 핼러윈은 고대 켈트족이 새해(11월 1일)에 치르는 사윈(Samhain) 축제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켈트족은 이날 사후 세계 경계가 흐릿해지며 악마나 망령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다고 여겼으며, 사자의 혼을 달래고자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을 내놨다.
망령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분장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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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Halloween)의 정체 / 10월 31일

글을 시작하면서

매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의 날이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Martin Luther, 1484~1546년) 1517년에 독일 비텐베르크대학 교회의 정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인 것으로 시작으로 종교개혁의 불길이 일어난 날이다.
그러므로 이날은 우리 기독교의 역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날이다.
교회에서는 종교개혁자들의 발자취와 역사적 의미를 설교하며 개혁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의 날이기보다는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로 더 많이 알려졌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는 데 있다. 즉 이날이 되면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 축제로 세상 사람들은 즐기며 지낸다.
그런데 문제는 이날에 일부 교인들마저도 함께 즐기려고 동참한다는 슬픈 소식이 들려지기 때문이다.
귀신 분장을 하며, 호박 등을 들고 마법 모자를 쓰고 아이들이 유치원 등에서 이 귀신의 축제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 자녀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물론 영적인 무지 때문일 수도 있으나 그러한 무지에 대해 깨우쳐주지 않는 영적인 지도자들의 책임도 있을 것이라는 자책을 하면서 할로윈에 대한 정체를 알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이 글을 시작한다.

할로윈(Halloween) 용어의 의미

멕시코의 전통명절 중 대표적인 것이 매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지키는 ‘죽은 자들의 날’이란 것이 있다.
명절 중에 11월 1일‘어린 영혼을 위한 날’이고 2일 ‘어른 영혼을 위한 날’이라 한다.

이 이간에 이 나라 사람들은 집 안에 특별한 제단을 꾸며 죽은 자들을 위한 선물을 올려놓는다.
또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준비과정으로 무덤을 꽃과 선물로 장식한다.
이러한 축제는 죽은 자들이 이승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머문다는 내세관에서 출발하였다.

떠난 이들의 영혼을 기리는 행사로 수 세기 동안 지속되면서 멕시코의 전통 축제로 자리매김한 이 기간에 칼라베라(calavera)라고 불리는 설탕으로 만들어진 해골 모양의 장식을 준비한다.
이것은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이마에는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는다.
이러한 명절에 먹는 음식으로는 ‘죽은 자의 빵(pan de muerto)’초콜릿 음료가 대표적이며, 설탕으로 만든 색색깔의 해골 과자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멕시코에서의 ‘죽은 자의 날’이란 귀신과 연관된 날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할로윈 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여기에 쓰이는 할로윈(Halloween)이란 단어를 풀어서 쓸 때 첫 단어인 hallow는 고대 앵글로색슨족의 언어로 성인을 뜻한다.
여기에 전야제를 뜻하는 even과 만나 hallow’s even 혹은 hallow’s evening으로 쓰고 있으며, 문자적으로 보면 ‘거룩한 전야’라는 뜻이다. 그리고 정확한 뜻은 만성절 전야제이다.

이것이 한국의 종교용어로 ‘만성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로 10월 31일은 모든 성인 대축일 전날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이승으로 돌아오는 시기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할로윈(Halloween)이란 ‘모든 성인 대축일 전야제(All Hallows’ Day evening)’의 줄임말이다.

할로윈(Halloween)의 유래

할로윈데이의 기원은 대체로 켈트족의 이교도 풍습과 로마카톨릭 전통의 성인 대축일 전야제가 결합된 혼합 문화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 유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환락과 유희의 밤’으로 변화된 오늘날의 할로윈은 아일랜드 켈트족의 ‘삼하인’이라 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졌다.
삼하인은 죽음의 제왕인 샤먼을 섬기는 신성한 의식이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성인(聖人)의 날 하루 전날인 10월의 마지막 밤을 여기저기에서 온갖 요정들이 세상으로 나오는 날이라고 생각했으며, 인간이 ‘영(靈)의 세계’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날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실상 할로윈 데이는 귀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됐다.
기원전 500년경 영국과 아일랜드, 프랑스 북서부 지방에 살던 켈트족은 죽은 영혼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귀신 복장을 하고 집안을 차갑게 만들었다.
이들은 열 달을 1년으로 하는 달력을 사용해서 11월 1일은 한 해의 시작이자 겨울이 시작되는 첫날이었다.
당시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던 10월 31일은 저승의 문이 열려 죽은 자의 영혼과 악마들이 이승을 올라와 자신이 머무를 다른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 날이라고 믿었다.
이렇게 할로윈은 고대 브리튼과 아일랜드에 거주했던 켈트족의 문화에서 유래했다.
켈트족은 한 해에 네 번 축제를 열었다.
매년 10월 31일에 열리는 ‘삼하인(Samhain) 축제’가 그중 하나다.
켈트족은 이 축제 때 동물의 머리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어 분장을 했고, 동물이나 곡식, 사람을 제물로 바쳐 불에 태웠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삼하인 축제는 로마카톨릭교회가 아일랜드에 전파된 후 6세기 무렵에 로마카톨릭교회에 흡수되었다.
835년경 교황 그레고리오 4세는 모든 성인 대축일을 5월 13일에서 11월 1일로 정식 변경했다.
이후 할로윈은 모든 성인 대축일 전날에 치르는 축제로 굳어졌다.
이렇게 로마카톨릭교회에서 11월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위령성월’로 전통적인 삼하인 축제와도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모든 성인 대축일 다음 날인 11월 2일은 ‘위령의 날’로 죽은 이들을 기리며 연옥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이후 1840년대의 대기근을 피해 온 아일랜드계 이주민에 의해서 할로윈은 미국에 전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현재의 할로윈 문화가 정착한 것은 20세기 초반부터다. 이전까지는 미국으로 이주한 소수의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출신 이민자들이 벌이는 작은 행사에 불과했다.
1930년대 이후부터는 아이들이 분장하고 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과 과자를 얻는 풍습도 자리 잡았다.
이렇게 19세기 중반부터 아일랜드 출신의 이민자가 급증하자 전통 축제인 할로윈도 미국 내에서 빠르게 퍼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축제가 되어 있다.
이러한 할로윈은 미국 땅에 상륙하여 맘몬(돈의 신)과 결탁한다.
그 이후 할로윈 의상 등 각종 할로윈 상품과 막대한 양의 주류 판매 등으로 거대상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할로윈 문화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할로윈(Halloween)의 정체

할로윈(Halloween)은 이교적인 풍습이다.

할로윈 데이는 켈트족의 이교도 풍습과 함께 다신교 문화였던 로마를 한 번에 기독교 문화로 바꾸기가 힘들어 점진적인 변화를 위해 로마카톨릭교회에서 채용한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전히 그 축제 속에는 성경적 근거보다는 다신교적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 따라서 성경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할로윈 축제는 비성경적이다.
더 나아가 반기독교적인 축제일 뿐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경계하고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할로윈(Halloween)은 사탄적인 문화이다.

할로윈의 정점은 바로 귀신 의상을 입고, 귀신 놀이를 하는 것이다.
마귀상, 귀신상, 도깨비 상, 해골상 등 의상으로 변장해서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Trick or treats” 놀이를 한다.
이러한 “트릭 올 트릿”(Trick or Treat!)은 켈트족들이 죽은 조상 영혼들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방황하며 가을 수확물에 대해 장난(trick)을 일삼으며 저주를 가져다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저승으로 평안히 보내기 위해서는 술, 음식, 수확한 곡식 등으로 달래주는 일(treat)이 필요한데 이런 의식을 일 년에 한 번 행하는 미신적이고 사탄적인 행위이다.

이렇게 10월 31일에 할로윈(Halloween)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기괴한 가면 등의 복장을 하고 있다.
무서운 이빨을 드러낸 모습의 호박 등을 켜고 동네를 누비며 사람을 놀라게 한다.
캔디 구걸 또는 구입을 해 나눠 먹는 관습도 있다.
더 기분을 내느라 아주 섬뜩한(spooky) 장면, 또는 흉갓집(haunted house) 놀이, 공포영화(horror movies) 따위를 즐기기도 한다.
이러한 할로윈은 켈트족의 이교도 풍습이 결합된 사탄적인 것으로 문화라는 광명의 옷을 입고 살며시 사람들에게 스며들고 있다.

옛날 켈트족의 지도자로 동물 희생의 제사장으로 있다가 예수를 믿게 된 탐 생귀네트(Tom Sanguinet)라는 사람은 「할로윈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Halloween) 이라는 책에서 “할로윈은 사탄이 마음 놓고 활보하는,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날”이라고 하였다.

김명도는 할로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할로윈은 어두움과 사단의 소산이다.
어린애들이 재미를 보는 흥겨운 민속놀이가 아닌가?
그게 뭐 그리 대단한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겉으로는 어린애들이 놀이를 즐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영적으로 애들은 사단의 노예로서 ‘사단 놀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이는 크리스천으로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할로윈(Halloween)은 인신 제사와 관련되어 있다.

할로윈(Halloween)의 기원은 인신(人身) 제사를 지냈던 유럽의 고대 켈트족이 지켜온 이교적 풍습에서 유래한다.
당시 켈트족은 폭력적이고 야만성이 있어서 희생 제사를 바칠 때 사람까지 번제로 바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종교집단이던 드루이드교를 신봉하던 드루이드파들은 검은 옷과 검은 두건 차림으로 횃불을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강제로 처녀를 공양받아 사람의 모양으로 지은 목조건물에 가두어두고 불태워 삼하인(Samhain)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켈트족들은 마법에 걸린 사후의 인간 영혼은 드루이드가 섬기는 신(神)인 삼하인(Samhain)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삼하인은 인간의 죽음과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죽음의 신이었기에 사람들은 당연히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므로 이때 드루이드파들은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처녀를) 바칠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라고 묻고는 처녀를 바치지 않는 마을 전체를 불태워버리는 등 대단히 폭력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켈트족은 정령을 숭배하는 드루이드교를 신봉하였던 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무덤 속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영혼들이 복수하기 위해서 돌아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신 제사를 지냄으로써, 악령으로부터 화를 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할로윈의 상징은 ‘잭-오-랜턴(Jack-o’Lantern)’으로 불리는 ‘호박 등’이다. 큰 호박의 속을 도려낸 뒤 도깨비 얼굴을 새기고, 그 속에 양초를 켜서 도깨비 눈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호박 등이 바로 ‘잭-오-랜턴’이다. 전설에 의하면 술 잘 먹고, 교활한 잭이라는 사람이 마귀를 속여 골탕 먹인 뒤 죽었다. 앙심을 품은 마귀에 의해 잭의 영혼은 천국도 지옥도 가지 못하고, 아일랜드의 추운 날씨 속에서 암흑 속을 방황하게 되었다. 결국, 추위에 지친 잭은 마귀에게 사정하여 숯을 얻었고,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호박 속을 파내고 이 숯을 넣어 랜턴을 만들었다. 이것이 할로윈을 상징하는 ‘잭-오-랜턴’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신(人身) 제사를 지내던 고대 이교도의 풍습에 의하면, 이 호박 등에 넣는 기름의 원료는 제물로 희생된 처녀의 몸에서 짜낸 기름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할로윈 때 아이들이 사탕을 얻어내기 위해서 집집마다 떼지어 돌아다니며 외치는 소리도,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화를 당할 것이야!”라고 협박하던 고대의 인신제사 풍습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한다.

할로윈(Halloween)에 대한 비판적 견해와 제언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일이다.
이러한 종교개혁일 전인 전야제 행사가 공개적으로 사탄을 찬양하고, 악령들을 초청하는 날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필자에게는 매우 당혹감이 들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할로윈이 기독교 문화로 포장되어 퍼져감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 입장에서 보면 분명 로마카톨릭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종교개혁 기념일인 10월 31일에 귀신과 악마, 좀비 등이 출몰하는 ‘할로윈 데이’는 기독교인들이 즐기기 매우 곤란한 기념일이다.

그런데도 할로윈(Halloween)은 미국이나 한국에서 점점 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할로윈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기독교인들이 할로윈을 하나의 문화로 생각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여기에는 할로윈이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다 보니 거기에서 어떤 해로운 것도 보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할로윈은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니다. 기독교인 시각에서 보면 분명 할로윈(Halloween)은 사탄을 찬양하는 행사이다. 그러므로 멀쩡한 사람들이 마귀로 분장하여 사탄과 놀아나는 것은 철저하게 배격해야 할 사탄문화임을 인식하고 대처해야 한다.

이렇게 문화라는 이유만으로 귀신 분장과 혐오스러운 도구, 소품 등을 활용해 행사를 즐기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악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일에 불과하거나 사탄을 좋게 만드는 행위이다.

할로윈(Halloween) 데이는 죽음의 영혼들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귀신 놀이, 사탄 놀이하는 것은 영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여기에 아이들에게 사탕을 안 주면 이 집을 그냥 두지 않겠다는 보복성, 폭력적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이것은 재미, 흥미의 놀이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욕심을 불러일으키고, 협박에 대한 보상 심리의 쾌감을 얻게 하는 것도 교육적으로 바르지 않다고 정준모는 지적하고 있다.

사탄교 창시자인 안톤 라비(Anton LaVey)는 “나는 크리스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적어도 1년에 한 번 사탄을 숭배하도록 허락한 것에 대해 기뻐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예수의 복음을 영접하기 전 사탄교의 고위 성직자였던 존 라미레즈(John Ramirez)는 할로윈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탄을 숭배하는데 발 빠르게 움직인다. 왜냐하면 그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우리는 할로윈 복장을 하며 얼굴에 색칠하고, 심지어 교회까지도 할로윈을 축하하기 위해 호박으로 교회 정문을 장식한다. 이런 행동은 마치 ‘내 교회가 여기 있다. 네가 가져도 좋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존 라미레즈(John Ramirez)는 계속해서 “우리는 사탄의식을 행한다거나 인간 희생의 의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할로윈 복장을 하는 순간 사탄이 당신을 소유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당신의 법적 권리를 사탄에게 양도하고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이 사탄의 휴일을 축하하는 것이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할로윈 복장을 허락함으로써 당신의 아이들을 영적인 희생물로 바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할로윈의 가장 큰 위험은 어린이들에게 사탄, 귀신, 그리고 여러 악한 생각을 친구처럼 만들어 버린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재미로 즐기는 동안 어린이들은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을 혼동하게 한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어린이들은 ‘재미’가 선악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재미가 있으면 모든 것이 용납되고 재미가 없으면 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따라서 부모들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선과 악을 분명히 구별하도록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고 있다.

또한 정준모는 이러한 할로윈의 정체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 할로윈은 일종의 우상 숭배이다.

* 할로윈은 다른 신을 인정하고 혹은 섬기는 행위이다.

* 할로윈은 결국 귀신을 좋게 하고 섬기는 일이다.

* 할로윈은 사탄을 일종 사탄을 섬기는 일이다.

또한 정준모는 할로윈에 대한 성경적 비판과 올바른 방향을 위해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 있다.

* 할로윈은 유일신 하나님만을 숭배하는 성경적 진리와 어긋난다. 십계명에 하나님 외 다른 신을 섬기지도 말고, 어떤 형상과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 절대 신앙을 가진 성도로서 할로윈을 지내는 것을 문화적 행사나 놀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영성은 바로 귀신을 섬기고 숭상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 할로윈은 이교적 문화이다. 귀신, 사탄, 우상 숭배의 문화이다. 상업주의, 세속화의 영향이다. 흥미를 유발하는 놀이 행사, 문화 행사가 아니다. 순전한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귀신, 사탄, 해골 흉내를 내는 것은 심각한 영적인 문제요, 교육적 문제이다. 이러한 날을 기점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대안적 문화 계발과 행사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앙을 교육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 할로윈 이교 문화에 대하여 수용하고 관용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일종의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교문화와 기독교 진리와 문화는 마치 석가모니 출생을 기념하기 위해 목사나 신부가 가서 합장하고 축하하는 행위와 같다.

* 이스라엘 민족이 패망한 역사적 현장을 볼 때, 그들은 아침에는 하나님을 찾고 저녁에는 바알과 아세라를 찾는 혼합주의 신앙행태에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문화라는 탈, 어린아이들의 놀이라는 포용성 때문에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하나님 절대 신앙에 흠결이 생겨서는 안 된다.

* 어떤 한인 교회나 미국 교회에서는 10월 31일 ‘할로윈’(Halloween)을 이날을 ‘홀리윈’(Holyween), ‘추수제’(Harvest Festival), ‘할렐루야 나이트’(Hallelujah Night)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 가족 중심의 행사로 방향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도 신앙적 반사 효과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할로윈 날에 교회에서 그런 행사를 시도하는 자체가 그날을 인정하는 의미도 있다.

* 이스라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쉐마교육을 하였듯이, 이날에 가정에서 혹은 교회에서 특별히 휠로윈의 허구성과 거짓 우상에 대한 성경적 진리를 가르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다.

이제 여호수아는 출애굽 이후 가나안에 입성한 백성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통하여 분명한 선택을 하라고 경고하였다.

(수24:15)“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10월 31일에 대하여 분명히 결단해야 한다. 이날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의 날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날을 귀신과 사탄의 날로 즐기는 할로윈 데이로 지낼 것이 아니다. 중세시대 타락한 로마카톨릭교회의 부패로부터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일어난 종교개혁의 날로 알고 지내야 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할로윈을 맞아 즐기며 논다고 해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종교개혁의 날을 뒤로하고 할로윈을 향해 달려간다면 그것은 사탄이 좋아하는 우상을 섬기는 행태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할로윈은 영적인 싸움에 대상이다. 이에 바울 사도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엡6:11-13)“(11)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참고문헌

“망자(死者)의 빵”(Pan de muerto - 멕시코 전통명절 “죽은 자들의 날”에 먹는 빵), https://blog.naver.com/myatomgogo/100061017995

“멕시코 죽은 자들의 날”, https://blog.naver.com/ending-note/222029333114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는 사탄의 날이다.”, http://cafe.daum.net/jrcalvin/LOIV/59

“할로윈, 그리고 모든 성인의 날 만성절”, https://altisimo.tistory.com/54

“할로윈데이 Halloween Day”, http://cafe.daum.net/kcmc91/Pkb8/1163

김명도, “기독교인과 할로윈(Halloween)”, http://cafe.naver.com/solideogloriafaith/1459

김성훈, “할로윈(할로윈)의 정체”, https://cafe.daum.net/kcmc91/Qi6n/60

다음백과, “할로윈 축제”,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42XXXXX00067

다음백과, “할로윈”,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4h3121a

박혜정, “할로윈데이, 크리스천들에게도 ‘축제’일까?”, 「데일리굿뉴스」, 2018. 10. 25.

안석문, “할로윈”, http://cafe.daum.net/kcmc91/Pkb8/1171

우혜란, “할로윈(Halloween) 축제 - 한 수상한 외래 풍속의 한국 정착기”, http://cafe.daum.net/kcmc91/Pkb8/1158

이대웅, “할로윈 데이와 기독교 신앙: Trick or Treat?”, 「크리스천투데이」, 2019. 10. 31.

장길남, “전 사탄숭배자 “크리스천들의 할로윈 축하에 충격”,「뉴스앤넷」, 2017. 10. 7에서 재인용.

정민식, “할로윈(Halloween)을 넘어 ‘할로 윈’(Hallow Win)으로!”, 「기독신문」, 2019. 11. 4.

정준모, “할로윈의 귀신적 세계관 경계해야”, 「뉴스파워」, 2020. 10. 19.

조수경, “그리스도인이 보는 할로윈(Halloween)”, 2008. 10. 26. http://cafe.daum.net/kcmc91/Pkb8/1215

초산나, “할로윈은 마귀 축제 철저하게 배격하라”, http://cafe.daum.net/ilmak/5OwK/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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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날(Columbus Day)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92년 8월 3일 항해를 시작해 같은 해 10월 12일에 현재의 바하마 제도(諸島)에 있는 산살바도르섬(추정)에 도착함으로써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딛었다. 미국중앙아메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이 날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날이라 하여 매년 10월 12일을 콜럼버스의 날로 정해 기념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10월의 두 번째 월요일을 국경일로 지정해 신대륙 미국의 건국과 번영에 헌신한 이탈리아계(系) 미국인들의 공헌에 감사하고, 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행사를 한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일부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래 150년 동안 1억 명에 달하던 원주민들이 300만 명으로 줄어들었는데, 이 모두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상륙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콜럼버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학살을 촉발한 침략자이지 존경할 만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 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바꾸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1]

미국의 기념일

콜럼버스의 날은 1906년콜로라도주의 공식 휴일이었으며 1934년에 연방 휴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식민지 시대부터 기념일로 여겼다.
1792년 뉴욕을 비롯한 미국내 다른 도시에서는 콜럼버스아메리카대륙 상륙 이후 300주년 기념을 자축했다. 1892년 벤자민 해리슨 대통령은 시민들에게 콜럼버스의 날 400주년 기념일을 축하하도록 강조했다.
400주년 기념일에 교사, 성직자, 시인, 정치가들은 콜럼버스의 날 기념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애국적 행사는 국가에 대한 충성, 시민권 행사, 사회 발전 축하 등을 위한 방향으로 많이 행해졌다.

19세기 중반 로마 가톨릭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들어오면서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과 같은 이민을 반대하는 단체가 생겨났다. 이민 반대 시위에 대항한 많은 미국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이민자들은 이민에 대한 차별에 대항 할 수 있도록 조직을 형성하였으며 반이민 시위에 투쟁하는 동료 이민자들을 지원했다. 조직명은 콜럼버스 기사단(Knights of Columbus)이었다. 이러한 이름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가톨릭 신자였고 이민자의 시민권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당.

일부 이탈리아계 미국인은 1866년 10월 12일 뉴욕시에서 콜럼버스의 날을 축제일이라고 주장하였다.처음에 콜럼비아의 날은 덴버(Davner)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1세 안젤로 노스(Angelo Noce)의 로비 활동을 통해 미국의 공휴일로 유명해졌다. 1905년 콜럼버스의 날은 맥도날드 제시(Jesse F. McDonald) 콜로라도 주지사의 공식 선언으로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1907년에는 토요일 또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샌프란시스코(San Fransico)는 1869년부터 이탈리안계 미국인 들이 기념해왔고 콜럼버스의 날에 대해 두 번째로 기 역사를 갖고 있다. 1934년 콜럼버스 기사단(Knights of Columbus), 민중, 루즈벨트 대통령의 로비 활동을 계기로 같은 해 10월 12일 '콜럼버스의 날'이란 명칭으로 공식 연방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1971년부터 콜럼버스의 날은 10월 둘째 주 월요일로 변경이 되었으며 우연히 캐나다추수 감사절과 같은 날이 되었다. 현재 은행, 채권 시장, 우체국, 연방 조직, 대부분의 정부 사무실, 학교는 콜럼버스의 날에 쉰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기업 및 증권 거래소는 쉬지 않으며 미국내 몇몇 주는 공휴일로 준수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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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고고학 자료 모음



역사를 증언하는 최초의 고고학 발굴 

https://m.cafe.daum.net/kphpi21/HoLI/647

19세기 초만 해도 사람들은 땅 속을 파헤쳐 옛 유물을 찾는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고고학자들이 옛 문헌에 비추어 심증이 가는 지역의 땅 속을 파보기 시작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이렇게 성서에서 실마리를 찾으려는 고고학자들 덕분에 발견됐다.  

1840년 모술에 프랑스 영사관이 들어섰다. 영사로 폴 에밀 보타가 취임했다. 지금은 이라크 땅이 된 모술은 당시 교통의 요지였다. 모술 강 건너 마을에 높다란 둔덕들이 띄엄띄엄 있었다. 보타는 저녁마다 말을 타고 둔덕들을 둘러보며 집집마다 점토판이나 골동품을 수소문했다. 

이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7년 동안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고대 유적에 익숙해진 보타는 모술 시장에서 골동품들을 사들였다. 그의 목적은 유물의 출처를 알아낸 후 유적지 자체를 발굴하는 것이었다. 

예언자 요나의 무덤 사원이 있는 네비 유누스 언덕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골동품을 캐내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보타는 그곳을 발굴하려 했다. 하지만 예언자의 신성을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보타는 할 수 없이 그곳에서 약간 떨어진 퀸지크(양떼) 언덕을 파 보기로 했다.

 

그는 본디 의사였다. 고고학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둔덕을 파 보려는 까닭은, 부친이 역사학자로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차에 독일인 아시아학자 줄리우스 몰이 부탁한 말 때문이었다. “대영박물관에 가면 메소포타미아 벽돌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쐐기모양 문자가 새겨져 있소. 아마도 수천 년 간 땅 속에 묻혀 있는 엄청난 문명을 풀 실마리가 될 겁니다. 그러니 모술에 가거든 쐐기문자가 새겨진 벽돌을 찾아보고 가능하면 거기 널린 둔덕들을 파보시오.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가 거기 묻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보타는 일꾼을 모아 둔덕을 1년 가까이 팠으나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비록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할 만한 보물들을 찾아낼 수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1842년의 니느웨 발굴은 메소포타미아 고고학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술에서 16㎞ 떨어진 코르사바드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우리 마을에는 당신이 찾고 있는 점토판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보타는 일꾼 두세 명을 딸려 보냈다. 1주일쯤 지나 일꾼 한 사람이 헐레벌떡 돌아왔다. “삽질을 하자마자 벽이 나타났는데 이상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더군요.” 보타는 허겁지겁 말에 뛰어올라 그곳으로 달렸다.

 

 

* 최초의 발굴품, 사람 얼굴에 날개 달린 짐승

  

 

 

 

 

몇 시간 뒤 그는 그 때까지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유물들을 캐냈다. 턱수염이 무성한 사람 얼굴에 날개 달린 짐승의 몸뚱이였다. 그것은 이집트에서도 보지 못한 새로운 조각 예술이었다. 보타의 가슴은 터질 듯했다. 그리고 발굴현장에 쪼그리고 앉아 조각품들을 모사했다. 너무도 생소한 것이었다. 

      

 

며칠 후 탐사대 전체를 코르사바드로 불렀다. 성벽이 드러났다. 땅을 팔 때마다 새로운 성벽이 나타났다. 마침내 보타는 고대 아시리아 왕궁 가운에 하나를 발견했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 사실을 얼른 파리로 알렸다. 1843년 5월24일이었다. 신문에 아시리아 유적이 발견됐다고 대서특필되었다. 현대 고고학 발굴의 효시가 된 에밀 보타의 ‘땅 파기’에 프랑스는 열광했다.

   

*  전설을 역사의 세계로 끌어내다

 

      

  (백향목이라 불리는 레바논 삼나무를 배로 운반하고 있는 수메르인들) 

 

 

 

그 무렵 이집트가 인류의 발상지라고 알려져 있었다. 에덴동산은 다만 전설일 뿐이었다. 성경에 무려 152차례나 언급된 아시리아 제국 또한 전설에 지나지 않았다. ‘니네베’라는 말은 성경에 20군데, ‘아시리아’라는 말은 132군데나 나온다. 그런데 그 아시리아가 정말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에 이집트보다 더 오래된 문명이 있었다. 학자들은 긴장했고, 기독교 신자들은 흥분했다. 

 

* 니네베 근교의 여름궁전

 

           (제사장과 사르곤 2세,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정부는 거금 14만 프랑을 모아 보내면서 발굴한 유물을 스케치할 화가까지 딸려 보냈다. 아직 사진기가 없을 때였다. 힘을 얻은 보타는 1843년부터 4년 동안 메마른 날씨와 말라리아에 시달리며 발굴에 모든 힘을 쏟았다. 보타가 코르사바드에서 찾아낸 것은 기원전 709년 니네베 근교에 세워진 여름 궁전이었다. 성벽이 잇따라 나오고, 방과 정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돌을 깎아 만든 사람이나 짐승 모습의 ‘조상(彫像)’과 편평한 돌 따위에 어떤 모양을 반입체적으로 돋을새김 한 ‘부조(浮彫)’들도 쏟아져 나왔다.

 

* 거대 도시가 5년 만에 건설되다

 

           (사르곤 왕의 청동 두상)

 

이 도시는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 제국의 왕 사르곤 2세가 통치할 때의 수도였다. 도시 중심의 거대한 왕궁으로 700개의 방이 안뜰을 둘러싸고 있는 궁전이었다. 여기 궁전 도서관에서 약 2만 여 개의 고문서를 발견함으로써 아시리아학이 탄생하였다. 왕궁 벽에는 수렵과 전쟁 모습이 채색타일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부조로 장식된 성벽의 길이만 사방 1.6 킬로미터에 달하였다. 놀라운 것은 이런 거대 도시가 5년 만에 건설되었다는 사실이다. 3천 년 전 나라가 그토록 짧은 기간에 거대 도시를 완성할 만한 국력을 가졌던 것이다.

 

* 급류가 삼켜버린 인류 유산들

 

           (축복하는 지니 신)

 

보타는 30여 톤에 달하는 거상을 4 조각으로 나누어 뗏목에 실었다. 그런데 뗏목이 티그리스 강 급류에 휘말려 가라앉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수천 년 만에 부활한 아시리아의 석조 신과 왕들은 또다시 현실세계로부터 사라졌다. 그러나 보타는 낙심하지 않았다. 새로운 배를 띄워 더 많은 유물을 파리로 실어 보냈다. 2500년 전 역사에서 사라졌던 대제국의 자취들은 이렇게 해서 루브르박물관에 자리 잡게 되었다.

 

보타는 1843년부터 4년 동안 발굴에 힘을 쏟았는데 이 유적지의 발굴은 후임자 빅토르 플라스(1858~65)와 미국의 시카고대학 탐험대(1928~35)에 의해 계속되었다. 성곽의 훌륭한 부조, 상아 조각품, 거대한 날개달린 황소상들이 발견되었지만, 가장 귀중한 발견은 BC 1700년경부터 BC 11세기 중반 무렵까지의 아시리아 왕들에 관한 기록인 '아시리아 왕 명부'이다. 보타의 후임인 빅토르 플라스는 톱질을 하지는 않았지만 강에서 마주치는 재앙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1856년 루브르에 도착한 유물은 이때도 수백 점 가운데 불과 26점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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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2020년) 성서고고학 '10가지 유적' 발굴 쾌거
- 사해사본 진위, 므낫세, 오므리, 4대 족장, 라오디게아 교회 등 유적 발굴


2021년 1월 15일 크리채니티투데이는 2020년도에 성서 역사에 나타난 10가지 고고학적 위대한 발굴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발굴의 위대한 순서는 10위부터 1위까지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10. 아시리아 신 조각

이탈리아와 쿠르드 고고학자들은 신성한 동물의 등에 서 있는 아시리아 왕과 일곱 아시리아 신을 묘사한 15피트 바위 조각을 발견했다. 이 작품은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의 운하를 따라 절벽에 부조로 조각되었다. 왕은 기원전 722년에서 705년까지 통치하고 이스라엘 북부 왕국을 정복한 사르곤 2세로 여겨진다(왕하17 : 6). 발굴된 운하는 사르곤 2세의 노예가 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파낸 것으로 여겨진다.

9. 단단한 바위 위에 지어진 교회 유적

이스라엘 북부의 바니아스를 발굴한 것으로 일반적인 관행처럼 다른 신의 성지 꼭대기에 지어진 4세기 교회의 유적이다. 바니아스는 판 신의 숭배의 중심지였으며, 이 신사는 그리스 신을 숭배하기 위한 곳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어떤 고고학자는 이곳을 4세기의 기독교인들은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는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고백하였고, 예수님께서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마태복음 16: 13-19)라고 말씀하신 빌립보로 추측하기도 한다. 폐허의 한 돌에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된 직후 교회를 방문한 순례자들이 남긴 십자가 표시가 되어 있다.

8. 다윗 왕과 동맹을 맺은 요새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1,000년경 다윗 왕의 통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골란 고원에서 요새화된 건물을 발견했다. 요새의 큰 현무암 돌에는 팔을 뻗은 두 개의 뿔이 있는 인물이 새겨 져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건물이 다윗 왕의 동맹인 게슈르 왕국의 전초 기지라고 추측하였다. 압살롬의 어머니인 다윗의 아내 마아가는 바로 이 지역인 그술왕의 딸이었다.

7. 성스러운 연기 잔류물(4대 족장들의 제단)

기원전 8세기 제단의 불에 탄 표면에 있는 유기물에 대한 새로운 테스트에서 마리화나의 잔류 물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대마초가 고대 이스라엘의 모든 형태의 숭배와 관련이 있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마리화나 의식 사용과 관련이 있다는 최초의 증거이다. 제단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께 제사드린 곳이다.

아라드 사막 요새에ㅍ있는 예배당은 1960년대에 처음 발굴되었다. 반세기 전에 실시된 테스트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작년에 새로운 장비와 기술을 사용하여 새로운 테스트가 수행되었다. 현장의 두 번째 제단에는 유향의 흔적이 있었다.

6. 예루살렘에 버금가는 성전

텔아비브 대학 고고학자들은 예루살렘 근처의 이스라엘 1번 고속도로를 재건하는 동안 발견된 사원이 기원전 900년경에 지어졌다고 추정한다. 모차 사원의 크기는 솔로몬이 반세기 전에 지은 사원과 비슷하고 동쪽으로 불과 5마일 떨어져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예루살렘 성전에 버금가는 이 사원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하나님을 숭배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것 같다고 추정한다.

5. 가나안의 신들

이스라엘의 고고학자 요세프 가르핀켈은 기원전 12세기부터 가나안 사원의 폐허를 발견했다.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구약 도시 중 하나인 라기 쉬에 위치한 발굴 현장은 보석을 포함하여 가나안 숭배에 사용된 유물(단검, 청동 조각상) 등을 발굴했다.

특히, 이곳 사원전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은 은으로 코팅된 청동 홀이다. Garfinkel은 가나안의 신 바알의 인간 크기의 동상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된다. 동상 자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고대 가나안 신의 큰 동상은 발굴하기는 매우 드문 현상이다.

4. 잘 보존된 오므리와 아합 궁전

현대 도시 아풀라 외곽의 이즈르엘 계곡에서 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고고학자들은 오므리와 아합과 같은 이스라엘 왕을 섬기는 왕실 단지를 발견했다. 이 단지는 아합왕의 또 다른 궁전이 있는 텔 이즈르엘에서 불과 6km 떨어져 있었다. 그들이 발견한 커다란 기둥 건물은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가장 잘 보존된 오므리 가문 건물”라고 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저장 용기는 중앙 집중식 식품 유통 시스템으로 추측하고 있다.

3. 라오디게아에 한 집에 교회

터키 고고학자 Celal Şimşek은 라오디게아의 한 집을 발굴하면서 기독교 숭배에 사용되는 신성한 물건을 발견했다. 중앙 정원이나 안뜰 주변에 지어진 페리 스타일 하우스는 극장 옆에 있었으며 부유한 사람들이 소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사도 바울은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에 서신을 보냈는데, 이는 골로새서에 언급되었지만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이 교회는 또한 요한계시록에 예수님께서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장 17절)라고 말씀하신 곳과 연관이 있다.

심섹은 그가 발굴한 종교적 항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교회가 있는 집은 학자들이 “1 세기 중반부터 라오디게아에서 기독교가 전파된 방법”에 대한 잘 이해하게 될 소중한 유물이라고 결론지었다.

2. 성경 사본 및 유물의 진위 여부 확인 및 발견(사해 두루마리 파편은 가짜 판명)

성서 고고학자들이 겪고 있는 한 가지 문제는 그들이 개인적으로 발굴하지 않은 유물, 즉 유물 시장에서 판매되는 품목의 진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2020년도는 최첨단 기술이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몇 가지 주요 사례를 보았다. 한때 모조품으로 여겨졌던 점토 물범 인상은 진품인 것으로 나타 났으며, 한때 진짜라고 믿었던 사해 두루마리의 파편은 가짜로 밝혀졌다.

Ben Gurion 대학의 Yuval Goren 교수와 그의 팀은 포효하는 사자를 묘사한 "불라" 또는 점토 물개 상이 기원전 788-748 년에 통치했던 여로보암 2세의 통치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추측했다.

또한, 예술 위조 탐사 전문 회사는 성경 박물관 컬렉션에 있는 사해 두루마리 조각 16개가 모두 현대 위조품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70개 이상의 다른 가능성 위조 조각 2002년 이후 복음주의 수집가에게 제공되었다고 보고있다.

1. 므낫세 통치의 유적

왕하 21장의 통치자인 므낫세 왕에게 속한 궁전 유적의 발견을 발굴했다. 이 유적은 남쪽에서 템플 마운트와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아르몬 하나 치브 산책로에 위치해 있다. “원시적인” 석조물은 첫 번째 사원 시대의 왕실 건물과 관련이 있다. 그 구조는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 왕으로부터 남쪽 왕국을 점령한 므낫세의 55년 통치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로 지어진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고고학자들은 대형 창고의 잔해도 발견했다. 중앙 집중식 식량 유통 시설로 여겨지며 아마도 농업 잉여 저장고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0년 전 고고학자들은 라 마트 레이첼 근처에 있는 궁전과 행정 센터의 유적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2020년의 발굴 보고서와 새로운 발굴 보고서를 통해 학자들은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을 따라 이 지역이 유다 왕국의 후대 통치자들의 주요 활동 중심지였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뉴스파워 해설*

2020년 성서 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위대한 발굴의 쾌거를 이룬 한 해였다. 특별히, 구약 성경의 중요한 유물의 발굴과 신약 계시록의 7교회 중 한 곳이 라오디게 교회의 발굴로 성경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주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 말씀의 놀라운 구원역사와 그 위대성에 다시 한번 놀라움과 찬사를 드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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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산 호렙



하나님의 산 호렙

성경 기록에 의하면 호렙산은 종종 언약의 산으로서, 십계명을 부여받았던 시내산과 혼용되고 있다.
즉 성경은 두 산의 지리적 구별을 엄밀히 하고 있지 않다.
이런 견지에서 두 산의 관계에 대한 몇몇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산의 총칭은 호렙인데 특별히 정상 부분만을 일컬어 '시내'라 한다.
2. 한 산에 두 봉우리가 있어 하나는 호렙이고 다른 하나는 시내이다.
3. 두 산은 동일한 산으로서 두 가지 이름을 갖는다.

이처럼 각 견해를 종합해 보더라도 두 산의 관계를 엄밀히 구분하기란 어렵다.

한편 유대 전승에 의하면 오늘날 호렙(시내)산은 시내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해발 2, 291m의 '예벧 무사'(jebel Musa, 모세의산)에 해당한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곳을 특별히 하나님의 산이라고 명명한 것은 혹자의 주장처럼 이곳에 '이드르'의 신전이 있었기 때문(pulpit commentary)도 아니고, 그 이전부터 거룩한 곳으로서 그렇게 불려왔기 때문(Knobel)도 아니다.

그것은 출애굽 직전 모세가 이 산 정상에서 하나님께로부터 거룩한 소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이고, 나아가 출애굽 직후에 하나님께서 이 산에 현현하사 언약의 증표로 율법을 수여했기 때문이다(Keil).

따라서 이 산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시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신 현현의 장소로 간주되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산으로 성별되어 영영히 기억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