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워렌 목사 “기독교인들이 나쁜 습관 바꾸지 않는 4가지 이유"


미국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가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바꾸지 않는 이유 4가지를 설명하고 진리가 오랜 습관을 바꾸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공유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릭 워렌 목사는 변화를 위한 개인의 노력에 초점을 맞춘 ‘나의 인생 재설정’ 시리즈의 일환으로 어머니의 날 설교를 전했다.

그는 “하나님과의 연결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건강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몸, 관계, 습관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수준을 바꾸고 싶을 수도 있다.
직업, 경력, 일을 바꾸고 싶을 수도 있다.
결혼 생활을 재설정하고 싶을 수도 있다”라고 했다.

워렌 목사는 전도서 7장 20절(“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을 인용했다.

그는 “변화하려는 모든 노력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분의 삶과 성격의 영역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이다. 여러분 스스로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완고한 당신 안에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여러분의 삶에서 끊임없는 문제다.
여러분이 몇주 동안 이 문제들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몇 년 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여러분이 정말 좋아하지 않는 삶의 부분,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바꾸고, 수정하고, 삶에서 재설정하려고 할 때 반항하고 저항한다”라고 말했다.

워렌 목사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는 “내 인생에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완고한 부분, 즉 습관, 패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 내 삶의 습관적인 약점을 바꾸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라며 “하나님은 그것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변화가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하는 4가지 이유를 나열했다.

첫째, 너무 오랫동안 나쁜 습관이 자리잡아 변화가 불가능해 보인다.

워렌 목사는 “여러분의 패턴 중 많은 부분이 실제로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확립된 방식이며 이러한 패턴은 여러분이 맞서 싸우는 방법을 몰랐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신의 자멸적인 패턴 중 일부는 실제로 어린 시절 생존 전술이었다. 지금, 여러분은 그것들이 작동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 방법들은 자멸적이었다. 습관과 패턴들,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삶에 그러한 패턴을 갖고 있다. 왜인가? 익숙해서 그렇다”라고 말했다.

워렌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이 익숙해진 자기 파괴적인 습관은 ‘오랜 친구’와 같다.

그는 “그 습관들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습관들이 작동하지 않음을 안다. 그러한 습관과 패턴이 문제나 갈등을 야기한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들에 익숙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이) 오랫동안 그런 문제를 겪었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바꾸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둘째, 기독교인들이 종종 자신의 정체성과 결점을 혼동하기 때문

그들은 스스로에게 “나는 워커홀릭이다, 나는 수동적이다, 나는 공격적이다, 나는 소심하다, 나는 과식하다, 나는 게으르다”라고 말한다.

이어 “그러한 결함들은 여러분의 진정한 정체성이 아니다....그것들이 여러분의 진정한 신분을 숨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특정한 방식으로 볼 때 일어나는 일은 자기충족적 예언에 가두는 것이다. 여러분은 ‘나는 항상 비행기에서 긴장한다’라고 말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 비행기에서 긴장할 것이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때때로 ‘오랫동안 예전의 나로 살아왔기 때문에 내가 변해도 여전히 그렇지 않을까?’라고 두려워한다”라고 말했다.

셋째,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도움이 되는 것이든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든,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나쁜 습관 뒤에는 보상이 있다.

때때로 이 보상은 감정적, 관계적 또는 기타 강화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은 그 결함에 대해 보상을 받는다. 그 나쁜 습관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받는다. 무엇을 보상받든 반복한다”라고 말했다.

넷째, 사탄이 낙담시키기 때문

워렌 목사는 “(사탄은) 여러분을 틀에 박힌 상태에 가두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이 전쟁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워렌 목사는 “그는 여러분을 억누르고 싶어한다. 그는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여자 혹은 남자가 되는 것을 막고 싶어한다. 그는 자기 회의, 비판, 비난을 사용한다. 사탄이 끊임없이 생각을 통해 여러분을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성경은 사탄을 고발자라고 부른다. 사실 그의 이름이 그런 의미다.… 그는 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탄은) ‘너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다이어트를 했나? 이것은 희망이 없다. 너의 결혼생활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너는 자녀와 이웃과의 관계를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다. 희망이 없다.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곧 포기할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어디에서 온 것 같나?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사탄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변화의 시작은 기독교인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선택하기 시작할 때만 일어날 수 있다”라며 “변화는 여러분의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모든 변화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감정, 행동을 바꾸기 전 여러분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했다. 워렌 목사는 에베소서 4장 21-27절을 언급했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음의 태도를 새롭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개인적인 변화의 비결은 “여러분, 하나님, 삶, 문제, 가족, 과거, 성장에 관한 진실을 알고 직면할 때 일어날 수 있다”라며 “변화는 항상 진리에서 시작된다. 부정적인 생각, 거짓, 불신에서 긍정적인 변화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진리를 배우고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했다.

[출처]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15337#share


이레니우스(라틴식 이름 : Irenaeus. 헬라식 이름 : Εἰρηναῖος)


이레니우스(라틴식 이름 : Irenaeus. 헬라식 이름 : Εἰρηναῖος)


Saint_Irenaeusjpg

1. 생애

 이레네우스는 2세기 말, 지금의 프랑스 남부 도시 리용(Lyon. 라틴지명: Lugdunum)의 주교였다.
‘이레네우스’라는 이름은 헬라어(=희랍어. 그리스어) ‘평화’를 의미하는 ‘에이레네’에서 파생된 단어로써 ‘화평자’를 의미한다.
최초의 기독교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는 그를 가리켜 ‘화평케 하는 자’(Εἰρηνοπιος)라 불렀다.

그는 자신이 어린시절 서머나(Smyrna. 스미르나)의 주교이며 순교자인 폴리캅(Polycarp. 폴리카르포스)에게서 배웠다고 언급했기 때문에 폴리캅의 제자로 알려져 있는데, 이 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마지막 제자였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레네우스의 출생지를 소아시아의 서머나 혹은 그 주변 지역으로 추정하는데, 그곳은 지금 터키의 이즈미르(Izmir)이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학자들에 따라 115-145 사이로 추정된다.

이레네우스가 무슨 이유로 동방에서 서유럽으로, 즉 프랑스 남부에 있는 골(Gaul) 지방의 리용으로 이주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추정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한다.

첫째는 상업적인 용무 때문이었다
둘째는 선교적 열심 때문이었다

그가 리용의 주교 포티누스(Pothinus = Potheinus) 아래 그곳의 사제로 임명되어 장로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177년에 포티누스는 당시 유행하던 이단 사상인 몬타누스주의(Montanism)에 대한 골 지역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을 담은 편지 한 통을 로마 주교 엘류테리우스(Eleutherius)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레네우스를 로마로 파송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재임기간: 161-180)의 혹독하고 잔인한 박해가 리용을 덮쳤고, 결국 178년에 포티누스 주교는 9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로 순교를 당하고 말았다.

리용의 기독교 공동체는 이레네우스가 로마에서 돌아오자 순교자 포티누스를 이어 그를 리용의 새로운 감독, 즉 주교로 선출했다. 그의 주교권 구역은 리용뿐만 아니라 비엔나(Vienne)를 포함하여 리용 주변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까지 확대되었다. 후대의 한 저술에 의하면 이레네우스는 단기간에 리용 전체를 기독교로 개종시킨 탁월한 감독이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대부분의 교부 연구가들은 이러한 진술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레네우스는 당시 교회 사이에 논란이 많았던 부활절 날짜 문제와 관련하여 로마 주교인 빅토로(Victor. 재임기간: c. 189- c. 199)에게 편지를 보내여 14일파(Quartodeciman. 유대력 니산월 14일을 부활절로 정하고 그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사람들)를 파문하지 말고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레네우스의 정확한 사망 연도는 알 수 없고 다만 약 200-202년경으로 추정한다. 라틴어 성경 불가타(Vulgata)를 번역한 제롬(Jerome), 즉 히에로니무스(Hieronimus)는 그가 순교했다고 전한다. 그는 리용의 성 요한 교회에 장사되었는데, 후에 이 교회는 성 이레네우스 교회로 개명되었다. 그의 무덤과 유물들은 1562년 프랑스 개신교도들인 위그노(Huguenots)에 의해 깡그리 파헤쳐지고 파괴되었는데, 위그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그것들이 우상으로 숭배되었기 때문이다.
 
2. 저술

독일의 교부 연구 대가인 한스 폰 캄펜하우젠(Hans von Kampenhausen)은 이레네우스가 헬라어를 사용하는 동방 출신이라는 점과 그의 모국어와 저술 언어가 헬라어라는 점을 고려하여 그를 동방교부, 즉 헬라교부로 분류한다. 사실 헬라어는 그 당시 로마 제국의 동쪽 지역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에 사는 대부분의 그리스도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교회의 언어였다. 하지만 이레네우스는 로마 제국의 서쪽 지역인 골 지방의 리용에서 사역했기 때문에 모국어인 헬라어뿐만 아니라 당시 로마 언어였던 라틴어에도 능통했다.

이레네우스의 저작들 가운데 잔존해 있는 것은 두 권이다. 하나는 흔히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 영어: Against Heresies)으로 알려진 <사칭되는 ‘영지’에 대한 폭로와 반박>(Detectio et eversio falso cognominatae gnosis = Ἔλεγχος και ἀντροπη της ψευδωνυμου γνωσεως)이라는 저술이다. 이 저술을 히에로니무스가 <이단 논박>이라는 명칭으로 인용한 이후 줄곧 원제목 보다 이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5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은 라틴어 번역판으로는 완전본이 남아 있지만 헬라어 본문으로는 일부 단편만 남아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인 <이단 논박>에서 이레네우스는 ‘지식’을 뜻하는 헬라어 ‘그노시스’(gnosis. 영지)에서 노스티시즘(Gnosticism), 즉 영지주의, 특히 그 중에서도 영지주의적 이단 발렌티누스(Valentinus)의 체계를 철저하고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반박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진리의 표준’(canon veritatis)과 ‘신앙의 규범’(regula fidei)을 변호한다. 또한 당시 교회의 가장 위협적이었던 마르시온(Marcion. 마르키온; 말시온) 이단뿐만 아니라 몬타누스(Montanus) 이단에 대해서도 논박한다.

잔존해 있는 다른 하나의 저술은 <에피데익시스>(Epideixis)로 알려진 <사도적 선포에 관한 논증>(Ἐπιδειξις του ἀποστολικου κηρυγματος)이라는 책인데 단지 아람어 번역본만 존재한다. 여기서 이레네우스는 구약의 예언들이 신약의 복음서에서 성취되었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3. 사상

이레네우스는 교회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강조했는데, 특히 주교직과 성경과 전통을 강력하게 변호했다. 그는 로마 교회의 전통과 일치하는 교리적 전통의 권위만이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로마 주교직의 수위권을 강력하게 옹호했는데, 이것은 후에 로마 교황의 수위권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모든 주교들의 의견을 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크고 오래되었으며 사도 바울과 베드로에 의해 설립되고 교훈을 받은 로마 교회가 사도들로부터 이어받은 전통과 그들의 주교들을 통하여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온 신앙을 본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로마 교회의 강력한 권위 때문에 모든 교회, 즉 모든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교회에 따르고 있으며, 로마 교회 안에서 사도들로부터 유래한 전통이 수호되고 있기 때문이다.(<이단 논박> III.3.2.)

이레네우스는 마르시온에 반대하여 구약과 신약의 밀접한 상관성을 주장했으며 마르시온이 신약 가운데 정경에서 제외시킨 4 복음서 모두를 영감된 정경임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복음서들이 네 개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이단 논박> III.11.8) 그는 <이단 논박>에서만 빌레몬서, 베드로후서, 요한삼서, 유다서 외의 모든 신약 성경으로부터 무려 1,075개의 성경 구절을 인용했이다. 이런 점에서 이레네우스가 오늘날 신약 성경 27권 모두를 영감된 한 권의 성경으로 간주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기독론과 관련하여 이레네우스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에비온주의자들(Ebionites)과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발렌티누스주의(Valentianism) 모두를 반박하면서 ‘하나이며 동일한’(εἶς και αὐτος)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 간의 통일성을 주장하였다.(<이단 논박> III.16.3.)
삼위일체론과 관련하여 이레네우스는 경륜적 삼위일체론자로 분류된다. 이러한 분류는 그의 가장 유명한 신학 사상인 ‘총괄갱신’(recapitulatio = ἀνακεφαλαιωσις)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 총괄갱신의 핵심은 ‘그 자신 안에서 만물을 완성하시는 한 분 그리스도’라는 개념이다.
말씀은 친히 인간이 되시어 자신 안에서 만물을 완성하신다. 하늘 위의 것들과 영적이고 비가시적인 세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이신 것처럼 그 말씀은 또한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영역에서 으뜸이 되실 것이다.(<이단 논박> III.16.6.)

 주님은 자신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생명의 낙원으로 이끄시고 그 자신 안에서 만물,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을 완성하신다.(<이단 논박> III.18.1.) 


최초의 교부 위대한 조직신학자  이레나우스의 생애와 신학
최초의 교부였던 이레나우스는(Irenaeus, Born AD 130 Smyrna, Died 202 Lugdunum) 소아시아 동북 지중해안의 서머나 지방에서 출생 했다. 당시 소아시아의 안디옥은 다양한 종교, 철학, 문화의 접촉지로서 로마 제국의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였다. 이레니우스는 170년경 고울 지방의 리용에 정착하면서 177년 그곳의 장로가 되었고 당시 리용의 감독이었던 포티누스의 순교로 인해 리용의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이레나우스가 활동했던 소아시아의 팔레스틴, 안디옥에서는 이그나티우스, 폴리캅, 파피아스, 데오빌로, 유스틴 등의 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레나우스는 이들의 영향을 받았고 이 일련의 학자들은 훗날 안디옥 학파로 불린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머나 지방의 감독 폴리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레나우스의 기독론 해석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레나우스는 헬레니즘적인 학문과 철학적 통찰력과 실천의 지혜 및 중용의 요소가 조화된 훌륭한 목회자였고 그의 저술 또한 목회적인 입장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교의학의 아버지’ 또는 ‘교회의 최초의 위대한 조직신학자’라 불리는 이레나우스는 교회의 전통, 구속사, 신구약의 권위 등 여러 분야에서 업적을 찾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2세기 영지주의자들과 논쟁에서 중요성 때문에 기독교회사에서의 의미심장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레나우스는 일생동안 영지주의를 논박하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계획을 역사 신학 내에서 진지하게 설정하였으며 신약을 구약과 같은 권위로 보면서 성경을 총체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었다.
이레나우스는 기독교를 진정한 철학으로 보 려는 변증가들의 견해에 반대하였으며 헬라적 사색의 도움을 동원하지 않았고 계시의 내용이 단순히 새로우면서도 보다 나은 철학에 불과하 다는 자들과도 견해를 달리했다. 그에게는 성경 적 전통만이 신앙의 유일한 근원이었다.

목회적 소질을 타고난 이레니우스는 고울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이단으로부터 양들을 변호하는데 관심을 쏟았다. 다른 한편으로 이레나우스는 변방에 있는 켈트족의 복음화와 리용의 교회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후기 자료에 의하면 이레나우스는 리용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죽임을 당하던 202년에 순교하였다.

이레나우스는 사도적인 전통(가르침)은 성경에서 발견되며 교회에 보존되어 왔으며 따라서 “진리를 보기 원하는 사람은 온 세계에 분명하게 된 사도들의 전통을 어느 교회에서나 분면하게 볼 수 있다.”고 보았다. 교회의 전통에 대한 이레나우스의 호소는 정경(正經) 형성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이레니우스는 4복음서를 의심 없이 수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4복음서가 이레니우스 시대에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레나우스의 역사관을 언급해보면 이레나우스가 구속사관을 제시한 최초의 역사 신학자로 평가 받는 이유는 그가 창조와 구속을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구속사(救贖史)라는 관점에서 구약과 신약을 통일시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통시적인 역사 이해는 창조주와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하나이며 같은 하나님임을 확신하는데서 출발한다.

이레니우스는 수많은 저술을 기록한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는 것은 ‘소위 영지주의의 고발과 논박’과 ‘사도적 설교의 논증’이다. 전자는 영지주의자들에 대항하여 기술된 작품으로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으로 알려졌다. 다섯 권으로 되어있는 이단 논박은 주제에 따라 다름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권 영지주의의 해설, 2권 이성에 의거하여 논박함, 3-5권 선지서, 주의 말씀과 사도들에기초한 성경으로부터의 논박이다.

이 책에서 이레나우스는 영지주의의 대표적인 유형인 발렌티누스(Valentinus, AD100-160)의 제자인 플톨레매우스(ptolemaeus)의 제자들의 가르침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역사적 성육신에 기초한 이런 통시적인 구속사와 신구약의 연속성의 개념은 ‘에피데이키스’(Epideixis)라고 불리는 단편작품 ‘사도설교의 논증’에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이레니우스는 창조에서 최후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역사를 제시했다.(*)

이레니우스는 170년경 고울 지방의 리용에 정착하면서 177년 그곳의 장로가 되었고, 당시 리용의 감독이었던 포티누스의 순교로 인해 리용교회의 감독으로 선출된다. 이레니우스가 활동했던 소아시아(팔레스틴, 안디옥)에서는 이그나티우스, 폴리캅, 파피아스, 데오빌로, 저스틴 등의 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레니우스는 이들의 영향을 받았고, 이 일련의 학자들은 훗날 “안디옥 학파”로 불린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머나 지방의 감독 폴리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레니우스의 기독론 해석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레니우스는 헬레니즘적인 학문과 철학적 통찰력과 실천의 지혜 및 중용의 요소가 조화된 훌륭한 목회자였고, 그의 저술 또한 목회적인 입장을 많이 반영한다.
이레니우스에 따르면 복음의 첫째 기초는 우주를 창조하신 한 분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를 비판하면서 최고신과 창조신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두 손'이라는 원리를 주장했다. 이는 '아들'과 '성령'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성자와 성령이 함께 활동 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비유(알레고리)이다.

뿐만 아니라 이레니우스는 교부들 중 가장 많이 성경을 인용하여 이단들을 공박한다. 이레니우스에 있어서 성경은 그가 활동하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과 법칙이었다. 아울러 이레니우스는 성령의 영향으로 생산되는 것은 무오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의 저술에 신구약 성경 중에서 상당히 많은 구절을 인용하거나 언급하였다. 예컨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하, 시편, 잠언,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요나, 미가, 하박국, 스가랴, 말라기,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등을 인용하였음을 그의 저서들 곳곳에 나타난다. 이레니우스는 “복음서는 그 수에 있어서 더하거나 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이유로 세상에는 동서남북이라는 네 개의 지역이 있고, 교회는 모든 세상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레니우스가 이렇게 말한 것은 4 복음서의 완벽성을 설명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여진다.
4 복음서는 그 수에 있어서 더하거나 덜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고 틀림이 없고 오류가 없다는 그의 확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구약성경과 동일한 정경인 신약성경에 대하여 거의 명확하게 말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이레니우스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 주인과 같으니라”(마 13:52)는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하면서, 예수님은 옛 것과 새 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해석은 구약과 신약의 저자는 동일하고 그 목적도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 것과 옛 것은 두 언약인데, 옛 언약의 대표적인 것은 율법이고, 새 언약의 대표적인 것은 복음이라는 의미”이다. 아울러 이레니우스는 성령의 영향으로 생산되는 것은 무오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최초의 조직신학자로 인정한다.

이레니우스 신학의 중심점은 기독론이다.
“그리스도는 창조와 구속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근거가 되신다.
그리스도는 새 아담으로서 창조의 계속이며 동시에 완성이다”.

이레니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새로운 인간상의 총화로서 표현한다.
이것을 가리켜서 “총괄갱신(recapitulate)”이라고 한다.
총괄갱신은 이레니우스 신학에서 가장 뛰어난 주제 중의 하나로서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부터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즉 총괄갱신은 창조의 회복을 뜻한다.
첫 사람 아담이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회복이며, 완전 혹은 완성(perfection)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는 새 아담이며 사탄에게 굴복하지 않은 새 인간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을 향한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게 된다.
교회는 이러한 총괄갱신의 사역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는 세례와 성찬을 통해서 총괄갱신 사역을 진행 시키시고, 세례와 성찬은 인간을 그리스도 자신에게 연합시킨다.
즉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로서 그 머리 아래로 모인 인간의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이레니우스의 접근은 터툴리안 및 오리겐과 전혀 다르다.
속사도 시대의 교부들은 성경을 비유적으로 해석하기를 아주 즐겼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의 비유'를 예로 들어보자.
선한 사마리아인을 예수로, 강도맞은 사람을 구원받은(을)자로, 강도는 사탄 내지 마귀로, 여관은 교회로, 나귀는 복음의 도구 등등. 하지만 이레니우스는 이러한 해석들을 단호히 배격한다.
그의 근본적인 관점은 역사를 통해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곧 목자이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는 점이다.
즉 성경은 이스라엘이라는 특정한 백성의 역사 속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기 때문에 그는 철저히 성서에 대한 비유적(알레고리적) 해석을 배척한다.

이레니우스가 말하는 역사는 하나님께서 인류와 관계를 맺으시는 역사를 가르쳐주는 것으로서 신적 경세(oikonomia 오이코노미아)라고 말한다.
이는 역사 내에 진보와 연속성, 구체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레네우스의 가장 큰 공헌은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단을 막기 위하여 싸웠다는 점이다.
그는 성경을 자유롭게 인용하면서도 신약을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을 보여 주었으며, 사복음과 거의 모든 서신을 말시온의 이단들을 정경(Canon)과 대조하여 논증하는데 승리했다.
그가 주로 논쟁한 주요 이단은 영지주의(Gnostcism 그노시스)였다.
이레니우스는 교회의 교리에 대한 해석자이며 또한 영지주의 이단에 대한 방어자 역할을 했다.

영지주의에 대한 이레네우스의 작품으로는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이 가장 유명하다.
이 책은 다섯권으로 되어 있다.
제1권에서 여러 이단들을 해설하고,
제2권에서 이들에 대한 철학적 논리적 논박을 전개하고,
제3권에서 성경과 전통에 있어서의 기독교 교리의 기초를 제시하고, 또 그 본질적인 부분 즉 하나님의 통일성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속을 해명한다.
제4권에서 두 언약(言約)의 통일성을 주장하고 마르키온을 논박한다.
제5권에서 구속론을 다시 취급하며 종말관과 내세의 소망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아쉽게도 헬라 원전은 소실되었으나 라틴어 번역이 온전이 남아있다.






마지막 시대의 징후



말세의 징조를 나타내는 7가지 징후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태복음 16:2-3)

위의 말씀은 이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많은 표적들을 보여주셨음에도, 또 다른 표적을 요구하고 있는 당시의 종교지도자 바리새인 서기관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표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많은 표적들을 보고도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저들의 무지함, 혹은 표적을 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완고함이 문제라는 것이다.

초림의 주님이 공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 되신 많은 표적들(signs)을 보여주셨듯이,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도 많은 시대의 징조들(signs)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런 징조들이 일어나는 모습들을 볼 때면 ‘그 날이 가까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종말의 진행 상황을 보여주는 7가지 지표들이다.

1. 이스라엘의 회복

종말에 대한 예언의 중심에 이스라엘이 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스라엘의 회복은 종말의 역사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1948년 5월 14일 성경의 예언대로(겔37장) 고토로 돌아와 나라를 재건한 이스라엘은 재건의 순간부터 이스라엘을 진멸하려는 대적들과 전쟁을 치루어왔다.

지금까지 4차례의 중동전쟁을 치룬 이스라엘은 성경의 예언대로라면 앞으로도 시편 83편의 전쟁, 곡과 마곡의 전쟁, 아마겟돈의 전쟁을 더 치루게 될 것이다. 종말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시편 83편의 전쟁(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주변국가와의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이스라엘과 온 아랍세력 + 러시아가 참여하는 전쟁)을 전후로 해서 휴거사건이 있을 것이고, 곡과 마곡의 전쟁 직후 적그리스도와 7년간의 평화 협약을 맺음으로 7년 대환난이 시작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종말의 Time Table이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자연의 재앙

감람산 강화(마24,25, 막13, 눅21)에서 예수님은 종말의 때가 되면 처처에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을 것이고,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할 것(눅21:25)이라 하신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큰 자연의 재앙이 있을 것을 경고하고 있다.

 

마태복음 28장 8절에서는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된 재난이라는 단어는 birth pain이라는 뜻이 있다. 산통(birth pain)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까지 점점 강도가 세지고, 빈도가 잦아지는 특징이 있다. 마찬가지로 종말의 때에 찾아오는 자연의 재앙도 점점 그 강도가 세지고, 빈도가 잦아지다가 결국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한 번 비가 오거나 추위가 찾아오면 일기예보에서 ‘관측이래’ 최대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성경의 예언처럼 자연의 재앙이 점점 그 강도가 세지고 빈도가 잦아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3. 배도

성경에서 소개하고 있는 마지막 때의 교회의 모습은 결코 낙관적인 모습이 아니다.
감람산 강화에서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많은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날 것이라 했고,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에서 사도 바울은 종말의 때에 교회가 배도의 길을 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 소개된 라오디게아교회가 종말의 때에 나타날 교회의 모습이라면 이 말씀들도 결코 교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 않고 있다.

오늘날 성장지상주의에 빠진 많은 교회들이 진리인 말씀을 버리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세상의 철학들과 뉴에이지에 물든 신비적인 영성을 전파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배도의 시대임을 깨닫게 된다.

4. 도덕적 타락

누가복음 17장에서는 종말의 때를 ‘노아의 때와 롯의 때’로 묘사하고 있다. 노아의 때, 롯의 때는 도덕적, 성적 타락이 극에 이른 때이다. 특히 롯의 때의 배경이 되고 있는 소돔성은 동성애가 만연한 도성이었다.
이런 소돔성은 여러 면에서 오늘날 화려한 도시들의 모습들을 많이 닮아 있다.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은 시대인 것이다.

5. 과학 기술의 발달

다니엘서 12장 4절에서는 종말의 때가 되면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묘사하고 있다.
종말의 시대는 교통기술이 발달하고 정보지식 산업이 발달한 시대가 될 것임을 예견하는 말씀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에서는 종말의 때가 되면 사람들을 감시하고 화폐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표’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시대인 것이다.

6. 전쟁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으며,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리라.”(마 24:6,7). 동서냉전의 시대가 끝나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같의 분규가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과 현재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들이 결국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7. 세계정부의 등장

다니엘서 2장에 등장하는 철과 진흙이 섞인 발로 묘사되는 나라, 다니엘서 7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열 뿔을 가진 네 번째 짐승, 또 요한계시록 17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큰 성 바벨론’은 모두 주님이 재림하여 주의 나라(천년왕국)를 이 땅에 세우시기 전에 등장할 마지막 제국, 적그리스도의 나라를 설명하는 말씀들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가 결국 세계정부의 탄생(New World Political Order)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 세계정부가 바로 적그리스가 다스리는 마지막 제국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일들(성경에서 제시하는 7가지 지표들)이 되어지는 모습들을 보면서 성경이 예언한 ‘그 날’ 종말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재난

 

 

누가복음 21:10-11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지진이 있으리니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가 있으리라.

2. 미혹(거짓선지자 출현)

 

 

<대표적 이단 목록>  -신천지 -구원파  -몰몬교  -하나님의 교회  -여호와의 증인 등

* 특징 :  교주가 존재함 ("내가 예수다")  /  물질강요와 성적 타락  /  열매(결실)가 좋지 못함.

데살로니가후서 2:11 /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마태복음 24:4~5  /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태복음 24:11 /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3. 예수믿는 자의 박해

 

 마태복음 24:9~10 /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예수)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4. 불법이 난무하고, 사랑이 없음

 

마태복음 24:9~10 /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5. 돈과 자기사랑/ 교만함/ 하나님 비방/ 부모를 거역

 

디모데후서 3:1-2 /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6. 사람들간의 빠른 왕래/ 지식이 증가

다니엘 12: 4 /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 

7.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

 

마태복음 24:13~14 /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8. 종말에 일어날 일들

 

 

데살로니가전서 4:16-17 / 주께서 호령천사장의 소리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요한계시록 21:1-4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 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거(居)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哭)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베드로후서 3:10 /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땅덩어리)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요한계시록 6:7-8 /

네째 인을 떼실 때에 청황색 말이 나오고 그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했습니다. 그들은흉년사망땅의 짐승으로서 죽이더라

 

 

 

 

 

 

 
마태복음 24:13 /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의 피 & 금송아지 가루

 예수님의 피 바로 알기

이러한 진리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또 다른 충격적인 예는 백성이 시내 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함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뒤에 이루어졌던 속죄 안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십계명을 받기 위해 사십 주야 동안 시내 산 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들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죽은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론에게 그들의 갈 길을 인도해 줄 신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고 그 결과 금송아지 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증언의 돌 판을 손에 들고 산에 내려왔을 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미 하나님의 첫째가는 두 명령을 범하여 스스로 자신들을 하나님의 저주 아래 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피에 의한 속죄 이외의 그 어느 것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닥칠 재앙을 막을 수 없음을 알았고 그래서 이 부분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독특한 희생을 드릴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고 따라서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 속죄를 드리겠다.
나는 과연 이것이 효과가 있을는지 알 수 없지만 너희가 구원을 받고 용서될 수 있도록 시도해 보겠다.
이 사건의 전말은 출애굽기 3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취하여 불에 태우고 그것을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마시게 하니라(출32:20).
이 기사로부터 우니는 모세가 금송아지를 취해 다음과 같이 했던 것을 발견합니다.

1. 먼저 그것을 녹였다.
2. 그 다음 그것을 가루로 만들었다.
3. 가루를 물에 뿌렸다.
4.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것을 마시도록 했다.

신명기 9장에는 그 동일한 사건이 좀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취하여 불로 태워 빻고 아주 작게 즉 티끌같이 작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신 9:21).

우리는 신명기 9장 21절에서 모세가 행한 것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으며,

갈보리의 의미

이 금송아지에 대해 다음의 여섯 가지 사실이 언급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1. 그는 그것을 녹였다.
2. 그는 그것을 찧었다.
3. 그는 그것을 갈았다.
4. 그는 그것을 다시 갈았다.
5. 그는 그것을 시내에 뿌렸다.
6. 그는 그것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마시도록 했다.
그 뒤에 그는 시냇물에서 물을 조금 떠다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한 피의
속죄를 위해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화학에 관한 모세의 지식
이 기록에서 우리는 모세가 초자연적으로 주어진 화학 분야의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왜 모세가 금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에 녹여 찧고 빻아 물에 탔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인해 만들어진 탁한 용액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생생한
모형이 되었습니다. 화학에서 우리는 보통 세 종류의 혼합체를 다루게 됩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계적 혼합물(A mechanical mixture) :

만일 제가 금속체인 금 한 조각을 물에 떨어뜨린다면 아무런 용액도 생기지 않습니다.
금은 물속에서 그대로 있습니다.
왜냐하면 순금 덩어리 자체는 물에서 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현탁액 혹은 유상액(A suspension or emulsion) :

금속 매체의 매우 고운 가루는 다른 화학 물질이 첨가될 때 물속에서 뜰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용액이 아닙니다.
단지 고운 가루들이 물속에 유화되어 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용액이 아니며 부유물(emulsion)이라고 불립니다.

3. 화학적 용액(A chemical solution) :

만일 제가 설탕 한 숟가락을 취해 물 컵에 넣으면, 설탕은 혼합되지도 않고 유화되지도 않은 수용액이 되며, 그 결과로 무게는 증가하지만 부피는 별로 늘어나지 않습니다.
설탕은 녹아서 원자들이 물 안에 있는 원자 사이의 공간에 자리 잡게 되며 이것이 바로 용액입니다.

물에 녹지 않는 금

금은 비중이 19.5로서 물보다 열아홉 배나 무거우므로 결코 물속에서 녹을 수가 없습니다.
고운 가루 상태에서 금은 아교질의 상태(교상물질, 콜로이드)를 취하며 물에 첨가되면 용액처럼 보이는 색조를 띠게 됩니다.
입자들이 더 곱게 만들어짐에 따라 부피가 상당히 늘어나게 되고 결국 그 입자들은 물속에서 부유물로서 뜰 수 있는 ‘외견상’의 비중을 갖게 되며 - 즉 실제 비중은 변하지 않지만 고운 가루가 되어 물에 뜰 수 있게 됨 - 물이 어두운 적색을 갖게 만듭니다.
물속에서 ‘아교질 상태’에 있는 금은 입자의 크기가 10미크론(약 0.01mm)정도입니다.
또한 물과 1대 100,000의 비를 이루는 희석액을 이루게 될 때 그것은 빨간 장미 빛을 띠게 된다고 과학자들은 기록합니다.
이 같은 사실로부터 우리는 먼지만한 크기의 금가루가 물을 ‘피’와 같은 빛깔을 내게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최소한 이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마실 만큼 충분한 양의 물을 핏빛으로 물들이기 위해 필요한 그 금송아지가 그리 크지 않아도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콜로이드 상태의 금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지만, 모세가 이용했던 방법이 광야와 같은 환경 하에서는 최상의 것이었을 것입니다.
불에 태움으로써 금의 불순물이 제거될 수 있었습니다. 금의 유연성을 이용해서 그것을 찧으면 금박의 얇은 판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금박은 아주 얇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금박 10만 장을 합쳤을 때 두께가 1cm 정도가 될 수 있도록 얇게 만들 수도 있으며 이것은 곧 0.00001mm 두께의 금박 종이를 만들었음을 의미합니다.
그 뒤 그 금박 종이를 가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그 기사는 계속해서 모세가 그것을 콜로이드 상태의 금 입자 크기가 되도록 즉 먼지처럼 가는 입자가 되도록 갈았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을 시냇물에 뿌리자 물이 핏빛 같은 붉은 색을 띠게 되었습니다. 불순물이 태워져서 제거되었으므로 이 물은 전혀 독성이 없으며 병원균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물은 피처럼 붉은색을 띠게 되었고 정결케 하는 특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모형으로 꼭 들어맞는 것이었습니다.2)


* 자료출처 / 예수님의 피
file:///C:/Users/Victor/Downloads/62_%EC%98%88%EC%88%98%EB%8B%98%EC%9D%98%ED%94%BC%EB%B0%94%EB%A1%9C%EC%95%8C%EA%B8%B0.pdf



어버이주일


묵상 자료 / 12-06-2021(월) 
* 자료출처 - 사사기, 오늘의 묵상(2021 4/4분기

어긋난 모정(母情)  시스라의 어머니
사사기 5:28-31


28. 시스라
의 어미가 창문으로 바라보며 살창에서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고 그의 병거 바퀴가 어찌하여 더디 구는고 하매
29. 그 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그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30.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 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놓은 채색옷이리로다 곧 양편에 수놓은 채색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31.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시스라(Sisera)
뜻 : 전장을 배열함

하솔 왕 야빈의 군대장관(삿 4:2). 드보라와 바락의 군사에게 패하여 달아나다가 야엘에게 암살되었다(삿 4:12-24). 그러나 다른 곳에는 시스라 자신이 독립한 왕인것 처럼 되어 있다(삿 5: 28, 30, 삼상 12:9).

* 시스라는 굽어진 모정을 교훈합니다.
내 아들이 소중하면 다른 자식들도 소중한 자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Grhard Tersteegen
게르하르트 터스티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은혜로운 임재를
우리 안에 새롭게 일깨워 주십시오
그리하여 인생의 순례 길을 가는 동안
우리 안에 평화와 진실함과 용기가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당신을 굳세게 붙들게 하시고
당신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과 연합된 우리의 마음이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하는 무슨 일에든지
항상 이어지게 해주십시오

우리에게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마음 속에서 들리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시고
당신께서 주시는 경고를 묵살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보십시오.
우리의 가난한 마음을
당신께 제물로 드립니다.
오서서 당신의 지성소를 채워 주시고
그곳에 더러운 것이 들어가지 못하게 지켜 주십시오

오 사랑의 주님,
당신의 거룩한 영이 우리의 모든 영혼 속에 강같이 흐르게 하시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까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아멘.




어머니의 기도

이해인(1945-)


낡은 기도서와
가족들의 빛 바랜 사진
타다 남은 초가 있는
어머니의 방에 오면

철없던 시절의
내 목소리 그대로 살아 있고
동생과 소꿉놀이하며 키웠던
석류빛 꿈도 그대로 살아 있네

어둡고 고달픈 세월에도
항상 희망을 기웠던
어머니의 조각보와
사랑을 틀질했던
어머니의 손재봉틀을 만져보며

이제 다시
보석으로 주워담는
어머니의 눈물
그 눈물의 세월이

나에겐 웃음으로 열매 맺었음을
늦게야 깨닫고 슬퍼하는
어머니의 빈방에서
이젠 나도 어머니로 태어나려네



어머니의 기도

이 땅에는
오늘도
기도하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자식을 위해
눈물로 기도 드리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오늘만이 아니라
영원까지 계속될
간절한 기도입니다.

(지산 고종만·시인, 전남 구례 출생)


어머니의 기도

캐리 마이어스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묻는 말에 일일이 친절하게
대답해 주도록 도와주소서.
면박을 주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소서.

아이들이 우리를 공손히
대해 주기를 바라는 것같이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꼈을 때
아이들에게 잘못을 말하고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아이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비웃거나 창피를 주거나
놀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비열함을 없애 주시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어머니의 기도

너에게 내 몸을 굽힌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야, 어쩌면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니? 이 작은 것아.
너는 많은 사람과 비슷하지만,
그러나 나는 분명히 믿는다.
너를 쳐다보지 않고 네 목소리만 듣고도
수천의 사람 가운데서 너를 알아볼 수 있고,
귀 기울이지 않아도 나의 젖가슴을 빠는
너의 입술을 알 수 있음을.
이 지상에서 너는 나의 유일한 존재니까...

나는 말 없이도 너를 이해하고,
큰소리 없어도
너는 깊은 잠에서 나를 깨운단다.
단지 하나의 눈빛과 하나의 소망으로.

나의 아이야, 너는 나의 인생에 진실하고도 유일한 진리란다.
너는 나에게 슬픈 기억이며, 다정한 그리움이며,
희망이요, 확신이란다.

아이야 행복하거라.
(야누쉬 코르착·폴란드 고아들의 아버지)


+ 어머니의 기도

어머니라는 특권에 대해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 사랑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은총에 대해.
그들에게 당신에게서 받은 생명을 나누고
그들을 돌보아서 성장시키고
옳은 길을 걷도록 교육시키며
그들에 대한
당신 사랑의 소중한 도구가 되는
이 황송한 은총에 대해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이 제게 두신 신뢰,
이 세상의 모든 보석보다 더 소중한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도록
제가 맡겨놓으신 당신의 신뢰에 대해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가족들에 대해
그리고 사랑으로 우리를 지원하는 모든 이에 대해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매일, 우리가 받는 헤아릴 수 없는 선물들에 대해
특별히, 사랑하고 용서하며
서로를 돌볼 수 있는 힘을 주심에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소홀했던 시간들에 대해
당신께 용서를 청합니다
저의 약함과 배은망덕과 죄들을 용서하십시오.

당신은 결코 저를 눈밖에 두지 않으신다는 것,
당신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부드러우심으로
저의 사랑하는 아이들을 살피신다는 것을
늘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당신이 저의 창조주이시기에
제가 바로 저 자신인 모든 것
제가 사랑하는 모두가 당신의 선물입니다.
당신은 저의 아버지이시고
저의 구세주이시며, 저의 친구이십니다
그러기에
당신 사랑이 결코 저를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께 저의 신뢰를 둡니다
당신으로부터 저의 아이들을 받았사오니
당신께 그들과 그들의 미래를 맡겨드립니다.

당신 손의 보호 아래
저희를 지켜 주십시오.

더 이상 눈물이 없고
더 이상 분열도
악의 그림자도 없는
행복한 본향에 이를 때까지
저희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커다란 사랑으로
당신이 마련하신 영원한 집에 이를 때까지.
(조만나스·신부)


+ 엄마인 자신을 주님께 바치는 기도

주님, 제 아이들에게
현명하고 선량한 어미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이들이 힘들고 지칠 때 제게 돌아와
쉴 수 있도록 늘 평화를 유지하게 해주시고
아이들이 분별력 없이 행동하거나
삶을 불성실하게 살아갈 때
엄격한 질책으로 바로잡을 수 있도록
강인함을 주소서

저는 실행하지도 않는 것들을
말로만 가르치지 않게 해주시고
제가 원하고 이루기를 바라는 바를 밀어붙여
아이들의 꿈을 짓밟지 않게 해주소서.

가족들에게는 평온함과 따뜻한 애정,
분별 있는 행동으로 울타리가 되게 하시고
이웃들에게는 나눌 수 있고
용서를 청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이 되게 해주소서.

주님, 제 가족만 감싸며 친지들의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고 그들의 기쁨을 질투하지 않으며
우주와 세상을 껴안을 수 있는
품 넓은 어미가 되게 해주소서.
(미리암. H.·미국 생태 영성가이며 동화작가)


+ 어머니의 기도

천상에 계신 이여 나의 기도 들어주소서
그 사람을 사랑하니 그이를 내게 주소서
이 내 마음 진실하니 이 내 사랑 믿으소서
그이의 불행한 모든 허물을
목숨 다 바쳐 사랑하리니
도와주소서. 아직은 어둠 속에 울고 있나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굽어보소서
내 가슴엔 그 사람의 이름만 가득합니다.
사랑으로 생긴 슬픔 내 것으로 받으리니
사랑을 맹세한 내 입술로는
세상 누구도 허물지 않으리
간청하오니 소중한 인연으로 살게 하옵소서.
(작자 미상)


+ 어머니의 기도

어머니는 칠순이 가깝도록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양잿물로 박박박 문질러
반짝반짝 빛나는 놋그릇에 찰랑찰랑 맑은 물을 담아
장독대에 두고, 달 신에게, 산 신에게, 물 신에게
집 신에게 두 손이 닳도록 빌고 또 빌었습니다.

아버지 병고로 거동 못하실 때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빌고 또 빌었는데
아버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떠나가셨습니다.

자식들이 말썽을 부릴 때도 기도를......
자식들이 돌아왔을 때도 기도를......
자식들이 하나, 둘 품을 떠날 때도 기도를......
아들이 수도원에 간다고 고집을 부릴 때도 눈물의 기도를
정화수에 담아 빌고 또 빌었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당신의 생신도 잊고
지내는 수도원 아들 뭐가 그리 예쁜지, 아들 잘 살라고
예수님만 뺀 당신이 좋아하는
모든 신들에게 여전히 빌고 또 빌더니,

아들 종신서원 후, 보이지 않게 이끌어주신 분의
손길에 이끌려 세례를 받고...
일년에 한두 번 아들이 당신을 찾아올 때면,
잠든 아들 머리맡에 앉아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이름만 부르며 기도를 합니다

어머니, 당신의 그 기도 덕분에 제가 자랐고,
어머니, 그 기도 덕분에 예수님을 나의 신부요,
신랑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당신 품안에서 먹던 젖처럼
제 푸근한 양식입니다.

그때에도, 또 지금도 한결같이......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봉하 디모테오·수사)






어머니

 이 해 인


당신의 이름에선
색색의 웃음 칠한
시골집 안마당의
분꽃 향기가 난다

안으로주름진 한숨의 세월에도
바다가 넘실대는
남빛 치마폭 사랑

남루한 옷을 겇친
나의 오늘이
그 안에 누워 있다

기워 주신 꽃골무 속에
소복히 담겨 있는
幼年의 추억

당신의 가리마같이
한 갈래로 난 길을
똑바로 걸어가면

나의 연두 갑사 저고리에
끝동을 다는
다사로운 손길

까만 씨알 품은
어머니의 향기가
바람에 흩어진다.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디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바보 천사

- 김원석(아동문학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좋아도
안 좋은 척

맛있어도
맛없는 척

엄마는
엄마는
그렇게
키웠다.


히말라야의 노새
- 박경리(소설가, 1926-2008)


히말라야에서
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
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박범신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아아
저게 바로 토종이구나




어머니
- 한하운(1920-1975)

어머니
나를 낳으실 때
배가 아파서 울으셨다

어머니
나를 낳으신 뒤
아들 뒀다고 기뻐하셨다

어머니
병들어 죽으실 때
날 두고 가는 길을 슬퍼하셨다.

어머니
흙으로 돌아가선
말이 없는 어머니.


 밥
- 이무원(1942-)

어머니 누워 계신 봉분(封墳)
고봉밥 같다

꽁보리밥
풋나물죽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데
늘 남아도는 밥이 있었다

더 먹어라
많이 먹어라
나는 배 안 고프다
남아돌던
어머니의 밥

저승에 가셔도 배곯으셨나
옆구리가 약간 기울었다

어머니
- 정한모(1923-1991)

어머니
지금은 피골만이신
당신의 젖가슴
그러나 내가 물고 자란 젖꼭지만은
지금도 생명의 샘꼭지처럼
소담하고 눈부십니다.

어머니
내 한 뼘 손바닥 안에도 모자라는
당신의 앞가슴
그러나 나의 손자들의 가슴 모두 합쳐도
넓고 깊으신 당신의 가슴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머니
새다리같이 뼈만이신
당신의 두 다리
그러나 팔십 년 긴 역정(歷程)
강철의 다리로 걸어오시고
아직도 우리집 기둥으로 튼튼히 서 계십니다.
어머니!


어머니
- 조태일(1941-1999)

어머니

열일곱에 시집오셔
일곱 자식 뿌리시고
서른일곱에
남편 손수 흙에 묻으신 뒤,

스무 해 동안을
보따리 머리에 이시고
이남 땅 온 고을을
당신 손금인 양 뚝심으로 누비시고
훤히 익히시더니,

육십 고개 넘기시고도
일곱 자식 어찌 사나
옛 솜씨 아슬아슬 밝히시며
흩어진 자식 찾아
방방곡곡을 누비시는 분.

에미도 모르는 소리 끄적여서
어디다 쓰느냐 돈 나온다더냐
시 쓰는 것 겨우 겨우 꾸짖으시고,

돌아앉아 침침한 눈 비비시며
주름진 맨손바닥으로
손주놈의 코를 행행 훔쳐주시는 분.

(조태일·시인, 1941-1999)


+ 어머니, 나의 어머니

내가 내 자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나직이 불러본다 어머니
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
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
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
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
동트는 아침마다 불러본다 어머니
아카시아 꽃잎 같은 어머니
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
종말처럼 개벽처럼 손잡는 어머니

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
황토 벌판 향해 불러본다 어머니
이 세계의 불행을 덮치시는 어머니
만고 만건곤 강물인 어머니
오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
(고정희·시인, 1948-1991)  


+ 어머니  

그럭저럭 견딜 만한
인생살이 같다가도

세상살이가 힘겨워
문득 쓸쓸한 마음이 들 때

나지막이 불러보는
세 글자





당신의 그 여린 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지어낸

이 몸
이 소중한 생명이기에

꽃잎 지듯
쉽게 무너질 수는 없어요
(정연복·시인, 1957-)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가 보고싶다 외할머니가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시인, 강원도 평창 출생)


+ 나에게 만일

나에게 만일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아버지를 만났기 때문이다

내게 부족한 게 있다면
그 아버지 만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이승신·시인)


+ 아비
    
밥 대신 소금을 넘기고 싶을 때가 있다
밥 먹을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스스로에게 다그치며
굵은 소금 한 숟갈
입 속에 털어넣고 싶을 때가 있다
쓴맛 좀 봐야 한다고
내가 나를 손보지 않으면 누가 손보냐고
찌그러진 빈 그릇같이
시퍼렇게 녹슬어 있는 달을 올려다보며
내가 나를 질책하는 소리,
내 속으로 쩌렁쩌렁 울린다
이승이 가혹한가,
소금을 꾸역꾸역 넘길지라도
그러나 아비는 울면 안 된다
(김충규·시인, 1965-)


+ 아버지의 등을 밀며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 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어쩔 줄 모르고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 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손택수·시인, 1970-)


+ 아버지의 안경

무심코 써 본 아버지의 돋보기
그 좋으시던 눈이
점점 나빠지더니
안경을 쓰게 되신 아버지,
렌즈 속으로
아버지의 주름살이 보인다.

아버지는
넓고 잔잔한 바다 같은 눈으로
자식의 얼굴을 바라보신다.

그 좋으시던 눈이 희미해지고
돋보기 안경을 쓰시던 날
얼마나 가슴 찡하셨을까.

돋보기 안경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아버지의 주름살이
자꾸만 자꾸만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이탄·시인, 1940-)


+ 아버지의 밥그릇  

언 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봉분 같은 아버지 밥그릇이 쓰러졌다
늦은 밤 발씻는 아버지 곁에서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를 보며
나는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고서야 이불은 걷히고
사각종이 약을 펴듯 담요의 귀를 폈다
계란부침 한 종지 환한 밥상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남겼고
우리들이 나눠먹은 그 쌀밥은 달았다
이제 아랫목이 없는 보일러방
홑이불 밑으로 발 밀어 넣으면
아버지, 그때 쓰러진 밥그릇으로
말없이 누워 계신다
(안효희·시인, 1958-)


+ 한 벌의 양복

한 벌의 그가 지나간다
그는 늘 지나가는 사람  
늘 죄송한 그가
늘 최소한의 그가  
목이 없는 한 벌의 양복이
허공에 꼬치 꿰인 듯
케이블카처럼 정확한 구간을 지키듯
신호등을 지나 빵집을 지나
장미연립을 지나
가끔 양복 속의 목을 꺼내    
카악- 가래를 뱉기도 하며
한 벌의 양복으로 지나간다
대주 연립 206호 앞에서 양복이 멈췄다
길게 초인종을 눌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양복이 열쇠를 비틀어 철문 한 짝을 떼어내자
철문 속에 안전하게 보관된 가족들이
TV를 켜놓고 웃고 있었다
가족들이 양복을 향해 엉덩이를 조금 떼더니
이내 TV 속으로 빠져들었다  
양복이 조용히 구두를 벗었다
한 벌의 그가 양복을 벗었다
모든 것을 걸어두고 나니
그저 그런 늙은 토르소에 지나지 않았다
한 벌도 아닌 양복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그가
어두운 식탁에서 최대한의 정적을 식사한다
(손순미·시인, 1964-)


+ 저녁식사 풍경

어금니 반쯤은 빠지고
남은 이도 흔들리기 때문에
좋아하는 총각김치를 와드득
깨물어 먹지 못하는 아버지
맛있는데 맛있는 건데
허탈하게 말하며, 그 총각무같이
씁쓸한 웃음을
흐흐흐 흐흐흐
며느리는 총각김치를 맛있게 먹다가
잠시 입맛을 잃었고
아버지는 왜 안 먹냐며
자꾸 권했다
맛있어, 먹어봐 먹어
흐흐흐 흐흐흐

우린 간신히 밥숟가락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음식의 氣만 빨아먹는 귀신같이
헛것을 먹고 있는 아버지의 웃음
어느새 그에게도 죽음의 힘이 스몄구나
오싹한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아무도 우겨넣은 밥을 넘기지 못했다
(윤의섭·시인, 1968-)


아버지와 숫돌
- 백영호(1955-)

아버지는 날마다
소먹이는 꼴을 베어내는
낫을 숫돌에 가셨다
아버지가 낫을 가실 때는
수도승처럼 보였다

울 아버지는
너무나 진지하고 엄숙하게
얼굴에 땀방울 쏟으시며
정성 다해 힘을 들여 낫을 가시는 것을
어째서 그리도 반복하시는 것일까

가끔은 빼먹어도 되고
며칠은 아니 갈아도 되실 텐데
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낫을 가셔서 푸른 날을 세우셨다

이제
저 멀리 북간도보다도 머나먼
피안의 세계에서 안식하시는 아버지
그리워 할 적마다
내 눈가에 숫돌이 보인다

숫돌은 스스로 자기 몸을 헐어서
낫의 푸른 날을 살렸고
아버지는 스스로 당신 몸을 갈아서
튼튼한 울타리를 치신 뒤

숫돌에 낫을 매일 가시듯
하루도 빠짐없이 자식들 향해
지금도 사랑스런 웃음 띄어 지켜보신다



아버지
- 이문조

아버지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힘들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아프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돈이 없어도 돈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돈이 많은 줄 알았습니다

이제
내가 아버지 되어보니
우람한 느티나무처럼
든든하고
크게만 보였던
아버지
그 아버지도

힘들 때가 있다는 것을
아플 때가 있다는 것을
돈 없을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장이니까
가족들이 힘들어할 까봐
가족들이 실망할 까봐

힘들어도
아파도
돈 없어도
말을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어버이주일

레위기 19:32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인간에게는 자신을 이 세상에 존재(存在)하게 만들어준 두 주체로서 무조건적으로 순종하여야 할 대상이 둘 있다.
이 두 주체가 없었다면 인간은 그 누구도 세상에 태어나 살아갈 길이 없다.
그것은 바로 천지 만물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과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살과 피를 나에게 나누어 주심으로 나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며 우리를 끝없이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신다.
또한 부모님도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찾을 길 없는 헌신으로 우리를 낳고 키워 주신다.
따라서 인간은 그분들이 나에게 갖는 존재론적 의미와 아울러 그분들이 자신에게 쏟아주신 사랑으로 인하여 그 분들께 복종하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늙고 죽기 마련이다.
그리고 노년기(老年期)에는 영육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식된 자는 부모님의 은혜를 십분지 일이나마 보답하는 기회로서, 나아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서도 부모님을 기리고 봉양하여야 한다.
성경도 거듭하여 효도(孝道)와 순종의 당위성 및 그에 따른 상급을 하나님의 직접적 계명으로 규정하고 있다(출 20:12; 엡 6:1-3).

어버이의 날을 정하여 부모의 은혜를 새삼 기리고 부모께 대하 자녀로서의 자신의 태도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절기가 교회에 있는 것은 매우 선한 전통이라 하겠다.
물론 일년 365일 부모를 기려야 하겠지만 이 날을 기점으로라도 부모께 대한 자세를 새로이 가다듬어야 하겠다.

어버이 주일의 원래 명칭은 어머니 주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본래 취지가 아래 유래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며 어머니의 은혜를 되새기기 위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와 더불어 부모로서 아버지의 역할과 은혜도 항상 기억해야 될 것이므로 이날을 어버이 주일로 부르는 것은 타당하다 할 수 있다.

어머니 주일이 어버이 주일로 바꾸어진 유래

어버이 주일은 본래 어머니 주일이라는 명칭으로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웹스터 교회에는, 이 교회 주일 학교에서 26년간이나 꾸준히 봉사해 온 자비스(Jarvis)라는 부인이 있었다.
훌륭한 주일학교 교사였던 그녀가 나이들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녀의 가르침을 잊지 못한 제자들이 선생님인 자비스 부인을 기념하기 위한 추도식을 갖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멀리 사는 자비스 부인의 딸을 추도식에 초청했다.
뜻밖의 소식을 접한 자비스 부인의 딸 안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초대에 응했다.
추도식이 있던 날, 식순의 하나로 안나에게 어머니인 자비스 부인에 대하여 이야기할 기회를 주었다.
그때 안나는 그녀의 어머니인 자비스 부인이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경 말씀을 가르치면서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에 감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늘 생각해 보라고 했던 것에 대하여 말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카네이션 꽃을 추도식 제단에 바쳤다.
추도식에 모였던 사람들은 자비스 부인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안나의 말과 태도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추도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이 날을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는 날로 정할 것을 그 자리에서 결의 하였다.

이를 계기로 시작된 어머니 날 운동은 특히 부인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백화점 왕으로 불리는 존 와너메이커도  이 운동의 취지에 적극 동의하여 그 활동을 도왔다.
그는 1908년 5월 둘째 주일에 자신이 경영하는 백화점에서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하는 모임을 주최하기도 했다.

미국 역사에 있어서 험난했던 시대의 어머니들은 지혜와 용기로 가정 생활을 이끌어 감으로 현재의 미국을 이룩하는데 큰 힘이 되었었다.
따라서 미국인들에게 '어머니 날' 운동은 금새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 여론이 형성되자 1914년 미국 국회는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주일로 정하여 이 날을 기념일로 지키기로 결정하였다.
어머니 주일은 그후에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 또한 중요함이 강조되면서 그 명칭이 어버이 주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지켜지고 있다.

한국에서 어버이 주일이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1930년 6월 15일 구세군에 의해 어머니 주일을 지키면서부터 였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어머니 주일의 정신을 일반 대중에게도 전한다는 의미에서 5월 8일 (1955년 당시 어머니 주일)을 어머니날로 제정, 공포하였다.

그후 교회에서는 1960년 어머니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개칭하여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의 은혜도 기리는 날로 삼았으며 그 이후 1974년에 이르러 정부에서도 어머니 날을 어버이 날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어버이 주일은 일반인들의 기념일로 함께 지켜지고 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에베소서 6:1-3)   

 

십계명의 제 1계명부터 제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이며 제 5계명부터 제 10계명까지는 인간과의 관계에 적용되는 계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계명 다음으로, 인간과 관련된 계명중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이러한 제 5계명의 위치는 육신의 부모에 대한 공경, 즉 효도의 중요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효(孝)가 왜 중요한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1절)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부모에 대한 순종은 곧 이를 명하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② 인간의 도리입니다(2절) -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 주신 부모님께 순종하며 효도하는 것은 가지가 그 가지를 낸 뿌리, 즉 그 근본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이는 인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③ 가정과 사회 질서의 기초가 됩니다(3절) - 부모님 뿐 아니라 나아가 모든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위와 아래를 명백히 구분하여 인정하는 것으로 이는 가정과 사회의 질서를 세우는 기초가 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명령하시면서 이와 더불어 이 말씀에 순종하면서 장수와 풍요의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요즘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부모님께 대한 효도를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은 진정 어떻게 부모님께 대해왔는지 반성해 봄과 동시에 진정 우리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를 다짐하는 어버이 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효심(누가복음 2:51-52)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처럼 지극히 높으신 신분을 가지셨으나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부모님을 어떻게 섬기셨는지 살펴 보도록 합시다.

 

  ① 순종하며 받드셨습니다(눅 2:51) - 예수님은 모든 행위에 있어 부모님의 권위를 인정하며 섬기는 자세를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가나 혼인 잔치에서 자신을 드러낼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요구에 응하여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첫 번째 이적에서도 잘 드러납니다(요 2:3-8)

  ② 끝까지 보살피셨습니다(요 19:26,27) -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는 순간까지도 어머니를 염려하여 당신 대신 어머니를 돌봐줄 것을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식으로서 행할 봉양의 의무를 죽는 그 순간까지 생각하셨습니다.

 

  당신은 혹 당신의 부모님이 못 배우고, 권력이나 명예가 없다고 해서 무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은 영적인 구속 사역의 바쁘신 중에도 육신의 부모님도 잘 섬기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을 본받아 열심히 부모님을 섬기며 자신의 생각이나 주관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며 봉양하는 자녀가 되도록 합시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삼상 1:1-28)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요 대선지자로서 이스라엘 왕정 시대 초기의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섬겼으며 죽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충성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사무엘 뒤에는 그의 어머니 한나가 있었습니다. 하나가 기도의 응답으로 사무엘을 갖게 되고, 그를 하나님께 바치는 과정을 통해 과연 위대한 인물의 어머니의 모습은 어떠했으며,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① 인내하는 사람이었습니다(6-8절) -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괴롭히는 브닌나로 인하여 그녀는 많은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쉽게 요동하여 대적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습니다.

  ②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10,11절) -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한나는 더욱더 열심히 하나님을 찾았으며 자식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서원했습니다.

  ③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26-28절) - 마침내 기도의 응답으로 사무엘을 갖게 되었고, 사무엘을 낳자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하였던 것을 주저함 없이 실천하였습니다.

 

  어머니 한나의 이러한 영향으로 사무엘은 인내할 줄 아는 강한 사람, 하나님과 깊이 교제를 나누는 신실한 사람,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행동하는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부모된 우리의 모습은 알게 모르게 자녀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우리 또한 한나와 같은 바람직한 신앙인의 모습을 갖추어 자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부모가 됩시다. 

(1) 부모의 의무

  •   자녀를 양육함(골 3:21)
  •   자녀를 교육함(신 6:7; 잠 22:6)
  •   자녀를 훈계함(잠 23:13)
  •   자녀의 잘못을 징계함(잠 13:24)
  •   자녀를 위로함(사 66:13)
  •   자녀를 다스림(딤전 3:4)
  •   자녀를 사랑함(딛 2:4)

 

(2) 자녀의 의무

  •   부모님께 순종함(창 28:7)
  •   부모님을 공경함(출 20:12)
  •   부모님을 기쁘게 함(잠 15:20)
  •   부모님을 사랑함(창 46:29)
  •   부모님을 돌봄(창 45:9-11)
  •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함(딤전 5:4)

 

(3) 자녀에 대한 부모의 영향

 

    1. 좋은 영향

  •   바른 행위의 본을 보임(왕상 9:4)
  •   신앙의 본을 보임(대하 17:3,4)
  •   정직의 본을 보임(대하 24:4)

 

    2. 악한 영향

  •   악행의 본이 됨(왕상 22:52)
  •   자식을 꾀어 악한 길로 행하게 함(대하 22:2,3)
  •   세상 풍속을 쫓음(엡 2:2)
  •   우상 숭배의 본이 됨(렘 9:14; 겔 20:18)
  •   불순종의 본이 됨(암 2:4)

 

(4) 자녀 교육의 바른 자세

  •   자녀는 하나님이 준 선물이라는 인식을 가짐(시 127:3)
  •   어렸을 때부터 교육시켜야 함(출 2:7-9)
  •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함(잠 22:6,15)
  •   부지런히 가르침(신 4:9)
  •   항상 언제든지 가르침(신 11:19)
  •   사랑의 채찍으로 가르침(신 11:19)
  •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만 하지 않음(행 20:32)
  •   자발적으로 주님을 따르도록 가르침(요 6:60-71)
  •   먼저 믿음의 본을 보여줌(딤후 1:5)

 

(5) 부모의 징계

  •   행할 바를 알게 함(잠 22:6)
  •   자녀의 미련을 쫓아냄(잠 22:15)
  •   자녀의 영혼을 구원케 함(잠 23:13,14)
  •   자녀의 유익을 위해 필요함(히 12:8-10)
  •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함(엡 6:4)
  •   악한 마음으로 하면 안됨(잠 19:18)
  •   노엽게 해서는 암됨(골 3:21)
  •   생명의 길로 인도함(잠 10:17)

 

(6) 부모의 징계에 대한 자녀의 자세

  •   훈계를 지켜 행함(잠 13:18)
  •   명철을 얻기에 주의함(잠 4:1)
  •   업신여기지 않음(잠 15:4)
  •   귀 기울여 들음(잠 23:12)

 

(7) 부모의 잘못

  •   편애(창 25:28)
  •   허영(에 5:11)
  •   자녀의 죄를 방치함(삼상 3:13)
  •   자녀를 노엽게 함(엡 6:4)

 

(8) 성경의 가정관

  •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창 2:22-25)
  •   사회의 기본 단위(수 13:15-31)
  •   생명과 출산과 보호처(창 1:22)
  •   자녀 양육의 터전(신 6:6-9)
  •   신앙 교육의 터전(신 4:9)
  •   기쁨과 안식의 처소(시 128:3)
  •   노년의 의지처(딤전 5:8)

 

(9) 성경에 나타난 부모의 실례

  •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창 18:18,19)
  •   자식을 편애한 부모 이삭과 리브가(창 25:28)
  •   경솔히 맹세한 아버지 입다(삿 11:30-39)
  •   거룩한 어머니 한나(삼상 1:19-28)
  •   엄하지 못한 아버지 엘리(삼상 2:22-25;29)
  •   자식을 잃고 비통해하는 아버지 다윗(삼하 18:32,33)
  •   정직히 행한 요담의 아버지 웃시야(대하 27:2)
  •   딸에게 살인을 시킨 어머니 헤로디아(마 14:8)
  •   자식을 용서한 탕자의 아버지(눅 15:17-24)

 

(10) 효를 행한 자녀의 실례

  •   식물을 주어 공궤(供饋)한 요셉(창 47:12)
  •   환난중에 가족을 피신시킨 다윗(삼상 22:3,4)
  •   모친을 위해 자리를 베푼 솔로몬(왕상 2:19)
  •   부모에게 먼저 예의를 갖춘 엘리사(왕상 19:20)
  •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한 요나답의 아들(렘 35:8)
  •   부모님께 순종하며 받든 예수(눅 2:51)

 

(11) 노인을 공경해야 할 이유

  •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자이기 때문임(레 19:32)
  •   연약한 자이기 때문(신 28:50)
  •   성숙한 지혜를 나타내는 자이기 때문임(왕상 12:6-8)
  •   하나님을 경화하는 삶을 산 자이기 때문임(시 34:11-14)
  •   의로운 길을 걸어온 자이기 때문임(잠 16:31)
  •   후손들을 돌본 자이기 때문임(딤전 5:4)
  •   영적 교훈을 가르쳐 주는 자이기 때문임(딤후 1:5)
  •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이기 때문임(벧후 1: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