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brew



The Most Deeply Sacred Number

Pretty much anywhere you look in the Bible you find seven. The number seven is mentioned over 700 times in Scripture. The Book of Revelation alone contains dozens of sevens – churches, bowls, lamps, seals, and the list goes on. In ancient Israel, the number seven was thought to be a symbol of divine perfection. As opposed to other numbers which derive their power from human endeavors, seven comes from God.

The Sevenfold Spirit of the Lord

What evidence is there for God’s identity being related to the number seven? If we look at the famous “branch of Jesse” prophecy in Isaiah chapter 11, we find that the Holy Spirit will come to rest upon the Messiah in seven distinct facets:

1. “The Spirit of the Lord shall rest on him רוּחַ יְהוָה ruaḥ adonai
2. The spirit of wisdom רוּחַ חָכְמָה ruaḥ hohma
3. And understanding וּבִינָה ruaḥ bina
4. The spirit of counsel רוּחַ עֵצָה ruaḥ etza
5. And might וּגְבוּרָה ruaḥ gevura
6. The spirit of knowledge רוּחַ דַּעַת ruaḥ da’at
7. And the fear of the Lord” (Isa. 11:2) וְיִרְאַת יְהוָה ruaḥ yirat adonai

Discover the Power of Hebrew

Collectively, these attributes form the sevenfold essence of the Holy Spirit. When read in translation, this might seem like just a list of abstract qualities. But in the original Hebrew, the words form a spiritual package, exploding with power. When you can read the Word of God in the original Hebrew, new details suddenly burst with meaning. Enroll in our online Biblical Hebrew course today and allow yourself to appreciate the Bible in its fullness!


가스라이팅(Gaslighting)

가스라이팅(Gaslighting)


1938년 영국에서 상영된 연극 《가스등 Gaslight에서 유래했다.

주인공인 폴라는 세계적인 성악가인 이모 앨리스 앨퀴스트가 죽자 거액을 상속받는다.
유산을 노리고 폴라와 결혼한 남편 그레고리는 폴라가 남편이 선물한 브로치를 잃어버리거나 그림을 훔친 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의심하고 몰아가기 시작한다.

실제로는 그레고리가 브로치를 숨기고 그림을 옮긴 것이지만, 사랑하는 남편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 없었던 폴라는 점차 자신의 기억력을 의심하기 시작하며 심리적으로 불안해진다.

그레고리는 밤마다 외출하는 척하며 저택 어딘가에 있는 앨리스의 보석을 찾기 위해 다락방을 뒤진다.
다락방 불이 켜질 때마다 폴라 방의 가스등 불빛은 희미해진다.
매일 밤 어두워지는 가스등 불빛과 발소리를 이상하게 여긴 폴라가 그 사실을 말하자 그레고리는 폴라가 환각을 보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폴라를 정신이상자로 몰아세운다.
폴라는 점점 혼란스러워하지만, 결국 앨리스의 팬이었던 경위 브라이언의 도움을 받아 그레고리의 정체를 밝히고 자신을 되찾게 된다. 연극은 1940년 영국에서 영화화됐으며 1944년 미국 헐리우드에서 잉글리드 버그만 주연으로 리메이크 돼 인기를 끌었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가스라이팅은 주로 연인이나 가족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다.
또한,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난다는 점도 특징이다.

미국의 심리치료사 로빈 스턴은 저서 《가스등 이펙트》에서 상대방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려는 소망과 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질 때, 가스라이팅에 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랑하는 사람, 나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상대방이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내용을 불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그 말에 약간의 진실이 포함돼 있다면 더더욱 상대방의 말을 믿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을 통해 내 생각과 관점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며 피해자 마음속에서 가해자의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

진행 단계

로빈 스턴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은 크게 3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는 불신, 2단계는 자기방어, 3단계는 억압이다.

스턴은 당연한 사실에 대해 상대방이 의문을 제기할 때, 혼란스러워하며 그를 설득하려 한다면 이미 1단계에 진입한 것이라 설명한다. 2단계는 피해자가 아직 자기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비난으로 인해 지친 상태다.
3단계는 피해자의 생각과 감정이 가해자에게 예속된 상태다.

피해자는 자존감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로 자포자기한 채 자신의 판단력과 감정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스턴은 이 단계를 ‘영혼을 파괴하는 단계’라 표현한다.
이 단계에 이른 피해자는 자신을 비난하고 무기력해지거나 우울증을 겪게 된다.
또한, 사회적으로 고립되며 가해자에게 벗어나기 힘든 상태가 된다.

가해 방식

가스라이팅 가해 방식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피해자의 말을 듣지 않거나 경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반드시 계획적이거나 의식적으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소유욕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피해자의 기억을 무조건 불신하는 행위, 생각을 의심하기, 실제 발생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척하거나 자신이 했던 약속을 부인하기, 상대방의 감정을 하찮게 여기는 행동 등도 가해 방식의 하나일 수 있다.


가스 라이팅이란?

상황을 조작하는 등의 방식으로 타인의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행위.
국립국어원의 대체어는 '심리 지배'이다.
넓게는 상대방을 통제하기 위해 그가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행위 전반을 일컫는다.
연인이나 가족 등 친밀한 관계에서 주로 나타난다고 알려졌다.
미국의 심리치료사 로빈 스턴(Robin Stern)은 저서 《가스등 이펙트》에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조종하려는 가해자와 그를 이상화하고 그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피해자가 만들어내는 병리적 심리 현상’을 ‘가스등 이펙트(Gaslight Effect)’라 설명했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거짓말, 사실에 대한 부정, 모순된 표현, 비난 등을 통해 상대방 스스로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은 점차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며 가해자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가해자는 이런 심리적 상황을 이용해 타인의 행동을 통제하고 지배력을 행사한다.

가스라이팅을 겪은 피해자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겪으며 사회적 관계에서 점차 고립된다.
특히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은 피해자 자신의 감정과 생각, 인지 경험까지 믿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심각한 정서적 학대에 해당할 수 있다.





 



엘리사(Elisha) 하나님은 구원 / 엘리야(Elijah) 여호와는 하나님


엘리사(Elisha) / 하나님의 구원

소명 : 아벨므홀라인 사밧의 아들로 소12겨리로 밭을 갈고 있을 때 엘리야가 지나 가다가 겉옷을 벗어던지며 부르니 농구를 불살라 소한 겨리를 잡아 백성에게 주어 먹이고 엘리야를 따라가 제자가 되었다(왕상 19:16-21). 8년후 엘리야가 승천하려 할 때에 세번이나 작별 인사를 하여도 듣지 않고 끝까지 따르매 네 요구가 무엇이냐고 물은즉 당신의 영감을 배나 달라고 구하여 받아 가지고 또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 옷을 주어가지고 돌아와서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였다.

이적 : 이스라엘왕 여호람부터 요아스 시대까지 그가 행한 이적은 다음과 같다.

1. 엘리야 에게서 떨어진 겉옷으로 요단 강물을 쳐서 갈라지게 하고 건너왔다(왕하 2:13-14).
2. 불결한 몸에 소금을 넣어 음료수를 만들었다(왕하 2:20).
3. 벧엘로 가는 길에서 아이들이 대머리라고 조롱할때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여 암곰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 42명의 아이들을 찢었다(왕하2:23-24).
4. 유대와 에돔이 동맹하여 모압왕과 싸울때 물이 없어 고생하는 것을 보고 물을 내어 그 지경에 가득하게 하였다(왕하3:20)
5.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에게 기름을 만들어 주어 빚을 갚게 하였다(왕하4:7)
6. 사렙지방 여인에게 아들을 낳게하고 그 아들이 죽은 것을 다시 살렸다(왕하4:17,35)
7. 우물 물의 독을 제거 하였다(왕하4:41). 
8. 바알살리사에서 보리떡 20개로 백명을 먹이고 남았다(왕하4:40-44)
9.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주었다(왕하5:24 눅4:27).
10. 자기 종 게하시에게 문둥병을 주었다(왕하5:27)
11. 물에 빠진 도끼를 떠오르게 하였다(왕하 6:6).
12. 자기 사환의 눈을 밝게하여 불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호위한 것을 보여 주었다(왕하 6:17).
13. 아람 군사의 눈을 어둡게하여 사마리아로 인도하고 그 눈을 다시 밝게하여 사마리아 성중에 있는 것을 보게 하였다(왕하 6:18-20).
14. 엘리사가 죽은 다음 해에 어떤 사람이 죽은 시체를 엘리사의 무덤에 던져 놓았더니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는 순간 다시 살아났다 (왕하 13:2-21)


예언 :
1. 아람군사가 사마리아를 포위했을 때 물가가 폭동하여 배가 고파서 자식을 잡아먹는 자가 생겼다(왕하 6:24-29)
2. 엘리사가 곡가가 폭락할 것을 예언하였더니 주가 아람군대에게 병거와 병마의 소리와 군대의 큰 소리를 들리게 하시니 그 소리에 놀라 다 도망가니 예언대로 곡가가 폭락 하였다(왕하 7:1-7,16)
3. 하사엘이 아람왕이 되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것을 예언함( 왕하 8:1-15)
4. 선지자의 생도중 한명을 불러 길르앗 라못에 가서 예후 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될 것을 예언하게 하였다(왕하 9:1-10)
5. 임종에 이르러서도 이스라엘왕 요아스에게 아람을 세번쳐서 이길 것을 예언한 후 별세하였다(왕하 13:18)
그는 천성이 청렴 강직했고(왕하 5:15-16),
엘리야는 왕가의 핍박을 받으면서 지냈으나 그는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한 관계로 왕가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았다.
그가 엘리야를 따른 것은 베드로와 비슷하고 이적을 많이 행한 것은 예수님의 비교할 수 있다.

엘리사의 사역은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한 구국과 애족의 선지자였다.
엘리사는 여리고 지역의 폐수를 소 금을 섞어 양질의 물로 변화시켰다.
그후 여리고 지역은 농산 물과 식수의 염려가 없게 되었다.
그외에도 신비한 기적을 어느 선지자보다도 많이 경험 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초자연적인 사역을 크게 나타낸 선지자였다.

그 중에서도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자가 되었을때 요단강에 일곱번 씻게하여 그의 병을 고쳐준 사건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왕하 5장).
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권위를 나타냈고 나라의 체통을 세웠으며 아무런 예물을 받지 아니하므로 선민의 품위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또한 아람군 대가 엘리사를 체포하기 위해 도단성을 포위했을때 아람 군대보다 하나님의 군대(불말과 불병거)가 더 많은 것을 확인시킨 일도 있었다.

그뒤 아람군대가 사마리아성을 포위했을때 기근으로 주려 죽게될 무렵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왕하 7:1) 한 예언과 같이 병거소리와 말소리,큰 군대의 소리로 인해 아람군대가 도주하여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

엘리사는 66년간 큰 선지자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다.

교훈과 적용

첫째, 선지자는 선견자일뿐만 아니라 한 시대와 한 민족을 깨우치고 지도하는 영적인 안내자이다.

둘째, 엘리사의 권고를 듣지않은 북조 이스라엘이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권고를 듣자.

[엘리사] (하나님은 구원이심이란 뜻) 

요단강 아벧므홀라 사람 사밧의 아들인데 북왕국에서 봉사한 이스리엘 초기의 2대 선지자 중 한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를 대신하는 선지자로 세우도록 엘리야에게 명하셨다(왕상 19:16,19).

엘리야는 12겨리 소와 같이 아버지의 밭을 갈고 있던 엘리사를 만나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 그 뜻을 깨달은 엘리사는 집에 올아와 사람들을 모 아 송별언을 베풀고 즉시 엘리야를 수종들었다.(왕상19:19-21)요단강가에서 야훼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만류에도 불구, 그를 떠나지 않았다.엘리사는 엘이랴에게 [당신의 영감 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라고 청원했다.

엘리사는 받은 겉옷을 주워들고 요단강물을 치니 물이 좌우로 갈라졌으므로 그곳을 건너게 되었다. (왕하 2:1-18) 그후 그의 생애는 야훼의 이름으로 행한 일련의 기적이나 지혜 또는 능력으로 나타나 있다. 야훼의 종교와 바알의 종교가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엘리사가 행한기적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케 했다. 그 뒤에도 엘리사는 예 수님처럼 많은 기적을 행했다.

여리고의좋지 않은 물을 야훼의 이름으로 소금을 물 근원에 넣어 좋은 물로 바꾸었다.(왕하 2:19-22)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는 도중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 엘 리사를 조롱하므로 야훼의 이름으로 저주하니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아이들 중 42명을 찢어 죽였다.(왕하 2:23-25)

한번은 엘리사가 수넴에 갔다가 한 귀한 여인의 정성스런 음식을 대접받았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엘리사는 그 곳을 지날 때마다 들렸다. 엘리사는 여인의 무자하믈 알고 득남의 축복을 하였다. 예언이 적중하여 돐이 돌아오니 아들을 낳았다. 그 아이가 돌연 죽었으나 엘리사는 그아이를 살리는 기적을 베풀었다. (왕하 4:8-37)

또한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주었다. 엘리사는 선지자로서 66년간 계속 활동했다. 처음 20년간은 활동기였으며 다음 45년간은 장기간 침묵하다가 마지막에 병석에서 예언했다. 이 때의 예언은 엘리사의 주요 기적의 예언이 되었다. 엘리사의 주요 사업은 애국적 선지자로서의 활동이다. 그에게는 이스라엘의 사건, 즉 이스라엘 대 수리아(아람) 의 사간은 야훼 대 수리아의 사건이었다. 엘리사는 여호람의 치세와 예후 가문의 첫 세 왕의 시대에 이스라엘의 모압, 수리아에 대한 모든 싸움에서 더 힘있게 애국자로서 활동했다.

사마리아에 대한 전쟁기록이 남아있는 회의 사건에 있어서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 중요한 조력을 했다. (왕하 6:8) [하나님의 사람]으로서그의 이름은 이스라엘 밖까지 떨쳤으며 다메섹에서는 [하나님의 사람] 으로서 환영받은 듯하다. 그리고 이 방문 때에 엘리야에게 위임되었던 사명도 수행했다. 즉 하사엘에게 벤하닷의 후계자로 될 것을 알리고 다메섹의 왕조를 개변시켰다.(왕상 19:15) 이렇게 엘리사는 엘리야의 사업을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두 선지자의 이별때에 보인 것과 같이 스승에대한 완전한 충성으로 그것을 완성했다.

양자의 중요한 차이점은 엘리야가 개척자로서의 위대한 독창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하여 엘리사는 친히 백성과 접촉하여 그들에게 환영을받고 (왕하 4;23) 그 감화를 보급시키는데 엘리야보다 더 나은 지위에 있었다. 이상 에서 볼 때 예언자는 야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또는 이방인과의 관계를 이어주고 야훼의 뜻을 알리는 중재자였다. 그 메시지의전달 과정에서 많은 이적을 행한 것은 야훼의 초능력을 보여주어 그 분의 대한 신뢰를 더한층 높이는 데 있었다.

엘리사(Elisha) : B.C 9 C경 북이스라엘의 예언자로서 아합왕 때 아벧므홀라(Abel-Meholah) 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엘리야를 만나 그가 여호람왕 때 죽은 후 그의 뒤를 이어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왕 초반기까지 활동하였다.

엘리사의 생애

1. 요단 동편 강가에서

엘레야의 겉옷을 받아 본격적으로 예언자의 활동을 시작한 엘리사는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 물을 쳐 갈라 건넌 후 여리고로 돌아왔다.

2. 엘리사가 요단강을

갈라 건넌 것을 본 선지자의 생도들은 엘리사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자신들의 지도자 위치에 놓았다. 그곳에서 엘리사는 물이 좋지 못하여 산물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는 성읍 사람들의 말을 듣고 소금을 물근원에 던져 토산이 자라는 좋은 물로 고쳐 주었다.

3. 그리고 벧엘로

올라 가려고 성에서 나왔을 때 대머리라고 조롱하는 젊은 아이들을 저주하여 암콤 2마리가 나와 그들 42명을 죽이게 하였고 그 곳에서 갈멜산으로 갔다가 사마리아로 돌아왔다.

4. 사마리에서

다시 에돔광야에 내려 갔는데 이곳에서 엘리사는 여호람 과 남유다의 여호사밧의 연합군이 모압 원정을 가는 도중 물이 없어 큰 위 기를 겪게 되었을 때 나타나 여호사밧의 얼굴을 생각하여 큰물이 흘러내릴 것을 예고해 주었고 물이 에돔편에서 흘러 내려 연합군을 구했다.

5. 엘리사가 에돔광야에서

종군한 후부터 수넴으로 오기까지의 사건에 대해서는 특별한 내용이 없고 다만 왕하4:1-7 에서 죽은 선지자 생도의 아내 중 빚으로 두아들이 종이될 어려움에 있는 여인을 빌려온 기름 그릇에다 채우게 하여 기적으로 빚을 갚게 해주고 생활까지 할 수 있게 한 내용이 있다.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을 때에 한 여인으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고 아들이 있을 것을 축복해 주었고 축복대로 그 여인은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죽어 버렸다.

6.7. 그래서 그 모친은 자기 사환과 함께 갈멜산에 가서

엘리사를 만나 자기 집으로 같이 왔다. 이에 엘리사는 여호와께 기도한 후 입과 눈, 손을 아이의 몸과 같이 대니 아이의 몸이 따뜻해지다가 일곱번 재채기를 한 후 살아났다.

8. 수넴에서

아이를 살린 엘리사는 길갈에 내려와 흉년이 들어 고생하는 선지자 생도들을 위해 사환을 시켜 국을 끊이게 하였다. 그러나 선지자 중한 사람이 들외를 국속에 넣어 독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무리들은 독이 있음을 엘리사에게 알렸고 엘리사는 가루를 넣어 독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나서 바알살리사에서 한 사람의 가져온 보리떡 20개와 채소 1자루로 100명을 먹였다.

9. 엘리사가 길갈에서 도단으로 가기까지

성서에 나오는 사건은 아람왕 벤하닷2세(벤하닷 1세의 아들인듯) 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친 것과 빠진 도끼를 나무가지를 던져 떠오르게 하여 건져 준 것이 왕하 5:1-6:7 에 나온다.

10. 엘리사가 도단에 있을때

아람왕 벤하닷 1세가 이스라엘 (여호람)를 치기를 위해 이스라엘진영에 여러번 내려왔으나 그때마다 엘리사는 정보를 미리 왕에게 기별하여 방비하게 하였다. 이것을 아람왕의 신복이 알고 왕에게 고하자 아람왕의 신복이 알고 왕에게 고하자 아람왕 벤하닷은 엘리사를 잡기 위해 많은 군대를 보내 밤에 도단을 포위하였다. 아침에 포위 당함을 안 엘리사는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였다.

11. 그리고 엘리사는 그들을 이끌고 사마리아로 오게 한 후

눈을 뜨게 하였다. 그리고나서 그들을 죽이지 않고 음식을 주어 먹게한 후 고국으로 돌려 보냈다.

이일후 아람왕 벤하닷은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사마리아를 포위하였다. 그들의 포위가 장기간 계속되자 성안은 굶주려 모든 양식값은 폭등하였고 그나마도 없어 자기 자식을 삶아 먹는 비참한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때 엘리사는 하루만에 성문에서 보리와 가루 가격이 폭락할 것을 말 했으나 한 장관은 믿지를 않았다.

그러나 성밖에 있던 아람 군대는 말소리와 군대의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 이 뇌물을 주고 헷사람과 애굽 군대에 구원을 요청하여 오는 줄 알고 장막 과 말과 모든 장비와 양식들을 남겨두고 급히 도망하였다. 이에 성밖에 있 던 문둥이들은 아람군대가 있는 곳으로 가서 (죽을 각오를 가지고 갔다) 마음껏 먹은 후 이 소식을 성안에 있는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러나 여호람왕은 아람의 매복전술인 줄 알고 머뭇거리다가 신복들의 말대로 정탐꾼들을 보내 사실인지를 확인하고 나가 물건들은 취하였다. 이 때백성들은 엘리야의 말을 믿지 않았던 한 장군을 밟아 죽였다. 사마리아에 서위기를 넘긴 에리사는 전에 아들을 살려준 수넴여인에게 가서 7년동안 기 근이 있을 것을 알려주고 살만한 곳으로 가서 살도록 알려 주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후 여인은 본집으로 돌아 왔으나 자기집과 토지가 다른사람에게 넘어가 있었는데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이스라엘 왕에게 엘리 사의 이제까지 행한 일을 고하는 중 여인의 사건도 이야기 함으로 여인은 다시 자기집과 토지를 찾을 수 있었다.

12. 이후 엘리사는 다메섹에 갔을 때

아람왕 벤하닷이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벤하닷의 군대장관 하사엘이 벤하닷의 명령으로 찾아와 병의 치료 유무를 알기 위해 막대한 예물을 가지고 엘리사를 찾아왔다.

이때 엘리사는 하사엘이 아람왕이 되어 이스라엘의 장정을 죽이고 아이 와아이밴 부녀들을 죽이는 잔악한 침략 행위를 할 것을 알고 울었다. 하사엘은 엘리사로부터 왕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돌아와 이튿날 벤하닷에게 적신 이불을 덮어 죽게 했다.(왕하 8:7-15) 이일 후에 있은 엘리사의 행적 에대해서는 지명으로 연결할 수 없으나 소년 선지자 생도를 길르앗 라못으로보내 여호람의 장관 중 하나인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게 하였다.

그리고 엘리사는 이스라엘 요아스왕이 죽을 병에 들어 찾아와 슬퍼하는 요아스에게 그의 손을 안찰한 후 활을 쏘고 땅을 치게 하였다. 그리고 땅을 세번 친 만큼 아람을 세번쳐서 승리할 것을 예언한 후 죽어 장사되었다. 해 가바뀐후 사람을 장사하는 사람들이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졌는데 시체 가엘리사의 뼈에 닿자 회생하여 일어서는 기적이 일어났다.



엘리야(Elijah) / 여호와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예언자 중 가장 무서웠던 예언자.
북왕국 아합왕(B.C. 876-854)과 아하시야왕 시대에 걸쳐 사역하였다.

1. 디셉 사람(왕상 17:1).
2. 아합왕에게 예언하기를 내 말이 없으면 수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리라 하고 그릿 시냇가에 숨어있을 때 여호와가 가마귀를 시켜 조석 식물을 날라다 주게했다(왕상 17:1-7)
3. 사르밧과부집에 유숙하는 중에 한줌의 보리가루와 적은 기름으로 여러 날을 먹었어도 없어지지 않게 하고 그 과부의 아들이 죽은 것을 다시 살려 주었다(왕상 17:8-24)
4. 아합왕 때에 왕과 백성이 바알우상과 아세라우상을 숭배함으로 견책하고 아합왕에게 참신과 거짓 신을 가려내자 하여 바알선지 4백명과 아세라의 선지 4백5십명을 데리고 갈멜산에 올라가 송아지로 재물을 삼고 각기 자기의 신에게 기도하여 불로 응답함을 보자하여 먼저 바알과 아세라 선지 850명이 정오가 지나도록 외쳤으나 응답이 없고 엘리야가 여호와한테 부르짖을 때 불이 내려와 제물과 도랑의 물까지 모두 태워 버렸다. 즉시 백성들을 시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 850명을 기손 시내로 끌고 내려가 모두 죽였다.(왕상18:19-40)
5. 왕후 이세벨이 이 소식을 듣고 엘리야를 죽이려하므로 주의 천사가 어루만지고 식물을 주고 호렙 산굴에 있을 때는 여호와가 강한 바람과 지진과 작은 소리의 세가지로 보이시고 명령하시기를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왕이 되게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대신 선지자가 되게하라 하셨다(왕상 19:1-6)
6. 농부 엘리사가 경작하고 있을때 자기 겉 옷을 던져 따라오게 하였다 (왕상 19:19-21)
7. 아합이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 포도원을 뺏었을 때 왕 앞에 나타나서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으리라 하였다(왕상 21:17-19)
8. 이스라엘왕 아하시야가 사자 50명씩 두번 보내어 오라 하는 것을 천화로 사루게 하고 세번째에야 가서 왕이 죽을 것을 예언했다 (왕하 1:9-16)
9. 승천하게 되어 엘리사에게 세번이나 작별 인사를 하였으나 떠나지 않으므로 무엇을 구하느냐 물으니 당신의 영감을 배나 원한다 하므로 내가 승천하는 것을 보면 성취하리라 하고 겉옷을 떨어 뜨리고 홀연히 불 수레와 불말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는 회오리 바람을 타고 승천하였다(왕하 2:1-11)
10. 그의 심정과 재능이 세례 요한과 비슷하다 하였다(눅 1:17)
11. 예수님이 변화하실 때에 모세와 같이 나타나서 주님과 말씀하셨다 (마 17:3)
12. 야고보는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하여 주신다고 엘리야을 비유로 권면하였다(약 5:17)

*그는 험상한 모습과 탈속한 옷차림,비호같이 빠른 걸음, 기근도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건장한 모습, 굴에서도 살수있는 억센 습관이 그의 특색이었다. 여호와 신의 예배에 절대적인 선지자였고 국가 운명에 대하여 예민한 통찰과 염려를 한 애국적인 인물이며 구약 선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베냐민의 족장(대상 8:7)

  레위사람(대상 23:19, 24:23)

엘리야의 생애

1. 엘리야의 등장 (왕상 17;1)


엘리야선지는 오므리 왕자의 아합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요단 북편에있 는 길르앗(Gilead) 지방의 디셉에서 등장하여 아합에게 수년동안 가품이있을 것을 경고하였다.

2. 그릿시냇가에서 (왕상 17:2-7)

아합에게 가뭄이 있을 것을 경고한 후 엘리야선지는 하나님의 명대로 아합을 피해 요단강 앞 그릿시냇가로 가서 숨고 까마귀들이 가져다 주는 떡과 고기를 먹고 시냇물을 마셨으니 계속된 가뭄자므로 시냇물이 말라 더 이상 마시지 못하였다.

* 그릿시냇가 (Cherith brook):그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론은 없으나 중세시대에는 요단 동편 길갈 근처로 현재의 와디켈트(Wadi Qekt) 로 생각 했고 오늘날의 대부분 학자들은 엘리야의 고향에 있는 여러 강줄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마 성서에 언급된 요단 앞과 그 내용전개를 보면 디셉에서 그리 멀지 아니한 요단강 근처의 한 조그마한 와디(Wadi) 강줄기였을 가능성이 크다.

3. 사르밧에서 과부의 공궤를 받음(왕상 17:8-24)

그릿시냇물이 마르자 하나님의 명대로 시돈지역에 속한 사르밧 (두로와시 돈의 중간지점)으로 올라갔다. 그가 사르밧의 성문에 이를 때에 아들과 같이 떡 하나를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하는 과부를 만나 그 떡을 자신이 먼저 먹은 다음 그 과부의 집에 가뭄이 마칠 때까지 기름과 밀가루가 부족하지 않을 만큼 먹을 수 있는 기적을 베풀어 주었다. 이일 후 하루는 그 과부의 아들이 병으로 죽자 엘리야는 그 아이 위에 몸을 세번 펴서 엎드린후 하나님께 기도하여 낫게 하였다.

사르밧에서 3년을 지낸후에 엘리야는 가뭄이 끝날 것을 아합에게 고하기 위하여 사마리아로 내려가는 궁내대신 오바다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오바댜는 엘리야로 아합에게 안 가기를 청하였으나 엘리야는만나기를 맹세했고 이에 오바댜가 할수없이 아합에게 엘리야를 고했다. 아합은 나가 엘리야 앞에 이르고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신과의 대결을 갈멜산에서 갖기로 제의하였다.

4. 갈멜산의 대결 (왕상 18: 19-46)

엘리야선지의 제의를 수락한 아합은 바알선지 450명과 아세라 선지 400명을 갈멜산으로 나오게 하였다. 마침내 엘리야와 바알과 아세라 선지 850명 은 제단을 쌓아놓고 불의 임함으로 대결을 시작하였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먼저 단을 쌓고 제물을 올려 놓고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며 부르짖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자 단 주위에서 뛰어 놀았고 이에 오정쯤 되어 엘리야는 저들에게 너희 신이 묵상하고 있는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길을 가는지 아니면 잠이 들었는지 모르니 큰 소리로 부르라고 조롱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며 자신들의 규레대로 창과 칼로자해하여 피를 흐르게 하며 부르짖었으나 저녁 때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에 엘리야는 주위의 모든 백성들을 모이게 하고 돌로 여호와의 단을 쌓고 주위에 도랑을 만들고 송아지로 각을 떠서 제단의 나무위에 놓았다.

그리고 물을 가져다가 번제물과 나무위에 여러번 갖다부어 도랑에 물이 가득하게 될 때까지 분 다음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여호와여 내게 응답 하소서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까지 태우고 도랑의 물도 다 마르게 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외쳤고 엘리야의 명령대로 바알과 아세라선지자를 잡아 기손시내로 데려다가 모두 죽였다. 그리고 나서 엘리야는 아합에게 비가 올 것을 알려 주었고 강이 범람하기 전에 마차를 탸고 내려가라고 말하였다. 이 말과 동시에 큰 비가 내렸고 아합은 속히 서둘러 이스라엘로 갔다. 이때 엘리야는 이스르엘 입구까지 아합왕 앞에 행하였다.

5. 이세벧을 피해 브엘세바로(왕상 19:1-3)

이세벧은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갈멜산에서 죽인 것을 알고 사자를 보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였다. 이 소식을 엘리야가 듣고 그곳을 피해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자기 사람과 함께 갔다.

6. 로뎀나무에서의 통곡(왕상 19:4-7)

이세벧을 피해 브엘세바로 온 엘리야는 자기 사람을 그곳에 놓고 다시남으로 하룻길을 걸어 한 로뎀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러 하나님 앞에 죽기를간 구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천사가 와서 깨운 후 숯불에 구운떡과 물을 먹고다시 잠이 든 후 천사에 의해 일어나 다시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7. 호렙산으로 (왕상 19:8-18)

로뎀나무 아래서 천사가 가져다 준 음식을 먹고 힘을 얻는 엘리야는 40일을 행하여 하나님의 산호헵산에 가서 한 굴에 거하였다. 그곳에서 다메섹의 하사엘과 예후와 엘리사에게 각각 기름을 부어 아람왕과 이스라엘의 왕과 자신의 후게자로 세우라는 명을 받았다.

8. 엘리사를 만남 (왕상:19:19-21)

호렙산에서 명을 받은대로 엘리야는 그곳을 떠나 아벧므홀라에서 열 두겨리의 소로 밭을 갈고 있는 엘리사를 만나 자기 겉옷을 던져 자기를 따라오 게 하였으며 엘리사는 이때부터 엘리야는 따라 다니며 그의 수종을 들었다.

9. 나봇의 포도밭

사건으로 아합이 죽을 것을 예고함(왕상 21:1-26)엘리야가 엘리사를 만난 후 아합은 아람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부친(오므리) 이 빼앗겼던 성읍을 도로 찾았다. 이일후 아합은 자기궁 가까이에있는 나봇의 포도밭을 사는데 실패하자 근심하다가 왕후인 이세벧의 모략으로 돌로 쳐 죽인후 그 포도밭을 차지하였다.

이 일을 엘리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아합 앞에 나가 그가 죽어 그 피를나봇이 죽은 곳에서 개들이 핥을 것을 예고하였다. 이에 아합은 잘못을 뉘우치고 옷을 찢고 금식하며 행보를 천천히하며 겸손하자 하나님은 그 재앙을 아들의 시대에 내리게 하셨다.

그리고 아합이 아람을 물리쳐 승리한 후 3년째에 아합은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연합군을 조직하여 아람의 길르앗 라못을 치러 올라갔다. 이 싸움에서 아합은 부상을 당해 저녁에 죽어 사마리아에 장사되었고 그 병거는 사마리아의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에 부으니 개들이 그 피를 핥았다.

10. 아하시야에게 경고함(왕하1:1-4)

사마리아에서 여호사박 17년에 즉위한 아하시야왕은 통치기간 중 악행과 바알신 숭배와 그 아비의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통치말년 그가 다락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었을 때 에글론 신에게 치료 유무를 알아보기 위해사자를 보냈는데 엘리야를 통해 침상에서 죽을 것을 보고 받고 오십부장 50인을 엘리야가 보냈으나 불에 타서 죽었다. 이에 다시 오십부장 50인을 보냈으나 마찬지로 불에 타죽었고 세번째로 보낸 오십부장 50인들은 간절히생명을 간구하매 죽지 않고 엘리야와 함께 왕에게 갔다.

왕 앞에서 엘리야는 말하기를 네가 바알세불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없음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찌라고 하였고 그 말대로 아하시야는 죽고 그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었다.

11. 엘리사와 함께 승천 직전의 노정(왕하2:1-5)

아사히야가 죽고 여호람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때 엘리야선지는 하나님이 명령대로 길갈로 갔으며 그곳에서 엘리사를 머물게 하고자 했으나 엘리사는 끝까지 반대하였다. 그리고 난후 엘리야는 벧엘과 여리고로 갔고 그때마다 엘리사를 떼어 놓으려고 하였다.

12. 엘리야의 승천(왕하2:6-11)

여리고에서 요단을 건넌후 곧 승천하기를 앞둔 엘리야선지는 엘리사에게 구할 것을 말하라고 하였고 이에 엘리사는 스승이 가졌던 영감의 갑절을 구했다. 그리고 난 후 엘리야는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이 내려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였고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을 취하였다.

이스라엘 선지자-- 이방종교 [바알] 추방 큰공아합의 왕권과 정면대결한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당시 빈자의 상징이었던 털옷을 어깨에 걸치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다니면서 바알숭배와 아세라 경배 타도를 부르짖었다(왕하 1:1-8).

이스라엘 왕 아합이 바알의 사당을 건축하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을 때 그는 왕앞에 나타나 바알숭배의 대가로 이스라엘 땅에 수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을 예언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 17:1절).

그후 엘리야는 왕의 박해를 피하여 요단 동편에 있는 그릿 시냇가에 몸을 숨겼으며 여호와께서는 매일 그에게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를 공급하게 하셨다(왕상 17:2-7). 계속 땅에 비가 없으므로 시내가 말라 버리자 엘리야는 시돈 땅 사르밧으로 가서 한 과부가 공궤하는 떡과 물을 먹고 마시므로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왕상 17:8-16).

엘리야의 절정적 사역은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백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백명과 대결하여 승리한 일이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 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 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엘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 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 지라 엘리야가 저희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왕상 18:38-40).

엘리야의 능력의 기도는 3년6개월간 가뭄이 계속되던 땅에 단비를 내리게 했으며 그리고 아합과 이세벨의 학살령을 피하며 호렙산 동굴에 은둔하고 있을때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⑴ 예후를 세워 종교개혁을 단행케 함으로 바알숭배를 청산했으며 ⑵아람왕 하사엘을 통하여 아합의 왕조를 진멸케 했고⑶엘리사를 후계자로 삼아 이스라엘의 회복과 신앙부흥을 일으키게 했다.

이 과업을 끝낸후 그는 제자가 지켜 보는 가운데 불말과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했다(왕상 19:15 -21, 왕하 2:11).

갈멜산에서 바알숭배자 물리쳐성경:열왕기상 17~18장

엘리야는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다. 엘리야는 길르앗의 디셉 사람이며 큰 선지자였다.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이며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는 것이 특징이었다. 엘리야는 순수하면서도 엄격하고 조용하면서도 담대한 사람이었다. 아합왕의 죄로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않을 것을 선포하고 그릿 시냇가에 은신하며 까마귀의 도움으로 생존하였다. 그후 시돈의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기적으로 살았고 죽은 아들을 소생시키기도 하였다. 엘리야의 큰 헌신은 3년후 오바댜를 통해 아합을 만나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4백50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4백인을 갈멜산에 모아 모든 백성 앞에서 참 신을 분별하도록 제안하였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자기들의 규례대로 몸을 상하며 바알을 불렀으나 실패했다. 저녁 때에 엘리야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고 열두지파를 위해 열두 돌을 취하였으며 열두 통의 물을 붓고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심과 종이 주의 종인 것과 이 일이 주의 일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할 때 불로 응답하셨다.

결국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기손강에서 살해되었다. 그후 흡족한 비가 허락되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후계자로 지명하였고 하사엘과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한 후 요단강 동쪽에서 불 말과 불 수레를 타고 승천 하였다.

교훈과 적용 첫째, 엘리야는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의 모범을 보인 사람이다. 환경과 상황을 초월한 순종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자.

둘째,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위임할 때 하나님이 책임져 주셨다. 참된 충성은 하나님의 큰 손이 함께하신다.

최후의 하나님의 권고(왕상 17 - 22장)이스라엘은 특별한 나라였습니다. 곧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점에서 아주 특이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국가 자체가 하나님을 위한 종교기관입니다. 곧 종교와 국가가 분리될 수 없는 혼연일체의 나라인 것입니다. 이러한 요소는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의 국가는 종교와 국가와는 서로 다른 위치와 이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돕는 다든지, 적대관계가 되든지 하는 관계가 형성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유 국가들에게서는 종교를 인정하고 서로 독립한 가운데서 돕고 있습니다. 반면에 공산국가에서는 적대시하고 탄압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철두철미하게 종교가 곧 국가요 국가가 곧 종교였습니다. 그래서 왕으로부터 제사장 그리고 모든 백성들에게 이르기까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고 섬기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가 유지를 위한 헌법이란게 따로 독립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율법이 곧 국가의 헌법입니다. 그리고 왕의 위치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다스리시기 위한 대리자였으며, 제사장은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달해 주는 중보자였습니다. 선지자는 혹 왕이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방종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파숫군이었습니다. 따라서 왕이 올바른 통치를 하지 못한다든지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이 자기 직무를 다하지 못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방자해져서 부패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참된 모습들도 상실해 버리게 됩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백성들을 위하여 세워진 직분자들의 위치는 아주 막중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 하나가 잘못될 때 파급되는 악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얻어 당시에 유력한 통치자로 세인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정략적으로 이웃 나라들과 맺은 정략결 혼으로 말미암아 이방신들이 이스라엘 안으로 들어오게 되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이 이방신들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는데 있어서 등한시 하게 되었고 우상숭배나 하나님 숭배나 별반 다른게 없다라고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세워진 이스라엘 국가 자체의 설립 의도가 무너지게 되며 이스라엘이라는 독특한 존재 이유마저도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왕 한 사람의 실수가 나라 전체를 무의미하게 타락시킬 수가 있었기에 모세는 신명기에서 왕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으며 사무엘 역시 경고를 했던 바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울이라는 왕을 택하셔서 왕제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불합리한 모습의 실례를 보여주시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 타락하게 되어 이스라엘의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릴 것을 우려하신 하나님은 여로보암을 택하시어 10지파를 갈라 북 이스라엘왕국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견고한 집을 세워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왕상 11:30). 그러나 여로보암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금송아지로 바꾸어 섬길 뿐만 아니라 전 백성들도 그와 함께 경배하도록 종용하였고 따라서 하나님은 그를 폐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를 이은 이스라엘의 왕들도 역시 여로보암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에 계속된 찬탈과 반목의 역사가 지속됩니다.

이런 참혹한 상태에서 강력하게 왕권을 쥔 사람이 오므리였습니다. 오므리는 국방을 튼튼히 하고 자신의 왕권을 강력하게 세워나갔으므로 당시 주변 국가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될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 강대국가였던 앗시리아에까지도 오므리의 명성이 들릴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오므리는 외적으로 아주 강력한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로보암의 정책과 별반 다른 점이 없었으며 특히 북방의 두로와 시돈과 화친정책을 썼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에는 아람이 이스라엘에 대한 가장 위협적인 세력이었는데 아람 배후에 있는 두로와 시돈과 화친을 맺음으로 아람이 쉽게 이스라엘을 침공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화친정책으로 오므리는 아들 아합을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시켰습니다.

그리고 아합은 오므리를 이어 북 이스라엘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 아합에 대해 성경은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 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산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16:30-33)고 기록합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앞날이 결정적인 변화를 갖게 됩니다.

곧 이전의 왕들은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의 형상을 바꾸어 섬겼습니다. 그러나 아합시대에 와서는 아예 여호와에 대한 어떤 종교 행사도 하 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철저하게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제거하고, 오히려 바알과 아세라를 위한 제사장을 세우며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떠나 바알과 아세라에게 경배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배도의 시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전 모든 왕보다 아합이 악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당시의 상황은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버리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의 영적 상태를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기록이 곧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 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16:34)는 말씀입니다. 여리고성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최초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점령했던 곳입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다시 건축하는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었습니다(수 6:26). 그런데도 불구하고 히엘이 여리고성을 재건하던 중 그 아들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리고성을 쌓고 있음을 볼 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대가 여호와의 말씀을 떠나 깊은 어둠에 빠지게 된 것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에 깊이 빠진 결과였으며 바로 이러한 일이 아합과 이세벨에 의해 자행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나라로 세움을 받은 이스라엘이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을 떠나 버리고 배역해버린 상태에서 하나님을 대변하는 선지자로 세 움을 받은 이가 곧 엘리야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엘리야는 아합을 찾아가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 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17:1)고 선포 합니다. 이미 하나님을 떠나고 바알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기근이 선포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근이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약속의 땅에서의 전쟁이나 기근은 곧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레위기 26장 참조). 그후 과연 3년 6개월간 이스라엘 지방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극심한 기근에 시달렸습니다. 그러자 속이 탄 아합이 엘리야를 찾아 나섭니다. 엘리야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선지자들을 이세벨의 박해 가운데서도 보살펴 준 군대장관 오바댜를 통해 아합을 만납니다.

엘리야를 본 아합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18:17)고 하자 엘리야는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18:18)고 지적하면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 명을 모아 갈멜산에서 누가 진정한 하나님인가를 드러내도록 대결을 하자고 선언합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과 선지자들이 갈멜산에 모이게 되 었습니다. 그곳에서 엘리야는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 를 좇을지니라(18:21)고 신앙의 촉구를 합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을 떠나 바알과 아세라에 길들여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결을 벌입니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준비해 놓은 제물을 태우도록 하였습니다만 저녁이 다 되도록 아무런 응답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 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 하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18:36-37)라고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늘로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을 태우고 모든 백성이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18:39)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잡아 기손강에서 처단합니다. 이 대결의 목적은 누가 진정한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의 통치자이신 것을 밝히고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신앙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후 비가 내려 그간의 기근이 종식됩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이세벨은 아직도 의기양양해서 오히려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혈혈단신으로 40일간의 광야길을 걸어 시내산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선 엘리야는 하늘로서 불이 내리는 증거를 목도한 이스라엘이 아직도 신앙으로 바로 서지 못하고 여전히 이세벨의 눈치를 보는 연약하고 패역한 모습을 심판해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고 강한 권능이 개입하셔서 과연 하나님이야말로 온 우주의 왕이시며 이스라엘의 진정한 주인이신 것을 나타내 주시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 가운데서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세미한 소리 가운데 앨리야에게 응답하십니다.

먼저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으로 삼고, 이스 라엘의 왕으로는 예후를 기름붓고, 선지자로서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19:17)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배도한 이스라엘 위에 커다란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 후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19:18)고 하시면서 특별히 주를 위해 남은 자를 남기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어느 시대나 그의 백성들을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모두가다 바알 앞에 무릎을 꿇을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들만은 특별한 섭리와 보 호 아래 그들의 신앙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돌보아 주시는 법입니다. 믿음을 지키기가 힘이 들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하나님 의 백성들은 결코 그러한 상황이나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자기들의 신앙을 지켜나갑니다. 비록 생명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박해가 심하고 믿음을 지키기가 고달프다해서 배신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세상을 더 불쌍히 여기고 위하여 기도하며 연약한 성도들이 신앙을 잃지 않도록 위해 기도하며 힘씁니다. 엘리야 시대에도 모든 사람 들이 다 하나님을 떠난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순전한 7천명의 성도들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이유에서라도 믿음을 저버리는 것은 그러므로 하나의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라도 정당화시킬 수 없습니다. 성도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법입니다.

그 당시 상황이 얼마나 악했느냐 하는 것은 나봇의 포도원을 이세벨이 탈취하는 사건에서도 잘 나타납니다(21장). 나봇의 포도원은 기업으로 주어진 땅입니다. 한 번 기업으로 주어진 땅은 결코 팔 수도 없었으며다른 이에게 어떤 이유에서라도 명의 변경이 되질 않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그 땅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된 이스라엘에게 값없이 기업으로 주신 땅이기 때문에 사거나 팔 수 없었습니다.

혹시 팔았다 하더라도희년까지의 남은 햇수를 계산하여 값을 치루되 희년이 되면 원 소유자에게 돌려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나봇이 기업으로 받은 땅을 차지하려고 했고 이세벨은 악한 수법으로 나봇을 죽이고 차지하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하나님의 계율을 어긴 아합에게 네가 죽 이고 또 빼앗았느냐(21:19)고 하시면서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21:19)고 저주하셨습니다. 참으로 그 시대는 불법이 난무하는 시대요 공의가 잠자는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과연 이러한 나라를 하나님은 어떻게 처리하실까요?

 



고(故) 이동훈목사(Pastor Jacob Lee)

이동훈목사 죽음에 대한 신앙적 이해

조카 고(故) 이동훈목사(Pastor Jacob Lee)
05. 04. 1984∼09. 28. 2020 am 9:42
New Life Drseher Church https://newlifedresher.org/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진리가 자유하게 합니다.
진리는 예수님입니다(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진리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이것은 신앙의 초보적 단계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말씀은 곧 영이 자유케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을 체험해야 합니다.
영을 체험하는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진리가 되시며 영으로 세상에 오신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영으로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혼과 몸으로 체험하는 정도로 멈추고 있습니다.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기적의 예수" 라고 하겠습니다.

기적의 예수란 벳새다 들판에서 굶주렸던 사람들에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개고 오천 명을 먹이셨고 남은 광주리가 12개 이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육신의 몸을 갖고 살아갈 때 육신의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기적을 기대하고 기다리기 때문에 육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암으로 고생하는 암 환우가 예수를 믿는다면 기적같이 암 덩어리가 모두 몸에서 없어지는 것만이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나타났던 기적의 사건에 참여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사건 앞에서 모두 외면했습니다.

혼으로 체험하는 예수 혼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이성적 예수"라고 하겠습니다.

혼이란 정신을 말합니다.
신앙을 정신적인 영역에 가두고 믿음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질문할 때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니고데모는 어른이 된 후에 어떻게 어머니의 모태에 들어갔다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하며 머리를 흔들고 돌아갑니다.

정신적인 위로자가 되는 예수님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영으로 세상에 오셔서 영으로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떤 부인은 남편을 잃고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며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업의 어려움에 자살을 시도했으나 극적으로 회복되어 주님을 만났다며 새 힘을 얻었으나 다시 사업이 기울고 어려워 질 때 왜 나를 버리셨느냐 하며 절망에 다시 붙잡히는 경우는 혼으로만 예수를 믿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영으로 체험하는 예수

영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신령한 예수" 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도리를 감당하려고 30세까지는 전혀 하늘의 일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30세가 되었을 때 세례를 받은 후 하늘의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적과 같은 사건을 보여주며 메시아가 되심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께서 임하지 않은 시대이었기에 예수님을 영으로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길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도 제자로 부름을 듣기 전에 일을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라는 말씀에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후 베드로를 위시하여 그 자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두 영으로 예수를 체험하였고 그때부터 완전히 변화된 삶이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은 이미 성령강림이 일어난 이후의 시대이므로 직접 성령의 임재를 기도해야 하며 성령 체험이 있어야만 예수를 영적으로 믿을 수 있는 단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죽음이란 생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몸과 혼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영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예수를 믿었다면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몸은 이 세상에서 온갖 질병과 사건과 사고로 인하여 고통과 아픔을 갖게 되지만 죽음 후에는 이 모든 질병과 사건과 사고 그리고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동훈목사의 경우 36세의 젊은 나이입니다.
더구나 가족들은 아내 라헬과 두 아들 그리고 딸이 살아가야 할 과정이 너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동훈목사 Jacob Lee(1984. 5. 4- 09. 28. 20 am 9:42) 36세
Wife / Rachel Tan Lee(1989. 12. 17-) 31세
Son / Zephaniah(2015. 9. 9-) 5세
Son / Jayden(2017. 6. 25-) 3세
Daughter / Kaelyn(2019. 6. 30-) 1세

몸과 혼으로만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영으로 생각하면 가장 좋으신 하나님께서 몸과 혼으로는 알 수 없는 놀라운 계획을 갖고 있으므로 남은 가족들과 우리가 위로를 받습니다. 이제부터는 놀라운 주님의 계획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The Spirit gives life; the flesh counts for nothing. The words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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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0월 10일 토요일입니다.
오늘 어머님 김은신권사님(92세)에게 손자 이동훈목사(36세)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처음에는 몹시 당황해 하시면 놀란 얼굴 표정으로 “세상에.........!” “세상에........!”만 연발하셨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님에게 손자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자식이 아니라 손자가 그것도 목사가 되어 모두에게 사랑을 받아야 할 때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려주는 것은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식을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것은 신앙적인 자세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 아침 기도를 마치고 故 이동훈목사 천국환송예배 라는 하관 예식 순서를 보여주므로 간접적으로 알렸습니다.

평소에 잘 듣지 못하시는 어머님께서 “언제 죽었니?” 라고 물으시기에 “9월 28일” 이라고 말했는데 정확하게 “28일” 하고 확인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럼 장례는?” 하시기에 이미 장례를 마쳤으며(10월 1일 하관예식) 나중에 알려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분명한 의식을 갖고 받아드리고 인정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충격적인 소식일지라도 정말 믿음이라면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하였는데 평소보다 조금 적게 드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즐겨 읽으시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며 이동훈목사의 죽음에 대한 두 번째 글을 올립니다.

성경은 사람을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육에 속한 사람(고린도전서 2:14)
- The man without the Spirit,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 영적이 아닌 사람, 자연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둘째는 신령한 사람(고린도전서 2:15)
- The spiritual man, 영적인 사람.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셋째는 육신에 속한 사람(고린도전서 3:1)
- worldly, 세속적인 사람, 육적인 사람, 육에 속한 사람.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가족들 중에서 어린 자녀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믿음의 어른들이 보여주어야 할 믿음의 자세는 분명합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신앙생활을 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겠습니다.

신령한 사람(The spiritual man, 영적인 사람)의 특징은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판단한다는 것은 죽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죽음 때문에 신앙의 흔들림이 없으므로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시 믿음이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확실한 소망 즉 영생의 소망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디도서 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디도서 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의 소망이란 죽음의 세계에서 분명하게 빛을 발할 것이며 완벽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사람만이 어떤 죽음이라도 신앙으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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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2020년
주일 오후 시간입니다.
온라인 예배를 마치고 가족들이 점심 식사를 마쳤습니다.
오후 2시경 이경혁, 전한영 내외가 어머님을 찾아왔습니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마음은 무겁습니다.

더구나 손자를 먼저 보낸 할머니의 마음은 “왜 나와 같은 사람은 살려두고 할 일이 많은 사람은 데려 가셨는가?” 하며 깊은 탄식의 질문을 던집니다.
이어서 “동훈이는 행복하지! 아무 걱정도 없는 곳에서 평안히 머물고 있지만 라헬과 아이들은 어떻게 하니? 죽은 사람은 행복하다! 그런데 남아 있는 가족들은 어떻게 하니?” 그러자 동훈 애비가 “살아 있는 사람은 더 행복합니다!” 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도록 차단의 벽을 칩니다.

여러 시간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암 투병의 과정을 듣습니다.
듣기만 하는 것이 위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애비와 어미의 심정에 “하나님의 뜻이니 위로 받으세요!” 라는 형식적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아픔의 대못을 가슴에 내리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아들이 군목으로 활동하던 중 말기 암으로 통증을 호소하며 고통을 받으면서도 병원에 누워있기 보다는 기도원(대한수도원)에 기거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육체적인 고통을 진통제보다는 주님을 닮아가려고 몸부림 쳤던 아들 목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교인들이 어머니 전도사님(김용준)에게 “하나님의 뜻이니 위로를 받으세요!” 하며 형식적인 인사를 할 때 그 어머니 전도사님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네 아들이 이렇게 죽어봐라! 그런 소리가 위로가 되는가!”

이런 고통과 아픔의 소리가 3년이 지난 어느 날 비슷한 아픔을 겪게 된 교인을 만났을 때 그의 두 손을 붙들고 “내가 다 알아! 그 아픔을....... 나도 그 고통의 터널에 갇혀 있었지. 참고 견디자!” 하며 위로할 때 그 교인은 얼굴을 전도사님의 품에 묻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때 어머니 전도사님께서 깨달은 것은 이런 고통과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 할 수 있는지 먼저 경험하게 하셨구나! 하며 아들의 죽음을 통한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 생각지도 못한 아픔과 고통을 경험해야 합니까?

왜 예수님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가 예수를 알기도 전에 십자가의 아픔과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까?

세상에서 잠간 경험하게 하신 그 아픔과 그 고통으로 인하여 십자가의 주님을 더 가깝게 뜨겁게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은총의 기회가 되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세계를 생각하며 고통의 진한 향기 속에서 풍겨나는 영생의 기쁨과 소망을 기대하며 슬픔의 자리를 위로의 자리로 변화시킬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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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화)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Therefore we do not lose heart. Though outwardly we are wasting away, yet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 

겉사람(outwardly)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약해지고 병들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속사람(inwardly)은 겉사람과 반비례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죽음을 겉사람이라고 비유하면 영생은 속사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겉사람은 죽음을 안타깝다고 하며 슬퍼하거나 절망합니다. 그렇지만 속사람은 죽음 앞에서 담대합니다. 왜냐하면 속사람은 영생에 대한 믿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죽음은 잠시 겉사람과의 이별이지만 속사람은 더 건강하고 질병이 없는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를 기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영생에 대한 소망을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넘어야 할 고비가 시도 때도 없이 다가올 것입니다.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어려움이 부딪치면 대부분 후회하고 낙심합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소망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려면 엄청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라헬의 경우 이제 시작입니다.
5살 아들 재원(Zephaniah. 2015. 9. 9), 3살 아들 재선(Jayden. 2017. 6. 25) 그리고 1살 딸 재은(Kaelyn. 2019. 6. 30)을 양육하려면 경제적으로도 부담스럽습니다. 육신적으로도 힘들 것입니다.

이러한 부담을 나눌 수 있는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보살핌이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고 부담이 없이 지속될 수 있는지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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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마가복음 16:12)

성경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중 여러 경우에 있어서 처음에는 그를 잘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도 순간적으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고(요 20:14), 물고기 잡던 제자들도 처음 한 동안은 알아보지 못하였다(요 21:4). 심지어는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계속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마 28:17).


또한 본문사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기록인 누가복음 24장에서도 두 제자들이 한 동안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들의 눈이 가리어졌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눅 24:16).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을 직면했을 때의 혼란스런 반응이라는 것을 감안할지라도, 예수님과 오랜 시간 함께했던 제자들이 그와 동행하면서 한 동안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에 대한 주요한 이유를 본문이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 후의 모습은 그 전과 ‘다른 모양’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다른 모양’의 사람이 ‘다른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주님이신 예수님을 결국 확실히 알아보고 믿게 된다. 그렇다면 부활 후 예수님의 ‘다른 모양’이라는 말은 어떤 상황을 나타내는 것일까?


마가복음 16장 12절의 ‘다른 모양’에서 사용된 헬라어 ‘모르페(μορφῇ)’는 겉으로 드러난 피상적이고 외관적인 모양보다는 내면을 드러내고 내면을 투영하는 모양을 나타낼 때 일반적으로 쓰인 용어이다.


또한 헬라의 종교와 철학에서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올 때의 온전한 변화의 모습을 위해서도 쓰였다.


신약성경에서는 본문 외에는 빌립보서에서만 두 군데 발견되는데, 2:6절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에서와 2:7절에서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에서 ‘본체’와 ‘형체’로 각각 번역되어 쓰였다.


즉, 예수님은 온전한 하나님이셨고, 온전한 종이 되셨다는 표현에 모두 ‘모르페’를 사용하였다. 마가복음 16장 본문도 ‘모르페’라는 단어와 함께, 부활을 통해 온전한 변화를 겪은 예수 그리스도의 달라진 ‘모양’이 나타나졌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시기 전의 예수와 동일한 바로 그 분이셨다. 그래서 결국 모두가 그를 알아보게 된다.


그 몸은 만져볼 수도 있는 실재하는 몸이었으며(눅 24:39), 심지어 십자가의 상흔도 남아 있었고(요 20:27), 음식을 잡수시기도 하셨다(눅 24:41~43).


그러나 그 몸은 완전히 변화된 몸이었다. 죽음을 이미 넘어선, 고통, 아픔, 연약함이 더 이상 함께 하지 않는 몸이었다.


인간으로 오셔서 ‘종의 형체’(빌 2:7)로 나타나신 부활 전 예수님의 ‘모양’은 이사야에서 묘사하듯 약하고, 거칠고, 볼품이 없었을 것이다(53:2).


밤과 낮을 가리지 않으신 사역에서 오는 육체적 피로와 온 인류의 죄 문제를 감당하셔야 하는 정신적 고통은 그 분의 육체를 여위게 하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파이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유대인들은 당시 30을 갓 넘으신 예수님을 향해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어떤 연약함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모양’으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가장 젊고, 건강한 몸으로의 ‘변화된 모양’이다.


바울은 이 부활의 몸에 대해 ‘썩지 아니할, 영광스러운, 강한, 신령한 몸’(고전 15:42~44)이라고 감격으로 선포한다. 그 부활체의 모습이 장래에 우리가 함께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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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목사 죽음에 대한 신앙적 이해

조카 고(故) 이동훈목사(Pastor Jacob Lee, 36세)
New Life Drseher Church https://newlifedresher.org/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진리가 자유하게 합니다.
진리는 예수님입니다(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진리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이것은 신앙의 초보적 단계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말씀은 곧 영이 자유케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을 체험해야 합니다.
영을 체험하는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진리가 되시며 영으로 세상에 오신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영으로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혼과 몸으로 체험하는 정도로 멈추고 있습니다.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기적의 예수" 라고 하겠습니다.

기적의 예수란 벳새다 들판에서 굶주렸던 사람들에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개고 오천 명을 먹이셨고 남은 광주리가 12개 이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몸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육신의 몸을 갖고 살아갈 때 육신의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기적을 기대하고 기다리기 때문에 육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암으로 고생하는 암 환우가 예수를 믿는다면 기적같이 암 덩어리가 모두 몸에서 없어지는 것만이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나타났던 기적의 사건에 참여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사건 앞에서 모두 외면했습니다.

혼으로 체험하는 예수 혼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이성적 예수"라고 하겠습니다.

혼이란 정신을 말합니다.
신앙을 정신적인 영역에 가두고 믿음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질문할 때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니고데모는 어른이 된 후에 어떻게 어머니의 모태에 들어갔다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하며 머리를 흔들고 돌아갑니다.

정신적인 위로자가 되는 예수님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영으로 세상에 오셔서 영으로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떤 부인은 남편을 잃고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며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업의 어려움에 자살을 시도했으나 극적으로 회복되어 주님을 만났다며 새 힘을 얻었으나 다시 사업이 기울고 어려워 질 때 왜 나를 버리셨느냐 하며 절망에 다시 붙잡히는 경우는 혼으로만 예수를 믿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영으로 체험하는 예수

영으로 체험하는 예수는 "신령한 예수" 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도리를 감당하려고 30세까지는 전혀 하늘의 일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30세가 되었을 때 세례를 받은 후 하늘의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적과 같은 사건을 보여주며 메시아가 되심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께서 임하지 않은 시대이었기에 예수님을 영으로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길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도 제자로 부름을 듣기 전에 일을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라는 말씀에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후 베드로를 위시하여 그 자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두 영으로 예수를 체험하였고 그때부터 완전히 변화된 삶이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은 이미 성령강림이 일어난 이후의 시대이므로 직접 성령의 임재를 기도해야 하며 성령 체험이 있어야만 예수를 영적으로 믿을 수 있는 단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죽음이란 생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몸과 혼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영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예수를 믿었다면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몸은 이 세상에서 온갖 질병과 사건과 사고로 인하여 고통과 아픔을 갖게 되지만 죽음 후에는 이 모든 질병과 사건과 사고 그리고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동훈목사의 경우 36세의 젊은 나이입니다.
더구나 가족들은 아내 라헬과 두 아들 그리고 딸이 살아가야 할 과정이 너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동훈목사 Jacob Lee(1984. 5. 4- 09. 28. 20 am 9:42) 36세
Wife / Rachel Tan Lee(1989. 12. 17-) 31세
Son / Zephaniah(2015. 9. 9-) 5세
Son / Jayden(2017. 6. 25-) 3세
Daughter / Kaelyn(2019. 6. 30-) 1세

몸과 혼으로만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영으로 생각하면 가장 좋으신 하나님께서 몸과 혼으로는 알 수 없는 놀라운 계획을 갖고 있으므로 남은 가족들과 우리가 위로를 받습니다. 이제부터는 놀라운 주님의 계획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The Spirit gives life; the flesh counts for nothing. The words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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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0월 10일 토요일입니다.
오늘 어머님 김은신권사님(92세)에게 손자 이동훈목사(36세)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처음에는 몹시 당황해 하시면 놀란 얼굴 표정으로 “세상에.........!” “세상에........!”만 연발하셨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님에게 손자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자식이 아니라 손자가 그것도 목사가 되어 모두에게 사랑을 받아야 할 때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려주는 것은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식을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것은 신앙적인 자세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 아침 기도를 마치고 故 이동훈목사 천국환송예배 라는 하관 예식 순서를 보여주므로 간접적으로 알렸습니다.

평소에 잘 듣지 못하시는 어머님께서 “언제 죽었니?” 라고 물으시기에 “9월 28일” 이라고 말했는데 정확하게 “28일” 하고 확인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럼 장례는?” 하시기에 이미 장례를 마쳤으며(10월 1일 하관예식) 나중에 알려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분명한 의식을 갖고 받아드리고 인정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충격적인 소식일지라도 정말 믿음이라면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하였는데 평소보다 조금 적게 드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즐겨 읽으시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며 이동훈목사의 죽음에 대한 두 번째 글을 올립니다.

성경은 사람을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육에 속한 사람(고린도전서 2:14)
- The man without the Spirit,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 영적이 아닌 사람, 자연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둘째는 신령한 사람(고린도전서 2:15)
- The spiritual man, 영적인 사람.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셋째는 육신에 속한 사람(고린도전서 3:1)
- worldly, 세속적인 사람, 육적인 사람, 육에 속한 사람.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가족들 중에서 어린 자녀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믿음의 어른들이 보여주어야 할 믿음의 자세는 분명합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신앙생활을 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겠습니다.

신령한 사람(The spiritual man, 영적인 사람)의 특징은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판단한다는 것은 죽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죽음 때문에 신앙의 흔들림이 없으므로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시 믿음이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확실한 소망 즉 영생의 소망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디도서 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디도서 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의 소망이란 죽음의 세계에서 분명하게 빛을 발할 것이며 완벽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사람만이 어떤 죽음이라도 신앙으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10월 13일(화)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Therefore we do not lose heart. Though outwardly we are wasting away, yet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 

겉사람(outwardly)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약해지고 병들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속사람(inwardly)은 겉사람과 반비례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죽음을 겉사람이라고 비유하면 영생은 속사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겉사람은 죽음을 안타깝다고 하며 슬퍼하거나 절망합니다. 그렇지만 속사람은 죽음 앞에서 담대합니다. 왜냐하면 속사람은 영생에 대한 믿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죽음은 잠시 겉사람과의 이별이지만 속사람은 더 건강하고 질병이 없는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를 기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영생에 대한 소망을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넘어야 할 고비가 시도 때도 없이 다가올 것입니다.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어려움이 부딪치면 대부분 후회하고 낙심합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소망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려면 엄청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라헬의 경우 이제 시작입니다.
5살 아들 재원(Zephaniah. 2015. 9. 9), 3살 아들 재선(Jayden. 2017. 6. 25) 그리고 1살 딸 재은(Kaelyn. 2019. 6. 30)을 양육하려면 경제적으로도 부담스럽습니다. 육신적으로도 힘들 것입니다.

이러한 부담을 나눌 수 있는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보살핌이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고 부담이 없이 지속될 수 있는지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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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lovely Rachel!

It should not be forgotten that there are many different people who comfort the sorrow of sending their beloved husband into the arms of God first.

An employee (Han Woo-mi) of my bank sent $200 upon hearing the news of Pastor Jacob Lee(Dong Hoon).

I send it by check.


After receiving it, I would like to inform Han Umi that you received it.


Woo Mi Han

136–88 39th Avenue

Flushing, NY 11354


Pastor Seunghyuk Lee
(Patris Church Pastor Victor S Lee)





  




결혼 주례사(이상훈, Edward Lee)

이상훈 결혼 서약식
04-02-2022(토) 오후 6시

마가복음 10:6-9
      6.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고린도전서 7:1-9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결혼(結婚)
 첫째, 그 부모를 떠나라
 둘째, 둘이 한 몸이 되라
 셋째, 하나님이 짝을 지은 것

결혼(結婚)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한문자의 "결(結)"이란 "묶는다"는 뜻이다.
한문자의 "혼(婚)"이란 "영혼"이란 뜻이다.

남자와 여자의 몸을 하나로 묶는다.
이것을 육체적 결합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는 정신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영혼의 결합이라고 한다.
따라서 두 사람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결혼이다.

두 사람을 어떻게 묶을 수 있을까?

첫째는 믿음이다.
둘째는 소망이다.
셋째는 사랑이다.

솔로몬 왕은 세 겹줄은 능히 끊을 수 없다고 하였다.
결혼으로 하나가 된 몸이 나누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나누어지는 것을 이혼이라고 한다.
이혼은 하나가 나누어진 것이므로 반쪽이 된다.
따라서 이혼 후에는 반쪽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나가 된 후에는 서로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려면 이해해야 한다.
이해라는 영어 단어는 내가 그 사람 아래에 서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보다 높은 곳에 서면 무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상대방보다 아래에 서면 존중하게 된다.
이해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랑받기 보다는 이해하라!"
"이해하기 보다는 믿어라!"
"믿기 보다는 인정하라!"

What does marriage (結婚) mean?
The Chinese character "Gyeol (結)" means "to bind"."to tie" 
The Chinese character "soul" means "soul" 

It binds the body of a man and a woman into one.
This is called physical bonding.

Then the mind must become one.
This is called the union of souls.
Thus, marriage is when two people become one physically and mentally.

How can I tie the two together?

The first is faith.
The second is hope.
The third is love.

King Solomon said that a three-fold cord cannot be broken.
What happens when a body united by marriage is divided?
Divorce is called divorce. Divorce is halved because one is divided.
So, after divorce, you have to live in half.

After becoming one, we must acknowledge each other.
To admit it, you have to understand it.
The English word for understanding is to stand under the person.

If I stand taller than the other person, I have no choice but to ignore it.
But if I stand below the other person, I will respect them.
Understanding begins with respect for the other.
First of all, if you live with an understanding of the other person, there is no problem.

"Understand rather than be loved!"
"Believe rather than understand!"
"Accept rather than believe!"

결혼(結婚)

맺을 결(結) : tie. bine
혼인 할 혼(婚) : marriage, metrimony, wedding, union

1. 남녀(男女)가 부부(夫婦) 관계(關係)를 맺음.
2. 혼인(婚姻)




연애는 크리스천이 맺는 여러가지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측면을 차지한다. 
그러나 달콤한 연애를 즐기던 남녀가 결혼해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갖게 되고, 치열한 직업 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하면 여러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크리스천 부부가 신앙 안에서 결혼 생활을 헤쳐나간다면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들은 성경 속 가르침을 통해 서로의 추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법과 서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을 축하해주는 법을 배우게 된다.

무엇보다 크리스천 부부는 하나님을 사랑할 때 가장 진실된 형태의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기독교 결혼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전진하는 두 사람의 사랑을 기념한다.

하나님과 개인적인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두 사람이 결혼을 행복하게 유지시켜주는 유일한 연결고리다.

미국의 작가이자 복음주의 목사인 게리 토마스(Gary Thomas)는 기독교 결혼의 특징에 관해 많은 부부들에게 강연해왔다.
그는 자신의 저서 '신성한 결혼'(Sacred Marriage)에서 "우리는 완벽한 행복, 갈등 없는 결혼생활, 서로에 대한 우상숭배적 집착 등 하나님이 결코 우리에게 하라고 허락하신 적 없는 것들을 결혼에게 요구하는 행동을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크리스천 부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서로의 모든 행복이 완벽하지는 않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완벽하지 않은 우리 모습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서로와 함께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토마스는 "배우자가 자신을 완성시켜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영적으로 우상숭배"라며 "배우자가 자기에게 '하나님'이 되기를 기대한다면 결혼생활은 매일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에게 결혼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해외 연애사이트 'Yourtango'가 성경구절을 통해 제시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를 알아보자.

1. 공유된 단일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마가복음 10: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크리스천은 결혼을 통해 교회 안에서 단일한 독립체가 된다.
이것은 창조에 관한 이야기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드셨다.
둘은 함께 지내기 전까지 불완전한 존재였다.
단일한 정체성을 통해 크리스천 부부는 서로에 대한 존경과 헌신을 드러낼 수 있다.

2. 두 사람의 가치관이 일치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3:8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종교적 결혼에는 여러 층위가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부부는 자신들의 공유된 믿음(가치관)에 기초해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을 섬기라는 큰 계명에 우리가 도달할 수 있게끔, 그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과 믿음을 나누라고 우리에게 파트너를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애로운 마음을 타인에게 열어주고, 믿음의 길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믿음의 길로 재합류시키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부부는 가장 책임이 큰 동반자다.
남편과 아내 모두 서로가 믿음 안에 머물도록 격려해야 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큰 목적을 서로가 달성하도록 도와야 한다.

3. 부부는 서로를 가지고 있다.

전도서 4:9-10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겁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결혼한 크리스천은 교회의 지원 속에서 유대감을 형성시킨다.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랑을 통해 좋은 시간이든 나쁜 시간이든 서로를 응원한다.
떨어져 있을 때보다 함께 있으면 더 행복하다.
그들은 서약을 통해 서로를 응원하겠다고 약속한 사이다.
그들은 서로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자신들을 인도해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