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갓끈 이론


김일성 갓끈 이론

"사람의 머리에 쓰는 갓은 두 개의 끈 중에서 하나만 잘라도 바람에 날아간다.”
김일성이 1972년 김일성정치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강조한 이른바 ‘갓끈 전술’이다.
김일성은 “남조선 정권은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끈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남조선 정권은 미국이라는 끈과 일본이라는 끈 중에서 어느 하나만 잘라버리면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으로 망명한 북한의 주체사상 창시자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북한 정권은 김일성의 갓끈 전술에 따라 한·미동맹과 한·일 우호관계를 약화시키려는 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지적했었다.

북한 정권은 그동안 한국에서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일본과의 관계 강화를 강조하는 한국의 인사들을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등 선전·선동 공작을 벌여왔다. 실제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관영 언론매체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일본의 과거 식민 지배를 비판하는 등 철저하게 반일 노선을 주장해왔다.

특히 북한 관영 언론매체들은 군사·외교 등의 분야에서 한·일 관계의 강화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해왔다.


친일파 일색 북한 초대내각의 진실
북한 정권은 또 한국은 친일파가 득세해 정통성이 없고 자신들은 친일파를 청산하고 항일독립투사인 김일성이 세운 나라이니까 정통성이 있다고 말해왔다.

때문에 북한 정권은 친일파가 세운 한국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북한 정권의 이런 주장은 전적으로 거짓말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됐다. 김일성 정권의 초대내각과 군부 등의 주요 인사들 가운데 16명이 친일파였다.

특히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 부주석은 일제강점기 헌병 보조원으로 근무했다. 김일성 모친 강반석의 7촌인 강양욱은 일제강점기 때 도의원을 지냈다. 강양욱은 북한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지냈다.

부수상 홍명희는 일제의 전쟁 비용 마련을 위한 임전(臨戰)대책협의회에서 적극 활동했다. 사법부장 장헌근은 중추원 참의 출신이었고, 북한 초대 공군사령관 이활, 북한 인민군 9사단장 허민국, 북한 인민군 기술 부사단장 강치우 등은 모두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출신들이었다.

반면 한국의 이승만 정권 초기 내각은 임시정부 내무총장을 지낸 이시영 부통령, 광복군 참모장이었던 이범석 국방장관, 광복군 총사령관을 역임한 이청천 무임소장관 등 임시정부와 광복군 출신인사들로 구성됐다. 친일파는 한 명도 없었다.

김일성은 “남조선(한국)은 친일 부역배들인 한민당과 이승만이 결탁하여 세운 미제의 괴뢰(傀儡)정부이므로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면서 민족사적 정통성은 북한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항일 빨치산 투쟁을 했던 자신을 구심점으로 내세워왔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들 가운데 가장 큰 업적으로 주장해온 ‘보천보전투’ 역시 완전한 조작이다.

북한 정권의 주장에 따르면 보천보전투는 김일성이 1937년 6월 4일 조선인민혁명군(동북항일연군) 소속 부대를 이끌고 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면 보천보(현재 양강도 보천군 보천읍)를 습격해 주요기관을 일시적으로 점령했던 사건을 말한다.

북한의 중학교 교과서는 “김일성이 1937년 3월 경찰주재소, 면사무소를 비롯한 일제의 통치기관들을 습격하고 보천보 일대를 해방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당시 보천보에는 일본인이 26호에 50명, 조선인이 280호에 1323명, 중국인이 2호에 10명 등 총 308호에 1383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무장인원으로는 5명의 경찰이 주재소에 있었을 뿐이다.

반일 앞세운 북한의 역사 조작

북한 교과서가 엄청난 전투가 있었던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소규모 전투에 불과하다. 이명영 전 성균관대 정치학과 교수는 '김일성 열전'에서 "보천보전투의 김일성 장군은 1887년 태어난 일본 육사 출신의 김광서라는 사람"이라면서 "북한 김일성이 보천보전투의 김일성 장군으로 둔갑한 것은 소련이 광복 이후 북한의 공산 정권 수립에 용이하게 사용될 수 있는 지명도가 높은 이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소련의 지휘하에서 훈련받았던 만주의 공산 유격대 출신인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金聖柱)였다. 소련의 지시로 광복 후 북한으로 들어온 김성주는 김일성 장군으로 행세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 정권이 주장하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은 조작임을 알 수 있다. 북한 정권은 올해 100주년을 맞는 3·1운동도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1894~1926)과 평양 숭실중학교 청년학생들이 주동했다고 교과서를 비롯한 모든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다.

3·1운동의 발원지도 서울의 탑골(파고다)공원이 아니라 평양의 숭덕여학교이며 평양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됐다고 역사를 왜곡·날조하고 있다. 또한 3·1운동의 성격을 3·1 인민봉기로 규정하고, 남조선의 33인 민족대표가 외세에 의존한 부르주아 상층 분자들이어서 운동 자체가 실패했다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 정권은 김일성이 7살의 나이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3·1운동에 참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조선력사(고등중학교 제4학년용)는 “그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께서는 여덟 살의 어리신 나이에 시위대렬(대열)에 참가하시여 만세를 부르시며 보통문 앞까지 가시였다. 민족의 류혈(유혈)을 처음으로 목격하신 어리신 대원수님의 마음은 분노로 끓어 번지시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김일성도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여덟 살(전통적인 우리식 계산법에 따른 나이. 김일성은 1912년 4월 15일 출생)이였던 나도 다 꿰진 신발을 신고 시위대렬에 끼여 만세를 부르면서 보통문 앞에까지 갔다”고 밝혔다. 그런데 당시 김일성은 김형직과 함께 중강진에 있었다. 북한 정권이 발간한 ‘김일성 원수님의 어린 시절’이란 책을 보면 김형직이 1918년 국경지대인 중강진으로 이사했고, 이때 김일성도 함께 고향을 떠나 김형직을 도왔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북한 정권이 역사를 조작하면서 스스로 오류까지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미국·일본·한국의 해군 함정들이 동중국해에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북한이 한ㆍ일 틈 벌리려는 이유

북한 정권이 이처럼 역사를 조작하면서까지 반일 노선을 추진해온 것은 김일성이 내세운 이른바 '갓끈 전술' 때문이다. 북한 정권의 일관된 목표는 한·미·일 3각 동맹을 저지하려는 것이다.

특히 북한 정권은 한·미 동맹이 굳건한 만큼 한·일 관계를 이간질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보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반도 전체가 고통을 받아온 만큼 북한 정권은 이를 고리로 ‘우리 민족끼리’를 앞세우면서 한국에서의 반일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한·일 관계의 틈을 벌리려는 가장 큰 이유는 6·25전쟁 때의 교훈(?)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일본은 미군을 비롯해 유엔군의 핵심 후방기지였다. 남기정 서울대 교수의 저서 ‘기지 국가의 탄생: 일본이 치른 한국전쟁’에 따르면 1953년 1월 일본 내 미군 기지는 무려 733개에 달했다.

주일 미군 기지들은 병사 및 물자 수송 및 훈련 등 후방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당시 미 공군은 주일 미군 기지에서 한반도로 100만여회나 출격해 폭탄 70만t을 투하했다. 주일 미군 기지에선 인천 상륙작전을 위한 한국군 병사 8000여명이 훈련을 받았으며, 원산 상륙을 위한 기뢰 제거 및 미군 수송에 8000여명의 일본인들이 동원됐다.

이는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16개 국가 중 6위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일본의 이런 역할은 지금까지 과거와 동일하다. 일본은 6·25전쟁 당시나 지금이나 지리적·전략적으로 같은 자리에 있다. 게다가 한반도 유사시 미군 전력이 출동하는 유엔군 사령부 후방기지 7곳이 모두 주일 미군기지이다.

미국과 유엔군 사령부 참여국들은 한반도 전쟁 상황에 대비해 일본에 유엔사 후방기지를 유지하면서 병력과 장비를 배치하고 있다. 7곳에 있는 병력과 군수물자들을 한국으로 이동하려면 미군 단독으론 안 된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지원이 필요하다. 미국은 또 항모전단의 호송 전력이 부족해 일본 이지스함 등의 지원을 받아야만 한다.

북한 잠수함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국으로 수송되는 병력과 물자들을 막기 위해 일본 근해로 출동할 것이 분명하다. 이때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이 북한 잠수함로부터 수송선을 보호해야만 한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막강한 대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주일미군의 지원이 없으면 북한의 공격을 제대로 막을 수 없다. 주한미군에 반드시 제공되어야 할 항공, 해상 전력과 전략 자산을 주일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은 전략적으로 한국의 안보에 매우 중요한 국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실리로 돌아선 중ㆍ일 관계의 교훈

그런데 문제는 북한의 갓끈 전략이 문재인 정부의 반일 노선과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에서 체결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를 정면 부정했고,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에 대해서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우리 해군 광개토대왕함의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 레이더 겨냥 논란으로 한·일 관계는 더욱 악화하고 있다.

한·일 관계는 1965년 수교 이래 과거사 문제와 독도 영유권 등으로 충돌을 거듭해왔으나 안보 분야에서는 협력 기조가 유지돼왔다.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도발은 한국은 물론 일본에도 가장 큰 위협이었다. 한·일 양국이 2016년 11월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한 것도 북한 핵과 탄도미사일 위협 증대에 공동 대처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한·일 관계를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면서도 과거 지향적으로만 가고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해 3차례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를 놓고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서로 등을 돌렸다.

물론 과거 식민 지배를 당한 한국으로선 당연히 일본에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요구해야만 한다. 일본도 강제징용, 근로정신대, 군대 위안부 등 제국주의 시절 자행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피해자인 한국이 가해자인 일본에 과거사 문제만을 물고 늘어진다면 양국 관계는 파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국내 정치만을 의식해 한·일 관계를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역사와 영토 문제로 인한 갈등과 대립에도 불구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앙숙 관계인 양국이 손을 잡은 것은 실리적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중국으로선 우군이 필요하고, 미국과 무역협상을 진행 중인 일본도 미국을 견제할 카드가 필요했다. 양국으로선 안보 문제 등으로 인해 밀월 관계를 맺을 수는 없지만 전략적으로 이득을 계산해 관계개선에 나선 것이다.

김일성이 광복 후 귀국해 평양 시민들에게 연설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

문재인 정부도 대일 외교 노선을 전면 개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한목소리로 반일 정서가 표출된다면 자칫하면 반미 정서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를 중재할 수밖에 없는 미국에 대해 국내 일부 친북 및 종북 단체들이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식으로 반미 정서를 부추길 수 있다.

북한 정권은 이미 통일전선전략을 통해 이런 수법을 쓰고 있다. 북한 정권이 유엔사 철수를 주장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한·일 관계 강화는 북한의 비핵화 실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북한과의 대화든, 압박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뿐만 아니라 한·미·일 협력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한·일 군사 협력이 필요하다.

현 상황에서 한·미 훈련의 축소와 취소도 문제지만 한 번도 일본 자위대와 손발을 맞춰보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북한의 도발이나 침공 등 한반도 유사시 한·미·일 3국의 협력이 중요한데, 한·일 간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협력할 수는 없다.

한·일 양국은 동북아 안보와 경제, 문화 등에서 교류와 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숙명적인 인접국이다. 한국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여행하는 곳이 일본이다. 일본 젊은이들이 가장 열광하는 것이 한류(韓(流)다. 한·일 양국은 과거의 아픈 역사를 뛰어넘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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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오션


https://md2biz.tistory.com/279


블루오션(Blue Ocean) & 레드오션(Red Ocean)

INSEAD 경영대학원의 김위찬 교수러네이 모본 교수가 창안한 용어로, 새로이 탄생하거나, 경쟁자가 별로 없는 시장을 의미한다. 넓고 광활한 푸른 바다에서 경쟁자 없이 평화롭게 지낸다는 의미로 시작되었다.

반대말인 레드 오션(Red Ocean)은 과거부터 존재해 오고 있는 메이저한 시장들로, 필연적으로 경쟁이 치열하다.

틈새시장은 차별화된 취향을 보이는 특정 소비자 계층으로 이루어지는 시장을 뜻하는데, 이 시장은 블루 오션일 수도, 레드 오션일 수도 있다.

'틈새 시장', 또는 '니치 마켓(niche market)'이라고 따로 이런 시장을 부르는 용어가 있는 것으로써 알 수 있듯, 이 둘은 분명히 구별되는 개념임에 유의할 것. 단지, 틈새시장이 아닌 시장이 블루 오션인 경우가 좀처럼 없는 이유로, 현대의 블루 오션은 틈새시장에 있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블루 오션의 의의는 타 기업보다 그 시장분야에서 고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기업이 수요를 새로이 창출한 시장이라면 당연히 기존 사업자가 있을 수 없고, 짧게나마 그 기업은 해당 산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

학문적으로는 포터의 5 Force 모델의 안티테제적인 위치에 있다.
포터의 주장은 시장에 존재하는 힘들의 균형에 의해 시장의 수익성이 결정된다는 주장과 달리, 블루오션의 개념은 하나의 아이디어에 따라 시장에 영향을 미치던 기존의 힘들을 메롱시키고 수익성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물론 역관광의 사례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레드 오션이 자그만한 아이디어 하나에 블루 오션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기저귀 제품을 생산하던 한 업체가 아이디어로 여아용 남아용 기저귀를 구분해서 팔자 순식간에 기저귀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여아용/남아용 기저귀의 구별이라는 아이디어가 레드 오션으로서의 기저귀 시장을 여아용 기저귀 시장, 남아용 기저귀 시장이라는 두 블루 오션으로 나뉘었고, 처음으로 이 아이디어를 낸 업체 측은 짧게나마 두 시장을 독점할 수 있었다.

Wii는 10대-30대의 전유물로 생각되던 콘솔 게임 시장의 기술과 "가족의 놀이"라는 아이디어를 결합하여 가족의 게임기 시장을 만들어냈고, 나중에 이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또 다른 블루 오션의 예를 들면, 스마트폰 앱 시장에 워낙 어그로가 끌리고 양산형 자바 프로그래머가 많아진 탓에 경쟁이 오히려 줄어든 윈도우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곧, 본래 레드 오션이었더라도 다른 레드 오션이 관심을 끌어 경쟁자가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났다면 훌륭한 블루 오션이 된다. 이런 현상의 수혜자로 반디 소프트가 있다.

"프로그래머로 대입해도 자바는 레드 오션이고 C, C++, C#, 파이썬 같은 언어들은 블루 오션이다."는 이해를 돕기 위해 서술한 듯 한데, 엄밀히 말하면 JAVA 같은 범용적인 언어는 앱을 개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PC 프로그램이나 Iot기기 펌웨어 개발에도 활용 할 수는 있다.

최적화 면에서는 조금 뒤떨어질지 몰라도 요즘 컴퓨터들의 상향평준화를 고려하면 가벼운 프로그램 정도는 C#을 쓰건 C++을 쓰건 자바를 쓰건 그게 그거다.

적은 지식으로 다양한 플랫폼(=시장)에 진출해 볼 수 있다는 점으로 본인 능력이 좀 후달리거나 어쩌면 자바의 선택도 나쁘지 않으며, 이러한 범용적인 면으로서의 자바는 레드 오션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C++로 컴퓨터 프로그램 만들어놓고 ARM이나 PowerPC와 같이 모바일 기기나 Iot 기기의 다른 아키텍처에, 또는 리눅스, 맥 같은 다른 OS에 이식할 때, 그러니까 크로스플랫폼을 시도할 때의 삽질을 훨씬 줄일 수 있다. 자바는 가상머신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C#도 가상머신 쓰긴 하는데, 자바의 역사가 더 길어서 정보가 더 풍성하고, 타 OS가 아니라 이종 아키텍처 사이의 이식에는 Java가 더 유리하다는 말이 있다. 그도 그럴게, Java 런타임(그러니까 일종의 가상머신)만 깔려 있으면 자바 프로그램 대부분은 그냥 돌아가거나 하다못해 수정이 필요하더라도 맨땅에 헤딩보다는 조금 삽질을 덜 할 수 있다.

성공 신화만 보면, 발견하기만 하면 부와 명성을 가져다 주는파랑새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하나의 아이디어로 없던 시장을 창조해내는 것부터가 상식의 틀을 깨는 아이디어로, 상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비자들을 유혹해야 한다는 면으로 쉽지 않은 과제이다.
이렇게 만들어낸 시장이 수익성이 있을지 없을지는 다른 문제이다.
심지어 어떻게든 수익성 좋은 시장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그 시장에 계속 머무르려면 이후 육박해 들어올 대기업의 자본력과 힘겨운 승부를 벌여야 한다.
위에 언급된 성공신화들이 기존의 산업에서 한 때나마 재미를 보던 쇠락한 대기업들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창 IT버블이 한창일 때 수많은 벤처기업이 등장하고 주목을 받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기업은 얼마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신흥 대기업이 된 사례도 있긴 하지만 그 당시에 등장한 벤처기업의 수로 현재 남아 있는 벤처 출신 신흥 대기업의 수를 나누면 거의 0에 수렴한다.

덤으로, 블루 오션 구역이 알려지면 당연히 비슷한 상품을 판매하는 이들이 그리로 몰리게 되므로, 결국 영구히 지속되는 블루 오션도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레드오션이 늦게 되느냐 빨리 되느냐의 문제이다.
그러니 '잠재적 레드 오션'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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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메타버스(metaverse)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
세상을 뜻하는 유티버스(Universe)를 합한 메타버스(metaverse)

온라인 공간을 마치 현실의 3차원 공간처럼 이용하는 기술이다.

가상 우주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가장 먼저 쓰였다.
이는 3차원에서 실제 생활과 법적으로 인정되는 활동인 직업, 금융, 학습 등이 연결된 가상 세계를 뜻한다.

가상 현실, 증강 현실의 상위 개념으로서,
현실을 디지털 기반의 가상 세계로 확장시켜 가상의 공간에서 모든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구체적으로,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의 전반적 측면에서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생활형, 게임형 가상 세계라는 의미로 폭넓게 사용한다.

메타버스의 네 가지 유형

1. 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
2. 일상기록(
Lifelogging)
3. 거울세계(
Mirror Worlds)
4. 가상세계(
Virtual Worlds)

비영리 기술 연구 단체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는
메타버스를 '증강과 시뮬레이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라는 두 축을 가지고 네 가지 범주로 분류했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은 현실공간에 2D 또는 3D로 표현한 가상의 겹쳐 보이는 물체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환경을 의미한다.
사람들에게서 가상세계에 거부감을 줄이고, 몰입감을 높이는 특징을 지닌다.
사용자가 단말기 카메라로 현재는 유적만 남은 흔적을 촬영하면 디지털로 구축된 과거의 건물이 사용자 단말기에 중첩해 보이는 장면이 증강현실 일례이다.
증강현실의 또 다른 예시로는 부동산(Property)과 디지털 기술(Technology)의 융합을 일컫는 ‘프롭테크(Proptech)’ 산업에서도 활용되고있다는 점이다.

일상기록(Lifelogging)

일상기록 또는 라이프로깅(Lifelogging)은 사물과 사람에 대한 일상적인 경험과 정보를 캡처하고 저장하고 묘사하는 기술이다.
사용자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을 텍스트, 영상, 사운드 등으로 캡처하고 그 내용을 서버에 저장하여 이를 정리하고, 다른 사용자들과 공유가 가능하다.
센서가 부착된 스포츠 웨어를 네트워크 연결이 가능한 MP3 플레이어와 연동하여 사용해서 달린 거리, 소비 칼로리, 선곡 음악 등의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등의 행위가 일상기록 예시이다.

거울세계(Mirror Worlds)

거울세계는 실제 세계를 가능한 한 사실적으로, 있는 그대로 반영하되 "정보적으로 확장된" 가상세계를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구글 어스(Google Earth)를 들 수 있다.
구글 어스는 세계 전역의 위성사진을 모조리 수집하여 일정 주기로 사진을 업데이트하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실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계속될수록 현실이 반영된 거울세계는 점점 현실세계에 근접해갈 것이며, 이는 향후 가상현실의 커다란 몰입적 요소가 된다.
이같은 거울세계 사용자는 가상세계를 열람함으로써 현실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가상세계(Virtual Worlds)

가상세계(Virtual World)는 현실과 유사하거나 혹은 완전히 다른 대안적 세계를 디지털 데이터로 구축한 것이다.

(예) 게임

가상 세계에서 사용자들은 아바타를 통해 현실세계의 경제적, 사회적인 활동과 유사한 활동을 한다는 특징이 있다.
가상세계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형태의 메타버스로서,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에서부터 린든 랩에서 개발된 세컨드 라이프와 같은 생활형 가상세계에 이르기까지 3차원 컴퓨터그래픽환경에서 구현되는 커뮤니티를 총칭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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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가치를 점점 더 중시하는 ‘슈퍼 개인’의 시대가 왔다.
끈끈한 정보다 느슨한 연대를 선호하고, 메타버스의 등장으로 ‘부캐’(부캐릭터)의 활약이 주목받고 있다.
주요 트렌드 서적에 등장하는 ‘2022년 트렌드’의 주요 흐름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담아낼 선교적 과제는 없을까.

4권의 서적
‘트렌드 코리아(김난도)’
‘라이프 트렌드(김용섭)’
‘트렌드노트(생활변화관측소)
‘트렌드모니터(엠브레인)’다.

이 시대 트렌드는 왜 주목할 만한가.

“최근 들어 4차산업 기술의 발달로 거대한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그동안 늦춰졌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10년 정도 앞당겼다는 분석이 있다.
2030년 쯤에 일어날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례없던 흐름을 진단하고 거대한 변화의 축이 바뀌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 등 다방면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트렌드와 복음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선교의 과정을 보면 늘 새로운 경계가 생겨난다.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성경(사도행전) 속에는 익숙한 경계를 넘어설 때마다 ‘복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하는 문제도 늘 제기된다.

베드로와 고넬료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선교의 큰 이슈 가운데 하나가 ‘상황화’다. 복음에 충실하면서도 어떻게 문화적으로 복음이 들어가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고 라이프 스타일이 변할 때, 절대 변하지 않는 복음이 어떻게 새롭게 재발견되는지 살펴보는 일도 가치가 있다.”

7가지 트렌드로 본 선교적 고려사항


1. ‘슈퍼개인’의 시대: 사회 파편화&개인 확장 시대

올해 가장 두드러진 트렌드 가운데 하나는 ‘슈퍼개인’ 시대의 도래다. 나노시대 또는 ‘나중시대’(나중심의 시대)라고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다 책임져야 하는 시대다. 자기존중·자기표현·자기중심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공동체 정신이 와해될 수 있다.

▶선교적 고려사항
=교회는 개인의 가치, 개개인의 삶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신앙 안에서 교회가 개인주의의 위험성을 극복하면서도 건강한 개인주의를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교회 안에서도 개인의 특성과 취향에 따른 모임을 성도들이 주도하게 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

2. 일상의 재발견: 루틴&습관의 계발

자신의 일상을 통제해서 습관을 계발하는 등의 ‘바른생활 루틴’이 뜨고 있다. 독서나 운동, 다이어트, 식단조절 등 ‘내 삶을 훈련시킨다’ ‘내 시간의 주인이 되겠다’는 인식이 바탕에 있다.

▶선교적 고려사항
=기독교의 강점이 두드러지는 분야다. 새벽기도나 큐티 등 한국교회의 강한 전통이 떠오르지 않나. 선교적으로 볼 때는 교회밖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작은 동호회 활동같은 게 유용한 선교적 도구가 될 수 있다. 같이 책을 읽거나 운동하는 등 교회(성도들)가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다. 금연 절주 등 자기발전을 위한 소그룹도 충분히 만들 수도 있다. 이를 통해 교회 밖 사람들이 기독교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교회성장 전문가인 톰 레이너 박사는 “성경공부는 집회, 영적 훈련 등 이른바 ‘하이키’는 불신자들의 교회 참여가 어렵지만, 동호회나 소소한 모임 같은 ‘로우키’는 교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3. 생태적 라이프 스타일

친환경, 자연친화적 스타일이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각심 영향이 크다. 동물과 식물을 보호하는 트렌드도 동반되고 있다. 20~30세대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기후환경 위기가 젊은 층에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트렌드는 지속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선교적 고려사항
=환경과 생명 돌봄을 중시하는 건 기독교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기독교 학자인 하워드 스나이더는 “병든 지구에 사
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건강할 수 있겠는가”라며 창조세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강조했다. 교회가 환경 보전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환경운동가를 양성하는 등 리더십을 키우는 일이 그 예가 될 것이다.

4. 메타버스의 가속화

피할 수 없는 환경이다. 교육과 업무 등 일상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내 모습을 뜻하는 ‘본캐(본캐릭터)’보다 가상의 내모습인 ‘부캐’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자기의 ‘본캐’가 아닌 ‘부캐’를 표현하면서 다른 세계를 경험하려는 트렌드가 더욱 확산될 것이다.

▶선교적 고려사항
=메타버스 예배에 대해선 다소 회의적이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이다. 하지만 부캐로 온전한 예배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보다는 ‘부캐를 통한 은사의 발견·활용’의 가능성을 높게 본다. 가상 세계 속에서 여러 자아의 계발을 통해 이를 선교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어떤 목회자는 부캐로 연극배우가 되어 문화선교사로 활동하는 식이다.

5. 세계관과 내러티브

메타버스 세계는 이야기의 보고다. 수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새로운 세계와 관계와 공동체도 등장할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세계관과 내러티브(서사)가 굉장히 중요한 컨텐츠 능력이 될 것이다.

▶선교적 고려사항
=기독교에서는 성경 자체가 내러티브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성경적 세계관을 담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 또한 중요한 선교의 도구가 될 것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내러티브적 해석 능력을 강조하는 시대다. 이는 내러티브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방식의 구현도 가능하다. 기독교 세계관은 기존의 내러티브 해석을 비평해 줄 수 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오징어게임’이나 ‘지옥’같은 영화나 드라마 통해서도 얼마든지 기독교적인 내러티브를 생산하지 않았는가.

6. 진화하는 관계

인간관계와 공동체의 관계가 변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사람들이 학연·지연·혈연 등으로 끈끈하게 이어졌다. 그 관계에 헌신했는데 이제는 아니다. 느슨한 연대사회로 흘러가고 있다. 비혼이 늘고, 덩달아 1인 가구가 늘면서 위계적 가족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선교적 고려사항
=이럴 때 일수록 교회는 믿음 중심의 건강한 공동체로서의 본을 보여줘야 한다. 건강한 결혼과 가정 생활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가족을 이루지 못하거나 이룰 수 없는 사람들(비혼자, 이혼가정 등)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입양과 성인후견인 제도 등에도 관심을 기울일 만한다.

7. 앙트레프레너(기업가 정신)

고정적·안정적 사회가 지나가고 변동성이 심한 사회로 흘러가고 있다. 변화를 감당할만한 자금과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동시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시대다.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도 병행하는 시대로 향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내 아이디어를 구현시키고 행동하고 실행하는데 의미가 있다. 기획하고 실행하고 관리하는 종합적인 능력이 발휘되고 있다.

선교적 고려사항=일터가 신앙을 표현하고 경험하고 전할 수 있는 곳으로 떠오르고 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21세기는 ‘마켓 플레이스’ 전도가 지배할 것이다”라고 전망한 적이 있다. 그는 광장에서 전도했지만 이제는 일터에서 ‘기독교적 비즈니스’를 육성하며 소명을 발견할 수 있는 시대다. 정치·경제·문화 등 주요 영역별로 어떻게 선교할 수 있는지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때다.

김 교수는 “지금 다방면에서 빠르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모든 일이 온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면서 “복음에 대한 자신감을 갖자. 복음만이 현 시대에 답을 줄 수 있다. 지금이 오히려 선교적으로 의미 있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됐다”고 강조했다.


일본 선교를 해야 하는 이유


세계선교를 지향하는 한국교회! 일본을 어찌할 것인가?

(일본 선교는 한국 교회의 기업  - 일본열도에 불어 닥치고 있는 불가사의한 기적들-

요한복음14: 12-14
2013
년 01월 24일
김안신
목사(한국CCC파송 일본선교사)

들어가는 말

 전주에서 목회할 때의 일이다. 만50세가 되던 90년 4월 어느 날 한 밤중, 나는 꿈 속에서 3일간 연속으로 “김안신! 일본으로 가라”는 이상한 음성을 들었다. 첫날 밤에는 “누가 헛소리를 하는고? 새벽 예배를 인도하려면 눈을 좀 붙여야 하는데” 하면서 짜증을 냈다. 이튿날에도 계속되는 부름에 급기야 일어나 문을 열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3일째에는 “아, 이건 하나님의 부르심이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 갈 수 없는 10 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했었다. “50이 넘었습니다. 장남입니다. 부모님은 8순이십니다. 아내는 6남매 장녀입니다. 처부모님은 7순이십니다. 일본말을 못합니다. 교회서 안 놔줄 겁니다. 아직 어린 자녀들의 교육 문제가 물가가 비싼 일본에서는 불가능 합니다. 이미 제가 5명의 선교사들을 돕고 있습니다. 가는 선교사가 아니라 보내는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일본은 회개할 줄 모르는 나라이니 멸망 받아 마땅합니다. 저를 놔주십시오!”

 

 하나님은 크게 책망하셨다. “나는 일본열도를 사랑한다. 일본은 내가 택한 내 백성이 사는 내 땅이다. 나는 이들의 복음화를 위해 네 몸이 필요하다. 일본으로 가겠느냐 내게로 오겠느냐. 양자 택일하라” “제가 일본에 안 간다면 저를 죽이실 작정이십니까?” “오냐! 네게 영원한 안식을 주겠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나는 교회에 사표를 제출하였으나 받아주지 아니함으로 그 해 6월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갔다. 2개월간의 짧은 단기 선교 훈련을 받고 귀국, 한국 CCC로 원대 복귀하여 90년 10월 1일 일본 선교사로 파송장을 받았다.

 

길고 지루한 시간, 비자를 기다렸다가 드디어 91년 1월 3일, 일본의 관문인

나리따 공항에 상륙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일본어라고는 [사요나라]와 [빠가야로] 밖에 할 줄 몰랐다. 언어학교의 등록이 마감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3개월 동안 소일하다가 그 해 4월부터 일본어를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외국어에 소질이 없는 내게 [아, 이, 우, 에, 오] 에서 시작된 일본어 공부는 너무도 큰 짐이 되었다. “젊고 유능한 선교사를 더 많이 보낼 테니 저를 원 위치 시켜주십시오” 라고 2년간 날마다 졸랐으나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을 하지 않으셨다. 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나는 악착같이 공부하여 1년 4개월만에 75명이 모인 교또의 복음자유교회에서 일본어로 설교할 수 있었다.

 

 자녀들 교육 때문에 아내는 한국에 머물고 있었기에 혼자서 거의 2년을 살았다. 답답하고 컬컬했던 나는 일본이 복음화되지 않으면 안될 이유와 내가 일본에 있어야 할 까닭을 하나님께 따지듯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확실하게 “일본은 21세기에 세계 선교의 무거운 짐을 져야 할 나라이다.”고 하셨다. 나는 이런 말 즉 “일본이 21세기 세계 선교의 무거운 짐을 져야 할 나라” 라는 말을 세계 선교 전문가들의 책에서나 강연 등을 통해서 읽어본 일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정말 말도 안 된다는 말씀이라는 생각으로 많은 시간을 고민하였다. 나는 정부간행물을 뒤적이면서 일본의 국력을 조사하다가 “만일 일본이 예수 믿고 복음화 되기만 한다면 세계는 바로 복음화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2년도 12월 31일 현재 지구상에 244개의 나라가 존재한다 지도상에 나와 있는 나라가 239개이다. UN 총회에 가입된 나라가 193개, CCC가 활동하고 있는 나라가 198개, 콜라가 팔리고 있는 나라가 200개, 한국이 무역하고 있는 나라가 225개인데 일본은 지도에 나와 있는 239 개의 모든 나라에 진출하여 넓은 토지, 큰 건물, 유가증권, 현지통화를 대량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이런 자산가들이 우리의 전도를 받고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자녀가 된다면 현지의 넓은 토지는 캠프장이 되고, 큰 건물은 교회와 기도원과 선교센터가 되며 현지의 유가증권이나 통화는 선교기금도 될 수 있다.

 

 나는 일본 선교 22년의 세월을 통해 토지와 건물과 재산을 아낌없이 바치는 신자들을 수 없이 보았다. (99년도 시즈오까-찌라시 한 장으로 자살 직전의 부부를 살린 사건) 세계 선교전선에서 일본의 역할에 대한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일본인들은 일단 확신을 하게 되면 자기 목숨이라도 버릴 각오로 우리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기질 즉 기마에(気前-시원스런 기질)와 근성(根性-곤죠)이 있다. 편도 휘발유만을 넣은 비행기를 타고 가 진주만을 공격한 카미카제(神風) 특공대를 기억해 보라. 이는 5천년의 전생역사를 통해 유일무이한 사건이다.

 그러나 나는 일본 선교의 장애물들이 열도를 지배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첫째, 일본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삼위 하나님의 개념이 없다.

카미사마(神様)라고 말할 때, 그 카미사마는 인격신이 아니라 인간을 초월한 위력을 가진 숨어있는 존재, 일본의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 신, 최고의 지배자 천황, 진자(神社) 등에서 제사를 받는 영, 인간에게 위해(危害)를 끼치고 공포를 주는 자 곧 천둥, 호랑이, 늑대, 뱀 등을 가리켜 ‘카미사마’ 라고 부른다. 따라서 성경이 가르치는 인격신인 삼위일체(三位一体) 하나님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여 가르치는 일이 아주 어려운 실정이다.

둘째, 공짜를 싫어하는 민족이기에 거저 주시는 구원의 복음을 거부한다.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거부감을 갖는다. 이들은 신사에 가서 구멍 뚫린 동전 5엔(고엔이라 읽는데 이는 ‘신사의 하나님이시여! 좋은 인연을 맺고 삽시다’ 라는 소원이 담긴 돈임)을 던지며 복을 비는 그런 정성이라도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공짜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일본인들이 가엾다.

셋째, 자기 나라를 지상천국으로 생각하는 현실주의자들이다.

 “돈, 여행, 쾌락, 자유 등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닌가. 나는 이대로의 삶에 최고로 만족한다. 다른 천국 관심 없다. 더 이상 나를 번거롭게 하지 말아 달라” 라는 말로 생명의 복음을 거절한다. 착각에는 커트라인이 없다는 말들을 하지만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을까?

넷째, 타테샤카이(縦社会)라는 높은 장벽이다.

일본사회의 구조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타테샤카이(종사회) 즉 인간 관계에 있어 상하의 질서와 서열이 아주 중요시 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노라”는 고백을 하기가 극히 어려운 실정이다. 주위의 사람들과 단절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소속사회로부터의 단절은 죽음을 의미하는 까닭에 사회의 일원이 되어 있는 사람이 예수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세례를 받으면 그는 개밥의 도토리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섯째, 8백만 귀신을 섬기는데다 진화론에 입각한 교육이 큰 문제이다.

일본인들은 조상 대대로 8백만의 신을 섬긴다. 특히 조상 신을 더욱 열심히 섬긴다. 인간은 윤회설 속에서 환생을 거듭하는 존재로 죽으면 끝난다는 사고방식 속에서 인간의 가치가 과소평가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진화론에 입각한 교육을 시키는 까닭에 조금 어려운 일이나 부끄러운 일이 생기면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는 풍조가 심하여 자살왕국으로 불리 울 정도이다.

 

여섯째, 하나님 보다 주일 성수보다 일에 우선 순위를 두는 민족이다.

“시고또의 오니(仕事の鬼, 일에 미친 사람, 일 벌레)”들이기 때문에 일이 하나님보다 교회보다 앞서 버린다. 따라서 주일날 일이 있거나 일감이 생기면 예배는 뒷전으로 물러가 버린다. 특히 5월말이나 6월 첫 주일에 행해지는 소학교 운동회 때는 예배당이 텅텅 빈다. 물론 전부는 아니고 주일 성수를 강조하는 교회는 예외이다.

일곱째, 예배가 너무나 부족하고 모이기를 힘쓰지 않는 교회이다.

 심방과 구역예배가 없고 대부분 주일 예배 한 번만 드리기 때문에 성장이 더디다. (주일날 10:30분의 모임은 예배, 수요일 모임은 기도회, 목요일 모임은 성서연구회이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 신앙이 아니라 상대적 상황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라는 통로를 통해서 예비하신 복을 주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덟째, “일본은 안 된다”는 목회자들의 부정적인 사고 방식이다.

 91년 1월, 일본에 당도했으나 언어학교의 등록이 마감된 뒤라 3개월 쉬는 동안, 먼저 온 선교사의 안내로 동경, 오사카, 나고야, 센다이, 삿뽀로, 후꾸오까, 교오또 등 7개의 도시를 순회하며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목회한 일본 목회자들과 교제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들의 말은 한결 같았다.

 “우리는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노방전도, 축호전도, 성서연구, 세미나, 제자훈련, 특별집회, 부흥회, 한국과 미국교회의 견학 등 이것 저것 다 해 보았으나 잘 되지 아니하므로 포기하고 말았다. 다는 아니지만 일본교회의 형편이 이렇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일본 교회의 미래는 어둡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말은 일본 목회자들의 전부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더러는 복음주의 신학과 신앙에 입각하여 크게 성장하는 교회도 있었다. 그런 교회들의 특징은 목회자가 복음은 보수하되 현대적인 상황을 이해하면서 유연성 있게 이끌어 간다. 찬양의 능력이 넘치며 열정적으로 기도한다. 더 나아가 모든 프로그램을 선교적 마인드로 운영하면서 성경 말씀에 기초한 제자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에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무엇(WHAT?)을 가지고 어떻게(HOW?)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WHO!)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판이하게 나타난다는 말이다. 교회는 삼각형으로 하나님은 정점에 있는 목회자를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담임 목회자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은 기독교의 2천년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사실”이다.

 

2003년에 CIS(교회정보센터)에서 “지금 현재 1%미만의 크리스천 인구를 5%로 올리려면 1,390년 걸린다” 라는 통계를 발표하였다. 나는 이 통계를 읽고 분개하였다. 이 통계가 발표된 2년 반 후인 06년 2월 20일, OCC빌딩에서 CIS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 참석했다. 순서가 다 끝난 다음 “질문이 있느냐?”는 사회자의 말에 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일어나 “비싼 비용을 들여 이런 어이 없는 통계를 만들어 내어 일본 교회를 기 죽이는 당신들도 문제이지만 이런 웃기는 통계를 보면서 ‘그래 우리 교회의 부흥은 안돼! 일본은 틀렸어! 일본복음화는 불가능해!’라고 절망하는 일본 교회 목회자들은 더욱 불쌍하다”고 쏘아붙이고 이렇게 말했다. “왜 하나님 편에서 일본 교회를 생각하지 않는가? 현재의 상황을 참고하여 계산해 보면 이런 통계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일본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면 이런 통계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이런 부정적인 사고 방식으로 팽대한 일본 지도자들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 중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일본열도에는 불가사의한 징조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첫째, 복음주의 교회들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던 1945년에는 일본의 자유주의 교회와 복음주의 교회의 비율은 26:1이었다. 그러나 두 진영 교회들의 성장 속도를 보면 1990년에는 26:26이었고, 2000년이 지난 지금은 정반대로 1:26이 되었다. 자유주의 교회의 성장은 크게 줄어들고 복음주의 교회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 일본열도에는 무목(無牧) 교회가 1,000개가 넘는다는 통계가 나와 있는데 대부분이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교회들이다.

둘째, 젊은이들 가운데 헌신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지난 91년부터 13년 1월까지 김준곤 목사께서 뉴라이프라는 이름으로 훈련된 한국CCC 대학생들을 북해도, 군마, 사이따마, 이바라끼, 동경, 시즈오까, 나고야, 오사까, 후꾸오까, 큐우슈, 오끼나와 지역 등의 수많은 교회들에 파송, 일본 교회를 섬긴 결과, 22년 동안에 적어도 젊은이들 백 명이 헌신하여 신학을 졸업하고 안수를 받았거나 지금 신학교에 다니고 있고 또 신학교에 입학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해외 선교사로 헌신한 젊은이들도 상당히 많다. 일반적으로 “일본 교회에는 1년이 다 가도 구도자가 한 사람도 아니 오고 5 년이 지나도 세례 받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던 일본 교회에 이렇게 많은 헌신자가 나왔다는 것은 가히 기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셋째, 한국과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교회들의 괄목할 성장이다.

 자매결연을 맺고 한국을 왕래하고 있는 교회는 지역에 상관 없이 어느 곳이든지 급성장하고 있음을 보았다. 이는 한국 교회가 성경적인 방법으로 교회성장을 도모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믿는다. 일본 교회의 부흥은 물론이고 자매결연의 상대인 한국 교회도 동반 성장하고 있음을 보았다. (일궁시의 한 교회)

넷째, 한국인 선교사들의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서양선교사들은 그 수가 현저히 줄어가는 반면 한국인 선교사들은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91년도에 825명이던 것이 2012년 1월 9일 현재 한국인 선교사 1,347명이 일본열도에서 사역하고 있다. 조국의 경제사정이 아직도 여의치 않은 상황임에도 그렇다. 또 한국인 선교사들은 사역의 열매가 현저히 나타나 10년 전후하여 대개 자체건물을 구입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다섯째, 기독교의 큰 집회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일본 전국에서 60년도 이후 1천명 이상 모이는 집회가 열리려면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60년대 빌리 그레이함 대회, 70년대의 밥 피얼스대회, 80년대의 루이스 파라오대회, 94년 초의 빌리 그레이함 대회 때에 그렇게 모였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는 보통 2, 3천명씩의 집회는 아주 간단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뉴라이프가 일본에서 시작된 이후 두드러진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섯째, 최근 VIP라는 실업인 중심의 평신도운동이 왕성히 일어나고 있다.  

1,500명에서 1,800명씩 모이는 성탄축하나 대중 전도집회들이 그들에 의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동경, 요꼬하마, 오사카, 나고야, 쿄또, 후꾸오까, 삿뽀로 등지에서 이렇게 모이고 있다. 이 모임은 점점 전국화 되어가고 있다.

일곱째,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분들이 공석에서 신앙 고백하고 있다.

전에는 자기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던 지위 높은 사람들 즉 정부의 고관이나 은행장이나 전무 또는 기업체의 장들이 대중 앞에서 “나는 이러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었노라”고 공석에서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이것은 진짜 기적이라고 해야 할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여덟째, 공공연한 장소에서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동경 시내의 근 30 곳에서 평신도들 중심으로 직장이나 호텔에서 매주 한번씩 모여 기도한다. 이들의 열심은 대단하다. 각 도시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09년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조찬기도회가 157개 정도 있는데 이들은 전국의 모든 지역에 이 기도회를 조직할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또 CCC 자매간사가 중심이 되어 예능인 전도가 이미 시작되었다.

아홉째, HOMELESS 전도가 왕성해지고 있다.

 일본 국내에는 공원이 전국적으로 약 550 여 개가 있다. 이 공원들에는 여지 없이 홈리스(노숙자)들이 살고 있다. 이들을 상대로 한 전도가 주로 한국인 선교사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는데 1백 명, 2백 명, 4백 명, 6백 명 등을 모아놓고 열심히 전도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 중 도시에서는 이런 전도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또 동경에는 홈리스들을 위한 신학교도 생겨서 열심히 가르치며 배우고 있다.

열째, 사회에서 버림받은 야쿠자들의 전도가 활발해지고 있다.

 야쿠자들을 중심으로 한 “밋션바라바” 라는 선교회가 일본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오야붕은 예수님”이라는 영화를 한일합작으로 만들어 상영함으로써 메스미디어 전도를 시도하고 있다. 범법자들에게는 비자를 내주지 않는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에 이들이 초청되어 문신을 내보이며 찬양을 하고 간증을 하여 많은 감동을 끼쳤다.

 

열한 번째, 동경성서전시회(00.11/2-19까지)에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많은 인파 (55,324명이 관람)가 몰려들었다.

 물론 사해사본이 전시된 까닭도 있었겠지만 일본인들이 성경이 무엇인가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 많은 관람객들 가운데 넌 크리스천들도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열 두 번째, 매스컴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NHK의 교육방송국에서는 소노 아야꼬 라는 카톨릭 신자의 성경강좌를 일년 이상 계속 방영했다. 또 2000년 12월에는 일본 전역을 커버하는 중앙 TV 6 채널과 지방 28개의 TV에서 예수영화를 상영했다. 2002년도 여름에는 동경의 한 복판에 위치한 긴자(銀座)의 일반극장에서 예수영화를 상영한 바 있다. 04년도 5월부터 일본의 150여 개의 일반극장에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이 2개월간 상영되었고 3백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교회들이 입장권을 구입, 불신 이웃들에게 선물하여 관람토록 한 결과였다.

열세 번째, 복음성가(GOSPEL SONG)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

동경에는 200명의 인원을 가진 복음 성가단이 있다. 그 중 크리스천은 지휘자와 단원 한 사람 등 2명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열정적으로 복음 송을 부르고 있다. NHK에서는 몸집이 아주 큰 흑인 여가수 수명을 출연시켜 수 주간 “Oh Happy Day”라는 곡으로 복음송 부르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는 시민의 취향에 대한 매스컴의 예민한 반응인 것이다. 특히나 블랙 가스펠(Black Gospel)팀이 등장하기라도 하면 그들은 거의 광적이 된다.

열네 번째,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의 작품이 지금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어느 때부터인가 “미우라 아야코는 한 특정 종교 즉 기독교의 변증가” 라고 알려져 있었기에 일반 시민들이 그의 저서들을 읽지 않았다. 그러나 1996년 “총구(銃口)”라는 작품(한국어로 번역이 되었음)으로 일본문학상 가운데서 두 번째로 권위를 가진 “이하라사이카크상(井原西鶴償)”을 받은 후 그녀의 작품이 재평가 되어 일반 시민들이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상을 받고 “비로소 내 작품이 일본인들에게 인정되어 기쁘다”라고 말했고 얼마 후 하늘 나라로 옮겨갔다. 미우라 아야꼬(三浦 綾子) 작품은 거의 모두가 복음에 관한 생생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빈 마음으로 그의 작품을 읽는 자들은 반드시 감동을 받을 뿐 아니라 변화되게 되어 있다. (왕 간사 박성록 교수의 전도)

열다섯 번째, 십자가의 장식이 눈에 뜨이게 많아졌다.

 거의 모든 여자들의 목이나 귀에 십자가가 걸려 있다. 십자가의 의미를 아느냐고 물으면 “모른다. 보기가 좋아서 달고 다닌다”고 한다. 이것 역시 보통 일이 아니다. 주님의 때가 오고 있다는 증거 중의 하나라고 본다. 나는 길거리에서 십자가를 달고 다니는 한 젊은 여인에게 “십자가는 보기 좋아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당신과 우리 모든 인류의 죄 값을 대신 지고 죄 없으신 예수님이 달려 죽으신 증거물이다! 이 예수님을 믿으면 축복이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 받는다. 십자가는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 임을 명심하라” 라고 말했다. 그녀는 부르르 떨며 창백해진 모습으로 떠나간 일이 있었다.

 

열여섯 번째, 자동차에 붙이는 부적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매년 정초, 신사나 절에 가서 비싼 부적을 사다가 자동차 번호판 위에 달고 다녔는데 최근에는 그런 것들을 거의 볼 수 없다. 그런 것을 부착하고 다녀도 사고는 난다는 증거일 것이다. 신사나 절간에 가지 않는다는 증거다. 20년 전만 해도 정초가 되면 대문에 이상스러운 장식들을 많이 해 놓았는데 그것도 많이 줄었다. 또 정초 밤거리에 촛불을 켜놓고 점쳐주는 여인들이 많았는데 그 수도 현저히 줄어들어 최근에는 거의 불 수 없는 현실이다.

열 일곱 번째, 일본의 모든 호텔 가운데 50,000개에는 채플이 지어져 있다.

 젊은이들의 결혼식을 호텔로 꼬시어 피로연을 열게 함으로써 돈을 벌기 위해 세워진 것이 채플이다. 그러나 최근에 이 호텔 채플에서 평일에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 이 일이 계속된다면 일본의 5만개의 호텔 채플은 모두 교회가 되어 일본열도에는 일시에 5만개의 교회가 불어나 한국교회의 수와 맞먹는 교회가 존재하게 된다는 계산이 가능해진다.

열 여덟 번째, 지금 일본열도에는 CHURCH SCHOOL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진화론에 입각한 일본에는 지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자살인구가 매년 3만4천명이 넘었고 사람의 목숨을 초개처럼 가볍게 여기는 풍조로 인해 살인과 자살이 자행되고 있다. 이제 일본은 교육으로 또는 법으로 컨트롤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 뜻있는 목회자들에 의해 교회학교가 여기저기 세워지고 있다. 현재 일본열도에는 50여 개 세워져 있고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마도 10년 후가 되면 적어도 몇 백 단위의 교회교가 세워질 전망이다. 오끼나와의 세계선교교회에서 운영하는 국제교회학교에서는 04년에 9명의 고등학생이 졸업을 하였는데 그 가운데 7명이 미국과 일본의 신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들은 돌아와서 일본의 교회학교 성장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계속해서 해마다 졸업생들 가운데서 헌신자가 많이 배출되고 있다. 이 교회에서는 미구에 대학까지 세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열 아홉 번째, 일본열도에 김치 붐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 교회를 배우려는 인본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일간의 장벽은 무너져 가고 있다. 일본 성도들이 한국에 올 때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려는 불신자들을 동반하도록 하여 믿음 좋은 가정에 민박시켜 전도의 기회를 찾는 가운데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 교회도 있다. 03년도에 만 70세의 나이에 8,848m의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한 일본인 미우라(三浦 雄一郞)씨는 “어떻게 그 나이에 그렇게 높은 산을 올라갈 수 있었느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등산할 때 30Kg의 김치를 가지고 가다가 머무는 곳에서는 반드시 김치 찌개를 해먹고 기운이 나면 등산을 계속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해서 그는 무료로 김치 홍보 대사의 역할을 했다. 그는 만 75세의 나이로 08년 5월 26일 또 다시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는 역사를 이루었다. 그 뿐이랴? 수년 전에 동남아를 휩쓸었던 사스(신형 폐렴)로 인하여 무수한 사람들이 죽었는데 한국인들은 한 사람도 걸리거나 죽은 일이 없었다는 뉴스가 보도된 이후로 김치는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세계 5대 먹거리 중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스무 번째, 한국 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영화, 연속극들이 인기 절정에 놓여있다. 특히 배용준이 주연한 ‘겨울연가’는 위성으로 지상 파로 계속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대장금’도 대인기였다. 한국어 배우려는 무리가 급증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인 크리스천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자연적으로 복음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한국인 교회에는 한글을 배우려는 일본인들이 방문해오고 있다. 사실 야쿠자의 전도도 한국인 자매들을 만난 그들이 복음을 듣고 신자가 되고 목사가 된 케이스이다. 지금 일본의 거의 모든 TV는 한국의 연속극을 방영하고 있다. 대개 7년이면 열풍은 끝난다는데 한국열풍은 제2기로 접어들어도 식을 줄을 모른다. 더구나 최근에는 소녀 시대 등 한국의 젊은 여가수 그룹들이 인기절정에 이르러 10대와 20대의 젊은이들 그리고 30대 이상 4, 50때 이상까지 열광시키고 있다.

 

스물 한 번째, 요즈음 일본의 청소년, 대학생, 청년들이“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수가 접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 사실은 갤럽조사에서 밝혀졌다. 몇 년 전 미국의 갤럽조사에서 내 놓은 통계에 의하면 일본의 청소년들 가운데 거의 37%가 자기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을 했다고 했다.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으면 “다니지는 않지만 나는 분명히 그리스도인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스물 두 번째, 요즈음 홈 처치, 셀 처치가 왕성히 생겨나고 있다.

 기성교회의 모임은 점점 약해져 가고 있는 반면 그룹으로 모이는 모임은 점점 왕성해가고 있다. 물론 평신도들 사이에서 이런 모임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20여년 전에 짐 몽고메리 라는 선교 전문가가 “일본의 지역적, 인간 관계적인 특성으로 볼 때 일본에는 1천명당 교회가 1개씩 필요한 나라다”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의 말이 타당하다면 일본에는 130,000개의 교회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스물 세 번째, 러브 소나타 등의 영향으로 신자들이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07년부터 온누리교회가 주최자가 되어 “러브소나타” 라는 주제로 문화를 통한 전도를 시도하여 오끼나와, 후꾸오까, 오사카, 동경, 센다이, 삿뽀로, 아사히카와 등지에서 작게는 2천명 이상, 많게는 2만 명 이상이 모였다. 두드러진 현상은 일본인 성도들이 일본복음화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가짐과 동시에 이웃 사람들에게 전도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러브 소나타가 시작될 무렵에는 일본교회도 일본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도 반대입장이었으나 그 결과가 너무 좋기 때문에 지금은 그 지역의 목회자들이 나서서 “비용은 우리가 부담할 것이니 그냥 와서 열어달라”고 한다.

스물 네 번째, 비전을 가진 외국인 선교사들이나 기도하는 일본인 목회자들이 일본열도에 복음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환상으로 보고 있다.

 지금 일본열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영적 변화를 보며 기도할 때, 앞으로 빠르면 10년, 늦어도 30년 전후에 지난 2천 년간 그 어떤 나라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엄청난 영적 부흥이 일본열도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슴이 설렌다. 이것은 나만의 환상이나 꿈이 아니다. 일본을 위해 애통하며 깊이 기도하고 있는 선교사들이나 일본인 목회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들이다. 심지어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평신도들 가운데서도 그런 환상을 보며 목숨을 걸고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이 일본열도에 사는 일본인들이 회개하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하시는데 누가 감히 일본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일본을 복음화하여 인류의 발을 씻는 종의 나라로 만드실 그 날이 반드시 속히 올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일본 선교에 힘써야 한다.

 CIS(교회정보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에는 2012년 11월 1일 현재 7,932개 교회가 있다(전년비 96개회가 문은 닫음). 등록신자의 수가 544,259명으로 전 인구 126,672,365명의 0.43%, 주일 예배 출석수가 278,856명으로 전 인구의 0.22%, 연간 수세자 7,257명, CS 학생들 52,498명, 한 교회당 평균 등록수 69명(예배출석신자 36명), 788개 도시 가운데 26개시에는 교회가 하나도 없고 그나마 1 교회 밖에 없는 시가 98개나 된다. 인구 2만 명 이상 사는 지역 가운데 42곳에는 교회가 없다. 정촌부(町村部) 929가운데 521에는 교회가 없다. 1교회가 전도해야 할 대상은 16,174명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작고 약하다고 해서 일본인 교회를 제쳐놓고 타국의 선교사들만 쓰지 않으신다. 일본 교회를 통해 일본을 복음화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본 교회를 깨우고 격려하여 스스로 자국복음화를 하도록 도와야 한다.

 

첫째, 우리는 일본 교회에 성경에 목숨을 거는 신앙을 전수해 주어야 한다.

 91년 7월, 후지산 등산기도회에 참석키 위해 일본에 오신 25명의 한국 목회자들 앞에서 동경성서교회의 오야마 레이지목사(한일 국교가 정상화 된 이후 바로 1천 만 엔을 모금하여 수원 제암리교회를 재건한 목회자)는 특강 때 다음과 같이 귀한 말씀을 하셨다. [한국 신자들은 성경에 목숨을 걸고 절대 순종하는 신앙을 갖고 있기에 그렇게 강합니다. 성경이 가라 하면 가고, 멈추라 하면 멈추고, 바치라 하면 바치고, 돌아서라 하면 돌아섭니다. 버리라고 하면 버립니다. 그러나 일본신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명령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절대성에 대한 신뢰의 부족으로 이 핑계 저핑계 대면서 순종하지 않습니다. 제발 여러분께 부탁 드립니다. 한국교회와 같이 성경에 목숨을 거는 신앙을 일본 교회에 전해 주십시오!]

 

그는 일어나 90도로 두 번이나 절을 하며 부탁했다. 나는 큰 격려를 받았었다. 이것은 바로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 말씀을 실감하고 있다. 일본 교회는 3B(Bart, Brunner, Bultmann)가 망쳤다는 말이 있다. 그들 3인은 성경을 비 신화화한 장본인들로써 성경의 가치를 떨어뜨린 사람들이었다. 일본신학이 독일신학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이렇게 연약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둘째, 한일 양국 간에 자매결연 운동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일본 교회를 깨우는 최선의 방법 중에 하나는 양국 교회가 자매결연을 맺고 피차 왕래하며 복음의 은혜를 나누면서 양국교회의 장점을 서로 배우며 영성을 동질화 하는데 있다. 감사한 것은 일본 교회가 한국 교회 목사들을 존경하고 모셔다가 말씀을 듣고자 한다는 것이다. 일본 신자들을 한국교회에 데려다가 민박을 통해 가정예배, 새벽예배, 철야예배, 금식기도, 산기도, 구역예배, 제자훈련, 영성 훈련, 헌금과 찬양훈련 등을 체험시키고 섬기는 교회에 돌아가서 그대로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일본의 중요한 거점지역을 돌아 본 나는 성경말씀을 사랑하고 그 가르침 대로 살고 있는 한국 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내왕하는 일본교회는 어느 지역에서나 예외 없이 착실히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일본인들은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3개의 시가 합병하여 인구 75만 명의 도시로 커진 하마마츠(浜松)의 어느 교회는 S라는 목사가 자기 가족과 함께 4.5조 다다미 방에서 개척한 교회였다. 6년이 지났으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새 신자는 물론 손님도 친구도 오지 않았다. 개척사역을 그만 둘까 고민하고 있는데 친구 하나가 찾아왔다. “교회를 부흥시킬 맘이 있으면 한국교회를 배워라”며 한국교회 통합측의 S 목사를 소개해 줬다. 그때부터 그는 생쥐가 풀 빵 바구니에 드나들 듯 한국을 왔다 갔다 하였다. 그로부터 12년 후에는 350명의 신자가 되었고 본당 200평의 예배당을 지었으며 11개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해외에 5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이것은 95년도의 이야기이다. 2천 년도에 그 교회를 다시 방문했을 때 개척교회가 39개로 증가해 있었고 미국에 연방정부가 인정하는 선교사 훈련센터를 설립해 놓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350명 수용 가능한 큰 관광호텔을 인수하여 캠프장으로 쓰고 있었으며 65,000평의 산을 구입하여 전원교회를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정말 기적 같은 역사가 그 교회를 통해서 여기 저기 나타나고 있었다.

 

셋째, 일본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 지구촌에는25,000 정도의 대학이 있다. 그 가운데 5천명 이상의 대학생을 가진 대학이 8천 개에 6천만 명의 대학생이 있다. 세계인구의 1%인 셈이다. 그 가운데 소위 일류대학이 1,548개, 그 가운데 88개가 일본에 있다. 일본에는 4년제 대학생만도 230만 명 이상이나 된다. 고향집을 떠나 도시로 유학 온 학생들은 타테샤카이(종사회)의 지배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스럽게 복음을 수용하고 있다.

 80년대 말경 국영 텔레비전인 NHK가 18세에서부터 24세까지의 젊은이들 수 천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만일 내가 종교를 택한다면?”이라는 질문에 신사가 5%, 불교가 11%, 기독교가 33%였다. 이들이야말로 황금어장이다. (어떤 다른 단체의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를 택하겠다는 수가 50%를 넘고 있는 있음)

 

 나는 2년간(94-95)에 걸쳐 매주 평균 5, 600명 정도의 노숙자들을 상대로 전도활동을 전개한 일이 있었다. 멀리 떨어진 온천을 하루 임대하여 대형버스 8대에 도시락 8백개를 싸가지고 350명을 싣고 가서 세례를 베풀었다. 2년간에 이렇게 많은 신자가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반드시 일본 개신교 역사에 기록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노숙자들의 전도를 받고 예수 믿을 사람은 별로 없다.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생은 전 인구의 1% 밖에 되지 않으나 만일 그들 중 한 사람이 변화되면 나머지 99명에게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몰몬교나 통일교나 옴진리교 등 이단들이 젊은이들을 목표로 비상침투 작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시사적인 교훈이다.

 

넷째, 재일한국인 2, 3세들의 제자화로 동포와 일본인 전도를 하거나 더 나아가 일본의 젊은이들 가운데서 헌신된 자들을 한국의 신학대학에 보내어 훈련시켜 역 파송한다면 더욱 놀라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국적만 한국인이지 사고 방식이나 생활자세는 완전히 일본인이다. 그들의 일본어 구사는 일본인만큼 완벽하다. 이들을 복음으로 무장시켜 동포와 일본인들을 전도케 한다면 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만일 한국 교회가 재일 동포 가운데서 헌신자가 생길 경우 입양하여 한국의 연세어학당이나 이화어학당에서 한국어를 1년쯤 배우게 한 다음 그를 한국의 여러 신학대학에 장학금을 주면서 신학을 연수케 한 후, 일본으로 역 파송한다면 선교사 한 사람을 일본에 보내어 언어훈련부터 시켜가면서 선교하는 비용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놀라운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또 한가지 한국교회가 시도해야 할 사항은 일본 교회의 젊은이들을 한국의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한 다음 선교사로 임명하여 한국 교회가 후원하여 일본으로 다시 보낸다면 이것이야말로 1석2조의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다섯째, 유학생, 주재원, 상사원들을 통한 일본인 선교를 모색해야 한다.

 한국에서 일본에 와 있는 유학생은 3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취학생, 연수생 등을 포함시킨다면 훨씬 더 많은 숫자가 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들에게 평신도 선교사의 사명의식을 심어 보내는 일이다. 주재원이나 상사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일본서 자비량선교사의 직임을 잘 감당할 때 붙잡혀 간 히브리소녀가 나아만 장군의 집에서 선교사의 사명을 수행했던 것처럼, 봐이킹족에게 습격 당해 노예나 첩이 되었던 스페인의 경건한 여인들이 영국을 예수 믿는 신사의 나라로 만든 것처럼 참으로 상상을 초월한 생명의 열매를 주 앞에 드릴 수 있다. 만일 젊고 발랄한 크리스천들에게 평신도 선교사라는 제도적 장치를 해서 보내지 않으면 그들은 빠르면 2, 3개월 안에 늦을 경우, 반년 안에 일본의 저질 문화에 빠져버리고 만다.

 

여섯째, 일본 교회의 지도자들을 격려하고 도전하여 자기 교회의 청년들을 신학훈련을 시켜 개척교회를 극대화 하는 일이다.

 지금 일본에 있는 신학교들은 헌신자가 없어 대부분 문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된 원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본 교회에 젊은이가 너무 적을 뿐 아니라 일본교회의 목회자들이 자기 교회의 젊은이들에게 헌신하도록 도전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일본인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용기와 담력을 주고 방법을 가르쳐 주어 젊은이들 전도와 양육에 함께 진력을 다한다면 일본교회의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보냄 받은 선교사들은 현지 일본인들의 교회를 도와가며 선교하는 Win-Win 체제를 실현해 간다면 정말 놀라운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일곱째, 단기 선교를 극대화 해야 한다.

 한국CCC에서는 뉴라이프2000(새생명 2000)이라는 프로젝트로 1991년 7월에 오사카에 400명의 대학생들을 보내어 33교회에서 현지교회를 섬기게 한 것을 기점으로 하여 2013년 1월까지 22년 동안에 오사카(関西), 후꾸오까(九州), 나고야(東海), 동경(関東), 삿뽀로(北海道), 요꼬하마(横浜), 교오또(京都), 코오베(神戸), 시가(滋賀), 오끼니와(沖縄), 시즈오까(静岡), 군마(群馬), 이바라끼(茨城) 사이따마(琦玉)등 201지역 1,677교회와 인근의 대학들에 연인원 20,113명을 보내어 2주에서 4주씩 전도 봉사케 하였다. 물론 여기 언급한 인원들 가운데는 대학생뿐 아니라 청장년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 교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현지교회 목사의 목회계획에 순종하며 종의 자세를 가지고 섬겼다. 1년 내내새 사람이 하나도 오지 아니하고 5년이 가도 세례 받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일본 교회가 뉴라이프 단기 선교팀을 받아들여 전도한 결과 어떤 교회는 19명이 세례를 받는 이변이 일어났다. 교회에 와서 예수 믿겠다는 신앙고백을 하면 바로 다음 주일에 세례를 주는 것이 일본 교회이다. 최소한 2, 3명에서 십 7, 8명씩 세례를 받는 일은 일상다반사로 나타났다. 어떤 교회는 5년 동안에 4배가 되기도 하였고 2배가 된 교회도 여러 곳에 많이 생겼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목회자들의 사고 방식이 180도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20년 전에는 “일본은 안 된다” 말하던 그들의 입에서 뉴라이프 단기 선교가 시작된 5년째인 95년부터는 “일본도 가능하다. 나도 할 수 있다”라고 바뀐 것이다. 이것은 정말 천지개벽과도 같은 변화이다.

 

 그뿐 아니다. 평신도들의 생각도 판이하게 달라졌다. “전도는 목사나 전도사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이 뉴라이프를 통해 모든 신자의 신성한 의무이자 특권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다. 전에는 목회자의 지시여서 마지 못해 따르던 신자들이 이제는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교회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그들은 “전도는 행동하는 믿음이다”라는 사실을 체득하고 그대로 실천하여 교회의 부흥성장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92년도 관서지역에 2,020명의 한국대학생들을 초청, 137교회에서 2주에서 4주씩 전도 봉사케 했을 때 일본어를 네 마디 밖에 모르던 여학생이 지나가는 신사에게 말을 걸었다. “곤니찌와(안녕하세요)” 사영리를 내밀면서 “욘데 쿠다사이(읽어주세요)” 다 읽고 나니까 “와까리마스까(아시겠어요?)” 예! 라고 대답하자 “신지나시이(믿으세요)” 라고 말한 후 그를 데리고 자기가 섬기는 교회로 갔다. 그날은 한국 음식을 잘 차려 놓고 그 동안 접촉된 사람들을 초청하여 대접하면서 결신을 재확인시키는 Korean Night였다. 그는 단기 선교팀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율동을 하면서 부르는 “사-산비시요 수쿠이누시 예수니! (자 찬미합시다 구세주 우리 예수께)”라는 찬송을 들었다. 그는 성경이나 찬송가와는 전혀 관계가 없던 완전한 넌 크리스천이었다.

 

 2시간 반 정도의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그 찬송 소리가 걸을 때도 운전할 때도 사무를 볼 때도 자리에 누울 때도 끊임없이 주야로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비인후과병원을 두 세 곳에 가서 진찰을 받았으나 이상이 없다고 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그는 다음 주일에 끌려갔던 그 교회에 갔다. 전도하던 한국 대학생들은 이미 다 귀국해버린 후였다.

 그는 담임목사님께 구세주 예수님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그 목사님에게서 4영리를 한 번 더 듣고 신자가 되었다. 그는 다음 주일 부하 6명을 데려다가 등록시켰다. 오사카에서 제일 큰 회사의 공장장이었다. 그가 출석하는 교회는 3년 동안에 35명의 신자가 늘었는데 그 사람이 32명을 전도했다. 그의 이름이 한국 말로 전중(田中)씨인데 일본말로는 다나까이다. 그 이름대로 다나까 씨가 “다 나까” 버린 것이다.

 

 96년도에 단기선교가 시작되어 12년으로 17년째 진행된 북해도 뉴라이프 전도는 그 어느 해보다도 열매가 풍성하였다. 삿뽀로 시내의 M여자대학은 아예 여름의 정기 프로그램에 편입하여 매년 단기 선교팀을 맞이하겠다는 결정을 했다. 에베츠시에 있는 낙농대학은 원래 미선스쿨이었으나 지금은 형식적인 채플만 있어 학점을 이수하기 위해 평일의 채플에 12, 3명씩 참석했는데 단기 선교팀이 가면 보통 2백명 이상이 주 3회씩 모이는 진풍경이 일어났다. 금년에는 무려 5백명 이상이 채플에 참석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뿐이 아니다. 2012년에 참가한 7교회에 일반 시민 이외에 가장 적게 참여한 대학생이 3명에서 5명, 8명, 9명, 10명, 11명이었고, 많게는 62명의 대학생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4시간씩 단기선교 팀 멤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며 찬양하고 설교 들으며 식사하며 깊은 교제를 나누었다. 그들 가운데 결신자도 많이 생겼다. 이건 정말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94년도에 시작된 큐우슈(九州) 지역에서는 7월 6일부터 8월 17일까지 42일간 15교회가 참여하여 단기 선교팀과 함께 전도하였다. 대학생들뿐 아니라 국악팀들과 찬양팀 그리고 요리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입체적인 전도가 이루어졌다. 특히 지역 별로 진행되는 축제행사에 참여함으로써 한일문화 교류의 차원에서 매우 좋은 반응을 얻게 되었다. 일종의 문화 전도가 먹혀 들어간 것이다. 태권도 공연을 통한 스포츠 교류, 홈스테이 등을 통한 일본 문화 익히기 등은 한일간의 높은 장벽은 낮추는 데 한 몫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런 단기 선교 사역을 통해 집계된 결신자 만도 수 십 명에 이르고 있다. 지진과 해일로 인한 동일본 지역의 피해와는 거리가 멀리 덜어져 있는 큐우슈지역이지만 이들도 방사능 피해에 대해 많은 염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들이 가난해진 상태에서 복음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외 동경, 요꼬하마, 나고야, 오사까, 교오또, 고오베, 시가, 오끼나와 등에서는 주로 대학생들을 전도하여 많은 열매를 얻게 되었다. 부족한 우리들을 쓰셔서 큰 역사 이루시는 주님의 성호를 찬양한다.

 

 신약성경 요 14:12-14을 보자.“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하나님께서 어느 날 당신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이 세상의 모든 새들을 모아놓고 날기 대회를 하셨다. 맨 먼저 하나님 발 앞에 앉아 있던 장닭은 정원을 몇 바퀴 돌고 왔다. 다음에는 하나님 어깨에 앉아 있던 참새가 이 집 저 집 건너 집 등 세 집을 돌다가 왔다. 세 번째는 건너 편 나무 가지에 앉아 있던 비둘기가 이 마을 저 마을 건너 마을 등 세 마을을 날아다니다 왔다. 오늘 괜히 날기 대회를 개최했다고 후회 막심하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독수리가 나타났다. “네 번 째는 제가 날아 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은 채 “그래 날 테면 날아보렴?” 이라고 시큰둥하게 말씀하셨다. 독수리는 후닥닥 공중으로 몇 백 미터 치솟아 오른 후 한 바퀴 비잉 돌더니 해 뜨는 동쪽으로 사라졌다. 다섯 번째, 열 번째, 백 번째, 이백 번째, 삼백 번째, 삼백오십 번째, 맨 나중에는 낮에는 기어 다니고 밤에는 날아다니는 박쥐까지 모든 새의 날기 대회가 끝났을 때는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져 온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때 독수리가 서쪽 하늘에서 나타났다. 놀라신 하나님께서 “너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라고 묻자 “예, 하나님! 저는 오대양 육대주를 돌고 왔습니다!” 이 말에 감동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상기된 모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새들은 다 모여라! 오늘 너희들에게 주는 상급은 날은 만큼이다!” 그리하여 장닭은 정원을, 참새는 세 채의 집을, 비둘기는 세 마을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독수리는 5 대양 6대 주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과 우리 모두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 교회와 우리 자녀들의 이야기이다. 꿈과 비전을 가지고 민족과 세계를 달라고 기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의 큰 일들을 맡기신다는 말씀이다.

 시편 81:10b를 보면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였다. 여러분들이 “지구촌 24,000종족 70억 만민 구원을 우리들에게, 우리 교회에 맡기십시오!” 라며 그렇게 해 주실 줄 믿고 기도한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여러분이 아무리 크게 요청한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는 “건방지다! 웃기지 말아라! 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성경전서와 3위 하나님의 대답은 “오냐!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이다.

 

 교회의 청년들 40명 이상을 목사로 양육한 형제단 소속의 나고야교회의 케도 켄지(毛戸健二)목사는 “CCC의 뉴라이프가 일본교회와 손을 잡고 일본복음화에 힘을 쏟아준다면 일본 교회 부흥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사변적이고 깊은 지식을 추구하는 일본 교회, 우상과 혼합종교의 온상에서 그 사고의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한 일본 교회가 한국 교회 젊은이들로 구성된 뉴우라이프를 왜 그리도 환영하는가?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복음(예수님의 유일성)에 대한 확신과 단순한 증거이다. 복음은 설명이 아니라 선포이다. 종교인이 전 인구의 212%를 상회하는 일본의 정신풍토 속에서 복음의 단순한 전달은 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선교사와 목사의 무덤”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본에서, 또 “일본은 전도가 자살한 나라”라고 소문나 있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아니하고 언어와 전통의 두꺼운 장벽과 문화화된 종교의 틈바구니에서, 신학훈련도 받지 아니한 풋내기 대학생들이, 때로는 비 내리는 길 바닥에 꿇어앉아 “일본을 복음화시켜 주십시오” 라고 울부짖는 모습으로, 축호전도 하면서 구 일본군 장교출신의 집을 방문하여 초인종을 눌렀을 때 “감히 죠센진(朝鮮人)이 일본에 와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며 일본인의 대문을 두드려?” 라는 호통을 맞으면서도 “오직 예수! 우리 주님의 사랑”으로 열심히 전도하는 모습에서 일본 교회의 성도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 안 된다. 일본복음화는 불가능하다” 라는 말은 지상 최대의 거짓말이다. 사탄의 속임수이다. 사탄의 음흉하기 짝이 없는 술책이다. 50평짜리 예배당 안에 쥐 한 마리가 들어왔다고 가정하자. 100명이 이 쥐를 잡으려고 끝이 날카로운 막대기를 두 개씩 가지고 있다. 이 쥐에게는 적이 얼마인가? 200개? 아니다. 두 발까지 합하면 400이다. 쥐가 자기를 죽이려는 400개의 적에게 초점을 맞추면 오금이 저려 멍청히 멈춰 있다가 밟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이 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어느 곳에 구멍이 있는가를 찾는 일이다. 그 구멍이 벽에 있는 지, 피아노 뒤에 있는 지, 창문이 열려 있는 지, 또는 천정에 있는 지, 현관이 열려있는지 구멍 하나만 찾으면 이 쥐는 살 수 있다.

 

 일본복음화를 불가능케 하는 방해물이 8백만 개, 1천만 개 있다 할지라도 한 가지 가능성만 있으면 일본복음화는 가능하다. 그 가능성이 무엇인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일본인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일본인들을 구원 하시려고 독생자까지 주셨는데 누가 일본복음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OK 하시면 만사는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일본 교회의 영성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태풍전야의 고요함 같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지도자와 성도들이 기지개를 펴고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1세기를 맞이하여 각종 이벤트가 교단 별로, 초교파적으로 계획되고 또 진행되고 있다. 연합 금식기도회가 열리는가 하면 전도대회가 자주 열리고 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일본 땅에 편만할 날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더구나 2011년 3월 11일 14:46분에 동일본에서 일어난 지진과 해일로 일본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다. 동일본에서 전도하면 10명 가운데서 한 사람이 반응을 보일까 말까 했는데 지금은 7, 8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눈물 흘리며 다가오고 있다. 일본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말이 전역에 퍼져있기 때문에 지금 일본은 복음 전도의 최고 좋은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나가는 말

 일본에는 세계 수십 개국에서 파송된 베테랑급 선교사 2천 여명이 사역하고 있다. 열매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을 지라도 그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열매를 거둘 때가 되어가고 있다. 복음파(JEA), 은사파(NRA), 교회협의회(NCC-자유주의), 그리고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아니한 제 4의 그룹에 속한 분들이 뉴라이프 프로젝트를 도입하고 있다. 우리는 오직 한 권 성경과 참 하나님, 구주와 주님이신 예수님,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님 즉 삼위 하나님을 일본인들에게 전해 줘야 한다.

 

 일본의 W. 성결교단 교단 대표인 미네노 목사(요도바시교회)는 한국 교회의 선교사들(자비량 등 평신도 선교사들도 포함하여)에게 당부하고 있다.

첫째, 과거와 현재의 일본 문화, 일본인의 정신구조, 기질에 대해 알아야 한다.

둘째, 파송된 지역의 고유 문화와 정신 구조, 기질을 파악해야 한다.

셋째, 일본 예절을 배우고 일상생활 속에서 그 예절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넷째, 지역사회의 필요를 파악, 주민의 불만과 반감을 사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일본인에게 맞게 복음을 전하려면 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해야 한다.

여섯째, 두 나라의 생활 습관의 차이를 잘 이해, 불필요한 마찰을 피해야 한다.

일곱째, 기도 및 선교에 대한 열정과 철저한 신앙훈련 등 한국의 좋은 영적 풍토가 일본 기독교계를 더 많이 자극해 주기를 바란다.

여덟째, 영성 및 지성과 더불어 사랑으로 균형 잡힌 전인적 복음전도가 필요하다. 단순한 열정은 경원시 되고 때로는 무시 당할 수 있다.

아홉째, 모든 연령층과 계층에 다양하게 복음을 제시해야 한다.

열 째, 명망 있는 일본 목회자나 건전 교단, 교회들과 협력관계를 맺어달라. (05.5.30. 국민일보)

 

 세계 선교를 지향하는 한국 교회는 일본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일본인의 94%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후예이다. 일본 사람들의 DNA는 한국인들의 그것과 일치한다. 일본선교는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의 후예를 복음화하는 일이다. 1천년 전에는 한일 양국 간에 통역 없이 자유롭게 왕래하였다. 지금 일본어는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하기 이전의 우리 나라 이두문자와 비슷하다.

 

 동방의 로마요 근대의 니느웨이며 현대의 아테네라고 일컬어지는 일본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를 정복하고 땅끝까지 가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사마리아 땅이다. 일본인들을 복음화하면 그들이 가진 239개의 모든 나라의 토지와 건물과 현지 통화들은 참으로 놀라운 선교 자원이 될 것이다.

 

 돈이 많이 들고 열매가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장 중요한 일본 선교를 너무도 쉽게 포기해 버리는 한국 교회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태국에서는 남자 신자 한 사람 얻는데 19년, 여자 신자 한 사람 얻는데 21년 걸렸다고 한다. 달마다 해마다 빈 탕 보고서를 보내면서도 언젠가는 열매를 거둘 것을 바라보면서 20년씩 전도한 선교사도 위대하지만 결신자 보고가 없어도 끝까지 후원한 서양 교회는 더욱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 빠르면 10년, 늦어도 30년 전후에 일본열도에서 지난 2천년 동안 어떤 나라도 겪지 못했던 영적 부흥이 일어날 것을 환상으로 보고 있다. 일본이 복음화되면 세계만민의 발을 씻는 주님의 몸종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지상 최대의 사랑의 복수가 될 것이다.

 

 일본이 부르고 있다. “와서 도우라”고 손짓하고 있다. 월드컵2002 공동주최로 한일간의 장벽이 무너졌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등 양국의 젊은이들이 1년씩 돈벌이해 가면서 공부할 수 있는 이런 분위기는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한류열풍이 강하게 일본 열도를 흔들고 있다. 05년 3월 아이찌현의 만국박람회 이후 우리는 비자 없이 6개월간의 체재가 가능하게 되었다.

 

한일 양국간에 6개월이 아닌 더 긴 기간을 노비자로 자유롭게 왕래할 날이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비자 문제가 자유스러워지는 까닭은 한국 교회가 일본복음화를 위해 한 몫을 담당해야 하는 영적인 측면도 배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선교에 뜻을 가진 한국 교회들이 정책적으로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일본인들을 초청하고 또 일본에 단기 선교단을 파송하여 열심히 전도한다면 놀라운 결과를 얻을 것이다.

 

일본에는 무목 교회가 1천 개 이상 있으나 한국에는 교회가 없는 목사들이 지천으로 많다는 말을 듣고 있다. 이런 목회자들 가운데서 일본선교를 위한 헌신자가 나와 한국교회의 뜨거운 기도와 후원을 받아 일본에 온다면 이건 일본복음화에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들에게서 독도, 위안부, 창씨개명 문제 등 망발, 망언, 망상을 없애는 지름길은 그들의 가슴에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다. 일본인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우리의 형제자매가 된다. 증오심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 한일 양국간의 진정한 화해는 복음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만일 한일 두 나라가 동반하여 세계 선교를 모색한다면 지진과 폭풍 같은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故한경직 목사가 1945년 9월 평안북도 상황을 알린 비밀청원서 발견 | 한국 교회 이야기와 선교 이야기


"소련군에게 무기 넘겨받은 공산주의자들, 라디오 방송국과 지역신문 빼앗고 있다… 반대세력 학살 위협하고 대낮에 총살"

이선민 선임기자

입력 : 2017.08.16 06:07 | 수정 : 2017.08.16 08:30

[오늘의 세상]

故한경직 목사가 1945년 9월 평안북도 상황을 알린 비밀청원서 발견

"청원서 받은 美군정 정치고문… '소련군 활동, 믿을 만한 첫 증언'
소련군, 도시에 들어가면서 현금 강탈·부녀자 강간 일삼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우리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기대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소련군이 진주해 우리 백성을 약탈하고 많은 비행을 자행하고 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공산당 지배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는 '공산 한국'을 원하지 않는다(We do not want red Korea).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북한 지역은 완전히 황폐질 것이다. (연합군이) 즉각 위원회를 파견해서 상황을 조사해 달라."

    2012  종교·정치·사회 등 광범위하게 20세기 한국사에 큰 자취를 남긴 한경직 목사. 그는 평양과 신의주에서 활동했으며, 1945년 11월 서울로 온 뒤에는 영락교회를 세워서 월남한 서북 개신교 세력의 구심점이 됐다. 사진은 한경직 목사의 삶을 그렸던 2012년 다큐멘터리‘한경직’. /마운틴픽처스

20세기 후반 한국을 대표하는 개신교 지도자인 한경직(1902~2000) 목사가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26일 서울의 미군정에 소련군이 점령한 평안북도 일대의 정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 영문(英文) 비밀청원서가 발견됐다. 한국기독교사를 연구하는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가 최근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소(NARA)에서 찾아낸 이 문서는 일본이 패망한 뒤 신의주에서 소련군 및 공산당과 마찰을 빚던 한 목사가 서울로 내려와 미군정 당국에 제출한 것이다. 당시 미군정 정치고문이었던 베닝호프는 비밀청원서를 자신의 평가를 담은 보고서와 함께 미국 국무부에 보냈다. 베닝호프는 이 청원서가 "38도선 이북을 점령한 소련군의 정치 활동에 관한 최초의 믿을 만한 목격자 증언"이라고 평가했다. 베닝호프의 보고서는 미 국무성 외교문서집(FRUS)에 수록됐지만 한 목사의 비밀청원서는 포함되지 않아 그동안 전문이 알려지지 않았다.

 윤하영 목사

한경직 목사가 신의주제1교회 담임인 선배 윤하영(1889~1956) 목사와 연명으로 작성한 A4용지 3장 남짓 분량의 청원서에 따르면, 일본이 항복한 다음 날인 8월 16일 신의주의 지도급 인사들은 질서 유지를 담당할 자치위원회를 구성했고, 8월 25일 평안북도 각 시·군 대표들이 참여하는 평북 자치위원회로 확대됐다. 8월 30일 소련군이 신의주에 들어오면서 시태가 급변했다. 소련군은 인민정치위원회를 새로 만들고 급조된 두 개의 소규모 공산주의 조직과 자치위원회가 함께 참여하도록 지시했다. 곧 공산주의자들이 인민정치위원회의 다수를 차지했다.

소련군은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킨 뒤 그들에게서 빼앗은 무기를 공산주의자들에게 넘겨주었다. 며칠 뒤 조직된 공산당은 법원 건물을 무력으로 차지해 본부로 사용했고 라디오 방송국과 유일한 지역신문을 빼앗아 공산주의 선전 선동을 시작했다. 공장과 농촌 마을에는 공산당 조직이 만들어져 무력으로 공장과 농지를 접수했다. 소련군은 비행기로 선전 유인물을 살포하면서 공산당을 지원했다.

이런 사태 전개에 놀란 개신교 지도자들은 '기독교사회민주당'을 만들었다. 이를 알게 된 공산당은 그들이 공식 활동을 하면 소련군이 대량 학살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한경직 목사는 신의주에서 벌어진 테러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9월 16일 대낮에 거리에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발언을 한 사람이 공산당원인 경찰의 총을 맞고 죽었다. 살인자는 풀려났고, 평상시처럼 일하고 있다.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이 이에 항의하자, 다음 날 경찰이 몰려와 체포했다."

비밀청원서는 "사람들은 압도적 다수가 공산주의에 반대하지만 공포와 테러 분위기에 사로잡혔고,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공산주의자를 제외하고는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소련군은 철수하기 전 북한 전역을 공산화하려고 결심한 것이 분명하다"고 적었다.

     1945 9 26               한경직 목사가 윤하영 목사와 함께 1945년 9월 26일 미군정에 제출한 비밀청원서(왼쪽). 북한에 소련군이 진주한 뒤 스탈린과 김일성의 대형 사진을 들고 행진하는 평양 주민들(오른쪽). /박명수 교수 제공·조선일보 DB

이어 소련군의 비행이 "상상을 넘어선다"며 자세히 설명한다. 소련군은 도시에 들어가면 먼저 은행에 가서 현금을 강탈한다고 했다. "신의주에서 소련군은 (은행에서) 120만엔을 가져갔다. 가정집에 침입해 시계부터 여성복까지 귀중품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강간한 사례는 셀 수조차 없이 많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38선을 넘으면서 소련군에게 약탈과 강간을 당한다고 폭로했다.

1932년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유학에서 돌아와 신의주 제2교회에서 목회하던 한경직 목사는 일제 말 교회를 사임한 뒤 고아원과 양로원을 설립해 운영했다. 광복 후 신의주 자치위원회 부위원장, 기독교사회민주당 부위원장으로 활동한 한 목사는 비밀청원서를 제출한 뒤 평양으로 돌아갔지만 10월 말 윤하영 목사와 함께 북한을 탈출했다. 그가 북한을 떠난 뒤 용암포 지역의 기독교사회민주당 창립 모임을 공산당이 습격하자 신의주 일대의 개신교 학생이 중심이 돼 저항한 사건이 신의주학생의거이다.

박명수 교수는 "이 비밀청원서는 평안북도 개신교 지도자들이 소련군 진주 후 한 달간 직접 목격한 증언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미군정이 소련군과의 관계를 재고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16/20170816002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