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주일(01-02-2022)


2022 복 그릇(마태복음 5:3-5)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그리스 민담 / 포대 만드는 사람 

옛날 옛적에 포대를 만드는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포대를 만들면서 언제나 이렇게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나 혼자서 그것을 막았지.”

아침저녁으로 그는 이 노래만 불렀습니다.
어느 날 왕이 그의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그가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 혼자서 그것을 막았지.”

저녁에 왕이 그곳을 다시 지나갔는데 그는 또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나 혼자서 그것을 막았지.”

왕은 그의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포대 만드는 사람은 왕을 보자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나서 모자를 벗더니 두 손을 십자가 모양으로 앞가슴에 얹었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했습니다.

“여보게, 자네에게 내 한 가지 묻겠는데 바른대로 이야기해주게.”

“네, 임금님! 제가 아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진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포대 만드는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아침저녁으로 자네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항상 ‘나 혼자서 그것을 막았지’라는 노랫소리가 들리더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게 되어 다른 노래는 통 부르지 않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게나.”

“아! 임금님, 무어라 말씀드려야 할까요? 저는 다만 저의 가난함을 노래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저는 몹시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루는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저의 운명이 어떻기에 이렇게 발전이 없고 찢어지게 가난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렇게 질문했지요.

그러자 천사가 넓은 광야 같은 곳으로 안내하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샘물들이 있었습니다.
이 샘물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샘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의 복이라고 하였지요.
그래서 나의 이름이 적힌 샘을 찾았는데 샘에서 물이 한방울 두방울씩 떨어지더군요.
아마 샘이 막혀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여 긴 장대로 샘의 구멍을 마구 쑤셨습니다.
순간 흙탕물이 왈칵하고 나오더니 아예 구멍이 막혔는지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막아버린 것이지요.
차라리 샘을 그대로 놔두었더라면 하고 후회하며 "내가 막아버렸지!" 하고 노래합니다.

그날 저녁 궁으로 돌아간 임금님은 신하게 접시에 빵한덩어리를 담아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에게 보냈습니다.
임금님이 보낸 빵을 받은 노인은 "우리 식구가 다섯인데 빵 한덩이로 식구들이 먹을 수 없으니 차라리 빵집 주인에게 임금님이 보낸 빵을 줄터이니 무엇을 주겠나?
빵집 주인은 진열장에 있던 빵을 모두 주었지요.
그 빵을 갖고 집으로 돌아오며 며칠은 빵 걱정이 없겠구나!

그 다음날 임금님이 노인의 가게 앞을 지나는데 여전히 "내가 막아버렸지!"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임금님은 참 이상하다.
아직도 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나! 하며 그 날 저녁에는 칠면조 구이 한 마리를 보냈습니다.
노인은 칠면조 구이 한 마리를 받더니 고기도 먹던 사람이 먹어야지 갑자기 기름기가 들어가면 배탈이 날테데 하며 칠면조를 식당 주인에게 가져가서 식당에서 가장 맛 있는 음식으로 모든 식두들이 먹을만큼 얻어왔습니다.

그 다음날 임금님이 또 가게 앞을 지나는데 여전히 똑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그날 저녁 임금님은 자루에 금화를 가득 담은 후에 노인이 퇴근할 때 건너가는 다리 중간에 금화자루를 놓고 아무도 가져가지 못하게 한 후 신하에게 지켜보라고 하였지요.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던 노인은 다리 앞에 서더니 갑자기 이 놈의 다리 내가 평생을 건너다녔는데 오늘은 두 눈을 감고 건너가야지 하여 눈을 감고 건너가므로 중간에 놓였던 금화자루를 지나치고 말았지요.

신하는 금화가 가득한 자루를 그대로 임금님에게 가져왔습니다.
임금님은 신하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구나 복이 없는 사람은 그 이유가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2022년 신년주일을 맞이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면 늘 주고 받는 인사말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해마다 복 많아 받으라는 인사말을 들었는데 정말 복 많이 받으셨나요?
복을 받으려면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소개합니다.


 



이민자들




이민자들이 문을 두드릴 때

자연법이 요구하는 것

- 에드먼드 발트스타인


2015년 9월, 나는 니더외스터라히 주의 트루마우와 파프슈테텐이라는 두 교구의 사제로 일하고 있었다. 난민 위기가 절정에 달한 때였다. 수십만 명의 이주민들이 발칸반도를 통해 중유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파프슈테텐과 트루마우 사이에는 트라이스키르첸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오스트리아 망명 신청자들이 처음 보내지는 난민 수용소가 거기에 있었다.

나는 거의 매일마다 두 교구 사이를 이동하느라 차를 몰고 이 수용소를 지나갔다. 수용소는 포화 상태였다. 많은 난민들이 밖에서 텐트나 맨 땅에 담요를 깔고 잤다. 수용소 전체가 할 일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그늘에 앉아 있는 난민들로 가득했다. 오전에는 병원 진료실과 약국 밖에 긴 줄이 늘어섰다. 수용소 바깥에는 옷, 비누, 음식 등을 무료로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도 늘 있었다. 파프슈테텐 교구는 독일어 수업을 위해 교실을 제공하고 일부 유인물 정리도 도왔다. 수용소 자체에 접근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한 번은 트라이스키르헨 교구 사제의 도움으로 안으로 들어가 본관 위층(옛 예배 처소)의 작은 예배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난민들은 우선 시리아, 그리고 수단, 이라크, 이란에 이어 아프가니스탄(지금처럼)등 여러 곳에서 왔다. 대부분은 전쟁으로부터 도망쳐 왔지만,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미사에 참석한 대부분은 이란과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란에서 온 한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딸 한 명과 함께 기독교로 개종하고 싶어서 가출했다고 했다. 그들의 개종 사실을 알아챈 남편이 14살 난 딸에게 찾아서 죽이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단다.

그러나 대다수의 난민들은 이슬람 교도들이었다. 트라이스키르헨의 수용소 맞은편에 모스크로 개조된 작은 건물이 있었다. 모스크와 트라이스키르헨의 가톨릭 교구는 관계가 꽤 좋았다. 그들은 특별히 독일어 수업을 조직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협력했다. 트라이스키르헨 교구가 이미 몇 명의 이슬람 교도들을 교회 안으로 받아들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했다. 시리아 난민들 중 많은 숫자가 중산층과 상류층 출신들이었고, 이동에 쓰고 남은 돈이나 스마트폰, 다른 귀중품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일부 오스트리아인들은 이들이 "진짜 난민이 아니다", 이슬람이 유럽을 장악하기 위해 모든 상황을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민의 장기적인 영향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이 잃어버리지 않은 몇 가지 것 중에 몇 천 유로, 아이폰, 금반지가 있다고 해서 가족과 집, 직업, 나라를 잃어버린 시리아인 의사나 변호사가 초만원 난민 수용소에서 살기로 작정한 동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다.

A Syrian father and his children wait in line to have their passports checked at Hanover airport in Germany

시리아 난민 아버지가 독일 하노버 공항에서 아이들과 함께 여권 확인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다. 사진 Gordon Welters

진보적 세계주의자 진영과 대중적 민족주의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민에 대한 현재의 논쟁은 정치 공동체와 연대의 본질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어느 쪽도 만족스러운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이민 현상은 자연스럽게 그런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데, 새로운 구성원들이 지역사회에 받아들여지는 정도는 그 지역사회가 내부 통합을 어떻게 이해하고 유지하느냐에 따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헐렁한 텐트에 살며 신뢰의 끈에 의존하는 유목민은 돌집이나, 자물쇠가 달린 집, 사색적 철학, 법원, 심지어 (아마도) 칼럼니스트가 있는 도시 국가와는 다른 방법으로 외국인과의 통합에 접근할 것이다.

그치지 않는 레반트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이 있는 지역) 전쟁이나 경제적 어려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세계화의 역동성 등에 의해 남반구 저개발국가들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피해 유럽과 북미의 번영하고 비교적 안정된 나라로 들어가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민족주의자들과 세계주의자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세계주의자들은 노동과 자본이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는 완전히 자유롭고 다문화적인 미래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또 동질적 민족 문화의 잔재를 파괴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유주의 이민 정책을 선호한다. 물론 그들에게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동정이 아직 남아 있다. 반면 민족주의자들은 이미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보호주의 이민 정책을 선호하지만, 종종 난민과 이민자들의 요구를 냉담하게 무시한다.

얼마나 많은 난민을 수용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그들이 우리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우리 모두가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잘 도울 수 있을까? 이것이 정말 어려운 토론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세계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의 논쟁은 여러 면에서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에 의해 고대 철학에서 제기됐던 논쟁을 연상시킨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인가 아니면 제국적 동물인가? 즉, ‘인간의 본성은 고대도시 때처럼 서로를 모두 잘 아는 소규모 공동생활 범위에 제한하며, 우정에 기초한 연대는 공동체를 통합할 수 있는가?’ 아니면 ‘이성의 보편성은 오히려 플루타르코스의 말처럼, “선하고 유덕한 사람은 [모든 인류를 막론하고] 친구와 친척이며, 악한 자만이 외국인으로 간주 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더 기우는가?’ 하는 질문이다.

중세 기독교는 그 두 가지 이상을 종합해 보려고 시도했다. 기독교 세계는 이상적으로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나라의 친구이자 동료 시민으로 여겼고, 오직 이슬람 교도와 유대인들만 외국인으로 여겼던 보편적인 공동체였다. 또 교황의 영적 권위와 황제의 세속적 권위 아래에 통합된 공동체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 지위는 왕국, 영지, 군, 수도원, 촌락, 마을 등의 하위 계층이 추구한 수많은 공공재처럼 부수적인 것이었다.

중세 기독교 세계는 항상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슬람 교도와 유대인에게 자행된 부당한 행위는 기독교 역사의 오점이다. 기독교인들은 서로 싸웠고, 십자가 아래에서 군대와 군대가 대항했으며, 종교와 세속 권력 간의 분쟁도 있었다. 이 범세계적이면서도 통합된 문명은 항상 불완전하게 실현되었고, 종종 아련하게 존재했다가 13세기에서 14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붕괴되기 시작했다. 교황의 승인을 받지 않고 왕이 성직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금지하는 교황 칙서를 발표하면서 촉발된 프랑스 공정왕 필립과 교황 보니파시오 8세 사이의 분쟁은 교황과 왕실 권력의 본질에 대한 광범위한 논쟁으로 번졌다가 필립 왕이 교황을 납치하기 위해 그의 심복들을 보내면서 끝이 났다. 이 사건은 기독교 세계의 오래된 이상과 강력한 신흥 군주 세력간의 갈등이었다.

새로운 군주들은 교회의 많은 권리를 빼앗았다. 그래서 프랑스 왕국은 왕이 이끄는 ‘신비한 조직’처럼 보였고, 프랑스를 위해 죽은 사람들은 순교자로 여겨졌다. 예전에 천상의 도시나 한 사람이 태어난 마을에 적용되었던 고전적인 조국(라틴어로 patria)의 개념이 이제 프랑스 왕국에 적용되었다. 이것은 13세기에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정치학>에 관한 재해석과 부분적으로 관련이 있다. 국가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은 국가를 더이상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주었던, 계시되고 위임된 영적 능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연적 경향에서 일어난 완전한 사회로 보여지는, 그래서 자연법칙을 통해 신으로부터 권한을 받은 세속적 왕국에 적용되었다.

그리하여 17세기 베스트팔렌의 평화 조약을 기점으로 기독교 세계의 이상에서 벗어난 근대 민족국가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민족국가에는 정치적, 제국적 사회의 가장 나쁜 특징들이 결합되어 있다. 공통된 삶을 실제로 살고 있는 시민들 사이의 우정과 상호 신뢰로 설립된 작은 공동체의 장점은 부족하면서도, 작은 공동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외부인을 향한 집단 이기주의와 증오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고대 제국의 전형이었던 많은 국가들을 통합하는 관대함과 능력은 부족하면서도, 군국적 풍조와 탐욕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현대 ‘제국주의’(소위 말하듯)의 우스꽝스런 광경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재화가 결여된 인간 연대의 한 형태를 보여주며, 제국의 안정적인 재화를 끝없고 부당한 정복 전쟁과 정화를 위한 내부의 노력으로 대체하고 있다.

프랑스 카페 왕조 시대 또는 그와 비슷한 부류들이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 이룩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한 민족국가가 공공선을 위해 어느 정도 봉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성 잔 다르크와 같은 진정한 애국자들의 영웅심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결국 민족국가의 부상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민족국가들이 그들의 내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시도한 심한 우상숭배적인 정치 신학과 집단주의적인 자기희생의 내부 전쟁은 제1,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학살로 절정에 달했다.

20세기 세계 대전의 공포 이후 인권에 대한 세속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개념 위에 세워진 세계 연대의 새로운 이상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 메마른 합리적 세계 자유주의는 그리스도의 사회적 왕권에서만 볼 수 있는 진정한 보편적 연대를 제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는 계몽적 합리주의의 후계자들이 공정왕 필립, 헨리 8세, 리슐리외 추기경, 비스마르크의 이상에 맞서 세속적인 역사의 종말을 향한 비현실적인 꿈을 강요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많은 것이 이 투쟁이 어떻게 끝날 지에 달려 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가 최대한 자연법칙과 복음의 명령을 따르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족국가의 부상으로 인해 더욱 가중된 문제 중 하나는 난민의 이주 문제이다. 물론 이 문제는 현대국가보다 더 오래 전에 존재했다. 사실, 독일 부족의 로마 제국으로의 이주는 부분적으로 로마 제국의 종말을 초래했다. 그럼에도 주어진 영토 내에서 인구의 균질화를 끝없이 추진하는 민족국가는 여전히 그러한 이주를 일으키기 쉽다. 한 가지만 예를 들자면, 현대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와 소련에 의해 합병된 영토에서 탈출한 1,400만 이상의 난민들의 깊은 상처로 새겨져 있다. 나는 실레시아지역 난민의 후손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그들은 조상 전래의 고향을 잃은 것에 깊고 지속적인 분노를 품고 있다.

교회가 연중 가르치는 자연법 계율 중의 하나가 난민과 궁핍한 이민자를 도와야 할 의무이다. 이 의무는 재화의 보편적 배분 원칙과 떼어 놓을 수 없다. 1948년 교황 비오12세는 미국 주교들에게 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자연법 자체는 인류에 대한 헌신 못지않게 이 사람들에게 이주의 길을 열어줄 것을 촉구합니다. 우주의 창조주께서는 본래 모든 좋은 것을 모두의 유익을 위해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도처에 있는 토지는 다수의 사람들을 부양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제공하므로 국가의 주권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다른 나라에서 온 궁핍하고 사회 기준에 맞는 사람들이 땅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이는 공공재의 상태를 신중히 헤아려 보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 대목에서 교황 비오는 “우주의 창조주께서는 본래 모든 좋은 것을 모두의 유익을 위해 만드셨다”는 원칙에 따라 세계 다른 지역의 빈곤한 사람들이 다른 정치 체제로 이주하도록 허용하는 자연법의 요구를 보여준다. 이것이 가톨릭 사회 교육의 영원한 원칙인 “재화의 보편적 목적”이다. 이 원칙의 가장 유명한 증인 중 한 사람인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는 <나봇 이야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가난한 나봇 한 사람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나봇이 죽임을 당하고, 날마다 가난한 이가 살해 당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류는 이제 그들의 땅을 떠나고 있습니다. 어린 아기를 안은 가난한 한 남자가 자식들을 데리고 길을 떠납니다. 그의 아내는 마치 무덤으로 가는 남편을 따르듯 눈물을 쏟으며 따라 갑니다. 가족들의 시체 앞에 슬픔으로 통곡하는 여인이라도 이 아내만큼 울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남편의 보호를 더 이상 받을 수 없긴 하지만 그 여인에겐 적어도 배우자의 무덤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자녀가 없을지라도 죽은 자녀 앞에서 망명자처럼 울지는 않을 것입니다. 죽음보다 더 나쁜 것 - 어린 자식들의 굶주림을 비탄해 할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부자여, 얼마나 더 광포한 당신의 탐욕을 넓히려 합니까? “너만 땅에 거하겠느냐”(이사야 5:8). 어찌하여 자연이 준 동료를 쫓아버리고 자연의 소유권을 주장합니까? 땅은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를 위해 설립되었는데 부자여, 왜 당신 혼자만 특별한 대우를 요구합니까?

음식, 연료, 거처와 같은 외적인 것들과 그러한 것들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땅은 인류 전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전통은 사유 재산이 그러한 생계에 도움이 되는 한 합법적이지만, 필요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은 궁핍한 사람에게 빚진 것이라고 공인한다.
쾰른의 대주교이며 독일인으로서 히틀러에 저항한 주요 인물인 요제프 프링스(Jogef Frings) 추기경은 전후 혹독했던 겨울 신년 설교에서 석탄 열차의 석탄을 훔치는 널리 퍼진 관행을 옹호했다. “한 개인이 자신의 필요를 다른 수단을 통해 얻을 수 없을 경우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것을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그가 강단에서 한 말이다. 그래서 ‘프링슨 Fringsen’이라는 단어는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의 잉여를 조금 훔치는" 것을 의미하는 속어가 되었다. 성 토마스는 이러한 관행이 허용된다고 가르친다.
비오 12세의 이민자에 대한 가르침은 이 일반 원칙을 구체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외적인 재화를 과다하게 가진 부유한 국가는 전쟁이나 실업,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국가를 탈출한 궁핍한 사람들에게 그 재화의 일부를 빚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자발적인 관대함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이다.

우리가 이 땅을 진정한 정의의 장소, 피난처로 만들 수 있을 때만 우리 땅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2001년 나토의 침공 이후 수년 동안 점령군과 협력한 많은 아프간인들이 미국 및 나토 회원국으로 피난처를 찾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재 상황에는 동맹국에 대한 책임이라는 또 다른 정의의 원칙이 고려되어야 한다. 나토 국가들은 통역사, 보안 요원 등으로 자신들을 지원한 아프가니스탄인들에 대한 특별한 책임이 있다.

물론 그러한 정의의 원칙이 국가의 공익을 보존할 책임을 무효로 만들지는 않는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정의의 요구는 부분적으로 공익의 요구에 좌우된다. 공익은 내부 통합과 평화에 의존하는 사회의 사회적 유대를 포함한다. 따라서 공익의 요구는 특정 사회를 결속시키기 위해 어떤 종류의 사회적 유대가 필요한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세계주의와 민족주의간 논쟁에서 문제가 되는 바로 그 지점이다. 공익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사회적 유대 중 하나는 과도한 이민으로 인해 붕괴될 수 있는 지역 문화의 유대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부유한 나라가 이민 정책을 "무엇이 우리에게 이득인가"라는 관점에서만 짜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세계의 부는 전 인류에게 주어졌고,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중 한 몫을 빚지고 있다.

얼마나 많은 난민을 수용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그들이 우리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그들과 우리가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잘 도울 수 있을까? 여기에서 정말 어려운 논쟁이 시작된다. 그러나 확실한 한 가지 원칙은 이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땅을 진정한 정의의 장소, 피난처로 만들 수 있어야만 이 땅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2015년에 내가 아는 트라이스키르헨의 난민 중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한 이란인이 침대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는데, 이것을 본 다른 무슬림 난민이 폭행을 가한 일이 있었다. 그는 그 문제를 당국에 보고했지만 그들은 그에게 더 신중 하라는 조언만 했을 뿐이었다. 끔찍할 정도로 불충분한 대응이었다. 우리 땅으로 도망치게 한 바로 그 문제가 여기에서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때만 우리 땅으로 도망친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자 기독교 세계의 일부로서 정치 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회복하는 것이 그 방향으로 가는 중요한 단계라고 생각한다. 이슬람 세계에서 서구 사회로 온 난민들은 종종 이곳에서 기독교 사회를 찾기를 기대한다. 아마도 이러한 기대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성탄(聖誕)

12월 26일(주일) 성탄 및 송년주일(2021-12-26)

12월 26일
성탄 및 송년주일

설교 제목 / 나의 선물은 무엇으로
본문 / 마태복음 2:11

설교 동기 /
동방 박사들은 세 가지 예물을 드렸다.
사람들은 카드와 선물을 주고 받는다.
주인공이 되신 예수님께 내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예물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은 무엇인가?
누가복음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구원 받을 생명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가장 귀한 예물이 될 것이다.

결단
2022년 성탄을 맞이하기 위하여 구원해야 할
사람을 찾아냅시다.
그 명단을 작성하여 카드를 만들고 그 카드를
눈에 가장 보이는 곳에 두고 날마다 그를 위하여 중보기도 하는 것이다.



나의 선물을 예비합시다!

해마다 성탄주일을 맞이하며 신앙생활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과연 나는 아기 예수님께 어떤 선물을 드렸나 하고 생각하면서 아무 선물도 드린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실 선물이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늘에서 기뻐하는 것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성탄 주일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선물을 죄인 한 사람을 회개케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게 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만일 신앙생활을 수 십년 동안 계속하였다면 성탄주일을 수 십년을 맞이했습니다.
해마다 성탄주일을 맞이하며 죄인 한 사람을 회개케 하는 일에 충성하였다면 적어도 수 십명이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합니다.

더구나 오늘의 시대가 팬데믹에 이러 오미크론이란 더 강력한 전염병이 세상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대면 예배가 통제되는 시대에 죄인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이전 시대보다 더 어려워졌습니다.

온라인 예배와 더불어 온라인 전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2022년 성탄주일을 맞이할 때 하늘에서 가장 기뻐하는 선물을 준비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간 내 주위에서 온라인 전도 대상자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매일 같이 볼 수 있는 곳에 두고 하루에도 여러 차례 기도하면서 선물을 준비합시다.
그 사람이 하늘의 기쁨이 될 수 있는 선물로 드려질 수 있다면 의미있는 성탄주일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뉴욕에서 한 사람
뉴욕 이외의 지역에서 한 사람
이렇게 두 사람을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름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그 이름을 적어놓고 이름을 볼 때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하늘의 영이 아무개 위에 임하여
2022년 성탄주일의 선물이 되게 하옵소서!

2021년 12월 26일 성탄 및 송년주일

나의 선물은 무엇으로(마태복음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On coming to the house, they saw the child with his mother Mary, and they bowed down and worshiped him. Then they opened their treasures and presented him with gifts of gold and of incense and of myrrh.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 성장과 발전을 위한 세 개의 단어를 살펴봅니다.
"개발"이란 "경제개발 1차년 계획"으로 시작하여 2차, 3차까지 계속된 결과 오늘의 경제 성장과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경제의 발전에 이어 "개혁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정치 개혁은 민주화 운동으로, 경제 개혁은 노동조합 운동으로 일어났습니다.
오늘의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변화"라고 하겠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기 자동차가 등장하여 앞으로 자동차 사업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자동차 한 대에 사용하는 부품이 대략 3만개라고 합니다.
3만개의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과 납품하는 업체가 경제 기반을 형성하였으나 앞으로는 이런 구조가 완전히 무너져서 새로운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의 시대에 교회도 변화될 것이 분명합니다.
문제는 교회가 변화될 것이 분명한데 아직 교회가 변화에 대해 준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시대에 파트리스교회를 시작한 것입니다.

2022년부터 황선민목사님은 수요성경공부를 담당할 것입니다.
이호승목사님은 주일 설교를 담당할 것입니다.
제가 새벽기도회를 맡게 될 것입니다.

파트리스교회가 변화를 위하여 건물을 중심으로 모이던 모임을 온라인으로 대체하면서 2022년 한 사람 또는 한 가정이 구역으로 출발합니다. 구역장이 된 사람과 가정에서 구역원을 늘려야 하겠습니다.

구역을 초장(green pastures)이라고 하겠습니다.
회를 먹을 때 사용하는 초장이 아니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다는 시편의 말씀에서 작은 초장이 형성되면 그 초장들이 모여서 들판이 될 것입니다.

변화의 특징은 매우 빠르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어느 지역에 유행병이 발생하면 그 지역에 국한된 것으로 크게 전염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느 지역에서 발생한 유행병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번져나갑니다.
이러한 변화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므로 아차하는 순간에 변화의 물결속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황금(Gold)은 왕을 상징, 유향(Incense)은 제사장을 상징, 몰약(Myrrh)은 선지자를 상징


도입 이야기 / 선물

어느 고을에 착하고 예의바른 농부가 살았다.
그는 매우 가난했다.
농사라곤 손바닥만한 밭뙈기를 부치는 게 전부였다.
그 밭에 무씨를 뿌렸더니 정말 좋은 무가 났다. .
착한 농부는 “농사가 잘 된 것은 모두가 원님 덕분”이라며 제일 큰 무 하나를 원님에게 바쳤다.
원님도 이렇게 착한 사람이 내 고을에 있는 것을 신통방통해하며 관리를 시켜 선물을 주라고 했다.
농부는 큰 황소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아 부자가 됐다.

심술궂은 농부가 이 소문을 들었다.
무를 바쳐 황소를 받았다면 자신이 기르는 황소를 바치면 더 큰 선물을 받겠다 싶었다.
과연 이 농부는 “저희가 잘 사는 것은 다 원님 덕분입니다”라며 기르던 황소를 바쳤다.
원님은 이처럼 착한 백성이 많다고 칭찬하며 “창고에 무엇이 있느냐”고 관리에게 물었다.
창고에는 착한 농부가 바친 무가 있었다.
원님은 심술궂은 농부에게 그 무를 선물했다.
사람은 언제나 진실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2022년을 1년을 가장 귀한 선물을 예비하며 살아봅시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가져온 세 사람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황금을 바친 사람은 “멜키오르(Melchior)”라고 하며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다고 합니다.
유향을 바친 사람은 “카스파르(Caspar)”라고 하며 가장 젊은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몰약을 바친 사람은 “발타사르(Balthasar)”라고 하며 중년의 나이로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역사의 변화

예수님의 탄생으로 예수님 이전의 시대를 BC(Before Christ)라고 합니다.
예수님 이후의 시대를 AD(Anno Domini)라고 합니다.

둘째는 삶의 변화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요한복음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셋째는 심판의 변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 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심판의 자리에서 영벌과 영생으로 구분될 것입니다(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세 가지 변화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역사의 변화, 삶의 변화, 심판의 변화

이렇게 좋은 약속을 우리끼리만 즐기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집단이기주의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린 동방의 박사들처럼 예물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떤 예물을 준비해야 할까요?

누가복음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2022년 성탄주일을 맞이할 때까지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내어 함께 예배할 수 있는 은혜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내가 찾아야 할 잃어버린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사람을 위하여 하루 세 번씩 기도합니다.
기도를 시작한 날과 기도가 응답된 날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을 위한 이야기 / 아빠의 선물

오래 전 미국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앙의 도전을 주었던 어린 소년 ‘라이언 화이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라이언은 13살 때 혈우병을 앓아서 수술을 받았는데, 수혈을 잘못 받아서 그만 에이즈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 어른들의 부주의로 소년의 인생은 죽음의 길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변함없이 밝게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하였고, 그를 염려하는 부모님을 위로하면서 기쁘게 지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신문 기자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소년의 이야기가 신문에 매일 게재되었습니다.
텔레비전 등의 매체에서도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라이언은 그렇게 5년 동안 살다가 결국 18세에 죽었습니다. 

소년이 죽기 전에 그의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 내용이 한 기독교 잡지에 실렸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이제는 네게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구나. 이 아빠가 더 이상 어떤 선물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아빠, 전 지금까지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아무도 아빠처럼 귀한 선물을 준 사람은 없었어요. 아빠는 저에게 천국에 갈 수 있는 티켓을 선물로 주셨잖아요. 바로 예수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아빠 때문에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선물로 얻었는걸요. 이보다 더 위대한 선물은 없을 거예요.”

예수님보다 위대한 선물은 없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이 예수님을 담고 있는 복음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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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수)
성탄의 기쁨(스가랴 13:1-6)

성탄(聖誕) : 성스러울  성(聖), 태어날 탄(誕)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호두과자에는 호두가 없다!"
"성탄절에는 예수가 없다!"

예수가 없는 성탄절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성탄의 기쁨'을 생각합니다.

"요르고스 A 메가스"라는 그리스 작가의 "그리스 민담"이란 작품에 "신부의 아내와 땔감"이란 짤막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신부가 열심히 땔감을 준비해 놓으면 이웃이 와서 "사모님, 땔감 좀 주세요!"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신부의 아내는 땔감을 주어 보냈습니다.
그래서 신부는 아내에게 "여보, 제발 나무를 남들에게 주지 마세요. 나무를 베어 지고 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그러면 신부의 아내는 "뭘 그런 땔감 때문에 인색하게 굴어요." 하며 계속해서 부탁하는 사람에게 땔감을 주었습니다.
드디어 땔감이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신부는 아내에게 "이번에는 당신이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오세요"
"좋아요 그까짓것 못할 줄 알아요"
그리고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집으로 오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얼마 후 이웃이 찾아와서 "사모님, 땔감 좀 주세요!" 하고 부탁했습니다.
신부의 아내는 "안되겠어요. 드릴 수가 없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신부의 아내는 신부가 나무를 하는 것은 별거 아니지만 자신이 나무를 하는 것은 너무 힘이 드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부의 아내와 땔감이란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될 수 없으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요즈음 애완견, 애완묘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가 키우는 애완견에게 "나는 아빠다!" "나는 엄마다!" "나는 오빠다!" "나는 누나다!" 라고 말합니다.
애완견과 아주 친밀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그러면 당신은 개군요!" 라고 한다면 과연 그 사람이 자기가 개라고 인정할까요?
아마 화를 내며 내가 왜 개냐? 하고 소리칠 것입니다.

개 아빠, 개 엄마, 개 오빠, 개 누나라고 말을 하면서도 정말 개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의 한계라고 하겠습니다.

성탄이란 하나님이 사람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정말 확신합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확신하도 믿기 위해서 스가랴 13장에서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스가랴 13장 1절에서부터 6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 "그 날에(성탄절에)" 라는 단어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 날에' 라는 단어가 3회 사용되었습니다.
1절, 2절, 4절입니다.

1절, 그 날에 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릴 것이라는 말씀은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샘이 터질 것을 의미합니다.
그 샘은 곧 보혜사 성령의 샘이며 내 안에서 샘솟는 강물과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탄의 기쁨이란 내 안에서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터져서 흘러 넘쳐야 하는데 샘이 터지지 않아 예수를 믿는 것인지 믿지 않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면 아직 성탄의 기쁨을 알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내 안에서 생수의 강 즉 보혈의 은혜로 말미암아 죽음의 권세에서 자유를 얻게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죄의 용서는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롭게 된 것입니다.

패데믹과 오미크론이란 죽음의 사슬이 옭아매는 현실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을 확신합니까?
그 확신은 인간의 용기가 아니라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터져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서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되셨는데 나는 아직도 여전히 죄와 더러움에 붙잡혀 살아간다면 내 안의 예수님은 얼마나 힘드실까요?

땔감을 달라고 하는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처럼 나무를 주는 것은 내가 나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쉽고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무를 하고 그 나무를 준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성탄의 기쁨이란 그런 어려움을 아주 쉽게 행할 수 있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되지 못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은 거짓 선지자들이 더 이상 이 땅에서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활동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리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가 자유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성탄의 기쁨은 진리를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4절,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이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5절,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것을 부끄러워 한다는 말씀은 선지자들의 활동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 선지자가 되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선지자들의 활동은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 됩니다.
성탄의 기쁨은 사람이 개 아빠, 개 엄마가 되면서도 개가 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랑을 다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어떤 선지자와 예언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탄의 기쁨은

사랑의 기쁨입니다.
진리의 기쁨입니다.
사죄의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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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의 동방박사

미국의 개신교 목사 헨리 반 다이크의 소설 "네번째 동방박사"에 관한 이야기

헨리 반 다이크는 미국의 작가, 교육자, 목사.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를 지내다가 윌슨 대통령의 임명으로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 장관을 역임했다. 또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에 선출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대표작
"네 번째 동방박사 이야기(The Story of the Other Wise Man)" 1895년
"첫 번째 크리스마스 트리(The First Christmas Tree)"

이 외에도 수많은 시와 찬송가 가사를 남겼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동방박사는 세 명이지만 동방박사가 네 명이었다는 전설이 페르시아와 러시아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데, 이를 토대로 쓴 것이 "네 번째 동방박사 이야기" 이다.

이 작품을 통해 동방박사의 전설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며, 다양한 연극과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반 다이크의 작품에서 네 번째 동방박사의 이름이 "아르타반"이었기에 일반적으로 네 번째 동방박사를 "아르타반"이라 부른다.

원래 보통 알려진 세 사람과 아르타반(Artaban)이라는 이름의 네번째 박사가 같이 떠나려고 하였는데, 그는 도중에 늦어져서 3명이 먼저 떠난 후에야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아르타반은 혼자서라도 뒤따라가야겠다고 생각하여  홍옥, 청옥, 진주 세 가지의 예물을 준비해 여행을 떠났으나, 도중에 가난한 사람이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느라 홍옥과 청옥을 써버리고 예수도 만나지 못한 채 33년이 흐르고 만다.

그리하여 아르타반은 지치고 피곤한 상태로 예루살렘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는데… 예수는 33세에 죽었다.
그렇다. 아르타반이 돌아왔을 때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는 날이었다.
아르타반은 기겁해서 자기에게 마지막 남은 진주를 주어서라도 메시아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골고다 언덕으로 달려가는데 도중에 또 불쌍한 사람을 만난다.

아르타반은 갈등하지만 결국 진주마저 주어버리고 허탈해 하는데,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머리에 기왓장을 맞게 된다.
그는 숨지기 전 결국 자신은 예수에게 예물을 드리지도 못하고 간다며 용서를 빌자, 하나님이 나타나 "네가 구한 불쌍한 사람들이 모두 나였다."고 하며 그의 선행을 높이 사서 그는 천국으로 갔다는 결말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평가가 다소 엇갈린다.
이 이야기가 성경의 취지와 맞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쪽은 "아르타반은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자"라고 평가한다.

또한 예수가 마르타의 집에서 유다 가룟 유다에게 "가난한 자는 언제나 함께 있을 것이지만 나는 언제까지 같이 있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아르타반의 행위는 천당에 갈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에 대한 반론으로 "너희가 가장 작은 이들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라는 예수의 말씀을 근거로, 아르타반은 실패한 것이 결코 아니며, 그 나름의 방법으로 예수를 충실히 섬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마틴 신 주연의 <The Fourth Wise Man>이라는 TV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영어 원제목은 ‘The Fourth Wiseman’, 혹은 ‘The Other Wiseman’이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동방박사를 기리는 때는 성탄 후에 맞이하는 공현대축일이지만, 이 소설의 주제는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을 경배했던 세 명의 동방박사가 아니라 구세주를 찾아 경배하겠다고 무려 삼십년을 찾아 헤매었던 네 번째 동방박사가 천신만고를 겪은 끝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영혼으로 만나뵈옵고 경배드린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이 대림시기에 더 어울립니다.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며 점성술을 연구하던 의사 아르타반은 당시 페르시아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어난 불에 가족을 모두 잃어버리고 점성술 연구에만 몰두하던 어느 날밤 드디어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초신성이 커다란 빛을 내뿜으며 나타난 것을 보고 같은 관심으로 별을 관측하던 동료들과 메시아를 찾아가서 경배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 세 동료의 이름은 멜키올, 발타살 그리고 카스팔입니다.

멜키올은 태어나실 메시아가 왕 중의 왕이 되실 것이기 때문에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을 예물로 준비했습니다.
발타살은 그러나 메시아이신 그분은 세상의 여느 왕과 달리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실 것임을 내다보고 시신에 발라드릴 몰약을 준비했습니다.
카스팔은 그분이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시기 전에 일생을 바쳐서 세상의 죄악을 없애시려는 봉헌의 삶을 살아가실 것임을 내다보고 유향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더 부유했던 아르타반은 전재산을 처분해서 세 가지나 되는 보물 사파이어, 루비, 진주를 준비했습다.
메시아를 만날 수만 있다면 전재산으로 마련된 이 보물보다 값진 것을 얻으리라는 기대가 아르타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보물보다 값진 것이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알려주시리라는 기대로서 차라리 그의 신앙에 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재산을 처분하고 함께 갈 사람을 더 모집하느라 분주했던 아르타반은 주변의 몰이해와 냉대 속에서 단 한 명의 동료도 얻지 못한 채 세 동료들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습니다.

그 네 사람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막의 초입에 있는 보른시파에서 만나기로 했었습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아들을 혼자 보내기가 안쓰러웠던 아르타반의 아버지는 자기 하인 오른테스를 구슬러서 자기 아들을 돌보아줄 것과 무사히 돌아오게 되면 자유의 몸이 되게 해 주겠다는 약속으로 아들과 함께 딸려 보냈습니다. 

열흘 길 거리를 밤낮으로 달려 약속지점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아르타반은 거의 다 죽어가는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냥 두고 가자는 하인의 독촉을 흘려 들으면서 아르타반은 자신의 의술로 그 노인을 돌보며 임종을 지켜주었습니다.
마침 그 노인은 히브리인이었고 메시아께서 나실 곳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이라는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고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스라엘로 가려면 사막을 건너야 했고 그러자면 낙타들로 이루어진 대상 행렬에 합류를 했어야 하는데, 히브리 노인을 돌보아주느라 지체하는 바람에 약속 장소였던 보른시파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동료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르타반은 메시아께 드리려고 준비했던 예물 중에 사파이어 보석 한 개를 팔아서 낙타 여러 마리를 사고 함께 갈 상인들도 고용해서 직접 사막을 건널 준비로 단독으로 대상을 꾸렸습니다.

메시아께서는 이 모든 사정을 아시고 반드시 자신을 기다려주실 것이라고 아르타반은 스스로 달랬습니다.   

거의 2,000km를 여행해서 베들레헴에 당도했을 때, 꿈에 나타난 천사가 헤로데가 아기를 죽이려 하니 급히 서둘러 이집트로 피신하라는 전갈을 받고 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마리아와 요셉 부부와는 서로 얼굴도 모른 채 스쳐 지나갔습니다. 거기서 만난 한 아기 엄마에게서 들은 것은 동방박사들이 며칠 전에 다녀갔다는 사실과 그들의 경배를 받은 직후 아기와 그 부모는 이집트로 피신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닥친 것은 두 살 이하의 사내 아이들을 죽이라는 헤로데의 명령을 받은 군사들이었습니다. 그 군사들의 대장이 아기 예수님과 똑같이 어린 아기를 죽이려 하자 아르타반은 메시아께 드리려고 준비했던 예물 중 루비 보석 한 개를 주며 대장을 매수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진주 보석 한 개뿐이었고, 아르타반오른테스는 이집트로 피신한 아기 예수님을 찾아 헤매고 돌아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왕궁터만을 찾아 다니다가 구약성경을 잘 아는 히브리 현자를 만나서 태어나신 메시아는 가난한 사람들 속에 비천한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전해 듣고는 이집트를 떠나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 빈민굴만을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그분을 찾지 못한다면 자기 인생은 의미가 없다는 신념으로 찾아다녔습니다.

벌써 고향을 떠나온 지 십 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 한 무리의 거지 소년들에게 마지막 남은 진주 보석을 소매치기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소년들을 쫓아 그들이 사는 마을까지 간 아르타반과 오른테스는 그 마을 살던 한 여인으로부터 눈이 멀게 된 자기 아들을 고쳐주면 훔쳐간 보석 진주를 돌려주겠노라는 말을 듣고 그 눈먼 소년을 고쳐주었습니다.

약속대로 진주는 돌려받았지만 그 마을에는 문둥병자를 비롯해서 절름발이 등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투성이였고,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소매치기와 구걸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아르타반은 자기 의술을 동원해서 그들을 고쳐주는 한편 농사짓는 방법까지 알려주었습니다. 이래서 씨앗을 뿌리고 거둘 때까지 한 해가 또 흘러갔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어 재촉하는 보른테스의 말처럼 그들을 떠나서 메시아를 찾아다니고 싶었지만, 이미 은인이 된 그를 쳐다보는 그 가난한 이들의 눈망울 때문에 아르타반은 하루만 더, 또 하루만 더 하면서 지냈습니다. 첫 농사의 수확과 함께 해산을 하는 젊은 여인의 아기를 받아주는 기쁨도 누리면서, 그러기를 한 해, 또 한 해 그들과 무려 이십 년 가까이 살면서 제법 정도 들고 메시아를 찾는 일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눌러 앉아 살던 아르타반은 우연히 찾아온 고향 친구로부터 자신을 기다리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낙담합니다. 그래서 하인 오른테스에게도 자유를 주어 풀어주고 메시아를 만나면 드리려고 간직하고 있던 진주 한 알마저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주어버립니다. 메시아를 찾기만 하다가 흘려보낸 삼십 년 세월을 회상하며 자기 신앙이 환상은 아니었는지 회의감에 젖어서 늙고 지친 몸으로 자기 자신도 가난한 마을의 주민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던 그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자신이 치료해 주던 눈먼 소년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예수님을 만났고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그분이 메시아가 틀림없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예물마저 주어버린 그가 그분을 만나러 가기를 주저하자 마을 사람들이 그 진주를 다시 돌려주며 그분을 만나서 하려던 일을 하라고 조르는 바람에 그는 용기를 내어 예루살렘으로 그분을 만나러 갔습니다. 이제는 한 식구가 된 마을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간 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벌이신 집까지 찾아갔지만 이제까지 그러했듯이 또 뒷북이었습니다. 방금 떠나셨다는 집 주인으로부터 그는 평소에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듣고 역시 힘 있는 진리를 말씀하셨다는 강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나서 겟세마니 동산으로 찾아가는 길에 그는 베드로를 만나 예수님께서 잡혀가셨고 재판을 받고 계시다는 비통한 소식을 듣습니다. 그 다음 날 예수님께서 재판받으신다는 곳까지 찾아갔지만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죽임을 당하리라는 오른테스의 말을 듣고는 마지막 남은 진주를 주어서라도 예수님을 풀어내보려던 그는, 뜻밖에 아버지의 부음을 알려주었던 고향 친구가 운영하던 무역선이 난파되어 그 친구의 외동딸이 노예로 끌려가게 된 사실을 접하고는 그 진주를 내주어 친구 딸을 살려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타 언덕으로 향하시던 예수님을 뒤따르던 군중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멀리서 골고타 언덕을 바라보던 아르타반에게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는 예수님의 마지막 절규가 들려왔습니다. “아버지, 제 영혼을 받아주소서!” 이 유언을 들으며 예수님께서 운명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돌아오는 길에 늙고 병든 아르타반은 힘들고 지쳐서 길에서 쓰러져버렸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아르타반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드디어 나타나셨습니다. 그에 감격한 아르타반이 아무 것도 드릴 게 없다고 죄송스러워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준 선물을 모두 다 받았다.”고 대답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까지 아르타반이 행한 모든 선행들, 즉 죽어가는 히브리 노인을 돌보아준 것, 죽을 위험에 처한 베들레헴의 아기를 구해 준 것,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도와준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향 친구의 외동딸을 구해 준 것 등이 모두 당신에게 해 준 선물이라고 해 주셨고 그 말씀을 들으며 아르타반은 눈을 감았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줄거리는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동방박사 세 사람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구세주를 경배하기 위해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쓰여진 교훈적인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2021년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성탄축하 및 송년주일을 지내며 나의 선물이 무엇일까?

북한 선교를 위하여 매월 북한어 성경 6권을 모퉁이돌 선교회를 통하여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성탄을 맞이하여 탈북자들이 남한에 정착하여 생활하는 탈북인들이 대략 3만명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남한에 정착한 후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로 사역하는 탈북인 목회자 모임이 있습니다.
그 모임에서 개척교회를 중심으로 탈북인들의 신앙을 지도하는 목회자 중에 한 목회자의 현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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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聖誕)



나사렛 예수 vs. 베들레헴의 예수



나사렛 예수 vs. 베들레헴의 예수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은 모두 예수 탄생설화에 나사렛과 베들레헴이라는 다른 두 장소를 연루시킨다. 〈마태오복음〉은 예수의 부모가 베들레헴 출신인데, 헤롯의 칼날을 피해 이집트로 갔다가 그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고향으로 돌아오려다, 그의 아들로 이 땅의 통치자로 위임된 아르켈라오스도 '포악한 자'라는 소문에 갈릴래아의 나사렛으로 가서 살았다고 한다. 반면 〈루카복음〉은 나사렛 출신인 부모가 호적령에 따라 본적지인 베들레헴으로 갔다가 예수를 낳았고 이후 나사렛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세세한 줄거리는 다르지만 두 탄생설화 갈래가 공히 이 두 지명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은 예수 탄생과 더불어 두 장소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마도 예수의 고향이 ‘나사렛’이라는 것은 사실 정보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두 복음서뿐 아니라 〈마르코복음〉과 〈요한복음〉에서도 ‘나사렛 예수’라는 표현이 두루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 이곳은 메시아의 탄생이나 그밖의 어떠한 종교적 상징과도 결합되어 있지 않은 생소한 지명이기 때문이다.

반면 ‘베들레헴’은 메시아 전통과 긴밀히 결합된 장소다. 다윗이 바로 그곳 출신인 것이다. 이후 유대아계 전승에서 메시아가 다시 올 유력한 장소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태어날 이가 메시아로 와서 대중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갈망이 대대로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열망이 예수에게 투영되었다. 사람들은 그이가 자기들을 다윗처럼 해방시켜주리라고 기대했다. 대중은 예수를 그렇게 기억했고, 예수는 대중에게 해방을 주는 이로 다가갔다.

이와 관련해서 ‘예수의 부모가 이집트로 갔다’는 〈마태오복음〉의 진술도 그이를 모세와 연관시켜 이해하는 대중의 바람을 담고 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해낸 모세처럼 새로 올 모세도 그렇게 구원해 주는 이라는 갈망이다. 대중에게 예수는 그런 분이었다.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Pieter bruegel, 1525

기원전 4년의 나사렛과 예수

시간적으로 두 복음서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마태오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헤롯 대왕 때에 탄생했다. 헤롯 대왕은 기원전 4년에 사망했다. 그리고 이집트에 있을 때 천사가 요셉의 꿈속에 나타나서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그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고 말했다. 이때 예수는 ‘아기’(παῖς)였다. 유력한 영어성서들인 (MEV)나 (NIV)이 각각 ‘the young Child’와 ‘the child’로 번역하고 있듯이, 이 단어는 ‘아이’라고 옮길 수 있다. 즉 12세 이하의 소년을 지칭하는 용어다. 그렇다면 〈마태오복음〉에서 예수의 출생 시기는 기원전 4년 이전이다.

반면 〈루카복음〉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태수로서 재직 중에 호적령을 내렸을 때 예수가 태어났다고 한다. 그 시기는 헤롯의 아들로 사마리아-유대아-이두매아의 통치자였던 아르켈라오스가 축출된 이후 퀴리니우스가 이 지역에 대한 인구조사를 실시한 때를 말한다. 그 시기는 서기 6~7년이다. 그러니까 예수는 6~7년쯤 태어났다.

요컨대 두 복음서의 예수 탄생 시기는 최소한 10년 이상의 시차가 있다. 그런데 그 시대를 살아간 이스라엘계 대중에게 두 시간은 메시아의 시간이었다. 만약 그 장소가 나사렛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기원전 4년의 나사렛과 서기 6년의 나사렛, 그 시간과 그 장소를 대중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그 기억과 예수는 어떻게 연관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을 펴보고자 한다.


세포리스 잔해



기원전 4년 나사렛에서

나사렛에서 북서쪽 5~6km를 가면 세포리스가 나온다.
헤롯 대왕이 전국 곳곳에 세운 요새도시 중 하나다.
다른 요새 도시들처럼 여기에도 그의 강력한 군대와 무기, 군량 및 왕에게 송달될 양곡 등이 비축되어 있었다.

헤롯 대왕은 그 전후의 다른 통치자와 비교할 때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통치자였다.
하지만 그때에도 왕은 지방의 마을 단위까지 행정력을 미치지는 못했다. 왕이 할 수 있는 것은 지방 요소요소마다 왕의 요새를 건설하여 지방이 공공연히 왕에게 대항하지 못하도록 시위하는 정도였다. 마을들은 그 요새로 왕에게 바칠 공납물을 보냈다. 그 액수는 대대로 정해진 대로 징수되었겠지만, 왕권이 강력하면 어떤 이유로든 더 많이 징수했을 것이고 왕권이 미약하면 그렇게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마을은 왕에게 공납을 바치기만 하면 대체로 자율적으로 운영되었다. 그럴 경우 마을을 통제하는 이는 시골의 지주들이겠다. 하지만 지주들은 대체로 도시에 거주했다. 기원전 8~6세기,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로 이어지는 제국의 시대에 팔레스티나 촌락들의 70% 이상이 파괴되었고, 유대아의 경우는 5~4세기에 바빌로니아로에서 귀환한 집단이 이 지역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토착집단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땅의 소유권이 자주 이동했다. 헬레니즘 시대에 제국의 종주권도 자주 바뀌었고, 자주적 독립국가도 건설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팔레스티나의 시골도 커다란 부침을 겪었다.

이는 전통적인 지주세력의 붕괴를 의미했다. 또한 헬레니즘 제국의 하나인 프톨레마이오스 제국 시대 이후 지중해를 둘러싼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 현상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어 중소지주의 몰락과 거대지주의 대두 현상이 두드러졌다. 복음서에 종종 등장하는 ‘청지기’는 지주가 마을에 거주하지 않고 대리인이 관리하는 현상이 만연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지주의 거대화를 함축한다.

그렇다면 지주가 없는 마을에서 질서는 어떻게 관리되었을까. 주목할 것은 팔레스티나의 국가가 붕괴하고 귀족질서가 파괴되던 기원전 6세기 이후 어느 시기부터 ‘마을회당’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곳은 지주의 집을 대체하는 질서의 중심으로 발전해갔을 것이다.

한편 기원전 5~4세기 이후, 곧 페르시아-그리스 전쟁과 마케도니아의 제국전쟁 이후 지중해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이 급진전 될 무렵 수많은 도시와 촌락에서는 사회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많은 소(자영)농이 몰락했고 반대로 신흥자산가집단으로 부상한 적잖이 이들이 나타났다. 여기서 후자들은 이제 노동의 일상에서 벗어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생긴 여가를 이들은 어떻게 활용했을까?

이와 관련해서 주목할 현상이 있다. 왕실이 아닌 민간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이 대거 등장했고, 많은 대중이 그들의 지도력에 따라 정치세력화되는 현상이 현저해졌다는 사실이다. 로마에선 기원전 5세기 초 호민관 제도를 통해 대중이 정치에 개입하는 통로가 생겼고, 그런 제도에 기반을 두고 기원전 2세기 중반 형제 호민관인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대중 중심의 개혁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또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가 에피알테스(Ephialtes)는 기원전 5세기에 대중친화적 사법개혁을 단행하였다.

팔레스티나의 야훼계 문화권에서도 (귀족이 아닌) 서민출신 지식인들이 대중을 이끌고 변혁에 참여한 일이 허다했다. 〈다니엘서〉 11,33의 ‘마스킬’(maskil)를 <한글새번역성서>는 “백성 가운데서 지혜 있는 지도자들이 많은 사람을 깨우칠 것인데”라고 번역했고, 도 “The wise among the people shall instruct many”라고 옮김으로써 그들이 대중출신 지도자임을 명료히 표현했다. 또한 〈마카베오상〉 2,42 “일부 하시딤 사람들이 모여 와서 그들과 합세했다. 그들은 용감한 사람들이었고 모두 경건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다.”에 등장하는 하시딤(hasidim)도 시골성소의 제사장인 마따디아처럼 대중출신의 엘리트를 의미하는데, 그들은 대중을 이끌어 셀류커스 제국에 대항하는 전쟁을 주도했다. ‘바리사이’도 그런 사회적 계층의 대중지도자였다.

이 시기에 이렇게 대중적 지식인 주도의 대중운동이 가능했던 데는 언어효과도 있었다. 페르시아는 제국으로 발전하면서 시리아 지역의 방언인 아람어가 제국 곳곳으로 확산되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이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로 확산될 때 대중적 그리스어인 코이네 그리스어가 확산되었다. 이는 기원전 5세기 이후 상형문자 대신 알파벳 문자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알파벳 문자의 보급은 지식의 대중화를 촉진시켰다.

이러한 사실은 팔레스티나에서 촌락의 중심부에 소자산가적 지식인들이 자리잡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들이 마을 질서의 축이 된 것이다.

자 이제 다시 기원전 4년의 나사렛으로 가보자. 그 무렵 마을은 왕에게 공납을 충실히 바치는 한에서 자율적으로 운영되었다. 그 중심에는 소자산가적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회당이 있었다. 복음서는 이들 엘리트를 ‘바리사이’라고 묘사한다.(〈마르코복음〉 3,6) 그리고 왕의 요새에는 왕의 판무관들이 있었다. 〈마르코복음〉 3,6에서 바리사이들이 예수에 적대하여 ‘헤롯당원’(τῶν Hρῳδιανῶν συμβούλιον)과 손잡았다고 할 때, ‘헤롯당원’은 필시 요새도시의 판무관과 그 부하들을 가리킬 것이다. 이 사실은 역으로 마을 안에서 바리사이들이 협조해야만 헤롯 정부가 마을 안에서 벌어지는 사정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데 이런 요새에는 왕의 사병집단이 주둔한다. 그러니까 요새들이 잘 작동할 때는 왕의 통치가 안정될 때다. 하지만 왕권이 심하게 흔들리거나 왕이 사망한 경우, 요새의 병사들은 보호자가 사라진 셈이 된다. 즉 중앙정치의 부침에 가장 심하게 영향받는 기관이 바로 요새의 군인들인 것이다.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헤롯이 사망한 것이다. 그가 죽은 뒤 그의 후계권을 둘러싸고 그의 아들들과 친족들, 그리고 중앙귀족들 사이에 치열한 경합이 벌어졌고, 로마의 황제가 아니면 해결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에 핵심권력가 가까이 있는 세력가들은 모두 로마로 가서 황제의 유권해석에 귀기울이며 로비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은 팔레스티나의 헤롯 영토가 무정부상황에 빠졌음을 보여준다.

아니나 다를까. 전국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1세기 말의 이스라엘계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중 유대아 지방의 아트롱게우스(Athrongaeus) 형제들, 베레아의 시몬, 갈릴래아의 히스기야의 아들/손자 유다 등을 특별히 거론한다.(《유대전쟁사》 2,4,55~65) 이 세 명의 민란 지도자들은 각기 메시아를 자처함으로써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무력해진 헤롯의 요새들을 점령하여 무장함으로써 더욱 거대한 세력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시리아 태수 바루스(Publius Quintilius Varus)는 신속하게 출병하여 그들을 잔혹하게 진압했다.(《유대전쟁사》 2,5,66~79) 그 후 로마 황제의 칙령에 의해 헤롯의 세 아들에게 왕국이 분할 상속된다.

여기서 우리는 히스기야의 아들/손자 유다를 주목하게 특별히 된다. 히스기야는 전설적인 민란 지도자로, 헤롯이 그가 이끄는 저항세력을 진압함으로써 군주로서 우뚝 설수 있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그의 아들/손자인 유다가 일으킨 봉기의 거점이 바로 세포리스라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포리스에 인접한 시골마을 중 하나가 바로 나사렛이다. 즉 세포리스의 역사는 나사렛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기원전 4년, 유다가 봉기의 거점으로 세포리스를 점거하였을 때 나사렛은 불가피하게 그 역사의 일부가 되어야 했다.

많은 청년들이 메시아로 추앙되는 유다에게로 몰려들었을 것이다. 물론 나사렛의 청년들도 그랬겠다. 어쩌면 예수의 아비 요셉은 그런 청년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한데 바루스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세포리스는 잿더미가 되었고, 그곳의 청년들은 유다와 함께 생을 마감해야 했다. 예수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로 불린 것은 그의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부재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마도 그의 아버지는 이때 저항군의 일원으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다른 가능성도 있다. 요셉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시골청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포리스를 잿더미로 만든 로마군의 살기어린 칼날은 나사렛을 결코 피해가지 않았다. 더욱 최악의 상상을 해보자. 로마군은 잔혹한 학살자일 뿐 아니라 파렴치한 강간범이기도 했다. 나사렛의 젊은 여성이라면 피할 수 없는 야만극은 예수를 아비 없는 전쟁터의 아기가 되게 했을 수 있는 것이다.

어느 경우일까?
〈마태오복음〉의 마리아는 바로 그 시기 그곳에서 예수를 낳았다는 대중전승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마태오복음〉의 예수 탄생설화는 예수가 그때 그곳에서 진짜 태어난 아기였는지를 확인해줄 수 없다.
말했듯이 탄생설화 자체가 가장 후대에 만들어진 영웅설화이니 만큼 그 실재성을 확인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마태오복음〉 저자가 알고 있는 대중은 예수가 그때 거기에서 태어났다고 믿는다는 것, 바로 그 사실 말이다.
물론 그 대중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이의 탄생이 그때 거기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대중의 머릿속에 예수는 어떤 존재일까.
가장 고통이 가장 깊은 그 한복판에서 그 고통을 가장 깊이 체현한 존재, 그분이 바로 자신들을 구원하는 메시아라는 믿음, 그것은 그 공동체가 깊은 고통 속에 절망하면 메시아를 갈구하는 이들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이는 그런 자신들을 구원해줄 존재라고 그들은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진호
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소 연구실장, 한백교회 담임목사, 계간 《당대비평》 주간.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서울신문》 《주간경향》 《한겨레21》 등의 객원컬럼리스트. 《예수역사학》 《예수의 독설》 《리부팅 바울―권리 없는 자들의 신학을 위하여》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요한복음》 《권력과 교회》 《시민K, 교회를 나가다》 《반신학의 미소》 등 지음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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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들의 이름

7세기 무렵 서유럽의 그리스도교에서는 동방박사 세 명의 이름과 상징이 정리되었다.
이들의 이름과 상징이 현재와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6세기 경에 쓰인 <Excerpta Latina Barbari>로 알려져있다.
정례화된 상징이므로, 성화에 이름을 써놓지 않아도 누가 누군지 알아맞힐 수 있다.

멜키오르(Melchior)
- 황금을 바쳤다. 왕권을 상징하는 노인 모습의 현자.
발타사르(Balthasar) - 몰약을 바쳤다. 미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상징하는 중년 모습의 현자.
카스파르(Caspar) - 유향을 바쳤다. 신성, 사제를 상징하는 청년 모습의 현자.

실제 성경에 동방박사들의 이름과 외모가 묘사된 것이 아니므로, 전승에 따라 멜키오르가 청년이고 가스파르가 노인으로 묘사되거나, 발타자르가 가장 어린 청년으로 혹은 예수님께 드린 선물의 종류가 다르게 전해지는 전승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성 베다 존자(St. Bede the Venerable)가 정의한 위의 내용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동방박사들이 바친 황금, 유향, 몰약은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 참 사람, 하늘과 땅의 왕이심을 의미한다.
시리아 교회 :

란바다드 (Larvandad)
호르미스다스 (Hormisdas)
구슈나사프 (Gushnasaph)

아르메니아 정교회 :

카스파 (Kagpha)
바다다하리다 (Badadakharida)
바다딜마 (Badadilma)

에티오피아 정교회 :

호르 (Hor)
카르스단 (Karsudan)
바사나텔 (Basanater)



제4의 동방박사

미국의 개신교 목사 헨리 반 다이크의 소설 "네번째 동방박사"에 관한 이야기

원래 보통 알려진 세 사람과 아르타반(Artaban)이라는 이름의 네번째 박사가 같이 떠나려고 하였는데, 그는 도중에 늦어져서 3명이 먼저 떠난 후에야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아르타반은 혼자서라도 뒤따라가야겠다고 생각하여  홍옥, 청옥, 진주 세 가지의 예물을 준비해 여행을 떠났으나, 도중에 가난한 사람이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느라 홍옥과 청옥을 써버리고 예수도 만나지 못한 채 33년이 흐르고 만다.

그리하여 아르타반은 지치고 피곤한 상태로 예루살렘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는데… 예수는 33세에 죽었다.
그렇다. 아르타반이 돌아왔을 때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는 날이었다.
아르타반은 기겁해서 자기에게 마지막 남은 진주를 주어서라도 메시아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골고다 언덕으로 달려가는데 도중에 또 불쌍한 사람을 만난다.

아르타반은 갈등하지만 결국 진주마저 주어버리고 허탈해 하는데,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머리에 기왓장을 맞게 된다.
그는 숨지기 전 결국 자신은 예수에게 예물을 드리지도 못하고 간다며 용서를 빌자, 하나님이 나타나 "네가 구한 불쌍한 사람들이 모두 나였다."고 하며 그의 선행을 높이 사서 그는 천국으로 갔다는 결말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평가가 다소 엇갈린다.
이 이야기가 성경의 취지와 맞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쪽은 "아르타반은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자"라고 평가한다.

또한 예수가 마르타의 집에서 유다 가룟 유다에게 "가난한 자는 언제나 함께 있을 것이지만 나는 언제까지 같이 있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아르타반의 행위는 천당에 갈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에 대한 반론으로 "너희가 가장 작은 이들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라는 예수의 말씀을 근거로, 아르타반은 실패한 것이 결코 아니며, 그 나름의 방법으로 예수를 충실히 섬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천주교와 개신교에서도 이 부분을 강조하며 강론/설교에 자주 인용한다.

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마틴 신 주연의 <The Fourth Wise Man>이라는 TV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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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탄절(聖誕節 Christmas)의 뜻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 12월 24일부터 1월 6일까지 성탄을 축하하는 명절.

1) 성탄절은 영어로 크리스마스(Christmas), 프랑스어로는 노엘(Noel), 독일어로는 바이나흐텐(Weihnachten)이라고 한다. 
2)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그리스도(christ 메시야)'와 '마스(mass 예배)'가 합쳐진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날을 축하하고 예배한다'는 뜻이다. 

2. 성탄절의 날짜

초기 신도들의 관심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을 선교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육신(成肉身: 탄생)한 날짜의 문제는 공상적(空想的)이었으며 4복음서에는 탄생한 날짜의 기록이 없다.

역사적으로 지금까지도 예수님이 정확하게 12월 25일에 태어났다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첫째, 초기 기독교는 부활에 큰 관심을 둬 성탄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는데 AD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인정하면서 4세기 이후 해가 가장 짧은 날이면서 동시에 해가 새로 태어나는 날을 상징하는 동지 축제일을 기독교식으로 토착화한 명절이라는 해석이다.

둘째, 유대교의 수전절 즉 성전 봉헌절의 날짜가 지금과 비슷하고 유대력에 의하면 키브레스 월이 25일에 시작한 것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셋째, 누가복음 2장 8절에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라고 한 성경 말씀을 토대로 12월은 팔레스타인에서 우기이며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목자들이 양떼 치기를 꺼릴 뿐만 아니라 10월 중순부터 그들을 따뜻하게 보호하려고 했기 때문에 늦여름이나 이른 가을 또는 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3. 성탄절의 유래

1) 기독교 성립 이후 처음 300년 동안에는 성탄절 축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온 교회의 관심이 오직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 승천하신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육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2) 오늘 우리에게 알려진 성탄절에 대한 기록 중에 최초는 4세기 초의 이집트 파피루스에 남은 기록이다. 이 파피루스는 4세기 초의 성탄절이 1월 6일 저녁부터 7일 저녁까지 축하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의 세례 받으심(1월 6일 또는 10일)과 탄생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1월 6일을 축제일로 정했다. 

3) 주후 321년 : 콘스탄티누스대제는 정치적인 판단에서 그리스도교도의 예배일(주일)을 미트라교의 태양숭배일과 결합시켜, 321년에 주(週) 1회의 휴일을 정하고 관리들의 휴일로 삼았다. 

4) 주후 325년 : 니케아공의회(325)에서 그리스도론(論)에 관한 교의(敎義)가 정리되고, 그리스도 탄생에 대한 신학적 의의 부여가 확정되자, 미트라교의 축일(Natalis Solis lnvicti:불멸의 태양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이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해석되어 제도화되었다. 그리스도는 '의로운 해'(말4:2)로 예언되었고, 예수께서 직접 '나는 세상의 빛'(요8:2)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날로 대체 하였다.

5) 주후 336년 :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공식적인 로마의 휴일로 정했다. 그 후 성탄절을 12월 25일로 확정하기는 주후 6세기경 디오니시우스에 의해서라는 것이다. 12월 25일이 로마에 있어서는 정복되지 않는 태양신을 경배하는 이교도들의 축제일 이었지만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 빛의 축제가 세상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밀란의 감독이었던 암브로스(340-374)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새로운 태양'이라고 말했다. 또한 성탄절을 12월 25일로 확정지은 것은 크리스소톰(347-407)이라고 한다. 

6) 종교개혁 이후 이러한 배경을 알고 있던 경건한 프로테스탄트들은 성탄절 지키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7) 1644년 청교도들이 영국 의회를 장악했을 때 12월 25일에 성탄절 지키는 것을 반대했다. 그 대신 장날(market day)로 지키게 했으며 군인들은 성탄절 준수를 탄압하기도 했다. 미국 청교도들은 이 날을 '교황의 날'로 명명하기도 했다.

8) 1659년에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공식적으로 성탄절을 금지했고 20년 동안 지속되었다. 심지어 1870년까지 12월 25일에 학교를 닫지 않고 지속적으로 교육을 실시했다고 한다. 

9) 1836년에 이르러 앨라배마 주에서부터 성탄절을 공휴일로 정했다. 그리고 남북전쟁이 되면서 하나씩 공휴일로 정했다. 점점 성탄절은 그리스도의 탄생보다는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되어갔다. 

4.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

1) 예수님께서 하늘의 영광된 자리에서 낮아진 인간으로 오신 날이다.
2) 빛 되신 구세주의 오심을 세상에 선포하는 날이다.
3)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새 생명을 얻는 날이다.
4)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드리는 날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어느 날이든지 성탄절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성탄절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이교도들과 달리 태양의 탄생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날을 거룩하게 하신 분의 탄생 때문이며 그것을 만드신 분의 탄생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2천여년 동안 압박과 탄압 속에서도 이교도의 심정을 갖고 지키지 않고 그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고 부활의 신앙을 지켜온 정신으로서 성탄절의 의미는 결코 훼손될 수도 없고 우리가 이를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고 기뻐해야 한다. 

5. 성탄절과 관련된 용어의 의미

1)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성탄을 기뻐하는 인사말로,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예수님을 경배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2) 크리스마스 이브(Christmas Eve)
evening(저녁)이 줄어서 eve로, 특별한 날의 전날 저녁(밤)이란 뜻이다. 따라서 크리스마스 이브(Christmas Eve)는 크리스마스 전날 밥을 의미한다.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하루를 해 질 때에 시작하여 다음 날 해 질 때까지를 말하였다. 따라서 12월 25일은 오늘의 12월 24일 저녁부터 12월 25일 저녁이 될 때까지를 말한다.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크리스마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작한다. 덴마크, 독일, 헝가리, 노르웨이, 아이스랜드, 아르젠티나, 폴란드, 포르투갈, 퀘백 등의 나라는 선물을 24일 저녁에 나눈다. 

3) 산타 클로스(Santa Claus) 
지금으로부터 약1,700년 전 네덜란드의 '니콜라스(Nicholas)'라는 사람은 아이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아주 많이 도와주었다. 착한 일을 많이 한 니콜라스가 죽자 사람들은 '산타'(Saint 성스러운 사람, 성자)라는 호칭을 붙여서 그의 선행을 기념하게 되었고 산타 니콜라스처럼 불쌍한 이웃을 도와주는 사람을 산타클로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산타클로스의 빨간 옷은 박애정신을 나타낸다.그러나 산타클로스가 성탄절의 주인공은 아니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이 땅에 태어나신 날이다. 

4) 크리스마스 트리(Christmas Tree) 
애굽과 희랍, 로마인들이 나무를 가지고 장식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일 때 이 풍속도 토착화하여 함께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상록수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새 생명을 주시는 것을 상징하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16세기경에 이르러 독일에서 마틴 루터에 의해서 널리 퍼지게 되어 전 독일에 유행하게 되었으며, 19세기에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등의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퍼지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이 독일인이었으므로 1841년에 그에 의해서 시작되어 점차 퍼지게 되었으며, 미국에서는 1832년에 하버드 대학 교수인 폴렌(Follen)이 자기 집에서 아이들을 위해 만든 것이 시초였다. 그 후부터 교회마다 세우게 되고, 큰 길 네거리에도 세우게 되었으며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5) 크리스마스 캐롤(Christmas Carol)
'캐롤'이란 단어는 '코로스(Choros)라는 그리스어에서 온 듯하다. 그것은 춤(성가대의 춤), 무용가들, 성가대의 합창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춤과 노래가 캐롤의 심장이다. 첫 캐롤은 마리아의 찬가(눅1:46-56)와 스가랴의 축가(눅1:57-80)와 천군천사들의 찬양(눅2:14)이 시작이라 할 수 있다.춤은 고대에 있어서 예배의 한 부분이었고, 초기 교회는 이것을 예배의 한 요소로 가지고 있었다. 오래된 캐롤의 대부분은 1400-1647년 사이에 씌어졌다.

6) 크리스마스 카드(Christmas Card)
영국 런던의 학생들이 성탄절을 맞아 카드 모양의 편지에 그림을 곁들여 보낸 것에 힌트를 얻은 실업가 존 호스리가 친구인 헨리 쿨 경을 위해 도안한 카드를 1천장 인쇄하여 사용한 것이 시초라는 설이 있다. 이 카드가 판매되자 성탄 카드를 보내는 풍습이 전 세계에 퍼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7)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 
덴마크의 우체국 서기였던 '아이날 홀보엘'에 의해 시작되었다. 1903년 홀보엘은 결핵 환자들을 위해 특별한 성탄절 우표를 만들었고 크리스쳔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1904년 처음으로 그것을 우체국에서 팔도록 했다. 그리고 그 해 4백만장이 팔려 결핵 환자들의 병원을 세우게 되었다.우리나라에서는 1933부터 실시되었으나 일제에 의하여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 대한 결핵협회에서 재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8) 크리스마스 촛불(Christmas Candlelight)
종교 개혁자 루터가 밤에 산책을 하다가 달빛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고 트리에 불을 밝힌 것이 시초라는 설이 있다.

9) 크리스마스 양말(Christmas Stocking)
성 니콜라우스(주후 350년경 별세)가 파산한 귀족의 딸 3명을 도운 이야기이다. 그 무렵 지참금 없는 처녀는 좀처럼 혼담이 생기지 않았다. 니콜라우스는 귀족의 장녀가 적령기가 된 때, 창에서 몰래 금화주머니를 던져 넣었다. 다음 차녀의 때에도 그렇게 했다. 막내 딸 때, 금화주머니를 던지는 현장이 아버지에게 발각되어, 이야기가 퍼졌다. 이 일이 있은 이래로, 니콜라우스는 적령기의 딸들의 수호성인으로 되었다. 금화주머니를 던져 넣을 때, 굴뚝 곁에 말리우고 있던 양말과 함께 떨어져, 크리스마스에 양말을 보내는 습관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성탄 전 날 밤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놓는 풍습으로, 산타클로스가 가난한 집에 돈을 던져 준 것이 빨아 걸어놓은 양말에 들어간 데서 유래한다. 그 후 아이들은 성탄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으 양말을 걸어두고 있다.

10) 크리스마스 요리(Christmas Food)
원래는 크리스마스 당일 교회에서 성탄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가족 또는 손님들과 함께 축하하며 먹는 요리를 말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성탄전야, 즉 크리스마스이브에 먹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영국·미국은 칠면조구이를 주요 요리로 삼고 있으며, 프랑스에서는 통닭구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호게트(생후 1년 내지 1년 6개월 된 양고기)가 중심이 되는 등 새나 고기의 구이가 많이 사용된다. 특히 후식은 나라에 따라 크기와 특징이 있는데, 모두 까닭이 있다. 영국에서는 과일과 향료를 넣은 흑갈색 푸딩을 크리스마스 푸딩이라고 하며,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프랑스에서는 뷔슈드노엘(büch de Noël)을 만든다. 뷔슈드노엘은 큰 장작처럼 생긴 케이크인데, 옛날 성탄전야에 큰 장작으로 불을 땠던 관습에 따른 것이다. 독일에서는 슈트렌이라고 하는 가루설탕을 친 과일이 든 빵을 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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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성탄 대축일의 유래

교회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12월 25일로 지낸다.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동방교회와 개신교 교회들이 같은 날 예수의 탄생을 기린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구약의 전승이나 성경, 특히 복음서의 어디에서도 정확히 어느 날짜에 예수가 태어났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당연히 예수의 정확한 탄생일이나 실제로 교회에서 성탄 의식이 시작된 시기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주장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교회의 기록에 의하면 서방교회에서는 336년 이래 매년 12월 25일에 예수의 거룩한 탄생을 기념해 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무슨 근거로 이 날을 주님 성탄 대축일로 기념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가설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로마인들의 이교적인 축제일을 그리스도교화 했다는 주장이다. 로마에서는 274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때부터 태양신을 공경해 신전을 세웠고 그 건립일을 ‘무적의 태양의 탄신일’(Natale Solis Invicti)로 지냈다.

예수 탄생의 정확한 전승이나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당대 시대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을 예수의 탄생일로 기념해야 했다. 이에 따라, 354년 로마의 리베리오 주교는 태양신 신전 건립일을 성탄일로 정하고 그 해의 로마 축일표에 기록했다. 당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아니즘 이단에 대항해 성탄 축제를 통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고백했다. 그리고 5세기에 이르러서는 이날을 주님 성탄 대축일로 공식 선포했다.

동방교회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1월 6일)에 예수의 탄생, 동방박사들의 경배, 요한 세례자에 의한 예수의 세례 등을 공동으로 기념했다. 하지만 서방교회의 12월 25일 성탄 기념 전통이 동방교회로 퍼져나가 5세기 말에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보편화됐다. 유일하게 아르메니아 교회만 지금까지 1월 6일을 성탄일로 지낸다.


■ 성탄 시기의 전례적 특징

성탄 시기는 언제일까? 대부분 대림 시기를 포함해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까지의 기간을 성탄 시기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성탄 시기는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로부터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주일인 주님 세례 축일까지를 의미한다.

이 성탄 시기에는, 오늘날 교회뿐만 아니라 세속적으로 비신자들까지 공통적으로 기념하는 다양한 관습과 풍습들이 생겨났다. 니콜라오 성인으로부터 유래하는 산타 클로스로부터 성탄 트리, 아기 예수를 모신 구유, 그리고 캐럴 등이 그것들이다.

성탄 시기는 주님 부활과 함께 전례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부활 시기와 마찬가지로 8일 동안 성대하게 전례적으로 기념한다.

성탄 시기의 시작인 동시에 팔일 축제의 시작일인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는, 교황청의 전통적 전례에 기원을 두고, 밤미사와 새벽미사, 낮미사 등 3번의 미사를 봉헌한다. 레오 1세 교황 때까지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하는 낮미사만 있었지만 5~6세기경부터 낮미사 외에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밤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다. 이어 6세기 중반부터는 교황이 동로마 제국 사람들을 위해 새벽에 성녀 아나스타시아 성당에서 미사를 거행했고, 이것이 새벽미사로 자리잡았다.

주님 성탄 대축일 이후 교회의 전례력은 팔일 축제로 이어진다. 이 주간에는 그리스도교의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 성인을 기리는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12월 26일), 사도이자 복음사가인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12월 27일), 헤로데가 베들레헴의 어린 아이들을 학살한 것을 기억하는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성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또한 성탄 후 첫 주일 또는 성탄이 주일일 경우 12월 30일에 지내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이 성탄 시기에 포함되고, 주님 성탄 대축일 후 8일째를 맞는 1월 1일에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기념하면서 팔일 축제를 마무리한다. 팔일 축제에 이어지는 시기에는 ‘주님 공현 대축일’과 ‘주님 세례 축일’을 기념한다.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는 끝나고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이날 저녁 미사 후 성탄 구유를 치운다.


■ 성탄과 신앙인

성탄은 무한하신 하느님이 죄 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시어,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신 강생의 신비를 담고 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인간을 향한 무한한 사랑 때문이다.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인들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이러한 하느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응답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주님 성탄의 의미를 ‘이웃과 나누며 베푸는 삶’이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주신 것은 탐욕하고 독점하는 삶이 아닌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강생의 신비를 품고 있다.
그리고 이 신비는 사랑의 신비와 다름 아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은 우리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기념하는 기쁨과 감사의 축제이고, 나아가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우리 삶에 구현해야 한다는 촉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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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

성 경: 마2:1-9

 

<서론>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열국의 패권을 잡고 헤롯이 예루살렘에서분봉왕으로 있을 때에 예수님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하였습니다. 그 박사들은 누구이며 그 별은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전해진 설화에 보면 그 박사들의 이름은 캐스파, 밀초어, 팔다사였습니다. 페르시아인이며, 마니교도들의 선생들입니다. 그들은 천문학을 연구하는 점성술사들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페르시아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좌우편에 거생하였고, 태양신을 경배하며 일월성신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별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연구하며 설교했습니다. 그 종교의 우두머리들은 천문학사들이었으며, 그들의 교당은 천문대를 겸유하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향할 때에, 동방에 유명한선지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발람입니다. 모압왕 발락이 발람을 청하여이스라엘 민족을 저주케 한 것은 성경에서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발람은 브올산에 올라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는 커녕 하나님의 신에 감동하여 예언하였습니다. "저가 지금 없으나 내가 보고 저가 가깝지 아니하나 내가 바라보도다 한 별이 장차 야곱의 집에서 나옴이여 한 홀이 장차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리로다(민24:17)" 주전 1,700년부터는 이스라엘 민족이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동방 각처로 흩어지기 시했작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동방의 문학 계급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통하여 옛날 동방의 선지 발람의 예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곧하늘에서 거명성(거명성)이 뜰 때에 유대에서 세계적인 대왕이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수(성수)는 인수(인수)에 상관한다는 사상으로 별의 운명은 사람의 운명과 같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하늘에 큰 별이 뜬다는 것입니다.

그후 동방의 박사들은 새로 뜨는 큰 별을 먼저 찾으려고 각처에서 하늘을 관찰하며 별의 길을 자세히 연구했습니다. 바벧론의 보시파에 있는 칠성전관상대(칠성전 관상대)에는 그 별을 연구하는 세 박사가 있었습니다. 새로 태어날 왕에게 드릴예물, 즉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하고 그들의 친구인 페르시아의 엑바타나 도시에 있는 앗타반에게도 서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는 페르시아 황제의 피서궁(피서궁) 북편 오른테스 산에 성단을 쌓고 배화하던 진실한 도사였습니다. 그들은 왕에게 드릴 예물을 준비하였다가 히브리 족속이 사는 서편 하늘 쌍어성좌(쌍어성좌)에서 큰 새 별이 뜰 때에는 즉시 7성전으로 와서 세 박사들과 함께 새로 나신 대왕에게 경배하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과연 왕의 왕되신 구주께서 강생하실 그 때에저 천공으로부터 명랑한 새 별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그 별을 본 박사들은 기쁘고도 마음이 조급해져 앗타반을 기다릴 새도 없이 즉시로 약대를 몰아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오른테스의 천문대에 있던 앗타반도 새 별이 뜨는 것을 보고 곧 예물로 드릴 보석 셋을 가슴에 품고서 준마 중 가장 빠른 루바스다를 몰아 7성전으로 갔습니다. 이미 세 박사들은 저들끼리 떠난 뒤였으나 앗타반도 약대를 몰아 아라비아 사막을 건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때 뜬 별은 무엇이었을까요. 행성이나 혜성이라 하며, 또는 새 별이니 임시별이라고도 하며, 초자연적인 빛을 비추는 별이라고도 합니다. 그중에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요 뛰어난 천문학자인 케플러의 말에 의하면, "구주께서 탄생하실 때에 쌍어성좌에서 목성과 토성과 화성의 3대행성이 일직선상에 회합 되었기에 일시에 강열한 빛을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1572년에도 그런 현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11월 11일 저녁덴마크의 천문학자 브라에가 국립 천문대에서 관찰 할 때의 일입니다. 홀연히 선후성좌(선후성좌) 갭바 성(성) 가까이에 한 새 별이 나타나 그 밝기가 대낮에도 능히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에 각처에서는 신도들이 이 별은 재림의 징조라 하여 한 때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으나 1574년 3월에는 그 빛이 점점 사그라져 없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성경보다도 이런 설화나 과학적 기록으로 근거를 대면 사실을더 수긍하고 믿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것들이 구주되시는 그리스도의 탄생이나 그 진실성을 입증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진실을 알리며 믿음을 주고 그 말씀대로 순종케 하는 것은 오직 성경 뿐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믿음의 근거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본문에서 예수님의 탄생하시던 당시의 모습을 더 자세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독특했습니다. 자연계에는 이상이 있었고, 해산을 앞둔 임산부가 장거리 여행을 해야하는 사연과, 겨우 구한 말구유간을 의지삼아 분만해야 했던 이야기들을 공부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부적절한 특이현상 때문에 사람들은 성경을 곧이곧대로 믿기를 거부하며, 전연 신빙자료가 될 수 없는 설화나 이상한 이야기에 귀를 기우리면서 자신들의 허망한 마음에 만족을 채웁니다. 입으로만 주의 성탄을 말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탄의 의미와 그 귀중한 뜻들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는 귀한 은혜의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한 목적을 보십시다.

 

사복음서를 보면 요한복음과 마가복음은 그리스도의 유년기에 대한 기록이없습니다. 요한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는 유년기나 나이 드실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계시며 변함이 없으십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그리스도가 노예로서 계시됩니다. 어떤 사람도 노예 따위의 유년기에 대하여 주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유년기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두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유년기를 기록하고 있지만 서로의 관점은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는 그리스도가 합당한 사람이었음을 입증합니다. 예수의 인성을 증거하는데 주력합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었지만 사람됨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율법대로 할례를 받았고,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첫째 날이 아닌 여섯째 날에 예수라 이름하였습니다.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에 올라 갔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남자이면 일년에 삼 차 절기에 참석해야 한다는 율법의 요구를 충실하게 따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신체적으로 자라셨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럽게 보이셨다고 합니다. 이런 기록들은 예수님이전형적인 사람이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태는 아기예수가 하나님 백성들의 왕이심을 보여 줍니다. 누가는 이런 요점들을 포함하지 않지만 마태는 누가가 지내친 점들을 섬세하게 기록합니다. 마태는 아기 예수가 모든 백성의 왕이심을 입증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흑백 문자로만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성경 안으로 들어가서 성경이 보여 주려는 요점들, 즉 생명되는 어떤 것들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장은 구약의 모든 세대들이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포함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오셨습니다. 그분은 인성 안에 이끌리셨으며 땅 위에 나타나셨습니다. 2장은 그 주님을 발견하는 길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는 인성 안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리스도를 발견하느냐 하는데 우리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2장 역시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장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하여 알아 보십시다.

 

예수님은 탄생하여 네 명의 군주와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것이 만왕의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땅 위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조무라기 왕들과의 조우입니다. 그 첫번이 헤롯대왕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연도에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유다 지역을 그의 아들 아켈라오가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악명이 높은 아켈라오를 피하기 위해, 애굽에서 피난살이를 하다가 돌아 온 예수님의 부모는 유다의 베들레헴에 머물기를 포기하고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로 갔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역시 헤롯의 작은 아들 안티파스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탄생하시면서부터 헤롯과 아켈라오 및 안티파스등 헤롯일가의 세 군주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간접적으로 관련을 맺지 않을 수 없었던 또 하나의 군주가 있습니다. 바로로마의 황제였습니다. 유다는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사람은 누군든지 황제의 막강한 세력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가 로마의 초대 황제 아구스도입니다. [평화의 왕] 예수님이 태어 나시던 시대는 이른바 [로마의 평화]의 기초를 놓기 시작한 초대 황제 아구스도의 전성기가 서로 중복되어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구스도 자신이 고안한 황제를 머리로 하는 원수정치(원수정치) 구조를 통하여 팍스 로마나(P-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가 그리스도의 강림과 때를 같이하여 수립된것입니다. 로마의 평화는 그 평화의 영향력이 미치던 지역에서 이념이나 종교의 전파에 이바지하였고, 그 평화와 함께 도로의 건설, 상업의 성장이 병행되었습니다. 아구스도가 이룩한 내적 평화의 지속과 외적 질서의 유지로 인하여 모든 지중해 연안들이 이처럼 하나의 통치아래 놓였던 때와 번영과 평화를 누리던 때가 일찌기 없었습니다.그러나 사실을 말한다면, 아구스도의 치하에서도 [세계의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평화에 대하여 실제로 행복을 느껴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로마가 번영을 누리면 누릴수록 그에 비하여 로마의 내부와 속주들에게는 평화와는 거리가 먼 신음소리들이 더 높아만 갔습니다. 이토록 참된 [평화의 왕]의 오심과 세상적 [평화 메이커]들이 연출해 내는 위장된 평화와의 묘한 대조를 이루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의 평화아래서 공포정치의 극을 이루었던 헤롯의 때에 주님은 오셨습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에돔 사람으로서 에서의 후예입니다. 안티파테스의 아들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헤롯이 유대인의 왕이 될 수 있도록 충분한 기반을 잡았습니다. 헤롯왕조의 시조로 불리우는 안티파테스는 유대의 마지막 왕조인 마카비우스(하스몬) 왕가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단순히 이두매 족속으로서 유다 왕조를 무너뜨렸다고 하면 논란할 이유가 없겠지만, 안티파테스가 혈통으로는 이두매족이라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그의 국적은 엄연한 유대인이라는데 있습니다. 이두매는 마카비 왕조의 정복정책에 의하여 유대에 합병되었던 것입니다. 안티파테스는 마카비 왕조에 중신으로 기용되어 있으면서 권력싸움을 이용하여 자신의 둘째아들을 왕으로 추대하는데 성공합니다. 헤롯은 주전 55년부터 주후 93년경까지 팔레스티나와 그 인접국가를 통치한 왕조의 이름으로서 헤롯대왕은 헤롯왕가의 창시자입니다. 25세 때에 아버지의 권력을 등에 업고 갈릴리의 지사를 거쳐 주전 40년에 로마황제 아구스도에 의하여 유대왕으로 임명 되었습니다. 이두매, 사마리아, 갈릴리 지방을 쳐서 주전37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유대 왕으로서 군림하였습니다. 성격이 강인하고 또 현명한 재질을 가졌으나 매우 잔인한 행위도 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공공사업을 하고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에 착수하였습니다. 무려 10명의 아내와 많은 자녀를 두었고, 그 자식들의 권력싸움 또한 볼만 했습니다. 그는 악질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불안을 느껴 베들레헴의 유아들을 살해한 장본인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들에 대하여 초점을 맞춰 보십시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동방에서 오는 박사들에게 안내하기 위한 빛나는 별을 주셨습니다. 이 별은 거룩한 땅 안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것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몇몇의 이방인들에게만 나타났습니다. 그 별빛은 이방의 박사들을 감동 시켰습니다. 그들은 유대에 왕이 났음을 직감했습니다. 왕을 경배하기 위하여 아라비아 사막을 횡단하여 유대 땅으로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재미있는 대조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지상의 왕들이 평화를 구축하려고 애쓸 때에 참된 평화의 왕이 오심과 같은 것들입니다. 유대의 종교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 안에는 우리의 생명되시는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약속으로 가득 찼습니다. 반면에 이방의 그 박사들은 이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과 별, 여러분은 이 둘 중에 어느 것을 가지고 싶습니까? 물론 둘 다가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손에는 성경을 가지고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축복, 하나님은 이 놀라우신 복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둘 다 되는 축복입니다. 성경에 관한 한 우리는 유대인이고, 별에 관한 한 우리는 이방의 박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 이것들이 축복이 되는지 말씀의 깊은 뜻들을 더 살펴보셔야 합니다. 박사들은 별을 보고 왔습니다. 우리는 그 별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또 알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동방의 박사들 역시 누구인지 모릅니다. 물론 그 박사들에 대하여 호기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호기심의 충족을 위하여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게 되면 추측이거나 거짓말일 수 없습니다. 성경이 침묵하는 것은 우리도 침묵해야 합니다. 구구한 해석을 필요로 할 때 벌써 우리의 신앙은 성경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가르침들을 따르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성경이 별과 박사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 뜻을 살피는 것은 중요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보고 유대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이상을 체험했지만 곧 어려움에 처해졌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판단에 의한 착오였습니다. 그들은 이상을 보았고 그것이 유대인의왕을 가리키는 것임을 깨달았지만 그 왕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유대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들의 결정은 별빛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을 믿었기 때문에 올바른 노선으로부터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은 틀렸습니다. 그곳은 수도였고 성전이 있는 곳이었지만 예수님이 태어나실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박사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아기 예수는 하마터면 죽을 뻔한 것입니다.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물었습니다.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습니다. 새로운 왕의 탄생에 대하여 헤롯왕은 불안에 떨었고, 백성들은 헤롯왕에게 동조했습니다. 그것은 헤롯의 폐위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헤롯을 보다 더 잔인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헤롯은 전에도 과대망상증이라는 병 때문에 이미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살해한 적이 있습니다. 왕은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모든 대제사장이라고 한 것은 대제사장을 지낸 여러 사람들을 말합니다. 대제사장은 영구직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일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율법을 어기고 대제사장직 제도를 제 마음대로 바꾸어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임명하고 또는 해임시켜 버렸던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율법선생들을 말합니다. 성경을 필사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태어나실 장소를 알아냈습니다. 헤롯은 박사들을 은밀히 불러서 별의 나타난 때를 묻고 아기를 찾거든 자신에게 알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헤롯이 이미 사내아이들을 죽일 무서운 음모를 마음 속에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찾아서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가 과연 태어 나셨는지 보기 위하여 박사들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간 사람은 없습니다. 그토록 메시야의 강림을 열망하던 유대인들의 태도로 보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메시야가 베들레헴에 태어나실 것이라고 말해줄 수 있었지만, 그들 중 아무도스스로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식은 위했지만 메시야의 사신 인격은 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매우 영적인체 합니다. 그러나 성경만을 주시할 뿐 사신 그리스도를 관심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들에게도 곧 옮아 올 수 있는 무서운 전염병이라는 사실입니다. 박사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왔을 때에 별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 별은 박사들을 그리스도가 계신 곳으로 인도했습니다. 베들레헴성 뿐만 아니라 아기 예수가 계신 곳으로 정확하게 인도했습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아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을알고 그리스도께 대한 산 이상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직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 그리스도만을 만나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할 때 동방의 박사들이 그리스도를 뵈옵고 경배하듯이 우리들도 그리스도를 뵈옵고 영원히 경배하는 자리에 나아가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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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탄생(마태복음 1:18)

 

구약에 예언하신 예수님이 탄생하셨다. 그 예수님이 우리의 죄의 문제를,질고의 문제를, 삶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세계에 오신 분이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족보속에 오신 분이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분이다. 유대인이 기다리던 분으로 오신 분이다. 구약에 약속했던분으로 오신 분이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다. 다윗의 왕권을 가지고 오신 분이다. 그러면서 하늘의 축복을 가지고 오신 분이다. 우리는 그 분을 진실로 영접하자.

 

2. 구원자로 오신 분이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 그 진리의 예언된 말씀을 응하기 위해서 구원자로 오신 분이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구원자로 진리로 생명으로 오신 분이다. 믿는 자는 천국,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을 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다.

 

3. 임마누엘로 오신 분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와 함께 하신 분이다. 고난을 당하는 자와 핍박을 당하는 자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다. 그 예수님이 오셨으니 우리는 그 분을 사모하자. 찬양하자. 경배하자. 예수님의 뜻대로 행하자.

 

4. 순종으로 오신 분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예언에 순종하여 오신 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오신 분, 가난한 자로, 저주를 받을 자로 오신 분, 인간이 되라고 할 때에 고난을 받으라 할 때에 십자가를 지라고 할 때에 순종하여 아멘하여 오신 분, 인간이 되라고 할 때에 고난을 받으라 할 때에 십자가를 지라고 할 때에 순종하여 아멘하여 오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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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감사제(토다흐) 레위기 22:29-30


한국어 사전에서 감사제 의 정의 /
 인간이 초월적 존재나 조상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러내어 바치는 의례.



제1부 감사 제사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시편 107:1, 8)
감사 시편 교독  ――――  시편 136:1∼26  ―――― 다같이
신앙고백  ――――――― 사도신조  ――――――― 다같이
감사 찬송  ――――――― 459장 ―――――――― 다같이
성경  ――――― 레위기 22:29∼30 ―――――― 다같이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 희생을 드리거든
너희가 열납되도록 드릴찌며 그 제물은 당일에 먹고
이튿날까지 두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찬양  ――――― 우리에게 향하신  ―――――― 다같이
1.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x2)
2.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 영원 영원하시도다(x2)
나의 감사  ―――――――――――――――――――― 다같이
나의 감사를 마치면 그 사람의 이름을 넣어 찬양합니다.
봉헌  ―――――――――――――――――――― 다같이
문막 은퇴여선교사 안식관 후원을 위하여
감사 결단 찬송 ――――――  312장 ――――――― 다같이
축도 ―――――――――――― 다같이
제2부 감사 잔치
감사 예배와 식탁의 교제를 위하여 마음과 정성을 모아
사랑으로 준비한 손길을 마음에 새기며 감사합니다.
주님의 위로와 은총이 풍성하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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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의 견해나 또는 개 교회 사정이 다르겠지만 어떤 교회에서는 감사헌금을 드리면 그 감사한 내용을 성도들에게 읽어주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베푸신 감사한 내용을 모든 성도들이 듣고 그 감사한 일을 인식하고 함께 감사에 동참할 수 있다는 면에서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성전시대의 감사제를 드리는 법칙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반드시 표현되어야 했던 감사제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 감사제의 이유

감사 제사는 히브리어로 ‘코르반 토다’라고 발음한다.

감사제는 기본적으로 화목제 안에 포함된다.
그래서 그 드리는 제물이나 또는 방법적인 면에서 감사제는 화목제와 비슷하고 다만 좀 더 다른 것들이 추가된다.

화목제가 드려졌던 이유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상황들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찬양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과 나누는데 목적이 있었다면 감사제는 죽음에 직면한 특수한 상황들에서부터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고 그 내용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유대 랍비문헌에 의하면 이런 상황들을 시편 107편에서 언급되는 네 가지의 상황 즉 바다를 항해하고 무사히 육지에 도착했을 때, 광야를 무사히 건넜을 때, 병에 걸렸다가 무사히 낫게 되었을 때, 감옥에서 무사히 풀려난 것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데서 찾았다.

이런 상황들에서 감사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고대 성경시대의 바다와 광야와 감옥과 질병은 죽음과 직결된 문제들이었기 때문이다. 죽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게 된 것은 충분히 감사의 제목이 되었다.

또 화목제의 제물이 소, 양, 염소, 암컷, 수컷 등을 가리지 않고 드릴 수 있었던 점은 감사제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감사제의 제물은 화목제의 제물과 같이 소, 양, 염소, 암컷, 수컷 등을 가리지 않고 드린다. 하지만 감사제는 좀 더 많은 소제들이 첨가되어야 했다.

또 화목제가 그 제물을 소비하는데 2박 3일의 기간을 가졌다면 감사제는 1박 2일이었다는 면에서 다른 점이 있었다.
이와 같이 감사제는 화목제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좀 더 특별화 되고 또 좀 더 강도가 강하다(?)고 표현될 수 있다.


2. 감사제의 방법

▲ 감사제의 빵.
감사제는 일반 화목제와는 달리 짐승의 제물과 더불어 소제를 가져와야 했다. 그것을 레위기 7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여호와께 드릴 화목제물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만일 그것을 감사함으로 드리려면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제물과 함께 드리고 또 유교병을 화목제의 감사제물과 함께 그 예물로 드리되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지니라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레 7:11~15)

감사제를 위한 소제는 4가지 타입의 서로 다른 크기의 빵들을 각각 10개씩 준비해야 한다. △유교병 10개 △기름 섞은 무교병 10개 △기름 바른 무교병 10개 △고운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무교병 10개.

미쉬나의 기록에 의하면 이중에서도 10개의 유교병은 각각 2.2kg의 밀가루로 만들어졌다고 하며 누룩을 넣어서 부풀렸기 때문에 그 크기가 어지간한 어른 팔뚝보다도 더 컸다고 한다.
이렇게 4종류의 소제물중에서 각각 하나씩(4개)은 제사장들에게 주고 나머지 36개는 모두 제물을 가져온 사람이 다시 되돌려 받았다.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양의 빵과 고기는 되돌려 받은 사람이 그것을 집으로 가지고 가서 그 날 자정까지 모두 소비해야 했고 다음날 아침에 남은 것은 무조건 다 태워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감사제는 무효가 되고 만다. 결국, 그 많은 양의 제물을 자정까지 소비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아 함께 나눠 먹어야 했다.
그래서 감사제를 드리는 사람은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과 함께 고기와 빵을 나눠 먹으며 자연스럽게 이 감사제를 드리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것을 통해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이 사람에게 위대한 일을 행하셨는지 이해하게 되고 함께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있었다. 이것이 감사제의 진정한 의미였다.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제사법에 비추어 생각해 본다면 오늘날 교회에서 감사헌금을 드리는 분들은 헌금만 드릴 것이 아니라 떡 한말 해서 모든 성도들과 나눠먹으며 왜 이 감사헌금을 드리게 되었는지 앞에 나가서 이야기하고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다른 모든 성도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다함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는데 동참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이런 방법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도록 교육시키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2021 감사제(토다흐) 레위기 22:29-30

감사제 (히브리어 : תֹּודָה, Todah) 또는 감사의 제사 (זֶבַח הַתֹּודָה)은 모세 율법에 따라서 드리는 선택적인 제물이다.[1] 이말은 "추수 감사제"로 명칭된다.[2] 특히 과거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여 드리는 제사, 또는 그 제물(대하 33:16,시 56:12,107:27,116:17,렘 33;11)이다. 히브리어[토-다-흐]의  번역어인데 감사의 희생(렘17:26,레 22:29) 등으로도 번역되어 있다.

아리랑의 유래


아리랑의 유래


1.


한자와 관련된 어원 고찰은 흥선대원군 경복궁 중수 무렵 고향을 떠나는 부역꾼들이 '나는 님과 이별한다'는 뜻으로 아리랑(我離娘)을 불렀다는 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수를 위한 당백전 발행으로 원성이 자자하여 차라리 '내 귀가 멀었다'는 뜻으로 아이농(我耳聾)이라 한 것에서 유래했다.

2.

아리랑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민요이다.
아리랑은 2012년 12월, 대한민국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1]2014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지역별로 각각 다른 아리랑이 전해져 온다.

아리랑은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한반도와 해외 한민족 사회에서 널리 애창되는 대표적인 노래이며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발생된 아리랑은 강원도 정선 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어 1억 한민족의 민요가 되었다.[2]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阿里娘打令[3](아리랑타령)이 있으며, 한자 표기는 원래 어원이 아닌 한자의 음을 빌려 표기한 음차 표기이다.


3.

아리랑의 어원은 불분명하나,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시각에서는 아리랑을 '아리다'에 연관짓기도 한다. 아리다의 원래 어형은 '알히다[5]'이며 이는 '앓다'에 '-이-'가 붙어 형용사로 굳어진 것으로 본다. '아라리가 났네'는 '앓이가 나다'로 풀이되며 '앓이'는 '앓다'의 명사형이다. '앓앓이'는 강조를 위해 어간을 중복해서 사용했거나 다른 지역에서 나타나는 '아리리'와 같이 '앓이앓이'가 줄어든 형태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에는 '가슴앓이, 속앓이' 등의 형태로 남아있으며 '나다'는 '병이 나다'에서 '나다'에 대응한다. 또한 '아리랑'은 '구부렁(구부르다)', '달랑달랑(달다)'과 같이 동사 어간접미사를 붙여 의태어를 만든 것일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쓰리랑은 쓰리다와 연관된다.


또한 아래와 같이 한자에 연관하여 어원을 찾기도 하지만, 과거 어떠한 문헌에도 다음 예가 나타나지 않아 다양한 한자음에 음차한 것에 불과하여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며 민간어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자와 관련된 어원 고찰은 흥선대원군경복궁 중수 무렵 고향을 떠나는 부역꾼들이 '나는 님과 이별한다'는 뜻으로 아리랑(我離娘)을 불렀다는 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수를 위한 당백전 발행으로 원성이 자자하여 차라리 '내 귀가 멀었다'는 뜻으로 아이농(我耳聾)이라 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 세 번째로 밀양 아리랑의 전설의 주인공 '아랑'을 애도한 노래에서 유래했다는 아랑전설(阿娘傳說), 네 번째로 신라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6]

한편, 수필가 윤오영은 그의 수필 <민요 아리랑>에서 이들 어원설이 부회(附會)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하며, 아리랑의 '랑'은 령(嶺)의 변음이며 '아리'는 '장(長)'의 뜻을 지니므로 '아리랑'은 곧 '긴 고개'를 뜻한다고 설명한다. 그 근거로 장백산의 옛 이름인 '아이민상견'(阿爾民商堅)의 '아이'는 '장(長)'의 훈(訓)이며, '민'은 백(白)의 훈차이고, '상견'은 산(山)의 반절음이니 '장(長)'의 고어가 '아리'인 것이 분명하다는 설명과 함께, 아리수(阿利水)역시 곧 장강(長江)을 뜻하는 것으로 그 시대,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강을 부른 이름이므로 '아리랑' 역시 지역 마다 있는 가장 큰 고개를 부르는 이름이었음을 밝힌다. 덧붙여 '쓰리랑'은 '시리 시리 시리랑'에서 온 것으로 이는 '사리 사리' 혹은 '서리 서리'의 변음이며, 지방마다 높은재를 '사실고개', '서슬고개'로 부르는 것으로 미루어 '꾸불꾸불 서린 고개길'을 뜻한다고 설명한다.[7]

'아리랑'과 '쓰리랑'은 고대 북방 샤머니즘의 장례문화에서 '영혼을 맞이하고 이별의 슬픔을 참는다'라는 의미로 추정된다는 견해도 있다.[8]

노래 아리랑은 떠돌이 소리꾼들이 부르던 것으로 전국을 떠돌며 힘든 고개를 넘을 때 힘든 것을 노래한 것으로 백성들이 그네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부르게 된 것이다. 아리랑 스리랑은 높고 구불구불한 재를 일컫는다.

이밖에도 뜻이 없다는 설 등 여러 설과 구음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는 설이 있다.


4. 

아리랑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사람들은 흔히 아리랑을 고개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아리랑은 고개이름이 아니라 가슴이 아리다는 뜻에서 유래되었고 쓰리랑은 가슴이 쓰리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아리랑 쓰리랑은 가슴이 아리고 쓰리다는 말이다.

왜 아리고 쓰리다가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민요로 되었을까?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몇 번이 모자라는 천 번에 가까운 외침을 받아왔다. 너무나도 빈번하게 외침을 받다 보니 항상 언제 당할지 모른다는 심리로 인해 늘 불안한 삶을 살아오게 되었다. 그래서 ‘무사한가?’가 우리민족의 인사말이 되어왔다. 중국인이 ‘밥을 먹었느냐?’가 인사말이 된 것에 비하면 참으로 우리민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조선조 518년을 통해 양반과 상놈의 문화 때문에 백성들의 삶이 몹시 고달파졌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민족을 한(恨)의 민족으로 만들었다. 일제치하 시대인 1930·40년대 만들어진 가요 절대다수가 가사가 슬프고 멜로디가 느린 것이 특징이며, 이는 곧 우리민족의 한 많은 정서를 말해주는 좋은 예이다.
수많은 노래 중에서 우리민족의 비참한 역사 및 이로 인해 한의 민족이 된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내는 가요가 바로 아리랑이다. 이런 맥락에 의해 한국에는 아리랑가요 대표적인 정선아리랑 외에 진도아리랑, 홀로아리랑, 울산아리랑 등 수십 가지가 있다.

해외에 이주한 우리민족도 ‘전통아리랑’ 정서를 갖고 있었고 타향에서 정착하는 과정에 또 수많은 한이 싸이게 되었다. 이를테면 해외동포 700만 명 중 고국전통문화를 가장 잘 보존해온 조선족은 만주이주 초창기부터 삶의 터전을 마련하느라 고생과 고통이 가슴을 짓눌러 왔으며 한의 역사가 계속 지속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 한의 정서가 담긴 아리랑을 비롯한 전통가요를 부르며 고달픈 맘을 달래 오곤 하였다.

신중국 건립 후 소수민족문화를 계승하고 발전하라는 중앙정부의 정책에 의해 조선족은 전통문화를 지켜올 수 있었고 새로운 민족정서를 반영하는 가요도 많이 창작하게 되었다. 아울러 전통 민요를 조선족의 실생활을 토대로 새로운 연변아리랑을 창작해냈다.

중국56개 민족 중 조선족은 가장 능가선무(能歌善舞)한 민족으로 소문나 있다. 따라서 조선족의 농악무는 2009년 이미 중국무형문화재에 등록이 되었고 제3차 중국무형문화재등록에 조선족 씨름, 회혼례, 가야금, 판소리와 함께 연변아리랑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 6월 21일 길림신문을 비롯한 언론이 이 소식을 보도하자 이튿날인 6월 22일 한국의 지상파방송 3사와 조·중·동을 포함해 수많은 언론들이 떠들었다. 그런데 일부 한국 언론의 보도내용에 “중국이 아리랑을 약탈했다”는 주장이 있어 중국정부와 조선족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아리랑은 한국만의 자산이 아니라 전체 백의민족의 공동소유이다. 쉽게 말해 해외에 살고 있는 동포들도 소유할 자격이 있다. 조선족의 경우 거주국의 공민으로서 자신들의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에 등록되는 것은 영광이며 고국인 한국은 이를 마땅히 지지하야 할 입장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한국 언론이 왜 약탈을 들먹이며 민감한 반응을 보일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수천 년 동안 외침을 받아온 피해의식에서 생겨난 결과가 아닐까?

전체 백의민족의 정서를 대표하는 아리랑이 한국 언론에 의해 또 한 번 수난당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5.

'아리'는 하늘을 뜻하는 '알'의 변음(變音)이고,
'랑(郞)'은 사내·남편 외에도 '주인'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종대씨는 50년 전 중국 산둥성 일대에서 발굴된 8500년 전 토기에 새겨진 그림 문자를 근거로 들었다.
다섯 봉우리 산 위에 반달 같은 모양이 있고 그 위에 둥근 해가 있는 그림 문자였다.
이씨는 "학계에서는 이 그림이 아사달을 뜻한다고 보지만 사실 아리랑을 뜻한다"며 "직계 자손인 우리가 부끄럽게도 오랜 세월 잊고 살았다"고 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여서 이씨를 만나봤다.
70세인 그는 전기제품 회사에 다니던 30년 전부터 우리 역사를 공부했는데 15년 전에 고대 그림 문자를 보고 아리랑의 뜻을 풀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런 내용을 담은 책을 내려고 했지만 출판사들이 거절해 작년에 자비로 40권을 찍었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인터넷과 자료를 찾아봤다.

아리랑의 어원(語源)에 대해 30종 가까운 설이 있으나 정설은 없었다.

경복궁 중건 때 원납전을 내라는 말에 저항한 민초(民草)들이 '내 귀는 멀었다'며 '아이롱(我耳聾)'이라는 노래를 부른 것이 기원이 됐다는 설,

'밝(光)'의 고어인 '아리'와 고개를 뜻하는 '령(嶺)'이 합쳐졌다는 양주동의 '아리령설',

고대 낙랑시대 교통의 관문이었던 자비령의 이름인 '아라'에서 유래했다는 이병도의 '낙랑설' 등이 있다.

미국인 헐버트는 1896년 최초의 아리랑 악보와 영문 가사를 남기면서 "한국인들에게 아리랑의 뜻을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썼다.

어원을 추적한 첫 연구는 1930년 일제 총독부 기관지에 실린 '조선 민요 아리랑'이었다. '아이롱설'과 나를 버리고 떠난 임이라는 '아리랑(我離娘)설' 등 6가지 설을 들고 있다. 아리랑 연구가 조용호 박사는 이 논문이 "아리랑을 희화화하고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감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2011년 조선족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우리는 2012년 아리랑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했지만 우리 무형문화재로는 올리지 못하고 있다. 2005년에 국내에 소개된 러시아 학자 추지노브와 유게라심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인종학적으로 고대 아리아족에서 갈려 나와 동쪽으로 이동했는데 이 아리아족과 아리랑이 관련이 있다고 한다. '아리아'는 '하느님의 아들', '아리야'는 '신성하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이종대씨의 '하느님설'과 닮았다.

외국인들이 아리랑을 먼저 연구했고 지금도 세계를 뒤지며 다양한 방법으로 근원을 찾고 있으며 중국은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답답하다. 한반도에서만 찾고 있어서 그동안 여러 연구가 있었어도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부 차원의 지원은 바라지 않더라도 학자들이 각성해서 과학적 연구로 하루빨리 아리랑의 뜻을 복원해야 한다. 그것이 후손 된 도리다. "잘못 아는 것, 모르는 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이 민족은 영원히 부평초처럼 떠돌 수밖에 없다"는 이씨의 말이 귓가에 쟁쟁하다.


6.


현대인의 성경 / 창세기 10:30,
‘이들이 사는 땅은 메사에서부터 동쪽 산간 지역 스발까지였다.’

쉬운성경 /
‘이들은 메사와 동쪽 땅의 산악 지방에 있는 스발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두 성경에서 욕단 족속들이 사는 지역은 메사에서부터  동쪽 아시아지역의 산악지방인 스발 사이에 살았다고 합니다. 

대 홍수 후 욕단이 유일신 신앙을 갖고서 동양으로 이동을 시작할 때에 벨렉은 형제인 욕단을 버리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을 품고서 반대 방향인 서쪽인 ,즉 시날 평원으로 니므롯의 무 리와 하나가 되어 서부로 갔던 것입니다.

욕단의 가계는 무엇보다도 큰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때는 아직 노아를 비롯해 아르박삿, 셀라, 벨렉과 욕단의 아버지 에벨이 살아 있을 때였습니다.
벨렉의 가계는 아버지 에벨과 형제 욕단의 가계와 이별하고 서쪽으로 향하여 가고 욕단의 가계는 동양으로 향하여 갔던 것입니다.
욕단은 스발을 향해 동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스발은 그의 목적지였습니다. 우리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그 때에 욕단의 가계가 동방으로 이동하면서 불렀던 찬송가였습니다.

첫째, 아리랑고개를 넘어 동방으로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영아기 때의 체험을 간직하고 있는 민족의 역사 노래인 동시 에 현존하는 인류 가장 오래된 찬송가로서 한국인이 처음부터 창조주 하나님을 섬 긴 욕단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규명해줍니다, 알이랑은 선민 한민족의 키워드입니 다, 이것이 아리랑의 비밀입니다,

아리랑은 하나님과 함께라는 뜻입니다. 아리랑은 하나님 중심사상이요, 신본주의 정신입니다. 욕단은 홍수 후 니므롯에 의해서 셈족의 하나님 신앙이 강하게 흔들릴 때에도 결코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도전 받는 유일신 신앙을 보전하고자 ‘알이랑 정신’ 즉 하나님 중심 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갖고서 새 땅을 찾아 알이랑고개(파미르 고원-천산산맥-알타이 산맥)을 넘어 아 시아로 멀리 이동한 것입니다. 이것이 현존하는 인류 최고의 찬송가인 알이랑 역 사의 태동의 배경입니다. 인터넷의 위키백과 사전에서 아리랑에 대한 글을 뽑아봤 습니다, 

‘아리랑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이다. 2012년 12월, 대한민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1] 또한, 2014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지 역별로 각각 다른 아리랑이 전해져 온다. 아리랑은 한국의 각 지역 별로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알려진 노래로는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해주아리랑 등이 있다. 20 세기 이후에 주로 불려지고 있는 아리랑은 경기아리랑 또는 '신아리랑'이라 하며, 구한말에 지 금의 형태로 정형화된 노래이다. 수백에 가까운 변종이 있었을 정도로 즐겨 불리던 이 민요는 후렴부와 독창부가 번갈아 가면서 불리도록 이루어져 있다. 이 때문에 아리랑은 여러 사람이 같이 부를 때에는 '아리랑'이라는 전주부나 후렴부 사이에 여러 기원과 변종의 가사를 붙여 계 속 이어 부를 수 있고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노래이다. 

구한 말의 선교사 헐버트는 문경 새재 아리랑을 채보하여 영문 월간지 '한국소식' 1896년 2월 호에 실었는데, 이것이 아리랑을 서양음계로 처음 채보한 것이다.[8]

이때 헐버트는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쌀과 같은 존재라고 소개하였다.
1926년의 한국 최초의 장편 영화 〈아리랑〉의 주제 음악으로 쓰여 유명해졌다.[9][10]

아리랑은 최근 많은 방식으로 편곡되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 공훈예술가 최성환 편곡의 관현악판 편곡에서부터 시작해서 오마주 투 코리아(Homage to Korea)나 아리랑 랩소디(Arirang Rhapsody), 최근엔 아리랑 판타지(Arirang fantasy)등이 있다. 미국 칼빈 대학교 교수이며 미국 찬송가 편찬원이었던 버트 폴먼(Bert Frederick Polman)교수는 아리랑의 멜로디를 가지고 1990년 미국 찬송가 229장을 만들었다. 제목은 '그리스도, 당신의 충만하심'(Christ, You Are the Fullness)이다. 같은 편집위원인 에밀리 브 링크는 멜로디가 너무 아름다워서 12명의 전원 찬성으로 새로운 찬송가에 실리게 되었었다고 한다.[11] 

한국 찬송가에는 횃불트리니티 대학원의 김은희교수는 평화통일과 화해를 위하여 남북이 함께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고민하며 연구하던 중 8,000만 민족의 애가인, 아리랑 곡조 (HymnTune)에 의한 아리랑(Arirang) 찬송을 작시한 바 있다. 아울러 아리랑 오르간 환상곡 (Arirang Organ Fantasy)연주와 아리랑 찬송가를 통하여 ‘평화통일과 화해’의 방안을 모색하 였다.[12] 아리랑(Beautiful Daring)은 민족의 애가(哀歌)이며 통일 조국이 함께 부를 민족의 애 가이므로 비록 지난 70년간 사상과 이념이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왔지만 우리가 한 민족이며, 한 동포임을 확인하게 해주는 곡이라고 주장한다. 해외 동포와 교회, 심지어 세계교회까지 한반 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오랫동안 염원해 왔던 기도가 아리랑찬송을 통해 이루어지길 소망하며, 통일 후 민족의 애가, 아리랑을 통하여 주체사상으로 의식화 되어있는 북한주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개하는 도구가 되길 기대를 가지고 만들었다. [13] 

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에 수심도 많다.  

3.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저기 저 산이 백두산이라지 동지 섣달에도 꽃만 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리랑’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모든 종류의 아리랑 노래에서 변하지 않고 쓰이고 있는 후렴구가 아리랑입니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아리랑이라는 말은 특별한 뜻과 사연이 배어 있다는 뜻입니다.
아리랑이 후렴구라는 사실은 아리 랑이라는 말이 굉장히 중요한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대부 분의 후렴은 그 노래의 중요 메시지가 들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아리랑 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아리랑에는 한국인의 원형과 정체가 무엇인가를 알려 주는 아주 귀중한 비밀이 감 추어져 있습니다. 아리랑은 신민 한 민족의 키워드입니다. 아리랑은 원래 ‘알이랑’ 입니다. 알이랑-아리랑. 아리랑은 원래 ‘알’과 ‘이랑’으로 구분됩니다. ‘알’은 하나 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란 신명은 본래 ‘알’이었습니다. 알에 한이라는 관형사 를 붙이고, ‘알’ 뒤에 ‘님’이라는 존칭명사를 붙여서 ‘한알님’이라고 했습니다. 그것 이 한알림-하날님-하나님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알’은 하나님입니다. 히브리 어 ‘엘’ 아랍인의 ‘알아(알라)는 바로 이 ‘알’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알라는 아랍사 람들의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로써 아랍 그리스도인들도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창 조주 하나님을 뜻하는 인류 최초의 신명이 ‘알’이었는데 노아에 의해 홍수 이후의 세대로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알’은홍수 이전 최초의 인류 가계로부터 내려온 지상 최초의 낱말 중 하나 로 고대 창조주 유일신 하나님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이랑’은 함께라는 토씨로서 영어의 ‘with’와 같은 것입니다.

예로 갑돌이랑은, 갑순일랑은 갑돌이와 함께, 갑순이와 함께라는 뜻입니다,
언어학자들은 토씨는 6천년 이상 간다고 합니다.
아리랑을 다시 쓰면, 알이랑 알이랑 아라리요, 알이랑 고개를 넘어간다 입니다,
이것을 풀이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요,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간다가 되겠습니다,
(with God, with God, With God, just God. Accompany with God, I will cross mountains.)

그러므로 알이랑은 하나님과 함께라는 뜻입니다,
왜 ‘알’이 유일신 하나님을 뜻하 는 말이었을까요? ‘알’이 수 많은 생명을 낳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고개를 넘어간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고대 한민족이 이란 고원을 지나 파미르고원을 넘어, 천산산맥을 넘어 알타이 산맥을 넘어갔다는 말입니다, ‘파미 르’고원을 한자로 총령(蔥嶺)이라고 합니다, 총은 우리 먹는 파를 말하며, 령은 마 루를 말합니다, 한국말로 파 마루(파미르)입니다 지리학에서도 역시 파미르고원은 파가 많이 자생한다고 합니다. 파미르고원은 파마루로서 파가 많이 자생하는 산마 루이기에 파마루(파미르)고원인 것입니다, 파미르는 한국말 파마루에서 전음된 것입니다, 천산산맥도 영어로 Tien Shan으로 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적 연관성은 고대 한국인이 참으로 ‘파미르’고원을 지나 천산산맥을 넘 고 알타이 산맥을 넘어서 동방으로 이동해 왔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고고학적 증명 입니다. 알타이 고개를 넘어서 동쪽으로 조금 더 이동하면 바이칼(밝하알)호수가 나 옵니다. 한국인의 선조들은 이 바이칼호수를 거쳐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다가 마 침내 아시아 동녘에서 제일 높고 밝은 산인 한밝산(태백산-백두산)에 이르러 배달 나라를 세웠던 것입니다. 백두산 산정에 올라 창조주 하나님께 천제를 드린 후에 이 찬송가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리랑’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던 고 대 한국인이 이 땅에 오기까지 수 많은 산과 언덕과 고원들을 넘으면서 부른 찬송 가였던 것입니다, 

아리랑이 우리 겨레의 마음 속에 그토록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겨레의 역사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민족의 숨결이며 역사의 맥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세번째 가사인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은 누구를 뜻합니까? 문맥상 하 나님을 섬기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됩니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바로 앞의 가사는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간다는 뜻인데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것은 홍수 후 노아의 후손들인 에벨의 자손들 벨렉계와 욕단 계가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벨렉계가 방향을 전환해서 니므롯을 좇아 서쪽으로 떠 나는 벨렉계 형제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네번째 구절인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 대한 악담 이나 저주가 결단코 아닙니다, 만약 노래 가사가 ‘나를 버리고 가는 놈’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고 했다면 그것은 실제로 발에 병이 나라고 욕하는 것이 될 것입 니다, 그러나 가사는 ‘가시는 님’이라고 했으며, 십리도 못가서 발 병난다고 한 것 은 더 떠나 가지 못하고 나의 품으로 되돌아 와 달라는 연정을 노래한 것입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자들을 향해 다시 순수한 하나님신앙으로 되돌 아 올 것을 촉구하는 노래인 것입니다, 이렇게 겨레의 노래 아리랑에는 하나님을 위한 열정과 잃은 자를 위한 연민이 함께 깊이 베어 있습니다, 경천애인의 얼이 닮 긴 노래입니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가던 우리 조상들의 가슴에 한 가지 커다란 근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들인 서부로 향하여 갔던 배역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세상 근심과는 다른 것입니다, 알이랑의 2절은 바로 그것을 노래한 것입니 다, ‘청천 하늘에 잔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우리 조상은 셈의 자 손이기 때문에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아라랏 산에서 하나님께 첫 제사를 드렸듯이 산정에서의 제자를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육축을 끌고 산을 넘고 골짜기를 지나 물을 건너 동방으로 이동해 왔는데, 이러한 유목민들은 들판이나 산 기슭에서 밤을 많이 지새웁니다, 

밤에는 하늘에 별이 빛납니다, 그래서 청천 하늘에 잔별도 많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그 밤 하늘의 수 많은 별들만큼이나 그들의 가슴에 하나님을 버린 자들로 인해 수 심도 많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연을 간직한 알이랑 찬송은 욕단족속이 중앙 아시아와 시베리아를 거치면서 이곳 아시아에 오기까지 끊임없이 불리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겨레의 삶 가운데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3 절에 드디어 목적지인 백두산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기 저 산이 백두산이라지 동지 섣달에도 꽃만 핀다.’ 꿈에도 그리던 백두산을 만나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면서 개척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리랑은 홍수 후 인류의 최초의 찬송가입니다,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우 리 한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으뜸가는 코드입니다, 알이랑 민족 한국인 은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셈족의 거룩한 백성인 것입 니다, 

둘째로 창조주 유일신의 이름 ‘알’
쌀은 볏알(볍씨), 과실도 씨알에서 생기고, 하늘과 땅과 바다의 허다한 생물들이 또한 ‘알’에서 탄생합니다, 그래서 ‘알’은 모체요 근원이요 시작이란 뜻을 갖습니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도 ‘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요 근원이시요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은 그 ‘알’ 이 큰 모체이시고 큰 근원이시며 크다란 시원이시기에 ‘알’ 앞에 ‘큰’ 것을 뜻하는 ‘한’이라는 관 형사를 붙였습니다. 또한 ‘알’이 인격적 존재임으로 ‘알’ 뒤에 ‘님’이라는 존칭명사를 붙였습니다, 그래서 창조주 유일신을 ‘한알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 한알님이 하늘님, 하날님, 하나님으 로 변한 것입니다,     
                                                                                                               
더욱이 하늘은 둥글어서 ‘알’인데 하늘이라는 말도 처음에는 한알, 즉 큰 알(卵)이었습니다 한알-하날-하늘로 변한 것입니다, 만물을 내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큰 모체, 큰 근원과 같은 뜻으로서의 한알에서 하늘이라는 말의 기원이 있는 것입니다 

지난날의 우리 신화, 전설에서 한 시조의 탄생이 알에서의 탄생으로 이어지던 것을 기억할 것입 니다,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망아지가 알을 품고 있다가 뛰처 나간 그 알에서 태어났다고 합 니다, 짐승이나 사람이 알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하도 이상해서 갖다 버린다, 그러면 새와 짐승 들이 그 알을 보호하며 노래합니다, 그렇게 하늘의 보호를 받으며 태어난 것이 고주몽이기도 하 고 금와이기도 합니다, ‘알’이라는 것은 우리 조상에게 있어서 사물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홍수 전 사람들이 창조주 유일신 하나님을 알이라고 한 것은 여기에 있습 니다, 하나님을 뜻하는 성경 원어 ‘엘’은 바로 이 ‘알’에서 가지 쳐 나온 말입니다,

‘엘’은 다스리는 이, 강하신 분이란 뜻을 가지 신명으로 셈어에서 전반적으로 사용된 하나님 또 는 신성에 관한 호칭입니다, 엘은 바로 알의 변음입니다,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이 라고 불렀습니다, 이 ‘알’이라는 단어는 창조주 하나님을 뜻하는 일종의 원형언어로서 노아 홍 수 이후의 세대로 전승되었습니다. 노아는 홍수 후 방주가 머무른 산의 이름을 ‘하나님의 산’이 라는 뜻으로 ‘알뫼’(알산)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방주가 안착한 지역인 ‘알뫼’(아르메니아) 라는 지명이 나왔으며 그 산은 오늘날까지 안산 곧 ‘아르산’이라고 불리어집니다, 

창세기에는 방주가 아라랏 산에 정박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라랏 산은 터키 동부 고원지 대에 위치한 산인데 터키어로 ‘아르 다으’즉 아르 산’이라고 불립니다, 이 ‘아르’는 본래 ‘알’에서 나온 말입니다, 아라랏 산은 터키에서 가장 높은 해발 5137m의 ‘대 아르’와 해발 3985m의 ‘소 아르’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대아르는 일년 내내 눈으로 덮여 있는데 이 대아르가 창세기의 아라랏 산으로 추정됩니다, 

‘알’이란 단어는 고대로부터 대단히 소중한 말이어서 인명과 지명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노아 로부터 일신신앙을 계승한 셈은 자신으로부터 일신신앙을 물러 받은 셋째 아들의 이름을 ‘알밝 삿’ 이라고 지었습니다, 또한 알밝삿의 증손자로서 에벨로부터 셈계의 일신신앙을 계승한 욕단 은 자신의 맏아들 이름을 ‘알모닷’이라고 지었습니다, 더 나아가 알아랏, 알뫼니아, 올알, 알타 이, 알알해(아랄해), 알마타, 알타이, 알류우산 열도, 알라스카와 같은 지명들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최초 신명인 ‘알’에서 근거를 둔 말입니다, 

홍수 후 ‘알’은 주로 셈 계통의 민족들에게 그들의 신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습니다, 유대인은 ‘엘’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김), 브니엘(하나님의 얼굴), 엘 샤다 이(전능하신 하나님), 엘리야, 엘리사, 엘 엘리온(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알’이 고대 하나님의 이름이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사례는 ‘메아리’를 들 수 있습니다. ‘메아리’는 본래 말이 ‘뫼알이’입니다, 이 말은 ‘뫼의 알’ 즉 산 신을 말합니다, 산에 가서 야호하고 고함을 치면 야호, 야호, 야호, 라고 산이 있는 숫자만큼 되돌아 오는 소리를 우리 조상들은 산신의 소리로 연상했 던 것입니다, 그리고 ‘엘’, ‘일’, ‘얼’과 같은 말은 바로 이 ‘알’의 변음입니다, 

‘알’에서 가지 처 나온 말이 ‘얼’입니다, 얼은 ‘신(神)’ ‘넋’을 말합니다, 정신 나간 사람을 ‘얼간이’ 얼빠진 사람이라고 하며,얼떨떨함과 어리둥절은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는 상태이며, 얼뜨기는 다부지지 못한 사람, 얼버무림은 제대로 버무리지 못함을 나타냅니다, 얼은 정신을 뜻하는 우리 의 토박이 말입니다, 이 ‘얼’이라는 말이 ‘알’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메르어에서 도 인간의 정신을 뜻하는 말이 ‘a-la’입니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의 저자S. N. Krammer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수메르인은 동방에서 왔다고 합니다, 또한 문명의 창세기의 저자 노아 크레이머는  수메르라는 지명은 셈에서 유래되었다고 단정합니다, 

아마도 수메르인들은 대 홍수 후 동방으로 이동했던 욕단의 족속들로서 바이칼 호에서 역이동 하여 서쪽으로 다시 와 중앙아시아(실크로드)를 거쳐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들어가 문명을 일으 킨 것으로 추정합니다.  수메르인들은 머리털이 검고 후두가 편평하며 태음력을 사용했고, 한국 어와 어순이 같은 교착어를 썼습니다, 대영백과사전에는 수메르인의 교착어가 한국어와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수메르어와 한국어는 뜻과 음이 일치하는 단어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한국어의 광명을 뜻하는 ‘밝’은 BAR-BAR, 금은 GUSH-KIN인데 KIN은 누른, 금을 뜻합니다, 삼국시대 까지만 해도 우리 민족은 금을 ‘구지’라고 했습니다, 길은 GIR, 굴GUR, 구릉은 KUR, 노래는 NAR, 님(높은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은 NIM, 니므롯의 님도 역시 존칭이라고 합니다,

달은 DAL 대갈(머리)는 DAD-DIL, 장독은 DUG, 밭은 BAD, 빛은 BIR, 어른은 UR, 한 알은 AN-UR(가장 높다), 칼은 KAR, 엄마는 UMMA , 아빠는 ABBA, 아랍어의 아버지도 ABBA 아람어의 아버지도 ABBA입니다, 특히 수천년 동안 변화가 거의 없었던 인칭대명사나 지시 대명사인 이는 (I), 나는 NA, 너, 네는 NE, 그, 게는 GE로 발음되고 뜻도 같습니다, 수메르인은 우리 처럼 머리카락을 묶어 상투를 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뜩같은 형태의 씨름을 했으 며, 고구려, 신라, 가야 등에서 썼던 회도(칼)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미르고원이 원산 지인 파를 즐겨 먹었다고 합니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으로서 광명의 본원지를 이르는 말입니 다, 욕단은 알이랑 고개를 넘어 빛이 시작되는 동방의 새 땅, 곧 시베리아로부터 남 북만주에 이 르는 ‘극동 아시아’까지 아주 멀리 이동했던 것입니다, 만주 벌판이 연장된 시베리아는 우리 밝 달겨레의 역사의 고향입니다,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온 북방계 아시아인입니  다, 배달민족의 ‘배달’이라는 말은 ‘밝달’에서 나왔습니다, 배달겨레 할 때의 ‘배’의 뿌리도 ‘밝’ 입니다, 그리고 달’은  곧 ‘달’에서부터 온 것으로서 ‘아사달’할 때의 달인데 땅이라는 뜻입니다, 곧 양달은 양지를 말하며, 음달은 음지, 빗달은 비스듬한 땅을 말합니다,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 을 공경하던 천손민족 에벨의 혈통 욕단의 가계는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밝달-배달)을 찾아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하나님과 함께) 고개를(파미르고원-천산산맥-앞타이 산맥)을 넘어 쉼 없이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욕단족속은 이 ‘밝의 땅’에서 ‘한 밝산’을 발상지와 중심터로 삼아 한밝산과 그 변두리에 정착했 습니다, 그곳이 동방에서 가장 빛밝고 볕밝은 땅인데다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 은 셈의 후손인 그들이 산정제사를 드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역 사적 단군신화에 나오는 태백산 천손강림의 모티브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배달겨레의 성경상의 시조는 하나님의 사람 ‘욕단’입니다, ‘한 밝산’인 배달은 볕 밝고, 빛 밝아 사람이 먹는 풀, 나무, 과일, 새, 짐승 등이 자연히 많아서 아득한 옛날에는 그곳이 사람 살기에 가장 좋은 땅 이며 터였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이 배달을 낙원으로서 하나님이 점지하신 땅이라고 믿었습 니다, 욕단이 세운 나라는 가장(한) 환(桓)한 나라인 까닭에 이것을 그들은 하늘나라(한 나라), 신의 나라(신국=신시)라 하였습니다,  배달나라는 신시(神市)라 하였습니다.

참으로 배달나라는 신시 곧 신의 도성이었으니,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그것을 입증합니다, 우선 천국은 밝고 환합니다, 해이신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배달나라도 밝고 환합니다, 해가 뜨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천국에서 가장 높은 곧은 주님의 보좌인데, 수정처럼 맑은 생명수가 그곳에서 흘러 나와 생명수강을 이룹니다, 한편 밝달 나라에도 가장 높은 한 밝산 꼭 대기에는 천지가 있는데 거기에도 수정처럼 맑은 생수가 있어 강이 되어 흐르니, 그 물이 절반 은 동해로 두만강이 흐르고, 절반은 서해로 압록강이 흐릅니다, 게다가 천국 백성들의 옷은 모 조리 흰옷인데(계3:4, 7:9-10,19:14,마7:2, 28:3,행1:10,단7:9)인데 배달나라 백성들도 모 두 흰옷을 입고 삽니다, 그들은 백의 민족입니다,

더욱이 밝고 환한 천국에는 흰옷 입은 성도들이 보좌 앞에서 늘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밝고 환한 배달나라에서도 흰 옷입은 백의 민족이 백두산 산정에 올라 하늘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성대히 천제를 드립니다.  땅 위에 있는 배달나라의 광경이 천국의 모습과 아주 유사합니다. 욕단이 밝 달(밝은 땅)에 세운 한 밝은 배달나라는 지상에 있는 하늘나라의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 나라는 알이랑 정신, 곧 하나님 중심사상과 신본주의 기초 위에 세워진 신시 즉 하나님의 도 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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