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에 대한 설교 자료


마가복음 12:28-34

우리가 날마다 숨쉬고 활동하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우리들이 알 수 없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매일 자다 깨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 같이 그렇게 급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방향 없는 변화입니다. 그 앞에 우리들은 속수무책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변화의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입니다. 많은 미래 학자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하고 미래를 전망합니다만 그대로 되지 않습니다. 믿었던 과학자의 생명연구가 이기적인 명예욕 때문에 물거품이 되는가하면,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생각지 않았던 배신을 느끼고 돌아서서 울어야 하는 예기치 않은 인간사들이 마치 럭비공이 뛰는 것처럼 어느 방향으로 뛸는지 알 수 없고, 어느 방향으로 변화될는지 모르는 그런 세상,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을까요? 자세히 살피면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여러분 노래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옛날에는 노래를<소리>라고 했습니다. 혹은<가락>이라고 했습니다. 옛날 우리 어르신들은<소리>라고만 하면 그 안에 창(唱)도 있고, 판소리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엔 트로트, 재즈, 락앤롤, 트위스트, 랩 그리고 발라드, 테크노, 힙합, 이게 정말 노래인가 싶을 정도의 도무지 이해가 잘 안가는 그런 장르의 음악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어르신들께 죄송하지만 가끔씩은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만 그러나 흘깃 흘깃 들어보면 한 가지는 분명히 귀에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모든 노래를 통 털어 보면 주제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떠난 노래가 없습니다. 전부가 사랑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사랑, 기다리는 사랑, 갈구하는 사랑, 사랑이 주제가 됩니다. 그건 변함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은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향방 없이 변하고, 빨리 변한다할지라도 이 사랑 만큼은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복의 원천이 사랑에 있기 때문입니다.
<뉴욕 데일리 뉴스지>에 예방의학 전문가인[피터 한센(Peter Hansen)]박사가 이런 연구를 보도한바가 있습니다. 현대인의 건강을 위하여 우리가 흔히 말하는 건강식품, 규칙적인 운동, 담배, 술, 과로, 과식, 수면 부족 등 해로운 습관을 버리는 것을 50점으로 보고 남은 50점의 건강 관리법은<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하면 할수록 창조적인 힘이 있어 신체의 저항력이 강해지고 병균과 싸우는 자연의 힘이 배양된다고 합니다. 사랑의 힘은 때때로 상상을 뛰어넘기도 하고 가끔은 상식을 뛰어넘기도 합니다.
<하버드대학교>심리학 교수팀이 실험을 하였습니다. 인도의 빈민가에서 사랑의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테레사 수녀>가 가난한 사람들을 병원에서 도와주는 모습을 찍은 기록 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그 학생들의<감기 바이러스와 싸우는 저항력>을 검사하고, 일주일 후 같은 학생들에게<나치 독일>이 유태인을 학살하는 잔인한 기록 영화를 보여주고 다시 저항력을 조사했답니다. 그랬더니 테레사 수녀의 영화를 본 뒤에 감기 바이러스와 싸우는 저항력의 수치가 훨씬 높게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도 하는 강한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왜 이리 시끄럽습니까? 결국 세상의 모든 문제는 사랑의 문제입니다. 먼저는 사랑이 없어서 문제입니다. 아예 사랑할 마음조차 없습니다. 둘째는 사랑이 있긴 있는데 병들어서 문제입니다. 또 사랑에 거짓이 문제입니다. 사랑에 속았습니다. 거짓된 사랑이 우리 마음을 실망하게 합니다. 저마다 사랑을 외치지만 그게 사랑이 아닙니다. 이렇게 때로는 스스로 속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무지가 문제입니다.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못합니다. 또 하나는 문제는 사랑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분명히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느끼질 못하고 그래서 사랑을 주지도 못하는 사랑의 의사소통이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단절됩니다. 결국 이것은 불신의 문제입니다. 분명히 그는 사랑하고 있고 나는 사랑 받고 있으면서 내가 그 사랑을 믿지 않으면 사랑을 모르게 되고, 사랑을 모르면 감격이 없고, 감격 없는 사랑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에는 세 단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는<관심의 단계>입니다. 사실은 관심도 대단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쥐를 키우는데 있어서 우유병만 빨려서 키운 쥐는 평균 600일을 살고, 그릇에 우유를 부어놓고 사람이 손으로 우유를 직접 먹이며 사랑의 손으로 쓰다듬어 주면서 키운 쥐는 훨씬 더 오래 사는데 평균 950일을 살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할 대상에 대해 거저 관심만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아름다운 사랑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헌신의 단계>입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시간을 바쳐 사랑합니다. 그를 위해서 선물을 준비하고 그를 위해서 시간을 구별하여 둡니다. 마지막 셋째는<희생의 단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치겠다는 자세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른 응답이 아니라 오직 그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내가 됩니다. 이 사랑에 이르면 무슨 일이든지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랑이 됩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강한 사랑이 됩니다.
어느 날[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을 아주 싫어하던 한 부인이 처칠에게 이렇게 거친 말을 했습니다.“윈스턴, 만일 당신이 나의 남편이었다면 나는 당신의 차 속에 양잿물을 넣었을 것이오.”이 말을 들은 윈스턴이 얼마나 멋있게 받아 넘겼던지 참 감동적입니다.“부인, 만일 당신이 나의 아내였다면, 나는 그 양잿물을 마셨을 것입니다.”나를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내가 희생하며 그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사랑은 이런 힘을 가진 능력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단계에 따라서 결과도 달라집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 사랑은 어느 단계까지 와 있습니까? 아직도 그저 막연한<관심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헌신의 단계>,<희생의 단계>까지 와 있는 수준 높은 사랑을 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을 받은 우리들이 마땅히 드려야 할 사랑은 어떤 사랑이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복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지만 맘에도 사랑이 없고 행동에도 사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가장 강한 사랑의 모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직 자기 사랑입니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 먼저가 아닙니다. 성경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앨버트 슈바이처]는 인간에게는 행복을 위한 세 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할 일(Something to Do)이 있어야 인간은 행복하고,
둘째는 바라는 것(Something to Hope)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사랑할 대상(Something to Love)이 있을 때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한 사랑의 대상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도 큰 불행이라고 말합니다만 그 보다 더 큰 불행은 내가 사랑할 대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곧 내 사랑을 받아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나를 절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행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그 사랑의 첫 번째 대상이 하나님임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 중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바로 오늘 성경 말씀이 이 사랑의 시작을 말합니다. 2006년도 교회의 표어를<하나님 사랑, 교회 봉사, 이웃 섬김>이라고 정했는데 오늘 새해 첫 주일에 그 첫 번째인 하나님 사랑에 대한 말씀으로 한 해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는?인간은 알고 있는 것에 의하여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것에 따라서 평가되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면 그 사랑하는 것을 따라가게 되고, 또한 사랑하는 것에 모든 것을 바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사랑하느냐가 그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의 욕심과 자기탐욕에 빠집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 때문에 죄를 짓게 되고, 명예와 권세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위해서라면 불법과 비리에라도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사랑해야 합니까? 오늘 말씀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출발이어야 합니다.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신앙생활 한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입니다. 교회는 다닌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는다면 거짓 신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기록한 마22장에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물었다고 되어 있습니다.?선생님이여,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그러자 예수님께서?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사랑에 대한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해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내 사랑을 확인하시고 출발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첫 걸음을 어떻게 내 딛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매사를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더군다나 신앙의 출발을 어디로부터 출발하느냐가 한 해를 성공적으로 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가름합니다. 부디 오늘 우리는 새해를 시작하는 이 첫걸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의 결심으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교회를 봉사하고 이웃을 섬길 줄 아는 신앙의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실수같은 하나님의 사랑  (에스더 6:1~3, 8:1~2)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보면 분명히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왜 이런 일이 생기도록 내버려두시나 분명히 이것은 하나님이 실수하셨거나 무관심하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지나놓고 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더 깊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 세밀하신 하나님의 사랑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은 세밀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대한 태도를 보아서 세 종류의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가 우주만물 즉 해와 달과 수억 만 개의 별들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조물주 같은 하나님은 없다고, 하는 무신론자가 있습니다. 둘째로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존재하신다고 믿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이 계실 뿐이라고 하는 약간의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위대하셔서 해와 달과 수억만 개의 별들을 창조하실 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우리의 머리털 하나라도 다 세시는 무소불능하시고(omnipotent) 무소부지하시고(omniscient) 무소부재하신(omnipresent) 하나님이라 믿는 신앙입니다. 이 세밀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참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바다와 육지를 지으시고 해와 달과 수억 만 개의 별들을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지요. 어떻게 빅뱅에 의해서 우연히 생긴 해와 달과 별들이 질서 있게 운행될 수 있습니까? 전에도 설명드렸지만 단 5분도 늦지 않고 24시간에 자전하고 365일에 공전하고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조금만 더 가까우면 인간과 생물은 다 죽을 것이고 조금만 더 멀면 우리는 다 얼어 죽고 맙니다. 또 골고루 햇빛을 비치게 하려고 지구가 23.5°가 기울어져서 회전하니까 우리가 살지 기울기가 10°만 달라도 한쪽은 타 죽고 한쪽은 얼어 죽습니다. 또 달의 인력으로 바다의 조수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니까 생물이 살 수가 있지 만일 물이 조용히 가만있으면 물이 썩어서 생물이 살 수가 없고 인력이 너무 강하면 지구가 물로 다 덮여 버리고 말 것입니다. 지구가 돌면서도 바닷물이 쏟아지지도 않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 시계도 설계하고 만든 분이 있는 것같이, 이 예배당을 설계하고 건축한 사람이 있듯이, 해와 달과 모든 별들을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위대하신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까지 주관하셔서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고 그 많은 머리칼 하나 떨어지는 것까지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9절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  
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또 30~31절에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으시고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설명합니다.
  시편 139편 1~4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7~10절에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앉고 일어서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이 다 알고 계심을 믿어야 참된 신앙의 소유자입니다.
  예수님은 돈은 많지만 갈급한 심령을 가지고 뽕나무에 올라가 기다리는 삭개오의 이름까지 아시고 찾아오신 분이며 남편을 여섯 번이나 갈아 살며 외롭고 왕따당한 수가성 여인이 물 길러 올 것을 아시는 세밀하고 자비로우신 주님이십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벼슬이 높고 막강한 권력과 돈을 많이 가진 권세자들이나 부자는 별로 없고 가난하고 병들고 죄에 깊이 빠진 사람들과 어린아이들이 가까이 늘 있었습니다. 세밀하신 주님이 그들의 요구와 필요를 아시고 돌보아주신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잘난 자식들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불구자, 정박아 자식의 손톱과 발톱 하나에까지 세밀하게 관심을 가지고 돌보는 것과 같습니다. 세밀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실수 같은 하나님의 사랑

  어떤 때 하나님은 꼭 실수하셨거나 깜빡 잘못하신 것처럼 보이는 때가 있지만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세밀하신 사랑임을 알게 됩니다. 고아와 같은 에스더를 잘 키워준 모르드개는 말씀에 순종하며 목숨을 걸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믿음의 용사입니다.
  당시 파사와 메데의 큰 나라를 통치하는 아하수에로 왕 밑에 둘째로 큰 권세와 능력을 가진 하만이란 교만한 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수레를 타고 거리를 지나갈 때에는 온 국민이 엎드려 절을 했는데 신앙이 독실한 모르드개만은 우상이나 사람 앞에는 머리 숙여 절하지 않는다는 굳은 믿음으로 고개를 뻣뻣이 든 채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안 하만이 모르드개가 유대인인 줄 알고 모르드개만 아니라 온 유대 백성을 하루아침에 다 몰살시키려는 계략을 가지고 왕의 조서에 어인까지 받아놓았습니다. 이 때에 온 유대 백성이 모르드개 한 놈 때문에 우리가 멸절당하게 되었다고 얼마나 원망하고 불평하고 통곡을 했겠습니까?
  오늘날 남다른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살려고 하면 온갖 핍밥과 비난과 훼방을 받고 원망도 듣는 법입니다. 에스더 4장 3절에 보면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고 했으니 모르드개 한 놈 때문에 우리가 다 몰살당하게 되었다고, 얼마나 욕하고 원망하고 죽일 듯이 날뛰었겠습니까? 믿음으로 살고 말씀대로 살 때 이런 핍박과 원망을 들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전에 왕이 모살당할 뻔했을 그것을 발견하고 즉시 고발하여 왕이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에스더 2장 21~23절에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 지킨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아하수에로 왕을 원한하여 모살하려 하거늘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고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고한지라 사실하여 실정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의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큰 공을 세운 모르드개에게 아무런 상을 주지 않았으니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실수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큰 사랑의 섭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더 6장 1~2절에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이어 3절에 “왕이 가로되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시신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않은 것도 하나님의 세밀하신 섭리요, 공을 세웠으나 보상을 받지 못하고 지나간 것도 바로 유대 민족이 위기를 당했을 때 대 역전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세밀하신 계획과 사랑이었습니다.
  에스더 6장 4절에 “왕이 가로되 누가 뜰에 있느냐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 뜰에 이른지라”고 했습니다. 왕이 묻기를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6절)라고 하니까 하만이 왕후의 만찬에 초청도 받았던 터라 “나밖에 누가 또 있으랴?”라고 생각하고, 7절에 “…왕께서 사람을 존귀케 하려면 왕의 입으시는 왕복과 왕의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취하고 그 왕복과 말을 왕의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붙여서…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왕명이 내려졌는데 그것은 자기가 아니라, 자기가 50규빗 되는 장대에 매달아 죽이려던 모르드개였습니다. 왕의 말에 자기가 제안한 대로 모르드개를 태우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외쳤습니다. 그날 밤 잔치에 다시 초대 받았는데 에스더가 나와 내 민족을 도륙하고 진멸하려는 자가 바로 이 하만이라고 할 때 끌려 나가 모르드개를 죽이려던 장대에 자기가 달려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란 말이 있듯이 하나님은 이 때를 위하여 모르드개가 공을 세웠으나 포상도 못 받았고 왕이 밤에 잠도 오지 않았고 그 때문에 역사책을 읽다가 이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수같이 보였지만 다 하나님의 세밀하신 사랑의 섭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밀하신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해와 달과 수억 만 개의 별들을 지으시고 운행하실 뿐 아니라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까지 간섭하시고 60억 인구의 머리털도 다 알고 세시는 무소부지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실수하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섭리임을 믿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팔려 간 것이나 억울하게 감옥살이 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안 계시거나 하나님이 실수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술 맡은 관원의 꿈을 해몽해주면서 나가거든 나를 변호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도 그 사람이 까맣게 잊은 것도 도무지 하나님이 안 계시거나 무관심하신 것 또는 실수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요셉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국무총리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또 꿈 해몽 받은 사람이 나가서 잊지 않고 즉시 왕께 고하여 출감했더라면 애굽의 바로 왕의 꿈도 해몽하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애굽의 국무총리도 못 되고 자기 민족과 애굽 백성을 구원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수처럼 보일지라도 세밀하신 하나님의 사랑임을 믿는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며 신앙생활을 바로 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은 세밀하셔서 세밀한 부분까지 간섭하시고 때론 징계하시고 때로는 칭찬하시고 축복도 하십니다. 그러나 되는 대로 적당히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세밀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느끼고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대강대강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세밀한 사랑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3. 세밀하신 사랑을 받으려면

  ① 먼저 거듭 나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목자장 되시는 주님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고,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죄가 하나도 없고 완전히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그 순간부터 되는 것입니다.

  ② 세밀한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으로만 믿지 말고 섬세하시고 세밀하셔서 우리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아시는 무소부지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또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말씀에 비추어서 행동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도 적당히 거짓말하고 얼렁뚱땅 넘어가지 말고 깨끗한 양심을 지키며 생활해야 합니다.
  어느 교수님이 한국에서는 십일조도 안 하고 기도생활도 안 했는데 미국에 가서 어떻게 은혜를 받고 십일조생활을 철저히 했습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이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신 것 같았는데 십일조생활을 철저히 한 다음부터 하나님이 가까이 계셔서 피부로 느낄 정도로 체험적인 생활을 한다고 간증하더랍니다. 새벽기도 한 번만 빠져도 하나님이 징계하심을 느끼고 주일성수 한 번 안 해도 사랑의 채찍을 맞고 십일조 한 번 떼어먹어도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교통사고로 손해를 보는 체험을 간증하는 이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동전 두 닢을 관심 깊게 보시는 분입니다. 세밀하게 신앙생활해야 하나님의 세밀한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③ 기도해본 후에 결정하십시오
  무슨 일이나 기도해본 후에 결정하고 행동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성군 다윗은 전쟁할 때에도 “가리이까, 말리이까?”, 또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고 물어본 후에 전쟁에 나갔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해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신명기 4장 7절에 “하나님은 기도할 때마다 가까이 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기도생활을 안 하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실수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어도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깊고 넓은 사랑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성령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사도행전 2:1-4)


지난 주일 성령 강림절을 맞아 방지일 목사님을 모시고 은혜와 감동이 넘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성령과 말씀과 기도에 사로잡혔던 분이었기 때문에 철저한 회개와 부흥운동을 일으키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진정한 부흥운동은 말씀 운동이고 성령 운동이고 기도 운동이고 회개운동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방지일 목사님은 "영의 지배를 받아야 내 주장, 내 주관, 내 주체가 없어진다"고 말씀했습니다. "영의 지배를 받아야 죄를 회개하게 되고 예수를 증거하게 되고 바른 신앙인이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살길도 “영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날 한국교회는 성령과 말씀과 기도와 회개에 사로잡히는 것보다는 음악과 프로그램 등 인간적인 수단 방법에 치중하고 있고 정서와 감정에 치우치고 있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조정하려고 한다는 경고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성령강림절은 지났지만 오늘 아침에도 성령에 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오늘 아침에 드리려고 하는 말씀은 2년 전인 2005년 4월 24일 주일에 제가 설교한 말씀입니다. 2년 전에 한 저의 설교를 다시 읽어보았는데 다시 한 번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년 전에는 “성령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성령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하나님께서는 또한 자기의 백성들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의 신인 성령님을 자기의 백성들에게 보내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요엘2:18,23).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
하나님께서 세상과 자기 백성들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성령님을 보내주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는 이렇게 쉽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성이 엄마 아빠가 지성이를 사랑해서 많은 것을 해 주었습니다. 영양분이 많은 음식도 먹여 주었고, 좋은 약도 먹여 주었고, 좋은 장난감도 사 주었고, 포근한 이불도 만들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성이 엄마 아빠가 지성에게 준 가장 큰 사랑의 선물은 아빠의 간을 떼어주고 엄마의 눈물을 쏟아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다 만들어주셨지만, 우리들에게 주신 가장 큰 사랑의 선물은 하나님 자신의 몸의 일부를 떼어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보내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피와 살을 떼어서 주셨다는 말씀이고, 성령님을 보내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신과 혼의 일부를 떼어서 주셨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성령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설교를 합니다. 아들과 성령님을 보내주신 이유와 목적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지성이 아빠와 엄마가 간을 떼어주고 눈물을 쏟아준 것은 지성이를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고 성령님을 보내신 것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에스겔 37장은 죄와 허물로 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마른 뼈들의 모습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뼈들이 살아난 것은 말씀과 생기 즉 하나님의 아들과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37:2-10). 하나님께서 마른 뼈들을 살리신 두 가지 방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말씀이었고 다른 하나는 생기였습니다.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생기는 성령님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들과 성령님을 우리들에게 보내신 목적은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들과 성령은 우리들을 살리십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엡2:1,4,5).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갈수 없느니라”(요3:5).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3:6). 성령은 죽은 자들을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마른 뼈들 위에 말씀과 성령이 임했을 때 살아 일어서서 큰 군대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마가의 다락 방에서 기도하던 120명 위에 성령이 바람과 같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행2:2). 여기 바람은 생기를 가리키는데 생기는 살리는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과 성령님을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첫째 이유와 목적은 죽었던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입니다.

둘째는 우리들을 만남과 교제의 존재들로 만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지성이 아빠와 엄마가 간을 떼어주고 눈물을 쏟아 주면서 지성이를 살린 목적은 지성이가 엄마 아빠와 말을 주고 받고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혜성이와 말을 주고 받고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말을 주고 받고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커 가면서 친구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제하면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은 만남과 교제의 존재입니다. 사람은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죄는 생명을 앗아가고 죄는 만남과 교제도 앗아 갑니다. 그래서 사람이 불행해집니다. 인사도 하지 않고 만나지도 않고 교제도 하지 않는 사람은 영이 죽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이 오셔서 하시는 중요한 일은 우리 죄인들로 하여금 만남과 교제의 삶을 살게 하시는 일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고 이웃과 교제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게 되고 이웃과 친밀하게 교제하게 됩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했을 때 저희가 모두 방언을 했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 여기 방언은 하나님과 친밀하게 말하는 것을 의미하고 사람들과 친밀하게 말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성령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 아바지’ 라고 부르면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말하게 하고, 이웃들을 형제 자매라고 부르면서 이웃들과 친밀하게 말을 하게 합니다. 말은 만남과 교제의 가장 중요한 수단입니다.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함께 모여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과 성령님을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둘째 이유와 목적은 말도 인사도 할 줄 몰랐던 우리들을 말도 하고 인사도 하고 교제도 하는 만남과 교제의 존재들로 만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입니다.

셋째는 우리들을 주의 일을 하는 봉사자들로 만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지성이 아빠와 엄마가 간을 떼어주고 눈물을 쏟아 주면서 지성이를 살린 또 하나의 목적은 지성이가 엄마 아빠와 말과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뿐만 아니라 커서 좋은 일을 하는 훌륭한 일꾼으로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은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일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주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봉사하게 하십니다. "성령으로 봉사하며"(빌3:3) 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오직 성련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은사들을 주시는데 그 모든 은사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주님의 일을 하게 하는 은사들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주시나니”(고전12:8-10).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6-8).
성령을 받은 자는 열심히 주의 일을 합니다.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하다가” 이렇게 찬송을 부르면서 열심히 주의 일을 합니다. 특히 교제와 기도와 봉사와 전도의 일을 열심히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은 열심히 교제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전도하면서 주의 일을 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2-47).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들은 자기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구제하는 일에 힘을 썼고 전도하는 일에 힘을 썼고 선교하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성령님은 이기적이고 무능하고 게으른 우리들로 하여금 열심히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게 하고 그래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하십니다. 물질과 시간에 인색한 사람은 주님과 거리가 먼 사람이고 성령님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우리 조선의 초대교회 신앙의 선배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자기들의 몸은 돌보지 않고 자기들의 몸이 부서지고 닳도록 주님의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이 그랬고 최권능 목사님이 그랬고 윤함애 사모님이 그랬습니다. 윤함애 사모는 기도의 여인이었고 사랑과 봉사의 여인이었습니다. 최봉석 목사는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과 성령님을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셋째 이유와 목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기적이고 무능하고 게으른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일꾼들로 만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아들과 성령님을 우리들에게 보내어주셨습니다. 첫째는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둘째는 우리들을 만남과 교제의 사람들로 만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셋째는 우리들을 봉사하며 사는 주님의 일꾼들로 만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의 일부를 떼어주시면서 까지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진실하고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모하고 예수님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을 사모하고 성령님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생명이 충만하고, 교제가 충만하고, 봉사가 충만한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일곱 집사님들이 성령이 충만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이 모두 성령님으로 충만하기 바랍니다. 사도들이 성령 충만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 교역자들과 장로님들이 모두 성령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기 전에 영화 이야기를 간단히 하겠습니다. 최근에 깐느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유명해진 영화 '밀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여 배우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 영화를 본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 아침 우연히 CBS 인터넷 뉴스에 실린 '밀양'이라는 영화에 대한 어느 사람의 해설을 읽고 그 해설에 공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해설의 일부를 여러분들에게 그대로 소개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유괴범에게 아들까지 살해당한 여주인공 '신애'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그 힘으로 고통을 이겨가던 중 어느 날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겠다며 범인을 면회 가겠다고 나선다. 신애는 자신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었고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범인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듣는다. 범인은 자신은 감옥에 와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 하나님께 회개하고 이미 용서를 받았으며 지금은 너무도 마음이 평안하다고 말한다. 순간 신애의 얼굴에 당혹한 기색이 역력해진다. ‘그래요?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어요?’ 범인과의 면회를 마치고 나온 신애는 주차장에서 기절한다. 결국 신애는 그와 같은 살인범의 말에 충격을 받고 기독교의 신앙을 버린다.” 영화에 대한 분석적 해설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습니다.
“신애와 범인이 구원과 용서를 말하지만 정작 그들의 삶이 비극인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구원과 용서가 허상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구원과 용서가 허상인 까닭은 그것이 허영과 탐욕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애의 비극의 원천은 허영이다. 아들의 죽음은 신애 자신의 허영이 부른 비극인 셈이다. 신애의 허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신애는 상처받은 자들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한 후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며 믿음생활을 한다. 그녀는 예전에는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더 이상 고통 가운데 통곡하지 않으며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모두가 그녀의 믿음에 감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그녀는 진정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고 알게 되었던 것일까? 그녀는 진정 그 믿음의 힘으로 범인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눈에 보이는 세계에 붙잡혀 있을 뿐 진정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알지 못했다. 신애는 용서를 보여주려 했다. 범인에게 그리고 교인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범인을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허영이란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다. 돈이 없으면서도 돈 많은 것처럼 보이고자 사지도 못할 땅을 보러 다녔던 것처럼 신애의 용서에는 영적인 허영이 감추어져 있다. 자신이 범인을 용서하는 모습을 굳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영적 허영의 덫이 놓여있다."
저는 이와 같은 영화에 대한 해설을 읽으면서 이창동 감독이나 상당수의 불신자들의 눈에 비친 오늘날 한국교회의 신자들의 모습이 ‘허상’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심각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창동 감독이나 상당수의 불신자들이 용서와 구원을 전하는 기독교 복음의 깊은 내용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창동 감독이나 상당수의 불신자들의 눈에 비친 오늘날 한국교회의 신자들의 모습이 허상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심각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얼마 전에 옥한흠 목사는 오늘의 한국교회는 ‘허수’ ‘허세’ ‘허상’ 등 `3허(虛)'에 사로잡혀 있다고 분석한 일도 있었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 안에는 ‘허영’과 ‘허상’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 안에도 이와 같은 ‘허영’과 ‘허상’이 적지 않게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몸의 일부를 떼어서 우리들에게 주신 중요한 이유는 우리들에게서 이와 같은 모든 종교적인 ‘허영’과 ‘허상’을 제거하시고 우리들을 하나님 닮은 진실하고 겸손하고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로 만들어주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날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 먹어야 하고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마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충만 성령님 충만 그리고 하나님 충만한 삶, 하나님 닮은 진실하고 겸손하고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의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5:1~8)


사도 바울은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여기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지은 죄를 깨끗이 씻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새로운 관계가 바로 샬롬, 화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탕자가 아니라 아들로 맞이합니다. 아들의 과거는 전혀 묻지 않습니다. 다만 아들이 돌아왔기 때문에 기쁘게 맞이합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2~24) 아버지의 말에는 탕자라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예수를 구주로 믿고 돌아온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인정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믿었으면 또한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나를 바로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나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계속 나 자신을 괴롭히며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믿음이 좋은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는 무엇보다 자신과의 화평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화평을 누리자!”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화평을 즐기자는 말입니다. 화평이란 그냥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즐겨야 합니다. 돈도 갖고 있다고 해서 다 내 것입니까? 내가 써야 내 것입니다. 멋진 집을 구입해서 평생 남에게 빌려 줬다면 그 집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집에서 하루라도 살면서 즐겨야 비로소 내 집입니다.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평은 즐겨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화평을 잃어버린 후에 비로소 그 화평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다 깨진 후에 뒤늦게 후회하지 않습니까? 때문에 먼저 화평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졌는가 하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화평이 주어졌습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로 막힌 담을 깨뜨리셨습니다. 얼마나 비싼 댓가를 치렀습니까?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화평을 즐길 수 있습니다. 너무 쉽게 주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화평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습니다. 모르면 즐거움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즐거움은 깨닫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치를 깨닫는 순간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화평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초로 모든 것을 볼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불화한 상태에서 보는 것과 화평한 상태에서 보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 불화한 상태에서 이웃을 보면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화평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책망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모든 것을 화평한 상태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면서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먼 미래까지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래의 약속을 바라보며 즐거워한다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영원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 어떻게 환난 중에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말씀 속에 그 비밀이 있습니다. “앎이로다!” 즉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기 때문에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어떤 환난이 있어도 믿음의 사람은 그 의미를 깨달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환난으로 인한 고통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깨닫지 못합니다. 매를 맞을 때 나를 사랑해서 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고맙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를 미워해서 때린다고 생각하면 상황은 정반대가 됩니다. 같은 매라도 하나님과 화평을 즐기는 상태에서 맞으면 그 매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 것 같으면 더 이상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우리가 환난 중에 고통을 느끼는 것은 꼭 저주받은 것 같고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시는 것이라고 믿으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과수원을 경영하는 농부는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는 봄에 그 가지를 잘라 줍니다. 잘라 주어야 제대로 자랍니다. 가지를 자를 때 그 나무가 미워서 자릅니까? 우리도 가지를 잘라내는 고통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아픔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만 있으면 그 아픔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과 믿어지는 것의 차이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믿는 것이란 내가 믿으려고 애쓰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반면에 믿어지는 것은 성령이 도우셔서 저절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 중 하나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그는 믿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자기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비참하게 죽어 가고 있는 한 청년을 그는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았으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가는 자를 어떻게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때문에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어지는 것도 성령이 역사하셔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과 사랑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오히려 사랑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사랑하려고 할 때 무엇을 먼저 생각합니까? 상대방의 반응을 생각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상대방이 기대한 것과 다른 반응을 보이면 오히려 그 사랑이 변하여 미움이 되지 않습니까? 힘쓰고 애쓰는 것으로는 참 사랑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형제를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백 구십 번의 용서란 우리의 의지만 가지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십니다. 저절로 사랑하게 되는 신비한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진정한 용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의 선물로 우리 마음에 부어지면 우리의 삶은 참으로 자유롭고 또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사랑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훗날 사랑의 사도라고 일컬어진 요한에게 주목하게 됩니다. 그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들어가려고 하실 때 그 마을 사람들이 길을 막고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요한이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 사랑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랑이 부어지자 그는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진 마음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죄와 더불어 싸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우리 마음대로 됩니까? 율법이 없어서 우리가 죄를 짓습니까? 법으로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죄의 유혹은 더 달콤하게 다가오지 않습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결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비로소 죄의 종 노릇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죄를 이기게 되는 것은 모두 다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부어져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셨는데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할 까닭이 무엇입니까? 나 자신과 더불어 먼저 화평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놀라운 변화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망 중에 우리가 기뻐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의 힘이나 능력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가운데 임하신 충만한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의 선물로 우리의 마음에 부어지면 우리의 삶은 참으로 자유롭고 또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충만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죄와 더불어 싸워 이길 뿐 아니라 십자가 위에 나타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땅끝까지 전하고 증거하는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사무엘하 12장 15-25절)

요새 암에 걸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암 전문의 원종수 권사님의 말에 의하면 암이 자라 자각 증상이 생길 때까지는 7년이 걸리고, 마지막 1년에 암이 증상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암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분명한 원인은 담배라고 합니다. 담배 피면 암 걸릴 확률이 25배가 되고, 거기에 술을 하면 4배가 늘어나서 술 담배 하면 보통 사람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100배가 된다고 합니다.

담배 다음으로 지적되는 암의 원인으로 공해, 합성세제, 농약 등이 있지만 그런 경우에는 2-3배가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처럼 보통 사람에게 생기는 하루 6-7개의 암세포와 술 담배를 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하루 600-700개의 암세포는 사람 몸에 있는 경찰세포(surveillance cell)가 잡아먹는데,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와 스트레스가 있으면 그 마음의 상처와 스트레스로 인해 경찰세포의 활동이 줄고 결국 암에 걸리게 된다고 합니다.

그처럼 사람이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질병이 생길 확률은 현저하게 높아집니다. 죄는 질병을 초래하고, 거의 모든 불행도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죄가 있으면 마음의 평안도 없고, 능력 있는 삶도 살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거룩한 만큼 능력이 나타납니다. 어떤 분은 산에 가야 능력이 생기는 줄 아는데 그것은 오해입니다. 사람은 거룩한 만큼 능력이 생깁니다. 우리의 기도도 거룩한 만큼 능력 있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거룩한 삶의 능력을 잘 체험하지 못합니까? 그것은 오해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거룩한 사람을 유머도 없고, 잘 웃지도 않고, 웃어도 절대 이빨을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항상 낮게 깔고 말하는 사람인 줄 압니다. 그런 분들은 “주여!”라는 말이 입에 배였습니다. 길을 가다 발을 삐끗해도 “주여!”라고 하고, 밥 먹다 돌을 씹어도 “주여!”라고 합니다. 전화를 하면 “여보세요!”라고 하지 않고 목소리를 낮게 깔고 “할렐루야!”라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거룩한 사람을 존경하기보다는 꽉 막힌 지긋지긋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자라면서 “나는 커서 절대 거룩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함은 겉모양이나 옷차림과는 상관없습니다. 어떤 분은 분명히 거룩한 분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참 유머도 많고 얼마나 잘 웃는지 모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함은 내면이 아름다운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아름답게 내면을 가꾸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삶도 아름답게 만드실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

오늘 본문은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생긴 불륜의 아들이 병에 걸려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고통을 다윗이 잘 극복해서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주셨고, 본문 2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이름을 여디디야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여디디야란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은 어떤 성도를 사랑하실까요?

1. 진실하게 회개하는 성도

본문을 보면 죄의 대가가 아주 비싸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다윗이 자신의 불륜에 대해 회개했을 때 13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회개를 받아주셨지만 불륜의 자식은 하나님께서 치셔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처럼 죄는 우리가 진실로 회개하면 언제나 사함 받을 수 있지만 죄의 열매는 반드시 주어지게 됩니다. 그처럼 죄의 대가는 비싸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로 살면서도 죄를 힘써 멀리해야 합니다.

어느 날, 미국의 한 주정뱅이 도박꾼이 근처에 살던 조나단 에드워드란 유명한 목사님에게 와서 간밤에 꾼 꿈을 말해주었습니다. 그 꿈에서 천사가 나타나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1년 후에 너를 불러가겠다고 했다면서 그날부터 그는 술과 도박을 끊고, 교회를 잘 다녔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 후에 다시 술과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은 그의 꿈을 말하며 권면했지만 그는 더욱 교회에서 멀어져 갔고 마침내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그 꿈은 개꿈이었어요. 그런 꿈에 왜 연연합니까?”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술에 만취되어 계단을 내려오다 실족해 목이 꺾여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목사님이 일기책을 찾아보니까 그날이 꼭 1년 전 그가 자신을 찾아온 날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다 그렇게 벌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죄는 반드시 뼈아픈 대가를 지불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어떻게 죄를 멀리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완벽하게 살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방법은 없고, 중요한 것은 진실하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의 대가만 비싼 것이 아니라 진실한 회개의 대가도 비싸고, 순종과 헌신의 대가도 비쌉니다. 우리가 진실하게 회개하고 힘써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면 그만큼 복된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어느 한 기도제목이라도 우리는 잊을지라도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가장 적절하게 최선의 모습으로 응답해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우리가 교회에 나온 발걸음 하나라도 기억하시고, 교회에 떨어진 종이 한 장 주운 것과 이웃에게 냉수 한 그릇 주신 것도 하나님은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한 대로 갚아주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2. 최선을 다하는 성도

다윗은 자신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아들이 죽어 갈 때에 어떻게 합니까?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이 구절에서 “안에 들어가서”라는 말은 골방 안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그는 골방 안으로 들어가서 떳떳하게 머리를 들어 기도하지 못하고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애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너무 애절하게 기도하니까 왕의 건강을 염려해 원로 신하들이 다윗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윗은 듣지도 않고 먹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예배도 최선을 다하고, 기도도 최선을 다하고, 예배 후에 세상에 나가 사는 것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1960년대 어느 날, 한 신학생이 섬기는 시골 교회에서 한분이 소천했습니다. 그 장례 일로 학기말 시험공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예배를 마치고 야간열차를 타고 아침에 신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첫 과목시험은 ‘성령론’이었는데, 시험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그런데 책을 여니까 너무 피곤해서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절망한 나머지 전도사님은 어차피 책은 눈에 안 들어오니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매달리자고 생각하고 기도실로 갔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의 처지를 잘 아시는 하나님! 저는 매주 먼 길을 다니며 지금 목회와 공부를 동시에 하는데 왜 하필이면 시험 전에 김 집사님을 불러가셨습니까? 이제 시험이 닥쳤습니다. 성령님! 성령론 시험 시간에 임하셔서 시험 들지 않게 하소서!”

그처럼 간절히 기도한 후 교실에 들어가 큰 기대를 하고 시험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문제였습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셨습니다. 성령론 시험시간에 성령님은 어디론가 사라지셨습니다. 결국 그 전도사님은 시험지에 자기상황을 간략하게 쓰고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저는 이 문제를 몰라도 성령님은 잘 아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담당교수가 그 답안지를 보고 이렇게 채점했습니다. “성령님은 100점! 너는 0점!” 결국 그 신학생은 그 과목을 재수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끔 보면 믿음생활은 100점인 것 같은데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은 0점으로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성도

그처럼 다윗이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아이는 죽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본문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아이가 죽자 다윗은 곧 일어나 단장을 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린 후에 궁으로 돌아와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때 신하들이 왕에게 물었습니다. “왕이여! 왜 아이가 살았을 때는 금식하시고 우시더니 왜 아이가 죽으니까 일어나 잡수십니까?” 그때 다윗은 말합니다. 본문 22-23절 말씀을 보십시오.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다윗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렇게 하셨는데 너무 슬퍼하면서 죽은 아이에 대해 지나치게 미련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그 일에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간절한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가 있지만 사실 응답이 없는 것도 크게 보면 결국 응답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나중에 더 귀한 자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기도가 주는 한 가지 축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기도하면 기도하는 사람 자체가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기도를 통해서 자식의 죽음조차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환경은 바뀌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반드시 내 마음은 바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시련도 이길 수 있는 엄청난 능력과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기도는 엑스테리어(exterior)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테리어(interior)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 내적인 변화는 기도가 주는 가장 큰 축복의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게 인테리어를 변화시키면 신기하게 엑스테리어도 변화되는 큰 축복이 따라옵니다.

우리는 이 기도의 패턴을 잊지 말고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조급한 마음으로 기도에 대해 회의를 느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물리적으로 응답되지는 않아도, 반드시 하나님 앞에 열납되어 가장 선한 모습으로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켜 은혜의 단비가 되어 우리들에게 내릴 것입니다.

4. 새롭게 시작하는 성도

다윗은 아이가 죽기 전에는 아이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아이가 죽자 금방 그 불행을 잃어버리고 20절 말씀처럼 몸을 단장하고 하나님께 경배한 후에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다윗의 가장 매력적인 면이 바로 이 장면입니다. 그 모습을 하나님이 기쁘게 보시고 하나님은 솔로몬이란 귀한 자녀를 새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불행을 쉽게 잊을 줄 아는 거룩한 건망증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건망증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과거의 불행을 잘 잊을 때 새로운 은혜를 더해주실 것입니다. 잘했든 잘못했든 과거의 일은 하나님께서 이미 결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결재하신 지나간 일에 너무 매달려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대개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사람에게 제일 나쁜 성품 중의 하나가 편견인데, 왜 편견이 생깁니까? 과거에 대한 나쁜 기억을 잊어버리지 못하면서 생기는 초기 정신병적 질환이 바로 편견입니다. 편견은 세상을 자기가 아는 잣대로만 봅니다. 그러다 보면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을 할 수 있고,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삶을 살 수도 없고, 하나님께서도 그런 야박한 사람에게 결코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분은 군대 생활을 전남 광주에서 전경으로 했습니다. 어느 날, 훈련소 생활을 끝내고 자대가 있는 광주에 도착했을 때, 그분은 기분이 착잡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서울에서만 자란 분이었는데,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도가 난동을 부린 일로 알고 광주 사람은 다 사기꾼이고 귀신인 줄 알고 군대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3년 후, 그분이 군대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해서 MT(멤버 단합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경상도 영주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잤는데 깨어보니 텐트는 없어지고 돗자리에서만 자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한 동안 경상도 사람은 다 깡패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광주 사람이나 경상도 사람이나 대부분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나쁜 기억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요새 제가 정길진 목사님이 4월에 사모님을 보내시고 깜빡 잊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떤 약속을 하면 저에게 몇 번이나 확인 전화를 합니다. “목사님! 우리가 약속한 날짜가 내일인가요?” 그러면 제가 가끔 핀잔을 줍니다. “목사님! 거의 치매 수준이 되었어요. 이제 사모님 그만 잊으세요.”

우리는 지난 일을 잘 잊을 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향해 지금 새롭게 결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새로운 결단과 실천을 보시고 더 좋은 일을 결재해주시고, 우리의 새로운 결단은 곧 주님의 결단으로 바꾸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이사야 43장 19절 말씀처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지금까지 잘못한 일과 부끄러운 일과 실패한 일도 많았지만 그 일에 매여 낙심하고 좌절하고 우리의 선한 계획과 열심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용납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오늘도 예배 시간에 다시 새로운 옷을 입고 힘차게 출발하면 우리는 반드시 변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우리 앞에는 지금보다 더욱 복된 길이 펼쳐질 것입니다.

< 신실한 하나님의 사랑 >

다윗이 과거의 불행을 잘 극복하자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을 주셨습니까? 본문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믿음을 보시고 더 좋은 아이를 주셨고, 다윗은 그 아이의 이름을 솔로몬이라고 지었습니다. 솔로몬은 ‘평강의 사람’이란 뜻으로 ‘샬롬’이란 말과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입니다.

계속해서 본문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 이 구절에서 ‘여디디야’란 정확하게 말하면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란 뜻입니다. 다윗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징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하나님께서 죽은 아이보다 더 사랑스런 아이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6.25 때 평양 창동교회 전도사님 한 분이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피난 도중에 다리가 불편해 중화(中和)라는 지역에서 더 피난가지 못하고 빈집에 혼자 머물렀습니다. 마음속에 원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 하필 이런 때에 다리를 못 쓰게 만드시나요?” 그분은 공산 치하에서 열심히 하나님 일을 한 보상이 이건가 하는 원망이 생겼습니다.

다음날, 다행이 다리가 조금 나아져 다시 급히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조금 가자 길옆에 수십 구의 시체가 있었는데, 전날 같이 피난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피난 가다 조그만 군수창고에서 인민군복을 발견하고 추우니까 껴입었는데 미군이 인민군인 줄 알고 기총소사를 해서 거의 대부분이 죽은 것이었습니다. 그때 전도사님은 하나님을 잠시 원망했던 것을 회개하고, 그때의 은혜를 기억하며 열심히 교회를 섬겨 큰 교회를 이뤘는데, 그 교회가 바로 노량진 교회라고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고난도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사람의 실패는 하나님의 실패가 아닙니다. 진짜 실패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것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저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사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고양이보다 개를 더 선호합니까? 가장 큰 이유는 개가 고양이보다 주인을 더 따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고양이와 개는 기억시스템이 아주 다르다고 합니다. 개는 주인이 열 가지를 잘못해도 한 가지만 잘해주면 그 한 가지 잘해준 것을 기억해서 주인을 졸졸 따른다고 합니다. 반면에 고양이는 열 번 잘해줘도 한번 잘못해 주면 잘해준 것은 싹 잊어버리고 잘못한 것 때문에 토라져서 주인과 거리를 둔다고 합니다.

우리는 고양이형 성도가 되지 말고 개형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하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한두 가지 고난을 가지고 만 가지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절망하는 것은 고양이 같은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죽도록 잊지 못하는 개 같은 충성스런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은혜를 잊어버리면 추하게 되고, 결말도 비참하게 됩니다. 반면에 은혜를 잊지 않으면 반드시 은혜를 더 입습니다. 가정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 대해서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잊어버리면 그 사람은 인격적으로 아주 문제가 많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수고하는 남편과 아내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이 나오지 않으면 그런 눈깔은 한참 문제가 있는 눈깔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 말을 듣고 아내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내 눈깔이 문제가 있나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날은 아내의 뒷모습을 보고 눈에서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가슴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깊이 생각하면 배우자는 너무 고마운 존재입니다. 저도 가끔 “아내가 없으면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도 그런데 하나님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성령님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삽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없고, 성령님의 함께 하심이 없었으면 사는 것이 참으로 외롭고 힘들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범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감사는 축복받는 길이고, 불평은 망하는 길입니다.

원종수 권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분은 의사가 되면서 두 가지 소원을 가졌습니다. 하나는 가난한 어머니의 속옷을 사드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머니와 돼지고기 같이 먹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서울대 병원 인턴으로 첫 월급을 받고 어머니에게 달려가 말했습니다. “어머님! 첫 월급 받았습니다. 이제 돼지불고기 먹으러 가고 어머니 속옷을 사러 백화점에도 같이 가요.”

그때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종수야 기왕 믿을 바에야 잘 믿자.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으니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자! 이 첫 월급은 첫 열매잖아. 이 첫 열매는 하나님께 드리자!” 결국 그 첫 열매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 일이 있고 약 보름 후에 학장님이 불렀습니다. 의사고시 전국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금을 주는데 하나님 앞에 바쳤던 월급의 2배를 주셨습니다. 그는 감탄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군요. 첫 열매를 다 드렸더니 1등도 하게 해주시고 상금도 주셨네요.” 그는 그 상금을 가지고 어머니에게 달려가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전국 의사고시에서 1등 했어요. 이제 저와 함께 돼지불고기 실컷 먹어요.”

그때 어머니가 봉투를 받아들고 말했습니다. “종수야! 너 상금 타 본적 있니?” “처음인데요.” “그래? 첫 상금이면 첫 열매구나! 이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자. 그리고 주일까지 기다리다간 우리가 시험 들겠다! 내일 새벽 제단에 가서 드리자!” 결국 그 상금도 바로 제단에 바쳤다고 합니다. 그런 헌신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와 구변을 더해주시고 암 치료의 권위자이자 훌륭한 전도자로 삼아주신 줄 믿습니다.

때로 살다 보면 고난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지나보면 별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히 걱정거리가 있었겠지만 지난 달 무슨 걱정을 했는지, 작년에 무슨 걱정을 했는지 지금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오늘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이 지나고 보면 별로 걱정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아무리 고난이 있어도 오늘 이 순간부터 그냥 잊어버리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우리의 사명과 비전을 향해 열심히 달려 나가면 반드시 우리 앞에 놀라운 일들이 펼쳐질 것입니다. 항상 믿는 사람답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사랑 받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축복 (시편 91:14-16)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성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 354∼430)는 “인간은 알고 있는 것에 의하여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것에 따라서 평가되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면 그 사랑하는 것을 따라가게 되고, 또한 사랑하는 것에 모든 것을 바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욕심과 탐욕에 빠집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 때문에 죄를 짓게 되고, 명예와 권세를 사랑하는 사람은 불법과 비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사랑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2장을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마태복음 22장 37∼39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에 대한 계명이 큰 계명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이 사랑에 대한 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또 사랑한다 하면서 잘못된 사랑을 합니다. 온전한 사랑을 하지 못하여 사랑 때문에 죄짓고 불신앙에 빠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가짜 사랑을 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진짜 사랑,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축복 받는 사랑을 하려면, 사랑에도 세 단계가 필요합니다.
첫째, ‘관심의 단계’입니다. 둘째, ‘헌신의 단계’입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시간을 바쳐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 ‘희생의 단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치겠다는 자세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단계에 따라서 결과도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은 어느 단계까지 와 있습니까? 그저 막연한 ‘관심의 단계’입니까? 아니면 ‘헌신의 단계’, ‘희생의 단계’까지 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축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축복받지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지만, 맘에도 사랑이 없고 행동에도 사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기만 사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신 7:12∼13), 위험에서 건져내시고(시 91:14), 평안하게 만들어 주시고(시 119:165), 보호하여 주십니다(시 145:20). 하나님께서 넘치는 사랑을 주시고(잠 8:17), 기쁨을 채워주시고(사 56:6∼7),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롬 8:28),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십니다(약 2:5). 사랑의 씨앗을 뿌리면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삶의 역경과 절망적인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내용의 찬양시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왕과 신하, 백성들이, 전쟁터에 출전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혹은 어떤 사람이 삶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제사장이 불렀던 찬송으로 추측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보호하시고 축복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께서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사오니,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우리도 살다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질병이 닥칠 때도 있고, 죽음이 닥칠 때도 있고, 두려움과 불안감에 떨 때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지만, 결과는 모두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하고 있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님만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다섯 가지의 축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건져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높여주시고, 세 번째는 응답하시고, 네 번째는 저와 함께 하시고, 다섯 번째는 장수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 다섯 가지 축복이 나타납니다.

B.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축복

1. 내가 저를 건지리라 - 구원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시 91:14a)

여기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하솨크’라고 하는데, 그 뜻은 ‘달라붙다’, ‘애착을 가지다’입니다. 다시 말해서 갓난아이가 엄마를 안 떨어지려고 꽉 붙드는 것을 말합니다. 갓난아이는 엄마를 떨어지기만 하면 울고 난리가 납니다. 어떻게 하든지 엄마를 안 떨어지려고 붙들고 발버둥을 칩니다. ‘하솨크’는 바로 그런 상태를 말합니다. 전적으로 의지하고 매달리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앞에 꼭 붙잡힌 바 되고, 우리도 하나님 앞에 달라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 하나님께서 지키고 보호하시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꼭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여,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만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매달립니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합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노력합니다. 최선을 다합니다.”라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를 건져 주십니다. 그런데 ‘건지리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엄마가 젖먹이 자식을 항상 보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엄마가 젖먹이 자식에게 젖도 주고 옷도 입혀 주고 병났을 때는 병원에도 데려가고 항상 돌봐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봐주시고 전쟁과 위험에서 건져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고난 중에도 피할 길을 주시고 구원하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결단코 이탈되는 일이 없습니다.
시편 145편 20절에 다윗 왕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아무리 어려움과 위험 속에 빠졌다 할지라도 눈만 똑바로 뜨고 있으면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수직적인 눈’과 ‘수평적인 눈’만 가지고 있으면 곧 회복될 수 있습니다.
수직적인 눈은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말합니다. 수평적인 눈은 인류 역사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말합니다.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 수직적인 눈을 가진 사람은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청합니다. 또한 수평적인 눈을 가지고 인류 역사를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섭리하셨음을 깨닫고 진리 가운데 항상 거합니다.
기자 생활을 하던 서른두 살 난 젊은 남자가 있었습니다. 5∼6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불면증과 심한 우울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는 밤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무려 백일 동안이나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대인공포증, 자율신경실조 현상까지 나타났습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정신과 의사를 만났습니다.
“나를 좀 도와 주십시오. 내가 무슨 병에 걸렸습니까?”
“당신은 기자 생활로 너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모든 것이 다 비정상입니다. 그러니 나하고 세 가지만 약속합시다. ‘첫째, 자살하지 말 것, 둘째, 이사하지 말 것, 셋째, 사표 쓰지 말 것.’ 이것이 당신이 지켜야 할 약속입니다.”
그는 정말, 빌딩 옥상 같은 데 올라가면 뛰어내리고 싶고, 다리를 지나가면 강에 뛰어들어가고 싶고, 자동차가 지나가면 뛰어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달려왔습니다. 아들을 붙들고 “얘야, 내가 너에게 강권하니 넌 무조건 교회 나가라. 너는 교회 나가야 된다. 교회밖에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남자는 그냥 십자가 간판만 보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에게 “목사님, 나를 좀 도와 주십시오. 나는 극심한 정신병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라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은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이 놋뱀을 쳐다보고 구원받은 것처럼, 당신도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숙제를 주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숙제입니까?”
“매일마다 성경 한 장씩을 쓰십시오. 병이 나을 때까지, 성경을 하루에 한 장씩 계속해서 쓰십시오. 이것이 숙제입니다.”
그래서 이 남자는 성경을 한 장씩 계속해서 썼습니다. 한 달, 석 달, 육 개월, 일 년 동안 썼는데, 성경을 읽기 시작한 지 일 년 만에 잠을 잘 자게 되었습니다. 불면증이 없어졌습니다. 스트레스가 없어졌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성격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돈과 자존심 문제에 민감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에게 해를 끼치면 울분과 분노, 질투심 때문에 견디질 못했습니다.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원수처럼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쓰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미워하는 마음이 떠나게 하시고 질투심이 떠나게 하시고 증오감이 떠나게 하시고, 나에게 용서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러자 평소에 증오하고 미워했던 사람에 대한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게 되었고, 오히려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평강을 주시고 기쁨을 주셨습니다. 일 년 동안 성경 말씀을 읽자 생각이 변화되고 변화되어서 스트레스, 우울증도 없어지고 다시 건강을 되찾아 온전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변화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서 새로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하나님께서 해결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2. 내가 저를 높이리라 - 높임, 존귀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시 91:14b)

여기서 ‘안다’는 것은 그냥 막연하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느끼고 맛보아 체험적으로 아는 신앙과 믿음을 말합니다. 그냥 친구 정도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함께 살므로서 서로 성격과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아는 것을 ‘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연단과 시련을 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 나와 신앙 생활 하면서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축복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연단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섭리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때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원망과 불평, 부정적인 생각에만 빠져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교회를 등지고, 성경을 등지고 자기 혼자 삽니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아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높인다’는 단어에는 ‘안전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침략할 수 없는 높은 요새에 옮겨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높은 요새에 들어 올리셔서 아무 재앙 없이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둘째, 신분이 높아져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점점 형통하고 잘되는 것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셋째,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낮아지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점점 높여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아들, 사무엘을 나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2장 7절 말씀을 보면,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찬양했습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富)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한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고, 하나님이 낮추시면 높일 자가 없으며,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을 부자가 되게도 하시며 부자를 가난하게도 하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높여 주십니까?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을 높여 주십니다(마 5:19). 섬기는 사람을 높여 주십니다(마 23:11). 기도하는 사람을 높여 주십니다(행 10:2, 22). 선을 행하는 사람(롬 13:3), 전도하는 사람(고후 8:18), 순종하는 사람(히 5:8∼10),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벧전 5:6)을 높여 주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패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하게 낮아지고 낮아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부귀(富貴)는 재천(在天)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자가 되고 귀하게 되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 뭡니까? 구름입니까, 아니면 태양입니까, 별입니까, 달입니까? 아닙니다. 부귀가 하늘에게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 귀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부자가 되고 귀하게 되고 존귀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국회의원 중에 헨리 파우세트(Henry Fawcet)라는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국회의원은 맹인이었습니다. 어떻게 맹인이 가장 영향력 있는 국회의원이 되었을까요?
헨리 파우세트가 20세 때의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실수로 총이 오발되는 바람에 그만 총알이 그의 얼굴에 맞고 말았습니다. 목숨은 건졌으나 그는 실명하여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고로 아버지도 충격을 받고 아들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내가 내 아들 장래를 망쳤구나.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겠다.’라고 죄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아들은 아들대로 ‘나는 이제 앞을 못 보니 책도 못 보고 살아서 뭐 하겠는가? 죽어버리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부자가 다 이렇게 죽을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헨리는 누군가 심하게 통곡하며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보니까 자기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우는 소리를 듣고 마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울지 마세요. 아직도 나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도와주시면 나도 훌륭하게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너를 도와 주면 되겠니?”
“아버지, 나를 위해서 책을 읽어 주세요. 아버지가 나에게 책을 읽어 주시면, 내가 아버지를 통해서 책을 읽고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점자도 배워서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날 좀 도와주세요.”
“그래, 내가 널 도와 주마.”
아버지는 아들을 도와 열심히 책을 읽어주고, 아들은 점자를 배워서 최선을 다해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회의원, 맹인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위기에 처하면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도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눈이 먼 헨리에게도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는 청춘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없는 것만 생각하고, 불평과 원망에 빠집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믿음이 있고 건강이 있고 소망이 있고 지혜가 있고 생각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것이고, 남은 것을 가지고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인도하시고 사랑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내가 응답하리라 - 간구, 응답

“저가 내게 간구(懇求)하리니 내가 응답(應答)하리라”(시 91:15a)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간구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응답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간구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찬송하지 않습니다. 감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간절히 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기의 고민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비밀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부모한테도 말못하고, 친구한테도 말 못했던 것, 얘기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말할 수 있고, 또 사랑하는 사람이 얘기하기 때문에 그 얘기를 들어주고 도와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십니다. 사람들은 무시하고 멸시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얘기, 어떤 간구를 하고 부르짖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다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구하는 기도에는 응답이 있습니다. 문제 해결이 있습니다. 고난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기 때문에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기쁨이 충만한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요, 슬픔이 충만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인상쓰는 사람, 우울한 사람, 불안한 사람, 두려움과 공포에 빠진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납니다. 감사가 넘쳐납니다. 용기와 희망이 솟아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사는 사람,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기도하는 사람에게 역사 하시고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가정도 행복한 가정은 기도하는 가정입니다. 회사도 잘되고 축복받는 회사는 기도하는 회사입니다. 교회도 부흥하고 발전하는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활력을 줍니다. 우리 생활을 풍족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강남 어느 지역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장사는 되지 않고,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만 생겼습니다. 이것저것 잡일로만 바빴지 식당 사업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부동산에 내놨는데 팔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게를 처분해야 하는데…. 이 가게를 팔고 뭘 할까?’하고 걱정했습니다.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왜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지?’
그는 자기가 그 동안 새벽 기도도 하지 않고, 금식 기도, 철야 기도도 하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이제 내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새벽 기도의 능력, 철야 기도의 능력, 금식 기도의 능력 주시고, 이 가게도 팔아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한 점잖은 신사가 그 식당에 찾아왔습니다. “우리 회사 직원이 한 50명 되는데, 직원 식사를 이 식당에 위탁할테니 직원들의 식사를 좀 맡아 주시오.”라고 말하며 선금으로 100만 원을 주고 갔습니다. 그래서 직원 50명이 식사를 하러 오니까 식당은 자리가 모자랄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식당을 팔아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식당을 넘치게 채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 식당 처분 안하게 된 것 감사합니다. 내 기도대로 응답 안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제 이 식당 안 팔리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이 식당을 통해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근심하고 걱정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새벽 기도 하지 않습니다. 철야 기도 하지 않습니다. 금식 기도 하지 않습니다. 병원에 가서 수술하면 금식할지언정 하나님 앞에는 금식 기도 못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어려운 고난과 고통 닥쳐야 뒤늦게 정신을 차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대화입니다. 그리고 대화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사랑한다고 하면서 입을 꾹 다물고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듣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랑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오순도순 대화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작은 문제도 기도하고, 큰 문제도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도 기도하고, 감당할 수 없는 것도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늘 깨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기도가 응답과 축복으로 나타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내가 저와 함께 하리라 - 함께 하심

“저희 환난(患難)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榮華)롭게 하리라”(시 91:15b)

여러분,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십니다. 동행하여 주십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성공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형통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드시 행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왜 불행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왜 사업이 망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왜 회사에 부도가 납니까?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잘났다고 떠나고, 교만해서 떠났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고 불신앙에 빠지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축복이 점점 떠나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영광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환난에서 건져서 영화롭게 해 주십니다. 정신적인 만족과 물질의 축복,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번영과 칭찬과 영광과 성공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39장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요셉은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지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 사람에게 팔려 보디발의 집에 갔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범사에 그를 형통케 하셨습니다(창 39:2). 또한 요셉은 모함을 받아 감옥에도 갔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케 하셨습니다(창 39:23). 결국 그는 옥중에서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마지막에 가서,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께서 보상하시고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늘 깨닫고 느끼고 감사해야 합니다.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요, 수학자였던 파스칼(Blaise Pascal ; 1623∼1662)은 “행복은 우리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오직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만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디 가야 행복이 있습니까?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돈 많이 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대통령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돈이 있든 없든, 권력이 있든 없든,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짜리 딸을 둔 어느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딸이 사춘기라서 그런지 부모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공부는 제쳐놓고 학교도 제대로 가지 않았습니다. 친구들하고 놀러 다니고, 집에는 밤늦게 들어왔습니다. 야단도 쳐보고 때려도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러다 가출해서 아주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걱정을 하다, 하다 이 부부가 ‘안되겠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부모로선 더 이상 못하겠다.’라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딸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어디 가서 죄짓지 않게 하고, 사고 치지 않게 하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데 갑자기 마음속에 음성이 들렸습니다.
‘야, 너만 안타까우냐. 나도 안타깝다.’
‘뭐가요?’
‘네가 내 말을 안 들을 때, 내가 얼마나 안타까운 줄 아느냐?’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자신도 집사였지만 교회에 제대로 안 나가고, 하나님 말씀을 안 듣고 불순종했던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나도 너 참 안타깝다. 그러니까 너무 야단하지 마라. 나도 너를 참았으니까, 너도 참아라. 기도만 해라.’
그래서 딸이 속썩이고 말 안 듣는 것을 통해, 자기도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잘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 이제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충성하고 헌신하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나에 대해서 인내한 것처럼, 나도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딸에 대해 인내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날 밤도 딸이 안 들어오자 부부는 걱정이 되어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어디 가서 뭘 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지키고 보호하고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따르릉” 울렸습니다. 병원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딸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으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봤더니 교통사고였습니다. 딸이 친구 세 명과 함께 택시를 탔는데, 택시가 그만 전신주에 정면충돌을 했다는 것입니다. 차는 불이 붙어서 전소해 버리고, 기사는 물론 그 안에 타고 있던 세 명의 학생이 다 다쳐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전사 바로 옆, 조수 석에 앉았던 자기 딸만 무사했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만 하얗게 질려있었습니다.
‘하나님, 어째서 제일 위험한 자리에 앉은 내 딸만 안전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피투성이가 되고 다쳤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딸과 함께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걱정 근심 하며 그냥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위험한 교통 사고에서 딸의 생명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딸이 병원에서 입원하고 있는 동안 아버지, 어머니와 대화를 많이 하여 부모와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사춘기에 탈선하고 방종하던 딸이 다시 돌아와 정상적으로 공부하고 착한 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딸을 살려주신 것 감사합니다. 딸의 마음을 다시 돌이키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인내하고 끝까지 참고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어떤 어려움과 절망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낙심하거나 탄식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녀가 안 들어 와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업이 안되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문제, 역경이 와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사랑하는 자에게 함께 하시는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 가정은 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축복을 받게 하시고, 이 나라도 민족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을 받게 하시고, 회사도 직장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을 주시고, 우리 교회 집사·장로·권사·성도들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5.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리라 - 장수, 만족

“내가 장수(長壽)함으로 저를 만족(滿足)케 하며 나의 구원(救援)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시 91:16)

여러분, 생명의 주관자가 누구입니까? 누가 사람을 만들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에 건강과 장수는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누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습니까? 우리가 한국에 태어난 것, 부모를 만나서 김씨, 박씨, 최씨가 된 것, 우리 인간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주관자,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생명도 주십니다. 건강도 주십니다. 장수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자를 장수함으로 만족케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래 산다고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 세상의 악한 사람들 중에도 오래 사는 사람이 있지만, 그들은 욕망과 죄악과 갈등 속에서 삽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만족 없이 오래 사는 것은 오히려 고통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편안한 가운데 장수의 축복을 누리도록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잠언 10장 27절에 솔로몬 왕은 “여호와를 경외(敬畏)하면 장수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믿으면 장수의 축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장수한 사람들의 기록이 많이 나옵니다.
구약 성경에 사라는 127세(창 23:1),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장수했습니다(창 25:7∼8). 이삭은 더 오래 살아서 180세까지 살았습니다(창 35:28∼29). 야곱이 147세(창 47:28), 요셉이 110세(창 50:26), 아론이 123세(민 33:39), 모세가 120세(신 34:7), 여호수아가 110세(수 24:29). 다 100세 이상을 살았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잘 믿으면 100세 이상 축복 받고 산다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신약 성경에 안나는 106세까지 살았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눅 2:36∼37).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 여자는 보통 15세에 시집을 갔는데, 7년 동안 결혼 생활하고 84세를 과부로 살았다고 하니까 그의 나이를 106세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안나는 106세까지 과부로 살면서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고 기도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렸습니다. 오늘 참석한 여러분도 다 장수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근 8·15 남북이산가족 상봉 후에 ‘건강 관리 신드롬’이 생겼다고 합니다. “살아 있어야 가족과 형제들을 만날 수 있다. 건강해야 된다.”라고 해서 60세, 70세, 80세 할머니·할아버지들이 건강 관리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이면 약수터를 오르내리며 운동을 하고, 저녁에도 아파트 주변을 산책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건강의 비결이 뭡니까? 어떤 사람은 “건강 식품을 먹어야 건강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건강 식품 제조 업체인 미국의 허벌라이프사의 창업자 마크 휴즈 회장은, 건강 보조 식품을 판매해 한해 매출이 9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좀 더 안전하고 훌륭한 다이어트 식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많은 건강 식품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세계 사람에게 더 많은 건강 보조 식품을 공급하는데 생애를 바치겠다.”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로스앤젤레스 해변에 있는 무려 300억 원짜리 초호화 맨션에서 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건강, 건강’, ‘장수, 장수’를 외치던 건강 식품 창업자 마크 휴즈는 44세에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건강 식품을 먹고 오래 살고자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오래 삽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장수하게 하셔야 오래 삽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 건강의 근원 되신 하나님, 우리는 그 하나님을 잘 믿어서 장수를 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에는 건강을 위협하는 유해 식품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제목입니다.
중국산 납 꽃게뿐만이 아닙니다. 납이 들어간 복어와 병어, 물 먹인 아귀, 돌 넣은 홍어, 살충제를 쓴 인삼 등 유해 식품이 아주 많습니다. 옥수수 기름에다 황산을 넣어 참기름 색깔로 바꾼, 황산 식용류를 만들어 30억 어치나 팔았습니다. 그밖에도 타르 색소를 넣어서 암을 유발시키고 혈소판 감소증을 일으키는 검은 깨, 발암 물질인 묵, 쇳가루 섞인 고춧가루 등 불량 식품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음식을 먹고도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먹을 게 별로 없습니다. 무엇을 먹고 살아야겠습니까? 병든 소를 잡아서 소고기를 팔아먹지를 않나, 육류도 불량 식품이 참 많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불량 식품, 한국의 부정부패가 빨리 떠나게 하시고, 진정한 건강 식품이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C.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여 축복받는 성도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해 주시고, 축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둘째, 높여주시고, 셋째, 기도를 응답하시고, 넷째, 우리와 함께 하시고, 다섯째, 장수케 해 주십니다.
여러분,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은 조선일보에 난 기사입니다. 충청남도 금산군에 사시는 95세 동갑내기 할머니와 할아버지, 송병호, 송원금 씨는 결혼 생활 80년 동안 한번도 아픈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십니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 비결이 뭡니까?”하고 물었더니, 한결같이 “교회 때문이여. 교회 가는거 밖에 몰라.”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할머니가 시집왔을 때 시어머니 손에 이끌려 나갔던, 교회 생활이 건강을 유지하는 큰 기둥이라며, “우리는 첫째도 교회, 둘째도 교회, 셋째도 교회, 교회밖에 몰라요. 교회 열심히 다녔더니 하나님께서 장수하게 해 주셨습니다. 새벽 기도, 철야 기도, 금식 기도 예배 시간마다 나가고 하나님만 믿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찬송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교회밖에 없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신앙이 좋으니까 그 집 아들, 딸부터 손자, 손녀까지 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 받고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고,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신앙, 사랑의 인생을 살 때 하나님께서 풍족하게 역사하시고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한국은 미래의 선교 한국

창세기 10:21-31
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 하였으니
22.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23.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24.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26.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27.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28.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29.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 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30.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31. 이들은 셈의 자손이니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 더라.’


창세기 11:16-29

16.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 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 르우를 낳 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21.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2.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23.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4.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 데라는 칠 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 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 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 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창세기 10:21절에 의하면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5절에 의하면 에벨의 자손은 벨렉과 욕단입니다.
그런데 이 두 절들을 비교해 볼 때에 창세기 10:21-31은 욕단의 후손들의 족보이며,
창세기 11:16-29은 벨렉의 후손들의 족보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창세기 10:21-31의 욕단에 대해서는 기억도 없었는데 성경은 욕단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고 있으며 그 아들들 13명을 일일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고 역대상 1:19-23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은 하나 아니라 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에벨의 온 자손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은 벨렉계욕단계 두 계열의 백성이 존재합니다.

통상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선택된 백성을 이스라엘, 즉 벨렉의 후손과만 연관시켜 왔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아브라함 시대 이후 줄곧 이스라엘 땅과 백성이 구원사에서 중심이 되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욕단계 선민에 대한 주의와 관심을 놓치게 했던 것입니다.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가계는 다른 셈의 후손들과는 달리 열 셋 아들들의 이름을 다 열거하였으며 그 이름들이 두번이나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 족속 들에 대해  유심하라는 암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목적을 위해 택함 받은 또 하나의 선민 으로서 주님의 특별한 계획 아래 있는 백성이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이 잊지 않고 추적해 주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첫째로 감추어 둔 선민

벨렉의 후손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특별한 나라가 출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욕단의 후손을 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애초에 천손민족의 범주를 에벨의 온 자손으로 제한하였 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에벨 온 자손 즉 에벨의 모든 자손(all the children of Eber)인 벨렉 과 욕단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단의 후손도 때가 차면 반드시 열방 가운데 드러나서 선민의 지위에 합당한  역할을 확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빠짐없이 다 이루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욕단계 선민을 감추어 두신 것이지 절대로 잊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벨렉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2000년 동안이나 방치하셨다가 말씀에 따라 그들을 고토로 모으시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벨렉의 후손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사에 세 가지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먼저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겉으로 드러난 선민이 되었고, 욕단의 후손은 속으로 감추인 선민이 되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셔서 언약하시기를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언약 백성 이스라엘은 어디까지나 창세기 10:21의 셈은 에벨 온  후손의 조상이라는 말씀을 근거로 출현했다는 사실입니다.
언약 형식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에벨의 장자 벨렉의 후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목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벨렉의 후손 이스라엘은 ‘명시적 언약 백성’이라면 에벨의 작은 아들 욕단의 후손은 ‘묵시적 언약 백성’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민도 눈에 밖으로 드러난 선민이 있고 안으로 감추인 선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겉 사람 보다 속 사람이 더 중요 하듯이 겉으로 드러난 선민보다 속으로 감추인 선민이 더 소중합 니다. 감춘다는 것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땅 속에 감추인 보화 이야기를 생각하실 것입니다. 욕 단의 후손들이 바로 이런 존재들인 것입니다. ‘욕단의 후손’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어 하나 님은 그들도 세상 어딘 가에 한 나라를 이루게 하시고 은밀히 감추어 놓으신 것입니다.

둘째로 욕단의 후손을 찾아서

그렇다면 욕단의 후손을 어떻게 찾아 볼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욕단의 후손은 처음 세대 이후 에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욕단의 열 세 아들의 가계는 두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욕단의 가계는 고대 성경 시대에 기록된 가장 큰 가계입니다. 욕단의 후손은 처음 세대 이후 더 이상 언급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욕단계 선민을 찾을 수 있도록 결정적인 단서를 남겨 두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10:30절 말씀입니다.

‘30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 이었더라.’입니다. 이 구절이 욕단의 후손이 누구인가를 찾는데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욕단의 거주지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메사’와 ‘스발’의 위치가 어디이며 ‘동편 산’이란 어느 지역의 산을 지칭하는 것인지를 확인하면 욕단계 선민이 어디에 있는 누구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성경 연구가들은 욕단의 아들들의 이름들이 역사적으로 아랍부족의 이름과 같은 스바, 오빌, 하윌라이며 더욱이 아라비아 남단에는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지명도 나타나기 때문에 욕단이 아 라비아로 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욕단족속은 아라비아 남단에 정착하여 현재 아랍민족의 조 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아랍 부족의 이름은 함의 가계인 구스 민족의 후손에 속한 것입니다. 함의 자손 구스의 맏아들이 스바였으며, 손자 중에도 스바가 있습니다(창10:6). 또 하윌라도 구스 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들이 그 땅에서 살고 있었으니 그들의 이름을 따라서 지명을 삼은 것입니 다. 오빌도 스바와 하윌라 부근의 홍해 안에 있는 금 산지로 알려진 곳으로서 솔로몬 왕을 방문 했 던 스바 여왕의 통치 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곳도 역시 함 계통의 구스 민족이 살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현재 아랍민족은 이스마엘의 후손이 퍼져있고, 롯의 후손 모압과 암몬족속, 그 밖에 셈의 아들인 엘람족, 아수르족, 룻족, 아람족등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욕단이 아라비아로 가서 아랍부족의 선조가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메사’와 ‘스발’의 위치를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메 사와 스발의 위치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라비아 주변에는 그런 곳이 과거에도 없었고 지 금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라비아 지역에는 창세기 10:30에서 말하는 동쪽의 높은 산맥도 없습니 다. 욕단의 후손이 어디에 누군지를 찾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욕단계 선민이 동양 에 거주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라비아는 본문이 말하는 동방이 아닙니다. 아라비아는 남방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지도를 보면 아라비아 반도는 아프리카의 우측에 위치했으며, 북쪽은 이집트, 중 부는 수단과 남쪽은 이디오피아와 위도가 겹칩니다.

그렇다면 동방 산은 어디이겠습니까? 창세기 10:30의 산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르'입니다. 그 뜻은 단지 하나의 산이 아닌 산맥, 산지를 의미합니다. 특히 본문 처럼 단수로 사용되었 을 경우에는 산맥 혹은 일정한 지역의 산들을 가리킵니다.  한글 개역성경에서 ‘동편 산’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에 원문의 뜻을 충분히 전하여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편 산 대신에 동편 산지 혹은 동편 산맥 또는 동방 산악지대로 번역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동번역 성경은 ‘동쪽 산악지대’라고 번역하여 원문의 뜻을 정확히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더욱 정 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30이들이 사는 땅은 메사에서부터 동쪽 산간 지역 스발까지였다.’ 쉬운성경은 ‘30이들은 메사와 동쪽 땅의 산악 지방에 있는 스발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창세기가 말하는 욕단족속이 거주했다는 ‘동쪽 산악지대’라는 곳은 산맥과 산악지대가 많은 동양 의 산들을 표시한 것입니다. 동편 산은 하르 하케뎀인데 케뎀은 동양 혹은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를 뜻합니다. 케뎀의 어원은 가장자리이며, 지리학적으로는 태양이 떠 오르는 쪽에 있는 아시아 해변 지역들을 언급합니다. 케뎀은 또한 고대의 시작(시대의 가장자리, the Front of time)이라는 어원도 가지고 있으므로 고대 동양으로 번역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쪽 산악지대란 고대 동양의 산을 의미합니다. 이 산은 고대 전승의 동양에 있던 어떤 특별한 산을 언급할 수도 있고, 전체 동양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메사의 위치를 확인해 볼 차례입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이 곧 바로 시날 평원으로 옮겨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을 쌓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성경을 생 각 없이 잘못 읽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1:2에서 홍수 이후 사람들이 바벨론 평지에 이르기 전에  먼 저 동쪽으로 이동하여 가다가 동쪽으로부터 방향을 전환하여 서쪽으로 가다가 바벨 평지를 만난 것 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홍수 후 사람들이 동쪽으로 가다가 방향을 전환하여 서쪽 바벨론 평지 에서 서로 갈라진 곳이 메사인 것 같습니다. 공동번역 창세기 11:2에서, ‘사람들은 동쪽에서 옮아 오다가 시날 지방 한 들판에 이르러 거기 자리를 잡고’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동방으로 옮겨 간 것 으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은 동방으로부터라고 되어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도 from the east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동쪽에부터 서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이동하다가 시날 평지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홍수 생존자들이 방주가 정박했던 이라랏 산지를 떠나 처음 이동했던 지역이 바벨론 평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이 처음에 동쪽으로 점점 이동하던 중에 사람들이 이곳 저곳 살기 좋 은 곳을 찾아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서쪽 지역 티그리스 강을 만나게 되었을 것이요 또 서쪽의 유프라테스 강을 만났을 것이요 그 두 강사이의 비옥한 땅인 시날 땅, 메소포타미아 평원 을 발견하고 그 쪽으로 가서 살자고 결의했을 것입니다. 물도 풍부하고 땅도 비옥 해서 사람들이 살 기에 가장 적합한 곳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두 방향을 바꾸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바벨론 평지에 이르러 그곳에 살면서 바벨탑을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 홍수 후 욕단이 유일신 신앙을 갖고서 동양으로 이동을 시작할 때에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을 품고서 반대 방향인 서쪽, 즉 시날 평원으로 이동하도록 선동한 자가 니므롯입니다. 이 때에 벨렉 도 형제인 욕단을 버리고 니므롯의 무리와 하나가 되어 서부로 갔던 것입니다. 니므롯은 역사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최초의 폭군이었습니다. 그는 시날 평원에서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계적인 대 제국을 건설하려 했습니다.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니므롯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을 자극하여 하나님을 그토록 모욕하고 경멸하게 한 자는 니므롯이었다, 그는 노아의 아들 함의 손자로서 엄청난 힘을 가진 용사였다, 그는 사람들이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니므롯 자 신 때문에 행복을 누린다고 설득했고, 차츰 사람들 위에 절대자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이 만일 세상을 다시 물에 잠기게 하려 한다면, 하나님께 보복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는 물이 미치지 못할 만큼 높은 탑을 쌓아 자기 선조들을 멸하신 하나님께 보복하려고 했다.’했습 니다. 니므롯이란 이름의 뜻은 반역하다, 배역하다, 그가 반역하였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 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란 말의 ‘앞에서’는 히브리어 ‘파님’이라는단어 인데 때때로 ‘대적하여’ 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현대인의 성경 창세기 10:8-9은 원문의 뜻에 가깝게 번역되어 성경이 의도하는 바를 잘 표현하 고 있습니다. “8구스는 또 니므롯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는 세상에서 최초의 정복자 였다. 9그는 여호와를 무시하는 힘 센 사냥꾼이었으므로 ‘니므롯처럼 여호와를 무시하 는 힘센 사냥꾼’이라는 유행어까지 생기게 되었다.”했습니다

그리하여 니므롯은 그의 나라를 점점 확장해 나갔습니다. 쉬운성경 창세기 10:10-12에서 ‘10처음에 니므롯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빌론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 습니다.’라 했는데 이 말씀은 창세기 11:2과 연결됩니다. 서쪽으로 방향 전환을 하 도록 선동한 인물이 니므롯임을 볼 수 있습니다. 홍수 이후 사람들이 처음에 동쪽을 향해 천천히 이동하다가 서쪽에 두 강과 그 사이의 평원이 살기 좋은 곳임을 확인한 사람들이 모두 그 쪽으로 몰려갔으며 그 주동자가 니므롯입니다. 니므롯이 바벨론 평 원을 중심으로 바벨론, 에렉과 악갓과 갈레성을 쌓고 나라를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나라가 형성되었습니다.

또한 니므롯은 북쪽 지방인 앗시리아까지 점령 했습니다.칭세기 10:11-12에서,
 ‘11니므롯은 그 곳을 떠나 앗시리아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니므롯은 니느웨와 르 호보딜과 갈라를 세웠습니다. 12니므롯은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큰 성인 레센도 세 웠습니다’ 이 말씀은 니므롯이 셈족이 살고 있던 메소포타미아 북쪽지역인 앗수르로 갔다고 했습니다. 이곳에 살고 있던 셈족을 정벌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앗수르 사람들을 동원하여 그 지역에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 성을 건설합니다. 그리고 니느웨와 갈라 사이에 큰 성 레센도 건설합니다.

그리고 쉬운 성경 창세기 11:2-4에서,‘2사람들이 동쪽으로 옮겨 가며 시날 땅에서 평야를 발 견하고, 그 곳에서 살았습니다. 3그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벽돌을 만들어 단단하게 굽자." 그러면서 그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습니다. 4그들이 또 서로 말했습니다. "자, 우리의 성을 세우자. 그리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 는 탑을 쌓자. 그래서 우리 이름을 널리 알리고, 온 땅에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에서 사람들이 모여 성을 쌓고 하늘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높은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널 리 알리고 온 땅에 흩어지지 않고 오래 모 여 살자고 의논들을 했습니다. 바벨탑을 쌓 게 된 것은 홍수 후 101년 정도 되는 해였습니다.

니므롯은 힘이 세어 특출한 사냥꾼이 되었으며, 그는 그 당시 땅에 번성한 들짐승의 위협으로부터 사람들의 안전을 보호함으로써 당시 사회에서 사람들로부터 갈채와 환영을 받는 유명한 인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니므롯이 시날 평원으로 가자는 선동에 사람들은 쉽게 호응했었고, 그 는 인류가 함께 뭉쳐야 다시는 홍수와 같은 전 인류를 위협하는 대재앙을 효과적으로 면할 수 있 다 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니므롯은 인류를 하나로 결집시키고 인류의 분산을 막기 위한 수단 으로서 탑을 하늘 높이 쌓아 올려서 그 탑이 멀리 보일 수 있는 한계에서 거주하자고 미혹했습니 다. 그러나 사실 니므롯이 사람들을 선동한 근본적인 이유는 오직 자기 자신의 욕망을 채 우기 위 해서였습니다. 그는 온 인류를 자신이 다스리기를 원했습니다. 니므롯은 바벨탑을 중심으로 인류 를 자기의 통치권 아래 하나로 묶어 하나님을 대신하여 모든 사람들을 다스리는 통치자로서 군림 하려 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 보았듯이 홍수 후 세대들이 처음에 동쪽으로 이동했다가 메사에서 서쪽으로 이동 하게 되었고 시날 평지를 만나 그곳을 정착지로 삼습니다. 이것이 홍수 후 생존자들의 바벨론 이 전 시대의 이동 경로였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욕단이 나 중에 어느 경로로 이동하였는가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메사의 위치를 찾는데도 도 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홍수 이후 생존자들이 바벨론 이전 시대의 이동 경로는 아라랏 산에서 내 려와 살면서 서서히 동방으로 이동하다가 북부 이란 고원을 지나 바벨론 동부에 이르는 경로로 100년 이상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적자’를 따라서 셈으로부터 욕단과 함께 선민의 거룩한 가계를 계승한 에벨의 혈통 벨렉이 형제 욕단을 버리고 서부 바벨론으로 갔던 것입니다. 욕단의 가계는 무엇보다도 큰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때는 아직 노아를 비롯해 아르박삿, 셀라, 벨렉과 욕단의 아버지 에벨이 살아 있을 때였습니다. 벨렉의 가계는 아버지 에벨과 형제 욕단의 가계와 이별하고 서쪽으로 향하여 가 고 욕단의 가계는 동양으로 향하여 갔던 것입니다. 벨렉이 바벨론으로 갔다는 증거가 그의 이름 에서 나타납니다. 벨렉의 이름의 뜻이 창세기 10:25에, ‘25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 이며’에서 벨렉이 바벨탑 운동에 가담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욕단족속은 바벨론 소요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동쪽 스발을 향해 가고 있었 습니다. 벨렉과 욕단의 헤어짐으로 두 종류의 히브리 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즉 서 부 아시아에 거주하는 서부 히브리 민족과 동양에 거주하는 동부 히브리 민족입니다. 창세기 10:21은 셈이 ‘에벨 온 자손의 조상’ 즉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에베르(רעֵבֶ)에서 ‘히브리’가 유래되었습니다. 에벨의 뜻은 건너 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에벨이 바벨탑 사건에 가담하지 않고 유브라테스 강을 건너 갔다는 말입니다. 히브리는 강너 편에서 온 사람이란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강을 건 너 하란을 경유해서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히브리는 에베르의 종족을 나타내는 말입 니다. ‘에벨 또는 에벨의 계통을 잇는’ 이란 뜻입니다. 에벨은 두 아들 벨렉과 욕단을 낳았습니다.

따라서 히브리 민족은 에벨로부터 나온 두 가계, 벨렉과 욕단 계통을 잇는 자손입니 다.  그래서 아시아 서쪽으로 간 벨렉계는 서부 히브리인이요 동양으로 간 욕단계 선 민은 동부 히브리민족입니다. 욕단도 히브리민족에 속합니다.
이제부터 스발의 위치를 알아 보겠습니다. 욕단은 스발을 향해 동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스발은 그의 목적지였습니다.창세기 10:30을 히브리어 영문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 이었다.’(And their dwelling was from Mesha, as thou goes unto Sephar  mount of the east, KJV).

스발을 히브리어에서 음역하면 새팔(הסְפָרָ)입니다.
여기 ‘새팔로 가면서’라는 말은 욕단 족속이 동양의 어떤 특정한 산지에 정착한 것이 아니라 ‘새팔’을 향해 계속 동쪽으로 옮겨갔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팔’의 위치는 어디이겠습니까?

이 ‘새팔’은 당시에 존재하거나 알려진 도시와 장소의 이름이 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홍수로 인해 지워졌기 때문입니다.
욕단이 천동하기까지 동양에는 아직 누구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새팔은 일단 아시아 동쪽의 어느 곳에선 가에서 추적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욕단은 동방의 산악지대인 파미르고원, 천산산맥과 알타이 산맥을 넘 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gif


-2gif



알타이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좀더 이동하면 ‘시베리아’ 벌판이 전개됩니다.
시베리아 는 고조선의 창건 무대인 만주 대륙이 연장된 땅으로 우리 한 민족의 고향입니다.
높은 산들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멀리 이동한 욕단 족속은 남북만주 및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방의 새 땅을  새팔 즉 새발이라고 하였습니다.
새발은 새벌의 고어 로서 새 땅, 새 들판이라는 뜻입니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바로 우리 한민족의 발상 지 새발(시베리라-만주)을 예시한 것입니다.
새팔과 새발은 발음이 아주 유사합니다.
‘ㅍ’을 약하게 소리내면 ‘ㅂ’이됩니다.
‘ㅍ’과 ‘ㅂ’은 모두 파열음으로서 한 계통의 소리입니다.
따라서 자주 혼용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안팎을 안밖이요 동이족의 후 예인 아파치 인디언은 ‘아버지’를 ‘아파치’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새팔은 새벌로 간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발의 어원은 새밝인데 ‘새 밟은 곳’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인 그 땅이 빛이 시작되는 새 땅이요, 새 밝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새발의 ‘발’ 은 ‘밝’에서 가지쳐 나온 말로서 원래는 광명의 뜻이었는데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새발의 ‘발’은 곧 ‘벌’인 것입니다.
벌은 벌판, 들판을 말 합니다. 서라벌, 서벌, 서나벌, 서야벌 등등

시베리아는 만주벌판이 연장된 땅으로서 만주와 같은 땅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는 곳 입니다. 그곳은 우리 배달겨레의 역사의 고향입니다. 따라서 그곳을 부르던 우리의 땅이름이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는데 그것이 토박이 말로 ‘시비리’입니다. 이 시비리 는 새발의 변음입니다. 우리 한글 홀소리가 아에이오우로 구울러 감에 따라 이 ‘새’가 사서소수스시로 구울러 감이 보통입니다. 우리말 ‘새’가 그같이 여러 가지 소리로 나 타납니다. ‘시비리’의 ‘시’는 ‘새’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시비리의 ‘비리’는 벌의 의미를 갖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비리’와 비슷한 말이 ‘누리’가 있는데 ‘비리’는 ‘벌’ 만 뜻하지만 누리(온누리)는 땅덩어리, 곧 산과 계곡, 강과 바다, 벌과 들 등 땅 위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시비리’새벌을 말합니다.
시베리아의 가장 옛 이름이 한국어 시비리입니다.
이 토박이 말이 우리는 잊고 있으나 북한의 조선말 사전(사회과학출판사, 1922년)은 ‘시베리아’를 ‘씨비리’라는 명사로 분명히 풀이해 놓았습니다.

’시비리’가 시베리아로 불려지게 된 것은 고구려가 망한 후 방치되던 ‘시비리’를 16세기 러시아가 불법강점 을 하면서부터 입니다.
러시아족이 동침한 이후 ‘시비리’는 그 신비한 모습을 세계사 에 드러내게 되었는데 시비리를 강점한 러시아인도 옛말 그대로 시비리 그대로 사용 하였습니다.

그것을 영국인들이 듣고 마치 고려를 코리아로 부른 것처럼 시베리아로 부른 것이 오늘날 시베리아로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시베리아는 한국어 시비 리에서 유래한 영어식 지명일 뿐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욕단은 요(堯)이며 단군(壇君)이다.

 

서방 벨렉 계열에선 세상과 구별되는 길을 밟아 구주 예수 탄생을 예비하였다. 동방의 욕단 계열은 이 땅에서의 그 구원의 현실을 예표로 보여주었다. 욕단 계열의 그 역사적 사실은 이렇게 중요하다. 하나의 손이 손등과 손바닥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이 둘은 표리를 이루어 하나의 구원에 관하여 예표적인 그림을 구성한다. 성경 창세기는 창조와 인류역사의 기원을 밝힌 책이다. 그 사실과 반대되는 기록들은 사람들이 육신적으로 본 사실을 과장하고 거짓으로 꾸며낸 흔적일 뿐이다. 홍수 이후 전 인류 시원적 종족과 그 거주지를 밝힌 창세기 10장에서 욕단은 열세아들을 낳고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기록하였다. 단 몇 절의 기록이지만 욕단의 중요성은 그 이름의 의미와 함께 그의 아들이 성경에서의 기록 중 가장 많은 아들인 열세아들이었다는 것으로 표시되고 있다. 아들의 많고 적음은 하나님에게 받은 축복의 크기에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거주지인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라는 기록도 중요한 비밀을 담고 있다. 성경에서 산은 하나님이 말씀하는 곳이고, 그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 있다.

 

메사는 아마 지금의 이란고원 어디에 있을 것이다. 이란의 메슈하드라는 도시는 혹 그 당시의 메사일지 모르겠다. 중동에서 이란인은 이웃나라에 사는 아랍인과는 다른 민족이다. 아마 그들은 욕단의 후손으로 우리와 같은 종족일 확률이 높다. 그 까닭으로 이란 사람들이 한국인을 좋아하고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원인이 되는지 모르겠다. 스발은 지금의 시베리아일 확률이 높다. 시베리아는 시빌이라 불렀다. 신라에서 자신의 나라 이름과 수도 이름을 서라벌이라 불렀다. 서라벌은 한문으로 고치면 신라(新羅) 즉 새 나라라는 뜻이다. 이것은 비록 단군조선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기억은 잃어버렸지만 그 사실의 흔적들은 민족의 심층에 새겨져 때때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인 것 같다. 스발->시빌.시베리아->서라벌(신라)->서울이라는 것은 다 하나의 뜻을 가진 말이다. 새로운 땅, 새로운 나라라는 말이다.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살기 어려운 동토인 시베리아를 왜 새로운 땅인 스발이라 불렀을까? 아마 먼 후일 하나님을 믿는 우리 민족이 주도적이 되어 전 세계를 평화의 공동체로 건설한 뒤 새로운 땅, 새로운 나라, 지상천국인 교회·왕국(敎會·王國)을 건설하는 환상을 보았을 확률이 높다. 그리하여 한반도로 이동해 왔던 욕단족의 핵심인 우리 민족이 그 환상을 은연중에 나타내어 서라벌, 서울이라 불렀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민족의 이동로는 홍수 이후 소아시아의 아라랏 산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옮겨오다가 넓고 살기 좋은 시날 평지를 만나 다 그곳에 머물 때 욕단 일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까닭으로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였다. 일차 집결지가 이란고원의 메사였다. 그곳을 서방에 살고 있는 벨렉 계열과의 교류와 바벨문화 이동을 차단하는 관문으로 삼았을 것이다. 욕단의 열세아들 중에서 한 아들 가족을 남겼을 것이다. 그들이 고대 고레스(키루스)의 바사(페르시아)의 조상이 되었을 것이다. 포로된 이스라엘인들의 해방과 무너진 성전 중건의 사명이 바사의 고레스에 맡겨진 까닭도 이와 같은 신앙과 역사에 연유함이 있을 것이다. 메사에서 사마르칸트를 지나 카자흐고원을 경유하여 우랄 알타이 산맥을 넘어 몽고 북방을 진행하다 시베리아 바이칼 근처에서 한참이나 머물렀을 것이다. 그곳에서 먼 후일의 역사 비전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살기 어려운 동토인 그곳의 이름을 새로운 땅, 새로운 나라란 뜻인 스발이라 불렀을 것이다. 일부는 남고 나머지의 전 욕단족은 살기 좋은 곳인 만주로 이동하였다. 이리하여 이란고원부터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몽고, 만주, 한반도는 욕단족의 영유지역이 되었다.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 10장이 가리키는 그 당시는 바벨 심판 전이라 언어와 말도 하나였다. 욕단이란 말은 요(堯)와 단군인 단(壇)의 이름을 합친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계시로 중국에서 말하는 요와 한국에서 말하는 단군은 한 사람으로서 욕단이라 밝혔다. 발음뿐만 아니라 뜻도 같다. 욕단의 이름에는 작은자 및 단을 쌓는 자라는 이중의 뜻이 있다. 한문에서 요(堯)는 垚(요)와 兀(올)로 짜인 글자다. 즉 요(堯)라는 그림은 작은자가 위에 세 스승을 모신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나 중국인은 멀리 있는 높은 사람이란 뜻으로 요임금이라 불렀다. 단군인 요는 즉 욕단은 중국인에게 그렇게 멀리 있는 존엄한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단군에서 군을 뺀 단(壇)은 바로 제단을 쌓는 자란 뜻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요와 단군은 성경에서는 한 사람으로 그 이름을 욕단이라 밝히고 있다. 垚(요)는 세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중국에서 삼황(三皇)이란 전설과 한국의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풍백 우사 운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땅을 말하는 토(土)와 임금이 아닌 사(士)는 다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하늘과 임금은 아니지만 가장 닮았다는 뜻이다. 그 하늘과 임금의 수단이란 뜻이다. 兀(올)은 세 사람을 스승으로 섬기는 사람으로 요(堯)자신을 말한다.

 

중국 전설에서의 삼황과 단군신화에서의 삼사란 성경의 인물인 노아와 그 아들인 셈과 셈의 자손인 어떤 족장일 것이다. 그 이유는 노아와 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바벨 심판을 피해가는 것이 성경의 원리다. 홍수 심판 전에 하나님을 경외한 에녹은 휴거 당하였고, 대부분의 족장들은 죽어 심판을 겪지 않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와 긍휼이며 성경의 원리다. 두 번째 이유는 홍수 이전 세상에서 에녹은 구원 사역을 마치고 부활 승천한 예수님을 예표 하였고, 노아는 성령으로 이루는 이 땅에서의 구원 현실을 예표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아는 동방에서 새로운 지상천국의 예표를 지도할 책임이 있었다. 가나안의 배도와 니므롯의 폭력으로 건설된 바벨론을 피해서 동방에서 이상적인 공동체 건설을 지도할 책임이 있었다. 그러므로 옛 신시·조선(神市·朝鮮)이란 공동체는 하나님의 인도와 노아와 셈과 셀라일 세 조상들과 욕단인 요단군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세워진 동양에서 유일한 고봉문명으로 옛 이스라엘왕국과 중세의 가톨릭교회문명 공동체와 같은 구원노선의 문명이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잃어버린 역사가 되어 버렸다.

 

홍산문명 유적이 발굴되고 있는 요하지역은 홍수 심판 이후 아라랏산에서 시작하여 이란고원을 거치고 시베리아에서 잠시 머물다가 만주로 이동해 정착한 욕단족인 요단군족의 정치경제적인 공동체가 형성된 그 당시 이후의 문명유적일 확률이 높다. 중국 전설과 사서에서 기록한 요순의 정치적 이상시대는 이것을 말하고 있다. 얼마 동안 이곳을 중앙으로 해서 이란고원부터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와 만주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욕단족의 연락과 연합과 다스림이 행해졌다. 이곳에서 파견된 우(禹)가 황하 치수에 성공하여 중국이 건설되었다. 욕단일문인 요단군족의 삶이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되자 노아와 셈과 셀라와 욕단은 하나님을 모시고 그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정치경제를 넘어선 교회·왕국(敎會·王國) 건설의 비전과 목표를 세웠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풍백 우사 운사와 삼천무리가 태백산 산정에 도달하여 신시(神市)를 열었고, 단군은 조선을 건국하였다. 신시와 조선은 유대인 보다 먼저 이스라엘과 같은 문명을 건설하였다는 의미다. 이리하여 동방에서의 역사1기 고봉문명은 완성되었다. 동양에서의 유일한 고봉문명이다. 많은 인류형제와 이별하고 수많은 산과 강을 건너 건설한 위대한 문명이었다.

 

////////////////////////////////////////////////////////////////////////////////////////////

 


밝달임금(단군) 욕단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공경하던 셈의 현손(玄孫) 욕단 족속은 빛이 시작되는 땅, 곧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가는 것이 꿈이었다. 그들은 밝고 환한 천국에 계시는 하느님의 백성, 곧 천손민족(天孫民族)답게 밝고 환한 땅을 찾아 가서 온 백성이 밝고 환한 흰 옷을 입고 창조주 하느님께 제사하며 삶을 영위하는 신시(神市= City of God), 곧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기를 소망했다.

 

그리하여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쉬지 않고 동쪽으로 이동하다가(창 10:30), 마침내 동해에 해 떠오르는 ‘밝의 땅’, 동방의 땅 끝에 당도하였다. 그리고 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밝달나라를 세운 우리 밝달겨레(배달겨레)의 조상이 되었다. ‘밝달’의 ‘달’은 ‘아사달’의 ‘달’로서 ‘땅’이라는 말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욕단을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물론 ‘밝달임금’이라고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욕단은 사람들을 ‘밝의 땅’으로 이끌고 온 ‘밝달족’(광명족)의 우두머리(Headship)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군’이 ‘욕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단군’이란 칭호는 ‘밝달임금’(檀國의 君長: king of Bakdal)의 이두식 표현이기 때문이다. ‘단군’은 ‘밝달임금’ 또는 ‘배달임금’ 등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던 우리 동방(조선)의 고유의 호칭을 후세에 한자(韓字)로 의역(意譯)하여, ‘檀(박달)’ ‘君(임금)’ 이라고 표기하여 놓았기 때문에 비로소 ‘단군’이라는 칭호와 발음이 생겨난 것이다.

 

  예수원 설립자 토레이(R. A. Torrey․ 대천덕)는 셈의 세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이 단군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그 근거를 제시한다:


  “…창세기 10:25에 ‘에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에게는 ‘벨렉’과 ‘욕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벨렉’이란 ‘나뉘어진다’는 뜻으로 그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 ‘욕단’은…알모닷, 셀렙 등 여러 사람들의 조상이 되고,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으로 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동방의 산지대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셈의 족속들이기 때문에 동방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욕단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욕단이 혹 단군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계산은 할 수 없지만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비슷한 연대입니다.”(대천덕,「우리와 하나님」, 도서출판 예수원, 1988, 163쪽)


  그의 추측은 옳았다! 우리 알이랑민족사를 시작한 단군은 바로 성경상의 셈의 현손 욕단이었다. 여기에서 그 타당한 근거를 살펴보도록 하자.


  단군 칭호의 의미와 유래


  ‘단군’이라는 칭호는 그 이름 자체에 이 인물의 성격이 어느 정도 집약적으로 반영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단군의 정체를 밝히는데 ‘단군’이라는 칭호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러므로 단군 칭호의 의미와 유래가 무엇인지를 해명해야 한다.

 

단군 칭호의 의미와 유래라고 할 때에는 한자(韓字)로 표현된 ‘단군’의 본래 우리말이 어떤 것이며, 그 우리말의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어원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하는 것들이 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단군’의 ‘군’은 ‘임금’을 표시하는 우리말의 한자 의역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여기서 일단 ‘단군’의 의미를 복원해 보면 ‘단 임금’으로 된다. 그러면 ‘단’자의 의미는 무엇인가? ‘단군’의 ‘단’자는 「삼국유사」에 인용된 「고기」에서 ‘제단 단(壇)’자로 쓴 외에 그 밖의 단군신화들에서는 모두 ‘박달나무 단(檀)’자를 썼다.

「삼국유사」정덕본 이전의 조선왕조 초기의 다른 여러 책들에서는 단군에 대하여 전하면서 ‘박달나무 단’자를 썼고, 단군신화를 전한 「삼국유사」이외의 모든 기록에서도 한결같이 ‘박달나무 단’자를 썼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삼국유사」의  ‘제단 단’ 자는 신화에 불교적 요소가 개입되면서 고쳐쓴 것으로 인정된다. 다시 말하면 「삼국유사」의  ‘제단 단’ 자는 승려 일연이 불교적 제단을 염두에 두고 고쳐 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삼국유사 이외의 모든 기록들이 단군의 '단'자를 ‘박달나무 단’자로 표기했을까? 한자가 통용되기 전에 있었던 단군의 순 우리말 이름은 그렇게 표기해야만 의미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박달나무 단’자는 그 자체만으로 ‘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화에서는 ‘단’자 밑에 또 ‘나무 수(樹)’자를 덧붙여 ‘나무’라는 말을 겹말로 중복시킨 것이 나온다. 바로 ‘신단수(神檀樹)’이다. 이것은 원래의 설화에 있었던 ‘박달나무’란 말의 ‘박달’만을 ‘단’자로, ‘나무’를 ‘수’자로 의역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처럼 ‘단군’의 ‘단’자가 우리말의 ‘박달’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단군은 ‘박달임금’이라는 말이 된다.


  ‘박달’의 ‘달’은 ‘아사달’ 할 때의 그 ‘달’인데, ‘땅’이라는 말이다. 양달이 양지요, 음달이 음지요, 빗달이 비스듬한 땅이다. 이렇게 ‘달’은 ‘땅’이다. ‘박달’의 ‘박’은 ‘밝’과 통한다. 오늘날에도 일상대화에서 ‘밝’의 받침 ‘ㄹ’이 생략되어 ‘밝다’가 ‘박다’로 발음된다.

 

이것은 우리말에서 겹자음 받침을 가진 경우 앞의 겹자음 하나가 발음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음운법칙으로 되는 것과 관련된다(예: 젋다→점다, 굵다→국다, 밟다→밥다, 진흙→진흑). 이로서 ‘박달’의 ‘박’이 ‘밝다’의 ‘밝’과 통하며, 그에 따라 ‘박달’을 ‘밝달’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단군’은 ‘밝달임금’이라는 말이다. ‘밝달’은 ‘밝은 땅’이라는 뜻이다.

 

즉 단군(檀君)은 ‘밝은 땅의 임금’ 곧 ‘배달임금’이란 글자이다. ‘밝달(족) 임금’의 이두식 표현이 ‘단군’이라는 칭호인 것이다. 그것을 보기 쉽게 다음과 같이 표시할 수 있다.

 

                     밝달(檀): 밝은 땅

    밝달임금= 檀君 = 밝은 땅의 임금 = 朴達那羅任儉 = 배달임금


  단군은 '밝달임금'이란 보통명사

 

  단군은 ‘밝달임금’또는 ‘배달임금’ 등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던 우리 동방(조선) 고유의 호칭이었다. 이 토박이말을 후세에 한자(韓字)로 의역(意譯)하여 ‘檀’(박달) ‘君’(임금)이라고 표기하여 놓았기 때문에 비로소 ‘단군’이라는 칭호와 발음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단군은 ‘밝달나라의 임금’(檀國의 君長: King of Bakdal)이라는 뜻을 가진 보통 명사이다. 따라서 ‘단군’은 한 사람이 아니고, 그 자리를 이어받은 후손들 모두가 단군이라고 불리어 왔다. 그래서 단군이라는 한 임금이 1000여 년간 고조선을 통치한 것처럼 후세에 와전되어 버린 것이다.

 

  계림유사(鷄林類事)란 책에선 말하기를 “밝달(檀)은 배달(倍達)이요, 국(國)은 나라(那羅)요, 군(君)은 임금(任儉)이다” 하였다.¹ 와유록(臥游錄)이란 책에선 말하기를, “한밝산은 세속에서 박달(朴達)이라 일컫는데, 세상에서 밝달임금(檀君)이 내려오신 땅이라 이른다” 하였다.² 신단실기(神檀實記)란 책에서 말하기를 “밝달임금(檀君) 때에는 사람들이 밝달(檀)을 배달(倍達)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음이 구을러 박달(朴達)이 되었다” 하였다.³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선 말하기를, “배달(檀)은 나라 이름인 까닭에, 그 자손들은 모두 배달 임금(단군)이라 한다” 하였고,⁴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선 “단군이라 일컬음은 곧 배달 나라 임금의 칭호인 까닭에, 그 나라를 잇는 임금들(嗣君)을 모두 단군이라 일컫는다”라 하였다.5

  

  그리하여 우리는 이때까지의 고찰로써 성경상의 한국인의 조상인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 다름 아닌 우리 겨레의 시조 ‘단군’이라고 충분히 단정할 수 있다. 참으로 에벨의 아들 욕단이 홍수 후 알이랑 고개를 넘어 사람들을 이 동방의 땅 끝, 밝의 땅으로 인도해 온 우리 ‘밝달겨레’의 조상이라면, 사람들은 그를 부르기를 분명히 ‘밝달(나라) 임금’이라고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므로 역사적 인물 욕단이 우리 배달겨레의 조상 '단군'이다.


  단군의 정체를 정확히 해명하는 작업은 아직까지 학계에서 난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안다면 그것은 절대로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무슨 대단한 일도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이다. 우리 알이랑민족의 조상 단군은 의심의 여지 없이 성경상의 셈의 현손 '욕단'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1) 鷄林類事, 檀倍達, 國那邏, 君任儉

2) 臥遊錄, 白頭山, 俗稱朴達 世稱檀君, 下降之地云

3) 金敎獻, 神檀實記 : 尹世復, 檀君考,

4) 後嗣子孫, 仍稱檀君, 蓋檀國君地意, 而襲用之, 東史綱目曰 或云 檀是國號 故其子孫 皆稱檀君

5) 東國與地勝覽, 檀君之稱 卽檀國君之號 古其嗣君 皆稱檀君

 

 

 

  

  성경상으로 볼 때 우리 겨레의 시조 단군은 대홍수 후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와서 배달나라를 세운 에벨의 아들 욕단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단군의 연대와 욕단의 연대가 같다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단군의 연대와 욕단의 연대

 

  단군의 조선 건국 연대에 대하여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2333년이라는 설이 통용되어 왔다. 이 기원전 2333년 설은 고려의 13세기 말 이승휴의「제왕운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그때 이승휴는 자기 저서에서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의 조선 건국 연대를 중국의 요(堯)임금 건국 연대와 똑같이 무진년(戊辰年)으로 본 것인데, 그것은 실제 우리나라의 그 어떤 구체적인 자료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당시 요임금을 중국 한족의 시조로 보면서 -요임금은 동이족이었다- 그의 건국 연대가 우리 단군의 건국 연대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그런 논법을 세웠던 것이다.


  건국시조 단군 때로부터 상당히 긴 세월이 흐른 후세에 살던 우리 선조들은 단군이 나라를 세운 연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였고, 다만 단군이 매우 오랜 옛적에 나라를 세웠다는 막연한 인식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의 건국 연대를 자기들이 알고 있던 가장 오랜 옛 임금에 비교하여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이요, ‘요와 같은 시대’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주전 2333년인 단군기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단군의 즉위 원년의 절대 연대는 사실로서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삼국유사」등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단군이 요와 동시에 즉위해 나라를 건국했다는데 의의가 있을 뿐이다. 요와 순은 이상적인 통치시대를 펼친 인물의 대명사격이다.

 

특히 요는 공자가 성군으로 추앙하던 인물이다. 바로 그러한 요임금과 단군이 동시대에 즉위해 조선을 건국하였다는, 즉 우리나라가 중국과 대등한 시기에 건국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라는 것을 알리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단군의 즉위 연대는 그 절대 연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내세우고자 했던 의식세계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따라서 단군을 성경상의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라고 단정할 때에 단군 시대와 욕단 시대의 일치 여부는 논란의 소지가 될 것이 전혀 없다. 주전 2333년이라는 단군기원은 사실로서의 연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는 그보다 훨씬 더 옛날로 소급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주전 2333년인 단군기원이 성경상의 욕단의 연대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대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역추적하여 계산해 보면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타락 원년(元年)은 B.C. 4114년이 된다.

 

그리고 그 자손들이 타락을 계속해서 온 땅이 강포와 죄악으로 가득 차 하느님께서 큰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는데, 그 홍수가 발생한 연대가 B.C.2458년이다. 셈의 증손자 에벨은 B.C.2391년에 태어나 B.C.2357년 욕단의 형인 벨렉을 낳았고, B.C.1927년까지 살았다.


  이 성경 연대는 성경 연구가에 따라 연대 계산에 조금씩 차이가 있어 좀 더 위로 소급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정확무오한 연대 산출(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이 아니라 욕단의 연대가 바로 단군 시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관점을 취하든 우리는 아득한 옛날 백두산정에서 창조주 하느님께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조선을 건국한 밝달임금, 곧 단군이 성경에 산맥을 넘어 동방으로 갔다고 기록된 에벨의 아들 욕단이라고 얼마든지 단정할 수 있다.

 

  조선이라는 국호의 처음 이름 ‘주신’

 

  하느님의 사람 셈의 현손 욕단이 조선을 건국했다는 사실은 조선이라는 국명에서 드러난다. 조선이라는 국호는 원래 ‘주신’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의 지나(支那)식 표현이다. 한국인의 선조인 욕단은 그가 도달한 시베리아와 만주 대륙에 이르는 드넓은 동방의 새 땅을 하느님이 ‘주신’ 땅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나라 이름을 ‘주신’이라고 했는데, 후일에 ‘주신’이라는 말의 옛 음이 지나의 옛 글에 식신(息愼), 숙신(肅愼), 직신(稷愼), 주신(州愼), 조신(鳥愼), 주신(珠申), 조선(朝鮮)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된 것이다. 즉, 한민족 최초의 나라 이름인 ‘조선’의 본 뜻은 ‘주신’이라는 순 우리말인 바, 하느님께서 그 땅을 ‘주신’의 ‘조선’으로서 ‘하느님이 주신 땅’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신본주의적 국호인가? 우리 겨레의 근본사상인 '알이랑 정신'과 부합하는 국명이다.


  흔히 아침 조(朝), 빛날 선(鮮)에 견주어 ‘아침 해가 빛난다’는 뜻에서 ‘조선’이라는 국호가 생겼다 하나 조선이라는 국호는 상형문자가 생기기 전에 이미 있던 국호이다. 그렇다면, ‘조선’이라는 말은 우리의 고대어로 무엇을 뜻하였겠는가? 바로 그것이 ‘주신’인 것이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는 조선의 어원은 숙신(肅愼)이라고 하고,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서는 ‘숙신’의 옛 이름을 ‘주신(珠申)'이라고 하고, 주신은 소속 관경(觀境)을 가리키는 만주말이라고 했다. 이는 곧 지금의 말로 일정한 지역의 땅, 영토를 의미한다. 바로 여기에 조선의 원의(原義)가 있다. 즉 ‘주신’이 ‘숙신’의 어원이요, ‘조선’의 어원이기도 한데, 우리가 터 잡고 사는 땅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살라고 ‘주신(賜)’ 땅이라는 뜻의 ‘주신’인 것이다.


  또한 욕단은 ‘주신’(조선)을 건국한 역사적인 그 날을 ‘하늘 문이 열렸다’, 즉 개천(開天)이라고 했다. 아마도 욕단이 조선을 건국하기 전 먼저 백두산 산정에서 하느님께 단을 쌓고 경건히 천제를 드렸을 때, 아라랏 산정의 노아의 제사를 ‘하늘 문을 여시고’ 응답하신 하느님께서 욕단의 제사도 그렇게 열납하신 것 같다.

 

그렇기에 나라를 세운 개국일을 ‘개천’(開天), 즉 ‘하늘이 열렸다’고 했을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개국일(開國日)을 통상적으로 ‘건국기념일’이라고 부르지만, 천손민족인 우리 한국인은 오늘날까지 ‘개천절’(하늘 문이 열린 날)이라고 부른다. 이 얼마나 선민(選民)다운 특별한 건국기념일의 이름인가! 이 같은 명칭은 세계에서 배달민족과 유대민족 외에는 없는 특이한 사항이다.


  알이랑 민족의 조상 단군인 욕단

 

  창세기 10장 2절에 보면 백인종의 조상인 야벳의 아들들 가운데 두발(Tubal)과 메섹(Meshech)이라는 인명이 나온다. 서구 성경학자들이 쓴 책들을 보면 오늘날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Moskva)라는 지명은 야벳의 아들 ‘메섹’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메섹’이 그곳으로 가서 정착했기에 그의 이름이 지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랄산맥 동쪽에는 ‘토블스크’(Toblsk)라는 지방이 있는데, 그것 또한 야벳의 아들 ‘두발’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설명한다. ‘두발’이 그곳으로 가서 살았기에 그의 이름을 지명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서양의 성경 주석가들이 무슨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의 모스크바나 토블스크로 가서 ‘메섹’과 ‘두발’을 만나고 온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어떤 고고학적 유물이나 문헌상의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메섹은 모스크바와, 두발은 토블스크와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악착같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그대로 수용한다. 왜냐하면 백인종은 야벳의 후손이므로 얼마든지 그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홍수 후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와서 밝달나라를 세운 밝달족의 우두머리가 에벨의 아들 욕단일진데, 우리가 그를 ‘단군’이라고 단정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단군이란 '밝달임금'의 이두식 표현방식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앞서 자세히 설명했듯이 욕단의 목적지 ‘스발’(새팔)은 광명의 본원지인 ‘새밝나라’, 곧 ‘새벌’(시베리아~만주)이다. 게다가 욕단의 연대와 단군의 연대는 같은 시대이다. 따라서 성경상의 한국인의 조상 욕단을 우리 한민족의 시조 단군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결코 억측이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타당한 결론인 것이다.


  그렇다!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은 우리 알이랑민족사를 시작한 한국인의 조상 단군이시다. 알이랑민족 한국인의 기원은 셈의 가계, 그 중에서도 약 4300여 년 전에 동양으로 이주하여 우리 배달 동이겨레의 선조가 된 욕단의 후손, 곧 단군의 자손이다.

 

그리하여 동방의 한국인은 여호와 하느님께서 감추어 놓으신 또하나의 선민인 것이다. 에벨의 혈통인 욕단의 후손은 셈 계열 내에서 특별 선택을 받은 천손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천손강림(天孫降臨)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즉, 우리 한국인의 계보가 셈→아르박삿→셀라→에벨→벨렉과 욕단으로 이어지는 ‘천손민족’이라는 사실이 신화에 반영된 것이다. 건국신화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건국사실의 신화적 반영이다. 따라서 건국 역사를 밝히는데 중요한 사료(史料)의 하나가 된다.


  단군은 신화의 인물이 아니다. 그는 동방 ‘밝의 땅’에 당도하자 맨 먼저 백두산 산정에 올라 창조주 하느님께 천제를 드리고 조선을 건국한 역사적 인물로서, 성경상의 한국인의 기원은 노아의 작은 아들 셈의 현손(玄孫) 욕단, 곧 밝달임금이다.


  나무엔 뿌리가 있듯이 사람에겐 조상이 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생길 수 없을 뿐더러 잘 발육하기도 어렵듯이 조상 없는 사람은 생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잘 발전하기도 어렵다. 개인과 씨족에 시조(始祖)가 있듯이 민족에게도 시조가 있다. 우리 배달민족(檀族=밝달민족)의 시조는 단군이신데, 이분을 한자(韓字)를 빌어 이두문(吏讀文)으로 단군왕검(檀君王劍)이라 적고, 또 이 분을 간단히 ‘배달임금’(檀君) ‘한배검’ ‘단군’ 또는 왕검(王劍)이라 하였다. 그가 바로 대홍수 후 알이랑 고개를 넘어 동방의 땅 끝 ‘밝의 땅’으로 천동하여 밝달나라를 세운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이었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 아바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 아바님은 단군이시니

     

                                                                                       -정인보 작시-

 

_________________________

* 종래에 ‘단군’은 무당의 일명인 ‘당굴’의 음을 따서 쓴 것이고, ‘당굴’은 몽골어의 Tengri(天 ․ 祭主)와 공통된 말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신화의 내용과 동떨어져서 ‘단군’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에 본질적인 결함이 있다. 신화는 ‘단군’을 ‘당굴’로 해석할 수 있는 그 어떤 시사도 주지 않으며, 애당초 이 설의 주장자 자신도 신화에서 그 의미를 도출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샤머니즘의 본질인 사자(死者)의 혼령을 중개하는 샤만적 존재나 술이나 가무 등의 요소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단군의 본뜻을 가장 바르게 또 완전히 알아내려면 무엇보다 신화의 내적 연관 속에서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역사적․언어적 사실과 논리적 이치에 따라 근본적으로 풀어 밝히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신화와 동떨어진 종래의 해석은 우선 그 접근 방법부터가 틀렸으므로 믿을 것이 못 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욕단의 후손을 찾을 수 있는 단서(1)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가계’는 다른 셈의 후손들과는 달리 그의 열셋 아들의 이름을 다 열거하여, 그 이름이 두 번이나 명백히 기록되어 성경에 남아있다(창 10:6~29; 대상 1:19~23). 왜일까? 에벨의 자손인 그들은 ‘벨렉의 가계’와 함께 신적 선택을 받은 백성, 곧 천손민족(天孫民族)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느 나라 백성일까? ‘욕단의 후손’은 처음 세대 이후엔 언급이 없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느님은 그들이 우리 알이랑 민족 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성경에 결정적인 단서를 남겨 두셨다. 그것은 창세기 10장 30절 말씀이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창 10:30)

 

 

바로 이 구절이 욕단계 선민이 누구인가를 찾는 데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한다. 성경은 욕단의 거주지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메사’와 ‘스발’의 위치가 어디인지, 그리고 ‘동편 산’이란 어느 지역의 산을 지칭하는 것인지를 확인하면 또 하나의 선민 욕단계 천손민족이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어떤 성경 연구가들은 욕단의 아들 이름이 역사적으로 아랍 부족의 이름과 같은 스바, 오빌, 하윌라이며 더욱이 아라비아 남단에는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지명도 나타나기 때문에 욕단이 아라비아로 갔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아라비아 남단에 정착하여 현(現)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아랍 부족의 이름은 함의 가계인 구스 민족의 후손에 속한 것이다.

 

 

초기 아랍 민족은 구스 민족이 분명하며 그들은 셈족이 아니다. 함의 자손 구스의 맏아들이 스바였으며 손자 중에도 스바가 있었다(창 10:6). 또 하윌라도 구스의 둘째 아들이다. 그들이 그 땅에 살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이름을 따라서 지명을 삼은 것이다. 오빌도 스바와 하윌라 부근의 홍해 안에 있는 금산지로 알려진 곳으로서 솔로몬 왕을 방문했던 스바 여왕의 통치 지역이었다. 따라서 그곳도 역시 함 계통의 구스 민족이 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왕상 10:1). 흔히 이름은 가계에 관련된 어떤 의미를 가지지 않고, 서로 분리된 후손들 사이에서 널리 되풀이되어 사용된다.

 

 

 

 

그리고 현(現) 아랍 민족은 이스마엘의 후손이 퍼져 있고(창 25:13~18), 롯의 후손 모압과 암몬 족속(창 19:36), 그 밖에 셈의 아들인 엘람족, 앗수르족, 룻족, 아람족 등이 섞여 있다.

 

 

 

 

그러므로 욕단이 아라비아로 가서 아랍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성경 연구가들은 ‘메사’와 ‘스발’의 위치를 결코 찾을 수 없다. 한결같이 그들은 ‘메사’와 ‘스발’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라비아 주변에는 그런 곳이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기 때문이다.

 

 

 

 

‘욕단의 후손’이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를 찾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창세기 10:30은 욕단계 선민이 동양에 거주하고 있다고 말한다.

 

 

 

동방 산

 

 

 

 

욕단은 아라비아로 가지 않았다. 성경은 욕단의 거주지가 ‘동방 산지’(창 10:30)라고 말씀하고 있다. 아라비아는 본문이 의도하는 ‘동방’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산지’가 없기 때문이다. 창세기 10:30의 ‘산’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르’라고 하는데, 그 뜻은 단지 하나의 산(one mountain)을 뜻하기 보다는 ‘산맥’(mountain-range), ‘산지’(mountain-region) 등의 의미를 갖는다. 특히 본문처럼 단수로 사용되었을 경우에는 ‘산맥’ 혹은 ‘일정한 지역의 산들’, 곧 ‘산지’를 가리킨다.

 

 

 

 

한글 개역성경은 ‘동편 산’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에 원문의 뜻을 충분히 전하여 주지 못한다. ‘동편 산’이라는 말은 ‘동편 산지’ 혹은 ‘동편 산맥’ 또는 ‘동방 산악지대’로 번역해야 원문의 뜻이 충분히 전달된다. 공동번역 성경은 ‘동편 산’이라는 말을 ‘동쪽 산악지대’라고 번역하여 원문의 뜻을 정확히 전하여 주고 있다. 또한 일본 성서공회가 발행한 일본어 성경도 ‘동방 산지’라고 번역하여 한글 개역성경보다 원문이 의도하는 바를 더 잘 전달해 주고 있다.

 

 

따라서 욕단은 아라비아로 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아라비아 남단에는 ‘산맥’이나 ‘산악지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곳은 지도책에도 ‘산’이나 ‘산맥’ 또는 ‘산지’가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아라비아는 지도상에 대부분 사막으로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아라비아에는 어떤 특별한 산이나 산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세가 말한 욕단 족속이 거주했다는 ‘동쪽 산악지대’라는 곳은 산맥과 산악지대가 많은 동양의 산들을 표시한 것이다. ‘동편 산’은 HAR HA KEDEM에서 변형되었다. 대개 KEDEM은 ‘동양’(Orient) 또는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를 뜻한다. KEDEM의 어원은 ‘가장자리’(Front)이며, 지리학적 의미로는 태양이 떠오르는 쪽에 있는 아시아의 해변 지역들을 언급한다. KEDEM은 또한 고대의 시작(시대의 가장자리, the Front of Time)이라는 어원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곳에서는 ‘고대 동양’(Ancient Orient)으로 번역해야만 한다. 따라서 HAR HA KEDEM은 ‘고대 동양의 산’을 의미한다. 이 산은 고대 전승의 동양에 있던 어떤 특별한 산을 언급할 수도 있고, 전(全) 동양을 상징할 수도 있다. 분명히 동양에는 많은 큰 산들이 있다. 이것은 모든 욕단의 후손이 동양에 거주함을 의미한다. 그들은 고대에 산을 넘어 동양으로 갔다.

 

욕단의 후손을 찾을 수 있는 단서(2)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창 10:30). 이제 ‘메사’의 위치를 확인해 보자.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이 곧바로 시날 평원으로 옮겨가 하느님을 대적하여 바벨탑을 쌓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성경을 정확히 이해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11장 2절은 홍수 이후 사람들이 바벨론 평지에 이르기 전에 먼저 동쪽으로 여행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동편으로부터(from the east) 이동할 때 그들은 시날 땅에서 평지를 발견하여 그들은 거기서 살았다.”(창 11:2․ 원전 직역)

 

 

 

 

한글 개역성경에는 ‘동방으로’ 옮겨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동방으로부터’라고 되어 있다. 흠정역 성경(King James Version)은 원문에 맞게 ‘from the east’로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옮겨가고 있었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던 중에 시날 평지(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계곡 안에 있는 지역)를 만났던 것이다.

 

 

 

이것은 홍수 생존자들이 방주가 정박했던 아라랏 산지를 떠나 처음 이동했던 지역이 바벨론 평원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대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아라랏 산지를 떠나 먼저 동쪽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노아의 후손들은 바로 그 동방의 어떤 장소(중앙아시아 근접 지역)로부터 서쪽으로 옮겨가다가 시날 평지를 만난 것이다. 이것이 홍수 생존자들의 바벨론 이전 시대의 이동 경로였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에게 욕단이 나중에 어느 경로로 이동하였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메사’의 위치를 찾는데도 단서가 되므로 주목해야 한다.

 

 

 

 

홍수 생존자들의 바벨론 이전 시대의 이동 경로는 이란 고원을 지나 바벨론 동부에 이르는 것으로 100년 이상 계속되었다. 창세기 11:10~16은 에벨이 벨렉을 낳기까지 홍수 후 101년이 지났음을 말해주며, 창세기 10장 25절은 벨렉이 바벨론에 거주했음을 보여준다. 노아의 6대손 벨렉에 관해 창세기 10:25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에벨에게 두 아들들이 낳아졌다. 한 이름은 벨렉인데 그의 날들에(in his days) 그 땅이 나뉘었다. 그리고 그의 형제의 이름은 욕단이다.”(원전 직역)

 

 

 

 

성경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들의 이름은 예언적인 사실을 담고 있다. 가령 가인에게 살해당한 ‘아벨’(허무하다)이나, 하느님과 온전히 동행하다가 산 채로 승천한 ‘에녹’(봉헌되었다)은 이름에서 그들의 운명이 암시되어 있다. 이렇게 인명(人名)은 하나의 예언적 계시이다. 벨렉이라는 이름도 그러한 이름 중의 하나이다. 그의 이름은 ‘나뉘다’라는 뜻인데, 실제로 그의 때에(in his days) 세상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W.B.C.(Word Biblical Commentary) 주석은 ‘벨렉’의 이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벨렉은 ‘나누다’(גלפ-팔라그)라는 어근에서 온 것이다. 보통명사로서 이 단어는 ‘운하, 수로’를 의미한다. 여기서 이 어원은 이 어휘에 보다 추상적인 의미(나눔)를 부여한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름들처럼 이 이름도 예언적이며 벨렉의 생애에 일어날 중대한 사건을 예시한다.”(고든 웬함 지음, 박영호 옮김, 「WBC 성경주석 창세기 상」, 서울: 솔로몬, 2001, p.423)

 

 

 

 

벨렉은 “나뉘다”는 뜻이다. 이 ‘나뉨’은 바벨탑 사건으로 세상의 언어가 여러 종족별로 나뉘어 더 이상 한 종족으로 살 수 없게 된 상황을 말한다. 바로 이것이 벨렉이란 이름이 예시했었던 중대한 사건이다. 이는 벨렉이 언어 혼란으로 세상이 나뉠 때에 바벨론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욕단은 벨렉과 함께 바벨론으로 가지 않았다. 욕단은 동쪽 지역에 거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시날 평지에 이르기 전에 무리와 헤어졌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창 10:30) 이동하던 무리들은 동쪽 지역으로부터 시날 평지로 접근하였다. 따라서 욕단이 동쪽 지역에 거하기로 결정한 사실은 그가 서부로 향하는 주요 집단과 헤어져 동양으로 이주 경로를 변경하였음을 증거하여 준다.

 

 

 

 

벨렉과 욕단의 헤어짐으로 두 종류의 히브리 가계가 형성되었다. 즉 서부 아시아에 거주하는 서부 히브리 민족과 동양에 거주하는 동부 히브리 민족이다. 창세기 10장 21절은 셈이 ‘에벨 온 자손의 조상’, 즉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에베르’에서 ‘히브리’가 유래되었다. ‘히브리’(ירבצ-이브리:Hebrew)는 에베르(רבצ)의 종족을 나타내는 말로서, ‘에벨’(Eber) 또는 ‘에벨의 계통을 잇는’(descended from Eber)을 뜻한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창 10:25).

 

 

따라서 히브리 민족은 에벨로부터 나온 두 가계, 곧 벨렉과 욕단 계통을 잇는 자손이다. 즉 아시아 서쪽으로 간 벨렉계 선민은 서부 히브리 민족이요, 동양으로 간 욕단계 선민은 동부 히브리 민족이다. 욕단의 후손도 히브리 민족에 속한다.

 

 

 

 

우리는 창세기 9장 28절에서 노아가 바벨탑 사건 이후까지 생존하였으며 다른 홍수 이후 족장들도 그러하였음을 알 수 있다(창 11장). 따라서 만일 그들이 그 당시 바벨론에 있었다면 바벨탑 건설에 참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는 바벨론에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노아는 하느님 앞에서 은혜를 입은 자요(창 6:8), 의로운 사람이었기에(겔 14:14; 벧후 2:5) 분명히 바벨론의 사악한 행위와 니므롯의 왕국(창 10:8~10)에 반대했을 것이다.

 

 

니므롯은 함의 손자로서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옮기도록 인도한 사람이었으며, 그곳에서 바벨탑 건설을 선동했던 인물이다. 성경은 노아와 셈, 아르박삿, 셀라, 에벨이 이 시기에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문맥 주석적 방식으로 유추할 만한 합리적인 결론은 그들이 욕단과 함께 아시아로 갔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어느 시대나 배교가 극심할 때 참된 믿음을 지닌 소수의 무리를 항상 남겨두셨다. 그들을 ‘남은 자’(the Remnant)라고 하는데, 욕단 족속은 바로 그 시대의 ‘남은 자’였다. 셈족의 현저한 가지 욕단 족속은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 니므롯에 의해 위협받는 셈계의 일신신앙을 보전(保全)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욕단과 그와 함께 한 다른 모든 홍수 후 족장들은 이란 고원이나 중앙아시아의 어떤 장소에서 서부 바벨론으로 이동하는 무리들을 떠날 순간을 선택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욕단 민족이 동양으로 정착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때에 인류는 대홍수 이후 첫 번째 이산의 역사를 경험했다. 니므롯을 따라 서부 바벨론으로 이동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욕단과 함께 알이랑 고개를 넘어 ‘스발’을 향해 가고자 동양으로 이동하는 거룩한 무리들로 홍수 생존자들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욕단은 동방의 산악지대로 이동했는데, 메사(Mesha)는 그 동양의 산악지대들(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의 길목에 위치한 곳으로 지금 아라랏 산 동쪽 이란 북동부에 있는 메삿(Meshhad)이라는 곳이다. 욕단 족속은 이 ‘메사’로부터 ‘스발’을 향해 가고자 동양의 산악지대들로 대장정을 시작했던 것이다. 어떤 성경 주석가는 ‘메사’를 ‘메소포타미아’의 옛말이라고 하나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우리 겨레의 노래 ‘알이랑’은 바로 그때에 욕단의 가계가 동방으로 이동하면서 불렀던 ‘찬송가’였다. 앞서 우리는 ‘알이랑’의 비밀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니, 곧 ‘하느님 중심 사상’이요 ‘신본주의 정신’이다. 즉 욕단은 홍수 후 함족 니므롯에 의해서 셈족의 하느님 신앙이 강하게 흔들릴 때에도 결코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도전받는 유일신 신앙을 보전하고자 ‘알이랑 정신’ 즉, ‘하느님 중심 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갖고서 새 땅(스발=새발=새팔=새벌)을 찾아 ‘알이랑’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아시아로 멀리 천동(遷動)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현존하는 인류 최고의 찬송가인 알이랑의 태동 배경이다.

 

 

 

욕단의 후손을 찾을 수 있는 단서(3)

 

 

 

스발

 

 

욕단 족속은 ‘스발’을 향해 동쪽으로 옮겨갔으며 ‘스발’은 그의 목적지였다. 창세기 10장 30절을 히브리어 원문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And their dwelling was from Mesha, as thou goest unto Sephar a mount of the east. KJV )

 

 

 

 

‘스발’을 히브리어에서 음역하면 ‘새팔’이다(우리말 성경 개역판의 히브리어 음역 표기는 고대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으로부터 왔다). 여기에서 ‘새팔로 가면서'(as thou goest unto Sephar)라는 말은 욕단 족속이 동양의 어떤 특정한 산지에 정착한 것이 아니라 ‘새팔’을 향해 계속 동쪽으로 옮겨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팔’의 위치는 어디일까? 어디가 욕단이 최후로 도달한 ‘새팔’인가?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새팔’은 결코 당시에 존재하거나 알려진 도시와 장소의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홍수로 인해 지워졌기 때문이다. 욕단이 천동하기까지 동양에는 아직 누구도 살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창세기 10장 30절에 언급된 ‘새팔’은 현실적인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예시적’인 지명이다. '예시'란 나중에 원형으로 구체화 될 어떤 진리가 미리 '암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새팔’의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지명 및 위치를 찾아야 한다.

 

 

‘새팔’은 '새발'

 

예시적 지명 ‘새팔’은 어디일까? 일단 그곳은 아시아 동쪽의 어느 곳에선가에서 추적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욕단은 동방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과연 어디를 뜻할까? ‘시베리아'이다. 알타이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좀더 이동하면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진다. 시베리아는 고조선의 창건 무대인 만주 대륙이 연장된 땅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의 고향이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멀리 천동한 욕단 족속은 남북 만주 및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방의 새 땅을 '새발'이라고 하였다. ‘새발’은 ‘새벌’의 고어로서, ‘새 땅’ ‘새 벌판’이라는 뜻이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바로 우리 한민족의 발상지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예시한 것이다. ‘새팔’과 ‘새발’은 발음이 아주 유사하다. ‘ㅍ’을 약하게 소리 내면 ‘ㅂ’이 된다. ‘ㅍ’과 ‘ㅂ’은 모두 ‘파열음’으로서 한 계통의 소리이다. 따라서 자주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안팎’은 ‘안밖’이요, 동이족의 후예인 인디언은 ‘아버지’를 ‘아파치’라고 부른다. 따라서 ‘새팔’ = ‘새발’로 간주할 수 있다.

 

 

 

 

그리고 ‘새발’의 어원은 ‘새밝’인데 ‘새 밝은 곳’이라는 말이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인 그 땅이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나라(새光明國)이기 때문이다. ‘새발’의 ‘발’은 ‘밝’에서 가지 쳐 나온 말로서 원래는 ‘광명’의 뜻이었는데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새발’의 ‘발’은 곧 ‘벌’인 것이다. ‘밝’은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이 그의 명저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 강조했듯이 우리 배달겨레의 사상의 뿌리를 이루는 본원적인 말이었다. 그것은 신(神)이며 신성(神聖)한 것이다. 그것은 태양이며 광명이고 생명의 원천이다.

 

 

 

 

‘배달’이라는 말은 ‘밝달’에서 나왔다. ‘배달겨레’ 할 때의 ‘배’의 뿌리도 ‘밝’이다. 그리고 ‘달’은 ‘아사달’ 할 때의 그 ‘달’인데 ‘땅’이라는 뜻이다. 곧 양달이 양지요, 음달이 음지요, 빗달이 비스듬한 땅이다. ‘밝의 땅’은 그래서 ‘배달’이니 이 말에는 우리 배달겨레의 얼과 숨결이 서린다.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말인지 모른다. 이 ‘밝’에서 가지 쳐 나온 말 가운데 하나가 ‘발’인데, ‘발’은 ‘밝’ 즉 처음에는 ‘광명’의 뜻이었으나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뀐 것이다. 순수한 우리말로 된 옛 한국의 지명에는 ‘발’로 끝나는 땅이름이 상당히 많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새발'인데 그것은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으로서 ‘광명의 본원지’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욕단은 알이랑 고개를 넘어 빛이 시작되는 동방의 새 땅, 곧 시베리아로부터 남북만주에 이르는 ‘극동아시아’까지 아주 멀리 천동(遷動)했던 것이다. 만주 벌판이 연장된 땅인 시베리아는 우리 겨레의 역사의 고향이다.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온 북방계 아시아인이다.

 

 

 

 

욕단 족속은 왜 그렇게 빛이 시작되는 땅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까지 멀리 이동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욕단의 가계는 바벨탑 건설에 가담하지 않은 셈족의 진정한 장자였다. 그들은 ‘하느님 신앙’이 위협받던 그 암울한 시대에 ‘알이랑 정신’, 곧 ‘하느님 중심 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끝까지 지켰던 단 하나의 천손민족이었다. 이렇게 창조주 하느님을 가장 공경했던 욕단계 선민 한국인의 조상은 타민족과 구별되는 천손민족다운 기질을 매우 많이 갖고 있었다. 그 현저한 민족성의 하나가 밝고 환한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섬기는 하느님이 밝고 환한 천국에서 빛 가운데 계시는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천손민족인 자기들의 삶의 터전으로 빛이 시작되는 땅, 곧 ‘새밝나라’인 ‘새벌’(새팔 = 새발)을 목적지로 삼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 밝고 환한 동방의 새 땅을 찾아가서 신시(神市), 즉 하느님의 나라(천국)를 건설하고자 했다. 욕단 족속이 알이랑 고개를 넘어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 곧 ‘새벌’까지 멀리 천동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공경하던 천손민족 에벨의 혈통 욕단의 가계는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밝달)을 찾아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를(파미르고원→ 천산산맥→알타이산맥) 넘어 쉼 없이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알타이 고개를 넘어 동쪽으로 좀더 가면 바이칼 호수가 나온다. 이 바이칼 호는 우리 민족을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주도한 유목민족들을 낳고 길러온 태반이다.

 

 

 

 

바이칼호수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대평원이 펼쳐지고, 호수 동남쪽에는 만주 벌판이 한반도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호수 북쪽은 북반구 북단이기 때문에 볕도 약하고 빛도 강하지 못하다. 그곳은 광명의 본원지가 아니다. 그래서 욕단 족속은 아침에 뜨는 해를 좇아서 호수 동남쪽으로 이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동녘 해 뜨는 밝은 땅에서 가장(한) 밝은 산인 한밝산(太白山=白頭山)에 집결하였다. 이 가장 밝고 밝은 한밝(太百)은 땅이요 터이니(基, 垈) 곧 밝달(배달)이다. 즉,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이다!

 

 

 

 

욕단 족속은 이 ‘밝의 땅’에서 ‘한밝산’을 발상지와 중심터로 삼아 한밝산과 그 변두리에 정착했다! 왜냐하면 그곳이 동방에서 가장 빛 밝고 볕 밝은 땅인데다,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은 셈의 후손인 그들이 산정제사(山頂祭祀)를 드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태백산 천손강림(天孫降臨)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배달겨레의 성경상의 시조는 바로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다!

 

 

 

 

한밝산의 밝달 곧 배달은 빛밝(光明)고, 볕밝(暘明)아, 사람이 먹는 풀, 나무, 과일, 새, 짐승 등이 자연히 많아서, 아득한 옛적에는 그곳이 사람 살기에 가장 좋은 땅이며 터였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이 배달을 낙원으로서 하느님이 점지(占指)하신 땅이라고 믿었었다. 하느님의 사람 욕단은 바로 이 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밝달(배달)나라를 세웠다. 이 한밝은(가장 밝은) 배달에 욕단이 세운 나라는 가장(한) 환(桓)한 나라인 까닭에, 이것을 그들은 하늘나라(天國 = 한나라), 신의 나라(神國 = 神市 = City of God)라 하였다.

 

 

 

 

이제 우리는 욕단의 목적지 ‘새팔’의 위치를 확실히 찾았다. 예시적 지명인 ‘새팔’은 ‘새벌’(새발)이요, '새발'은 '새밝' 곧 ‘새 밝은 곳’인데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밝달) ‘배달’인 것이다! 그 땅은 우리 배달겨레가 처음부터 터 잡고 살아온 땅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하나의 선민 욕단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아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존귀한 백성은 바로 알이랑 민족 한국인이다!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욕단 족속은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지극히 공경하여 광명의 본원지인 새밝나라(새발=새팔=새벌)를 찾아가려고 아침에 돋는 해를 따라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쉬지 않고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동녘에서 가장(한) 높고 밝은 산인 한밝산(태백산→백두산)에 올라 유일신 하느님께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천지(天池)가 솟아 오른 산정을 새 출발의 기점으로 삼은 백의민족이다!

 

 

 

 

욕단의 후손이 처음 세대 이후에 더 이상 성경에 언급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손민족인 그들은 아주 먼 아시아 동쪽으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새벌과 시비리

 

시베리아는 만주 벌판이 연장 된 땅으로서 만주와 같은 땅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는 곳이다. 그곳은 우리 배달겨레의 역사의 고향이다. 따라서 그곳을 부르던 우리의 땅 이름이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는데, 그것이 토박이말로 ‘시비리’이다. 이 ‘시비리’란 바로 ‘새발’(새벌)의 변음이다. 우리 한글의 홀소리 ㅏ(․)가 ㅏ~ㅓ~ㅗ~ㅜ~ㅡ~ㅣ로 구울러 감에 따라, '새'가 또 사~서~소~수~스~시로 구울러 감이 보통이다. 우리말 ‘새’가 그 같이 여러 가지 소리(음)로 나타난다. ‘시비리’의 ‘시’는 ‘새’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시비리’의 ‘비리’는 벌(발)의 의미를 갖는 순수한 우리말이다<‘비리’는 부리(夫里), 벌(伐), 화(火), 평(坪), 불(佛), 불(不), 반(半), 비이(卑耳), 부여(夫餘), 원(原), 비(臂), 불이(不而), 부루(夫婁), 발해(渤海), 부여(夫如) 등으로 다양하게 바뀌어 쓰인 벌(판)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로서, 우리 겨레의 삶이 이루어진 곳에서는 널리 곳곳에서 쓰였었다>. ‘비리’와 비슷한 말로 ‘누리’가 있는데, ‘비리’는 ‘벌’만 뜻하지만 ‘누리’(온누리)는 땅덩어리, 곧 산과 계곡, 강과 바다, 벌과 들 등 땅 위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시비리’는 시(새:新)+비리(벌:平野)의 조어구조를 갖는 ‘새벌’과 같은 뜻의 말이다. 즉 시베리아의 가장 오래 된 옛 이름이 한국어 ‘시비리’이다. 이 토박이말을 우리는 잊고 있으나 북한의 조선말 사전(사회과학 출판사, 1992년)은 ‘시베리아 → 명사 씨비리’로 분명히 풀이해 놓았다.

 

 

‘시비리’가 ‘시베리아’로 불려지게 된 것은 고구려가 망한 후 방치되던 ‘시비리’를 16세기에 러시아가 불법강점(不法强占)을 하면서부터이다. 러시아족이 동침(東浸)한 이후 ‘시비리’는 그 신비한 모습을 세계사에 드러내게 되었는데, ‘시비리’를 강침한 러시아 사람들도 그 땅을 예부터 부르던 이름 그대로 ‘시비리’라고 불렀다. 그것을 영국인들이 듣고 마치 고려를 ‘코리아’라고 부른 것처럼 ‘시베리아’라고 부른 것이 오늘날 ‘시베리아’로 세계에 알려진 것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400여 년 이전까지는 ‘시베리아’라는 말은 지구상에 없었다. 오직 한국어 ‘시비리’가 있었을 뿐이다. 시베리아는 한국어 ‘시비리’에서 유래한 영어식 지명일 뿐이다. 오늘날 ‘시베리아’는 러시아의 땅으로 되어 있지만 16세기에 러시아족이 우랄 산맥을 넘어서 동방을 침략해 오기 전까지는 그 땅은 러시아와 전혀 인연이 없는 땅이었다.

 

 

 

 

욕단은 홍수 이후 동양으로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가장 먼저 이동한 족족이었으며,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처음으로 개척 지배했던 동양의 선주민이었다. 그런데 역사가들은 고대에 시베리아와 중원(中原) 및 극동 지역을 가장 먼저 차지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한국인의 선조인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말한다(임승국․ 주관중, 「다물의 역사와 미래」, 다물민족연구소, P. 63). 그러므로 욕단의 후손이 한국인인 것은 의문의 여지가 더욱 없다.

 

 

 

 

그렇다! 한국인의 선조인 동이족은 고대에 알타이 산맥과 바이칼 호수 주변의 ‘시베리아’에 넓게 퍼져 살면서 극동으로 이주해 왔다. 우리 한민족의 뿌리는 단군이며, 그 정신적 고향은 북방, 특히 백두산과 바이칼호에 있다.

 

 

동이의 영역은 대체로 지금의 만주를 중심으로 하여 서쪽으로는 몽고와 연계되어 있고 동쪽으로는 차이나의 만리장성 안 깊숙이까지, 북쪽으로는 ‘시베리아’로 뻗어 실로 광활한 지역에 걸쳐 있었다. 바로 그들이 ‘새발(새팔)’로 간 욕단 족속으로서 고대 한국인인 것이다!

 

 

 

 

에벨로부터 형제 벨렉과 함께 셈에게 내린 복을 상속받은 천손민족 욕단의 가계는 동쪽으로 긴 여행을 계속하여 동방 산악지대인 파미르 고원을 넘고 천산 산맥을 넘고 알타이 산맥을 넘어 ‘새팔’(새발) 곧 시베리아와 만주 대륙에 이르는 광활한 극동의 새 땅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백두산을 본고장으로 하여 남북만주(南北滿洲)로부터 현재 중국의 산동성 전체, 하북성 발해 연안, 하남성 동남, 강서성 서북, 안휘성 중북, 호북성 동쪽 모퉁이와 요동반도 및 한반도 전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뻗어나가 살았던 것이다. 바로 그들이 우리 한민족의 조상인 배달 동이겨레이다!

 

 

 

 

그러므로 알이랑민족 한국인은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이다. 고대로부터 아시아 동쪽 ‘새벌’(새팔)에 살고 있는 그들은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에벨의 혈통 욕단의 후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유석근 목사(알이랑민족갱신사역)

 

club.cyworld.com/alilang

선민의 표적인 청반점

동양에 있는 민족이나 국가의 지배적인 기원이 되는 가계는 욕단을 통해 이어지는 동부 히브리인들 곧 알이랑 민족 우리 배달동이겨레(한국인)이다. 이러한 사실을 입증해 주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바로 ‘청반점’이다.

 

아이가 태어날 때 삼신 할매가 빨리 나가라고 엉덩이를 쳐서 멍들어 생겼다는 청반점. 사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우리 겨레가 또 하나의 선민 욕단의 직계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시려고 한국인의 육체에 ‘특별 표시’를 해두신 것이다.

 

우리 한민족은 오랜 세월동안 이어온 유전자적 특징이 있다. 태어날 때 지니고 있는 엉덩이와 등 부분의 푸른 반점이다. 유전학자로서 지난 8년간 청반점을 조사해온 김영광 박사(저서: 한국인의 청반점)는 한국인의 청반점이 가장 선명하다고 말한다.

 

“세계 사람들 중 한국인의 청반점이 가장 선명한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한국인이라도 일부는 청반점이 아예 없거나 있다하더라도 베트남이나 태국, 일본인보다 약한 경우도 있는데 이들은 귀화 한국인으로 보인다.”

 

“한국인의 청반점이 가장 진하다!” 아주 기묘한 현상이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몽골을 비롯한 동양 제민족들은 결국 한국인의 방계 족속이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즉 동양의 여러 민족들은 고대에 동이겨레의 피가 섞여 형성된 코리안의 아류 족속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수원 설립자 토레이(R. A. Torrey․대천덕)도 셈의 현손(玄孫)인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이 단군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면서, 동양 민족들은 욕단 계열일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창세기 10장 25절에 ‘에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에게는 ‘벨렉’과 ‘욕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벨렉’이란 ‘나뉘어진다’는 뜻으로 그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 ‘욕단’은 … 알모닷, 셀렙 등 여러 사람들의 조상이 되고,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으로 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동방의 산지대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셈의 족속들이기 때문에 동방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욕단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욕단이 혹 단군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계산은 할 수 없지만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비슷한 연대입니다.”(대천덕, 「우리와 하나님」, 도서출판 예수원, 1988, 163쪽)

 

동양 민족이 다 욕단의 직계 후손은 아니다. 인도는 야벳 계열이요, 중국은 함의 후손이다. 그러나 고대에 동양의 제민족이 형성되는 과정에 욕단의 후손인 동이족은 지배적인 역할을 했다. 어떻게?

 

욕단의 후손은 처음 세대 이후에는 언급이 없다. -그들은 대홍수 후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양으로 멀리 천동(遷動)했기 때문이다(창 10:30).- 그러나 그의 13아들의 가계는 두 번이나 기록되어 있다(창 10:26~29; 대상 1:19~23). 욕단의 가계는 고대 성경 시대에 기록된 가장 큰 가계였다.

 

이렇게 규모가 큰 집단인 욕단 족속이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간다고 알이랑 고개를 넘어 동양으로 가장 먼저 천동하였고, 아시아 대륙을 선점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족속들이 동방 땅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결국 그들과 섞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욕단의 가계는 동양 제민족들의 지배적인 기원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주는 것이 바로 한국인이 가장 선명하게 지니고 있는 청반점인 것이다.

 

왜 한국인의 청반점이 가장 선명하단 말인가? 유독 한국인의 푸른 반점이 다른 어느 민족보다 선명하고 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득한 옛날 동양 제민족들이 형성되는 과정에 동방의 선주민이었던 알이랑 민족 코리안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인이 태어날 때 지니고 있는 청반점은 우리 겨레가 또 하나의 선민 욕단의 직계 후손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일종의 ‘신의 지문(指紋)’이다. 하느님께서 한국인의 몸에 타민족과 구별되는 특별한 표시, 곧 청반점을 새겨 주신 섭리와 목적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청반점은 한국인의 육체에 결코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알이랑 민족 한국인이 여타 민족과 "구별된 민족", 곧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표적(Sign)으로 하느님께서 코리안의 몸에 특별히 새겨 두신 것이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3~14)

유석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한국인은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후손

 

욕단의 가계가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론은 오류

 

유석근

(알이랑코리아 대표, 알이랑교회 담임목사)

 

 

  한국인이 셈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내증(성경의 증거)과 외증(성경 밖의 증거)으로써 분명히 입증된다. 그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 < 셈 ․ 수메르 ․ 코리아 > 그런데 셈은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 룻, 아람이라는 다섯 아들을 낳았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셈의 이 다섯 아들들 가운데서 누구의 자손일까? 한국인은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후손이다(창 10:21~30).

 

  ‘욕단의 후손’은 처음 세대 이후에는 언급이 없다. 그러나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가계는 다른 셈의 후손들과는 달리 그의 13아들의 이름을 다 열거하여, 그 이름이 두 번이나 명백히 기록되어 성경에 남아 있다(창 10:26~29; 대상 1:19~23). 우리가 그들에 대해 탐구할 가치가 없다면 왜 하나님께서 욕단 족속을 성경에 그렇게 차별적으로 거듭 명시하여 남겨 놓았겠는가? ‘욕단의 후손’은 어디에 있는 누구일까? 처음 세대 이후로 ‘욕단의 후손’은 더 이상 언급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찾을 수 있도록 결정적인 단서를 남겨 두셨다. 그것은 창세기 10장 30절 말씀이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창 10:30).

 

  이 구절이 ‘욕단의 후손’이 누구인가를 찾는 데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한다. 성경은 욕단의 거주지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메사’와 ‘스발’의 위치가 어디인지, 그리고 ‘동편 산’이란 어느 지역의 산을 지칭하는 것인지를 확인하면 욕단의 후손이 어느 땅에 있는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욕단이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론은 오류

 

  서구 성경연구가들은 욕단의 아들 이름이 역사적으로 아랍 부족의 이름과 같은 스바, 오빌, 하윌라이며 더욱이 아라비아 남단에는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지명도 나타나기 때문에 욕단이 아라비아로 갔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아라비아 남단에 정착하여 현(現)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서양 주석가들의 이론을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도 대부분 그대로 카피해서 가르친다. “욕단은 아라비아로 남부로 가서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어요” 라고...

 

  창 10:25~29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욕단의 아들들 가운데 스바, 오빌 하윌라는 이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아랍 부족의 이름은 욕단이 아니라 함의 가계인 구스 민족의 후손에 속한 것이다. 초기 아랍 민족은 구스 민족이 분명하며 그들은 셈족이 아니다. 함의 자손 구스의 맏아들이 스바였으며 손자 중에도 스바가 있었다(창 10:7). 또 하윌라도 구스의 둘째 아들이다(창 10:7).

 

  창 10: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함의 가계인 구스의 후손들이 그 땅에 살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이름을 따라서 지명을 삼은 것이다. 오빌도 스바와 하윌라 부근의 홍해안에 있는 금산지로 알려진 곳으로서(왕상 9:26~28) 솔로몬 왕을 방문했던 스바 여왕의 통치 지역이었다. 따라서 그곳도 역시 함 계통의 구스 민족이 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왕상 10:1).

 

  따라서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지명 때문에 욕단의 후손이 아라비아 남단에 이주하여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서구주석가들의 주장은 단견이며 난센스이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오류로 가득한 그들의 낡은 이론을 더 이상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




 ▲ 욕단의 영토를 아리비아 남부로 표시한 그릇된 지도

 

  흔히 이름은 가계에 관련된 어떤 의미를 가지지 않고, 서로 분리된 후손들 사이에서 널리 되풀이 되어 사용된다. 그리고 현(現) 아랍 민족은 이스마엘의 후손이 퍼져 있고(창 25:13~18), 롯의 후손 모압과 암몬 족속(창 19:36), 그 밖에 셈의 아들인 엘람족, 앗수르족, 룻족, 아람족 등이 섞여 있다.

 

  그러므로 욕단이 아라비아 남부로 가서 아랍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서구의 성경 연구가들은 ‘메사’와 ‘스발’의 위치를 결코 찾을 수 없다. 한결같이 그들은 ‘메사’와 ‘스발’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다고 토로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라비아 남단 주변에는 그런 곳이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기 때문이다.


  트리니티 칼리지의 구약학 교수인 고든 웬함(Gordon Wenham)은 창세기 10:30을 해석하면서 욕단의 영토가 아리비아 남부에 위치한다는 대다수 주석가들의 견해는 추즉으로서 확실한 것이 아니라고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 “그들이”는 앞 구절에 논의된 욕단의 아들들 모두를 가리킨다. 불행하게도 이 구절은 대단히 모호하다. ‘메사’와 ‘스발’과 ‘동편 산’은 모두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 스발은 아라비아 남부의 차파르(saphar)라는 해안 도시일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첫머리의 치찰음 때문에 이 제안은 의심스럽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메사는 욕단족의 서쪽 경계를, 스발은 동쪽 경계를 나타내며 그 영토는 아라비아 남부에 위치한다고 추측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고든 웬함 지음, 박영호 옮김, 「WBC성경주석 창세기 상」, 서울: 솔로몬, 2006, p.425) 


  그렇다! 욕단의 가계가 아라비아 남단에 정착해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론은 불확실한 것이다. 그것은 추측일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성경학자들은 서구 주석가들이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제시한 추측성 이론을 그대로 베껴서 가르치거나 맹신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금 욕단의 가계가 아랍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는 이론은 마치 확고한 사실인 듯 반복 학습되고 있다. 이 그릇된 교설을 구약신학계의 거목인 글리이슨 아처(Gleason L. Archer) 박사는 저명한 성서고고학자이며 중동학자인 올브라이트(W. F. Albright)의 견해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셈의 후손에 관해 엉거(AOP pp.97~99)는 모든 가능한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불행스럽게도 너무 빈약하다. 그런데 욕단(아라비아에 있는)의 후손들에 대해 올브라이트는 아래와 같은 언급을 하였다. “아람과 욕단의 부족 후손들의 이름에 관해 가장 의미심장한 점은 그 모든 이름들이 아주 옛날 것이어서 앗수르와 남 아라비아에서 B.C. 1000년 후에 발견한 어떤 비문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 중에 몇 이름들은 개인의 이름들로서 B.C. 20세기 초반기 이후에 나타나는 것들이다. 그 이름들은 그 이후에도 수세기 동안 종족의 이름으로 계속되었다.”』(글리이슨 아처 저, 김정우 역, 「구약총론 」, 기독교문서선교회, p.242)

 

  올브라이트가 지적한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아람과 욕단의 부족 후손들의 이름에 관해 가장 의미심장한 점은 그 모든 이름들이 아주 옛날 것이어서 앗수르와 남 아라비아에서 B.C. 1000년 후에 발견한 어떤 비문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 중에 몇 이름들은 개인의 이름들로서 B.C. 20세기 초반기 이후에 나타나는 것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글리이슨 아처 박사는 욕단의 후손이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론을 자료가 너무 빈약한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엉거가 제시한 자료만 빈약한가? 욕단의 가계가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W. H. Gispen과 G. Ch. Aalders가 제시한 자료들도 궁색하기는 오십보백보다. 고든 웬함이 지적한 바와 같이 욕단의 영토가 아라비아 남부에 위치한다는 교설은 전혀 확실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허구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신학교수들은 욕단의 후손이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서구 주석가들의 불확실한 이론을 무슨 신조처럼 맹종, 카피하여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욕단의 후손은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죠”라고... 아주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아랍 부족의 이름은 함의 가계인 구스 민족의 후손에 속한 것이다. 초기 아랍 민족은 구스 민족이 명백하며 그들은 셈족이 아니라 함족이다.

 

▲ 아라랏산에 정박한 노아의 방주

 

  동양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욕단의 가계

 

  창세기 10장 30절은 ‘욕단의 후손’이 어느 곳에 있는 누구인지를 찾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준다. 이 구절을 원전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

“And their dwelling was from Mesha, as thou goest unto Sephar a mount of the east.”(KJV)

 

  우리는 본 절을 통해 메사는 출발지, 새팔(새발)은 목적지, 동쪽 산 혹은 동방 산지는 정착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창세기 10장 30절은 욕단의 후손이 "극동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다고 가르쳐 준다.

 

  ‘동방’과 ‘산지’ (HAR HA KEDEM)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

(창 10:30)


  이 구절은 욕단 족속의 거주지를 ‘동쪽에 있는 산’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서 ‘산’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르’인데, 단수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단수로 사용되었을 경우 그 의미는 하나의 산(one mountain)을 뜻하기도 하고, ‘산맥’(mountain-range) 혹은 “일정한 지역의 산들” 곧 ‘산지’(mountain-region)를 가리키기도 한다.


  “메사로부터 스발로 가면서”라는 구절은 욕단이 그들의 거주지인 ‘동방의 한 산’, 혹은 ‘동방 산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말이다. ‘메사’는 욕단의 가계가 동쪽 산을 향해 출발한 장소이다. ‘스발’은 그들의 정착지인 동쪽 산지와 인접한 동방의 새 땅이다. 이 '메사'와 '스발'의 위치는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우리가 욕단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여기의 “동방(동쪽)”이라는 말과 “산”이라는 말을 자세히 고찰해야 한다. 이 낱말들은 욕단이 아라비아 남부로 가서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서양 주석가들의 이론이 오류인 것을 즉각 폭로해 준다. 왜? 아라비아 반도는 결코 본문이 의도하는 “동방(동쪽)”이 아니끼 때문이다.

 

  모세가 말한 욕단 족속이 거주했다는 “동쪽 산”이라는 곳은, 동양의 “극동 지역”에 있는 하나의 특정한 산(one mountain) 혹은 산지(mountain-region)를 표시한 것이다. “동편 산”은 HAR HA KEDEM에서 변형되었다. ‘케뎀’은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이다. KEDEM은 “동쪽 가장자리”(the front of the east) 또는 ‘동양’(Orient)을 뜻한다. KEDEM의 어원은 “가장자리”(Front)이며, 지리학적 의미로는 태양이 떠오르는 쪽에 있는 아시아의 해변 지역들을 언급한다. 바로 이것이 KEDEM의 기본적인 뜻이다. 대개 KEDEM은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를 가리킨다.

 

  KEDEM은 또한 고대의 시작(시대의 가장자리, the Front of Time)이라는 어원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곳에서는 “고대 동양”(Ancient Orient)으로 번역해야만 한다. 따라서 HAR HA KEDEM은 “고대 동양의 산”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산은 고대의 동아시아에 있던 어떤 특별한 산 혹은 산지를 언급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욕단의 후손이 극동 아시아에 거주함을 가리킨다.


https://biblehub.com/hebrew/6924.htm


https://www.studylight.org/lexicons/hebrew/6924.html





KÈDEM is ‘the front of the east,’ or ‘the orient.’ 

 The root idea is “front” —in a geographic sense referring

to the coastlands of east Asia facing sunrise. 

 In the time sense it can also mean ‘ancient beginnings’ (the front of time),

and can sometimes be translated ‘ancient orient.’


  한 가지 더 놓쳐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동쪽’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는 ‘하케뎀’인데 이는 정관사 ‘하’에 ‘케뎀’이란 명사가 부착된 형태이다. 원어사전은 ‘케뎀’이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임을 가르쳐 준다. 이 단어에 정관사를 부착시켜 사용한 것은 동쪽 끝의 어느 한 지역을 확고히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용법은 욕단의 모든 자손이 동양에서도 아시아의 동쪽 끝의 어느 한 지역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고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지나(China)는 욕단의 거주지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나(支那)는 서쪽으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인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나(支那)의 영토는 결코 ‘하케뎀’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에는 코리아의 한반도가 자리 잡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인 코리아의 지정학적 위치는 정확히 ‘하케뎀’이다.



  일본도 ‘KEDEM’과 관련이 없다. 왜? 동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KEDEM’은 “동쪽 가장자리”(the front of the east)를 뜻하기 때문이다. 섬나라 일본은 아시아 대륙에서 분리돼 있으므로 동쪽 가장자리가 아닌 것이다. 독립된 별개의 땅이다. 그래서 일본은 ‘KEDEM’에 해당되지 않는다. 만약 일본이 ‘KEDEM’이면 하와이는 더욱 ‘KEDEM’이다. 일본이나 하와이는 결코 ‘KEDEM’이 지칭하는 동쪽이 아니다.


  원어사전을 찾아보면 KEDEM의 어원은 “가장자리”(Front)이다. 대개 ‘케뎀’은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를 가리킨다. ‘케뎀’은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이다. 그러므로 아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에 위치한 코리아가 ‘정확하게 하케뎀’이다.


  게다가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에는 동아시아 전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밝산’ 곧 ‘백두산’이 있고, 코리아의 한반도는 국토의 70%가 산지로 형성되어 있다. 정확히 ‘하르 하 케뎀’이 의미하는 그 ‘동쪽의 산’이며, 바로 그 ‘동방 산지’인 것이다. 이것은 결코 아전인수격 해석이 아니다. 성경원어 ‘HAR HA KEDEM이 뜻하는 바에 철저히 부합하는 가장 타당한 해석이다.



동방 산지인 한반도:

보통 위성사진이나 지형도에서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지형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기 쉽다.

수평 거리에 비해 수직 높이 표현이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NASA의 자료를 바탕으로 안톤 밸라즈(Anton Balazh)라는 그래픽 아티스트가 위와 같은 지도를 만들어냈다.

기존 지도보다 훨씬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백두산(하르)을 위시하여 국토 대부분이 산지(하르)인 극동(하케뎀)의 한반도는

평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특히 우리 조상이 하나님(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던 백두산은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2744m).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主山이 바로 한민족의 聖山인 백두산이다. 그런즉 욕단의 가계는 빛이 시작되는 땅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까지 멀리 遷動(천동)하여 ‘한밝산’ 곧 ‘백두산’을 본거지와 중심터로 삼아 한밝산과 그 변두리에 정착했다. 그리하여 우리 배달겨레의 조상이 되었다. 한민족의 성경상의 기원은 셈의 玄孫(현손) 욕단이다.


‘동쪽’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는 ‘하케뎀’인데,

이는 정관사 ‘하’에 ‘케뎀’이란 명사가 부착된 형태이다.

여기서 ‘케뎀’은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이다.

이 단어에 정관사를 부착시켜 사용한 것은

동쪽 끝의 어느 한 지역을 확고히 나타내기 위함이다.

거기는 어디일까?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에는 한반도가 있다.


☞→▶ < Strong's Concordance * 6924. qedem * >

 

Joktan are the pure Hebrews. Genesis 10:25 states Heber had two sons, Peleg and Joktan.

Genesis 10:30 says Joktan and family migrated to the Far East. They became the Korean descendents.

Peleg migrated to the Middle East and became the Israelite people.



  이처럼 한국인은 셈족 계열의 욕단의 후손이다. 그러나 지나족은 셈의 후손이 아니라 함의 후손이다. 그러므로 CHINA는 고려할 대상이 더더욱 아니다. 지나 사람을 부를 때 ‘시노(Sino)’ 족이라고 한다(영어 사전에서 ‘Sino’를 찾아보라). 이 ‘시노’는 함의 후손 ‘신(Sin)’ 족속에 해당 된다(창 10:17). ‘시노’의 어원이 ‘신’인 것이다(강해설교의 대가인 미국 갈보리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도 그의 창세기 강해서인 ‘천지창조’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신’은 가나안의 아들이요, 가나안은 함의 넷째 아들이다(창 10:6; 15). 지나의 기원은 함의 가계, 그 중에서도 가나안의 아들 ‘신’이 지나 민족의 고대 선조이다(창 10:17하). 지나인들은 셈의 자손이 아니라 함의 후손인 것이다.


  지나인들이 고대로부터 용을 숭배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셈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다. 셈 계열의 백성은 옛 뱀인 용을 그렇게 숭배하지 않는다. 성경은 용을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고 말한다(계 12:9, 19:2). 지나인들은 함의 가계 신의 후손이다.


  욕단의 거주지는 극동 아시아에 존재한다. 욕단의 영토가 아리비아 남부에 있다는 서구주석가들의 해석은 원어의 사전적 의미를 완전히 무시한 터무니없는 이론이다. 아라비아 남단은 창세기 10:30이 의미하는 동쪽(케뎀)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바처럼 ‘케뎀’은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로서, “태평양과 맞닿는 아시아 동쪽 가장자리”를 뜻한다. KEDEM의 어원은 “가장자리”(Front)이며, 지리학적으로는 태양이 떠오르는 쪽에 있는 아시아의 해변 지역들을 가리킨다.




  이제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확인해 보자. 아라비아 반도는 아프리카의 우측에 위치해 있는데, 아라비아 북쪽은 이집트와, 중부는 수단과, 남쪽은 이디오피아와 위도가 연결된다. 그런데 성경은 이집트와 이디오피아를 '남방'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라비아 반도 역시 '남방'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계시의존 사색"이라는 성경해석의 원칙에 부합하는 결론이다. 이디오피아의 북쪽과 위도가 연결되는 아라비아 남단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지리학적으로도 아라비아 반도는 '남방'이지 '동방'이라고 할 수 없다.


 

 

  아라비아는 성경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엄연히 '남방'인 것이다. 게다가 아라비아 반도는 인도양 기슭과 홍해 연안 지역 외에는 특별한 산지가 없으며 대부분 사막이다. 아라비아 반도는 그 넓이가 인디아 대륙보다 크다. 그러나 반도 전체가 대부분은 극도로 건조한 사막이다. 따라서 아라비아 반도는 “동방 산악지대”가 아니라 “남방 사막지대”라고 표기해야 타당할 것이다. 아래 위성사진을 보라. 반도 전체가 대부분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 아리비아 반도

 


 ▲ 사막으로 형성된 아리비아 반도

 

  아라비아 반도는 동방도 아니고, 게다가 산지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땅을 하나님께서 '동방 산지'라고 말씀하셨다고 설명하는 서구 성경연구가들은 감히 하나님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 아리비아는 “동방 산악지대”가 아니라 “남방 사막지대”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이집트, 수단, 이디오피아와 위도를 공유하고 있는 아라비아 반도는 단연 '남방'이지 결코 '동방'이라고 할 수 없다. 욕단의 영토가 아라비아 남부에 있다는 서양 주석가들의 이론은 상식에도 어긋나는 억설(臆說)인 것이다. 아라비아 남단은 창세기 10:30이 의미하는 동쪽(케뎀)이 전혀 아니다.

 

  셈의 현손 욕단은 대홍수 후 그의 자손들과 함께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 멀리 '스발'로 遷動(천동)하여 극동 아시아인 '케뎀'에 정착했다. 욕단의 가계는 서아시아 지역을 완전히 떠나 동방의 땅 끝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므로 아라비아 남단에서 발견된다는 스바, 오빌, 하윌라라는 아랍 부족의 이름 및 지명은 욕단 족속과 아무 상관이 없다. 앞서 지적했듯이 그 지명들은 구스의 후손인 함족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많은 신학자들이 사고의 폭이 좁은 서구 주석가들의 낡아빠진 틀린 해석을 金科玉條(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다. 성경 원어 ‘HAR HA KEDEM’의 뜻을 완전히 무시한 서구 기독교의 그 엉터리 해석을 신조처럼 맹종하며 무비판적으로 카피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욕단의 영토는 아라비아 남단에 있는 거야”라고...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고신대 변종길 교수(신약신학)는 한민족이 욕단의 후손이라는 필자의 해석을 비판하는 글을 경멸하는 논조로 작성하여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했다. 욕단이 아라비아 남부에 정착해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기존의 해석과 다르다는 게 이유다. 오류 자체인 서구 신학의 낡은 이론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것이다.


  평택대학교(구 피어선신학교) 겸임교수라는 직함을 지닌 조덕영 교수 역시 그런 인물이다. 조 교수는 필자의 저서 "알이랑민족"을 사설이라고 매도하는 글을 여러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유포했다. 그는 한국인의 성경상의 조상이 욕단이라는 필자의 타당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문제는 이들 일행이 욕단 가족이라고 믿으면 성경적으로 더욱 심각한 참사가 일어나버린다는 데 있다. 즉 욕단 후손들이 주로 아라비아반도(현 사우디 지역) 지역에 머물렀다고 하는 성서고고학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들을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덕영 교수는 욕단의 가계가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믿으면 성경적으로 심각한 참사가 일어나버린다고 한다. 그 까닭은 욕단이 아라비아 반도에 머물렀다고 하는 성서고고학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를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욕단이 동방으로 천동하여 우리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해석하면, 그것은 욕단 족속이 아라비아 반도에 정착하여 아랍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서구 신학자들의 전통적인 이론과 맞지 않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심각한 참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참사가 일어나버린다고?

 

  서구 성경연구가들의 해석은 전부 “성경적”이라는 말인가? 서구 신학자들의 해석은 오류가 없나? 조덕영 교수는 서구 성경연구가들의 해석은 전부 ‘성경적’이라고 확신하는 인물이다. 조 교수가 얼마나 서구 신학자들의 이론을 절대적으로 맹종하는지 알 만하다. 조덕영 교수는 ‘HAR HA KEDEM’이 무슨 뜻인지 당장 원어사전을 찾아보라. 심각한 참사는 조 교수와 같이 서구신학의 이론은 틀린 것까지 베껴 가르치는 카피 신학자들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 심각한 참사를 중단시킬 것이다.


 ▲ 욕단의 영토를 아리비아 남부로 표시한 그릇된 지도

성경은 욕단의 거주지를 ‘동쪽 산’이라고 말한다(창 10:30).

여기에서 '동쪽'은 ‘케뎀’이라는 명사인데,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KEDEM은 “동쪽 가장자리”(the front of the east) 즉 ‘동양’(Orient)을 뜻한다.

KEDEM의 어원은 “가장자리”(Front)이며,

대개 지리학적 의미로는 태양이 떠오르는 쪽에 있는 아시아의 해변 지역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서구 신학자들이 욕단의 영토를 아리비아 남부로 표시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라비아 반도는 남부든, 동부든, 서부든 결코 KEDEM이 지칭하는 동쪽이 아니다.

서구 성경연구가들은 욕단의 영토가 아라비아 남부라는 그릇된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KEDEM의 기본적 의미를 완전히 무시한 터무니없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메사


 

  창 10:30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 [“And their dwelling was from Mesha, as thou goest unto Sephar a mount of the east.”(KJV) ] 본 구절은 당신에게 메사가 출발지, 새팔(새발)은 경유지, 동방산지는 목적지라는 것을 알려 준다.

 

  이제 ‘메사’의 위치를 확인해 보자.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이 곧바로 시날 평원으로 옮겨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바벨탑을 쌓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성경을 정확히 이해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11장 2절은 홍수 이후 사람들이 바벨론 평지에 이르기 전에 먼저 동쪽으로 여행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동편으로부터(from the east) 이동할 때 그들은 시날 땅에서 평지를 발견하여 그들은 거기서 살았다”(창 11:2 ․ 원전 직역).

 

  한글개역성경에는 “동방으로” 옮겨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동방으로부터”라고 되어 있다. ‘동방으로’는 히브리어 ‘믹케뎀’인데, ‘케뎀’은 동편이고 ‘믹’은 ‘으로부터’라는 전치사이다. KJV(King James Version)은 원문에 맞게 “from the east”로 번역하였다.

 

  “And it came to pass, as they journeyed from the east, that they found a plain in the land of Shinar; and they dwelt there”(Gen 11:2).

 

  그러므로 그들은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옮겨가고 있었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던 중에 시날평지(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계곡 안에 있는 지역)를 만났던 것이다. 이것은 홍수 생존자들이 방주가 정박했던 아라랏 산지를 떠나 처음 이동했던 지역이 바벨론 평원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대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아라랏 산지를 떠나 먼저 동쪽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노아의 후손들은 바로 그 동방의 어떤 장소(중앙아시아 근접 지역)로부터 서쪽으로 옮겨가다가 시날 평지를 만난 것이다. 바로 이것이 홍수 생존자들의 바벨론 이전 시대의 이동 경로였다. 성서고고학자 원용국 박사(안양대학교 구약학 교수)는 그의 저서 「창세기 주석」에서 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처음에 아라랏산 남동쪽의 시날 평지로 가지 않았고 먼저 아라랏산 동쪽인 이란 지역(이란 북부에 해당)으로 이동했다고 올바르게 설명했다.


  “권위 있는 번역본들에 의하면 사람들이 아라랏 지역에서 이동하여 ‘동쪽에서’ 시날 평원으로 가게 되었다. 시날은 아라랏의 남동쪽이다. 이것은 그들이 처음에 남동쪽 멀리 여행하였음을 의미하는데, 아마 오늘날의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이나 후에 다시 메소포타미아가 있는 서쪽으로 돌아간 것이다.”(원용국, 「창세기 주석」, 호석출판사, p.239)


  주석가 랑게 역시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원용국 박사의 해석과 같은 논지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믹케뎀 - '동방으로부터'라는 말이다. 방주가 닿았다고 생각되는 알메니아는 시날의 서북쪽에 있다. 이래서 원시인들이(주- 홍수생존자들) 시날에 올 때에 저희가 파사(이란)를 경유하여 동방으로 여행해 왔다고 생각하게 한다." (랑게 주석 창세기)


 

↑ 노아의 방주가 정박한 아라랏산

 

“그들은 동에서 서로 이동하고 있지만,

아라랏 산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바벨론, 즉 시날 땅의 동쪽에 있다.

그들은 티그리스 강의 동쪽 땅,

즉 이란이나 인도에서 오고 있는 것이다.”

 

-럭크만 주석의 창세기 11장 2절 해설-

 

↑ 대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아라랏 산지를 떠나 먼저 동쪽으로 이동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에게 욕단이 나중에 어느 경로로 이동하였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메사의 위치를 찾는데도 단서가 됨으로 주목해야 한다. 홍수 생존자들의 바벨론 이전 시대의 이동경로는 이란 고원을 지나 바벨론 동부에 이르는 것으로 100년 이상 계속 되었다. 창세기 11:10~16절은 에벨이 벨렉을 낳기까지 홍수 후 101년이 지났음을 말해주며, 창세기 10장 25절은 벨렉이 바벨론에 거주했음을 보여준다. 노아의 6대손 벨렉에 관해 창세기 10장 25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에벨에게 두 아들들이 낳아졌다.

한 이름은 벨렉인데 그의 날들에(in his days) 그 땅이 나뉘었다.

그리고 그의 형제의 이름은 욕단이다.”

(원전 직역).

 

  성경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들의 이름은 예언적인 사실을 담고 있다. 가령 가인에게 살해당한 ‘아벨’(허무하다)이나, 하느님과 온전히 동행하다가 산 채로 승천한 ‘에녹’(봉헌되었다)은 이름에서 그들의 운명이 암시되어 있다. 이렇게 인명(人名)은 하나의 예언적 계시이다. 벨렉이라는 이름도 그러한 이름 중의 하나이다. 그의 이름은 “나뉘다”라는 뜻인데, 실제로 그의 때에(in his days) 세상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W.B.C.(Word Biblical Commentary) 주석은 ‘벨렉’의 이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벨렉은 ‘나누다’(גלפ-팔라그)라는 어근에서 온 것이다. 보통명사로서 이 단어는 ‘운하, 수로’를 의미한다. 여기서 이 어원은 이 어휘에 보다 추상적인 의미(‘나눔’)를 부여한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름들처럼 이 이름도 예언적이며 벨렉의 생애에 일어날 중대한 사건을 예시한다.” (고든 웬함 지음, 박영호 옮김, WBC 성경주석 창세기․ 상, 서울: 솔로몬, 2001, p.423)

 

  이는 벨렉이 언어 혼란으로 세상이 나뉠 때에 바벨론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욕단은 벨렉과 함께 바벨론으로 가지 않았다. 욕단은 동쪽 지역에 거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시날 평지에 이르기 전에 무리와 헤어졌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창 10:30). 이동하던 무리들은 동쪽 지역으로부터 시날 평지로 접근하였다. 따라서 욕단이 동쪽 지역에 거하기로 결정한 사실은, 그가 서부로 향하는 주요 집단과 헤어져 동양으로 이주 경로를 변경하였음을 증거하여 준다.

 

 

  벨렉과 욕단의 헤어짐으로 두 종류의 히브리 가계가 형성되었다. 즉 서부 아시아에 거주하는 서부 히브리 민족과 동양에 거주하는 동부 히브리 민족이다. 창세기 10장 21절은 셈이 “에벨 온 자손의 조상” 즉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에베르’(������)에서 ‘히브리’(י������)가 유래되었다. ‘히브리(י������-이브리:Hebrew)’는 ‘에베르(������)’의 종족을 나타내는 말로서 “에벨”(Eber) 또는 “에벨의 계통을 잇는”(descended from Eber)을 뜻한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창 10:25).

 

  따라서 히브리 민족은 에벨로부터 나온 두 가계 곧 벨렉과 욕단 계통을 잇는 자손이다. 즉 아시아 서쪽으로 간 벨렉의 후손은 서부 히브리 민족이요, 동양으로 간 욕단의 후손은 동부 히브리 민족이다. 욕단의 후손도 히브리 민족에 속한다. 그리하여 아시아 대륙에는 두 히브리 민족이 존재한다.

 

두 히브리 민족으로 나뉘인 셈의 가계

Shem’s Family is divided into Two Hebrew Ethnic Races

 

 

* 셈은 다섯 아들을 낳았다 -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 룻, 아람. (창 10:22)

*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다. (창 10:21)

* 에벨(Eber)이라는 이름으로부터 히브리(Hebrew)라는 낱말이 파생했다.

* 에벨은 두 아들을 낳았다 - 벨렉과 욕단 (창 10:25)

* 벨렉은 유대인(the Jews)의 조상,

욕단은 한민족(the Korean people)의 조상이 되었다.

 

폴 왕(Paul Wong)이라는 지나 목사는 욕단이 지나(China)인의 조상이라고 설명하는데,

지나친 착각이며 자기 기만이다.

지나인은 셈의 후손이 아니라 함의 후손이다.

지나의 기원은 함의 가계, 그 중에서도 가나안의 아들 ‘신’이

지나 민족의 고대 선조이다(창 10:17하).

 

< 코리아(鳳)와 차이나(龍)의 기원과 미래 > 

 

 

  우리는 창세기 9장 28절에서 노아가 바벨탑 사건 이후까지 생존하였으며 다른 홍수 이후 족장들도 그러하였음을 알 수 있다(창 11장). 따라서 만일 그들이 그 당시 바벨론에 있었다면 바벨탑 건설에 참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는 바벨론에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은 자요(창 6:8), 의로운 사람이었기에(겔 14:14 ; 벧후 2:5) 분명히 바벨론의 사악한 행위와 니므롯의 왕국(창 10:8~10)에 반대하였을 것이다.

 

  니므롯은 함의 손자로서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옮기도록 인도한 사람이었으며, 그곳에서 바벨탑 건설을 선동했던 인물이다. 성경은 노아 셈, 아르박삿, 셀라, 에벨이 이 시기에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문맥주석적 방식으로 유추할만한 합리적인 결론은 그들이 욕단과 함께 아시아로 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배교가 극심할 때 참된 믿음을 지닌 소수의 무리를 항상 남겨 두셨다. 그들을 “남은 자”(The Remnant)라고 하는데, 욕단의 가계는 바로 그 시대의 “남은 자”였다. 셈족의 현저한 가지 욕단 족속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함족 니므롯에 의해 위협받는 셈계의 일신신앙을 보전(保全)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욕단과 그와 함께 한 다른 모든 홍수 후 족장들은 이란 고원이나 중앙아시아에 근접한 어떤 장소에서 서부 바벨론으로 이동하는 무리들을 떠날 순간을 선택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욕단 민족이 동양으로 정착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때에 인류는 대홍수 이후 첫 번째 이산의 역사를 경험했다. 니므롯을 따라 서부 바벨론으로 이동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욕단과 함께 동쪽 산을 찾아 ‘스발’을 향해 이동하는 소수의 '남은 자'들로 홍수 생존자들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욕단과 그의 가족은 동방으로 산지를 찾아 이동했는데, 메사(Mesha)는 지도상에서 아라랏산 동편의 카스피해 남동쪽, 이란 북동부에 있는 메사드(Meshhad)라는 곳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결론은 정황 증거가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서 객관적 설득력을 지닌다. 당시에 아라랏산에서 하산하여 동쪽으로 이동한 홍수 생존자들은 우선 이란 북동부, 카스피해 남동쪽에 위치한 ‘메사’ 지역까지 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카스피해 남동쪽, 이란 북동부에 있는 '메사'는 동방 산악지대인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의 길목이다.

메사 동북쪽으로 파미르고원이 있고, 파미르고원 동북쪽으로 천산산맥이 있고, 천산산맥 동북쪽에 알타이산맥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라랏산’(카스피해 서쪽)을 출발한 홍수생존자들은 처음에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카스피해 남안을 끼고 동진하던 중 이란 북동부의 ’메사‘까지 갔던 것이다. 셈의 현손 욕단 족속은 이 ‘메사’로부터 동쪽 산을 찾아 가고자 ‘스발’을 향해 대장정을 시작했다. 즉 욕단의 가계가 동방의 새 땅을 찾아 ‘출발’한 장소가 바로 ‘메사’이다. 나머지 홍수생존자들 역시 그 이란 북동부의 ‘메사’에서 욕단의 가계와 갈라져 서부 바벨론을 향해 ‘출발’했다. ‘메사’의 의미는 ‘출발’(departure)이다.

 

↑스트롱 원어사전: ‘메사’의 의미는 ‘출발’


시날<--- 서쪽 <--- 니므롯 <--- 메사 ---> 욕단 ---> 동쪽 --->스발

 

  우리 겨레의 노래 ‘알이랑’은 바로 그때에 욕단의 가계가 동방의 높은 산들과 고원을 넘어 가면서 불렀던 ‘찬송가’였다. 아리랑의 어원을 ‘알이랑’으로서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알이랑은 ‘하나님 중심 사상’이요 ‘신본주의 정신’이다. 즉 욕단은 홍수 후 함족의 배역자 니므롯에 의해서 셈족의 ‘하나님 신앙’이 강하게 흔들릴 때에도 결코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도전받는 유일신 신앙을 보전하고자 ‘알이랑 정신’ 즉 ‘하나님 중심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갖고서 새 땅(새벌=스발=스가발)을 찾아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아주 멀리 천동(遷動)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인 알이랑의 역사적 태동 배경이다. ☞→▶ < 아리랑의 비밀과 한국인의 정체성 >

 

아라랏산은 카스피해 서쪽에 있다. 메시는 카스피해 남동쪽, 이란 북동부에 위치해 있다.

홍수 생존자들은 카스피해 서쪽의 아라랏산을 떠나 카스피해 남동쪽의 메사까지 동방으로 이동했다.

 

 

욕단의 가계가 바벨탑 건설 이전에 미리 배역자들과 분리되어

알이랑(하나님과 함께) 동방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연대기 도표

(이미지 위를 누르면 크게 보입니다)



  스발

 

  욕단과 그의 가족은 동쪽의 산 혹은 산지를 찾아 ‘스발’을 향해 동쪽으로 遷動(천동)했다. 창세기 10장 30절을 히브리어 원문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당신이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

(And their dwelling was from Mesha,

as thou goest unto Sephar a mount of the east. KJV )

 

  ‘스발’을 히브리어에서 음역하면 ‘새팔’이다(우리말 성경의 히브리어 음역 표기는 고대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으로부터 왔다). 여기에서 ‘새팔로 가면서’(as thou goest unto Sephar)라는 말은 욕단 족속이 ‘새팔’을 향해 계속 동쪽으로 옮겨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팔’의 위치는 어디일까?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새팔’은 결코 당시에 존재하거나 알려진 도시와 장소의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홍수로 인해 지워졌기 때문이다. 욕단이 천동(遷動)하기까지 동양에는 아직 누구도 살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창세기 10장 30절에 언급된 ‘새팔’은 ‘예시적’인 지명이다. '예시'란 나중에 원형으로 구체화 될 어떤 진리나 현상이 '암시적'으로 미리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거시적 안목으로 ‘새팔’의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지명 및 위치를 동양에서 찾아야 한다.

 

  ‘새팔’은 '새발'

 

  ‘새팔’은 '새발'이다. ‘ㅍ’을 약하게 소리 내면 ‘ㅂ’이 된다. ‘ㅂ’을 거세게 발음하면 ‘ㅍ’이 된다. ‘ㅍ’과 ‘ㅂ’은 모두 ‘파열음’으로서 한 계통의 소리이다. 그러므로 자주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안팎’은 ‘안밖’이요, 동이족의 후예인 인디언은 ‘지붕’을 ‘지풍’‘, ‘아버지’를 ‘아파치’라고 부른다. 따라서 ‘새팔’ = ‘새발’로 간주할 수 있다. 70인역 성경도 ‘새팔’의 ‘팔’을 ‘발’로 음역했다(스발). ‘새팔’은 '새발'이요,  ‘새발’이 곧 '새팔'이다.

 

  욕단의 가계가 동방 산지에 이르기까지 스쳐 지나간 ‘새발’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일단 그곳은 아시아 동쪽 지역의 어느 곳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욕단은 메사를 출발하여 케뎀, 즉 동쪽 가장자리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들은 동방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따라서 동양의 산맥들을 벗어나서 나타나는 동쪽 땅을 새팔’(새발)로 지목해야 할 것이다. 과연 그곳은 어디일까? 시베리아이다. ‘새발’은 시베리아의 최초 지명이 이었다. ‘새발’은 ‘새벌’의 고어로서 ‘새 벌판’이라는 뜻이다. 이 ‘새발’이 시베리아(시비리)의 어원이다.

 

  동방의 산악지대 즉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가면 마침내 ‘새벌(새팔=새발)’이 나타난다. 바로 시베리아 벌판이다. 알타이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진다. 시베리아는 고조선의 창건 무대인 만주 대륙이 연장된 땅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의 고향이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멀리 천동한 욕단 족속은 남북만주 및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방의 새 땅을 '새발'이라고 하였다. ‘새발’은 ‘스가발’과 동의어로서 ‘새벌’(New Field)의 옛말이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바로 우리 한민족의 발상지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예시한 것이다.

 

  그리고 ‘새발’의 어원은 ‘새밝’인데 ‘새 밝은 곳’이라는 말이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인 그 땅이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나라(새光明國)이기 때문이다. ‘새발’의 ‘발’은 ‘밝’에서 가지 쳐 나온 말로서 원래는 ‘광명’의 뜻이었는데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새발’의 ‘발’은 곧 ‘벌’인 것이다. ‘밝’은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이 그의 명저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 강조했듯이 우리 배달겨레의 사상의 뿌리를 이루는 본원적인 말이었다. 그것은 신(神)이며 신성(神聖)한 것이다. 그것은 태양이며 광명이고 생명의 원천이다.

 

  ‘배달’이라는 말은 ‘밝달’에서 나왔다. ‘배달겨레’ 할 때의 ‘배’의 뿌리도 ‘밝’이다. 그리고 ‘달’은 ‘아사달’ 할 때의 그 ‘달’인데 ‘땅’이라는 뜻이다. 곧 양달이 양지요, 응달이 음지요, 빗달이 비스듬한 땅이다. ‘밝의 땅’은 그래서 ‘배달’이니 이 말에는 우리 배달겨레의 얼과 숨결이 서린다.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말인지 모른다. 이 ‘밝’에서 가지 쳐 나온 말 가운데 하나가 ‘발’인데, ‘발’은 ‘밝’ 즉 처음에는 ‘광명’의 뜻이었으나 ‘벌’ ‘들’ ‘나라’ 등의 뜻으로 바뀐 것이다. 순수한 우리말로 된 옛 한국의 지명에는 ‘발’로 끝나는 땅이름이 상당히 많다.

 

  ‘새팔’(스발)은 ‘새발'인데 그것은 빛이 시작되는 새 땅, 곧 ‘새밝’으로서 ‘광명의 본원지’를 이르는 말이다. 즉 시베리아로부터 남북만주에 이르는 아시아 동쪽 땅이 바로 ‘새발’인 것이다. 그러니까 욕단의 가계는 알이랑 고개를 넘어 빛이 시작되는 동방의 새 땅, 곧 서시베리아~동시베리아~남북만주에 이르는 ‘극동아시아’까지 아주 멀리 천동(遷動)한 것이다.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온 북방계 아시아인이다.

 

  ‘새벌’(새발:새팔)로 천동한 이유

 

  욕단 족속은 왜 그렇게 빛이 시작되는 땅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까지 아주 멀리 이동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욕단의 가계는 바벨탑 건설에 가담하지 않은 셈족의 진정한 장자였다. 그들은 ‘하나님 신앙’이 위협받던 그 암울한 시대에 ‘알이랑 정신’ 곧 ‘하나님중심 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끝까지 지켰던 단 하나의 천손민족이었다.

 

  이렇게 창조주 하나님을 공경했던 한국인의 조상 욕단의 가계는 타민족과 구별되는 천손민족다운 기질을 매우 많이 갖고 있었다. 그 현저한 민족성의 하나가 밝고 환한 것을 유난히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밝고 환한 천국에 빛 가운데 계시는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욕단 족속은 천손민족인 자기들의 삶의 터전으로 빛이 시작되는 땅, 곧 ‘새밝나라’인 ‘새벌’(새팔 = 새발)을 목적지로 삼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 밝고 환한 동방의 새 땅을 찾아가서 신시(神市), 즉 하느님의 나라(천국)를 건설하고자 했다. 욕단 족속이 알이랑 고개를 넘어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 곧 ‘새벌’까지 아주 멀리 천동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 < 밝달겨레-백의민족 >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하나님)을 공경하던 에벨의 혈통 욕단의 가계는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밝달)을 찾아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를(파미르고원→ 천산산맥→알타이산맥) 넘어 쉼 없이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알타이 고개를 넘어 동쪽으로 좀 더 가면 바이칼 호수가 나온다. 이 바이칼호는 우리 민족을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주도한 유목민족들을 낳고 길러온 태반이다.

 

 

  바이칼호수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대평원이 펼쳐지고, 호수 동남쪽에는 만주 벌판이 한반도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호수 북쪽은 북반구 북단이기 때문에 볕도 약하고 빛도 강하지 못하다. 그곳은 광명의 본원지가 아니다. 그래서 욕단 족속은 아침에 뜨는 해를 좇아서 호수 동남쪽으로 이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동녘 해 뜨는 밝은 땅에서 가장(한) 밝은 산인 한밝산(太白山=白頭山)에 집결하였다. 이 가장 밝고 밝은 한밝(太百)은 땅이요 터이니(基, 垈) 곧 밝달(배달)이다. 즉,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이다!

 

  욕단의 가계는 이 ‘밝의 땅’에서 ‘한밝산’을 발상지와 중심터로 삼아 한밝산과 그 변두리에 정착했다! 왜냐하면 그곳이 동방에서 가장 빛 밝고 볕 밝은 땅인데다가,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은 셈의 후손인 그들이 산정제사(山頂祭祀)를 드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태백산 천손강림(天孫降臨)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배달겨레의 성경상의 시조는 셈의 현손(玄孫) ‘욕단’(요크탄)이다!

 

  한밝산의 밝달 곧 배달은 빛밝(光明)고, 볕밝(暘明)아, 사람이 먹는 풀, 나무, 과일, 새, 짐승 등이 자연히 많아서, 아득한 옛적에는 그곳이 사람 살기에 가장 좋은 땅이며 터였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이 배달을 낙원으로서 하느님이 점지(占指)하신 땅이라고 믿었었다. 그리하여 조선이라는 국호는 원래 우리말 ‘주신’(쥬신)이었다. 하느님이 ‘주신’ 땅이라는 뜻의 ‘쥬신’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욕단은 바로 이 성스러운 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밝달(배달)나라를 세웠다. 이 한밝은(가장 밝은) 배달에 욕단이 세운 나라는 가장(한) 환(桓)한 나라인 까닭에, 이것을 그들은 하늘나라(天國 = 한나라), 신의 나라(神國 = 神市 = City of God)라 하였다. 그것이 대쥬신(조선)의 모태였다.

 

  이제 우리는 ‘새팔’의 위치를 확실히 찾았다. 예시적 지명인 ‘새팔’(새발)은 시베리아 최초의 지명인 ‘새발’(새벌)이요, '새발'은 '새밝' 곧 ‘새 밝은 곳’인데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밝달) ‘배달’인 것이다. 그 땅은 우리 배달겨레가 처음부터 터 잡고 살아온 땅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하나의 성민 욕단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존귀한 백성은 바로 알이랑민족 한국인이다!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인 ‘에벨’로부터 나온 두 가계, ‘벨렉의 후손’과 ‘욕단의 후손’은 셈에게 주신 복을 승계 받는 천손(天孫), 곧 거룩한 선민의 가계이다. ☞→▶ < 셈족의 현저한 두 가지 벨렉과 욕단의 후손 >

 

  셈에게 주신 복은 두 가지였다. 첫째, 하느님(하나님)은 셈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창 9:26). 둘째, 하느님(하나님)은 셈의 장막에 거하신다는 것(창 9:27), 즉 셈의 장막은 하나님의 거처가 되리라는 것이다. 이상 두 가지가 노아의 작은 아들 셈이 받은 특별한 복이다. ☞→▶ < 노아의 예언적 노래 >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욕단 족속은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지극히 공경하여 광명의 본원지인 새밝나라(새발=새팔=새벌)를 찾아 가려고 아침에 돋는 해를 따라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쉬지 않고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동녘에서 가장(한) 높고 밝은 산인 한밝산(태백산→백두산)에 올라 유일신 하느님께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천지(天池)가 솟아 오른 산정을 새 출발의 기점으로 삼은 백의민족이다!

 

  욕단의 후손이 처음 세대 이후에 더 이상 성경에 언급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손민족인 그들은 아주 먼 아시아 동쪽으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한 마리 양 같이 되었다.

 

▲ 백두산

 

▲ 아라랏산

 

  새벌과 시비리

 

  시베리아는 만주 벌판이 연장 된 땅으로서 만주와 같은 땅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는 곳이다. 그곳은 우리 배달겨레의 역사의 고향이다. 따라서 그곳을 부르던 우리의 땅 이름이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는데, 그것이 토박이말로 ‘시비리’이다. 이 ‘시비리’란 바로 ‘새발’(새벌)의 변음이다. 우리 한글의 홀소리 ㅏ(․)가 ㅏ~ㅓ~ㅗ~ㅜ~ㅡ~ㅣ로 구울러 감에 따라, '새'가 또 사~서~소~수~스~시로 구울러 감이 보통이다. 우리말 ‘새’가 그 같이 여러 가지 소리(음)로 나타난다. ‘시비리’의 ‘시’는 ‘새’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시비리’의 ‘비리’는 벌(발)의 의미를 갖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비리’는 부리(夫里), 벌(伐), 화(火), 평(坪), 불(佛), 불(不), 반(半), 비이(卑耳), 부여(夫餘), 원(原), 비(臂), 불이(不而), 부루(夫婁), 발해(渤海), 부여(夫如) 등으로 다양하게 바뀌어 쓰인 벌(벌판)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로서, 우리 겨레의 삶이 이루어진 곳에서는 널리 곳곳에서 쓰였었다. ‘비리’와 비슷한 말로 ‘누리’가 있는데, ‘비리’는 ‘벌’만 뜻하지만 ‘누리’(온누리)는 땅덩어리, 곧 산과 계곡, 강과 바다, 벌과 들 등 땅 위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시비리’는 시(새:新)+비리(벌:平野)의 조어구조를 갖는 ‘새벌’과 같은 뜻의 말이다. 즉 시베리아의 가장 오래 된 옛 이름이 한국어 ‘시비리’이다. 이 토박이말을 우리는 잊고 있으나 북한의 조선말 사전(사회과학 출판사, 1992년)은 ‘시베리아 → 명사 씨비리’로 분명히 풀이해 놓았다.

 

  ‘시비리’가 ‘시베리아’로 불려지게 된 것은 고구려가 망한 후 방치되던 ‘시비리’(새벌)를 16세기에 러시아가 불법강점(不法强占)을 하면서부터이다. 러시아족이 동침(東浸)한 이후 ‘시비리’는 그 신비한 모습을 세계사에 드러내게 되었는데, ‘시비리’를 강침한 러시아 사람들도 그 땅을 예부터 부르던 이름 그대로 ‘시비리’라고 불렀다. 그것을 영국인이 듣고 마치 고려를 ‘코리아’라고 부른 것처럼 ‘시베리아’라고 부른 것이 오늘날 ‘시베리아’로 세계에 알려진 것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400여 년 이전까지는 ‘시베리아’라는 말은 지구상에 없었다. 오직 한국어 ‘시비리’가 있었을 뿐이다. 시베리아는 한국어 ‘시비리’에서 유래한 영어식 지명일 뿐이다. 오늘날 ‘시베리아’는 러시아의 땅으로 되어 있지만 16세기에 러시아족이 우랄 산맥을 넘어서 동방을 침략해 오기 전까지는 그 땅은 러시아와 전혀 인연이 없는 땅이었다.

 

  욕단의 가계는 홍수 이후 동양으로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가장 먼저 이동한 족족이었으며,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처음으로 개척 지배했던 동양의 선주민이었다. 그런데 역사가들은 고대에 시베리아와 중원(中原) 및 극동 지역을 가장 먼저 차지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한국인의 선조인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말한다(임승국․ 주관중, 「다물의 역사와 미래」, 다물민족연구소, P. 63). 그러므로 욕단의 후손이 한국인인 것은 의문의 여지가 더욱 없다.

 

  그렇다! 한국인의 선조인 동이족은 고대에 알타이산맥과 바이칼 호수 주변의 ‘시베리아’에 넓게 퍼져 살면서 극동으로 이주해 왔다. 우리 배달민족의 뿌리는 욕단이며, 그 정신적 고향은 북방, 백두산과 바이칼호에 있다.

 

  동이의 영역은 대체로 지금의 만주를 중심으로 하여 서쪽으로는 몽고와 연계되어 있고 동쪽으로는 차이나의 만리장성 안 깊숙이까지, 북쪽으로는 ‘시베리아’로 뻗어 실로 광활한 지역에 걸쳐 있었다. 바로 그들이 ‘새발(새팔)’로 간 욕단 족속으로서 우리 한국인의 선조인 것이다.

 

▲ 알이랑민족의 선조인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가계는 고대에 알타이산맥과 바이칼 호수 주변의 시베리아에 넓게 퍼져 살면서 극동으로 이주해 왔다(창 10:21~30). 우리 한민족의 뿌리는 단군이며, 그 정신적 고향은 북방, 특히 백두산과 바이칼(밝알)호에 있다.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이동해 온 북방계 아시아족이다. 바이칼은 부루아리(현대어로는 밝알이다)인데 부루는 밝의 고어이다. 즉 부루에는 ㄱ 혹은 ㅋ 이 없지만 중세를 지나 종성이 만들어지면서 ‘밝’로 변화하듯이 부루는 부이르= 부여로 변하며, 이에 ㅋ 이 덧붙여져 고대 몽고족에서 부이크가 된다. < BR> 이것이 못, 물, 강, 알(하느님) 혹은 생명의 근원을 의미하는 아리와 결합하여 바이카리, 다시 바이칼로 전환한다. 바이칼의 뜻은 밝은 못 또는 밝은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차이나 내몽고서 발견된 ‘한국형 암각화’ 2008년 8월 26일 고려대 한국고대사 연구팀이 내몽고 적봉시 일대에서 발견한 ‘한국형 암각화’. 동심원, 마름모, 방패모양 등 기하학 무늬가 특징인 한국형 암각화는 1971년 울산 천전리를 시작으로 주로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됐으나 내몽고 지역에서도 발견되었다. 고대에 그 땅의 주인이 우리 조상들이었음을 입증해주는 고고학적 근거다.

 

▲ 경북 고령군 고령읍 소재 양전동 암각화

 

  에벨로부터 형제 벨렉과 함께 셈에게 내린 복을 상속받은 천손민족 욕단의 가계는 동쪽으로 긴 여행을 계속하여 동방 산악지대인 파미르고원을 넘고 천산산맥을 넘고 알타이산맥을 넘어 ‘새팔’(새발) 곧 시베리아와 만주 대륙에 이르는 광활한 극동의 새 땅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백두산을 본고장으로 하여 남북만주(南北滿洲)로부터 현재 중국의 산동성 전체, 하북성 발해 연안, 하남성 동남, 강서성 서북, 안휘성 중북, 호북성 동쪽 모퉁이와 요동반도 및 한반도 전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뻗어나가 살았던 것이다. 바로 그들이 우리 한민족의 조상인 배달 동이겨레이다!

 

  그러므로 알이랑민족 한국인은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성민이다. 고대로부터 아시아 동쪽 ‘새벌’(새팔)에 살고 있는 그들은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에벨의 혈통 욕단의 후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 겨레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중에 쓰시려고 동방의 땅 끝에 감추어 두신 제2의 성민이다.

 

  욕단의 가계는 동방의 산악지대, 즉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 ‘스발’(스바르=시비리=새파르=새바르=새발=새벌), 곧 오늘날의 시베리아~만주로 이동해 우리 한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한국인의 성경상의 기원은 셈의 현손(玄孫) 욕단(요크탄)이다.

 

* 아래는 한글 고어가 지원이 안 되어서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 pp.130~133에 수록된 원고를 캡처해서 올림 *

 

▲ 아라랏산

 

  아라랏과 시비리

 

  창세기의 기자 모세는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정박했다고 기록했다(창 8:4). 아라랏산은 카스피해 서쪽의 터키 북방에 있는 산이다. 그러나 모세는 터키 근방에도 가 본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방주가 아라랏산에 정박했다고 기록했을까? 전승이나 계시에 의거해 그렇게 기록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는 영감과 계시로 말미암아 욕단의 경유지인 극동의 ‘새발’(시베리아의 최초 지명으로서 ‘시비리‘의 어원)도 얼마든지 기록할 수 있었다고 간주해야 옳다. 이것은 결코 끼워 맞춘 자의적 해석이 아니다. 아주 타당한 이론이다. 터키 북쪽의 아라랏 처럼 모세는 극동의 ’새발‘도 능히 성경에 기록할 수 있었다.

 

  창세기 10장 2절에 보면 야벳의 아들들 가운데 ‘두발’과 ‘메섹’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서구 성경연구가들은 ‘메섹’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모스코)의 유래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우랄산맥 동쪽에 위치한 ‘토블스크’라는 지명은 ‘두발’로부터 기원했다고 말한다. 야벳의 아들 두발과 메섹이 그곳으로 가서 정착했기에 그들의 이름이 토블스크와 모스크바라는 지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나? 우선 야벳 족속은 북쪽과 북서쪽으로 이동했다. ☞→▶ <셈, 함, 야펫이 차지한 땅과 그들의 후손> 그런데 ‘메섹’은 ‘모스크바’와, ‘두발’은 ‘토블스크’와 발음이 유사하다. 이게 근거의 전부다. 하지만 누구도 끼워 맞춘 해석이라고 매도하지 않는다. 대부분 그대로 수긍한다. 정황상으로 얼마든지 그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욕단의 경유지 ‘새발’(새팔)이 극동의 ‘새발’(시베리아의 최초 지명으로서 ‘시비리’의 어원)이라는 해석도 설득력을 충분히 가진다. 왜? 성경은 욕단의 가계가 동양의 산맥을 넘어 ‘새발’(새팔)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창 10:30). ‘새벌’의 고어인 ‘새발’은 시베리아(시비리)의 처음 지명이었다. 욕단의 목적지 ‘새발’이 시베리아~만주라는 해석은 학문적 근거를 확보한 타당한 이론이다.

 

  만주 벌판이 연장된 땅인 시비리 -시베리아의 고유 지명으로 ‘새벌’이라는 뜻의 우리말- 는 우리 배달겨레의 역사의 고향이다. 역사학자들은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온 북방계 아시아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대 한국인의 일부는 베링해협을 건너 알래스카와 북미~남미 대륙으로 이동해 남북미 대륙의 원주민(인디언과 인디오)이 되었다. 당시 베링해협은 육로로 연결돼 있었다.

 

욕단 가계의 이동 경로

 

  히브리어 ‘새팔’(스발, Sephar)의 예언적인 뜻

   

  ‘스발’(새팔, Sephar)은 셈의 현손 욕단 족속의 최종 경유지였다. ‘메사’(Mesha)에서 출발하여 동방의 새 땅을 향해 대장정을 시작한 욕단의 가계는 동양의 크고 높은 산지들 곧 파미르고원, 천산산맥, 알타이산맥을 넘어서 마침내 ‘스발’(새팔), 곧 시베리아까지 도달하였다. 앞서 확인한 바처럼 시베리아의 처음 지명이 우리말 새발(새팔=새벌)이었다. 시베리아는 만주 벌판이 연장된 땅으로서 우리 배달민족의 역사의 고향이다. 우리 한민족의 고향은 북방, 특히 백두산과 바이칼(밝알)호에 있다. 역사학자들은 한국인의 주류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이동해 온 북방계 아시아인이라고 말한다.

 

  험산준령(險山峻嶺)을 넘고 장강대하(長江大河)를 건너는 대장정 끝에 아시아 동쪽의 스발(새팔)에 당도한 욕단 족속은 먼 동방으로 천동(遷動)한 자기들의 수가 과연 몇 명인지 인구조사를 했을 것이다. 도중에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동방으로 이동한 그들의 수가 몇 명인지 분명히 세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어 새팔(Se'phar; Heb. Sephar', ספִר)은 “수를 세다”(a numbering)는 뜻이다. (☞→▶https://biblehub.com/topical/s/sephar.htm) 이것은 동방의 땅 끝 스발(새팔)에 도달한 욕단의 가계가 자기들의 수를 세어보았을 것임을 암시한다. 바로 그들이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밝산(태백산=백두산)에 올라 유일신 하나님께 천제를 드리고 민족사를 시작한 알이랑민족 우리 한국인의 거룩한 조상인 것이다. ‘새팔’(Sephar)이라는 지명은 인구수가 많은 CHINA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셈의 현손 욕단이 한국인의 직계조상


  우리 겨레의 성경상의 조상은 셈의 玄孫(현손) 욕단이다. 창세기 10장 21절 이하에 보면 셈의 후손 중 대홍수 후 가장 먼저 동방(극동)의 산지를 찾아 ‘스발’(스바르~시비리=새벌=시베리아~만주)로 遷動(천동)한 욕단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바로 그가 우리 한민족의 뿌리요 우리 겨레의 직계 조상이다.

 

  예수원 설립자이신 대천덕(R. A. Torrey, 사진) 신부(성공회)는 욕단을 단군으로 추정할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그 근거를 제시한다:

 

   “…창세기 10:25에 ‘에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에게는 ‘벨렉’과 ‘욕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벨렉’이란 ‘나뉘어진다’는 뜻으로 그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 ‘욕단’은…알모닷, 셀렙 등 여러 사람들의 조상이 되고,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으로 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동방의 산지대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셈의 족속들이기 때문에 동방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욕단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욕단이 혹 단군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계산은 할 수 없지만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비슷한 연대입니다.”(대천덕,「우리와 하나님」, 도서출판 예수원, 1988, 163쪽)

 

  대천덕 신부는 우리 민족은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후손이며 단군은 욕단일 수 있다고 자주 가르치셨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인들은 에벨의 첫째 아들 벨렉의 후손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의 사촌(친족)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아래는 그 전문.


  “셈의 자손 중에 에벨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0장 25절은 그 아들을 벨렉과 욕단으로 소개하여 벨렉이 태어날 때 땅이 갈라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바벨탑 사건 때의 분열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욕단과 그 후손은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으로 이주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동편 산들은 한국의 산들이고 태백산의 제단을 세워둔 단군은 욕단일 수 있습니다. 특히 단군의 기원은 욕단의 이주한 시기와 같습니다. 히브리말로 ‘욕단’은 ‘작다’라는 뜻입니다. 그의 이름은 벨렉의 어린 동생이었기 때문일 듯합니다. 벨렉의 후손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그 후손이며, 성경의 나머지 부분은 그 후손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물인 예수님을 다루고 있습니다. 욕단의 후손인 한국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의 사촌인 것입니다.”(신앙계, 1999년 9월호 p.115)


  그렇다! 한국인과 유대인은 한 조상 에벨로부터 분리된 형제 족속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이 이스라엘인들의 사촌(친족)인 것은 지당한 사실이다. 대천덕 신부님의 혜안이 놀랍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과 유대인은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한국인과 유대인 두 민족은 한 아비 에벨로부터 분리된 형제 족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닮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 ☞→▶ <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이 쌍둥이처럼 닮은 것들 >



  한 지금 이스라엘의 히브리대학의 랍비들은 한국인이 욕단의 후손이라는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이광섭 목사(예수세계교회 담임)는 성지순례 차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한 유대인 랍비를 만나 한국인이 욕단의 후손이냐고 질문을 했는데, 그 랍비는 "그렇다. 한국인은 욕단의 후손이다"고 답변했다고 그가 확인한 사실을 필자에게 통보해준 적이 있다.

 

  한국인이 욕단의 후손이라고 확언하는 유대인은 랍비들만이 아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이른바 ‘메시아닉 쥬’의 지도자인 유대인 목사도 있다. “시온의 장막(Tabernacle of Zion)” 대표로서 선지자 사무엘의 거처였고 기브온 산당이 있던 사무엘 산에서 1993년부터 중보기도사역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메시아닉 쥬 목사(사진)도 한국인이 욕단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탐 헤스 등 이스라엘 내 복음주의 사역자들의 영적인 멘토 역할을 하고 있고, 아셀 인트레이터, 댄 저스터 등 메시아닉 유대인 사역자들과 서로 중보기도로 연합하고 있으며, 유대교 랍비들에게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유대인 목사이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사역중인 필자의 지인인 전희원 선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은 욕단의 후손입니다!” 

 

  그렇다.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공경하던 욕단 족속은 대홍수 후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가려고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멀리 동방의 ‘스발’(시베리아~만주)로 천동(遷動)했다. 그리고 ‘HAR HA KEDEM’ 즉 아시아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밝산(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본거지로 삼아 밝달나라를 세우고 우리 배달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이제 한국인은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하여 동방의 등불이 되어야 한다. 정체성을 알면 부르심을 성취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한국인은 하나님이 나중에 쓰시려고 동방의 땅끝에 은닉해 두신 셈의 현손(玄孫) 욕단의 후손으로서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제2의 성민이다. 그렇기에 우리 겨레는 민족사를 ‘알이랑’ 즉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거룩한 백성 ‘알이랑민족’인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질문: 한국인의 조상은 성경상 누구입니까?
답변: 윤사무엘목사(정리)

창세기 10장에 노아의 세째 아들 셈의 후예가 소개되어 있다. 셈의 4대손 에벨이 낳은 장자 벨렉은 오늘날 유대인의 조상이며, 차자 욕단은 한국인의 조상(알이란 민족)이 된다.

창 10: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26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웹과 예라와 27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28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29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30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
31 이들은 셈의 자손이라 그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선택받은 백성은 벨렉 계열과 욕단 계열 두 백성이 존재한다. 이 특별한 종족들은 셈족의 현저한 두 갈래 가지(branch)이다. 벨렉의 후손에서는 그의 6대손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름을 받음으로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탄생했다(창 11:10~32). 그렇다면 욕단의 후손은 어디로 갔을까? 성경은 그들이 동방의 산악 지대를 넘어 아시아로 갔다고 말한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창 10:30)

여기에서 ‘산’이란 히브리어로 ‘하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산맥’, 혹은 ‘일정한 지역의 산들’ 곧 ‘산지’를 가리킨다. 동양에는 큰 산들이 많이 있다. 즉 욕단은 동쪽 산악 지대를 넘어서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 아시아로 천동했던 것이다.

욕단의 가계는 에벨의 혈통으로서 셈족 중에서도 특별선택을 받은 셈족의 종가(宗家)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백성이었고, ‘알이랑 정신’, 곧 ‘하느님 중심 사상 ․ 신본주의 정신’이 가장 확고한 족속이었다. 따라서 욕단 족속은 셈족의 정통성을 승계한 백성답게 ‘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 즉 ‘알이랑(With God) 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찬송하면서 ‘스발’을 향해 동방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스발’의 위치는 어디일까? ‘스발’을 히브리어에서 음역하면 ‘새팔’이다(우리말 성경 개역판의 히브리어 음역 표기는 고대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으로부터 왔다).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새팔’은 결코 당시에 존재하거나 알려진 도시와 장소의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홍수로 인해 지워졌기 때문이다. 욕단이 천동하기까지 동양에는 아직 누구도 살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창세기 10장 30절에 언급된 ‘새팔’은 현실적인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예시적’인 지명이다. ‘예시’란 나중에 원형으로 구체화 될 어떤 진리가 미리 ‘암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새팔’의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지명 및 위치를 찾아야 한다.

예시적 지명 ‘새팔’은 어디일까? 일단 그곳은 아시아 동쪽의 어느 곳에선가에서 추적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욕단은 동방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과연 어디를 뜻할까? ‘시베리아’이다. 알타이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진다. 시베리아는 고조선의 창건 무대인 만주 대륙이 연장된 땅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의 고향이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멀리 천동한 욕단 족속은 남북만주 및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방의 새 땅을 ‘새발’이라고 하였다. ‘새발’은 ‘새벌’의 고어로서, ‘새 땅’ ‘새 벌판’이라는 뜻이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바로 우리 한민족의 발상지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예시한 것이다. ‘새팔’과 ‘새발’은 발음이 아주 유사하다. ‘ㅍ’을 약하게 소리 내면 ‘ㅂ’이 된다. ‘ㅍ’과 ‘ㅂ’은 모두 ‘파열음’으로서 한 계통의 소리이다. 따라서 자주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안팎’은 ‘안밖’이요, 동이족의 후예인 인디언은 ‘아버지’를 ‘아파치’라고 부른다. 따라서 ‘새팔’ = ‘새발’로 간주할 수 있다.[시베리아라는 지명은 한국어 새바르/시비리에서 유래했다. [유석근,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민족' 116쪽]

그러니까 우리 알이랑민족 한국인의 성경상의 직계 조상은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다. 따라서 동방의 한국인은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는 또하나의 선민인 것이다. 셈 계열 내에서 에벨의 혈통인 욕단의 후손은 선택받은 백성이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느님께서 나중에 쓰시려고 “감추어 두신 선민”이 바로 알이랑민족 우리 한국인이다(그러나 당신이 누구든 꽉 막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면, 상실되었던 계시가 드러나고 회복되더라도 결코 그것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겨레가 하느님이 감추어 두신 ‘또 하나의 선민’이라는 교훈은 새로운 선민주의(particularism)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록된 계시인 성경에 근거한 객관적 사실이다. 아시아 서쪽 땅 끝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셈족의 현저한 ‘좌측 가지’인 벨렉의 후손이다(창 10:21,25; 11:10~32). 그리하여 그들은 천손민족이다. 아시아 동쪽 땅 끝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셈족의 현저한 ‘우측 가지’인 욕단의 후손이다(창 10:21,25,30). 그리하여 그들도 천손민족, 곧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인 것이다.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겉사람’과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이 있는 것과 같이 선민, 곧 천손민족도 겉으로 드러난 선민(벨렉 계열 유대인)이 있고 속으로 감추인 선민(욕단 계열 한국인)이 있다. 창세기 10장 21절에 의하면 벨렉 계열과 욕단 계열은 셈족의 현저한 두 가지(branch)로서 신적 선택을 받은 족속인 ‘에벨의 혈통’이다. 이것은 상실되었던 진리로 마지막 때에 회복되어야 할 아주 중요한 계시이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평화를 사랑하고, 인정이 많으며, 예의와 도덕을 지키고, 진리를 추구하는 민족이다. 최근 조사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의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지능지수가 높은 것으로 밝혀져 한국인은 지성적인 측면에서도 다른 민족에게 뒤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그래서 불과 반세기만에 전쟁의 잿더미를 벗어나 경제 기적을 이루어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려 하고 있다.
한국인의 다른 특이한 점은 유대인의 습성과 풍습이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것이다.

한국여성과 유대인 모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외출시 얼굴을 가린다.양 민족 모두 돌제단을 쌓아서 제사를 지내고, 부모를 "에미","에비"라고 부른다.또한 장례식에서 베옷을 입고 곡을 하며,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을 한다. 유대인이 유월절에 문설주에 양의 피를 뿌리듯이 한국인은 이와 비슷하게 붉은 팥죽을 뿌린다.
한국인은 유대인과 같이 근면하고, 흰옷을 즐겨 입으며, 종교성이 강하고, 장사 수완이 좋다.그래서 예전에 유대인이 미국 흑인 지역에서 하던 사업인 수퍼마켓과 세탁소, 의류사업, 가발 등을 그대로 하고 있다.이를 놓고 볼 때 한국인이 유대인과 비슷한 핏줄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인은 홍수 심판 이후 살아 남은 노아의 자손이다.노아에게는 셈, 야벳, 함의 세 아들이 있었는데, 한국인은 셈의 장자와 차남인 엘람과 앗수르의 후손이고,유대인은 셈의 셋째 아들인 아르박삿의 자손 중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손인 야곱의 후손이니다.
엘람과 앗수르의 자손은 지금의 터키 지역인 아라랏산 부근에 살다가 바벨탑 사건 이후 동방으로 이주한 것이다.그래서 고조선에서는 신정국가로 하늘에 있는 유일신에게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하나님을 믿는 국가였다.그런데 한국의 고대사를 기록한 삼국유사나 삼국사기가 불교나 유교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왜곡해 진실을 가려 버렸기때문에 많은 사람이 진실을 알지 못하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야 41:2 "누가 동방에서 의인을 일으켜서 그를 자기 발 앞에 불렀으며, 민족들을 그 앞에 주어서 왕들을 다스리게하였느냐? 그가 그들을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날아가는 그루터기 같게 하였도다."
이사야 46:11 "내가 동쪽에서 굶주린 새를 부르고, 먼 나라로부터 나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를 것이라.정녕 내가 그것을 말하였으니 그것을 또한 이루어지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의도하였으니 내가 또한 그것을 행하리라."
이사야 55:4 "보라, 너는 네가 알지 못하는 한 민족을 부를 것이요, 너를 알지 못하던 민족들이 네게 달려올 것이니주 너의 하나님 때문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을 위해서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로마서 10:19~20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말하기를 “내가 백성이 아닌 그들로 인하여 너희로 질투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인하여 너희로 진노하게 하리라.” 하였으며, 이사야는 매우담대히 말하기를 “내가 나를 찾지 않은 자들에게 발견되었으며 나에게 묻지 않은 자들에게 나타났느니라.” 하였고
계시록 7:2 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동쪽에서 올라오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장을 가지고 있더라. 그가 땅과바다를 손상시킬 권세를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음성으로 소리질러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그들의이마에 인장으로 표시할 때까지 땅이나 바다나 또는 나무들을 손상시키지 말라."고 하더라.

1. 지능지수 높은 동아시아인
‘미국에 사는 백인들의 평균 지능지수(IQ)는 백(100)이고 동아시아인들의 평균치는 이보다 적게는 2∼3점, 많게는 10점이나 높다.’ 과연 그럴까. 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리학자인 리처드 헤른슈타인 하버드대 교수가 명저 ‘종(鐘)모양의 곡선’에서 밝힌 말이다.
세계 13세 어린이 수학 및 과학경시대회에서 한국 어린이들은 보통 5등 안에 든다. 미국의 50개 주는 매년 최우수 고교졸업생 2명씩을 뽑는데 거의 매년 한국 학생이 여러 명 포함된다. 미국에는 1만개가 넘는 고등학교가 있는데 한국학생들이 수없이 수석졸업을 한다. 하버드대가 이들을 다 뽑는다면 주요학과는 이들로 가득 찰 것이라고 한다. 인종 쿼터 같은 것이 있어서 입학생 수가 제한되긴 하지만.
문명의 충돌이라는 설(說)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는 근저 ‘문화가 중요하다’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1960년대 한국은 아프리카의 가나와 비슷했는데 지금 1인당 소득 면에서 20배 이상 앞서게 된 것은 교육열 근면성 기강등에서 그만큼 앞서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민총생산(GNP)은 60년대 불과 몇 조원에서 지난해에는 515조원으로 늘었다. 최근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이 방콕에서 공동 개최한‘아시아경제의 장래’에 대한 회의에서 마이클 페어뱅크는 과거 30년간한국인의 생산성향상은 세계 제일이라고 했다.
한국의 제2차 5개년계획(1967∼1971)의 경제고문이었던 어마 아델만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한국인은 보면 볼수록 유대인과 비슷하다고 했다. 유대인인 그녀는 한국을 수없이 방문한 바 있다. 같이 유대인과 한국인을 비교하는 글을 써보자고도 했다. 헤른슈타인 교수에 따르면 유대인의 평균 지능지수도 백인보다 높다.
서울대의 어느 교수는 삼국지(三國志)책을 250여 종류나 갖고 있다. 전세계의 ‘삼국지’를 거의 다 사 모은 것이다. 서재 하나는 이 책으로 꽉차 있다. 이 책이 읽히고 있는 나라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네 나라이다. 젓가락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도 바로 이 네 나라이다.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는 이 네 나라를 ‘동아시아 국가들’이라고 한다.그러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역사 전통 문화에서 서양을 앞선다고 했다. 말하자면 뼈대가 튼튼한 나라라는 것이다. 서양이 현재 소득수준 기술면에서 다소 앞섰다고 하여 결코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안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과 군사대국으로서 탄탄대로를 달리면서 세계 어느 나라와 언제든지그리고 어떤 규모의 전쟁을 하더라도 이기게 돼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가히 ‘캠핑’하는 기분으로 동아시아국가의 하나인 베트남에 전쟁을 걸었다. 결과적으로는 패배하고 물러났다. 일본은 유럽선진국보다 산업화를 100여년 늦게 시작했지만 70년대 초에 이들을 모두 추월했다.
토인비는 이런 예가 동아시아국가들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세계 역사는 동서양간의 다툼의 역사이며최근의 그 축소판이 미일간의 경제전쟁인데 이를 모르면 세계 경제나 역사의 흐름을 잘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우리로 볼 때는 미국경제나 일본경제의 흐름 그리고 그 관계의 변화를 모르면 살아가기가 어렵게 돼 있다. 많은 기업들은매일매일 미국돈 값, 일본돈 값 그리고 그 환율의 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서양이 동아시아를 앞서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고 그 이유는 주식회사라는 제도와 주식회사가 마음놓고 자랄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시스템의 두 가지다. 한 중 일 등 동아시아국가들도이 두 가지를 잘 활용하게 되자 모두 경제기적을 창조할 정도로 이를 발명한 나라들보다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주식회사와 자본주의라는시스템은 비록 서양이 발명한 것이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국가들이 이를 서양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인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엄청난 저력을 가진 한국인들이 수없이 많다. 수많은 한국인들은 개인적으로는 헤른슈타인 교수가 밝힌대로 백인들을 능가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한국인은 국가의 지도자를 잘 만나고 나라 차원에서 장기 비전, 시스템 그리고 전략을 잘 짠다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것이라고 한다.
[송병락교수 이야기경제학-7]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동아일보 2001년 07월 08일)

2. 노아의 자손들
세상에 악이 관영하자 하나님은 B.C. 2458년에 물로 온 지구를 심판하셨고, 당시 의인이었던 노아의 8명의 가족은방주를 만들고 탐으로써 대홍수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40일동안 주야로 비가 내려 164일동안 온 땅이 물에 잠겼고, 물이 빠진 후 방주는 아라랏산 정상에 다다랐다.지금도 알프스나 히말라야 등의 고산지대에는 조개나 물고기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노아는 아라랏산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고, 하나님은 노아 가족이 다산하고 번성하도록 축복하셨다.노아의 아들 셈은 다섯 아들을 낳았고, 함은 네 아들을 낳았으며, 야벳은 일곱 아들을 낳았다.셈의 자손들은 산 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주로 아라랏 산 중턱에 살았다.함의 자손은 메소포타미아의 평원에 정착했고, 야벳의 자손은 주로 섬과 바닷가에 자리 잡았다.

셈의 자손들 중 일부는 산에서 내려와 우르 지방으로 내려왔는데 인류 최초로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족이라 불린다.우리말에서 남자를 뜻하는 '사내' 또는 '사나이'는 '산(아라랏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수메르 사람은 인류 최초로 기호로 발음과 뜻을 나타내는 '쐐기문자'를 만들었다.'수메르'라는 말이 '셈'에서 나온 것으로 학자들 사이에 인정되고 있고, 수메르어는 아담 때부터 있었던 언어로 추정된다.
수메르어와 우리나라 말 사이에는 유사점도 많은데 우리말의 '길'이 수메르어로 'gir'이고, 우리말과 같이 님(nim)이란존칭을 붙이며, 하늘을 'an-ur'이라고 하고, 아버지를 'abba', 자신의 아버지를 'abi'라고 부른다.한국어와 수메르어는 모두 교착어로 주격, 소유격, 목적격을 나타내는 조사가 있고, 문장 구조도 한국어와 같은주어-목적어-동사 순이다.
노아로부터 저주 받은 함의 장자인 '구스'의 가문에서 태어난 '니므롯'은 영웅적 사냥꾼으로 바벨탑 문명을 건설한인물이다. 함의 둘째 아들 미스라임은 이집트 지역으로 가서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수 많은 우상신을 섬기는 신비주의 종교를 만들었다.

함의 넷째 아들인 가나안은 장사꾼 기질이 있어서 그의 후손은 시돈과 두로 지역에 페니키아를 건설하고 무역을번성시켰으며, 수 많은 우상 신을 만들어 내었다.이로써 함의 자손들은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사탄의 삼위일체라고 할 수 있는 바빌론, 이집트, 페니키아 문명을 건설한다.이 곳에서는 각각 '인본주의 문명', '신비주의 종교', '물질 만능주의'가 태동되어 이스라엘과 인류를 타락시켰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장사에 도움이 되는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를 보급하기 위해 아스다롯이란 여신을 만들어 내었다. 페니키아 신전에서는 여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여사제들이 쾌락을 선사하기 위해 돈을 받고 매춘을 했다. 이 가나안의 여신이 수메르 지역에 있는 셈의 자손들에게도 스며들어 '이난나'(Inanna) 여신이 되었다.수메르 사람들은 이와 같이 주변국의 영향을 받아 점차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신을 섬기며 타락하기 시작했다.

3. 한민족의 원래 종교
우리 민족은 고조선 시대부터 유일신인 하늘님(하나님)을 믿던 경건한 민족이었다.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을 천군(天君)이라고 하는데 천군이 신격화되어 단군이 되었다.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는 고려 말에 승려인 일연 김견명이 저술한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고려시대의 장군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자료의 수집과 편찬 의도가 불교의 전파에 있었다. 불교의 윤회설을 입증하기 위해 인간의 조상이 짐승(곰)이었다는 근거 없는 설화를 끼워 넣었고, 역사를 왜곡했다. 삼국유사의 고조선 편에서는 환웅(하나님의 아들)이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굴 속에서 견디라고 했고,곰이 21일동안 견뎌 여자가 되었으며, 여자는 사람으로 변한 환웅과 혼인해 단군 왕검이란 아들을 낳았다.
삼국사기는 고려 17대 왕인 인종 때에 김부식이 삼국시대에 대해 저술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다.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신라중심으로 중화사상에 젖어 쓴 역사서로 내용이 딱딱하고 중국과 신라의 역사적 사실이 과장된 부분이 많다. 삼국사기는 불교와 유교적 관점에서 저술해 고조선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단군에 대해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러나 김부식과 일연이 우리 민족의 참된 역사를 왜곡하였다고 해도 중국에 있는 우리민족에 관한 역사까지변질시킬 수는 없었다. 중국의 고대사는 분명히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숭상한 경건한 민족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후한서에서 예전은: "시월이 되면 반드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말씀을 읽으며 밤에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이를 무천(無天)이라 합니다."
삼국지에서 고구려는: "시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성회가 있는데 이를 동맹이라 했다."
삼국지에서 진한은: "성마다 한 사람을 세워 천신께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이를 천군이라고 했고, 그 제잔을수두라고 한다."
중국의 고대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규원사화'에도 단군이 신단수(神檀樹) 아래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이자 임금임을 밝히고 있다.1675년(숙종 2년)에 북애자(北崖子)가 저술한 '규원사화'는 일본의 우리 역사 말살 때에 많은 책이 몰수, 폐기되는 와중에 무애(無涯) 양주동(梁柱東) 선생이 감추어 두었던 것을 남창(南倉) 손진태(孫晋泰) 선생이 극비리에 필사(筆寫)하여 빛을 본 책이다.
일제가 고조선의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했지만 '규원사화'를 비롯한 많은 고서古書와 중국의 역사책에서 밝혀진 바로는엄연히 단군조선이 있었고, ‘단군檀君’이란 말은 ‘박달(壇) 나라의 임금(君)’이란 뜻이었던 것이다. 단군조선은 47대 1,195년간 존속했고, 공자를 비롯한 많은 중국의 성현들도 우리나라(동이 東夷)를 흠모했다는 기록이있고, 동방삭東方朔(한 무제 때의 사람)은 당시의 우리 민족을 가리켜 ‘태연하게 앉아 서로 범하지 않고, 헐뜯지 않고, 사람에게 근심이 있으면 서로 구해 주어 선인(善人)이라고 했다’고 기록한 바가 있다.
고조선 시대에는 한문이 없었는데 어떻게 단군이란 이름이 생겨났는지는 규원사화에 잘 나와 있다.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박달임검지역야(朴達壬儉之譯也)'라 해서, '단군이란 박달나라 임금을 번역한 것'으로 되어있다. 박달이라는 말은 옛부터 백달이나 배달로도 불렀고, 나라의 우두머리는 임검이라 했다.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신씨이강어단목지하 이환검신인(神氏已降於檀木之下 而桓儉神人 )'이라 해서 그 뜻을 살펴보면, '신씨천황께서 이미 박달나무 밑에 하강했고, 환검신인이 다시 단목 아래에서 임금의 자리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단(檀)으로써 나라이름을 삼은 것이며, 단군이란 단국의 임검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단군을 환검이라고 했는데, 이 환검이 왕검이나 임검으로 변한 것입니다. 내용 중에 환검신인, 즉 단군이 박달나무 밑에서 인민들로부터 추대되어 임검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자연히 박달이라는것이 나라 이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단군이라는 것은 박달나라의 임검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박달나라의 임검이란 뜻인 이 '박달 임검'은 계속 불려져 내려 왔습니다. 그러다가 약 2천년 후인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에 불교가 들어올 때를 전후해서 한문이 들어왔습니다. 그 때 사가들이 역사를 한문으로 서술하다 보니까, '박달 임검'을 박달단(檀)자 임금군(君)자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그 때부터 단군으로 부르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한문이 들어오기 전에는 단군이라는 용어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병도씨의 '단군이란 건 터무니없는 소리다'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어떤 이는 단군을 탱구리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바로 박달나라의 임검이란 뜻을 번역하다 보니까 단군으로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문헌이 있습니다. 중국의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보면, 세칭 낙랑단궁(樂浪檀弓)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낙랑단궁이라고 한 것은 활이 생산되는 지명이 박달이기 때문에 단궁(檀弓)으로 불렀고, 또 나라이름이 박달나무와 같기 때문에 이와 같이 유전되어 왔던 것입니다.
단군, 단군임검 또는 단군왕검은 고유명사가 아니고 박달나라의 임검이라는 뜻을 가진 보통명사입니다. 시조 단군 한 사람의 이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단군은 한 사람일 수 없고, 그 자리를 이어받은 후손들도 모두 '박달나라 임검'이라는 뜻으로 계속 단군이라고불리어 왔습니다. 제왕연대력이나 조선사례기 혹은 해동춘추 같은 책을 보면, 처음 국호가 단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규원사화의 신뢰성을 입증하는 '중국 고대기본 사적'과 합치되는 부분이 열군데 이상 됩니다.
규원사화에 보면, 제3세 임검 가륵임검 때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때마침 하왕이 덕을 잃어 신하들 중에서 몇몇이 배반하여 군사를 일으키고, 임금의 자리를 빼앗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식달에게 남국과 진번의 백성을 이끌고 이들을 치게 하니, 나라의 위엄은 크게 빛나게 되었다(時夏王失德 其臣有謀逆者 乃使息達 率藍眞蕃之民 以征之於是國威益彰).' 여기서 식달은 사람으로 요즘 말하면 국무총리 벼슬에 있던 사람입니다. 또 단군조선은 나라를 아홉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진번과 남국은 그 아홉나라 중 두 나라에 해당되는 나라입니다. 위 대목에 보면 그 당시 중국임금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위 내용과 부합되는 중국측 사서가 있습니다. 후한서 동이열전에 보면, '하나라 임검 태강이 덕을 잃어 이인(夷人:동이인, 즉 조선사람)이 비로소 배반하기 시작했다.(夏后氏 太康失德夷人始畔)'라는 내용이 있고, 그 주(註)에 '태강 예에게 쫓겨 났다'고 되어있습니다. 하왕 태강이 그 신하 예에게 추방당한 연대가 표준세계년표에 의하면 '태강 19년 신해(辛亥,서기전 2170년)'이므로, 이연대를 우리 가륵(嘉勒) 임검의 즉위년대수를 기준으로 하여 우리측 기년(紀年)으로 환산하여 보면 가륵임검 37년 신해(단기 164년)에 해당하므로 위 사실은 대략 이 무렵에 일어난 것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두 내용이 부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더 들면 환단고기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15세 벌음(伐音)단군 때의 기사를 보면, '때마침 하왕이 사신을 보내와 도와줄 것을 요청하여 말량에게 군사를 거느리고나아가게 하여 구해 주었다. 그 후 또다시 하왕이 군사를 요청하였으나 임금이 그 무도함을 물리치고 허락하지 않았다.(時夏王遣使請援 乃末良興兵進救 後夏王復請兵 儉以其無道却而不許)'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중국측 사서 여러 군데를 찾아본 즉, 서기전 77년에서 서기전 6년에 살았던 유향(劉向)이라는분이 쓴 설원(說苑) 제13권 권모편(權謀篇)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위 벌음(伐音)과 같은 시기에 재위하였던 하왕 계(癸) 52년 갑오(甲午,서기전 1767년)에 '탕이 하왕 걸을 토벌하려고 하므로, 걸왕이 노하여 조선의 군사[九夷之師]를 일으켜서(조선 군사의 힘을 빌어서) 탕을 토벌하니, 탕이 이에 걸왕에게사죄하였다(湯慾伐桀 桀怒起九夷之師 以伐之 湯乃謝罪)'라고 되어있고, 그 다음해인 53년 을미(乙未,서기전 1766년)에는'탕이 걸왕에게 조공을 하지 아니하므로 걸이 다시 조선의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였으나, 구이가 군사를 일으켜 주지 아니하므로 마침내 탕이 군사를 일으켜서 걸왕을 토벌하여 남소(南巢)로 추방하였다(湯不貢 桀起九夷之師 九夷不起 湯乃興師伐之遷桀南巢)'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 기사는 바로 앞서 말한 규원사화의 벌음임검의 기사내용을 뒷바침해주는 것입니다. 위 사실을 우리측 기년(紀年)으로환산하여 보면, 벌음임검 5년 갑오(甲午,단기 567년)와 6년 을미(乙未,단기 568년)의 2년에 걸쳐서 일어난 사실임이 뚜렷하다고 하겠습니다.
규원사화의 내용 중에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저 하늘에 제사를 지내어 근본에 보답하는 의식은 단군으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후세의 역대 모든 나라들이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않음이 없었으니..."
"단군이 이미 하늘에 제사 지내고, 교를 세워 백성을 다스리고, 도를 이뤄 행하게 한지 몇해 동안의 백성들이 모두감화되어 악은 없어지고 천하는 잘 다스려지게 되었다."
이는 창세기에서 노아가 홍수 심판 후에 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과 같습니다.
창세기 8/20 노아가 주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가운데서 취하여 제단에 번제를 드리더라.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에게 교시하는 내용은 성경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 되는 신으로서 가장 높은 곳의 하나 되는 자리에 있도다. 하늘과 땅을 시작하게 하고 모든 세계를주재하며, 한 없는 사물을 만드시니, 가없이 넓고도 넓음에 감싸지 아니한 사물이 없으며, 신령스럽게 밝고도 밝음에가녀린 티끌마져도 새지 아니한다. 하늘 본보기는 오직 하나요, 그 문은 둘이 아니니, 너는 오로지 정성을 순수하게 하고너의 마음을 하나되게 한다면 이에 하늘로 향하리라. 너희 무리들아! 오직 하늘 본보기를 본받아 모든 선함을 돕고,모든 악함을 소멸시키며, 본 바탕이 통하여 맡을 일을 온전케 하면 이에 하늘로 향하느니라."
중국 고대사와 규원사화를 통해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하나님을 믿는 민족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그런데도 사람들은 외국에서 들어온 불교나 유교를 전통종교로 생각하고, 기독교를 서양종교로 인식하는 오해를하고 있습니다.우리민족은 외래 종교인 불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귀신이나 우상을 섬기지 않은 유일신을 믿는 민족이었습니다.
4. 한민족의 기원
인본주의적 사학자들은 인류가 한 곳으로부터 전파되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다는 병행발생설을 주장합니다.그러나 여러 고고학적 증거를 놓고 볼 때 인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생해 전 세계로 흩어졌음이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라. 주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세기 11:9)
성경은 B.C. 2357년경에 노아의 자손들이 하나님을 대적해 바벨탑을 쌓자 하나님이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로 알아 들을 수 없게 한 뒤 온 세상에 흩으셨다고 명시합니다.국내 사학자들이 터키 아라랏산 지역으로부터 중앙 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만주에 이르는 여정을 탐사한 결과민족 이동과 관련된 여러 증거들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그 지역에는 셈족의 특징인 환저형 토기와 생활용기가 발견되었고, 우리 말과 같은 SOV형 교착어를 사용하며,아라랏 산에만 있는 흑요석 공구를 사용하고, 대홍수와 까마귀에 대한 설화를 가지고 있습니다.조사단의 일원이었던 중국의 이벤허 박사가 조사결과를 중국 북경 대학에 논문으로 제출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으므로북경대학도 한 민족의 민족 이동설을 인정한 것입니다.
아담의 탄생은 B.C. 4114년이고, 대홍수는 B.C. 2458년에 일어났으며, 바벨탑 사건은 B.C. 2357년에 일어났습니다.고조선의 건국이 B.C. 2333년이므로 바벨탑 사건이 일어난지 불과 24년만에 만주에 도착한 것이 어려울 것 같지만셈족이 이동이 자유로운 유목민이었고, 조사단이 볼가강 하류의 아조프 박물관에서 바퀴 달린 집을 발견함으로써 이동속도가 빨랐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강화도 마니산에는 단군의 왕검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쌓은 천재단이 있는데, 천제단의 방향이 서쪽으로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쪽에서 섬겼던 하나님께 경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일본의 경우에도 3600개의 고대 암각화 중 70%가 수메르나 셈족의 것으로 추정되며, 가고시마현의 거석에 새겨진 수메르 양식의 고대 선박도 이를 입증합니다.
5. 해상 왕국 가야의 비밀
중국 한(漢) 나라 때 광무제의 박해를 피해 동이족이었던 수로(首露)라는 사람은 A.D. 42년 동료들과 함께 한반도김해에 상륙해 변한 족장의 추대를 받아 가락국을 세우고 김수로 왕이 되었습니다.(김유신의 12대 조부)김수로 왕의 가락(가야)국에서 제철산업을 크게 일으켜 해상을 통해 중국과 일본 등지로 철을 수출하는 상선 500척을보유한 해상왕국을 세웠습니다.
수로가 가락에 도착한지 6년 후인 A.D. 48년에는 지금의 인도 지역인 아유타국의 공주 허왕옥이 신하 두 내외와20명의 선원을 데리고 배를 타고 나타났습니다.삼국유사에는 허왕옥이 불교를 전하기 위해 파사(페르샤)의 석탑을 가지고 온 것처럼 묘사했지만 실상은 다릅니다.허왕옥은 가야에 도착하여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자신이 온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금년 5월 제가 본국에 있을 때 부왕이 왕비로 더불어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제 밤 꿈에 함께 상제를 뵈었는데 상제의 말씀이 '가락국왕 수로를 내려 보내 등극케 하였으니 그는 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다. 그가 새로 나라를세웠으나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그대들은 공주를 보내어 짝을 삼게 하라' 하시고 말을 마치자 하늘로올라 가셨다고 합니다. 부모님께서 잠을 깬 후에도 상제의 말이 아직 귀에 쟁쟁한지라 저에게 이르시기를 너는곧 이곳을 떠나 그리로 가라 하시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상제(上帝)는 전통적으로 하나님을 뜻하는 것으로 불교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허왕옥이 가야에 도착한 A.D. 46년은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로 들어가 선교하던 시기입니다.당시 페르시아는 도마를 비롯하여 시몬, 다대오 등 사도들이 활동하던 선교 중심지였습니다.외경인 '도마행전'에는 사도 도마가 인도에 들어가 처음 전도하여 침례를 준 사람이 인도의 공주이며, 왕과 왕비도침례를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허황후가 인도에서 가지고 왔다는 파사의 돌
김해 김씨의 시조 김수로왕의 릉

허왕옥의 배가 처음 도착한 곳을 가야 사람들은 '주님의 포구'라는 뜻에서 주포(主浦)라 불렀습니다.삼국유사를 쓴 김견명이 말한 파사의 석탑은 실은 가공한 돌이 아니라 평범한 자연석 6개를 쌓아 놓은 것일 뿐입니다.허왕옥이 자신의 배에 돌 여섯 개를 싣고 온 이유는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갈릴리의 배 만드는 기술자였던 사도 도마의충고를 받아 들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김해에 있는 수로왕 릉의 납릉 정문에는 석탑 모양의 그릇을 가운데에 두고 두 마리의 물고기가 마주 보고 있는 그림이있는데, 이 그림은 갈릴리의 오병이어 교회에 있는 모자이크와 같은 형태입니다.허왕옥과 결혼한 수로왕은 국호를 가락국에서 '가야'로 바꾸었는데 , '가야'는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를 의미합니다.물고기는 초대 교회의 기독교인 사이에 사용된 암호였습니다.헬라아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는 말의 이니셜이 물고기 즉 "익투스(ichthus)"라는 말이 되기때문입니다.
무려 2000년 전에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되었고, 가야의 김수로 왕은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현재도 경상도 사람 중에는 인도 공주 허왕옥의 일행의 핏줄이 섞여 서구적인 외모를 갖는 미남 미녀가 많은 편입니다.제가 아는 사람 중에도 부모가 모두 한국인인데 딸은 인도 사람처럼 생겼고, 아들은 서양 사람(인도 사람과 백인은야벳의 후손으로 같은 유전적 형질)처럼 생긴 집안이 있습니다.예전에 있었던 유전적 형질이 수십대가 지난 뒤에도 보존되 있다가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신라 5대 왕인 파사(婆娑) 이사금이 수로 왕을 매우 존경하여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초청해 자문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이사금이 자신의 왕호를 굳이 페르시아를 의미하는 파사로 바꾼 이유는 아마도 허왕옥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기독교로개종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1956년 불국사 경내에서 발견된 석재 십자가와 영남 대학교 박물관 지하실에 보관된 양을 품고 있는 석상 등이 이러한사실을 증명합니다.신라의 화랑도도 메시야를 상징하는 꽃인 무궁화를 머리에 꽂고 다니고, 특이한 사상과 체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보아 기독교를 믿는 집단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6. 사도 도마
도마는 쌍둥이, 인도의 사도로 알려져 있다. 도마는 아마 갈릴리의 한 가난한 어부의 가정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어떻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이름 도마는 시리아어로 '쌍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헬라에서는 그를 디디무스(Didymus)라고도 불렀다. 그는 주님의 부활을 의심한 인물로 흔히 말하여지지만 오히려 경험적인 것에 천착하는 매우 이성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요한복음 14장 1절 이하에서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셨을 때 도마는 주님께 말하기를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라고 질문한 바 있다. 이 때 주님은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라고 대답하셨다.
이런 문답은 도마가 회의적인 인물이어서 물은 것이라기보다 그가 명확한 것을 좋아 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따라서 그는 후일 베다니(Bethany)로 가는 길에서 과단성 있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는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았으나 주님의 손과 발을 만져 보고 창자욱을 만져본 후에는 즉시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위대한 신앙을 고백하였다.
이 고백은 주님의 신성에 대한 그의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서 제자들 중 최초로 주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한 것이었다. 영지주의 문서 중 하나인 도마행전(The Acta Thomae)에는 도마의 선교에 대하여 비교적 소상히 기록되어 있는데 주로 인도에서의 행적이다.
이 책에 의하면 도마는 유대인으로서 인도선교를 요청하는 주님의 부름을 거부하였다. 그런데 주님께서 아반(Abban)이라는 인도의 한 부분을 통치하던 상인에게 나타나 도마를 그의 종으로 팔았다고 한다.도마는 인도에서 목수로서 일하며 한 궁전을 짓도록 명령 받았다. 그러나 자기 주인이 다른 곳으로 떠나자 궁전을 짓는 일을 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20개의 은 덩어리를 다 소비해 버리고 말았다.
왕이 돌아왔을 때 그는 도망치려다 붙잡혀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이 때 왕의 동생이 죽었는데 그는 하늘에서 도마가 왕을 위해 아주 멋진 궁을 짓는 그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다시 지상에 돌아가도록 허락되어 왕에게 도마가 궁을 짓던 그곳을 사들이도록 권하였다. 왕은 이 제안을 거부했으나 도마를 석방하였고 도마에 의해 회심하였다.
도마의 전도로 말라바(Malabar) 해안선을 따라 기독교인들이 증가했고 그 지역에 일곱 개의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 도마는 72년경 마드라스 근처의 빅 힐(Big Hill)이란 곳에서 창에 맞아 순교하여 밀라포르(Mylapore)라는 곳에 뭍혔다.인도의 교회들 중에는 도마 교회가 지금도 있다. 인도 특히 케랄라(Kerala)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성 도마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말한다.
1522년에 포루투갈인들이 도마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한 무덤을 발견했는데 유해를 밀라포레에 있는 '성 토마스 대성당'에 안치하였다고 전한다. 그의 유해 중 일부는 4세기에 에데사(Edessa)에서도 발견되었고 '도마행전'에 의하면 그 유해를 인도에서 메소포타미아로 옮겼고 아브류찌(Abruzzi)에 있는 오르토나(Ortona)에 최종적으로 안치했다고 한다.
2002. 1.27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주님의교회 목사 박찬희
7. 공자에 대한 오해
사람들은 명절 때마다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데 그 원류가 공자의 유교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공자가 부모에게 효도하라고는 했지만 죽은 부모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마치 불교에서 석가가 자신에게 불상을 만들고 절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이 석가를 신으로 모시고 천배씩 절하듯,유교의 많은 부분은 후대 사람들이 공자의 가르침과는 상관 없이 만든 것입니다.
고대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요(堯)와 순(舜) 임금입니다.공자(孔子)의 서경(書經)에 의하면 요, 순 임금은 상제(上帝)에게 제사를 드렸으므로 하나님을 믿던 사람이었습니다.순임금 때부터 중국인들은 여름에는 북쪽 끝에서,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 끝에서 국경제사를 상제에게 드렸습니다.요,순 시대부터 상제에게 제사를 드렸던 제사문이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아직도 남아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극히 오래 전 태초에 공허하고 흑암의 큰 혼돈이 있었사옵니다. 다섯 행성은 아직 운행되지 않았었고, 태양도 달도빛을 발하지 않았었습니다. 거룩하신 신 상제(上帝)께서 이곳에 모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주께서 모든 만물을 만드셨사옵니다. 그리고 사람을 지으셨사옵니다. 당신의 능력으로 모든 만물이 지음을 받았사옵니다."
위 내용을 창세기의 내용과 비교하면 매우 흡사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1~5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세기 1/25~27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또 다른 국경 제사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모든 생물들이 당신의 뜻으로 말미암았나이다. 상제(上帝)시여, 인간도 만물도 모두가 당신의 사랑으로 이 낙원에살게 되었나이다. 모든 생명체가 당신의 선하심으로 지음 받았사오니, 그 축복은 당신으로 말미암음이옵니다.오 주시여, 당신만이 이 모든 만물의 참 어버이가 되시옵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도 기독교 이외에 위와 같은 기도문은 없습니다.따라서 중국인이 바벨탑 사건 이후 흩어진 노아의 후손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중국인은 얼굴은 동양인이지만 언어나 생활(입식), 식생활(고기, 기름) 등에서 서양인과 가깝습니다.옛 중국인들의 시신을 발굴해 보면 금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인은 노아의 셋째 아들인 아벳의 후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셈족인 동이족이나 몽고족과 피가 섞이면서 지금과 같은 동양인적 모습을 하게 되었습니다.중국 사람들 역시 진시황이 진나라를 세웠던 B.C. 200년까지 무려 2000년 동안 유일신인 하나님을 섬겼습니다.상제(上帝)의 중국식 발음은 '샹따이'인데, 유대인의 하나님 칭호 중 하나인 '엘 샤따이'와 유사합니다.현재 중국어로 된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상제라고 부르고 있으며, 중국인들이 쓰는 문자인 한자 역시 창세기를 모델로만들어졌습니다.노(魯)나라 사람인 공자(孔子, B.C. 552~B.C. 479)는 유교의 창시자로 은(殷)왕족의 혈통을 이어 받았으며, 춘추시대 말기에 태어났습니다.당시 사회는 철기 사용으로 인한 농업혁명으로 인해 풍요로웠지만 물질주의로 도덕이 땅에 떨어졌고, 더 많은 토지를소유하기 위한 제후들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위정자는 덕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의 중심에 놓인 것이 인(仁)으로, 공자는 최고의 덕을 인이라고 보고,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인덕(仁德)을 지향하고, 인덕을 갖춘 사람만이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앉아 인애(仁愛)의 정치를 한다면, 세계의 질서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자의 인은 사람다움을 구현하는 과정입니다. 공자는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예절을 갖추어야 무슨 소용이 있으며,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음악을 잘 연주해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공자의 관심은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길(道)인가에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답지 못한 사람들을 낮추어 '짐승 같다.' 라는 표현을 씁니다. 공자는 인의 실천을 위해서는 예(禮)라는 형식을 밟을 필요가 있다고 하였는데, 예란 전통적 ·관습적 형식이며, 사회규범으로서의 성격을 가집니다. 이처럼 공자의 사상은 사회적·정치적 인간을 위한 도덕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그 보편성을 보증하는 것으로서 하늘의 신적 존재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공자는 예(禮)를 통해 인(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바른 정치이며, 바른 정치를 위해서는 우선 ‘바른 명분(名分)’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명분은 오늘날 ‘핑계, 공리공론’의 의미로 잘못 인식되기도 하지만 공자가 말한 명분은 ‘지도자의 도덕성과 솔선수범’을가리키는 것으로 그의 ‘덕치주의(德治主義)’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공자는 인간을 군자와 소인으로 나누고 여러 곳에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소인은 자신에게 이로우냐 해로우냐를 따지는 데 밝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군자는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데 밝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군자는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데 밝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이로움이 될 만한 일을 보면, 먼저 그 일이 옳은 일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또 소인은 남들과 같아지기는 잘하지만, 남들과 어울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군자는 남들과 어울리되 같아지지는 않습니다. 남과 같다면 자신의 존재 의미는 없습니다. 자신이 참다운 가치가 있다면, 자신의 역할을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야 합니다.
군자는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반대로 소인은 누구라도 그 사람을 대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남들과 참답게 어울린다는 것은 사람이 주체가 될 때만 가능합니다. 어느 한 사람이라고 주체를 잃고 남에게 얽매인다면, 그것은 참답게 어울리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군자는 다스리는 계층, 즉 군주의 자식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지배 계층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군자의 의미를 지배 계층이 아니라 덕을 쌓은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공자는 사람다운 사람 위에 다시 성인을 두었습니다. 사람다움의 완성이 성인인 것입니다. 논어 '옹야'편에 공자와 제자 자공의 대화가 나옵니다.
"만일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어서 모든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어찌 사람답다고만 할 수 있겠느냐? 반드시 성인의 경지일 것이다. 요순도 오히려 그렇지 못할까봐 항상 근심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결과적으로 내게 이로울 것인가 해로울 것인가를 따지지 말고, 오직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라는것이 공자의 생각입니다.그리고 옳다면, 비록 그 일을 하다 해를 입을지라도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사람다움을 이루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동양의 사상과 윤리와 도덕의 토대를 완성한 공자조차도 모든 것을 안다고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죽음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삶도 아직 다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말하겠느냐?" 자로가 다시 물었습니다.
"神에 관해 이야기 해 주십시오."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데 어찌 神에 대해 논하겠느냐?"
이 대화를 통해 공자의 관심이 신이나 죽음에 있지 않고 사람과 삶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는 스스로 자만하지 않고 자신이 인간에 관한 문제를 알기에도 벅차다는 것을 인정한 셈입니다.결국 공자가 인간의 삶에 대해 얻은 해답이 인(仁)이었던 것입니다.따라서 유교는 죽음에 관한 종교라기 보다는 삶에 관한 윤리 도덕이나 사상과 철학이라고 보는 편이 옳습니다.
공자가 태어나기 전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중국 대륙의 역사는 우리 민족인 동이족과 중국 민족인 하화족의 경쟁과 협력 관계로 이루어졌습니다.중화 사상을 가지고 있는 하화족을 중국인들은 화하(華夏)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본래 황하의 상류 지역에 있는임분(臨汾)에 살았습니다.

동이족에 속하는 소호(少昊)족은 산동의 곡부를 중심으로 살았고, 그 수가 하화보다 많았으나 하화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고 살았습니다.동이족의 정신적 중심은 산동의 태산이었고, 태산 정상에 있는 천제단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살았습니다.
하화의 첫 임금은 요(堯)였는데, 그는 자신의 자리를 물려줄 만한 인재를 찾지 못하고 동이족의 순(舜)에게 자리를물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순은 다시 하화에서 우(禹)라는 인물을 찾아 자리를 넘겨 주었고, 우는 동방 장군들의 협력을 얻어 황하의치수에 성공하였으며, 하화는 임분에서 화산(華山) 지역으로 진출했습니다.
우는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 주었고, 14대에 이르러 걸(桀)이라는 폭군이 나타나, 동이족의 탕(湯)이 걸을 제거하고은(殷) 나라를 세웠습니다.은 나라는 '정인'이라는 기도 집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국사를 결정하는 신정국가였습니다.
은 나라의 30대 주(紂) 왕은 우상을 섬기고 무도하므로, 하화의 발(發)이 은 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 나라를세워 무왕이 되었습니다.주의 무왕은 신정국가였던 은 나라를 멸망시켰으므로 명분을 찾기 위해 신앙의 자유를 선언하였습니다.조상 귀신을 모시는 '종묘'와 농사의 신을 섬기는 '사직'을 모든 지방 관청에 만들게 하고 왕궁에도 세웠습니다.
은이 멸망할 때 두 명의 위인이 있었는데, 한 명은 고조선으로 가서 요동 지역에 땅을 얻어 살았던 '기자'이고,다른 하나는 무왕에게서 은나라 도읍 근처의 땅을 봉지로 받아 은의 유민과 함께 살았던 '미자'인데 그 땅을송(宋)이라 했습니다.
공자의 증조부 공방숙은 바로 그 송나라 사람이었습니다.공자는 죽기 7일 전에 "나의 조상은 원래 은나라 사람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그렇다면 공자와 그의 조상은 하나님을 섬기던 은나라 사람이었고, 공자는 우리와 같은 민족인 동이족이라는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귀신을 섬기던 주 나라가 멸망하고, 천하가 어지러울 때 공자가 태어났습니다.공자 사상의 기본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자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이었습니다.공자는 요, 순과 하, 은, 주에 이르는 역사 상서(尙書)를 기록해 바른 역사를 확립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어지러운 천하를 통일한 사람은 바빌론과의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장사꾼 여불위의 아들 진(秦) 시황제(始皇帝)였습니다.그는 동이족의 신임을 얻기 위해 태산에 제사를 드리러 갔다가, 동이족 창해역사의 습격을 받아 구사일생으로살아났습니다.
시황제는 동이족의 포섭을 단념하고, 장안으로 돌아와 3년 후인 B.C. 215년에 2700km에 달하는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그는 흉노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간쑤성(甘肅省) 남부로부터 북으로, 황하강(黃河江)의 대굴곡부(大屈曲部)의 북쪽을 따라 동으로 뻗어나가, 둥베이(東北) 지구의 랴오허강(遼河) 하류에 이르는 장성을 쌓았는데, 절반 이상은 전국시대의 연(燕)·조(趙) 등이 쌓은 장성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쌓은 주된 이유는 동쪽의 고조선을 막아 놓고, 산동의 동이족을 박해하기 위해서입니다.그리고 B.C. 212년부터 동이족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공자의 사상을 박해했는데, 공자의 책을 모두 수거해 불태웠고,공자의 제자 460명을 땅에 묻어 죽였습니다.
시황제의 분서갱유(焚書:책을 불태움, 坑儒:공자의 제자들을 땅 속에 묻음) 사건을 통해 공자의 원래 사상은 잊혀지게되었습니다.논어는 공자가 직접 저술한 저작이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종교적 논리에 맞게 편찬한 책입니다.따라서 공자가 가졌던 정확한 사상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시황제의 아들 호해를 제거하고 진을 멸망시킨 사람은 하화족인 한(漢)의 유방(劉邦)이었습니다.그는 동이족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공자의 학문을 복원하겠다고 선언하고, 공자의 책들을 기억나는대로 복원하게 하였으나자신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주나라의 종묘와 사직을 삽입하였습니다.그래서 신을 공경했던 공자가 귀신을 섬기던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공자 시대에는 종이가 없어서 대나무를 깍아서 글을 썼고, 올챙이 모양의 과두문자를 썼습니다.그러나 한나라가 만든 공자의 책은 종이에 예서로 쓴 것이므로 그것을 금문상서(今文尙書)라고 하고, 그것을 만든학자를 어용(御用)학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용학자들 가운데 양심선언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논어의 술이(述而) 편을 기록하면서다음과 같은 진실을 말했습니다.
'자불어 괴력난신'(子不語 怪力亂神): 공자는 괴이한 일과 난잡한 귀신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
즉, 공자가 조상 귀신 섬기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공자 같이 수준 높은 사람이 가장 저급한 종교이며 무속적이고 샤머니즘적인 귀신숭배에 빠졌을 리가 없습니다.
공자는 중용(中庸)에서 제사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하늘과 땅에 드리는 모든 제사 의식들을 통해 사람이 상제(上帝)를 섬기느니라."
결국 모든 제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고 공자는 말한 것입니다.이런데도 사람들은 명절 때마다 명백한 우상 숭배인 조상 귀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것이 유교나 우리의 전통인것처럼이해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이미 죽어 심판에 처한 영혼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며, 다른 잡다한 악령들만 불러들일 뿐입니다.이상으로 공자와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해 오해하고 있던 부분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공자가 죽음을 앞두고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의미인 '조문도 석사가의'(朝楣 夕死可矣)라는유언을 남겼듯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사망에서 구원하는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4~500년 전에 동양의 공자와 서양의 플라톤과 인도의 석가가 인생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고,예수님이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문제가 주어지지 않으면 답을 주어도 깨닫지 못하고 소중함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한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 민족과 중국 민족은 무려 2000년동안이나 하나님을 믿고 섬기던 민족이었는데, 왜곡된 역사로 인해 우리는 진실을알지 못하고 오히려 불교나 유교가 전통종교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우리 민족이 원래 하나님을 믿던 민족이었고, 노아의 장자인 셈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구한말에 기독교가 들어오자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급속도로 퍼져 나갔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민족인 된 것입니다.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는 서양에서 기독교가 부흥되고 꽃을 피웠지만 그들은 현재 하나님을 버리고 인본주의와물질주의에 물들어 도덕적 타락과 마약 중독 등의 문제에 휩싸여 있고, 영적 황폐함 속에 살고 있습니다.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인 마지막 때 역사는 해 돋는 동방에서 일으켜야 하며, 온전한 진리의 빛을 전 세계에 비추어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큰 부흥의 역사를 일구어야겠습니다.
이사야 11/9 그들은 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치거나 파괴시키지 않으리니 이는 마치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주의 지식으로 충만할 것임이니라.
하박국 2/14 마치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땅이 주의 영광의 지식으로 가득 차리라.


* 참고 서적
1. 유석근, 알이랑민족회복운동, www.알이랑.com
2.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김성일, 신앙계)
3. 성경은 신화가 아닙니다. (김정주, 갈릴리)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성미


배민수 목사 提唱(제창) '성미운동'

[ 아카이브 ] 1952년에 첫 소개...이전 성미, "자기교회 교역자 생활을 보태기 위해서"
배 목사, "순전히 가난한 형제를 구제하기 위하여 하는 운동"


"最近 배민수 博士로부터 提唱된 誠米運動도 決코 그것이 적은 運動은 아니다.
한끼에 한수깔식 百萬 信徒가 떼어 모은다면 大두로 一千두 하루 二食 計算으로 한다면 四百石이 된다."
(한국기독공보 53년 1월 5일자 1면 '불기둥')

한국교회의 선교 초기부터 나눔 운동이 있었다.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진 구호활동 등과 같은 큰 규모도 있었지만, 이웃을 돌아보는 교인들의 이웃사랑을 담은 작은 규모의 구호활동도 끊어지지 않았다.

1953년 1월 첫 주(5일) 신문 칼럼 '불기둥'에서 '성미운동'을 언급한다.
그러나 이 운동은 이미 한 달 전인 1952년 12월 15일자 1면 기사를 근거로 하고 있다.
한국기독공보를 통해 소개된 '성미운동'은 농촌운동가를 잘 알려진 배민수 목사 제창(提唱)으로 시작된다.

'救國救民運動인 誠米運動(구국구민운동인 성미운동)'을 제목의 기사는 배민수 목사가 성미운동을 제창한 것을 기사화하면서 성도(聖都)교회에서 제정한 규약을 소개했다.

이 운동은 각 교회 단위로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소개된 규약은

"一. 目的은 그리스도의 새 誠명에 立脚하여 相호相助의 生活을 實踐한다. 一.

위의 目的達成을 爲하여 極貧者를 爲하여 1 每戶에서 誠米를 貯蓄하되 每食口의 한술 比例로 한다(貯蓄한 誠米는 主日마다 敎會로 持參한다) 2 病者의 施療를 알선한다 3 失職者에게 職業을 알선한다. 一. 兄弟의 均等生活을 爲하여 生産及協同組合을 장勵한다. 一. 區域마다 區域長을 두고 그 아래 班長을 두어 誠米를 督勵하고 兄弟의 生活實○를 調査하여 救濟對象者를 報告한다. 一洞을 區域으로 하고 五戶로 班을 짓는다"이다.

1953년 3월 23일자 2면 기사에서는 배 목사가 제창하기 이전에 있었던 성미운동에 대해 "과거의 그것은 자기교회 교역자들의 생활을 보태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성도교회의 성미운동은 ... 순전히 가난한 형제를 구제하기 위하여 하는 운동"이라고 소개했다. 이 기사는 '쌀 한술에 基督敎 傳統的(기독교 전통적) 兄弟愛(형제애)는 蘇生(소생)한다'라는 제목의 특집이다.

배민수 목사는 이 기획에서 '團合(단합)은 이러케 偉大(위대)하다'는 글을 통해 "... 성도교회의 성미운동은 교회○○운동으로 교인은 집집마다 의무적으로 하고 목적은 그리스도의 십계명의 실천으로 하였다. ... 적은힘을 합하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말로만 떠들던 이상을 사실로 증명하게되었다. 적은일에 충성하면 큰것을 마○다는 진리아 이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획에서는 성미운동을 위한 교회내 조직을 하는 것부터 성미에 참여하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조직과 운영에 대해서는 "회장은 목사가 되고 서기와 회계를 두고 평의원 및 사람을 두어 실행○를 조직한다. 그리고는 각구역에 구역장을 두고 그 아래 반장을 두고 성미운동을 독려하고 또 자기구역안에 구제받을 사람을 조사하여 회장에게 보고하면 그 보고를 임원회에서 검토하여 구제를 실기한다"고 설명하고, 성미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성미는 주부(主婦)가 끼니마다 밥쌀을 뜰때에 ○○기로 하고 가난한 형제를 위하여 자기식구 전체가 먹을만한 쌀을 ○놓고 그 쌀에서 매식구별로 한술식 더러내서 딴주머니에 저축한다"고 자세하게 안내 했다.

한국기독공보는 같은해 11월 23일자 사설에서 '쌀 한 술 뜨기 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안한다. 사설에서 "主婦가 아침과 저녁에 밥쌀을 뜰때마다 몬저 가난한 兄弟를 爲하여 祈禱하고 自己食口의 平常的으로 먹는 數量을 떠놓고 그 中에서 每食口 比例로 쌀한술(匙)식을 떠서 끼때마다 貯蓄하였다가 主日날 예배당에 갈때 가지고 가서 聖米蒐集箱에 넣는 것이다"라며 참여를 당부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성미운동은 일시적인 운동이 아닌 지속적인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음도 계속되는 지면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64년 11월 28일자 3면에 소개된 후암성결교회 성미운동을 통해 성미운동의 지속성과 함께 장로교를 넘어, 다른 교단에서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기사에는 "서울에서도..."로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성미운동은 도시 보다는 농어촌 등 지역에서 더 활성화 됐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또한 1974년에 개 교회 여전도회를 찾아 취재하는 한국기독공보 연재 기획 '여전도회 순례'에서 각 교회 여전도회 조직에서 '성미부장'이 빠지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은 기사를 통해 성미 운동이 교회내에 깊이 뿌리 내리고, 또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밖에도 각종 구제기금 충당 기사 중에 '성미'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을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성미는 북한에 대한 구호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1997년에 또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북동포돕기비상대책기구를 발족하면서 '평화의 성미 보내기운동'을 전개한다.
이 운동은 NCCK 산하 1만 4000여 교회의 100만 가정이 각각 북한 주민 한 사람 식비를 책임지는 운동으로 배민수 목사가 1950년대에 시작한 성미운동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는 이 때에,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며 부엌 부뚜막에서 이뤄졌던 '성미운동'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공자학원

한국에도 많은 공자학원, 서구에서 ‘퇴출 물결’인 이유

“그들의 새 삶을 노래하네, 위대한 공산당을 노래하네.
오 마오 주석이여, 오 공산당이여, 우리를 정성껏 키워 자라게 하네.”

2013년 3월 16일 미국 미시간 대학. 연미복을 차려입은 한 남자 대학생이 유창한 중국어로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 ‘초원 위로 지지 않고 떠오르는 태양(草原上升起不落的太阳)’을 불렀다. 미시간대 공자학원이 주최한 중국 전통 노래 콘서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즈음 북미ㆍ유럽 대학에선 공자학원을 중심으로 여러 갈등이 빚어졌다.
200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 대학에선 학내 공자학원의 반대로 달라이 라마 방문이 취소됐다.
2014년 포르투갈 브라가ㆍ코임브라에서 열린 유럽 중국학회 콘퍼런스에선 대만 관련 자료가 공자 학원 측 개입으로 삭제되기도 했다.

한 미국 미시간대 학생이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다큐 ‘공자라는 미명 하에’ 캡처

서구에서 문화 충돌 빚는 공자학원

공자학원은 중국이 중국어와 자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만든 교육 기관이자 문화 보급 기관이다.
중국 교육부 지원으로 2004년 설립됐다.
2020년 말 기준 전 세계 162개국 총 541개 공자학원이 운영되고 있다.
열흘에 1개 꼴로 전세계에 확산됐다.

공자학원은 보통 해외 대학과 연계하는데, 설립할 때 대학 측에 약 10억원을 지원해주고 매년 운영비로 1억~2억원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 중국 탐방단, 장학금, 교수 연구비도 지원하는 등 설치하는 대학을 위한 혜택이 풍부한 편이다.

중국만 공자학원 같은 기관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우리도 한글을 가르치고 우리 문화를 알리는 세종학당을 2007년 설립해 76개국 213곳에 보급했다.
영국 브리티시 카운슬, 독일 괴테 인스티투트, 프랑스 알리앙스 프랑세즈도 비슷한 기관이다.
‘문화원’ 역할을 위해 설립된 공자학원이 왜 유독 서양 국가에서 논란을 빚게 된 걸까.

공자학원을 고발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공자라는 미명 하에’에 따르면, 2013년 캐나다 맥마스터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공자학원 80여 군데가 폐쇄됐다.

한때 100개가 넘는 공자학원이 있었던 미국에선 지난해만 20곳이 넘는 공자학원이 문을 닫았다.
유럽 최초로 공자학원을 설립한 스웨덴은 지난해 4월을 마지막으로 모든 공자학원과 관계를 끊었다.
당시 스웨덴 스톡홀름대 아스트리드 비딩 부총장은 외신 인터뷰에서 “다른 나라의 자금을 받는 기관을 대학이라는 틀 안에 설립하는 것은 의심스러운 관행”이라고 말했다.

2014 10 29             20  2

2014년 10월 29일 캐나다 토론토교육청 앞. 이날 교육청 위원회는 공자학원 제휴 중단 안건에 대해 찬성 20표, 반대 2표의 결정으로 공자학원을 토론토 교육 기관에서 퇴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공자학원 반대 시위대(왼쪽)과 중국 정부 지지 시위대(오른쪽)가 교육청 앞에서 세를 겨뤘다. 다큐 ‘공자라는 미명 하에’ 캡처

공자학원을 폐쇄하는 국가들은 공자학원이 중국 공산당의 선전기구이며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한다. 2018년 미국 국회가 발간한 미ㆍ중 경제ㆍ안보 위원회 보고서는 “중국 공산당은 여론 조작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는데, 그중 하나가 공자학원”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해 8월 공자학원을 ‘해외임무기관(Foreign Mission)’으로 지정하고 공자학원을 설립하려는 기관은 인적구성과 예산 등을 의무 보고하도록 했다.

반발이 심해지자 중국 정부는 지난해 7월 공자학원을 ‘중국어 교류·협력센터’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운영 주체도 ‘국가한어국제보급영도소조판공실(한판·汉办)’에서 신설 비영리기구인 ‘중국국제중문교육기금회’로 바꿨다. 두 기구 모두 중국 교육부 산하에 있지만, 국가가 관여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우리나라의 공자학원은?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공자학원이 설립된 국가다.
2004년 11월 21일 서울 강남에서 문을 연 서울 공자아카데미를 시작으로 연세대ㆍ경희대ㆍ한양대ㆍ충북대ㆍ충남대 등 22개 대학교에 설립되는 등 전국 총 23곳의 공자학원이 설치돼 있다.

시민단체 ‘공자학원 실체 알리기 운동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자학원에서 사용된 교재 ‘나와 함께 중국어를 배워요(Learn Chinese with Me)’에 ‘홍호수랑타랑(洪湖水浪打浪)’라는 노래가 실렸다고 한다.

이 노래엔 ‘공산당의 은혜가 동해보다 깊다(共产党的恩情比那东海深)’는 가사가 나온다.
운동본부 측은 공자학원 영문 홈페이지에 6ㆍ25 전쟁을 미국에 대항한 전쟁으로 표현한 영상이 올라왔다가 삭제된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625

한 유튜버가 공개한 공자학원 영문 홈페이지 영상 캡처. 6ㆍ25전쟁 관련 영상인데 미국을 침략자로 묘사하고 있다.
영상은 공자학원 영문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었지만 지금은 삭제됐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우리의 공자학원에 대한 인식과 대응은 해외와는 차이가 크다.
대부분 대학이 공자학원을 단순한 어학원 차원으로 보고 운영을 허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20년 10월 19일 충남대학교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국정감사 회의록을 보면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이 “공자학원으로 인해 대학이 중국 공산당의 체제 선전 무대가 되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하자 이진숙 충남대 총장은 “공자학원은 비교적 순수하게 중국어와 문화적 안내를 하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당시 국감에서 교육부 역시 이런 지적이 나오자 공자학원에 대해서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동북아 역사재단과 함께, (공자학원이) 문제가 있는지 조사를 아직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자학원 측 “문화적 차이”

현재 북미ㆍ유럽을 제외한 국가들에선 적극적인 퇴출 움직임이 있지만, 아프리카ㆍ남미 등 개도국에 설립된 공자학원은 우리나라처럼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세계 경제에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중국과 문화적인 교류를 이어가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5 9

아프리카에선 아직 공자학원 퇴출 움직임이 없다. 2015년 9월 케냐 공자학원 학생들이 중국 무술 시범을 보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다큐 ‘공자라는 미명 하에’의 감독 도리스 리우는 “공자학원이 대학 캠퍼스 안에서 검열을 자행한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며 “하지만 일부 국가들은 중국의 영향력 때문에 반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측이 만든 중국어 교재는 정교한 뉘앙스로 조작된 선전 요소로 돼 있어 외국인의 시각으로는 걸러낼 수 없다”며 “이러한 일은 국가를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나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내 공자학원 측은 해외에서의 논란이 “문화적 차이로 인한 것"이라며 "국내에선 별 탈 없이 운영되고 있다”고 말한다. 김현철 연세대 공자학원 원장(중어중문학과 교수)은 “국내 공자학원은 교재와 교사 선정에도 관여하므로 중국 공산당을 선전하는 내용을 담은 교재는 쓰지 않는다”며 “공자학원이 공산당 선전기관이라는 건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 “우리는 인구 5000만 명에 중국어 학습자가 100만 명이 넘지만, 미국은 인구 3억 명 중 중국어 학습자가 10만 명이 넘는 수준이라 중국에 대한 이해가 우리보다 훨씬 부족하다”며 “(해외의 사례는) 양국이 상호존중하지 않고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퇴출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한민호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 공동대표
“중국 공산당 공작기관 공자학원의 민낯”

“공자학원이 중국공산당 사상 선전과 스파이 활동에 이용돼 수사 대상에 올랐다. 공자학원은 미국 내 중국 유학생과 중국 민주화운동, 인권 활동과 관련된 재미 중국인 동향을 감시하는 거점으로도 악용되고 있다.”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2018년 2월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공자학원은 스웨덴·벨기에 등 유럽 국가에서도 스파이 행위 의혹 등으로 퇴출됐다.
중국은 중국 문화를 알리는 교육기관이라고 해명했지만 공자학원 역할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공자학원의 역할과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미래한국>은 공자학원 실체 알리기와 관련해 청와대 청원, 1인 시위 등 활동을 하고 있는 한민호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 공동대표와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최근 공자학원 논란이 심심찮게 언론에 오르내립니다. 일반 시민들은 중국어를 비롯해 중국문화를 알리는 곳 정도로 알고 있는데, 공자학원은 어떤 곳입니까?

공자학원은 한마디로, 중국 공산당이 공자를 내세워 공산주의를 가르치는 선전, 공작기관입니다. 정작 공자에 대해서는 재산과 권력에 눈이 멀었던 한심한 사람으로 가르치면서, ‘모택동은 위대한 사람이다,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은 풍요롭고 살기 좋은 나라다’ 이렇게 거짓말을 우리 아이들에게 주입하고 있어요.

또 홍콩 민주화운동 탄압, 위구르의 강제수용소, 티베트 인권유린, 파룬궁 등 양심수 장기 적출, 국민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빈부격차, 도농격차 같은 심각한 문제들은 철저히 감추면서 중국과 중국공산당에 대한 환상을 주입하고 있습니다.

- 공자학원이 공산주의, 모택동사상 선전기관이라고요?

공자학원은 우리 아이들을 공산주의로 세뇌시키는 일만 하는 게 아닙니다. 대학에 자리를 잡은 다음에는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중국공산당에 협조할 간첩을 포섭하고, 중국인 유학생과 중국인 사회를 감시하는 첩보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죠.
 

- 공자학원이 ‘공자교실’이라는 것도 운영한다고 하던데요.

공자학원은 대학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대학생들을 세뇌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인근의 초·중·고등학교, 심지어 유아교육기관에서도 ‘공자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을 공산주의사상으로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죠. 적어도 한 세대, 즉 30년 앞을 내다보고 우리 아이들을 친중인맥으로 양성하려는 겁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 공자학원이 공산주의 세뇌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게 맞다면 우리 대학들은 왜 수수방관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는데요.

공자학원 교사와 교재 그리고 교육과정 일체를 중국이 결정하고, 공자학원을 유치하는 대학은 강의실과 사무 공간만 제공합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 각국이 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불평등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이 공자학원을 유치하는 이유가 뭔지 아시나요?

첫째, 공자학원을 프랑스의 Alliance Francaise, 독일의 Goethe Institute, 영국의 British Council 같은 그야말로 문화교류기관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공자학원 설치를 계기로 중국의 유학생들을 유치해 대학 재정에 도움을 받으려 했습니다.

셋째, 중국 정부가 초기 부담금으로 설립자금 10억 원을 지급하고 이후 교사 인건비, 교재비 등을 전적으로 부담하기 때문에 유치하는 입장에서는 부담이 없거나 가벼웠습니다.

넷째,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인해 중국과 ‘교류’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었기 때문이죠. 끝으로, 중국공산당의 모종의 공작도 작용을 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대학 관계자들을 중국으로 불러 ‘접대’한 사례가 부지기수라고 알고 있어요.
 

 7 10         1   지난 7월 10일 우리나라 최초의 공자학원인 서울공자아카데미(강남구 소재) 앞에서 한민호 대표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공자학원이 몇 개나 있는지요?

우리나라에는 2004년 세계 최초로 서울에 공자학원이 설치된 이래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23개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전국 각지에 똬리를 틀고 있죠. 22개는 전국 각 대학에 설치돼 있고, 처음 설치된 것은 ‘서울공자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강남구에서 어학원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자세히 말씀드리면 서울에는 연세대, 경희대, 외국어대, 한양대, 서울공자학원, 부산에는 동아대, 동서대, 인천에 인천대, 강원도에 강원대, 대전에 우송대, 충남대, 충남에 순천향대, 충북에 충북대와 세명대, 광주에 호남대, 전남에 세한대, 대구에 계명대, 경북에 안동대, 경기도에 대진대, 전북에 원광대와 우석대, 제주도에 제주대와 한라대가 공자학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각 대학 교수들과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공자학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찰이라도 하면 좋겠어요.

중국 공산주의·모택동 사상 선전기관 ‘공자학원’

- 대학 당국은 그렇다 치고 실제 대학의 교수나 연구자들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을까요?

우리나라에는 공자학원의 실태에 대한 정확한 연구 보고서가 아직 없습니다. 세계 각국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정부가 설립한 세종학당의 모델로서 중국의 공자학원을 설정하고, 그 운영과 성과를 긍정적 측면에서 연구한 몇몇 보고서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국공산당의 선전, 첩보기관으로서의 본질과 그 악영향을 언급한 보고서는 없다는 것이죠. 다만 ‘공자학원 조사 시민모임(공조모)’이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공자학원에 대한 의혹과 실태’(2020) 등 공자학원에 관한 자료집을 몇 권 발간한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공조모가 ‘공자학원추방 국민운동본부’와 합쳐 새로 출범한 ‘공자학원 실체 알리기 운동본부(CUCI)’가 제대로 된 조사보고서를 12월 중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또 하나, 다행히 지난 5월 21일 ‘대한민국, 종중의 늪에 빠지다’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어요.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 모임’(정교모)과 ‘마인드 300’가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였는데요, 이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공자학원이 학생들에게 공산주의 이념을 주입하고 지적재산을 절도하거나 스파이 집결지의 역할을 한다는 데 주목하고, 향후 조사와 공론화의 필요성에 합의했다고 합니다.
 

- 그럼 정부는요?

말 그대로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올여름에 제가 교육부의 여러 부서에 전화를 해 봤는데 공자학원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는 겁니다.
제 얘기를 듣더니만 그것은 각 대학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하더라구요. 외교부는 또 어떤가 찾아봤습니다.

국립외교원이 2018년 5월에 발간한 <중국과 러시아의 ‘샤프 파워’와 함의(주요국제문제분석 2018-16)>에서 공자학원에 대해 두 면을 할애해 그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상대방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르지만 평화적으로 상호 공존할 수 있는 기제를 마련하는 것이 배타적 정체성의 정치를 포용적 정체성의 정치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첫 걸음이 될 것”이라며 횡설수설한다는 점이었어요.

보고서의 형식과 내용도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하지 못할 뿐더러 이후 정부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 국회의원들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을까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공자학원을 처음 거론한 것은 2020년 10월이에요.
정경희 의원이 교육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받으며 중국어를 교육하고 문화를 홍보하는 체제선전 조직인 ‘공자학원’이 국내에도 있는데 세계적으로 퇴출운동을 벌이고 있다”며 관련 기관의 대응을 촉구했지요.

조태용 의원도 비슷한 시기에 공자학원이 개설된 국내 대학 10곳과 공자학원을 관리하는 중국의 국가한판이 체결한 계약서를 입수해 분석하고 그 결과를 언론에 알렸습니다.
공자학원이 교육 운영 및 교사 채용, 예산 집행까지 중국의 통제가 강하게 작용하는 구조라는 것이었어요.

앞으로 공자학원 추방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추진하기까지 갈 길이 멀어요.
국회의원들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미국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자기 지역구 소재 대학에 공자학원 폐쇄를 촉구했고, 그와는 별도로 공자학원 추방을 위한 법률안을 여럿 발의했어요.
 

- 물론 다른 나라에도 공자학원이 많이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세계 각국에 500개가 넘는 공자학원이 있습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미국과 캐나다, 호주, 유럽 각국,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없는 나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다만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공자학원의 정체를 깨닫고 추방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스웨덴은 올봄에 마지막 공자학원을 폐쇄했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120여 개를 넘던 것이 지금은 70여 개 남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9월 초에 올해 말까지 모든 공자학원을 추방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곧 모든 공자학원이 폐쇄될 것으로 보고 있어요. 심지어 그동안 중국과의 긴밀한 경제협력 때문에 중국공산당에 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독일마저도 공자학원 폐쇄에 착수했습니다.

- 공자학원 국민청원도 올리셨죠? 결과는 어떻습니까?

지난 6월 23일 “공자학원 추방하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을 게시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정계·재계·학계·언론·문화 등 전방위에 걸쳐서 중국 공산당에 포섭되어 간첩질을 하는 자가 부지기수다. 공자학원을 통해 앞으로 수많은 중국공산당 간첩 또는 친중인사가 배출되는 것은 국가적 재앙이다.

미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머지않아 망한다. 그 전에 대한민국에서 공자학원을 모두 축출함으로써 국제적인 반공, 반중공 캠페인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이 형성되고 있는 국제질서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지분을 주장할 수 있다. 그 시작이 공자학원의 폐쇄다.

즉각 착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가 “국민청원 요건에 위배 되어” “공자”를 빼고 “**학원”이라고 임의로 고치더군요. 헛웃음밖에 안 나왔습니다. 언론도 외면하는 바람에 1853명의 서명을 받고 청원이 종료됐습니다.
 

- 서명이 그렇게 저조했던 것은 뜻밖입니다.

서명이 저조했던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첫째, 공자학원의 정체를 아는 국민이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기자들도 그렇습니다.

둘째, 공자학원을 아는 사람들도 청와대 국민청원의 효과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에요.

셋째, 청와대 측의 방해가 주효했습니다. 임의로 ‘공자학원’을 ‘**학원’이라 표기함으로써 마치 악덕 입시학원 추방을 요구하는 청원처럼 보이게 했으니까요. 넷째, 언론이 외면했습니다. 제가 할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자학원 정체를 알고 추방하기 시작한 선진국들

- 공자학원 추방을 요구하는 1인시위는 그래서 시작한 것인가요?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올리면서 같이 시작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공자학원 추방에 나섰는데 우리 대한민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23개의 공자학원이 활개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죠.

처음에는 외로웠지만 ‘공자학원 조사 시민모임(공조모)’도 만나고, 신동아를 비롯한 언론에서 관련 기사도 써주고 해서 1인시위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공자학원의 폐해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유튜버들도 공자학원을 자주 언급하고 있고요. 부산, 대전, 세종 등 지역에서도 공자학원을 추방하자는 운동이 태동하고 있습니다.

-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우리나라도 이미 정계, 재계, 학계, 언론, 문화 등 전방위에 걸쳐서 중국공산당에 포섭되어 간첩질을 하는 자가 부지기수다. 공자학원을 통해 앞으로 수많은 중국공산당 간첩 또는 친중인사가 배출되는 것은 국가적 재앙”이라 하셨는데, 정말 그렇게 심각한 것인가요?

최근 미국 대선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이 얼마나 다양하게 미국 사회에 침투해서 영향을 미치려 했는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8년 간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 일가에 그야말로 엄청난 뇌물을 먹였습니다. 흑인 인권운동을 빙자한 BLM을 사주해서 폭동, 방화, 약탈을 자행하게 했습니다.

BLM은 스스로 ‘훈련된 마르크스주의자(trained Marxists)’라고 공언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떻겠습니까? 중국공산당 입장에서는 가장 공을 들여 자기들 영향권 아래 두고 싶어 하는 나라일 겁니다. 공자학원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봅니다. 공자학원 추방운동은 중국공산당을 몰아내기 위한 싸움의 시작이요 상징입니다. 작지만 중요한 싸움이지요.

- 한국 경제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지하자는 소위 안미경중(安美經中)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미국이 중국공산당을 방치하던 오바마 정부 때까지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이전부터 중국을 손봐야 한다고 공언한 사람입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자기의 약속을 이행하고 있습니다.
국제분업체제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경제 번영 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죠.

안보 측면에서는 Quad+라는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고 있고요.
지금 안미경중을 얘기하는 것은 무지의 소산입니다.
판이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존중이라는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 동맹을 더 굳건하게 다져야 합니다.

중국공산당자국민을 억압, 수탈하는 전체주의 정권입니다.
전 세계를 상대로 도둑질, 간첩질, 깡패질을 하는 인류 최대의 공적이라는 것이죠.
우리도 중국공산당과 싸워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는데 공자학원 추방운동은 중국공산당을 몰아내기 위한 싸움의 시작이요 상징입니다.
작지만 중요한 싸움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참여와 응원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타블라 라사(Tabula rasa) 09-05 간증주일



마태복음 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간증(干證) : 방패 간(干), 증거 증(證). Testimony

자신의 신앙적 체험을 고백함으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언하는 것.

세상에 기적이 아닌 것은 없다.

세상에 기적이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우리의 삶도 기적이다.
건강한 사람이 힘차게 걷는 것은 ‘보통 기적’이다.
누워있는 중풍환자가 걷는 것은 ‘특별 기적’이다.
세상의 모든 일을 생각해보라. 기적이 아닌 것은 없다.

간증이란 무슨 특별한 기적이 일어난 것을 고백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간증이란 내가 살아서 주님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 육체의 가시를 그의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차례씩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약한 것 때문에 교만하지 않게 하는 것"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육체의 가시에 대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은 육체의 가지를 제거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몸에 육체의 가시를 갖고도 건강한 생각과 건강한 믿음으로 생활하는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타불라 라사(Tabula rasa)

라틴어 : 깨끗한 석판

철학자 데칼트에 의해서 사람은 태어날 때는 마치 하얀 도화지와 같다(White Theory).
하얀 도화지 위에 무엇을 그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된다는 이론입니다.




인식론에서 어떤 개인인 인간이 태어날 때에는 정신적인 어떠한 기제도 미리 갖추지 않고 마음이 '빈' 백지와도 같은 상태로 태어나며 출생 이후에 외부 세상의 감각적인 지각 활동과 경험에 의해 서서히 마음이 형성되어 전체적인 지적 능력이 형성 된다는 개념이다.

이는 '태어나는 것인가? 길러지는 것인가?'에 대한 논쟁에서 어떤 개인의 개성, 사회적 감정적 행동과 지성이 양육되어 형성되는 특질이라는 것을 지지하는 것이다.

철학(哲學)

서양 철학사에서 “Tabula rasa”라는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인 「영혼에 관하여」에 등장하는 ‘미 기입된 서판’의 개념에 까지 소급할 수 있다.

해당 개념과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부분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일반적인 요소들과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어려움이 처리되지 않는 상태라면,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비록 실제로 생각하기 전까지 실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잠재된 감각은 무엇이든 떠올릴 수 있다.

덕에 영향을 받은 무언가는 그것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 이전에 지성의 작용으로 인해 잠재적으로 우리 사고 안에 영향을 미치며, 비록 이것이 실재하기 이전에 이에 대한 생각은 우리 사고 안에 같은 방식으로 잠재되어 실제로 존재하기 전에도 각인되어 있다. 이는 지성이 작동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사고는 스토아 학파에 의해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더욱 발전했다.
스토아학파의 인식론은 본래 우리의 생각은 비어 있지만 외부 세계에서 비롯되는 지식을 요구함을 강조한다.

학설지가인 아에티우스는 스토아 학파의 주장을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 그 사람은 무언가 쓰일 수 있는 종이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정리한다.

디오게네스 라우레티우스는 스토아 학파이자 저명한 철학자인 키티움의 제논의 견해에 동의한다.

지각은 다시 말해 우리 마음의 감정에 의해 생성되며 이는 ‘밀봉된 왁스판 위’라는 적절한 표현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아울러 지각은 이해될 수 있는 것(가지각)과 이해될 수 없는 것(불가지각)으로 나뉜다.
전자는 객체에서 기인하는 사실의 기준을 의미하기 때문에 동시에 실제 대상과 상응한다.
이와 반대로 후자는 어떠한 객체와의 관련성도 없다.
혹여라도 불가지각이 객체와의 관련성을 지닌다 하더라도 이는 상응할 수 없고 오히려 애매하거나 또렷하지 않은 상을 나타낸다.

11세기에 이르러 Tabula rasa의 개념은 페르시아 출신의 철학가인 아비체나(아랍명 : 이븐 시나)에 의해 보다 명확해진다.

그는 “인간의 지성은 탄생부터 빈 서판을 닮아 있고, 교육과 개인이 알게 될 내용에 의해 작성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에 의하면 지식은 이 세상에서 하나의 추상적 개념을 지닌 객체와 경험적 친근성을 형성하면서 획득된다고 밝힌다.

또한 지식은 이성적인 삼단논법을 통해 발전되며 보다 추상적인 개념으로 유도하는 하나의 명제 진술로 귀결된다.
나아가 아비체나는 “통계적이거나 수적 기반을 두고 발전하는 지식은 장차 실제적인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며, 인간 지식은 지식의 완벽한 총체를 보인다”라고 지식 그 자체를 중시한다.

12세기에 들어 안달루시아계 이슬람의 철학자 및 소설가이며 이븐 투파일 (라틴어. Abubacer)은 Tabula rasa 이론을 그가 저술한 아랍 철학소설에서 실험적인 개념으로 논증하였다.

그는 해당 소설에서 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이가 황폐한 섬에서 홀로 지내며 유아기부터 성인기에 이르기 까지 사회적인 고립 속에서 나타내는 심적 발달단계를 묘사하였다. 그 소설은 1671년 성서학자인 Edward Pococke에 의해 스스로 성장한 철학자라는 뜻인 ‘Philosophus Autodidactus’ 라는 라틴어 번역본으로 출간되었다. 이는 뒤이어 존 로크에게 영감을 주어 추후 인간 지성론에서 나타나는 Tabula rasa 개념정립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3세기에 들어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Tabula rasa와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비첸나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그리스도교적 사상으로 정립시켰다.

그의 사상적 체계는 인간의 마음이 지상에서 인간의 육신과 결합되기 이전에 독립적인 상태로 이데아계의 어느 곳에 선재하고 있다는 플라톤의 사상과 급격한 대립을 이루었다. (이 같은 플라톤의 사고는 그의 저서 파이돈과 변론뿐 아니라 다른 저작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3세기의 철학자인 성 보나벤투라는 성 토마스의 사상체계에 플라톤의 사상체계를 준거로 하여 열성적으로 지적 투쟁을 감행했다.

아비첸나와 이븐투필 그리고 성 토마스의 Tabula rasa 이론과 관련된 저작들은 이후 수 세기 동안 진척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가령, 중세 영국의 법학자였던 John Fortescue는 그의 저작인 ‘영국 법률의 칭송에 관하여’ 영어: In Praise of the Laws of England / 라틴어:De Laudibus)에서 Tabula rasa에 대해 언급한다. 저자는 해당 개념을 왕실의 왕자들을 위시하여 일반적으로 어린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기본 바탕으로 강조한다.

“그러므로 왕자는 그의 나이가 어리거나, 그의 심성이 아직 깨끗할 때 그곳에 무언가를 강조할 수 있게 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추후에라도 보다 기쁘게 그 이미지들을 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 이 개념은 경험론자인 존 로크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특히 그는 저작 인간 지성론(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제 2권 1장 2절에서 '백지'라는 개념을 이용한다.
로크의 철학체계 안에서 Tabula rasa는 인간은 그 출생에서부터 비어있는 서판의 형태로 탄생되며, 이는 선재된 지식이 아닌 동시에 인간의 후천적 감각 경험에 의해서만 지식이 추가될 수 있다고 이해된다. 존 로크 경험론의 중심 사상은 그의 2번째 저술에 담긴 내용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가 이해하기로 Tabula rasa는 각 개인이 백지의 상태로 태어나는 것과 더불어 그들이 지닌 개인적 자유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각 개인은 그들이 지닌 고유한 성격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인간의 종적 차이는 구별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자율적이고도 주체적 자아에 대한 가정은 추후 로크의 자연권 사상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아울러 Tabula rasa와 관련한 그의 사상은 종종 토머스 홉스의 인간본성론인 천부인권사상과 비교되기도 한다.

18세기 스위스 태생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는 Tabula rasa 개념을 이용하여 미래 사회의 복지와 농업에 대한 그의 주장을 뒷받침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에 관한 논의까지 이어나갔다. 왜냐하면 Tabula rasa라는 개념이 인간이 채워지지 않은 빈 서판의 상태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같은 관점에 입각하여 인간이 반드시 복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Tabula rasa 개념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심리학에서도 엿볼 수 있다. 프로이트는 개인의 성격적 특징을 가족적 역동성 안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참조: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프로이트의 이론은 인간을 자유의지를 결여한 존재로 상정했으나 어느정도 개인적 특성은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프로이트 심리학에서는 개인의 성격 형성에 미치는 주요 요인으로 가족 내 양육을 꼽기도 한다. Tabula rasa 개념은 20세기에 들어 사회과학 전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초기 우생학에서는 인간의 지능이 그가 속한 사회적 계급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니는 것으로 상정했으나, 추후 이 주장은 기각되었다. 오히려 이와 같은 주장은 인종차별주의로 이해되기도 했다. 1970년대 까지 존 머니를 위시한 사회과학자들은 유전학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회 구조에 기반을 둔 성정체성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