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란목사(1966. 8. 29-)

이름 :  주경란.
생년월일:  1966. 8. 29.

북한의 함경북도 어랑군에서 비행기 조종사인 부친과 교사출신이었던 모친 사이에서  2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나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마쳤습니다. 

1982년부터 1985년8월까지 평안북도(중학교시절에  전근하신 부친을 따라 평안북도 구성시로 이사함)
선천교원대학 교원과를 졸업한 후
평안북도  구성시 대안중학교에서 4년간의 교사생활 후
개인사정으로 평북 신의주시로 이사해 1988년부터 2002년경까지 신의주에  주거,
평안북도 품질감독총국 산하 신발공장감독소  감독검사로 근무하였습니다.

건강 문제로 2002년 직장을 자퇴한 후 
2003년에 두차례의 결핵을 앓으면서 각혈로 죽을 고비를 겪었지만 다행히도 치료를 받아 병을 고쳤지만
더 이상 북한땅에서 살아남을 길이  막막하여
2004년 11월 초에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탈북하였습니다.

2008년 5월 한국에 입국할 때까지 중국에서 북송의 위험을 피해 이 곳 저 곳  숨어다닐 때 교회로 가게 되었습니다.
비참한 처지를 비관하던 저는 찬양으로 은혜를 받고 많은 눈물을 흘렸고
탈북민 그리스찬을 비롯한 여러 성도님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북송을 피하면서 약 3년 반동안 중국의 이곳 저곳을 전전했습니다.

옮기는 곳들에서 주로 조선족교회나 한국목사가 세운 한인교회에 출석하면서 보호 및 도움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2007년 2월에 위하이에 있는 한인교회서 선교사로 파송되어 섬기시던 강대구목사(장로교단)님께 세례를 받았고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하나님의 첫번째 음성으로 롬 10 :  9 - 10절을 듣는 등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했습니다.

도피생활로 건강이 다시 악화되면서 피폐해지기 시작하여   이제는 고향에 돌아가 죽어야겠나보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어느 형제님 소개로 브로커 분을 만나게 되어 한국행을 결정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같이 한국행에 성공하여 2008년 5월 한국에 무사히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입국 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북한인권 관련 인터넷언론매체들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2011  -2014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신학공부를 하기전까지
통일부 통일교육원 강사로 활동하면서 "통일신문"에 북한과 통일 관련 글을 게재했습니다.

한국 입국 후 정착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새터민회관이란 명칭으로 운영되던 탈북민지원선교단체에  출입하다가 

2011년 7월에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나간 지 두주일만에 불을 받아 결핵후유증과 정착스트레스로 인한 신경통 등 병이 깨끗이 치유되었으며 

2011년 12월부터  2014년 초까지 고현교회(전북 익산 모현동에 위치)에서 신앙생활을 마치고 
2014년 3월에 하나님의 부르심으로(설교자와 통일의 사명자)
서울에 올라와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섬기는 한편 신학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신학교 4학년때 믿음으로 입국 후 모아두었던 재정을 모두 드려  "예수사랑교회"(서울시 은평구 갈현동, 서대문순복음총회 서부지방회 소속)를 개척하여 헌당예배를 드렸으며 현재 "생명나무교회/라마나욧기도원"[장로회 웨신총회(인천측) 남서울노회 소속]으로 명칭을 바꾸어 계속하여 복음통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언제든지 통일의 주인되신 주님께서 북한을 열어주시면 기도중에 하나님이  감동주신대로  평양에 주기철목사님 시무하시던 옛 "산정현교회"를 다시 세우고 북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현재 맡겨진 사역의 자리에서 충성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신앙경력(한국입국 후).

2011. 6  -  2011. 11월 여의도순복음교회 관악교구 성도.
2011  -  2014년 초. 익산고현교회  서리집사.
2014  -  2016. 3. 여의도순복음교회.
2016. 6. 4  -  현재 생명나무교회 담임(전 예수사랑교회).

신학과정이 빠졌습니다.
2014. 9   -  2015. 12. 영산순복음신학교.
2016. 3  -  2017. 7. 대조동순복음신학교 졸업.
2017. 3  -  2017. 12. 대조동순복음신학대학원.
2018년 -2019. 2월 제자총회신학연구원(장로교단 소속) 졸업( 촐석불참일수가 남아있음).


1. 예금주 이름 : 주경란.
생년월일 : 1966. 8. 29.
교회주소 :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일청로 4번지 3층 생명나무교회.
전화번호 :  01084590829.

2. 계좌 :  국민 024801  - 04  - 416329.


[李勝赫(Victor S Lee)] [오전 3:55] 주 목사님!
교회 현황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1. 현재 출석 교인 수
2. 교인 현황(탈북인 또는 남한인)
3. 교회 주소
4. 교회 예배 동영상 자료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4:54] ㅣ. 7명.
2. 북 3명, 남 4명.
3.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일청로 4번지 3층 생명나무교회/라마나욧기도원.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4:55] 2021. 12. 3일 금요예배영상입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315184620265187&id=100015154869377&sfnsn=mo
[李勝赫(Victor S Lee)] [오전 5:03] 주목사님!
2021년 성탄주일을 맞이하여
탈북인 목회자가 섬기는 교회를
돕기로 결정하고 기도합니다.
저희가 매월 후원하는 사역은

1. 매월 북한어 성경 6권) $90
2. 북한 결핵 환자 매월 생활비 지원 $270

이번 성탄주일에는 탈북인 돕기로 결정하고
특히 탈북인 목회자를 도우려고 합니다.
결정이 되는대로 연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끝까지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21년 12월 12일 일요일
[李勝赫(Victor S Lee)] [오전 10:04] https://blog.naver.com/b2ige/222592871698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0:17] 저는 목회자이지만 제게 그같은 일이 생긴다면 너무 힘들것  같습니다.
북에 있는 제 형제들이  안좋은 일을 당했는데 기도중에 하나님이 이 일은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시기질투로 인한 결과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사실  저 혼자 겪는 괴롬과 고통은 참을수 있지만  가족에게까지 손을 댄다니 치가 떨려  며칠동안 너무 괴로윘습니다.

그리고 원수갚는것을 내게 맡기라고 하시는  주님 말씀대로 원수  갚는것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저는 그냥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가족에게 미안하고 힘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어린 자매님은 참으로 예수님의 용서를 그대로 실천하시는 아름다운 그리스찬입니다.
[李勝赫(Victor S Lee)] [오전 10:19] 주목사님!
북한 고향이 어디인가요?
저희 부모님은 원산에서 내려오셨지요.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0:19] 너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해주고 너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0:20] 네. 제 고향은 함북 어랑입니다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0:20] 형제들  3형제가 모두 호위국이었는데 모두 변을 당했습니다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0:21] 어랑이란 동네가 있답니다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0:21] 주을 옆입니다. 바다옆이고요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0:22] 어랑군이라고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0:23] 아름다운 동해바다가 소도시입니다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0:24] 어랑비행장이 있습니다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0:25] 저희 교회는 주로 목회자들이 와서 훈련하곤 합니다.
[李勝赫(Victor S Lee)] [오전 10:25] 사진
[李勝赫(Victor S Lee)] [오전 10:26] 어랑 읍
[李勝赫(Victor S Lee)] [오전 10:26]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 북도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0:26] 배와 추리가 맛있기로 유명합니다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0:28] 비행장도 있죠. 저는 아버지가 어랑 비행장에서 비행기조종사로 근무하시기에 어랑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0:29] 중학교 때 평북 구성  운양비행장으로 부친께서 전근하셔서 그때부터 평 안도서 살았습니다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1:25] 이름 :  주경란.
생년월일:  1966. 8. 29.

북한의 함경북도 어랑군에서 비행기조종사인 부친과 교사출신이었던 모친 사이에서  2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나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마쳤습니다.  1982년부터 1985년8월까지 평안북도(중학교시절에  전근하신 부친을 따라 평안북도 구성시로 이사함) 선천교원대학 교원과를 졸업한 후 평안북도  구성시 대안중학교에서 4년간의 교사생활 후 개인사정으로 평북 신의주시로 이사해 1988년부터 2002년경까지 신의주에  주거, 평안북도 품질감독총국 산하 신발공장감독소  감독검사로 근무하였습니다.

건강 문제로 2002년 직장을 자퇴한 후  2003년에 두차례의 결핵을 앓으면서 각혈로 죽을 고비를 겪었지만 다행히도 치료를 받아 병을 고쳤지만 더 이상 북한땅에서 살아남을 길이  막막하여 2004년 11월 초에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탈북하였습니다.
2008년 5월 한국에 입국할 때까지 중국에서 북송의 위험을 피해 이 곳 저 곳  숨어다닐 때 ...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1:27] 사진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1:32] 사진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1:32] 사진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1:41] https://youtu.be/mqh5xqj56KU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1:41] https://youtu.be/lbJXAsuyEGY
[주경란목사(부천)] [오전 11:57] 신학과정이 빠졌습니다.
2014. 9   -  2015. 12. 영산순복음신학교.
2016. 3  -  2017. 7. 대조동순복음신학교 졸업.
2017. 3  -  2017. 12. 대조동순복음신학대학원.
2018년 -2019. 2월 제자총회신학연구원(장로교단 소속) 졸업( 촐석불참일수가 남아있음).

"작은 자 섬김의 유익"

지난번 성탄절을 맞았을 때 저희 교회는 미국 뉴욕시의 베아사이드에 위치한 파트리스교회(이승혁 원로목사. 황선민 담임목사)로부터 230여만 원에 달하는 후원금을 전달받았습니다.

매 달마다 꾸준히 북한의 결핵환자 돕는 사역과 성경책 보내기를 행하시면서 또 탈북민목회자가 개척한 교회를 돕고 계신다는 이승혁 원로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도 2003년 북한에서 결핵을 앓을 때 누군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내주었을 약으로 치료받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의 작은 선행들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귀한 생명들을 살리고 그들이 영혼구원의 기회를 얻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마 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곧 예수님 자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이들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 당부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또 파트리스 교회와 성도님들이 사랑으로 우리 교회를 섬겨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2022년 새해부터는 우리 생명나무교회 (라마나욧기도원)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북한의 결핵환자를 섬기는 사역에 적극 동참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  :  17).

2021. 12. 30일
주경란 통일선교사(본지 기자)

출처 : 지저스타임즈 목회자칼럼




하성한묵(하루 성경 한장 묵상) 12 / 11 / 2021(Sat) -


12-11-2021(Sat)

사사기 10:16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사사기(Book of Judges)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반복되는 잘못에 대한 회개가 아니라 반성이란 단계에서 멈추는 것이라고 하겠다.

자아 이미지(Self Image)를 상상하라!
반복되는 잘못을 극복하려면 반복되는 잘못을 극복한 자아 이미지를 상상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1:29:300의 법칙

미국 한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H. W. 하인리히는 고객들을 상담하고 그들의 사고를 분석한 결과 1번의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미 그 전에 유사한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주변에서 300번 이상 징후가 감지되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를 1대 29대 300의 법칙이라 부릅니다.
징후들이 있고 경미한 사고들이 일어난 후에 결국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에서도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신앙은 없는 것입니다.
이미 그 전에 여러 가지 징후가 보이고, 소소한 실수들,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타협하거나 넘겨버렸던 문제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들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수가 반복되면 큰 실패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27:1-12

다윗은 또 다시 실수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울을 용서했고, 그 사울이 다윗을 인정하는 말을 하고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해보니 사울이 자신을 결코 포기할 것 같지 않은 것입니다(1절).
그 생각을 하니 또다시 답답하고 불안해진 것입니다.
계속 말씀드렸지만 불안한 마음과 두려운 마음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입니다.
다윗의 선택은 또다시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도망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 땅에서 자신을 찾다가 찾지 못하면 결국 포기할 것이라는 계산이 들어간 것입니다(1절). 그의 생각이 맞아 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울이 더 이상 다윗을 수색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4절).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것은 당장의 상황이 좋다고 내가 가는 길이 꼭 옳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블레셋 왕 아기스는 다윗을 받아줍니다. 그리고 시글락이라는 성을 주어서 다윗이 머물도록 배려합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영원히 자신의 부하로 삼을 계획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사람이 원수와 다름없는 블레셋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그의 신하를 자처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반복되었던 이 실수는 결정적인 두 가지 위기를 불러오게 됩니다. 그 위기는 다윗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버릴만한 일들입니다. 다음 장에서 사울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살펴본 다음에, 다윗이 맞이하게 될 두 가지 위기에 대해서 차례차례 살펴보겠습니다.

적용 : 내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 무엇인가?
내가 범하기 쉬운 실수나 잘못은 무엇인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에게 큰 문제나 위기가 온다면 그 약점이나 실수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와 종교다원주의

21세기의 교회가 당면한 큰 문제는 종교 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사회에 공존하는 종교적 믿음의 체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나 원리를 말한다.
절대적인 진리의 배타성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형적인 종교철학이다.

* 절대적인 유일한 진리를 포기하고 다른 종교의 진리와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 상호 배타적인 진리가 있음을 서로가 인정하는 것이다.


종교 다원포스트 모던니즘의 영향은 점점 더 단 하나의 객관적 진리를 반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는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의 복음을 과연 유효하게 선언하고 선포된 복음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가지고, 그들의 삶과 생활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제까지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 혹은 교회 중심적 배타주의를 고수하며 신앙을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종교들이 자기 절대성과 적극성을 주장하고 서로 상이한 입장들이 공존하게 됐다.

종교 다원주의란 종교 다원 현상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다원적인 종교들을 동일한 지평선에서 바라보며 다원적 종교들의 궁극적인 것의 실제를 주장하는 종교적, 신학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 다원주의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어떤 특수하고 고유한 종교로 바라보지 않고 다양한 여러 종교들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기독교만이 유일한 종교가 아니라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의 진리가 있고 나름대로의 구원의 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기독교는 그 여러 종교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가 상대적이며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기본 명제를 전제로 한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든, 유교를 믿든, 잘만 믿으면 천국도 가고, 극락도 가는데 굳이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모든 종교는 다 같은 것이다.
목적지는 같지만 가는 길이 다를 뿐이라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여러 관점에서 볼 때 종교 다원주의는 하나님의 구원계시가 기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일이 있다는 주장이다.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종교도 더는 자기 절대성, 혹은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 다원주의의 기본 입장은 모든 종교들이 제시하는 진리에는 그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을 뿐 아니라 적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결코 특정 종교의 기준이 타종교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 다원주의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비교 종교학 교수였던 Wilfred Cantwell Smith(1916~1973)
종교적 다원주의 문제는 교회가 다른 신앙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던 선교 현장의 선교사들과 비교 종교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고 한다.

18, 19세기의 그리스도교 선교 정책은 서구 식민주의와 그 궤를 같이하는 제국주의적 선교 정책이었다.
즉 서구 열강들의 군대가 약소국을 점령하면 선교사가 뒤따라 들어가 그리스도교로 그 지역을 점령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서구 식민지 정책이 종식되고 독립국들이 점차 늘어가면서 그리스도교의 정복 선교 정책도 일대 위기를 맞게 됐다.

선교지 일부에서는 선교사들이 타종교와의 대화를 주장하며 타종교를 인정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는가 하면 “세계 복음화” 와 같은 그리스도교 선교 가치는 침략적인 제국주의 정신의 산물이라고 비판하며 정통적인 그리스도교의 선교 형태를 반성하기 시작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신학적 종교 다원주의의 촉발은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뉴비긴은 서구 사회에서 다원주의 근원을 유럽의 계몽주의에 의해 부활한 합리주의전토에서 찾고 있다.
전통에서 이성은 진리를 확인하고 방어하는 유일한 도구가 됐다.

다원주의적 관점은 또한 과학적 방법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과학적 방법론은 무엇인가?

인간의 감각에 의해 관찰 대상으로부터 사실들을 얻어내는데 있어서 이성을 수단으로 가정을 세우고 결론을 유출해 내고 계속되는 적용을 통해 그 결론을 시험하고 검증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유일신 하나님을 믿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세주임을 믿어야 한다.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원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까지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 혹은 교회 중심적 배타주의를 고수하며 신앙을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 모든 종교들이 자기 절대성과 궁극성을 주장하고 서로 상이한 입장들이 공존하게 되었다.

종교 다원주의란 종교 다원 현상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다원적인 종교들을 동일한 지평선에서 바라보며 다원적 종교들의 궁극적인 것(the ultimate)의 실제를 주장하는 종교적, 신학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 다원주의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어떤 특수하고 고유한 종교로 바라보지 않고 다양한 여러 가지 종교들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따라서 기독교만이 유일한 종교가 아니라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의 길이 있고 나름대로의 구원의 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기독교는 그 여러 종교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가 상대적이며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기본 명제를 전제로 한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든, 유교를 믿든, 불교를 믿든 잘만 믿으면 천당도 가고, 극락도 가는데 굳이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모든 종교는 다 같은 것이다, 목적지는 같지만 가는 길이 다를 뿐이라는 얘기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여러 관점에서 볼 때 종교 다원주의는 하나님의 구원 계시가 기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있으며, 기독교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주장이다.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종교도 더는 자기 절대성, 혹은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 다원주의의 기본 입장은 모든 종교들이 제시하는 진리에는 그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을 뿐 아니라 적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결코 특정 종교의 기준이 타종교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 다원주의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비교 종교학 교수였던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 1916-1973)는 종교적 다원주의 문제는 교회가 따른 신앙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던 선교 현장의 선교사들과 비교 종교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고 한다. 18, 19세기의 그리스도교 선교 정책은 서구 식민주의와 그 궤를 같이하는 제국주의적 선교 정책이었다. 즉 서구 열강들의 군대가 약소국을 점령하면 선교사가 뒤따라 들어가 그리스도교로 그 지역을 점령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서구 식민지 정책이 종식되고 독립국들이 점차 늘어가면서 그리스도교의 정복 선교 정책도 일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선교지 일부에서는 선교사들이 타종교와의 대화를 주장하며 타종교를 인정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는가 하면 ‘세계 복음화‘와 같은 그리스도교의 선교 기치는 침략적인 제국주의 정신의 산물이라고 비판하며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선교 형태를 반성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한편 니터에 의하면 신학적 종교 다원주의의 촉발은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영국의 신학자 및 철학자 죤 힉(John H. Hick. 1922. 1. 20 - 2012. 2.  9) 역시도 같은 입장에서 궁극에는 모든 종교가 한 형제라는 것을 깨닫고 종교들이 서로 협력하며 교류하는 하나의 이상세계가 올 것이라는 낙관주의적 입장을 취하였다. “이미 그리스도교를 변화시키고 있는 에큐메니칼 정신은 세계 종교간의 관계에도 더욱 영향을 미칠 것이다.

뉴비긴(L. Newbegin)은 서구 사회에서 다원주의의 근원을 유럽의 계몽주의에 의해 부활한 합리주의 전통에서 찾고 있다.
그는 기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통에서 이성은 진리를 확인하고 방어하는 유일한 도구가 되었다. 다원주의적 관점은 또한 과학적 방법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과학적 방법론은 무엇인가? 인간의 감각에 의해 관찰 대상으로부터 사실들을 얻어내는데 있어서 이성을 수단으로 가정을 세우고 결론을 유출해 내고 계속되는 적용을 통해 그 결론들을 시험하고 검증한다는 것이다. 비서구 세계에서의 모든 이슬람 국가들이 압도적으로 반 다원주의적이고, 단일성이 모든 생활의 영역에 미치고 있으며 법적으로 강요되기도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비신자들의 거주지를 정해 놓고 그들의 활동을 엄격히 통제한다. 아시아, 아프리카에 있는 비 이슬람 국가들은 수세기 동안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살아왔다. 인종과 문화가 뚜렷이 구분되는 공동체들이 서로 근접해 있는 상황에서 긴장은 있었지만 일정 기간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관용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와 같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또한 종교적 다원성을 인정하게 되고 그것을 일부 수용하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특별히 종교적 진리는 오로지 인간의 영혼에 국한되었다. 진리는 영에 의해서만 이해되어진다. 역사는 종교적 진리와 경험을 구성하게 된다. 종교 의식과 교리체계를 가지고 있는 모든 역사 종교들은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다원주의 정신은 힌두교가 지배적인 영향을 미쳐 온 상황에서 형성되었다. 다원주의는 서구든, 비서구든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관점인 상대주의를 낳았다고 설명한다.

Alann Bloom에 의하면 상대주의는 현대인의 도덕적인 조건이며 자유 민주 사회의 조건이라고 한다. 개방적인 사람을 상대주의에 헌신된 사람이라 규정한다. 그리고 절대주의(Absolutism)란 관용적이지 못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현대 사회는 자신도 생존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도 함께 생존하게 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미덕이 되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종교 다원주의의 기원은 합리주의적 전통과 상대주의의 대두라고 말할 수 있겠다. 종교 다원주의론자들은 종교 다원화에 대한 정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 학자의 말을 인용할 수 없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는 현 시대는 모든 종교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종교 다양성의 시대이므로 어느 특정 종교가 절대적 진리나 가치를 주장할 수 없다는 종교에서의 가치 중립적 태도를 의미한다. 

종교 다원주의의 신학적 기초는 현재의 제도적 교회가 신약의 참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함으로 현재의 기독교를 부정하고 상대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종교 다원주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전오진 교수는 여섯 가지를 말하고 있다.

1st. 종교 다원주의는 기독교를 부정하고 상대화한다.
2nd. 일부 서구인들과 신학자들은 서구 식민주의와 양차대전에 대하여 강한 죄책감을 가지고 서구 문명과 기독교를 죄악시하고 비서구 문화를 찬양한다.
3rd. 종교 다원주의는 비서구인들 특히 많은 아시아인들이 서구로 이주하거나 거주함으로 서구 사회를 종교 다원주의사회로 만들었다.
4th. 비서구 국가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감을 전통 종교에서 추구하는데서 종교 다원화를 더욱 심화시켰다.
5th. 종교 다원주의 신학은 서구 신학이 노골적으로 기독교의 절대성을 포기하는데 일차적 원인이 있다.
6th. W.C.C의 종교 대화는 전도의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인류의 평화와 복지라는 세속적 목적과 다원주의로 발전되었다. 

알랑 레이스(Alan Race)는 그리스도교와 타종교의 관계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배타주의 (exclusivism)


배타주의란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리스도교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만이 참 종교요, 절대 종교라고 믿는 그리스도교 절대주의(christian absolutism)를 견지해왔다.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는 ‘종교‘라는 일반적 개념이 아예 불가능한 것일 수밖에 없다. 설령 그리스도교가 타종교를 운위한다손 치더라도 그 유일한 까닭은 계시에 근거하여 그들을 심판하기 위한 것에서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입장에 대해 종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절대종교란 있을 수 없고, 모든 종교는 상대적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가 발생한 것은 분명히 충격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입장에는 전통적인 카톨릭의 입장과 칼 바르트, 크래머와 절대 다수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속한다. 

그리스도 중심의 배타주의는 구원이 예수에 대한 명시적 신앙 안에만 있다거나 교회 울타리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몇 가지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성경의 문자적 증언과 일치한다는 것과 그리스도 신앙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확립시킨다는 점에서 유효하다. 또한 선교의 열정을 강조하고 같은 맥락에서 협조하는 것이 배타주의의 긍정적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배타주의는 은총의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강조하지만 기독교가 아니면서도 은총의 종교인 예를 들어 아미타불교, 바티 흰두교와 같은 교리에 대해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한계점이 있다. 또한 창조계시와 그리스도 계시를 이분함으로써 창조계시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점을 간과하는 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밖에 있는 많은 선한 것에 대해 긍정적이고 바른 평가를 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포괄주의(inclusivism) 

포괄주의는 자기 종교를 최 우위에 놓는 자기 중심적 요소가 있어 한편으로는 배타주의와 통하고 우열을 가리면서도 남의 종교의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다원주의와도 통한다. 현재 카톨릭에서 가지고 있는 공식적인 입장이다. 즉 포괄주의는 “발전–완성“이라는 도식의 성취설을 취한다. “타종교 속에 있는 모든 진리는 본래 그리스도의 것이다“라거나 “타종교에도 구원은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그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다.” 는 등의 사상이 모두 포괄주의적 입장에 속한다. 타종교인을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으로 규정한 칼 라너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이후의 카톨릭 입장이 모두 이 견해를 대표한다. 포괄주의는 여전히 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원론의 한계 안에 갇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원주의(pluralism)

다원주의는 참 종교를 하나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을 인정한다는 입장이다. 즉 궁극적으로는 형언불가능한 하나의 신적 실재를 믿되, 그 신앙의 다양한 표현으로서의 다원종교 현상을 인정하며 그것들 사이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는 태도이다. 이는 교회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타종교들을 배타하거나 포괄하려는 종래의 입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대안이다. 따라서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근대 후기의 종교다원적 세계 속에서 요청되는 신학적 사고의 모형변이가 신중심주의(Theocentrism)의 입장에서 종교의 다원성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교회중심주의나 그리스도 중심주의(Christocentrism)의 사고에 젖어 온 그리스도 신학은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타종교인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쯤으로 포괄하는데 그칠 것이다.

따라서 80년대의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은 소위, ‘신 중심적 모델‘을 제시하며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궁극적 실제(ultimate reality)로서의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다원주의에 속하는 현대 종교 사상가로는 하버드 대학의 비교 종교학 교수였던 스미스와 인도의 신학자 사마르타, 인도의 카톨릭 신학자인 파니카, 남인도 뱅갈로 에큐메니칼 선교 센터 원장이며 1986년부터 1975년까지 W.C.C.중앙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토마스, 영국 장로교 목사인 존 힉과 카톨릭 신자인 폴니터 등을 꼽을 수 있다.

 

종교다원주의 신학이란 인간이 종국적 실재와의 관계에서 자기 삶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키고 구원을 성취하는 양식에는 문화의 다양성에 따라 다양한 구원의 길과 종교 상징체계가 존재하며,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이름과 구원의 길의 다양성은 삶의 자리가 갖는 해석학적 제약에 기인하기 때문에 모두 상대적이며 특정 신의 이름과 구원의 방도가 배타적인 우월성을 지녔다는 주장은 용납될 수 없다는 종교신학적 이론이다.

 

1. 칼 라너(Karl Rahner, 1904. 3. 5 - 1984. 3.  30) /  익명의 그리스도인

칼 라너는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강조한다.
이것은 하나님은 만민을 구원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계시고 처음부터 구원하려는 사랑과 긍휼로 사람을 만나셨다는 것이다.
이점은 배타주의에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긍휼과 사랑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교되는 점이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만민을 사랑하시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접목되지 않았던 사람을 모두 지옥에 떨어뜨리고하자 하는 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사건은 용서하고자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의지를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행위가 아니라 용서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 사건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 라너는 자연과 은총의 이분법을 거부한다.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살아가고 여기에 예외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율법으로 살아간다면 형벌로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칼 라너는 이런 의미에서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주장한다.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리고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의 은총을 안다면 그는 이미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은가?

라너가 말하는 익명이란 명시적이지 않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익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초월적 존재를 향해서 자기를 개방하는 사람들, 이웃을 향해서 자기를 열어 놓는 사람들, 선과 정의, 진리를 향해 그런 사람들을 포함한다.
이들이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며 그들은 구원의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은가 말하는 것이다. 

칼 라너의 이러한 신학은 그리스도밖에 존재하는 은총에 대해 바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과 타종교와의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과 선교의 효과와 교회의 성장의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타종교에 대한 낙관주의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타종교에서 말하는 자력구원 의지, 역사 퇴행적 사고 행태 등은 중요한 부정적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타종교의 선한 것과 구원사이의 구분이 분명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정당하다면 기독교의 순교란 불가능하다는 결과를 이끌어 내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다. 

2. 에른스트 트뢸취(Ernst Troeltsch, 1865-1923) /  역사적 상대주의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대표적인 종교사학자 트뢸취는 그리스도교 절대주의를 거부하고 종교 상대주의를 주장했다. 하나님은 유한한 것들과 동일시될 수 없지만 신성도 역사 속에 주어졌을 때는 상대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절대적 종교가 아니며, 어떤 주어진 시점에서 그것의 환경을 구성하는 역사적 조건들로부터 자유로운, 전적으로 유일회적인 종류의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종교의 보편적 원리라고 생각되는 것의 분별적, 최종적, 무조건적 실현이 아니다.
다른 위대한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도 그 역사의 매순간에 있어서 철저히 역사적인 현상이며, 모든 개별적 역사현상이 직면하게 되는 모든 제한에 종속되어 있다.”

이처럼 그에게는 인간에 대한 절대적이고 유일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교의 복음마저도 다양한 종교적 구원체험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것은 그의 철저한 역사적 의식과 그 역사적 의식이 요청하는 바 역사적 상대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절대자는 모든 역사를 향해 현존하고 모든 역사 안에 현시되지만, 그러나 절대자에 대한 그 어떤 역사적 현시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절대자의 본질(절대자는 항상 유한자 이상이라는)과 모순되며, 역사적인 것의 본질(역사적인 것은 항상 제한적이고 가변적이라는)과도 모순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주 반복하는 실 수 다섯 가지

미시간주립대학 임상 정신생리학 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수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2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고정 마인드형

‘아, 이런 일 정말 싫다. 잊어버리자’라고 생각한다.

둘째는 성장 마인드형

‘이거야말로 내 인생에 울리는 경고음이다. 이런 일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내가 뭘 잘못했는지 살펴보자’라고 생각한다.


고정 마인드형은 자신의 실수를 직면하는 것이 부끄러워 가능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실수 안 하면 되지’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한다.
때로는 실수라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며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이건 긍정적인 게 아니라 대책이 없는 거다.
자기 실수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회피한다면 자신이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영영 알 수 없어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이 조사를 이끈 제이슨 모제는 “자신의 실수에 집중하면 실수를 고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게 되고 이 결과 실수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실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나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만 실수에서 배울 수 있다는 의미다.

누구나 실수한다.
성공한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이나 실수에 예외는 없다.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는 실수한 이후 드러난다.
성공하는 사람은 수치스럽고 괴로워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
무엇을 잘못했고 그 때 왜 그랬는지 꼼꼼히 되새김질한다.
그리고 실수로 인한 결과에 책임을 진다.

필요하다면 죽기보다 싫은 일일지라도 자신의 실수를 공개적으로 시인한다.
자신의 실수를 공개하면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데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만큼 남들 눈을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저자 파울로 코엘료는 “실수를 반복하면 그건 더 이상 실수가 아니다. 그 사람의 결정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전문방송 CNBC를 참조해 사람들이 자주 반복하는 실수를 5가지로 정리했다.

1. 진실이라고 믿기엔 너무 좋은 사람이나 조건을 믿는다

사람들이 사기 당하는 이유 중 하나는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이나 조건을 믿기 때문이다.
사기 치려고 다가오는 사람들은 달콤한 말을 하며 과분한 친절을 베푼다.
세상에 이런 좋은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피라미드 사기는 비현실적인 수익을 약속한다.
비현실적으로 좋은 사람이나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소설 같은 일은 극히 드물다.
너무 좋은 사람이나 기회, 조건에 마음을 뺏기지 말라.

2. 같은 일을 하고 다른 결과를 기대한다

내가 변하지 않았는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비이성적이고 어리석다.
내가 변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획기적으로 변해 관계가 호전되기를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먹는 음식과 생활습관이 바뀌지 않았는데 건강이 좋아지기를 바랄 수 없다.
내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고 성과를 올리지 않았는데 회사에서 인정 받고 연봉이 오르길 바랄 수는 없다.
한 번 해서 안 됐다면 다른 방식을 시도해야지 같은 방식으로 수백번 해봤자 소용이 없다.

3. 만족을 지연시키지 못한다

당장 느끼는 욕구를 참지 못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당장은 욕구가 충족돼 만족스러울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과가 없다.
공부할 시기에 놀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면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없다.

담배를 참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현명한 사람은 단기적인 욕구와 장기적인 욕구를 구별해 더 큰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선 때로 단기적인 욕구 충족을 희생하고 뒤로 미뤄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4. 예산을 세우지 않고 생활한다

살아가는 한 돈이 필요하다.
돈이 무한정하게 생기는 것이 아닌 만큼 늘 예산을 세워 소득 내에서 소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산 없이 있는 대로 돈을 썼다 낭패를 당하고도 예산을 세우지 않는다면 영원히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없다.

5.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 한다

나 자신도 변하기 어려운데 내가 의지를 발휘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봤자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배우자나 자녀를 바꿀 수 없다.
현명한 사람은 쉽지 않은 일일지라도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 노력한다.












파가저택(破家瀦宅)


파가저택(破家瀦宅)

조선시대에 반역(反逆) 죄인에 대한 극형(極刑)이나 연좌(緣坐)율의 적용은 『대명률』에 근거한 것이었다.

* 《대명률》(大明律)은 1397년에 반포되어 ·시대의 약 500년간을 통하여 형률(刑律)의 근본(根本)이 된 중국법전이다. 총 3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에도 당률을 바탕으로 하여 종종 편찬개정이 이루어졌으나, 결국 그 체계가 현실에 맞지 않아 의 법률서 《원전장》(元典章)의 편목을 따랐다. 행정 관청인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에 따라 율(律)도 6부로 나눈 뒤에 명례(名例)를 더하여 7률(律)로 했다. 그 후 시세의 추이에 맞지 않는 것이 있어 1550년 《문형조례》(問刑條例) 249조를 반포하여 이를 보충하였다. 이 대명률은 조선·일본·안남(安南)의 법률에 영향을 끼쳐 법률사상 당률과 함께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조선 왕조에서는 그 외에도 파가저택(破家瀦宅)이라고 하여 이러한 죄를 범한 자들이 살던 집을 헐고 그 곳에 못을 만드는 형벌을 부가하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초기에는 백성들이 감사(監司) 및 수령(守領)을 업신여기는 것을 강상(綱常)에 위반하는 것으로 보아 해당 죄인을 고을에서 추방시키고 파가저택하게 한 사례들이 많이 확인된다. 1439년(세종 21)에 의금부(義禁府)에서는 백성들이 수령을 능욕(凌辱)한다며 고려시대에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범하거나 비속(卑屬)이 존속(尊屬)을 업신여기는 경우에는 보통 사안보다 가중 처벌하는 뜻에 따라 해당자를 추방하고 집은 파가저택을 했다고 하였는데, 이를 통해 파가저택이 고려시대에도 시행되었던 형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450년(문종 즉위)에도 수령(守令)을 업신여기고 백성들을 괴롭힌 아전(衙前)에 대해서 파가저택하고 함길도에 영속(永屬)시키도록 한 사례가 있다.

그런데 조선중기 이후가 되면 파가저택이 적용되는 사례는 이전과는 달리, 국가에 대한 반역(反逆) 죄인이나 부모를 살해한 비속(卑屬), 주인을 살해한 노복(奴僕) 등을 처벌하는 사례가 눈에 띈다. 가령, 1586년(선조 19)의 부(父)와 계모(繼母)를 살해한 아들에 대한 처벌이나, 1617년(광해군 9)에 역적(逆賊) 죄인에 대한 처벌 사례가 그것이다.

파가저택에 대한 명문 규정은 『속대전』 「형전(刑典)」 추단조(推斷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 규정에는 부모와 남편을 살해하거나, 노비가 주인을 살해한 경우, 관노(官奴)가 관장(官長)을 살해한 경우에는 죄인을 사형에 처하고, 처와 자녀는 노비가 되게 하며, 죄인이 살던 집을 파가저택하며 읍호를 강등(降等)하며 수령을 파직할 것을 정해두고 있다. 그리고 반역(反逆) 죄인에 대해서도 파가저택 이하의 규정을 적용할 것을 규정해 두고 있다.

이처럼 조선후기에 등장하는 강상(綱常)죄를 범한 자에 대한 연좌 처벌이나, 파가저택과 같은 처벌은 조선 왕조에서 반역(反逆)죄나 강상(綱常)죄를 범한 자를 매우 엄격하게 처벌했음을 보여준다.

성경에서는 소금을 뿌리는 것으로 연결된다.

사사기 9:45
아비멜렉이 그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필경은 취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소금은 식물이 자라나는 것을 훼방하여 결실을 맺지 못하게 한다.
결국 소금을 뿌린다는 것은 그곳을 황폐화하는 것이다.

신명기 29:23
여호수아 6:26



파가저택(破家瀦澤)과 연좌죄

우의정 이항복(李恒福)이 의논드리기를 “파가저택(破家瀦澤)의 법은 형서(刑書)에는 보이지 않고, 주 정공(邾定公) 때에 처음으로 시행되었습니다. 그 또한 주 정공 자신이 처음 만든 법이 아니라, 대체로 삼대(三代) 무렵에 서로 따라서 시행되었던 것입니다. 주 정공의 말을 보면,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거나 자식이 아비를 시해한 경우만을 들어서 파가저택의 법으로 삼았고, 아내가 남편을 시해한 일 한 가지는 거론하지 않았으니, 그리 한 뜻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란(戰亂) 이전에 이를 따라 아비를 죽인 집에만 이 법을 시행하였는데, 그 당시 영중추부사 신(臣) 윤승훈(尹承勳)이 그 내력을 상세히 기억하여 분명하게 말했을 뿐 아니라, 신 또한 그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전란 후에 상신(相臣) 유영경(柳永慶)이 남편을 죽인 자에게도 파가저택해야 한다는 의논을 제창하였고, 한때 대신(大臣)들도 ‘삼강(三綱)은 하나’라고 논의하여, 마침내 남편을 시해한 자의 집에도 파가저택을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대체로 지금 이 파가저택의 법을 우리나라에서 취하여 근거로 삼아 시행하는 것은 다만 주 정공의 논(論)에 의거한 것이요, 다른 경(經)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어찌 별도로 의견을 내세워 가지 위에 가지를 더 만들어서 행해지지 않은 법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파가저택 이 한 조항은 신이 항상 불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원문
右議政李恒福議: “破家瀦澤之法, 不見於刑書, 始行邾定公之時. 亦非定公所自創爲, 三代之際, 相因而行之者也. 觀定公之言, 只擧臣弑君·子弑父者爲破家瀦澤之典, 不擧妻殺夫一節, 則意必有在. 而我國亂前, 亦因玆而只行於弑父之家, 不唯其時領府事臣尹承勳詳記而明言之, 臣亦能記之. 亂後相臣柳永慶倡爲殺夫者亦當破瀦之議, 一時大臣有三綱一也之說, 至行於殺夫之家. 臣意不然.……大槪今此破瀦之法, 我國所取爲據而行之者, 只依邾定公之論, 而不見於他經, 則何可別立意見, 枝上生枝, 行所未行之法乎? 此一款, 臣常以爲不可也.”


백사(白沙) 이항복이 파가저택 시행의 부당성에 대해 논한 글이다. 파가저택은 반역(反逆)을 도모하거나 강상(綱常)에 저촉된 중죄인의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연못을 파던 형벌이다. 백사에 따르면 파가저택은 법전이나 경전에도 그 근거가 없고, 주 정공(邾定公) 때에 처음으로 시행되었다고 한다.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下)」에서, 주루국의 정공(定公) 때 그 아비를 시해한 자의 처벌에 대해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면 관직에 있는 자는 용서 없이 죽이고, 아들이 아비를 죽이면 집에 있는 자는 용서 없이 죽인다. 그 사람을 죽이고 그 집을 허물고 그 집터를 깊이 파서 연못으로 만든다.[臣弒君, 凡在官者殺無赦, 子弒父, 凡在宮者殺無赦. 殺其人, 壞其室, 洿其宮而豬焉.]”라고 하였는데 파가저택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조선에서도 초기부터 파가저택이 시행되었으나 적법성 여부와 관련하여 찬반의 논의가 적지 않게 이루어졌다. 백사의 지적처럼 파가저택의 근거를 형서에서 찾기 힘드니 그 적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점, 이를 확대 적용하여 아내가 남편을 죽인 경우에까지 시행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 등을 내세우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처형만으로는 대악(大惡)에 대한 형벌로 부족하며 ‘고려의 고사(故事)’, ‘전조(前朝)의 고사(故事)’, ‘구례(舊例)’ 혹은 ‘죄가 극악하면 목을 베고 가족을 멸하고 그 집은 웅덩이를 판다.’라는 『당률(唐律)』 십악(十惡) 조를 근거로 파가저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고려시대부터 백성이 수령을 능범한 죄인에 대해 파가저택해왔고, (『세종실록 10년 5월 26일』) 조선에 와서도 고려 때부터 행해오던 이러한 규례를 따르다가, 중종 36년에 이르러 항법(恒法)으로 정해진 듯하다. (『중종실록 36년 6월 21일』)
   그 이후 강상죄인에 대해 처자를 노비로 삼고[妻子爲奴], 가산을 적몰하고[籍沒家産], 파가저택하고, 수령을 파직하고[罷其守令], 읍호를 강등시키는 일[降其邑號]을 해사(該司)가 승전(承傳)을 받들어 거행하는 형식으로 법제화 과정을 밟아갔다. (『승정원일기 숙종 13년 4월 25일』)
   파가저택은 중국에서도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거나 자식이 아비를 시해한 경우에만 적용되었고 『대명률(大明律)』에도 관련 법규가 없으나, 조선에서는 『속대전』 형전 추단(推斷) 조에 정식 율문으로 실리면서 조선시대 말기까지 역모와 강상범죄에 대한 연좌율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 강상죄인[부(父)·모(母)·부(夫)를 시해하거나, 노(奴)로서 주인을 시해하거나, 관노(官奴)로서 관장(官長)을 시해한 자]은 결안(結案)하여 처형한 뒤에 아내, 아들, 딸은 노(奴)로 삼고, 파가저택하며, 그 읍(邑)의 호(號)를 강등하고, 수령은 파직한다.[綱常罪人[弑父·母·夫, 奴弑主, 官奴弑官長者]結案正法後, 妻·子·女爲奴, 破家瀦澤, 降其邑號, 罷其守令.]
○ 반역(反逆)의 연좌는 본율(本律)이 있으며 파가(破家) 이하는 이 율을 쓴다.[反逆緣坐, 自有本律, 破家以下用此律.]

 

   파가저택이 적용되는 대상은 주로 모반 대역 부도 죄인이며,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훼손한 전패작변(殿牌作變) 죄인, 시부(弑父)·시모(弑母)의 패륜죄인, 수령 등 상급 관리를 범하거나 모욕한 죄인 등이고, 남편을 죽인 아내 역시 강상죄인으로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

 

   파가저택은 일단 해당 죄인이 주거하던 곳이어야 한다. 죄인이 살던 곳이 자신의 집이 아니라면 파가저택할 수 없었다. 즉 아버지의 집에서 살았다면 아버지의 집을 파가저택할 수 없었고, 또 죄인이 양반호의 솔하(率下)로 한성부 안에 살고 있거나 양반의 낭하(廊下)에서 거접(居接)하고 있었다면 이 역시 파가저택 할 수 없었다. 만약 떠돌이로 살다가 역적이 되었다면 보통 역적들이 모사를 한 그 장소가 대상이 되었고, 범위를 주동자에 한정하여 역적 수범(首犯)의 집만 파가저택하기도 하였다.(『선조실록 29년 7월 25일』) 특히 역모죄로 처형된 양반가 집의 기와나 목재는 양도 많고 질도 좋아서 관아 건물, 고사(庫舍), 궁궐 수리 등에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각 아문에서 이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일도 있었다. 또 역적의 집을 방매하여 얻은 돈을 나라 경비에 보태거나 객사(客使) 행차에 쓰기도 하였다.

 

   파가저택의 목적은 죄인의 흉악한 흔적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율에 없는 죄를 범하였으므로 역시 율에 없는 법으로 다스려야 하며, 그 더러운 자취를 없애기 위해 파가저택해야 한다는 것이다.(『중종실록 34년 5월 16일』)
간원이 아뢰기를, “……저와 같이 파가 저택을 하여 일찍이 살던 곳까지도 모두 없애버리는 것은 엄하게 제거하고 끝까지 다스려서, 천지간에 용납하지 않게 한다는 뜻이 매우 깊고 절실하니, 또 무엇을 더하겠습니까?”[諫院啓曰: “……彼破家瀦宅, 倂與所嘗居而盡滅之者, 痛絶極治, 不容天地之意, 至深至切, 又何加乎?”] (『중종실록 38년 4월 15일』)
   처형되어 이미 벌을 받았어도 그 죄를 다 씻지 못하였다는 것, 그래서 파가저택하여 그 악을 매우 미워한다는 뜻을 보여주는 것이 파가저택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실상 파가저택은 결국 가족들에 대한 연좌율이었다.

 

보통 죄인의 가족에 대한 연좌율로써 전가사변(全家徙邊), 즉 죄인을 포함한 가족 전체를 북쪽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변방으로 이주시키는 형벌이 있었으나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이 많았고, 또 변방의 경계가 안정되어 가면서 폐지되었다. 그러나 조선 말기까지 시행되었던 파가저택은 연좌율이라는 점에서 전가사변과 유사하나 실은 이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 죄인을 포함 가족 전체를 이주시키는 전가사변에 비하여 파가저택은 처형된 죄인, 그리고 남은 죄인 가족들의 생활 터전, 혈연적 근거를 없애 결국 가족이 해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가족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후의 희망이다. 아무리 감당하기 힘든 일을 당하더라도 결국 가족의 힘으로 견디고 이겨나가지 않는가. 그러한 가족을 흔적도 없이 해체시켜버리는 것이 파가저택이다. 보통 거열이나 부관참시, 압슬형, 주뢰형 등의 신체형이 조선시대 혹형(酷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반 대역죄인, 강상죄인의 가족들을 노비로 만들어 흩어지게 하고, 함께 살아갈 여지를 전혀 남겨두지 않은 파가저택, 이 역시 참으로 가혹한 형벌인 듯싶다.


성구 단상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Yet to all who received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영접하는 자 / 과거완료형

 did receive
ἔλαβον (elabon)
Verb - Aorist Indicative Active - 3rd Person Plural
Strong's 2983: (a) I receive, get, (b) I take, lay hold of.

믿는 자 / 현재형

 who believed
πιστεύουσιν (pisteuousin)
Verb - Present Participle Active - Dative Masculine Plural
Strong's 4100: From pistis; to have faith, i.e. Credit; by implication, to entrust.

 권세
 the right
ἐξουσίαν (exousian)
Noun - Accusative Feminine Singular
Strong's 1849: From exesti; privilege, i.e. force, capacity, competency, freedom, or mastery, delegated influence.


요한복음의 중심 용어


1. 말씀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육신이 된 말씀(요한복음 1:14) :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기록된 말씀(성경)(계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신명기 12:32 /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찌니라.
 
 선포되어진 말씀(설교)(

 요한복음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 요한은 가장 오랫동안 살았다(105세)
 1.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봉양하였다.
 2. 에베소교회를 목회하였다.
 3. 성경 다섯 권을 기록하였다(요한, 요한계시록, 요한 1, 2, 3)

2. 생명

 부모로부터 타고난 생명(비오스)
 예수를 믿음을 얻게 된 생명(조에)

 요한복음 10:10 /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3. 사랑



4. 믿음

믿음 / 98회 반복

요한복음은 믿음의 책, 말씀의 책, 생명의 책









신년주일(01-02-2022)


2022 복 그릇(마태복음 5:3-5)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그리스 민담 / 포대 만드는 사람 

옛날 옛적에 포대를 만드는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포대를 만들면서 언제나 이렇게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나 혼자서 그것을 막았지.”

아침저녁으로 그는 이 노래만 불렀습니다.
어느 날 왕이 그의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그가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 혼자서 그것을 막았지.”

저녁에 왕이 그곳을 다시 지나갔는데 그는 또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나 혼자서 그것을 막았지.”

왕은 그의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포대 만드는 사람은 왕을 보자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나서 모자를 벗더니 두 손을 십자가 모양으로 앞가슴에 얹었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했습니다.

“여보게, 자네에게 내 한 가지 묻겠는데 바른대로 이야기해주게.”

“네, 임금님! 제가 아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진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포대 만드는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아침저녁으로 자네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항상 ‘나 혼자서 그것을 막았지’라는 노랫소리가 들리더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게 되어 다른 노래는 통 부르지 않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게나.”

“아! 임금님, 무어라 말씀드려야 할까요? 저는 다만 저의 가난함을 노래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저는 몹시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루는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저의 운명이 어떻기에 이렇게 발전이 없고 찢어지게 가난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렇게 질문했지요.

그러자 천사가 넓은 광야 같은 곳으로 안내하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샘물들이 있었습니다.
이 샘물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샘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의 복이라고 하였지요.
그래서 나의 이름이 적힌 샘을 찾았는데 샘에서 물이 한방울 두방울씩 떨어지더군요.
아마 샘이 막혀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여 긴 장대로 샘의 구멍을 마구 쑤셨습니다.
순간 흙탕물이 왈칵하고 나오더니 아예 구멍이 막혔는지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막아버린 것이지요.
차라리 샘을 그대로 놔두었더라면 하고 후회하며 "내가 막아버렸지!" 하고 노래합니다.

그날 저녁 궁으로 돌아간 임금님은 신하게 접시에 빵한덩어리를 담아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에게 보냈습니다.
임금님이 보낸 빵을 받은 노인은 "우리 식구가 다섯인데 빵 한덩이로 식구들이 먹을 수 없으니 차라리 빵집 주인에게 임금님이 보낸 빵을 줄터이니 무엇을 주겠나?
빵집 주인은 진열장에 있던 빵을 모두 주었지요.
그 빵을 갖고 집으로 돌아오며 며칠은 빵 걱정이 없겠구나!

그 다음날 임금님이 노인의 가게 앞을 지나는데 여전히 "내가 막아버렸지!"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임금님은 참 이상하다.
아직도 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나! 하며 그 날 저녁에는 칠면조 구이 한 마리를 보냈습니다.
노인은 칠면조 구이 한 마리를 받더니 고기도 먹던 사람이 먹어야지 갑자기 기름기가 들어가면 배탈이 날테데 하며 칠면조를 식당 주인에게 가져가서 식당에서 가장 맛 있는 음식으로 모든 식두들이 먹을만큼 얻어왔습니다.

그 다음날 임금님이 또 가게 앞을 지나는데 여전히 똑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그날 저녁 임금님은 자루에 금화를 가득 담은 후에 노인이 퇴근할 때 건너가는 다리 중간에 금화자루를 놓고 아무도 가져가지 못하게 한 후 신하에게 지켜보라고 하였지요.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던 노인은 다리 앞에 서더니 갑자기 이 놈의 다리 내가 평생을 건너다녔는데 오늘은 두 눈을 감고 건너가야지 하여 눈을 감고 건너가므로 중간에 놓였던 금화자루를 지나치고 말았지요.

신하는 금화가 가득한 자루를 그대로 임금님에게 가져왔습니다.
임금님은 신하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구나 복이 없는 사람은 그 이유가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2022년 신년주일을 맞이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면 늘 주고 받는 인사말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해마다 복 많아 받으라는 인사말을 들었는데 정말 복 많이 받으셨나요?
복을 받으려면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