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탈레반(다리어 : طالبان‎ 탈레반)

탈리반(파슈토어 : طالبان 탈리반)


아프가니스탄 남부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파슈툰족에 바탕을 둔 부족단체에서 출발한 반군 테러조직이다.
마드라사의 학생을 가리키는 탈레브(다리어 : طالب 탈레브) 또는 탈리브(파슈토어 : طالب 탈리브)에 파슈토어 복수형 어미 ان을 붙여 만들었다.

탈레반은 1990년대 중반 활동을 시작,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를 중심으로 결속해 1997년 정권을 장악했으며 이후 2001년 미국의 공격으로 축출되기까지 아프간을 통치했다.

'얼굴없는 지도자', '애꾸눈 지도자'로 알려진 무하마드 오마르 추종자들 사이에 '물라'(mulla;mullah)라는 호칭으로 불렸는데 이는 '탈리브'에 상대되는 말로 '스승'이라는 뜻이다.

아프가니스탄
의 정권을 잡았을 당시 남녀차별 정책으로 인해 세계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아프가니스탄은 1979년 옛 소련군의 침공을 계기로 소련의 점령 하에 들어갔으며 이슬람 조직들을 중심으로 미국 등의 지원을 받은 저항세력들이 10년 이상 반 소련 항쟁을 벌였다.

1989년 소련은 아프간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아프간에선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정전불안이 계속됐고 정부의 공백을 틈타 군벌들이 내전을 벌였다.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등 냉혹한 군벌들은 카불 시내를 폭격해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같은 혼란 속에서 등장한 탈레반은 엄격한 이슬람 규율로 무장하고 전국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갔다.
카불의 무력한 기득권층과 북부 양귀비 재배 지역에서 아편 매매 수입으로 횡포를 부리던 이른바 마약 군벌들과 경합하다가 1997년에는 정권을 장악했다.

군벌 경쟁자들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지만(군벌들 중 일부는 북부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아프간 공격 때 미군 쪽에 협력했다.), 정국은 다소 안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오사마 빈라덴을 탈레반이 예전부터 숨겨주고 있었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다.
탈레반은 미국의 힘 앞에 저항하지 못하고 6일만에 주요 도시가 함락되었다.
그러나 2011년까지 미국은 오사마 빈라덴을 찾지 못했으며, 이는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만 죽인다며 비판을 받아왔다.
2011년 5월 1일 버락 오바마가 서명한 작전에 의하여,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으며,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을 카불을 점령하면서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접수했다.


탈레반의 관심사는 아프간에 안정적인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일이다.
탈레반은 다리어·파슈툰어에서 학생이라는 뜻이다.

1980년대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결성된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 교리를 공부하던 파슈툰족 대학생 조직에게서 비롯됐다.






美 복음연합, ‘탈레반에 대해 알아야 할 아홉 가지'

미국 복음연합(TGC)은 21일(현지시간) 인터넷 홈페이지에 ‘탈레반에 대해 알아야 할 9가지’에 대해 글을 올렸다.
TGC는 “우리는 잔인한 이슬람주의 정권인 탈레반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첫째, 탈레반이란 이름은 ‘학생’을 의미한다.

탈레반은 ‘학생’ 또는 ‘구도자’를 의미하는 파슈토어에서 나온 용어이다.
원래 탈레반은 파키스탄의 전통적인 이슬람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동부 및 남부 파슈툰 지역의 종교 학생 (탈레반) 운동이었다.

둘째, 탈레반 학생들은 학교에서 코란과 전쟁 훈련을 받았다.

원래 탈레반 학생들이 다녔던 학교는 그들의 라이벌을 제압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훈련을 받은 무장 단체로 조직됐다.
학생들은 공부에만 참여하는 그룹과 종교 전쟁에 참가할 준비를 하는 그룹 등 두 그룹으로 나뉜다.
18세 이상의 사람들은 당시 소련과 싸우고 전투에서 돌아올 때 학업으로 돌아간다.

셋째, 탈레반은 아프간 내전 동안 집권했다.

1979년 12월 당시 3만명의 소련군은 공산주의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소련은 88년 철수하기 전까지 10년간 주둔했다.
소련 철수 이후 내전은 96년 정부가 탈레반에게 넘어갈 때까지 계속됐다.
공식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의 구원을 위한 연합 이슬람 전선(United Islamic Front)으로 알려진 아프간 북부 동맹은 탈레반에 반대하기 위해 96년 말 결성됐다.
북부 동맹은 미군이 이슬람 정권을 전복시킨 2001년 9월까지 탈레반 정부와 방어 전쟁을 치렀다.

넷째, 미국 정부는 탈레반과 평화 협정을 맺었다.

2020년 2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미군을 철수하고 최대 5000명의 탈레반 전투 및 정치범을 석방하도록 요구하는 협정에 탈레반과 서명했다.
그 대가로 탈레반은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아프가니스탄 땅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데 동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합의를 존중하기로 했으며,
“내가 직접 협상한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미국 정부가 합의한 것이며 이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섯째, 탈레반은 인신매매와 성노예에 가담했다.

탈레반은 집권하는 동안 강제 결혼과 성노예를 이유로 여성을 자주 납치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따르면 탈레반은 정권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여성을 성노예로 매매했다.
좀 더 최근에 탈레반은 부도덕한 범죄 혐의로 기소된 일부 아동과 성인 성매매 피해자를 구금하고, 노동을 강요했다고 미 국무부가 밝혔다.
탈레반은 또 남성 성매매 피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 소년을 성인 인신매매범과 동일한 책임이 있는 범죄자로 기소하기도 했다.
당국은 소년 성매매 피해자들을 범죄 혐의로 소년원에 송환하고 몇 년간 가뒀다.

여섯째, 탈레반은 특정 이유를 위한 목적으로 소년병을 징집했다.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따르면 탈레반은 나이별로 어린이를 모집해 훈련한다.
HRW는 “남자아이들은 6살부터 세뇌를 시작하고 최대 7년 동안 탈레반 교사 밑에서 종교 과목을 계속 공부한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모집한 소년들의 친척에 따르면 탈레반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13살이 될 때까지 총기 사용, 급조폭발물(IED) 생산 및 배치를 포함한 군사 기술을 배웠다.
그런 다음 탈레반 교사는 훈련된 소년병을 해당 지역의 특정 탈레반 그룹에 소개한다.

일곱째, 탈레반은 인권을 짓밟은 역사가 있다.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최악의 인권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고 미 국무부가 밝혔다.
90년대에 탈레반이 집권했을 때 사회적 통제는 ‘악덕과 덕’의 경찰로 알려진 도덕 공무원에 의해 통제되고 운영됐다.
이들 관리는 지역 사회를 순찰하면서 복장과 품행, 수염 길이, 남성의 금요 기도 참석 여부, 스마트폰이나 기타 기기 사용과 관련해 탈레반이 규정한 사회 규범의 준수 여부를 점검했다.

여덟째, 탈레반은 소녀와 여성을 억압한 역사가 있다.

90년대에 탈레반이 집권하자 여자대학을 폐쇄하고 거의 모든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도록 했다.
탈레반은 여성의 의료 접근을 제한했고 복장 규정을 잔인하게 시행했으며 여성이 도시를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했다.
아프간의 오랜 내전 동안 남편과 다른 남성 친척을 잃은 5만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수입원이 없었다고 미 국무부가 전했다.
많은 사람이 소유물을 팔고 거리에서 구걸하거나 더 심한 경우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구걸해야 했다.
여성들은 또 베일과 함께 부르카를 착용해야 했다.
보기가 허용된 부르카의 작은 메시 패널은 시야가 제한돼, 안전하게 길을 건너는 것조차 어려웠다는 증언이 많다.

아홉째,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기독교인을 박해한 역사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소수 기독교인은 탈레반의 귀환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한 크리스천은 탈레반이 어떻게 신자들을 장악하며, 향후 어떻게 탈레반이 운영될 것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은 알려진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두려움을 퍼뜨리려고 할 것입니다. 이미 15살의 독신 소녀가 있으면 탈레반 군인과 결혼해야 한다는 포스터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딸을 그들에게서 빼앗겨 탈레반과 강제로 결혼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뇌를 위해 종교학교인 마드라사로 보내질 것입니다. 부모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한 남성은 자신의 집이 현재 탈레반의 소유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공예품을 만드는 단순한 사람이고 그의 모든 재산은 집에 있습니다. 탈레반은 기독교인의 소유와 재산을 탈취하고 그들의 모든 여성을 빼앗을 것입니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6194853&code=61221111&sid1=chr


“아프간 기독교인들 위해 기도해 주세요”

“탈레반은 기독교인이라는 걸 알게 되는 그 즉시 죽일 겁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인 카불에서 지난 21일 국민일보에 보내온 현지 기독교 사역자의 메시지는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의 긴박한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A씨(35)는 국민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장악하기 전에도 아프간에서 기독교인의 삶은 힘겨웠지만 적어도 죽이지는 않았다”며 “지금 기독교인들은 숨어 있고, 어떤 활동도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아프간 남부 간즈니주 출신인 A씨는 카불에서 대학을 나와 직장생활을 하는 평범한 남성이었다.
아프간에서 99%를 차지하는 이슬람교도이기도 했다.

A씨는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냐’는 질문에 “이슬람이 아프간을 덮은 약 900년은 아프간 사람들이 어둠 속을 걸은 시간”이라며 “2001년 유엔군이 아프간에 들어오면서 하나님 나라의 문이 열리고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젊은 세대에게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당시 20대인 A씨도 하나님을 만난 젊은 세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슬람교도였던 나는 어둠 속에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며 “2009년 어둠 속에서 주님을 찬양하게 됐고, 이듬해부터 아내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카불과 인근 지역에 가정교회를 세웠다”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10개의 가정교회는 각각 5~8명 정도가 모여 예배하고 제자훈련을 받는다.
예배당이 따로 없어 공원, 자동차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났다.
아프간 문화에 맞춰 아내는 여성, A씨는 남성 성도를 담당했다.

한국과는 남다른 인연을 맺었다.
인연의 과정은 강대흥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사무총장이 대신 얘기해 줬다.
강 총장은 “2017년으로 기억한다.
A씨는 광명교회 세계기도자학교 아프간 대표로 참여했다”며 “당시 나는 태국 선교사로 A씨를 만났고 지금까지 연락해 왔다”고 말했다.

강 총장은 탈레반이 아프간 장악을 시도한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A씨와 아프간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고민했다.
그때 찾은 방법이 유학이다.
강 총장을 통해 국내 선교단체는 아시아 국가에 있는 한 국제학교를 연결해 줬고 A씨의 입학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러나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뒤 A씨의 탈출 계획은 멈춰 섰다.
A씨도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아프간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여정이 될 듯하다”고 말했다.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A씨는 아프간을 위한 계획과 비전을 놓지 않고 있다.

그는 “첫 번째 목표는 안전하게 탈출하는 거다.
탈출에 성공하면 외국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며 “그 다음은 외부에서 SNS 등 네트워크 기술을 활용해 아프간을 돕는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이어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아프간으로 돌아가서 아프간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기도제목을 물었더니 당연하면서도 슬픈 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다른 나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아프간 국민의 안전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06002&code=23111115&sid1=chr







어디에 있느냐? 아예카 / ayeka (אַיֶּכָּה) “Where are you?”


The most important part of this verse is the final word: ayeka (אַיֶּכָּה) translating to, “Where are you?”
But ayeka means much more than that.
It is God’s gentle way of initiating a difficult conversation by asking tenderly,
“What’s happened to you? Where do you stand with respect to me?”

This single word powerfully expresses the broken relationship between humanity and God.


단에서 브엘세바




목장교사를위한성경공부동영상이‘e 푸른초장’ 에있습니다.단에서브엘세바까지4월9일우리가구약성경을읽다가보면“단에서브엘세바까지”라는표현을자주보게되는데, 이것은약속의땅인이스라엘의‘전체영토’를지칭할때쓰는말이다.(삿20:1, 삼상3:20)‘단’은이스라엘제일북쪽끝의지명이고, ‘브엘세바’는이스라엘제일남쪽끝의지명이며, 서쪽의경계는지중해이고, 동쪽의경계는‘요단강’이다.한국으로비유하자면‘간도땅에서이어도까지’혹은‘백두산에서한라산까지’정도의표현이라고할수있다.단은고대이스라엘북쪽에있던도시로,갈릴리바다에서북쪽으로65km 정도떨어져있다.단에서북동쪽으로이스라엘젖줄의근원지라고할수있는헬몬산(2770m)이위치해있으며, 헬몬산에서흘러든물이갈릴리바다에모이고, 요단강을따라남쪽인사해로흘러간다.현재갈리리바다의물로이스라엘전체의70% 정도의수도물을공급하고있다.북쪽의갈리리바다는남북으로의길이가20km 이며, 해발-200m 이다. 남쪽의사해바다는길이가70km 이며, 해발-400m 이다.이스라엘의영토는갈릴리바다를중심으로는동서로45km 정도의거리(폭) 이며, 더남쪽인사해바다를중심으로는동서로85km 정도의폭을가지고있다. (뒷면의지도참조) 단에서브엘세바까지의남북으로의직선거리는약240km 정도이고, 한국과비교하면서울에서대구정도의거리이다.이스라엘의면적은한국땅의약1/8에해당하며, 강원도정도의크기이다.그리고“게바에서브엘세바”라는표현은남방왕국‘유다’를지칭할때쓰이는표현이다.브엘세바라는지명은창세기21:31에처음등장하는데, “두사람이여기에서이렇게맹세를하였으므로,그곳을브엘세바라고한다.”따라서‘브엘세바’의뜻은아브라함과그랄왕아비멜렉의‘맹세의우물’, ‘언약의우물’, ‘일곱우물’이란뜻이다.‘브엘세바’는헤브론에서서남쪽으로40km 정도떨어져있다.이스라엘의남쪽끝의경계도시인‘브엘세바’는한국지도로비교한다면,전라남도와경상남도의만나는경계지점인‘하동’이나‘남해’정도에해당한다고볼수있다



처녀 이스라엘<베툴라 이스라엘> (예레미야 18:13, 이사야 7:14) 예레미야 31:1-6

* 참조 자료 /  류호돈 성경교실
https://blog.daum.net/ryu19991212/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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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이스라엘(예레미야 31:1-6)


흔히 성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합니다.
우리와 주님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며 바알과 아세라와 몰록에게 몸을 더렵혔습니다.
사치하고 방탕하고 교만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혹독한 진노를 산 것입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망하여 나라도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가 혹사 당하는 망국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그들을 여전히 <처녀 이스라엘아>(4절)하며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는 <베툴라 이스라엘>인데, <베툴라>란 <순결한 처녀>를 가리킵니다.
창세기 24장 16절은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에 대해 <베툴라>라고 했습니다.

춤추며 나오리라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4절). 

<내가 다시 너를 세우겠다>,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라>,
<네가 소고를 들고 즐거워 할 것라>는 말씀은 늘 넘어지고 실패하고 반역하는 이스라엘이지만 내가 다시 세워주고 그들로 하여금 춤추며 즐거워하게 하겠다는 희망의 약속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주님은 못난 우리를 늘 다시 세우십니다.
엎어지고 자빠지기를 밥 먹듯 하는 못난 자식들이지만 <처녀 이스라엘>이라 부르시며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마치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한 베드로를 찾아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며 첫 사랑을 회복시켜 주셨듯 그렇게 우리를 늘 새출발하게 하십니다.
패배와 슬픔과 고통 속에서 헤어나 희망을 보며 춤추고 또 즐거워하게 하십니다. 

그 열매를 따리라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나무들을 심되 심는 자가 그 열매를 따기 시작하리라>(5절).

전에는 애써 가꾸어 놓은 포도 열매를 다른 나라 군대가 침략하여 다 노략질해 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에도 이런 예언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식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너의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으로 마시지 않게 할 것인즉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사 62:8-9).

그렇습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심고 완전하게 가꾸어 최상품의 열매를 맺게 했을지라도 하나님이 그 수확을 보장해 주시지 않으면 단 한 톨도 건질 수 없지만 반대로 아무리 열악하고 불리한 환경이나 조건이라 해도 하나님이 주관하시면 반드시 제 손으로 심은 포도나무에서 제 손으로 열매를 따되 풍성한 수확을 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포도나무나 혹은 나의 수고,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과 역사라는 것입니다.
부디 올해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성한 열매를 따게 되시길 바랍니다.
결코 내가 심은 나무에서 남이 수확하는 불행이 없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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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1장 21~22절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성경은 비유와 비사, 상징으로 기록되어 있고(마 13:34, 요 16:25) 거울과(약 1:23) 그림자(히 10:1) 같은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알려고 하면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에는 우리의 구원의 확실한 도가 말씀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성경 속에 숨어있는 은비한 비밀의 말씀을 마치 금이 나오는 금광의 광산에서 금맥 줄기를 따라서 금을 캐내듯이(욥 28:1~11) 진리의 말씀으로 큰 깨달음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예레미야 14:17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

말씀 중에서 「처녀 이스라엘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면 이스라엘이지 처녀 이스라엘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처녀라는 뜻은 남자를 가까이 한 사실이 없는 여자를 처녀라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숲이 많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산 속을 처녀림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발을 들여놓은 사실이 없는 장소를 처녀림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저 중동의 이스라엘은 처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미 결혼해서 많은 환난과 역경과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했던 이스라엘입니다. 이 말씀은 처녀 이스라엘에 관해서 말씀하심인 줄 믿습니다.

처녀는 순진하고, 순박하고, 순수한 성품의 겸손과, 교양이 겸비된,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여자를 처녀라고 칭함과 같이 전쟁에 시달리고 온갖 고행을 격은 이스라엘이 아닌 새로 탄생된 새 이스라엘이 처녀 이스라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이스라엘은 어떤 이스라엘인가 하면 지금까지 있었던 이스라엘이 아닌 새로운 이스라엘의 탄생을 말합니다. 저 유대민족의 이스라엘이 아닌 영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탄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10:1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아름다울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포도나무는 요한복음 15장 1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참 포도나무요」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열매맺는 포도나무라면 참 포도나무는 예수님이시니까 오늘날 예수님의 열매가 참 이스라엘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을 전부 다 합쳐도 참 이스라엘은 될 수가 없습니다. 왜 참 이스라엘이 될 수 없는지 보시겠습니다.

요한복음 15:5~6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가지는 나무의 원체에 붙지 않고 예수님의 피가 통하지 않으며 포도나무의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그 수액이 통하지 않는 부러진 가지입니다. 부러진 가지는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지만 예수님과 혈맥이 통하지 않은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껍질만 기독교의 옷을 입고 성경을 들고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님이 누군지, 십자가의 비밀이 무엇인지, 우리의 구원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혈맥이 통하지 않는 자는 참 이스라엘이 될 수가 없습니다.

맥을 짚어보면 맥이 뛰어야 되는데 맥이 뛰는지 뛰지 않는지 뛰는 것 같기도 하고 뛰지 않는 것 같기도 한, 이런 사람은 한의사가 맥을 짚어 보고“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 입니다, 장례식을 준비하십시오.”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참 이스라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 포도나무에 참 포도 열매가 달려야 하는데 들포도 열매가 달렸다면 참 이스라엘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열매 가운데서“주여! 주여”하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그리스도인이 참 이스라엘이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기를 이스라엘을 다시 택할 것을 말했습니다.

이사야 14:1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자기 고토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에게 가입되어 그들과 연합할 것이며

기록된 말씀에서 다시 택한 이스라엘에게 나그네 된 자들이 가입한다고 하였는데 오늘날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나그네의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나그네라는 것은 주인이 아니고 왔다갔다 하는 손님에 해당된 자들이 나그네 신앙을 가진 자들입니다. 남의 집에 머물러 있다가 떠날 수밖에 없는 자가 나그네입니다.

이런 찬송을 부릅니다.
“세월이 흘러가는데 이 나그네 된 나는 괴로운 세월 가는 것 금할 길 아주 없네”

전 세계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 땅에 대하여「나그네」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그네 된 기독교인들이 참 이스라엘이 아니요 나그네 된 자들이므로 예수 포도나무에 참된 가지가 되기 위하여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다시 택한 이스라엘에 접붙임으로 가입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깊이 생각을 해 봐야 됩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나그네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한 가족이 되지 않은 자가 나그네 신앙을 가진 자입니다.

예수님과 한 가족이 되어야지 예수님과 한 가족이 되지 못하고 세상에 속한 자는 이미 나그네 신앙의 신세를 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한 가족이 되어있지 않은 자가 바로“나그네다”이렇게 설명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나그네 신앙으로 있던 자들이 영적 야곱 족속(야곱이 얍복강에서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받음)에게 가입됨으로써 나그네 신세를 면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권속이 되는 줄 믿습니다.
나그네 신세를 면하고 다시 택한 이스라엘에 가입된 자들이 처녀 이스라엘입니다.

이사야 14:2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를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를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를 주관하리라

기록된 말씀에서 노비가 무엇인가 하면 사내종과 계집종입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노비가 된 종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이 스스로 주의 종으로서 종의 신앙을 가진 자들입니다.
전에 자기를 사로잡아서 가르쳤던 그 선생이 종님이었고 말씀의 종, 은사의 종, 자칭 종의 종이 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아들은 자기를 가르치고 지도하고 억눌렀던 자 곧 주의 종을 주관하리라고 했습니다(사 14:2).
이는 자기를 가르친 자는 주의 종이었고(갈 4:8) 가르침을 받은 종은 양자의 영을 받아서(롬 8:15) 하나님의 권속이 되고(엡 2:19) 아들이 되었습니다(갈 4:6).

종의 멍에를 벗어나서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갈 4:7) 아들이 종들을 주관하자면 주관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된 자는 종보다 열 배, 백 배 능가하는 말씀의 능력이 있어야 주의 종들을 주관하고 다스릴 줄 믿습니다. 그들을 성경은 노비라고 했습니다(사 14:2).

갈라디아서 4:7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기록된 말씀과 같이 이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는 나그네가 아니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는 것입니다(엡 2:19).
전 세계 목자들이 주의 종이었고, 신도들은 종의 종이 되어 오늘날까지 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종이 아니라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종이 아들이 되지 못하고 아직까지 노비로 있던 자들이 야곱 족속에게 가입되어 다시 돌아올 때 나라와 족속과 민족들이 다시 택한 새 이스라엘로 몰려 올 것입니다.

새 이스라엘은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이천 년 동안 전쟁이 있던 중동의 유태 민족의 이스라엘이 아닌 줄 믿습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요(요 1:1)
말씀이 예수님이라고 하였으므로(요 5:39)
예수님을 믿는 극상품 포도나무로서 온전한 참 종자의 귀한 참 포도나무의 열매만이(렘 2:21) 참 이스라엘이 될 것입니다.

예레미애 31:21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길표가 무엇인가 보시면 길에 가다 보면 이정표의 길표가 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 보면 갈림길에 길표가 있고 거리를 표시하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부산 430㎞, 서울 400㎞, 서울 300㎞, 서울 200㎞ 등 이렇게 쓰여 진 것을 길표 혹은 이정표라고 합니다.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의 옛 조상들은 길표의 말뚝을 박아 놓고 길의 방향을 표시하였습니다.

직진하면 서울, 우측으로 가면 경주, 좌측으로 가면 대구… 이렇게 길표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길표가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가면 천국, 옆으로 가면 이단, 그 옆으로 가면 삼단, 뒤로 가면 사단…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처녀 이스라엘을 위해서 길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내가 예수님을 믿은 지 10년, 20년 되었고 죄인으로 왔다가 죄인이 아닌 자가 되었으며 천국 가는 신앙을 하긴 하는데, 내가 지금 천국에 중간쯤 왔는지 다 와 가는지 아직까지 천국 문 앞에도 못 오고 천리만리 밖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왜 알 수가 없는가 하면 성경이 말하는 이정표의 길표가 없는 신앙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길표가 없는 신앙이 무슨 신앙이었는가 하면 산길과 들길, 좁은 길, 가시 밭 길을 다닌 자들입니다. 산에 길은 있으되 길표가 없고, 들에 길은 있으되 길표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산길, 들길, 좁은 길의 신앙을 하여 온 것이 사실입니다.(찬송 427장 :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길표는 대로에 나가야 있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길표가 없는 신앙은 대로의 신앙을 갖지 못하고 나그네의 신앙인 종의 신앙을 가진 자들의 신앙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처녀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길표를 세우실 줄 믿습니다(렘31:21). 그런데 길표가 있는 대로에는 두 가지 대로가 있습니다. 길표가 없는 대로의 길은 사막의 길이고 길표가 있는 대로만이 구원의 길인 줄 믿습니다.

오늘날 어떤 기독교인들은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라는 찬송을 하고 있지만 성령이 계시면 좁은 길이 아닌 넓은 대로의 길이 열릴 줄 믿습니다.

성경은 좁은 길이 아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였습니다.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하였습니다(마7:14). 좁은 길은 발람의 길로써 불순종의 길이요 사망의 길입니다(민22:23~33).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좁은 문을 좁은 길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좁은 길을 다니는 자는 강도나 도적떼들입니다. 좁은 길은 산길과 들길이고, 가시가 있고, 독사가 나오는 길입니다. 대로의 길은 독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구원의 길은 좁은 길이 아니요 대로의 길입니다.

이사야 35: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거룩한 자가 다니는 길이 거룩한 길입니다. 도둑놈이나 사기꾼이 다니는 길은 거룩한 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으므로 거룩한 길은 진리의 길인 줄 믿습니다. 진리의 성령으로(요 16:13~16) 말씀을 좇아가는 길입니다.

이사야 35:9~10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구원받을 자들을 위해서 대로의 길, 진리의 길, 거룩한 길을 열어 주신 줄 믿습니다. 그 진리의 길, 대로의 길이 있는 곳에는 길표와 표목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처녀 이스라엘은 처녀와 같이 순진하고 순박하고, 순수하고, 흠과 티가 없는 깨끗한 신앙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깨끗한 자가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만이 깨끗하게 될 수가 있는 줄 믿습니다.

예레미야 31:21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착념하라」는 것은 돌이켜 생각해 보라는 뜻으로서“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거기는 너희가 갈 길이 아니고 길표와 표목이 없는 곳은 구원의 길이 아니니 돌아오라”는 것이요, 우리의 옛 조상들도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 같은 말이 아니면 듣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천국 길에 길표가 없고 가다가도 길이 아니면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서울에 가기 위해 대구에서 열차를 탔는데 길표를 보니까 서울이 아니고 경주가 나오면 서울의 반대 방향의 열차를 탔으므로 열차를 잘못 탄 것입니다. 열차를 잘못 탔다면 다음 정거장에서 바꿔 타는 것이 정상인데 이왕 잘못 탄 것이니 끝까지 타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못된 신앙의 길을 간 자들입니다. 지리를 잘 아는 자들은 직행열차를 탈 수 있는데 무식한 자들은 수없이 열차를 갈아타야 합니다.

이와 같이 천국행 열차의 신앙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평생에 수없이 많은 교회만 바꾸는 것입니다. 이미 천국행 열차를 탄자들은 일등석에 타는 사람이 있고, 삼등석에 타는 사람이 있고, 화물칸에 숨어서 타는 사람도 있습니다.

화물칸에 숨어서 탔어도 내리지만 않으면 그 열차는 천국행으로 갈 줄 믿습니다. 차에서 내리면 일등석에 탄 사람이나 이등석에 탄 사람이나 화물차에 탄 사람이나 다 똑같습니다. 좀 편안할 뿐이지 차이는 없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큰 깨우침이 있는 사람은 일등석에 탄 사람이고 깨우침을 덜 받은 사람은 이등석에 탄 사람이며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은 화물칸에 탄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리지만 않으면 천국행 열차가 천국에 도착할 때에 일등석에 탔던지 화물칸에 탔던지 상관이 없이 함께 내릴 줄 믿습니다.

예레미야 31: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마음이 흔들려서 방황하겠느냐」이는 말씀을 들을 때는“아멘”하고 나가서는 생활의 환경 곧 가정생활 때문에 방황하는 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렘31:22 …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하나님이 길표를 세우고 새 일을 세상에 행할 때에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안을 때가 되면 이미 구원의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보시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여자가 아들을 해산해서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를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남자를 안을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미 여자가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기가 조금만 더 크면 이제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역사가 이루어질 것인데“왜 방황 하느냐! 패역한 딸아!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진리를 찾아 달려와서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아들을 잘 키우라”는 하나님의 뜻인 줄로 믿습니다.

이 패역한 딸이라고 말하는 자는 누구인가 보시겠습니다.

이사야 54: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기록된 말씀에서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의 남편입니다. 하나님께서 처녀 이스라엘을 아들로 삼고자 하는데 네가 왜 하나님을 저버리고 세상에 속하여 자꾸 돌아다니는지, 너는 분명히 처녀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이 될 사람인데 왜 방황하고 돌아다니는지 빨리 하나님 참 남편에게로 돌아오라고 한 것입니다.

호세아 2:19~20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기록된 말씀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장가를 오시면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했습니다. 이는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유한 말씀입니다(고전2:10).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성령을 받아서 성경을 알고(고전2:10) 영생의 비밀을 깨달으면 하나님이 내게 장가오는 것인데, 하나님이 장가가려고 하니까 이 패역한 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가 안 믿었다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주일날이면 온갖 다른데 돌아다니고 전도자와 만나기로 약속한 주일날 오지 않고, 수요일 날도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패역한 딸아 시간이 없다.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빨리 하나님 되신 남편에게 돌아오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처녀로 비유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한 남편인 그리스도에게 중매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중매쟁이가 된 것 같이 필자도 중매쟁이입니다.“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 이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리라! 이것이 구원의 길이고 이것이 패망의 길이다. 이것이 생명의 길이고 사망의 길이다”하는 길표를 확실하게 세워서 보여 주신 줄 믿습니다.
그러면 길표와 표목에 관한 말씀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레미야 31:2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사람의 씨를 뿌리고 짐승의 씨를 뿌릴 날이 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31:28
내가 경성하여 그들을 뽑으며 훼파하며 전복하며 멸하며 곤란케 하던 것같이 경성하여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방송국에서 방송을 하면 그 방송이 TV화면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은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TV에서 소리가 나왔다가 나오지 않았다가 라고 합니다. 그것은 TV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고 방송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목회자는 TV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늘 방송국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대언하는 TV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TV에서 나오는 말씀, 곧 증거되는 이 말씀이 바로 하늘 방송국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목회자는 말씀을 전달하는 기계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씨는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한 것이고, 짐승의 씨는 지옥으로 떨어질 악한 백성들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사람의 씨에 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3:22~23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하나님은 다윗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룰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곧 다윗이란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성경은 예수님이 사람의 씨에서 나올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씨에서 나왔으니까 우리 또한 예수님께로부터 나왔을 때에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참 사람의 씨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사람의 씨라 하였고 사단에게 속한 자들을 짐승의 씨라고 비유했습니다(렘31:27).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고 씨를 보고서 열매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짐승의 씨는 무슨 말을 하고 하나님의 씨는 무슨 말을 하는가 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짐승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디도서 1:12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

마태복음 23:32~33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사람을 짐승과 뱀으로 비유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0:2~3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용이란 놈을 잡고서 보니 옛날에 아담과 여자를 꼬였던 그 뱀이요, 천년 감옥에 들어가기 위해서 잡히자면 아담으로부터 육천 년 동안을 살아있어야 됩니다. 뱀도 종류에 따라서 수명이 다른데 가장 장수하는 뱀은 20년에서 25년까지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육천 년 사는 뱀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육천 년 사는 뱀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 뱀의 후손입니다. 용을 잡고서 보니 이놈이 마귀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자요 이놈이 바로 사단이요 바로 옛 뱀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6: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기록된 말씀에 가룟 유다를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3:32~33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율법사 바리새인들을 보고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말했습니다(마23:32~33).“너희들은 산지옥에 떨어질 판결을 피할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옛날 옛적에 뱀과 사람이 대화할 때에 뱀이 말했습니다. “여자야, 하나님께서 동산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창3:1)”라고 하자“하나님이 동산 중앙의 나무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였느니라(3:3)”이렇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 대화가 실제로 옛날에 뱀이 대화를 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에 밭이나 논둑길을 가다가 뱀을 만나면“이놈! 아담과 하와를 꼬였던 뱀 요놈”하고 막대기를 가지고 끝까지 따라가서 잡았습니다. 마귀 한 마리 잡으려고 끝까지 따라간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뱀이나 독사는 파충류의 뱀이나 마귀가 아닌데 어릴 때 신앙은 파충류의 뱀이 사단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짜 뱀, 사단은 가룟 유다 같은 사람입니다. 뱀은 사람과 대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시편 140:3
뱀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시편 58:4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사람이 독사며 뱀인 것입니다. 실상의 뱀은 귀 자체가 없는 귀머거리 입니다. 귀가 없는 뱀이 어떻게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뱀은 땅의 진동으로 모든 것을 감지합니다. 귀머거리 뱀은 하와와 대화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고 독사를 사전에서 찾아보니까 뱀은 귀가 아예 생기지 않았습니다. 귀가 없는 것입니다. 귀가 있는 귀머거리가 아니라 귀가 아예 없습니다. 귓구멍이 없고 청각 장치가 없는 동물이 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뱀에 해당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도 알지 못합니다. 소 귀에 경 읽기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으니까 하나님 말씀을 깨우침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귀머거리가 바로 뱀입니다.

가룟 유다를 마귀요(요6:70) 곧 사단, 뱀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폭포수 같이 쏟아진다고 할지라도 뱀에 속한 귀머거리는 들어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알 수 없는 귀머거리들이 예수님 당시에 살아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입니다.

마태복음 13:13~15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으면 엄청나게 좋은 하나님의 축복인데 이 축복을 받고도 도리어 예수님을 판 역도가 된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영적인 뱀들이요 독사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1:27~3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내가 경성하여 그들을 뽑으며 훼파하며 전복하며 멸하며 곤란케 하던 것같이 경성하여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아들의 이가 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씀이 나왔는가 하면 우리의 아버지 된 즉 우리의 조상된 아담이 죄를 지었으니까 내가 유전적인 죄인이다 라는 이것이 오늘날까지 유전된 기독교의 교리였습니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가 다시 뿌려지는 그날에는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해서 아들의 이가 시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각각 자기 죄악으로만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성령을 거역하는 죄 더하기 성령거역 죄를 지었어도 내가 죄를 짓지 아니하였으니 아버지의 죄를 아들이 전수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부산에 있는 아버지가 포도주를 먹고 술에 취하면 서울에 있는 술을 먹지 않은 아들이 포도주에 취해서 흔들흔들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각각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고 한 줄 믿습니다. 이는 오늘날 기독교의 정통 교리가 된“유전 죄”를 부정하는 내용입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오늘날 기성교회의 유전 죄에 대한 교리는 잘못된 교리가 분명합니다.

에스겔 18: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잘못된 교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원죄(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죄)가 있고 유전 죄(조상의 죄)가 있습니다. 아담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내 아버지까지 지은 모든 조상의 유전 죄가 얼마나 크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를 이어가면서 지은 죄가 아담부터 시작된 죄인데 6천년 동안 우리 조상이 지은 죄는 한 대를 30년으로 본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유전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자범죄(자기가 지은 죄)입니다. 아버지가 죄인이기 때문에 내가 죄인이고, 우리 조상이 범죄했기 때문에 내가 죄인이라고 함은 어찌된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죄인 중에 죄인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비의 죄를 아들에게 넘길 수가 없다고 하였으므로 이제는 유전 죄의 신앙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에스겔 18:3~4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각자 범죄하는 영혼이 죽는 것이지, 조상이 죄를 지었고 아버지가 이단이라고 해서 아들도 이단이 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참 단이라고 해서 아들이 참 단이 되는 것도 아니라 각각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고 한 줄 믿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법도가 이 땅 위에서 성취될 때는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릴 때라고 성경에서 비유한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이는 유전 죄를 주장하는 자들은 짐승의 씨를 뿌리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실상의 유대 민족의 이스라엘은 그 땅에 사는 사람이 오백만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서울 인구의 절반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바다의 모래 같이 많아질 수가 없습니다. 천년이 가고 만년이 가며 억만 년이 가도 바다 모래 같이 많아질 수가 없습니다.

저 이스라엘은 중동에 있는 히브리 민족이 아니요 예수님을 믿는 자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요(호10:1) 포도나무는 예수님이요(요15:1) 예수님의 열매가 영적인 이스라엘인 줄 믿습니다.

지금 천주교, 기독교의 신도가 20억이나 됩니다. 바다의 모래 같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라고 하셨고, 이 남은 자가 바로 새 이스라엘인 줄 믿습니다.

로마서 9: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은 기독교인들이 다 구원받을 자들은 아닙니다. 씨라는 것은 종자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여자를 주셨고 또 이 땅 위에 그 씨앗을 심으려고 했는데 하와가 처음 낳은 아들이 가인이었습니다. 가인이 사단의 씨가 된 것입니다. 다시 세 번째 셋이라는 씨를 주셨습니다.

셋 자손이 바로 노아입니다. 노아 당시에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족을 세상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는 씨로 삼았습니다. 노아 홍수 심판 때에 노아의 여덟 식구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가족이 홍수 이후에 열린 새 하늘과 새 땅의 씨가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이 세상의 심판이 있을 때에 영적인 노아의 가족이 인류의 제 2의 조상으로서 씨가 된 것입니다.

이사야 27:6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에 채우리로다

움이라는 것은 싹입니다. 이스라엘이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낳은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하여 이김으로써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얻었으며 야곱의 열 두 아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통하여 탄생한 것입니다. 이러한 야곱족속 곧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나무 둥지에서 새로운 움이 하나 나온 것입니다.

이“움”이“싹”이요“순”입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를 통한 기독교가 새 이스라엘의 움으로 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호10:1, 요15:1). 이것이 새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너희 중에 뿌릴 날이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짐승이 무엇인가 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짐승인 개와 여우 등의 짐승들로 비유한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사야 13:22
그 궁성에는 시랑이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한 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56:11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개가 무엇인가 하면 몰각한 목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개가 울면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기록된 말씀에서 개들을 삼가 하라고 하였습니다. 행악자가 성경에는 개로 비유된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 개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에(계 21:1~5) 거룩한 성 밖으로 쫓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술객들, 행음자들, 살인자들, 우상 숭배자들,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들이 다 사람인데 개는 사람이 아니면서 왜 그 속에 개가 들어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6:11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이 개들은 몰각한 목자들입니다. 몰각이라는 것은 깨달음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깨달음에서 떨어진 자입니다. 깨닫지 못한 자는 귀머거리며 독사입니다.

그래서 몰각한 목자는 거짓 목자를 비유한 것인 줄로 믿습니다. 이런 것을 성경에는 짐승으로 비유했습니다.

아가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포도원은 이사야 5장 7절에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7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아가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포도원을 팔아보았자 포도 값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우 한 마리 잡으면 요즘 600만원, 천만 원 한다는데 차라리 여우 한 마리 잡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은 실상의 여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우로 비유한 말씀인 것입니다.

에스겔 13:1~3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찐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 외에 자기가 계시 받았다고 하는 우매한 선지자들, 마음에 나는 대로 거짓을 예언하는 자들이 모두가 여우들입니다. 아무리 계시를 받아봐야 성경에 기록된 계시의 내용을 능가할 수가 없는 줄 믿습니다.

에스겔 13:4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거짓 선지자를 여우로 비유한 것입니다. 사람인데 하나님의 씨로 나온 자가 있고 짐승의 씨를 뿌릴 때가 있습니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해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하는 유전 죄를 주장하는 자들은 짐승의 씨요,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어도 아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않다고 하는 자는 유전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로서 사람의 씨로 축복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바리새인이 찾아왔습니다.“헤롯이 지금 당신을 죽이려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화가 나서 하신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누가복음 13:31~32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귀신을 쫓아내고 기사와 이적과 능력을 행하신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화가 나니까 예수님이“헤롯”을 여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우라고 하면 여우가 되는 줄 믿습니다.

이사야서는 구약에 있는 신약이라고도 합니다. 신약에 있는 모든 말씀들이 거의 다 이사야서를 인용해서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들도 거처가 있는데 인자되신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하고 협력하고, 대화하고, 의논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룰지 하는 의논할 상대자가 없는 선지자의 외로움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같이 예수님은 머리를 둘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머리를 갖다 놓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는 사단입니다. 예수님이 뿌린 씨를(마13:37)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마13:4), 포도원을 헌 여우는 바로 헤롯왕이었던 줄 믿습니다(눅 3:31~32).

여우도 공중의 새들도 다 거처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진리를 받아주는 자가 없어서 가슴 아픈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서 볼 때에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가 뿌려지는 때가 바로 오늘날 이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무슨 사람인가 보시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4:4~5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인간으로서 처음 익은 열매입니다. 진리 말씀에 흠이 없는 자, 사람 가운데 첫 열매 된 자들은 사람의 씨인 줄 믿습니다. 참 사람은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습니다. 누가 이 땅에 참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참 사람의 씨앗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빌립보서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성경은 예수님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의 씨를 받은 자가 말씀의 씨앗이 자라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귀한 자들로서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가 뿌려지는 이때에 길표와 표목이 있는 교회에서 천국 길을 달려가는 귀한 자들로 하나님의 씨가 된 아들로서 축복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어성경목록

구약전서 The Old Test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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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 Ruth (루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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