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궤(言約櫃)


언약궤(言約櫃)

법궤(ארון הברית / 아론 하버리스)
성궤(聖櫃)
언약궤(Ark of the Covenant, 約櫃)

언약궤는 금박을 입힌 나무 상자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을 새긴 석판 두 개를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언약궤는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언약 (조건적인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면, 당대뿐만 아니라 자손대대로 좋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불순종하면, 가망이 없으며, 형벌을 받고, 흩어질 것이라고 늘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상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당신께서 직접 설계하신 상자를 만들게 하시고, 그 안에 십계명을 담은 석판을 두게 하셨습니다.

이 상자, 또는 함은 “궤”라고 불렸으며, 금으로 도금된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궤는 사막의 성막 안 성소에 보관되었고, 결국에는 예루살렘에 성전이 지어지면 그곳에 보관될 예정이었습니다.
이 상자가 언약궤로 알려진 것입니다.

언약궤의 정말 중요한 부분은 “속죄소(Mercy Seat)”로 알려진 상자의 뚜껑과 관련된 것입니다.

‘속죄소’라는 용어는 “덮다, 달래다, 요구를 들어주다, 씻어주다, 취소하다 혹은 속죄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번(레위기 16장) 언약궤가 보관된 지성소에 들어가 자신의 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죄 받았던 것도 바로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화를 달래기 위해, 희생제물로 바쳐진 짐승의 피를 속죄소에 뿌렸습니다. 세상에서 이 속죄가 이루어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언약궤 위에 덮여 있던 속죄소는 모든 죄를 위한 궁극적인 희생, 즉, 죄 사함을 위해 십자가에 뿌려진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상징적인 전조였습니다.

바리새인이자 구약성경에 익숙했던 사도 바울은 로마서 3:24-25에서 우리의 죄를 덮으시는 그리스도에 대해 썼을 때, 이 개념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으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구약성경에서 속죄를 치를 수 있었던 유일한 처소가 언약궤의 속죄소였던 것처럼, 신약성경 때와 현재에도 속죄를 위한 유일한 처소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크리스천인 우리는 화목제사와 속죄를 위해 더 이상 언약궤에 의지하지 않고, 주 예수께만 의지합니다.

법궤 안에 숨겨진 그리스도
출애굽기 37:1-9

성경과 우리의 신앙의 중심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발견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쉽지만 구약에서는 어렵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구약에도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과 예언이 차고도 넘칩니다.
그 중에 성막을 통하여 보여주신 숨겨진 비밀과 그분이 주시는 은혜에 대해 살피어 보려고 합니다.

법궤의 중요성은 성막에 관하여 제일 먼저 법궤로 부터 시작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서열상 맨 앞에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법궤 없이는 성막에서 섬기는 모든 일이 무의미 하며 또한 무가치 합니다.
법궤가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상징 되었던 것은 그의 언약의축복이 법궤 안에 안치되었기 때문 입니다.
법궤는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인격을 상징 합니다.

모든 기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나 또는 그 결과를 나타내고 있으나 법궤 만은 그의 인격을 나타내고 있으니 모든 성막기구 중에 맨 앞서 설명 되어진 것입니다.

법궤의 이름은 일곱 가지로 놀랍게도 각기 다양한 권위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첫째, 증거궤(출애굽기 25:22)

두 돌판 십계명이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

둘째, 언약궤(민수기 10:33)

하나님께서 돌 판을 통해 언약을 분명히 하기 때문이고 여호와의 궤인데(수 3:15) 이스라엘이 요단을 마른 땅으로 건넜고 여리고 성을 함락 시킨 것도 법궤를 메고 갔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궤(삼상 3:3) 거룩한 궤 (대하 35:3) 주의 권능의 궤(시 132:8) 등으로 소개 되고 있습니다.

법궤에 그 테를 두른 것은 언약궤의 귀중성을 보여 주신 것이고 채를 모서리에 달았으니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이며 넷은 (동, 서, 남 북) 세상의 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우주 성을 의미 합니다.
실로 하나님의 사랑은 인종과 피부를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하는 온 우주에 편만 하십니다.

또한 이것은 이동하기에 용이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f를 통과하여 가나안을 정복한 이후 성전이 완성 될 때 까지는 불가피 하게 언약궤를 메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성막의 널판을 금으로 싸서 받침대 위에 세우게 하셨고 널판을 완전히 고정시키기 위하여 긴 나무 막대기 다섯개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성막의 모든 널판들이 다섯 개의 긴 띠로 하나로 묶여 지듯이 구원받은 성도들도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엡 4:4)

널판을 하나가 되게 묶어주는 띠는(출 36:33) 그리스도 인들의 가슴과 가슴 이어 지는 성령의 상징 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고(시 133:1)
협력하여 선을 이 룸을 말하는 것입니다(롬 8:28)
한분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고후 4:13)
주 예수님 안에서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한 성령을 받아 한 몸이 되었기에(고후 12:13)
모든 뜻이 하나가 되어 주님의 집 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법궤와 삼위일체 하나님

법궤 속에는 십계명 돌판 두개와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습니다(히 9:4).
법궤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이 세가지 물품은 삼위 일체가 되신 하나님을 상징 합니다.
십계명 돌판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 만나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 온 산 떡이라고 하신(요 6:51) 성자 하나님을 싹난 지팡이는 죽은 생명을 부활시키는 성령 하나님을 상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성물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시고 내려 주시고 또 역사하신 것들입니다.
이 법궤는 지성소에 안치되어 있었으니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곳으로서 성막 안에 있었고 이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난다고(25:22) 하십니다.
하나님과 만남이 가능한 것은 속죄소에 뿌려진 대속의 피로 말미암음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고안해낸 방법이요 전적인 하나님께서 설계 하신 것입니다.
율법아래 있게 되면 모두가 죄 아래 있게 되고 ”심판 아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아래 있으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게 되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가능해 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전에 이를 모형을 통해서 보여 주시려고 성소를 짓되 내가 네게 보인 식량대로 지으라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속죄소와 십자가

법궤에서 십자가의 대속을 상징하는 곳은 법궤의 뚜껑인 속죄소입니다.
이 속죄소에는 정금으로 그룹 둘을 만들어 속죄소 양끝에 두어 서로 얼굴을 대하고 날개 를 펴고서 그 날개들로 속죄소를 덮었습니다. 두 그룹의 날개가 속죄소를 덮은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속량함 (덮는다) 함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속죄소 에서 대 제사장 아론을 만나 그의 속죄를 위해 피 뿌림을 통하여 죄 사하여 주셨습니다.

이 속죄소는 율법과 은혜가 만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의하여 정죄된 인간이 이 속죄소 에서 은혜를 입어 죄 사함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의미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의미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25-26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찌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법궤가 성소 안에 있는 기구들 가운데 가장 신성하고 거룩한 것은 그 성소가 법궤를 두는집으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구주 입니다.

출애굽기에는 성막의 교회는 주님의 거하시는 집이기 때문에 분명히 육과 영의 구별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로 하나가 되지만 진리가 아닌 것은 과감하게 분리해 야 합니다.
바로 교회 안에서 누룩을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브사렐이 궤를 만든 장면이 나옵니다.
그 궤는 정금으로 안팍을 쌓으며 위로 돌아가면서 금으로 쌓았습니다.

금으로 쌓았다는 것은 성령의 기름 부음을 상징하고(마 3:16) 금테를 둘렀다는 것 은 예수님께서 왕 중의 왕이심을(계 19:16)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쓰신 면류관은 생의 고난과 죽기까지 낮아지는 순종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찬 가지로 율법에 의해 먼저 정죄 당하고 죽어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자 이십니다.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래서 세상 죄를 담당 하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죄를 상징하는 율법 돌판을 덮는 속죄소를 만든 것입니다.
속죄소는 법궤의 뚜껑인데 전 체가 정금이며 망치로 쳐서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쳐서 만들었다는 것은 골고다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두 말 할 것 없이 예 수님께서 우리대신 골고다에서 모진 고난의 채찍을 맞으시고 피 흘리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빌립보서 4:21-2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집 사람 중 몇이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찌어다.


그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이사 집 사람이 같은 식구가 되었다고 햇습니다.
가이사집의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당시는 네로 치하 이였습니다.
폭군이 다스리는 폭압정치의 시대에도 복음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어둠이 짙을 수록 빛을 찾는 무리들이 더 많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 이십니다.
그의 은혜는 처음이며 마지막 이십니다.
그 분이 시작과 끝이 되어야 하는 것은 그가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자 이십니다 그러면 그 구원자를 맞이할 자는 누구입니까? 우리의 삶이 주 예수 그리스도 은혜여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시며 도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분이 우리의 소망 이시기 때문입니다.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 한다는 놀라운 소망은 우리에게 있는 가능성이 아니라 그의 은혜뿐입니다.

시작도 은혜요 끝맺음도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시다.
성막 에 숨겨진 그리스도를 더욱 발견하고 그 분이 주시는 은혜 안에서 복된 삶을 누리는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은좌(施恩座)
속죄소(贖罪所)

궤(언약궤, 법궤, 증거궤) 안에는 두 돌판(율법판, 증거판) 외에도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모세의 지팡이도 들어있었다고 합니다(히브리서 9: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두 돌판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열왕기상 8:9에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맺으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고 했습니다.

역대하 5:10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언약궤 안에 모세 때는 세 종류의 물건이 들어있었는데 두 종류는 분실되고 솔로몬왕 때에는 한하나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학자들 가운데는 사울왕 때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블레셋 빼앗겼는데(삼상 4:11,17) 그 때 두 종류는 분실하고 하나만 남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설득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블레셋에 빼앗겼을 때 하나님은 언약궤를 스스로 지켰습니다.
언약궤가 이동되는 곳마다 재앙을 내려서 유다로 돌아오게 했고 유다의 벧세메스 사람들은 그 언약궤 뚜껑을 열어보았다가 70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삼상 5:1-8, 6:19).
그런 분위기를 보면 하나님이 블레셋에서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이난 지팡이를 잃어버리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언약궤 안에는 두 돌비 즉 율법판만 들어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분명히 돌비는 하나님이 언약궤 안에 넣으라고 하셨고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언약궤 안에 넣었습니다.

출애굽기 40:20
그는 또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신명기 10:5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처음부터 언약궤 안에 두라고 하지 않고 앞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16:33-34
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민수기17:10-11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모세가 곧 그 같이 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히브리서는 왜 세 종류가 있었다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히브리서의 목적에서 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의 목적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데 있지 않고 구약의 율법과 제도와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이라는 구속사적 해석을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약궤와 관련하여 하나님이 보관하게 했던 물건들이 무엇이었는지에 주목하게 하고 그것들이 무엇을 예표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의 의도로 보면 그것들이 언약궤 안에 있었는지 밖에 있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세 종류의 물건들이 언약궤와 관련되어 무엇을 예표하고 있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들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바, 예수 그리스도의 직분(왕, 제사장, 선지자)과 관련된 표호들입니다.


마태복음 22:34-40
34. 예수
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
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로마서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요한복음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세례(洗禮) 마태복음 3:11 오순절 사건은 일회적 사건인가?

   파트리스교회 수요 성서 연구 #. 1 물세례와 불세례(2020-06-10)

세례(洗禮) 마태복음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

구약의 마지막 책은 “말라기”입니다.
신약의 첫 번째 책은 “마태복음”입니다.
구약 ‘말라기’와 신약 ‘마태복음’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구약 말라기와 신약 마태복음
사이는 “대략 400년” 이란 긴 세월이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가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날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시대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구약 말라기와 신약 마태복음의 400년의 기간을 “암흑의 시기” 또는 “침묵의 시기” 라고 합니다.
‘암흑의 시기’ 또는 ‘침묵의 시기’를 “신구약 중간 시대”라고도 합니다.

기독교 이외에 가톨릭교회와 유대교에서는 신구약 중간 시대에도 하나님은 말씀하셨다는 것을 강조하여 “외경”이란 말씀을 인정하고 사용합니다.

오래 동안 기다리던 메시아가 나타날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던 때에 어느 날 광야에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 거주하는 낯선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라고 외쳤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광야로 나와 요한의 외치는 소리를 들을 때 바로 이 사람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요한은 나는 너희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아니라 다만 물로 세례를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실 그 분은 너희들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며 실망하던 유대인들에게 메시아 신앙을 깨우쳤습니다. 요한의 외침을 듣고 많은 유대인들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서 세 종류의 세례를 생각합니다.

첫째는 물세례(Water Baptism) ; 회개와 구원을 위한 세례
둘째는 성령세례(Holy Spirit Baptism) ; 구원의 확신과 보증을 위한 세례
셋째는 불세례(Fire Baptism) ; 심판을 위한 알곡과 죽정이를 구분하는 세례(불심판)

그런데 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던 것은 분명하게 성경에 소개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하셨던 말씀은 어느 누구도 예수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셨을까요?

세 종류의 세례를 베푸셨던 수여자(授與者)를 살펴봅시다.

첫째는 물세례(Water Baptism)는 누가 베풀었을까요?

예수님 당시에는 세례자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마태복음 3:5∼6,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그러나 오늘날은 교회에서 목사가 세례를 베풉니다.
주 예수를 믿는 (아무개)에게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둘째는 성령세례(Holy Spirit Baptism)는 누가 베풀었을까요?

성령째는 성령세례(Holy Spirit Baptism)는 누가 베풀었을까요?세례는 요한의 증거대로 분명히 예수님께서 베푸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언제 성령세례를 베푸셨으며 예수님께서 성령세례를 베푸셨다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성령세례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사람들에게 보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성령을 “보혜사(保惠師)” 라고 합니다.

“보혜사(保惠師)”란 무엇인가?
- 지킬 보(保), 은혜 혜(惠), 스승 사(師)
보혜사란 “지켜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가르치시는 선생님” 이란 뜻입니다.

보혜사를 영어 성경에서 찾아보면 NIV에서는 “상담자(the Counselor)”, KJV에서는 “위로자(the Comforter)”, NASB에서는 “돕는자(the Helper)” 라고 합니다.

보혜사를 헬라어 성경에서는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paraklétos)” 라고 합니다.

1. 옹호자(an advocate), 중보자(intercessor),
2. 위로자(a consoler), 위로자(a comforter), 돕는자(helper),
3. 변호사(Paraclete)

예수님께서 언제 누구에게 성령세례를 베푸셨습니까?

사도행전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날 성령 강림 사건은 예수님께서 성령세례를 베푸셨던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때 불세례도 함께 베푸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자세히 관찰하면 성령과 불이라는 용어가 마태복음 3장과 누가복음 3장에서는 사용하였으나 마가복음 1장과 요한복음 1장에서는 성령이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라고 모든 복음서에서 말씀하셨다면 불세례도 오순절 날 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하셨을까요? 그러므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바르게 읽어야 합니다.

셋째는 불세례(Fire Baptism)는 누가 베푸셨을까요?

세례자 요한에 의하면 성령세례와 불세례는 예수님께서 베푸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성경을 폭 넓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과 불세례에 대한 말씀을 마태복음 3장과 누가복음 3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세례만을 말씀합니다.

이제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2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불세례”는 불로 심판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마가복음 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9절,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리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누가복음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7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요한복음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34절,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참조 / 성령세례(사도행전 1:5, 11:16, 고린도전서 12:3)

“성령세례와 불세례”에 대해서 언급한 성경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이외 성경에서는 오직 “성령세례”만을 말씀합니다.

이와 같은 성경의 증거에서 성령세례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것이 분명하게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세례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불의 혀 같이 갈라진다는 것은 불이 다양하게 갈라져서 오순절 날 한 자리에 모여 있었던 다양한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재 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불세례는 누가 베푸셨을까요?
사도행전 2:1∼3,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 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오순절 날 성령의 임재가 나타났을 때 마치 성령은 강한 바람 소리로 들렸습니다.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바람이 아닙니다. 성령은 불이 아닙니다. 다만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은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령세례와 불세례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헬라어 성경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βαπτίσει 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καὶ πυρί)
- will baptize with the Spirit Holy and fire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많은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장차 오실 그 분께서는 “성령(프뉴마)과 불(푸르)”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외쳤던 요한의 증언은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그 분이 그토록 기대하던 “메시아”라고 기다렸으나 예수께서 세례를 베풀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으며 사십일 후에는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사도행전 1:3).

이렇게 번역된 데는 헬라어 접속사 “카이(καὶ)”의 뜻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데 “카이”는 “등위 접속사”로서 “그리고(and)” 라고 하여 앞의 것과 뒤의 것을 동등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성령과 불”이라고 할 때 성령과 불을 동등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제까지 성령과 불을 이렇게 등위 접속사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나 등위 접속사가 아니라 우위 접속사로 해석하면 전혀 그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만 성령과 불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세례는 특별한 용법으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위 접속사”인 “또는(or)”의 뜻으로도 사용된다. 여기서는 바로 우위 접속사로 사용된 것이다. 따라서 '성령과 불로'로 번역된 “엔 프뉴마티 하기오 카이 퓌리(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καὶ πυρί)”는 “성령 또는 불안에서” 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 본문의 문맥과 사(四)복음서를 비교하여 연구해보면 더욱 확실히 증명된다. 먼저 우리는 “성령과 불로”라는 말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오고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성령과 불로”가 아닌 “성령으로” 라고만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또한 사도행전 1:5에서도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여 불에 대한 언급 없이 “성령으로” 라고만 되어 있으며 사도행전 11:16과 고린도전서 12:13에서도 역시 “성령으로”라고말씀합니다.

이와 같은 여러 성구들을 참조할 때 주님이 신자들에게 주시는 세례는 오직 “성령으로”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불”의 의미는 별도의 뜻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 라는 것은 “성령 안에 잠기운다”라는 뜻으로 여기서 보더라도 “침례” 라는 말이 의미를 더 잘 통하게 한다. 만일 “세례”라고 하면 “성령으로 씻긴다”는 말이 되므로 오히려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성령은 영으로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요 14:18∼19)이므로 '성령 안에서 침례'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상징하되 '생명의 연합'을 뜻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 함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성령 안에서 침례'는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행 2:38, 행 19:2)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되는 것(고전 3:16-17)'과도 같은 말이 되는데 결국 우리와 주님과의 상호내주(Inter-Residence)를 뜻한다.

한편 요 4:24의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에서 '신령으로'라는 말은 “엔 프뉴마”로서 원 뜻은 “성령 안에서”라는 뜻이다. 이 말씀의 의미 역시 '성령을 받음'으로 '주님을 모시는 것'이 되며 이는 곧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께 예배를 드려야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는 아무리 열심히 예배드려도 소용없다는 것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예배드리는 자가 먼저 주님과 하나가 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상으로 볼 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요 3:5)'고 할 때 '물'과 '성령'의 의미가 모두 해석되는 것이다. 즉 '물'은 죄를 씻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물 안에 잠김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의 연합'을 상징하는 뜻이며 '성령'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성령 안에 잠긴다는 뜻은 '그리스도와 생명의 연합'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죽었다가 살아나는 원리가 포함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불로 세(침)례를 주신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볼 차례가 되었다. '불로 세례를 주신다'라는 말씀은 직역하면 '불 속에서 세례를 주신다'는 말로서 신자와는 전혀 관계없고 불신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다. 즉 불신자는 성령 안에 잠기게 하는 대신에 '불 속에 잠기게 한다'라는 의미로서 결국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제 세례에 대한 용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세례(밥티조)란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물속에 들어갔다는 것은 완전히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물 위로 다시 올라올 때는 과거의 나 즉 옛 사람은 죽었고 이제부터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물세례는 회개와 구원의 표시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회개와 구원의 표를 받았지만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살면서 때로는 알게 모르게 죄를 짓게 됩니다. 이렇게 죄를 짓게 될 때 사탄은 정말 네가 구원을 받았느냐?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아직도 그렇게 살아가느냐? 하며 조롱하고 비난할 때 정말 내가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는가? 하고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성령세례가 구원을 보증합니다.

고린도후서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히브리서 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성령세례가 보증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로마서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불세례는 심판 즉 소멸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명기 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히브리서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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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자료

주제 ; 세례
- 세례(씻을 세, 예도 예)와 침례(잠길 침, 예도 예)
- 밥티조(물속에 잠기다)

성경 ; 마태복음 3:11

종류 ;

 1. 물세례(회개와 구원) 베드로전서 3:21

 2. 성령세례(생명의 보증) 보혜사(요한복음 15:26)
 - 로마서 8:2, 요한복음 6:63, 고린도후서 1:22, 5:5, 히브리서 12:29

 3. 불세례(심판, 알곡과 죽정이)
- 신명기 4:24, 히브리서 12:29
- 마태복음 3:12, 누가복음 3:17

*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
- 전치사 "과"(카이)
 등위접속사로 해석할 때는 성령과 불을 같은 것으로 이해
 우위접속사로 해석할 때는 성령과 불은 서로 다른 것으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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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2022(금)
성령세례

"오순절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다"

이와 같은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왜냐하면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신다.
이 속성은 한 마디로 "영원성(永遠性)"이다.
영원이란 어느 시대에는 나타나고 어느 시대에는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사건은 지금도 앞으로도 마지막 그 날까지 지속될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이름

"아니 엘 샤다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시며 그 영은 지금도 계속적으로 역사하는 영이다.

셋째, 바울의 증거


고린도전서 2:9-10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바울의 성령은 통찰하는 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영은 구약에서 이미 말씀하신 것을 통하여 계속된다.

신명기 29: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신명기 30:6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레위기 18:5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로마서 11: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구약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다.
그런데 그 율법을 그의 백성들이 지킬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그의 백성들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강조하였다.

로마서 2:28-29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조선족


중국에서는 ‘조선족’이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중국 동포’라고 부른다.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다. 중국 동포는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49년 이전은 다시 1910년(경술국치)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1910년 이전에는 수해와 가뭄 등 자연재해로 인한 조선인의 만주 이주가 아주 활발히 이루어졌다. 당시 청나라는 봉금령을 폐지하고, 만주 일대를 전문 개간 구역으로 지정했다. 황무지를 개간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조선인이 건너가 특유의 근면성으로 황무지를 개간해 농사를 지었다. 농작물을 추수할 때가 되면 청나라 관리들이 와서 약탈을 했다. 부패한 관리들을 관청에 신고하고 투쟁하며 자신의 권리를 찾는 과정이 중국 기록에도 남아 있다.
만주, 특히 간도 지방은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지역이었다. 국경 개념도 애매해 당시에는 자유롭게 오가던 곳이었다.
1905년에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 전초 단계가 됐다.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애국자들이 만주로 급격하게 이주했고, 만주는 항일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됐다.
당시 청나라는 서방 외세의 침략과 일본의 침략을 동시에 받고 있었다. 외국인 선교사는 만주 일대에서 자유롭게 선교 활동을 했다. 만주에 살던 우리 민족도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됐다. 1907년 간도의 용정촌에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명동학교가 설립되는 등 종교와 교육 기관 등이 생겨났다.
청나라는 쇠퇴해 결국 멸망했고, 1912년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수립됐다. 1945년 우리나라는 해방됐고, 이어서 남과 북으로 분단됐다. 남한에는 자유민주주의, 북한에는 공산주의가 들어왔다.
중국은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1952년에는 연변 조선족 자치구를 인정했다. 1954년에 조선족은 소수 민족으로 인정됐고, 중국 국민으로 정식 등록됐다.
그 전만 해도 조선족은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를 자유롭게 왕래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우리 민족이었다. 생활 터전은 만주땅이었지만, 만주와 한반도는 언제든지 오갈 수 있었다.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역사적 상황 때문에 중국 동포가 된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냉전 시대에 한국과 중국은 외교 관계가 없었다. 조선족은 북한하고만 왕래하며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해야했다. 한국에는 올 수가 없었다. 1992년 한중 수교가 되고 나서야, 중국 동포가 일자리를 찾아서 한국으로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3개월짜리 비자만 허용해 불법 체류자가 대다수였다. 2007년 방문 취업제도를 시행해 비로소 합법적인 한국 입국과 취업이 가능해졌다.


백향목(柏香木, cedar) 송백나무


백향목(柏香木, cedar) 송백나무

백향목의 3대 특징

1. 고산식물
해발 2,000m 지역에서 곧게 성장한다.

2. 상향성 열매
대부분의 식물의 열매는 아래로 형하여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백향목의 열매는 하늘을 향하여 열린다.
하늘을 바라본다(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듯한 모습).

3. 지향성 뿌리
뿌리만 자라는데 30년이 걸린다.
뿌리가 자리를 잡은 후에 위로 성장한다고 한다.


[성경의 식물] 백향목(柏香木, cedar) 송백나무

1. 용어

히브리어로 ‘에레즈’이며, 학명은 ‘Cedrus libani Loudon’이다. 레바논 삼나무를 말한다. 침엽수속(屬)의 소나뭇과(科)로서 키가 40m까지 자라는 거대한 상록교목(常綠喬木)이다. 주로 기온이 낮은 고산지대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의 소나무와 모양이 약간 다르다. 열매는 잣나무와 히말리야시다를 섞어 놓은 듯한 모양이다. 모양이 우람하고 수령(樹齡)이 2,000~3,000년이나 된 것들도 있어서 ‘수목(樹木)의 왕’으로도 불린다. 뿌리는 지상의 높이만큼 깊이 들어가 결코 뽑히지 않는 나무이다. 최대40m까지 자라는 거대한 수목 중 하나이다. 수지(樹脂)는 향이 좋아 상쾌함을 주며, 방부제와 방충제로 사용된다. 고대 로마나 이집트에서는 수지(송진)책이나 집 주변에 발라 벌레를 쫓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솔잎은 떡을 만들 때나 약재로도 사용한다. 잣과 비슷한 열매는 10-15cm나 되며 완전히 자라나는데 3년 정도가 걸린다.

성경에 기록된 나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나무 가운데 하나이며,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데 사용했다. 주로 건축용으로 사용된다. 백향목은 일반 소나무에 비해 재질이 단단하고 물에 강하다. 가구나 집을 짓는데 최고의 목재였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백향목이 수분에 강하다는 것을 알고 배판을 만드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큰 목재인 덕에 거대한 갤리선(galley)을 만들어 해상무역을 주도했다.

레바논은 국기에는 백향목이 있을 만큼 국가에서 중요하게 여긴다. 백향목은 레바논 근방에서 자란 나무들이 가장 질이 좋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레바논 백향목을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다. 이집트, 앗수르, 바벨론, 로마까지도 레바논 백향목의 사랑을 그치지 않았다. 앗수르와 에베소의 경우는 신전의 중요한 부분을 레바논 백향목을 사용했다.

성경에 기록된 나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나무 가운데 하나이며,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데 사용했다. 주로 건축용으로 사용된다. 백향목은 일반 소나무에 비해 재질이 단단하고 물에 강하다. 가구나 집을 짓는데 최고의 목재였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백향목이 수분에 강하다는 것을 알고 배판을 만드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큰 목재인 덕에 거대한 갤리선(galley)을 만들어 해상무역을 주도했다. 

 

페니키아 갤리선

 

2. 성경 속의 백향목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수입해 사용했다. 두로왕 히람에게 부탁하여 백향목을 수입하고 목수를 데려와 성전과 궁전을 짓는 데 사용했다.(왕상 7:2) 거대한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하고 무거운 나무를 어떻게 옮겼는지 미스터리다. 산에서 벌목하여 레바논에서 뗏목처럼 만들어 욥바항으로 가져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할 때도 레바논 백향목을 사용했다.(스 3:7)

 

레바논의 백향목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백향목은 우람한 모양과 쓸모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과 부를 상징한다. 성경에서 백향목과 관련된 다양한 상징들이다.


ㄱ. 힘찬 기상과 아름다움

아1:16-17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

렘 22:14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ㄴ. 장엄함

열왕기상 4:33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ㄷ. 힘과 위엄

ㄹ. 영화로움

ㅁ. 강대국과 권세

ㅂ. 이스라엘의 번영

ㅅ. 의인의 영원한 성장과 번성

ㅇ. 교만과 사치로 표현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