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주일


묵상 자료 / 12-06-2021(월) 
* 자료출처 - 사사기, 오늘의 묵상(2021 4/4분기

어긋난 모정(母情)  시스라의 어머니
사사기 5:28-31


28. 시스라
의 어미가 창문으로 바라보며 살창에서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고 그의 병거 바퀴가 어찌하여 더디 구는고 하매
29. 그 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그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30.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 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놓은 채색옷이리로다 곧 양편에 수놓은 채색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31.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시스라(Sisera)
뜻 : 전장을 배열함

하솔 왕 야빈의 군대장관(삿 4:2). 드보라와 바락의 군사에게 패하여 달아나다가 야엘에게 암살되었다(삿 4:12-24). 그러나 다른 곳에는 시스라 자신이 독립한 왕인것 처럼 되어 있다(삿 5: 28, 30, 삼상 12:9).

* 시스라는 굽어진 모정을 교훈합니다.
내 아들이 소중하면 다른 자식들도 소중한 자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Grhard Tersteegen
게르하르트 터스티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은혜로운 임재를
우리 안에 새롭게 일깨워 주십시오
그리하여 인생의 순례 길을 가는 동안
우리 안에 평화와 진실함과 용기가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당신을 굳세게 붙들게 하시고
당신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과 연합된 우리의 마음이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하는 무슨 일에든지
항상 이어지게 해주십시오

우리에게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마음 속에서 들리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시고
당신께서 주시는 경고를 묵살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보십시오.
우리의 가난한 마음을
당신께 제물로 드립니다.
오서서 당신의 지성소를 채워 주시고
그곳에 더러운 것이 들어가지 못하게 지켜 주십시오

오 사랑의 주님,
당신의 거룩한 영이 우리의 모든 영혼 속에 강같이 흐르게 하시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까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아멘.




어머니의 기도

이해인(1945-)


낡은 기도서와
가족들의 빛 바랜 사진
타다 남은 초가 있는
어머니의 방에 오면

철없던 시절의
내 목소리 그대로 살아 있고
동생과 소꿉놀이하며 키웠던
석류빛 꿈도 그대로 살아 있네

어둡고 고달픈 세월에도
항상 희망을 기웠던
어머니의 조각보와
사랑을 틀질했던
어머니의 손재봉틀을 만져보며

이제 다시
보석으로 주워담는
어머니의 눈물
그 눈물의 세월이

나에겐 웃음으로 열매 맺었음을
늦게야 깨닫고 슬퍼하는
어머니의 빈방에서
이젠 나도 어머니로 태어나려네



어머니의 기도

이 땅에는
오늘도
기도하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자식을 위해
눈물로 기도 드리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오늘만이 아니라
영원까지 계속될
간절한 기도입니다.

(지산 고종만·시인, 전남 구례 출생)


어머니의 기도

캐리 마이어스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묻는 말에 일일이 친절하게
대답해 주도록 도와주소서.
면박을 주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소서.

아이들이 우리를 공손히
대해 주기를 바라는 것같이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꼈을 때
아이들에게 잘못을 말하고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아이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비웃거나 창피를 주거나
놀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비열함을 없애 주시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어머니의 기도

너에게 내 몸을 굽힌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야, 어쩌면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니? 이 작은 것아.
너는 많은 사람과 비슷하지만,
그러나 나는 분명히 믿는다.
너를 쳐다보지 않고 네 목소리만 듣고도
수천의 사람 가운데서 너를 알아볼 수 있고,
귀 기울이지 않아도 나의 젖가슴을 빠는
너의 입술을 알 수 있음을.
이 지상에서 너는 나의 유일한 존재니까...

나는 말 없이도 너를 이해하고,
큰소리 없어도
너는 깊은 잠에서 나를 깨운단다.
단지 하나의 눈빛과 하나의 소망으로.

나의 아이야, 너는 나의 인생에 진실하고도 유일한 진리란다.
너는 나에게 슬픈 기억이며, 다정한 그리움이며,
희망이요, 확신이란다.

아이야 행복하거라.
(야누쉬 코르착·폴란드 고아들의 아버지)


+ 어머니의 기도

어머니라는 특권에 대해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 사랑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은총에 대해.
그들에게 당신에게서 받은 생명을 나누고
그들을 돌보아서 성장시키고
옳은 길을 걷도록 교육시키며
그들에 대한
당신 사랑의 소중한 도구가 되는
이 황송한 은총에 대해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이 제게 두신 신뢰,
이 세상의 모든 보석보다 더 소중한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도록
제가 맡겨놓으신 당신의 신뢰에 대해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가족들에 대해
그리고 사랑으로 우리를 지원하는 모든 이에 대해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매일, 우리가 받는 헤아릴 수 없는 선물들에 대해
특별히, 사랑하고 용서하며
서로를 돌볼 수 있는 힘을 주심에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소홀했던 시간들에 대해
당신께 용서를 청합니다
저의 약함과 배은망덕과 죄들을 용서하십시오.

당신은 결코 저를 눈밖에 두지 않으신다는 것,
당신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부드러우심으로
저의 사랑하는 아이들을 살피신다는 것을
늘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당신이 저의 창조주이시기에
제가 바로 저 자신인 모든 것
제가 사랑하는 모두가 당신의 선물입니다.
당신은 저의 아버지이시고
저의 구세주이시며, 저의 친구이십니다
그러기에
당신 사랑이 결코 저를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께 저의 신뢰를 둡니다
당신으로부터 저의 아이들을 받았사오니
당신께 그들과 그들의 미래를 맡겨드립니다.

당신 손의 보호 아래
저희를 지켜 주십시오.

더 이상 눈물이 없고
더 이상 분열도
악의 그림자도 없는
행복한 본향에 이를 때까지
저희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커다란 사랑으로
당신이 마련하신 영원한 집에 이를 때까지.
(조만나스·신부)


+ 엄마인 자신을 주님께 바치는 기도

주님, 제 아이들에게
현명하고 선량한 어미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이들이 힘들고 지칠 때 제게 돌아와
쉴 수 있도록 늘 평화를 유지하게 해주시고
아이들이 분별력 없이 행동하거나
삶을 불성실하게 살아갈 때
엄격한 질책으로 바로잡을 수 있도록
강인함을 주소서

저는 실행하지도 않는 것들을
말로만 가르치지 않게 해주시고
제가 원하고 이루기를 바라는 바를 밀어붙여
아이들의 꿈을 짓밟지 않게 해주소서.

가족들에게는 평온함과 따뜻한 애정,
분별 있는 행동으로 울타리가 되게 하시고
이웃들에게는 나눌 수 있고
용서를 청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이 되게 해주소서.

주님, 제 가족만 감싸며 친지들의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고 그들의 기쁨을 질투하지 않으며
우주와 세상을 껴안을 수 있는
품 넓은 어미가 되게 해주소서.
(미리암. H.·미국 생태 영성가이며 동화작가)


+ 어머니의 기도

천상에 계신 이여 나의 기도 들어주소서
그 사람을 사랑하니 그이를 내게 주소서
이 내 마음 진실하니 이 내 사랑 믿으소서
그이의 불행한 모든 허물을
목숨 다 바쳐 사랑하리니
도와주소서. 아직은 어둠 속에 울고 있나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굽어보소서
내 가슴엔 그 사람의 이름만 가득합니다.
사랑으로 생긴 슬픔 내 것으로 받으리니
사랑을 맹세한 내 입술로는
세상 누구도 허물지 않으리
간청하오니 소중한 인연으로 살게 하옵소서.
(작자 미상)


+ 어머니의 기도

어머니는 칠순이 가깝도록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양잿물로 박박박 문질러
반짝반짝 빛나는 놋그릇에 찰랑찰랑 맑은 물을 담아
장독대에 두고, 달 신에게, 산 신에게, 물 신에게
집 신에게 두 손이 닳도록 빌고 또 빌었습니다.

아버지 병고로 거동 못하실 때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빌고 또 빌었는데
아버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떠나가셨습니다.

자식들이 말썽을 부릴 때도 기도를......
자식들이 돌아왔을 때도 기도를......
자식들이 하나, 둘 품을 떠날 때도 기도를......
아들이 수도원에 간다고 고집을 부릴 때도 눈물의 기도를
정화수에 담아 빌고 또 빌었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당신의 생신도 잊고
지내는 수도원 아들 뭐가 그리 예쁜지, 아들 잘 살라고
예수님만 뺀 당신이 좋아하는
모든 신들에게 여전히 빌고 또 빌더니,

아들 종신서원 후, 보이지 않게 이끌어주신 분의
손길에 이끌려 세례를 받고...
일년에 한두 번 아들이 당신을 찾아올 때면,
잠든 아들 머리맡에 앉아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이름만 부르며 기도를 합니다

어머니, 당신의 그 기도 덕분에 제가 자랐고,
어머니, 그 기도 덕분에 예수님을 나의 신부요,
신랑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당신 품안에서 먹던 젖처럼
제 푸근한 양식입니다.

그때에도, 또 지금도 한결같이......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봉하 디모테오·수사)






어머니

 이 해 인


당신의 이름에선
색색의 웃음 칠한
시골집 안마당의
분꽃 향기가 난다

안으로주름진 한숨의 세월에도
바다가 넘실대는
남빛 치마폭 사랑

남루한 옷을 겇친
나의 오늘이
그 안에 누워 있다

기워 주신 꽃골무 속에
소복히 담겨 있는
幼年의 추억

당신의 가리마같이
한 갈래로 난 길을
똑바로 걸어가면

나의 연두 갑사 저고리에
끝동을 다는
다사로운 손길

까만 씨알 품은
어머니의 향기가
바람에 흩어진다.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디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바보 천사

- 김원석(아동문학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좋아도
안 좋은 척

맛있어도
맛없는 척

엄마는
엄마는
그렇게
키웠다.


히말라야의 노새
- 박경리(소설가, 1926-2008)


히말라야에서
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
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박범신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아아
저게 바로 토종이구나




어머니
- 한하운(1920-1975)

어머니
나를 낳으실 때
배가 아파서 울으셨다

어머니
나를 낳으신 뒤
아들 뒀다고 기뻐하셨다

어머니
병들어 죽으실 때
날 두고 가는 길을 슬퍼하셨다.

어머니
흙으로 돌아가선
말이 없는 어머니.


 밥
- 이무원(1942-)

어머니 누워 계신 봉분(封墳)
고봉밥 같다

꽁보리밥
풋나물죽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데
늘 남아도는 밥이 있었다

더 먹어라
많이 먹어라
나는 배 안 고프다
남아돌던
어머니의 밥

저승에 가셔도 배곯으셨나
옆구리가 약간 기울었다

어머니
- 정한모(1923-1991)

어머니
지금은 피골만이신
당신의 젖가슴
그러나 내가 물고 자란 젖꼭지만은
지금도 생명의 샘꼭지처럼
소담하고 눈부십니다.

어머니
내 한 뼘 손바닥 안에도 모자라는
당신의 앞가슴
그러나 나의 손자들의 가슴 모두 합쳐도
넓고 깊으신 당신의 가슴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머니
새다리같이 뼈만이신
당신의 두 다리
그러나 팔십 년 긴 역정(歷程)
강철의 다리로 걸어오시고
아직도 우리집 기둥으로 튼튼히 서 계십니다.
어머니!


어머니
- 조태일(1941-1999)

어머니

열일곱에 시집오셔
일곱 자식 뿌리시고
서른일곱에
남편 손수 흙에 묻으신 뒤,

스무 해 동안을
보따리 머리에 이시고
이남 땅 온 고을을
당신 손금인 양 뚝심으로 누비시고
훤히 익히시더니,

육십 고개 넘기시고도
일곱 자식 어찌 사나
옛 솜씨 아슬아슬 밝히시며
흩어진 자식 찾아
방방곡곡을 누비시는 분.

에미도 모르는 소리 끄적여서
어디다 쓰느냐 돈 나온다더냐
시 쓰는 것 겨우 겨우 꾸짖으시고,

돌아앉아 침침한 눈 비비시며
주름진 맨손바닥으로
손주놈의 코를 행행 훔쳐주시는 분.

(조태일·시인, 1941-1999)


+ 어머니, 나의 어머니

내가 내 자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나직이 불러본다 어머니
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
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
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
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
동트는 아침마다 불러본다 어머니
아카시아 꽃잎 같은 어머니
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
종말처럼 개벽처럼 손잡는 어머니

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
황토 벌판 향해 불러본다 어머니
이 세계의 불행을 덮치시는 어머니
만고 만건곤 강물인 어머니
오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
(고정희·시인, 1948-1991)  


+ 어머니  

그럭저럭 견딜 만한
인생살이 같다가도

세상살이가 힘겨워
문득 쓸쓸한 마음이 들 때

나지막이 불러보는
세 글자





당신의 그 여린 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지어낸

이 몸
이 소중한 생명이기에

꽃잎 지듯
쉽게 무너질 수는 없어요
(정연복·시인, 1957-)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가 보고싶다 외할머니가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시인, 강원도 평창 출생)


+ 나에게 만일

나에게 만일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아버지를 만났기 때문이다

내게 부족한 게 있다면
그 아버지 만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이승신·시인)


+ 아비
    
밥 대신 소금을 넘기고 싶을 때가 있다
밥 먹을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스스로에게 다그치며
굵은 소금 한 숟갈
입 속에 털어넣고 싶을 때가 있다
쓴맛 좀 봐야 한다고
내가 나를 손보지 않으면 누가 손보냐고
찌그러진 빈 그릇같이
시퍼렇게 녹슬어 있는 달을 올려다보며
내가 나를 질책하는 소리,
내 속으로 쩌렁쩌렁 울린다
이승이 가혹한가,
소금을 꾸역꾸역 넘길지라도
그러나 아비는 울면 안 된다
(김충규·시인, 1965-)


+ 아버지의 등을 밀며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 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어쩔 줄 모르고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 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손택수·시인, 1970-)


+ 아버지의 안경

무심코 써 본 아버지의 돋보기
그 좋으시던 눈이
점점 나빠지더니
안경을 쓰게 되신 아버지,
렌즈 속으로
아버지의 주름살이 보인다.

아버지는
넓고 잔잔한 바다 같은 눈으로
자식의 얼굴을 바라보신다.

그 좋으시던 눈이 희미해지고
돋보기 안경을 쓰시던 날
얼마나 가슴 찡하셨을까.

돋보기 안경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아버지의 주름살이
자꾸만 자꾸만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이탄·시인, 1940-)


+ 아버지의 밥그릇  

언 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봉분 같은 아버지 밥그릇이 쓰러졌다
늦은 밤 발씻는 아버지 곁에서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를 보며
나는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고서야 이불은 걷히고
사각종이 약을 펴듯 담요의 귀를 폈다
계란부침 한 종지 환한 밥상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남겼고
우리들이 나눠먹은 그 쌀밥은 달았다
이제 아랫목이 없는 보일러방
홑이불 밑으로 발 밀어 넣으면
아버지, 그때 쓰러진 밥그릇으로
말없이 누워 계신다
(안효희·시인, 1958-)


+ 한 벌의 양복

한 벌의 그가 지나간다
그는 늘 지나가는 사람  
늘 죄송한 그가
늘 최소한의 그가  
목이 없는 한 벌의 양복이
허공에 꼬치 꿰인 듯
케이블카처럼 정확한 구간을 지키듯
신호등을 지나 빵집을 지나
장미연립을 지나
가끔 양복 속의 목을 꺼내    
카악- 가래를 뱉기도 하며
한 벌의 양복으로 지나간다
대주 연립 206호 앞에서 양복이 멈췄다
길게 초인종을 눌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양복이 열쇠를 비틀어 철문 한 짝을 떼어내자
철문 속에 안전하게 보관된 가족들이
TV를 켜놓고 웃고 있었다
가족들이 양복을 향해 엉덩이를 조금 떼더니
이내 TV 속으로 빠져들었다  
양복이 조용히 구두를 벗었다
한 벌의 그가 양복을 벗었다
모든 것을 걸어두고 나니
그저 그런 늙은 토르소에 지나지 않았다
한 벌도 아닌 양복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그가
어두운 식탁에서 최대한의 정적을 식사한다
(손순미·시인, 1964-)


+ 저녁식사 풍경

어금니 반쯤은 빠지고
남은 이도 흔들리기 때문에
좋아하는 총각김치를 와드득
깨물어 먹지 못하는 아버지
맛있는데 맛있는 건데
허탈하게 말하며, 그 총각무같이
씁쓸한 웃음을
흐흐흐 흐흐흐
며느리는 총각김치를 맛있게 먹다가
잠시 입맛을 잃었고
아버지는 왜 안 먹냐며
자꾸 권했다
맛있어, 먹어봐 먹어
흐흐흐 흐흐흐

우린 간신히 밥숟가락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음식의 氣만 빨아먹는 귀신같이
헛것을 먹고 있는 아버지의 웃음
어느새 그에게도 죽음의 힘이 스몄구나
오싹한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아무도 우겨넣은 밥을 넘기지 못했다
(윤의섭·시인, 1968-)


아버지와 숫돌
- 백영호(1955-)

아버지는 날마다
소먹이는 꼴을 베어내는
낫을 숫돌에 가셨다
아버지가 낫을 가실 때는
수도승처럼 보였다

울 아버지는
너무나 진지하고 엄숙하게
얼굴에 땀방울 쏟으시며
정성 다해 힘을 들여 낫을 가시는 것을
어째서 그리도 반복하시는 것일까

가끔은 빼먹어도 되고
며칠은 아니 갈아도 되실 텐데
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낫을 가셔서 푸른 날을 세우셨다

이제
저 멀리 북간도보다도 머나먼
피안의 세계에서 안식하시는 아버지
그리워 할 적마다
내 눈가에 숫돌이 보인다

숫돌은 스스로 자기 몸을 헐어서
낫의 푸른 날을 살렸고
아버지는 스스로 당신 몸을 갈아서
튼튼한 울타리를 치신 뒤

숫돌에 낫을 매일 가시듯
하루도 빠짐없이 자식들 향해
지금도 사랑스런 웃음 띄어 지켜보신다



아버지
- 이문조

아버지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힘들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아프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돈이 없어도 돈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돈이 많은 줄 알았습니다

이제
내가 아버지 되어보니
우람한 느티나무처럼
든든하고
크게만 보였던
아버지
그 아버지도

힘들 때가 있다는 것을
아플 때가 있다는 것을
돈 없을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장이니까
가족들이 힘들어할 까봐
가족들이 실망할 까봐

힘들어도
아파도
돈 없어도
말을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어버이주일

레위기 19:32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인간에게는 자신을 이 세상에 존재(存在)하게 만들어준 두 주체로서 무조건적으로 순종하여야 할 대상이 둘 있다.
이 두 주체가 없었다면 인간은 그 누구도 세상에 태어나 살아갈 길이 없다.
그것은 바로 천지 만물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과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살과 피를 나에게 나누어 주심으로 나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며 우리를 끝없이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신다.
또한 부모님도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찾을 길 없는 헌신으로 우리를 낳고 키워 주신다.
따라서 인간은 그분들이 나에게 갖는 존재론적 의미와 아울러 그분들이 자신에게 쏟아주신 사랑으로 인하여 그 분들께 복종하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늙고 죽기 마련이다.
그리고 노년기(老年期)에는 영육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식된 자는 부모님의 은혜를 십분지 일이나마 보답하는 기회로서, 나아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서도 부모님을 기리고 봉양하여야 한다.
성경도 거듭하여 효도(孝道)와 순종의 당위성 및 그에 따른 상급을 하나님의 직접적 계명으로 규정하고 있다(출 20:12; 엡 6:1-3).

어버이의 날을 정하여 부모의 은혜를 새삼 기리고 부모께 대하 자녀로서의 자신의 태도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절기가 교회에 있는 것은 매우 선한 전통이라 하겠다.
물론 일년 365일 부모를 기려야 하겠지만 이 날을 기점으로라도 부모께 대한 자세를 새로이 가다듬어야 하겠다.

어버이 주일의 원래 명칭은 어머니 주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본래 취지가 아래 유래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며 어머니의 은혜를 되새기기 위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와 더불어 부모로서 아버지의 역할과 은혜도 항상 기억해야 될 것이므로 이날을 어버이 주일로 부르는 것은 타당하다 할 수 있다.

어머니 주일이 어버이 주일로 바꾸어진 유래

어버이 주일은 본래 어머니 주일이라는 명칭으로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웹스터 교회에는, 이 교회 주일 학교에서 26년간이나 꾸준히 봉사해 온 자비스(Jarvis)라는 부인이 있었다.
훌륭한 주일학교 교사였던 그녀가 나이들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녀의 가르침을 잊지 못한 제자들이 선생님인 자비스 부인을 기념하기 위한 추도식을 갖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멀리 사는 자비스 부인의 딸을 추도식에 초청했다.
뜻밖의 소식을 접한 자비스 부인의 딸 안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초대에 응했다.
추도식이 있던 날, 식순의 하나로 안나에게 어머니인 자비스 부인에 대하여 이야기할 기회를 주었다.
그때 안나는 그녀의 어머니인 자비스 부인이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경 말씀을 가르치면서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에 감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늘 생각해 보라고 했던 것에 대하여 말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카네이션 꽃을 추도식 제단에 바쳤다.
추도식에 모였던 사람들은 자비스 부인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안나의 말과 태도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추도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이 날을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는 날로 정할 것을 그 자리에서 결의 하였다.

이를 계기로 시작된 어머니 날 운동은 특히 부인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백화점 왕으로 불리는 존 와너메이커도  이 운동의 취지에 적극 동의하여 그 활동을 도왔다.
그는 1908년 5월 둘째 주일에 자신이 경영하는 백화점에서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하는 모임을 주최하기도 했다.

미국 역사에 있어서 험난했던 시대의 어머니들은 지혜와 용기로 가정 생활을 이끌어 감으로 현재의 미국을 이룩하는데 큰 힘이 되었었다.
따라서 미국인들에게 '어머니 날' 운동은 금새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 여론이 형성되자 1914년 미국 국회는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주일로 정하여 이 날을 기념일로 지키기로 결정하였다.
어머니 주일은 그후에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 또한 중요함이 강조되면서 그 명칭이 어버이 주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지켜지고 있다.

한국에서 어버이 주일이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1930년 6월 15일 구세군에 의해 어머니 주일을 지키면서부터 였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어머니 주일의 정신을 일반 대중에게도 전한다는 의미에서 5월 8일 (1955년 당시 어머니 주일)을 어머니날로 제정, 공포하였다.

그후 교회에서는 1960년 어머니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개칭하여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의 은혜도 기리는 날로 삼았으며 그 이후 1974년에 이르러 정부에서도 어머니 날을 어버이 날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어버이 주일은 일반인들의 기념일로 함께 지켜지고 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에베소서 6:1-3)   

 

십계명의 제 1계명부터 제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이며 제 5계명부터 제 10계명까지는 인간과의 관계에 적용되는 계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계명 다음으로, 인간과 관련된 계명중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이러한 제 5계명의 위치는 육신의 부모에 대한 공경, 즉 효도의 중요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효(孝)가 왜 중요한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1절)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부모에 대한 순종은 곧 이를 명하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② 인간의 도리입니다(2절) -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 주신 부모님께 순종하며 효도하는 것은 가지가 그 가지를 낸 뿌리, 즉 그 근본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이는 인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③ 가정과 사회 질서의 기초가 됩니다(3절) - 부모님 뿐 아니라 나아가 모든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위와 아래를 명백히 구분하여 인정하는 것으로 이는 가정과 사회의 질서를 세우는 기초가 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명령하시면서 이와 더불어 이 말씀에 순종하면서 장수와 풍요의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요즘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부모님께 대한 효도를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은 진정 어떻게 부모님께 대해왔는지 반성해 봄과 동시에 진정 우리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를 다짐하는 어버이 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효심(누가복음 2:51-52)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처럼 지극히 높으신 신분을 가지셨으나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부모님을 어떻게 섬기셨는지 살펴 보도록 합시다.

 

  ① 순종하며 받드셨습니다(눅 2:51) - 예수님은 모든 행위에 있어 부모님의 권위를 인정하며 섬기는 자세를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가나 혼인 잔치에서 자신을 드러낼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요구에 응하여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첫 번째 이적에서도 잘 드러납니다(요 2:3-8)

  ② 끝까지 보살피셨습니다(요 19:26,27) -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는 순간까지도 어머니를 염려하여 당신 대신 어머니를 돌봐줄 것을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식으로서 행할 봉양의 의무를 죽는 그 순간까지 생각하셨습니다.

 

  당신은 혹 당신의 부모님이 못 배우고, 권력이나 명예가 없다고 해서 무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은 영적인 구속 사역의 바쁘신 중에도 육신의 부모님도 잘 섬기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을 본받아 열심히 부모님을 섬기며 자신의 생각이나 주관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며 봉양하는 자녀가 되도록 합시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삼상 1:1-28)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요 대선지자로서 이스라엘 왕정 시대 초기의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섬겼으며 죽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충성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사무엘 뒤에는 그의 어머니 한나가 있었습니다. 하나가 기도의 응답으로 사무엘을 갖게 되고, 그를 하나님께 바치는 과정을 통해 과연 위대한 인물의 어머니의 모습은 어떠했으며,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① 인내하는 사람이었습니다(6-8절) -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괴롭히는 브닌나로 인하여 그녀는 많은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쉽게 요동하여 대적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습니다.

  ②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10,11절) -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한나는 더욱더 열심히 하나님을 찾았으며 자식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서원했습니다.

  ③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26-28절) - 마침내 기도의 응답으로 사무엘을 갖게 되었고, 사무엘을 낳자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하였던 것을 주저함 없이 실천하였습니다.

 

  어머니 한나의 이러한 영향으로 사무엘은 인내할 줄 아는 강한 사람, 하나님과 깊이 교제를 나누는 신실한 사람,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행동하는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부모된 우리의 모습은 알게 모르게 자녀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우리 또한 한나와 같은 바람직한 신앙인의 모습을 갖추어 자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부모가 됩시다. 

(1) 부모의 의무

  •   자녀를 양육함(골 3:21)
  •   자녀를 교육함(신 6:7; 잠 22:6)
  •   자녀를 훈계함(잠 23:13)
  •   자녀의 잘못을 징계함(잠 13:24)
  •   자녀를 위로함(사 66:13)
  •   자녀를 다스림(딤전 3:4)
  •   자녀를 사랑함(딛 2:4)

 

(2) 자녀의 의무

  •   부모님께 순종함(창 28:7)
  •   부모님을 공경함(출 20:12)
  •   부모님을 기쁘게 함(잠 15:20)
  •   부모님을 사랑함(창 46:29)
  •   부모님을 돌봄(창 45:9-11)
  •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함(딤전 5:4)

 

(3) 자녀에 대한 부모의 영향

 

    1. 좋은 영향

  •   바른 행위의 본을 보임(왕상 9:4)
  •   신앙의 본을 보임(대하 17:3,4)
  •   정직의 본을 보임(대하 24:4)

 

    2. 악한 영향

  •   악행의 본이 됨(왕상 22:52)
  •   자식을 꾀어 악한 길로 행하게 함(대하 22:2,3)
  •   세상 풍속을 쫓음(엡 2:2)
  •   우상 숭배의 본이 됨(렘 9:14; 겔 20:18)
  •   불순종의 본이 됨(암 2:4)

 

(4) 자녀 교육의 바른 자세

  •   자녀는 하나님이 준 선물이라는 인식을 가짐(시 127:3)
  •   어렸을 때부터 교육시켜야 함(출 2:7-9)
  •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함(잠 22:6,15)
  •   부지런히 가르침(신 4:9)
  •   항상 언제든지 가르침(신 11:19)
  •   사랑의 채찍으로 가르침(신 11:19)
  •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만 하지 않음(행 20:32)
  •   자발적으로 주님을 따르도록 가르침(요 6:60-71)
  •   먼저 믿음의 본을 보여줌(딤후 1:5)

 

(5) 부모의 징계

  •   행할 바를 알게 함(잠 22:6)
  •   자녀의 미련을 쫓아냄(잠 22:15)
  •   자녀의 영혼을 구원케 함(잠 23:13,14)
  •   자녀의 유익을 위해 필요함(히 12:8-10)
  •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함(엡 6:4)
  •   악한 마음으로 하면 안됨(잠 19:18)
  •   노엽게 해서는 암됨(골 3:21)
  •   생명의 길로 인도함(잠 10:17)

 

(6) 부모의 징계에 대한 자녀의 자세

  •   훈계를 지켜 행함(잠 13:18)
  •   명철을 얻기에 주의함(잠 4:1)
  •   업신여기지 않음(잠 15:4)
  •   귀 기울여 들음(잠 23:12)

 

(7) 부모의 잘못

  •   편애(창 25:28)
  •   허영(에 5:11)
  •   자녀의 죄를 방치함(삼상 3:13)
  •   자녀를 노엽게 함(엡 6:4)

 

(8) 성경의 가정관

  •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창 2:22-25)
  •   사회의 기본 단위(수 13:15-31)
  •   생명과 출산과 보호처(창 1:22)
  •   자녀 양육의 터전(신 6:6-9)
  •   신앙 교육의 터전(신 4:9)
  •   기쁨과 안식의 처소(시 128:3)
  •   노년의 의지처(딤전 5:8)

 

(9) 성경에 나타난 부모의 실례

  •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창 18:18,19)
  •   자식을 편애한 부모 이삭과 리브가(창 25:28)
  •   경솔히 맹세한 아버지 입다(삿 11:30-39)
  •   거룩한 어머니 한나(삼상 1:19-28)
  •   엄하지 못한 아버지 엘리(삼상 2:22-25;29)
  •   자식을 잃고 비통해하는 아버지 다윗(삼하 18:32,33)
  •   정직히 행한 요담의 아버지 웃시야(대하 27:2)
  •   딸에게 살인을 시킨 어머니 헤로디아(마 14:8)
  •   자식을 용서한 탕자의 아버지(눅 15:17-24)

 

(10) 효를 행한 자녀의 실례

  •   식물을 주어 공궤(供饋)한 요셉(창 47:12)
  •   환난중에 가족을 피신시킨 다윗(삼상 22:3,4)
  •   모친을 위해 자리를 베푼 솔로몬(왕상 2:19)
  •   부모에게 먼저 예의를 갖춘 엘리사(왕상 19:20)
  •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한 요나답의 아들(렘 35:8)
  •   부모님께 순종하며 받든 예수(눅 2:51)

 

(11) 노인을 공경해야 할 이유

  •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자이기 때문임(레 19:32)
  •   연약한 자이기 때문(신 28:50)
  •   성숙한 지혜를 나타내는 자이기 때문임(왕상 12:6-8)
  •   하나님을 경화하는 삶을 산 자이기 때문임(시 34:11-14)
  •   의로운 길을 걸어온 자이기 때문임(잠 16:31)
  •   후손들을 돌본 자이기 때문임(딤전 5:4)
  •   영적 교훈을 가르쳐 주는 자이기 때문임(딤후 1:5)
  •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이기 때문임(벧후 1:12-15)  

                                                                        






어린이주일


어린이주일

05-01-2022(어린이주일 설교)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자(고린도전서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도입 이야기)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만 자녀를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사회적 존재로 자랍니다.
온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자녀처럼 키워야 합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교회가 나서야 합니다.
어른들이 나서서 신앙적으로 모범이 되고 인격적으로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도입 이야기)

1889년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는 오스트리아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들은 사촌 남매였기 때문에 불법 부부였습니다. 아버지는 몹시 성미가 급했고, 어머니는 주부로서의 일이나 엄마로서의 일에는 흥미가 없고, 바깥 사교 생활에만 흥미를 느껴 나다니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이 아이를 알코올 중독자인 숙모에게 맡기고 달아났습니다.

16세가 된 소년은 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했습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연명하다가, 결국 독일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후, 그는 정치계에 투신하여 극렬 분자가 되었습니다. 반란 음모에 참여했다가 투옥되어 다시는 정치계에 나서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감형 출옥의 혜택을 받았으나 더욱 맹렬히 정치 활동을 했고, 결국 1933년에 독일 국민의 절대 영도자인 총통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였고, 그로 인해 독일과 전세계가 전쟁에 휘말렸고, 그 후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인류가 이 아이가 내뿜은 독기의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1889년에 다른 한 아이가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소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흡족히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부모는 이 아이를 데리고 캔자스 농촌으로 이사했는데, 그 이유는 농촌 생활이 아이의 신앙 교육에 유익하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소년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가훈을 전해 주었고, 가족 모두가 교회의 가장 적극적인 봉사자로서 이름이 높았습니다. 소년은 어른으로 성장해서도 어머니의 두 팔에 안겨 간곡하게 기도하던 매일 저녁의 일과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도 군대에 흥미를 느끼고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1944년 이들 두명의 동갑내기는 전투에서 대면하였습니다.
11개월에 걸쳐 히틀러는 연합군 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싸웠습니다.
패전한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지하 방공 대피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소식을 접한 전세계는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한편 아이젠하워는 1969년 80세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고, 그의 죽음을 전세계가 애석해 했습니다.

이 두 동갑내기 아이의 이야기는 부모들의 신앙과 불신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가를 웅변적으로 증명해 줍니다






파트리스교회 공동체가 관심을 갖고 기도해야 할 어린이들은 이현호, 김은미, 김유미, 김태오 모두 4명 입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교회에서 어린이들에게 20불씩 현금으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선물을 현금으로 준비한 것에는 그 목적과 이유가 있습니다.

20불씩을 아이들에게 건네주며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일조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용돈을 받을 때 그 용돈에서 십일조를 바칠 수 있는 신앙훈련을 반드시 가르쳐야 합니다.
이렇게 훈련받지 않으면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십일조 신앙에 든든히 세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십일조일까?
공수부배원들이 높은 고공에서 낙하산을 타고 하강하기 위하여 점프하는 훈련장의 타워 높이가 10미터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높은 곳에 대한 공포심이 최고로 극대화 되는 높이가 11미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10미터 타워 위에 올라서면 사람의 키가 있기 때문에 최고의 공포심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10미터에서 뛰어내리는 연습을 보통 300회 정도 반복하다보면 몸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져서 아무리 높은 고공에서도 두렵지 않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이와 같은 흔련을 잘 받으면 성인이 된 후에도 결코 흔들림이 없는 신앙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교회에서 20불을 선물로 주었는데 20불을 받았으면 제일 먼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들이 각자 자기 의견을 이야기 할 때 그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런 훈련은 아이들에게 매우 유익한 신앙훈련이 될 것입니다.
만일 어린 아이의 이름으로 십일조를 바치면 교회학교에서 다른 아이들도 보고 듣고 배울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 통의 편지를 남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첫번째 서신은 전해지지 않고 두번째 편지 고린도전서, 세번째 편지 고린도후서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와 후서는 고린도교회가 신앙의 갈등을 갖고 분쟁할 때 이 분쟁을 해결하려고 보낸 편지입니다.
교회의 문제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예수님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의 문제는 예수를 믿는 교인들의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인은 누구인가를 설명하려고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육체에 속한 사람(自然人)
둘째는 육신에 속한 사람(信仰人)
셋째는 성령에 속한 사람(聖靈人)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육신에 속한 사람"이 "성령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령에 속한 사람이 되려면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에서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 말하는 것
 2. 깨닫는 것
 3. 생각하는 것

유치(幼稚)하다
: 수준이 낮거나 미숙하다.
 - 유치한 언어와 유치한 행동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려면 몇 가지 변화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음식의 변화

어린 아이는 모유 또는 우유를 먹지만 어른이 되면 우유를 먹지 않습니다.
어릴 때는 위에서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소화액이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우유를 마시려면 적어도 6개월 이상 매일 우유를 마실 때 위에서 우유를 소화시킬 수 있는 소화액이 나오므로 그때부터 우유를 마시는 효과를 몸에서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급한 사람은 몇 개월 우유를 마셨지만 변화를 느끼지 못하여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 부산대학교 식품여양학과 서명자교수의 연구 결과 / 우유 소화를 위한 제안

둘째는 행동의 변화

어린 아이는 사랑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고 즐거워 합니다.
그러나 어른은 사랑을 주는 것 즉 사랑하는 것으로 즐거워 합니다.

제 후배가 어느 사찰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하여 축하하려고 몇 사람이 사찰을 방문했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그 자리에 연회석을 만들고 음식을 먹게 되었는데 바로 제 앞에 그 사찰의 주지 스님 즉 주례를 맡았던 스님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옆에 친구가 좌우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제 바로 앞에는 불상이 보였습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제가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음식을 먹으려는데 주지 스님이 "교회에 다니십니까?" 라고 묻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고 대답했지요.
그러나 그 스님이 여기에서 많은 결혼식을 합니다.
그런데 음식을 먹으면서 기도하는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났습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 없는 환경과 같은 자리에서도 어린 아이는 쑥 스럽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어렵게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은 분명 그와 같은 자리에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를 강조하면서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셋째는 생각의 변화

어린 아이는 내 손에 쥐는 것 즉 내가 갖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어른은 베푸는 즐거움을 좋아합니다.

어린 아이의 특징은 자기 중심적 사고를 합니다.
모든 것이 자기 중심입니다.

어린 아이의 특징은 이분법적 사고를 합니다.
우 아니면 좌, 블랙 아니면 화이트....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2장은 "은사장"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은사 중에서 가장 귀한 은사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은사는 열매를 맺기 위한 선물(베드로전서 4:10)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은사를 헬라어 성경에서 "카리스마(χάρισμα)"라고 합니다.

χάρισμα, ατος, τό 5486 [charisma]

선물, 은사, 부여된 은총, 롬 11:29, 고전 1:7, 딤전 4:14, 벧전 4:10.

카리스마의 어근은 "카라(χαρά)"입니다.
'카라'는 "기쁨"이란 뜻입니다.

χαρά, ᾶς, ἡ 5479

1. 기쁨, 2. 고후 2:3, 3. 기쁨을 주는 사람

χάρις, ιτος, ἡ 5485

1. 우아함, 2. 은총, 3. 은혜로운 행위

성령은 예수를 주라 고백하는 믿음의 선물(고린도전서 12:3b)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오늘날 교회와 교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들은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일으킨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 교단의 연합 모임에 대표 회장이 공석이 되었을 때 이 사건을 법원에서 맡았습니다.
법원에서는 대표회장을 변호사로 선임했습니다.
그 변호사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표회장을 맡으면 매월 300만원씩 받습니다.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됩니다.

또 다른 사례를 소개합니다.
미주 어느 교회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법원에서 판결하기를 예수를 믿는 사람들끼리 서로 자기 주장이 맞는다고 하므로 어느 누구의 편을 들어줄 수 없으니 교회를 매각 처분하여 공평하게 반반씩 나누어 갖고 서로 싸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아직도 예수를 믿는 교인들이 육신에 속한 예수를 믿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말하는 것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를 세 가지로 설명하겠습니다.

"기도하는 언어"
"찬송하는 언어"
"성경을 읽는 언어"
"서로 대화하는 언어"

언어는 곧 그 존재라고 정의한 철학자는 데칼트입니다(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 사람이 무슨 일에 종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문을 두드릴 때 나타나는 반응에서

"예, 들어오세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비서라고 합니다.

"통화중, 통화중"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전화교환원이라고 합니다.

"올라갑니다, 올라갑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승강기 안내원이라고 합니다.

"오라잇, 오라잇"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버스 안내양이라고 합니다.

기도하는 언어와 찬송하는 언어가 성경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깨우치는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말을 조련하는 유능한 조련자가 두 가지 언어로 말을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라고 하면 말은 힘차게 달립니다.
"아멘!" 하면 말이 즉시 멈춥니다.

이런 말을 구입한 사람이 그 말을 타고 "할렐루야!" 하고 소리쳤더니 정말 말이 신나게 달립니다.
너무 좋아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고 소리치며 달렸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벼랑이 나타났습니다.
말을 멈추어야 하는데 갑자기 아멘!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결국 신나게 달리던 말과 함께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기도의 언어를 버리고 장성한 사람의 기도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장성한 사람의 기도 언어를 성 프래시스의 "평화의 도구" 라는 시에서 찾아봅니다.

The Prayer of Saint Francis

Lord, make us instruments of your peace.
주여, 우리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Where there is hatred, let us sow love;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where there is injury, pardon;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where there is discord, union;
분열이 있는 곳에 화합을,
where there is doubt, faith;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where there is despair, hope;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where there is darkness, light;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where there is sadness, joy;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O divine Master,
오 신령의 주여,
grant that we may not so much seek to be consoled as to console;
우리가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 하며
to be understood as to understand;
이해 받기 보다는 이해 하며,
to be loved, as to love;
사랑 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through the love of thy Son who died for us, Jesus Christ our Lord. Amen.
우리를 위해 죽으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언어는 어느 파에 속하였나?

그리스도파, 게바파, 바울파, 아볼로파.....(1:12)
어느 파에 속하였나를 확인하려는 것은 분쟁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도 세례 문제를 두고 분쟁합니다.
반드시 예수님 당시에 세례는 침례이기 때문에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을 자주 듣다보면 세례를 받은 것은 마치 구원을 받지 못한 것처럼 인식된다고 합니다.
구원은 침례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세례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침례와 세례는 구원하는 표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깨닫는 것

고린도교회는 십자가에 대한 깨달음에서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18)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십자가의 과정은 싫고 오직 십자가와 죽음 후에 얻게 된 부활의 영광과 기쁨만을 좋아합니다.

성도들이 깨닫는 것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받은 것에 대한 감사"라고 하겠습니다.

은혜로운 세상
시인 임보(1940- )

앞은 못 보는 장님을 보면서
내 두 눈의 밝음을 늦게야 본다

소리를 못 듣는 귀머거리를 보면서
내 두 귀의 총명함을 비로소 듣는다

다리를 잃은 불구의 장애자를 보면서
두 다리의 고마움을 아프게 느낀다

비록 가진 것 많지 않아도
산천초목에, 가족이며 이웃들

주신 은혜가 얼마나 넘치는가를
이순의 문턱에서야 뒤늦게 깨닫는다.

기도한 대로는 아니지만
시인 정용철

내가 기도한 대로는 아니지만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합니다
정말 멋있고 예쁜 모습의 나이기를 바랐지만
만약 그렇게 되었으면
나는 지금보다 더 교만하고 외모에 치중하여
겸손과 소박함의
아름다운 삶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내 모습에 감사할 뿐입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집의 모든 것에 만족합니다
더 잘 살고 여유 있는 가족이기를 바랐지만
만약 그렇게 되었으면 지금 우리 가족은
화목과 사랑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우리 가족 이대로 감사할 뿐입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는 아니지만
지금 나의 직장생활에 만족합니다
환경이 더 좋고 보수가 높은 직장이기를 바랐지만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나는 노동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모른 채
안일에 젖어 나태해져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직장생활에 감사할 뿐입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는 아니지만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에 만족합니다
더 쉽고 빠른 길로 가게 되기를 바랐지만
만약 그렇게 되었으면
지금의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한 채
외롭고
지친 몸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걷고 있는 나의 길에 대하여 감사할 뿐입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는 아니지만
지금 내가 소유한 물질에 만족합니다
더 많은 물질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지만
만약에 그렇게 되었다면
나는 마음의 아름다움보다
물질의 풍요가 더 귀한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만큼의 내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셋째는 생각하는 것

어린 아이의 생각은 유치하다고 합니다.

유치하다는 것은 수준이 낮고 미숙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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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생활을 할 때도 성장의 단계가 있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미성숙의 단계로부터 시작합니다.
믿음의 성장은 육신의 살아온 나이와 상관없는 영적 성장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다른 이들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다른 신앙인들의 성장을 위해서 살피고 돌봐주는 믿음으로 성숙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목적을 깨달아서 살아가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어떠한 모습이 신앙적으로 미숙한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보다 장성한 믿음의 사람으로서 성장하기 위해서 사도바울과 같이 버려야 할 어린아이와 같은 일은 어떠한 일들이 있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린 아이의 말을 버리자(고린도전서 13:1-2) 

사람이 할 수 있는 아름답고 신령한 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 그리고 또한 예언하는 신령한 말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들을 하는 사람을 본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참 성숙하고 장성한 자의 말을 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듣기에 신령한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그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말이 아니라, 한낱 소리 나는 구리, 울리는 꽹과리와 같은 소음과 같은 말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 중에서 하나가 은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영적인 은사를 받는 이들이 많아 졌습니다.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합니다. 말들은 잘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교만해 지게 되었고,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이 받은 은사가 더 귀하고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교회 안에서 다툼을 일으켰습니다. 신령한 말을 하지 못할 때에는 그러한 일이 없었는데, 도리어 성령의 은사를 받은 후에 교회가 시끄러워진 것입니다.

사랑없이 자신의 능력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려고, 시기하고 다투는 말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제자요, 사랑의 사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에게도 어린아이와 같이 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빨리 가기 위해서는 두 지역 사이에 있는 사마리아 땅을 지나서 가면 됩니다. 그런데 보통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생각할 때에 상종하지 못할 부정한 사람들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사마리아 땅을 지나지 않고, 그 땅을 피해 멀리 돌아서 오고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지역을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이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제자 야고보와 요한의 마음에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요한의 말은 사랑이 전혀 없는 무자비한 말입니다. 자신들을 영접하지 않았다고 불을 내려서 그들을 태워 멸하는 게 어떠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한의 말에 예수님은 꾸짖으시면서,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십니다. 그러니 “보아너게”라는 별명은, 요한이 어린아이와 같은 말을 할 때에 가졌던 별명인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이 장성한 후에는 그러한 말을 버렸습니다. 도리어  사도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사랑할 것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장성한 자의 말은 사랑의 말인 것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방언과 예언과 천사의 말들이 성숙한 자의 말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장성한 자의 말은 사랑을 가지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사정을 살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말이 아니라, 사랑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유익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장성한 자의 말이 됩니다.

어린 아이처럼 깨닫는 것을 버리자 

어린 아이들은 순수하고 천진난만한데 비해, 어떤 것을 깨닫는 이해력은 어른만 못합니다.
그래서 그저 눈에 보이는 현상에 의존해서 해석하기 때문에 때로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가 쉽습니다.

어린아이가 청년으로 성숙해 지는 과정에서 사춘기를 겪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탈선을 하는 청소년들이 간혹 있습니다. 부모님은 자녀가 혹시나 잘못 될까 봐 사랑하는 마음으로 야단을 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자녀가 서운할 정도로 생활을 규제하기도 합니다. 매를 들기도 합니다. 자녀들 중에는 그것이 못 마땅하고 부모님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하기에, 부모에게 반항도 하고, 가출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 그것이 부모님의 사랑이었음을 비로서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에 있어서도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가지고, 피부에 느껴지는 경험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과 선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메리 스티븐슨 이라는 사람이 쓴, ‘모래위의 발자국’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어느 날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나는 주님과 함께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하늘 위로는 내 인생의 여러 순간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각 장면마다 두 사람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중 하나는 나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나와 주님에게서 사라지려는 순간,
나는 모래 위에 남겨진 발자국들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내 인생의 행로에서 여러 번 오직 한 사람의 발자국만 남겨져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내가 매우 슬프고 괴로웠을 때 일어났따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너무나 괴로웠던 나는 주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 너는 항상 나를 따를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내 인생의 가장 어려웠던 시절을 돌이켜 보니 오직 나의 발자국만 남겨져 있더군요.
어느 때보다도 주님이 필요했던 바로 그 때 어찌하여 주님을 내 곁을 떠나셨는지 나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어요.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나는 너를 누구보다 사랑한단다.
네가 시련과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때 나는 한번도 네 곁을 떠난 적이 없었느니라.
네가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볼 수 없었던 바로 그 때는 내가 너를 안고 가던 때였느니라.
모래 위에 새겨진 그 발자국은 너의 발자국이 아니라 내 발자국이란다."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은 모래 위에 난 발자국 하나를 보고서, 주님께서 나를 떠나셨다고 착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며 섭섭해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하게 되면 그 발자국 하나를 보고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며 감사해 하며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내가 눈에 보는 것이나 느끼는 감정을 가지고 판단하며 깨달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감각들은 불완전한 것이기에 그것에 근거해서 무엇인가를 깨닫고자 한다면 실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장성한 사람은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말씀을 믿고서 그 상황을 깨닫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말씀하십니다.

설령 환란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이고 선한 계획이 있음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말씀을 믿고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깨달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근거로 해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장성한 신앙인은 상황과 감정에 의존해서 깨달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말씀에 근거해서 상황을 깨닫는 것이 장성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어린 아이의 생각을 버리자

어린아이의 생각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어린아이들은 자기 중심의 생각을 하게 마련입니다.
다른 이들을 생각하고 돌보기에는 그 생각의 틀이 협소합니다.
아직까지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만한 성숙함이 없습니다.

성숙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의 중심이 자기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 이웃, 자신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자신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숙하게 되면 내 생각의 폭이 넓어집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도 관심하게 되고,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함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에 나 또한 행복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한 가정 주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하루 하루 사는 것이 너무 짜증스럽고 불만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그 집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안은 날마다 지저분하게 어지럽혀져 있고, 남편과 자식들은 말도 안 듣고, 늘 말썽만 피우는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어느 날은 너무 지치고, 살아갈 의욕도 생기지를 않아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천국으로 데려가 주세요. 더 이상 힘들어서 못살겠어요.” 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살기 힘들지? 네 마음 다 이해한다. 네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한가지 조건이 있다. 앞으로 9일 동안 내가 말하는 대로 몇 가지 일들을 해야 한다.” 그 여인은 반가와서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집안이 너무 지저분한 것 같은데, 네가 죽은 후에 사람들이 와서 보면 창피하지 않겠니? 그래도 마지막 정리를 잘하고 갔다는 말을 듣도록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 좀 해두렴” 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열심히 집안 청소를 했습니다. 그렇게 삼일이 지났습니다.

삼일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얘야! 애들이 맘에 걸리지 않니? 네가 죽은 후에 아이들이 너를 기억하면서 살 텐데, 엄마가 자신들을 사랑했다는 좋은 기억은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겠니? 힘들겠지만 앞으로 삼일동안 만이라도 아이들을 최고로 사랑해 주렴”그 말을 들은 여인은 삼일 동안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삼일이 지나고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갈 때가 삼일 밖에 남지 않았구나. 이제 마지막 해야 할 일을 말해주마. 너 남편 때문에 상처 많이 받고 미웠지? 그래도 장례식 때 ‘참 좋은 아내였는데’라는 말은 들어야 하지 않겠니? 이제 남은 삼일 동안 남편에게 최대한으로 친절하게 대해 줘봐라.” 그 여인은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천국에 빨리 가고 싶어서 삼일 동안 최대한으로 남편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다시 삼일 후, 하나님께서 그녀를 찾아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딸아, 천국으로 갈 시간이 다 되었구나. 그런데 가기 전에 네 집을 한번 돌아보려무나.” 이 여인이 자신의 집을 돌아다 보니, 그 전과 너무 달라져 있었습니다. 더러운 집구석은 깨끗하게 변해 있어서 보기 좋았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있었고, 남편은 자신을 향해서 사랑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집을 보면서,  “아, 내 집이 바로 천국이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여인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집이 어떻게 이렇게 변했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9일 동안 네가 만든 거란다.”  그때 그 여인이 말합니다.  “하나님,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 집을, 천국으로 만들어가며 살아 볼래요!”

믿음생활 할 때에도 나를 중심으로 해서 뭐든지 해 주기를 바라는 때가 있습니다. 처음 믿음 생활하는 단계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나 주위의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주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성숙해지게 되면, 나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에 대해서 관심하고, 주님의 뜻하신 대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내 삶의 진정한 가치로 여기고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나의 이기적인 생각은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에 맞게, 다른 이들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어린 아이 때와 같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어린아이와 같이 미숙한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 말과 깨달음과 생각으로 나타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말하는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자랑하고 드러내고 싶어하는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랑의 말을 하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판단에 의존해서 나오는 메마른 말들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깨닫는 것이 둔한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과 느껴지는 감정에 의존해서 판단합니다.
그러기에 내면에 흐르는 영적인 의미를 깨닫기에는 둔할 때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내 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사로 잡혀 있어서, 내가 다른 사람, 특히 하나님께는 어떠한 존재인가를 생각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장성한 믿음으로 성장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에베소서 4:15 |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성도들의 성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 사랑의 말과 행동으로 변화되어져 갈 때에 성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없는 말과 행동, 생각들을 버릴 때에 장성한 성숙한 신앙인의 역할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할 때에 다른 이들의 형편이 내 안에 들어옵니다. 말이 달라집니다. 그들을 위로할 수 있고 축복할 수 있습니다. 장성한 자의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제대로 알 때에 이 세상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나에게 오는 시련과 환란도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할 때에 장성한 일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통해 삶의 가치를 깨닫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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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한 사람과 어린아이

 

   우리 주변에는 비록 육신의 나이가 어려도 어른스러운 경우가 있고,  그 반대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육신과 혼의 방면 외에, 영적으로  ‘어리다’ 거나 ‘성숙하다’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전자는 엡4:14(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않고), 고전3:1(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 13:11(말하는 것이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아이와 같았으나), 후자는 엡4:13(온전한 사람 , 충분히 성장한 사람), 히5:14(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들의 것이니), 고전14:20 (깨닫는 일에는 어른이 되라) 등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어리다’ 또는 ‘장성하다’다고 할 때 육신의 나이나 예배당을 오고 간 세월은 중요한 변수가 아닐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최소한 하나님의 아들을 생명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어린 아이는 고사하고 ‘시작’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시작’이십니다(계22:13).

 

또한 “말과 지식이 뛰어나고”, “어떤 은사에도 뒤쳐지지 않은 사람” (고전1:5, 7)도 젖이나 먹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갓난 아이일 수 있습니다(고전3:1-2).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말한 해당 구절들은 지식이나 은사는 생명과 무관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장성한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경 여러 곳 특히 골2:19을 근거로 정의해 보자면,  생명의 장성함은 거듭난 이후 그 안에서 '하나님이 증가하신 것’(increased with the increase of God)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증가한다는 말이 얼른 듣기에는 이상하나 성경 자체가 그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더 평이한 말로는 생명이 성숙하다는 말은 ‘생명을 얻고’ ‘ 더 풍성히 얻었다’는 것입니다(요10;10하).

 

    즉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 자신이 생명과 진리(실재)이심을 본후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뿐 아니라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고 더 풍성히 얻어가는 사람이 장성한 사람입니다(빌3:8, 요10:10하).

 

   그런데 이러한 자람은 각각 흩어진 개인이 각자 알아서 그리스도를 얻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모든 일에서 머리이신 ‘그분 안으로’ 자라야 합니다. 즉 한몸의 지체로서 몸 안에서 몸을 위하여 자라야 정상적인 성장입니다(엡2:21-22). 이러한 자람은 머리를 붙드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외에 각 마디(joint)의 공급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또한 각 지체(part)가 몸을 위하여 분량대로 기능을 발휘해야 합니다. 즉 영적인 자람은 주님의 몸에 대한 합당한 계시와 몸 안에서의 유기적인 연결됨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엡4: 13-16).

 

  마지막으로 생명이 자라려면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날마다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먹는 것입니다 (요6:35, 57).

 

   장성한 사람의 반대인 영적으로 어리다는 것은 거듭난 이후 위와 같은 생명의 성장을 게을리한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 배설물’을 관심하고 정작 ‘그리스도 자신’은 무관심하면 신앙의 연륜이 오래 되었어도 영적으로 여전히 어린아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육신에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 중에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습니다 (고전3:3). ‘간교한 술수’나 ‘(각종) 교리의 풍조에 이리 저리 밀려 다닙니다(엡4:14).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진리)만을 말하고자’ 함이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름으로, 잡다한 것을 붙들면서 시간을 허비합니다(엡5:16-17).

 

    하나님께서 생명의 씨앗을 땅에 심으신 목적은 싹이 난 후 이삭 안에 알찬 곡식으로 여물어 수확하시기 위함입니다. 막4:26-29는 이 전 과정을 하나님의 왕국과 동일시 합니다. 그리고 계시록 14:4는 먼저 익은 곡식을 '첫열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거듭난 모든 이들이 다 이 첫열매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시록 14장은 첫열매를 언급한 후 짐승과 그 형상에게 경배를 강요하는 시기를 기록하고 그후에 추가적인 땅의 수확물을 수확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15-16절). 이 대목은 추후 좀더 시간을 들여 심도있게 연구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모두가 다 첫열매로 수확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끝으로 한 가지 사족을 붙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사 이루신 구속과 구원은 이미 성취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각 개인에게 ‘적용’되는 과정은  믿음의 분량에 따라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실’과 ‘적용’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또는 객관적인 성취와 주관적인 체험을 나누어도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의 기록이나 사람의 영적 상태를 분별할 때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가장 안전한 것은 우리가 위에서 다뤘던 것처럼 [생명(있고 없고, 어리고, 장성하고)의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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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영혼의 상태가 마음으로 나타나고 마음의 상태가 육체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 잘못 지킨 마음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그르친 일들이 많고 마음을 잘 지켜서 절망의 때를 유익함으로 변화시키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묘하다.
미국에서 보고된 사례이다.
말기 암 환자가 있었다. 임종이 눈앞에 다가온 환자이다. 의사들은 내일을 못 넘길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 영국에서 그 암의 특효약이 개발이 되었다는 뉴우스가 전해지게 되었다. 이 환자가 이 소식을 듣고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영국에서 이 약이 비행기로 공수가 되려면 이틀이 걸리게 된다. 의사가 특효약에 대하여 말을 해주고 이틀만 지나면 병원에 이 약이 도착이 되니까 희망을 가지라고 하였다. 이 환자는 이틀을 견뎌 냈다. 그런데 오기로한 약이 오지를 않았다. 이 환자의 치료 팀은 환자에게 거짓말을 하기로 하고 환자에게 치료 약이 도착했노라고하고서는 보통 식염수를 주사를 하였다. 환자는 끄떡없이 견뎠다. 아! 나는 이 새로운 약의 수혜자가 되었다.라는 마음이 그를 살게 만든 것이다.
이 약이 무슨 사정으로 계속 오지를 않고 치료 팀은 계속 거짓으로 주사약을 투여하였다. 이렇게 삼 개월이 지나갔고 이 사람의 건강은 많이 호전되었다. 이것이 의사들을 놀라게 하였고 약보다는 환자의 심리상태가 병의 치료에 더 큰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입이 싼 간호원이 이 환자에게 “당신은 행운아입니다.사실은 당신에게 투여한 약이 특효약이 아니고 그냥 식염수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건강해 지시니 축하합니다”
그 환자는 다음 날 죽었다.
이것이 마음의 역할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음속에는 사람을 행동 하게하는 여러 요인이 있는데 그 중에서 어린이의 마음과 어른의 마음이 있는 것을 소개를 하고자 한다.
데이빗 A.씨멘즈 라는 사람이 지은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라는 책 표지 그림을 보면
사십 몇 되보이는 중년 신사가 입에 우유 먹는 젖꼭지를 물고 붕붕 카를 타고 밀면서 곰인형,불럭,동화책,풍선을 가지고 노는 그림이 있다.
실재로 이런 일이 있다면 우스운 장면이다.
그러나 신앙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보면 많은 사람의 상태가 바로 이와 같다. 몸은 분명히 어른인데 마음속에 어린애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어린애와 어른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린이는 나도 모르는 순간에 나오게 되어 있다. 특히나 사회생활의 긴장이 풀어진 가정에서는 더 자주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일들이 부부간에 갈등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결혼한지 15일밖에 안된 부부가 이혼을 하게되었다.
감정은 극도로 격해 있고 이제 마지막으로 주례를 서준 목사님을 찾아 뵙고서 도장을 찍기로 하였다.
이들의 사정은 이렇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여서 함께 살기로 작정을 한 것이었다.
예>,서약
서로 도우며 살기로 하고서 설걷이도 같이하였다. 문제의 아침에도 아침을 든 후에 설걷이를 같이하면서 남편이 갑자기 친구들이 온다는 것이 생각이 나서 말을 하였다.
여보! 친구들이 온대. 한 20명 정도되.
아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행주를 집어던지며 “혼자 해!” 그러자 더러운 물이 남편의 옷이며 얼굴에 튀겼다. 뒤에 아내의 말이 가만히 설걷이 통에다가 행주를 놓을려고 했었는데 마귀가 축복을 하므로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러자 남편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못 이겨 아내를 밀었는데 넘어져서 얼굴이 깨지고 멍이 들고 부어 올랐다. 뒤에 남편의 말을 빌리면 슬쩍 밀기만 했는데 마귀가 축복을 하므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아내가 친정으로 전화를 하였다. 얻어맞고서 못살겠다는 것이다. 전화 받은 친정어머니가 “그런 놈하고 살 필요 없다.더 고생하기 전에 당장에 집에 오너라”
아내가 친정으로 가버리자 남편이 자기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그 여자 남편을 무시하고 친정으로 가버렸다고 볼멘소리로 말하였다.
남자의 엄마는 글러먹게 배웠구나. 절대로 데려올 생각 말아라. 초기에 잘 잡아야지 아니면 평생 고생이다. 잘 명심해라.“
이래서 집안끼리 감정이 악화가 되었고 이혼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목사님이 잘 타일러도 들어먹지를 않았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이 묻기를 둘이는 결혼할 때 사랑은 했었느냐고, 그러자 그러믄요. 우리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었지요.
그러면 사랑하는 사이로서 그때 그 상황에 대처를 해보자.
그래서 남편이 말을 하였다.
결혼했다고 친구들이 놀러온대.“몇명이나요”한 20명정도 돼.
어쩌지요,우리 집 식기가 10명 손님 밖에 치를 수가 없는데. 아참 이렇게 하면 어때요. 오늘 십명 내일 십명씩을 초청하면은요.
“아,그게 좋겠군. ”“당신은 항상 머리가 좋아”
그러고서는 고맙다는 인사도 않고 팔장끼고서 다정하게 가버렸다는 것이다.
우리의 무엇이 행동하느냐에 따라 행위의 결과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아이를 버려야 되는 것이다. 여러분 속에 있는 어린이를 버려야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11절에서“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하였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서 삶의 중요한 진리를 몇 가지 배우게 된다.

1. 우리 모두에게는 어린아이가 있다.
흔히들 성인과 어린이를 분류하는 기준을 보게되면 어린이는 감각적이고 즉흥적이며 근시적이고 생물학적인 충동에 따라 움직인다고 한다.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는다.자랑하기를 좋아한다. 높다든가.나은 것을 과시하고자한다.
이순신 장군과 나폴레옹이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는등,자기 아버지가 더 높다는 둥 싸움하면 이기냐는둥 인간의 세속적 관점에서 만물을 본다. ex)이발사 아버지를 둔 아이
높아야 된다는 생각. 나아야 된다는 생각.사소한 것을 가지고 자존심을 세우는 행위, 이 모든 것이 다 어린이의 행동이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 어린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하였다.
바울 사도가 이렇듯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는 말을 하게된 배경은 고린도 성도들이 은사를 받았는데 서로의 은사가 낫다고 자랑을 하고 자기 것을 과시하고 하는 너무나도 유치한 일이 교회 내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그들의 일이 너무나도 유치한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이다.우리 식으로 하면 내가 교회에서 하는 일이 더 훌륭한 일이라는등,교인들 간의 사소한 알력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교회 직분은 일하라고 있는 것이고 맡은 자는 철저하게 낮아져서 섬겨야 하는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은사가 교회를 유익하게하기위한 것임을 미쳐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무슨 일이 어린애의 일인가를 지적하고 있다.
④오래 참지 못하는 것
성내는 것.질투. 자랑. 교만.
무례하게 행함,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는 이기주의
악한 생각.불의.불신

이런 것들이 신앙의 성장을 가로막고 한없이 작은 마음이 되게 한다.그러므로 우울과 무의미 보람된 삶의 축복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버려야 한다.

신령한 사람 -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린 사람(고린도전서 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어른은 어린아이의 일을 버린 사람을 말한다.
어른은 책임감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행동한다.
바울사도는 이 어른을 사랑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할 줄 아는 자가 어른이요. 대장부가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신앙 인의 올바른 모습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랑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사랑은 성령의 가장 위대한 열매이기 때문이다.

다른 은사는 성령께서 임의로 나누어주시지만 성령의 은사는 모두가 배우고 성령 충만함으로 주어지게 된다.


장성한 사람의 표상 - 예수 그리스도(빌립보서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가 바라보고 닮아야 될 어린아이의 일을 버린 어른의 표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는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종으로 까지 내려가셔서 섬김의 온전한 모습을 보이셨다.
항상 장성한 사람의 일을 한번 떠올린 후에 말과 행동을 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주님의 몸된 이 제단에서 어린이의 일이 더이상 생겨나지 말기를 바란다.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하나님의 뜻만을 바라보고 담대하게 전진하는 은혜를 사모하는 어린이주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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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모두 속에 숨은 아이

언제였든 어떻게였든 당신은 아이였던 때가 있었다. 우리가 우리의 어린아이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소년기 때나 10대 때의 우리는 늘 우리 안에 존재해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숨어있는 당신의 과거 아이는 확실히 살아 있으며 좋게든 나쁘게든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 속의 아이는 삶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는 우리를 바로든 비뚤게든 인도할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존재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떠들썩하고, 법석 떨며, 매우 버릇없는 역할을 하고, 그가 좋아하는 일이면 시끄럽게 뛰어들기도 한다. 결국 그는 현재 성인의 삶에 적응을 못하고 의미 있는 모든 관계 속에서 상처를 내고 이를 파괴시키게 된다. 그런가 하면 당신의 내적 아이는 너무 수줍고 겁 많고 연약하고 자기 혐오적이다. 당신이 아무리 원해도 동료를 얻지 못하게 하고, 당신이 가진 의견을 말하지 못하게 하며, 중요한 책임조차 맡지 못하게 한다. 내적 아이는 결국 당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으로 되는 것을 막는다. 내적 아이가 행사하는 이 능력 때문에 당신 안에 존재하는 내적 아이를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당신이 과거를 돌아보아 내적 아이가 당신의 삶을 지배하는 행동이 무엇인가 찾아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당신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변화가 필요한 부분, 용서함과 용서됨이 필요한 부분, 치유되어야 할 부분, 매일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부분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당신이 되고자 했던 모습 - 성령의 치유하시는 능력으로 자유케 된 하나님의 자녀 - 으로 회복될 수 있다. 당신의 내적 아이가 숨어 있는 부분을 찾아냄으로써 그를 내쫓을 수 있는 것이다.

변화될 수 있는 아이

약 20년 전 심리학자 휴즈 미실다인(Hugh Missildine)은 『당신 과거의 내적 아이 Your Inner Child of the Past』라는 베스트 셀러 한 권을 써냈다. 아직까지도 이 분야에서 고전으로 손꼽히고 있는 이 책은 우리의 성격 형성에 부모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내적 아이는 가정이나 편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 모습이 나타난다. 성숙한 삶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친한 동료들, 룸메이트, 애인, 직장동료, 가족과의 관계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러한 관계를 내적 자아가 점령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적인 모습을 띌 때 우리는 매우 공손해지고 훈련된 모습이 된다. 거리가 있는 이들과는 항상 매우 성숙하고 합리적인 만남을 갖는다. 그러나 가까운 인간관계 안으로 돌아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우정, 사랑, 결혼 또는 매우 두터운 동업 관계에서는 얼마나 빨리 내적 아이가 이를 지배해버리는지 모른다. 그는 매우 불합리하고 완고하며, 명령적이거나, 수줍어하고, 겁 많고, 연약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에 우리 자신이 충격 받을 정도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당황해하는 아이

우리가 내적 아이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가정이다. 특히 부부의 애정 생활에서다. 단지 두 사람이 결혼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틀린 생각이다.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말씀은 옳다. 그러나 문제는 네 사람이 결혼했다는 것이고 집이 뭔가로 와글와글 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성인과 또 두 명의 내적 아이가 함께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일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쉬며 우리를 털어놓는 집은 다시 과거의 아이들로 되돌아가기에 적합한 곳이다. 이러한 이유로 남편이나 아내의 내적 아이는 재미를 붙이고 집을 뛰어다니게 된다. 이 넷이 부딪치는 부분은 재정, 애정, 성생활, 아이 교육에서다.

조정될 수 있는 아이

과거에 머물고 아이 같은 반응만 하는 사슬에 묶여 있으면 우리는 가정이나 사람과의 관계 속에 사랑을 전달할 자유를 상실한 것이다. 우리는 진실한 행동은 하지 않고 반응만 할 뿐이다. 우리는 가끔 응답하지만 창조적인 사랑엔 낯설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3장 중심에서 어린아이의 일을 버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우리를 성숙케 하는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고 창조적 능력과 새로움을 전달해준다. 그러나 당신 과거의 숨겨진 내적 아이를 처리하기 전에는 이런 사랑이나 성숙을 볼 수 없다. 당신의 교만함을 내려놓고, 자신을 정직하게 직시하며, 모든 일을 성령님께 맡긴다면 성령님은 당신 삶의 중심에서 일 하실 것이다. 이것을 원한다면 성령님께 당신의 실체를 보여주시길, 그리고 타인과 어떻게 관계해야 할지를 가르쳐주시길 시간을 할애하여 간구하라.

2. 기억의 치유

1966년 ‘성령과 우리 상한 감정의 치유’라는 제목으로 두려움과 망설임 속에 어느 주일 저녁 설교를 했던 것을 난 기억한다. 그 설교만큼 하나님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들어 쓰신 설교는 더 없으리라 생각된다. 그 설교 테이프는 온 세계로 퍼져나가 자신들의 감정에 속박 받던 이들을 풀어주는 도구로 쓰여졌다.

잠재의식

과거의 문제아가 확실히 나타나는 부분은 그 자신을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곳인 우리의 기억에서이다. 당장 무의식에 대해 얘기하고픈 충동을 느끼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것은 좀 과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우선 나는 잠재의식, 또는 자각 전 의식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무의식에 대한 과대 강조의 이유는 우리 자신의 잘못된 행동 책임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전가’가 목적이 아닌가 한다. 아직 그 의미에 끌린다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무의식은 실체나 어떤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의식이란 당신 인격의 깊이를 표현하고자 하는 기술적 묘사 언어이다. 당신 마음의 잠재 의식층을 뭐라 부르든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경험한 어떤 것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혹 기억해 내지 못한다 해도 당신의 기억 속에 살아 있게 된다. 그것들은 당신의 기억 창고에 쌓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더 멋진 사실은 당신이 성령님께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한 잠재의식을 정결케 하며, 기억의 창고를 채우도록 허락한다면 하나님은 이것을 당신 인격의 가장 창조적인 부분으로 만들 실제적 능력을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잠재의식은 악과 비극도 만들어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잠재의식은 고통도 될 수 있다. 이것은 특별히 어릴 때의 고통스런 기억과 연관되어있다. 이런 기억을 우리 마음 밖으로 몰아내려 하면 할수록 실제적으로 기억은 더 깊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데까지 묻혀 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가 경험하고 표현 못한 감정이 상처받았을 땐 표현될 길이 막막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가슴에 살아있는 채로 묻혀 엄청난 완고함과 폭발력을 지니게 된다. 그런 기억을 의식에 떠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그 엄청난 노력은 우리 에너지의 상당량을 소모하게 만든다.

잠자고 있던 그 과거의 아이가 깨어나면 개인의 행동, 반응, 외모, 행위 전반을 지배하면서 감춰졌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 깊은 우울, 분노, 걷잡을 수 없는 정욕, 열등 의식, 고독, 거절당한 느낌으로 표현되는데 그런 고통스런 기억들은 회심의 경험이나 성령 충만으로는 자동적으로 변화되지 않는다. 은혜 안에서의 성숙으로도 꼭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런 기억들은 영적 성장에 방해가 된다.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전까지는 그에게 있어 실제 성숙이란 없다. 불행히도 그런 기억들은 우리의 평범한 기도로는 미치지 못할 부분인 것 같다. 어떤 때는 기도가 고통을 더 악화시키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특별한 중보 기도와 치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당황스러운 것은 그의 현재 생활에선 아무 이상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유의 기도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필요한 것은 고통스런 기억을 치유하는 기도이다. 즉 그들의 아동기와 십대 때 일어나 그들의 성숙을 막고 있으며 성장의 한 단계를 묶어두고 있는 그런 경험들을 치유하는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모든 기억은 치유의 기도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는 고통과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은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 그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상처받은 우리의 내적 아이를 돌보실 수 있는 영원한 현재이시다. 내 경험으로 치유가 필요한 아이는 다음 네 명의 아이들 중 하나 꼴이다. 상처받은 아이, 미움받은 아이, 부끄러움으로 가득 찬 아이, 그리고 두려워하는 아이가 그들이다.

믿음의 기도

믿음의 기도가 만병통치의 도구가 아니며, 또한 치유의 기도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도 물론 아니지만 그럼에도 어떤 이들에게는 바로 적용된다. 그 차이는 어쩌면 우리 삶에서의 큰 각도 차이일 수 있다. 나는 성령님께서 이 같은 치유 경험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적용시키실 것을 믿는다. 기억의 치유는 마음 깊숙한 곳의 적극적 개방과 다른 이들과의 나눔을 필요로 하고 당신 행동을 위한 다른 이들의 기도를 필요로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당신은 성령님께 새로운 통찰을 구해야 하고 또 당신의 방어벽을 허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치유되기 원하는 부분, 즉 당신에게 고통을 주며 감정의 파장을 일으키는 모든 기억나는 것들의 목록을 적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신뢰하고 진정으로 믿음의 기도를 할 줄 아는 이와 함께 기도하라. 그와 함께 주님과 대화하듯 하는 기도가 가장 좋을 것이다. 모든 느낌, 그런 기억들과 관계되어 경험한 모든 감정들을 하나님께 고백하라. 만일 새로운 것이 떠오른다면 바로 중지하고 같이 얘기하라.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을 기억하라. 그분은 바로 여기 계신다. 그분은 시간을 초월하시기 때문에 아픈 경험으로 되돌아가실 수 있다. 그분에게 고백하며 각각의 경험들, 각각의 감정들, 각각의 행위들을 그분께 드려 당신을 사랑하시고, 위로하시고, 용서하시도록 하라. 그분께서 당신의 증오를 닦아내시고 상처를 싸매며, 음욕을 제어하고, 두려움을 내어쫓으시게 하라. 그리고 특별히 그분이 당신을 용서하시듯이 당신을 괴롭힌 사람들을 용서하라. 만일 당신이 타인을 위해 믿음의 기도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성령님께서 당신의 영과 그의 영을 같이 녹여주시도록 기도하고 끝으로 성령님께서 그분의 일을 어떤 식으로 하실지는 요구하지 말라.

3. 어른됨을 가로막는 어린아이의 좌우명

조건 붙은 관계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최고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사랑과 애정을 유보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수준에서 그들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좀더 잘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돕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무엇을 하든, 먹든, 예의가 바르든, 성적이 좋아지든, 또래들보다 신앙생활을 잘하든 간에 우리는 조금만 더 잘하게 되면 인정하고 사랑하리라 약속한다. 그러다가 사랑은 점차 보이지 않게 되고 희망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현재 이룬 성취 정도는 낮추어지거나 묵살된다. 우리는 “사랑한다. 조금만 더 잘해다오.”라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번번이 “좀더 잘하면 사랑해주지.”라거나 “네가 좀더 잘해야만 우린 너를 사랑하고 기뻐해 주마.”라고 들려지게 된다.

브래드라는 목사가 열성이 있고 신앙의 기복이 심한 기독교인이었을 때의 경험을 우리에게 얘기했다. 겉으로 보면 그는 굉장한 성과를 거둔 성공적인 목사였다. 그러나 그는 내면적으로 요요(yoyo)와 같이 영성의 높낮이가 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마치 당구공 같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자신감의 한 면에서 정죄감과 죄책, 그리고 우울의 면으로 튕겨 다녔다. “한 2년 전 성령님으로부터 갑작스런 통찰이 제게 주어졌습니다. 나는 내 삶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지배되고 있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대신 49년 동안 부모님이 내게 심어준 어린 시절의 ‘모토(Motto, 좌우명)’가 나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었던 겁니다. 그것이 어릴 때 심어진 모토였음을 알기 전까지 나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배하고 계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 대단한 어린 시절의 모토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좀더 잘해봐!”였다. 브래드는 말했다. “부모님이 내게 심어 주려고 하신 건 그것이 아닌 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마치 그 말이 ‘좋다. 우린 너를 사랑한다. 그러나 네가 좀 더 잘 할 수 있다면 더 사랑할 수 있을 거야!’ 라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성령님께선 그의 참 모습을 보게 하셨고 그의 삶의 참 동기를 보여주셨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지고 온 이 말이 하나님과의 관계까지를 포함한 모든 관계에 영향을 끼쳤음을 깨달았다. 49년 간 그는 더 이상 잘할 수 있으리란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드디어 이 모토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지금은 성령님 안에서의 참 자유를 배우고 있습니다.”

콤플렉스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는 것’과 ‘자라감’의 총체적인 과정을 성격 콤플렉스 측면에서 살펴보자. 콤플렉스의 의미는 ‘인격 전반에 지배력을 발휘하는 억눌려진 욕구와 기억의 묶음’이다. 유해한 아동기의 모토와 연관시켜볼 때, 콤플렉스란 우리의 과거로부터의 건전하지 못한 감정의 공격이라 하겠다. 우선적으로 “좀 더 잘해.”라는 모토에서의 병든 내적 공격으로 파생된 콤플렉스는 두 가지이다. 먼저 우리에게 무력감을 주며 자기 비하로 채우는 ‘열등 콤플렉스’가 있다. 또 우리가 이룬 것보다 더 잘해내야 하고 해낼 수 있다라고 느끼게 하며 자기 무시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완벽 콤플렉스’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훈련과 연습이 영적 어린아이됨에서 떠나 성인으로 자라감에 기본이다. 이것은 혼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신이 신뢰하는 친구나 목사 또는 기독교 상담자가 필요하다. 성령님과 협력하여 “좀 더 잘해.” 콤플렉스에 따라다니는 양 극단의 감정 진폭을 좁히도록 노력하라.

다음은 자신들의 불안한 결혼생활에 도움을 얻기 위해 찾아왔던 로저와 바브 부부의 이야기다. 정기적인 가정 예배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깊은 헌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혼은 파경에 이르게 되었다. 신실한 신자로서 주님을 수년간의 결혼생활 가운데 모시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더욱 더 낙심하고 낙담했다. 개인적으로 만나보니 둘은 “좀 더 잘해.”의 피해자들이었다. 그는 완고한 기독교 가정 출신이었고 그녀는 비신자 가정 출신이었지만 기본적 환경은 거의 같았다. 어떤 모양으로든 우수한 업적을 나타내면 그들은 인정이라는 대가를 받았지만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거나 아주 작은 실수라도 저지르게되면 그들 부모는 그들을 걱정과 실망으로 대했다. “남들이 뭐라고 말하겠니? 부모인 우리가 엉터리라고 생각하지 않겠니?” 그들 부모의 안정감과 자존감은 로저와 바브의 성공적인 업적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었다. 그러므로 “좀 더 잘해.”의 의미는 “네가 실패하면 우리 얼굴에 먹칠하는 거다.”라는 것으로 그들 성격 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들이 결혼 첫 해 그 어렵고 많은 적응을 위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상상할 수나 있겠는가? 그 후 마침내 그들은 둘 사이에 일어난 일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서로의 고통과 요구에 대해 깊이 나눌 수 있었다. 특별한 의미에서의 기도는 로저와 바브가 어린아이 같은 행위를 버리도록 해 주었고 하나님 외엔 기대할 수 없는 완전함을 서로에게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4. 또 다른 어린아이의 잘못된 생각

또 다른 해악이 되는 어린아이의 모토는 잘못 지도된 문화에서 온다. “용감한 아이는 울지 않는다.” 이것이 얼마나 많은 남성들과 수백만 결혼을 무너뜨렸는지 모른다. 이 빡빡한 어린아이의 모토가 삶에 깊은 영향을 끼쳐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어린아이의 모토는 “좋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또는 “좋은 그리스도인은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표현해선 안 된다.”라고 해석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파괴적인 모토를 살펴봄이 더 좋을 듯하다. 예수님의 감정 생활을 살펴보고 그분의 삶에서 과연 어떤 감정이 표현되었고 또 그것이 어떻게 다루어졌는가를 살펴보자.

예수님께서 우리들 중 하나이셨음을 나는 기쁘게 생각한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보다 그의 감정에 대해서 더 인간적이셨다. 진정으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조용하고, 고요하며, 냉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슬퍼하거나, 화내거나, 애곡하거나, 노여워하거나 무엇에 의해서도 요동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됨의 뚜렷한 증거로서 ‘큰 바위 얼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께서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면 이것은 매우 혐오스러운 거짓 인상이 되는 것이다. 아직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기에 다다르려고 노력하고 필요없는 죄책감에 직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예수님께선 그분의 감정을 표출하시는 데 전혀 두려움이 없으셨고 그분의 감정에 대해 타인들의 이목에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슬픔과 비탄

예수님께서 비탄과 슬픔을 어떻게 다루셨는지 우리에게 실마리를 줄 수 있는 두 사건이 있다. 첫 번째 사건은 예수님께서 깊이 존경하던 세례 요한이 목베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마 14:13) 바로 이것이 우리가 슬픈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취하는 행동이 아닌가? 두 번째 사건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슬픔을 다루시는 두 번째 통찰을 얻게된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 11:35) 예수님께선 그분의 슬픔을 울음으로 표현하는데 대해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공개적으로 우셨음을 알 수 있다.

분노

더욱더 우리가 다루기 어려운 것은 그리스도인 사이에 가장 터부시되고 있는 분노의 감정이다. 예수님께선 화를 내신 적이 있는가? 안식일에 손 마른 한 사람을 고치시려 할 때였다.“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막 3:5) 나는 그리스도의 분노가 그의 완전함의 일부분임을 믿으며 그분의 이 같은 분노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된 분노는 결코 없다고 믿는다. 분노란 죄가 되는 감정이 아니다. 사실 죄가 되는 감정이란 없다. 단지 감정의 죄된 사용이 있을 뿐이다. 분노는 우리 감정의 바닥에서 진흙을 끌어올리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분노는 진정한 거룩함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작열하여 넘치는 것이어야 한다.

분노와 동정

분노와 동정은 동전의 양면이다. 분노는 꼭 사랑의 반대가 아니다. 어떤 때는 사랑의 결과이기도하며 가장 명확한 표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절대 분노를 당신에게서 지우도록, 또는 떨어져나가도록 기도하지 말라. 성질을 없애 달라기보다는 성령님의 지배 아래 놓여지도록 기도하라.

문제 안은 마음

우리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을 때의 감정을 뭐라 칭할 수 있을까? 그건 그분의 생명을 위해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찾고 행하고자 했던 고초라는 의미에서 ‘문제 안은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의 고초는 많은 감정의 혼합이어서 뭐라 표현할 수 없다. 거기엔 고독이 있었다. 거기엔 시험이 있었다.

온전함과 거룩

성숙함이란 온전함과 거룩을 이야기한다. 성숙된 거룩은 우리의 참 인간성 회복을 뜻한다. 거룩함과 온전함의 중심은 타인과 하나님과 우리 자신에 대한 앎과 사랑에 있다.

5. 사랑과 결혼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생각

미국의 결혼한 사람의 거의 200만이 감정적으로나 영적으로 이혼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같이 구혼을 하고 어린아이 같은 생각, 이해심, 교통함으로 결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이 환상은 침대에 들기 전 어머니나 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듣던 것처럼 멋진 왕자가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한다는 동화에서 시작한다.

사랑과 결혼 분야에서 심리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어린아이의 일’이라 부른 그것을 ‘로맨틱한 발육 부진’이라 부른다. 환상으로 가득 찬 자기 중심적인 사랑으로서의 로맨틱한 발육 부진과 성경에서 얘기하는 사랑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성숙한 결혼은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가 융합되어 있는 것이다. 결혼은 이 셋의 매우 값지고 불안정한 균형이다.

결혼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의견 교환이다. 결혼이 불행하게 되는 최대의 이유는 배우자가 상대방과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사랑스럽게 대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이 어린아이의 수준에 남아 있는 것이다. 당신이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게 되는 것 같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 감정이 넘쳐나다 보면 깊은 긍정적 감정도 표현하게 된다.

6. 하나님의 뜻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생각

‘하나님의 뜻’을 여러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혼돈이 오는데, 여기엔 최소한 세 가지가 있다. 하나님의 계획으로서의 완전한 뜻, 하나님의 상황 변화에 맡겨놓은 허락 가능한 뜻,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과 목적․계획으로서의 하나님의 뜻은 당신과 이 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이다.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이 허락 가능한 하나님의 뜻은 이 타락한 우주에 작용되는 것이다.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은 절대로 좌절되지 않는다. 사고나 비극, 그리고 도덕적 악은 무서운 고통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그분의 목표를 이루어 가는 우리에게는 고난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분리시키거나 우리 삶 속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꺾지 못한다.

7. 기도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생각

하나님의 뜻에 관해 계속 살펴보면서 특히 우리의 기도, 즉 우리에게 가장 영향을 끼치는 부분에 적용시켜보자. 거짓되고 미성숙한 기도의 개념은 성숙하고자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속에서 가장 파괴적인 요소가 된다.

하나님의 불가능성

우리가 늘 듣던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는 구절의 다른 면, 즉 어떤 것은 하나님께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회교도의 신앙과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이슬람에선 하나님은 어떤 것이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분의 능력은 절대적이고 임의적이기에 무제한적이란 얘기가 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쪽에 서서 하나님의 능력은 그분 자신의 도덕적 성품과 그분이 창조하신 도덕적 존재를 포함한 그분의 세계에 심어 놓으신 어떤 자기제한의 한계로 인해 제한된다라고 얘기한다.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것과 하지 않으시는 것들을 보자.

-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거역하지 못하신다.

- 하나님은 자신의 법을 침해하실 수 없다.

-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실 수 없다.

성숙한 기도

죠지 뮬러는 “성경에서 빗나간 기도는 90퍼센트가 환상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어린아이 때는 상상의 환상에서 산다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만 그들이 성장했을 때에는 그런 것들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반 진실은 죽음을 가져올 수 있다

인디아에서 있었던 젊은 선교사의 죽음(맹장염인데 치유 기도하다 사망)도 ‘하나님이 기도로 치유하시느냐.’가 아니라 ‘이 치유를 하나님이 어떻게 이루어 내시느냐.’인 것이다.

신앙과 기도 그리고 자만

기도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진정한 성숙이 없이는 ‘자만(presumption)'에 대해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모르게 된다. 우리는 우리 걸음을 과하게 떼어놓고는 하나님도 그렇게 하시도록 구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이 자만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모든 면에서 자만은 하나님께 대항하고 그분과의 관계에서 이탈하는 죄로 규정되어 있다.

응답되지 않은 기도의 문제

성경 안에서조차도 응답되지 않은 기도가 많은데(모세, 하박국, 시편기자, 바울....) 응답되지 않은 우리 기도의 이유를 살펴보자.

- 우리가 바른 것을 구하지 않는 이유에서다.

- 우리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에 준비되어 있지 않은 이유에서다.

수용됨과 인정됨의 차이

우리는 많은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수용됨(acceptance)과 인정됨(approval) 사이의 혼동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아이들이 한 일에 대한 부모의 불만족이 그들의 하나의 인격체됨까지 거절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하지 않은 가정 안에서 흔히 나타난다. 인정은 수용이고 불만족은 수용, 거절, 아니면 추방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시험과 죄의 차이

어떤 이들은 시험과 죄에 대한 근본적이고 극심한 혼동으로 고통을 받는다. 우린 성경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정죄 아래 있게 하는 사단의 간교한 먹이인 시험(temptation)에 대한 실제적 개념을 가질 수 있다. 우선 모든 사람이 시험을 받는다는 것을 마음에 두자.

아픔과 손상의 차이

고통(hurt)당하는 것과 손상(harm)받는 것 사이의 혼동은 우리 아동기와 십대에서의 또 하나의 부작용이다. 그러나 아픔과 손상의 차이를 모르는 가정, 즉 훈계와 처벌의 차이, 알코올과 분노의 차이, 야단침과 포기해버림이 마구 뒤섞여 있는 가정에서는 아픔을 당하면 손상받게 된다.

어린아이같이 감정에 의지함

사도 바울이 사용한 ‘어린아이같이’라는 말은 성경에 흔히 쓰이는 말이다. 이 말은 성인이 어린아이의 무책임한 행동을 나타내고 있거나 성장이 중단된 어른을 얘기할 때 쓰여졌다.

감정과 인격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 경험으로 그들의 인격, 성향, 기질을 모두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에 깨진 환상으로 고통을 겪는다. 하나님은 당신의 근본적인 인격 구조는 바꾸시지 않는다. 그분은 당신 그대로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다. 감정은 우리 성격 중에 가장 다양하고 신뢰하지 못할 부분이다. 우리는 감정을 만들어 낸다.

감정과 확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 확신의 근거를 감정에 전적으로 매달린다. 감정이란 지극히 가변적이고 신뢰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의지한다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이다.

감정과 인도하심

많은 사람들이 인도하심의 기본을 감정에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가장 위대한 약속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는 것이다. 인도하심은 이렇게 전해진다.

- 하나님의 말씀

- 외적인 환경(열리고 닫힌 창문)

- 당신 자신의 가장 이상적인 사고

- 다른 그리스도인의 충고

- 당신 감정의 내적 음성

감정과 선행

어떤 사람들은 선을 행하는 동기를 감정에 의지한다. 죤 웨슬레는 ‘선을 행하기 전 좋은 느낌을 기다리는 죄’를 공격하는 설교를 했다. 선행을 하기에 앞서 좋은 느낌을 기다린다는 것은 죄다. 당신은 지금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선행과 봉사의 어떤 것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

10. 자아와 자기 포기의 어린아이 같은 개념

자아(self)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가? 자기 포기,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음, 자아의 죽음, 십자가 위에 버린 자아와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는가? 우리가 자아와 자기 포기의 잘못된 마음의 지도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신앙생활은 실망과 비탄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자기소멸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러나 나는 그대로 살아있으며, 없어지거나, 흡수되거나, 녹아진 것이 아니다.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구원의 최고의 절정에 이르게 되더라도 당신과 나의 자아됨은 소멸되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하나님 그분에게서 당신에게 주어진 당신의 에고(ego)는 영원히 당신 마음에 심겨져 있고 자아됨은 소멸되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자기멸시

자기 부인을 자기 멸시로 착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것은 신앙생활에서 자기 사랑의 알맞은 부분을 찾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자기 사랑을 바로 죄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내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는 자존과 존경, 그리고 고결과 주체성 안에 자신의 자아됨을 붙드는 자기 수용과 자기 사랑이 필요하다.

자기실현

낙관주의의 팽창과 더불어 요즘에 나타난 또 하나의 부적당한 자아의 반응은 바로 자기 실현이다.

자기포기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포기하고 내 삶의 중심을 그분께 드려 그분의 권위 밑에 나 자신을 바칠 때만이 나는 내 모든 자아와 더불어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1. 삶의 궁극적인 고민

궁극적인 영적 전투

자기 포기는 그것이 궁극적인 영적 전투를 대표하고 있음으로 해서 삶의 궁극적 고민이다. 예수님의 성육신(kenosis), 자기 비움(self-emptying)과 자기 포기의 첫 단계는 무엇이었는가? 그분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빌 2:6)로 자신을 비우셨다. 그것이 첫 단계였다.

모든 것을 포함한 고민

자기 포기는 삶의 다른 고민과 비교해볼 때 모든 것을 포함한 고민이다. 내가 갈등을 느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나의 감정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것이다.

삶의 본질

자기 포기는 이것이 삶의 본질적인 비밀이기 때문에 궁극적인 고민이다. 이것은 나의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존재가 되는 것이고, 나의 유일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자기 포기는 부활이 따르는 죽음이다. 생명을 잃으면 얻게 되고, 얻으려 노력하면 잃게 된다는 역설이다.

12. 재구성하시는 은혜

책임

예수님께서는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고자 하는 모든 시도나 핑계들을 물리치는 놀라운 방법을 알고 계셨다. 그분은 항상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하게 만드셨다. 우리가 정직하다면 모든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음에 동의할 것이다.

용서된 자아

그리스도인이 성인기에 들어서는 첫걸음은 용서되고 잊혀진 죄에 대한 자기 정죄와 어떤 왜곡된 형태의 내적인 속죄라도 그것을 끝마치는 것이다. 죄책감에 물든 자아는 용서된 자아가 되어야 한다.

치유된 자아

- 분노의 빨간 깃발

- 두려움의 노란 깃발

- 폭행의 검은 깃발

포기를 뜻하는 백기

어린아이 같은 것들이 없어지는 과정엔 크든지 작든지 마찰이 있다. 그리고는 최후로 무조건 포기의 백기를 들기까지 자신을 쳐 복종케 하는 결정적인 전투를 치른다. 그 후에 그리스도의 깃발이 게양되고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주권을 선포하게 된다












성경적 유머

04-23-2022(토)

다 죽어 버렸어요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신 분,
손들어 보세요.”

아무 반응이 없자,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 아무도 없습니까?
손들어 보세요.”

그때, 저 뒤에서
한 할아버지가 손을 들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요청했습니다.

“할아버님,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씀해주세요.”

그러자 나이가 들어서 힘없는 목소리로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응, 있었는데… 다아… 죽었어.”


말조심 해야지요

엄마랑 아이가 교회를 가는데
아이가 장난을 치는 바람에
엄마가 화가 났다.

엄마가 순간 화를 내며
"지랄 좀 그만해!"
교회에 도착했을 때
마침 목사님이 나와 계셨는데,

목사님은 아이를 머리를 어루만지며
"얘야 교회 오는데 몇 분 걸리니?"

아이의 대답

"지랄하고 오면 20분
지랄안하고 오면 10분여"



베드로와 삼계탕

베드로가 사역을 하다가
몸과 마음이 아주 힘들어져서
몸져누웠다.

한의사가 와서 진맥을 하더니 말했다.

"삼계탕을 먹으면 낫습니다."

그 말대로 했더니
베드로는 거뜬하게 나았다.

사람들이 놀라서
그 용한 한의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죄책감이
치유되지 않아서 닭이 울 때마다
몸과 마음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더군요.
그래서 그 놈의 닭을 잡아먹으면
몸과 마음이 회복될 것 같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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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2022

도덕 교육

어머니가 두 아이에게 줄
핫케이크를 굽고 있었다.
처음 구운 것을
누가 먹을 것인가를 두고
두 녀석은 옥신각신했다.

어머니는 녀석들에게
도덕을 가르칠 좋은 기회다 싶었다.

" 만약 예수님께서
이 자리에 계시다면,"

나는 나중에 먹어도 되니
내 형제들로 하여금
먼저 먹게 하라"고 하실 거다."

그러자 형이 동생에게 말했다.  

"너 예수 해!"


짧은 설교

어느 교회를 방문한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 짧은 설교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
설교를 다 준비했는데 
그만 제 개가 서재에 들어와서
설교 원고를 반이나 찢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어느 장로님이 이렇게 부탁을 했다.

“목사님, 목사님의 개가 새끼를 가졌을 때
저희 목사님 것으로  한 마리 주시겠습니까?”


부자와나사로

주일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누가복음 16장에 있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부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대단히 호강스럽게 살았지만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고,
거지는 불쌍하게 살았지만
죽어서 천국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를 다 해준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부자와 나사로
두 사람 중에서 
어느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질문을 했다.

그러자 아주 똑똑하게 생긴
남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저는요,
살아서는 부자같이 되고 싶고,
죽어서는 나사로 같이 되고 싶어요." 




남자와 불

10대 : 성냥불 쉽게 켜졌다가 쉽게 꺼지니까.
20대 : 모닥불 불붙기는 어려워도 한번 붙으면 끄기가 힘드니까.
30대 : 라이터불 필요할때만 꺼내 쓰고 집어 넣으니까.
40대 : 화로불 꺼진줄 알고 뒤지보면 아직 불씨가 남아 있으니까.
50대 : 담뱃불 꼭 빨아야 불이 붙는다.
60대 : 반딧불 불도 아닌게 불인체 한다.

여자와 과일

10대 : 호두 까기도 어렵고 막상 까봐도 먹을 것이 없다.
20대 : 밤 까기는 어렵지만 먹을 만 하다.
30대 : 귤 까기도 쉽고물도 많이 나온다.
40대 : 수박 칼만 대면 갈라진다.
50대 : 석류 처음부터 벌어져 있다.
60대 : 토마토 과일도 아닌게 과일인척 한다.

 
아내가 남편에개 요구하는 쇠 씨리즈

아내의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하는 충성심 강한 돌쇠
일하고 돈 벌때는 개미처럼 부지런한 마당쇠
아내의 단점이나 잘못은 절대 말하지 않는 철통 같은 자물쇠
아내의 마음이 닫혀있을 때에는 언제나 활짝 열어주는 만능열쇠
모진 풍파에도 끄덕없이 가정을 지키는 강인한 무쇠
아내가 아무리 화를내고 짜증을 부려도 그저 둥글둥글 굴렁쇠
아내와 대화 할때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수액의 고로쇠
친구들과 밖에서 어울릴때는 돈 한푼 않쓰는 구두쇠
아내가 울적할때 달콤한 노래로 달래주는 이문쇠(?)
그리고 밤에는 언제까지나 변강쇠


등잔밑이 어둡다 형광등 위가 어둡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남자가 한을 품으면 동지섣달에도 땀띠가 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빨리간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읖는다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랭이 찢어진다 티코가 그랜저 따라가다 엔진 터진다
천리길도 한걸음 부터 천킬로도 시동부터 걸고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 자가용 잃고 주차장 고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것 없더라 소문난 파티에 주차할곳 없더라
티끌 모아 태산 삐삐 모아 핸드폰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민다 자동차 훔치고 오토바이 바퀴 내민다

 

제비족에게 최초로 당한 여자는?
놀부마누라

포경수술을 하고 나오다가 넘어졌다'를 일곱 자로 줄이면?
좆까고 자빠졌네

아가씨의 엉덩이를 방뎅이라 하는 이유는?
방어 해야 하니까

아줌마의 엉덩이를 엉덩이라 하는 이유는?
엉엉 받아 주니까

과부의 엉덩이를 궁뎅이라 하는 이유는?
궁하니까


나에게는 못 할 말이 있따아

남편(숫말)을 잃고 혼자 살던 과부 말이 있었다네.
주변의 재혼 권유를 10년째 뿌리치고 혼자 살았다네.
그러나 밤마다 밀려드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과부 말,
잘 생기고 돈 많은 한 홀아비 말과 재혼을 하게 되었다네.
드디어 첫날밤.
어찌하랴,
글쎄 그놈이 불구일 줄이야!
속상하고 또 속상한 과부 말,
한 밤중에 지붕 위로 올라가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네.

"나에게는 못 할 말이 있따아!" 


오늘 설교하신 목사님은 다른 교회에서 오신 목사님이니까요.

어느 목사님이 다른 교회에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하게 되었다.
목사님의 사모님도 그 교회에 가서 교인들 틈에 함께 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모두 끝이 나고,
사모님이 그 교회 교인들과 함께 섞여서 나오고 있는데,
안내 집사가 밝게 웃으며 다가왔다.
안내 집사가 처음 본 얼굴인지라 친절하게 말을 했다.

"다음 주일에도 꼭 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주일 설교가 늘 저렇게 시시하다고 생각지 말아 주세요.
오늘 설교하신 목사님은 다른 교회에서 오신 목사님이니까요." 


야∼! 119가 몇 번이여∼!

가정집에서 불이 났다.
놀란 아버지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야∼! 119가 몇 번이여∼!” 하고 소리치자,
옆에 있던 삼촌이 소리쳤다.

“매형!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세요!114에 전화해서 물어봅시다!” 



때때로"나는 행복한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 글에"마귀의 팔복"이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1)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에 나가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가장 믿을만한 일군이 될 것임이요

2)자기 교회이면서도 나오라고 사정해야만 교회에 겨우 나오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교회에서 말썽꾸러기가 될 것임이요

3)목사의 약점과 부족을 보고 트집 잡기를 즐겨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말씀을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할 것임이요

4)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툼과 분쟁을 일으킬 것잉이요

5)걸핏하면 비쭉이기를 잘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교회 나오기를 곧 그만 둘 것임이요

6)하나님의 일에 인색하며 봉헌하기를 싫어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일에 가장 잘 돕는 자일 것임이요

7)하나님을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이웃을 미워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영원한 친구가 될 것임이요

8)성경읽고 기도할 시간이 없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꾀임에 쉽게 넘어가서 마침내 나의 충실한 종이 될 것임이요

참으로 깊이 새겨 들어야 할 말입니다 진정한 행복이 참된 믿음
의 세계에서만 주어지는 선물임을 다시한번 확인해 봅시다


불치병

어느 집에 침입한 도둑이 주인을 협박했다.
“조용히 해 갖고 있는 현금 다 주면 목숨만은 살려준다.”
그러자 주인이 볼멘 소리로 외쳤다.
“이놈아! 의사도 살릴 수 없다는데 네가 어떻게 살린다는 거야.”


죽은 사람의 소원도

한 선비가 마을을 지나다 어느 여인이 정화수를 떠놓고 치성 드리는 것을 보았다.
“이보시오, 목이 말라 그러니 그 물을 마시게 해주면 안되겠소?” 
여인이 말했다.
“이것은 물이 아닙니다.”
“물이 아니면 뭐요?”
“죽이옵니다.”
“아니, 죽을 떠놓고 지금 뭐하는 거요?”
그러자 여인이 하는 말.
“옛말에 죽은 사람의 소원도 들어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뭘 안다고! 의사가 죽었다잖아!

한 부인이 있었는데 이 부인도 남편에게 늘
"뭘 안다고..."를 연발하며 남편의 기를 죽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차를 몰고 가다 교통사고가 나서 위급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병원에 달려가보니 의사의 진단은 이미 남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남편을 너무 구박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남편 없는 과부가 되는 것이 너무 서러워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남편이 흰 천을 걷고 슥 일어나더니
"여보, 나 살았어. 여보 나 안 죽었어!" 하더랍니다.
그 때 부인의 반응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당신이 뭘 안다고! 의사가 죽었다잖아




1.죽은 새에 대한 의문

한 꼬마가 해변에서 놀다가 엄마에게 달려와서 엄마의 손을 끌고 해변으로 달려 갔다.

그곳에는 죽은 갈매기가 있었다.“엄마,새가 왜 이렇게 됐어?”

“음∼ 새는 죽었단다.그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갔어.” 꼬마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다시 집어 던졌어?”




2. 아닌것이

어제도 아니고 오늘도 아닌 날에, 남도 아니고 집안도 아닌 사람이,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도 아닌 소를 끌고 갔다.

언제 누가 소 몇 마리를 끌고 갔을까? 이 문제는 좀 어려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쉽다. 어제도 아니고 오늘도 아닌 날은 새벽 0시(전날 24시 동일함)

를 말하고, 남도 아니고 집안도 아닌 사람이란 사위를 말한다. 피가 섞인 것도 아니니

집안도 아니지만, 딸과 살고 있으니 남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 마니도 아니고 두 마리

아닌 소는 새끼 밴 소를 끌고 갔다는 말이다




3. 하나님의 것과 내 것

김집사와 이집사와 박집사, 세 사람이 모여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나님께 얼마만큼 바칠 것인가에 대한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하고 박집사가 말했다. "나는 먼저 땅에 줄을 긋고 내가 가진 돈 전부를 공중에 던집니다.

줄 오른편에 떨어진 돈은 하나님께 바치고 왼편에 떨어지면 내 주머니에 넣습니다."

"썩 좋은 방법이 못되는데요." 하고 이집사가 말했다. "나는 땅에 원을 그려놓고 내 돈을 공중에 던지지요.

원 안으로 떨어진 돈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원 바깥에 떨어진 것은 내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자 김집사가 돌아서서 한숨을 쉬고는,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께 바칩니다." 라고 말했다.

"그만 웃기시오, 뭐! 모든 걸 다 바친다구요." 다른 두 사람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렇소!" 김집사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돈 전부를 던집니다.

그리고서는 이렇게 말하지요. 공중에 머무는 것은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것은 모두 제 것입니다."




4. 나원 참 간호사

지독한 불면증으로 시달리는 입원환자가 있었다. 며칠을 못자다가 어느 날 밤은 모처럼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져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데 밤 10시쯤 누군가 흔들어 깨우기에 눈을 떠 보니 간호사였다.

그 간호사가 하는 말   ..."수면제 먹을 시간이에요, 수면제 드시고 주무세요!"




5. 병아리와 닭

하루는 아들 병아리가 아빠 닭에게 물었다.

병아리 : “아빠, 우리는 왜 벼슬이 있어요?”

아빠닭 : “그건 적들에게 우리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서지!”

병아리 : “그럼 주둥이는 왜 뾰족하고 날카롭죠?”

아빠닭 : “그건 적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해 혼내주기 위해서지!”

병아리 : “그럼 목소리는 왜 이렇게 커요?”

아빠닭 : “그건 적들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지!”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병아리가 말했다.

병아리 : “그런데, 아빠?”

아빠닭 : “왜 그러니 아가야?”

병아리 : “그런 힘을 가진 우리가 지금 닭장 안에서 뭐하는 거죠?”




6. 아는 사람이  

어느 수도원에 새로 수도생이 부임해왔기에 저녁설교를 맡겼습니다. 이 초년병이 열심히 준비는 했는데 앞자리에 앉아 있는 수도원장을 보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래서 신도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무슨 설교를 할지 아십니까?" 어찌 알겠어요? 모른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그럼 나도 모릅니다."하고 내려오더랍니다.

하도 기가 막혀 다음주 다시 설교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강단에 오르더니 또 묻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제가 무슨 설교를 할지 아십니까?" 지난주에는 모른다고 하니 내려갔으니까 이번에는 이구동성으로 안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그럼 됐습니다." 하고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까?

셋째 주에 다시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또 묻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제가 무슨 설교를 할지 아십니까?" 그럴줄 알고 미리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반은 안다고 했고 절반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럼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 가르치기 바랍니다."하고 내려오더랍니다. 이 말을 들은 수도원장이 무릎을 치면서 "야, 짧지만 그 말 명언이다" 하면서 수도원 현관문에 써 붙였다고 합니다.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 가르쳐라." 기독교인이 해야 할 일이 그것입니다. "예수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 가르쳐라. 천국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 가르쳐라." 바로 그것입니다.




7. 실연

한 젊은 청년이 실연을 당했다. 이제는 살 가치도 일을 해야 할 보람도 찾지 못한 그는 이 세상을 하직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나 같은 놈이 살아 무얼 하나?

그러다가 이제까지 내가 예수를 믿음 사람으로 죽기 전에 성경이나 한 줄 읽고 죽어야겠다고 다짐하고서 성경을 펴 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이게 무슨 변고인고? 하필이면 성경을 펼친 곳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데 유다가 나가서 목매어 죽으니라 (마27:5)는 말이었다. 어차피 나는 죽어야할 목숨인가보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성경을 펼쳤다. 거기 이런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눅10:37) 청년은 부아가 치밀었다. "이럴 수 있나? 아무리 그래도 목매어 죽으라니 그럴 수 없다. 다시 한번 찾아보자

모든 것은 삼세번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성경을 폈다. 거기 이런 말씀이 있었다.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 머뭇머뭇하려느냐?




8.워매, 아직도 안읽었다고예?

평소에 좀 잘난 척 하는 집사가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예~ 요즘 베스트셀러인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읽어보셨어예~?"

"아니~ 아직 못 읽어 봤는데요"

"아직도 못 보셨어예? 그거 나온지 1년도 넘었는데예~ 그 책 안 읽은 사람 없어예. 워매 우리 목사님 클났네"

그러자 목사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혹시 욥기 읽어보았습니까?"

"아니요 아직 못 읽었어예. 무슨 책입니꺼?"

"그래요? 아직도 못 읽었다구요? 그거 나온지 2500년이 훨씬

넘었는데요! 집사님이 들고 계신 그 성경책 안에 있습니다."




9.  1초

어떤 성도 한 사람이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하나님께는 1만년이 1초와 같다면서요

그 말에 의미를 깨달은 하나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암, 그렇고 말고

그뿐 아니라 천 만원이 1원이기도 하지 성도는 지체하지 않고 매달렸다.

하나님 그렇다면 많이도 말고 천만원만 주십시오 그럼, 주고말고 1초만 기다려라




10. 베드로가 쉬는 날  

천국 문에서 문을 지켜보던 베드로가 비번이라 예수가 대신해서 문을 지키고 있었다.

새로 천국 문에 도착하는 무리를 체크하는 동안 매우 낯익은 노인이 막 그 앞에 다다랐다.

예수가 그의 이름을 물었다. ࡒ요셉입니다.ࡓ 예수는 가슴이 설렜다.

ࡒ직업은?…ࡓ ࡒ목수인데…?.ࡓ예수는 더욱 흥분되었다. ࡒ아들이 하나 있죠?ࡓ

ࡒ예!…ࡓࡒ팔목과 무릎에 구멍이 뚫려있죠?!ࡓࡒ예!?…ࡓ예수는 눈물을 글썽이며 노인에게 다가갔다.

ࡒ아버지!,   아버지!~…ࡓ노인은 의아해 하며 어리둥절했다. 잠시 고개를 꺄우뚱하더니 답했다.

ࡒ피노키오?ࡓ




11. 식사기도

어느 집에서 손님들을 초청하여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집주인인 엄마가 6살 된 딸에게 말했다. "오늘 식사기도를 네가 한번 해볼래?"

그러자 딸이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엄마, 난 기도할 줄 모르잖아."

"그냥 엄마가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면 되지." 그러자 딸이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왜 자꾸 우리 집에 귀찮은 손님들이 많이 올까요??


12. 물 위를 걸으려 했더니

어떤 청년이 은혜에 충만하여(?) 성경에 예수님과 베드로가 물위를 걸었던 것을 기억하고

예수님이 나보다 더 큰일도 할 수 있다고 하신 것과 산을 옮길만할 믿음도 있다는

기억이 있어 믿음을 가지고 한강을 건너기로 하였다.

물위로 한발 내어 딛었을 때 물위로 걸어갈 것이라고 믿었던 청년은 그만 물에 빠져들어 실망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 일로 목사님을 찾아가 따지듯 물었다.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도 있다고 하고 제자들은 물 위를 걸었는데 저는 기도하고 은혜도

충만한데 왜 물에 빠지는 것입니까?" 목사님은 이 청년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셨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라고 하셨나요?"  "아니요."

"그러니까 빠지지요. 베드로는 예수님이 걸어오라고 하셨습니다."




13. 예수그리스도를 아십니까?

어느 선교사가 태국 항공기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는 스튜어디스에게 전도를 할 생각으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스튜어디스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라고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선교사가 한참동안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스튜어디스가 돌아와 하는 말

"아무리 승객 명단을 뒤져봐도 그런 분은 이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았습니다."




14. 예수님 심부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막상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마는 우리들...예수님을 내 곁에 있는 친구처럼 느끼고 가깝게 지내자구요.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밤 엄마가 아이에게 뒷마당에 있는

빗자루를 가지고 오라고 시켰다. "엄마, 바깥은 지금 캄캄해서 무서워요."

"아가, 밖에는 예수님이 계신데 뭐가 무섭니? 널 지켜주실거야."

"정말 밖에 예수님이 계세요?" "그럼, 그분은 어디에든 계신단다. 네가 힘들 때 널 도와주신단다."

그러자 아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뒷문을 살짝 열고 틈새로 말했다.

"예수님, 거기 계시면 빗자루 좀 갖다 주실래요?"




15. 그래도 할말은 있다.

예배 시간에 항상 늦게 들어오는 단골 지각생 청년이 있었다.

오늘도 그 청년은 예배에 늦었다. 그는 꼭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할 무렵에 들어오곤 했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를 참지 못한 목사님은 형제님은 왜 항상 예배시간에 늦게 옵니까?

꼭 설교 시간에 들어옵니까? 라고 한마디 했다. 이때 청년은 빙그레 웃으면서 사람이 처음 과 끝이 늘 같아야조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16. 사모님을 기절시킨 이메일

강원도에 사는 사업가 김씨가 부산 지방으로 출장을 갔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아내에게 이메일을 썼다. 그런데 그만 실수로 아내의 이메일 주소를 잘못 쳐서 메일이 엉뚱하게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목사님의 사모님에게 발송되고 말았다.

목사님 사모님은 이메일을 받아 읽고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정신을 회복하고 나서 사람들에게 보여준 메일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써 있었다. 여보, 무사히 도착했소. 그런데 이 아래는 정말이지 무척 뜨겁구려.




17. 죽고 싶나요?

1) 가장 먼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말아 보세요. *배고파 죽습니다.

2) 죽지 않았다면 앞선 하루 동안 못 먹었던 음식을 쌓아 놓고 다 먹어 보세요. *배 터져 죽습니다.

3) 이것도 않되면 하루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말아 보세요. *심심해 죽습니다.

4) 그래도 안 죽으면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일에 맞서서 두 배로 일해 보세요. *힘들어 죽습니다.

5) 혹시나 안 죽으면 500원만 투자해서 즉석복권을 사세요. 그리곤 긁지 말고 바라만 보세요.

  *궁금해 죽습니다.

6) 잠시 후 죽을랑 말랑 할 때 긁어 보세요. 반드시 꽝일 것입니다. *그러면 열 받아 죽습니다.

7) 그래도 죽고 싶다면 홀딱 벗고 거리로 뛰쳐 나가 보세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 일수록 좋습니다. 얼어 죽기보다는 얼굴 팔려 죽습니다. 이상의 방법으로도 죽을 수 없다면 아직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남아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 인생은 하나뿐이고 그것은 곧 지나가겠으나 그리스도를 위해 행해진 일은 영원할 것이다'




18. 가장 큰 거짓말

시골 성당의 신부가 길을 걷다가 동네 꼬마들이 한 곳에 몰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개 한 마리가 꼬마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너희들 뭐 하니? 그러자 어린이 하나가 대답했습니다. 이 개는 길잃은 개인데요,

아이들이 서로 갖겠다고 해서 지금 거짓말 대회를 열어서 가장 큰 거짓말을 하는 아이가 개를 갖기로 했어요.

뭐라고! 거짓말 대회라니, 그건 말도 안 된다! 신부는 어린이들에게 약 10분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신 성경말씀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이제 알겠니? 거짓말은 가장 큰 죄란다.

나는 너희만한 나이에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단다.  어린이들이 잠시 침묵하고 있는데 뒤쪽에

있던 한 어린 꼬마가 말했습니다. 그냥 저 아저씨 주자. (가장 큰 거짓말??!!)




19. 목사님 핀 마이크요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배가 시작되었는데 목사님이 아랫배가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려고 애를 썼지만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5 분간만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볼 일을 마치고 목사님이 다시 강단에 올라왔을 때 성도들이 마구 웃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이상하게 물었습니다. 아니 여러분! 양해를 구하고 갔다 왔는데 이렇게 웃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 짓궂은 집사님 한 분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다음에 화장실에 가실 때는 핀 마이크를 뽑아 놓고 가세요! 글쎄 실제 상황이었다니까요.




20. 바로 이맛이야....

미국의 한 청년이 어머니의 생일을 맞아 특별한 선물을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애완 동물가게에 가서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당신네 가게에서 제일 비싸고 좋은 것을 주십시오." "앵무새 한 마리를 보여드리죠. 좀 비싸긴 해도 이놈은 주기도문도 거뜬히 외웁니다.

기분 좋은 날은 시편 23장, 고린도전서 13장도 그저 술술입니다."

"그것 참 훌륭하군요. 값은 얼마나 비싸든 상관없어요. 우리 어머니께서 이 새가 말하는 성경 말씀을 듣고 위안받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테니까." 이 청년은 새를 사서 곧 화물로 부쳤다.

며칠 후 아들은 전화를 했다. "제가 보낸 새 받으셨어요?" "그래 받았다." "어때요. 괜찮아요?"

"응, 아주 좋던데. 칠면조 맛이야! "




21 진품명품에 황당한 일

어떤 한 남자가 고대물건의 가치를 가리는 TV 프로그램 <진품명품>에 출연을 했다.

그는 자신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문서를 들고 나와서는 자랑을 했다.

그런데 감정한 결과는 이렇게 나왔다.  “노비문서입니다




22.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젊은 여성이 교회에 나올 때 꼭 배꼽티를 입고 나와는 것이었다. 하도 민망하게 생각한 담임 목사가 그 아가씨에게"자매님, 교회 열심히 나오는 것은 고맙지만 교회 올 때 복장을 좀 점잖게 입고 올 수 없어요?

"라고 하자, "왜요, 목사님, 배꼽티를 입고 왔다고 해서요?"

"그래요" "목사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잖아요.

그래서 난 나의 중심을 보여 드리기 위해서 꼭 배꼽티를 입고 나오는데 목사님은 그것도 모르세요?

하나님이 잘 보이시도록 꼭 깨끗이 씻고 온다구요.




23 .할머니와의 대화

오랜 친구 사이인 두 할머니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나서 한 할머니가 말했다. "바깥어른은 잘 계신감?"

"지난주에 죽었다오. 저녁에 먹을 상추를 캐러 나갔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졌지

뭐유". "저런 쯧쯧 정말 안됐소. 그래서 어떻게 하셨소""뭐 별수 있나? 그냥 깻잎에다 먹었지




24. 헌금 정신

이태원에 가게를 차린 40대 남자가 장사가 되지 않자. 간절히 기도 드렸다. "월수입이 천만원이

되면 200만원을 헌금하겠습니다." 다음달부터 갑자기 장사가 잘 되어 그는 800만을 벌었다.

그러자 사나이는 하나님께 다시 기도를 드렸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나님. 먼저 당신의 몫을 떼어놓고 주시다니".




25. 억울한 죽음

69번 버스가 고가도로에 넘어가다가 뒤집어져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가장 억울하게 죽은 사람 3명을 꼽으면

1.졸다가 한 정거장 더오는 바람에 죽은사람   2.버스가 출발하는데 간신히 달려와 탔던 사람

3.69번 버스를 96번으로 잘못보고 탄사람.




26. 개 같은 목사

개와 오래 생활하다 보면 개의 사람 친화적인 것에 놀랍니다. 방 안에서 왔다 갔다 난리치다가도 주인 품안에 안기면 금방 편안히 잠드는 것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납니다.

종일 주인이 외출하여 있을 때 풀이 죽어 구석에 쳐 박혀 있다가도 주인이 돌아오면 반가워 미칠 듯이 달려듭니다. 사람 같으면 토라져서 달래는데 몇 시간 걸릴 텐데요.

보신탕을 끓여 먹으려고 기르던 개를 나무에 매달아 개 패듯이 패다 개가 줄을 끊고 도망갔습니다. 주인이 집에 돌아가 보니 도망간 개가 집에 먼저 와서 주인보고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목사님이 개의 충성심에 충격을 받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나도 이 개 같은 목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27. 착한 마음으로 남을 돕자

놀부 마누라가 장에 갔다. 다들 놀부 마누라의 고약한 성질을 아는지라 슬슬 피해 다녔다.

그런데 어느 간 큰 거지 한 명이 놀부 마누라에게 오더니 "마님, 한 푼만 줍쇼." 하는 것이었다.

심술기가 발동한 놀부 마누라는 지나가던 똥개 한 마리를 잡아와서는 "네가 이 똥개에게 아버지라고 한번만 부른다면 내가 동전 한 닢을 주지" 라고 말했다.

"한번 부르면 한 닢이라굽쇼? 그럼 열 번 부르면요?" "그럼 당연히 열 닢을 주지."

흥미로운 구경거리에 사람들은 몰려들었고 이 거지는 정말로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하고 열 번을 불렀다. 놀부 마누라는 배꼽이 빠져라 웃고는 약속대로 동전 열 닢을 주었다.

그러자 이 거지는 더욱더 목청을 돋우어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감사해요, 어머니!!"




28. 욕을 해학으로 이기는 길

설교자에게는 설교 전에 종종 마음을 상하게 하는 공격성 글을 받을 때가 있다.

D.L. 무디가 설교 전에 기도를 하고 있었다. 눈을 뜨고 보니, 쪽지가 하나 올라왔다.

광고인가 하고 보았더니, '바보' 라고 쓰인 쪽지였다.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가? 속이 상하고, 화가 날 법하다.

그리고 그 쪽지를 보낸 사람은 지금 얼마나 즐기고 있을까? 그 때 무디가 청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누가 제게 광고를 전달하셨군요. 그런데 이상하게 '내용' 은 없고, '이름' 만 써있네요!"




29.  아담의 착각

하루는 하나님이 아담과 같이 걸어가다가, 아담에게 물었다.

"하와가 맘에 드느냐?" 아담이 물었다. "그럼요, 하와의 피부는 어쩜 그렇게 부드럽죠?"

"그래야 네가 하와를 사랑할 것 아니냐?" 아담이 또 물었다. "하와의 몸매는 어쩜 그렇게 아름답죠?"

하나님이 대답하길, "그래야 네가 하와를 사랑할 것 아니냐?"

아담이 다시 한번 물었다. "그렇지만 하와는 어떻게 그렇게 멍청한 거죠?"

"몰라서 묻니? 멍청해야 하와가 널 사랑할 수 있을 것 아니냐?"




30. 관계자외 출입금지

분만일이 되어 진통을 느낀 아내를 남편이 급히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데려갔다. 남편이 아내를 따라 분만실로 들어가려 하자 의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안됩니다. 여긴 관계자외 출입금지입니다.

그러자 남편이 단호한 어조로 한마디. 보소~, 내가 관계자여




31. 메모지

부부가 대판 싸움을 하고 며칠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루는 남편이 잠들기 전에 테이블 위에 메모를 남겼다.“아침 6시에 꼭 깨워줘.”다음 날 남편이 일어나 시계를 보니

10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메모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6시에요. 일어나세요.”




32. 지옥에 갈 사람은

어떤 농촌교회에 가장 오래된 집사 한 사람 때문에 골치를 앓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설교시간만 되면 잠에 곯아떨어지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늙은 박 집사님을 어떻게 좀 할 수 없어요? 그냥 놓아두면 다른 교인들이 시험 들겠어요.

" 걱정스러운 얼굴로 목사 부인이 남편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다음 주일, 목사님은 강단에 올라가 설교를 시작했고, 그 박 집사는 여느 때처럼 또 잠이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자,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은 모두 일어나세요."라고 조용히 말씀했습니다.

박 집사를 빼놓고는 모두 일어섰습니다. "자, 모두 앉으세요. 이번에는 지옥에 가고 싶은 사람은

다 일어나세요."라고 말씀했는데, 조용조용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에 "일어나세요"만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박 집사는 앞의 말은 듣지도 못하고 자다가 "일어나세요."란 말만 듣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박 집사는 설교시간에 두 번 다시 졸지 않았다고 합니다.  

 


33. 교회 한바퀴 도는 사이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님이 10여년 만에 전에 섬기던 교회에

부흥사경회 인도 차 왔다. 옛날 같이 섬기던 권사님 한 분이 찾아와서 반갑게

맞으며 "목사님 어쩌면 10여년 만에 오셨는데, 옛날 모습 그대로네요.

그래 늙지 않는 비결리라도 있으세요?"  라고 감탄을 했다. 이 목사님 기분이 좋아서

교회 건물을 돌아가는데, 또 다른 권사님 한 분을 만났다.

그 권사님이 목사님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목사님 미국에서 목회하시기 고달프신가보죠?

어쩌면 그렇게 팍삭 늙었어요?" 하며 혀를 찬다. 좋았던 기분이 싹 가신다.

"아니 내가 교회 한바퀴 도는 사이에 그렇게 팍삭 늙나?" 하며 중얼거렸다.


34. 웃기는 놈

어느 대학 강단에서 교수가 강의를 하고 있었다. 교수가 칠판에 필기를 하려고 뒤로 돌아서자 학생들이

마구 웃었다. 교수의 바지 엉덩이 부분이 터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르고 교수는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학생들은 계속 웃었다. 그러자 교수가 화가 나서 하는 말  

"계속 웃는 놈들도 나쁘지만 웃기는 놈이 더 나빠." 하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35. 은총을 주는 차

어느 교회 믿음이 좋은 권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가는귀가 먹었다.

이분이 세 아들이 있었는데 하루는 외출을 하고 싶어 세아들을 불렀다.

권사님 : 큰애야 외출을 하고 싶구나. 네가 나도 태워주겠니?

큰아들 : 예, 어머니, 제 소나타 승용차로 모실게요.

권사님 : 애야, 이 에미더러 소나타고 가라고, 쯧쯧쯧, 못된 놈

         같으니라구  둘째야, 네가 나 좀 태워줘야겠구나

둘째아들 : 예, 어머니, 제 아벨라 승용차로 가세요.

권사님 : 뭐야, 이놈이 망령이 들었나? 에미 나이가 몇인데 아를

         베라 그러는 거야, 이놈아.  아이구, 셋째 너밖엔 없구나.

셋째아들 : 어머니, 제 차는 그레이스 봉고차라 어머니가 타기엔

           힘들 거예요.

권사님 : 조금 힘들면 어떠니. 너 차는 은총(Grace)을 주는 차인데.  




36.  핸드폰보다 기도가 좋은 이유

1.핸드폰은 잘해봐야 한달 200분 무료 통화이지만...

  기도는 한번 가입하면 평생 무료 통화다.

2.핸드폰은 환경에 따라 통화성능이 결정 나지만..

  기도는 이리늄보다 성능이 좋아서 어디서나 가능하다.

3.핸드폰은 공공장소에서 사용하기엔 논치 보이지만..

  기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용 가능하다.

4.핸드폰의 사용내역은 통신회사에 남지만..

  기도의 사용 내역은 하늘나라 책에 남는다.

5.현대의 핸드폰으로는 한사람 밖에 통화할 수 없지만..

  기도는 원한다면, 한번에 수많은 사람을 동시에 통화하고 나눌수 있다.

  (손잡고도 하며, 돌아가며, 통성으로 하며, 통화방법도 각양각색)

6.핸드폰의 침묵은 쓸데없는 상상을 일으키지만...

  기도할 때 침묵은 주님이 알아서 접수하신다.

7.핸드폰의 업그레이드는 사람의 시선을 끌지만..

  기도의 업그레이드는 하나님의 시선을 끈다.

8.핸드폰은 부재중일 때 받는 사람이 없지만..

  기도는 하나님께서 항상 기다리시고 받아주신다.




37.  절대 잊지 않는 십계명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십계명의 순서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이 외우면 잊을 수 없고 순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 십계명 ^^

일 = 일:절 나외에는 다른신을 두지 말라.

이 = 이:상한 우상을 섬기지 말라.

삼 = 삼: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지 말라.

사 = 사:업을 하지 말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오 = 오:만이 아버지 (부모님)을 공경하라.

육 = 육:혈포(대포 일종 살인 무기)로 살인하지 말라.

칠 = 칠:보단장한 여인을 간음하지 말라.

팔 = 팔:로 도적질하지 말라.

구 = 구:차한 변명으로 거짖증거 하지 말라.

십 = 십:원이라도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38.  이브의 질투  

여자들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남편들을 의심할 때가 있다.

아담이 며칠 동안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자 마음이 심란해진 이브.

"당신 다른 여자들이랑 있다가 온 거죠?"라고 이브가 따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마," 아담이 대답했다. "세상에 당신 말고 여자가 어디 있다고 그래."

말다툼은 이브가 잠들었을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결국 누군가가 그의 가슴을 콕콕 찌르는

바람에 잠에서 깬 아담. 이브의 짓인 것을 보고는 "뭐하고 있는 거야?" 아담이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이브가 하는 말, "당신 갈비뼈를 세고 있어요."




39.  낙타이야기

아기 낙타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는 왜 큰발톱 세개가 있어?"

"아가, 그건 우리가 사막을 걸을 때 모래 속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 있단다."

아기 낙타가 다시 물었다. "엄마, 그럼 내 기다란 눈썹은 왜 있어?"

"아가, 그건 우리가 사막을 여행할 때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우리 눈을 보호해준단다."

아기 낙타가 또 물었다."엄마, 그럼 내 등에 큰 혹은 왜 있는 거야?"

"아가, 그건 우리가 사막을 오래 여행할 때 섭취할 양분을 그곳에 저장해 놓는단다."

아기 낙타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모래 속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큰 발톱이 있고,

사막의 뜨거운 햇빛을 막기 위해 긴 눈썹이 있고, 요랜 여행에 양분을 저장하기 위해 큰 혹이 있고..

그런데 엄마!" "왜 아가?" "우린 왜 동물원 안에 있어?"




40. 면접

일류대학을 나온 엔지니어 지망생이 한 회사 면접시험을 보았다.

면접관이 질문을 했다. "회사에서 어떤 대우를 해주길 원합니까?"

엔지니어가 대답했다. "연봉은 1억 이상 원합니다. 물론 스톡옵션도 있겠죠?"

그러자 면접관이 말을 이었다. "거기에 의료보험 전액 면제, 여름 겨울 5주 휴가, 퇴직 후 50% 급여 지급, 사원용 스포츠카 정도면 되겠나?" 놀란 엔지니어가 벌떡 일어서면서 말했다.

"와! 그거 정말이에요?" 면접관이 대답했다. "물론 농담이지. 자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41. 바퀴벌레의 러브스토리

바퀴벌레 한 쌍이 겨울을 맞이하였다. 흰눈이 펑펑 내리고, 그들은 인간들의 영화인 '러브스토리'처럼 그들만의 러브스토리를 만들고 있었다. 남자바퀴벌레가 여자바퀴벌레에게 눈을 먹였다. 그러자, 여자바퀴벌레는 '아! 차가와'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남자바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차에 깔려 죽었다.




42. 진짜 착각 기도 응답

런던에 사는 한 청년이 천주교 신자인 직장동료에게 신부를 고르는 일에 도움을 청했다. "베티와 결혼해야 할지 마리아와 결혼해야 할지 결정을 못 내리겠어. 이럴 때 천주교인들은 어떻게 결정을 내리나?"

"교회에 가지. 가서 고개를 들고 기도를 하면 응답이 온다네." 동료가 대답했다.

이튿날 그 청년이 희색이 만면해서 나타났다. "자네가 말한 대로 해서 응답을 받았네!"

"어떻게 했는데?"  "자네가 다니는 교회에 가서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었더니 거기해답이 있더라구!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위 높은 곳에 황금빛 글자로 쓰여 있더라구."

"뭐라고 쓰여 있던가?"      "'아베 마리아'라고."




43. 욕심쟁이의 최후

어떤 남자가 길을 가다 요술램프를 주웠다. 남자는 책에서 본대로 램프를 문질렀다. 그러자 램프의 요정의 나와 “소원 한 가지만 들어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남자는 고민에 빠졌다. 돈과 여자와 결혼을 모두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모두 불러서 나오는 걸 갖기로 했다. “돈, 여자, 결혼!” 그러자 그 남자는 ‘돈 여자’와 결혼했다.




44. 요즘 맹랑한 아이들

중학생 여자아이들이 버스좌석에 앉아있었다.  그 때 올라 탄 한 아주머니. 경로석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고 옆에 가서 말했다.  "야, 니들은 어른이 왔으면 경로석에서 일어나야 할거 아니야."

아이들 왈 .."아줌마가 노인이어요?"  열 받은 아줌마."이게 어디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 대답이얏!

" 아이들... "그럼 아줌마는 눈 네모 낳게 뜰 수 있어요?"




45. 허준이 어의가 된 진짜이유

허준은 너무도 강직했기에 모함을 받아 어의가 될 수 없었다.

그런 허준이 어의가 된 사연이 있었으니 이것을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어의사 건이라고 부른다.

하루는 허준이 급히 혜민소로 달려가고 있었는데 마침 궁내를 거닐던 선조 와 대신들이 허준을 발견했다.평소 허준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던 선조.

선조:이보게 허준,어디가나.

허준:묵묵 부답인 채 제 갈길만 간다(허준은 한곳에 집중하면 못듣는 습관 이 있다).그래서 선조는 더 큰 목소리로 이렇게 불렀다.

선조:어이∼허준.이때 옆에 있던 신하들 왈:허준을 어의로 임명하랍신다. 이래서 허준은 어의가 된 것이다.




46. 3년만의 고백

내가 그를 짝사랑한 지 벌써 3년이 됐다. 그렇지만 나는 내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고백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친구의 말에 용기를

내어 사랑의 고백이 담긴 편지를 썼다. 그러나 직접 건네줄 기회를 매번

놓쳐 꼬깃꼬깃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에게 편지를 건네주고는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다음날 그에게서 전화가 왔고 내게 만나자고 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그는 내게 말했다. 저... 어제 나한테 2천원 왜 줬어




47. 악어 신발

맹구가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 근데 어느 한 사람이 아주 멋진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이었다.

맹구는 그 사람에게 가서 물어 보았다. "이 신발 정말 멋있네요.~ 못 보던 신발인데 무슨 신발이죠?"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했다. "예.. 이 신발은 악어신발이라고 유명한 것이죠."

맹구는 그 말에 자신도 신고 싶어서 아리조나 강으로 악어를 찾으러 탐험을 갔다.

드디어 악어를 발견한 맹구는 그 악어를 어렵게 때려잡았다.

사투를 펼친 끝에 악어를 잡은 맹구가 악어를 보며 하는 말.. "엉? 이 악어 신발 않신었네??"




48. 씨 없는 수박

시골로 이사를 간 크리스토퍼.  동네 구멍가게에서 수박을 사는데

만나는 사람들마다 밝은 얼굴로 웃는 것이었다. 계산하는 직원도 웃고, 나오면서 보는 사람마다 웃는 얼굴이었다. 크리스토퍼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 바바라에게 말했다.

"이 동네는 마음씨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 만나는 사람마다 웃더라구.".

그러자 바바라가 위아래로 크리스토퍼를 훑어보며 말했다.

"잔소리 말고 바지 앞에 붙은 `씨 없는 수박' 스티커나 떼요."




49. 천국에서

장로님 한분이 죽어서 천국에 가게 되었다.

천국에 가서 보니 어느 집사님 한명이 천국에 왔는데 아주 진수성찬에 후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장로님은 혼자서 생각했다.

'그래 집사도 천국에서 그렇게 잘 대접받는데 장로인 나는 얼마나 대접을

잘 받을까?'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자기에게 와서 음식을 대접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장로님을 천사 한명을 불러 따지기 시작했다.

"왜 나에겐 대접을 안하는 거요" 그러자 천사가 하는말,

" 장로님을 셀프 서비스 입니다" 장로님은 화가 남을 꾹 참고 있다가 얼마 전에 자신 보다 먼저 죽은 목사님

한분이 생각이 나서 천사에게 그 목사님에 대해 물어 보았다.천사가 하는 말?

"목사님은 지금 배달 나가셨습니다."




50. 수의사와 짐승




영국의 어느 장관이 의회에서 국민보건을 주제로 연설을 했다.

그때 한 의원이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장관은 수의사 출신 아니오?

수의사가 사람의 건강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떠들어대는 거요."

엄청 치졸한 인신공격이다. 모든 의원들의 시선이 연단으로 쏠린다.

그러나 장관은 의원의 급습에도 아랑곳없이 이렇게 답변했고

그 순간 의회는 온통 웃음바다로 변해버린다.

"네. 저는 수의사입니다. 혹시 어디가 편찮으시면 아무 때고 찾아오십시오."




51.  무임승차

지하철 경로석에 앉아 있던 아가씨가 할아버지가 타는 것을 보고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깐깐하게 생긴 할아버지는 아가씨의 어깨를 흔들면서 말했다.

“아가씨, 여기는 노약자와 장애인 지정석이라는 거 몰라?”“저도 돈 내고 탔는데 왜 그러세요?”

아가씨가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할아버지가 되받았다. “여긴 돈 안 내고 타는 사람이 앉는 자리야”




52. 사람의 일생

하나님께서 소를 만드시고 소한테 말씀 하시기를

"너는 60년만 살아라. 단 사람들을 위해 평생 일만 해야 한다."

그러자 소는 30년은 버리고 30년만 살겠다고 했다.

두 번째 개를 만드시고 말씀 하시기를 "너는 30년을 살아라.

단 사람들을 위해 평생 집만 지켜라." 그러자 개는 15년은 버리고  15년만 살겠다고 했다

세 번째 원숭이를 만드시고 말씀 하시기를  "너는 30년만 살아라.

단 사람들을 위해 평생 재롱을 떨어라."그러자 원숭이도 15년은 버리고 15년만 살겠다고 했다

네 번째 사람을 만드시고 말씀 하시기를  "너는 25년만 살아라.

너한테는 생각할 수 있는 머리를 주겠다."

그러자 사람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그럼 소가 버린 30년, 개가 버린 15년,

원숭이가 버린 15년을 다 주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은 25살까지는 주어진 시간을 그냥 저냥 살고,

소가 버린 30년으로는 26살~55살까지 일만 하고, 개가 버린 15년으로는 퇴직하고 집보기로 살고,

원숭이가 버린 15년으로는 손자보며 재롱떨며 산다.




53. 할례

한 작은 마을에 천주교 성당과 유대교 회당이 동시에 건립되었다.

성당과 회당은 가까이에 있었고, 신부와 랍비는 차가 필요했기 때문에 차를 공동 구입하여 함께 타기로 했다.

첫 날 차를 함께 타고 와서 길 가운데 세워놓고 둘은 각자 예배를 위해서 들어갔다.

잠시 후 랍비가 바깥을 내다보니 신부가 차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랍비는 뛰어 나가 신부에게 소리쳤다.

"방금 산 차에 왜 물을 뿌리시오? 아직 세차할 때가 안됐단 말이요!"

신부가 말했다. "나는 지금 성수로 축복하는 거요."

그러자 랍비가 잠시 생각하더니 회당으로 들어가서 전기톱을 가져왔다.




54.말조심 해야지요 !!

엄마랑 아이가 교회를 가는데 아이가 장난을 치는 바람에 엄마가 화가 났다.

엄마 순간 화를 내며 "지랄 좀 그만해!"교회에 도착했을 때 마침 목사님이 나와 계셨는데,

목사님은 아이를 머리를 어루만지며 "얘야 교회 오는데 몇 분 걸리니?"

아이의 대답 "지랄하고 오면 20분 지랄안하고 오면 10분여"




55. 베드로와 삼계탕

베드로가 사역을 하다가 몸과 마음이 아주 힘들어져서

몸져누웠다. 한의사가 와서 진맥을 하더니 말했다.

"삼계탕을 먹으면 낫습니다." 그 말대로 했더니 베드로는 거뜬하게 나았다.

사람들이 놀라서 그 용한 한의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죄책감이 치유되지 않아서 닭이 울 때마다 몸과 마음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더군요. 그래서 그 놈의 닭을 잡아먹으면 몸과 마음이 회복될 것 같았지요.."




56. 삭개오의 말

유머는 우리 삶의 윤활유로 사람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고 때로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중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니고데모는 신분이 세리였고 키가 작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몹시 보고 싶었습니다.”

설교를 듣던 성도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설교가 은혜가 있어 그런 줄 알고

더 큰 소리로 설교했다.

“그때 예수님이 니고데모가 사는 동네에 오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보고 싶어 나아갔으나 키가 작아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설교가 이쯤 되자 성도들이 “와”하고 웃어버렸다.

그때서야 목사님은 자신이 실수한 것을 알게 되었다.

당황되고 얼굴도 화끈거렸다. 그렇지만 목사님은 순간 재치를 발휘했다.

“그때 삭개오가 나타나 이렇게 외쳤습니다. 야,그 자리는 내 자리야. 빨리 내려와.”




57. 비결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신 분, 손들어 보세요.”

아무 반응이 없자,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 아무도 없습니까? 손들어 보세요.”

그때, 저 뒤에서 한 할아버지가 손을 들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요청했습니다.

“할아버님,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씀해주세요.”

그러자 나이가 들어서 힘없는 목소리로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응, 있었는데… 다아… 죽었어.”




58. 내가 숨었나이다

새로 오신 목사님이 하루는 교구 성도들을 심방하러 나섰다.

집집마다 심방을 잘 마치고 드디어 마지막 집에 이르렀다.

누군가가 집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한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목사님은 명함을 꺼내 뒷면에

"계시록 3장 20절"이라고 써서 문에 붙여놓고 발걸음을 돌렀다.

계시록 3장 20절 말씀은 다음과 같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그 다음 예배를 마친 목사님이 헌금봉투에서 자신의 명함을 발견 하였습니다.

자신이 적어놓은 성구 아래 또 다른 성경구절이 적혀 있었다.

"창세기 3장 10절". 창세기 3장 10절 말씀은 이렇다.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59. 주차위반

어느 그리스도인이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해 빙빙 돌다가 결국 주차 금지 구역에 차를 세웠다.

그는 차창에다 이렇게 쓴 쪽지를 꽂아 두었다. "저는 이 구역을 15분간 돌았습니다. 여기에 주차하지 않으면 저는 일자리를 잃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얼마 후 돌아온 그는 주차위반 딱지와 함께 꽂혀있는 쪽지를 보았다.

"저는 이 구역을 15년째 순찰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 딱지를 떼지 않으면 제가 일자리를 잃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50. 아담은 한민족 아니다.

어떤 분이 아담이 어느 민족이었는지 아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글쎄요.

잘 모르지만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으로 보아 한국 사람은 분명히 아닙니다. 왜요.

한국사람 같으면 선악과를 먹지 않고 뱀을 잡아먹었을 것입니다.




61. 구두쇠의 기도

어느 구두쇠는 매일기도를 했다. 그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저는 천국에 갈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를 지상에 계속 있게 해주십시오.



62. 천국이 좋다면

인도에 온 선교사 하나가 힌두교 사람에게 열심히 전도를 하였다.

선교사: "형제여, 당신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까?"

그러자 그 인도인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였다. "나는 그 천국에 가지 않으렵니다.

천국에 나 같은 사람이 갈 수 있을 정도로 아직도 여유가 있다는 것은

그 천국이 별로 좋은 곳이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보십시오.

인도의 좋은 곳은 다 영국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천국이 선교사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 영국 사람들이 이미 다 차지했지, 우리에게 차례가 오겠습니까?


63. 도끼 가져와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처음으로 교인 심방을 다니는 중에 어느 두 노처녀 자매가 사는 집에 도착했다.

그들이 사는 집의 정문은 비만 오면 나무로 된 빗장이 물에 불어서 열기가 힘이 들었다. 그런 까닭에 비가

오는 날 손님이 올 경우 그들은 손도끼를 가지고 문빗장을 젖혀야 했다. 그래서 그 마을 사람들은 비 오는 날은 뒷문을 사용해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신임 목사님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목사님은 그 집의 교인 중 한 자매가 동생에게 이렇게 소리 지르는 것을 듣고는 큰 길로 줄행랑을 쳐야 했다. “마르타, 신임 목산데 도끼좀 가져와!”



64. 성경말씀은 정확히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축전이라도 보내자 하고 요금을 절약하려고 "요1 4:18" 라고만 써서 결혼식장으로 보냈다. 불행스럽게 우체국 직원이 1자를 빼고 요 4:18 로 보냈다.

주례가 식장에 도착한 축전을 펴서 "신부의 친구로부터 요 4:18 이라는 축전이 왔습니다.

" 하니 모두들 성경을 펴서 읽었다. 그리고 시부모와 하객들이 모두 까무러쳤다.

거기엔 이렇게 기록돼 있었다. "네게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요한일서 4:18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 "이었다.




68. 내 흙 말고 너의 흙으로 해

2154년 어느 날 지구의 과학자들이 모여 토론을 했다. 그들은 이제 인간은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신은 인간에게 더 이상 필요 없다고 결정을 내렸다. 과학자

대표가 신에게 가서 말을 했다. 신이여, 이제 우리는 당신이 필요 없다고 결정했소.

우린 인간을 복제할 수 있고 생명을 창조할 수도 있게 되었소.

이제 인간에게 떠나서 다른데 가서 사는 게 어떻겠소?

신은 과학자의 말을 주의 깊고 예의 바르게 듣다가 대답했다. 좋다, 그럼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하지.

우리 인간을 만드는 시합을 하면 어떻게나?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

내가 태초에 아담을 창조했을 때와 똑같이 한번 해보게나. 문제없죠! 과학자는 자신 있게 대답하고

흙덩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신이 말했다.    아니지, 내 흙 말고 너희 흙으로 해!




69. 착각

교회는 다니지만 술을 끊지 못한 교인이 있었습니다.

그 교인이 어느 날 술집으로 전화를 한다는 것이 자기가 다니는 교회로 전화를 하였습니다.

마침 그 전화를 담임목사님이 받으셨는데 교인은 술집 주인으로 착각하고 여기 누구 집인 술1상자만 빨리 배달해 주세요. 라고 하더랍니다.

목사님은 그 교인이 자신을 알아보고 무안해 할까봐 모른 척 전화를 끊으려는데 교인이 목사님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하는 말이 아니 목사님께서 술집은 웬일이세요?  라고 묻더랍니다.




70..  장인과 하나님

어떤 부자 집 처녀가 애인을 인사시키려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처녀의 부친과 청년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 장래 계획은 뭔가? 예, 저는 성경학자가 되려고 합니다.

좋지, 존경받고, 하지만 내 딸을 좋은 환경에서 살도록 할 수 있겠나?

하나님께서 저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 결혼반지는 어떻게 마련할건가

제 연구에 온 힘을 바치다 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애들은 어떻게 먹여 살릴 건가 그것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청년이 돌아간 뒤 엄마가 물었다. 그 청년 어떤 것 같아요? 그러자 남편이 어두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직업도 없고, 계획도 없어. 한 가지 더 알아낸 거라면...

저 놈이 나를 하나님으로 생각한다는 거야.




71. 오해

믿음 좋은 며느리가 예수 믿지 않는 시어머니께 늘 핍박을 받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영혼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하고 특별히 찬송가 395장을 부르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식구들이 시어머니께 합심 전도를 하러 갔습니다. 할머니. 예수님 믿으시고 교회 나오세요.

며느님께서 할머니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계세요. 흥! 그것 다 왕내숭 떠는 거예요.

나도 기도하러 갈 때 몰래 따라가 봤는데요,  이 시어미를 이겨 버리자는 노래만 부릅디다.

깜짝 놀란 집사님 한 분이 여쭈어 보았습니다.  무슨 노래였는데요?  거~ 뭐라드라...

“너 시어밀 당해 범죄치 말고 너 용기를 다해 늘 물리쳐라~ 너 시어밀 이겨 새 힘을 얻고~”




72. 거짓말 설교

목사님이 예배가 끝날 무렵 말씀하셨다. 다음주에는 거짓말하는 죄에 대해 설교하려 합니다.

마가복음 17장을 미리 읽고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주 일요일, 설교가 시작되기 전에 목사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가복음 17장을 읽고 왔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읽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자 대부분의 성도들이 손을 들었다. 목사님은 웃으면서 말하셨다.

마가복음은 16장까지밖에 없습니다. 자 이제 거짓말하는 죄에 대한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73.  자식자랑

3명의 할머니가 자식 자랑으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첫 번째 할머니 왈, “울 아들은 교회 목사라우. 남들은 울 아들더러 오~고귀한 분! 그런다우.”

그러자 두 번째 할머니는, “워매~~ 울 아들은 교황이지라.

남들은 내 새끼더러 워매, 워매~~ 고결한 양반! 그런당께롱.

이젠 더 이상 높은 사람은 없지라? 푸히히히….”

이때 마지막 세번째 할머니 왈, “그런데 이걸 우짜노,

울 아들은 숏다리에 곰보, 거기다 뚱보인데  남들은 울 아들을 보면 한결같이 이러는기라.

OH! MY GOD!”




74. 여러 외국 사람들이 타고 있는

비행기가 추락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당황하고 있을 때, 조종사가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3명만 뛰어 내리면 모두 살 수 있습니다."

그러자, 프랑스인이 " 죽음도 예술이다! " 라고 외치며 뛰어내렸습니다.

또, 미국인이 " 세계 최강 미국 만세! " 라고 외치면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지의 한국인이!!!"대한 독립 만세~" 를 외치며!!!

옆에 있던 일본인을 밖으로 내 던졌습니다




75. 기도

어떤 사람이 복권 당첨되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는데 10년 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서 응답이 왔습니다. 응답은 이랬습니다. "야야 복권이나 사놓고 기도해라.




76. 앵무새의 기도

수녀원에 잔소리가 심한 늙은 수녀가 있었다. 그 곳의 한 젊은 수녀는 늙은 수녀의 방에서 신나게 잔소리를 듣고 나오면 늘 문을 쾅! 닫고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늙은 수녀, 빨리 죽었음 좋겠다!' 그런데 방밖에 있던 앵무새가 이 젊은 수녀의 말 을 배워서 문이 콰앙! 하고 닫히기만 하면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저 늙은 수녀, 빨리 죽었음 좋겠다!' 난처해진 젊은 수녀는 다음부터는 문소리가  나지않게 살살 닫았지만 바람에 문이 쾅! 닫히기만 해도 앵무새는 큰소리로 외쳐대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젊은 수녀는 신부를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들은 젊은 신부는 싱긋 웃더니, "거 참 고민되시겠군요. 이러면 어떨까요? 제가 사제관에서 기르는 앵무새가 한 마리 있는데

그 앵무새를 함께 길러 보세요. 짝이 생기면 그 말을 잊을지 혹시 압니까?" 그래서 한 새장에 새 두 마리를 넣고 길렀다. 물론 문을 살살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실수로 문을 콰앙! 닫고 아차! 하는 순간, 얄미운 앵무새가 잊지도

않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저 늙은 수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그러자 신부가 준 앵무새가 하는 말,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77 천벌의 깊은 뜻

골프의 재미에 푹 빠진 목사가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일요일.

목사는 갈등하다가 결국 몸이 아파 교회에 갈 수 없다고 전화를 하고 골프장에 나갔다.

이를 본 천사가 하나님에게 고했다. "저 목사, 혼 좀 내줘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사는 1번 홀에서 힘차게 스윙했다. 볼은 무려 350야드를 날아가 그린 위에 떨어진 뒤 홀 컵으로 들어갔다.

이름하야 홀인원!!! 목사는 흥분했다. 천사도 충격을 받았다.

"아니 하나님! 뭔가 잘못된 것 같네요. 벌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은 미소를 지으며 천사에게 말했다. "한번 생각해 봐라! 목사가 이 일을 누구에게 자랑하겠니?"




78. 결혼한 이유

어느 날 딸이 아버지에게 엄마와 아빠의 결혼에 대해 물었다.

아버지는 시각적인 것을 보여 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결혼식 때 찍은 사진들을 꺼냈다. 그는 앨범을 한 장씩 넘기면서

신부가 교회에 도착하는 장면, 입장하는 장면, 식을 올리는 장면, 퇴장하는 장면,

손님을 접대하는 장면 등을 딸에게 설명했다. “이제 알겠니?” 그러자 딸이 하는 말.

“알 것 같아. 엄마는 저렇게 해서 우리 집에 일하러 온 거란 말이지?”




79.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

클린턴과 힐러리가 자동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다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렀다. 한데 주유소 사장이 고등학교 때 힐러리의 애인이었고, 오랜에 만난 두 사람은 환담을 나눴다. 기름을 다 넣고 출발한 뒤 클린턴이 한 마디 했다. "당신은 나를 만난걸 복으로 알아, 저 친구와 결혼했다면 지금 쯤 시골에서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주고 있었겠지" 그러자 힐러리가 한 말. "그 남자가 대통령이 되었겠죠."




80. 쓸데없는 소망

어느 동갑내기가 결혼을 하였습니다. 아내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여행 타령이었습니다. 스위스, 프랑스……, 그런데 남편은 달랐습니다. 늘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길거리의 여인을 보면 다 자기 아내보다 낫게 보였습니다. 그리도 이혼하지 않고 살았는데 60세가 되어 동갑내기 부부가 친구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하게 되었습니다.

파티가 끝나갈 무렵 천사가 나타나더니 부부에게 생일 축하한다며 무엇이든지 소원을 말하면 생일 선물로 주겠다고 했습니다. 부인이 말했습니다.

"천사님, 제 소원은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세계일주를 하는 것입니다. 세계일주 할 수 있는 비행기표를 주십시오." 그 말이 끝나자 팔락거리며 세계일주 비행기 표 두 장이 부인 앞에 떨어졌습니다. 남편에게 천사가 물었습니다. "그대 소원은 무엇인가? 내가 들어 주겠노라."

그러자 그 남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사님, 저는 늙은 마누라가 싫증이 났사옵니다. 접다 30세 젊은 예쁘고 팔팔한 아내를 주십시오.

30세 젊은 아내와 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천사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소원을 원하고 있구나. 그러나 네가 그토록 원하니

네 소원을 들어 주겠노라"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60세 남편이 90세 된 영감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90세 된 영감 곁에는 60세 된 젊고 팽팽한 아내가 서 있었습니다. 천사가 떠나며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잘 먹고 잘 살도록 하여라."




81.행함이 없는 기도

어떤 마을에 부자 신자가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기도할 때마다 빈민과 걸인을 불쌍히 여겨 그들이 살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해 주시라고 기도했다.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다. 하루는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니 그의 아들이 금고의 열쇠를 달라고 해서 그 이유를 물으니

"다름 아니라 아버지의 그간절한 기도가 성취되는 것을 보여드리고자 해서요."

그러자 그는 "기도를 성취하여 주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야"

하며 아들을 꾸짖자 아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고를 열어놓고 빈민과 걸인을 구제하면서 그런 기도를 해야지요.




82.쳐녀의 방귀

어떤 처녀가 할머니와 택시 합승을 하고 가는데 배가 살살 아파오면서 방귀가 나왔다.

처음 몇 번은 참던 처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처녀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꾀를 내어 유리창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뽀드득' 소리가 날 때마다

방귀를 뿡뿡 뀌었다. 속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 처녀를 빤히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소리는 그렇다 치고 냄새는 어쩔겨?




83 .지옥에 간 빌게이츠

빌 게이츠가 죽어서 하늘에 갔다. 천사가 그에게 말하길

"빌, 당신은 선행도 했고, 악행도 했군요. 자, 당신에게 가고 싶은 곳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 주겠소."

그래서, 빌이 지옥을 구경했다. 그는 화씨 80도(섭씨 26.7도)의 기온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이 눈부신 해변을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가 천국을 구경해 보니, 하프와 노래 소리 그리고 찬양 같은

것들로 정말 좋았다. 그래서 그는 천사에게 지옥에 가고 싶다고 했다.

약 1주일 후, 빌을 보기 위해 지옥에 내려간 베드로는 악귀들에게 얻어맞고 있는 빌을 발견했다.

빌이 천사에게 말했다.  "아름다운 여자들과 멋진 해변은 다 어떻게 된 겁니까?"




84 총알 택시운전사가 천국에 간 이유

신자이기는 하나 매우 방탕하게 살았던 총알택시 운전사와 목사님이 천국에 가게 되었다.

목사님은 자신이 총알택시 운전사보다 훨씬 칭찬을 들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하나님은 총알택시 운전사를 더 칭찬하셨다.

기가 막힌 목사님이 그 이유를 물어보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늘 사람들을 졸게 했지만 이 사람은 늘 기도하게 했느니라."




85 성경에 관하여

독실한 기독교인이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가고 있었다.

긴 비행 동안의 지루함을 달래려고 기독교인은 성경책을 펼쳤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사내가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이봐요. 그 책에 써진 얘기를 다 믿수?" "그럼요, 이건 성경이에요."

"그럼 그 고래 안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도 아슈?"

"예, 요나였죠. 알아요." "고래 뱃속에서 사람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슈?"

"글쎄요... 나중에 천국에 가면 물어보죠, 뭐." "그 친구가 천국에 없으면 어쩔꺼유?"

그러자 기독교인은 다시 성경책을 펴며 대답했다. ."그럼 아저씨가 물어보시면 되겠네요."




86 간절한 기도

표류당한 두 사람이 구명보트에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망망한 바다뿐이었 다.

한 사람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오! 하나님! 만약 저를 구해 주신다면 저의 재산의 절반을 바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희망이 보이 질 않았다. 오히려 풍랑만 더 심할 뿐이었다.

[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신다면 제 재산의 3분 의 2를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다시 아침이 되어도 구원의 손길은 닿지 않았다. 한 사람은 다시 간절한 기도를 시작하였다.

하나님, 제발 저의 이 간절한 기도를 받아주십시오. 제 목숨을 구해주신다면 저의 재산....

그때 다른 한 사람이 소리쳤다. 이봐, 거래를 중단해! 저기 섬이 보여!




87. 최고의 인생, 최악의 인생

최고의 인생: 미국 연봉 받고, 독일처럼 일하고, 프랑스 요리를 먹고,

              영국 집에   살며 일본 여자를 아내로 얻는 인생

최악의 인생: 북한 월급 받고, 한국처럼 일하고, 영국 음식을 먹으며,

              일본 집에   살면서 한국 남자를 남편으로 얻는 인생




88. 예수님의 얼굴

여름성경학교에 유치부 어린이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어린이 여러분 예수님의 얼굴은 항상 웃는 얼굴이시구요~

예수님의 얼굴은 사랑이 넘치는 얼굴이에요~ 어린이 여러분도 예수님 얼굴을 닮아야 해요"!

이때 어린이 하나가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 저는요 아빠 얼굴 닮았다고 엄마가 좋아 했는데요~

바꾸면 엄마한테 혼나면 어떻게 해요?




89.악처에게 시달린 반세기

사탄이 나타나자, 노인 한 사람만을 남고, 모두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러자 사탄은 그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사탄: 그대는 내가 무섭지 않은가?

노인: 천만에!

사탄: 내 말 한 마디로 그대는 죽을 수 있다.

노인: 잘 알고 있지.

사탄: 그대는 어찌하여 내가 무섭지 않다는 말인가?

노인: 나는 그대의 누이하고 결혼해서 50년도 더 되게 함께 지내왔다네.




90.  뛰는 놈 위 나는 놈

사냥꾼 3명이 모닥불에 둘러앉아 저마다 자기 개를 자랑하고 있었다.

첫 번째 사냥꾼이 말했다. "글쎄, 우리 개는 어찌나 영리한 지 고기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면 절대 사오질 않는다구!"  그러자 두 번째 사냥꾼도 지지 않고 자랑을 해댔다.

"치, 말 마슈. 우리 개는 말   요, 담배를 사러 보내면 내가 좋아하는 담배가 아닌 것은 사오지도 않아요."

그러자 세 번째 사냥꾼이 가소롭다는 듯 두 명을 쳐다보더니 하는 말,

"뭐 별것 아니군. 내 개는 바로 여러분의 개들이 물건을 사러오는 그 상점을 경영하고 있다 구...!"




91. 거짓말 탐지기

수뢰혐의로 몇 은행장과 국회의원이 조사를 받았다.

이례적으로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되어 조사가 진행 중이었다.

XX 은행장이 진술한다.------> "오억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거짓말탐지기가 '삐-' 하였다.

결국 XX 은행장은"사실은 십억을 받았습니다." 하고 실토 하였다.

YY 은행장의 차례였다. ------> "십억을 받아서 오백만원만 착복하고 나머지는 은행수익으로 돌렸습니다. 그러자 탐지기가 '삐-'하였다. 결국  YY 은행장은 ------> "제가 다 먹었습니다." 하고 실토하였다.

이번에는 국회의원 차례였다. 사실은 -------> '삐---'




92. 산수 이야기

달봉이는 두부 장수 세 째 아들이다. ( 중요한 함정)

하루는 학교에서 산수 시간에 선생님이 달봉이에게 질문을 한다.

선생님: "달봉이 학생, 쟁반위에 사과가 다섯 개 있는데, 달봉이가 세 개를 먹으면 몇 개가 남지요?"

달봉이: "아, 그거야 세 개가 남는 거 아닙니까? 선생님도 참"

어이가 없는 선생님,

선생님: "야 이놈아 다섯 개에서 세 개를 먹으면 두 개가 남지, 왜 세 개 가 남냐."

달봉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아닌데, 우리 아빠가 먹는 게 남는 거라고 그랬는데~~"




93. 충성테스트

어느 주일 아침, 큰 교회에는 사람들이 넘쳐나도록 모여들었다.

목사가 설교를 막 시작하려는 순간, 트렌치코트 차림의 두 사내가 교회에 들어섰다.

한 사람은 뒤쪽에 남고 다른 한 사람은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이윽고 두 사람은 코트에서 기관총을 꺼냈다. 그리고는 중앙에 나와 있는 사내가 소리쳤다.

“예수를 위해 총탄을 맞을 각오가 된 사람만 자리에 남아요!” 당연히 신도들은 자리를 비웠고,

합창단과 부목사도 뒤따라 나갔다. 남은 사람은 순식간에 20명 정도로 줄었다.

목사는 설교단을 지키고 있었다. 사내들은 총을 치우고는 목사를 보고 점잖게 말했다.

“위선자들 죄다 사라졌습니다. 이제 예배를 보시지요.”  




94. 깨어 있으라.

물고기는 잠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다. 죽을 때도 눈을 뜬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물고기 특유의 현상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준다. 초대교회 시절,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로마 외곽의 지하 동굴로 도피했다.

이곳은 원래 시체를 매장하는 곳이었다. 로마는 장례지를 신성불가침한 곳으로 여겼기 때문에 접근을 꺼렸다. 결국 기독교인들은 10대에 걸쳐 300년 동안 이곳에서 생활했다. 이곳이 바로 카타콤이다. 사람들은 카타콤 벽면에 물고기 그림을 새겨 넣었다.

그곳에 물고기를 그려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자나 깨나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메시지였는지도 모른다.




95. 축구 게임

악마가 천사에게 와서 말했다. "어이, 우리 지옥 식구들과 너희 천당 친구들과 축구 한게임 하자구!"

그러자 천사가 한참을 생각하고는 말했다. "좋아. 하지만 우리가 이길걸? 전세계 슈퍼스타는 다 천당에 있잖아?"   "낄낄낄.. 과연 그럴까? 악질 심판은 다 지옥에 있거든?"





96. 천국에 가려면…

교회학교 선생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만약 집과 자동차를 팔아서

그 돈을 몽땅 교회에 준다면 천당에 가게 될까요?” 아이들은 일제히 “아뇨!”라고 대답했다.

“만약 매일같이 교회 청소를 한다면 천당에 가게 될까요?” 아이들의 답은 역시 “아니요!”였다.

“그럼 동물들에게 잘해준다면 천당에게 가게 되는 걸까요?” “아뇨!”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천당에 갈 수 있는 거죠?”

그 때 다섯 살 된 녀석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죽어야죠!”  




97.  가는 말이 고와야

어느 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길을 가고 있는데, 할머니가 다리가 아파 왔다.

“영감, 좀 업어 줘.” “이 할망이 미쳤나! 으이구, 업혀라!!”

“고마워! 조금 무겁지?” “당연하지. 얼굴은 철판이지, 머리는 돌이지, 간은 부었지.”

잠시 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업어주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가볍지?” 그 때 할머니의 결정적인 한 마디. “당연하지. 골은 비었지, 허파에 바람 들어갔지, 양심은 없지.”




98. 어린 진호의 아빠

선생님: 진호야, 네가 천 원을 가지고 있어. 그런데 너의 아버지께 천 원을 더 달라고 했어.

그러면 모두 얼마가 될까?

진호: 천 원이요.

선생님(맥이 빠지면서): 너는 산수를 모르는구나.

진호(맥이 빠지면서): 선생님은 저의 아버지를 모르시는군요.




99. 지나친 친절

신입사원이 문서 절단기 앞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도와줄까?” 선배가 물었다. “네. 이 기계는 어떻게 작동하는 거죠?”

“간단해.” 선배는 웃으면서 말을 마친 후, 그녀의 손에 들린 두꺼운 서류 뭉치를 가져다가 문서 절단기에 넣었다. “고맙습니다.” 라며 그녀가 하는 말, “그런데 복사된 서류는 어디로 나오나요?”



















부흥(復興)


부흥(復興)

하바국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 성경적 부흥은 사이즈(size)와 숫자(member, number)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죽은 심령이 살아나는 것이어야 한다.
화인 맞았던 양심이 회복되는 것이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부흥이란 "성령과 동행하는 것이다(Keep in steps with the Spirit)" - 패커(James I Packer)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소생시키는 일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하나님의 교회에서 멀리 옮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마음에 찾아오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주권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04-24-2022(주일) 주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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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대부흥
자료출처 / http://www.1907reviv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66


현대인의 성경 /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그 놀라운 일을 우리 시대에 다시 행하시고 분노 중에서도 자비를 베푸소서.

새번역 /
주님, 내가 주님의 명성을 듣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놀랍니다. 주님의 일을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시대에도 알려 주십시오. 진노하시더라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공동번역 /
야훼여, 우리가 당신의 명성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야훼께서 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그 일을 보여주십시오. 아무리 노여우셔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NIV /
LORD, I have heard of your fame; I stand in awe of your deeds, O LORD. Renew them in our day, in our time make them known; in wrath remember mercy.

KJV /
O LORD, I have heard thy speech, and was afraid: O LORD, revive thy work in the midst of the years, in the midst of the years make known; in wrath remember mercy.

NASB /
LORD, I have heard the report about You and I fear O LORD, revive Your work in the midst of the years, In the midst of the years make it known; In wrath remember mercy.

에베소서 2:13-22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사도 바울의 부흥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교회의 양적 성장과 질적인 성숙을 간절히 기도하며, 진심으로 염원한다.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올 때에 교회는 충만한 사랑을 체험했다.

사도행전에 소개된 초대교회 그 모습대로 수천 명이 모이기도 하고, 때로는 핍박 속에서 흩어지기도 하였지만, 교회가 날마다 든든히 세워져 나갔다.

말씀으로부터 죄인의 심령에 울려 펴지는 감동, 이는 성도들이 흔들림 없이 신앙으로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으면, 말쟁이의 수사학에 불과하다.
생명의 원천이 되는 말씀이 증거되며, 심령에 부흥이 일어나서 회개하고 변화를 받으며, 감사와 찬양과 성도들 사이의 유무상통이 충만하기를 기도하는 심정이다.
우리는 전 세계 모든 교회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평안하고 행복하며 만족을 얻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평양 장대현교회의 회개 기도와 여의도 광장에서 수백만 명이 운집하던 것만이 부흥이라고는 누구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성도가 홀로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면서 홀로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누는 모습도 소중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우리는 말씀의 부흥, 기도 생활의 감격, 경건의 성장, 전도의 열매를 맺고 선교하여 개척교회를 세우는 일들을 모두 다 부흥이라고 말할 것이다.

오순절 날에 성령의 부으심이 있었고, 엄청난 숫자가 회개하고 돌아왔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부흥이다.
하지만 이런 부흥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질문이 남아있다.
부흥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어나지만, 사람의 참여와 역할에 대해서는 각자 견해가 너무나 다르다.

영국 신학자 이안 머레이는 『부흥과 부흥주의』에서 오늘날의 복음적인 교회들이 이해하는 부흥은 세 가지 견해와 입장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첫째, 부흥이라는 것을 평소에 진행하는 갱신 혹은 지속적인 변화로 이해하는 관점

어떤 특별한 날이나 어떤 초자연적인 특정한 현상만이 부흥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화란 개혁교회가 취하는 입장이고, 아브라함 카이퍼가 『성령의 사역』에서 주장한 견해이다.
신약 시대는 이미 전체적으로 지속적인 성령의 사역이 있으므로 어떤 특정한 사건으로 부흥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령은 이미 오셨고, 충만하게 지속적으로 (once for all) 역사하고 있는 해석이다. 

둘째, 부흥은 일시적이며, 특별한 현상으로 이해하는 관점

부흥을 특별한 사건적인 관점으로 보는 입장인데, 여기에서도 약간 차이가 나는 두 가지 흐름들이 있다.

1. 부흥은 사람의 순종에 대한 조건적 축복이다라고 해석하는 입장이 있다.
챨스 피니 (Charles G. Finney, 1792-1875)의 영향으로 인해서 확산된 부흥운동이 바로 이러한 전형이다.
사람이 열정적으로 노력하면, 특별한 초자연적인 부흥을 체험할 수 있다고 믿는다.

2. 회개와 개인적인 거룩함을 갱신하는 노력을 하면, 부흥으로 연결된다는 입장이다.
1950년대에 요나단 고포트와 던컨 캠벨이 주장했는데, 근거로 삼는 성경이 역대하 7장 14절이다.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에서 고칠지라"는 말씀이다.

이와 같은 부흥의 정의는 알미니안주의에 근거한 부흥주의라고 지적할 수 있는데, 이들은 완전하고도 철저한 순종을 다짐하게 되면, 축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부흥의 상급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셋째, 부흥은 성령의 주권적인 부으심으로 이해하는 관점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이들보다는 죄인들의 구원에 관련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가르치는 입장이다.
이 견해는 가장 전통적인 부흥에 대한 인식이며, 존 오웬, 요나단 에드워즈, 마틴 로이드 존스, 패커, 이안 머레이 등이 취한 입장이다. 앞에 언급한 첫 번째 부흥에 대한 해석과는 달리, 세 번째 견해는 어떤 특별한 현상이나 사건을 통해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간섭을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사도행전을 면밀하게 살펴본다면, 진정한 부흥은 교회의 일상적인 체험과 전혀 다르지 않으며,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말씀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심령에 부어지는 은혜로만 회심이 가능하다.

하지만, 세 번째 해석에서는 부흥이라는 체험과 현상이 일상적인 신앙생활과 동일한 종류이지만, 그 정도와 깊이가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부흥은 성령의 부으심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의 회심이 일어나고, 일상의 신앙생활보다는 훨씬 더 영적인 성숙이 깊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깊은 확신이 주어지고, 보다 강렬한 체험을 갖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각으로 압도당하게 된다.
1907년 한국 대부흥 운동을 생각하게 될 때에  세 번째 견해의 부흥 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교회부흥과 목회 성공은 세상적인 평가와 세속적인 방법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도 세상에서의 권세, 많은 재물과 물질적인 풍요로움,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명예와 인기, 육체적으로 즐기는 쾌락과 오락에서 과히 멀리 떨어질 수 없다.
이런 것들은 전혀 영원한 기쁨의 원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일생 동안 매달려 살아간다.
교회는 이 땅 위에 있는 것들로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없음을 명확하게 가르치는 곳이다.
세상에 있는 것들과 눈으로 보고 바라는 것들을 통해서는,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세상에 있는 것들로는 만족함이 없음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롬 8:6)
인간의 본질과 삶의 진실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다.
말씀을 제시하여 어두운 마음에 빛을 주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부자든지, 권력자든지, 저명한 사람이든지, 깊은 공허와 미래에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사람은 누구도 없다.
모든 인간은 죄악에 뒤섞여 있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없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여 요셉처럼 형통케 하심을 얻도록 성도들을 인도하여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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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1. 평양대부흥 http://www.1907reviv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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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개인의 가치를 점점 더 중시하는 ‘슈퍼 개인’의 시대가 왔다.
끈끈한 정보다 느슨한 연대를 선호하는 사회로 흐르고 있다.
메타버스의 등장으로 ‘부캐’(부캐릭터)의 활약이 주목받고 있다.
주요 트렌드 서적에 나타나는 ‘2022년 트렌드’의 주요 흐름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담아낼 선교적 과제는 없을까.

김선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실천·선교신학 교수는 최근 국내 4대 트렌드 서적에서 ‘7가지 선교적 고려 사항( 참조)’을 제시했다.

트렌드 코리아(김난도),
라이프 트렌드(김용섭),
트렌드노트(생활변화관측소)
트렌드모니터(엠브레인)이다.


김선일 교수는 27일 “최근 2년 동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촉발된 생태계 위기와 함께 획기적인 기술 발전으로 급격한 트렌드 변화를 겪고 있다”면서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절대 변하지 않는 복음이 어떻게 재발견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고 연구 취지를 설명했다.

올해 가장 두드러진 트렌드 가운데 하나는 ‘슈퍼 개인’ 시대의 도래다.
나노시대, ‘나중시대’(나 중심의 시대)라고도 한다.

김 교수는 “신앙 안에서 교회가 개인주의의 위험성을 극복하면서도 건강한 개인주의를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교회 안에서도 개인 특성과 취향에 따른 모임을 성도들이 주도하게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김 교수는 제안했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진화하는 관계’라는 또 다른 트렌드와 연결되기도 한다.
혈연 지연 등으로 얽힌 끈끈한 정보다는 느슨하게 연결된 만남과 모임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1인 라이프 스타일이 확산하면서 가족이나 회사, 심지어 교회까지 느슨한 연대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비혼자나 이혼 가정 등 새로운 가족을 품고 섬기면서 믿음 중심의 건강한 공동체로서의 본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타버스의 가속화’는 실제 내 모습을 뜻하는 ‘본캐(본캐릭터)’보다 가상의 내 모습인 ‘부캐’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든다.


“메타버스(metaverse)” 또는 “확장 가상 세계”는 “가상,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 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신조어로 다.


김 교수는 ‘부캐를 통한 은사의 발견·활용’ 가능성을 높게 봤다.
가상세계 속에서 여러 자아의 계발을 통해 이를 선교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어떤 목회자는 부캐로 연극배우가 되어 문화선교사로 활동하는 식이다.

이밖에 ‘생태적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생명 돌봄을 중시하는 기독교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또 ‘세계관과 내러티브’가 중요한 콘텐츠 능력이 될 전망인데, 기독교에서는 성경 자체가 내러티브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성경적 세계관을 담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 또한 중요한 선교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김 교수는 “여러 분야에서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면서 “오히려 지금이 선교적으로 의미 있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됐다”고 말했다.

















Hebrew



The Most Deeply Sacred Number

Pretty much anywhere you look in the Bible you find seven. The number seven is mentioned over 700 times in Scripture. The Book of Revelation alone contains dozens of sevens – churches, bowls, lamps, seals, and the list goes on. In ancient Israel, the number seven was thought to be a symbol of divine perfection. As opposed to other numbers which derive their power from human endeavors, seven comes from God.

The Sevenfold Spirit of the Lord

What evidence is there for God’s identity being related to the number seven? If we look at the famous “branch of Jesse” prophecy in Isaiah chapter 11, we find that the Holy Spirit will come to rest upon the Messiah in seven distinct facets:

1. “The Spirit of the Lord shall rest on him רוּחַ יְהוָה ruaḥ adonai
2. The spirit of wisdom רוּחַ חָכְמָה ruaḥ hohma
3. And understanding וּבִינָה ruaḥ bina
4. The spirit of counsel רוּחַ עֵצָה ruaḥ etza
5. And might וּגְבוּרָה ruaḥ gevura
6. The spirit of knowledge רוּחַ דַּעַת ruaḥ da’at
7. And the fear of the Lord” (Isa. 11:2) וְיִרְאַת יְהוָה ruaḥ yirat adonai

Discover the Power of Hebrew

Collectively, these attributes form the sevenfold essence of the Holy Spirit. When read in translation, this might seem like just a list of abstract qualities. But in the original Hebrew, the words form a spiritual package, exploding with power. When you can read the Word of God in the original Hebrew, new details suddenly burst with meaning. Enroll in our online Biblical Hebrew course today and allow yourself to appreciate the Bible in its full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