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브리트 밀라)



할례의식(브리트 밀라)

이스라엘 갈릴리 북쪽에 사는 남편 친구의 손자가 할례를 한다고 해서 찾아갔다.
할례는 유대인 아기가 태어난지 8일 만에 행해지는 일로 그날 이름이 지어진다고 한다.
난지 30일째 되는 날에는 피카돈 하벤 (첫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식) 을 하게 되는데 코헨일 경우에는 하지 않는다.
이 아기도 코헨이라 하지 않는다.

오늘 이 아이에게 주어진 이름은 쉴로이다.
아버지가 예식 중에 떠오른 이름이라 한다.

알코올로 칼을 소독하고 반창고와 기저귀를 준비한다.
잠시후 아이의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할례를 시작한 것이다.

할례집행자는 계속해서 기도문을 낭독하며 할례를 집행한다.
아버지가 아이를 안고 기도문을 낭독하면 청중들이 따라 부른다.
끝나고 나서 코에 하다스라고 하는 풀을 대고 냄새를 맡는다.
가끔 청중들은 원숭이 같은 소리를 내면서 효과음을 낸다.

할례를 통해 하나님과 언약의 민족임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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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트 밀라 Brit Milah 할례

구약성서 / 창17:1~14, 레 12:3에 의해 유대인의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8일에 행하는 할례의식.

보통 할례는 시나고그(synagogue)에서 모헬(Mohel, 브리트 밀라 의식을 치루도록 훈련 받은 유대인)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관례이나, 집이나 다른 적당한 장소에서 진행될 수 있다.
유대 달력에 따라 계산하여 태어난지 8일째 되는 날 행해진다.
8일째 날이 안식일이나 명절이라도 상관없이 행해진다.
보통 전통적으로 아침에 진행되지만, 낮에 어느 때든지 가능하다.  

https://filiusdei.tistory.com/51


* 바르 미츠바 (성인식) Bar/Bat Mitzvah


Bar는 아들, Bat는 딸, Mitzvah는 계약을 뜻한다.

유대법에 따라 남이들이 13세, 여아들이 12세가 되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성인이 된다.

구체적으로
1) 자신의 행동에 도덕적인 책임을 지게 되고,
2) 미냔(Minyan, 공동기도, 대표기도)에 참여할 수 있고, 토라를 읽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지며,
3) 개인 재산을 소유할 수 있고,
4) 유대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으며,
5) 토라의 613개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
6) 이전에 지킬 필요가 없었던 특정한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식처럼 성인식도 기념 선물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통적으로 선물은 보통 종교적이나 도덕적인 내용의 책, 종교적 물건, 필기구, 예금증서(아이의 대학 학자금으로 보통 쓰인다), 상품권 또는 현금이다. 최근에는 현금이 보편화되었다.

성인식에서는 또한 부모님으로부터 첫번째 탈리트(tallit)를 받는다.

 

* 후파 Huppah

Chuppah, 유대인 신부와 신랑이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그 아래 서있는 차양이다.
네 개의 나무 기둥과 천으로 구성되어 있고, 신랑과 신부 친구들이 손으로 들고 결혼식을 진행한다.
후파는 신랑과 신부가 함께 만드는 가정을 상징하는데, 유대인의 혼례가 후파가 없어도 유효하다고 생각되지만,
여전히 후파는 례의 기본 조건이라고 여겨진다.

특히 유대교 정통파(Orthodox Judaism)의 경우 후파의 위쪽은 하늘로 뚫려 있어야 한다.
예식이 실내에서 진행되는 경우 때때로 특별한 구멍이 만들어 지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하시딤(Hasidim)들은 예식을 실외에서 진행하는 것을 선호한다.

후파는 천으로 된 차양과 네 개의 나무 기둥으로 유대인의 가정을 상징한다.
네 방향이 모두 뚫려 있는 것은 손님들에 대한 환대를 상징하고,
가구들이 없는 것은 가정의 기본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영적인 의미로는 후파로 덮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힌다.
키파(kippah)가 창조주를 기억하게 한는 역할을 한다면,
후파는 결혼식과 혼인제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후파에 들어가기 직전에 신랑은 신부의 얼굴을 바데켄(badeken)이라고 알려진 베일로 덮는데,
이것의 기원에 대해서는 후파가 정확하게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 속에 휩싸여 있다.
후파가 신부의 얼굴을 덮는다는 의미라는 주장이 있다.

신랑이 후파에 먼저 들어가는데, 이는 부부를 대표하여 가정의 주인을 상징하며,
신부를 맞이하여 그녀에 대한 신랑의 새로운 책임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 케투바 Ketubah


유대교의 혼인계약서로,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결혼에서 없어서는 안될 것으로 여겨진다.
내용은 신부에 대한 신랑의 권리와 책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보통 집 안에 걸어두는데, 이는 매일 서로에 대한 서약과 책임을 상기하기 위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고대에는 랍비들이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케투바를 시작했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나 장인에게 지불했던 결혼지참금(mohar)를 대신하게 되었다.
즉 이혼이나 남편의 사망으로 인해 결혼 관계가 중지되었을 때 아내에게 지불되어야 하는 금액을 보장하는 메카니즘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지참금(mohar)과 케투바(ketubah)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과부와 고아에 대한 예수의 관심을 기술하는 신약성서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으로, 예수의 시대에도 부모나 남편이 없는 이들은 사회적인 약자로, 보호 받기가 어려운 형편이었음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전통적인 유대인의 혼인식에서는 케투바에 두 증인이 서명을 하며, 후파 아래에서 큰 소리로 낭독된다.
가까운 친족이나 친구, 먼 친척이 케투바의 증인으로 초대되는데, 이는 영광으로 생각된다.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로 작성되는데 이는 케투바가 표준화되었을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언어이기 때문이다.

* 헤브라 카디샤 (Chevra kadisha, Hevra kadisha, burial society)

유대인이 사망하면 유대인 남자들과 여자들로 구성되는 조직(장례위원회?)으로,
이들은 매장하기 까지 Halacha 유대법에 따라 장례를 준비하며,
고의적인 또는 고의적이지 않은 모독(冒瀆)에서 보호하기 위해 시신을 지키며, 시신을 닦고(Taharah), 그 후에 수의(타크리킴, Tachrichim)을 입히는 의례를 수행하며 지켜보는 역할을 한다. 타크리킴은 100% 아마포(linen)으로 만든 간단한 하얀 색 옷이다.

헤브라 카디샤의 임무는 훌륭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는 죽은 자를 돌보는 것은 유대인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부검을 허락하지 않으며, 화장 또한 금지하고 있다.
이는 다음의 성서 구절 때문인데, 부활을 믿기 때문이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사 26:19)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37:13)
유대인들은 누구나 감람산의 공동묘지에 묻히기를 원하는데,
이는 메시아가 올 때 열린다는 황금문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석관은 모두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있다.
유대인들이 화장을 법률로 금지하는 것과 함께 이는 모두 부활을 믿기 때문이다.

감람산은 해발 820m 높이로 예루살렘보다는 100m 정도 높고 안식일에 이동하기 알맞은 예루살렘에서 1 Km 정도의 거리에 있다.
감람산의 북쪽은 가장 높은 지대여서 예루살렘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해와 요르단까지 볼 수 있기 때문에 전망산이라 부른다.




스마트 목회


스마트 목회

http://christiantoday.us/27573

설교 내용이나 기타 콘텐츠의 변화보다는 전달하는 과정과 표현 방법 등에서 최신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목회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는 ‘커뮤니케이션’이다.
교회에 와서만 들을 수 있는 내용, 체험, 정보를 다양한 스마트 기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고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팬데믹으로 인한 대면예배가 불편해지면서 ‘스마트 목회’는 더욱더 눈길을 끌었다. 

소위 스마트 목회용 장비로 알려진 제품들을 살펴보면, 값비싼 스마트 보드에서부터 고가의 라이브 방송 장비까지 어지간해서는 엄두를 내기 힘든 경우가 많다.

‘소통’에 중점을 둔 다섯 가지 스마트 목회법이 있다. 

첫째, 무료 이메일 마케팅을 활용하라


팬데믹 이후 소통을 위한 다양한 마케팅이 주목받고 있다.
그중에서 이메일 마케팅은 다시 한번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재택 근무자가 늘면서 이메일 마케팅은 소통을 위한 최고의 도구 중 하나다.
특히 이를 목회에 활용한다면 바쁜 현대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이메일 마케팅 서비스를 무료로 쓸 수 있는 것들도 많다.
무료 이메일 플랫폼은 여러 서비스가 있지만 그중에서 센딩 블루는 여러 장점을 갖추고 있다.
센딩 블루는 무료와 유료 두 가지 버전을 고를 수 있고, 무료 버전은 하루 최대 300개 이메일을 보낼 수 있다.
또한 보낼 수 있는 구독자 수를 제한하지 않기 때문에 타 서비스 대비 장점으로 통한다. 

둘째, 컴퓨터 캠만 있다면 온라인 성경 공부 가능 


노트북을 사용한다면 컴퓨터에 내장된 캠이 있을 것이다.
이것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무료로 라이브 방송이 가능하다.
바로 온라인 회의 도구인 줌(ZOOM)을 활용하는 것이다.
줌은 무료 가입의 경우 최대 100명의 참가자를 받을 수 있다.
또한 40분 내 무제한 미팅이 가능하며, 개인 또는 그룹 모임도 할 수 있다.
여기에 줌 화이트보드라는 기능을 통해 최대 25mb 용량을 기본으로 제공한다.
따라서 하루 5분 내지, 10분 정도로 10명 내외 인원으로 구성된 성경 공부방 또는 훈련방 등을 줌을 통해 진행한다면 상당히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셋째, 포토샵 할 줄 몰라도 OK. 캔바에서 무료로 편하게 


카카오톡 또는 페이스북에 올릴 말씀 배너나 온라인 전도지 등을 만들고 싶지만, 포토샵에 대한 지식과 디자인에 대한 감각도 없다면? 이런 경우 잘 만들어진 디자인 위에 글자만 바꿔 사용할 수 있는 무료 디자인 템플릿을 만나보자.

대표적으로 캔바(CANVA) 플랫폼은 다양한 플랫폼과 폰트, 사진, 동영상 지원 기능까지 갖춘 만능 디자인 서비스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라 전하고 싶은 문구나 말씀을 담고 다운로드받으면, 여느 디자이너가 만든 품질 못지않은 포스터, 디자인 배너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미국 거주인 경우, 선택한 디자인에 대한 인쇄 서비스까지 누릴 수 있어 도움이 크다. 

넷째, 종이 주보 대신 앱으로 대신해볼까?


목회하다 보면 적지 않게 나가는 비용이 많다.
그중에서 매주 종이 주보 인쇄도 만만치 않다.
이럴 때 종이 주보 대신 앱으로 예배 순서와 교회 소식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교회 재정도 넉넉히 않은 터에 앱 개발은 엄두를 내기 힘들다.
미주 한인교회 중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미션21(MISSION21.COM)의 스마트굿뉴스 서비스를 만나보면 좋다.
스마트굿뉴스의 경우 주보 소식을 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무료 푸시메시지를 발송할 수 있다. 또한 원하는 이미지로 꾸밀 수 있어 도움이 크다. 

문의 : global.mission21.co


다섯째, 잘 쓰면 보배. 구글 무료 서비스


스마트 목회를 생각할 때 구글이 제공하는 다양한 무료 서비스를 빼놓을 수 없다.
잘 쓰면 보배 그 이상의 기능과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먼저 구글 캘린더, 구글 독스(DOCS)는 상당히 유용한 툴이다.
각종 교회 행사와 교인들의 생일, 그룹별 모임 내용을 구글 캘린더를 활용해 사용하면 스마트폰과 컴퓨터, 교회 홈페이지 등에 연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구글 독스는 설문조사 기능뿐만 아니라 쉽고 빠르게 쓸 수 있는 문서 편집 기능 능도 누릴 수 있다.
또한 구글 드라이버 문서 내 자료 검색과 함께 오프라인에서도 일부 작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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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ristiantoday.us/27550



"스마트기기" 목회에 이렇게 활용한다 - SLiNGstones (2014년 6월호)

이강세 목사 kangselee@gmail.com
Christ United Methodist Church, IL

https://www.resourceumc.org/ko/content/how-to-use-technology-in-ministry-slingstones-2014-6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를 전하는 목회자들에게 세상과의 소통은 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오늘날 수많은 스마트기기가 개발이 되고 보급되는 과정에서 많은 목회자들이 스마트기기를 갖고 있지만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목회는 잘 하고 계신데 스마트기기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목사님들이 있고, 스마트기기는 잘 사용하지만 목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아직 경험과 성찰이 부족한 목사님들이 있을 수 있다. 그동안 컴퓨터나 스마트기기 등이 목회의 현장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왔는데, 모든 목회자들의 목회 현장에서의 소중한 경험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눠 지기를 바라면서 필자가 활용하고 있는 경험과 생각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목적에 맞는 스마트기기를 사용한다.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 수많은 기기들이 존재하는데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고민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답은 “목적에 맞는 스마트기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럼 각각의 기기들의 목적은 무엇이고, 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와 같은 기기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공부와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스마트폰은 전화의 기능에 여러 가지 편리한 기능들이 더해진 것이다 태블릿과 노트북은 휴대성을 강조하며 진화해왔다. 그런데 적지 않은 교회지도자들이 태블릿과 노트북을 혼동한다. 그래서 태블릿을 두툼한 가죽케이스에 담아두거나 무선키보드를 장착해서 노트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될 경우 노트북이 갖고 있는 짧은 배터리 수명을 극복할 수는 있겠지만, 휴대가 용이한 태블릿의 활용도는 점점 낮아지게 될 것이다.

2. 구글을 목회에 활용한다.

전 세계가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연결되고 소통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그 도구가 되는 것은 직접적으로 유튜브(YouTube)라고 할 수 있다. 유튜브뿐만 아니라 구글서치 엔진을 통해서 정보공유를 돕고 있는 구글회사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다양한 앱들은 오늘날 변화되어 가는 환경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 Gmail: 이메일은 편리성 못지않게 스팸들을 양산해서 불편하기도 한데, 지메일은 스팸메일의 알고리즘을 분석해서 필터링해주고 있는데 100퍼센트는 불가능하지만 현존하는 각종 이메일 가운데 가장 훌륭한 필터링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 Google Calendar: 교회행사를 위한 계정과 유스그룹, 주일학교 그룹 계정 등 기관별로 칼렌더를 작성 운영하고, 웹사이트에 통합해서 보여준다.
  • Google Voice: 연합감리교회 목회자로서 임지에 따라 옮겨갈 때 휴대전화번호가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구글보이스를 통해서 고유의 전화번호를 받아 사용한다. 회의중에 전화를 받을 수 없을 경우 상대방이 남겨놓은 메시지를(영어) 정해진 스마트폰으로 문자변환해서 보내주는 것도 아주 편리하다.
  • Google Docs: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나 한컴 오피스와 같은 정교한 문서 작성은 되지 않지만, 오히려 자주 사용하는 간편한 기능들이 일의 효용성을 높여준다. 구글문서, 스프레드쉬트, 프리젠테이션 등을 만들어서 그 링크를 예배 준비하는 팀들과 공유하며 함께 소통하며 만들어간다. 목회 마일리지 기록과 계산도 스프레드쉬트를 사용해서 만들고, 기도 요청을 받거나 특별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의 목록을 작성해서 간단한 메모와 함께 기록해 두면 지속적인 돌봄에 도움이 된다.
  • Google Spreadsheet: 스프레드쉬트는 매주의 출석통계와 헌금통계 등을 손쉽게 기록해서 교회지도자들에게 현재 상황(Current Reality)을 보여주고, 원하는 미래(Desired Future)에 관한 그림을 함께 그리고 실행계획(Action Plan)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3. 클라우드 서비스를 적극 활용한다.

사무실과 집, 그리고 이동 중에 사용하는 기기들이 각각 다를 때, 이전에는 휴대가 용이한 기기에 담아 가지고 다녔지만, 이제는 네트워크 서비스와 인터넷 속도의 발전으로 네트워크를 통해서 공유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DropBox, OneDrive, Google Drive등의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데, 드랍박스의 무료공간은 2기가이지만, 구글드라이브는 Gmail을 포함하여 15기가를 제공하고 있다. 복수의 구글 드라이브 계정을 오픈하고 그 파일을 폴더로 공유를 하면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4. 에버노트를 목회에 활용한다.

지난해 한국의 교회정보기술원의 조사에 따르면 80% 이상의 목회자들이 웹서핑보다 이메일 확인을 위해 컴퓨터를 사용했고, 그 다음으로 설교 작성을 위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마트 기기로 웹서핑과 이메일 확인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사용한 자료들이 이메일 서버에 있지만 정작 그 자료를 필요한 때에 사용하지 못해 아쉬울 때가 많았다. 에버노트(Evernote)란 내가 읽고 경험한 모든 자료와 장면들을 노트(메모)의 형식으로 저장을 해 둘 수 있다. 이때 훗날 필요한 정보를 찾을 때 효과적인 출력을 위해 간단한 키워드로 태그를 달아둔다.

예를 들면, 목회자의 균형 있는 아이덴티티를 위해서 WORDS 에서 비롯된 Worship, Outreach, Relationship, Discipleship, Service를 태그로 사용하고, 다른 키워드와 함께 적어 두면 필요할 때 쉽게 출력해서 사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메모할 수 있는 일상의 기록들, 명함과 영수증, 심지어는 음식점 메뉴까지 사진으로 찍어 두어 저장을 할 수 있고, 이렇게 저장된 사진 파일이나 PDF문서 안의 단어를 찾아주기도 해서 매우 편리하다. 이전에 몇 가지 To Do List 앱을 사용해 보았지만 그다지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고 느껴보지 못했는데, 에버노트로 매주마다 리스트를 만들어서 매일 전화와 심방의 기록 등 각종 작업의 기록을 남겨 두면,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목회자의 입장에서 매우 도움이 되고 있다. 오피스 문서나 구글 문서들이 작성되는 시점에는 가장 효율적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찾게 되는 일이 드물어 지지만, 에버노트의 경험되어진 메모들은 시간이 흘러서도 그 가치를 더해 줄 수 있어서 이메일 보다 더 많이 사용을 하게 된다. 이메일로 받게 되는 회의록이나 기도요청, 주일 예배의 방문자에 대한 기록들도 에버노트로 포워딩할 수 있게 이메일에 필터링을 해두면 에버노트로 열어보고 태그작업을 해서 저장해 둔다.

5. 스마트기기의 다양한 감각 기능을 활용한다.

거의 모든 스마트기기에 있는 카메라와 오디오 기능을 적극 활용한다. 때로는 칼라 사진보다도 한 장의 흑백 사진이 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처럼, 비디오 카메라와 앱이 익숙지 않은 분은 오디오 녹음 기능을 활용해서 시설에 계신 분들이나 먼 거리에 계신 분의 음성을 녹음해서 들려주는 것도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데 유익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스캐너가 없다면 사진기를 활용해서 각종 문서나 자료, 영수증 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에버노트에 바로 저장해 두면 필요할 때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필자의 경험들이 모쪼록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여러 목회자들의 소중한 목회현장에서의 경험과 성찰들이 나누어져서 동역을 용이하게 할 수 있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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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링스톤즈는 목회 및 사역이야기 속에 담긴 지혜와 통찰력을 나누면서 목회사역에 필요한 전략과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위해 총회제자훈련부에서 매달 발행하는 온라인 뉴스레터이다.
편집인 김광기 목사 dkim@gbod.org

올린날: 2014년 6월 1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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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드는 구글 스마트목회
[편집장의 친구들] 구글 이노베이터 김정준 목사가 알려주는 작은교회를 위한 구글사용법!!

https://www.youtube.com/watch?v=qdVosBFJ8pc









내 복음(로마서 2:16, 빌레몬서 1:13)



내 복음(로마서 2:16, 빌레몬서 1:13)

로마서 2: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This will take place on the day when God will judge men's secrets through Jesus Christ, as my gospel declares.


빌레몬서 1:13
저를 내게 머물러 두어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I would have liked to keep him with me so that he could take your place in helping me while I am in chains for the gospel.


내 복음이란?
내가 믿는 것으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머무는 것이다.
만일 내가 머물러야 할 자리에 내가 없다는 것은 곧 복음에서 떠난 것이다.
복음에서 떠난 것이 곧 죄의 자리가 된다.

유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백성이다.
이방인은 율법이 없는 백성이다.
참 유대인(이면적 유대인)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백성으로 이방인 중에서 또한 유대인 중에서 부름을 받은 백성을 말한다.




교회론(Ecclesiology)



교회론(敎會論)

교회론(Ecclesiology)은 기독교 신학의 조직신학 분야의 연구 분야
1.  기독교의 기원
2.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3. 구원의 역할
4. 교회의 정책, 치리
5. 리더십과 관련된 기독교 교회를 연구하는 것이다.

교회의 명칭

1.  카할 : "불러 모으다", "소집하다"

집회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회중(출애굽기 16:3,레위기 17:17,민수기 14:5,역대상 29:1), 집회(창세기 49:6, 시 26:5), 이스라엘의 총회(신명기 31:30), 여호와의 총회(민수기 16:3,20:4), 하나님의 회(느헤미야 13:1)

2. 에다 : 집회의 대상을 중심으로 회중(출애굽기 12:3, 레위기 8:3, 민수기 3:7, 여호수아 9:19, 사사기 21:13), 집회(시 7:7)

3. 수나고게 : 유대인들의 종교적 모임과 모임이 이루어진 건물로서 회당(마태복음6:2,10:17,마가복음1:21,누가복음7:4)

4. 에클레시아 : "부름을 받아 나온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으로 일정한 지역내에 있는 지교회(사도행전5:10~11,11:25~26,고린도전서11;18,갈라디아서1:2~3), 가정교회(로마서16:5,고린도전서16:19,골로새서4:15,빌레몬서1:2), 지교회의 총칭(사도행전9:31), 유형교회(고린도전서10:32,11:22,12:28), 무형교회(에베소서1:22~23,3:10)

5. 그리스도의 몸 : 교회의 유기적 단일성을 강조하는 교회(고린도전서12:27,에베소서1:22~23,골로새서1:18)

6. 하나님의 성전 : 교회의 거룩성을 강조하는 교회(고린도전서3:16), = "하나님의 처소"(에베소서2:21~22), "신령한 집"(베드로전서2:5), "예루살렘"(갈라디아서4:26,히브리서12:22,요한계시록21:2)

7. 진리의 기둥과 터 : 진리의 수호자임을 강조하는 교회(디모데전서3:15)

 

교회의 기원과 본질

 

구원을 위하여 선택받은 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유기적 단일체인 "무형교회"와 구원을 실현하기 위하여 지상에 존재하는 유형적 단일체인 "유형교회"의 기원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안에 이미 창세전 부터 하나님 자신의 은혜를 나타내기 위하여 교회조직이 이루어졌다고 보는 "근원적 기원"(에베소서1:3~6)과 그리스도의 예언(마태복음16:18)대로 오순절 기원 성령강림사건으로 신약교회가 성립되었다고 보는 "역사적 기원"이 있습니다(사도행전2:2~4,47,4:32)  로마카톨릭은 외부적이고 유형적인 조직체에서 교회의 본질을 찾지만 기독교는 성도의 무형적, 영적 교류를 교회의 본질로 보고 있습니다

 

(3) 교회의 구별

 

로마카톨릭은 성직자로 구성된 "가르치는 교회", 성도로 이루어진 "듣는 교회", 영세받고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 이루어진 "혼으로서의 교회", 외형적인 교인으로서 구성된 "몸으로의 교회"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세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① 전투적 교회와 승리적 교회 : 흑암의 세력과 영적투쟁을 하는 전투적 교회(에베소서6:12)

② 유형교회와 무형교회 : 신앙고백, 조직, 행정, 복음사역 등 육안으로 식별가능한 교회요소를 갖춘 "가시적 교회"와 진정한 의미에서 구원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들로 구성된 "불가시적 교회"로 구분

③ 유기적 교회와 조직적 교회 : '유기적 교회"는 성령의 유대로 인하여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연합된 성도들의 집단,  "조직적 교회"는 교회의 직분, 성례, 말씀선포, 정치 등 교회행정 조직과 관련된 조직체로서 모두 가시적교회의 구분에 속합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함께 지상에 실체적으로 임재한 것, 성도의 심령(누가복음17:20~21)과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마태복음13:31,33,44.47), 그리스도께서 왕노릇하시는 천년왕국(사무엘하7:10~16,시89:3~4,20~37), 신천 신지(요한계시록21:1~4)를 말합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영적왕권이 미치는 영역을 하나님 나라로 볼때 지상의 교회와는 부분적으로 일치하고, 하늘에 있는 승리적 교회와는 완전히 일치합니다

 

여러 시대의 교회형태

1. 가정교회 : 아담이후 모세전까지 족장시대 교회는 경건한 가정과 제사장적 가장에 의해 보존

2. 국가교회 :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국가를 형성했고 국가단위로 종교생활을 했습니다  상세한 의식절차에 따라 정해진 장소에서 제사장의 집전으로 수행된 이스라엘 종교는 국가로 부터 독립성을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3. 신약교회 : 오순절 이후 교회는 국가와는 독립적인 조직을 가졌습니다  이때부터 교회는 범세계적으로 선교하였으며 의식적 예배에서 신령한 영적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속성

1. 통일성 : 로마카톨릭은  전세계에 퍼져있는 조직체로서 교회의 통일성을 주장하지만, 기독교는 교회가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성도는 각기 지체가 되어 궁극적으로 한 몸을 이룹니다

2. 거룩성 : 로마카톨릭은 교리, 교훈, 예배, 권징 등과 같은 교회외적 형식에서 거룩성을 찾으나, 기독교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안에서 새생명을 얻고 의롭다함을 받았으므로 원리면에서 거룩성을 교회의 성도들에게 두고 있습니다

3. 보편성 : 로마카톨릭은 유형교회의 보편성을 주장하지만, 기독교는 모든 시대 모든 성도들을 포함하는 무형교회를 보편교회로 지칭합니다

4. 사도성 : 로마카톨릭은 교황권이 베드로 사도로 부터 기원하였으며 베드로만이 천국의 열쇠를 소유한 것으로 주장하지만(마태복음16:18~19), 기독교는 교회 설립이 복음에 대한 사도들의 공헌으로 하여 교회가 사도들의 가르침에 성실함으로서 사도권을 지닌 것으로 봅니다

5. 생명성 : 교회는 생명이신(요한복음 5:26,11:25, 14:6) 그리스도의 몸이며(에베소서 1:23),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목적(요한복음 10:10)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며(요한복음3:16,6:39~40),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참 생명을 소유하고 있으므로(요한복음 5:24,에베소서 2:1,요한일서 5:12) 교회는 생명성을 지닌 것입니다

6. 무오성 : 로마카톨릭은 교황무오설을 주장하고 교회의 무오성을 공유하지만,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오류가 없는 성경에 기초함으로서 무오한 일면을 갖는 것입니다




창조(創造)


워치만 니의 바라와 아사와 야차르에 대한 해석
- 지방교회의 해석 

창세기의 첫 두장에서 창조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세개의 다른 말이 사용되어 있다.

1. 바라 : 미리 존재하는 재료의 도움 없이 존재케하는 것

2. 아사 : 이것은 바라와는 매우 다르다.

바라가 아무런 재료도 없이 창조한다는 뜻을 지칭하는데 반해 "아사"는 이미 존재하는 재료로 부터 만들거나 형성하거나 작성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목수는 의자를 만들 수는 있으나 창조할 수는 없다.

창조기사의 6일 동안의 일들은 주로 아사의 차원에 속한다.

3. 야차르 : 이것은 도공이 진흙으로 하듯이 모양이나 형을 짓는 것을 의미한다.

이 낱말은 창 2:7에 사용되어 있다.

창조한은 무에서 부터 성립시킨 것을 의미하고
지었고는 일정한 형태로 이루었음을 지칭하며
만들었느니라는 앞서 존재한 재료로부터 제작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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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창조설을로 맞추기위에 워치만 니는
바라는 create로
아사를 make로,
야차르를 form이 라고 제한 해서만 사용하는데
이 해석이 창세기 안에서만 봐도 충돌 됩니다.

기본형을 적습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바라
(창 2:4) (창 2: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 바라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 아사

(창 1:21하)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새: 바라

(창 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짐승, 가축, 땅에 기는 것 -- 아사
(창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 짐승.새 -- 야차르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 -- 아사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 사람 --- 바라
(창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 사람 --- 야차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히브리어를 모른 다는 것 이 창세기만 봐도 명백히 드러납니다.

구약성경 다른 부분도 바라와 아사와 야차르는 혼용하여 사용되는 것을 여러구절에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창조뿐만 아니라 섭리에 해당하는 분에도 사용됩니다.  --> 안찾겠습니다.

벌콥 신론에 창조개요라는 부분에서 이를 설명하니 보려면 그 부분을 찾아보세요.

재창조설로 신학을 전개하니 그 구조의 틀이 무너지면 워치만 니 신학 전반이 무너지는 겁니다. 

어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정말 원문을 알았을까요?

창세기 1장과 2장부분만이라도  원어로 제대로 살폈어도 그런 전개 안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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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나타난 다섯 가지 하나님의 사랑

첫째,  하나님의 이름(여호와)을 알려주신 사랑(창세기 2:4)

창조시 하나님은 엘로힘 하나님이었다.
엘로힘은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신의 이름이다(=신의 이름 엘).
이스라'엘', 벧'엘', 임마누'엘'의 '엘'이 바로 '신'이다. 바'알', '알'라와 같은 이방신도 '알'('엘')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을 자기 백성에게 알릴 때에는 여호와라고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성경에 여호와는 모두 6,823번 나타난다.
이때 여호와라는 이름은 모두 정확하게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할 때 쓰였다.
'엘'은 평범한 이름이다.
세상에 아버지는 많으나 아무나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나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없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고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셨다.
우리와 친히 관계를 맺으시는 여호와로 나타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로 처음 나타나셨다.
여호와는 거룩한 이름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이름(발음)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였다.
여호와라는 명칭을 제대로 부르지도 못하였다.
괜히 송구스러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쓰고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하나님을 '아도나이'라고 불렀다.
우리 성경에 '주님'으로 번역된 그 말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을 먼저 들어내신 분이다. 부모도 아기에게 맨 먼저 아빠, 엄마부터 말을 가르친다.

사람들은 자신과 수준이 안 맞으면 속으로 '넌 알 필요도 없어'하며 무시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을 먼저 오픈하셨다.
자신을 드러내셨다.
'하나님의 먼저 사랑'이 사람이 범죄 한 이후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이유가 되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바울은 로마서 10장 9절에서 네가 네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라 했다.
즉 창세기 2장 4절의 '여호와 하나님'(=아도나이 하나님) 즉 '주님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라고 분명히 못 박고 있다. '나의 주님이 바로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다!

둘째, 사람을 위해 동산을 배려하신 사랑(창세기 2:5-6)

하나님은 낙원을 주시는데 그것은 사람을 위한 준비였다.
사람이 없을 때에 동산은 아직 초목과 채소가 없었다.
사람이 있을 때에 이런 것들은 의미가 있다.
주인공이 있어야 케익이나 꽃이 의미가 있다.
주인공 없이 꽃다발을 들고 다니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만드시고 자신이 만드신 동산으로 사람을 데려가셨다.
들의 초목이나 밭의 채소는 1장에기록된 풀과 씨 맺는 채소나 열매 맺는 과목과는 다르다.
2장의 이 말은 땅을 일구고 수고해야 먹을 수 있는 곡물이나 떨기나무, 관목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이런 것들을 두지 않았다.

이 말씀은 에덴동산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인간 타락 이전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일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열매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천국의 모습은 지금과 다를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천국은 상상할 수 없는 곳이다.
그저 다르다는 것만은 확인할 수 있다.
타락하여 무너진 세상에 살면서 천국을 가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상상으로 바라볼 뿐이다.
천국 간증은 상상이다. 즉 거짓이다. 상상은 자신 만이 간직해야 된다.
남에게 퍼뜨릴 때 문제가 발생한다.
천국을 조금이라도 상상해보고 싶다면 말씀 안에서 타락 이전의 이 에덴동산을 보고 상상해보라.
성경은 타락된 지금 세상과 조금 다른 에덴동산을 살짝 알려준다.

셋째,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을 다른 피조물과 다르게 지으셨음을 알려주신 사랑(창세기 2:7)

사람은 본래 흙이었다.
흙이 가진 17가진 주요 성분이 사람 몸에도 그대로 있다.
사람도 다른 생명처럼 육체이다.
육체로는 다른 생물과 별 다를 것이 없다.
생령이 아닌 죽은 육체는 그래서 구루터기나 다름없다.
그저 썪어서 흙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다르다.
사람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셔서 생령이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빚어 지으셨다(히브리어 '야차르').
'야차르'는 토기장이가 흙으로 무엇을 만들 때 쓰는 단어이다.
토기장이는 의미 없이 아무렇게나 질그릇이나 토기를 만들지 않는다.
분명한 목적이 있다.
특별한 목적 즉 예술가가 아무렇게나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그 목적이란 성경에 보면 첫째 인간의 찬양을 받기 위함이요(사 43:21)
둘째 하나님은 야곱을 '야차르'하였기에 잊지 않겠다(사 44:21)
심지어 복 중에 '야차르'하기 전에 예레미야를 알았다(사랑했다) 했다.
하나님이 알면 하나님이 사랑한 것이다(렘 1:5).
하나님은 '나는 아이라 말할 줄 모른다'고 변명하는 예레미야를 안다(사랑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명도 '야차르' 하였고(시 139:16), 악인도 '야차르' 하였다(왕하 19:25).
하나님이 성도를 '야차르'하였다.
가정을 '야차르'하였고, 교회를 '야차르'하였다.
선한 목적의 '야차르'였다.
하나님은 선한 것은 선한 뜻에 맞게, 악한 것은 악한 것에 맞게 '야차르' 한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한 목적이 있다.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여러분 가정 교회를 주신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선한 '야차르'를 믿는 다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넷째, 사람의 주거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창세기 2:8-14)

에덴동산은 '기쁨의 장소'라는 뜻이다.
즉 참기쁜 곳이라는 뜻이다.
그 위치는 정확하지 않다.
위치가 중요하지 않다.
인류가 죄 지은 이후로 에덴은 사라졌다.
이제 에덴은 지역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만 회복된다.
참기쁨은 예수 안에 있다.

15 가지 지리적인 언급 가운데 14 가지가 현재시제이다(지금 거기 있다는 뜻).
과거에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지금거기 있는 것이다. 두 강은 지금도 있다. 따라서 에덴의 과거 위치를 일부 짐작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무너진 실락원을 지금 굳이 찾아본 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섯째, 하나님의 사랑은 언약 사랑임을 알리심(창세기 2:15-17)

하나님 사랑은 무절제한 사랑이 아니다. 관계된 사랑이다. 아무런 언약이 없는 하룻밤 사랑이 아니라 질서가 있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로 표현하고 있다. 15절서 8절을 반복하신 이유는 중요하다는 의미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선악의 구별을 아는 유일한 생명체다. 그래서 인간에게만 죄라는 개념이 있다. 에덴동산에 언약의 징표를 두신 이유는 하나님과의 사랑은 무분별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관계가 깨져버리면 생명도 깨진다. 단순 연애와 부부의 차이(무분별과 언약의 차이)를 구별하라. 쥐새끼가 고구마 훔쳐 먹고 죄책감을 가지는가? 강아지가 사람 물고 죄책감을 가지는가? 강아지는 또 문다.

행복은 믿음과 순종에서 온다!

우리를 빚으신('야차르'하신)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 기쁨이요 복이요 완전한 행복, 완전한 평화, 완전한 사랑을 체험하는 길이다. 일방적 사랑이 열매를 맺으려면 그 사랑을 상대방이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짝사랑하신다!

그 사랑이 맺어지려면 간단하다.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간단한 것을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랑을 만드신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귀하고 값지고 짜릿한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의 짜릿한 사랑은 즐기면서 하나님과별거하려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누구 때문인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바로 그 존재, 사단이다! 하지만 누가 그 사랑을 끊으리요. 하나님 본체가 사랑이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호 1장 23-2장 1절/14장 4절)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사랑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 사랑을 외면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그렇게 세상의 쾌락이 달콤한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동물만도 못하다. 아니 못한게 아니라 추악하고 패역하다. 고릴라는 하나님을 대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귀의 유혹으로 타락한 사람은 마귀처럼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다. 고릴라보다 더 못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부모 빰을 치거나 방망이로 부모를 구타하는 자식은 극형에 처한다. 패역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원숭이보다도 고릴라보다도 못나게 살아갈 것인가?
값진 사랑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은 창세전에 우리를 부르셨다.


에베소서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사랑하시는 예수 안에서 거져 주셨다.

이 비밀한 사랑을 알아야 사랑은 완성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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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한 천지 창조와 빛과 어둠은 어떤 것인가?

빛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있는 자이며 어둠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빛을 내는 해달별을 창세기 37장에서는 하나님의 가족인 이스라엘을 말하였고 하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속도 되는것입니다. 그럼 데살로니가전서5장의 말씀처럼 빛의 사람이 있다면 밤(어둠)의 사람도 있게 되는것이고 초림때에는 빛이신 예수님과 그 말씀에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둠이라고 하셨습니다.


출처: https://loveismeet.tistory.com/354 [신천지 맛디아지파 공식블로그]


본문 : 창 1:1-19 (살전 5:1-8, 렘 4:23-28, 요 1:1-5, 계 21장)

● 성경이 말한 천지 창조(창1장)

하나님께서 창세기 1:1에 천지를 창조하실 것을 말씀하셨고, 이 때로부터 6천 년이 지난 계시록 성취 때(계21장)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다."고 하셨다. 이로 보건대, 창세기 1장의 말씀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부패하고 낡아서 없어져 갈 때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처음 하늘과 새 하늘, 그리고 처음 땅과 새 땅은 영적인 것인가, 육적인 것인가? 이는 육적 세계의 명칭을 빙자한 영적 세계의 멸망과 재창조를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둘째 날과 셋째 날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기 전, 첫째 날의 2절(창1:2)에 혼돈하고 공허한 땅이 있었고 흑암한 하늘이 있었다. 그리고 수면(水面)이 있었다. 창세기 1:1의 창조 전에 있었던 이것들은 무엇인가? 첫째 날에 빛을 찾은(창1:3) 후 있게 된, 둘째 날의 하늘과 셋째 날의 땅은(창1:7-10) 재창조가 아닌가?

 

하나님이 왜 빛을 수면에서 찾으셨는가? 왜 하늘(궁창)을 물 가운데 만드셨는가? 왜 땅이 물속에서 나왔는가? 첫째 날의 땅과 셋째 날의 땅은 어떻게 다른가? 첫째 날의 땅도 물(수면)도 흑암한 하늘도 새로운 창조가 아닌,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닌가?

넷째 날에는 물 가운데 있는 궁창에 해, 달, 별을 만들어 주야(晝夜)를 주관하게 하셨다(창1:14-18). 첫째 날의 빛과 넷째 날의 빛은 어떻게 다른가? 첫째 날의 빛이 자연계의 해이고, 이 빛(햇빛)으로 셋째 날의 초목과 채소가(창1:11-12) 났다면, 넷째 날에 창조된 해, 달, 별은 무엇이며, 하늘에 해가 두 개란 말인가? 그리고 어째서 하늘이 물속에 있는가?(창1:6) 또 넷째 날에 만든 것이 자연계의 해, 달, 별이라면, 해가 있기 전(前)인 셋째 날에 나무와 채소가 있을 수 있는가?

 

창세기 1장이 자연계 창조라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 어찌 진리라 할 수 있겠는가? 이는 다른 뜻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는 자연계를 빙자한 영적세계의 재창조를 말한 것이며, 이룰 예언이다.

 

● 성경이 말한 빛과 어둠 (살전5장)

'빛'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있는 자이며, '어둠'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자이다(살전5:1-8). 그 이유는 말씀을 빛 또는 생명이라 하셨기(요1:1-4) 때문이다.

 

창세기 37:9-11에 이스라엘 가족을 해와 달과 별이라 하였으니, 해, 달, 별은 하나님의 가족(선민)이다. 해, 달, 별이 있는 곳이 하늘이니, 하나님의 가족이 있는 교회(장막)가 하늘이다. 이 하늘과 해, 달, 별은 창세기 1장 8절의 하늘(궁창)과 14-18절의 해, 달, 별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족이 있는 교회가 하늘이니, 하나님의 가족이 없는 교회는 땅이다.

예레미야 4:23-25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새가 다 날아간 것은 하나님의 장막(교회)과 선민이 부패로 인하여 멸망받은 것을 알린 말씀이었다. 이는 창세기 첫째 날과 같다.(창1:2)

데살로니가전서 5장의 말씀에 낮(빛)과 밤(어둠)의 사람이 있고, 요한복음 1장에도 빛과 어둠의 사람이 있으며, 예수님은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요12:46). 그런데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하였다(요1:5, 9-11). 어두움의 세상에 빛이 비취었다는 것은, 무지하고 부패한 어두움(밤)의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보건대 한 시대가 부패함으로 새로운 시대가 창조되는 것이었다.

 

6천 년이 지난 오늘날, 계시록에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새 하늘 새 땅이 창조된 것은(계21:1) 창세기(1장)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부패한 시대는 창세기 1장과 같이 빛이신 하나님이 떠난 세상이요. 이는 밤이며, 없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하는 세상은 빛이요 낮이며, 새로 창조되는 것이다. 또한 생명이신 하나님이 함께하는 곳은 생명이다. 오늘날 계시록에서 증명한, 없어지는 시대는 밤과 어둠이요(살전5장), 다시 창조되는 열두 지파는 낮과 빛이며, 하나님의 세계 가족들이다. 이를 믿지 않는 자는, 요한복음 1장의 말씀같이 빛이 어둠에 비취었으나 어둠이 되어 깨닫지 못한 자들이다.

 

빛은 무지하고 부패한 밤에게 같은 빛이 되게 하고자 빛을 전하고 있다. 빛은 생명이니, 빛이 없으면 만물은 살지 못한다. 하늘의 빛과 비와 공기같이 우리는 만물에게 생명을 전하고 있다. 이 생명을 받아서 살기를 기도한다.



출처: https://heavenstroy.tistory.com/60 [Sky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