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그리고 하나님의 근심(창세기 6:1-7)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창세기 6:2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사람의 딸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 왔다.
복음주의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련된 해석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1. 타락한 천사설

위경 “에녹서”와 쿰란 두루마리 “창세기 외경‘에 근거를 둔 천사설은 ”하나님의 아들들“(בְנֵי־הָאֱלֹהִים 베네 하엘로힘)이라는 어구와 베드로전서 3:19-20, 유다서 6-7에 두고 있다.

고대의 유대 주석가들과 초기 교부들, 그리고 많은 현대의 성경 강해자들은 이 “아들들”을 욥 1:6; 2:1; 38:7에 의거하여, 천사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문맥은 천상적 존재와 지상적 존재의 결연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견해는 곧 내리게 될 홍수 심판 문맥에 맞지 않는다.
그 심판은 천사들의 죄악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죄악(참조 3절)으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께서 부활 때에는 천사들처럼 결혼하지 않는다(마 22:30)고 한 점에 맞지 않는다.

2. 가인 계열 통치자설

“하나님의 아들들”을 왕들로 보는 해석은 2세기 유대인 저술가들의 해석에도 나온다.
M. Kline은 “Divine Kingship and Gen 6:1-4," WTJ 24(1962):187-204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가인 계열의 왕들이나 왕조의 통치자로, ’사람의 딸들‘은 그 왕들의 후궁으로 해석했다.

가인 계열의 통치자들은 창 4:17-24에 진술된 문명을 이룬 자들이다.
라멕이 일부다처를 둔 것은 그가 소유한 처첩들이었다.
이 견해 주장자들은 고대 왕들이 자기들을 天子로 자처하였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참고, 삼하 7:14; 대하 29:23; 시 2:3).

그러나 이 견해는 가인 계열에 통치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성경 문맥을 벗어난 가설일 뿐이다.
또한 왕정 제도는 오랜 시대 이후에 도입되었던 점과 홍수 심판이 모든 인간들에게 다 내린 점에 비추어 맞지 않다.

3. 셋의 후손설(The Sethite Interpretation)

미드라쉬를 포함하여 유대인 주경가 다수가 주장하는 이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셋의 후손들로,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들로 본다.

이 시각은 크리소스톰, 아우구스투스 등 교부들, 칼뱅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선호하는 시각이기도 하다.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 두 사이에 혼인관계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하나님 신앙으로 오는 구원 대 인간의 행함으로 얻는 구원의 콘트라스트를 보여주고 있다.
가인의 제물에는 자기의 행함으로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상향적 특성이 담겨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벨의 제물은 오실 여인의 후손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속적 행위를 믿는 신앙을 예표하고 있었다(4:1-15).

셋은 최초의 순교자 아벨 대신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이다.

창세기 4:25부터 5장에 나오는 셋의 톨레도트(toledot, 계보, 족보)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거의 규칙적으로 나온다.
이 계보를 시작하는 단락에서 셋은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는 공중예배를 암시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4;26).

아담-셋의 계보에서 아담 7세손인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데려가셨다.
셋 계보 끝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6:8) 의인이고, 완전한 자로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가 나온다(6:9).

다음으로 하나님의 형상 대 인간의 형상의 콘트라스트가 나온다.
아담의 톨레도트는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는 긴 서론으로 시작하고(5:1-2),
셋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전달된 기사가 나온다(5;3).

반면에 4:16-24 에 나오는 가인의 톨레도트는 가인 중심으로 시작하고, 하나님에 관한 언급이 결여되어 있다.
이 결여는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대조는 아담과 가인의 아내 기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즉, 아담의 아내 이름이 하와로 나오지만, 가인의 아내 이름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담의 아내 하와는 인정받고, 존경 받으며 평등한 한 인격으로 비쳐지고 있지만, 가인의 아내 이름은 거론도 안 되고 있어서 가인의 목적 달성을 위한 무명의 도구나 수단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또한 두 계보에서 “~ 낳고”의 과정을 서술해 나가는 문맥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아들들”이라는 콘트라스트가 함축된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즉, 셋을 통한 아담의 계열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등뼈나 산맥처럼 이어지고 있는 점에 대조적으로 가인의 계열은 하나님을 등진 인간의 연계성이 깔려 있다.
그리하여 성경의 문맥에서 가인 계열은 단순히 사람의 아들들로 나올 뿐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표현이 하나님의 백성들로 자주 언급되어 나온다(신 14;1; 32;5-6; 사 1:2; 삼하 7:14 등).
하나님께서는 훗날 이스라엘을 그분의 “장자”(출 4:22)라고 말했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신 14:1)라고 불렀다.

또한 창세기 26:34-35에는 에서의 동족이 아닌 여자와 혼인이 야곱에게 근심거리가 되었다.

눅 3:38이 아담을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한 점에 비추어 창 5장의 아담의 계보의 연속선상에서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을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엘렌 화잇도 “사람의 딸들”을 경건치 못한 가인의 후손들로 보았다(PP 81).

이런 셋의 후손이라는 해석은 신자의 자녀와 불신자의 자녀들 사이의 신성치 못한 결혼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셋의 계열은 모두가 의롭고 가인의 딸들은 모두가 악하였느냐는 물음에 답을 내 놓아야 한다. 이 점은 다음 항목의 서술을 통하여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판단된다.

보고, 좋아하고, 취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אָהרָ, 주목하다)
자기들이 좋아하는(בָּחַר 결정하다)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לָקַח 취하다)”(6:2).

이는 인간들의 결혼을 말해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참조, 11:29; 24;48; 삿 14:3 등).
예수께서도 혼수 전 인간들의 결혼의 문란상으로 풀이하였다(마 24:38).
그래서 본문을 천적 존재와 인간 사이의 결합이라는 해석하는 것을 성경과 거리가 먼 해석으로 배척하는 것이다.

이 본문에 나오는 <보았다...좋았다...취했다>는 창 3:6의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패턴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 백성들까지도 하나님이 창조 시에 계획하신 결혼제도의 거룩한 의도를 짓밟아 버리는 방향으로 확장되어 간 것이다.

셋의 자손과 가인의 자손 사이의 이런 거룩하지 못한 결연(結緣)의 증가는 급속히 증가하는 죄악의 원인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참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불신자들과 혼인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은 그로 인해 수반되는 심각한 위험 때문이었다.
대개의 경우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하게 되면 배우자의 요구에 굴복하기 마련이다(민 7:3, 4; 수 23:12, 13; 스 9:2; 느 13:25; 고후 6:14, 15).

신앙이 해이하여진 셋의 자손들은 하나님 말씀의 경계선을 넘어갔다.
그들의 신앙은 죄악적 세속 문화에 융합되어 갔다.
그들은 육욕적, 감각적인 매력에 이끌려 건실한 신앙적 판단력이 둔화되어 갔다.
그들은 경건한 집안의 아름다운 딸들과 경건한 결혼생활을 따분하게 여기고, 가인 자손의 여인들의 매혹적 아름다움에 이끌러 갔다.
더욱이, 그들이 “모든 여자를 아내로 취했다”(6:2)는 점에 비추어 일부다처 제도가 셋의 사회에 파고들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영이 인간 결혼생활을 탄식하며 떠나는 상태로 전락되어 버렸고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창 6;3).
성의 타락은 인간이 스스로 멸망의 길로 나선 것이 되어버렸다.
가정의 해체는 문명의 해체와 인류 종말의 길이 된다.

“當時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後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子息을 낳았으니 그들은 勇士라 古代에 名聲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6:4).

성스럽지 못한 결혼의 결실들은 네필림이었다.
네필림은 육체적인 거인들을 뜻하기보다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들(the fallen ones),” “난폭한 자들," 또는 "폭행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네필림의 어원 나팔(napal)이 ”타락하다”를 뜻한다.
네필림을 거인(giants)으로 번역한 것은 70인역이 네필림을 기간테스(gigantes)라고 번역한 것으로부터 유래했는데 홍수 전 시대에는 인류가 다 기골이 장대하였으므로, 이 말은 신장보다는 도덕적 성격을 가리킨 것이 바람직 해 보인다.

홍수 전 사람들은 대체로 대단한 신체적 및 정신적 능력을 소유했었다.
지혜와 기술력이 뛰어난 이 사람들은 그들의 지력과 신체적인 능력을 교만심과 정욕을 만족시키고 동료 인간들을 압제하는 일에 끊임없이 바쳤다(PP 80 84, 90).
이들의 자식들은 명성이 있는 “용사들(gibborim)"이었다(6:4).
여기 명성은 부정적 의미에서 악명을 떨치는 자들로 보인다.
깃보림(용사들)은 가인계열 자손 라멕의 특징인 포악스런 성품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4:23-24).

성령 철수 예고와 하나님의 근심

“나의 靈이 永遠히 사람과 함께 하지(통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肉身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百二十 年이 되리라 하시니라”(6:3).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 하리니(shall not strive)"는 '그가 사람들과 다투거나 설득하지 아니할 것이다'를 뜻한다.

“함께 하다”(NKJV에는 “애쓰다<strive>”로 번역)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다스리다”, “심판하다”의 뜻으로, 통치를 나타내는 말이다.
당대의 인간들은 정욕의 포로가 되어 더 이상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지 않고 배척하여 성령께서 비집고 들어가 권고할 없어져 버렸다. 성스러워야 할 혼인제도가 무너져 내렸으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포악스런 자들인 네필림들은 성령이 더 이상 역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성령께서는 집요하게 회개를 거절하는 인류로부터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도 곧 끝나야만 했다.
베드로는 홍수 이전 사람들의 마음에 성령이 역사한 것을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의 영이 사단에 포로된 이들(베드로는 “옥에 있는 영들”이라고 함)에게 전파했다고 말한다(벧전 3:18~20).
이 세상은 창조 시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그 아름답고 선한 모습과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전락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그들이 肉身(basar)이 됨이라.”

이 말씀은 사람들이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면서 죄된 욕망에 포로가 되어 버린 상태를 함축하고 있다.
자기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굴복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더 이상 성령이 계실 이유가 없어져 버렸다.
사람들이 거룩한 감화에 완전히 무감각해져 있으므로, 하나님의 영은 떠나게 된다.
그들을 제지하거나 개선하기 위해 더 이상 “애쓸” 필요가 없게 된다. 홍수 전 사람들로부터 성령께서 철수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날”에 관한 예언을 하시므로 아직도 인내하시는 유예의 시간대를 주셨다.
홍수 때 까지 120년간은 자비의 시간대, 은혜의 시간대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罪惡이 世上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計劃이 恒常 惡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恨嘆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6:5-6).

본문은 인간의 마음, 곧 “계획” 혹은 생각과 행위 가운데 악이 극도에 달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거의 예외 없이 사악하였다.
그것도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그리고 몇 사람의 경우가 아니라 사회가 전면적으로 사악했다.
이런 일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부러 잊으려”(벧후 3:5) 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한탄(nakham)”했다는 말은 이어져 나오는 그분의 마음이 “근심했다(‘astab)”는 해설에서 그 진의를 엿볼 수 있다.
“한탄”은 기쁨의 반대어이다(느 8:10).
하나님의 한탄은 그분의 예지력의 부족이나 그분의 본질 또는 목적의 가변성을 전제하는 표현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은 결코 무엇을 후회하지 않는 분이시다(삼상 15:29).
하나님의 “한탄”은 인간의 죄악으로 야기된, 거룩한 사랑의 고통을 나타내는 은총과 위로의 표현이다.

한탄(nakham)의 어근의 기원은 '깊이 숨 쉼' 따라서 사람의 감정, 주로 슬픔, 동정, 위로의 육체적 표출이라는 개념을 반영한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불변성을 유지하시면서도 멸망해가는 변화된 환경과 관계에 적음, 대처하시는 은혜로운 자비와 위로, 및 구원의 소망을 내포하고 있는 진리를 이렇게 나타내신 것이다.
인간의 타락상으로 인한 하나님의 비탄에 관한 언급은 하나님이 인간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감동적인 암시도 된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은 슬픔과 연민으로 채운다.
그것은 무한한 사랑만이 할 수 있는, 죄짓는 인간들에게 따르는 보응을 향한 측량할 수 없는 연민의 바다를 온통 끓어오르게 한다(렘 18:6~10).

근심하는 아버지 이야기

<예언의 소리> 부장인 분스트라 목사의 딸이 외과수술 날짜를 잡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의젓하고 활달하던 아이가 달력에 표시된 수술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의기소침하여 지며 풀이 죽어 가고 있었다. 아버지인 나는 딸이 갈수록 침울해져 가고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였다.
딸은 수술 받았을 어땠느냐고 여러 번 물어 왔다.
아버지인 나도 지나간 삶을 통하여 여러 번 수술을 받았던 일을 상기시키며 안심시켰다.
그러나 아무도 수술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자신이 수술실에 실려 갈 때, 이야기를 하였지만, 딸의 수술을 앞 둔 아버지의 길을 처음 당하고 있어서 나 자신도 추스르지 못하였다.

사실상 나는 딸이 당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딸을 마취과 의사에게 인계한 다음 100%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부모란 없다.
수술 날짜가 드디어 이르렀다.
나는 근심 걱정으로 위통을 앓아 딸을 배웅할 수조차도 없었다.
인간 아버지도 이럴 진대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는 성령을 철수시키며 홍수를 예고하였을 때 그 심정이란 참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이런 하늘 아버지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스런 심정을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恨嘆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는 말씀에서 읽어내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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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피림(Nephilim)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였을까요?

히브리어 “브네이 하엘로힘”(בני האלוהים).
“하나님의 아들들”은 성경에 나오는 천사들의 이름입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거역했으며, 지구로 내려와 인간 여자들을 부인으로 취하고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천사들의 그룹입니다.
거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초인적인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네피림은 천사들과 인간 여자들의 자식들입니다.

네피림은 무슨 의미일까요?

네피림이 거인이었다는 사실이 그들의 혈통이 초인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 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악마이기도 했는데요, 어떻게 그들이 악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요?
바로 이때 히브리 성경을 읽으면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네피림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단어 나팔르 נפל, (떨어지다)에서 왔는데요, 접미사 ‘임(림)’ 은 간단히 복수로 추가되기 때문에 그들은 “타락한 것들” 이라고 해석되게 됩니다.

타락한 사탄의 천사들에게서 태어난 네피림들은 지구를 난폭하게 지배하며 폭력으로 물들였습니다.   

노아의 홍수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

네피림들은 노아의 홍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노아의 홍수는 하나님께서 인류가 저지른 죄에 대한 벌 뿐만이 아니라, 인류가 네피림들에 의해서 완전이 타락하기 전에, 인류와 그 혈통인 “이브의 자손들”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Gemartia(수신학, 數神學)



Gemartia(수신학, 數神學)


숫자에 대한 의미들

숫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좋은 도구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성경의 숫자에는 하나님의 의도, 계획, 뜻이 함축되어 의도된 의미가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은 숫자를 통해서 말씀과 상징들에 여러 가지 의미들을 더하시며 항상 변함이 없으신 메시지를 담아 전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성품 중 변함이 없으신(말라기 3:6)동일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고 있으며 언제나 동일하신(히브리서 4:12)성품을 그대로 숫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숫자의 의미에 담고 계신다.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역사는 많은 변화를 거쳐 모든 것이 변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숫자들의 의미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영원히 변함이 없이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숫자에 대한 개념은 대단히 정확하고 깊어 자녀에 대한 사랑과 하시는 일에 대한 표현을 숫자를 통해 표현하시기도 한다. 
하나님은 별의 수효를 계수 하시고(시편147:4), 나의 걸음을 세시기도 하고(욥기14:16),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 신바 되고(마10:29-30), 율법의 일 점 일획도 변함이 없어야(마5:18)한다고 숫자로 말씀하시고 계신다. 
그 외 성막의 건축과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은 정교한 수치를 자세하게 지시하실 만큼 숫자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계신다. 

1. 하나, 일치, 연합

사도행전 4:32,33
시편 133:1-3
고린도전서 1:10
에베소서 4:3-6

2. 나눔, 분리, 두 배의 기름부음, 상호보완 

창세기 10:25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
히브리서 8:1-12
마가복음 6:41
사도행전 27:41

3. 부활(회복, 다시 살아남)

열왕기상 17:21
열왕기하 4:16-32
요한복음 6:40
요한복음 21:1-14
히브리서 11:17-19

4. 첫 번째 창조, 육의 것, 땅의 것, 피조물, 자연인, 육신에 속한 사람, 스스로 존재하는 사람, 구원받지 못한 사람 -

하나님은 4를 염두에 두고 모든 피조세계를 만드셨다.
예를 들어 밀물과 썰물은 6시간마다 하루 4번. 달의 변화는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로 구분. 공간을 측정하는 것 길이, 넓이, 깊이, 높이로 측정함. 만물의 4 원소 물, 불, 공기, 흙

5. 하나님의 은혜 

다윗이 돌 다섯 개로 골리앗을 쓰러트림
손가락, 발가락, 인간의 감성이 오감으로 느껴짐
수학적인 주장으로는 최초의 짝수 2와 최초의 홀수 3의 합이 5이다. (1은 홀수가 아니다.)
출애굽기 32:5 - 소, 나귀, 양때, 남종, 여종을 보내서
출애굽기 33:12-17 - 은총이 5회
룻기 2:1-10 - 1-9절까지 보아스가 5회 나온 후 10절에서 룻이 엎드려 은혜를 베풀어주심에
사무엘상 16:13-22 - 다윗이 5회 나온 후 은총을 입어
고린도후서12:1-12 -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벗어나게 해주세요라고 세 번 간구했을 때 9절에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헬라어로 다섯 단어로 표현함.(바울의 육체의 가시란? 질병이 아니라 유대인의 공격이 평생지속 된 것을 의미) 10절에서 다섯까지 통로를 통해서 은혜의 통로가 된다고 기록하고 있음.

이사야 9:6 - 아들의 이름
기묘자
모사
전능의 하나님
영존의 하나님 
평강의 하나님

창세기 15:6-9 - 6절 믿음으로 구원
9절 삼년 된 암소
삼년 된 암염소
삼년 된 숫양
산비둘기, 집비둘기

출애굽기 27:1 - 아카시아 나무로 번제 단, 장이 오규빗, 광이 오규빗, 고는 삼규 빗

민수기 3:46-48 - 속전을 치룰 때 두 당 오세겔씩

6. 두가지의 상반된 의미 1. 안식과 완성을 의미, 끝 맺음, 피조물이 창조주를 향한 갈망 2. 사단의 영향력, 사단, 사단의 역사, 중심

신플라톤주의에서는 "완전한 수"로 해석 1 은 모든 수의 출발, 최초의 짝수 2, 최초의 홀 수 3으로 해석하고 있다.

1더하기 2더하기 3더하기는 6이다.
1곱하기 2곱하기 3곱하기는 6이다.
물분자 구조가 육각형, 벌의 집 모양도 육각형이다. 자연적인 구조물은 6과 관련 된 것이 많다. "6"이 완전해 보이기는 하나 이것은 자연적인 시각이며 자연적인 구조에 대한 영향력이다.

마태복음 4:1-13 - 마귀, 사단, 시험하는 자 명칭이 6회

욥기 1:9 - 욥 이라는 이름이 6번째 언급될 때 사단이 공격

요한복음 8:44 - 여섯째 계명에 살인하지 말라

출애굽기 32:6 - 우상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

민수기 11:5 - 이스라엘의 광야에서의 6가지 불평

에스더 3:6 - 하만의 이름이 1절부터 6번나올 때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고자 하심

다니엘 3:1-5 - 금 신상의 넓이가 6 규빗
5절 - 사단에게 경배하기 위한 악기 6가지
다니엘 5:4 - 우상을 만들 때 사용한 재질 6가지
금, 은, 동, 철, 물, 석

누가복음 17:28 -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고린도전서 5:1-5 - 음행한 자는 사단에게 내어준다.
11절 - 6종류의 음행의 죄를 기록함

베드로전서 4:3 - 너희 죄의 항목 6가지

계시록 9:13-20 -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태초에 창조가 6일째 끝났다. 
지성소의 육면체로 만들어 짐

7. 완성, 완전한 끝맺음, 온전, 완전 

헬렌 바흐라는 사람은 "모든 순환하는 물체에는 7이라는 수와 관계가 있다."라고 했다.
음계 - 도에서 시까지 7음계로 구성
무지개 - 빨, 주, 노, 초, 파, 남, 보 7가지 색으로 구성(하나님의 약속을 의미)
요일 -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 7일로 구성 됨
인생의 7년주기 변화를 이야기 함
7세 - 젖니 빠짐
14세 - 성장의 단계(여아는 잉태가 가능한 나이)
21세 - 남자에게는 수염
28세 - 인생의 절정기
35세 - 결혼 할 나이
42세 - 분별력이 온전케 됨
49세 - 이성에 의해서 영혼이 고귀해 지는 시기
56세 - 분별력과 이성이 완성
63세 - 열정을 극복하고 이성과 공정성이 온전케 됨
70세 - 삶의 정점에 이르러 사람을 이해하고 삶을 이해 함
고린도후서 12:9 - 내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에서 "온전"은 헬라어 7단어로 쓰임
계시록 10:7 - 일곱째 천사가 이루리라
계시록 16:17 - 일곱째가 "되었다" 는 "개곤낸"이란 히브리어로 7단어로 기록하심
계시록 15:6-7 - 일곱 재앙을 일곱 천사가 
일곱 금 대접과 일곱 천사(7×7〓49 "하나님의 진노")
창세기 7:10 -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 창세기에서 땅 이라는 단어가 49번째 나올 때 홍수고 심판하심

열왕기하 8:1-3 - 칠 년 동안의 완벽한 기근 
칠 년 우기
칠 년을 다하매 
여호수아 6:3-5 - 성을 6일 동안 돌고
일곱 나팔 제사장
마지막 날에는(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나팔을 불면 성이 무너지리라 
열왕기하 5:1-7 - 일곱 번 씻 으라
열왕기하 4:35 - 일곱 번 재채기하고 깨어나다 
계시록 16:1 -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 으라
창세기 4:15 -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24 - 가인은 칠 배의 벌이
라맥은 벌이 칠 십 칠 배
창세기 41:1-7 - 칠 년 주기의 꿈
마태복음 18:21-22 -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잠언 9:1 - 지혜가 일곱 기둥으로 집을 세운다.
스가랴 4:2 - 일곱 등잔, 일곱 관이 있고
시편 시 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鍛鍊)한 은 같도다

8. 새로운 탄생, 새 창조, 거듭남

요한복음 3:3-8 - 거듭났다는 단어가 8번나옴
골로새서 3:9-11 - 8종류의 새사람
베드로후서 1:4-7 - 신의 성품 8가지
베드로전서 3:20 - 새로운 인류의 시작 8명
사무엘상 17:12-14 -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은 형제 중 8번째다.
창세기 20:4 - 이삭이 8일만에 할례

9. 성령의 열매, 거듭난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새로운 탄생이 있은 다음에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 
갈라디아서 5:22-23 - 성령의 열매 9가지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FAITH)

10. 법, 율법, 가르침을 의미

출애굽기 20:3-17 - 십계명
창세기 16:3 - 가나안에 10년째 거주
출애굽기 26:1-3 - 다섯 폭의 앙장과 다섯 폭의 앙장을 하나로 합하는 것
출애굽기 12:3 - 그 달 10일에 취하라 
사무엘상 25:38 - 한 열흘 후에
다니엘 1:12-15 - 열흘의 기한이 지난 후에 올 결과 
에스겔 24:1 - 제 구년 시월 십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11. 심판을 의미

출애굽기 14:2 - 애굽의 11가지 재앙
히브리서 11:20 - "빠져 죽었으며" 헬라어 11단어
창세기 5:32 - 아담의 11대손인 셈, 함, 야벳세대의 홍수심판
오바댜 1:8-11 -에서자손의 멸망을 예언
창세기 36:40-43 - 에서 에게서 나온 족장의 11족장
민수기 13:25-33 - 열하룻길 가데스 바네아 (심판의 장소)

신명기 1:2 -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바네아에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이사야 3:1-3 - 심판할 사람 11명을 열거
예레미야 52:1-9 - 야곱의 11번째 자식이 딸 "디나"-심판의 의미가있다.

12.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권위의 의미

다니엘 4:29 - 느부갓네살이 12달이 지난 후
마태복음 19:28 - 열두 보좌
마태복음 15:35-38 - 오병이어의 기적, 오천명을 먹이고 7광주리남음, 12광주리 남음.
요한복음 11:9 - 낮이 12시간
욥기 38:31-33 - 열두 궁성 (북두칠성과 그 속한 별들)
민수기 33:9 - 12샘물
열왕기상 7:25 - 12마리의 소
창세기 12:7 - 아브라함이 12번째 나타날 때
에스겔 41:1 - 성소의 넓이가 12규빗
계시록 22:2 - 12가지 실과를 맺히되, 그 잎사귀 - 만국을 소성 하기 위하여 있더라

13. 죄, 반역, 타락, 반항, 대적의 의미

미국에서는 13이라는 숫자의 의미 때문에 매년 10억달러 이상의 경제적 손해를 보고 있다.
마가복음 7:20-22 - 13가지의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창세기 14:4 - 십 삼년 - 배반
창세기 10:8 - 니므롯 - 바벨탑을 건조한 자 - 아담이후 함의의 13대손(창10:10-)
에스더 3:12-13 - 정월13일에 조서를 내렸고 13일에 모두 죽임.

계시록 20:2 - 용이란 단어가 13번째 나올 때 결박
창세기 17:25, 골로새서 2:11 - 이스마엘이 13살에 할례를 받았고 이삭은 8살에 할례를 받음

14. 구원, 해방, 석방, 육체읙 구원

출애굽기 12:25-27 - 그 달 정월 14일에
요한1서 3:14 - 헬라어 14단어로 기록
사도행전 11:14 - 헬라어 14단어로 기록

15. 안식의 의미

레위기 23:6 - 이달 15일은 무교절이니
에스더 9:18 - 15일에 쉬며
레위기 23: 34-35 -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
민수기 29:12 -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출애굽기 16:1 -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일이라
에스겔 32:17 - 제 십이년 어느 달 십오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창세기 7:20 -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열왕기하 20:6 - 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 것이며
이사야 38:5 -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년을 더하고

16. 사랑, 주를 향한 사랑, 주님이나를 향한 사랑, 일반적인 사랑

고린도전서 13:4-8 - 사랑의 특성 16가지
고린도전서 14:1 - "사랑을 따라 구하라" 헬라어 16단어로 기록

17. 승리(죽음을 이기신 승리)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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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35-39 - 승리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 17가지
사무엘상 17:45 - 물매돌 5개와 하나님의 능력(12)로 승리함
요한일서 5:5 - 헬라어 17단어로 기록
창세기 8:4 - 칠월 곧 그 달 십칠 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창세기 47:28 -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하였으니
예레미야 32:9 -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18. 구속, 매임의 의미

누가복음 13:16 - 사단에게 18년동안 매인바 된 여인
누가복음 13:4 - 치어죽은 18사람
사사기 3:14 -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십팔 년을 섬기니라
사사기 10:8 -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한 이스라엘 자손이 십팔 년 동안 학대를 당하였고
예레미야 52:29 - 느부갓네살의 십팔 년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옮긴 자가 팔백삼십이인이요
누가복음 13:11 - 십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19. 믿음 - 1부터 19까지 더하면 합이 190이다.-

히브리서 11:11 -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 나이 100세 사라는 90세
로마서 10:10 -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19글자로 기록
고린도전서 15:11 -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19글자로 기록

20. 구속, 값을 치룸의 의미

출애굽기 30:12-14 - 이스라엘은 20세에 속전을 치룸
창세기 18:31 - 거기서 이십 인을 찾으시면 
창세기 37:28 -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 올리고 은 이십 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레위기 27:5 - 이십 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이십 세겔로 
민수기 10:11 - 제 이년 이월 이십일에 구름이 증거막에서 떠오르매
민수기 32:11 - 애굽에서 나온 자들의 이십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사사기 4:3 - 야빈 왕은 철병거 구백 승이 있어서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사무엘상 7:2 -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열왕기상 9:10 - 솔로몬이 두 집 곧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이십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열왕기상 9:14 - 히람이 금 일백 이십 달란트를 
열왕기상 9:28 - 금 사백 이십 달란트를 얻고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
열왕기상 10:10 - 금 일백 이십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 역대하 4:1 - 단을 만들었으니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십 규빗이며

21. 죄가 관영함의 의미

로마서 1:28-32 - 악한 것이 21가지이다.
예레미야 52:1 - 시드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일 세라

다니엘 10:13 - 그런데 바사 국 군이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22. 빛, 나타냄, 들어냄의 의미

출애굽기 25:31-34 - 등잔 22개(성소에 있는 등대)

23. 죽음, 사망의 의미

로마서 1:28-32 - 이 일을 행하는 자. 영어성경에서는 23가지 죄를 말함
고린도전서 15:56 - 10+13=23
로마서 7:9 - 10+13=23
누가복음 23:43-46 -예수님은 14일(유월절) 제 구시에 죽으심
계시록 18:8 - 11+12=23
요한일서 5:16 - 11+12=23
예레미야 25:3 - 이십삼 년 동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되 부지런히 일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24. 제사장직을 의미

역대상 24:1-9 - 24명의 족장이 제사장직 감당
계시록 4:4 - 24보좌, 24장로

25. 죄용서를 의미

에스겔 40:1 -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오 년이요 
누가복음 24:13 - 예루살렘에서 이십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촌으로 가면서

26. 복음을 의미

27. 복음 전파, 예언을 의미

28. 영생을 의미

29. 출발을 의미, 믿음의 성취로써의 기대

30. 피값, 예수 그리스도의 피,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의미 

창세기 18:30 - 거기서 삼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창 41:46 -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세라 
출애굽기 12:40 -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 삼십년이라
민수기 20:29 - 온 회중 곧 이스라엘 온 족속이 아론의 죽은 것 을 보고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였더라
신명기 34:8 -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맞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마태복음 27:3 -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31. 후손, 씨, 하나님의 신성을 의미 함

32. 언약

33. 약속

34. 인내

35. 소망

36. 적

37. 높임

38. 의

39. 진리

40. 시험, 환난(사단의 영향력에 의한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 녀와 백성에게 내려지는 보응)

신명기 8:2-5 -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심

사사기 13:1 - 블레셋 하에서의 40년 생활
사도행전 7:23 - 애굽에서의 모세의 삶

41. 속임수, 사기

42. 재림

42는 6x7과 7x6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6x7은 6을 7번 곱하는 의미에서 6의 의미가 앞서 나온다.
6은 앞에서 본바와 같이 사단의 수를 의미한다.
7은 완전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사단의 교만을 의미한다.
적그리스도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반대로 7곱하기 6은 하나님의 완전수가 육체적인 제한을 뛰어넘는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의미를 포함한다.
이런 경우 상반된 두 가지의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꿈 해석에 적용하는데 난감한 부분이 있지만 오히려 꿈의 상황과 느낌 꿈의 전개되는 내용을 정확히 분석하면 오히려 더욱 분명한 해석으로 가져가기가 수월해 진다.
상반된 의미는 오히려 더욱 해석의 질과 깊이를 더해주는 경우가 많다.

46. 불못 사망

49. 하나님의 진노

50. 영, 성령, 희년, 기쁨 혹은 구원

51. 하나님의 계시

65. 배교

70(72). 영과 권세가 크게 강조된 온전한 영의 세계의 질서, 열방을 의미

눅10:17-19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심(70 혹은 72명)

히브리어로 70이나 72는 열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

누가복음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점령하셨다는 의미로도 말함

72. 예수님 당시 그리스어 역본에는 창12에 기록된 열방의 수가 72로 기록됨(70과 72의 의미를 같은 것으로 봄)

91. 내어 쫓다

100. 백배의 축복

창 26: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눅 8: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105. 주님의 이름을 부름 

120.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뜻을 이루시기 까지 기다려야하는 기간을 의미한다.
수련기간이다.


153. 베드로의 물고기와 예수님의 명령, 사람과 직접 관련된 영혼 구원을 의미함

물고기는 사람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21:11
물고기를 잡지 못해 낙심한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그물을 끌어 올리라고 말씀하심으로 잡은 물고기가 153마리였다.

1 ) 물고기 153마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바닷가에서 잡게하신 물고기 숫자가 153 마리였다
( 요 21:3~14 )

왜 하필 153 마리였으며 그 숫자를 성경에 기록한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성경 말씀은 무의미한 것이 하다도 없으니 153도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다

수신학( 數神學 : Gematria )이라는 것이 있는데 유대인들이 연구하는 것으로
153을 히브리어 글자의 숫자를 넣어보면
< 하나님의 아들들 >이라는 문장과 같아진다

즉 신학교에서 히브리어를 배운 사람은 알겠지만
히브리어 알파벳은 글자마다 숫자 값이 있다

한글의 ㄱ,ㄴ,ㄷ,ㄹ...ㅏㅑㅓㅕ...에는 숫자가 없고 영어 ABC...도 수가 없지만
라틴어나 헬라어도 숫자 값이 있다

그래서 아라비아 숫자를 쓰기 전 옛날에는 글자를 숫자로 썼다
히브리어 알파벳은 다음과 같은데

( 히브리어는 문장을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문장을 꺼꾸로 쓰기 때문에
컴퓨터로 마음대로 되지를 않아서 밑에 아래로 수직으로 썼음 )


수 값은 첫자부터 알렢(1) 베트(2) 김멜(3) 달렡(4) 헤(5) 바우(6) 자인(7) 헤드(8) 테드(9) 요드(10) 카프(20) 라멛(30) 엠(50) 눈(60) 싸멬(70) 아인(80) 페(9)) 차데(100) 코프(200) 레슈(300) 쉰,씬(300) 타우(400)

주님께서 쓸데 없이 153이라는 숫자를 밝히신 것이 아니다.
무슨 의미일까?
히브리어로 < 하나님의 아들들 ( 벤 엘로힘) >의 문장의 글자의 숫자 값을 더하면 153 이 된다
즉 153의 숫자는 < 하나님의 아들들 >이라는 뜻의 숫자와 같다

벤( 아들들 )은 =>> 베트(2) + 눈(50) + 요드(10) 이니 = 합 62요
엘로힘( 하나님)은 = 헤( 5 ) + 알렢(1) + 라멛(30 ) + 헤(5) + 요드( 10 ) + 멤( 40 ) =91

이니 62와 91을 합하면 153이다


처음에 베드로를 부르실 때 "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그 낚일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 곧
그 이름( 말씀)을 영접할 사람즐이다( 요1:12 )

그러므로 고기나 낙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는 멧쎄지가 153인 것이다

 2 ) 트리플 큐브 넘버

수학자들이 볼 때 153 이라는 숫자는 특이한 숫자이다
이것은 수학자들이

Triple Cube number 라고 부르는 것으로
TCN 은 100~1,000 까지의 숫자 중 그 세개의 숫자들을 각각 3제곱하였다가

다시 더하면 도로 제 수가 되는 특이한 수인데
100 에서 1,000까지의 숫자들 중 그런 수가 4개 밖에 없다 한다

153을 가지고 예를 들면 세 숫자를 각각 3자승하면 다음과 같다

1( 3승=1) + 5( 3승 = 125 ) + 3(3승 = 27 )
인데 1 + 125 + 27 = 153 이 된다


 3 ) 정삼각수

이 수는 또한 수학에서 말하는 정삼각수에서 17번째 정삼각수인데
그 문제는 처음부터 설명을 안하였으므로 이해가 안갈 터이니 생략하고


 4 ) 거룩한 수

트리플 큐브 넘버 곧 3자승 수는 정육면체 숫자로 거룩한 수이다
지성소가 정육면체이며

노아가 방주( 거룩한 곳)에 머물렀던 일자가 371일로 371 역시 트리플 쿠브 넘버로
각각 3승하여 더하면 도로 371이 된다

( 27 + 343 + 1 ) = 371

200. -이 채워져야 함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하는 것

300. 승리 - 기드온의 삼백용사 -

360 - 남아있는 징벌의 기간

390. 이스라엘의 포로생활 기간- 390년, 죄악의 년 수

400.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기다리는 기간

출애굽을 시작한 기간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남의 나라에서 살았던 기간이다.

430 - 유다집의 죄악의 년 수

536 - 포로에서 풀려남, 귀환

606 - 포로로 끌려 감

666. 적그리스도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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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

1. 수신학과 해석체계인 게마트라아

성경의 숫자 개념 속에는 수효, 수치, 수량, 시간 등 표면적인 기능 외에 상징적(象徵的)이고 제의적(題意的)이며 신비적(神秘的)인 기능도 포함하는데 이를 일반 학문에서는 수비학(數秘學, Numerology)이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수신학(數神學)이라고도 한다.




유대인에게 아브라함부터 42대(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포로기까지 14
대, 바벨론 포로기부터 예수까지 14대) 만에 태어난 다윗왕의 혈통이 바로 예수그리스
도임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림 1. 족보에 나타난 다윗의 이름의 숫자 값과 예수 그리스도의 연관성
이처럼 수와 문자를 이용하여 성경속의 말씀을 해석하는 해석체계를 게마트리
아라고 하며 수신학의 한 방법이다. 이 기원은 수를 필요로 하여 문자를 수로 쓰기 시
작한 기원전 200년경으로 수-문자체계(Alpha numeric system)방법이 유대사회에 소개
가 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창세기(49:10)에 나오는 ‘실로가 오시기까지 (יבא שׁילה, 야바실
로)’는 구세주의 도래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된다. 이 ‘야바 실로’는
10+2+1+300+10+30+5=358에 해당하는데 또한 구세주의 히브리어
‘메시아(משׁיח)’도
40+300+10+8로 합이 358이 된다. 그리고 모세의 구리 뱀(민21:9)인
‘놋뱀(נחשׁ,
nachash)’도 50+8+300으로 358이다. 이처럼 메시아에 대한 공통성 때문에 358을

원의 수(Salvation number)라고 부른다.
또 다른 예로
‘하나님의 아들들(םיהלאה ינב)’이란 단어는 맛소라 사본의 구약성
경에서 일곱 번 등장하며, 숫자 값은 1531)(2+50+10+5+1+30+5+10+40)으로 예수 부
1) 153(13+53+33 = 153)이라는 숫자는 세 개의 정육면체(입방체)를 만드는 수이며 각 정육면체는
활 후 베드로가 잡은 물고기의 수가 ‘153마리’라는 점을 들어 구약의 하나님의 아들들
과 연결시켜 교회(그물)속에 들어간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다.
2. 하나님의 이름, 야훼와 성자 예수.
여호와가 성자 예수라는 사실은 그 이름의 히브리어 문자들의 뜻과도 연관되
어 있다. 10번째 문자 요드는 손을, 5번째 문자 헤는 보라를, 6번째 문자 바브는 못을,
이 문자들을 연결하면 손을 보라 못을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못 자국 난 손을 보라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수의 히브리어 이름과 구원의 히브리어 예슈아도 똑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야훼는 성자 예수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야훼(하나님, 26=2x13)
ה ו ה י
헤, 보라 바브, 못 헤, 보라 요드, 손
예호수아(예수, 391=17x23)
ה שׁ ו ה י
헤, 보라 쉬,
전능자 바브, 못 헤, 보라 요드, 손
예슈아(구원, 391=17x23)
ה ע ו שׁ י
헤, 보라 아인, 눈 바브, 못 쉬,
전능자 요드, 손
또한 예수의 히브리어( ) 숫자 값은 391(17 x 23)로서 구원의 히브리어
( )와 일치하는데 이는 희생제물(17: )로서 우리를 살리시고(23: ), 우리의
지성소의 모양과 일치하는 것으로 거룩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370, 371, 407도 세 개의 정
육면체 수이다.
죄(23: )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391)을 이름과 그 숫자 값 속에 분명히 보
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분이 구원자임을 보여주며 야훼 하나님이심을 드러낸다.
그림 11. 야훼의 이름에 예수님이 드러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히실 때 십자가에 달았던 명패인 [나사렛 예슈아 유
대인의 왕-]의 네 단어의 첫 글자는 (YHWH, 야훼)가 된다. 예수께서 여호와 하나
님이심을 드러내주는 명패이지만 제사장들이 보고 자칭이라는 단어를 삽입하여 무시
하려고 하였다.
그림 13 여호와의 숫자 값인 26과 두 개의 육각별 수 13
히브리어 알파벳과 엘로힘의 첫 글자 인 '알레프'(Aleph)는 신성한 서문의 3,
9, 10, 15, 23, 26 번째 문자의 위치에서 6번 발생하는데 이 서수(Ordinal Number)들
의 숫자의 총합은 86으로 '엘로힘'의 숫자 값이 된다.
그림 14. 히브리어 알파벳 알레프와 엘로힘의 상관관계
3. 진리(64)와 지혜(서수37) 되신 예수 그리스도(2368=64*37)
37(지혜; -호크마의 서수 값)과 73(지혜; -호크마의 숫자 값)은
모두 소수(prime number)2)이다. 37은 3형수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37은 숫자 중에서
유일하다. (a)에서 37은 육각형인데 이것이 (b)에서 보듯이 64 개의 단위원으로 된
4x4x4 큐브의 2차원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 큐브의 두드러진 특징은 (c)에서 육각형
에 겹쳐서 표시된다. 37의 이러한 2차원으로의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도 연
관되어 있다.
그림 17. 육각별 들과 다양한 숫자 값: (a) 37, (b) 27, (c) 37, (d) 64
예수 그리스도의 헬라어( ) 숫자 값은 2368(888:예수 + 1480:그
리스도)이다. 73개로 이루어진 육각별 내부에 핑크색으로 된 37개의 (d) 육각큐브
(4*4*4=64)의 곱은 2368(37*64: 예수 그리스도의 숫자 값)이 된다. 오른쪽의 파란색의
육각형은 24개로 37*24, 즉 888(예수)이 된다. 37과 73의 연속된 수 373은 로고스
(7x37.259 + 6x19.114)의 숫자 값이기도 하다.
2) 소수(prime number)란 1과 자신을 제외한 다른 정수로는 나누어지지 않는 특별한 수이다.
신명기 4장 6절 쉐마 절(삼위일체를 강력히 증거 하는 구절)의 합계인 1118
은 111과 8을 분리하여 곱할 때는 예수(888=111x8)의 숫자 값과도 연결이 된다.
그림 22. 쉐마 이스라엘, 신 4:6절은 예수를 드러낸다. 1118=>111*8
37개의 큐브(64)로 이루어진 육각별 2368은 창조주(The Creator=37x64)를 나
타낸다. 하늘색의 테두리 정육면체(64=4*4*4)의 투사체(37)는 24개로 총 합은 예수
(Jesus), 888(24x37)이 된다.
그림 23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의 숫자 값 2368에 숨겨진 법궤의 비율 3:5
그리스도(CHRIST)는 1480(24x27+13x64=24x33 + 13x43)으로 24개의 3의 세제
곱수 27과의 곱 더하기 13개의 4의 세제곱 수 64( ; 진리)와의 곱이 된다. 그
리고 놀랍게도 64의 7배는 448이 되는데 이는 진실한 분( : 448=7x64,
계3:7)의 숫자 값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숫자 값 2368(8*296)은 땅을 뜻하는 하아레츠의 숫자 값인
296 곱하기 8로, 296x3(예수) + 296x5(그리스도)이기도하다. 이는 예수와 그리스도의
비율이 지성소안에 있는 법궤의 비율인 한 규빗 반(3) 대 두 규빗 반(5)과 일치한다(출
37:1).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숫자 값의 비율로도 지성소의 법궤와 같은 하나
님의 거룩한 임재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익투스(ἰχθύς, ΙΧΘΥΣ)는 ‘물고기’라는 뜻으로 영화 [쿠오바디스]에서 기독교인들
의 상징으로 나오며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익투스는 그리스어
로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Ιησους Χριστος Θεου Υιος Σωτηρ)’
의 약자라는 설도 있다(마태 16:16).
참고로 예수 그리스도의 히브리어( ) 숫자 값은 754(2 x 13 x
29 = 13사랑 x 58은혜)이며 예수의 히브리어( ) 숫자 값은 391(17*23)로서 구원
의 히브리어( )와 일치한다.


 





릭 워렌 목사 “기독교인들이 나쁜 습관 바꾸지 않는 4가지 이유"


미국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가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바꾸지 않는 이유 4가지를 설명하고 진리가 오랜 습관을 바꾸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공유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릭 워렌 목사는 변화를 위한 개인의 노력에 초점을 맞춘 ‘나의 인생 재설정’ 시리즈의 일환으로 어머니의 날 설교를 전했다.

그는 “하나님과의 연결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건강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몸, 관계, 습관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수준을 바꾸고 싶을 수도 있다.
직업, 경력, 일을 바꾸고 싶을 수도 있다.
결혼 생활을 재설정하고 싶을 수도 있다”라고 했다.

워렌 목사는 전도서 7장 20절(“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을 인용했다.

그는 “변화하려는 모든 노력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분의 삶과 성격의 영역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이다. 여러분 스스로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완고한 당신 안에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여러분의 삶에서 끊임없는 문제다.
여러분이 몇주 동안 이 문제들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몇 년 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여러분이 정말 좋아하지 않는 삶의 부분,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바꾸고, 수정하고, 삶에서 재설정하려고 할 때 반항하고 저항한다”라고 말했다.

워렌 목사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는 “내 인생에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완고한 부분, 즉 습관, 패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 내 삶의 습관적인 약점을 바꾸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라며 “하나님은 그것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변화가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하는 4가지 이유를 나열했다.

첫째, 너무 오랫동안 나쁜 습관이 자리잡아 변화가 불가능해 보인다.

워렌 목사는 “여러분의 패턴 중 많은 부분이 실제로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확립된 방식이며 이러한 패턴은 여러분이 맞서 싸우는 방법을 몰랐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신의 자멸적인 패턴 중 일부는 실제로 어린 시절 생존 전술이었다. 지금, 여러분은 그것들이 작동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 방법들은 자멸적이었다. 습관과 패턴들,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삶에 그러한 패턴을 갖고 있다. 왜인가? 익숙해서 그렇다”라고 말했다.

워렌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이 익숙해진 자기 파괴적인 습관은 ‘오랜 친구’와 같다.

그는 “그 습관들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습관들이 작동하지 않음을 안다. 그러한 습관과 패턴이 문제나 갈등을 야기한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들에 익숙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이) 오랫동안 그런 문제를 겪었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바꾸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둘째, 기독교인들이 종종 자신의 정체성과 결점을 혼동하기 때문

그들은 스스로에게 “나는 워커홀릭이다, 나는 수동적이다, 나는 공격적이다, 나는 소심하다, 나는 과식하다, 나는 게으르다”라고 말한다.

이어 “그러한 결함들은 여러분의 진정한 정체성이 아니다....그것들이 여러분의 진정한 신분을 숨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특정한 방식으로 볼 때 일어나는 일은 자기충족적 예언에 가두는 것이다. 여러분은 ‘나는 항상 비행기에서 긴장한다’라고 말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 비행기에서 긴장할 것이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때때로 ‘오랫동안 예전의 나로 살아왔기 때문에 내가 변해도 여전히 그렇지 않을까?’라고 두려워한다”라고 말했다.

셋째,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도움이 되는 것이든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든,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나쁜 습관 뒤에는 보상이 있다.

때때로 이 보상은 감정적, 관계적 또는 기타 강화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은 그 결함에 대해 보상을 받는다. 그 나쁜 습관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받는다. 무엇을 보상받든 반복한다”라고 말했다.

넷째, 사탄이 낙담시키기 때문

워렌 목사는 “(사탄은) 여러분을 틀에 박힌 상태에 가두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이 전쟁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워렌 목사는 “그는 여러분을 억누르고 싶어한다. 그는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여자 혹은 남자가 되는 것을 막고 싶어한다. 그는 자기 회의, 비판, 비난을 사용한다. 사탄이 끊임없이 생각을 통해 여러분을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성경은 사탄을 고발자라고 부른다. 사실 그의 이름이 그런 의미다.… 그는 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탄은) ‘너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다이어트를 했나? 이것은 희망이 없다. 너의 결혼생활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너는 자녀와 이웃과의 관계를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다. 희망이 없다.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곧 포기할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어디에서 온 것 같나?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사탄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변화의 시작은 기독교인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선택하기 시작할 때만 일어날 수 있다”라며 “변화는 여러분의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모든 변화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감정, 행동을 바꾸기 전 여러분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했다. 워렌 목사는 에베소서 4장 21-27절을 언급했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음의 태도를 새롭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개인적인 변화의 비결은 “여러분, 하나님, 삶, 문제, 가족, 과거, 성장에 관한 진실을 알고 직면할 때 일어날 수 있다”라며 “변화는 항상 진리에서 시작된다. 부정적인 생각, 거짓, 불신에서 긍정적인 변화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진리를 배우고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했다.

[출처]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15337#share


이레니우스(라틴식 이름 : Irenaeus. 헬라식 이름 : Εἰρηναῖος)


이레니우스(라틴식 이름 : Irenaeus. 헬라식 이름 : Εἰρηναῖο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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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이레네우스는 2세기 말, 지금의 프랑스 남부 도시 리용(Lyon. 라틴지명: Lugdunum)의 주교였다.
‘이레네우스’라는 이름은 헬라어(=희랍어. 그리스어) ‘평화’를 의미하는 ‘에이레네’에서 파생된 단어로써 ‘화평자’를 의미한다.
최초의 기독교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는 그를 가리켜 ‘화평케 하는 자’(Εἰρηνοπιος)라 불렀다.

그는 자신이 어린시절 서머나(Smyrna. 스미르나)의 주교이며 순교자인 폴리캅(Polycarp. 폴리카르포스)에게서 배웠다고 언급했기 때문에 폴리캅의 제자로 알려져 있는데, 이 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마지막 제자였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레네우스의 출생지를 소아시아의 서머나 혹은 그 주변 지역으로 추정하는데, 그곳은 지금 터키의 이즈미르(Izmir)이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학자들에 따라 115-145 사이로 추정된다.

이레네우스가 무슨 이유로 동방에서 서유럽으로, 즉 프랑스 남부에 있는 골(Gaul) 지방의 리용으로 이주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추정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한다.

첫째는 상업적인 용무 때문이었다
둘째는 선교적 열심 때문이었다

그가 리용의 주교 포티누스(Pothinus = Potheinus) 아래 그곳의 사제로 임명되어 장로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177년에 포티누스는 당시 유행하던 이단 사상인 몬타누스주의(Montanism)에 대한 골 지역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을 담은 편지 한 통을 로마 주교 엘류테리우스(Eleutherius)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레네우스를 로마로 파송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재임기간: 161-180)의 혹독하고 잔인한 박해가 리용을 덮쳤고, 결국 178년에 포티누스 주교는 9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로 순교를 당하고 말았다.

리용의 기독교 공동체는 이레네우스가 로마에서 돌아오자 순교자 포티누스를 이어 그를 리용의 새로운 감독, 즉 주교로 선출했다. 그의 주교권 구역은 리용뿐만 아니라 비엔나(Vienne)를 포함하여 리용 주변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까지 확대되었다. 후대의 한 저술에 의하면 이레네우스는 단기간에 리용 전체를 기독교로 개종시킨 탁월한 감독이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대부분의 교부 연구가들은 이러한 진술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레네우스는 당시 교회 사이에 논란이 많았던 부활절 날짜 문제와 관련하여 로마 주교인 빅토로(Victor. 재임기간: c. 189- c. 199)에게 편지를 보내여 14일파(Quartodeciman. 유대력 니산월 14일을 부활절로 정하고 그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사람들)를 파문하지 말고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레네우스의 정확한 사망 연도는 알 수 없고 다만 약 200-202년경으로 추정한다. 라틴어 성경 불가타(Vulgata)를 번역한 제롬(Jerome), 즉 히에로니무스(Hieronimus)는 그가 순교했다고 전한다. 그는 리용의 성 요한 교회에 장사되었는데, 후에 이 교회는 성 이레네우스 교회로 개명되었다. 그의 무덤과 유물들은 1562년 프랑스 개신교도들인 위그노(Huguenots)에 의해 깡그리 파헤쳐지고 파괴되었는데, 위그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그것들이 우상으로 숭배되었기 때문이다.
 
2. 저술

독일의 교부 연구 대가인 한스 폰 캄펜하우젠(Hans von Kampenhausen)은 이레네우스가 헬라어를 사용하는 동방 출신이라는 점과 그의 모국어와 저술 언어가 헬라어라는 점을 고려하여 그를 동방교부, 즉 헬라교부로 분류한다. 사실 헬라어는 그 당시 로마 제국의 동쪽 지역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에 사는 대부분의 그리스도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교회의 언어였다. 하지만 이레네우스는 로마 제국의 서쪽 지역인 골 지방의 리용에서 사역했기 때문에 모국어인 헬라어뿐만 아니라 당시 로마 언어였던 라틴어에도 능통했다.

이레네우스의 저작들 가운데 잔존해 있는 것은 두 권이다. 하나는 흔히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 영어: Against Heresies)으로 알려진 <사칭되는 ‘영지’에 대한 폭로와 반박>(Detectio et eversio falso cognominatae gnosis = Ἔλεγχος και ἀντροπη της ψευδωνυμου γνωσεως)이라는 저술이다. 이 저술을 히에로니무스가 <이단 논박>이라는 명칭으로 인용한 이후 줄곧 원제목 보다 이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5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은 라틴어 번역판으로는 완전본이 남아 있지만 헬라어 본문으로는 일부 단편만 남아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인 <이단 논박>에서 이레네우스는 ‘지식’을 뜻하는 헬라어 ‘그노시스’(gnosis. 영지)에서 노스티시즘(Gnosticism), 즉 영지주의, 특히 그 중에서도 영지주의적 이단 발렌티누스(Valentinus)의 체계를 철저하고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반박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진리의 표준’(canon veritatis)과 ‘신앙의 규범’(regula fidei)을 변호한다. 또한 당시 교회의 가장 위협적이었던 마르시온(Marcion. 마르키온; 말시온) 이단뿐만 아니라 몬타누스(Montanus) 이단에 대해서도 논박한다.

잔존해 있는 다른 하나의 저술은 <에피데익시스>(Epideixis)로 알려진 <사도적 선포에 관한 논증>(Ἐπιδειξις του ἀποστολικου κηρυγματος)이라는 책인데 단지 아람어 번역본만 존재한다. 여기서 이레네우스는 구약의 예언들이 신약의 복음서에서 성취되었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3. 사상

이레네우스는 교회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강조했는데, 특히 주교직과 성경과 전통을 강력하게 변호했다. 그는 로마 교회의 전통과 일치하는 교리적 전통의 권위만이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로마 주교직의 수위권을 강력하게 옹호했는데, 이것은 후에 로마 교황의 수위권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모든 주교들의 의견을 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크고 오래되었으며 사도 바울과 베드로에 의해 설립되고 교훈을 받은 로마 교회가 사도들로부터 이어받은 전통과 그들의 주교들을 통하여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온 신앙을 본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로마 교회의 강력한 권위 때문에 모든 교회, 즉 모든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교회에 따르고 있으며, 로마 교회 안에서 사도들로부터 유래한 전통이 수호되고 있기 때문이다.(<이단 논박> III.3.2.)

이레네우스는 마르시온에 반대하여 구약과 신약의 밀접한 상관성을 주장했으며 마르시온이 신약 가운데 정경에서 제외시킨 4 복음서 모두를 영감된 정경임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복음서들이 네 개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이단 논박> III.11.8) 그는 <이단 논박>에서만 빌레몬서, 베드로후서, 요한삼서, 유다서 외의 모든 신약 성경으로부터 무려 1,075개의 성경 구절을 인용했이다. 이런 점에서 이레네우스가 오늘날 신약 성경 27권 모두를 영감된 한 권의 성경으로 간주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기독론과 관련하여 이레네우스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에비온주의자들(Ebionites)과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발렌티누스주의(Valentianism) 모두를 반박하면서 ‘하나이며 동일한’(εἶς και αὐτος)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 간의 통일성을 주장하였다.(<이단 논박> III.16.3.)
삼위일체론과 관련하여 이레네우스는 경륜적 삼위일체론자로 분류된다. 이러한 분류는 그의 가장 유명한 신학 사상인 ‘총괄갱신’(recapitulatio = ἀνακεφαλαιωσις)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 총괄갱신의 핵심은 ‘그 자신 안에서 만물을 완성하시는 한 분 그리스도’라는 개념이다.
말씀은 친히 인간이 되시어 자신 안에서 만물을 완성하신다. 하늘 위의 것들과 영적이고 비가시적인 세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이신 것처럼 그 말씀은 또한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영역에서 으뜸이 되실 것이다.(<이단 논박> III.16.6.)

 주님은 자신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생명의 낙원으로 이끄시고 그 자신 안에서 만물,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을 완성하신다.(<이단 논박> III.18.1.) 


최초의 교부 위대한 조직신학자  이레나우스의 생애와 신학
최초의 교부였던 이레나우스는(Irenaeus, Born AD 130 Smyrna, Died 202 Lugdunum) 소아시아 동북 지중해안의 서머나 지방에서 출생 했다. 당시 소아시아의 안디옥은 다양한 종교, 철학, 문화의 접촉지로서 로마 제국의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였다. 이레니우스는 170년경 고울 지방의 리용에 정착하면서 177년 그곳의 장로가 되었고 당시 리용의 감독이었던 포티누스의 순교로 인해 리용의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이레나우스가 활동했던 소아시아의 팔레스틴, 안디옥에서는 이그나티우스, 폴리캅, 파피아스, 데오빌로, 유스틴 등의 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레나우스는 이들의 영향을 받았고 이 일련의 학자들은 훗날 안디옥 학파로 불린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머나 지방의 감독 폴리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레나우스의 기독론 해석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레나우스는 헬레니즘적인 학문과 철학적 통찰력과 실천의 지혜 및 중용의 요소가 조화된 훌륭한 목회자였고 그의 저술 또한 목회적인 입장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교의학의 아버지’ 또는 ‘교회의 최초의 위대한 조직신학자’라 불리는 이레나우스는 교회의 전통, 구속사, 신구약의 권위 등 여러 분야에서 업적을 찾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2세기 영지주의자들과 논쟁에서 중요성 때문에 기독교회사에서의 의미심장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레나우스는 일생동안 영지주의를 논박하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계획을 역사 신학 내에서 진지하게 설정하였으며 신약을 구약과 같은 권위로 보면서 성경을 총체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었다.
이레나우스는 기독교를 진정한 철학으로 보 려는 변증가들의 견해에 반대하였으며 헬라적 사색의 도움을 동원하지 않았고 계시의 내용이 단순히 새로우면서도 보다 나은 철학에 불과하 다는 자들과도 견해를 달리했다. 그에게는 성경 적 전통만이 신앙의 유일한 근원이었다.

목회적 소질을 타고난 이레니우스는 고울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이단으로부터 양들을 변호하는데 관심을 쏟았다. 다른 한편으로 이레나우스는 변방에 있는 켈트족의 복음화와 리용의 교회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후기 자료에 의하면 이레나우스는 리용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죽임을 당하던 202년에 순교하였다.

이레나우스는 사도적인 전통(가르침)은 성경에서 발견되며 교회에 보존되어 왔으며 따라서 “진리를 보기 원하는 사람은 온 세계에 분명하게 된 사도들의 전통을 어느 교회에서나 분면하게 볼 수 있다.”고 보았다. 교회의 전통에 대한 이레나우스의 호소는 정경(正經) 형성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이레니우스는 4복음서를 의심 없이 수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4복음서가 이레니우스 시대에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레나우스의 역사관을 언급해보면 이레나우스가 구속사관을 제시한 최초의 역사 신학자로 평가 받는 이유는 그가 창조와 구속을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구속사(救贖史)라는 관점에서 구약과 신약을 통일시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통시적인 역사 이해는 창조주와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하나이며 같은 하나님임을 확신하는데서 출발한다.

이레니우스는 수많은 저술을 기록한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는 것은 ‘소위 영지주의의 고발과 논박’과 ‘사도적 설교의 논증’이다. 전자는 영지주의자들에 대항하여 기술된 작품으로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으로 알려졌다. 다섯 권으로 되어있는 이단 논박은 주제에 따라 다름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권 영지주의의 해설, 2권 이성에 의거하여 논박함, 3-5권 선지서, 주의 말씀과 사도들에기초한 성경으로부터의 논박이다.

이 책에서 이레나우스는 영지주의의 대표적인 유형인 발렌티누스(Valentinus, AD100-160)의 제자인 플톨레매우스(ptolemaeus)의 제자들의 가르침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역사적 성육신에 기초한 이런 통시적인 구속사와 신구약의 연속성의 개념은 ‘에피데이키스’(Epideixis)라고 불리는 단편작품 ‘사도설교의 논증’에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이레니우스는 창조에서 최후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역사를 제시했다.(*)

이레니우스는 170년경 고울 지방의 리용에 정착하면서 177년 그곳의 장로가 되었고, 당시 리용의 감독이었던 포티누스의 순교로 인해 리용교회의 감독으로 선출된다. 이레니우스가 활동했던 소아시아(팔레스틴, 안디옥)에서는 이그나티우스, 폴리캅, 파피아스, 데오빌로, 저스틴 등의 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레니우스는 이들의 영향을 받았고, 이 일련의 학자들은 훗날 “안디옥 학파”로 불린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머나 지방의 감독 폴리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레니우스의 기독론 해석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레니우스는 헬레니즘적인 학문과 철학적 통찰력과 실천의 지혜 및 중용의 요소가 조화된 훌륭한 목회자였고, 그의 저술 또한 목회적인 입장을 많이 반영한다.
이레니우스에 따르면 복음의 첫째 기초는 우주를 창조하신 한 분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를 비판하면서 최고신과 창조신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두 손'이라는 원리를 주장했다. 이는 '아들'과 '성령'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성자와 성령이 함께 활동 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비유(알레고리)이다.

뿐만 아니라 이레니우스는 교부들 중 가장 많이 성경을 인용하여 이단들을 공박한다. 이레니우스에 있어서 성경은 그가 활동하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과 법칙이었다. 아울러 이레니우스는 성령의 영향으로 생산되는 것은 무오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의 저술에 신구약 성경 중에서 상당히 많은 구절을 인용하거나 언급하였다. 예컨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하, 시편, 잠언,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요나, 미가, 하박국, 스가랴, 말라기,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등을 인용하였음을 그의 저서들 곳곳에 나타난다. 이레니우스는 “복음서는 그 수에 있어서 더하거나 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이유로 세상에는 동서남북이라는 네 개의 지역이 있고, 교회는 모든 세상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레니우스가 이렇게 말한 것은 4 복음서의 완벽성을 설명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여진다.
4 복음서는 그 수에 있어서 더하거나 덜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고 틀림이 없고 오류가 없다는 그의 확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구약성경과 동일한 정경인 신약성경에 대하여 거의 명확하게 말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이레니우스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 주인과 같으니라”(마 13:52)는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하면서, 예수님은 옛 것과 새 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해석은 구약과 신약의 저자는 동일하고 그 목적도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 것과 옛 것은 두 언약인데, 옛 언약의 대표적인 것은 율법이고, 새 언약의 대표적인 것은 복음이라는 의미”이다. 아울러 이레니우스는 성령의 영향으로 생산되는 것은 무오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최초의 조직신학자로 인정한다.

이레니우스 신학의 중심점은 기독론이다.
“그리스도는 창조와 구속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근거가 되신다.
그리스도는 새 아담으로서 창조의 계속이며 동시에 완성이다”.

이레니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새로운 인간상의 총화로서 표현한다.
이것을 가리켜서 “총괄갱신(recapitulate)”이라고 한다.
총괄갱신은 이레니우스 신학에서 가장 뛰어난 주제 중의 하나로서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부터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즉 총괄갱신은 창조의 회복을 뜻한다.
첫 사람 아담이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회복이며, 완전 혹은 완성(perfection)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는 새 아담이며 사탄에게 굴복하지 않은 새 인간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을 향한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게 된다.
교회는 이러한 총괄갱신의 사역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는 세례와 성찬을 통해서 총괄갱신 사역을 진행 시키시고, 세례와 성찬은 인간을 그리스도 자신에게 연합시킨다.
즉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로서 그 머리 아래로 모인 인간의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이레니우스의 접근은 터툴리안 및 오리겐과 전혀 다르다.
속사도 시대의 교부들은 성경을 비유적으로 해석하기를 아주 즐겼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의 비유'를 예로 들어보자.
선한 사마리아인을 예수로, 강도맞은 사람을 구원받은(을)자로, 강도는 사탄 내지 마귀로, 여관은 교회로, 나귀는 복음의 도구 등등. 하지만 이레니우스는 이러한 해석들을 단호히 배격한다.
그의 근본적인 관점은 역사를 통해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곧 목자이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는 점이다.
즉 성경은 이스라엘이라는 특정한 백성의 역사 속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기 때문에 그는 철저히 성서에 대한 비유적(알레고리적) 해석을 배척한다.

이레니우스가 말하는 역사는 하나님께서 인류와 관계를 맺으시는 역사를 가르쳐주는 것으로서 신적 경세(oikonomia 오이코노미아)라고 말한다.
이는 역사 내에 진보와 연속성, 구체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레네우스의 가장 큰 공헌은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단을 막기 위하여 싸웠다는 점이다.
그는 성경을 자유롭게 인용하면서도 신약을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을 보여 주었으며, 사복음과 거의 모든 서신을 말시온의 이단들을 정경(Canon)과 대조하여 논증하는데 승리했다.
그가 주로 논쟁한 주요 이단은 영지주의(Gnostcism 그노시스)였다.
이레니우스는 교회의 교리에 대한 해석자이며 또한 영지주의 이단에 대한 방어자 역할을 했다.

영지주의에 대한 이레네우스의 작품으로는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이 가장 유명하다.
이 책은 다섯권으로 되어 있다.
제1권에서 여러 이단들을 해설하고,
제2권에서 이들에 대한 철학적 논리적 논박을 전개하고,
제3권에서 성경과 전통에 있어서의 기독교 교리의 기초를 제시하고, 또 그 본질적인 부분 즉 하나님의 통일성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속을 해명한다.
제4권에서 두 언약(言約)의 통일성을 주장하고 마르키온을 논박한다.
제5권에서 구속론을 다시 취급하며 종말관과 내세의 소망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아쉽게도 헬라 원전은 소실되었으나 라틴어 번역이 온전이 남아있다.






마지막 시대의 징후



말세의 징조를 나타내는 7가지 징후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태복음 16:2-3)

위의 말씀은 이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많은 표적들을 보여주셨음에도, 또 다른 표적을 요구하고 있는 당시의 종교지도자 바리새인 서기관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표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많은 표적들을 보고도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저들의 무지함, 혹은 표적을 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완고함이 문제라는 것이다.

초림의 주님이 공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 되신 많은 표적들(signs)을 보여주셨듯이,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도 많은 시대의 징조들(signs)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런 징조들이 일어나는 모습들을 볼 때면 ‘그 날이 가까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종말의 진행 상황을 보여주는 7가지 지표들이다.

1. 이스라엘의 회복

종말에 대한 예언의 중심에 이스라엘이 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스라엘의 회복은 종말의 역사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1948년 5월 14일 성경의 예언대로(겔37장) 고토로 돌아와 나라를 재건한 이스라엘은 재건의 순간부터 이스라엘을 진멸하려는 대적들과 전쟁을 치루어왔다.

지금까지 4차례의 중동전쟁을 치룬 이스라엘은 성경의 예언대로라면 앞으로도 시편 83편의 전쟁, 곡과 마곡의 전쟁, 아마겟돈의 전쟁을 더 치루게 될 것이다. 종말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시편 83편의 전쟁(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주변국가와의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이스라엘과 온 아랍세력 + 러시아가 참여하는 전쟁)을 전후로 해서 휴거사건이 있을 것이고, 곡과 마곡의 전쟁 직후 적그리스도와 7년간의 평화 협약을 맺음으로 7년 대환난이 시작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종말의 Time Table이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자연의 재앙

감람산 강화(마24,25, 막13, 눅21)에서 예수님은 종말의 때가 되면 처처에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을 것이고,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할 것(눅21:25)이라 하신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큰 자연의 재앙이 있을 것을 경고하고 있다.

 

마태복음 28장 8절에서는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된 재난이라는 단어는 birth pain이라는 뜻이 있다. 산통(birth pain)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까지 점점 강도가 세지고, 빈도가 잦아지는 특징이 있다. 마찬가지로 종말의 때에 찾아오는 자연의 재앙도 점점 그 강도가 세지고, 빈도가 잦아지다가 결국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한 번 비가 오거나 추위가 찾아오면 일기예보에서 ‘관측이래’ 최대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성경의 예언처럼 자연의 재앙이 점점 그 강도가 세지고 빈도가 잦아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3. 배도

성경에서 소개하고 있는 마지막 때의 교회의 모습은 결코 낙관적인 모습이 아니다.
감람산 강화에서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많은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날 것이라 했고,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에서 사도 바울은 종말의 때에 교회가 배도의 길을 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 소개된 라오디게아교회가 종말의 때에 나타날 교회의 모습이라면 이 말씀들도 결코 교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 않고 있다.

오늘날 성장지상주의에 빠진 많은 교회들이 진리인 말씀을 버리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세상의 철학들과 뉴에이지에 물든 신비적인 영성을 전파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배도의 시대임을 깨닫게 된다.

4. 도덕적 타락

누가복음 17장에서는 종말의 때를 ‘노아의 때와 롯의 때’로 묘사하고 있다. 노아의 때, 롯의 때는 도덕적, 성적 타락이 극에 이른 때이다. 특히 롯의 때의 배경이 되고 있는 소돔성은 동성애가 만연한 도성이었다.
이런 소돔성은 여러 면에서 오늘날 화려한 도시들의 모습들을 많이 닮아 있다.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은 시대인 것이다.

5. 과학 기술의 발달

다니엘서 12장 4절에서는 종말의 때가 되면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묘사하고 있다.
종말의 시대는 교통기술이 발달하고 정보지식 산업이 발달한 시대가 될 것임을 예견하는 말씀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에서는 종말의 때가 되면 사람들을 감시하고 화폐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표’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시대인 것이다.

6. 전쟁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으며,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리라.”(마 24:6,7). 동서냉전의 시대가 끝나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같의 분규가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과 현재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들이 결국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7. 세계정부의 등장

다니엘서 2장에 등장하는 철과 진흙이 섞인 발로 묘사되는 나라, 다니엘서 7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열 뿔을 가진 네 번째 짐승, 또 요한계시록 17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큰 성 바벨론’은 모두 주님이 재림하여 주의 나라(천년왕국)를 이 땅에 세우시기 전에 등장할 마지막 제국, 적그리스도의 나라를 설명하는 말씀들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가 결국 세계정부의 탄생(New World Political Order)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 세계정부가 바로 적그리스가 다스리는 마지막 제국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일들(성경에서 제시하는 7가지 지표들)이 되어지는 모습들을 보면서 성경이 예언한 ‘그 날’ 종말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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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난

 

 

누가복음 21:10-11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지진이 있으리니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가 있으리라.

2. 미혹(거짓선지자 출현)

 

 

<대표적 이단 목록>  -신천지 -구원파  -몰몬교  -하나님의 교회  -여호와의 증인 등

* 특징 :  교주가 존재함 ("내가 예수다")  /  물질강요와 성적 타락  /  열매(결실)가 좋지 못함.

데살로니가후서 2:11 /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마태복음 24:4~5  /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태복음 24:11 /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3. 예수믿는 자의 박해

 

 마태복음 24:9~10 /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예수)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4. 불법이 난무하고, 사랑이 없음

 

마태복음 24:9~10 /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5. 돈과 자기사랑/ 교만함/ 하나님 비방/ 부모를 거역

 

디모데후서 3:1-2 /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6. 사람들간의 빠른 왕래/ 지식이 증가

다니엘 12: 4 /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 

7.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

 

마태복음 24:13~14 /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8. 종말에 일어날 일들

 

 

데살로니가전서 4:16-17 / 주께서 호령천사장의 소리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요한계시록 21:1-4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 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거(居)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哭)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베드로후서 3:10 /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땅덩어리)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요한계시록 6:7-8 /

네째 인을 떼실 때에 청황색 말이 나오고 그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했습니다. 그들은흉년사망땅의 짐승으로서 죽이더라

 

 

 

 

 

 

 
마태복음 24:13 /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 구원을 얻으리라"